43:39에서 '백제허'라는 지명이 나올때 소름 돋았습니다. 예전에 저 대목이 인터넷 어디서 잘린 상태에서 나와 도대체 출처가 어디인가 싶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이번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겼습니다. 자료 정리해서 이렇게 공익에 기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KBS 전주 관계자 여러분!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담로의 어원은 고구려의 이라고 본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에서 온 말이다. 동북아 최강국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 성을 짓는데 그것을 즉 이라고 한다. 현재 벽이나 울타리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단어가 남아있다. 따라서 백제 역시 고구려의 다물 정신과 마찬가지로 을 같이 사용했다. 백제의 역시 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록과 지명에서 다물은 담울, 담우로, 담라, 담로, 담, 담수, 담물 등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제주도의 옛 이름인 도 담로에서 온 것이므로 백제의 담로국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대마도도 로 바뀐 백제의 담로국이다. 대마도 주민의 유전자는 오히려 한반도 사람들의 것과 같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류큐제도 오키나와에는 이 있다. 남송 때의 조여괄이 지은 [제번지]에는 류큐제도의 이시가키시마에 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는 의 음을 한자인 자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은 이라는 뜻이다. 즉 이다.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북제서]에 의하면 571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자사’라는 직을 제수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570년(위덕왕 17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으로 삼는다. 그리고 571년(위덕왕18년) 북제의 후주가 다시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독사방여기요]에 의하면 동청주의 치소는 불기성으로서 즉묵에서 서남쪽으로 50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동청주는 현재의 청도(칭다오)이다. 따라서 북제가 백제왕에게 동청주자사직을 준것은 백제의 청도(칭다오)에 대한 지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광동성 혜주 혜양현에 담수항, 담물터가 있으며, 광동성 서쪽 뇌주에 담수채, 담물울이 있으며 해암도 바로 앞이다. 광동성 흠주, 광주만은 과거 담수만, 담물만으로 불리웠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고대 백제는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대만은 원래 담모라국 혹은 탐모라국이다. [수서] [백제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대만은 남북 386km(965리), 동서 144km(360여리)이며 사슴항구라고 불리는 이란 항구가 있다. 그리고 명나라 때부터 대만 토착민들이 사슴 가죽을 복건성에 내다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만에는 여전히 라는 지명이 있다. 역시 담로계 지명이다. [동서양고]에 필리핀 밀안항 남쪽에 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현재 이곳은 필리핀 루론섬 서북쪽의 유감항의 남쪽으로 추정한다. 는 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므로 은 라는 뜻이다. 즉 담로항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부 아로국에도 담수항이 있었다. 원나라 [도이지락]에는 으로, 명나라 마환의 [영애승람]과 공진의 [서양 번국지]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담수항과 담양, 담안은 모두 같다. [순풍상송]에는 라고 적혀있다. 이곳은 카리만탄으로 추정된다. 은 으로 읽을 수 있는 담로계 땅 이름이다. 베트남의 은 과 발음이 유사한 전형적인 담로계 지명이다. [명사]에서는 태국을 섬라(siam)라고 지칭한다. [순풍상송]에는 부터 까지의 항로에 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Siam과 섬라 역시 나 에서 변한 것이다. [동서양고]에 주석을 붙인 [풍토기]에 근거하여 을 캄보디아의 로 본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있다. 말레이시아 은 과거 으로 불리었다. 남송 때 조여괄의 [제번지]에 이 처음 기록되며, 원나라 때 왕대연의 [도이지락]에도 이라는 지명이 있다. 정광유와 서성모의 [중국역사지도]에는 이 말레이 반도 동남쪽의 큰 섬 이라고 언급한다. 은 마을을 의미한다. 단마령의 는 한자 이다. 또한 는 또는 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 되므로 담로계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티모르’라는 지명은 를 뜻하는 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백제인들이 와서 담로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백제 항해술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까지 갈 수 있다면 당연히 티모르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순풍상송]에는 석관산(실론, 스리랑카) 북쪽에 석성초라는 곳을 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물 수)와 마(말 마)는 모두 을 훈독한 것이니 , 즉 이다. [도이지락]에는 싱가포르를 과거에 이라고 불렀다고 적혀있고, 명나라 모원의의 [무비지], [동서양고], [순풍상송]은 모두 을 이라 기록하고 있다. 은 영어로 Tamasek이나 Tumusik이라고 적는데, 당나라 중엽부터 싱가포르를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그곳을 타누마(Tanuma) 또는 티유마(Tiyuma)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당나라 이전부터 이미 이 존재한 것이 분명하다. 백제는 대만 너머 동남아시아에 여러 개의 담로를 설치하고 예상보다 막강한 교역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횡포에 가까운 전권을 종종 행사했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 있다.
삿;ㅎ 대단한 발견이라고 봅니다. 백제의 22담로는 상당한 국제 국가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비록 나당 연합근에게 한반도의 본국 백제는 망했을 것인지는 몰라도 극국제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22담로들은 언제까지 유디를 했는지는 자세하 알숙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가지도 그들의 지명들에 남아 있다고 하니 가히 상당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지 않았을까 예상됩ㄴ;디/ 전설이라지만 무려 1400여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는 것은 정말 유ㅜ명한 백제의 세혁이 지금까지 도 지네 오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역사를 다시한 번 찬찬히 영그해 봘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loveItalia-py6gp 과거를 잊지않고 현실을 열심히살아서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급진적인 발전을 해왔다. 일본을 욕하면서 가만히 있지않았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미 앞서가고있다. 경제적으로 이제 몇년 안남았고 그건 일본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고있고 공영방송에서도 인정하는 추세인데 뭘 입을뫈 욕하고 있고 살력을 키워라야 친일파야
정말 귀한 영상입니다. 대륙백제에 실체를 과거 영상에서 볼 수 있어 감동입니다. 위나라가 미쳤다고 바다건너 지금 전라도에 수십만 군사를거느리고 전쟁을? 22담로 정복지 요서 산동부터 비옥한 동안땅을 거느린 대제국이 바로 대백제입니다. 이병도가 금서룡 제자로 조선사 편수회에서 자행한 식민사관 지금 강단사학자들에 의해 교육받아 왔고 지금도 여전히 후손이 교육받는 현실입니다. 역사광복이 절실합니다.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고 고구려 다물 ㅡ따물으자 ㅡ고토 회복정신 그리고 나아가 대조선 역사회복 노력이 이땅에 살아 있는자들에 사명입니다. 고맙습니다.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흠정만주원류고] 이병주 감수/ 남주성 역주 / 글모아출판 상권/ p103 {태평환우기} 백제는 서쪽이 대해를 한계로 하여 해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소해의 남쪽에 있다. 남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곧 왜국(倭國)이다. 진나라 때에 번국으로서 작위를 받아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토착생활을 한다, 땅은 습한 곳이 많아 '백성들을' 이끌고 산에서 모두 산다. p104 *소해(小海) : 기존에는 소해를 '아산만 일대의 해역'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소해의 위치에 대하여 권 30 "산동조"에서는 -'산동 동북지경에 있는 바를 발해勃海 또는 발해渤海 라고 부른다. 전긍이 말하기를 제의 서쪽의 탁하를 경계로 하고, 북쪽은 발해가 있는 이점이 있다. 발해를 소해少海라고도 한다. 에는 제의 경공이 소해少海에서 놀이를 하였다. 소해少海 또한 소해小海라고도 한다. " 라고 되어 있다. 또한 백도백과의 등주고시 소개를 보면, 산동 봉래현 등주 고항의 수역을 지금도 소해小海라고 부르고 있다.
백제의 역사날조는 구역질이 날 정도다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를 소개할때도 전문을 소개하지 않고 딱 유리하게 보이게끔 원하는 부분만 짤랐다 "백제는 도성(都城)을 고마(固麻)라 하고 읍(邑)을 담로(檐魯)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담로(檐魯)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에게 나누어 웅거케 하였다." 이게 전문임 담로는 읍 단위이며 중국의 군현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걸 해외 식민지로 날조시키는건 뭐하자는건지 이해가 안감 그런 논리면 중국은 해외에 수천개의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었다고 해야 함 왕권이 워낙 약했던 백제는 역사존속 내내 토착세력인 대성팔족에 시달렸고 그런 이유로 백제왕은 대부분 시해당해 죽었다 왕권교체 자체가 곧 전임 왕의 시해에 있었던게 백제고 전남 지역도 6세기 중반이후 겨우 지배했건게 백제인데 그런 백제가 해외를 경영했다? 현실적인 인식이 결여된 전형적인 망상임
얼마나 소름끼쳤을까요 500년 형님나라라고 제사지낸 그 나라가 알고보니 개털쭉쩡이고 진짜 주인은 우리였다니 그냥 주입식으로 일제식민시기 신채호 상고사 고대사 역사서 만들어서 민족의 기상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외웠는데 그 내용은 전혀 안가르쳐주니깐 이해가 안되죠 그러니 한국사가 암기과목이되죠 인과관계 개연성 1도 없는걸 정사라고 가르치니😅
@@jesushairstyle 이미 일본천황이 자신은 백제의 피가 흐른다고 밝혔지만 일본내에서는 비판 받았죠. 우리도 일본이 백제다라고 하며 형제국으로 하기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피해가 너무 심했구요. 일본과는 독도 문제만 해결되어도 서로 좋은 관계로 회복 할 수 있을거 같아요. 21세기 모든 정보가 연결되는 이 시기에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몽땅 가져가려는 중국이 더 큰 문제네요.
담로의 어원은 고구려의 이라고 본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에서 온 말이다. 동북아 최강국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 성을 짓는데 그것을 즉 이라고 한다. 현재 벽이나 울타리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단어가 남아있다. 따라서 백제 역시 고구려의 다물 정신과 마찬가지로 을 같이 사용했다. 백제의 역시 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록과 지명에서 다물은 담울, 담우로, 담라, 담로, 담, 담수, 담물 등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제주도의 옛 이름인 도 담로에서 온 것이므로 백제의 담로국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대마도도 로 바뀐 백제의 담로국이다. 대마도 주민의 유전자는 오히려 한반도 사람들의 것과 같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류큐제도 오키나와에는 이 있다. 남송 때의 조여괄이 지은 [제번지]에는 류큐제도의 이시가키시마에 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는 의 음을 한자인 자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은 이라는 뜻이다. 즉 이다.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북제서]에 의하면 571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자사’라는 직을 제수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570년(위덕왕 17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으로 삼는다. 그리고 571년(위덕왕18년) 북제의 후주가 다시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독사방여기요]에 의하면 동청주의 치소는 불기성으로서 즉묵에서 서남쪽으로 50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동청주는 현재의 청도(칭다오)이다. 따라서 북제가 백제왕에게 동청주자사직을 준것은 백제의 청도(칭다오)에 대한 지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광동성 혜주 혜양현에 담수항, 담물터가 있으며, 광동성 서쪽 뇌주에 담수채, 담물울이 있으며 해암도 바로 앞이다. 광동성 흠주, 광주만은 과거 담수만, 담물만으로 불리웠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고대 백제는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대만은 원래 담모라국 혹은 탐모라국이다. [수서] [백제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대만은 남북 386km(965리), 동서 144km(360여리)이며 사슴항구라고 불리는 이란 항구가 있다. 그리고 명나라 때부터 대만 토착민들이 사슴 가죽을 복건성에 내다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만에는 여전히 라는 지명이 있다. 역시 담로계 지명이다. [동서양고]에 필리핀 밀안항 남쪽에 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현재 이곳은 필리핀 루론섬 서북쪽의 유감항의 남쪽으로 추정한다. 는 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므로 은 라는 뜻이다. 즉 담로항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부 아로국에도 담수항이 있었다. 원나라 [도이지락]에는 으로, 명나라 마환의 [영애승람]과 공진의 [서양 번국지]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담수항과 담양, 담안은 모두 같다. [순풍상송]에는 라고 적혀있다. 이곳은 카리만탄으로 추정된다. 은 으로 읽을 수 있는 담로계 땅 이름이다. 베트남의 은 과 발음이 유사한 전형적인 담로계 지명이다. [명사]에서는 태국을 섬라(siam)라고 지칭한다. [순풍상송]에는 부터 까지의 항로에 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Siam과 섬라 역시 나 에서 변한 것이다. [동서양고]에 주석을 붙인 [풍토기]에 근거하여 을 캄보디아의 로 본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있다. 말레이시아 은 과거 으로 불리었다. 남송 때 조여괄의 [제번지]에 이 처음 기록되며, 원나라 때 왕대연의 [도이지락]에도 이라는 지명이 있다. 정광유와 서성모의 [중국역사지도]에는 이 말레이 반도 동남쪽의 큰 섬 이라고 언급한다. 은 마을을 의미한다. 단마령의 는 한자 이다. 또한 는 또는 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 되므로 담로계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티모르’라는 지명은 를 뜻하는 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백제인들이 와서 담로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백제 항해술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까지 갈 수 있다면 당연히 티모르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순풍상송]에는 석관산(실론, 스리랑카) 북쪽에 석성초라는 곳을 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물 수)와 마(말 마)는 모두 을 훈독한 것이니 , 즉 이다. [도이지락]에는 싱가포르를 과거에 이라고 불렀다고 적혀있고, 명나라 모원의의 [무비지], [동서양고], [순풍상송]은 모두 을 이라 기록하고 있다. 은 영어로 Tamasek이나 Tumusik이라고 적는데, 당나라 중엽부터 싱가포르를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그곳을 타누마(Tanuma) 또는 티유마(Tiyuma)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당나라 이전부터 이미 이 존재한 것이 분명하다. 백제는 대만 너머 동남아시아에 여러 개의 담로를 설치하고 예상보다 막강한 교역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횡포에 가까운 전권을 종종 행사했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 있다.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통일신라는 오늘날 베이징 지역까지 당연히 백제영토까지 통일을 한 것입니다. 일제사관에 의해 우리역사가 95프로이상 축소되었고 강단식민학자들이 이를 그대로 우리에게 가르쳐서 반도사관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한거죠. 통일신라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돈황동굴에서 발견되고 우리는 스님이 신라땅에 귀국하지 않고 열반한 것으로 기록하는데 사실 신라땅 대륙에서 열반한 것이죠.
백제는 삼국중 최대의 호구수를 가졌으며 그를 바탕으로한 막강한 생산력이 있었습니다. 고대나 현대나 국력에 있어 인구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생각했을때 나제 동맹 당시 배신을 당하고 한수유역을 잃었을 지언정 신라는 물론이고 고구려도 압도하는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도 부정하고 싶겠지만, 한반도를 신라가 통일했으니 신라입장에서는 백제가 의자왕 처럼 억지로라도 못된 나라여야만 하니 백제를 더 매도 해야만 하는 것이고 역사도 신라입장에서만 쓰였을테고, 아직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봐야죠. 그래서 쉽게 바꿀수도 없는 문제가 생기는거고...
"백제의 뒷통수 열전" ------------------------------------------------------------------------------------------------------------------------------------- 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전라도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한국은 1997년이후 친중매국노 혹은 호적세탁한 중국인들 세력에게 완전 장악돼서 요즘은 이런 프로 테레비에서 절대 못 만듦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춰주는 역사조작을 정부차원에서 하는게 김대중이후 동북아역사재단 놈들에게 세금 돈 주고 하는짓임 김대중문재인 세력 자체가 호적세탁한 중국인들로 추정되는 세력임 그 이유는 뒤를 캐보면 호적세탁한 냄새가 진동을 함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김부식이 사대주의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저의 관점에서는 중국내에서 있었던 백제 고구려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축소시킨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중국의 눈치를 본 사대주의적인 기술이 아니고 무었일까요? 물론 자신이 신라계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신라 역사를 우수하게 보이려는 면이 이썼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 생각에는 사대적인 면을 지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징어동해안 국사기가 백제 고구려가 멸망하고 수백년이 지난 이후에야 쓰여진 것이라 모두 정확할 순 없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그 세월이 흐른 이후에 역사를 쓴다면 삼국시대의 백제 고구려의 역사서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백 번 양보하더라도 신라의 역사기록과 함께 중국의 고대 기록들을 모두 참조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리 하여서 작성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제의 경우 눈에 띄는 것만 하더라도 근초고왕 시절의 요서군 진평현 기록도 아예 없으며..이후 동성왕시절 대륙에서 펼쳐졌던 북위와의 전쟁관련 기록 역시 깨끗하게 없애 버렸죠..두 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킨 친 신라 친 중국 경향의 역사서가 분명한 것이지요.
@오징어동해안 네 중국 대륙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백제 고구려의 기록은 지금도 물론이거니와 당시에도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유쾌한 일이 아니겠지요. 백제와 북위와의 전쟁을 일례로 들자면 남제의 역사서에는 그 전쟁이 언급되지만 당시 북쪽 나라의 역사서엔 일절 언급이 없는데...이것을 후세에 역사로 기록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양쪽의 기록을 다 담아야지요.. 남제의 기록엔 이런 내용이 있더라....그러나 북위의 기록엔 없다..정도는 적어줘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김부식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철저히 없는 것으로 단정지어 버렸죠. 그의 머릿속엔 대륙에 어디 감히 백제가.......이런 생각이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징어동해안 역사에 대한 인식을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이 나라 최초의 역사서를 쓰는 김부식이 남제의 사서와 수 당의 사서 등을 참조하지 않았을리가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들과 엮인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부식은 남제와 북위의 역사서를 놓고 고민을 했을테지만 백제의 땅이 요서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터이고 북위의 역사서에 누락되어있는 그대로 따라 적은 것이 됩니다. 환단고기요? ㅎㅎ 거기까지 안가도 다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한반도의 나라들과 엮인 부분에 상당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술한 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놈들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서 주장을 하는데..우린 그래 다른 데도 아니고 저 중국의 사서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런 기록이 있다라고 주장도 못합니까?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하여 연구를 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데 동의 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역사를 찌속적으로 발굴하고 우리 국민이 적극적으로 배워야한다. 이 역사의 발굴 계몽이 우리 미래의 번영의 원천이 될 것이다. 흩어진 민족을 발굴하여 잊혀진 역사를 공유하고 다시금 한민족의 시대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일본, 중국 동북으로부터 해남도 , 베트남 변경의 광서장족자치주에까지 한민족의 무대를 회복해야 할......
[황영상TV]를 통해서도 공개되었지만, 정말 감동적인 영상이 많더군요. 유튜브 비밀아지트의 전격공개는 물론, 35년전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에 보낸 편지내용 공개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 레이건 대통령] 검색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왜 1985년에 편지를 보내게 되었을가요?
일본은 죠몬 인도양 토인과 티벳 또 야요이인 티벳과 중국한족 포루투말 폴리네시안 아이누와 조선 도공 소수의 재일 혼혈종으로 한반도 야요이인뻥은 티벳인종 한반도 노예 특히 백제의 노에로 있다 번성하면 통제 불능이라 호족 북방계 선비족의 지원으로 싴라에게 세를 싫어줘 통제가능한 국가를 만들고 백제를 편애한ㄴ는 고구려왕도 망한거임 백제의 3천궁녀 와 타락이 원인이죠 신라왕의 나는 흉노다란 비문은 당당한 북방계 표현이고 명분이죠
ㅎ, ...이미 백제축소는 후기신라때 부터이고, 고려초를 지나 유학을 국가경영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기 이후와 성리학만을 맹신했던 조선까지 스스로 파사'한 것입니다. ...조선후기및 말엽부터 조금씩 회복(?)하고자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제에 들어와 이미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기획돼 있었던 일제및 총독부가 특히 3.1 운동을 깃점으로 민족주의사관의 싹을 말리기위해 마지막 남은 편린마저 모조리 지운것입니다. 거기에 조작된 역사관으로 도배된 역사관(국사관)을 심기위해 경성제국대를 중심으로 수정주의 역사관을 만들어 철저히 전파 식생'한 것이고, 그 무도한 앞잽이들의 멘티'들이 지금 한국사학계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상고사라는것을 연구하는 애들의 수준★ 1000년뒤 인류가 큰 재앙이 닥쳐 지금은 당시의 역사자료가 많이 소실되었지만 한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미국을 지배했던 나라였다고 추정된다. 이역만리 이 먼곳에 그들은 코리아타운 즉 를 건설했는데 그곳에는 한글이 가득했다고 한다. 아메리카 넒은 땅을 지배했던 우리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대체 무엇일까?? 작은 나라였다면 대한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을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의 지명은 LA 즉 [라] 인데. 그렇다면 이 한글이라는 고대어 대로라면 [가],[나],[다]의 지역또한 있었다는것이다... 어쩌면 라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소 4개 또는 그 이상의 대륙과 국가를 지배했다는것이 유력하다... 우리는 세계를 지배한 대한민국이라는 흔적을 찾아내 연구해야한다. 심지어 영어에서 [맘]은 한국어로 [엄마] 라고 한다... 맘=엄마... 이게 과연 우연이라고 할수있을까?? 엄마 즉 에서 영어는 파생되었던것이 아닐까?!?!?!?
근데 이거 22담로 영토가 해외로 저렇게 있는걸 환담고기인가. 그거 얘기하면서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많을 텐데. 일본 해외 침략할 떄 고토 수복한 다고 떄린게 저 지역들이라서. 일본이 임나일본부설 드립치면서 백제를 자신들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행동한거 보면. 22담로 백제 해양제국설 설득력있음.
@@김형래-k6i 한반도와 일본 사학계는 정치세력의 의도하에 22백제를 창시한 중국 제나라를 절대 용납할수 없다. 왜냐하면 제나라의 를 인정하면 한반도와 일본인은 대부분이 그냥 한족 이라는 무서운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하여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와 일본 내에서 백제역사에 관한 의문들을 해석하려 하는데 납득시킬 많한 해답은 안나오고 갈수록 미스테리 투성이다. 제나라 전횡이 22개 백제를 창시하고 조직적으로 산동반도에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백성들을 이주시켜 각자 나라의 서민주체를 이루었 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은 한일모두 극치에 달한다. 1 영상증거 백제허 육태정 노인의 말 46:45 ruclips.net/video/lgPeTovH1fI/видео.html 2.영상증거 의 백가제해 해석 52:37 ruclips.net/video/hj0DPh6_r1M/видео.html 3영상증거 일본 오후치 가문의 족보 25:10 ruclips.net/video/fasW4si3nww/видео.html임성태자는 즉 백제왕이 제(齐)나라 왕이다. 참고로 오우치 성씨 (大内)자체가 대륙내부 에서 왔음을 암시한다. 4영상증거 일본국보 청동거울 제동경 1:35 ruclips.net/video/BmEIbN-OCnU/видео.html
우리 역사를 못 지킨 우리 탓도 있다는걸 잊지 마시길. 계속 당하기 싫다면 그들이 역사왜곡한다 비판하며 어짜피 씨알도 안 먹힐 징징은 그만하고 실력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한국의 사회 구조는 이미 그것이 실현되기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 아니고서는 아니 그렇게 하여도 지금 이 처지를 반전 하기 힘들 것 이다.
kbs가 예전에 이렇게 우리 고대사에 관심이 많고 훌륭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음이 감동적입니다. 지금 우리 방송계는 다큐멘터리가 씨가 말랐어요.ㅜㅜ 역사에도 관심이 없고… 이 때의 피디님들이 후학을 양성해주셔야 하는데, 요즘 피디들 다 뭐하는지..
민노총의 좌파 빨갱이 앞잡이가 되어
역사왜곡 방송이나 하고 있죠.
이승만, 박정희등 이나라를 세우고 이 나라 경제를 일으킨 전대통령을 독재자라 몰아부치고
빨갱이 좌빨들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추종세력 방송이 되어있죠.
글게요 .. 시청료로 회식하나??
ㅖ
@@user-xv1eg1de4ererewr
여기에 정치얘기가 왜 나와 ~ 쯧
@@베텔게우스-p9i
방송이 노조에 장악되어 사회주의, 공산주의 추종세력의 방송이 되어있는데,
정치얘기를 하면 안돼?
이미 방송이 정치화 되어있는데,
정치 얘기를 하지말라고?
고대 한반도의 글로벌 해상패권제국 백제,,협소사관의 삼국사기는 차치하고 중국과 일본의 정사 속에 살아서 숨쉬고 있네요 이를 반영하는 유물과 유적들도 있는걸 보니 실로 뭔가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임진왜란의 거북선이 거저 나온게 아니죠.. 거대한 해상왕국이 그 배후에 있는 것이죠...백제.신라의 해상왕국에서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바다에 대한 지식들이 축적되어 나온 결과물이죠..
43:39에서 '백제허'라는 지명이 나올때 소름 돋았습니다. 예전에 저 대목이 인터넷 어디서 잘린 상태에서 나와 도대체 출처가 어디인가 싶었고,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이번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겼습니다. 자료 정리해서 이렇게 공익에 기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KBS 전주 관계자 여러분!
백제성이 허물어지고 없어지면 지명이 백제허로 이름을 부른다고한다
@@최윤숙-l1q 백제 위치 별자리 다 기록했단다 무너졌어 그렇게 아닌라 아줌마야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담로의 어원은 고구려의 이라고 본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에서 온 말이다. 동북아 최강국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 성을 짓는데 그것을 즉 이라고 한다. 현재 벽이나 울타리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단어가 남아있다. 따라서 백제 역시 고구려의 다물 정신과 마찬가지로 을 같이 사용했다. 백제의 역시 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록과 지명에서 다물은 담울, 담우로, 담라, 담로, 담, 담수, 담물 등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제주도의 옛 이름인 도 담로에서 온 것이므로 백제의 담로국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대마도도 로 바뀐 백제의 담로국이다. 대마도 주민의 유전자는 오히려 한반도 사람들의 것과 같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류큐제도 오키나와에는 이 있다. 남송 때의 조여괄이 지은 [제번지]에는 류큐제도의 이시가키시마에 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는 의 음을 한자인 자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은 이라는 뜻이다. 즉 이다.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북제서]에 의하면 571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자사’라는 직을 제수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570년(위덕왕 17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으로 삼는다. 그리고 571년(위덕왕18년) 북제의 후주가 다시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독사방여기요]에 의하면 동청주의 치소는 불기성으로서 즉묵에서 서남쪽으로 50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동청주는 현재의 청도(칭다오)이다. 따라서 북제가 백제왕에게 동청주자사직을 준것은 백제의 청도(칭다오)에 대한 지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광동성 혜주 혜양현에 담수항, 담물터가 있으며, 광동성 서쪽 뇌주에 담수채, 담물울이 있으며 해암도 바로 앞이다. 광동성 흠주, 광주만은 과거 담수만, 담물만으로 불리웠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고대 백제는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대만은 원래 담모라국 혹은 탐모라국이다. [수서] [백제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대만은 남북 386km(965리), 동서 144km(360여리)이며 사슴항구라고 불리는 이란 항구가 있다. 그리고 명나라 때부터 대만 토착민들이 사슴 가죽을 복건성에 내다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만에는 여전히 라는 지명이 있다. 역시 담로계 지명이다.
[동서양고]에 필리핀 밀안항 남쪽에 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현재 이곳은 필리핀 루론섬 서북쪽의 유감항의 남쪽으로 추정한다. 는 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므로 은 라는 뜻이다. 즉 담로항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부 아로국에도 담수항이 있었다. 원나라 [도이지락]에는 으로, 명나라 마환의 [영애승람]과 공진의 [서양 번국지]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담수항과 담양, 담안은 모두 같다.
[순풍상송]에는 라고 적혀있다. 이곳은 카리만탄으로 추정된다. 은 으로 읽을 수 있는 담로계 땅 이름이다.
베트남의 은 과 발음이 유사한 전형적인 담로계 지명이다. [명사]에서는 태국을 섬라(siam)라고 지칭한다. [순풍상송]에는 부터 까지의 항로에 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Siam과 섬라 역시 나 에서 변한 것이다.
[동서양고]에 주석을 붙인 [풍토기]에 근거하여 을 캄보디아의 로 본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있다. 말레이시아 은 과거 으로 불리었다. 남송 때 조여괄의 [제번지]에 이 처음 기록되며, 원나라 때 왕대연의 [도이지락]에도 이라는 지명이 있다. 정광유와 서성모의 [중국역사지도]에는 이 말레이 반도 동남쪽의 큰 섬 이라고 언급한다. 은 마을을 의미한다. 단마령의 는 한자 이다. 또한 는 또는 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 되므로 담로계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티모르’라는 지명은 를 뜻하는 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백제인들이 와서 담로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백제 항해술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까지 갈 수 있다면 당연히 티모르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순풍상송]에는 석관산(실론, 스리랑카) 북쪽에 석성초라는 곳을 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물 수)와 마(말 마)는 모두 을 훈독한 것이니 , 즉 이다.
[도이지락]에는 싱가포르를 과거에 이라고 불렀다고 적혀있고, 명나라 모원의의 [무비지], [동서양고], [순풍상송]은 모두 을 이라 기록하고 있다. 은 영어로 Tamasek이나 Tumusik이라고 적는데, 당나라 중엽부터 싱가포르를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그곳을 타누마(Tanuma) 또는 티유마(Tiyuma)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당나라 이전부터 이미 이 존재한 것이 분명하다.
백제는 대만 너머 동남아시아에 여러 개의 담로를 설치하고 예상보다 막강한 교역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횡포에 가까운 전권을 종종 행사했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 있다.
@@JKJ0509 공부한 내용 정리 잘 하셨네요. 이제껏 접하지 못한 사료도 등장해서 놀랐습니다. 잘되면 논문으로도 되겠는데, 혹시 바른역사학술원의 학회지 아시나요?
이 프로그램 아니였으면 누가 언제 과연 중국남부주민이 맷돌쓰던걸 알았거나 취재했겠냐. 이또한 역사기록이다. 취재진분들 감사합니다 kbs 화이팅
맷돌은 세계 어디서나 다 쓰는 줄 알았는데,,,,,,우리 민족만 쓰는 기구였나보네요!!!!!!!!!!
@@mincheolyang7981 맷돌 동남아도 썼어요..형태가 다를뿐 전세계에서다 썼습니다. 태국시골가면 아직도 씁니다
@@오리-e7u4y 넵
삿;ㅎ 대단한 발견이라고 봅니다. 백제의 22담로는 상당한 국제 국가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비록 나당 연합근에게 한반도의 본국 백제는 망했을 것인지는 몰라도
극국제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22담로들은 언제까지 유디를 했는지는 자세하 알숙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가지도 그들의 지명들에 남아 있다고 하니
가히 상당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지 않았을까 예상됩ㄴ;디/ 전설이라지만 무려 1400여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는 것은 정말 유ㅜ명한 백제의 세혁이 지금까지 도 지네
오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역사를 다시한 번 찬찬히 영그해 봘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배우는 학생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네요.
Kbs전주 진짜 최곱니다. 아니 왜좋아오ㅡ가 없아 내가 1빠해야지이런 귀한 영상이 ㅎㅎ 잘 보고 있어요. 아직 고대사 그중에 발해 가야 이런건 찾기가 너무힘들죠. 이 부분에 대한것은 연구자체가 너무 적어서 안타까워오ㅡ
전 국민들과 북한 주민 나아가 한민족 전체는 물론
세계인들이 봐야 할 아주 좋은 방송입니다.
가슴 가득 감동이 느껴집니다.
1996년 작품도 이렇게 진취적인데, 그로부터 이십여년 지난 2021의 현재 역사학계는 오히려 퇴보를 거듭해 주류 신진학자들이 우리역사를 더 초라하게 하니 개탄스럽다. 랑케의 부작용이 하필 한국에서 더하다니 기가막히다.
그들이 말하는 실증주의라는 건 조선총독부사관, 즉, 식민사관을 포장하는 겁니다. 국민들을 사맹화시키고 친일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속으면 안 됩니다.
두 분 말씀이 백 번 옳습니다.
친일친일 주장하는 사람들부터 좀 어떻게 해야함. 이상한 역사관으로 무조건 친일 엮지말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고 역사를 봐라 제발. 일본에게 먹힌게 열받지도 않냐? 그런데도 아직까지 입으로만 일본 욕하고 있어. 실력을 키워라
@@loveItalia-py6gp 0
P
@@loveItalia-py6gp 과거를 잊지않고 현실을 열심히살아서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급진적인 발전을 해왔다. 일본을 욕하면서 가만히 있지않았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미 앞서가고있다. 경제적으로 이제 몇년 안남았고 그건 일본 경제학자들도 인정하고있고 공영방송에서도 인정하는 추세인데 뭘 입을뫈 욕하고 있고 살력을 키워라야 친일파야
감동, 또 감동입니다. 되풀이해서 잘 보지 않는데 일을 하며 듣다보니 다시 보아야할 필요성을 느낄 정도로 정말 소중한 자료입니다. 구석구석 뒤져서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편린들을 빠짐없이 모두 되찾아 오는 노력도 하시겠지요?
존경하옵고,
감사합니다!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sgkm5141 赞成维吾尔族人独立,欢迎啊
정말 귀한 영상입니다.
대륙백제에 실체를 과거 영상에서
볼 수 있어 감동입니다.
위나라가 미쳤다고 바다건너
지금 전라도에 수십만 군사를거느리고 전쟁을?
22담로 정복지 요서 산동부터
비옥한 동안땅을 거느린 대제국이
바로 대백제입니다.
이병도가 금서룡 제자로 조선사
편수회에서 자행한 식민사관
지금 강단사학자들에 의해
교육받아 왔고 지금도 여전히 후손이 교육받는 현실입니다.
역사광복이 절실합니다.
반도사관에서 벗어나고 고구려 다물 ㅡ따물으자 ㅡ고토 회복정신 그리고 나아가 대조선 역사회복 노력이 이땅에 살아 있는자들에 사명입니다. 고맙습니다.
@@sgkm5141 你这是什么意思?你上次不是说你不会忘记天安门而且必定找回民主主义吗
이게 언제적건데
요서산동에서 패하고
일본으로
왜국으로 도래한 임성태자가 스스로를 부르길 백제국 마한황제의 아들이라
왜
이런 대한민국을 위한
자긍심을 드높힐수있는
훌륭한 역사프로그램은 사라진것일까?
정말정말이요~!!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흠정만주원류고] 이병주 감수/ 남주성 역주 / 글모아출판
상권/ p103
{태평환우기}
백제는 서쪽이 대해를 한계로 하여 해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소해의 남쪽에 있다. 남쪽으로 바다에 이르니 곧 왜국(倭國)이다. 진나라 때에 번국으로서 작위를 받아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토착생활을 한다, 땅은 습한 곳이 많아 '백성들을' 이끌고 산에서 모두 산다.
p104
*소해(小海) : 기존에는 소해를 '아산만 일대의 해역'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소해의 위치에 대하여 권 30 "산동조"에서는 -'산동 동북지경에 있는 바를 발해勃海 또는 발해渤海 라고 부른다. 전긍이 말하기를 제의 서쪽의 탁하를 경계로 하고, 북쪽은 발해가 있는 이점이 있다. 발해를 소해少海라고도 한다.
에는 제의 경공이 소해少海에서 놀이를 하였다. 소해少海 또한 소해小海라고도 한다. " 라고 되어 있다.
또한 백도백과의 등주고시 소개를 보면, 산동 봉래현 등주 고항의 수역을 지금도 소해小海라고 부르고 있다.
토왜가 장악했으니까요.
역사학계는 거의 99% 언론계 정치계… 에휴.
백제의 역사날조는 구역질이 날 정도다
양서에 기록된 22담로를 소개할때도 전문을 소개하지 않고 딱 유리하게 보이게끔 원하는 부분만 짤랐다
"백제는 도성(都城)을 고마(固麻)라 하고 읍(邑)을 담로(檐魯)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담로(檐魯)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에게 나누어 웅거케 하였다." 이게 전문임
담로는 읍 단위이며 중국의 군현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걸 해외 식민지로 날조시키는건 뭐하자는건지 이해가 안감
그런 논리면 중국은 해외에 수천개의 나라를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었다고 해야 함
왕권이 워낙 약했던 백제는 역사존속 내내 토착세력인 대성팔족에 시달렸고
그런 이유로 백제왕은 대부분 시해당해 죽었다
왕권교체 자체가 곧 전임 왕의 시해에 있었던게 백제고
전남 지역도 6세기 중반이후 겨우 지배했건게 백제인데 그런 백제가 해외를 경영했다?
현실적인 인식이 결여된 전형적인 망상임
참으로 고귀한 연구자료로 후세에 교육해야 할 좋은 영상입니다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sgkm5141 ruclips.net/video/8tQbEVbyYI4/видео.html
저 사회자가 진행하던 시절은 우리국민의 정서를 억지 고취시키려는 의도를갖고 민족주의라는 의욕을
강제로 부풀리게해서 갖다붙이고 조작하고 한창였던 시절이다 국제적으로 부끄러겁고 국민스스로도 부끄러운 역사왜곡이 한창이던 시절였다 군부독재때도 아닌대 문민정부때인대도 ...그래서 이후 정권들에서는 안했고 하고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단재 신채효 선생께서 북경에서 걸어서 4시간 거리에 백제 왕릉이 200-300개의
봉분이 존재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내나이 70이 넘는데,
중학교 재학시절 신채효 선생님의 제자였던 역사 선생님이 전해준 말씀이다.
@@호야-h7r 왕릉은 왕뿐 아니라 왕족이 묻히는 자리이죠
진짜인가요..? 위치가 어디죠?
얼마나 소름끼쳤을까요 500년 형님나라라고 제사지낸 그 나라가 알고보니 개털쭉쩡이고 진짜 주인은 우리였다니
그냥 주입식으로 일제식민시기 신채호 상고사 고대사 역사서 만들어서 민족의 기상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외웠는데 그 내용은 전혀 안가르쳐주니깐 이해가 안되죠 그러니 한국사가 암기과목이되죠 인과관계 개연성 1도 없는걸 정사라고 가르치니😅
단재 신채호 입니다. 신채효 아닙니다.
.😊@@landcorp5749
영상 올려주셔 감사합니다.우리역사계에서도 제발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찬란한 백제의 유산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백제인들의 피가 호응하는 것 같습니다. 장족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백제의 후손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영상 올리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백제의 후손은 일본이지 한국이 아닙니다.
한국은 신라의 후손. 참 답답하네요.
@@ilsujang1883 뭐가 중요해 다 우리나라 역사인데..
@@ilsujang1883 신라의 후손은 당나라것도 섞였지
백제의 후손은 일본이지 한반도 서부 사람들이 아닙니다..
@@egav8867 백제는 한국사가 아닙니다.
슬프다! 역사를 잃은 민족이다. 조상들이 지하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겠구나. 자신들이 호랑의 자식임을 모르고 벌레나 잡아먹고 있는 못난 후손들이다.
그후손은 중공이다
박사님 옳바른 역사를 알게 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최고의 프로👍입니다.
너무좋은방송 이제야 봤네요.
우리의 고대사가 대단했군요. 역사를 다시 배워야겠어요.
신라는 망하고 백제는 일본으로 가서 만주국까지 가서 나라를 세웠습니다.한반도 있을때부터 남부여 국호를 바꾸더니 결국 원래 부여가 있었던 곳으로 가서 만주국까지 세웠네요.
참으로 슬픈 역사입니다. 하지만 진취적인 백제인의 기상과 혼이 우리에게 살아있음을 기억하고, 그 역사를 연구하고 발굴하고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바로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
칠백년오래된역사와.백제의찬란한고귀한감사함니문화을다시영상으로보게되여감게무량함니다
한국은 신라의 후손이지 백제의 후손이 아닙니다.
백제의 후손은 바로 일본임.
@@ilsujang1883 계승성은 코리아.. 고구려.. 고려... 서긍의 선화상인 고려도경.. 코리아는 코리아 코리아 대족의 후예 왕건이 건국..
최종은 코리아.. 옥헤이??
요즘은 왜 이런 진취적인 프로가 안나올까 진짜 굿임
와 진짜 말도 안돼... 내가 역사를 몰 배운거야 대체... 식민역사학자들 천벌받을것이야!!!!!!!!!!!!!! 반. 드 . 시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백제는 백개의 제후국을 가진 황제국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살의 일부인 백제는 어디로 갔는가?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움과 눈물이난다.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은 우리몸의 일부 백제여...
일본으로ㅠ갔지.
중국에 가서 당나라가 공식적으로 백제유민과 백제왕족들이 사는 백제라는 지역을 허해줘서 거기서 살았어요
통수 신라 흉노 당나라
일본을 백제로 보면
일본을 형제국으로 인정해줘야 하거나 혹은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백제 빼고 2국시대로 봐야함. 고로 일본을 백제로 인정안할듯
@@jesushairstyle 이미 일본천황이 자신은 백제의 피가 흐른다고 밝혔지만 일본내에서는 비판 받았죠. 우리도 일본이 백제다라고 하며 형제국으로 하기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피해가 너무 심했구요. 일본과는 독도 문제만 해결되어도 서로 좋은 관계로 회복 할 수 있을거 같아요. 21세기 모든 정보가 연결되는 이 시기에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몽땅 가져가려는 중국이 더 큰 문제네요.
알수없는 안타까움에
코끝이 시큰거립니다
강한 대한민국🇰🇷영원히 ~
모든님들 건강하십시요~
새해 복많이받으세요
동아시아의 역사와 전설을 만든 고대인 백제 사람들 정말 가슴이 뛰는 이야기
담로의 어원은 고구려의 이라고 본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한다는 의미의 에서 온 말이다. 동북아 최강국 고구려는 광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 성을 짓는데 그것을 즉 이라고 한다. 현재 벽이나 울타리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단어가 남아있다. 따라서 백제 역시 고구려의 다물 정신과 마찬가지로 을 같이 사용했다. 백제의 역시 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기록과 지명에서 다물은 담울, 담우로, 담라, 담로, 담, 담수, 담물 등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제주도의 옛 이름인 도 담로에서 온 것이므로 백제의 담로국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대마도도 로 바뀐 백제의 담로국이다. 대마도 주민의 유전자는 오히려 한반도 사람들의 것과 같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류큐제도 오키나와에는 이 있다. 남송 때의 조여괄이 지은 [제번지]에는 류큐제도의 이시가키시마에 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는 의 음을 한자인 자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은 이라는 뜻이다. 즉 이다.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북제서]에 의하면 571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자사’라는 직을 제수했다. 또한 [삼국사기]에 의하면 570년(위덕왕 17년) 북제의 후주가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으로 삼는다. 그리고 571년(위덕왕18년) 북제의 후주가 다시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로 삼았다.
[독사방여기요]에 의하면 동청주의 치소는 불기성으로서 즉묵에서 서남쪽으로 50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동청주는 현재의 청도(칭다오)이다. 따라서 북제가 백제왕에게 동청주자사직을 준것은 백제의 청도(칭다오)에 대한 지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광동성 혜주 혜양현에 담수항, 담물터가 있으며, 광동성 서쪽 뇌주에 담수채, 담물울이 있으며 해암도 바로 앞이다. 광동성 흠주, 광주만은 과거 담수만, 담물만으로 불리웠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고대 백제는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대만은 원래 담모라국 혹은 탐모라국이다. [수서] [백제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 대만은 남북 386km(965리), 동서 144km(360여리)이며 사슴항구라고 불리는 이란 항구가 있다. 그리고 명나라 때부터 대만 토착민들이 사슴 가죽을 복건성에 내다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만에는 여전히 라는 지명이 있다. 역시 담로계 지명이다.
[동서양고]에 필리핀 밀안항 남쪽에 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현재 이곳은 필리핀 루론섬 서북쪽의 유감항의 남쪽으로 추정한다. 는 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므로 은 라는 뜻이다. 즉 담로항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부 아로국에도 담수항이 있었다. 원나라 [도이지락]에는 으로, 명나라 마환의 [영애승람]과 공진의 [서양 번국지]에는 으로 기록되어 있다. 담수항과 담양, 담안은 모두 같다.
[순풍상송]에는 라고 적혀있다. 이곳은 카리만탄으로 추정된다. 은 으로 읽을 수 있는 담로계 땅 이름이다.
베트남의 은 과 발음이 유사한 전형적인 담로계 지명이다. [명사]에서는 태국을 섬라(siam)라고 지칭한다. [순풍상송]에는 부터 까지의 항로에 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Siam과 섬라 역시 나 에서 변한 것이다.
[동서양고]에 주석을 붙인 [풍토기]에 근거하여 을 캄보디아의 로 본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있다. 말레이시아 은 과거 으로 불리었다. 남송 때 조여괄의 [제번지]에 이 처음 기록되며, 원나라 때 왕대연의 [도이지락]에도 이라는 지명이 있다. 정광유와 서성모의 [중국역사지도]에는 이 말레이 반도 동남쪽의 큰 섬 이라고 언급한다. 은 마을을 의미한다. 단마령의 는 한자 이다. 또한 는 또는 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 되므로 담로계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티모르’라는 지명은 를 뜻하는 와 발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백제인들이 와서 담로를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백제 항해술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까지 갈 수 있다면 당연히 티모르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순풍상송]에는 석관산(실론, 스리랑카) 북쪽에 석성초라는 곳을 라고 기록하고 있다. 수(물 수)와 마(말 마)는 모두 을 훈독한 것이니 , 즉 이다.
[도이지락]에는 싱가포르를 과거에 이라고 불렀다고 적혀있고, 명나라 모원의의 [무비지], [동서양고], [순풍상송]은 모두 을 이라 기록하고 있다. 은 영어로 Tamasek이나 Tumusik이라고 적는데, 당나라 중엽부터 싱가포르를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이 그곳을 타누마(Tanuma) 또는 티유마(Tiyuma)라고 부른 것을 볼 때 당나라 이전부터 이미 이 존재한 것이 분명하다.
백제는 대만 너머 동남아시아에 여러 개의 담로를 설치하고 예상보다 막강한 교역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횡포에 가까운 전권을 종종 행사했다. [일본서기]에는 라고 적혀 있다.
오! 백제 ! 나의 모국!
그리도 화려하고 찬란했던 나의 모국이 , 백성들의 망국의 서름과 눈물들을 뒤로하고 3,000 궁녀들의 넋과 함께 낙화암 아래 백마강 거센 물살에 여지 없이 어디론가 떠내려 사라졌단 말인가!
황산벌아 말해다오!
계백장군이여!
통곡의 언어로 말해주오!
오늘 밤은 나도 삼천궁녀가 되고싶은 심정이다.
충격이네. 백제의 역사가 이리도 길고 강햇다니. 고구려. 백제만 기억할것이 아니구만
고구려. 신라만 기억할것이 아니구만 이라고 쓴다는게 잘못 쓴것 같네요 ㅎ
지중해를 바탕으로 해상세력을 넓힌 카르타고 같은? 서해남해를 바탕으로 해상제국을 경영했던거네요 와우
마음이 웅장해집니다
동아시아부터 동남아시아까지. 해상대제국 백제의 영향이 미치지않은곳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역사의한파편의 흔적을 알게되어서,,한국인이면알아야할 내나라의 역사! ^ ^
오랫만에보는 좋은자료입니다.
좋은 방송 잘 봤습니다!
이것만든 제작진 모두 보국훈장 줘라.
진짜 훈장줘도 모자라다
제작진한테 5.18 유공자 훈장줘라
@@종학최-l8s 아 그 개나소나 주나 5.18훈장이요?ㅋㅋㅋ 광주가본적도 없는 이해찬도 받는 5.18훈장ㅋㅋㅋ 우리집 개새끼ㅈ도 받아도 문제 없을 5.18훈장같은건 왜 만드나요?
@@야너두-n9v 보수끼리 주제 올리고 보수끼리 까고 참 특이한 사람들이야
역사다큐 예전에 좋은프로그램이 많았네
역사! 참 신비스럽습니다.
이 내용을 국민모두에게 널리 널리 전파해주세요.
와우!
고대 백제여!
넌 어떻게 그광대한 나라를 이루었으며 그 광대한 고대배제
를 꿈의 나라할 수밖에 없지만 그큰 꿈만이라도 영원히 간직되길 바라노라!
ruclips.net/video/8tQbEVbyYI4/видео.html
어렸을때 본거!!!!!
일본부터 멀리
중국 최남부까지
뻗어있는 백제를보면
지중해, 흑해 해상도시 식민제국 아테네가
생각이 납니다.
아테네의 지중해 도시제국은
역사에 분명한 흔적이 남았는데
백제의 해외영토 담로는
왜 거의 잊혀진건지 아쉽습니다.
뭔가,,,,가슴이 뭉클해지는 역사다...익히 알고는 있으나...
김유신과 김춘추의 영원한 배역을, 역사로 가르치는 날까지, 우리는 백제를 기억해야 할것이며. 오늘날 동북아시아의 고통스런 충돌은, 배역자들이 만들어 놓은 필연이라 하겠다.
백제 ㅎㄷㄷ 했네요. 일본도 지배했었고 중국요서지방도 지배했다는 내용에 소름이 끼침.. 고구려는 요동을 지배했었는데 당나라와 손잡았던 신라에 의해 그 대단했던 고구려와 백제 멸망 ㅠㅠ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통일신라는 오늘날 베이징 지역까지 당연히 백제영토까지 통일을 한 것입니다. 일제사관에 의해 우리역사가 95프로이상 축소되었고 강단식민학자들이 이를 그대로 우리에게 가르쳐서 반도사관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한거죠. 통일신라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돈황동굴에서 발견되고 우리는 스님이 신라땅에 귀국하지 않고 열반한 것으로 기록하는데 사실 신라땅 대륙에서 열반한 것이죠.
그고구려랑 백제를먹은게신라고 992년이나존재한 말도안되는 최강국..중국에있는 신라 장보고동상,신라 왕자 김교각동상만봐도 그시절 영향력을 알수있는듯 청나라가 신라의후예를 자처한 점까지..
유튜브 영상 본것중에 제일 유익했음.
이때만 해도 이 방송국이 참 좋았는데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sgkm5141 이아재는 뭐요
똑같은글을 여기저기
써놨네요
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가 일제의 조선사편수회 이병도가 만든 일제 식민 사학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여러 문헌 및 유물등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이런 내용이 교과서에 않나오는 것입니다.
물 건너 땅을 건너
백방을 개척하며
그 진취적 웅위를
만방에 떨치던 백제여
네 모습은 이제 멀지만
그 혼이 오늘 이렇게 여기
이 땅에서 아지
백제 놈들의 간사하고 야비하며 악랄하고 이중인격성을 일본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일본에선 지명 표기를 백제 흔적 지우기가 상당히 진행 되어서 행사나 제도 많이 없어진것으로 아는데 참 진실이 궁금 합니다
역사는 흔적을 남기네요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흔적을
밝히는 것이 후세의 사명입니다.
공영 방송이 할 수 있는 걸작이네요. 감동입니다
찾았던 영상인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ㅡㅈ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sgkm5141 赞成维吾尔族人独立,欢迎啊
@@sgkm5141 뭐 이렇게 도배를 하노 같은 말을 흉노야?
몇번을 봐도 좋은 영상.전주엠비시 대단하네요.
눈물이 남니다.
유익한 내용입니다
백제는 삼국중 최대의 호구수를 가졌으며 그를 바탕으로한 막강한 생산력이 있었습니다.
고대나 현대나 국력에 있어 인구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생각했을때 나제 동맹 당시 배신을 당하고 한수유역을 잃었을 지언정
신라는 물론이고 고구려도 압도하는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sgkm5141 산둥도 이미 백제땅이어서 영토를 확장한거라 해석되느데
노인의 말은 그런뜻
@@sm-lb9dt 산동에서 흩어진 유민들이 사는 땅을 전부 백제라 칭했다는 말입니다 . 산동자체에는 백제가 없어요. 그리고 일본가우치 가문의 족보에 그의 조상은 이라 적혀 있어요. 제나라가 바로 산동반도에 있던 전국7웅 제나라를 이었다는 뜻입니다 .
@@sgkm5141 赞成维吾尔族人独立,欢迎啊
@@sgkm5141그럼 백제허라는게 백제성이 허물어서 부르는말이라는데 이건 뭔가요??..백제유민들이 성을 만들고 산다는것은 그지역을 차지한걸로봐야하는건 아닌지요?
나의 뿌리를 발견하게되어 고맙습니다.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ㅎㆍㅎ 님의 뿌리 중국 제나라 ㅎ
@@user-q389 는 백가지 성씨를 가진 사람들 즉 많은 사람들 백성들을 말합니다 . 제해는 바다를 건넌다는 뜻입니다 . 고기 잡으러가 아니고 이민 갑니다. 어데가든 불쌍한 고향사람 백제끼리 서로 돕자 ..
그래서 백제 입니다 .
멋진 영상 잘 보았습니다.
마지막인삿말너무 슬픕니다,,, 오사라바,,,자사라바 잘 살아봐라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커피향에
마음을 벌름거리게 하는 사랑의 향기가
보태지니 쑥부쟁이님네는 날마다
설날입니다.
일본정부가 의도적으로 한국과의 역사를 부정하고 계속적인 연구를 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다큐이네요. 한국의 사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표해서 널리 알려야한다고 생각됩니다.
36년간 너무나많은 한반도의 역사를 잃어버리고, 그 이후로도 자국민에 의해 행해진 수많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역사학계는 잠잘 시간도 없이 일해야할것임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는
것이 이를 근거로 하는 것
이다. 일본왕이 밝혀야 한다.
일본도 부정하고 싶겠지만,
한반도를 신라가 통일했으니
신라입장에서는 백제가 의자왕 처럼 억지로라도 못된 나라여야만 하니 백제를 더 매도 해야만 하는 것이고
역사도 신라입장에서만 쓰였을테고,
아직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고 봐야죠.
그래서 쉽게 바꿀수도 없는 문제가 생기는거고...
"백제의 뒷통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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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항상 왜의 군사지원을 받음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독 백제를 “ 백잔”이라 비하함
고구려가 거란의 공격을 받을때 백제는 고구려의 뒷통수를 쳐서 공격함 393, 4, 5년
백제 아신왕은 왜의 도움을 받아 숙부인 진사왕 뒤통수를 쳐서 죽이고 왕위에 오름 392년
왕권 교체 구테타도 왜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
백제 아신왕은 직접 광개토한테 무릎을 꿇고 "앞으로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 맹세함 396년
또다시 뒤통수를 계획한 아신왕은 왜의 군사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태자 전지왕을 일본에 볼모로 보냄 397년
왜와 통교를 끊겠다고 무릎꿇고 서약했으나 또 뒤통수를 치고 왜를 끌여들임 399년
왜를 끌여들여서 한 짓이 신라를 공격한것임 ㅋㅋ
이때 또다시 고구려 뒤통수 칠 준비하자 백성들이 신라,왜로 도망가고 백제왕족 유즈키노키미 가 대인구를 이끌고 야마토로 망명 399년
이때 왜국의 군사지원을 얻으려고 태자도 보내고 아직기,왕인도 보내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왜국을 키워줌 (6.25때 일본이 폭풍성장 한것처럼)
영원히 노예가 되겠다고 무릎 꿇고 맹세했던 백제는 또다시 고구려의 뒤통수를 침
그것도 왜놈을 끌여들어 고구려를 또 침 404년
심지어 고구려는 후연과 전쟁을 하고 있었으므로 백제 종특 뒤통수가 제대로 나온거임 404년
백제 아신왕이 죽자 동생 훈해가 섭정을 했는데 막내동생이 뒤통수를 쳐서 형을 죽이고 왕이 됨 405년
군사 지원을 받기 위해 왜에 볼모로 갔던 전지가 왜의 도움을 받아 삼촌을 뒤통수 쳐 죽이고 왕이 됨 405년
또다시 왕권 교체 구테타를 왜의 도음을 받았다는 말임 ㅋㅋㅋ
이게 수백년에 걸친 사건이 아니라 단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것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로 백제의 통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굉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배신과 뒤통수의 심볼이 바로 "백제"임
2탄
왜놈을 끌여들여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비유왕) 고구려에 밀려 수세에 몰리자 염치없이 신라에 화친을 요청함 ㅋㅋㅋㅋ
그것도 비굴하게 3번이나 조공 갖다바치며 요청함 433년 7월, 434년 2,9월
그 후 신라는 군사를 보내 백제를 여러번 도와줬지만 백제는 또 신라의 뒤통수를 침 (관산성전투 후술하겠음)
백제 개로왕은 중국에 비참하게 구걸하면서 고구려 좀 쳐달라고 애걸복걸 함 472년
("마땅히 저의 딸을 보내어 후궁에서 청소를 하게 하고, 아울러 자제들을 보내어 마구간에서 말을 먹이게 하겠으며 한 치의 땅이나 한 사람의 필부(匹夫)라도 감히 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
위 사실을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정벌에 나섬 475년
성이 함락당하자 개로왕은 뒷구멍으로 도망쳤는데 백제인 배신자 재증걸루, 고이만년의 뒤통수에 참수당함 475년
이때 먼저 도망간 백제 개로왕 동생 문주는 신라에 구원 요청을 하고 신라는 구원군 1만명을 보냄
이때 백제 귀족 군사는 신라 지원군 보다 더 늦게 도착하는 뒤통수를 때림 ㅋㅋ
백제 문주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고 비참하게 살아남음
한국사 역사상 강제로 쫒겨서 수도를 옮긴건 백제가 유일함 ㅋㅋㅋ
이때 또 골때리는건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위기 상황을 겪을 때 일부 지방 세력은 사실상 독립하여 자체 국호로 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통수까지 침
한성이 무너진 이후로 백제 왕권은 그야말로 좁밥이 되어 대성팔족의 뒤통수가 시작 됨
결국 백제 문주왕도 백제 배신자의(좌평 해씨가문) 뒤통수로 죽임당함 477년
문주왕이 죽자 아들인 심근왕이 왕위에 올랐으나
심근왕 세력인 진씨 가문과 해씨 가문이 서로 배신하며 뒤통수 쳐서 수천명의 군사가 죽음 ㅋㅋㅋ
결국 심근왕도 3년만에 의문사로 죽음 (진씨 가문의 뒤통수로 추정함) 479년
진씨 세력은 다음으로 동성왕을 지들 손으로 뽑음 479년
왜를 끌여들여 계속 신라의 뒤통수를 쳤던 백제는 염치없이 동성왕때에 또 비굴하게 신라에 사신을 보내 청혼을 요청함 493년
신라왕은 자신의 여식을 보내지 않고 신하인 이벌찬 비지의 딸을 보냄 ㅋㅋㅋ 493년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결혼 함
동성왕 또한 어김없이 백제 배신자 백가의 뒤통수에 의해 죽임당함 501년
백제왕은 대부분이 배신자의 통수 통수 통수에 의해 죽었음 ㅋㅋㅋ
15대 침류왕, 16대 진사왕, 17대 아신왕, 폐왕 설례, 19대 구이신왕, 20대 비유왕, 22대 문주왕, 23대 삼근왕, 24대 동성왕이 모두 뒤통수로 죽임을 당함
21대 개로왕은 고구려 뒤통수 치다 백제인 배신자 고이만년에게 참수당하고
26대 성왕은 신라 뒤통수 치다 참수당함
이후 27대 위덕왕, 태자 아좌, 28대 혜왕, 29대 법왕도 뒤통수로 추정되는 의문사를 당함
백제는 정권 교체 자체가 곧 왕의 시해 즉, 뒤통수를 뜻하는거였음
3탄도 기대하세요^^
아 참고로 전라도는 백제가 아니예요
전라도는 백제 말기까지 백제와 군사충돌이 있었던 변두리 마한입니다
벡제는 서울,경기,충청권이예요
@@하이러너-s3r 백제가 독한 정권이였네 큰나라가 되긴 글러먹은 백제 시대였군 한반도는 !!!!마음만 합치면 큰나라가 됐을텐데 서로 싸우다보니 지금 대한민국 작은 땅 차지 에휴 ~
세상에 24년전에 제작된 방송이라니 그뒤로 이런 프로는 없어진건가?
일본눈치봐야지 중국눈치봐야지 ㅋ
한국은 1997년이후 친중매국노
혹은 호적세탁한 중국인들 세력에게
완전 장악돼서
요즘은 이런 프로 테레비에서
절대 못 만듦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춰주는 역사조작을 정부차원에서 하는게
김대중이후 동북아역사재단 놈들에게
세금 돈 주고 하는짓임
김대중문재인 세력 자체가
호적세탁한 중국인들로 추정되는 세력임
그
이유는 뒤를 캐보면
호적세탁한 냄새가 진동을 함
@@kevindevaojoo8882 왜구버러지 ㄷㄷㄷ
@@kevindevaojoo8882 뭔 소리야 ㅋㅋㅋㅋㅋ 그럼 구글에 한국인이라고 써져 있겠지 ㅋㅋ 너 중국인이지?
토착왜구때문에 못만들어요 뉴라이트 같은놈들때문에
일본 교토역 에서 오사카로 가는 철도길에, 담로역이 아직도 존재한다.
일본이 자꾸 대륙 진출 하는 이유를 알수 있을것 같네요
,'...'.'.'.'.
,
,
.
유투브검색
“””””아메리카 대조선
“””””진실의 목소리
@@amirhanabatamurmahkto9373 아메리카가 대조선 이라고 지랄 소설써라 ㅋㅋㅋ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에 따르면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語言
根據中國資料的記載,魏國的史書〈魏略〉記載,朝鮮三國時代的,高句麗,新羅,百濟都講同一種語言。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古朝鮮語的分支,高句麗、扶餘、沃沮、東濊、百濟、新羅都出自同源,從流傳下來的高句麗、百濟、新羅的文獻資料分析,朝鮮三國的語言均屬於范阿爾泰語系和黏著語,和漢藏語系的漢語不相通。
감사합니다 .
아아! 위대한 백제, 그 후예들! 대단한 역사 탐구자들!
2024년에도 감동받고 갑니다 👍
신라가 통일을 하면서 백제 고구려의 역사를 철저히 지워버렸고 삼국사기라는 역사책을 쓴 김부식이라는 작자는 철저히 친신라,
중국사대의 입장에서 역사를 기술했으니 잃어버린 고구려 백제의 역사가 늘 아쉽기만 하네요.
김부식이 사대주의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저의 관점에서는 중국내에서 있었던 백제 고구려의 기록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축소시킨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중국의 눈치를 본 사대주의적인 기술이 아니고 무었일까요? 물론 자신이 신라계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신라 역사를 우수하게 보이려는 면이 이썼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 생각에는 사대적인 면을 지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오징어동해안 국사기가 백제 고구려가 멸망하고 수백년이 지난 이후에야 쓰여진 것이라 모두 정확할 순 없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그 세월이 흐른 이후에 역사를 쓴다면 삼국시대의 백제 고구려의 역사서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백 번 양보하더라도 신라의 역사기록과 함께 중국의 고대 기록들을 모두 참조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리 하여서 작성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제의 경우 눈에 띄는 것만 하더라도 근초고왕 시절의 요서군 진평현 기록도 아예 없으며..이후 동성왕시절 대륙에서 펼쳐졌던 북위와의 전쟁관련 기록 역시 깨끗하게 없애 버렸죠..두 예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는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를 최소한으로 축소시킨 친 신라 친 중국 경향의 역사서가 분명한 것이지요.
@오징어동해안 네 중국 대륙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백제 고구려의 기록은 지금도 물론이거니와 당시에도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유쾌한 일이 아니겠지요. 백제와 북위와의 전쟁을 일례로 들자면 남제의 역사서에는 그 전쟁이
언급되지만 당시 북쪽 나라의 역사서엔 일절 언급이 없는데...이것을 후세에 역사로 기록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양쪽의 기록을 다 담아야지요.. 남제의 기록엔 이런 내용이 있더라....그러나 북위의 기록엔 없다..정도는 적어줘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김부식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철저히 없는 것으로 단정지어 버렸죠. 그의 머릿속엔 대륙에 어디 감히 백제가.......이런 생각이 들어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징어동해안 역사에 대한 인식을 그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이 나라 최초의 역사서를 쓰는 김부식이 남제의 사서와 수 당의 사서 등을 참조하지 않았을리가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들과 엮인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부식은 남제와 북위의 역사서를 놓고 고민을 했을테지만 백제의 땅이 요서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터이고 북위의 역사서에 누락되어있는 그대로 따라 적은 것이 됩니다. 환단고기요? ㅎㅎ 거기까지 안가도 다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한반도의 나라들과 엮인 부분에 상당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기술한 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놈들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서 주장을 하는데..우린 그래 다른 데도 아니고 저 중국의 사서에
엄연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런 기록이 있다라고 주장도 못합니까?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하여 연구를 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데 동의 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역사를 찌속적으로 발굴하고 우리 국민이 적극적으로 배워야한다. 이 역사의 발굴 계몽이 우리 미래의 번영의 원천이 될 것이다. 흩어진 민족을 발굴하여 잊혀진 역사를 공유하고 다시금 한민족의 시대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일본, 중국 동북으로부터 해남도 , 베트남 변경의 광서장족자치주에까지 한민족의 무대를 회복해야 할......
백제의 후손들은 지금의 벽을 담무락,,,다무락 이렇게 불렀다...... 이런말은 내려오는 언어였다......... 다무락 올라가지 마라. 이렇게 부모님들이
말했다... 다무락 올라가면 허물어 지니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성을 쌓던 것이었다.
[황영상TV]를 통해서도 공개되었지만, 정말 감동적인 영상이 많더군요.
유튜브 비밀아지트의 전격공개는 물론, 35년전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에 보낸 편지내용 공개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 레이건 대통령] 검색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왜 1985년에 편지를 보내게 되었을가요?
왜 우리는 역사를 이렇게 배우지 않았을까요?
고구려, 백제의 역사 교과서는 완전히 다시 기술해야 한다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데요
절대 못할걸요? 신라후손들이 기득권을 장악한 상태이고 역사계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중국정사기록들에 써져 있어도 구라사기를 기반으로한 엉터리 역사를 수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로지 신라와 신라계가 장악하는 고려, 명나라 속국이었던 조선만이 그들이 인정하는 역사예요.
김구 선생은 이런걸 알고 계셨었나보다....
유튜브. 고마워 요
고마워 요
왜놈들이 일제시대 훔쳐가 왜왕 금고에 숨겨둔 우리 고대사 관련 서적들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고대역사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한반도인의 엄청난 잠재력을 머금고 있는 백제 역사의 미스터리
우리는 3국중 끝까지 살아남은 신라 중심으로 역사가 정리되다 보니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한반도 범위내로 너무나 잘라먹었다
가야가 백제고 몽골이 고구려 한국인은 신라의 자손들 일본이 여전히 가야 백제의 후손입니다 전라도 어원도 신라에요 라주=나주=금성
유익합니다.
백제는 예술이면 예술 기술이면 기술 못하는게 없는 나라였는데 정말 아쉽다
ㅐㅐㅒ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ㅐㅒㅐ0
배신의 아이콘 신라놈들이 뒤통수쳐서.... 신라는 사기질로 통일을 이룬 나라...
@@mcr36 백제 근본이 경기도랑 충청돈데 뭔 개씝소리임.
@@sneekeebeats ㅋㅋㅋㅋ 2020년에 지역감정 운운하는넘이 뭘 알겠냐 그냥 그러려니해라
@@Ellie-uniVerse 배신, 사기?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같은 나라였나? 뭐지 이 모지리는.....
역사를 다루는 다큐를 많이 만들어주기 바랍니다.
백제의 담로 중 하나가 바로 야마토 왜 이다.
ruclips.net/video/WYFQL_JBWqs/видео.html 고대한국이 아니였다면 일본은 쌀한톨도 만들수없었다. 고대한국이 나라만들어주고 선진문명전해주고 먹고살게 해주었더만
새로 빼앗은 땅을 고구려는 다물, 백제는 담로, 해남에서는 다물이, 라고 하네요
유투브검색
“”””아메리카 대조선
“””진실의 목소리
“””충시민
고구려 다물은 다시찾은땅이라는 뜻임.
단군조선의 옛땅을 회복했다라고 해석되기도함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일본의
천지창조
는
담로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은 죠몬 인도양 토인과 티벳 또 야요이인 티벳과 중국한족 포루투말 폴리네시안 아이누와 조선 도공 소수의 재일 혼혈종으로 한반도 야요이인뻥은 티벳인종 한반도 노예 특히 백제의 노에로 있다 번성하면 통제 불능이라 호족 북방계 선비족의 지원으로 싴라에게 세를 싫어줘 통제가능한 국가를 만들고 백제를 편애한ㄴ는 고구려왕도 망한거임 백제의 3천궁녀 와 타락이 원인이죠 신라왕의 나는 흉노다란 비문은 당당한 북방계 표현이고 명분이죠
시청잘하고 있읍니다
시골서는 지금도. 자기집 경게를
돌로 쌓아서 담무락. 담 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동아 공영은 이미 백제가 완성했던거고 일제 강점기는 일본 백제 후손이 고토를 회복한 것이네.. 참으로 오묘할세..
아시아 제국들이야 힘든 시기였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백제 시절의 옛 22담로 지역을 다시 회복(?)한 것이지요.
이런건 일본어로 번역해서 유투브에 올려야 함
😤한글자막 도 이지경인데ᆢ
"대백제"라는 책도 쓰고 시리즈 영화도 제작하면 좋을듯...
최고로 훌륭한 프로입니다
대단한것은 22담로를 통치한 통치 기술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역대 제국들이 흥망성쇄가 그리 길지 않은 것은 통치기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큰 제국을 일사분란하게 그 고대 시대에 통치 경영을 했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동로마 서로마까지 합쳐서 1100년정도되죠. 고조선 2600년, 고구려 900년.. 한민족의 통치기술은 독보적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일제식민지 때 일본역사학자들과 우리친알사학자들이 백제사를 1 / 100로 축소 시켜 버렸구만
중국 남부지역과 동남아 전체를 부분 지배했던 그 엄청난 백제를 말이다 .....
왜정때 부여에 신긍을세울라고 제목 은 일본시녹기 그나무는 향내
나고 조왔는데 해방후
그나무 몽땅 실어가연필 만들고 다른데 사용한거로 암
그랴 친알사학자잡앙.눈깔2개파고 붕알까고 반성문2만장씩 제출하라고해라잉.잠은 재우지말고 시도때도없이 두들겨패라잉.
ㅎ, ...이미 백제축소는 후기신라때 부터이고, 고려초를 지나 유학을 국가경영의 수단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기 이후와 성리학만을 맹신했던 조선까지 스스로 파사'한 것입니다. ...조선후기및 말엽부터 조금씩 회복(?)하고자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제에 들어와 이미 수정주의 역사관으로 기획돼 있었던 일제및 총독부가 특히 3.1 운동을 깃점으로 민족주의사관의 싹을 말리기위해 마지막 남은 편린마저 모조리 지운것입니다. 거기에 조작된 역사관으로 도배된 역사관(국사관)을 심기위해 경성제국대를 중심으로 수정주의 역사관을 만들어 철저히 전파 식생'한 것이고, 그 무도한 앞잽이들의 멘티'들이 지금 한국사학계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이거 무지 중요하다. 백가제해 유적유물이 증거로 너무 많다.
★상고사라는것을 연구하는 애들의 수준★
1000년뒤 인류가 큰 재앙이 닥쳐 지금은 당시의 역사자료가 많이 소실되었지만 한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미국을 지배했던 나라였다고 추정된다. 이역만리 이 먼곳에 그들은 코리아타운 즉 를 건설했는데 그곳에는 한글이 가득했다고 한다. 아메리카 넒은 땅을 지배했던 우리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대체 무엇일까?? 작은 나라였다면 대한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을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의 지명은 LA 즉 [라] 인데. 그렇다면 이 한글이라는 고대어 대로라면 [가],[나],[다]의 지역또한 있었다는것이다... 어쩌면 라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소 4개 또는 그 이상의 대륙과 국가를 지배했다는것이 유력하다... 우리는 세계를 지배한 대한민국이라는 흔적을 찾아내 연구해야한다. 심지어 영어에서 [맘]은 한국어로 [엄마] 라고 한다... 맘=엄마... 이게 과연 우연이라고 할수있을까?? 엄마 즉 에서 영어는 파생되었던것이 아닐까?!?!?!?
@@BaehrChaney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저는.,? ?0 아
난고촌 사람들은 본인들 핏줄도 백제인이라고 생각하고 얼굴 생김새도 본토일본인이랑은 아예 다른 전형적인 한국 사람 얼굴인데요;?
@@김태윤-u3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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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ehrChaney ㄷ. ..ㄷ ㄷ .. . . .. .. .. ..ㅈ.... .ㄷ.. . . . . . . . . ... .. . . .,....ㅊ
근데 이거 22담로 영토가 해외로 저렇게 있는걸 환담고기인가. 그거 얘기하면서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많을 텐데. 일본 해외 침략할 떄 고토 수복한 다고 떄린게 저 지역들이라서. 일본이 임나일본부설 드립치면서 백제를 자신들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행동한거 보면. 22담로 백제 해양제국설 설득력있음.
삼국사를 쓴 김부식은 신라를 부각시키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를 너무나 많이 죽여버렸다.
백제허 로인이 조상이 어디에서 왔는가고 물으니 고 하셨는데 번역을 안하시네요. 산동반도 에서 나온 유민들이 사는 땅을 백제 라고 부른 다는 뜻입니다.
백제는 물건너간 제나라 백성들의 땅을 말합니다.
@@sgkm5141 건국 당시 신하가 10명이라서 십제였다가 뒤에 국가기틀을 다지면서 백제로 바뀐겁니다 애초에 제나라랑은 한자가 다른데
@@김형래-k6i 한반도와 일본 사학계는 정치세력의 의도하에 22백제를 창시한 중국 제나라를 절대 용납할수 없다. 왜냐하면 제나라의 를 인정하면 한반도와 일본인은 대부분이 그냥 한족 이라는 무서운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하여 어떻게 해서든 한반도와 일본 내에서 백제역사에 관한 의문들을 해석하려 하는데 납득시킬 많한 해답은 안나오고 갈수록 미스테리 투성이다. 제나라 전횡이 22개 백제를 창시하고 조직적으로 산동반도에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백성들을 이주시켜 각자 나라의 서민주체를 이루었 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은 한일모두 극치에 달한다.
1 영상증거 백제허 육태정 노인의 말 46:45 ruclips.net/video/lgPeTovH1fI/видео.html
2.영상증거 의 백가제해 해석 52:37 ruclips.net/video/hj0DPh6_r1M/видео.html
3영상증거 일본 오후치 가문의 족보 25:10 ruclips.net/video/fasW4si3nww/видео.html임성태자는 즉 백제왕이 제(齐)나라 왕이다. 참고로 오우치 성씨 (大内)자체가 대륙내부 에서 왔음을 암시한다.
4영상증거 일본국보 청동거울 제동경 1:35 ruclips.net/video/BmEIbN-OCnU/видео.html
@@sgkm5141 你这是什么意思?你上次不是说你不会忘记天安门而且必定找回民主主义吗
그게아니고 남아있는자료가 부족해서지
요즘은 멍청한 인간들이 현대사까기 위한 역사 프로 밖에 없는데..... 이런 프로를 부활시켜라!!!!!!!!!!
백제 역사서가 다시 발견만 될 수 있다면. 아쉽다 정말. 백제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완도에 대야리도있음
잘 보았습니다.
우리 역사를 못 지킨 우리 탓도 있다는걸 잊지 마시길. 계속 당하기 싫다면 그들이 역사왜곡한다 비판하며 어짜피 씨알도 안 먹힐 징징은 그만하고 실력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한국의 사회 구조는 이미 그것이 실현되기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 아니고서는 아니 그렇게 하여도 지금 이 처지를 반전 하기 힘들 것 이다.
동감입니다
25년 전부터 이런 연구를 해서 방송을 했는데 지금은 더 후퇴하는 것인가
학계에서는 왜 활발한 논의가 없는지 궁금하다
좌파, 주사파는 친중이니까 중국의 동북공정에 협조해야 하니까요...
박근혜가 좌파인가? ㅋ
@@botingro7150 친일들이 역사 연구하는 걸 안좋아해
친북 물타기나 좋아하지 ㅋㅋ
@@botingro7150 개소리를 참 잘도지껄이네
@@Kkk-k6t 그럼 지금 그렇게 일본 싫어하는 지금 정귄은 머하고 자빠졌냐?? 짜장들 똥꾸멍 빨아야하니 아무짓도 못하고 있는거 아냐 뷰웅아
시청료 강제로 걷어가면서 왜이런 고품격 다큐는 방송제작 왜 안하나 채널은 많지만 정말 수준있는 프로는 점점 더 없어지네
백제는 말그대로 백개의 제후국이라는 말이다..즉 우리가 국사시간에 배운 충청도 전라도의 쥐존만한 땅이아니라 중국대륙과 동남아까지 식민지 경영을 했던 동방의 로마제국이었음
백제는 비류백제는 페르시아 제국이고
온조백제는 중원 남부와
동남아시아임
동남아시아의 대부분 불교국가인 이유는 백제의 영향때문
인도네시아도 원래 백제 22담로 지역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kevindevaojoo8882 환빠 나가시고 ㅋㅋㅋㅋㅋ
직접 영토를 점령한 것 같지는 않음 백제 상인들이 그나라 땅에 가서 경제활동을 했다면 모를까
한국에 정신병자들 진짜 많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