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간과 공간
TV 시간과 공간
  • Видео 17
  • Просмотров 87 165
장보고의 해상제국과 백제의 22담로 - 백제부활의 꿈
백제멸망 후 150년 뒤 세워진 장보고의 해상제국의 뿌리는 바다를 다스린 해상제국 백제의 22담로제도였다. 중국 해안지방과 열도백제에서 새로운 백제를 건국했던 백제인들은 장보고를 따라 백제의 부활을 꿈꿨얼까? 바다를 다스린 백제인 신라인들을 만나본다.
Просмотров: 2 073

Видео

대왕암의 비밀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1,6 тыс.5 лет назад
삼국통일의 주인공, 문무왕은 거대한 왕릉을 대신해 왜 차디찬 바다 속에 잠들어야 했을까?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을까?
10 일본건국의 비밀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시간을 말하다 V1
Просмотров 4,4 тыс.5 лет назад
"일본"의 기원을 밝힌다. 감추고도 싶었고 자랑스럽고도 싶었던 일본의 역사를 밝힌다.
(9) 백제구원전쟁(백강전투)-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시간을 말하다V1
Просмотров 3,6 тыс.5 лет назад
백제를 구원하려 햇다는 일본의 백제구원전쟁. "그것은 열도백제, 즉 일본 자신이 자신인 백제를 구하려 한 전쟁이었다. "일본은 백제였다!" 여기, 생생한 기 역사기록이 있다!
(8-2) 사비성전투(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v1 exported
Просмотров 2,2 тыс.5 лет назад
백제 사비성 함락 비밀을 구체적 사건과 시간을 따라가며 상세히 밝힌다. "돌아선 귀족, 외로운 항전"의 적나라한 실체를 밝힌다. 대의에 공감하지 못하고 당파의 이익만을 쫒을 때 국각가 어떤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 "사비성 함락"의 역사는 생생하게 우리에게 그 교훈을 전한다.
(8)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함락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2,4 тыс.5 лет назад
사비성은 왜 그리 허무하게 함락되었을까? 방탕한 의자왕과 삼천궁녀 때문이었을까? 화려했고 강력했던 대백제해상제국의 속사정을 추적한다. 1400년 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을 벗겨 의자왕의 억울한 오명을 지운다.
(2) BIG Data를 정치에도 도입하자 - 서초동집회 VS 광화문집회 - 시공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4705 лет назад
조국장관 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도 국론분열이 극심한 상황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국민들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위한 정보와 정치통계의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우리의 실제 주변환경이 되었듯이 이제 우리 정치도 사회과학, 정치 데이타를 객관적으로 수집해서 국민들에게 제공해야합니다. 진실에 입각한 통일된 의견만이 국가와 국민을 단결 속에서 국가번영과 국민행복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1) 일본은 백제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 Revised Edition
Просмотров 4,2 тыс.5 лет назад
TV 시간과 공간의 첫번째 방송컨텐츠 (1) 일본은 백제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편의 수정된 편집본을 올립니다. 첫 방송이라 편집이 조악해서 좀 더 영상과 자료를 시청하시기 편하게 재편집한 내용입니다. 감추어진 백제의 역사와 멸망과정과 함께 비밀스러웠던 일본건국의 비밀을 파헤칩니다. 일본이 감추고 싶은 비밀스럽게 섞여있는 일본의 수치심과 자부심의 뿌리를 찾아갑니다.
(7) 백제 의자왕은 일본의 서명천황이었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 비밀에 감춰졌던 그 남자의 이중생활을 밝힌다)
Просмотров 27 тыс.5 лет назад
백제 의자왕의 출세작전? : 일본 서명천황(629) - 백제태좌(631) - 백제의자왕(641) 고단했던 한 남자의 고향, 사비성으로의 귀향이 시작된다. 그의 발자국에 백제연합해상제국의 운명이 걸려있다.
(6) 대화개신 - 백제 의자왕 소아입록을 주살하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6 тыс.5 лет назад
소아입록을 살해해서 신권을 파멸시키고 황권을 수립한 고대 일본의 정변인 대화의 개신. 그것은 백제제국의 통치 시스템을 지키려는 의자왕의 승부수였다. 알려지지 않았던 대화개신의 숨은 주역 의자왕을 만나본다.
(5) 부처가 된 비운의 쇼토쿠태자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3,8 тыс.5 лет назад
일본 고대국가의 틀을 만들었다는 쇼토쿠태자. 그는 가공된 인물인가? 아니면 진짜 고개국가를 건설한 일본의 위대한 정치가인가? 일본서기와 역사서, 그리고 당신 시대를 따라가며 비밀을 파헤친다.
거란의 고려침공과 서희의 담판 - 서희는 SKY외교학과 출신일까? 육사출신일까? - 시공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6365 лет назад
거란의 고려 침공시 강동6주를 얻은 것이 서희의 세치 혀의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서희는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거란의 고려침공목적, 거란군의 상황 등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는 몇 안되는 고려인이었습니다. 특히 지도자의 냉철한 객관적 사실 판단이 의사결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서희의 사례로 살펴봅니다. (조국, 강경화님께 본 영상을 특별히 보내드립니다)
(4) 백제로 건너와 백제왕이 된 일본천황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10 тыс.5 лет назад
일본은 백제였다. 부여씨 왕가의 많은 왕손들이 백제와 일본을 오가며 백제왕과 천황이 되었다. 그것은 백제와 제후국 일본을 다스리는 고대 백제 통치체계의 실체였다. 의자왕도 일본의 서명천황이었다.
(1) 입자물리학-페르미온 -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 공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1,4 тыс.5 лет назад
우주와 생명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우주의 기본 구성요소를 밝히는 것이 아닐까?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통해 아주 작은 우주에서 온세상에 대한 답을 찾는 첫걸음을 시작한다.
(3) "일본의 삼종신기", 일본은 무엇을 감추려 하는가?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4,9 тыс.5 лет назад
가장 자랑스러워 해야 할 세가지 국보를 말하지 못하는 일본, 과연 그들이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자신들의 기원을 밝히기를 꺼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뿌리를 밝힌다.
(2) "일본무존", 근초고왕의 일본정벌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6 тыс.5 лет назад
(2) "일본무존", 근초고왕의 일본정벌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1) "일본은 백제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Просмотров 7 тыс.5 лет назад
(1) "일본은 백제다!" - 백제멸망과 일본건국의 비밀 - 시간을 말하다

Комментарии

  • @김도윤-m1m
    @김도윤-m1m 9 дней назад

    일본은 백제의 속국이었군요.

  • @장노성-w5e
    @장노성-w5e Месяц назад

    황극천황/조명천황은 백제 무왕의 공주이고, 쓰이코 천황의 딸이라고 하셨는데 무왕과 쓰이코 천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 @21세기노아의우주선
    @21세기노아의우주선 Месяц назад

    현일본은 왜라지칭하였고백제가 일본이라 불리 웠고 백이란 한자도 우머리징과 태양일자의 조합이며 백제가 멸망후 조선과 왜의 통신사 교류시. 왜측의 사신이. 이제국호를. 일본으로. 호칭 해달라고 조선 통신사에게 요구하죠 왜는 왜소하다 왜람되다. 등 천시하는호칭이기에. 더욱더 일본으로 부르기를 요구 했죠 이유는백제엿일본을. 왜가 전승 했기에

  • @곽우천
    @곽우천 Месяц назад

    이병도씨가 아닌가요

  • @해리슨-j1g
    @해리슨-j1g 2 месяца назад

    원래 니혼은 인디언처럼 원주민이 있었음 지금 일본말이 백제말임

  • @c.s.m3013
    @c.s.m3013 2 месяца назад

    방금 잠깐 보여줬던 무령왕 기념탑이 욱일기를 형상화 한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도 일본애들이 장난을 쳤네요

  • @c.s.m3013
    @c.s.m3013 2 месяца назад

    지금 얘기는 무령왕 의 일대기 인것 같습니다 의자왕은 큐슈에서 해동증자로 큐슈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무왕과 죠메이천왕은 동일인입니다 코쿄쿠 천왕 은 의자왕의 부인입니다 부여풍은 인질이 아니고 어머니를 도우로 갔습니다 그때 부여풍에 의에 소가씨 아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 @c.s.m3013
    @c.s.m3013 2 месяца назад

    황극천황은 의자왕 부인 아들 부여풍에 의해 살해당함 삼한사신은 김춘추로봄 소아입록의 아버지는 두려움에 자살을함 소가씨 집안은 백제 귀족 가문 우리 성씨로는 목씨임

  • @wisewealth9008
    @wisewealth9008 3 месяца назад

    병이 들어 날아 갔다 > 당시 왕이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부근으로 돌아가 내세 영혼의 안녕을 바라며 왕릉을 만들 자리를 마련 합니다...

  • @wisewealth9008
    @wisewealth9008 3 месяца назад

    일본 열도 정복 세력 변천사 조몬인 > 예족(왜=가야) > 신라 연합 가야 세력 > 부여백제 > 모용선비계 백제 곤지왕계 > 부여계 백제 무령왕계 > 일본 천왕가

  • @wisewealth9008
    @wisewealth9008 3 месяца назад

    초고왕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한명이 근초고왕입니다...

  • @jcghim
    @jcghim 3 месяца назад

    의자왕이 소아입록을 살해한게 아니라 왕위쟁탈전에 의자왕자에게 패한 배다른 동생인 교기왕자가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서 중대형왕자로 행세하고 소아입록과 그 일당을 타도하고 정권을 잡은것입니다.

  • @주세규
    @주세규 3 месяца назад

    진행이 너무 느리고 답답하네요.

  • @Iwett91
    @Iwett91 3 месяца назад

    백제가멸망할때 무령왕이 전재에서죽고 왕자들을 일본섬으로 피신시켜서 현재의 천황들이 대대로 왕위계승한다고합니다 ㆍ일본 천황도. 우리의후손은 백제라고 했습니다ㆍ아베도 천황도. 조상인 한국을가고싶다고했습니다

  • @c.s.m3013
    @c.s.m3013 4 месяца назад

    거울 뒤에 한글 가림토문자가 있다고 합니다 가야에서 가지고간 물건 일겁니다 곡옥은 우리 한민족의 상징 중국도 자신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 일 진시황릉도 발굴을 못하고 있습니다

  • @adamko7213
    @adamko7213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정황상 그러네요,,, 백제멸망후 굳이 국가명을 바꾸는 변화는 국가명을 바꿀만한 강력한 리더쉽은 백제계임을 알게하네여

  • @이방운
    @이방운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사 에 인정받 거나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의자왕의 부인 제명천황은 아들(후처의 아들포함)인 중대형황자, 천지천황과 대해인, 후에 천무천황이 있었는데 천무천황이 부여풍? 천지천황도 당연히 부여ㅇ 이었겠죠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400년전의 일인데 무슨 소설같은 얘기를 하는거죠? 비행기도 없고 동력선도 없는데 그리쉽게 서해를 쉽게 오가고 고속철로 월남에서 한반도로 올수 있는지 당시의 상황에서 생각해보기를.. 아마도 당시 왜는 대륙의 남쪽에 있었을겁니다.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의자왕은 기습을 받고 웅진성으로 가서 반격을 도모하려 했으나, 웅진성주의 아들 예식진이 반란을 일으켜 의자왕을 당에게 받혀서 너무도 쉽게 함락되었죠. 나머지 백제성들은 충분히 저항할수 있었기에 부흥운동을 이어간거죠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강과 탄현도 황하남쪽 산동반도와 근처에 있었음. 지명은 쉽게 변치않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그어떤 지명도 남아있지 않지요. 부여가 사비? 공주가 웅진? 이게 말이 됩니까? 황산벌이 논산이라구요? 이런 말도 안되는 사대사관, 식민사관을 믿어요?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중공이 대만하나 공략하기 어려운데 1400년전에 서해를 건너 상륙작전을 했다구요? 맥아더가 인천상륙 할때도 불가능하다는 반대가 많았죠. 엉터리 추정입니다. 해전은 황하에서 벌어진 전투였고 사비도 황하남쪽의 사수라는 곳에 있었죠. 황산벌도 역시 산동에 있었고요.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확실한건 모르나 백제의 8대성씨는 중국정사 여러군데에 기록되었죠. 이말은 백제가 대륙에 존재했고 망할때도 대륙에 있었을것임. 당이 장안에서 산동의 래주까지 와서 배를타고 14만 대군이 서해안에 왔다는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배제는 원래 십제에서 출발했으며 후에 백개의 가문이 황하를 건너와 백제라 했죠. 당시에는 큰강이나 호수를 해라고 불렀음. 이말은 백제는 황하남쪽에서 발원했고 후에 태항산맥 서쪽인 요서를 공략해서 요서, 진병 2군을 세웠음. 어떻게 서해를 건너 대륙내부를 쳐들어간다는 말입니까?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시간과 내용은 맞을수 있으나 공간은 대륙으로 보는것이 합리적임. 왜와 가야도 대륙의 남부에 있었다고 봐야할듯..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제는 한반도에 없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당시 황해를 건너 요서를 공격했다는 것은 항해술이나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불가능해 보임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본은 홀본부여의 홀본 즉 태양의 나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음

  • @김종엽-m8t
    @김종엽-m8t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강이 기벌포(군산)라는 확증이 없고 사비성이 부여라는 것도 불분명함. 오히려 산동반도 근처에 사비성, 웅진성이 있다는 측면도 있으니 이를 재검토해야할 필요가 있음

  • @user-lj7sn1jy
    @user-lj7sn1j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야 일본놈 종놈 색히야 넌니조상을 차디찬바다에 매장허냐? 너그 친일사학자 들ㅈ개새들 니조상은 일본놈들의 돈군영을 빨았을것이다 내가추정한다 너그는 원문도 쳐다볼줄도 모르는ㅈ개색히들이자나

    • @user-lj7sn1jy
      @user-lj7sn1j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개색히 생긴게 일본놈 따가리 종놈 집안

    • @user-lj7sn1jy
      @user-lj7sn1j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쌍놈의집안 이다 추정한다

    • @user-lj7sn1jy
      @user-lj7sn1jy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쓰레기 민족사학자들

  • @sabratal9028
    @sabratal9028 6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럼 죠메이천황이 당나라에 압송되었다는 말이네. 일본서기는 백제를 속국정도로 여기는 듯 기록했는데, 의자왕이 죠메이 천황이라니 너무 소설같은 논리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죠메이는 훗날 천황이 되는 부인 다카라노히메와 결혼하였으며, 그녀는 훗날 두번 천황이 된다 - 교코쿠(황극) 천황 = 사이메이 (제명)천황. 일본천황가에 백제왕가의 혈통이 있다는 것은 기록에도 남아 있지만, 백제왕이 일본천황이었다는 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다.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무왕은 위덕왕의 아들이 아님. 방계 부여씨이거나, 전지왕 여영처럼 아예 다른 성씨 출신의 사성받은 부여씨임. 무왕의 즉위는 사실상 왕조의 교체였기 때문에 유교식 시호에서 왕조 시조에게 주어지는 '무'를 시호로 한것임.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너 일본어 알지 잘봐라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具体的なきめてに欠けているのです。 井上光貞『日本の歴史1 神話から歴史へ』中央公論社〈中公文庫〉、1973年10月。ISBN 4-12-200041-6。 佐伯有清 編『雄略天皇とその時代』吉川弘文館、1988年2月。ISBN 978-4-642-02145-6。 安本美典『倭の五王の謎』廣済堂出版〈廣済堂文庫〉、1992年9月。ISBN 4-331-65153-3。 安本美典『大和朝廷の起源』勉誠出版、2005年7月。ISBN 978-4-585-05324-8。 直木孝次郎『直木孝次郎古代を語る6 古代国家の形成―雄略朝から継体・欽明朝へ』吉川弘文館、2009年3月。ISBN 978-4-642-07887-0。 森公章『倭の五王 5世紀の東アジアと倭王群像』山川出版社〈日本史リブレット 人 002〉、2010年4月。ISBN 978-4-634-54802-2。 上田正昭『私の日本古代史 上 天皇とは何ものか−縄文から倭の五王まで』新潮社〈新潮選書〉、2012年12月。ISBN 978-4-106-03720-7。 河内春人『倭の五王−王位継承と五世紀の東アジア』中央公論社〈中公新書〉、2018年1月。ISBN 978-4-121-02470-1。 瀧音能之『「日本書紀」と「宋書」で読み解く!謎の四世紀と倭の五王』青春出版社〈青春新書INTELLIGENCE〉、2018年8月。これらは今やみな骨董品 です。 私は梁書と三国史記を対比して、王名とその遣使年に一致があることを遂につきとめました。双方の資料に集中して分析してみました。 *[---]の中は日本書紀に出現する表記名。 宋書→梁書=百済の諱と王名=日本書紀の表記名 「賛」→須=(餘・須・第14代・近仇首王):[貴須王] 「珍」→余映=(餘映・第18代腆支王):[直支王] 「済」→餘慶=(餘慶・第21代・蓋鹵王):[加須利君] 「興」→牟都=(餘都・第22代・文周王):[汶洲王] 「武」→牟太=(牟大・第24代・東城王):[末多王] *第二章三部後小論に(「倭の五王の後裔」・稲荷山の鉄剣などに詳述) ・梁書では倭の五王の後の二代まで書かれている。これは何を意味するのだろうか。百済王系譜、その連続性と一致する。このことは倭の五王が百済王であることは如実に語っている。もはや否定できないといえよう。 「隆」→餘隆=(第25代・武寧王・(斯摩)(「嶋君しまぎみ・嶋郎」→億計天皇に比定、その状況、父を殺されたことや、また弟が先に天皇になった経緯が近似している。嶋郎は弘計天皇と同母、母は荑媛(はえひめ・書記、これは倭王武と倭王隆が同母であること。嶋郎が先に生まれていることを示します。)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宋書に記された倭の五王(わのごおう)とは、5世紀に、南朝の東晋や宋に朝貢して「倭国王」と叙授された倭国の五人の王、すなわち讃、珍、済、興、武を指します。「倭の五王」の遣使(世修貢職)の記録が『古事記』、『日本書紀』に見られないことや、ヤマト王権の大王が、「倭の五王」のような讃、珍、済、興、武など一字の中国風の名を名乗ったという記録は存在しないため、「倭の五王」は近畿主体のヤマト王権の大王ではないとする説も江戸時代からありました。「讃」→履中天皇、「珍」→反正天皇、「済」→允恭天皇、「興」→安康天皇、「武」→雄略天皇・・・倭の五王の遣使は413年から477年までに少なくとも9回が確認されますが、このうち421年の倭王讃による遣使は東晋に対してですが、425年から477年までの倭王珍・倭王済・倭王興は、いずれも南宋に対するもので、479年倭王武の遣使は南斉対するものです。五王の朝貢年は中国史書からは明らかですが、記紀には(東晋・南宋・南斉の首都・建康(南京市の古称)への)朝獻記録がまったくありません。このため遣使年に在位していた天皇名を推定することで終わっています。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사인류 니혼진아 잘봐라 왜왕이 백제왕이래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바부! ㅋㅋ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서명천황은 의자왕이 아니라 무왕임. 이름(서동 서명) 사망시기 행적 일치. 의자왕 계모 사택적덕녀가 제명천황. 이복동생 교기가 천지천황임.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무왕은 유략천황이다 우기지마라

    • @rossmary50650
      @rossmary50650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사인류 ㅉ발이야 왜 자꾸 헛소리야? ㅋㅋㅋ

  • @hinova77
    @hinova77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제는 일본 일본은 백제, 망한백제 후손이 임진왜란도 일제식민지를 만들었지..드러운 놈들

  • @jcghim
    @jcghim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냥 웃고 말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칠지도는 근초고왕시대보다 150여년이전에 용병의 대가로 백제진왕이 왜국후왕에게 왜왕을 인증해주고자 하사한 물건입니다. 그리고 의자왕의 배다른 동생인 교기왕자가 의자왕에게 왕위쟁탈전에서 패하자 그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가서 중대형황자로 행세하고 그당시 왜왕실의 권력을 잡고 있던 한반도출신 소아씨를 압살하고(타이가개신) "천지천황"이 됩니다. 그래서 백제멸망후 백제부활운동때 그것을 돕기위해 엄청난 군대/물자를 보내 당/신라와 백강전투까지 하게 된것이죠. 밀접한 관계가 없다면 그렇게까진 하지 않았을겁니다. 근초고왕은 왕위에 오르고 23년째에 신라로부터 왕비를 맞아들여 비로소 백제왕으로 공립되어 권력을 얻게 되는데 그래도 이 한성백제의 지배영역은 현재의 경기/강원/황해남부등 중부지방을 넘지 못했읍니다. 그당시는 아마도 백제진왕과 함께 백제왕이라 칭하는 사람이 2명있었는듯 보임...요서백제나 월주백제...한반도 중남부, 가야(가야는 광개토왕의 남진때 일제히 독립)등의 영역은 백제진왕의 지배영역이었음....한성백제는 구이신왕으로 끝나고 그 다음 일본에서 돌아온 동성왕때부터 전체백제의 진왕으로써 왜국도 후국내지 분국으로 거느리고 중국에 있던 여러 백제강역도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음.... 공주(웅진)에 있었던 백제진왕 응신은 고구려 광개토왕의 남진으로 왜국 오사카로 망명천도하여 80년동안 있다가 웅략천황인 곤지,의 아들 말다왕, 즉 동성왕이 다시 한반도로 오게되면서 일본은 백제의 분국상태로 있게되고 삼국사기에 나오는 동성왕때부터는 백제진왕가로서의 역사입니다. 일본천황가는 백제 부여씨입니다.

  • @노진영-u8r
    @노진영-u8r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건 소설 이죠...근거도 없고 ...인물의 연대도 잘못 알고 계신것 같고...역사를 공부한게 맞으신지? 이런 국뽕식 소설은 진실을 찾는데 도움 안됩니다.

  • @한병규-q4p
    @한병규-q4p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래서 사료남아있나요?

  • @두루-w7v
    @두루-w7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일본도 중국본토억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 @두루-w7v
    @두루-w7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근초고왕의 일본정벌이 팩트라면 신라,고구려,백데는 한반도가 아니라,중국본토에서 건국,성장했다가 한반도로 중심세력이 이동한것으로 추정됩니다.

  • @김영철-p7v
    @김영철-p7v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 영상의 주장에 따르면 백제의 후손은 일본이란 말인데 한국 사람이 백제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할 이유가 뭔가?

    • @Ross6437-k2w
      @Ross6437-k2w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자랑?이 아니고 바른역사를 배우는게 진리입니다 왜곡되 역사를 배우면 안되지요

    • @Ross6437-k2w
      @Ross6437-k2w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리고 일본은 백제의 후손이 아니라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인들의 후손입니다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6 месяцев назад

      누가 좌랑스러워함? 조선인에게 역사는 국뽕 수단?

    • @유사인류조센진
      @유사인류조센진 6 месяцев назад

      ​@@Ross6437-k2w 헛소리

    • @Ross6437-k2w
      @Ross6437-k2w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유사인류조센진 정신. ㅂㅈ 출동이요 ㅋㅋㅋ

  • @Lee-rx3jn
    @Lee-rx3jn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졸본 = 홀본= 흘본, 사흘나흘 열흘 흘=날 = 일 日, 흘본 = 일본, 백제 대륙백제 = 비류백제, 반도백제 = 한강수도, 일본백제는 처음에 가갸계가 점령거주 근초고왕이 대대적정벌 백제화 반도백제가 일본지배, 나중에 개로왕 백제멸망 공주로 이전(문주왕), 곤지가 일본으로 도읍지를 옮기고 백제천황(왕) 일본에 거주 - 이때부터는 일본이 반도지배 = 임나일본부설 (임나백제설)

  • @옆집도지
    @옆집도지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서명아니라 제명이에요

  • @박경옥-f9s
    @박경옥-f9s 9 месяцев назад

  • @Isg3677
    @Isg3677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조상에대한 예의가 없네.

  • @별밤지기
    @별밤지기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고려왕가가 몽골제국 황족(황금씨족)과 피를 섞고 황금씨족화된 것처럼, 왜왕가와 백제왕가의 관계가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예맥어족과 어느 특정 어족이 섞여 형성된 것이 신라계 상고한국어족이고, 신라계가 남진하면서 상고한국어족과 남방예맥어족(일명 반도일본어족)이 섞인 나라가 가야입니다. 또한 이에 밀려 열도로 이동한 남방예맥어족이 조몬어족을 평정한 것이 야요이문명입니다. 이후 가야왕가도 큐슈로 이동해 반도~열도에 범왜 세력을 형성하고, 그들이 또한 백제에 평정되어 국가화된 것이 왜국입니다. 이들을 모두 아울러 일본연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가 국가화되는 과정에서 그 지배층은 백제 본왕가[온조계, 즉 오우치(어라하) 또는 코니키시(건길지)]와 피가 섞여 백제왕족화됩니다. 백제인으로도 볼 수 있고 왜인으로도 볼 수 있는 그 왕가가 현재 일본천황가의 뿌리입니다. 백제는 전성기가 지난 후 광개토태왕의 침공으로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직접 항복하면서 사실상 멸망합니다(*일본서기 주: 이 때 백제가 망했다). 그리고 대륙의 남제(齊)와 반도망명세력으로 쪼개지는데, 이 때 반도에서는 본왕가가 아닌 모도씨가 집권하게 됩니다. 백제에서 신라로 가 왕이 되었다는 모씨와 같은 계열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제는 한족국가화되지만, 남제에 부용하던 백제 잔당이 다시 부흥하면서 고구려계+선비계 왕국 북위는(*주: 선비를 평정하고 그 땅에 정착한 고구려인과 선비족이 섞인 국가. 황후와 실세 외척들이 모두 고구려인) 이를 토벌하고자 했습니다(*주: 천도하면서 제(齊)를 치겠다고 한 이후, 백제 공격 기사 등장). 그러나 이에 실패하고 백제인들이 북위 동쪽 땅을 기반으로 부흥하면서 동위와 서위로 쪼개집니다. 이후 북제를 건국하는데, 그 필두에는 오우치 또는 코니키시를 한족식으로 고쳐부른 고씨, 즉 본왕가가 있었습니다. 북제 건국 이전 모도씨 동성왕은 부흥한 대륙백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자 남제에 지속적으로 표문을 보내지만, 본왕가가 있는 왜에서도 본토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경쟁적으로 남제에 표문을 보냅니다. 백제왜임나제군사라느니 왜백제임나제군사라느니 앞다투어 6국제군사로 임명해달라는 표문 경쟁인즉 부흥한 일본연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본왕가와 모도왕가가 경쟁한 것입니다. 한 때 동성왕은 본토의 일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북제 동청주자사가 되기도 하지만 결국 암살당했고, 왜의 본왕가는 무령왕을 반도로 보내 즉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후 즉위하는 창왕이 모다루경현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양가의 경쟁은 좀 더 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령왕은 북위를 제압하고 중흥한 일에 대하여 누파구려 갱위강국(고구려를 누차 파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다.)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창왕 모다루경현이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고, 북주(서위)의 침공으로 본토를 잃으면서 백제는 급격히 쇠약해집니다. 모도왕가 또한 이 때 축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齊) 땅을 잃음으로써 백제(百濟)로 있을 수 없게 된 백제는 부여를 내세워 국호를 남부여로 하고 중흥을 꾀합니다. 왕성을 부여씨로 한 것 또한 이 때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나당연합은 남부여를 멸망시키고 웅진도독부를 세웠으며, 그 분국인 왜까지 쳐들어가 본왕가를 없애고 축자도독부를 세웠습니다. 그 터가 큐슈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 @johnk2149
    @johnk2149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삼국사기 근초고왕 기록이.한반도 일치하지 안항요...왜냐. 한반도 유물 유적아 안나옴.

  • @天覆地載곤위지
    @天覆地載곤위지 Год назад

    긴말 필요없다. 최인호씨의 소설<잃어버린 왕국>을 읽어보면 그냥 알게 됩니다.

  • @riso2156
    @riso2156 Год назад

    백제의 멸망에 대해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으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시면 김춘추의 딸과 사위를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데도 잔인하게 살껍질을 벗겨내며 죽여버린 백제의 극악무도한 업보가 화를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승리할만한 나라가 승리하고 망할만한 나라가 망한것이죠

  • @지수신-j6l
    @지수신-j6l Год назад

    근초고왕은 일본열도를 정벌한 적이 없습니다. 일본열도 정복은 역사에서 사라진 다른 백제왕들의 업적입니다. 그 실체는 '의라' '응신' '인덕(궁월군)'등으로 신화화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백제는 현대인들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희한한 체제를 가진 나라였습니다. 삼국사기의 왕력이 백제 왕계의 전부라는 편견을 버려야 백제의 진실이 보입니다.

  • @seoktaeseong6989
    @seoktaeseong6989 Год назад

    예식진이 쉽게 항복한 것은 일본에 자국 국민이 있었기 때문 . . .

  • @user-el5jc4vf3o
    @user-el5jc4vf3o Год назад

    그니까 고구려를 찌는데 바다 건너 백제를 왜 견제하는가 바다 건너에 백제가 있지 않다는 증거로 보임 후방에 있거나 옆에 있을 때 미리 견제를 하는게 상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