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백촌강 전투 등을 볼 때 왜(열도 백제)에서 엄청난 지원이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시기에는 열도 백제의 지원이 없었고 결국 의자왕이 당나라에 끌려가게 만들었는지 의문입니다. 22담로 지역에서 군사 충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것인데 의자왕이 담로 왕들에게 나 귀족들에게나 신뢰를 잃어버렸던 것 같네요.
잘 들었습니다만 황산벌 전투의 3영중 계백을 중앙군으로 하고 상영과 충상이 좌우에서 도왔다는 것은 삼국사기 해당부분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올립니다. 황산벌 일대의 방어책임자는 상영이고 계백과 충상은 사비에서 파견한 지원군입니다. 이들이 각각 자신의 부대지휘소(영)를 설치한 것이 바로 3영입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다른 해석은 아닌 것 같구요. 저는 당시 전투대형을 중심으로...홍선생님께서는 원래 책임자와 지원군을 구분해 주신 것으로 ....원래 상영이 황산벌 방어 책임자였다는 것은 저도 님의 코멘트에서 오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조언 주실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의자왕은 기습을 받고 웅진성으로 가서 반격을 도모하려 했으나, 웅진성주의 아들 예식진이 반란을 일으켜 의자왕을 당에게 받혀서 너무도 쉽게 함락되었죠. 나머지 백제성들은 충분히 저항할수 있었기에 부흥운동을 이어간거죠
백강과 탄현도 황하남쪽 산동반도와 근처에 있었음. 지명은 쉽게 변치않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그어떤 지명도 남아있지 않지요. 부여가 사비? 공주가 웅진? 이게 말이 됩니까? 황산벌이 논산이라구요? 이런 말도 안되는 사대사관, 식민사관을 믿어요?
아 한반도가 아니고 대륙에서 일어났는데
후에 백촌강 전투 등을 볼 때 왜(열도 백제)에서 엄청난 지원이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시기에는 열도 백제의 지원이 없었고 결국 의자왕이 당나라에 끌려가게 만들었는지 의문입니다. 22담로 지역에서 군사 충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는 것인데 의자왕이 담로 왕들에게 나 귀족들에게나 신뢰를 잃어버렸던 것 같네요.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중공이 대만하나 공략하기 어려운데 1400년전에 서해를 건너 상륙작전을 했다구요? 맥아더가 인천상륙 할때도 불가능하다는 반대가 많았죠. 엉터리 추정입니다. 해전은 황하에서 벌어진 전투였고 사비도 황하남쪽의 사수라는 곳에 있었죠. 황산벌도 역시 산동에 있었고요.
그럼 대륙백제는 이미 다 빼앗긴 상황이었다는 말인가요?
왕이 대륙에 있지 아니하고 한반도의 일부에 내려와있는 것도 뭔가 이상합니다.
잘 들었습니다만 황산벌 전투의 3영중 계백을 중앙군으로 하고 상영과 충상이 좌우에서 도왔다는 것은 삼국사기 해당부분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올립니다. 황산벌 일대의 방어책임자는 상영이고 계백과 충상은 사비에서 파견한 지원군입니다. 이들이 각각 자신의 부대지휘소(영)를 설치한 것이 바로 3영입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다른 해석은 아닌 것 같구요. 저는 당시 전투대형을 중심으로...홍선생님께서는 원래 책임자와 지원군을 구분해 주신 것으로 ....원래 상영이 황산벌 방어 책임자였다는 것은 저도 님의 코멘트에서 오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조언 주실 내용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