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 평화롭고 평평하고 고요하고 날뛰는 감정도 생각도 없는 상태로 봅니다. 눈 뜨고 다리를 움직여 돌아다녀도 가만히 앉아있어요 평평하지요 이 마음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항상 있는 절대적인 의식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이 꿈 속 같습니다. 금강이라 표현해도 될 것같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니 상이 비상으로 보입니다. 오온 생각 감정 감각이 숨죽이고 있습니다. 선정과 지혜가 한치의 틈도 없이 발동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평상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1. 오늘도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ㅡ평상심이란 뭐냐?ㅡ 얼마 전에도 자세히 말한 바가 있는데, 이번에도 전 번에 뭐라고 했든 싹 무시하고 새로이 말하겠습니다.^^ 물론 방거사님과 해오름님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상심시도에서의) 평상심 이란 부처님, 도인, 수행자의 평상의 마음이 아니고! 보통사람의 "특별하지 않은 마음", 일상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강도, 살인자의 마음은 이미 특별한 마음이지요.) 물론 부처님, 도인, 수행자의 마음이 도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도 이지요. 보통사람의 특별하지 않은 마음이 중생심이긴 하지만, "평상심시도"라 할 때는 평범한 마음의 첫마음, 즉심이 도이고, 선심이라는 것이고, 특히 [평상심 "시"도] 에서 "시"자가 바로 즉심의 즉이고, 초심선심의 첫마음으로 탁 치는 것이라 봅니다. 어떤 깊고 깊은 마음 보다도 가장 "천박"(가장 앝다는 의미)한 얕은 그 마음, 즉심이 도라 하겠습니다. (저의 이주장은 저만 주장하는 이상한 주장은 아니고, 학림사 오등선원 대원스님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저만 주장하는 이상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진제스님이 불렀다는 "30년 동안 말을 타고 놀았는데, 오늘은 눈 먼 당나귀의 뒷발에 차였구나." 하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번뇌가 보리라 함은 들뜬 온갖 생각과 감정에 속아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감정을 쓰고 사는 것이지요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화를 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두려워하는 등의 7정이 시의적절하게 잘 발동되는 상태지요. 기쁜 일은 같이 기뻐하고 불의함에 화를 내고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고 내 생명이 위협받는 상태에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멸진정에 대해 저도 같은 견해입니다. 멸진정은 닦을 필요가 없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나 죽음이 멸진정이라 봅니다. 매일 겪거나 아니면 장차 노력없이 겪을 일이니 구지 닦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비상비비상처정이면 된 것이라 봅니다.
ㅡ평상심이 도인의 평상심이면?ㅡ 그러면 추구해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말이 틀린 말이 되지요. 보통사람에게도 있는 특별하게 추구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평상의 마음이란 것이지요. 즉 따로 추구할 필요가 없는 지금있는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입장이 육조이래의 남종선의 기본이지요. 갈고, 닦고, 훈련하고 하는 것은 신수의 입장이지요.
담장으로 막힌 주택에서 1층에 살다보니 담장에 막혀 주변이 안보이는데 동네에서 전해지는 소음으로 주변이 너무 궁금해집니다.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옥상에 오르니 다 보입니다. 뒷집에 호박이 떨어졌네요 다시 1층에 내려와 담장밖이 아무 일 없음을 알고 살아갑니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지 않고 땡그랑 하는 소리에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ㅡ이것은 선문답, 화두공안 입니다ㅡ 그래서 보통 말하듯이 도인의 평상심이라면, 그것이 화두가 되고, 그 말을 듣고 깨달을 수가 없지요. 중생이던 조주가 그 말을 듣고 그자리에서 언하대오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평상심이 "도인의 특별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통 말하는 상식적인 생각이 아닌 것이지요.)
4. ㅡ어떻게 대하느냐가 핵심이다?ㅡ 평상심의 자체의 정체도 중요하지만, 도인의 평상심은 당연히 도이고, 중생의 일상의 마음도 도이면, 그 내용이 뭐냐? 보다는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네요. 즉심, 초심, '시'도에서의 문제이지요. 6조스님은 단용차심, 대주스님은 직용직행 이라 한 그것이지요. 즉심으로, 초심으로, 심'시'로... 하는 거지요.
평상심
평화롭고 평평하고 고요하고 날뛰는 감정도 생각도 없는 상태로 봅니다.
눈 뜨고 다리를 움직여 돌아다녀도 가만히 앉아있어요 평평하지요
이 마음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항상 있는 절대적인 의식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이 꿈 속 같습니다.
금강이라 표현해도 될 것같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니
상이 비상으로 보입니다.
오온 생각 감정 감각이 숨죽이고 있습니다.
선정과 지혜가 한치의 틈도 없이 발동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평상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1.
오늘도 좋은 법문 감사합니다.^^
ㅡ평상심이란 뭐냐?ㅡ
얼마 전에도 자세히 말한 바가 있는데, 이번에도 전 번에 뭐라고 했든 싹 무시하고 새로이 말하겠습니다.^^
물론 방거사님과 해오름님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상심시도에서의)
평상심 이란
부처님, 도인, 수행자의 평상의 마음이 아니고!
보통사람의 "특별하지 않은 마음", 일상의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강도, 살인자의 마음은 이미 특별한 마음이지요.)
물론 부처님, 도인, 수행자의 마음이 도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도 이지요.
보통사람의 특별하지 않은 마음이 중생심이긴 하지만,
"평상심시도"라 할 때는
평범한 마음의 첫마음, 즉심이 도이고, 선심이라는 것이고,
특히 [평상심 "시"도] 에서
"시"자가 바로 즉심의 즉이고, 초심선심의 첫마음으로 탁 치는 것이라 봅니다.
어떤 깊고 깊은 마음 보다도 가장 "천박"(가장 앝다는 의미)한 얕은 그 마음, 즉심이 도라 하겠습니다.
(저의 이주장은 저만 주장하는 이상한 주장은 아니고, 학림사 오등선원 대원스님도 같은 주장을 합니다. 저만 주장하는 이상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진제스님이 불렀다는
"30년 동안 말을 타고 놀았는데,
오늘은 눈 먼 당나귀의 뒷발에 차였구나."
하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번뇌가 보리라 함은
들뜬 온갖 생각과 감정에 속아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바른 생각과 바른 감정을 쓰고 사는 것이지요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화를 내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두려워하는 등의 7정이 시의적절하게 잘 발동되는 상태지요.
기쁜 일은 같이 기뻐하고 불의함에 화를 내고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고 내 생명이 위협받는 상태에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멸진정에 대해 저도 같은 견해입니다.
멸진정은 닦을 필요가 없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나 죽음이 멸진정이라 봅니다.
매일 겪거나 아니면 장차 노력없이 겪을 일이니 구지 닦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비상비비상처정이면 된 것이라 봅니다.
2.
ㅡ알아도 안되고, 몰라도 안된다ㅡ
이 말이 평상의 마음이 특별한 도인의 마음이 아니라,
보통사람의 일상의 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바로 보인다고 봅니다.
숭산스님도, 주장자를 들고,
"알아도 30방,
몰라도 30방이다.
어떻게 할 것이냐?"
했지요.
ㅡ평상심이 도인의 평상심이면?ㅡ
그러면 추구해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말이
틀린 말이 되지요.
보통사람에게도 있는
특별하게 추구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평상의 마음이란 것이지요.
즉 따로 추구할 필요가 없는 지금있는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입장이 육조이래의 남종선의 기본이지요.
갈고, 닦고, 훈련하고 하는 것은
신수의 입장이지요.
담장으로 막힌 주택에서
1층에 살다보니 담장에 막혀 주변이 안보이는데
동네에서 전해지는 소음으로 주변이 너무 궁금해집니다.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옥상에 오르니 다 보입니다.
뒷집에 호박이 떨어졌네요
다시 1층에 내려와 담장밖이 아무 일 없음을 알고 살아갑니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지 않고
땡그랑 하는 소리에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ㅡ이것은 선문답, 화두공안 입니다ㅡ
그래서 보통 말하듯이 도인의 평상심이라면,
그것이 화두가 되고,
그 말을 듣고 깨달을 수가 없지요.
중생이던 조주가
그 말을 듣고 그자리에서 언하대오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평상심이
"도인의 특별한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보통 말하는 상식적인 생각이 아닌 것이지요.)
오늘도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런 좋은 설법을 못듣는 분들이 ...
무주심
집착하지 않는 마음
그것은 오로지 나만의 체험영역이지요
박사님들이든 대종사님들이든
말로 아무리 떠들고 글로 정리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4.
ㅡ어떻게 대하느냐가 핵심이다?ㅡ
평상심의 자체의 정체도 중요하지만,
도인의 평상심은 당연히 도이고,
중생의 일상의 마음도 도이면,
그 내용이 뭐냐? 보다는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네요.
즉심, 초심, '시'도에서의 문제이지요.
6조스님은 단용차심,
대주스님은 직용직행
이라 한 그것이지요.
즉심으로,
초심으로,
심'시'로...
하는 거지요.
5.
ㅡ도가도 비상도?ㅡ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란 것은,
진짜 도가 아니다
즉, 진짜 도는 말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로 보겠습니다.
도를 말로 가리킬 수는 있으니,
진짜 도는 말 이전에, 말 너머에 있는 것이다
정도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