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ESPN 추억의 한국야구"에서 방송해 준 "1988년 한국시리즈 1차전편"에서 선동열이 등판했을 때의 영상만을 잘라 낸 것입니다. 참고로 장종훈을 삼진 잡을 때의 패스트볼 투구는 릴리스 순간부터 포수 미트가 닫히는 동작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14프레임인데(14프레임이 포수 미트가 닫히기 시작해서 15프레임에 미트가 완전히 닫혀지는 상태가 됨) 이는 최근 Statcast 시대, 릴리스 익스텐션 180cm정도의 투수가 155~157Km정도의 패스트볼을 구사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릴리스 익스텐션 180cm정도일 때에 패스트볼 구속이 158Km 이상이 릴리스 순간부터 포수 미트가 닫히는 순간까지 14프레임 정도가 나오며 146~158Km정도가 15프레임, 146Km 이하가 16프레임 정도임), 선동열의 엄청난 강속구와 릴리스 익스텐션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 자료입니다.
저 당시 한국야구는 프로야구 생긴지도 얼마 안되고 선수층도 얇아서 삼미슈퍼스타즈에는 직장 다니던 감사용이라는 선수가 입단테스트 받고 프로에 입단할 정도였는데 그런 선수들 상대로 거의 메이저급 투수들 기량인 선동렬이라는 투수가 등장하니 막 0점대 방어율을 3반이나 찍고 그랬었지
전기리그 우승팀 빙그레가 플레이 오프에서 삼성을 3-0으로 꺽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오자 김응용 감독은 빙그레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으나 그래도 삼성의 저력을 믿었다라며 빙그레의 한국 시리즈 진출은 의외라면서 첫 판에 기죽이겠다고 인터뷰를 했다. 실제로 선동렬을 등판시켜서 1차전을 2-0으로 잡았고 빙그레 타자들은 완전 기가 죽어 2차전에서도 졌다.
1986년 1, 4차전은 5실점했지만 자책점은 3점이죠. 1차전이 9이닝1자책점인데 실책 때문에 3실점이 된 거죠. 그리고 4차전이 6이닝 2실점인데 3일 쉬고 등판한 것이기에 완투는 무리였죠. 참고로 선발 등판은 아니지만 1993년 3차전에서도 공 101개 투구하면서 7.3이닝 1실점이었죠.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Pitchinglab80~90년대에 한국만 좌우가 넓었습니다. 해설자들도 성냥갑 세로로 세워논건 미.일 한국은 성냥갑 가로로 세워논 건 한국 스트라이크 존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종으로 낙차가 큰 커브를 구사하는 최동원에 미 일이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직구야 선동렬이 그당시 KBO 최고 직구 였지만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는 국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일본 첫해에 바깥쪽 빠지는 슬라이더 안잡아줘서 결정구 부재로 고생했는데 다음해에 종으로 꺾이는 슬라이더 속도 늘려서 결정구 만들었어요. 오치루 슬라이더라고 일본 해설가가 자주 그렇게 불렀어요 번역하면 떨어지는 슬라이더.. 포크 보다 각은 작지만 속도감 땜에 타자들이 손을 못댔죠.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아니요. 오히려 다른 투수들에게는 스트라이크를 주는 코스지만 선동열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심판이 최소 2명 이상입니다. 당시는 선동열한테 유독 넓었던 것이 아니라 KBO 스트라이크 존 자체가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였습니다. 동시대 메이저리그 스트라이크 존은 타자 몸쪽보다 바깥쪽이 더 넓은 형태였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과 동일하게 넓게 적용했던 바, 좌우가 더 넓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좌우가 넓으면서 높은 쪽까지 후하면 당시 타자들이 강속구 투수의 몸쪽 높은 공을 칠 수 없었던 바, 대신에 스트라이크 존의 상한선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낮았습니다.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가 좌우가 넓은 스트라이크 존의 덕을 많이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당시 KBO 투수들의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던졌습니다. 좌우가 넓은 혜택은 KBO 모든 투수들이 같이 누린 것인데 반해, 하이 존은 선동열과 같은 강속구 투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코스, 근데 스트라이크 존의 상한선이 낮으니 이 점에서는 선동열이 큰 손해를 본 셈이죠.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오히려 당시 선동열의 공이 너무 치기 힘들었던 바, 다른 투수에게 스트라이크 줄 코스를 선동열에게는 볼을 주었다고 증언하는 심판이 최소 2명 이상 계십니다.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요즈음 투수, 타자들이 과거보다 더 발전한 것은 선배들이 발전시킨 순수 야구 기술에 더해서 자본과 과학의 힘을 빌린 최신, 최첨단의 장비와 기술, 분석, 관리법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무시하고 수십년 전의 인간을 타임 머신 태워서 지금 시대에 데려오는 식으로 비교하면 선동열은 물론이며 사이영, 월터 존슨, 샌디 쿠팩스,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메이저리그 레전드들도 평범 이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죠.
선동열 선발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Ra Gun으로 측정이 된 것이고 지금 프로 선수들 패스트볼 구속은 Stalker 스피드건 또는 PTS, 트랙맨 레이더 등으로 측정이 된 겁니다. Ra Gun은 최근에 쓰이는 Stalker 스피드건 또는 트랙맨 레이더 평균 8~9Km정도 낮게 구속이 측정됩니다. 때문에 당시 선동열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지금 KBO에서 No.1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스트라이크를 잡아주는 범위에서 최대한 빼는 것이 최고의 투구 기술입니다. 그렉 매덕스나 톰 글래빈 같은 메이저리그 레전드급 투수들도 지금 시대에 분석 기술로 보면 명백히 볼 판정을 받아야 할 코스, 그렇지만 심판이 후하게 잡아주는 코스를 집중 공략함으로서 사이영상도 수상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는 등,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저때의 스트라이크 존과 지금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른데, 지금 기준으로 볼이라면서 깍아내리는 것은 무의미한 이야기죠. 지금 시대에 뛰면 지금 시대에 맞게 던지는 것이고 저 시대에는 저 시대에 맞게 던지는 거죠. 참고로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부상위험성이 큰 몸쪽을 짜게 잡아주는 대신에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의 진짜 장점은 슬라이더보다 강속구입니다. 슬라이더는 강속구 투수가 구사했을 때에 효과가 매우 큰 변화구인 것에 반해 구속이 느린 투수는 효과가 떨어지는 구종, 사실상 패스트볼 구위를 따라서 강해지는 변화구입니다. 이 경우에 선동열처럼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1991년 한일슈퍼게임 1차전에서 2승 4패였지만 1995년에는 2승 2무 2패를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1991년 한일슈퍼게임에서도 구와타 마스미 등이 구사했었던 포크볼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에 NPB 최정상급 투수들은 예상 외로 잘 공략했습니다. 니시무라, 사사오카 신지, 사이토 마사키 등, NPB 최정상급 투수를 상대로 안타로 곧 잘 치고 득점도 하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NPB보다 수준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님이 말하듯이 완전 박살났다고 보기는 어렵죠.
@@Pitchinglab91년 1차전에 선동열 - 구와타 선발 대결이었으면.. 두 나라의 각각 에이스 대결에 일본도 1차전에 정에 멤버가 출전한것 같은디.. 1차전 끝나고 스포츠 신문에 경기전 구와타선수가 일본 선수들한테 진지하게 (친선)경기에 달라고 당부했단 소리를 듣고 우리나라 기자가 1차전은 힘들겠구나 하고 기자본인이 쓴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MBC ESPN 추억의 한국야구"에서 방송해 준 "1988년 한국시리즈 1차전편"에서 선동열이 등판했을 때의 영상만을 잘라 낸 것입니다. 참고로 장종훈을 삼진 잡을 때의 패스트볼 투구는 릴리스 순간부터 포수 미트가 닫히는 동작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14프레임인데(14프레임이 포수 미트가 닫히기 시작해서 15프레임에 미트가 완전히 닫혀지는 상태가 됨) 이는 최근 Statcast 시대, 릴리스 익스텐션 180cm정도의 투수가 155~157Km정도의 패스트볼을 구사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릴리스 익스텐션 180cm정도일 때에 패스트볼 구속이 158Km 이상이 릴리스 순간부터 포수 미트가 닫히는 순간까지 14프레임 정도가 나오며 146~158Km정도가 15프레임, 146Km 이하가 16프레임 정도임), 선동열의 엄청난 강속구와 릴리스 익스텐션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 자료입니다.
선동열 마운드에서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여유로움이 돋보인다
늙어서 나간 주니치에서도
마무리로 한획을 그었다는걸 볼때
그의 공은 메이자에서도
통했을것이다
01:28 그냥 당시의 영상으로 지금 현시대 2021년에 보아도 어마어마 하다...
中日ドラゴンズでクローザーをしているときはほんとに凄かったです。
저당시 최고구속 150넘었다는거 자체가 대단한거죠.
지금도 150넘는 투수들 많지않은데.
특히 투구폼자체가 넘사벽이죠.
공의 위력자체가 다름.
지금야구에서도 저정도 위력있는 공이라면 오승환정도.
선동열의 주무기는 칼제구죠ㅋㅋ
저때 방송사 스피드건 Ra Gun에 해당하는 슬로우 건이라서 지금 Stalker 스피드건이나 트랙맨 레이더보다 평균 8~9Km 정도 낮게 찍히던 시절이죠.
선동렬씨가 150구속을 던진다는 것이 대단하다
전성기때라 대포알+돌이네....김소식의원도 하는말이 공이 아니라 대포알이에요~~ㅋㅋ
공의 위력이 어마무시 했지요.
특히 선동열은 기복이 없었다는게 특이했고 역시 대투수였지요.
바깥쪽 꽉차게대포알이 들어오네ㄷㄷ 저걸 어떻게치냐
저 당시 한국야구는 프로야구 생긴지도 얼마 안되고 선수층도 얇아서 삼미슈퍼스타즈에는 직장 다니던 감사용이라는 선수가 입단테스트 받고 프로에 입단할 정도였는데 그런 선수들 상대로 거의 메이저급 투수들 기량인 선동렬이라는 투수가 등장하니 막 0점대 방어율을 3반이나 찍고 그랬었지
전기리그 우승팀 빙그레가 플레이 오프에서 삼성을 3-0으로 꺽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오자 김응용 감독은 빙그레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으나 그래도 삼성의 저력을 믿었다라며 빙그레의 한국 시리즈 진출은 의외라면서 첫 판에 기죽이겠다고 인터뷰를 했다.
실제로 선동렬을 등판시켜서 1차전을 2-0으로 잡았고 빙그레 타자들은 완전 기가 죽어 2차전에서도 졌다.
저 경기가 선동열 역대 한국시리즈 선발 등판 가운데
제일 잘 던진 경기였죠
86년 1,4 차전 선발등판해서 노 디시전 (패전직전 모면)
88년 1차전 선발 승 (더 이상 등판 x)
89년 1차전 선발 패
91년 1차전 처음이자 마지막 완투승 (9이닝 4실점)
1986년 1, 4차전은 5실점했지만 자책점은 3점이죠. 1차전이 9이닝1자책점인데 실책 때문에 3실점이 된 거죠. 그리고 4차전이 6이닝 2실점인데 3일 쉬고 등판한 것이기에 완투는 무리였죠. 참고로 선발 등판은 아니지만 1993년 3차전에서도 공 101개 투구하면서 7.3이닝 1실점이었죠.
@@Pitchinglab 설명 감사드립니다.
선동열 선수 대단했지요. 언터쳐블.
국내 타자들 수준으로는
선동열 던지는 공을 칠 수 없었어요.
선동열 선수가 던지는 공은
미국 메이져 리그에서도 통했을 것입니다.
미국 가게 했어야 했다. 개인의 영광도 있지만 앞선 국위선양의 호기였었다.
선동열 전성기 때여군요 다시뒤돌아 가고 싶은 추억의 야구 팀수가 8개팀까지는 나름 재미있었는데 10팀되니 재미가 사라져음 젤 재미난 때가 초창기 6팀 일때임
김소식 해설위원 목소리 참 정겹네요
금성과 삼성광고판이 같이 붙어있는 특이한 시절ㅋㅋㅋ
ㅡ능동 테드 ㆍ
공이 정말 묵직하다.
공끝 끝판왕 선동렬.
아나운서: 양진수
해설: 김소식
빙그레 유니폼 이쁘네요ㅋㅋㅋ
선동열 벽도 있었지만 빙그레 수비라도 확실하게 잘해다면 시리즈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스트라익 외치는 주심 요즘엔 볼 수 없는 퍼포먼스
저걸 우찌 때리냐?
타석에 그냥 서 있는것 자체로 공포 그 자체일텐데ᆢ
선동열선수는 국내 야구보다 미국야구를 해야 했어요 국내 수준이 ....선동열 선수공치기가 너무 ...
그쵸 미국 가서 탈탈 털려봤어야 자기 분수를 알았겠죠
너무 빠진볼을 다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듯 하네.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심판들이 너무 후하게 봐줘서
타자들이 치기 어렵다
특히 바깥쪽 빠진 공을 많이 잡아 줬다
@@Pitchinglab80~90년대에 한국만 좌우가 넓었습니다. 해설자들도 성냥갑 세로로 세워논건 미.일 한국은 성냥갑 가로로 세워논 건 한국 스트라이크 존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종으로 낙차가 큰 커브를 구사하는 최동원에 미 일이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직구야 선동렬이 그당시 KBO 최고 직구 였지만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는 국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일본 첫해에 바깥쪽 빠지는 슬라이더 안잡아줘서 결정구 부재로 고생했는데 다음해에 종으로 꺾이는 슬라이더 속도 늘려서 결정구 만들었어요. 오치루 슬라이더라고 일본 해설가가 자주 그렇게 불렀어요 번역하면 떨어지는 슬라이더.. 포크 보다 각은 작지만 속도감 땜에 타자들이 손을 못댔죠.
지금보다 상하 좌우 스트존이 마니 후해보이네요ㆍ
이영상에서 만큼은. ㆍㆍ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야구를 재미없게 만들어버린 선수
같이 할수있었던 시대가 행복했다
지금은 폼부터 재미없어...
0:29 저게 스트?ㅋㅋㅋ 유난히 넓었지 선동열한테
아니요. 오히려 다른 투수들에게는 스트라이크를 주는 코스지만 선동열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증언하는 심판이 최소 2명 이상입니다. 당시는 선동열한테 유독 넓었던 것이 아니라 KBO 스트라이크 존 자체가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였습니다. 동시대 메이저리그 스트라이크 존은 타자 몸쪽보다 바깥쪽이 더 넓은 형태였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과 동일하게 넓게 적용했던 바, 좌우가 더 넓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좌우가 넓으면서 높은 쪽까지 후하면 당시 타자들이 강속구 투수의 몸쪽 높은 공을 칠 수 없었던 바, 대신에 스트라이크 존의 상한선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낮았습니다.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가 좌우가 넓은 스트라이크 존의 덕을 많이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당시 KBO 투수들의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던졌습니다. 좌우가 넓은 혜택은 KBO 모든 투수들이 같이 누린 것인데 반해, 하이 존은 선동열과 같은 강속구 투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코스, 근데 스트라이크 존의 상한선이 낮으니 이 점에서는 선동열이 큰 손해를 본 셈이죠.
@@Pitchinglab 그래서 저게 스트라이크라는거임? ㅋㅋㅋ
@@김동현-b6h 당시랑 지금은 스트존이 달랐다구요. 아저씨ㅋㅋ
오타니 쇼헤이 선동열 누가더 뛰어납니까?
바보야 80년대는 모든수준이 지금과다르단다. 오타니도 80년대라면, 2020년대처럼 못한다. 선동렬도 2020년대라면 그때보다잘했을것이다. 어느시대 태어났든 오타니는 넘사벽이지반~~~
아마 최고는 최동원.
실업 최고는 김영덕.
프로 최고는 선동열.
메이져 리그 최고는 박찬호.
현재 최고는 류현진.
지금이면 다볼이다 태평양존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동열이형
선동열 팔각도 좁혀야
스트존이 완전 개판이네
저때는 아마도 지금보다 심판 권위의식도 심했을테고
선동렬이 만약 지금시대에 나왔다면 분명 저 당시 80년대 타자들 수준이 형편없어서 압도적으로 군림했지만 요즘은 타자들이 엄청발전해서 압도적으로 군림은 못할듯..
맞아요 그리고 저당시 선동열한테 유난히 태평양 존이 었죠
절대 기량으로 평가한다면 당연한 거죠.
구속만으로만 보면 선동렬 선발시 평균 구속이 지금 프로 선수들 평균 패스트볼 구속하고 비슷한데.
당연히 상대적으로 봐야겠죠.
오히려 당시 선동열의 공이 너무 치기 힘들었던 바, 다른 투수에게 스트라이크 줄 코스를 선동열에게는 볼을 주었다고 증언하는 심판이 최소 2명 이상 계십니다.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과 같은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요즈음 투수, 타자들이 과거보다 더 발전한 것은 선배들이 발전시킨 순수 야구 기술에 더해서 자본과 과학의 힘을 빌린 최신, 최첨단의 장비와 기술, 분석, 관리법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무시하고 수십년 전의 인간을 타임 머신 태워서 지금 시대에 데려오는 식으로 비교하면 선동열은 물론이며 사이영, 월터 존슨, 샌디 쿠팩스,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메이저리그 레전드들도 평범 이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죠.
선동열 선발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Ra Gun으로 측정이 된 것이고 지금 프로 선수들 패스트볼 구속은 Stalker 스피드건 또는 PTS, 트랙맨 레이더 등으로 측정이 된 겁니다. Ra Gun은 최근에 쓰이는 Stalker 스피드건 또는 트랙맨 레이더 평균 8~9Km정도 낮게 구속이 측정됩니다. 때문에 당시 선동열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지금 KBO에서 No.1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선동열 슬라이더는 지금기준으로 보면
다 볼
스트라이크를 잡아주는 범위에서 최대한 빼는 것이 최고의 투구 기술입니다. 그렉 매덕스나 톰 글래빈 같은 메이저리그 레전드급 투수들도 지금 시대에 분석 기술로 보면 명백히 볼 판정을 받아야 할 코스, 그렇지만 심판이 후하게 잡아주는 코스를 집중 공략함으로서 사이영상도 수상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는 등,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저때의 스트라이크 존과 지금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른데, 지금 기준으로 볼이라면서 깍아내리는 것은 무의미한 이야기죠. 지금 시대에 뛰면 지금 시대에 맞게 던지는 것이고 저 시대에는 저 시대에 맞게 던지는 거죠. 참고로 당시 스트라이크 존은 좌우가 넓은 대신에 존의 높은쪽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도 부상위험성이 큰 몸쪽을 짜게 잡아주는 대신에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이 유독 넓었는데, 한국은 몸쪽도 바깥쪽만큼 넓게 잡아주었고, 이 상황에서 높은쪽이 후해지면 사실상 몸쪽 높은 코스의 강속구는 칠 수 없는 코스가 되는 바, 좌우가 넓으면서 상하가 좁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선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선동열이 슬라이더 투수라서 좌우 넓은 존의 득을 크게 봤다고 하는데, 사실 저 시대 KBO 투수들 대부분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좌우 넓은 존의 이득은 선동열만 본 것이 아니라 똑 같이 본 것이죠. 그렇지만 선동열의 통산 ERA+는 300대로서 리그 평균의 3배, 반면 류현진을 제외하면 1000이닝 이상 투구에 통산 ERA+ 150대도 없는 게 현실이죠. 또한 선동열의 진짜 장점은 슬라이더보다 강속구입니다. 슬라이더는 강속구 투수가 구사했을 때에 효과가 매우 큰 변화구인 것에 반해 구속이 느린 투수는 효과가 떨어지는 구종, 사실상 패스트볼 구위를 따라서 강해지는 변화구입니다. 이 경우에 선동열처럼 압도적인 강속구 투수라면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선을 요즈음처럼 높게 적용했을 때, 당시 공이 느렸던 다른 투수들에 비해서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던 바, 오히려 더 높은 수치의 ERA+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높죠.
멍청한소리
문제는 저땐 한국야구 수준이 낮았다는거죠. 일본가서 완전 박살났는데
1991년 한일슈퍼게임 1차전에서 2승 4패였지만 1995년에는 2승 2무 2패를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1991년 한일슈퍼게임에서도 구와타 마스미 등이 구사했었던 포크볼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외에 NPB 최정상급 투수들은 예상 외로 잘 공략했습니다. 니시무라, 사사오카 신지, 사이토 마사키 등, NPB 최정상급 투수를 상대로 안타로 곧 잘 치고 득점도 하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NPB보다 수준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님이 말하듯이 완전 박살났다고 보기는 어렵죠.
일본가서 박살이요?ㅋㅋ 기록이나 보고 까세요 이양반아
@@Pitchinglab91년 1차전에 선동열 - 구와타 선발 대결이었으면.. 두 나라의 각각 에이스 대결에 일본도 1차전에 정에 멤버가 출전한것 같은디..
1차전 끝나고 스포츠 신문에 경기전 구와타선수가 일본 선수들한테 진지하게 (친선)경기에 달라고 당부했단 소리를 듣고 우리나라 기자가 1차전은 힘들겠구나 하고 기자본인이 쓴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