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최전방 비사성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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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5 сен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15

  • @안윤이-f9j
    @안윤이-f9j 3 года назад +10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 @마달-z8v
    @마달-z8v 3 года назад +7

    구독합니다.
    역사강의에 많은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용두-u1t
    @최용두-u1t 3 года назад +7

    좋은강의 감사합니다

  • @박화영-t4l
    @박화영-t4l 3 года назад +2

    어제 구독신청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옛 역사까지 더불어 알수있는 기회까지

  • @horse-z9o
    @horse-z9o 3 года назад +3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 @jaekicho2561
    @jaekicho2561 3 года назад +4

    고구려성에 관한 여러가지 좋은 내용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대련대학중국동북연구중심에서 내 놓은 논문에서는, '산성에는 남문만을 열었다'(山城唯辟南門)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서문이라고 조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은 가짜가 됩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 번 답사해 본 결과 남쪽에 성문이 있었을 만한 곳을 확인하였고 이는 대련대학 논문과 부합합니다. 사진이 있습니다만 여기 올릴 수 없으니 안타깝네요. 선생님이 보신 서문이 있었다는 문헌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김용만의역사문
      @김용만의역사문  3 года назад +2

      저에게 그 논문과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도 더 공부를 하겠습니다. 册府元龜 卷一百十七 帝王部 一百十七 親征 二, ○ (唐太宗 貞觀十九年(645)) 五月乙巳, 張亮亞將程名振拔卑沙城. 其城四面懸絶, 唯西門有攻之勢, 名振督軍夜襲之, 副總管王文度先登, 士卒繼進, 城中潰散, 虜其男女八千口. 資治通鑑 卷一百九十七 唐紀十三太宗文武大聖大廣孝皇帝 ○ (貞觀十九年(645) 三月) 張亮帥舟師自東萊渡海, 襲卑沙城, 其城四面懸絶, 惟西門可上. 上, 時掌翻. 程名振引兵夜至, 副總管王文度先登 등의 기록이 있습니다.

    • @jaekicho2561
      @jaekicho2561 3 года назад +2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사진과 논문은 메일로 보냈습니다.

  • @yongbumyun60
    @yongbumyun60 2 года назад

    nice

  • @미제드론
    @미제드론 3 года назад +1

    성벽위의 저 구멍들이 혹시 여장 같은걸 설치하기 위한 구멍들 아닐까 생각됩니다. 환도산성에서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석성으로 쌓기는 했으나 성벽 위 수비병들의 몸을 가리기 위한 시설을 저 구멍에 박아넣은 나무를 이용하여 목책처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토성인 경우에 성벽 위에 목책을 댄 경우가 많은것으로 아는데 그와 마찬가지 용도 아니었을까 사료됩니다.

  • @frankjo2381
    @frankjo2381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죄송하지만 비사성은 이곳이 아닙니다. 중국사서에 일관되게 해주, 즉 지금의 해성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사서를 한번 검토해보시길 권합니다.

  • @만주벌판-j9v
    @만주벌판-j9v Год назад +1

    굿영상 페미 국회의원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