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씨 일가가 흥선대원군 몰아내고 왕권 무너트리고 지 새끼 죽었다고 궁에 무당을 쳐 부르고, 국고 탕진하며 매관매직등 악행을 저질렀는데 많은 영화,드라마,뮤지컬등에 쳐 심취되어서는 동학농민운동은 누구에 의해서 일어난지는 아니? 그래 맞아 니 말대로' 백성들이여 일어나라' 그 뜻을 여기다 쓰는게 맞네 왜 민씨가 시해 당했는 줄 암? 민씨 세력과 대원군 세력의 권력싸움으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됬었고 농민 운동 후 청일전쟁 일본의 승리로 힘을 얻게 된 친일개화파와 대원군,또 러시아와 붙어서 각종 이권을 내어주며 정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과 민비떄문에 조선의 민중들은 사람이 피해해져 갔어. 일제가 일본 낭인들로 하여금 민비를 시켜고 민비의 악행은 끝났지. 그리고 서민들은 삶은 일제로 의해 이토 히로부미로 의해서 공부도하고 일도 배울수 있었고 노예제도,신분제도 박살 내줬으면 문화제도 복원도 해줬지 제대로 좀 알아줬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일제 역사 왜곡, 다른 나라 언어로 다 찾아보면 진실을 알수 있다 찾아봐라 반박하고 싶으면 댓글 달아라
2번째는 후궁정도로 보이고 마지막은 대원군의 첩정도 보이네요...황후의 조카인 민영찬이 독립신문에 게재된 첫번째 사진을 황후라고 실제 말했다고 하니 더 이상 논란도 없어야 된다 봅니다...과연 조선말을 뒤흔들 그런 기개가 얼굴에 들어나는것도 그렇구요...교과서에 실어 일본넘들의 만행을 알리고 조선의 국모의 기개가 결코 약하지 않았음을 후대에 알려야 된다고 봅니다.
첫번째 두번째 모두 동일인물입니다. 첫번쨰 사진은 명성황후의 젊은시절 모습(평상복을 입은모습) 두번째는 40대시절 명성황후가 시해되기전 모습입니다. 일제는 명성황후의 품위를 깎기 위해 궁녀의 복장과 얼굴을 합성한 모습니다. 세번째는 기품으로보나 얼굴에 품위가 없어 왕족이 아닙니다.
ruclips.net/video/Er7zUSpbKkw/видео.html 위의 주장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박종인 님은 자료조사를 소홀히 하신 것 같습니다. ruclips.net/video/adMh7c9euA4/видео.html 이것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박종인님보다 더 합리적인 전문가 의견으로 보입니다. 이런 논쟁적인 부분은 좀 더 확인하셔야 하고,확실한 결론이 나기 힘들다면 다른 주장도 언급하셔야 하는데 너무 자료조사를 소홀히 하신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의 유튜브가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엄귀비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으니 첫번째가 맞는듯.... 문근영하고도 닮았다.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망국의 왕조를 이끌은 인물들일 뿐인데... 민중들은 노비들을 해방을 시켜 좋은 인프라를 구축시켜주고 교육을 시켜준 일본을 더 좋아했다. 조선왕조가 뭉개버리고 방치한 문화재도 당시 고급재료로 복원해주고 창씨개명 강요안하고 한글쓰지 못하게 한적 없다. 고종도 이미지가 그리 좋지가 않고 왕실가족들 일본에서 예우해줘서 온갖 호사는 다 누렸더만.
1번 사진은 1894년 당대 최고 미녀로 관기 사진입니다. 1894년 10월 일본 잡지에 나온 두장에 사진중 하나입니다. 2번 사진은 1895년 일본 잡지에 궁녀로 나온 사진으로 남자 관원 정장 복장과 2번 사진이 같은 페이지에 있으며 모두 명성황후 살아계실때 잡지에 나온 관기와 궁녀로 아마 명성황후 사진은 없는것이 맞을듯 합니다. 1번 사진은 일본 고서책에서 보았으며 2번 사진은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1은 10대 후반 정도 나이로 보 이며 2번 사진은 30대 이후로 보이며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얼굴 관상이 대원군과 일본군대에 맞설수 있는 사람은 첫번째 밖에 없네요... 진짜 대단한 기개가 있어 보입니다...조선의 기개를 보여주는 멋진 사진인데요...일본넘들이 도저히 감당히 안되니 시해를 할수밖에 없었을거로 보입니다..왠간히 겁줘서는 씨도 안먹힐 관상이네요...
명성황후가 사치스러웠다는 설이 있는데 맞을수도 틀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건 지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정설로 믿고있는 역사는 대부분, 일본 학자들을 스승으로 두고 있던 친일파들이 세운 조선사편수회, 조선사편수회가 명칭을 바꾼 국사편찬위원회의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명성황후가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범죄자였다니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으로서는 기분좋은 부분이네요. 정의의 영웅 일본인가요? 명성황후가 사치스러웠다 혹은 청렴했다 어느걸 믿던 후인들의 자유지만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역사를 조금 더 공부하고 판단합시다.
옛날 부터 이상타 싶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일본이 죽여놓고 민 왕후를 좋은 이미지로 남겼겠나... 나같아도 기리기리 후대까지 악녀로 만들듯. 거기에 속아 넘어간거지. 정치를 잘했다 할순 없지만 백년이 지난 지금도 후손들에게 년까지 들으며 욕먹고 있으니 일본이 바란대로 된듯. 얼마전 역사 프로에서 이런 비슷한 내용 봤는데 내가 잘못 생각 한게 아니였네 싶었음.
첫번째 사진과 두번째 사진은 동일임이 틀림없음. 가장 큰 특징은 오른쪽 눈이 약간 사시임,,,,,,,,이것은 순종의 눈을 봐도 알 수 있음, 그리고 첫번째 사진은 간편하게 입은 젊을 때 사진이고, 두번째는 40대에 찍은 사진으로 생각 됨
첫째와 두번째 사진은 약 20넌차가 나는 동일인물입니다 세번째는 영 아니구요
순종 어릴때 얼굴 대입하면 첫번째와 닮음
개인적인 생각은 세번째는 흥선대원군 첩 같고, 두번째는 그냥 좀 높은 지위의 궁녀나 흥선대원군 부인 같고, 첫번째가 맞는 거 같음. 분위기가 남다르게 귀티가 나고 순종이랑 닮았음
합성이랑 이것저것 어떤 유튜버 분이 하셨는데 거기서도 첫번째로 나옴
두번째 이미지는 이미 예전에 한번 가공된 사진입니다. 지금 이 복원하시는유튜버분께서도 2차가공된 이미지를 가져다가 복원을하신거고... 1차원본 이미지를 보시면 저 배경에서 찍힌 이미지가 아닙니다 . 명성황후임이 확실합니다
첫번째 순종눈이랑 똑같이생겼음
첫번째 사진이 명성왕후 사진입니다.
2번째는 고종후궁 장귀비, 세번째는 대원군 첩입니다.
첫번째 맞아요
신문에도 났어요
첫번째 두번째 같은인물이라네요. 다른영상서.
근데 첫번째와 두번째 사진 칼라로 복원하니 같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왼쪽 눈이 오른쪽보다 더 큰 것도 그렇고 입술 모양도 자세히 보니 많이 닮았다는..
마지막 얼굴 찡그린 여자가 민비임. 호머 허버트가 직접 맞다고 인증한 사진임
첫번째 딱 명성왕후입니다
마지막 사진이 맞는 듯~ 턱이 순종과 비슷햐
첫번째가 민비로 보이네요. 날카로운 눈빛 귀티나는 모습 외소한 작은 몸 총기가 뛰어나보이네요.
첫번째 사진 맞음 민비의 조카가 1933년에 사망했는데 생전에 저게 명성황후 사진이라고 회고록을 신문에 기고한것임.
자식을 보면 알수있지 순종의 친모는 첫번째다
순종의 얼굴을 보면 첫번째 여성과 눈매가 닮았음
딱봐도 1번인게 1910년에 민비사진이 잘못나온거면 그때왕실사람누구라도 태클걸었을덴데.
첫번째 두번째 같은 인물 명성황후 입니다
2번째가 맞음. 얼큰 가족이었음 ㅋㅋㅋㅋ
눈썹 입꼬리 저렇게 화가 잔득낀 첫번째가 민비다.. 부림받는 아랫것들이 저런눈썹 입꼬리가 가능하겠어 매사에 화를 내뱉는 종자나 가능한거지
일본 아이들이 더 대단 !
정보를 하나도 없이 싸그리 지운것만 봐도 그들의 만행이 얼마나 두려운 행동임줄 안 것이다
민비의 정치 행각과는 별개로
남위나라 국모를 무참히 밟은 행동은 극악무도함 짓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치욕이다.
민비 눈이 사시에다 인물이 없었던 건 사실....글도 몰랐었다 함....혼인 후에 독학으로 익혔다고...
첫번째가 맞는 듯 명성황후 초상화보면 거의 똑같음
초상화는 상상해서 그린거에요
@@Kim-vv7vt 직접 본 사람들의 증언 토대로 그린거임 망상이라는거
민비 조카가 신문에 실린 사진이 진짜임.
@@elephantwatch1957그 초상화가 1번째 사진보고 현대에 그린거예요
@@flight0412정답이에요 1번 보고 그린 초상화입니다
60년대 까지 살아있는 노인들은 상궁들이나 궁에 살던 내관들이 분명 있었을건데 모른다니 을미사변이 1895년이니까 1880년생 정도 되는 사람들이 60년대 까지도 생존했을 것인데.
가운데 사진이 민영환님과 닮았어요
관심음는디 찾는다고 역사가 바뀌나요?
첫번째 양반집 여인네 같은 옷 입은 여인이 순종과 가장 닮아 있네요.
두번째 명성황후 사진으로 가장 널리 잘못 알려진 사진의 여인은 의친왕과 닮아 있구요.
명성황후 같네요.
백성들이여!!!!일어나라...
민씨 일가가
흥선대원군 몰아내고 왕권 무너트리고 지 새끼 죽었다고 궁에 무당을 쳐 부르고, 국고 탕진하며 매관매직등 악행을 저질렀는데
많은 영화,드라마,뮤지컬등에 쳐 심취되어서는 동학농민운동은 누구에 의해서 일어난지는 아니? 그래 맞아 니 말대로' 백성들이여 일어나라' 그 뜻을 여기다 쓰는게 맞네
왜 민씨가 시해 당했는 줄 암? 민씨 세력과 대원군 세력의 권력싸움으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됬었고 농민 운동 후 청일전쟁 일본의 승리로 힘을 얻게 된 친일개화파와 대원군,또 러시아와 붙어서 각종 이권을 내어주며 정권을 되찾으려 한 고종과 민비떄문에 조선의 민중들은 사람이 피해해져 갔어.
일제가 일본 낭인들로 하여금 민비를 시켜고 민비의 악행은 끝났지.
그리고 서민들은 삶은 일제로 의해 이토 히로부미로 의해서 공부도하고 일도 배울수 있었고 노예제도,신분제도 박살 내줬으면 문화제도 복원도 해줬지 제대로 좀 알아줬으면 한다. 대한민국의 일제 역사 왜곡, 다른 나라 언어로 다 찾아보면 진실을 알수 있다 찾아봐라 반박하고 싶으면 댓글 달아라
첫번째 사진이 민비 같아요
저중에 진짜 민비가 있긴할까..?
세번째가 진짜
한국에는 60만의 점쟁이와 무당이 있다. 가서물어보그라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서 비난을 멈추나?
하늘에 침 뱉기
그러니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간섭과 개입을 해야한다
북한 봐라
어찌 한 정권이 그리 오래 독재를...
그것음 무지한 민중들의 탓 이기도..
북한처럼 시스템을 만들면 남한도.. 정신차려야 한다.
첫번째사진 뭔가 귀티가 흐르네
2번째는 후궁정도로 보이고 마지막은 대원군의 첩정도 보이네요...황후의 조카인 민영찬이 독립신문에 게재된 첫번째 사진을 황후라고 실제 말했다고 하니 더 이상 논란도 없어야 된다 봅니다...과연 조선말을 뒤흔들 그런 기개가 얼굴에 들어나는것도 그렇구요...교과서에 실어 일본넘들의 만행을 알리고 조선의 국모의 기개가 결코 약하지 않았음을 후대에 알려야 된다고 봅니다.
민비년의 만행도 알려야지? 일본군 끌어들여 조선백성들 몇명을 죽였더라? 😂😂😂
첫번째 두번째 모두 동일인물입니다. 첫번쨰 사진은 명성황후의 젊은시절 모습(평상복을 입은모습) 두번째는 40대시절 명성황후가 시해되기전 모습입니다. 일제는 명성황후의 품위를 깎기 위해
궁녀의 복장과 얼굴을 합성한 모습니다. 세번째는 기품으로보나 얼굴에 품위가 없어 왕족이 아닙니다.
망국의 마녀를 찿아 대체 뭘할건가? 금강산 일만이천봉마다 동상이라도 세울건가?
영원한 적 일본을 잊지맙시다.
일본의 만행을 잊지맙시다.
ruclips.net/video/Er7zUSpbKkw/видео.html
위의 주장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박종인 님은 자료조사를 소홀히 하신 것 같습니다.
ruclips.net/video/adMh7c9euA4/видео.html
이것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박종인님보다 더 합리적인 전문가 의견으로 보입니다.
이런 논쟁적인 부분은 좀 더 확인하셔야 하고,확실한 결론이 나기 힘들다면
다른 주장도 언급하셔야 하는데 너무 자료조사를 소홀히 하신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의 유튜브가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사진이 명성황후갇은데요 기품있고 귀하신분 아름다우시네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힘들어을까요
세분다 명성 황후가 아니신거 같네요.
차가운 눈빛 흰 피부 갸름한 얼굴 형태 영특해 보인다 했는데 .
염병아, 니 머리속의 민비는 뭔데?
왕후는 무슨 민비다.
마지막은 중전일 수 없음.. 딱 봐도 기생의 옷차림
황후 는 민비다
러시아여인사진이 아니므로 가짜임
엄귀비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으니 첫번째가 맞는듯.... 문근영하고도 닮았다.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망국의 왕조를 이끌은 인물들일 뿐인데... 민중들은 노비들을 해방을 시켜 좋은 인프라를 구축시켜주고 교육을 시켜준 일본을 더 좋아했다. 조선왕조가 뭉개버리고 방치한 문화재도 당시 고급재료로 복원해주고 창씨개명 강요안하고 한글쓰지 못하게 한적 없다. 고종도 이미지가 그리 좋지가 않고 왕실가족들 일본에서 예우해줘서 온갖 호사는 다 누렸더만.
생긴것부터가 고약하게 생겼다.무당정권을 일본인이 이거하나는 잘했다.
명성황후같은 분을 봐서라도 일본하고 친교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참하게 돌아가신 민비 유관순 안중근 우리는 역사를 저버릴순없다.
1번 사진은 1894년 당대 최고 미녀로 관기 사진입니다. 1894년 10월 일본 잡지에 나온 두장에 사진중 하나입니다.
2번 사진은 1895년 일본 잡지에 궁녀로 나온 사진으로 남자 관원 정장 복장과 2번 사진이 같은 페이지에 있으며 모두 명성황후 살아계실때 잡지에 나온 관기와 궁녀로 아마 명성황후 사진은 없는것이 맞을듯 합니다.
1번 사진은 일본 고서책에서 보았으며 2번 사진은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1은 10대 후반 정도 나이로 보 이며 2번 사진은 30대 이후로 보이며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ruclips.net/video/Er7zUSpbKkw/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adMh7c9euA4/видео.html
위의 주장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얼굴 관상이 대원군과 일본군대에 맞설수 있는 사람은 첫번째 밖에 없네요... 진짜 대단한 기개가 있어 보입니다...조선의 기개를 보여주는 멋진 사진인데요...일본넘들이 도저히 감당히 안되니 시해를 할수밖에 없었을거로 보입니다..왠간히 겁줘서는 씨도 안먹힐 관상이네요...
2번째 3번째 여자 흥선대원군 첩들이잖아
못배운 애들이 명성황후 라고 말하지 , 나라말어먹은 민비 가 맞는 표현이다, 얼마나 사치스러웠냐
명성황후가 사치스러웠다는 설이 있는데 맞을수도 틀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건 지금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정설로 믿고있는 역사는 대부분, 일본 학자들을 스승으로 두고 있던 친일파들이 세운 조선사편수회, 조선사편수회가 명칭을 바꾼 국사편찬위원회의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명성황후가 나라를 말아먹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범죄자였다니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으로서는 기분좋은 부분이네요. 정의의 영웅 일본인가요? 명성황후가 사치스러웠다 혹은 청렴했다 어느걸 믿던 후인들의 자유지만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역사를 조금 더 공부하고 판단합시다.
일본에게 돌릴 화살을 왜 이나라 국모께 돌리는지
민비라는 표현도 일본식 이왕가라 하대하던 표현을 그대로 입에 올리나요
폐비되신분들도 폐비 모씨라 일컫는게 우리나라식표현 방식입니다 더군다가 왕비도 아니고 황후이신분을 민비라니 일본식으로 참 잘배우셨네요
너같이 못배운 것들이 민비라고 부르더라. 밉든 곱든 황제의 정실부인이면 황후의 칭호가 맞지 무슨 비냐? 후궁도 아니고. 그리고 언제 우리역사에서 왕비를 단순히 성씨 붙여서 아무개비 라고 불렀냐, 항상 무슨왕후 아무개씨라 불렀지.
민비년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옛날 부터 이상타 싶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일본이 죽여놓고 민 왕후를 좋은 이미지로 남겼겠나... 나같아도 기리기리 후대까지 악녀로 만들듯.
거기에 속아 넘어간거지.
정치를 잘했다 할순 없지만 백년이 지난 지금도 후손들에게 년까지 들으며 욕먹고 있으니 일본이 바란대로 된듯.
얼마전 역사 프로에서 이런 비슷한 내용 봤는데 내가 잘못 생각 한게 아니였네 싶었음.
기를 체크하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세번째가 진짜라네요. 배경을 보면 흥선대원군이 찍은 곳과 같은 장소인데, 그게 그 증거라고도 합니다.
순종이살아있다면 물어보면되는일
마지막 여인이 명성황후라고 생각함. 순종어릴때 찍은 사진에 햇빛에 눈을 찡그린 모습과 굉장히 많이 닮음.
쌕끈하게생겼네
명성황후? 개뿔!!
황후가 아니라 민중전임. 중전때 죽었는데 무슨 황후야....턱주가리 쌍심지마빡녀가 민비 맞음.. 순종의 턱주가리가 애미 닮은것
고종의 정실이고 고종이 명성황후라는 시호를 내렸으니까요. 님 이론대로면 문종의 왕후는 세자빈일때 죽었으니 현덕왕후가 아니겠네요. 순명효황후도 태자비때 사망했으니 순명효황후가 아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