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지적이란 말은 만명을 상대하는 무력이라기보단 만명을 거느리는 리더감이란 뜻이 정설이더군요. 실제로 그나마 제대로 교육받고 문무를 갖춘 사람은 유비였구요. 실제로 서서나 공명을 만나기 전까지는 통솔이나 전술은 사실 유비가 다했었죠. 장비도 나름 지역에서 유지급의 부자였으니 알고지내는 호걸들도 많았을테고 쌈질도 꽤나 했었던 거 같구요. 관우는 항상 큰키와 긴수염이 묘사되는걸 보면 풍채부터가 보통사람은 훨씬 넘었을거로 보입니다. 둘다 유비가 처음시작한 민병대 정도는 충분히 이끌수준은 되었던거죠. 유비랑 같이 고생하며 산전수전을 겪다보니 통솔력도 생기고 전장을 보는 전략적안목도 생긴 만인지적 성장형 영웅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관우같은 경우는 훈장을 했다고 문무겸전의 대표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춘추는 그냥 요즘으로 치면 소설정도입니다. 물론 까막눈이 많았던 그당시에 글가르치는 선생은 했을수도...)
유교에서 거의 부처나 예수급으로 봐야 하는 공자가 역사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편찬한 것이 춘추이고, 공자 스스로 꽤 큰 가치를 두었던 책으로 과장 좀 더하면 동양의 성경 일부 쯤은 되는 책입니다. 지금에 와서도 역사적 가치는 물론 어려운 책인데, 저 시절에 그 가치는 훨씬 높았으면 높았지 낮을 수는 없죠. 현대에서도 소설이 아닌 철학 역사책 취급 받는 책이 어찌 그때에 소설 취급을 받겠습니까?
그냥 삼국지에 나온 에피소드만 따라가봐도 관우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무예를 익혔다는걸 알 수 있어요 도원결의 후 딱히 무예를 익힐 틈도 없이 살아왔는데 화웅을 순삭 시킬 때 말타고 나가서 싸웠단 말이죠? 무기도 검이 아니라 언월도 였던 점을 보면 어릴 때부터 무과시험을 공부하듯이 기마술과 병기사용법을 익혔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금으로 치면 갓 졸업한 사관생도 비슷한거죠 그러니까 유비가 스카우트 했을 겁니다 나중에 보면 지휘관으로써도 바로 역활을 하는거 보면 생도교육이 다 된 생태인거죠 당시는 난세라서 떡잎이 보이면 다들 수련을 했을 것이고 집안이 좋을수록 고오급 교육을 받았겠죠 그래서 삼국지에 잘보면 집안에 아무것도 없고 농사만 짓던 사람이 제후까지 출세한게 없죠 자질이 있어도 배움이 없으면 지휘관을 못하는 거니까요 그걸 뭐 누가 속성과외를 해주지도 않을꺼구요 ㅎㅎ 간간히 마적떼 같은거 하다가 상장군까지 가는건 있어도 일자무식 양민가에서는 안 나온거보면 힘쌔고 영특하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은수저는 되야 하는거 같아요
관우와 장비가 싸움을 잘해서 수십, 수백명을 죽인게 아니라 그 만큼 지휘를 잘했다는 뜻이겠지요.. 사람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냉병기를 든 사람 동시에 3명 못이깁니다. 결국 1:1인거죠. 후한 말이면 이미 카본스틸 강철이 나왔을때니 갑옷을 입었고 등자가 있는 말을 탔다면 안입은 사람을 여럿 죽일수 있겠으나, 이미 후한병사들은 갑옷이 깡패수준이라 장군이 싸움을 잘한다고 이길수 있는 상대가 안됩니다. 그리고 장군은 혼자서 많이 죽인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라 인원통솔의 능력이 입증될때 되는 자리이므로 개인의 무술실력이 몇십명을 베는 수준이라는건 초등학생 같은 발상입니다. 실제로는 장군이 소싯적 싸움을 잘했더라도 천부장, 만부장으로 인력을 통솔하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선두에 직접 나서어 칼질 하지는 않기 때문에 1년만 안해도 실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실 현 병사들은 나이도 젊고 바로 앞 실전경력이 많기 때문에 나이많은 장군보다 싸움을 잘하면 잘했지 못했을리는 절대로 없죠. 그냥 현대 군대처럼 장군들이 무예뽐내면 아가리 터는 식의 비위 맞춰주기로 기록에 적혀있다보시면 됩니다. 결국 지휘능력을 인정받은거죠
뭐 공식적인 기록을 보면 소드마스터 급이면 전문적인 기사 2명 정도는 상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그 전문적인 기사도 상당한 숙련자 기준이라서 어디 허접한 시정잡배 따위는 검 들엇어도 20,30명은 가뿐히 상대한다고...분명 장수라서 통솔이 중요한건 맞긴 한데 문제는 훈련도가 낮은 군대는 당연히 대열 유지부터 집결이나 이런 저런 게 잘 안되서 적장 머리통을 순식간에 따버리면 붕괴 될 가능성도 잇다고. 원소군도 어느정도 훈련 받앗는데 관우&장료가 정예병 끌고 안량 부대에 틈 생기자 마자 돌파해서 머리통을 따버리자 다들 함부러 접근 못햇다는거 고려하면 멀쩡한 상태라면 확실히 혼자 들어가면 개죽음이엿겟지만 지휘부를 붕괴시킨다면 의외의 상황이 터진다고 하더라고요.(왜 옛날 장수들 선발 시험보는데 무슨 72근 언월도를 붕붕 휘두르는 시험을 햇는지가 여기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실전에선 여차하면 저런 상황에서 대처를 하든지 지가 돌진해서 잘라버리든지 해야해서) 실제 장료의 정예기병 800명에 10만의 손권군이 개 털릴때 이미 사기가 개판 난 상황에서 장료의 돌진에 죄다 연쇄패주하던 상황이긴 한데 이게 발생햇을때가 손제리 대장기 아래까지 도달햇엇다고... 이 과정에서 진무는 죽어버리고 능통은 필사적으로 싸워서 중상입고 자신이 열심히 키운 최정예 병력 300명은 죄다 죽고(나중에 손권이 이거 때문에 우니까 너라도 살아 돌아와서 난 기쁘다면서 위로를 해줄 정도엿고) 송겸이나 서성의 부대는 박살나서 대장들까지 몸 뺄 수준이엿고(참고로 먼 곳에서 반란 진압햇다가 늦게 합류한 하제가 상황 정리하면서 서싱이 잃어버린 전용 창도 줏어서 돌려줫다고) 감녕은 완전 쫄아서 지휘체계가 잘 안돌아가니까 군악대에게 빨랑 안움직이냐고 난리치고(옛날엔 아무래도 대군이 움직이면 소음이나 거리 문제로 소리로 전달하는 게 고함치고 그러고 힘드니까 깃발이나 북소리를 특정 패턴으로 정해서 햇다고 하는데 군악대가 완전 멘탈 터져서 제 구실을 못햇다니까)반장이 뒤에서 도주하던 병사를 직접 죽이면서 독전대 짓까지하면서 겨우겨우 수습햇다고... 대장들이 도망다니거나 죽거나 해버려서 개박살이 나버리니까 800명이 10만을 가지고 놀아버리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해버렷죠. 물론 여기엔 사기 문제도 잇지만 세병제 문제로 통합된 지휘 체계가 잘 안되는데도 합동훈련도 상대적으로 주변국보다 하기 어려워서 훈련도 문제도 좀 잇던 상황에서 걔들이 제일 못하는 야전을 그것도 사기가 안 좋을때 기병으로 새벽에 숫자도 적어서 이런 미친 짓은 안하겠지 싶었을때 강습때리면서 터져나가던 상황에서 발생해서 가능하긴 햇겟지만요.
그런 특정상황에서야 수십명도 베겠지만 그건 말그대로 특별한 상황일 뿐. 애초에 10kg이상의 무기를 가지고 수십번 베면 체력 다 떨어져서 들지도 못할건데요. 일격필살이라 쳐도 수십번이면 ㅋㅋㅋ 요즘 체격타고난 최고수준 훈련에 로이드까지한 헬창들 쇠봉 휘둘러봐야 얼마나 휘두릅니까? 애초에 거의 불가능한거고 하루죙일 한놈두놈 베는거 합쳐서 수십명 잡았겠쥬. 그또한 결국 옆에 부장들 다 붙어있고 유리한 상황에 막타치는 수준이었을거고 프로격투가가 물리적 스펙이 100명 이길수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현실적으로 겁먹고 도망가니까 이긴다는 말이죠. 죽음 각오하고 붙으면 그냥 쓸려 죽는거에요.
문이 더뛰어난 명장들이 분명 있지만 무예가 약한 명장은 거의없었음. 기본적인 소규모전투를 이해해야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전략을 짜는데 무에 대한 이해없이 바로 대군을 지휘하면 좃되는경우가 허다함. 그러니 뛰어남은 필수불가결인듯 너무 넘사벽인 여포. 항우 이런사람들 제외하고 명장들은 거의 문무가 다 뛰어났지 한쪽에 치우치는 경우는 없었음. 특히나 병사들은 지휘관의 무가 뛰어날수록 따르는 경향이 강하고 사기도 높기 때문에 이순신도 작전참모 장수들에게까지 매일 병사들과 훈련을 강요했었다고함 제갈량이나 사마의는 사실 명장이라기보다는 작전참모나 행정관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음
유비세력에서 군단급 병력을 지휘했던건 유비 관우 장비 황권 제갈량 강유가 전부. 동네 쌈박질하듯 단기접전하던건 귀족들끼리 전차타고 치고박고하던 춘추시대에 끝남. 장비가 백정이라는건 소설일뿐 정사에는 그런거 없음. 애초에 군단급 지휘관들은 문무를 겸비하는건 기본임. 만인지적이란건 혼자 만명을 때려잡는다는게 아님. 슈퍼맨도 아니고 뭔... 만명을 통솔할수있는 대장군감이라는 뜻임. 만명도 숫자 일만이 아니라 그냥 대규모 병력을 뜻하는거. 간손미라고 농담삼아 말하는 3명중 미축은 말타기하고 활쏘기에 능하다고 정사에 나옴. 하지만 군대를 지휘할줄몰라 병사를 맡긴적이 없음. 개인의 무예실력이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거하고는 아무상관없다는거. 그리고 저 시절 귀족층 사대부들은 문관 무관 딱히 나뉘던 시절도 아님 과거제가 있던것도 아니고 칼질 기마술 서책읽기 그냥 모두 배우는 시절임.
이것저것~ 말 이 많기도 하지만! 확실히! 말 할수 있는 건! 조운. 관우. 장비. 마초. 제갈량. 법정. 방통. (이들 이 온전하게! 다 모인적 이 없었습니다!) 가장~ 근사치(?) 가 한중공방전 을 조조 와 할때! 인데~ 그때! 방통 은 이미~ 전사한 뒤! 이고~ 어째뜬! 위세 는 대단했고 결과적으로 한중왕 이 되었으니 성공 은 한! 그런데 그후~ 는 딱! 서촉 으로 들어간 이후 가 문제인데! 그후? 정말로~ 제갈량 혼자 만 남아버렸죠! +++ 더 이후~ 제갈량 마저 오장원 에서 사망한 이후 는~ 더 심한(그때 는 그냥 말 그대로 강유 혼자 남았고) 사실 팩트! 만 이야기 를 하면! 유비 가 한중왕 이 되었던 그 시기 도 이미 조조 가 당시 한나라 의 세력권 의 7할이상~8할이하 를 차지한 때! 나머지 2할이상~3할이하 의 세력 만 각각 유비 와 손권 이 가지고 있던 때! 였고~ 그후~ 전혀 바뀌지 않았음!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도 만인지적이라 칭했으나, 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당시 한나라 말에 있지도 않았던 1000여년 후 나관중 시대에 겨우 볼 수 있었던 청룡언월도나 장팔사모창 등을 말타고 다루며 1기토 하는 식으론 하진 않았다고 하죠...안량(顔良)을 칼로 찌를 때(진수의 삼국지엔 찌른것으로 나와있다죠)도 기습에 가까운 것이었고...양쪽 등자가 나오지도 않을 190년대말에 북방기마술을 익힌 이들이 잘 싸웠다고 하더군요..이 시기보다 늦은 고구려의 수렵도에 파르티안 활쏘기 장면도 등자의 개발로 인해 북방민족처럼 구사할 수 있다고 했으니, 중국 삼국시대엔 올라 타기 위한 한쪽 등자가 나올 시기라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연 말을 잘 다루던 북방민족과의 전투나 교류를 통해 익힌 이들이 뛰어났겠죠...대표적인 인물이 여포라고 하더군요...
주변에도 당장 월세 근근히 내면서도 옷이나 악세사리 혹은 차에 관심을 가지고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죠. 옛날 중국에서는 그런 것을 호기롭다, 호방하다 여겼었습니다. 끼니를 거르더라도 노는 건 제대로 놀 수 있어야 호걸이라 부르는 거죠. 수호전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겁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좀 이상할 수 있겠지만요.
부족사회 아니면 한 사람의 용력은 전쟁에 아무 의미가 없으니 넘어가고, 탁현이 한나라 기준으로 최전방에 해당하는 곳인데다가 17세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북방 유목민족하고 엮이다보니 그쪽 전술을 익힐 수 있으니 강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손찬도 최강 군벌이 된 이유가 이쪽과 싸움+일부 자기편으로 포섭해서 그런거고, 유비도 오환기병을 사주로 내려갈 때 이끈 적도 있고요.
기마술, 궁술은 완력으로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익숙해지도록 연습해야하며, 특히 관우가 군웅들에게 최초 소개될 때 마궁수로 소개되는데, 마궁수는 오환 혹은 후대의 몽고처럼 기마 궁술을 한다는 의미로 궁술과 기마술 조합의 최고단계죠. 기마술이 전혀 없는 궁병을 말에 태운다고 기마궁수가 되지 않으며, 궁술이 전혀없는 기마병에게 활을 준다고 갑자기 기마궁수가 되지 않습니다. 서양 역사에서도 카이사르는 기마궁수가 아닌 기마병조차 부족해서 주로 게르만 용병에 의지했으며, 나폴레옹도 기마병 부족으로 애를 먹었죠. 이런 기마궁수이면서 만인지적의 찬사를 받을 정도몄는데, 이렇게 어설픈 영상은 왜 만드셨는지....
관우의 조부와 부친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저는 관우의 신분이 낮았을 거라 추정합니다 "장생(오래 살아라)" 이라는 서민적인 원래 자, 노동을 해야했음을 추정케하는 어두운 피부색, 사대부와 어울리길 싫어하는 기질 등등으로요 그리고 조조는 장비에게 하후씨를 주었는데 왜 명성이 더 높은 관우에겐 혼처를 주지 않았을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요
천민인 관우와 재산은 좀 있더라도 벼슬길은 막힌 몰락 귀족인 장비에게 유일한 출세의 도구는 무예연마를 통한 난세의 호걸이 되는 것이었겠죠 유유상종이라고 탁군 조폭이었음을 추정케 하는 유비와 친교가 있었다는 것은 관우, 장비의 활동 무대가 뒷골목이었다는 근거일거라 생각합니다 관우의 학문은 높지 않습니다, 딱 책 한 권 뗀 걸로 평생 우려먹는데 연의 중 몇몇이 관우와 대화할 때 춘추의 의미를 추켜세우며 관우의 낮은 학식의 민망함을 변호해 줍니다
하후씨가 정략결혼을 장비와 한 이유는 장비만 그때까지 미혼이어서일 가능성이 큼. 장비 가문이 관우 가문보다 나아서일수도 있지만 그게 관우가 서민 출신이라는 정황이 되는건 아님. 사대부들을 경멸하고 병사들에겐 관대했다는 관우의 품성은 몰락 귀족 출신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임.
@@유사인류조센진 장비가 결혼을 한 시기에서 좀 뒤에 관우는 조조 휘하에서 여포를 공략할 때 진의록의 처를 자기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즉 조조에게 있었을 땐 미혼이었을 확률이 높죠 그리고 유비, 장비의 처가 누구인지 기록이 남았으면 관우의 처가 누구인지도 기록이 남을 법 한데 관우의 처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관우의 처는 신분이 그닥 높지 않았을 겁니다, 그 자신의 신분이 높지 않아 그닥 신분 높은 집안의 딸과 결혼하진 못했거나 자존심상 안했겠죠 몰락귀족의 사람 대하는 성향은 정확히 님이 말한 거랑 반대죠, 대표적인게 몰락귀족인 장비인데 그는 유파 같은 사대부와 친교하려 했고 병사와 말장들은 학대했습니다
일선에서 직접 교전하는 돌격장을 뽑을때는 귀족들이 하는 어설픈 검무 배운 것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힘 좀 쓰는 사람을 위주로 선발... 항우가 괜히 검술 따위 쓰잘데기 없는거 처음부터 안배운 이유가 다 있었음... 어디가서 무술 수련 받아서 고수 되는건 무협지에나 나오는거고 용장들은 그냥 몸만 달랑 가지고 군대 가서 실전 여러번 겪어서 성장하는 것...
저 그리고 장비팬인데요 장비대해서 다 공부하고있는사람인데요 돼지고기 판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비가 돼지고기판다고해서 못사는거아닙니다 엘리트.부자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정도? 어느정도 잘 살았다고 합니다! 장비가 부자니 엘리트니 그런말들 뻥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우락부락한건 맞아요 하지만 무식한건 아닙니다! 생긴걸로 판단하지마십쇼! 지략도 썼어요 그래서 제갈량이 장비한테 힘이랑 무예뿐만 아니라 이제 머리도 잘쓰시는군요! 라고 칭찬받은게 장비임!
유비에 관해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작은 돗자리 노점상이 아니라, 대규모 고급 돗자리 공장주 집안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는 당시 천하에 손꼽히는 대학자 노식의 문하에 유학하며 공손찬 등 배경이 좋은 사람들과 사귀면서, 학문보다는 사람들과 만나고 최신 유행의 패션을 즐기며 살았다는 얘기가 여러 사서에 나오는데, 이건 지금 표현으로 하자면 노벨상 수상자 출신 교수가 있는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가 공부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상류 출신 엘리트들과 파티를 즐기면서 인맥 맺는 데 더 열심이었다, 는 것이 되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선망하고 승복 했으며 노력에 의한 재능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삼국의 건국자들은 모두 특이한 방법으로 태어나서 처음부터 하늘의 점지를 받은 것처럼 되어 있고 그 정도의 신비감이 있어야 그를 받들고 따랐던 것이죠. 관우 장비 제갈량등도 모두 거의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타고 태어난 정도가 되어야 무신과 전략가가 뎔 수 있는 것이죠. 집안이 좋아서 좋은 스승 밑에서 체계적인 수련을 했다면 보통 사람과 재능이 비슷한데 누가 그들을 따르겠습니까? 애초에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타고 태어나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 재능으로 그냥 처음부터 범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둘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패거나 했던 성격보면 둘다 당시 다른 일반인에 비해 힘이 세거나 한성격 했던 마초적인 남자들이었던거 같다 딱히 그들이 무예를 배우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은거같다 중요한건 그들이 잦은 전투를 경험했다는 것이고 살아남음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무예 열심히 배워봐야 두사람 상대하기도 벅찬게 사실이니 그냥 그들은 살아남음으로 계속 강해졌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전투경험을 쌓은 장수가 되었고 그들을 대적하긴 쉽지 않았을것이다.
관우는 그냥 타고난 힘꾼, 묘사를 보면 8척이네, 얼굴색이 붉고 눈섭이 누에와 같다라로 한걸보면 타고난 거인에 장사였을듯. (최홍만급이라 보면 될듯) 수염을 길러 미염공이라 한걸보면 집안도 그냥 막사는 수준 이상은 되었을듯. 자부심도 세고 자신 스스로를 최고의 무장이라 생각할만한걸 보면집안도 괜찮았을듯. 허저/전위/감영/여포/장비등등 그맣은 인구의 중국에서 저런 인물 한둘 안나오는게 더 이상한것
타고난 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예를 닦을 수는 환경을 깆추었고 본인들이 혹독하게 노력한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환경을 갖추고 노력한 사람 중에서 '관장지용'이란 사자성어의 주인공이 될 정도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타고난 체력과 가정환경, 본인의 노력, 유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은 인복이 시너지효과를 낸 것 같습니다.
@@KeepThe_Faith 그 이릉 까지 밀고 들어간게 유비의 실력인거죠 이릉까지 가게되기전까지 많은 장수를 잃은상태였는데도요 이릉대전 대패했다고 그런말들 많이 하는데 이릉까지 밀고 들어간거부터가 유비가 전력적으로 엄청난 사람 이었던거죠 사실 제갈량등도 유비가 살아있었을땐 군사통솔이 아닌 행정쪽이고 유비가 전체적으로 다 했다는 의견도 많아요
맞다. 시라소니가 평범한 체격에 특별히 운동을 한 적도 없지만, 타고난 감각만으로 잘 싸웠다고 하는데, 사실은 다 구라라고 함. 당시 사람 치고 체격이 꽤 컸으며 ( 키 175에 골격도 좀 컸다고 생각됨 )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무예들을 익혔다고 함. 그리고 누구랑 싸워서 이겼느니 날아 다녔느니 하는 그런 옛날 얘기는 사실 신빙성이 그다지 없음. 고려 시대 때 어떤 장사는 호랑이 때려잡았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됨. 항우가 아니라 브록 레스너, 마이크 타이슨도 호랑이는 절대 못 잡음. 걍 호랑이의 훅 한 방에 다들 즉사임.
노노.절대 아님. 냉병기에서도 체격이 작으면 불리함. 체격이 작으면, 근력에서 불리하므로, 무기 들고 휘두르기가 더 어려움. 그리고 체격이 작으면 그만큼 팔도 짧으므로, 냉병기 휘두르는 데 더 불리함. 냉병기에서 여자가 남자를 이긴다고? 여자들은 칼 창 제대로 들지도 못함, 무거워서. 참고로, 여자들의 평균 상체 근력이 남자들의 그것의 1/6 수준.
둘다 깡패 말이 소금밀매지 요즘으로 치면 마약밀매하는 불법업자 그리고 장비도 솔직히 도살업을 했다곤 하지만 깡패가 주업이었음 그리고 1대1 단기접전은 연의에나 나오는거지 아무리 농민병을 모은 병력이라도 지휘관이 나가서 지들끼리 싸울리가 없음 어쩌다 난전에서 만나 싸우는 것정도지
관우가 얼굴빛이 대추빛같다고는 들어봤어도 대추를 팔았다는것은 처음들어봤네요
대추팔이 관우onlyHEAD상회
ㅋㅋㅋㅋㅋㅋ 댓글보니 맞네
연의는 훈장쌤으로알고있었는데
UFC 헤비급챔피온 은가누는 25살까지 막노동꾼이었죠
타고난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일뿐이고, 대다수는 어느정도 타고남과 훈련이 필요한것이죠.
코너 맥그리거는 배관공이었음
@@김효명-y7x관우 장비도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에요 ㅋㅋ
운동한번 안해본 사람들이 아는척하네 ㅋ
@@dohyeongkim1802 숨쉬기 운동은 합니다.
둘다 지역에서 힘좀 쓰는 잘나가는 건달들이었을듯.
조관우도 잘나갈때가 있었지요
그냥 이유 필요 없이 인자강인데 진짜 사기캐는 신규유저 무료 뽑기로 저 둘을 뽑아낸 유비임
정사에서 보면
유비의 용력도 대단한걸로 추측할수 있죠
유비는 농삿일하며 창술도같이 훈련했다하니 선봉에서 싸웠음
이런 애들 특징 : 어떤 정사 읽어봤냐고 물어보면 대답 못함 ㅋㅋㅋㅋ
@@서성주-l9b 이렇게 쓸대없는 시비 걸고 다니면 좋니?
그나저나 이름이 서정주라..ㅉㅉㅉ
하필이면 친일파에 근로정신대 자원하라고 연설했던 인간 이름을...ㅋㅋㅋ
@@전투불패 너무하네 우리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그냥 정사 안읽어보고 뭉뚱그려 정사라고 주워들은 말을 전했을 뿐인데.. 정사에서도 유비의 용력이 언급된 내용은 없기도 하고.
근데 우리 집안 전체를 욕보이다니
@@서성주-l9b본인 때문에 집안 욕보이기 싫으면 시비를 걸고 다니지말고 좋은말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면 됩니다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당 ^^
관우,장비 문무 배경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비는 돼지고기 장사꾼이 아니고 시를 잘 쓰는 문신이라하더군요.
문신충?
타투?
유비가
고삐도 안잡고 양손에 하나씩 칼들고 하체로 버티면서 말타고 달려드는데 여포가 안도망가고 베기것어?
인중여포. 여포가 최강
중국을 다녀보면, 지역별로 사람들의 체형이 매우다르더군요. 특히 동북쪽 사람들은 남녀모두 훤칠하고 큰사람들이 많고, 북경부터 남방방지역까지는 왜소한편인걸 알수있습니다. 관우나 장비도 북쪽사람들이니 공감이가네요. ㅎㅎ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현실적인 분석이요~
관우 키가 크다는건 중산층 이상임 음식을 많이먹을수 있엇음
장비또한 집안이 뛰어난집안이라 무기를 장만가능
ㅋ 유비는 싸움꾼이었다는 얘기는 없지만, 리치가 길었죠.
즉, 데뷔를 하기만 했다면 복싱 등 입식 타격에 유리했을 거라는 거.
인생의 많은 부분은 태어나는 순간 결정난다
타고난 용력
이런 썰을 그냥 보고 있는 내가 레전드...
이 채널 좋아하는데 더 유익한 걸 보고싶다.
만인지적이란 말은 만명을 상대하는 무력이라기보단 만명을 거느리는 리더감이란 뜻이 정설이더군요.
실제로 그나마 제대로 교육받고 문무를 갖춘 사람은 유비였구요. 실제로 서서나 공명을 만나기 전까지는 통솔이나 전술은
사실 유비가 다했었죠.
장비도 나름 지역에서 유지급의 부자였으니 알고지내는 호걸들도 많았을테고 쌈질도 꽤나 했었던 거 같구요.
관우는 항상 큰키와 긴수염이 묘사되는걸 보면 풍채부터가 보통사람은 훨씬 넘었을거로 보입니다. 둘다 유비가 처음시작한
민병대 정도는 충분히 이끌수준은 되었던거죠.
유비랑 같이 고생하며 산전수전을 겪다보니 통솔력도 생기고 전장을 보는 전략적안목도 생긴 만인지적 성장형 영웅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관우같은 경우는 훈장을 했다고 문무겸전의 대표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춘추는 그냥 요즘으로 치면 소설정도입니다. 물론
까막눈이 많았던 그당시에 글가르치는 선생은 했을수도...)
3ㅡㅡ3ㅡ
걍 일당백 같은 표현아닌가싶네요.
유교에서 거의 부처나 예수급으로 봐야 하는 공자가 역사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편찬한 것이 춘추이고, 공자 스스로 꽤 큰 가치를 두었던 책으로 과장 좀 더하면 동양의 성경 일부 쯤은 되는 책입니다. 지금에 와서도 역사적 가치는 물론 어려운 책인데, 저 시절에 그 가치는 훨씬 높았으면 높았지 낮을 수는 없죠. 현대에서도 소설이 아닌 철학 역사책 취급 받는 책이 어찌 그때에 소설 취급을 받겠습니까?
제갈량은 실제론 정치인이고 실제로 지휘한
유비죽은 후 위나라칠때마다 발렸음
제갈량은 유비 생전에 군통솔은 안했습니다
유비가 군통솔다했습니다
이럴때 쓰는 말이 있죠. 가전무공..
흥미로운 영상 잘 보고 갑니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기가 아님~ 유비 관우 장비 다 지방에서 한가닥 하던 집안이였던 거임
장사할때 진상들 상대하다 고수가된게 아닐까요?? 진상은 이기기 힘들거든요
진상 상대하며 아가리 파이터로도 유명했을 듯
돗자리 장수이지만 쌍고검에 말타고 다 썰었던 유비란....
타고난거 + 노력
흥미롭게 시청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가다 형님과 발골형님들 관우장비 가능?
단단한 고기 썰고 다니는 사람 입장에서는 검도인들이 짚단, 대나무 베면서 노는거 보면 아주 웃음이 나올 듯...
실제 조폭들이 마장동에서 시비털다 거기 발골 하시고 고기 파시는 사장님들한테 개털렸다는 썰은 유명하죠
그냥 삼국지에 나온 에피소드만 따라가봐도 관우는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무예를 익혔다는걸 알 수 있어요
도원결의 후 딱히 무예를 익힐 틈도 없이 살아왔는데
화웅을 순삭 시킬 때 말타고 나가서 싸웠단 말이죠?
무기도 검이 아니라 언월도 였던 점을 보면 어릴 때부터 무과시험을 공부하듯이
기마술과 병기사용법을 익혔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금으로 치면 갓 졸업한 사관생도 비슷한거죠
그러니까 유비가 스카우트 했을 겁니다
나중에 보면 지휘관으로써도 바로 역활을 하는거 보면 생도교육이 다 된 생태인거죠
당시는 난세라서 떡잎이 보이면 다들 수련을 했을 것이고
집안이 좋을수록 고오급 교육을 받았겠죠
그래서 삼국지에 잘보면 집안에 아무것도 없고 농사만 짓던 사람이 제후까지 출세한게 없죠
자질이 있어도 배움이 없으면 지휘관을 못하는 거니까요
그걸 뭐 누가 속성과외를 해주지도 않을꺼구요 ㅎㅎ
간간히 마적떼 같은거 하다가 상장군까지 가는건 있어도
일자무식 양민가에서는 안 나온거보면 힘쌔고 영특하다고 다 되는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은수저는 되야 하는거 같아요
언월도 자체가 허구
@@세영캐 그건 아닙니다
무게나 디테일 등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언월도를 쓴 것은 팩트 입니다
정사기준으로 화웅을 죽인건 손견이고 소설에서 관우로 바꿔넣은거야
화웅죽인게 손견인거는 알고 계신지요
@@djpark1355 관우 장비 시대에 언월도는 없었음
관우와 장비가 싸움을 잘해서 수십, 수백명을 죽인게 아니라 그 만큼 지휘를 잘했다는 뜻이겠지요.. 사람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냉병기를 든 사람 동시에 3명 못이깁니다. 결국 1:1인거죠. 후한 말이면 이미 카본스틸 강철이 나왔을때니 갑옷을 입었고 등자가 있는 말을 탔다면 안입은 사람을 여럿 죽일수 있겠으나, 이미 후한병사들은 갑옷이 깡패수준이라 장군이 싸움을 잘한다고 이길수 있는 상대가 안됩니다. 그리고 장군은 혼자서 많이 죽인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라 인원통솔의 능력이 입증될때 되는 자리이므로 개인의 무술실력이 몇십명을 베는 수준이라는건 초등학생 같은 발상입니다. 실제로는 장군이 소싯적 싸움을 잘했더라도 천부장, 만부장으로 인력을 통솔하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선두에 직접 나서어 칼질 하지는 않기 때문에 1년만 안해도 실력이 많이 떨어지지만, 실 현 병사들은 나이도 젊고 바로 앞 실전경력이 많기 때문에 나이많은 장군보다 싸움을 잘하면 잘했지 못했을리는 절대로 없죠. 그냥 현대 군대처럼 장군들이 무예뽐내면 아가리 터는 식의 비위 맞춰주기로 기록에 적혀있다보시면 됩니다. 결국 지휘능력을 인정받은거죠
뭐 공식적인 기록을 보면 소드마스터 급이면 전문적인 기사 2명 정도는 상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여기서 중요한건 그 전문적인 기사도 상당한 숙련자 기준이라서 어디 허접한 시정잡배 따위는 검 들엇어도 20,30명은 가뿐히 상대한다고...분명 장수라서 통솔이 중요한건 맞긴 한데 문제는 훈련도가 낮은 군대는 당연히 대열 유지부터 집결이나 이런 저런 게 잘 안되서 적장 머리통을 순식간에 따버리면 붕괴 될 가능성도 잇다고. 원소군도 어느정도 훈련 받앗는데 관우&장료가 정예병 끌고 안량 부대에 틈 생기자 마자 돌파해서 머리통을 따버리자 다들 함부러 접근 못햇다는거 고려하면 멀쩡한 상태라면 확실히 혼자 들어가면 개죽음이엿겟지만 지휘부를 붕괴시킨다면 의외의 상황이 터진다고 하더라고요.(왜 옛날 장수들 선발 시험보는데 무슨 72근 언월도를 붕붕 휘두르는 시험을 햇는지가 여기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실전에선 여차하면 저런 상황에서 대처를 하든지 지가 돌진해서 잘라버리든지 해야해서)
실제 장료의 정예기병 800명에 10만의 손권군이 개 털릴때 이미 사기가 개판 난 상황에서 장료의 돌진에 죄다 연쇄패주하던 상황이긴 한데 이게 발생햇을때가 손제리 대장기 아래까지 도달햇엇다고... 이 과정에서 진무는 죽어버리고 능통은 필사적으로 싸워서 중상입고 자신이 열심히 키운 최정예 병력 300명은 죄다 죽고(나중에 손권이 이거 때문에 우니까 너라도 살아 돌아와서 난 기쁘다면서 위로를 해줄 정도엿고) 송겸이나 서성의 부대는 박살나서 대장들까지 몸 뺄 수준이엿고(참고로 먼 곳에서 반란 진압햇다가 늦게 합류한 하제가 상황 정리하면서 서싱이 잃어버린 전용 창도 줏어서 돌려줫다고) 감녕은 완전 쫄아서 지휘체계가 잘 안돌아가니까 군악대에게 빨랑 안움직이냐고 난리치고(옛날엔 아무래도 대군이 움직이면 소음이나 거리 문제로 소리로 전달하는 게 고함치고 그러고 힘드니까 깃발이나 북소리를 특정 패턴으로 정해서 햇다고 하는데 군악대가 완전 멘탈 터져서 제 구실을 못햇다니까)반장이 뒤에서 도주하던 병사를 직접 죽이면서 독전대 짓까지하면서 겨우겨우 수습햇다고... 대장들이 도망다니거나 죽거나 해버려서 개박살이 나버리니까 800명이 10만을 가지고 놀아버리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해버렷죠. 물론 여기엔 사기 문제도 잇지만 세병제 문제로 통합된 지휘 체계가 잘 안되는데도 합동훈련도 상대적으로 주변국보다 하기 어려워서 훈련도 문제도 좀 잇던 상황에서 걔들이 제일 못하는 야전을 그것도 사기가 안 좋을때 기병으로 새벽에 숫자도 적어서 이런 미친 짓은 안하겠지 싶었을때 강습때리면서 터져나가던 상황에서 발생해서 가능하긴 햇겟지만요.
@@hgl2938특히 저 당시엔 먹을 것도 부족해서 대부분 사람들 키가 160도 안 됐었지요.
초딩같은 빼빼들 사이에 정찬성 같은 사람이 무거운 병기로 말위에서 찍어대면 일반 병사들이 상대하기가 어려웠겠지요.
그런 특정상황에서야 수십명도 베겠지만 그건 말그대로 특별한 상황일 뿐. 애초에 10kg이상의 무기를 가지고 수십번 베면 체력 다 떨어져서 들지도 못할건데요. 일격필살이라 쳐도 수십번이면 ㅋㅋㅋ 요즘 체격타고난 최고수준 훈련에 로이드까지한 헬창들 쇠봉 휘둘러봐야 얼마나 휘두릅니까?
애초에 거의 불가능한거고 하루죙일 한놈두놈 베는거 합쳐서 수십명 잡았겠쥬. 그또한 결국 옆에 부장들 다 붙어있고 유리한 상황에 막타치는 수준이었을거고
프로격투가가 물리적 스펙이 100명 이길수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현실적으로 겁먹고 도망가니까 이긴다는 말이죠. 죽음 각오하고 붙으면 그냥 쓸려 죽는거에요.
@@Tongdacwjstk 남자가 여자보다 근육량이 40%정도 더 많은데, 일반적으로 5대1쯤 이길 것 같아요.
한나라때 당시 평균 성인 키가 158cm고, 관우가 180cm이 넘었다고 하니, 타이슨대 일반인 수준 아니였을까요.
그런 상황을 잘 캐치하고 학살하는게 여포니 관우니 하는 무장들의 특별함이지. 각잡고 5대1 10대1로 둘러쌓여서 이기는 무신이 아니라는거 ㅋ. 한두번이야 운좋게 살아도 그런걸 여러번 수십번? 이건 다 소설이라는거죠.
😮
일단 체급자체가 넘사벽이었음. 고대 무력은 체급이 99퍼 먹고감
ㅋㅋㅋ무슨 전쟁이 게임처럼 일기토하는줄아나
맨손 격투는 체격이 깡패이지만 무기를 들 경우에는 무기 성능이 깡패... 괜히 검도에서 체급을 아예 만들지도 않고 죽도 길이에 제한을 두는게 아님...
니가어케알아
@@오키나와-d4h 저 말이 일리가 있는게 일반인보다 떡대좋은 장수가 있으면 위압효과도 있어서 일기토를 할 필요도 없어짐.
하다못해 동네 패싸움이나 조폭싸움도 떡대큰놈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면 접근하기 껄끄러워짐
@@gerughigiulio9190 체급이 크단 말은 더 무겁고 긴. 즉 성능좋은 무기를 더 잘다룰수 있단 말임. 냉병기 시대땐 체급이 절대적이었던거 맞음
근데 명장 = 무예가 뛰어남. 이게 꼭 성립하는간가요. 관련성이 높을 순 있지만. 용기. 담대함. 전략적 사고. 빠른 판단력 이런게 더 중요한거 아닐까요. 물론 저 둘은 너무 에피소드가 많아서 무력도 출중했을 것 같긴 하지만요 ㅎㅎ
빙고!! 둘다 하급지휘관이 아닙니다.
관우는 유비생전 단하나밖에 없는 군단장급임 유비가 촉한토벌갈때도 관우가 형주맡아 놓고있었고 장비는 부하들을 너무 함부로 대해서 그렇지 정사에서는 술련 이야기 안나옴
마초는 조조도 덜덜떨게한 군웅이라서
문이 더뛰어난 명장들이 분명 있지만 무예가 약한 명장은 거의없었음.
기본적인 소규모전투를 이해해야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전략을 짜는데 무에 대한 이해없이
바로 대군을 지휘하면 좃되는경우가 허다함.
그러니 뛰어남은 필수불가결인듯
너무 넘사벽인 여포. 항우 이런사람들 제외하고 명장들은 거의 문무가 다 뛰어났지 한쪽에 치우치는 경우는 없었음. 특히나 병사들은 지휘관의 무가 뛰어날수록 따르는 경향이 강하고 사기도 높기 때문에 이순신도 작전참모 장수들에게까지 매일 병사들과 훈련을 강요했었다고함
제갈량이나 사마의는 사실 명장이라기보다는 작전참모나 행정관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음
유비3형제는 의용군 부터 시작해서 무예가 뛰어나지 않으면 저 정도까지 클수가 없었을텐데
유비세력에서 군단급 병력을 지휘했던건 유비 관우 장비 황권 제갈량 강유가 전부. 동네 쌈박질하듯 단기접전하던건 귀족들끼리 전차타고 치고박고하던 춘추시대에 끝남. 장비가 백정이라는건 소설일뿐 정사에는 그런거 없음. 애초에 군단급 지휘관들은 문무를 겸비하는건 기본임. 만인지적이란건 혼자 만명을 때려잡는다는게 아님. 슈퍼맨도 아니고 뭔... 만명을 통솔할수있는 대장군감이라는 뜻임. 만명도 숫자 일만이 아니라 그냥 대규모 병력을 뜻하는거. 간손미라고 농담삼아 말하는 3명중 미축은 말타기하고 활쏘기에 능하다고 정사에 나옴. 하지만 군대를 지휘할줄몰라 병사를 맡긴적이 없음. 개인의 무예실력이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거하고는 아무상관없다는거. 그리고 저 시절 귀족층 사대부들은 문관 무관 딱히 나뉘던 시절도 아님 과거제가 있던것도 아니고 칼질 기마술 서책읽기 그냥 모두 배우는 시절임.
정답입니다 그래서 고려 최고의 무장을 척준경이 아닌 유금필이라고 생각합니다 척준경은 그냥 개인 용력이 쎈 무장이고
실제 천 만단위의 군사들을 통솔할수 있는 능력은 쉬운게 아니죠
그쵸 소수간의 전투면 무력이 많이 중요하겠지만 다수간의 전투면 운용이 중요해짐
1:26 사람을 죽이고 달아난건 관우 아닌가여
네. 관우가 살인 후 고향에서 도망쳐 탁군으로 도주했다는 설이 있고, 장비 역시 관헌을 죽이고 도축업에 종사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걸 설명한 거구요. 장비의 살인 후 도축업 종사설은 근거가 희박한 민간전승입니다.
조운 관우 장비 마초가 유비한테 잇는데 통일 못한것도 대단하다 ㅋㅋ심지어 제갈량 법현까지잇엇는데 방통도
조조가 먹은 땅에서 나오는 물량이 넘사벽 그리고 조조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
이것저것~ 말 이 많기도 하지만! 확실히! 말 할수 있는 건!
조운. 관우. 장비. 마초. 제갈량. 법정. 방통. (이들 이 온전하게! 다 모인적 이 없었습니다!)
가장~ 근사치(?) 가 한중공방전 을 조조 와 할때! 인데~
그때! 방통 은 이미~ 전사한 뒤! 이고~ 어째뜬! 위세 는 대단했고 결과적으로 한중왕 이 되었으니 성공 은 한!
그런데 그후~ 는 딱! 서촉 으로 들어간 이후 가 문제인데! 그후? 정말로~ 제갈량 혼자 만 남아버렸죠!
+++ 더 이후~ 제갈량 마저 오장원 에서 사망한 이후 는~ 더 심한(그때 는 그냥 말 그대로 강유 혼자 남았고)
사실 팩트! 만 이야기 를 하면!
유비 가 한중왕 이 되었던 그 시기 도 이미 조조 가 당시 한나라 의 세력권 의 7할이상~8할이하 를 차지한 때!
나머지 2할이상~3할이하 의 세력 만 각각 유비 와 손권 이 가지고 있던 때! 였고~ 그후~ 전혀 바뀌지 않았음!
느낌표 ㅈㄴ킹받내
틀딱이들 젊어보이려고 발버둥치는것 봐라ㅉ
법정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도 만인지적이라 칭했으나, 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당시 한나라 말에 있지도 않았던 1000여년 후 나관중 시대에 겨우 볼 수 있었던 청룡언월도나 장팔사모창 등을 말타고 다루며 1기토 하는 식으론 하진 않았다고 하죠...안량(顔良)을 칼로 찌를 때(진수의 삼국지엔 찌른것으로 나와있다죠)도 기습에 가까운 것이었고...양쪽 등자가 나오지도 않을 190년대말에 북방기마술을 익힌 이들이 잘 싸웠다고 하더군요..이 시기보다 늦은 고구려의 수렵도에 파르티안 활쏘기 장면도 등자의 개발로 인해 북방민족처럼 구사할 수 있다고 했으니, 중국 삼국시대엔 올라 타기 위한 한쪽 등자가 나올 시기라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연 말을 잘 다루던 북방민족과의 전투나 교류를 통해 익힌 이들이 뛰어났겠죠...대표적인 인물이 여포라고 하더군요...
유비, 관우, 장비 전부 3~4미터 높이의 바위를 거뜬히 들어올렸다고 하고 호랑이와 맨손으로 1대1로 싸워 간단히 제압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셋다 타고난 장사라고 보이죠
@@김관철-t1y 그런 기록이 있나요?
안량을 찌른게 기습에 가까웠다는 희대의 개소리 ㅋㅋ좀 아는척 하고 싶으면 제대로좀 해라~기습이래~ㅋㅋ웃기네
주변에도 당장 월세 근근히 내면서도 옷이나 악세사리 혹은 차에 관심을 가지고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죠. 옛날 중국에서는 그런 것을 호기롭다, 호방하다 여겼었습니다. 끼니를 거르더라도 노는 건 제대로 놀 수 있어야 호걸이라 부르는 거죠. 수호전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겁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좀 이상할 수 있겠지만요.
부족사회 아니면 한 사람의 용력은 전쟁에 아무 의미가 없으니 넘어가고, 탁현이 한나라 기준으로 최전방에 해당하는 곳인데다가 17세기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북방 유목민족하고 엮이다보니 그쪽 전술을 익힐 수 있으니 강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손찬도 최강 군벌이 된 이유가 이쪽과 싸움+일부 자기편으로 포섭해서 그런거고, 유비도 오환기병을 사주로 내려갈 때 이끈 적도 있고요.
대추자루를 많이 들어서 무예 출중???^^
사실 무예로 유관장중 유비가 발랐다는 전설이..
발랐다는게
뭔가요?
패왕 유비설이군요 ㅋ 사실 유비가 제일 쌨다는 ㅋ
@@lee02490 연의에서는 사람좋은 사람이지만 정사.기록으로는 왠만한 명장급이더라구요
전 그걸 믿고 싶네요 ㅎㅎㅎ
나이로 큰형이 아니라
무력으로 큰형인거죠.
유비최강설은 괜히 나온게 아님 당대 최강장수 여포를 상대로 관우장비가 고전하고 있을때, 유비가 가서 여포쫒아냄
일단 힘이 천하장사인게 덩치가. 엄청 큼! 실제모습을 보면 장비보다 관우가 더 덩치가 큽니다.무기도 더 무거운 걸 들었습니다.
봤냐?
봤어?
봤냐고!
@@노모해 아니
관우의 주무기 청룡언월도무게가 얼추 48Kg
이걸 한손으로 휘둘렷으니~?
원래 강한 사람들은 뭘 해도 강하지요. 관우 장비는 신체 스팩부터가 당대의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했을 겝니다.
싸움은 항우도 잘했는데
아니 묘사만 보면 더 잘했지만
관우만 관신이 된건 이유가 있겠죠
기마술, 궁술은 완력으로 어느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익숙해지도록 연습해야하며, 특히 관우가 군웅들에게 최초 소개될 때 마궁수로 소개되는데, 마궁수는 오환 혹은 후대의 몽고처럼 기마 궁술을 한다는 의미로 궁술과 기마술 조합의 최고단계죠. 기마술이 전혀 없는 궁병을 말에 태운다고 기마궁수가 되지 않으며, 궁술이 전혀없는 기마병에게 활을 준다고 갑자기 기마궁수가 되지 않습니다. 서양 역사에서도 카이사르는 기마궁수가 아닌 기마병조차 부족해서 주로 게르만 용병에 의지했으며, 나폴레옹도 기마병 부족으로 애를 먹었죠. 이런 기마궁수이면서 만인지적의 찬사를 받을 정도몄는데, 이렇게 어설픈 영상은 왜 만드셨는지....
왜긴요 대부분 의용군하기 전에 도축업자나 그런일을 하던것으로나 알고있으니 그런거죠
누가보면 기마술 궁술 마스터한 사람이 쓴 댓글인줄 알겠네 ㅋㅋㅋㅋ
마궁수가 진짜 말타고 활쏘는 사람인줄 아나? 궁수는 쉽게 말해 소대장을 궁수라고 한단다 마군 소대장 보군 소대장 이런뜻
영상 다보고 느낀 점이 이것.
뭐지 이 엉성한 일기같은 영상은.?
관우의 조부와 부친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저는 관우의 신분이 낮았을 거라 추정합니다
"장생(오래 살아라)" 이라는 서민적인 원래 자, 노동을 해야했음을 추정케하는 어두운 피부색, 사대부와 어울리길 싫어하는 기질 등등으로요
그리고 조조는 장비에게 하후씨를 주었는데 왜 명성이 더 높은 관우에겐 혼처를 주지 않았을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요
천민인 관우와 재산은 좀 있더라도 벼슬길은 막힌 몰락 귀족인 장비에게 유일한 출세의 도구는 무예연마를 통한 난세의 호걸이 되는 것이었겠죠
유유상종이라고 탁군 조폭이었음을 추정케 하는 유비와 친교가 있었다는 것은 관우, 장비의 활동 무대가 뒷골목이었다는 근거일거라 생각합니다
관우의 학문은 높지 않습니다, 딱 책 한 권 뗀 걸로 평생 우려먹는데 연의 중 몇몇이 관우와 대화할 때 춘추의 의미를 추켜세우며 관우의 낮은 학식의 민망함을 변호해 줍니다
ㄴㄴ. 서민 출신은 애비 할배에 대한 기록이 안남음.
악진 전위 허저 황충 위연 여몽같은 애들이 서민 출신임.
애비 할배 기록이 있고 유교 경전을 읽었다는건 귀족 출신이라는 뜻임.
하후씨가 정략결혼을 장비와 한 이유는 장비만 그때까지 미혼이어서일 가능성이 큼. 장비 가문이 관우 가문보다 나아서일수도 있지만 그게 관우가 서민 출신이라는 정황이 되는건 아님.
사대부들을 경멸하고 병사들에겐 관대했다는 관우의 품성은 몰락 귀족 출신에게 나타나는 심리적 특성임.
@@유사인류조센진 장비가 결혼을 한 시기에서 좀 뒤에 관우는 조조 휘하에서 여포를 공략할 때 진의록의 처를 자기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즉 조조에게 있었을 땐 미혼이었을 확률이 높죠
그리고 유비, 장비의 처가 누구인지 기록이 남았으면 관우의 처가 누구인지도 기록이 남을 법 한데 관우의 처는 기록이 없습니다, 아마 관우의 처는 신분이 그닥 높지 않았을 겁니다, 그 자신의 신분이 높지 않아 그닥 신분 높은 집안의 딸과 결혼하진 못했거나 자존심상 안했겠죠
몰락귀족의 사람 대하는 성향은 정확히 님이 말한 거랑 반대죠, 대표적인게 몰락귀족인 장비인데 그는 유파 같은 사대부와 친교하려 했고 병사와 말장들은 학대했습니다
@@wolfwind1741 당신 말은 매우 비논리적이고 망상적이어서 뭐라 할말이 없음. 그냥 계속 멋대로 생각하길.
장비는 몰락귀족 아님. 그냥 명문이지.
저게 가능한게 쉬야오동 영상을 보면 태극권 절대무공 고수가 쉬샤오동 펀치한방에 쌍코피가 나서 뻗어버리던데 ㅋㅋ 삼국지 영웅들이 그정도 무예라고 보면 훈장선생도 절세무공자로 활약하지 못할법도 없을듯 ㅋㅋ
장비는 그냥 돼지가 아니고 맷돼지라면 당연히 무술이 출중한 것이고요. 관우는 대추를 판게 어니고 대출을 판것 아닐까요. 그당시에 대출파는 건달이였다고 봐야겠죠
일선에서 직접 교전하는 돌격장을 뽑을때는 귀족들이 하는 어설픈 검무 배운 것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힘 좀 쓰는 사람을 위주로 선발... 항우가 괜히 검술 따위 쓰잘데기 없는거 처음부터 안배운 이유가 다 있었음... 어디가서 무술 수련 받아서 고수 되는건 무협지에나 나오는거고 용장들은 그냥 몸만 달랑 가지고 군대 가서 실전 여러번 겪어서 성장하는 것...
당시 무기 '날' 이 잘 안들어서 그렇다는 소리도...
마장동에서 건달이 함부로 못 나댄다는 얘기 있는거로 봐서는 장비는 그러려니 하는건데 관우는 사실 유비랑 맞다이해서 져서 나이가 유비 보다 많음에도 형님으로 모신거 아닐까 싶음 ㅋㅋ
도장나녔어요
삼국지연의는 SF에 가까운 중국소설입니다. 그게 다입니다. 사실 정사의 조각 기록에 의하면 조운은 문신으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저 그리고 장비팬인데요 장비대해서 다 공부하고있는사람인데요 돼지고기 판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비가 돼지고기판다고해서 못사는거아닙니다 엘리트.부자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간정도? 어느정도 잘 살았다고 합니다! 장비가 부자니 엘리트니 그런말들 뻥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우락부락한건 맞아요 하지만 무식한건 아닙니다! 생긴걸로 판단하지마십쇼! 지략도 썼어요 그래서 제갈량이 장비한테 힘이랑 무예뿐만 아니라 이제 머리도 잘쓰시는군요! 라고 칭찬받은게 장비임!
유비에 관해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작은 돗자리 노점상이 아니라, 대규모 고급 돗자리 공장주 집안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는 당시 천하에 손꼽히는 대학자 노식의 문하에 유학하며 공손찬 등 배경이 좋은 사람들과 사귀면서, 학문보다는 사람들과 만나고 최신 유행의 패션을 즐기며 살았다는 얘기가 여러 사서에 나오는데, 이건 지금 표현으로 하자면 노벨상 수상자 출신 교수가 있는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가 공부보다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상류 출신 엘리트들과 파티를 즐기면서 인맥 맺는 데 더 열심이었다, 는 것이 되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가난한 집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좋은 말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도 가졌는데, 스포츠카 많이 타본 느낌임.
글 좀 써보세요.
상당한 재능이 보여요.
유비 집안 친척이 잘살아서 많이 도와줬다는 썰도 있고
@@파맛-o8p 그거ㄴ 정설임 유원기
@@파맛-o8p 사돈집안이 종이 만명이었던 재벌가 미축
관우는 병주기병집단출신임
그중서황 장료랑 친구였는데 각자 다른 정치집단으로 들어간것
소설이니까 쌈 잘한 것이죠.😅😅😅
그런데 한나라말 동측 국경선이 거슬리네요?
네. 그래서 최근 영상에서는 요동과 한사군이 제외된 지도로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청 감사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요동이랑 한반도 한사군도 한나라 영토 맞는데 괜히 딴지거네 찐따마냥
예나 지금이나, 노력은 재능을 못이기고, 재능은 집안빨을 못이긴다.
그냥 소설의 주인공을 만들기위한 베이스임
시나리오상 주목을 받아야하니 ㅎㅎ
알고보면 유비가 관우장비 이길정도의 초 고수엿음
유비가 초고수였을걸로 봅니다
소설속 제갈공명이 했던것들
대다수 실제로는 유비머리에서 나온것.
공명은 행정가지요
장비는 정육점 정도가 아니라 백화점 납품하는 도축 공장쯤 됬을듯.
옛날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선망하고 승복 했으며 노력에 의한 재능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삼국의 건국자들은 모두 특이한 방법으로 태어나서 처음부터 하늘의 점지를 받은 것처럼 되어 있고 그 정도의 신비감이 있어야 그를 받들고 따랐던 것이죠.
관우 장비 제갈량등도 모두 거의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타고 태어난 정도가 되어야 무신과 전략가가 뎔 수 있는 것이죠.
집안이 좋아서 좋은 스승 밑에서 체계적인 수련을 했다면 보통 사람과 재능이 비슷한데 누가 그들을 따르겠습니까?
애초에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타고 태어나 하늘이 부여한 천부적 재능으로 그냥 처음부터 범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관우가 대추처럼 빨개서 대추지 대추팔이 였나요😂
아직도 떡밥이 계속 나오는 신나는 삼국지 ㅋㅋ
왜 싸움을 잘했나구? 그저 소설이니까... 사실 관우는 정사에서 유비군으로 전쟁에서 이겼다는 내용이 없음.
걍 뭐 메시 호날두로 태어났는데 몇 놈썰다보니 와타시 조금 강할지도?? 하다가 더 수련해서 개쎄짐
둘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패거나 했던 성격보면 둘다 당시 다른 일반인에 비해 힘이 세거나 한성격 했던 마초적인 남자들이었던거 같다 딱히 그들이 무예를 배우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은거같다 중요한건 그들이 잦은 전투를 경험했다는 것이고 살아남음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무예 열심히 배워봐야 두사람 상대하기도 벅찬게 사실이니 그냥 그들은 살아남음으로 계속 강해졌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전투경험을 쌓은 장수가 되었고 그들을 대적하긴 쉽지 않았을것이다.
관우가 고구려 유민 출신이라는 설도 있던데
연의에서 쎈 장수에 오나라 탑은 손견보다 감녕이지
노익장에 괄목상대에 천하이분지계에 전부 해당되는 인물인데 대중적 이미지는 그냥 방울 달고 다니는 양아치...
뭔..뭐지 방금 되게 익숙한 목소리가...?
대추를 팔던 고기를 팔던 그들이 무예가 뛰어난게 의문의 가질 일인가요?
지금 시대엔 말이죠..
허름한 옆건문 전당포에 머리긴 사내도 있고.. 강아지 키우는 장발의 솔로남이나. 동네 아저씨들하고 바비큐나 구워먹던 딸바보 아빠도 있습니다만.
정사만 보면 관우랑 장비를 비교하는 것도 장비에게 실례지 관우는 전공도 별 볼 일 없잖슴 있는 전공도 형주 잃기 전 급발진으로 얻은 거고
현대 중국 보면 농사 짓거나 팔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도둑질 당당히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을 상대로 농산물을 안빼잇기려면 만인지적 수준 아니고서 힘들어서 그랬다 한표.
관우는 그냥 타고난 힘꾼, 묘사를 보면 8척이네, 얼굴색이 붉고 눈섭이 누에와 같다라로 한걸보면 타고난 거인에 장사였을듯. (최홍만급이라 보면 될듯) 수염을 길러 미염공이라 한걸보면 집안도 그냥 막사는 수준 이상은 되었을듯. 자부심도 세고 자신 스스로를 최고의 무장이라 생각할만한걸 보면집안도 괜찮았을듯. 허저/전위/감영/여포/장비등등 그맣은 인구의 중국에서 저런 인물 한둘 안나오는게 더 이상한것
대추에서 영상 정지합니다..
왜이렇게 승질이 급하지 ㅋㅋ
애초에 유비 밑에 약한 병사와 장수는 존재하지 않음.
뭔가 잘 모르시는데 노가다판에 싸움고수들 많습니다.
조선소 영감님들이 현역 군인들보다 더 잘싸울거라고 확신하는 1인입니다.
어이 김 씨~ 휴대폰 그만 만지고 세멘이나 날라~
정말 장수들이 최전방 앞에서 싸웠을까? 홀로 적진에 뛰어들면 화살로 쏘면되지~왜 일대일로 싸우냐?
진짜 재밋네요 초등학생 시각을 볼수있어 고맙습니다
사자와 호랑이는 원래부터 맹수죠 이유가 없음 그냥 강함
그냥 인자강임...
유비 관우 장비 실제인물입니까? 소설아니고요
ㅋㅋ 지상 최강 mma 헤비급 챔피언 키 193 체중 120 130되는 은가누도 막노동히다가 전문운동을 30은 다되서 늦게 시작함
다위대한나관중선생의머리박에서나온재미있는뻥이고...아무튼얘기 만드느라 고생이많았습니다
일단 역사에 이름 남긴것만해도 엄청난 실력자들인겨. 당시 장수하려고 출가한 사람만 수십만명일텐데 그중에 선택되고 선택된 놈들이 이름 남긴거지
타고난 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무예를 닦을 수는 환경을 깆추었고 본인들이 혹독하게 노력한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환경을 갖추고 노력한 사람 중에서 '관장지용'이란 사자성어의 주인공이 될 정도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타고난 체력과 가정환경, 본인의 노력, 유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은 인복이 시너지효과를 낸 것 같습니다.
둘은 싸움은 잘했지만 용병술에는 약했음. 그리고 유비가 용병술은 강했지. 유비가 브레인이고 관우,장비는 행동대장으로 보면됨. 관우전적을 보면 패배가 더 많음.
유비가 죽는 원인이 된 이릉전투만 보더라도.. 유비가 참모적인 브레인은 아니지 않나 합니다..
그저 책사들이 있어서 이룬 성과가 아니였을지..
@@KeepThe_Faith 그 이릉 까지 밀고 들어간게 유비의 실력인거죠
이릉까지 가게되기전까지 많은 장수를 잃은상태였는데도요
이릉대전 대패했다고 그런말들 많이 하는데 이릉까지 밀고 들어간거부터가 유비가 전력적으로 엄청난 사람 이었던거죠
사실 제갈량등도 유비가 살아있었을땐 군사통솔이 아닌 행정쪽이고 유비가 전체적으로 다 했다는 의견도 많아요
@@KeepThe_Faith 유비가 문관인 육손을 무시한 경향도 있음.
생각외로 유비가 판우보다 나이가 어린데 형 먹을 수 있던게
유비가 더 셀 수 있지 않나...
청룡언월도는 관우시대에 존재도 안했다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말그대로 창작물입니다~ 걍 그려러니 하고 보세요 관우는 어렸을때부터 무예를 연마 하고 기본 피지컬이 좋은게 맞는거 같고 장비도 피지컬이 좋은데다 좋은가문의 출신이라 문무를 갖추었던거 같네요 . 대추팔고 고기팔고는 너무 천민으로 보여줘서 스토리상 유비와 급을 맞출려고 나온 이야기 인듯요
동네에서 건달 세명이 패거리를 만들었는데 알고보니 셋다 전국구 싸움짱이었다는 기막힌우연..그동네는 중국의 스즈란?
장비는 칭찬말고 무예에 대한 기록이 없음..
원래 무술을 익혔기에 강했을듯
맞다. 시라소니가 평범한 체격에 특별히 운동을 한 적도 없지만, 타고난 감각만으로 잘 싸웠다고 하는데, 사실은 다 구라라고 함.
당시 사람 치고 체격이 꽤 컸으며 ( 키 175에 골격도 좀 컸다고 생각됨 )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무예들을 익혔다고 함.
그리고 누구랑 싸워서 이겼느니 날아 다녔느니 하는 그런 옛날 얘기는 사실 신빙성이 그다지 없음.
고려 시대 때 어떤 장사는 호랑이 때려잡았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됨.
항우가 아니라 브록 레스너, 마이크 타이슨도 호랑이는 절대 못 잡음. 걍 호랑이의 훅 한 방에 다들 즉사임.
임용한박사님 설명들어보면 저당시의 만인지적이란 표현은 그냥 몇없는 S급 장수 또는 뛰어난 맹장이 아닌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하시더군요(사단이나 군단장급)
오히려 냉병기가 힘보다 기술이고 여자도남자를 이길수잇음 냉병기는 격투기와달리 급소를 스치기만해도 죽으니 오히려 힘을너무써서창칼로 찌르면 다음상대를 상대하기가벅참 그래서 냉병기 전성기는40대이고 격투기는20대임. 주먹싸움과 칼들엇을때 무서운게 이차이임 자칫하면 목숨이왓다갓다
노노.절대 아님. 냉병기에서도 체격이 작으면 불리함.
체격이 작으면, 근력에서 불리하므로, 무기 들고 휘두르기가 더 어려움.
그리고 체격이 작으면 그만큼 팔도 짧으므로, 냉병기 휘두르는 데 더 불리함.
냉병기에서 여자가 남자를 이긴다고? 여자들은 칼 창 제대로 들지도 못함, 무거워서.
참고로, 여자들의 평균 상체 근력이 남자들의 그것의 1/6 수준.
둘다 깡패 말이 소금밀매지 요즘으로 치면 마약밀매하는 불법업자 그리고 장비도 솔직히 도살업을 했다곤 하지만 깡패가 주업이었음 그리고 1대1 단기접전은 연의에나 나오는거지 아무리 농민병을 모은 병력이라도 지휘관이 나가서 지들끼리 싸울리가 없음 어쩌다 난전에서 만나 싸우는 것정도지
장비의 세기가 궁굼하면 마장동 돼지 멱따는소리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유비도 무예실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주장도 있음
뭔 소리야. 그때 대추 장수와 고기 장수가 얼마나 많았는데 그럼 그 사람들 다 힘이 세고 칼질을 잘해서 관우 장비만큼 잘 싸웠다는 거잖아.
애초에 그냥 힘만 세었을 것임.
중국 전통 무술이 다 뻥이던데 저 시절 무예는 제대로 였을까?
입만 벌리면 허풍 떠는 중국 역사가 한껏 부풀려놓은 중국 무술과 전쟁 영웅들.
1800년전 그 당시 사람이 직접 기록 해놓은 정사가 버젓이 있는데 1800년대후의 인간이 뻥이네 허풍이네 ㅇㅈㄹ하고있네
그시대 흔한 장수였을듯.
단지 유비가 한나라 왕족 성씨인 유씨라 주인공이 되고 주인공 버프로 주변인까지 덩달아 영웅화 😅😅😅
다 필요없고
키가 컷잖아!
그럼 들고다닌 걸로 무술최강이면 호거아 최강설이다 ㅋㅋ
원래 유목민계열유전자니까 피지컬이 좋은거지뭐 조상이 한족농노출신이면 쌈박질하겠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