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는 초.한.. 이 두나라의 싸움이니까 일찍 결판(30년)이 난거고 .. 그것도 한신 장량의 능력 때문이라기보다 ..항우가 범증말 듣지 않고 유방을 우숩게보고 방심하다 진거고.. 삼국지는 위.촉.오 세 나라가 서로 견제 하면서 싸워야되니 100년이나 간거고 .. 제 아무리 날고기는 한신 장량이 삼국지 시대때 유비밑어서 활약했어도 .. 절대 싑게 통일 못함... 뭔 또 지진이야 지진은 ... 또 한가지 .. 현재 미. 중간의 패권 전쟁도 예전 삼국지 (미국 = 위 .. 중국 = 초 .. 러시아 = 오) 시대와 비슷해서 서로 서로 견제 하기 때문에 절대 싑게 결판 안남..
이릉대전때 유비 휘하에 유능한 장수들이 불타죽고 병사들, 군량, 보급물자 등 다 타거나 두고 와서 이미 그때 결과는 정해진게 아닐까? 제갈량이 물자나 사람을 끌어와서 겨우 북벌 추진할 정도로만 된건데, 승패는 이미 이릉대전임. 한신과 제갈량의 차이라고 보기 힘듦.. 공부 좀 더 해여
그치 이게 정답 임. 지형차이도 있겠지만, 거기다가 이미 한신의 예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방비를 충분히 위나라가 했을 테고, 한신 때는 다른 사람들의 병법이해도를 비교했을 때 한신 병법이 너무 독자적으로 뛰어났고 제갈량 때는 이미 병법이 상향평준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잘 안 먹힌 거죠. 즉, 체급차이 + 이미 한신의 예가 있었고 + 병법의 상한 평준화라고생각합니다
강추네요. 저도 한신이 한걸 제갈량은 왜 못했을까 궁금 했는데 대지진으로 지형이 바꼈다니.... 물론 유비의 촉한의 군사는 방통과 법정이고 제갈량은 소하같은 내치 전문 재상이라 한계가 있었다는건 알았는데 이런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네요. 법정이 더 오래 살았으면 관우가 삽질도 안했을거고 그랬으면 이릉전투도 없을거고 유방보다 상황이 좋게 위나라와 싸워 볼만 했을텐데 아쉽긴 하네요.....관우는 오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위나라와는 지키기만 하라고 했는데 오나라 들이 받고 바로 위나라와 전쟁 했으니....
뭐 지형이 변했다, 군재가 뛰어나기보단 내치가 뛰어난 재상이다, 이런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체급이 다릅니다.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초나라를 재건했지만 스스로 서초패왕이라 칭하며 서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나머지 영토는 제후들에게 나눠주어 나라가 분열된 상태였던 반면, 위나라는 중원과 하북을 포함 방대한 영토를 통일한 국가였죠. 항우의 목적은 조국인 초나라의 재건이였고, 위나라는 전국 통일을 목표로 한 차이점이랄까요. 애초에 체급 자체가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한신의 북벌은 대상이 중원을 장악한 단일 세력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즉, 체급 차이가 한신과는 비교하기 힘들다는거죠 또 진시황도 파촉에서 뚫고 나와 중원 통일이 가능했던이유는 제갈량이 그토록 점령하고자 했던 양주 옹주지방을 애초부터 점령하고있었기에 뚫고 나가기 수월했음. 촉이 알다시피 천혜의 요새로 들어가기 어려운 만큼 나가기도 힘든곳이었음
말씀처럼 촉은 나가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유방은 촉으로 안 가고 한중 일대에서 무조건 버텼음. 그러니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했죠. 그러니 4개월만에 한방러쉬로 빠르게 진군이 가능했던 거. 그리고 진시황처럼 양주 옹주 포함해 관중 일대 민심도 유방 편이었습니다. 뿌려놓았던 씨앗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기도 했죠.
흥미로운 가설 잘 봤습니다. 항우는 관중을 정복하고도 함양에 머물지 않고 근거지인 팽성으로 돌아가면서 관중 지방을 3분할하여 따로 분봉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봉한 이들은 진나라를 배신한 사람들이어서 관중 지방 백성들의 민심 장악에 실패하게 됩니다. 관중 지방의 진나라 백성들은 삼진(3분할된 관중지방)의 왕들을 증오하고 해방군으로 온 유방을 환영했습니다. 결국에 관중 지방은 유방의 공격에 유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각개격파를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항우는 통일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의 정치를 7국 체제로 되돌리면서도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진나라, 제나라, 조나라는 여러 분국으로 쪼개놔서 초나라의 우위를 확실히 다져놓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만, 근본적으로 그의 정치관은 퇴행적이었고 인사에도 실패해서 민심을 얻을 수 없는 왕들을 분봉하여 그 나라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유방과 한신은 정치적으로 이런 분열상을 적절히 이용하고 각개격파하여 항우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반면에 유비 시절엔 위나라의 관중 점령 세력이 분열되어 있지 않았죠.
이래서 군사적 재능이 너무 뛰어 나면 외교를 전혀 안하고 그냥 힘으로 눌러 버리려고 하다가 결국 폭망 하게되는 역설이 있죠... 항우 나폴레옹 한니발 등....귀찮게 외교 하느니 다 군사력으로 박살내려고 하니..늘 자신있고.. 근데 한두번의 패배로 몰락해 버리죠..그동안 불패의 신화가 한방에
한번 통한 전략은 두번은 안당해준다는게 크고. 유방하고 한신은 촉으로 들어간게 아니고 한중에서 찍먹하고 북벌했기때문에 위, 촉나라와 상황이 많이 다름. 결정적으로 체제가 완성되고 중앙집권이 된 위나라와 다르게 초나라는 군벌세력으로 찢겨있었고 항우가 지 고향으로 놀러가서 대비가 안돼있었다는거. 항우가 함양에 눌러붙어서 방어했으면 한신이 뭔짓을 해도 안통했음.
이건 너무 뇌피셜이지. 유방이 묵돌,항우같은 동아시아 역사상 탑급 전쟁기계 상대로만 쳐발렸지 그외엔 승률 존나좋은 명장임. 그런 유방도 찌발린게 항우인데 촉나라가 동아시아 최고 전쟁기계였던 항우 상대로 통일했다?ㅋㅋㅋㅋㅋ 촉나라가 유일하게 앞서는 지형빨조차 항우앞에선 안통하고 뒤지겠지
@@mickymouse80 ㅁ뭐 얼마나 더 관우가 잘해줘애 됌?? ㅋㅋ 우측으로는 오나라의 여몽이 대치하고 있고 북으론 조인이 군을 이끌고 남하한걸 먼저 깨부수고 번성에서 겨우 숨만 붙히게 하면서 우금과방덕의 정예7군도 몰살시키고 그러면서 양번성을 포위하는 와중에 새롭게 수혈받은 서황하고 싸워도 양양성의 포위는 유지한채 전선을 고착화 시켰는데 형주 지역중에서 볼품없고 북형주의 거의 반정도밖에안되는 경제력으로 조위와 손오의 전면전을 이끌어 냈는데
제갈량 외에 촉의 유능한 인물은 법정 정도이고 그나마 오래 유비를 보필하지도 못했죠 책사로 장량이 있고, 행정에 능한 소사와 진평, 한신이 있었던 한에 비하면 촉은 제갈량이 고군분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또한 위에는 뛰어난 지략을 지닌 사마의가 있었죠. 단지 연의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건 아니죠. 그는 단순한 전술가가 아니라 임금에겐 충신이고 백성에겐 어버이와 같고 신하들에겐 표본과 같은 사람이며, 행정가이자 전술가이고 농업ㆍ공업ㆍ전술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었죠. 또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진의 멸망과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통일한 시기가 삼국의 대립시기보다 매우 짧다는 거에요. 즉 항우와 유방은 진멸망후 혼란기를 누가 정리하느냐는 관점에서 봐야하지만 위오촉은 어느 정도 삼국이 정립되어 혼란이 수습된 이후 제갈량의 북벌이 있었다는거죠.
@@한화솔루션-p6p실패원인이 능력 외적인 지형상 한계로인한 보급문제이라는 영상인데 너무 까내릴것 없다고봄. 제갈량이 군사적인 ‘결과’는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군사사적으로는 분명 역사적인 한 획을 그었고, 한신이 4백년이후의 학소랑 붙어본것도 아니며, 학소가 더 오래살았으면 어땠을지도 모를일인데 제갈량이나 학소나 한신에 비교하면서 까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음. 그리고 학소랑 싸울때 제갈량이 개박살 난건 아님 애시당초 퇴각사유도 군량문제였고.
@@한화솔루션-p6p애초에 2차북벌은 정식 북벌이라기 보다는 석정 전투로 위의 군대가 시선이 분산되어있으니 되면좋고 안되면 말지라는 심정으로 빠르게 가용가능한 전력을 투사한거 뿐임 실제로 군량도 20일치 밖에 안챙겼으며 진창공격 이후 3차 북벌이 시작됨 여기세 큰 전력을 투사했다면 곧이어 3차 북벌이 가능했을까? 위가 진창에 성을 쌓아놓고 대비를 하고 학소가 굳건히 버티고 있으니 촉입장에서는 아쉽지만 후퇴한거지 박살난건 아님 그시대에 유명한 명장들도 공성전 실패한 사례많음 또한 진창성 공격으로 위군은 수비병력이 분산되어 3차때 무도, 음평을 점령할 수 있었음 아예 수확이 없던건 아님
제갈량이 한신보다 불리한 조건이 두개더 있습니다 첫번째는 한신은 처음이라 적국에서 루트를 파악할수 없었고 제갈량때는 적국이 루트를 파악할수있었으며 두번째는 적국은 이미 나라가 강하고 왕은 총명하여 지원을 잘해줬고 장수를(사마의) 쓸줄알았고 촉왕은 무능하여 물량지원 잘 받을수 없었습니다 유비가 오래살았더라면 성공하지 않았을가요
일단 한신이 허를 찌르는 잔도를 이용했기때문에 그 뒤에 그 고사가 너무 유명해져서 대군이 이용할 수 있는 길은 다 파악이 돼 있었음...그럼에도 제갈량의 1차 북벌은 상당히 허를 찔러서 한번에 두군을 얻었고 강유도 얻을수 있었음...그 뒤에는 나아갈 루트에는 다 대비가 돼 있으니 병력의 희생을 최소화 시키는 제갈량은 한계가 있었고 그게 제갈량의 장점이라고 볼수있었음...
@@어이쿠야-l9x 마속의 개트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게 중국 현지의 입장임. 가정 지역은 전란이 없이 수십년간 평온하게 지내고 있어서 위나라에 굉장히 호의적이고 충성심이 높은 지역이었다. 거기에 마속이 이끄는 촉군이 진격해 온거야. 그럼 가정 주민들 입장에서 촉군의 존재는 평온하던 자신들의 거주지를 순식간에 전쟁터로 만든 침략자 밖에 안됨. 가정의 주민들은 촉군에게 저항했고 그 상황에서 저항하는 주민들과 함께 가정성으로 들어간다? 자살행위밖에 안되는 멍청한 짓이지. 그렇다고 길을 막을 여력도 안되었음. 연의에서는 ‘다섯갈래의 소로’라고 나오지만 그렇게 소로이면 장합의 5만 군대가 굳이 먼길을 빙 돌아서 가정쪽으로 오지도 않았을거임. 가정 현지의 지도를 보면 북산과 남산 사이에는 육반산맥이 잠시 끊어져 엄청나게 넓은 대로갸 있고 그렇기에 대군이 이동하기 수월한 평지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남. 마속이 장합을 봉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가정성에 들어가서 농성하는 방법인데 성난 주민들과 함께 가정성에 들어갈 수도 없고 정 들어가려면 가정 주민을 모조리 학살해야 가능했음. 당시, 가정 주민들은 촉군에 대하여 격렬한 저항뿐 아니라 촉군의 정보를 위군에게 죄다 전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성에 못 들어가, 그렇다고 그 넓은 대로를 막을수 있는 시간이 없어.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보병 중심이던 촉군이 기병 중심이던 위군을 상대로 하려면 고지대를 점거하고 위에서 아래로 싸워야 한다는 것. 북산은 완만하고 낮아서 기병이 그대로 치고 올라올 수 있어. 남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북산보다는 높고 정상에 구릉지가 존재해 군대가 진을 치기에 좋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로는 북산에만 있다. 한 국가의 최고 관직인 승상, 그 승상의 직속참모인 참군이나 되는 위치에 있는 마속이 그걸 모를리가 없겠지. 바보가 그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남산으로 물길을 파서 굽이쳐 흐르게 만들었으나 남산을 포위한 위군은 물길을 원래대로 바꿔버림. 그렇게 물이 끊긴 촉군은 머… 싸울수가 없지. 물을 못 먹으면 하루도 견딜수 없으니. 과연 이게 마속만의 잘못일까? 지역의 관리들이 항복했다고 해서 주민들까지 항복한 것일까? 어차피 상규의 곽회를 격파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서쪽전역은 촉이 패할수밖에 없는 전역이었음. 마속이 가정에서 버티지 못하였더라도 제갈량의 본대가 상규만 점령에 성공했으면 서쪽전역에서 이기기는 힘들었더라도 농서를 먹은 상태에서 대치상태는 계속 이어나갈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 신격화에 미쳐서 제갈량의 명백한 실책인 상규패배는 슬쩍 넘어가고 그 책임을 마속에게만 떠넘기는게 연의임.
@@멸공의횃불-v2z 이거 맞음 제대로 알고 있네 마속만 오지게 까내리지만 사실 촉군은 제대로 된 공성 병기도 없고 1차 북벌때 옹주도 마초,마대 친근 세력들이라 쌈 없이 점거했던거지 곽회 혼자 지키는 상규마저도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는건 촉군의 군사력이 딱 거기까지라는 얘기임 마속은 제갈량이 상규를 점거한다는 가정하에 장합이 단기전을 할걸 예상하고 산 위에 진을 친거지만 제갈량이 상규를 못 먹었기에 장합이 장기전을 할수 있었고 그 덕에 북벌이 실패한거죠
저건 사소한 이유라고 밖에 생각이 안듬. 그 당시 최고급 인재들은 전부 위나라 사람이었고 결국에는 촉의 주요 장수들 마저 대부분이 위나라 항장 출신으로 체워지는 상황이었음. 국력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고 대규모 전쟁의 여파조차 점점 위나라에서 사라지면서 그 차이가 더더욱 커질 뿐이었음. 한신과 제갈량의 상황을 비교하면 훨씬 더 제갈량 쪽이 불리했던 건 사실임.
개소리도 적당히해야지 ㅋㅋ 팽성대전으로 그냥 개박살나서 촉나라 위나라 수준도 아님 그냥 완전히 개박살난 상태에서 3만명으로 그것도 오합지졸 훈련시켜서 위 대 조 연 제 초 여섯나라 개박살내고 왕 두명 사로잡고 한명을 죽이고 제갈량 태어나기도 수백년전에 세상에 없는 전술을 완벽하게 꺼내와서 전투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고 중국 역사상 최강의 장수를 상대로 완벽하게 박살내는게 한신이였는데 뭔 제갈량이 더 불리하다고 개소리를 하세요? 아니 무슨 학소 조진따위도 못이기는 애가 뭔 불리하니 마니 떠들고 앉아있어
오장원은 나가는 길이 다섯장 밖에 되지 않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군사대치를 하면 서로 공격을 할 수 없죠. 그래서 사마의 스스로 그런 얘기를 한겁니다. 무도로 개돌 왔으면 위험했을뻔 했다고.. 제갈량은 개돌 때리는 대신 오장원가서 농사 짓는걸 택했죠. 사마의는 그냥 오장원 좁은 길목만 막아놓고 가만 있으면 이기게 된거죠. 그래서 오장원 얘기 듣자마자 이겼다고 좋아한 것이죠 제갈량은 쫄보라서 진겁니다
국력 상 촉이 위를 쳐서 이긴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이었음...옛날엔 관중,화북지역이 중국의 요충지이고 인구가 많아서 당연 인제도 풍부하였기에 내분이 있지 않는 한 정복하기 힘들었죠... 삼국지연의와 달리 삼국 최대 전쟁은 관도대전이고 거기서 이긴 조조와 그 이후 위와 결국 통일한 사마염의 진이 승기를 잡고 있게 된것...삼국지연의의 인기가 좋아서 그렇지 제갈량은 군사적으론 최고라 평하진 않는 듯함...
오 너무 재밌게 봤네요. 수로라거나 보급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못 썼는데 확실히 지리를 알아야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 있군요. 제갈량이라는 시대의 영웅 조차도 천지의 형세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참 사람이 뛰어나지만은 또 하늘아래 한 인간이란 느낌도 받네요. 위성 지도까지 알차게 보여주셔서 너무 이해도 잘되고 흥미롭게 봤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눌렀습니다~!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지리적 잇점은 전략을 크게 변화시킨다고 볼 수 있죠. 근데 더 큰 요인은 사람 아닐까요? 제갈량이 상대했던 사마의는 정사에 의하면 실수가 없고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명장인 반면에, 항우의 명령으로 관중을 지키던 장한과 사마흔 등은 진나라 항장들로 충성심도 없고, 기세도 꺽인 인물들이라 한신이 수월하게 상대한 점도 크다고 봅니다.
유방이 남정 일대에 머무르며 했던 일 중 하나가 판순 만이를 토벌해 병력으로 이용한 거. 제갈량도 저, 강족을 포섭하려 했으나 절반의 성공뿐. 결국 국경 지대가 단순히 위나라와만 맞닿는 게 아니라 이민족과도 맞닿는 거라 점령 후 지키는 게 필요했는데 촉나라 당시 국력으론 이게 잘 안 됐음. 위연 말대로 허창 기습하고 설령 함락시켰다 치자, 조예가 이민족들한테 sos치면 촉나라 버티나? 정예 병력 죄다 북쪽으로 올라갔는데 나머지 지역은 누가 지킴. 위 촉 오 삼국만 국경을 맞대는 게 아니라 여러 이민족과도 공존하던 시기에 단순히 위나라만 공격하는 건 아니지. 제갈량이 괜히 남만을 공격한 것도 아닌데.
한신이 대장군이었을때는 장량,소하,진평같은 책사진도 탄탄했고 하후영이나 번쾌,팽월 등 장수진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제갈량은 유비가 이릉에서 인재들 죄다 날려먹은뒤고, 이렇다할 남은 인재라고는 위연,왕평 같은 무장들이고 그 외에는 전술,전략 계책을 같이 짜내는 책사같은 인물도 없었기 때문에 제갈량이 행정관이라서 한신보다 전술은 약하다고 평가하기엔 너무 인프라가 기울어져 있어서 비교 평가가 안된다고 생각함.
설사 그 수로가 남아 있다고 한들....소군이 대군 조조군을 이길 수 있을까요? 설마 이겨 장안을 차지 한다고 해도 또 군량미 확보를 해야 되는데....정 많은 촉나라가 백성과 군사들 독촉할지.....승리한다고 해도 촉나라도 군사 손실이 있을테고, 그 틈을 또 조조 대군이 공격하면 다시 밀리거라 생각됩니다....육지 싸움인데.....이제 적벽대전 같은 바람 도움 받을 수도 없구요.,......삼국지 마니아인데....그 대지진 땜시 수로가 막혀 제갈량이 다른 대책을 썼다는데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한신의 천하통일때는 사마의가 없었고 백그라운드가 되어줄 유방과 유선의 능력치 차이도 너무 많이 났음 결정적으로 제갈량의 상대 위나라는 국력이 결집돼 있어 총동원이 가능했고 한신의 상대들은 아직 완전한 통합전이라 항우의 장악력이 위나라처럼 일사분란하지가 못해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며 체급을 키울 기회가 있었던게 큰 차이
법정이나 방통 살았으면 모를까 제갈량은 유비가 다 터트리고 남은걸로 혼자 머리 짜내면서 하려니 죽어나는거죠. 실제로 과로사했고.. 유방은 소하 장량 한신이 각자 자리에서 잘 했고 항우도 제후관리 드럽게 못했지만 촉은 상대가 조조였죠.. 요새 제갈량이 폄훼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제갈량이 놀라운 건 군재는 좀 떨어졌을지라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전쟁을 했다는 겁니다. 한끗 실수해서 나락간 강유의 사례까지 더한다면 제갈량은 훨씬 고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형이 변한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몰랐었는데 모든 면에서 불가했었다고 생각함. 유방과 항우의 경우 항우가 생매장을 즐겨(?)한 점과, 아랫것들을 너무 매몰차게 대해서 민심을 아예 잃었었던점. 유방이 대의명분을 거저 가져가는 계기가 되었고 한신이 수많은 제후들의 항복을 쉽게 받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 허나 촉나라와 위나라에서 조조가 기틀을 닦은 위나라의 통치에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하고 살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었다고 봄 조조가 서주대학살 같은 짓을 밥먹듯이 했었다면 바로 항우와 똑같은 꼴을 당했을테지만 그러지 않았지. 물론 서주 대학살 때문에 조조의 통치를 거부하는 많은 피난민이 있었고, 소설에서는 이 점을 부각시켜서 완전한 악인으로 묘사했었지만 마속이 등산뻘짓을 한 이유도 당시 위나라 사람들의 협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음. 또 역사적으로 더 약한 세력이 더 강한 세력을 기책없이 이긴 경우는 없음. 관도대전에서 쌀없고 병력 딸린다고 조조가 안전빵을 선택했지면 위나라는 없었겠지.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12척 밖에 없다고 조심조심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싸웠으면 명랑대첩은 없었겠지. 제갈량은 내정관이지 전략가는 아니었음 장량과 소하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한신의 역할을 할 능력은 없었지. 그렇다면 그 한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을 뽑아 위임을 시켰어야 했고, 이건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장군들에게 맡겼어야 하는 임무임. 짧은 시간에 전장을 판단하고, 군사를 통솔하는 능력 전쟁에선 위연같은 장군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시켜야 하는데 왠 제갈량...? 자오곡은 안된다 그냥 일축. 이유는 병력 나눴다가 몰살 당하면 답없다. 조조는 가뜩이나 군량없고, 병력도 딸리고, 사기도 저하되서 필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오소 습격에 몰빵해서 그게 성공했고, 결국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음. 조조가 아니라 제갈량 이라면? 안그래도 군량도~ 병력도~ 없는데 나눴다가 함정이면? ㅈ돼~ 안돼~ 하고 안갔겠지. 그쪽은 위험하니까. 원소군이 즐비하게 있는 땅이니까. 등애의 상관으로 제갈량이 있었으면 등애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냥 바보같이 검문관 같은 촉나라 관문만 죽어라 때리다가 시간 지나서 과로사로 디졌겠지. 되든 안되든 자오곡 계책은 한번쯤은 들어줘도 됐었음. 결과론이지만 정공법으로 5번 쳐들어가서 얻은거 하나 없이 병력 소모시키느니 자오곡에 한번 보내주는게 더 가치가 있지. 성공하면 북벌 성공이고, 실패하면 북벌 2번 덜 가면 되는거 현장에서 현장직 말씹는 사무직이 진두지휘하면 일이 더 안돌아가는 법임.
@@mickymouse80 병력 다 잃으면 북벌 2번 '덜'가면 되는거. '더'가면 된다는게 아니라. 군량도 없어서 쓸데없이 퇴각한게 3번이니 2번 덜 가면 된다구요 장합이라...ㅎㅎ 생각해보세요. 장합은 위연같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입니다. '현장직' 장합은 상책이 아니다 라며 거절 했지만.. '사무직' 사마의가 가라고 ㅈㄹ해서 갔다가 뒤졌어요. 촉나라의 '사무직'이 제갈량이라면 촉나라의 '현장직'은 위연입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의 감을 무시한것도 실패의 원인 중 하나이다. 라는게 요지인데... 그 장수의 감을 무시한 채 무리한 명령내려 뒤지게 만든 사마의와 장합의 일화를 꺼내다니요
북벌을 하면 촉의 전 국력을 다하는 총력전이었음. 제갈량이 있었기 때문에 탁월한 행정력으로 소모를 회복하고 북벌을 유지 할 수 있었음. 제갈량 입장에서는 200년 한실의 운명이 오로지 자신에게 맡겨졌다는 엄청난 책임감과 압박감에 다죽어도 한번만 이기자 같은 소릴 할 수가 없었을것임. 임원급 까지는 공격적인 투자, 도박성 판단을 주창할 수 있겠으나 사장 회장 급은 그런 판단을 할 수가 없음. 더군다다 그것이 200년 역사의 기업이고 정통성과 명분을 가진 기업이라면 어 그래 몇만명 죽어도되니 가져다 써라 라고 할 수 있었을까 싶음. 물론 제갈량 자체가 군사지휘관으로 능력이 부족한게 문제였겠지만요.
형주를 친다면 위나라에서 얼씨구나하고 촉의 빈집을 치러 올테고, 그나마 유대관계가 있던 오나라와 화친을 맺고 북벌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촉나라는 한의 부흥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므로 조비의 황위 찬탈을 응징한다는 북벌의 명분이 있었고, 이릉대전에서 이미 경험많은 장수들을 다 잃은 상태에서 여전히 육손이 지키고있는 형주를 침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같습니다.
똑똑한 척만 잘하지 실책을 무지하게 낸 조비가 아니라 냉철한 성격인 조예가 상대였다는게 제갈량의 불운... 무능한 하후무에게 관중 수비를 맡긴 장본인도 본래는 조비였으니... 그 반면 한신은 항우가 관중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않고 향수병 걸려 그냥 대책없이 회군한게 굉장한 행운...
한신과 제갈량의 북벌에서 가장 결정적 차이는 상대가 항우의 초나라와 조조의 위나라란 차이죠. 날고 기는 에이스들이 지키고 있던 관중 땅을, 조예 예하 조진, 장합, 사마의 등과 상대해야 했습니다. 누구 한신이 관중을 공략할 때 상대가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사람 있나요? 지리적인 루트도 중요하지만 지리적 잇점을 활용하는 장수가 더 중요한 거죠. 게다가 항우는 초나라 땅, 그러니까 동쪽으로 한참 치우친 서주지역이에 머물렀던 반면, 위나라 수도는 관중에 가까운 낙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한나라는 고조 유방부터 장량 한신 번쾌 등 천하쟁패를 위한 최상의 엔트리를 갖춘 반면 초나라는 서초패왕 항우의 원맨팀이었으며 봉왕 이후 항우의 지지기반은 분열돼 있었고, 역사에 내세울 만한 이름있는 장수는 죄다 배반, 투항했습니다. 반면 제갈량은 이미 조조, 조비 2대에 걸쳐 다져진 올스타 조위를 상대로 낮은 동원력을 가지고 승부를 봐야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왔던 유비, 관우, 장비는 이미 없고 심지어 조운도 3차 북벌을 전후해 사망합니다. 후방을 흔들어줘야 할 손권 역시 삽질을 해 대서 난도가 너무 달랐다는 점이죠.
형이 쉽게 스타크래프트 헌터맵 기준으로 설명해줄께. 쉽게 말해서 촉나라는 본진+앞마당 멀티 하나 먹은 상황, 오나라나는 본진+앞마당+ 멀티2개고 위나라는 나머지 싹다. 섬멀티며, 중앙까지 싹다 먹은 상황인거지, 스타 아무리 존나 잘해도 본진+ 앞마당 멀티 하나 덜렁 먹고, 중앙 뚫고 나오기 힘들지. 잠깐잠깐 전략적으로 몇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할순 있었겠지만, 이미 위나라가 관도대전에서 하북 정벌했을때부터 통일은 끝난 상황이었어.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적벽대전)에서 병력을 크게 잃어 그 기한이 연기된것 뿐이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우가 조금만 더 신중했고 손제리가 통수만 안쳤었더라도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서주, 병주 초토화시켜놔서 생산력은 없다시피한 완충지대뿐이고 중원은 황건난때 수많은 전란으로 초토화 돼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대군이 있다하더라도 옹주 방면, 양번, 서주 방면으로 세방향 진군했으면 막기 어려워 보입니다. 솔직히 215년 합비전투때 조조가 한중 점령하느라 장료에게 지원이 늦어지는 와중에 무쌍찍은건데요.
ㅇㅇ. 사실 적벽보다 조조가 중원 패권을 차지한 관도전이 더 중요한 전투로 치죠. 적벽은 단지 조조 본인대에 천통을 못보게 막은것뿐... 촉 입장에선 오나라랑 연합해서 위를 정벌하면 본인들이 명분을 쥐고 있으니 알아서 자기들 밑으로 길거라 생각했겠지만, 손가도 나름대로 대권을 꿈꿨던지라 둘의 분열은 시간문제였던것도 대세를 바꾸지 못했던 이유에 한 몫한다고 봅니다.
사마휘 신삼국에서 대사가 생각나네요 주인 잘 만났는데 때가 좋지 못하다고 ㅠㅠ 위가 넘 강했고 곽회 장합 등애 등 최고의 인제가 수비만 하는데 어찌 북벌에 성공합니까? ㅠㅠ 그래도 제갈량은 죽을때 까지 쉬지 않고 노력하고 성장해 가니 대단한 인물이 맞아요. 6번의 북벌에서 크게 지지 않는 것에 대단한 인물이죠. 강유는 대담한 만큼 실패도 하고 많은 병력도 잃고 ㅠㅠ 한신도 대단하지만 때를 잘만나 성공한거죠. 그러나 토사구팽 당해 죽고 말아요 . ㅠㅠ 제갈량은 유비에게 나라를 황제가 되달라는 유언을 들을 만큼 인성도 좋아 삼국지연의 주인공이 되고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죠
제갈량은 강유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같이 탁고를 받았던 이엄마저도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촉에서의 입지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선에 나가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본국에서 큰 압력을 가하지도 않았고 믿어줬기에 장기전을 할 환경이 됬던겁니다. 강유는 위나라 장수가 항복한걸 제갈량이 키운 장수로, 대위 전선을 맡게 된것도 전임자가 살해당해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였습니다. 출신과 상황의 문제때문에 전임자과 달리 본국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촉의 수 차례 북벌 중 최대 성과를 내기도 했고 전공만 따지면 촉의 어떠한 인물보다도 높습니다. 다만 중간 한번의 큰 패배로 강유에 대한 신뢰를 깔끔히 접은 파촉의 정부는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령관인 강유랑 정치적으로 대립하다 나라를 말아먹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촉에게 한신은 제갈량 법정 방통이 아니라 강유라고 봅니다. 다만 강유의 무대가 전성기가 지난지 오래된 촉이었다는게 아쉽죠
조건이나 환경을 따지기 전에 일단 한신은 중국사 top급 군재를 가진 인물이고 제갈량 따위랑 비교할게 안됨. 제갈량은 한신이랑 비교를 하기엔 군사적 재능을 보여준게 없는 사람임. 위나라 상대로 단 한번도 대규모 회전을 통해 승리를 가져간적이 없는 사람임. 물론, 자잘하게 소규모 국지전에서 몇 번 이긴적은 있어도 대세를 역전할만한 급의 무엇가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뜻임. 한신이 촉나라 승상으로 있었으면 북벌5차례 중에 그래도 2번은 크게 성과낼듯
흥미로운 분석이었습니다. 고우영 초한지로 봤을때는 한신이 진창부근 사잇길을 통해 어떻게 그런 기동전을 펼칠수 있을지 의심이 갔습니다. 지휘관이 되기전 한신이 파촉땅으로 들어갔을때의 루트로 이미 활용된 곳인데 한신이 단신으로 들어갔던 루트인데도 너무나 험준한 길이라 몇 천,몇 만 단위 병사를 이끌고 가기엔 너무 빡센 길이라는 느낌을 받았죠.
제갈량이 과거 한신의 사례를 보고 북진을 준비했다면 조위는 과거 한신의 사례를 보고 북진을 막을 준비를 했겠죠. 과거와는 시스템도 다르고 병략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겠죠. 아직 국내정세가 불안하던 초와 달리 조위는 굉장히 탄탄한 내정과 능력있는 인물들이 대거 임용되어있었기 때문에 더욱 튼튼한 방패였을거구요
제갈량이 북벌할때 조조는 죽은사람이고요.. 조비도 죽고 조예가 집권하고 북벌한겁니다. 그냥 한신이 더 뛰어난 군략가죠. 상황을 따질것도 없는게 제갈량은 본인이 훈련시킨 정예병10만으로 북벌 실패한버고 한신은 정예병 유방한테 다 뺏기고 대신받은 오합지졸3만데리고 북벌성공한거ㅇㅇ
항우는 알다시피 가는곳마다 승리했지만 결국 큰 영토를 다스리는데 실패한 사람이죠. 북벌당시 항우가 싸우러 온건 아니고 또 사방에 적이었습니다. 그에반해 조조는 이미 중원을 차지하고 요충지까지 다 차지했기에 적이 없었죠. 저 물길이 바뀐것을 빼더라도 삼국지 조금만 해봐도 알게 되겠죠 춘추전국시대의 북벌과 중원의 패자를 상대로한 북벌은 다르다는걸.
12:44 '해류' -> '강류(강의 흐름)' 으로 수정하겠습니다. 😂
초한지는 초.한.. 이 두나라의 싸움이니까 일찍 결판(30년)이 난거고 .. 그것도 한신 장량의 능력 때문이라기보다 ..항우가 범증말 듣지 않고 유방을 우숩게보고 방심하다 진거고..
삼국지는 위.촉.오 세 나라가 서로 견제 하면서 싸워야되니 100년이나 간거고 ..
제 아무리 날고기는 한신 장량이 삼국지 시대때 유비밑어서 활약했어도 .. 절대 싑게 통일 못함... 뭔 또 지진이야 지진은 ...
또 한가지 .. 현재 미. 중간의 패권 전쟁도 예전 삼국지 (미국 = 위 .. 중국 = 초 .. 러시아 = 오) 시대와 비슷해서 서로 서로 견제 하기 때문에 절대 싑게 결판 안남..
@@死탄의인형 넌 그냥 연의나 봐라
@@死탄의인형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한, 초, 제, 연, 한(다른), 위 이렇게 있고 한신이 다 차례로 격파함
@@안성진-c9d 그럼 초한지를 왜 초한지라 그러냐??
한.초.제.연.한지라 그래야지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이릉대전때 유비 휘하에 유능한 장수들이 불타죽고 병사들, 군량, 보급물자 등 다 타거나 두고 와서 이미 그때 결과는 정해진게 아닐까?
제갈량이 물자나 사람을 끌어와서 겨우 북벌 추진할 정도로만 된건데,
승패는 이미 이릉대전임.
한신과 제갈량의 차이라고 보기 힘듦..
공부 좀 더 해여
삼국지 관한 내용 정사 연의 가릴거 없이 에지간히 많이 봤는데
이건 진짜 첨듣는 내용임니다.... 참고자료보니 중국에서도 최근에 연구된 내용인 것 같은데
대단합니다 진짜...
청화수님 영상 보면 더 디테일하게 알 수 있습니다
와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해서 이야기 해주니 넘넘 감사해요. 항상 궁금했던게 초한지는 너무 쉽게 북벌을 한거 같고, 삼국지 때에는 몇번이나 시도한게 이상하게 다 안돼더라구요. 제갈량이 못나서 그런가 했는데, 지형적인 이유로 인한 보급 문제가 있었네요.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분석이 그냥 천상계급이시네 훌륭한 설명 잘 들었습니다 감사해요오
수로가 연결되어 있어 보급이 편리하고 수로를 통한 기동전으로 허를 찌를 수 있는 한신과
이용할 만한 수로가 없어 보급이 지옥수준이라 차근차근 해야만 했던 제갈량ㅠ
아가리 좀 해라 뭐가 지옥수준이냐 촉나라도 잘 살았는데
가장 큰 차이는 한신과 제갈량의 군사적 기량 차이임.
@@user-wlewlkmmw 전혀..
@@user-wlewlkmmw 유방이 뒤애서 뭘하든 커버쳐주고 앞에 상대가 자기과신 쩌는 항우 상대하는 한신과 뒤에서 커버 쳐주기는커녕 똥싸려하는 유선 돌봐주면서 앞에 호각수들을 상대해야하는 제갈량을 비교하는건 좀 그렇죠...만약 유비가 이릉에서 터뜨리지만 않았어도 제갈량이 그리 과로로 폭사하진 않았을걸요(이릉에서 날려먹은 인재풀과 자원 생각하면...물론 결국 if고 그런식이면 형주를 뺏기지 않았던게 가장 베스트겠지만요)
@@user-wlewlkmmw 이게 맞지 제갈량이 군사적으로 엄청 뛰어난걸 보여줬나?
제갈량의 북벌 실패에 그런 연유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동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체급차이지. 자꾸 유방대 항우 1대1 대결로 보는데
그당시는 진나라가 통일한 이전으로 돌아갔던 시대임. 패자는 서초패왕 항우일지라도 각 지역별로 여러 왕들이 분열되어 있던것이라 각개격파 된것이고 제갈량이 상대했던 나라는 중앙정권이 제대로 돌아가던 조위라서 한신이 상대했던 국가들하고 제갈량이 상대했던 조위하고 체급이 다름
그치 이게 정답 임.
지형차이도 있겠지만,
거기다가 이미 한신의 예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방비를 충분히 위나라가 했을 테고,
한신 때는 다른 사람들의 병법이해도를 비교했을 때 한신 병법이 너무 독자적으로 뛰어났고
제갈량 때는 이미 병법이 상향평준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잘 안 먹힌 거죠.
즉, 체급차이 + 이미 한신의 예가 있었고 + 병법의 상한 평준화라고생각합니다
삼국지는 삼국으로 정확하게 나뉘어 대치중이었다면
초한대전은 사실상 2차전국시대였음
항우가 직접지배하지 않는 지역들이 변수였는데 그걸 한신이 각개격파로 꿀꺽해버림
이말이 정답 항우는 진시황 통일이전 전국시대로 돌려 놓을라고 하는 거였죠
맞아요 맞아 ... 그것도 한신 장량의 능력이라기보다 ... 항우가 유방을 너무 우숩게봐서 방심한게 가장 큰 패인이고요 ..
@Liverpool champion 소하가 보급보급 하는데 사실 한신이 보급1위였음
성을 점령해서 그 물자를 소하가 보급 ㅋㅋ
@@死탄의인형 방심도 방심이지만 군주로서의 덕목이 좀 심하게 함량 미달이라.. 적어도 리처드 1세같은 호방함과 정치감각만 있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말아먹지는 않았을거임
@@aviencloud4239 그러니까 내 얘기는 .. 범증이 유방이랑 쟝량.소하. 한신이 항우랑 싸웠어도 항우는 패했을거에요 ...
이현로와 한명회도 마찬가지고요 ... 이현로가 수양대군밑에 한명회가 안평대군 밑에 있었어도 수양대군은 왕이 됬을거에요 .. ,ㅋㅋㅋ ㅋㅋㅋ
와 진짜 양질의 컨텐츠다😊
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이야. 지진때문이라니 상상도 못했네요 ㅋㅋㅋㅋㅋ
흥미로운 분석이네요. 잘 보고, 구독 눌렀습니다.
진짜 촉이 형주만 잃지 않았어도 한결 수월
했을땐대 선제의 유지를 받든 제갈량의
정신만큼은 존경할만함 누가봐도 위나라와는 안되는 싸움이었는데
파촉은 지키고 형주가 뚫는
애초에 관우의 북벌, 번성 침공이 정말 대단한 기회였는데 그걸 못 살린 게 문제라고 생각함
@@heart12-i4f
못 살리진 않았죠 다 된 밥인데
뒤에서 지원해야 하는 미방이 지원은 안하고 홀랑 오나라에 넘겼으니..
평생 함께한 미방이 배신때릴줄 누가 알았을까요.
@@heart12-i4f그게 바로 형주 뺐고 써먹지도 못한 손권때문
애초에 형주는 촉나라에서 지킬 수 없는 땅이에요ㅋㅋ 성도에서 500km넘는 거리에 있는데
생각해볼만한 가설입니다. 잘봤습니다
강의 길이 바뀐거 였군요. 좋은영상 잘봣스비다!
강추네요. 저도 한신이 한걸 제갈량은 왜 못했을까 궁금 했는데 대지진으로 지형이 바꼈다니....
물론 유비의 촉한의 군사는 방통과 법정이고 제갈량은 소하같은 내치 전문 재상이라 한계가 있었다는건 알았는데 이런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네요.
법정이 더 오래 살았으면 관우가 삽질도 안했을거고 그랬으면 이릉전투도 없을거고 유방보다 상황이 좋게 위나라와 싸워 볼만 했을텐데 아쉽긴 하네요.....관우는 오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위나라와는 지키기만 하라고 했는데 오나라 들이 받고 바로 위나라와 전쟁 했으니....
뭐 지형이 변했다, 군재가 뛰어나기보단 내치가 뛰어난 재상이다, 이런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체급이 다릅니다.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초나라를 재건했지만 스스로 서초패왕이라 칭하며 서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나머지 영토는 제후들에게 나눠주어 나라가 분열된 상태였던 반면, 위나라는 중원과 하북을 포함 방대한 영토를 통일한 국가였죠.
항우의 목적은 조국인 초나라의 재건이였고, 위나라는 전국 통일을 목표로 한 차이점이랄까요. 애초에 체급 자체가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와아. 대단한 분석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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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은 전술가, 제갈량은 전략가
제갈량은 장량하고 비교해야하고
삼국지에서 한신하고 비교해야할 사람은 육손, 법정?
주유
한신이 전쟁 지략이 더 뛰어남... 하지만 처세는 제갈량이 더 뛰어남...
한신의 북벌은 대상이 중원을 장악한 단일 세력이 아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즉, 체급 차이가 한신과는 비교하기 힘들다는거죠
또 진시황도 파촉에서 뚫고 나와 중원 통일이 가능했던이유는 제갈량이 그토록 점령하고자 했던 양주 옹주지방을 애초부터 점령하고있었기에 뚫고 나가기 수월했음.
촉이 알다시피 천혜의 요새로 들어가기 어려운 만큼 나가기도 힘든곳이었음
말씀처럼 촉은 나가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유방은 촉으로 안 가고 한중 일대에서 무조건 버텼음. 그러니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했죠. 그러니 4개월만에 한방러쉬로 빠르게 진군이 가능했던 거.
그리고 진시황처럼 양주 옹주 포함해 관중 일대 민심도 유방 편이었습니다. 뿌려놓았던 씨앗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기도 했죠.
저도 한신이 대단 하지만 시대 잘 타고 난것도 크다고 봅니다
@liverpoolchampion2153진짜 개소리 한신은 분열된 상태의 중원을 그냥 각개격파 한거임. 제갈량은 지금의 멕시코 물량으로 미국을 상대한거고
@@harvestmark3972
근데 웃긴게 왜
이 영상에만
제갈량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보는
님처럼
수준있는 댓글들이
많을까요?
다른영상 대부분
제갈량을 단순
행정가 취급만 하던데요 ㅋㅋ
@@harvestmark3972
심지어 9급공무원 이라고
하는 애들도 있음 ㅋㅋ
정말 좋은 분석, 의외의 차이점 영상 감사합니다
지진으로 인한 수로변화로 보급이 잘안되서 제갈량 북벌이 실패했다 그럴싸 하네요 ㅎ 가능성이 있는 가설입니다 사천쪽은 항상 강진 마니 발생하는 곳이죠
우와 지도로 설명해주시니 머리에 쏙쏙 박히넹ㅋ 흥하세요
흥미로운 가설 잘 봤습니다.
항우는 관중을 정복하고도 함양에 머물지 않고 근거지인 팽성으로 돌아가면서 관중 지방을 3분할하여 따로 분봉했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봉한 이들은 진나라를 배신한 사람들이어서 관중 지방 백성들의 민심 장악에 실패하게 됩니다. 관중 지방의 진나라 백성들은 삼진(3분할된 관중지방)의 왕들을 증오하고 해방군으로 온 유방을 환영했습니다.
결국에 관중 지방은 유방의 공격에 유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각개격파를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항우는 통일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의 정치를 7국 체제로 되돌리면서도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진나라, 제나라, 조나라는 여러 분국으로 쪼개놔서 초나라의 우위를 확실히 다져놓으려고 했던 모양입니다만, 근본적으로 그의 정치관은 퇴행적이었고 인사에도 실패해서 민심을 얻을 수 없는 왕들을 분봉하여 그 나라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유방과 한신은 정치적으로 이런 분열상을 적절히 이용하고 각개격파하여 항우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반면에 유비 시절엔 위나라의 관중 점령 세력이 분열되어 있지 않았죠.
이래서 군사적 재능이 너무 뛰어 나면 외교를 전혀 안하고 그냥 힘으로 눌러 버리려고 하다가 결국 폭망 하게되는 역설이 있죠... 항우 나폴레옹 한니발 등....귀찮게 외교 하느니 다 군사력으로 박살내려고 하니..늘 자신있고..
근데 한두번의 패배로 몰락해 버리죠..그동안 불패의 신화가 한방에
당시 삼진의 왕들은 유방이 배신할 줄도 몰랐고, 배신하더라도 병력이 그렇게 빨리 도달할 줄 몰랐죠. 방심했습니다. 반면 유방은 처신을 잘했고요.
애초에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하죠. 기만이고 뭐고 위나라는 언급된 모든 통로를 다 틀어막을 수도 있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동맹이라는 오나라는 촉 멸망때까지도 계속 뒤통수랑 뒷공작질함
이렇게 보니 촉을 통한 북벌루트는 한계가 명확하네요. 이릉대전이 정말 삼국지의 중요한 분기점 같슴니다
한번 통한 전략은 두번은 안당해준다는게 크고.
유방하고 한신은 촉으로 들어간게 아니고 한중에서 찍먹하고 북벌했기때문에 위, 촉나라와 상황이 많이 다름.
결정적으로 체제가 완성되고 중앙집권이 된 위나라와 다르게 초나라는 군벌세력으로 찢겨있었고 항우가 지 고향으로 놀러가서 대비가 안돼있었다는거.
항우가 함양에 눌러붙어서 방어했으면 한신이 뭔짓을 해도 안통했음.
이상하게
ㅋㅋ
왜
이 영상에만
제갈량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보는
수준있는 댓글들이
많을까요?
다른영상 대부분
제갈량을 단순
행정가 취급만 하던데
심지어 9급공무원 으로
보는 한남들도
즐비함
근데 한신도 북벌전에 직접훈련시킨 정예병 유방한테 다 뺏기고 훈련도 안된 오합지졸 3만 데리고 북벌성공한겁니다. 제갈량이 촉 자원 쭉쭉 짜내서 만든 10만 정예병이랑은 다르죠
@@mickymouse80
그딴게 교수라고 ㅋㅋㅋ
전투만큼 중요한것이
행정,보급,경제력인데.
한국에 교수들 중 절반은
사기꾼 샞이들 같네요
@@mickymouse80
사실상 전쟁말고
거의 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도 어렸을때는 전투만
잘하면 되는줄 알고
당연히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비등하게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것이 정치,경제,보급,행정,인사등 후방지원입니다.
이건 유불리에 대한 문제일뿐이고 결국은 인재차이 인프라차이
완전 처음 듣는 내용이네요 ㅎㅎ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유방이나 유비의 경우 근거지가 촉이라는 건 똑같지만 유방은 관중지역을 차지했기에 천통성공..
제갈량이 죽기 살기로 장안 공략에 올인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
상대방이 조위니까 막혔던거지 유비 제갈량도 항우 상대했으면 이겼을지 모르고, 유방 한신도 조조 사마의 상대했으면 졌을지 모름. 조위 사마진은 당시 탄탄하게 나라 운영 잘했음. 5호16국도 8왕의 난으로 사마진이 누더기가 되서 먹힌거고
초나라는 항우 원맨팀이고 위나라는 온갖 명장들이 많아서
이건 너무 뇌피셜이지.
유방이 묵돌,항우같은 동아시아 역사상 탑급 전쟁기계 상대로만 쳐발렸지 그외엔 승률 존나좋은 명장임.
그런 유방도 찌발린게 항우인데
촉나라가 동아시아 최고 전쟁기계였던 항우 상대로 통일했다?ㅋㅋㅋㅋㅋ
촉나라가 유일하게 앞서는 지형빨조차 항우앞에선 안통하고 뒤지겠지
@@알라딘-l9j 초나라도 항우가 워낙 초 넴벨류라 그렇지 책사도 s급에 잘치는장군들도 꽤 있었음 근데 말을 안들쳐먹어서 제대로 못써먹었지
진나라가 탄탄하게 나라 운영을 잘 했다기에는 사마염부터 애초에 폭군이었는데 무슨...
팔왕의 난 이후에 진나라는 그저 여러개의 국가에 불과했음. 5호16국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16개보다 더 많은 나라가 나왔고
@@Woopha 개소리 금지
한신은 전략보다는 전술, 제갈은 전략 큰전쟁은 전략이 중요하지만 작은전쟁은 전술이 중요
관우가 형주 말아먹을때 부터 촉은 이미 기울었음 형주가 있었으면 양면 공격이 가능했는데 만약 오나라와 함께 위나라 공격 했음 이길수 있었음 이것이 촉의 한계임
솔직히 관우까진 그래 그럴수있어 유비가 미쳐서 이릉꼬라박해서 망함 유망장수와 황권의투항까지 사람들이 황권의투항이 얼마마 큰지모르는데 적어도 그정도 경험있고 후방든든하게 지켜줄사람 몇없음 게다가 법정과황충이 사망한시점부턴 이릉은 절대안되고 유비가 상용을 다시수복하거나 아니면 남만반란토벌 반란토벌의집중하면서 제갈량에게 힘을 남겨줬어야함 그리고 마량도 살아있었음 큰도움줬을텐데 황권과마량이 얼마나 아까운인물들임 유비가 미쳐돌아간거임 이릉은 의형제?조조는 사촌동생 하후연 죽었는데도 패색 짙어지니 한중버리고 갔음 참알수가없는인물 유비
결국 손제리때문이네요
@@김수인-b3o관우 탓이죠…
@@묠니르망치 조인 박살내고 우금방덕 죽여버리고 서황한텐 밀렸지만 양양성 포위는 계속되는 상황에서 조조는 장료 장합까지 부르면서 간절할정도로 관우하나 처리못할때 손제리가 그래도 동ㅁ맹국인데 뒤통수챴으니깐 하는말임
@@mickymouse80 ㅁ뭐 얼마나 더 관우가 잘해줘애 됌?? ㅋㅋ 우측으로는 오나라의 여몽이 대치하고 있고 북으론 조인이 군을 이끌고 남하한걸 먼저 깨부수고 번성에서 겨우 숨만 붙히게 하면서 우금과방덕의 정예7군도 몰살시키고 그러면서 양번성을 포위하는 와중에 새롭게 수혈받은 서황하고 싸워도 양양성의 포위는 유지한채 전선을 고착화 시켰는데 형주 지역중에서 볼품없고 북형주의 거의 반정도밖에안되는 경제력으로 조위와 손오의 전면전을 이끌어 냈는데
재밌고 멋진 분석입니다.
제갈량 외에 촉의 유능한 인물은 법정 정도이고 그나마 오래 유비를 보필하지도 못했죠 책사로 장량이 있고, 행정에 능한 소사와 진평, 한신이 있었던 한에 비하면 촉은 제갈량이 고군분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또한 위에는 뛰어난 지략을 지닌 사마의가 있었죠. 단지 연의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건 아니죠. 그는 단순한 전술가가 아니라 임금에겐 충신이고 백성에겐 어버이와 같고 신하들에겐 표본과 같은 사람이며, 행정가이자 전술가이고 농업ㆍ공업ㆍ전술 등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사람이었죠. 또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진의 멸망과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통일한 시기가 삼국의 대립시기보다 매우 짧다는 거에요. 즉 항우와 유방은 진멸망후 혼란기를 누가 정리하느냐는 관점에서 봐야하지만 위오촉은 어느 정도 삼국이 정립되어 혼란이 수습된 이후 제갈량의 북벌이 있었다는거죠.
님 말에 동의함
그래서 마속이 성에 들어가서 싸우지 않고 성밖에서 싸운거 아니냐 라는 가설이 나오고
성내 주민들 호응할수 있어서
제갈량 1차 북벌때도 뭐했냐 의문도 위나라 사람들 안심시키고 있섰다는거지
제갈량은 위나라 입장에서는 침략자이니
잘 먹고 사는데 쳐들어왔으니
와.. 역사에 자연재해가 묻으니까 이렇게 재밌을 수가.. 삼국지에 대한 내용 웬만하면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첨봤네요
유비에게 방통과 법정만 있었더라도 천하의구도는 달라졌다들 많이 그러더라구요
와아...진짜 궁금증 해소네요. 감사합니다
촉과 위의 차이죠~일단 제갈량의 상대가 조진 사마의 장합 곽회 등 위나라의 명장들이었고 병력 또한 만만찮았음 무엇보다 국력이 너무 차이가 나서 증원군의 규모가 비교가 안됨 모든면에서 열악한 제갈량이 북벌 내내 공세를 취했다는것 만으로도 제갈량도 탑티어인걸 증명한다
그래서 북벌로 인해서 뭘 얻었는데요.
결국 내내 실패만 하는데,
결국 위나라는 국력을 회복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고 촉나라는 국력을 회복하는 속도가 비교가 안될정도로 더디니
결국 실패만 한건데 뭔 탑티어?
학소한테도 개박살나고 뒤로빠진인간이 뭔 탑티어?
@@한화솔루션-p6p 학소가 어때서? 학소비하함? ㅎㅎ
@@초심-m8p
ㅇㅇ그게 제갈량의 수준인거임
제갈량에게 학소는 대단한 명장이지만
한신에게 학소는 그저 그런 장수의 일부임
@@한화솔루션-p6p실패원인이 능력 외적인 지형상 한계로인한 보급문제이라는 영상인데 너무 까내릴것 없다고봄.
제갈량이 군사적인 ‘결과’는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군사사적으로는 분명 역사적인 한 획을 그었고,
한신이 4백년이후의 학소랑 붙어본것도 아니며, 학소가 더 오래살았으면 어땠을지도 모를일인데 제갈량이나 학소나 한신에 비교하면서 까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음.
그리고 학소랑 싸울때 제갈량이 개박살 난건 아님 애시당초 퇴각사유도 군량문제였고.
@@한화솔루션-p6p애초에 2차북벌은 정식 북벌이라기 보다는 석정 전투로 위의 군대가 시선이 분산되어있으니 되면좋고 안되면 말지라는 심정으로 빠르게 가용가능한 전력을 투사한거 뿐임 실제로 군량도 20일치 밖에 안챙겼으며 진창공격 이후 3차 북벌이 시작됨 여기세 큰 전력을 투사했다면 곧이어 3차 북벌이 가능했을까?
위가 진창에 성을 쌓아놓고 대비를 하고 학소가 굳건히 버티고 있으니 촉입장에서는 아쉽지만 후퇴한거지 박살난건 아님 그시대에 유명한 명장들도 공성전 실패한 사례많음
또한 진창성 공격으로 위군은 수비병력이 분산되어 3차때 무도, 음평을 점령할 수 있었음 아예 수확이 없던건 아님
제갈량이 한신보다 불리한 조건이 두개더 있습니다
첫번째는 한신은 처음이라 적국에서
루트를 파악할수 없었고 제갈량때는 적국이 루트를 파악할수있었으며
두번째는 적국은 이미 나라가 강하고
왕은 총명하여
지원을 잘해줬고
장수를(사마의) 쓸줄알았고
촉왕은 무능하여
물량지원 잘 받을수 없었습니다
유비가 오래살았더라면
성공하지 않았을가요
택도 없습니다.
유선은 무능한 왕이 아니고 지원을 안해준 왕도 아니며 오히려 유방보다도 더 지원을 많이 해준 편에 속합니다.
일단 한신이 허를 찌르는 잔도를 이용했기때문에 그 뒤에 그 고사가 너무 유명해져서 대군이 이용할 수 있는 길은 다 파악이 돼 있었음...그럼에도 제갈량의 1차 북벌은 상당히 허를 찔러서 한번에 두군을 얻었고 강유도 얻을수 있었음...그 뒤에는 나아갈 루트에는 다 대비가 돼 있으니 병력의 희생을 최소화 시키는 제갈량은 한계가 있었고 그게 제갈량의 장점이라고 볼수있었음...
1차는 마속의 개트롤땜에.......
@@어이쿠야-l9x하지만 장수를 기용하는건 지휘관의 능력인거고 결국은 제갈량의 실책이라고도 볼수있죠. 뭐 그와 별개로 제갈량은 뛰어난 정치가이면서도 군사적으로도 가능성이라도 보여줬다는것에서 정말 높히 평가받아야한다거 생각하지만요
@@어이쿠야-l9x 마속의 개트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게 중국 현지의 입장임.
가정 지역은 전란이 없이 수십년간 평온하게 지내고 있어서 위나라에 굉장히 호의적이고 충성심이 높은 지역이었다.
거기에 마속이 이끄는 촉군이 진격해 온거야.
그럼 가정 주민들 입장에서 촉군의 존재는 평온하던 자신들의 거주지를 순식간에 전쟁터로 만든 침략자 밖에 안됨.
가정의 주민들은 촉군에게 저항했고 그 상황에서 저항하는 주민들과 함께 가정성으로 들어간다? 자살행위밖에 안되는 멍청한 짓이지.
그렇다고 길을 막을 여력도 안되었음.
연의에서는 ‘다섯갈래의 소로’라고 나오지만 그렇게 소로이면 장합의 5만 군대가 굳이 먼길을 빙 돌아서 가정쪽으로 오지도 않았을거임.
가정 현지의 지도를 보면 북산과 남산 사이에는 육반산맥이 잠시 끊어져 엄청나게 넓은 대로갸 있고 그렇기에 대군이 이동하기 수월한 평지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남.
마속이 장합을 봉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가정성에 들어가서 농성하는 방법인데 성난 주민들과 함께 가정성에 들어갈 수도 없고 정 들어가려면 가정 주민을 모조리 학살해야 가능했음.
당시, 가정 주민들은 촉군에 대하여 격렬한 저항뿐 아니라 촉군의 정보를 위군에게 죄다 전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성에 못 들어가, 그렇다고 그 넓은 대로를 막을수 있는 시간이 없어.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보병 중심이던 촉군이 기병 중심이던 위군을 상대로 하려면 고지대를 점거하고 위에서 아래로 싸워야 한다는 것.
북산은 완만하고 낮아서 기병이 그대로 치고 올라올 수 있어. 남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북산보다는 높고 정상에 구릉지가 존재해 군대가 진을 치기에 좋았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로는 북산에만 있다. 한 국가의 최고 관직인 승상, 그 승상의 직속참모인 참군이나 되는 위치에 있는 마속이 그걸 모를리가 없겠지. 바보가 그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남산으로 물길을 파서 굽이쳐 흐르게 만들었으나 남산을 포위한 위군은 물길을 원래대로 바꿔버림. 그렇게 물이 끊긴 촉군은 머… 싸울수가 없지. 물을 못 먹으면 하루도 견딜수 없으니.
과연 이게 마속만의 잘못일까? 지역의 관리들이 항복했다고 해서 주민들까지 항복한 것일까?
어차피 상규의 곽회를 격파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서쪽전역은 촉이 패할수밖에 없는 전역이었음.
마속이 가정에서 버티지 못하였더라도 제갈량의 본대가 상규만 점령에 성공했으면 서쪽전역에서 이기기는 힘들었더라도 농서를 먹은 상태에서 대치상태는 계속 이어나갈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량 신격화에 미쳐서 제갈량의 명백한 실책인 상규패배는 슬쩍 넘어가고 그 책임을 마속에게만 떠넘기는게 연의임.
@@멸공의횃불-v2z 제일 중요한건 가정 지역이죠 ㅋㅋ 뭐 연의에선 좁은 길 얘기하고 게임에서도 그러지만… 전투의 신이라고 헤도 어려웠을…ㅠㅠ
@@멸공의횃불-v2z 이거 맞음 제대로 알고 있네
마속만 오지게 까내리지만 사실 촉군은 제대로 된 공성 병기도 없고 1차 북벌때 옹주도 마초,마대 친근 세력들이라 쌈 없이 점거했던거지 곽회 혼자 지키는 상규마저도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는건 촉군의 군사력이 딱 거기까지라는 얘기임
마속은 제갈량이 상규를 점거한다는 가정하에 장합이 단기전을 할걸 예상하고 산 위에 진을 친거지만 제갈량이 상규를 못 먹었기에 장합이 장기전을 할수 있었고 그 덕에 북벌이 실패한거죠
잘볼께요^^
네 감사합니다
사실 촉은 이미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크게 해먹어서 통일할 힘을 잃었죠....
그건 그냥 소설이야기일뿐
그 전에 형주 뺏긴 거부터 끝…
형주가 없으면 위를 칠 수가 없는데 손권은 먹어놓고도 못 침 ㅋㅋㅋㅋㅋㅋ
애당초 통일할 힘이없엇음 조조가 하북먹은이상 천통각은 잡힌거임
@@finalboss9314 멍멍 잘짖네
이런 것까지 알려주시고 고맙습니다
한신이 북벌하던 시기는 제갈량과 달리 중원이 사분오열된탓
ㅋㅋ 사분오열이고 나발이고 학소하나도 못이겨놓고
뭔 사분오열 타령임 뭐하나라도 결과물이나 거두고 떠드셈
오오 이제 이해가 되네요!!! 이런 고급 해설 너무 감사합니다!!! 한신의 성광과 제갈량의 실패 이유 너무나 궁금했거든요!!1
저건 사소한 이유라고 밖에 생각이 안듬. 그 당시 최고급 인재들은 전부 위나라 사람이었고
결국에는 촉의 주요 장수들 마저 대부분이 위나라 항장 출신으로 체워지는 상황이었음.
국력은 비교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고 대규모 전쟁의 여파조차 점점 위나라에서 사라지면서
그 차이가 더더욱 커질 뿐이었음.
한신과 제갈량의 상황을 비교하면 훨씬 더 제갈량 쪽이 불리했던 건 사실임.
개소리도 적당히해야지 ㅋㅋ
팽성대전으로 그냥 개박살나서 촉나라 위나라 수준도 아님
그냥 완전히 개박살난 상태에서 3만명으로
그것도 오합지졸 훈련시켜서 위 대 조 연 제 초 여섯나라 개박살내고
왕 두명 사로잡고 한명을 죽이고 제갈량 태어나기도 수백년전에
세상에 없는 전술을 완벽하게 꺼내와서 전투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고
중국 역사상 최강의 장수를 상대로 완벽하게 박살내는게 한신이였는데
뭔 제갈량이 더 불리하다고 개소리를 하세요?
아니 무슨 학소 조진따위도 못이기는 애가 뭔 불리하니 마니 떠들고 앉아있어
좋은 분석 영상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황제: 유방>유비
내정: 소하>제갈량
전략: 한신>제갈량
군사: 한신>제갈량 뭐 하나 나은 게 없는데, 어찌 한나라와 비교를.
오장원은 나가는 길이 다섯장 밖에 되지 않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군사대치를 하면 서로 공격을 할 수 없죠. 그래서 사마의 스스로 그런 얘기를 한겁니다. 무도로 개돌 왔으면 위험했을뻔 했다고.. 제갈량은 개돌 때리는 대신 오장원가서 농사 짓는걸 택했죠. 사마의는 그냥 오장원 좁은 길목만 막아놓고 가만 있으면 이기게 된거죠. 그래서 오장원 얘기 듣자마자 이겼다고 좋아한 것이죠 제갈량은 쫄보라서 진겁니다
댓글들 보니 재밌네요 위를 상대로 잘싸웠다고는 해도 결국 패배한 제갈량의 군재는 대단하다고 하고 중국을 넘어 전세계로 봐도 손에 꼽히는 명장인 한신은 시대를 잘 타고났다 하고;
초한대전 당시 항우의 존재감이 넘사벽이라 그런게 아닐까요? 그 한신조차 지휘권이 유방에게 있기는 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팽성대전에서 항우에게 패배했으니..
@@Graviton06 항우의 기록을 보면 삼국지에는 비교가 가능한 인물조차 없긴하죠. 관도대전에서의 조조, 적벽에서의 주유, 이릉에서 육손정도가 비교가능한데 군대통솔+미친무력까지 더해서 적수가 없는거같습니다.
항우는 범증을 지가 버렸지만 위에는 사마의가 있었죠
국력 상 촉이 위를 쳐서 이긴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이었음...옛날엔 관중,화북지역이 중국의 요충지이고 인구가 많아서 당연 인제도 풍부하였기에 내분이 있지 않는 한 정복하기 힘들었죠... 삼국지연의와 달리 삼국 최대 전쟁은 관도대전이고 거기서 이긴 조조와 그 이후 위와 결국 통일한 사마염의 진이 승기를 잡고 있게 된것...삼국지연의의 인기가 좋아서 그렇지 제갈량은 군사적으론 최고라 평하진 않는 듯함...
대박이다...이런내용 첨접하는듯.. 제갈량 고생했다 진짜..
오 너무 재밌게 봤네요. 수로라거나 보급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못 썼는데 확실히 지리를 알아야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 있군요. 제갈량이라는 시대의 영웅 조차도 천지의 형세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참 사람이 뛰어나지만은 또 하늘아래 한 인간이란 느낌도 받네요. 위성 지도까지 알차게 보여주셔서 너무 이해도 잘되고 흥미롭게 봤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눌렀습니다~!
한신과 제갈량이 비교대상이 되나요? 한신은 역대급 세계명장 탑텐에 들어가는 대원수인데,,, 오타니랑 이정후 정도 급차이인데.
제갈량은 장량, 진평 같은 군사, 책사가 아니라 소하 같은 정치행정가에 가깝다는 이유죠.
사마의는?
@하하 하 세력으로 따지면 유방이 더욱 열악했지.
이미 항우가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걸 다시 빼앗은게 유방과 한신이잖아.
@하하 하 정답
수로는 전략적 참고사항일뿐 상대가 위의 사마중달
@하하 하 팩트
@@holysong7897
통일을 했는데
왜 조나라 제나라
이름이 제각각 임?
ㅋㅋ
능지수준봐라 이거
ㅋㅋ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지리적 잇점은 전략을 크게 변화시킨다고 볼 수 있죠. 근데 더 큰 요인은 사람 아닐까요? 제갈량이 상대했던 사마의는 정사에 의하면 실수가 없고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명장인 반면에, 항우의 명령으로 관중을 지키던 장한과 사마흔 등은 진나라 항장들로 충성심도 없고, 기세도 꺽인 인물들이라 한신이 수월하게 상대한 점도 크다고 봅니다.
지형이 변했다고 한신이 북벌을 못했을까요 위군은 브레인 집단이 탄탄했고 제갈량은 모험을 할만한 배짱이 없었고 항우는 브레인 집단이 빈약했고 한신은 승부사 기질이 있었을 뿐더라 설사 실패해도 백업해줄 인재가 풍부했지요
@@user-pe9ke7pe4w 정보) 범증이 제발 말리면서 하지말라는건 다햇고 범증이 하라는건 죽어도 안했음
@@user-pe9ke7pe4w 있으면 뭐함? 써먹질 않는데 솔직히 필요도 없었지 싸울때마다 다 이겼는데 마지막 빼곤 하늘이 버린거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다 알고 있는것 마냥 아갈통 떠벌거리는 꼬락서니들 하곤 ㅉㅉ
둘 다 맞는 말 같음. 보급, 지형 이거 2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군사작전에서 중요도에서 절대 빠지지를 않는 요소들이고 항우가 조금만 더 현명했으면 유방은 한낱 양아치로 삶을 마감했을듯
범증말만 진작에 들었음 유방은 진작 죽었고 한신은 집금오나하다가 인생쫑났지ㅋ
고퀄의 분석입니다.좋아요, 구독 버튼 누르고 갑니다.
그리고 상황이 한신때는 적들이 따로따로 흩어지는 상황이고 재갈량때는 위나라가 천하통일 기초한 상태로 매우 어려운 상황 음
개소리좀 하지마시죠,
팽성대전으로 완전히 박살난 상황에서 3만명 훈련시켜서
여섯나라 정복하고 항우까지 무찌른게
따로따로 흩어지는 상황이어서임?
학소 조진따위도 못이겨놓고 무슨 매우 어려운상황임?
심지어 이 모든것들을 중국 대륙을 대횡단하면서
피로가 엄청나게 누적된 상태로도 단 한번도 지지않고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이뤄낸 성과인데 에휴 ㅋㅋ
좋은 정보네요!
추가로 마속이란 천하의 xxx 가 등산만 안했더라도...
내가 볼땐 촉같은 약한나라가 위같은 강한나라를 이기는 방법은 제갈량생각대로 차근차근 치고 가는것보다 위연이 생각한대로 한번에 허창을 기습하는게 맞았을것 같음. 제갈량이 전투에는 강할지라도 전략에서는 위연보다 못한 제갈량...
그런다고 위가 무너졌을까요? 오도 엄연히 눈 부라리고 있는데?
뭐 그게 성공하면 대박이다만 점령된 곳 지역 주민까지 마음 잡아야죠
유방이 남정 일대에 머무르며 했던 일 중 하나가 판순 만이를 토벌해 병력으로 이용한 거. 제갈량도 저, 강족을 포섭하려 했으나 절반의 성공뿐. 결국 국경 지대가 단순히 위나라와만 맞닿는 게 아니라 이민족과도 맞닿는 거라 점령 후 지키는 게 필요했는데 촉나라 당시 국력으론 이게 잘 안 됐음.
위연 말대로 허창 기습하고 설령 함락시켰다 치자, 조예가 이민족들한테 sos치면 촉나라 버티나? 정예 병력 죄다 북쪽으로 올라갔는데 나머지 지역은 누가 지킴.
위 촉 오 삼국만 국경을 맞대는 게 아니라 여러 이민족과도 공존하던 시기에 단순히 위나라만 공격하는 건 아니지. 제갈량이 괜히 남만을 공격한 것도 아닌데.
도빅 vs 급여 이런거냐?
그걸 보고 위연보다 못하다는 제갈량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허접하고 간단하게 생각하시는데 일가견이있네요. 결과에 따른 박수충인가요? 역사에서 위연작전 실패했으면 그땐또 위연 욕할거죠? 아니 이채널 은근히 단순한 사람들 많네..
내용 좋네요
역시 예나 지급이나 전략 전술이고 나발이고 무력이고 지력이고 따지기 보다
전쟁은 보급과 훈련이 정보와 준비가 가장중요 그걸 제갈량이 천재같이 잘한거지
제갈량은 고위공무원에 가까운 사람이고 사실 한신이랑 가장 비슷한 촉의 인물은 위연임
한신이 군략이 더 뛰어났거나 제갈량은 사마의라는 군략에 뛰어난 상대가 있었기에 실패한거 일수도 있음. 한신의.상대였던 항우는 범증의 말을 잘 안듣는경우도 많았으니.
한신이 대장군이었을때는 장량,소하,진평같은 책사진도 탄탄했고 하후영이나 번쾌,팽월 등 장수진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제갈량은 유비가 이릉에서 인재들 죄다 날려먹은뒤고, 이렇다할 남은 인재라고는 위연,왕평 같은 무장들이고 그 외에는 전술,전략 계책을 같이 짜내는 책사같은 인물도 없었기 때문에
제갈량이 행정관이라서 한신보다 전술은 약하다고 평가하기엔 너무 인프라가 기울어져 있어서 비교 평가가 안된다고 생각함.
맞습니다 게다가 위나라측 인재풀도 너무 좋았죠
설사 그 수로가 남아 있다고 한들....소군이 대군 조조군을 이길 수 있을까요? 설마 이겨 장안을 차지 한다고 해도 또 군량미 확보를 해야 되는데....정 많은 촉나라가 백성과 군사들 독촉할지.....승리한다고 해도 촉나라도 군사 손실이 있을테고, 그 틈을 또 조조 대군이 공격하면 다시 밀리거라 생각됩니다....육지 싸움인데.....이제 적벽대전 같은 바람 도움 받을 수도 없구요.,......삼국지 마니아인데....그 대지진 땜시 수로가 막혀 제갈량이 다른 대책을 썼다는데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소하 장량 한신이 나눠서 했던 일을 제갈량 혼자서 했으니 한계가 있을수밖에...
그 일을 해내서 소하 장량 한신이 유명해진게 아닐까요?
제갈량이 소하,장량은 몰라도 한신이 맡은 역할은 절대 못하죠 애초에 군사적인 재능이 크지 않은 인물인데
@@강강-b1j 근데도 한신 역할까지 수행했으니 버거웠던거죠...
@@강강-b1j 삼국지 시대에 제갈량보다 군사적인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 누가 있다고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死탄의인형 조조 있는데요
마속이 등산을 하지 않았다면 공명도 1차에서 북벌성공했죠
한신의 천하통일때는 사마의가 없었고
백그라운드가 되어줄 유방과 유선의 능력치 차이도 너무 많이 났음
결정적으로 제갈량의 상대 위나라는 국력이 결집돼 있어 총동원이 가능했고
한신의 상대들은 아직 완전한 통합전이라 항우의 장악력이 위나라처럼 일사분란하지가 못해 조금씩 잠식해 들어가며 체급을 키울 기회가 있었던게 큰 차이
유선이였으면 한신이 그냥 없애고 황제가되서 국력을 강화시켰을수도있죠...유방도 항상 자기자리 한신한테 빼앗길까봐 걱정했는데 유선은 어찌할수가업쇼
@@한우석-u9b유방은 한신한테 자리뺏길까봐 걱정한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한신은 유방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수준으로 정치력과 처세술이 0점이라 천통이후엔 여후 장량 소하가 한신을 죽이려했고 유방이 그런 한신을 살려주고있을 정도였죠
제갈량은 천재가 아니고 신의 군사도 아님. 너무 띄워준게 크다. 차라리 형주를 기반으로 동오를 먼저 점령하고 그다음에 위를 쳤다면 자원과 국력면에서 큰 차이 없이 대등한 위치에서 북벌이 가능했을거라고 봅니다. 형주를 잃은 것이 너무 치명적이었음.
법정이나 방통 살았으면 모를까 제갈량은 유비가 다 터트리고 남은걸로 혼자 머리 짜내면서 하려니 죽어나는거죠. 실제로 과로사했고..
유방은 소하 장량 한신이 각자 자리에서 잘 했고 항우도 제후관리 드럽게 못했지만 촉은 상대가 조조였죠.. 요새 제갈량이 폄훼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제갈량이 놀라운 건 군재는 좀 떨어졌을지라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전쟁을 했다는 겁니다. 한끗 실수해서 나락간 강유의 사례까지 더한다면 제갈량은 훨씬 고평가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개원 선생의 학설이네요. 확실히 설득력이 있는 설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언급을 했다면 더 좋았을텐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에초에 항우 자체가 무신이긴 했지만 군주로서의 역량 자체가 이건 조조랑 비비는건 쬬에게 모독일 듯 ㅋㅋㅋㅋㅋㅋㅋ
반대로 조조따위가 항우에게 전술 전투로 비비는건
모독수준을 넘어서 항우라는 인간을 부정하는거임 ㅋㅋ
레전드 영상...두고 두고 계속 보고 있네요
지형이 변한것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몰랐었는데 모든 면에서 불가했었다고 생각함.
유방과 항우의 경우 항우가 생매장을 즐겨(?)한 점과, 아랫것들을 너무 매몰차게 대해서 민심을 아예 잃었었던점.
유방이 대의명분을 거저 가져가는 계기가 되었고
한신이 수많은 제후들의 항복을 쉽게 받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음.
허나 촉나라와 위나라에서
조조가 기틀을 닦은 위나라의 통치에 많은 사람들이 만족을 하고 살고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었다고 봄
조조가 서주대학살 같은 짓을 밥먹듯이 했었다면 바로 항우와 똑같은 꼴을 당했을테지만 그러지 않았지.
물론 서주 대학살 때문에 조조의 통치를 거부하는 많은 피난민이 있었고, 소설에서는 이 점을 부각시켜서 완전한 악인으로 묘사했었지만
마속이 등산뻘짓을 한 이유도 당시 위나라 사람들의 협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음.
또 역사적으로 더 약한 세력이 더 강한 세력을 기책없이 이긴 경우는 없음.
관도대전에서 쌀없고 병력 딸린다고 조조가 안전빵을 선택했지면 위나라는 없었겠지.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12척 밖에 없다고 조심조심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싸웠으면 명랑대첩은 없었겠지.
제갈량은 내정관이지 전략가는 아니었음
장량과 소하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한신의 역할을 할 능력은 없었지.
그렇다면 그 한신의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을 뽑아 위임을 시켰어야 했고, 이건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장군들에게 맡겼어야 하는 임무임.
짧은 시간에 전장을 판단하고, 군사를 통솔하는 능력
전쟁에선 위연같은 장군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시켜야 하는데 왠 제갈량...?
자오곡은 안된다 그냥 일축.
이유는 병력 나눴다가 몰살 당하면 답없다.
조조는 가뜩이나 군량없고, 병력도 딸리고, 사기도 저하되서 필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오소 습격에 몰빵해서 그게 성공했고, 결국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음.
조조가 아니라 제갈량 이라면?
안그래도 군량도~ 병력도~ 없는데 나눴다가 함정이면? ㅈ돼~ 안돼~ 하고 안갔겠지.
그쪽은 위험하니까. 원소군이 즐비하게 있는 땅이니까.
등애의 상관으로 제갈량이 있었으면 등애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냥 바보같이 검문관 같은 촉나라 관문만 죽어라 때리다가 시간 지나서 과로사로 디졌겠지.
되든 안되든 자오곡 계책은 한번쯤은 들어줘도 됐었음.
결과론이지만 정공법으로 5번 쳐들어가서 얻은거 하나 없이 병력 소모시키느니 자오곡에 한번 보내주는게 더 가치가 있지.
성공하면 북벌 성공이고, 실패하면 북벌 2번 덜 가면 되는거
현장에서 현장직 말씹는 사무직이 진두지휘하면 일이 더 안돌아가는 법임.
일리 있는 말 같음
근데 자오곡 계책은 개답도없는거였음
장안성을 자오곡 정예병으로 함락? 절대불가능 그당시 장안성의 규모는 중국최대의 성이였음
암만 하후무가 븅신이여도 장안성 문잠구고 버티면 위연 및 자오곡 별동대는 전멸이 예정되어있었음
오소습격 이런거랑은 괴를달리함
만약 관도전투때 오소가아니라 몰래 별동대로 업성 쳐야합니다 이랬으면 조조도 그건쫌...하면서 거절했을거임 진지하게
진지하게 당시 자오곡계책은 누가들어도 자살하자는말밖에 안됨
제갈량입장에서 그딴 결과가 뻔히보이는 자살계책에 촉 에이스 위연을 잃고 싶겠음?
결국 고질적인 인재풀+그리고 병사 하나가 아쉬운상황에서 꼴박하겠다고?
관도 전투는 스타로치면 상대 유일한 미네랄 섬멀티 급습해서 파괴해서 자금말려서 이긴거고
자오곡은 짐레이너 태운 벌처 군단으로 상대 포토로 도배된 본진 드랍하자는건데
이건 걍 한신이 들어도 절대 안함
@@mickymouse80 병력 다 잃으면 북벌 2번 '덜'가면 되는거.
'더'가면 된다는게 아니라.
군량도 없어서 쓸데없이 퇴각한게 3번이니 2번 덜 가면 된다구요
장합이라...ㅎㅎ
생각해보세요.
장합은 위연같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입니다.
'현장직' 장합은 상책이 아니다 라며 거절 했지만..
'사무직' 사마의가 가라고 ㅈㄹ해서 갔다가 뒤졌어요.
촉나라의 '사무직'이 제갈량이라면
촉나라의 '현장직'은 위연입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의 감을 무시한것도 실패의 원인 중 하나이다.
라는게 요지인데...
그 장수의 감을 무시한 채 무리한 명령내려 뒤지게 만든 사마의와 장합의 일화를 꺼내다니요
북벌을 하면 촉의 전 국력을 다하는 총력전이었음.
제갈량이 있었기 때문에 탁월한 행정력으로 소모를 회복하고 북벌을 유지 할 수 있었음.
제갈량 입장에서는 200년 한실의 운명이 오로지 자신에게 맡겨졌다는 엄청난 책임감과 압박감에 다죽어도 한번만 이기자 같은 소릴 할 수가 없었을것임.
임원급 까지는 공격적인 투자, 도박성 판단을 주창할 수 있겠으나 사장 회장 급은 그런 판단을 할 수가 없음. 더군다다 그것이 200년 역사의 기업이고 정통성과 명분을 가진 기업이라면 어 그래 몇만명 죽어도되니 가져다 써라 라고 할 수 있었을까 싶음.
물론 제갈량 자체가 군사지휘관으로 능력이 부족한게 문제였겠지만요.
스타해봤음?
촉 : 3팩토리
위 : 10팩토리
3팩에서 어렵게 모은 병력들 싸우다 다 죽으면 그 뒤에 회생이 가능할것 같음?
북벌을 하지말고 형주 탈환작전을 했으면 어땠을까용?
형주를 친다면 위나라에서 얼씨구나하고 촉의 빈집을 치러 올테고, 그나마 유대관계가 있던 오나라와 화친을 맺고 북벌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촉나라는 한의 부흥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므로 조비의 황위 찬탈을 응징한다는 북벌의 명분이 있었고, 이릉대전에서 이미 경험많은 장수들을 다 잃은 상태에서 여전히 육손이 지키고있는 형주를 침공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같습니다.
한신은 남이 생각 하지 못한 수준의 변칙적이고 빠르며 심리적인 병법을 운용했고 제갈량은 지극히 평범한 정공법 이었다. 정공법은 소모전이고 국력이 강한 쪽이 이기지
똑똑한 척만 잘하지 실책을 무지하게 낸 조비가 아니라 냉철한 성격인 조예가 상대였다는게 제갈량의 불운... 무능한 하후무에게 관중 수비를 맡긴 장본인도 본래는 조비였으니... 그 반면 한신은 항우가 관중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않고 향수병 걸려 그냥 대책없이 회군한게 굉장한 행운...
1. 위연 말 안들어서
2. 위연 말 안들어서
3. 위연 말 안들어서
4. 위연 말 안들어서
5. 위연 말 안들어서
근데, 6차 아님?
진짜 대박영상이네요 ㄷㄷ 역사를 과학적으로 추론하다니
위연은 진짜 왠지 해냈을것 같기도함 똘끼있고 위나라하고 상성도 좋은편이기도 하고
한신과 제갈량의 북벌에서 가장 결정적 차이는 상대가 항우의 초나라와 조조의 위나라란 차이죠.
날고 기는 에이스들이 지키고 있던 관중 땅을, 조예 예하 조진, 장합, 사마의 등과 상대해야 했습니다.
누구 한신이 관중을 공략할 때 상대가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사람 있나요?
지리적인 루트도 중요하지만 지리적 잇점을 활용하는 장수가 더 중요한 거죠.
게다가 항우는 초나라 땅, 그러니까 동쪽으로 한참 치우친 서주지역이에 머물렀던 반면, 위나라 수도는 관중에 가까운 낙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한나라는 고조 유방부터 장량 한신 번쾌 등 천하쟁패를 위한 최상의 엔트리를 갖춘 반면
초나라는 서초패왕 항우의 원맨팀이었으며 봉왕 이후 항우의 지지기반은 분열돼 있었고, 역사에 내세울 만한 이름있는 장수는 죄다 배반, 투항했습니다.
반면 제갈량은 이미 조조, 조비 2대에 걸쳐 다져진 올스타 조위를 상대로 낮은 동원력을 가지고 승부를 봐야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 왔던 유비, 관우, 장비는 이미 없고 심지어 조운도 3차 북벌을 전후해 사망합니다.
후방을 흔들어줘야 할 손권 역시 삽질을 해 대서 난도가 너무 달랐다는 점이죠.
제가 알기론 관중에 장한이 있었습니다.
장한은 항우에 삼촌을 죽이고 오광의 난을 진압한 진에 최후 명장이죠 아지면 진나라 간신 조고에 모함에 때문에 질려서 항우에게 투항했는데 주인복이 없었죠 그리고 장한은 관중에서 전사하죠
형이 쉽게 스타크래프트 헌터맵 기준으로 설명해줄께. 쉽게 말해서 촉나라는 본진+앞마당 멀티 하나 먹은 상황, 오나라나는 본진+앞마당+ 멀티2개고 위나라는 나머지 싹다. 섬멀티며, 중앙까지 싹다 먹은 상황인거지, 스타 아무리 존나 잘해도 본진+ 앞마당 멀티 하나 덜렁 먹고, 중앙 뚫고 나오기 힘들지. 잠깐잠깐 전략적으로 몇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할순 있었겠지만, 이미 위나라가 관도대전에서 하북 정벌했을때부터 통일은 끝난 상황이었어.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적벽대전)에서 병력을 크게 잃어 그 기한이 연기된것 뿐이었고.
정답입니다! 위의국력이 촉보다5배이상인데 힘들죠!
정답. 헤비급 챔피언이 플라이급 도전자에 어퍼컷 정타로 10방 맞아도. 모기가 물었나. 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우가 조금만 더 신중했고
손제리가 통수만 안쳤었더라도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요??
서주, 병주 초토화시켜놔서 생산력은 없다시피한
완충지대뿐이고 중원은 황건난때 수많은 전란으로 초토화 돼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많은 대군이 있다하더라도 옹주 방면, 양번, 서주 방면으로 세방향 진군했으면 막기 어려워 보입니다.
솔직히 215년 합비전투때
조조가 한중 점령하느라
장료에게 지원이 늦어지는 와중에
무쌍찍은건데요.
@@마요네즈-t9h 임용한 소장님은 관우가 서황한테 발렸다고 보시더라구여
관우가 이기려면 조인을 빨리 뚫었어야 했습니다 타임어택이였어요 ㅎㅎ
ㅇㅇ. 사실 적벽보다 조조가 중원 패권을 차지한 관도전이 더 중요한 전투로 치죠. 적벽은 단지 조조 본인대에 천통을 못보게 막은것뿐...
촉 입장에선 오나라랑 연합해서 위를 정벌하면 본인들이 명분을 쥐고 있으니 알아서 자기들 밑으로 길거라 생각했겠지만, 손가도 나름대로 대권을 꿈꿨던지라 둘의 분열은 시간문제였던것도 대세를 바꾸지 못했던 이유에 한 몫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은 찐이네요 ㅇㅈ 이런사람이 교과서 편찬하셔야 할듯
수로가 문제가 아님. 상대국의 역량이 넘사벽이었음. 항우의 경우는 봉건국이었고, 위나라는 이미 황제국. 상대의 역량차이가 엄청 큰게 주요 원인이 아닐까요?
사마휘 신삼국에서 대사가 생각나네요 주인 잘 만났는데 때가 좋지 못하다고 ㅠㅠ 위가 넘 강했고 곽회 장합 등애 등 최고의 인제가 수비만 하는데 어찌 북벌에 성공합니까? ㅠㅠ 그래도 제갈량은 죽을때 까지 쉬지 않고 노력하고 성장해 가니 대단한 인물이 맞아요. 6번의 북벌에서 크게 지지 않는 것에 대단한 인물이죠. 강유는 대담한 만큼 실패도 하고 많은 병력도 잃고 ㅠㅠ 한신도 대단하지만 때를 잘만나 성공한거죠. 그러나 토사구팽 당해 죽고 말아요 . ㅠㅠ 제갈량은 유비에게 나라를 황제가 되달라는 유언을 들을 만큼 인성도 좋아 삼국지연의 주인공이 되고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죠
팽성대전으로 개박살나서 못이기는 상황이였는데
무슨 때를 잘만나서 성공을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씨부리지좀 맙시다~
제갈량은 강유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같이 탁고를 받았던 이엄마저도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촉에서의 입지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선에 나가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본국에서 큰 압력을 가하지도 않았고 믿어줬기에 장기전을 할 환경이 됬던겁니다.
강유는 위나라 장수가 항복한걸 제갈량이 키운 장수로, 대위 전선을 맡게 된것도 전임자가 살해당해 혼란스런 상황속에서 였습니다. 출신과 상황의 문제때문에 전임자과 달리 본국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에서도 촉의 수 차례 북벌 중 최대 성과를 내기도 했고 전공만 따지면 촉의 어떠한 인물보다도 높습니다. 다만 중간 한번의 큰 패배로 강유에 대한 신뢰를 깔끔히 접은 파촉의 정부는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령관인 강유랑 정치적으로 대립하다 나라를 말아먹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촉에게 한신은 제갈량 법정 방통이 아니라 강유라고 봅니다. 다만 강유의 무대가 전성기가 지난지 오래된 촉이었다는게 아쉽죠
조건이나 환경을 따지기 전에 일단 한신은 중국사 top급 군재를 가진 인물이고 제갈량 따위랑 비교할게 안됨.
제갈량은 한신이랑 비교를 하기엔 군사적 재능을 보여준게 없는 사람임.
위나라 상대로 단 한번도 대규모 회전을 통해 승리를 가져간적이 없는 사람임. 물론, 자잘하게 소규모 국지전에서 몇 번 이긴적은 있어도 대세를 역전할만한 급의
무엇가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뜻임.
한신이 촉나라 승상으로 있었으면 북벌5차례 중에 그래도 2번은 크게 성과낼듯
결국 한신도 유방에게 개죽음당함 ㅋㅋㅋㅋ
@@cjgvtchoi 개죽음 당한거랑 별개로 이 영상의 주제는 한신 vs 제갈량의 군재라는것
흥미로운 분석이었습니다. 고우영 초한지로 봤을때는 한신이 진창부근 사잇길을 통해 어떻게 그런 기동전을 펼칠수 있을지 의심이 갔습니다. 지휘관이 되기전 한신이 파촉땅으로 들어갔을때의 루트로 이미 활용된 곳인데 한신이 단신으로 들어갔던 루트인데도 너무나 험준한 길이라 몇 천,몇 만 단위 병사를 이끌고 가기엔 너무 빡센 길이라는 느낌을 받았죠.
항우는 방심했고 위는 제갈량이 죽을 때까지 방비하고 있었음
핵심을 꿰뚫는 한줄 요약.
하지만 1차 북벌은 정말 가능성 있었지만 등산왕의 뻘짓과 그를 등용한 제갈무후 ㅠㅠ
위도 유비가 죽고는 인물이 없다 생각하여 방심해서 1차가 유일한 기회였는데... 그걸 등산을 좋아해서 날려버린 안타까운 역사
가정전투는 첩보전의 실패입니다. 가정의 지형을 보면 죽으라고 보낸 수준이고 장합은 생각보다 급하지 않아서 마속이 말라죽을때까지 여유롭게 기다림
@Liverpool champion 한신이 점령한 나라들이 위보다 강하다라.. 위의 영토가 절반이상이였고 그에 따라 병사들도 많은데 한신은 신이네요 없는 영토까지 만들어내고..
내용이 정말 알차네요😊
다만, 나레이션 비중보다는 화면을 좀 더 활용하면 내용이 눈에 더 들어올 것 같아요! 구독하고 갑니다!
촉이 이미 이릉대전으로 인재와 수십만 병사를 잃은것도 사실이지만
공명이 북벌은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위나라에는 중달 과 장합이 있었습니다
제갈량이 과거 한신의 사례를 보고 북진을 준비했다면 조위는 과거 한신의 사례를 보고 북진을 막을 준비를 했겠죠. 과거와는 시스템도 다르고 병략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니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겠죠. 아직 국내정세가 불안하던 초와 달리 조위는 굉장히 탄탄한 내정과 능력있는 인물들이 대거 임용되어있었기 때문에 더욱 튼튼한 방패였을거구요
한신은 특기에 신기랑 질주가 있음 ㅋㅋㅋㅋ 제갈량은 쓸데없는 와룡이나 잇고
아...그 차이가 매우 크네
삼국지 14pk?
@@레오-c8u 네 맞아요
@@holysong7897 한신은 육손이상의 성능을 내는걸요 전법도 서서의 명경지수구요 발화+적능력모두저하
상대의 차이가 큰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항우와 조조의 지적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제갈량이 북벌할때 조조는 죽은사람이고요.. 조비도 죽고 조예가 집권하고 북벌한겁니다. 그냥 한신이 더 뛰어난 군략가죠. 상황을 따질것도 없는게 제갈량은 본인이 훈련시킨 정예병10만으로 북벌 실패한버고 한신은 정예병 유방한테 다 뺏기고 대신받은 오합지졸3만데리고 북벌성공한거ㅇㅇ
하긴 항우는 주변에 한신 영포 장한 이런 인물들을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배신 당하죠 조조는 사람보는 눈은 뛰어 낫기에차이가 나죠
이미 북방이 안정된 위나라와 아직까지 주위 견제 세력들이 건재했던 초나라 사이에서의 몰빵 전략도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래저래 수많은 이유들이 있는 것은 그만큼 제갈량의 북벌이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요.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비의 입촉이 너무 늦었습니다. 위는 법적 정치적 행정적 문화적으로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입니다.
항우는 알다시피 가는곳마다 승리했지만 결국 큰 영토를 다스리는데 실패한 사람이죠. 북벌당시 항우가 싸우러 온건 아니고 또 사방에 적이었습니다. 그에반해 조조는 이미 중원을 차지하고 요충지까지 다 차지했기에 적이 없었죠. 저 물길이 바뀐것을 빼더라도 삼국지 조금만 해봐도 알게 되겠죠 춘추전국시대의 북벌과 중원의 패자를 상대로한 북벌은 다르다는걸.
솔직히 유방, 한신이 위라라 조조나 사마의랑 맞장 떠야했다? 북벌 성공 못함 걸어잠그고 '응 와바'하고 뻐기면 80%는 이기고 가는 싸움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