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최후의 교훈은.. 사마의의 유언 입니다. "빛이 너무 밝으면 그 그늘도 짙다. 때를 기다리고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가풍을 이어 3대가 노력해서 천하를 얻었죠 "아버지는 아들(인생)을 바라보고 아들은 아버지를 바라보면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 맨오브스틸 이는 무엇을 말하나면 기본적으로 가화만사성을 말하는 겁니다. 충성도 용맹도 의리도 지략도 교훈이지만.. 그 그늘에 억눌려 기른 펴지못하는 가정사는 필패 입니다. 나관중은 결론을 사마의로 보고있습니다. 앞부분 재미난 삼국지에 눈팔린다면 나관중이 최후에 삽입한 사마의의 교훈은 잔소리로 취급되고 용마타고 적장 목이나베고 계략으로 대군이나 격파하는데에 홀린거죠
사마의가 처음 출사를 거절 한 것은 가족 때문인 것도 있었죠 형님도 워낙 출중 하셨고 이미 출사를 하지 않으셨던가 .. 그래서 그 밑에 들어가봐야 형 이라는 그늘 아래 가려지게 되어 큰 역활을 하지 못하였을거란 생각을 했을거란 .. 뭐 추측을 해봅니다 . 또 그것 뿐 아니더래도 당대에는 이미 조조의 최측근 순욱 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곽가 순유 정욱 등등 .. 이미 조조의 밑에는 대단한 책사들이 많이 있었기에 당시 바로 조조의 밑으로 가면 빛을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
제갈량과 사마의는 그들의 능력을 펼칠 무대의 크기가 달랐습니다.. 똑같이 천하를 꿈꾼 것은 맞지만 제갈량은 끝까지 주인을 모시는 신하의 입장에서 일을 꾀했고 사마의는 신하인 척하며 천하를 도모하는 야심가였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다르니 당연히 사마의가가 천하를 통일한 것이지 제갈량이 스스로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세상엔 능력이 넘쳐도 욕심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님의 의견이 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둘 다 뛰어난 책사이나 제갈량은 유비의 충성을 다한 신하일 뿐이고(물론 제갈량도 천하를 꿈꾸긴 했지만 말이 이러니 양해좀 부탁드립니다) 사마의는 천하를 꿈꾸는 야심가였으니 어찌보면 사마의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지만 사마의와 제갈량의 싸움이 장기전으로 이여진다면 제갈량이 삼국을 통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마의가 더 훌륭함. 공명은 과평가됫서. 소설용이지. 허위과대도 많고. 또 남을 많이 모방햇서. 역사적으로. 공성기도. 조조햇던거를 따라 햇듯이 그런거 많음. 왜냐하면. 옛날 소설은 동정심유발로 독자 마이 끌거든. 지금도 우리는 재벌을 응징하는 드라마나 보면 대리 만족하자네. 사실은 없는 사람 범죄율이 더 많은게 사실인데 말이야.
진짜 난 삼국지에서 이 둘의 라이벌구도가 제일 흥미진진함. 유관장 다죽어도 아직 독자입장에서봐도 최고로 든든한 공명이랑 그런 공명을 유일하게 막상막하로 대적할수있는 사마의랑 아무튼 이 둘의 대결구도가 정말 좋은 승부라고 생각함 정사에서도 이 둘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게 참 멋짐
버틴 사마의가 대단하긴하죠. 사마의 사정도 녹록하진않앗죠 제갈량은 혼자 일을 거의 다 햇다치면 사마의는 뒷통수를 조심하며 지켜야햇기에 결과론적으론 둘 다 외로운 싸움을 햇다고봅니다. 능력적인것도 분야가 다르다고생각해요. 어찌보면 두 지략가는 나라가 뒤바뀌는게 더 맞았을수있습니다. 인재풀이적은 촉이 사마가의 지원을받고. 수비적인 전술을 유지하고 인재풀이 뛰어난 위가 제갈량의행정으로 나라를 탄탄하게햇다면. 어떻게보면 그게 더 맞았을지 모른다고생각해요. 두 지략가 모두
어떻게 생겨먹은 뇌구조이길래 인간관계를 계산적으로 하냐? 유비는 덕망이 상당히 높았던 군주였기에 자신을 낮출 수 있어서 천하제일의 무장 관우,장비,조자룡,황충,마초까지 얻을 수 있었고 최고의 모사도 한때 서서, 제갈양,강유 등등에 굳은일 잡일까지 고생했던 손건,미축,간옹등이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있었다는것이다! 그 모든인재를 품었던것은 유비의 마음의 그릇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은 아 14:19 니었으나 먹고 살기 위해 하게 되었고 능숙해지니 재미가 있어졌고 잘하게 되었더니 월급이 오르고 친했던 동기들의 시기가 따라오더라. 예전의 어린 나는 남들의 시기가 보일때 불쾌했으나 지금의 나는 내가 잘살고 잘하고 있다는 척도로 삼고 더욱 정진한다. 18:23
제갈량이 인재등용에 인색하거나 능력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은게 아니라 촉에 그만큼 인재가 없었죠.. 위연 양의 는 소인배이며 모반의기가 있다고 늘 경계하고 오래 곁에 둘 인물이 아니라며 특히 실제로 위연을 제거할 계책도 썼으나 결국 갈때까지 위연을 썼죠..조조의 충신들 이후에도 끊임없이 뛰어난 인재가 수급되고 막대한 물량을 바탕으로 지구전이 가능했던 사마의와 제갈량은 경우가 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이야기 입니다. 슈(축)나라 자체에 인재풀이 아주 약했다고 합니다. 즉 쓸만한 인재가 없었다는 것 이겠지요. 정말 국가를 위해 헌신할 머리 좋은 인재는 없고 그냥 어떻게 하면 자기 집안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까 생각만 하고 틈만 나면 국가재산 빼돌릴 생각만하고 간신들이 황제 류선과 어울려 국가예산 빼돌리고 부정축재만 할려고 하기에 제갈공명이 야전에 집중할수가 없다라는 고민도 있을 정도 이라고 말 하니까 슈(촉)에 믿고 쓸만한 인재 풀이 아주 약했다는 것 이겠지요. 주꺼콩밍(제갈공명)이 사후에 전투를 이끌어갈 만한 장차이(장재,장군)이 지앙웨이(강유)뿐이다 라고 말 한것으로 보아서는 무관 군인들의 인재풀도 그만큼 약했다는 것 이겠지요. 거기에다 야전군의 전투에 따른 막대하게 소모되는 군량미과 군수물자가 후방에서 전방으로 보급이 않되는등 작은 나라 소국이 대국과의 전쟁에 따른 막대한 자원의 손실을 만회할수가 없었겠지요. 소국이 대국과 다이다이 전쟁을 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라는 손자병법의 기본 원칙도 무시한 제갈공명의 북벌에 올인한것도 황제 류선의 주색에 빠져 나라 자체가 병들어가는 것과 함께 나라를 망하게 한 기본 요소가 되겠지요
뭔소리래요 위연 개잘썼는데;;;; 곽회만 오면 위연 보내서 개쳐바르고 항상 최선두에 위연을 배치시켰는데;;;; 모반위기 있는 인간을 최전선에 배치하는 ㅂㅅ이 어딨음;;;; 뛰어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걍 제갈량 클라스가 사마의한테 안될 클라스인거임ㅋㅋㅋ 1차때 마속 보낸것만 봐도 모르겠음? 제장들 전부 반대 응 ㄷㅊ 마속 책임자 ㄱ 패배 음참마속 ㄱ 제장들 전부 반대 응ㄷㅈ 참형 ㅋㅋㅋㅋㅋ? 자 누가 인재를 안썼다고? 제갈량이 인재들을 얼마나 안썼냐면 제갈량이 유비 사후에 잡다한 일까지 다하자 양옹이 위분지체라는 말을 하면서 혼자서 일 다하지말고 부하직원 써라 할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가 사람을 안쓰고 잡다한 일을 혼자다하면서 과도한 업무량이 어땠나면 사마의가 촉 사신과 몇마디 대화로 제갈량이 인재를 안쓰고 지 혼자 다하는걸 파악해서 제갈량이 곧 죽겠구나라고 예측할정도로 난리였음
촉에 인재가 없다기보다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제 할일할만한 인재가 적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촉은 원주민.유연일파,형주일파,후일 위나라투항일파든 다양한 세력들이 사는곳이라 그들을 규합하기가 어려운데다 그들중에 사람을 뽑아쓰기는 더욱 더 어려웠습니다. 과거제가 있는게 아니기에 추천이나 천거로 사람을 뽑아쓰던 당시에 고충이 컸겠죠. 사마의 역시 그 위치까지 오르기까지 매우 고단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굳이 서로 원하는 나라를 골라간 그들의 입장을 논할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위연의 직속상관이 위연이었습니다. 제거는 커녕 안쓰고는 안될입장이었습니다.
부연설명 3:38 에 언급된 이야기는 만약 새가 울지 않는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여버리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기여코 울게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때까지 기다린다. 라는 일화를 삼국지스럽게 풀어낸것입니다. 해당 비유의 시초는 불명이나 처음 언급되는 책이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라는 책이기 때문에 해당 책에서 만들어진 일화로 판명됩니다.
곽가 최고의 전략가 공성전 전략 명중률100퍼 정욱 위의 내로라하는 모사 순욱 왕좌지재(제갈량도 순욱에 비교하면 한수접고 갈정도로 내정최고자)+전투머리도 상당 제갈량 연의뻥티기가 많이 됐고 실상 내정담당 최고자+정치가+야전 사령관인데(보여준게 거의없음 결과론적으로 수성은 뛰어나나 공성전은 거의다 실패) 주유 연의로 인한 상당한 저평가 인물 적벽대전은 제갈량이 한게 아니라 모두다 주유의 머리임. 단지 병으로 죽었으며 오래살았다면 천하2분계 나올정도로 주유야말로 만능이 아닐까(야전에서 앞장설정도로 상당히 용맹했으며 제갈량과 비교해서도 군재가 상당히 좋은 능력자임) 사마의 실상 정치가쪽으로 보는게 가장 좋을듯 군재도 나쁘지않았으나 당시 장합과의 마찰이 있었던걸 보면 장합의 군운용+전략이 더 적합했으며 이걸로 비추어볼때 군재는 나쁘지는 않으나 장합 장료 서황 조인등 내로라하는 장수들에 비해선 턱도 없이 부족한듯이 보임 제갈량도 마찬가지(관우 장비 위연 등 군재 군운용이 부족함) 육손 이릉대전의 최대수혜자 허나 훗날 공성으로썬 보여준게 없으며 이릉빼곤 여러 임팩트가 부족함
육손 이릉마져도 오군의 여러 올스타가 있었고, 당시 유비는 올스타들이 대거 빠짐 그와동시에 브레인도 없음, 육손 지형적 이점이 더 높았음 여몽 오에 있어서 주유 다음 임펙트가 가장 강한 인물이지 않나싶음 그만큼 여몽은 오의 공격적자세를 취하는데에 있어서 주유 손책 과함께 3명이 유일함을 보여주는데 (육손과의 브레인 합작이라고는 하나 당시 육손은 별볼일 없는관작이고 여몽은 대도독 총괄자) 그러므로 여몽 주도하였고 여몽이후로 다시 수성전 및 소극적자세를 오가 취함으로써 개인적으로 공격적자세를 취하는 손책 주유 여몽 3명을 상당히 높고 평하고싶음. 또한 여몽은 자수성가자로써 괄몽상대로 유명함 일명 졸개로써 대도독(군4스타) 자리까지 오름으로 노력의 끝을 달린다고 보면됨(등애, 장합 마찬가지 특히 장합은 항장으로써 삼공밑 관직 얻은것을보면 당시 얼마나 능력이 있고 공적이 많은지를 엿볼수잇음. 장합도 연의때문에 상당히 저평가된 인물)
삼국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주시는 대단한 영상입니다. 몇 가지 덪붙이자면, 진서 선제기는 손자 사마염이 황제를 찬탈(양위)한 이후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혁되어 집필된 바라서 '사마의판 용비어천가'임을 전제로 팩트 체크 정신을 잊어선 안 되지 않을까요? 특히 조조와의 기싸움. 제갈량과의 지략대결 등은 용비어천가의 극치로 보이구요. 마치 이성계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둥, 수호지에 나오는 소설 속 설정도 같은 맥락으로 추정됩니다 ^^ 제갈량과 사마의가 본래 한 동네에서 자랐다는 썰도 있더군요. 제갈량은 대대로 무신론자였고, 사마의는 대대로 유신론자 집안이었다더군요. 그래 동네 사람들이 두 사람이 논쟁하여 결론이 나는 쪽으로 통일하자 결론을 내서 끝장토론을 벌였었는데, 몇날 며칠 토론 결과 무신론자이던 제갈량은 유신론자가 되고 유신론자이던 사마의는 무신론자로 변했다더군요. 두 사람의 '이빨'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한 일화라 하겠습니다. 무신론자이던 시절엔 천하에 무서울 것도 없고 죽어서도 벌 받을 걱정을 안 하던 제갈량이 유신론자로 변하자 죽어서 벌 받을 일을 피한 제갈량은 우유부단과 소심한 사람으로 변해 유비가 "여차하면 자네가 황제가 되게" 말했음에도 '여차하면'의 정도를 어느 수준으로 정해 놓은 게 없어 어영부영 하다 죽었고, 제갈량에게 설득당해 유신론자에서 무신론자로 변한 사마의와 그 자손들은 죽어서 벌 받을 일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차하면'의 범위와 한계를 엿장수 맘대로 정할 수 있었기에 손자가 황제가 되었다는 학설이 있다고 합니다. 소설 삼국지에 세뇌당했던 세대들이 죽거나 지식사회가 되어 공개적으로 팩트 체크에 들어가자 99.999999%가 가짜뉴스거나 문학적 상상력이거나 정치적 의도로 기획되고 침소봉대한 거란 게 백일하에 드러나자 민초들이 외면해 가는 바람에 그동안 버림 받아왔던 사마의가 재조명되는 추세로 바뀐 성 보입니다. 제갈량이 탁월한 행정가였는지도 실은 의문입니다. 그동안의 제갈량 허상이 다 벗겨지자 '제갈량 빠돌이'들의 악플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출구전략을 마련하느라 날조한 또 다른 허상일 수도 있거든요^^ 기독교 신도들 입장에선 "예수의 성령 수태와 사후 부활"을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팩트로 믿고 싶을 것이나 그렇다면 교양과목 철학개론 시간에 배운 3단 논법('모든 인간은 죽는다')이 거짓이 되어 모든 학문은 '🐈⬛️9라'가 될 수도 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잖아요? 불교 신자 입장에선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쳤다"는 경전상의 이야기를 역사적 팩트로 믿고 싶겠지만, 박사 학위 8개 소지자(한국 고대사. 고고 미술사 포함)인 자현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 기념 강연회 강의에서 "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기원전후 힌두교와의 우위 논쟁하던 과정에서 부처님이 힌두교 신들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려고 지어낸 '9라'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배운 '염화시중 미소'도, 송 나라 때 선불교가 교종보다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지어낸 🐈⬛️9라"라더군요. 자현 스님은 심지어 "큰 스님들이 법상에만 올라가면 지금도 '염화시중' 이야기를 하는데~억장이 무너집니다. 불교백과사전에도 '지어낸 이야기'라고 쓰여 있습니다"라더라구요^^ 나중에 다시 보니까, 시정 지시를 받았는지 그 부분을 빼버리고 재업로드한 적도 있었구요^^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 때 재상 '비지르'는 "세상엔 진실이란 없으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란 명언을 남겼는데, 정사 삼국지든 삼국지연의든 진서 선제기든 다를 바는 별로 없었으리라 추정됩니다. 조선시대에도 '선조가 삼국지연의 광신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록 기록도 많고요. 서울에 동묘, 남묘는 물론 전국에 산재하는 관우 사당(관제묘, 관성묘 등)이 이를 방증하고 심지어 관우를 천제.천존(하느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종교단체도 지금 우리나라에 10여개나 되는 줄 압니다. 일관도국제도덕협회 등등~(kbs역사스페셜에서 다룬 것도 유튜브에 있음). 무속인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관우를 하느님으로 모시는 것은 빼고서 치더라도요. 암튼 21세기 대명천지에도 관우를 하느님으로 받들고 있는 개인 , 종교단체들이 한국에도 천지빠까리이고 조자룡이 문신인지 무신인지 논쟁도 있더군요^^ 사실, 육관사관학교 나온 장교들이 문신인지 무신인지도 헷갈립니다. 총을 백발백중 맞추는 게 실력도 아니고, 스타가 되는데 '정치적 연줄'이 중요하단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군들로 강감찬. 서희. 김부식은 다 문신이지 무신도 아니었고요. 이순신 장군도 문과 급제가 힘들어서 무과에 응시했던 건 주지의 사실이고요. 어쩜 조자룡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요? 주몽도 활을 잘 쏘았다곤 하지만, 종합적으로 추단한다면 '문인'에 가깝지요. 조자룡은 188명 공신록에도 오르지 못 했다는데, 조자룡을 공신록에 올리지 않은 건, 익주 출신들. 어중간해서 빼든 넣든 여러가지로 반발을 살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보여주기용'으로 짜고 친 고스톱이었을 개연성도 있어 보이지만 '공'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자룡이 지장이다, 정치적 식견이 있었다는 평도 있기에 조자룡이 유비에게 건의해서 자신을 공신록에서 빼버림으로써 논공행상 후 역사상 빈번했던 분란.반란을 사전에 차단했던 심모원려였을 수도 있긴 하네요. 조자룡이 바른 말을 해도 뒷탈이 없었던 배경엔 조자룡의 말과 행동엔 진심어린 그런 희생정신이 있단 걸 조야가 다 알아줬던 듯 보이고요. 그래서 나관중도 최대한 조자룡을 미화해서 제갈량. 관우 급으로 대접했던 거로 추정됩니다만 ^^ 물론 유비는, 조자룡을 따로 '티나지 않게' 챙겨줬었겠지요? 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5호장군 겸 경호대장'? 이런 식으로요?^^ 얼마전에도 '육군대장 겸 보안사령관'이 우리 현대사에 있었지 않았던가요?^^ 근래 소설 삼국지 팩트 체크가 유튜브와 일부 방송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어느새 "소설 삼국지는 🐈⬛️9라"란 인식이 팽배하여, 삼국지를 성경 불경 이상으로 신앙해 오던 저 같은 사람들은 '인생을 사기당한 기분'이라 악플도 꽤 있을 성 싶습니다. 제가 악플을 쓰려던 건 아니오니, 성심을 편히 하옵시길~🙏
반에반도 안되는 인구 영토를 가지고 위와 삐까한 국력을 만든 제갈량이 한수위 라고 생각.. 진짜 쌍방울만 가진 유비엿는데 제갈량이 합류하고 나선 전국구로 변신했지.. 제갈량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게가능 할까.. 물론 정사와 나관중 소설의 차이는 있겟지만 큰틀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일테니..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촉의 입장이 앞마당도 못먹은 본진 자원으로 짜내고 짜내야 하는 선수가 헌터맵 멀티 다 먹고 있는 선수가 인구수 200 vs 200 으로 붙었다고 가정하면 생각하기 쉬움. 병력 하나하나 너무나 아깝고 쥐어짜낼거 없는 입장과 대충 입구만 시즈탱크로 막아도 알아서 말라죽는걸 아는 입장 ㅇㅇ 사실상 두 사람의 책략, 계략등 붙는 시기가 너무 늦었음.... 연의가 물론 방통 법정 활약상까지 제갈량에 몰빵해줬었지만 제갈량이 똥줄 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좀 아쉬웠음. 제갈량(정사기준)만 놓고보면 제갈량은 내정쪽 특화 같아서 군사적인 책략은 사마의가 좀 더 나았을거라고 생각함. 책사라기보단 참모 같은 느낌임 제갈량은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적을 정사만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더라도 제갈량이 두 차례의 회전(제4차 북벌, 제 5차 북벌)에서 모두 사마의를 이겼음. 또한 제갈량은 기동전의 대가 사마의를 유일하게 똥줄타게 한 인물임. 마지막 북벌인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이 오장원을 장악한 점이 신의 한 수인게 그동안 사마의는 제갈량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심각한 약점인 군량 보급의 한계를 간파하고 지구전을 강요한 측면이 컸음. 하지만 제갈량이 오장원에 진군해 그 곳에서 조위에 반대하는 이민족을 포섭하고 둔전을 수행해 촉군이 한중에서의 보급에 의존하는 측면을 크게 줄이고 자체적인 군량 조달을 이룰 수 있게 되었음. 즉 제갈량의 죽음이라는 불가지한 변수를 제외한다면 사마의는 그동안 자신이 제갈량을 견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인 지구전의 수행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거임.
그러면 사마의에게 남은 조건은 5차 북벌에 동원된 제갈량의 10만 대군을 회전에서 격파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결과적으로 사마의는 제갈량을 상대로 회전을 치르지 않음. 요동에서의 화려한 기동전으로 공손연을 탈탈 털어버리고 상용에서도 자신의 특기인 기동전으로 맹달의 모가지를 따버린 그 사마의조차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을 상대로 전면전을 걸지 않았음. 즉 그 전략의 대가인 사마의에게도 제갈량이라는 존재는 승패를 속단할 수 없는 상대였음. 물론 제갈량 역시 자신이 이끌고 있는 군대가 촉의 주력군이자 정예군이니 함부로 이 병력을 낭비할 수 없었고. 따라서 굳이 정사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제갈량이 군사적인 측면에서 사마의에게 뒤쳐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물론 사마의가 삼국의 승자라는 건 변하지 않지만.
법정 방통 하나라도 살아있었어야함. 안그래도 인력풀이 적은데 군사령관 없이 제갈량이 모든 역할을 맡으니...법정이 살아있다 해도 촉이 삼국을 통일시켰을거란 생각을 하기는 힘들지만 촉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훨씬 더 오래 버텼을것은 확실함. 그과정에서 위나라 내부의 여러 변수들에 의해 뜻하지 않게 촉에게 운세가 기을었을지는 알수 없는것.
후대 존경받는건 제갈량이겠지만 요즘 세상에자기인생 챙기려면 사마의처럼 살아야지. 본인에 맞는 좋은 환경 고르는것도, 존버하다적절한 시기에 자기뜻 펼치는것도 능력임. 현대로 비유하면 제갈량은 능력이 있음에도, 쓰레기회사에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능력 썩히는 사람임. 어릴땐 사마의는 배신자고 간사한 인물로 인식됐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고 요즘세상이 충의가 밥먹여주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평가도 많이 바뀌는듯
지금이나 1800년전이나 전쟁은 결국 물량전인 것 이지요.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것도 결국 끝없이 소모되는 전쟁무기 전쟁물자 조달에 잇어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에 항복한것 이겠지요. 삼국지에서도 슈(촉)나라와 웨이(위)나라의 영토크기 인구수 국력에 있어 큰 차이가 났기에 제갈량이 결국 막대하게 소모되는 전쟁물자와 군량미 조달에 아주 애를 먹는 장면이 여러곳에서 나오지요. 강대국과 소국이 다이다이 전쟁을 해서는 않되고 소국은 강대국을 대상으로 소극적인 방어전을 전개하여 전쟁을 질질끌어 대국의 군인과 군수물자 군량미를 대량 소모하게 만들어야 승산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당시 전세계 최대의 대국 당나라와 수나라의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던 것도 방어전에 치중하여 랴오둥(요동)의 안시성이나 평양까지 끌어들여 중간에 보급로를 습격하여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량 군인 소모 살상과 보급물자 군량미를 소모케 하는 소극적인 방어전을 실시하여 승리한 것 이겠지요
@@힘들다인생이란 유비 죽은 뒤에 제갈량이 말아먹었음 제갈량이 못났다는게 아니라 촉에서 유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녔었는지 알 수 있음 보급과 행정에서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사람다루는 법은 명백히 유비보다 훨씬 떨어졌음 한마디로 제갈량이 십년을 더 살았다고 한들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거임
쉽게 이기면 토사구팽 당해서 제갈량이 있어줘야 자기도 정치적으로 살 수 있음... 제갈량이 강력해서 자기가 다시 대장군으로 불려옴. 여기서 쉽게 이겨버리면 또 팽당함. ㅋ. 아주 어려운 위치임. 제갈량이 살려면 사마의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 작전을 끊임없이 정치공작 실행했어야 했음. 당연히 정치공작 했겠지만 사마의가 잘 막은듯하니 사마의 승. 실제 치고 받는 전투보다 이런 정치적 공작이 더 힘든 싸움임... 같은 조직에서는 끊임없이 자길 비방하고.. 적은 외부에서 공격해오고 이겨도 정치적 공세당하고 지면 당연히더 역적이 되고... 그러니 버티기지. 버티다 보니 제갈량 스스로 무너짐. 물론 이렇게 버텨서 이겼지만 역시나 쉽게 이길수 있는데 버텼다고 역적 의심받고 모든 권력에서 좌천되게 됨... 사마의 극한직업임... 사마의 입장에선 이런 병신들 다 죽여버리고 내가 권력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됨... ㅋ
@@Woopha 망탁조의 = 4명의 대표적인 역적(나라를 망하게 함) 충무후 = 충성 충, 굳셀 무 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호는 아무거나 대충 짓는게 아니라 그 인물과 관련된 가치개념들을 붙여줌. '누가 자신의 야망을 천하에 펼쳤는가'를 뽑는다면 제갈량은 사마의의 발 끝에도 못 미치겠지만, 누가 '책사'로서 훌륭한가? 라면 충성스러운 제갈량에 사마의가 발 끝도 못 미친다는 것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
위와 촉은 규모가 다릅니다 촉이 위 정도의 규모와 지원이 있디면 제갈량이 북벌때 쓰는 전략도 달랐을것이고 결과도 달랐을겁니다 위연의 전략이 틀려서가 아니라 위는 한 두번 크게 패해도 다시 보충할 수 있지만 촉은 한번 대패하면 나라가 망하기에 항상 승리가 확실한 안정된 전략을 쓸 수 밖에 없었지요
오래가냐를 부귀영화의 시간으로만 본다면 사마의겠지만 1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마의보다 제갈량이라는 이름을 알고있는 사람이 더 많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름을 오랫동안 널리 알린것에 중점을 둔다면 제갈량의 승리. 세상사 부귀영화를 이룬자들은 이루 말할수 없이 많지만 수세기를 넘어 미덕으로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자가 아닐까 생각함 그저 천수를 누리고 등따시고 배부르게 권력과 위세를 떨친 당대의 누군가보다, 고달프고 치열하게 신념과 인류공익 가치를 위해 살아간 이순신 장군을 우리는 위대하다, 고마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최고의 위인으로 생각하듯이 말이다
먼소리야ㅋㅋㅋ결국 땅따먹기하려고 3국이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한건데 무슨 부귀영화냐!! 성격차이고 전략가가 자기마다 스타일이 다른거지 결국 그 성격과 스타일에 따라 패자가 된거고...이순신이랑 왜 비교하지??? 왜놈이 우리나라 쳐들어온거 막은 위인이랑 삼국 먹겠다고 싸우는 놈들이랑 같냐???
둘다 뛰어났던 인물이고.. 처한 상황이 달랐음. 상대적으로 국력이 매우 약했던 촉에 있던 제갈량과 나라의 국력은 훨씬 강했던 위나라의 사마의.. 사용할 수 있는 배경이나 인재가 달랐죠.. 제갈량은 희박한 돌파구로 조금씩 비옥한 위나라 땅따먹기를 해야만 국력이 커질수 있으니 무리를 하면서도 자신을 대신할 인재가 없어서 이것저것 모든일을 손수 다해서 무리하는 스타일이고.. 사마의도 고생은 좀 했지만 강대국이라 좀더 여유는 가지고 있었겠죠.. 실제 둘의 승자를 찾는것 의미가 없죠. 이미 이루어진 결과고 사마의의 손자가 결국은 통일을 했으니깐요..
누가 더 뛰어난가는 사실 애매함 환경 차이가 너무 극명하기때문에 하지만 중요도를 따진다면 개인적으로 이후의 역사에서 누구의 스노우볼이 컸냐가 두인물을 비교할때의 가장 중요한 논점인거같음 그런의미에서 난 사마의임 공명의 북벌이 물론 천하통일을 늦춘건 맞지만 그 이전에 조휴의 석정전투, 조비의 무리한 남정이 없었다면 촉,오 둘중 한 국가는 더 빠르게 퇴장했을거임 하지만 고평릉사변은 결국 서진이 생겨나는 시발점이였고 이는 8왕의 난과 오호16국을 야기함과 동시에 고구려가 강대국으로 성장할수있는 시간을 벌어다줬음
제갈량에 대해 언급한 부분 중 제갈량은 공격적인 삶을 살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을 계속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제갈량의 삶을 해석자가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인 듯 합니다. 제갈량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겨우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공격적인 시도를 하라'는 것이라면 이는 제갈량을 너무나 곡해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한실 부흥과 유비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 아래 북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위나라는 갈수록 강성해지고 있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촉의 미래는 없어지니, 조금이라도 격차가 적을 때 계속 공격을 하여 기회를 노려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제갈량이 처했던 이런 특수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이를 무조건 공격적인 삶을 살라는 메시지로 이해하여 현대인들에게 교훈으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며, 듣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하게 만들 여지가 많습니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시도를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곤 하죠. 제갈량은 결코 그렇게 대책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다고 할만큼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면서 움직이는 타입에 더 가까웠죠. 영상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플랜 B 뿐만 아니라 플랜 C, 플랜 D까지 세워 놓고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스타일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제갈량의 모습이며, 이것이 영상에서 말씀하셨던 동양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사 삼국지에 나오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제갈량은 단순히 위대한 행정가 정도의 인물이 아닙니다. 제갈량은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하여 죄가 있는 자에게는 벌을 주고 선한 행실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주는 것이 신명이 감동할 정도로 너무나 공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선이라도 칭찬하고 상을 베풀며, 아무리 사소한 악이라도 꾸짖고 벌을 내리는 그의 모습은 역사상 다른 인물들에게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죠. 저는 이런 제갈량 같은 사람이 지금 한국의 법 집행을 맡는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악을 저질러도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고, 선을 행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 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이런 제갈량 같은 사람들이 절실한 실정이죠. 요약하자면, 제갈량은 선악 판단을 누구보다도 잘 했으며, 일을 할 때도 정보가 부족한 채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미리 대비를 하고 확실하고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제갈량이 얼마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는 제갈량이 후퇴하면서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마의의 군대를 맞이했을 때 사마의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장수들이 '저것은 허장성세이니 돌격해 들어 가자'라고 했을 때 사마의는 '제갈량은 결코 무모한 모험을 할 사람이 아니다. 저기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을 것이다.'라며 군대를 철수시켰죠. 그때는 제갈량이 정말 급해서 진짜로 속임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즉, 평소에 제갈량은 결코 대책 없이 무모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마의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일화들 중에는 소설에서 허구적으로 지어낸 부분도 있고, 실제 제갈량에 관한 역사적 서술도 있습니다. 영상에서도 소설과 역사서의 제갈량 둘 모두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했듯, 저도 실제로 제갈량이 어떤 인물이었나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제갈량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동양의 지혜에 대해 얘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안전지대 밖으로 발을 내딛으라'는 메시지는 없습니다. 수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평가 절하하는 듯한 메시지가 역사서와 소설 속 제갈량의 삶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역사서 속 제갈량의 삶은 선악을 공정하게 판단하여 설령 벌을 내리더라도 그 벌을 받는 자가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못할 정도로 올바르고 공정한 법의 집행자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소설 속 제갈량의 삶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안전지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공격적인 모습이 아니라, 모든 리스크를 다 파악하고 어떠한 변수가 생겨도 대처가 가능하도록 모든 리스크에 대해 다 완벽한 플랜을 짜 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갈량의 거듭된 북벌은 그것이 그의 신념 속에서는 옳은 일이었기에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서라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안 될 것 같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이런 그의 이야기가 큰 이득을 얻기 위해서 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안전지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전혀 아니죠.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혹시 나의 수비적인 삶이 잘못인가?'하고 놀라지 마시고 이런 내용들도 잘 참고하셔서 다양한 시각에서 제갈량과 사마의의 삶을 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팩트 1. 국력차이가 몇배니 해서 쉽게 생각하는데, 위와 촉의 국력 차이가 엄청났던 것은 당연히 사실이지만 그만큼 위나라는 국경이 길어서 이민족을 상대하는데에도 고생이 많았다. 후한 말이든 삼국 시대이든 역사서가 중국 입장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오랑캐때문에 힘들이는 것은 자존심상 은연히 넘어간 부분이 있다. 또한 촉은 오와 동맹이기도 했으니, 반대로 위는 상대하는 적이 훨씬 많았기에 국력 차이가 그대로 촉과의 서부전선에 적용될 수는 없다. 촉의 인재들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한중공방전을 어떻게 이겼으며 북벌은 어떻게 비볐겠는가? 2. 북벌의 내용도 그렇고 정황상 최소한 맞대결에서의 능력은 제갈량이 우위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사마의의 철통방어 작전은 최고의 작전이었지만 그 전까지 본인 쪼대로 하다가 털렸다. 3.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다. 이걸 추상적으로 그냥 그치 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사마의는 이런 분야에서 최고인 인물이다. 신하로서 나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재능은 아닐 지 몰라도, 촉보다 시스템이 거대하고 무자비했던 위나라에서는 말과 행동을 삼가서 자기 안위를 보존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오래간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예로 제갈량이 조조의 휘하였다면 조조군 내에서도 뛰어난 능력으로 대우받았겠지만 본인이 시스템을 못 버티고 순욱의 꼴을 못 면했을 것이다. 반대로 사마의가 유비의 휘하였다면 제글량만큼의 활약은 아니더라도 잘 처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의 밑에서 제갈량만큼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4. 재미없는 결론이지만 둘 사이의 비교는 서로 장단이 있다. 일대일 비교에는 애로사항이 있고 둘 다 양 나라의 최고 신하로 비슷한 급인 느낌이라, 총합하여 누가 더 뛰어났던 인물인지는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우려가 크다. 5(팩트 아니고 생각). 위인과 영웅으로는 제갈량이 적합하지만, 능력으로는 사마의가 더 뛰어난 것 같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변화무쌍한 시대에 잘 처신하고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체감할 수 있다. 사마의는 스승 가후와 함께 삼국지 최고의 기회주의자이자 능력있는 처신가이다. 그렇다고 가후가 순욱보다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마의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지 수명과 아다리가 아니라, 결국 본인이 언제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운이 따라준 쪽은 촉나라의 특수성과 맞아떨어진 제갈량에 가깝다.
나는 삼국지 인물 중 베스트는 가후라고 봄 삼국지 후반부에 제갈량, 사마의의 싸움으로 서로 부각되어 그렇지 가후 살아온 인생보면 진심 처세술 개쩜 동탁 가신에서 조비 종친까지 능력 개쩌는 인물 물론 사마의/제갈량 중 고르라면 능력은 사마의,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은 제갈량
사마의 - 쓰임이 없어지면 축출되는 상황이라 싸워줄필요도 없고 버티기만 해도 좋음.
제갈량 - 벌어지는 국력,자신의 수명을 건 타임어택..
무조건 뚫고 나가야하는 상황인데 현실주의자의 끝판왕인 사마의가 안싸워줌.
애초에 겜이 안되는 상황이었음
유일하게 성공할뻔한건 1차북벌인데 제갈거품이 ㅂㅅ이라 자오곡계책을 무시하고 안전제일로 가다가 개쳐발렸지~ 그이후엔 북벌은 개꿈이지~ 국력이 압도적으로 딸린 촉이 위를 이기려면 도박적인 전략밖에 답이없지
삼국지 최후의 교훈은..
사마의의 유언 입니다.
"빛이 너무 밝으면 그 그늘도 짙다.
때를 기다리고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가풍을 이어 3대가 노력해서 천하를 얻었죠
"아버지는 아들(인생)을 바라보고 아들은 아버지를 바라보면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 맨오브스틸
이는 무엇을 말하나면 기본적으로 가화만사성을 말하는 겁니다.
충성도 용맹도 의리도 지략도 교훈이지만..
그 그늘에 억눌려 기른 펴지못하는 가정사는 필패 입니다.
나관중은 결론을 사마의로 보고있습니다.
앞부분 재미난 삼국지에 눈팔린다면
나관중이 최후에 삽입한 사마의의 교훈은 잔소리로 취급되고
용마타고 적장 목이나베고
계략으로 대군이나 격파하는데에 홀린거죠
조씨 왕권 악화될떼까지 때를 기다리고
왕위찬탈 노린거지요
혁명가이자 간신 맞는듯
가.화.만.사.성.😊
@@오공블랙-u5i 그것도 능력이죠. 유비나 조조또한 간신입니다.
@@레알레어 유비가 왜 간신이냐 날이 되는소리를해라
정사 보면 연의 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연의는 전쟁의 전략전술에 관한 부분만 특화 시켜놓았죠
설득력있게 말씀을 잘 해주셔서 겸손한 마음이되어 공부잘하고 갑니다.🙏
선생님의 소리지혜를 자주 들어야겠습니다.~^^
북울림이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네요ㆍ고맙습니다ㆍ^^
사마의가 처음 출사를 거절 한 것은 가족 때문인 것도 있었죠 형님도 워낙 출중 하셨고 이미 출사를 하지 않으셨던가 .. 그래서 그 밑에 들어가봐야 형 이라는 그늘 아래 가려지게 되어 큰 역활을 하지 못하였을거란 생각을 했을거란 .. 뭐 추측을 해봅니다 .
또 그것 뿐 아니더래도 당대에는 이미 조조의 최측근 순욱 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곽가 순유 정욱 등등 .. 이미 조조의 밑에는 대단한 책사들이 많이 있었기에 당시 바로 조조의 밑으로 가면 빛을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
역할..
머리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애가 고시 안 보는 거랑 똑같은 격..... 고시 말고도 할 게 많은데..
제갈량과 사마의는 그들의 능력을 펼칠
무대의 크기가 달랐습니다..
똑같이 천하를 꿈꾼 것은 맞지만 제갈량은
끝까지 주인을 모시는 신하의 입장에서
일을 꾀했고 사마의는 신하인 척하며
천하를 도모하는 야심가였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다르니 당연히
사마의가가 천하를 통일한 것이지 제갈량이
스스로 천하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겁니다..
세상엔 능력이 넘쳐도 욕심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설득력 있습니다
사마의와 제갈량의 꿈은 같습니다.
그 누구도 앞으로도 이룰수 없는 꿈!
태 평 성 대
님의 의견이 저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둘 다 뛰어난 책사이나 제갈량은 유비의 충성을 다한 신하일 뿐이고(물론 제갈량도 천하를 꿈꾸긴 했지만 말이 이러니 양해좀 부탁드립니다) 사마의는 천하를 꿈꾸는 야심가였으니 어찌보면 사마의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지만 사마의와 제갈량의 싸움이 장기전으로 이여진다면 제갈량이 삼국을 통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kherayang7072 제갈량은 뛰어난 책사가맞지만 지구력이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더 생존했어도 결과가 달라지진않았을것입니다.
야망도 그릇이라고 봅니다.
시대별로 조망하는 삼국지의 인물들이 있을만큼 삼국지는 인생사 모든것을 반영할 만큼 최고의 소설책입니다. 유비, 조조, 제갈량, 사마의등 너무 멋집니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도 아닌 삼국지의 저자 나관중과 책을 읽는 모두입니다
넌 선수, 나? 관중!
듣기좋은말만 가득하노 ㅋ
멋진 평론이십니다 ~
이게 맞는말입니다
@JunHoBang 실력으론 유비는 조조한테 못비비는건펙트
👍👍👍👍👍👍👍👍감사합니다 선생님 멋지세요
개인의 능력은 다 출중 했음에도 결국 그동안 조상들이 쌓아온 결과물들이 승자와 패자를 나누게 된것이죠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넘이 강한 넘이다." 그리고 "독하게 참고 견뎌야 한다"는 구절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올해 68세인데 독하게 참고 또 참고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 .
살아남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68 ㄷ ㄷ
무슨일을 하는데, 그 나이에 버티는건가요? 대단하심..짧고굵게 가자가 인생모토인데, 50세, 외국계회사 경영자 입니다. 연봉은 3장 조금 안됩니다. 남들 달에 몇백 받을때, 몇천 받는게 좋다 라고 생각합니다.
김종필이 노태우에게 했던말 ㄷ
역설적으로 가진게 없는 사람들이 성공하려는 마음이나 동기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진게 많은 사람들은 잃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주저하고 가진게 없는 사람들일 수록 공격적으로 성공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바탕이 있기 때문이기에
반대로 가진게 없어 욕심을내거나 무리를하죠. 성공은 긴 여정인데 가진게 없으면 공에 욕심을 내기 쉽습니다.
가진게 적은 사람은 (큰것을 가진사람 입장에서) 작은것을 무리하게 탐하다 실패합니다. 자기가 아는것이 그것뿐이기에
문제는 그런 없던 사람들이 정치인이나 당국자
되면 민생에 분풀이 한다는점.
노무현정부의 부동산정책이 그랬었고
그래서 잘뽑아야되요 특히 좌파를
먾은 좋은 말씀 감사하며
앞으로도 귀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Tank you very much sir.
수준 있는 정보.
감동하고 나갑니다.,
두분다 흏륭한 사람입니다 자기 환경에서 최선을 하셨어요
제갈량 같은 분이 지금 있다면 꼭 찾아서 뵙고 싶어요 성품 훌륭한 분입니다
사마의가 더 훌륭함. 공명은 과평가됫서. 소설용이지. 허위과대도 많고. 또 남을 많이 모방햇서. 역사적으로. 공성기도. 조조햇던거를 따라 햇듯이 그런거 많음. 왜냐하면. 옛날 소설은 동정심유발로 독자 마이 끌거든. 지금도 우리는 재벌을 응징하는 드라마나 보면 대리 만족하자네. 사실은 없는 사람 범죄율이 더 많은게 사실인데 말이야.
제갈량도 성품은 잘 몰겠음 유비면 몰라도 유비가 포용력 하나는 최고지
@@better-sn왜 사마의 예기가 나옵니까? 이분은 제갈량 예기 한건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죠
진짜 난 삼국지에서 이 둘의 라이벌구도가 제일 흥미진진함. 유관장 다죽어도 아직 독자입장에서봐도 최고로 든든한 공명이랑 그런 공명을 유일하게 막상막하로 대적할수있는 사마의랑 아무튼 이 둘의 대결구도가 정말 좋은 승부라고 생각함 정사에서도 이 둘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게 참 멋짐
중국놈들 얘기해서 뭐 해?
그 놈들은 역사 내내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아 왔지..
그 놈들은 현재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어서 독재자 시진핑의 놀이감 역할을 하고 있지......
버틴 사마의가 대단하긴하죠.
사마의 사정도 녹록하진않앗죠
제갈량은 혼자 일을 거의 다 햇다치면
사마의는 뒷통수를 조심하며 지켜야햇기에
결과론적으론 둘 다 외로운 싸움을 햇다고봅니다.
능력적인것도 분야가 다르다고생각해요.
어찌보면 두 지략가는 나라가 뒤바뀌는게 더 맞았을수있습니다.
인재풀이적은 촉이 사마가의 지원을받고.
수비적인 전술을 유지하고
인재풀이 뛰어난 위가 제갈량의행정으로 나라를 탄탄하게햇다면.
어떻게보면 그게 더 맞았을지 모른다고생각해요.
두 지략가 모두
세상사는 영원한~ 승자도없고 영원한패자도없습니다 ~ 때론 지는것이 이기는것이고 이기는것이 지는경우도있지요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든 돈이든 남을험담을통해서 자기가 남들이보기에는 우위에있다고생각하지만 과연 그런사람들이 행복할까요?
지금까지의 삼국지 해석 중에 단언코 진심 최고입니다.
계략가 1위는 가후 아닌가여
중국놈들 얘기해서 뭐 해?
그 놈들은 역사 내내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아 왔지..
그 놈들은 현재 공산주의 국가를 만들어서 독재자 시진핑의 놀이감 역할을 하고 있지......
성량이 편하고 안정적이고
듣고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네요.
👍 👍 최고이십니다.
이해도 쉽고 간략히 👍 👍 최고이십니다
누가 더 지략이 뛰어난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에 누가 승리했는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철학과 가치관에 더 중점을 두고 생각해보세요
사마의가 주식했으면 거의 워렌버핏...
존버ㅋㅋ
동서양 번갈아가며 환생인듯ㅎ
그건 아님
제갈량의 장인이 황승언이고 황승언은 채모와 사돈관계였으니 유비가 제갈량을 구할때는 오히려 제갈량이 더 파워가쎘고 유비가 당연히 찾아갈수밖에요~ 제갈량을 산골에 사는 파워없는 능력뛰어난 사람만으로보면 안됩니다
근데 명성은 유비가 더있었고
굿
어떻게 생겨먹은 뇌구조이길래 인간관계를 계산적으로 하냐? 유비는 덕망이 상당히 높았던 군주였기에 자신을 낮출 수 있어서 천하제일의 무장 관우,장비,조자룡,황충,마초까지 얻을 수 있었고 최고의 모사도 한때 서서, 제갈양,강유 등등에 굳은일 잡일까지 고생했던 손건,미축,간옹등이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있었다는것이다!
그 모든인재를 품었던것은 유비의 마음의 그릇때문이다.
@@ingansung ㅎㅎ 연의만 읽지마시고 정사도 좀 읽으세요 ㅎㅎ 혼자서 상상하지마시고~ 스스로의 수준이나 돌아보시길 ㅎㅎ
@@홍석천-h6p 니 수준은요? 한심할정도 입니다. 정사는 연의나 그 시대적 정치적인 영향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추측과 상상 일뿐이죠.
하고 싶은 일은 아 14:19 니었으나 먹고 살기 위해 하게 되었고 능숙해지니 재미가 있어졌고 잘하게 되었더니 월급이 오르고 친했던 동기들의 시기가 따라오더라. 예전의 어린 나는 남들의 시기가 보일때 불쾌했으나 지금의 나는 내가 잘살고 잘하고 있다는 척도로 삼고 더욱 정진한다. 18:23
사마의처럼 신언수구 하려고 노력했었는데 너무어렵더라고요 그러면 로봇처럼살아야하고 자기감정숨기면서 산다는게 낭만도없고 너무힘들었습니다 결국 진행하는 큰일을 망쳐버렸죠
타고난 기질은 변하기가 아주 힘들죠....성격에 맞게 전략과 전술을 펼쳐 성공하시길!!!!!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는게 맞는 거겠죠 ㅎㅎ 굳이 따라한다고 다 그리 될 수는 없는 거겠죠?
2년전 영상과 제목만 다르네요...ㅜㅜ
전국 3영걸(오다, 토요토미, 도쿠가와)의 두견새 일화인데 삼국연의/정사 관련해서는 전혀 그런 일화가 없습니다. 잘못된 정보 하나로 인해 전체가 매도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맞아요.
일본대하소설 대망에 나오는 얘기인듯 한데 갑자기 여기에 나와 긴가민가 했네요.
사마의나 공명급 천재는 중국에 여러명 있었지만 충성심과 성실함은 공명이 최고기 때문에 추앙 받는거 같습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함. 제갈량도 조조 밑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네.
교훈과 인문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교육을 받겠습니다.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사마의에 대한 한줄평은 이게 최고인듯 "평생 남을 위해 책략을 내던 그가 단 한번 자신을 위해 책략을 낸 순간 천하가 뒤집혔다"
@@정민석-f3k eeeww
쓰마이는 주거량에 비해
인간적은 측면만 봐도
한참 아래다 잔인하고 자신들
가족밖에 모르는 간신
반면 주거량은 살생을 함부로
하지않고 애민정신으로 군사와 백성을대함
000
비교가 되나? 위나라에 비하면 촉나라는 지세도 험하고 식량비축도 어렵고 땅도 좁고 병력도 적고 모든게 불리했는데 제갈양이 압승이지
찢었다 ㄷ
제갈량이 인재등용에 인색하거나 능력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은게 아니라 촉에 그만큼 인재가 없었죠.. 위연 양의 는 소인배이며 모반의기가 있다고 늘 경계하고 오래 곁에 둘 인물이 아니라며 특히 실제로 위연을 제거할 계책도 썼으나 결국 갈때까지 위연을 썼죠..조조의 충신들 이후에도 끊임없이 뛰어난 인재가 수급되고 막대한 물량을 바탕으로 지구전이 가능했던 사마의와 제갈량은 경우가 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이야기 입니다. 슈(축)나라 자체에 인재풀이 아주 약했다고 합니다. 즉 쓸만한 인재가 없었다는 것 이겠지요. 정말 국가를 위해 헌신할 머리 좋은 인재는 없고 그냥 어떻게 하면 자기 집안 편하게 잘 먹고 잘 살까 생각만 하고 틈만 나면 국가재산 빼돌릴 생각만하고 간신들이 황제 류선과 어울려 국가예산 빼돌리고 부정축재만 할려고 하기에 제갈공명이 야전에 집중할수가 없다라는 고민도 있을 정도 이라고 말 하니까 슈(촉)에 믿고 쓸만한 인재 풀이 아주 약했다는 것 이겠지요. 주꺼콩밍(제갈공명)이 사후에 전투를 이끌어갈 만한 장차이(장재,장군)이 지앙웨이(강유)뿐이다 라고 말 한것으로 보아서는 무관 군인들의 인재풀도 그만큼 약했다는 것 이겠지요. 거기에다 야전군의 전투에 따른 막대하게 소모되는 군량미과 군수물자가 후방에서 전방으로 보급이 않되는등 작은 나라 소국이 대국과의 전쟁에 따른 막대한 자원의 손실을 만회할수가 없었겠지요. 소국이 대국과 다이다이 전쟁을 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라는 손자병법의 기본 원칙도 무시한 제갈공명의 북벌에 올인한것도 황제 류선의 주색에 빠져 나라 자체가 병들어가는 것과 함께 나라를 망하게 한 기본 요소가 되겠지요
뭔소리래요 위연 개잘썼는데;;;;
곽회만 오면 위연 보내서 개쳐바르고 항상 최선두에 위연을 배치시켰는데;;;;
모반위기 있는 인간을 최전선에 배치하는 ㅂㅅ이 어딨음;;;;
뛰어난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걍 제갈량 클라스가 사마의한테 안될 클라스인거임ㅋㅋㅋ
1차때 마속 보낸것만 봐도 모르겠음?
제장들 전부 반대 응 ㄷㅊ 마속 책임자 ㄱ
패배
음참마속 ㄱ 제장들 전부 반대
응ㄷㅈ 참형
ㅋㅋㅋㅋㅋ? 자 누가 인재를 안썼다고?
제갈량이 인재들을 얼마나 안썼냐면
제갈량이 유비 사후에 잡다한 일까지 다하자 양옹이 위분지체라는 말을 하면서 혼자서 일 다하지말고 부하직원 써라 할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가 사람을 안쓰고 잡다한 일을 혼자다하면서 과도한 업무량이 어땠나면 사마의가 촉 사신과 몇마디 대화로 제갈량이 인재를 안쓰고 지 혼자 다하는걸 파악해서 제갈량이 곧 죽겠구나라고 예측할정도로 난리였음
촉에 인재가 없다기보다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제 할일할만한 인재가 적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촉은 원주민.유연일파,형주일파,후일 위나라투항일파든 다양한 세력들이 사는곳이라 그들을 규합하기가 어려운데다 그들중에 사람을 뽑아쓰기는 더욱 더 어려웠습니다.
과거제가 있는게 아니기에 추천이나 천거로 사람을 뽑아쓰던 당시에 고충이 컸겠죠.
사마의 역시 그 위치까지 오르기까지 매우 고단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굳이 서로 원하는 나라를 골라간 그들의 입장을 논할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위연의 직속상관이 위연이었습니다.
제거는 커녕 안쓰고는 안될입장이었습니다.
그시대사람인줄ㅋㅋ
그렇다면 촉의 인재등용 시스템의 문제, 교육제도의 문제거나.
촉의 미래 전망이 좋지 않아보여서 인재들이
다른곳으로 간것이 아닐까요???
부연설명 3:38 에 언급된 이야기는 만약 새가 울지 않는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여버리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기여코 울게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때까지 기다린다. 라는 일화를 삼국지스럽게 풀어낸것입니다. 해당 비유의 시초는 불명이나 처음 언급되는 책이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라는 책이기 때문에 해당 책에서 만들어진 일화로 판명됩니다.
어이가없네 그따위로 책쓰면서도 작가라고..
머리 잘 쓰는 넘이 최고다 황제 할아버지까지 먹은놈이 최고인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마의와 제갈량의 차이점중 큰거로 꼽자면 사마의는 전쟁할때 지나치게 신중하다는것이고 제갈량은 모아니면도 도박성으로 전략을 짤때가있다는것 근데 그도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있다는것
이에야스와 비슷하네요...
결국 겸손과 인내가 중요한 주요펙트
전 제일 중요한건 장수라고 봤습니다 ㅋㅋㅋㅋ 제갈량도 그렇고 결국 오래 살고 봐야 권토중래든 뭐든 하는 것이니...
요즘 유튜브에 정사 삼국지 영상이 재밌는게 많아서 오히려 연의보다는 정사가 더 재밌습니다. 사마의가 훨씬 뛰어나네요. 제갈량은 곽회한테 거의 다 졌고 법정은 조조 서황 곽회가 다 포함된 대군을 이기게했으니 법정이 그나마 사마의에 비벼볼만 함.
인생은 하륜처럼, 인생은 사마의처럼 이라는 말이 있지
신언수구
고맙습니다 🙏
3:35 이건 일본 갑자야화에서 전국시대 3대 영걸의 성격을 논할때
오다 노부가나는 새를 죽여버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만들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때까지 기달린다는 말에서 유래된 걸로 보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 억지로 울게하고
히데요시는 .. 달래서 울게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 울때까지 기다리고 ...
뭔 개소리를 길게 써놨어?
@@c-fire ㅂㅅ
@@c-fire 국평오 수준
ㅉㅉ 일뽕 다메요
재매이햄과 동후이영감님의 치열한 두뇌싸움이네요ㅜㅜ
지난번 영상 재탕인가요?
사마의: 혁명가+야심가
제갈량: 대행정가+전략가=만능자
주유: 명제독(해군장군)+육군장군
순욱: 왕좌지재, 재상
곽가: 대전략가
육손: 최고의 야전사령관
이 여섯이 최고라고 봄
가후도 대단했던데요
곽가 최고의 전략가 공성전 전략 명중률100퍼
정욱 위의 내로라하는 모사
순욱 왕좌지재(제갈량도 순욱에 비교하면 한수접고 갈정도로 내정최고자)+전투머리도 상당
제갈량 연의뻥티기가 많이 됐고 실상 내정담당 최고자+정치가+야전 사령관인데(보여준게 거의없음 결과론적으로 수성은 뛰어나나 공성전은 거의다 실패)
주유 연의로 인한 상당한 저평가 인물 적벽대전은 제갈량이 한게 아니라 모두다 주유의 머리임. 단지 병으로 죽었으며 오래살았다면 천하2분계 나올정도로 주유야말로 만능이 아닐까(야전에서 앞장설정도로 상당히 용맹했으며 제갈량과 비교해서도 군재가 상당히 좋은 능력자임)
사마의 실상 정치가쪽으로 보는게 가장 좋을듯 군재도 나쁘지않았으나 당시 장합과의 마찰이 있었던걸 보면 장합의 군운용+전략이 더 적합했으며 이걸로 비추어볼때 군재는 나쁘지는 않으나 장합 장료 서황 조인등 내로라하는 장수들에 비해선 턱도 없이 부족한듯이 보임 제갈량도 마찬가지(관우 장비 위연 등 군재 군운용이 부족함)
육손 이릉대전의 최대수혜자 허나 훗날 공성으로썬 보여준게 없으며 이릉빼곤 여러 임팩트가 부족함
육손 이릉마져도 오군의 여러 올스타가 있었고, 당시 유비는 올스타들이 대거 빠짐 그와동시에 브레인도 없음, 육손 지형적 이점이 더 높았음
여몽 오에 있어서 주유 다음 임펙트가 가장 강한 인물이지 않나싶음
그만큼 여몽은 오의 공격적자세를 취하는데에 있어서 주유 손책 과함께 3명이 유일함을 보여주는데 (육손과의 브레인 합작이라고는 하나 당시 육손은 별볼일 없는관작이고 여몽은 대도독 총괄자) 그러므로 여몽 주도하였고
여몽이후로 다시 수성전 및 소극적자세를 오가 취함으로써 개인적으로 공격적자세를 취하는 손책 주유 여몽 3명을 상당히 높고 평하고싶음. 또한 여몽은 자수성가자로써 괄몽상대로 유명함 일명 졸개로써 대도독(군4스타) 자리까지 오름으로 노력의 끝을 달린다고 보면됨(등애, 장합 마찬가지 특히 장합은 항장으로써 삼공밑 관직 얻은것을보면 당시 얼마나 능력이 있고 공적이 많은지를 엿볼수잇음. 장합도 연의때문에 상당히 저평가된 인물)
주유!!!! 저의 영원한 영웅입니다.
정욱ㆍ가후 가 짱임
원소가 정욱만 신뢰 했음 조조는 절대로 원소를
못이김
마지막에 웃는사람이 승리자다.
대대손손 잘나간 사마의 승!
삼국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주시는 대단한 영상입니다. 몇 가지 덪붙이자면, 진서 선제기는 손자 사마염이 황제를 찬탈(양위)한 이후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혁되어 집필된 바라서 '사마의판 용비어천가'임을 전제로 팩트 체크 정신을 잊어선 안 되지 않을까요? 특히 조조와의 기싸움. 제갈량과의 지략대결 등은 용비어천가의 극치로 보이구요. 마치 이성계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둥, 수호지에 나오는 소설 속 설정도 같은 맥락으로 추정됩니다 ^^
제갈량과 사마의가 본래 한 동네에서 자랐다는 썰도 있더군요. 제갈량은 대대로 무신론자였고, 사마의는 대대로 유신론자 집안이었다더군요. 그래 동네 사람들이 두 사람이 논쟁하여 결론이 나는 쪽으로 통일하자 결론을 내서 끝장토론을 벌였었는데, 몇날 며칠 토론 결과 무신론자이던 제갈량은 유신론자가 되고 유신론자이던 사마의는 무신론자로 변했다더군요. 두 사람의 '이빨'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한 일화라 하겠습니다. 무신론자이던 시절엔 천하에 무서울 것도 없고 죽어서도 벌 받을 걱정을 안 하던 제갈량이 유신론자로 변하자 죽어서 벌 받을 일을 피한 제갈량은 우유부단과 소심한 사람으로 변해 유비가 "여차하면 자네가 황제가 되게" 말했음에도 '여차하면'의 정도를 어느 수준으로 정해 놓은 게 없어 어영부영 하다 죽었고, 제갈량에게 설득당해 유신론자에서 무신론자로 변한 사마의와 그 자손들은 죽어서 벌 받을 일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차하면'의 범위와 한계를 엿장수 맘대로 정할 수 있었기에 손자가 황제가 되었다는 학설이 있다고 합니다.
소설 삼국지에 세뇌당했던 세대들이 죽거나 지식사회가 되어 공개적으로 팩트 체크에 들어가자 99.999999%가 가짜뉴스거나 문학적 상상력이거나 정치적 의도로 기획되고 침소봉대한 거란 게 백일하에 드러나자 민초들이 외면해 가는 바람에 그동안 버림 받아왔던 사마의가 재조명되는 추세로 바뀐 성 보입니다. 제갈량이 탁월한 행정가였는지도 실은 의문입니다. 그동안의 제갈량 허상이 다 벗겨지자 '제갈량 빠돌이'들의 악플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출구전략을 마련하느라 날조한 또 다른 허상일 수도 있거든요^^
기독교 신도들 입장에선 "예수의 성령 수태와 사후 부활"을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팩트로 믿고 싶을 것이나 그렇다면 교양과목 철학개론 시간에 배운 3단 논법('모든 인간은 죽는다')이 거짓이 되어 모든 학문은 '🐈⬛️9라'가 될 수도 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잖아요? 불교 신자 입장에선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쳤다"는 경전상의 이야기를 역사적 팩트로 믿고 싶겠지만, 박사 학위 8개 소지자(한국 고대사. 고고 미술사 포함)인 자현 스님이 부처님 오신날 기념 강연회 강의에서 "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기원전후 힌두교와의 우위 논쟁하던 과정에서 부처님이 힌두교 신들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려고 지어낸 '9라'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배운 '염화시중 미소'도, 송 나라 때 선불교가 교종보다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지어낸 🐈⬛️9라"라더군요. 자현 스님은 심지어 "큰 스님들이 법상에만 올라가면 지금도 '염화시중' 이야기를 하는데~억장이 무너집니다. 불교백과사전에도 '지어낸 이야기'라고 쓰여 있습니다"라더라구요^^ 나중에 다시 보니까, 시정 지시를 받았는지 그 부분을 빼버리고 재업로드한 적도 있었구요^^
고대 이집트 투탕카멘 때 재상 '비지르'는 "세상엔 진실이란 없으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란 명언을 남겼는데, 정사 삼국지든 삼국지연의든 진서 선제기든 다를 바는 별로 없었으리라 추정됩니다.
조선시대에도 '선조가 삼국지연의 광신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실록 기록도 많고요. 서울에 동묘, 남묘는 물론 전국에 산재하는 관우 사당(관제묘, 관성묘 등)이 이를 방증하고 심지어 관우를 천제.천존(하느님)으로 받들어 모시는 종교단체도 지금 우리나라에 10여개나 되는 줄 압니다. 일관도국제도덕협회 등등~(kbs역사스페셜에서 다룬 것도 유튜브에 있음). 무속인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관우를 하느님으로 모시는 것은 빼고서 치더라도요. 암튼 21세기 대명천지에도 관우를 하느님으로 받들고 있는 개인 , 종교단체들이 한국에도 천지빠까리이고 조자룡이 문신인지 무신인지 논쟁도 있더군요^^
사실, 육관사관학교 나온 장교들이 문신인지 무신인지도 헷갈립니다. 총을 백발백중 맞추는 게 실력도 아니고, 스타가 되는데 '정치적 연줄'이 중요하단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요.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군들로 강감찬. 서희. 김부식은 다 문신이지 무신도 아니었고요. 이순신 장군도 문과 급제가 힘들어서 무과에 응시했던 건 주지의 사실이고요. 어쩜 조자룡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요? 주몽도 활을 잘 쏘았다곤 하지만, 종합적으로 추단한다면 '문인'에 가깝지요.
조자룡은 188명 공신록에도 오르지 못 했다는데, 조자룡을 공신록에 올리지 않은 건, 익주 출신들. 어중간해서 빼든 넣든 여러가지로 반발을 살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보여주기용'으로 짜고 친 고스톱이었을 개연성도 있어 보이지만 '공'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자룡이 지장이다, 정치적 식견이 있었다는 평도 있기에 조자룡이 유비에게 건의해서 자신을 공신록에서 빼버림으로써 논공행상 후 역사상 빈번했던 분란.반란을 사전에 차단했던 심모원려였을 수도 있긴 하네요. 조자룡이 바른 말을 해도 뒷탈이 없었던 배경엔 조자룡의 말과 행동엔 진심어린 그런 희생정신이 있단 걸 조야가 다 알아줬던 듯 보이고요. 그래서 나관중도 최대한 조자룡을 미화해서 제갈량. 관우 급으로 대접했던 거로 추정됩니다만 ^^
물론 유비는, 조자룡을 따로 '티나지 않게' 챙겨줬었겠지요? 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5호장군 겸 경호대장'? 이런 식으로요?^^ 얼마전에도 '육군대장 겸 보안사령관'이 우리 현대사에 있었지 않았던가요?^^
근래 소설 삼국지 팩트 체크가 유튜브와 일부 방송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서, 어느새 "소설 삼국지는 🐈⬛️9라"란 인식이 팽배하여, 삼국지를 성경 불경 이상으로 신앙해 오던 저 같은 사람들은 '인생을 사기당한 기분'이라 악플도 꽤 있을 성 싶습니다. 제가 악플을 쓰려던 건 아니오니, 성심을 편히 하옵시길~🙏
본인 처지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며 낄땐 끼고 뺄땐 빼는 타이밍적인것이 너무나 중요하네요. 겸손과 인내는 타인이 평가하는덕목이고 그 당시 사마의였다면 그것 또한 계획할 정도로 뛰어낫을것 같습니다
그쵸. 남자는 끼고 빼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함
매번 좋은 교훈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맨손으로 시작했다고 알려진 유방 역시 부농이었기 때문에 돈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인거였습니다 주원장이라는 유별난 예를 제외하곤 다 집안이 배경으로 있어주었던 거죠
사마의왕팬입니다 사마의중달 만세! 미완책사 이거랑 최후의승자 다봤어요 사마의 명언 캬~ 기가막혔죠 사마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름돋을정도로 명언이에요
삼국지의 주인공이 조조라고 하는데… 조조, 유비 등장부터 사마염이 천하를 통일할 때까지가 너무 오래 걸려서 주인공이 있나 싶다. 그나마 오래 살았고 손자가 최종적으로 천하를 통일했으니 사마의가 주인공으로 묘사되는 것이 맞을지도
삼국지의 주인공은 보는사람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이라봄. 유비 조조 손권 뿐아니라 그 밑의 휘하 부하들까지 누구든 주인공이 될수있다고 생각
음...개인적으로 삼국지 전반부는 조조가 주인공이라 불려도 손색없다고 봅니다.
조조 죽으면 -> 제갈량 죽으면 -> 사마의가 맞는 듯
반에반도 안되는 인구 영토를 가지고 위와 삐까한 국력을 만든 제갈량이 한수위 라고 생각..
진짜 쌍방울만 가진 유비엿는데 제갈량이 합류하고 나선 전국구로 변신했지..
제갈량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런게가능 할까..
물론 정사와 나관중 소설의 차이는 있겟지만 큰틀에서 보면 거기서 거기일테니..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촉의 입장이 앞마당도 못먹은 본진 자원으로 짜내고 짜내야 하는 선수가 헌터맵 멀티 다 먹고 있는 선수가 인구수 200 vs 200 으로 붙었다고 가정하면 생각하기 쉬움. 병력 하나하나 너무나 아깝고 쥐어짜낼거 없는 입장과 대충 입구만 시즈탱크로 막아도 알아서 말라죽는걸 아는 입장 ㅇㅇ 사실상 두 사람의 책략, 계략등 붙는 시기가 너무 늦었음.... 연의가 물론 방통 법정 활약상까지 제갈량에 몰빵해줬었지만 제갈량이 똥줄 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좀 아쉬웠음. 제갈량(정사기준)만 놓고보면 제갈량은 내정쪽 특화 같아서 군사적인 책략은 사마의가 좀 더 나았을거라고 생각함. 책사라기보단 참모 같은 느낌임 제갈량은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적을 정사만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더라도 제갈량이 두 차례의 회전(제4차 북벌, 제 5차 북벌)에서 모두 사마의를 이겼음. 또한 제갈량은 기동전의 대가 사마의를 유일하게 똥줄타게 한 인물임. 마지막 북벌인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이 오장원을 장악한 점이 신의 한 수인게 그동안 사마의는 제갈량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심각한 약점인 군량 보급의 한계를 간파하고 지구전을 강요한 측면이 컸음. 하지만 제갈량이 오장원에 진군해 그 곳에서 조위에 반대하는 이민족을 포섭하고 둔전을 수행해 촉군이 한중에서의 보급에 의존하는 측면을 크게 줄이고 자체적인 군량 조달을 이룰 수 있게 되었음. 즉 제갈량의 죽음이라는 불가지한 변수를 제외한다면 사마의는 그동안 자신이 제갈량을 견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인 지구전의 수행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거임.
그러면 사마의에게 남은 조건은 5차 북벌에 동원된 제갈량의 10만 대군을 회전에서 격파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결과적으로 사마의는 제갈량을 상대로 회전을 치르지 않음. 요동에서의 화려한 기동전으로 공손연을 탈탈 털어버리고 상용에서도 자신의 특기인 기동전으로 맹달의 모가지를 따버린 그 사마의조차 5차 북벌에서 제갈량을 상대로 전면전을 걸지 않았음. 즉 그 전략의 대가인 사마의에게도 제갈량이라는 존재는 승패를 속단할 수 없는 상대였음. 물론 제갈량 역시 자신이 이끌고 있는 군대가 촉의 주력군이자 정예군이니 함부로 이 병력을 낭비할 수 없었고. 따라서 굳이 정사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제갈량이 군사적인 측면에서 사마의에게 뒤쳐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음. 물론 사마의가 삼국의 승자라는 건 변하지 않지만.
비유 ㅇㅈ. 딱 저 상황임.
제갈량이 약소국임에도 후일을 도모하지 않고 최대한의 타이밍을 노려 북상한것이 바로 저 이유 때문. 위나라가 더 안정되면 촉나라의 힘으로는 절대로 중원 진출이 불가능하리란걸 알았던거지
그래서 제갈량은 모험을 할 수 없었지. 위연 말대로 장안을 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음. 유선이 왕인데, 제갈량 본인이 죽고나면 멸망은 뻔했으니까. 아마 제갈량은 유비를 추억하며 유선이 잘 이끌기를 바랐을 수도?
법정 방통 하나라도 살아있었어야함. 안그래도 인력풀이 적은데 군사령관 없이 제갈량이 모든 역할을 맡으니...법정이 살아있다 해도 촉이 삼국을 통일시켰을거란 생각을 하기는 힘들지만 촉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훨씬 더 오래 버텼을것은 확실함. 그과정에서 위나라 내부의 여러 변수들에 의해 뜻하지 않게 촉에게 운세가 기을었을지는 알수 없는것.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공명과 문약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댓글 보니 사마의를 너무 저평가 하네. 사마의가 무시 못할 점은 그가 인재풀이 엄청난 위 진영에서 제일 가는 인물이 된 거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건데.
그러니까요. 궁내정치는 상상하기도 두려운데...
다들 소설을 진짜로 믿고있어서 그런듯
소설속 제갈량 역할은 실제로는 법정이 한건데 ㅋㅋ
사마의는 운빨이 좋았던거 아님?
@@장구-q1n 인재 욕심이 많은 조조가 몇 번이나 초청을 해서 강제로 끌고 온 게 사마의 입니다. 그리고 후에 조비, 조예, 조방 4대를 섬기고 태위까지 올라가요. 그게 단순히 운빨로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겠어요?
정사,연의가 신기한게
연의가 접근이 쉬운데
연의에 빠져서 정사보고나면 연의를 안보게 됨
영상감사합니다ㆍ솜결 ^♡
사실 제갈량은 실제론 책사라기보단 행정가에 가깝죠.
난 가장좋아 한 위 인물이 곽가와 사마의죠 방송과 책같은거 나오기전부터 좋아했음 북벌도 다 맊고 진짜 좋은책사
굿 👍
사마와 제갈의.차이는~~
제갈은~~
인생자체가 극적이고 다이나믹한데.반해,
사마는~~
인내심,기다림.참을성의 달인이랄까,
최후의.승자~~랄게 있나?
사마도
조조처럼
몇대를 못가서 다 무너졌는데,ㅋㅋㅋ
제갈량과 육손의 대결이 없었다는 게 독자 입장에선 아쉬웠지 강동 주유 노숙 여몽 죄다 일찍 요절했는데 삼국지 통털어 최고의 인내심을 자랑하는 육손이 또 있을 줄이야
제갈거품 따위를 어디서 육손에 들이대 ㅋㅋ
@@ghwnsha 제갈량이 거품이면 거품 아닌 인간이 어딨냐
@@ghwnsha 삼국지에서 거품이란 말은 오로지 여포를 가리킬때만 쓰는말이다
저도 육손 좋아합니다 ㅎㅎ
후대 존경받는건 제갈량이겠지만 요즘 세상에자기인생 챙기려면 사마의처럼 살아야지.
본인에 맞는 좋은 환경 고르는것도, 존버하다적절한 시기에 자기뜻 펼치는것도 능력임.
현대로 비유하면 제갈량은 능력이 있음에도, 쓰레기회사에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능력 썩히는 사람임.
어릴땐 사마의는 배신자고 간사한 인물로 인식됐는데 시대가 많이 변했고 요즘세상이 충의가 밥먹여주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평가도 많이 바뀌는듯
굿 제갈량
구독과좋아요눌렀습니다^^
이거슨.. 물량 vs 전략 싸움인가....
맞는말이지만 너무 교육적이네요 유툽은 재미로 보는 맛인데
제갈량 능력: 현대로 보자면 9급~1급 공무원이 처리해야 하는 일들 혼자 처리 가능
사마의 능력:별 거 없음의 능력
@@ahn-jun ㅕㅕㅕ
@@ahn-jun .,
실제론 군략면에선 사마의가 위였다고생각함... 제갈량의 전투중의 과오들을 생각하면... 연의의 포장때문에 제갈량이 압도적으로 보이는것뿐... 그러나 제갈량은 미친 행정가기때문에 인물의 능력 자체는 사마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함. 연의에선 이부분이 거의 안나왔지..
삼국지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
구독좋아요 짱입니다
사마의 : 수비갑. 도광양회. 전략가. 매정함
제갈량 : 공수양면. 왕좌지재. 정치가. 신중함
주유 : 공격갑. 왕좌지재. 전략가. 은원확실
이요약 좋은데..? 이중텐이 따로없네요
주유는 그다지 은원관계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밖에 안되었다면 적벽에서 승리하기도 어려운 인물이었겠죠.
굳이 따지자면 유비의 신하 법정정도가 거기 속할겁니다.
왕좌지재로서는 순욱이 제갈량이나 사마의보다 훨씬 나을겁니다.
주유가 왜 왕좌지재 ? 댁 주관적?
@@kunamatatalim5753 은원관계는 ㅇㅈ 솔직히 삼국지에서 뒤끝 끝판왕은 조비,법정 이 둘뿐 그리고 애초에 왕좌지재라는 말이 순욱에서 나왔으니 사실상 순욱은 조조의 장자방(+소하)이라 할 수 있음 만약 순욱 없으면 우리가 아는 조조도 없었음
@@김태우-o3c6z 왕좌지재 라는 말은 순욱 이전부터 쓰였던 단어입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는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텐데 굳이 말 안하셔도 될듯 합니다.
내용도 그렇고 영상 구성 너무 좋음
난 이목소리가 최고 좋아
점점 성장하기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고 경험은 수많은 승자 들에게 배운다 그리고 나는 숨기면 아무도 모른다.
사마의는 중원에서 나오는 막대한 물량으로 지구전을 펼쳤고 제갈량은 얼마 안되는 물량으로 자기목숨을 쥐어 짜서 공격한거고 ㅠㅠ~~ 전 제갈빠라서....
유비가 병법의 기본도 안지키고 주변말 안듣고 오나라 공격한다고 다 날려먹고 마손이 미친짓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었죠
중원에서 나오는 막대한 물량이 있어도 북방이민족, 오, 촉, 요동 견제 서량쪽 이민족들의 난 등 근데 촉은? 한곳만 집중가능
자 누가 불리하다고?
지금이나 1800년전이나 전쟁은 결국 물량전인 것 이지요.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한것도 결국 끝없이 소모되는 전쟁무기 전쟁물자 조달에 잇어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기에 항복한것 이겠지요. 삼국지에서도 슈(촉)나라와 웨이(위)나라의 영토크기 인구수 국력에 있어 큰 차이가 났기에 제갈량이 결국 막대하게 소모되는 전쟁물자와 군량미 조달에 아주 애를 먹는 장면이 여러곳에서 나오지요. 강대국과 소국이 다이다이 전쟁을 해서는 않되고 소국은 강대국을 대상으로 소극적인 방어전을 전개하여 전쟁을 질질끌어 대국의 군인과 군수물자 군량미를 대량 소모하게 만들어야 승산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당시 전세계 최대의 대국 당나라와 수나라의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던 것도 방어전에 치중하여 랴오둥(요동)의 안시성이나 평양까지 끌어들여 중간에 보급로를 습격하여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량 군인 소모 살상과 보급물자 군량미를 소모케 하는 소극적인 방어전을 실시하여 승리한 것 이겠지요
@@아가즈-x9k 그건 촉도 마찬가지지 쓰촨성자체가 산악지역이 워낙 험해서 보급자체가 개빡쎄고 남쪽야만인들 견제도 했어야했음 촉이 절대 유리할수가 없었음 물론 나는 삼국지내에서 조조능력이 최고라고생각한다 조조가 다져놓은 기반이 상상이상이기에 촉이 절대이길수가없었음
@@최코코-i5d 조조가다져놓은기반이아니라 좋은기반속에 조조가 있었던거임 , 능력은쥐뿔도없는데 어부지리로 왕 된거지
제달량과 사마의의 가장 큰 차이는 충의죠
능력적으론 둘다 훌륭하지만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은 제갈량과 같아야 합니다
연의 최종 보스 사마의
만약 사마염이 처세를 잘해서
안정적으로 왕조를 이어 갔다면
사마의 평가를 달라 졌을 것입니다
사마염 : 후계는 사마충으로 하자
가충아 우리 사돈하자
이미 가충 머리통이 너무 커서 가충을 쳐낼 여력이 없었을 겁니다. 황제를 대놓고 주살하는 순간 사마씨의 운명도 끝난거죠. 결국 분사한 진태가 한 말이 맞았죠 가충의 목을 치십시오 그 이상은 되도 그 이하는 안된다 ..
보스는무슨.장난하냐? 어부지리 꽁승 거저먹은 승리자지. 전투에서단한번도이긴적없었고, 제갈량이 1년만더살았더라면 위영토 절반은 날라갔을것.
@@힘들다인생이란 진짜 삼알못이네 이 분
@@힘들다인생이란 유비 죽은 뒤에 제갈량이 말아먹었음
제갈량이 못났다는게 아니라 촉에서 유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녔었는지 알 수 있음
보급과 행정에서는 천재였을지 몰라도 사람다루는 법은 명백히 유비보다 훨씬 떨어졌음
한마디로 제갈량이 십년을 더 살았다고 한들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거임
쉽게 이기면 토사구팽 당해서 제갈량이 있어줘야 자기도 정치적으로 살 수 있음... 제갈량이 강력해서 자기가 다시 대장군으로 불려옴. 여기서 쉽게 이겨버리면 또 팽당함. ㅋ. 아주 어려운 위치임. 제갈량이 살려면 사마의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 작전을 끊임없이 정치공작 실행했어야 했음. 당연히 정치공작 했겠지만 사마의가 잘 막은듯하니 사마의 승. 실제 치고 받는 전투보다 이런 정치적 공작이 더 힘든 싸움임... 같은 조직에서는 끊임없이 자길 비방하고.. 적은 외부에서 공격해오고 이겨도 정치적 공세당하고 지면 당연히더 역적이 되고... 그러니 버티기지. 버티다 보니 제갈량 스스로 무너짐. 물론 이렇게 버텨서 이겼지만 역시나 쉽게 이길수 있는데 버텼다고 역적 의심받고 모든 권력에서 좌천되게 됨... 사마의 극한직업임... 사마의 입장에선 이런 병신들 다 죽여버리고 내가 권력 차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됨... ㅋ
신삼국 쓰마이가 나름 웃긴장면도 많아서 좋은데 ㄲㅂ
망탁조'의'
'충'무후 제갈량이란 단어로 이미 누가 더 뛰어난 '책사'인지는 판가름 남
망탁조의는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를 나열한거고
충무후는 시호인데 그것만 가지고 누가 휼륭한 책사인지 어떻게 판가름함?
@@Woopha 망탁조의 = 4명의 대표적인 역적(나라를 망하게 함)
충무후 = 충성 충, 굳셀 무 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호는 아무거나 대충 짓는게 아니라 그 인물과 관련된 가치개념들을 붙여줌.
'누가 자신의 야망을 천하에 펼쳤는가'를 뽑는다면 제갈량은 사마의의 발 끝에도 못 미치겠지만,
누가 '책사'로서 훌륭한가? 라면 충성스러운 제갈량에 사마의가 발 끝도 못 미친다는 것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
@@_ancoo 유교사상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칭호들이지 현실에대입하면 사마의 조조가 더 뛰어남 ㅇ
@@user-cm3mj2ek4s 맞음 근데 제가 말한건 유교 사상에 기반한 책사에 대해 말한 것이라 굳이 다른 요소를 들고오는건 의미가 없음
위와 촉은 규모가 다릅니다 촉이 위 정도의 규모와 지원이 있디면 제갈량이 북벌때 쓰는 전략도 달랐을것이고 결과도 달랐을겁니다 위연의 전략이 틀려서가 아니라 위는 한 두번 크게 패해도 다시 보충할 수 있지만 촉은 한번 대패하면 나라가 망하기에 항상
승리가 확실한 안정된 전략을 쓸 수 밖에 없었지요
그렇죠 촉과 오는 크게 한 번만 지면 다음 전투는 나라의 존망을 건 승부이고
조위는 2번은 연속으로 대패해야 나라의 존망을 건 승부가 되죠.
촉오가 양쪽 전선에서 모두 이기고 여력이 남아 북진해야 조위의 압도적우위가 깨지는것이니
당장의 승패가 얼마냐 보다는 누가 오래가냐가 더 중요하다 보기 때문에 사마의 승
오래가냐를 부귀영화의 시간으로만 본다면 사마의겠지만
1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마의보다 제갈량이라는 이름을 알고있는 사람이 더 많음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름을 오랫동안 널리 알린것에 중점을 둔다면 제갈량의 승리.
세상사 부귀영화를 이룬자들은 이루 말할수 없이 많지만
수세기를 넘어 미덕으로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자가 아닐까 생각함
그저 천수를 누리고 등따시고 배부르게 권력과 위세를 떨친 당대의 누군가보다, 고달프고 치열하게 신념과 인류공익 가치를 위해 살아간 이순신 장군을 우리는 위대하다, 고마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최고의 위인으로 생각하듯이 말이다
먼소리야ㅋㅋㅋ결국 땅따먹기하려고 3국이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한건데 무슨 부귀영화냐!! 성격차이고 전략가가 자기마다 스타일이 다른거지 결국 그 성격과 스타일에 따라 패자가 된거고...이순신이랑 왜 비교하지??? 왜놈이 우리나라 쳐들어온거 막은 위인이랑 삼국 먹겠다고 싸우는 놈들이랑 같냐???
@@cyh-gk5ss 왜놈들도 땅따먹기하려고 조선 침략한거야
칼춤 추려고 온거 아니야
@@cyh-gk5ss 삼국자도 똑같아. 그때당시엔 살기위한 몸부림이었지.
생존하기위해 반듯이 성장해야하는 중소기업 부사장과, 현상유지만 하면되는 초대기업의 전무.
제갈량의 가장 큰 패착은 주군으로 유비를 택한것임
이미 거기서 승패가 정해졌다
그건 이미 제갈량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초려에서 나오면서 제갈량은
유비 먹을거 없는 그대의 꿈속으로 기어이 끌어들이는구려!
이 한마디로 제갈량 자신의 미래를 확신했죠
하지만 유비가아니었으면 제갈량이 난세에서 활약할 일자체가 없었을 거란것도 팩트
유비가 삼고초려 해서 제갈량이 감동먹어서 그런걸로 암
둘다 뛰어났던 인물이고.. 처한 상황이 달랐음.
상대적으로 국력이 매우 약했던 촉에 있던 제갈량과 나라의 국력은 훨씬 강했던 위나라의 사마의..
사용할 수 있는 배경이나 인재가 달랐죠..
제갈량은 희박한 돌파구로 조금씩 비옥한 위나라 땅따먹기를 해야만 국력이 커질수 있으니 무리를 하면서도
자신을 대신할 인재가 없어서 이것저것 모든일을 손수 다해서 무리하는 스타일이고..
사마의도 고생은 좀 했지만 강대국이라 좀더 여유는 가지고 있었겠죠..
실제 둘의 승자를 찾는것 의미가 없죠.
이미 이루어진 결과고 사마의의 손자가 결국은 통일을 했으니깐요..
사마의가 수비적으로 나온건 유리한걸 알기때문입니다. 몇번의 지략전에서는 졌지만 전략적으로 이긴건 맞죠.
도대체 지략전에서 졌다는건 무슨소리임? 사마의는 한 번도 제갈량에게 지략으로 밀리거나 휘둘려 본 적이 없음ㅋㅋ
@@아가즈-x9k 졌는데
@@아가즈-x9k 노성전투랑 오장원 전투에서 졌는데
@@아가즈-x9k 호로곡 전투에서 죽을뻔한 사마의가 제갈량에게 지략으로 밀리거나 휘둘려 본 적이 없다고?ㅋㅋㅋ
@@아가즈-x9k 진짜 제갈량까면은 지가 뭐 삼잘알이라도 되나본데 정사봐도 사마의가 제갈량 칭찬하는 어록들 수두룩한데 ㅌㅋㅋ 깨시민인척 오지네
지피지기면 백전무패라 하죠.
적어도 삼국지에 있어 그 지피지기의
대명사는 바로 사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마의 일본버젼: 도쿠가와 이에야스 ㄹㅇ 존버의 대가들
누가 더 뛰어난가는 사실 애매함
환경 차이가 너무 극명하기때문에
하지만 중요도를 따진다면
개인적으로 이후의 역사에서 누구의 스노우볼이 컸냐가 두인물을 비교할때의 가장 중요한 논점인거같음 그런의미에서 난 사마의임
공명의 북벌이 물론 천하통일을 늦춘건 맞지만 그 이전에 조휴의 석정전투, 조비의 무리한 남정이 없었다면 촉,오 둘중 한 국가는 더 빠르게 퇴장했을거임
하지만 고평릉사변은 결국 서진이 생겨나는 시발점이였고 이는 8왕의 난과 오호16국을 야기함과 동시에
고구려가 강대국으로 성장할수있는 시간을 벌어다줬음
제갈량에 대해 언급한 부분 중 제갈량은 공격적인 삶을 살았고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전을 계속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제갈량의 삶을 해석자가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인 듯 합니다. 제갈량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겨우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공격적인 시도를 하라'는 것이라면 이는 제갈량을 너무나 곡해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갈량은 한실 부흥과 유비의 뜻을 받든다는 명분 아래 북벌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위나라는 갈수록 강성해지고 있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촉의 미래는 없어지니, 조금이라도 격차가 적을 때 계속 공격을 하여 기회를 노려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제갈량이 처했던 이런 특수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이를 무조건 공격적인 삶을 살라는 메시지로 이해하여 현대인들에게 교훈으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며, 듣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하게 만들 여지가 많습니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격적인 시도를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곤 하죠. 제갈량은 결코 그렇게 대책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다고 할만큼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면서 움직이는 타입에 더 가까웠죠. 영상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플랜 B 뿐만 아니라 플랜 C, 플랜 D까지 세워 놓고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없도록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스타일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제갈량의 모습이며, 이것이 영상에서 말씀하셨던 동양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사 삼국지에 나오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제갈량은 단순히 위대한 행정가 정도의 인물이 아닙니다. 제갈량은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하여 죄가 있는 자에게는 벌을 주고 선한 행실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주는 것이 신명이 감동할 정도로 너무나 공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선이라도 칭찬하고 상을 베풀며, 아무리 사소한 악이라도 꾸짖고 벌을 내리는 그의 모습은 역사상 다른 인물들에게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죠. 저는 이런 제갈량 같은 사람이 지금 한국의 법 집행을 맡는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악을 저질러도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고, 선을 행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 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이런 제갈량 같은 사람들이 절실한 실정이죠.
요약하자면, 제갈량은 선악 판단을 누구보다도 잘 했으며, 일을 할 때도 정보가 부족한 채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미리 대비를 하고 확실하고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제갈량이 얼마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는 제갈량이 후퇴하면서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마의의 군대를 맞이했을 때 사마의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장수들이 '저것은 허장성세이니 돌격해 들어 가자'라고 했을 때 사마의는 '제갈량은 결코 무모한 모험을 할 사람이 아니다. 저기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을 것이다.'라며 군대를 철수시켰죠. 그때는 제갈량이 정말 급해서 진짜로 속임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즉, 평소에 제갈량은 결코 대책 없이 무모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마의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일화들 중에는 소설에서 허구적으로 지어낸 부분도 있고, 실제 제갈량에 관한 역사적 서술도 있습니다. 영상에서도 소설과 역사서의 제갈량 둘 모두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했듯, 저도 실제로 제갈량이 어떤 인물이었나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제갈량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동양의 지혜에 대해 얘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안전지대 밖으로 발을 내딛으라'는 메시지는 없습니다. 수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평가 절하하는 듯한 메시지가 역사서와 소설 속 제갈량의 삶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역사서 속 제갈량의 삶은 선악을 공정하게 판단하여 설령 벌을 내리더라도 그 벌을 받는 자가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못할 정도로 올바르고 공정한 법의 집행자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소설 속 제갈량의 삶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안전지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공격적인 모습이 아니라, 모든 리스크를 다 파악하고 어떠한 변수가 생겨도 대처가 가능하도록 모든 리스크에 대해 다 완벽한 플랜을 짜 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갈량의 거듭된 북벌은 그것이 그의 신념 속에서는 옳은 일이었기에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서라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안 될 것 같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이런 그의 이야기가 큰 이득을 얻기 위해서 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안전지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전혀 아니죠. 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혹시 나의 수비적인 삶이 잘못인가?'하고 놀라지 마시고 이런 내용들도 잘 참고하셔서 다양한 시각에서 제갈량과 사마의의 삶을 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저됴 님처럼 생각하고 느꼈던 부분을 속시원하게 풀어준 글이네요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을 소홀이 하는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말 같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좋은글귀가
내일을 꿈꾸게하네요 감사합니다
멋진 헤석 감사합니다 제갈량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데 크게 공감합니다
일본 전국시대도 최종 승자가 이에야스였던 것처럼 풍운아가 최후의 승자인 일은 드문 것 같네요
두견새 일화말고도 군데군데 잘못된 내용이 많이 보이네요. 아쉽네요 좀.
그렇지요 두견새 일화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얘기지요^^
팩트
1. 국력차이가 몇배니 해서 쉽게 생각하는데, 위와 촉의 국력 차이가 엄청났던 것은 당연히 사실이지만 그만큼 위나라는 국경이 길어서 이민족을 상대하는데에도 고생이 많았다. 후한 말이든 삼국 시대이든 역사서가 중국 입장에서 편찬되었기 때문에 오랑캐때문에 힘들이는 것은 자존심상 은연히 넘어간 부분이 있다. 또한 촉은 오와 동맹이기도 했으니, 반대로 위는 상대하는 적이 훨씬 많았기에 국력 차이가 그대로 촉과의 서부전선에 적용될 수는 없다. 촉의 인재들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한중공방전을 어떻게 이겼으며 북벌은 어떻게 비볐겠는가?
2. 북벌의 내용도 그렇고 정황상 최소한 맞대결에서의 능력은 제갈량이 우위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사마의의 철통방어 작전은 최고의 작전이었지만 그 전까지 본인 쪼대로 하다가 털렸다.
3. 최후의 승자는 사마의다. 이걸 추상적으로 그냥 그치 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사마의는 이런 분야에서 최고인 인물이다. 신하로서 나라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재능은 아닐 지 몰라도, 촉보다 시스템이 거대하고 무자비했던 위나라에서는 말과 행동을 삼가서 자기 안위를 보존해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오래간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예로 제갈량이 조조의 휘하였다면 조조군 내에서도 뛰어난 능력으로 대우받았겠지만 본인이 시스템을 못 버티고 순욱의 꼴을 못 면했을 것이다. 반대로 사마의가 유비의 휘하였다면 제글량만큼의 활약은 아니더라도 잘 처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비의 밑에서 제갈량만큼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4. 재미없는 결론이지만 둘 사이의 비교는 서로 장단이 있다. 일대일 비교에는 애로사항이 있고 둘 다 양 나라의 최고 신하로 비슷한 급인 느낌이라, 총합하여 누가 더 뛰어났던 인물인지는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될 우려가 크다.
5(팩트 아니고 생각). 위인과 영웅으로는 제갈량이 적합하지만, 능력으로는 사마의가 더 뛰어난 것 같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변화무쌍한 시대에 잘 처신하고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체감할 수 있다. 사마의는 스승 가후와 함께 삼국지 최고의 기회주의자이자 능력있는 처신가이다. 그렇다고 가후가 순욱보다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사마의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단지 수명과 아다리가 아니라, 결국 본인이 언제든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운이 따라준 쪽은 촉나라의 특수성과 맞아떨어진 제갈량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책사'로서 정점은 가후라고 생각함. 사마의와 제갈량은 책사보다는 군사로서 더 뛰어난것 같음
가후는 킹정이지
제갈량은 군사로서의 능력도 십분 발휘하기 어려웠고 제갈량은 군사보다는 정치가로 보는게 맞음
@@Woopha 행정가라고 보는게 맞을것 같음.
관리 행정능력은 넘사벽
군사전략은 방통
ㄴㄴ 법정이 넘버1임
제갈량은 행정가 사마의는 참모 정도로 봐야하는게 맞지않나? 촉 인물들이 연의로 뻥튀기 돼서 그렇지 사실 위나라 인물들이 촉나라 바르고도 남죠.
새가 울게만들고 울때까지 기다리게하는 이야기는 전국시대 오다노부다가 그쪽 이야기인데?
나는 삼국지 인물 중 베스트는 가후라고 봄 삼국지 후반부에 제갈량, 사마의의 싸움으로 서로 부각되어 그렇지 가후 살아온 인생보면 진심 처세술 개쩜 동탁 가신에서 조비 종친까지 능력 개쩌는 인물
물론 사마의/제갈량 중 고르라면
능력은 사마의,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은 제갈량
난 제갈량이 더 뛰어나다고 본다. 실제 국력차가 10배이상 나는 촉과 위가 제갈량 죽기전까지 비등하게 싸웠다는 사실만으로 더 말이 필요없지.
최후의 승자가 사마의 였으니 사마의가 열배 위다
굳이 따지면 촉은 그래도 단합이 되는 안정된 편이였고 위나라는 크고 작은 반란으로 인해 단합이 잘안됬고 귀족끼리 서로 견제하는 상황이였음
최후의 승자 사마의 최고!
죽은 제갈량을보고 놀래서 후퇴를 한 사마의.......수명이 더 길었다면 제갈량이 이겼을것이다
저도 제갈량에 한표 입니다
더 많은 군사로도 사마의는 수세적으로 나선거보면 누가 더 뛰어난지는 답이 이미 나와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