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0년대 군번인데 당시 인근지역에 수해가 나서 대민지원 나가서 공장에 토사 다 치우는 작업후 공장주께서 점심으로 라면 + 막걸리 주셨는데 그때 먹은 라면과 막걸리가 아직까지도 최고의 라면 + 막걸리 맛~!! (덤으로 공장주께서 20대 따님(좀 이쁘셨음) 을 데리고 오셔서 점심 지원 시키셨는데 그게 버프가 되어 담날까지 작업할것을 오후에 다 끝냄^^^^^)
85년도 갔는데요..부대에서 배식지원이 옵니다..근데 어른신들이 따로 준비를 했더라고요..소고기 국에.김치.고추장.된장.고추.막걸리..저는 목구멍에 찰때까지 먹고 모내기 하려는데 밥풀이 튀어나오더라고요..ㅎㅎㅎ 사제 고추장.된장에 고추나.오이나.깨잎.상추만 있어도 배 터지게 먹어었요..
88군번입니다. 배식차량이 왔는데 주민들이 화가 잔뜩 나셔서 도와준 병사들 식사대접 못하게 하려면 철수하라고 절대 안된다고 고집 피우셔서 인사계님 난처해 하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짬 내려놓고 농민분들이 알아서 하고 우리가 양보해서 사제밥 먹었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지금 잼버리에서 화장실청소, 식사불량, 그늘막미설치로 이런 일이 생길줄은...
훈훈하고 인간미 풍기는 정경이다. 군인들은 민간인들 도와주어 좋고 부대밖 공기 쒸어서 좋고 더구나 민간인 식사에 막걸리 까지 곁들이니 좋고 민간인들은 바뿐 농번기에 일손 부족을 메워서 좋고 군민 화합의 기회라고하겠다. 70 년도에 경기도 오산 비행장 부근에서 대대본부에서 근무했던 나는 중대 소대별 분산 배치 단독 취사 운용하였던 부대이라 소대 단위로 대민지원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잠시 그시절 추억에 졎어본다. 지나간 과거는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72 년에 중위로 예편한지 하도 오래전이라 군 생활이 까마득한 추억속에 남아있다.
@@user-ks8tt7bv8y 남성 징병제는 수천년을 거의 공짜로 부려먹었죠. 국가 예산이 부족하니 정당한 대우를 못받고 개고생한건 맞아요. 남성들이 손해보고 인건비를 갈아넣은거죠. 지금도 기존예산 외에 여기저기 세금으로 지원해달라는 곳은 많은데 세금은 모자라고... 여자들이 그나마 군가산점을 인정안하는 입장이라면 병역의무도 동등해야 합니다. 화장실 불편하면 본인들이 지으면 될 것이고.
87년 이면 제가 광주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이네요 제 기억으로는 세브란스 병원 지나서 탄벌리에 부대가 있었고 다른 부대는 오포면에 특전 교육단이 있었죠 탄벌리 부대는 자전거타고 많이 지나 다녔었네요 소풍 가는길에 담장 넘어로 군인 아저씨들께 과자도 나눠 드리고 했던 기억도 있네요
대민 지원도 옛날엔 행보관,주임원사급에서 인력장사로 해드신 분도 종종 있었지.. 민간에서 인력 불러서 할일을 대민지원 명목아래 싸게 군병력 투입하고 뒷돈 챙기거나 모래,벽돌,하우스 쇠파이프,목재로 챙겨서 부대에 쌓아놨다가 상급부대에서 뭐 공사하거나 만들라고 하면, 그걸로 만들고 영수증 처리해서 챙기던지, 꽃재배 하우스 농사 가면 동양란으로 화분채로 수십개 챙겨 간다던지 (아마 윗분 상납용?).. 그래서 옛날엔 “중대 행보관 3년해 아파트 한채, 대대 주임원사 3년해 아파트 두채, 여단 주임원사 3년해 서울에 아파트 한채, 사단 주임원사 3년에 서울에 아파트 3채는 챙긴다”는 식이 말이 있었지
70년대 후반쯤인가? 초딩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 들르러 부모님과 함께 경부고속도로 고속버스 타고 내려가다보면 비오는 날임에도 불구 판쵸우의 입구 일렬로 줄지어 엎드려 저 일하면서 지나가는 버스 향해 손 흔들던 군인아재덜이었는데 나두 같이 차창으로 손 흔들구 ㅎㅎ 비맞아 번득거리던 대량의 국방색 판쵸우의들이 멋있게들 보였었음 ^^🙂
제가 수색대시절,민통선내 마현리 민촌에(82년) 모내기 대민지원 당시 민폐절대금지 규정탓에,마현리 이장님께서 여기저기로 연락 후 영감님께서(사단장님)허락,뜻하지 않게 벌어진 닭개장과 육개장 파티!그 맛을 지금도 잊지 않고 고맙게 생각합니다!얼큰한 경상도식 개장국 맛!!!
04군번인데 대민지원 나갔는데 인원수 많으면 힘들고 밥도 그지 같이 주고 그런곳이라고 고참들이 짬으로 눌러서 나랑 비슷한 고참들이랑 6명이 마지막에 남았는데 알고 봤더니 동? 면? 사무소 창고정리.. ㄷ..ㄷ 밥도 치킨 피자를 엄청 시켜줌.. 나중에 고참들이 그거 알고 취침점호 전에 탁구장 앞에 다 집합시켜 놓고 존나 갈굼.. ㅅㅂ.. 그래도 그게 재밌었다!!
저는 85년 경기도 시흥시 소래읍 무지리 17사단에서 군대생활 했는데 대민지원 가서 맛있는 음식과 막걸리 먹은 기억이 새롭네요.
쫄다구 때 대민지원 나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지금병사들은 모심을줄아는사람 없을겁니다! 80년대초 같군요!! 저 병사들 이제
60대가 되었겠군요!! 귀한영상입니다!!
저시절 사람냄새나는 시절입니다!!
저당시 이등병이 고참들 안챙기고 눈치 없이 막걸리 먼저 마시고 취해서 술주정 부리면 어떠게 되나요??
@@던진도너츠-u2o 존나게 털리고 맞겠죠 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고참은 하늘이라서요.
만약 그런일이 생긴다면 상상에 맡깁니다😂
영상속 할머니 아주머니들 아제들..자연의품으로 다들가셨겠죠? ㅠ 인간의 수명도 참으로 짧음
어르신들의 노고 덕에 지금의 한국이 있습니다.
급식의 질도 천지개벽 수준으로 좋아졌고 배달음식도 심심찮게 먹을 수 있는 지금도 바깥 어머님들이 해주시는 밥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데.... 저때 먹는 바깥세상 밥은 얼마나 꿀맛이었을까?
09군번 해군출신입니다 상병때 과일농장 대민지원 갔었는데 주인분께서 얼음띄운 콩국수에 반찬으로 김치랑 수육 대접해 주셨던 그맛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ㅎㅎ
92년 8월 해군입니다.
저두 3함대에 있을때 양산으로 대민지원갔었는데 잊혀지지가 안네요.
@@송영선-l2u 반갑습니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ㅎ
96년 군번인데 장마 수해 대민지원 나갔는데 삼육두유에 국수말아서 주더군요.그것도 시원한것도아닌 미지근한두유!그담부터 콩국수는 입에대지도 않네요.ㅎㅎ
09군번 공병 출신입니다 군대밥 아직도 생각나네요 요즘보다 부실했지만 그래도 생각나요 ㅠㅠ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저땐 사제밥, 사제 김치만 있어도 입에서 살살 녹았지
그시절 전방지역 농사는 군 대민지원 해서 다 지은것 같네요 대민지원 나가서 집밥 꿀 맛였는데
저 때는 민간인 보는게 낙이였지요ㅋㅋ
민간인들과 새참 먹는 기분 먹어 본 군바리만 알겁니다ㅋ😊
83년 대민지원때 인거 같군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와 저두 군대 이쓸 때입니다 ...
인제에 비 엄청오고 대민지원 나갔을때
우리 군인아저씨들 밥 줘야하는데 살림살이 다 작살나서 라면밖에 없다고....
가마솥에 끓여주셨던 그 라면맛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ㅠㅠ
ㅠㅠ
ㅠㅠ
말이 대민지원이지 대대장 중대장 뒷돈 다 받아 처먹는데 많았음
크 막걸리도마시나요
전79학번 89-92년 피부과 공군군의관출신
전공의때부터 수재민 진료다니고 군대가서도 해마다 수재민 진료나감
고아원 진료도 나가고
92년에는 고성 세계잼버리 차출되어 잼버리병원에서 근무
보람이고 추억입니다
대민지원 나간 농가에서 은행나무를 많이 키우는데
거기서 은행을 따서 모으는게 그날 업무였음
태어나서 은행이란걸 처음보고 만지고 그랬는데
왜 냄새가......
진심 똥냄새가... 근데 시간지나니까 코가 무뎌져서 익숙해짐
하루종일 은행을 털고 부대복귀했는데
막사내 똥내가 가득하다고 피복의류 전투화까지
전부 세탁돌리고 중대장님 명령하에
연병장에서 텐트치고 하루잤음 ㅋㅋㅋ
저는 90년대 군번인데 당시 인근지역에 수해가 나서 대민지원 나가서 공장에 토사 다 치우는 작업후 공장주께서 점심으로 라면 + 막걸리 주셨는데 그때 먹은 라면과 막걸리가 아직까지도 최고의 라면 + 막걸리 맛~!! (덤으로 공장주께서 20대 따님(좀 이쁘셨음) 을 데리고 오셔서 점심 지원 시키셨는데 그게 버프가 되어 담날까지 작업할것을 오후에 다 끝냄^^^^^)
30여년전 생각 나네요 대민지원 나간다면 서로 나갈려고 했는데 바깥구경도 하고 무엇보다 그날 하루는 고참들 갈굼을 피할수 있고 막걸리 한잔 먹는 그맛이란 ......
85년도 갔는데요..부대에서 배식지원이 옵니다..근데 어른신들이 따로 준비를 했더라고요..소고기 국에.김치.고추장.된장.고추.막걸리..저는 목구멍에 찰때까지 먹고 모내기 하려는데 밥풀이 튀어나오더라고요..ㅎㅎㅎ 사제 고추장.된장에 고추나.오이나.깨잎.상추만 있어도 배 터지게 먹어었요..
진짜 겁나 맛있는 밥이였을듯.. 고생하고 먹는 시골밥상
식사 개좃이에요. 불어터진 국수반그룻.
83년도2월9일군번 강원도홍천에서 횡성군까지가서 벼베기모내기 많이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국군장병들이 지켜내왔습니다 건강하게 국방의무를 다해주시기를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크.. 저렇게 먹고 먼산 바라보면서
식후땡하면 오지죠…
@@으이구-m2m 오지는 정도겠습니까. 그 담배맛은 진짜 ㅋㅋㅋ
저밥이 진짜 맛있었어요 그립네요 어린시절이 ㅠㅠ 감사합나다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88군번입니다. 배식차량이 왔는데 주민들이 화가 잔뜩 나셔서 도와준 병사들 식사대접 못하게 하려면 철수하라고 절대 안된다고 고집 피우셔서 인사계님 난처해 하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짬 내려놓고 농민분들이 알아서 하고 우리가 양보해서 사제밥 먹었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지금 잼버리에서 화장실청소, 식사불량, 그늘막미설치로 이런 일이 생길줄은...
한참 선배님이시군요96군번인데 소규모로 대민지원나가면 사제밥에 담배까지사주시는분들 적당한 음주도 허용되어서 참 나가고 싶었는데 중대단위이상으로 나가면 민간인들 피해주면 안된다고 배식차가 왔었죠 당연 음주도 불가했고
대민지원은 병사에게도 기쁨과 보람이죠..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영상에 있는 저기가 지금 펑촌아파트로 보여집니다. 88년에는 공사장 사이에 논이 있어서 안양사단도 봄 가을 지원을 갔었어요
포천지역에서 수해가 났는데 대민지원가서 먹은 김치수제비에 포천막걸리 먹었던 생각나네요. 눈치없이 두 잔마셔서 복귀해서 하이바로 어찌나 패던지ㅜㅜ
삼겹살😂이라도 주지 더 꿀맛 일탠대
ㅋㅋㅋ
대민지원 나간 기억나네요 폭우로 벼가쓰러져 다시 세우러 나간 기억이 고양 덕양구, 1번 국도옆 저 논주인 지금 부자되셨을듯
훈훈하고 인간미 풍기는 정경이다.
군인들은 민간인들 도와주어 좋고 부대밖 공기 쒸어서 좋고
더구나 민간인 식사에 막걸리 까지 곁들이니 좋고
민간인들은 바뿐 농번기에
일손 부족을 메워서 좋고
군민 화합의 기회라고하겠다.
70 년도에 경기도 오산 비행장 부근에서 대대본부에서 근무했던 나는 중대 소대별 분산 배치 단독 취사 운용하였던 부대이라 소대 단위로 대민지원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잠시 그시절 추억에 졎어본다.
지나간 과거는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72 년에 중위로 예편한지
하도 오래전이라 군 생활이
까마득한 추억속에 남아있다.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옛부터 농번기때는 임금도 모내기를 도왔다고 나와있으며 이렇게 합심하는 모습을 통해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현명한 생각도 하면 어떨까요?
제설작업 잡초제거 배수로공사도 모두 진지보수 작전에 속합니다. 전쟁나면 누가 대신 해주나요? 평소 훈련해 놔야죠. 농부도 이재민도 다 같은 병사의 가족입니다.
@@user-ks8tt7bv8y 남성 징병제는 수천년을 거의 공짜로 부려먹었죠. 국가 예산이 부족하니 정당한 대우를 못받고 개고생한건 맞아요. 남성들이 손해보고 인건비를 갈아넣은거죠.
지금도 기존예산 외에 여기저기 세금으로 지원해달라는 곳은 많은데 세금은 모자라고...
여자들이 그나마 군가산점을 인정안하는 입장이라면 병역의무도 동등해야 합니다. 화장실 불편하면
본인들이 지으면 될 것이고.
대민지원은 ..참 시간에 막걸리 마시는 맛! ㅎㅎ
인삼밭 대민지원갔었는데
인삼무침에 인삼 깍두기나옴
거기에 막걸리 묵고 ~ 천국가는줄
강원도 철원. 와수리
모 잘 심는다고 논 주인이 막걸리 한 대접 주던 생각이 나네요
84년도 겨울은 왜 그리 추었던지 뻬치카 봉지라면
@@경진고-d5m 빼치카 당번. 일명 빼당도 있던 시절.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어가지만 군생활은 왜 그렇게 아직까지도 생생한지 모르겠습니다
군인 아저씨들께 건빵 얻어먹던시절 그립네요 부끄러워하면서도 마을에 훈련나오면 건빵 한봉지씩 얻어먹곤했었는데
87군번인데 경기도 광주에서 군생활할때 농번기 모내기 대민지원에가서
사제밥 먹을때가 참좋았는데
87년 이면 제가 광주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이네요
제 기억으로는 세브란스 병원 지나서 탄벌리에 부대가 있었고 다른 부대는 오포면에 특전 교육단이 있었죠 탄벌리 부대는 자전거타고 많이 지나 다녔었네요
소풍 가는길에 담장 넘어로 군인 아저씨들께 과자도 나눠 드리고 했던 기억도 있네요
저 때 나는 여중생~~
군인 아저씨들 트럭에 타고 지나가는 것만 봐도 부끄럽고 웃음이 나와서 애먹었음~
정말 멋져 보였었다.
지금은 그저 울 아들들 같아서 귀엽기만 한데ᆢ
영상속 시간의 나는 부끄럽고 얼굴 붉히던 여중생이겠지요~
그 시절이 아련하네요
그러게요 그 시절에는, 그 나이때에는 가을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올 때죠. 아련합니다.
농번기에 대민지원 나가서 보리베고
모심기 중간에 새참에 막걸리 한잔이 꿀맛였죠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그리고 군인들이 다 간후에 논주인인 농민은 애를 태웠죠! 논에 물에 뜬 모가 너무 많아서요~! ㅋㅋㅋ
크리스마스 이브날 사단교회갔었는데 저녁밥으로 우리부대 중대장 사모님께서 남편부대 병사왔다구 대접하셨어요
소고기무우국에 주물럭 볶은 것 상추쌈 하얀 쌀밥 김치등등 나왔는데 완전 입에서 살살 녹았어요 ㅎ 사모님두 엄청 이쁨 ㅋ
우리때만해도(2000년대 중후반) 대민지원을 선호했던 이유중 하나가 1.바깥공기를 마신다는것 2.맛있는 음식들(군대 냉동 식품들 품질을 생각해보면 당시 급양 품질이 어땠는지 알수있음 어렸을때먹던 고향만두보다 못한품질의 만두가 최고급 품이였으니...(같은 고향 만두라도 군납품은 고기보다 대두단백의 함량이 두배가 높았음))
3.합법적인 근무중 음주의 기회 (새참으로 막걸리 주시고 행보관도 용인함)
거기다 당시 군대랑은 다르게 아무리 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음 당시만해도 군바리 이런 인식보다 아들같다는 풍조가 강해서 그런지도...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저 때는 하자 없는 남자들만 군대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하자있어도 강제로 보냄ㅋㅋ
완전 엄마밥 먹는 장병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1980년대 국방색 민무늬 군복 얼룩무늬 군복은 언제. 나왔을까😨🤔?!
92년 2월 논산 군번입니다.
최후방의 연대본부로 자대배치 받았습니다.
훈련소부터 민무늬복 입다가 얼룩무늬 군복을 추가로 보급받아 자대 갔으나
자대는 민무늬여서 아마 일병까지 (1992년말) 민무늬 군복 입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룩무늬 군복은 관물대에 보관함)
1992년 말쯤 자대 고참들도 얼룩무늬 군복이 보급되자 1993년초부터 얼룩무늬 군복으로 통일했을겁니다.
야전상의는 그러나 여전히 민무늬였고요.
제가 제대한 이후인 1994년 말부터나.. 야전상의도 얼룩무늬 보급된걸로 압니다.
군대 밥 먹다가 민가에서 해 주는 밥이 어찌나 맛있던지 아직도 대민지원 시골밥상이 생각납니다.
대민 지원도 옛날엔 행보관,주임원사급에서 인력장사로 해드신 분도 종종 있었지.. 민간에서 인력 불러서 할일을 대민지원 명목아래 싸게 군병력 투입하고 뒷돈 챙기거나 모래,벽돌,하우스 쇠파이프,목재로 챙겨서 부대에 쌓아놨다가 상급부대에서 뭐 공사하거나 만들라고 하면, 그걸로 만들고 영수증 처리해서 챙기던지, 꽃재배 하우스 농사 가면 동양란으로 화분채로 수십개 챙겨 간다던지 (아마 윗분 상납용?).. 그래서 옛날엔 “중대 행보관 3년해 아파트 한채, 대대 주임원사 3년해 아파트 두채, 여단 주임원사 3년해 서울에 아파트 한채, 사단 주임원사 3년에 서울에 아파트 3채는 챙긴다”는 식이 말이 있었지
하천 수해 대민 지원 나갔다가 하천으로 물놀이 나왔던 휴가객이 가져온 김밥을 바라만 보고
민간인이 주는 음식 받아 먹지 말라고 교육 받고,
부대에서 추진해 온 짬빱을 가오 없어 보이게 식판에 먹었던...
저 당시 안양, 과천 이런 서울 초근접권에 논밭 좀 사놓았으면 지금쯤 쩝... 대민지원 모내기 영상 보며 별 생각이 다드네요ㅋㅋ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그리고 군인들이 다 간후에 논주인인 농민은 애를 태웠죠! 논에 물에 뜬 모가 너무 많아서요~! ㅋㅋㅋ
철원 동막리 민통선, 사제밥 먹고싶어 대민지원 나가면 시간이 잘갔져. 흰밥에 배추김치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88군번인데 포천서 모내기 하고 막걸리 먹고 했던기억이 떠오르네요
짬밥먹다 밖에서 사제 세참이면 무조건 맛나지..
89년 군번인데 밖에나가 사회 바람도 쎄고 모내기하며 새참에 막걸리 한잔 마시던 생각이남.
수리산이 보이는거 같기도 하고.모내기하는 논이 왠지 지금의 평촌같은데.안양에서 30년가까이 사는데 안양의 옛모습을 보니 기분이 새롭고 신기하네요
88년6월 입대하고.자대
대민지원 나가서 따뜻하게 대워서 주신 약주 얼마나 맛있던지
85년 가을에 벼베기 대민지원 나가서 소고기 국밥 잘얻어 묵고 부대와서 설사함. 짬밥이 그만큼 부실
병사들만 논에 들어가고 인솔간부들은 논에 안 들어가고 군복 정복을 다 입고 있는 것 봐요! ㅎ
70년대 후반쯤인가? 초딩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 들르러 부모님과 함께 경부고속도로 고속버스 타고 내려가다보면 비오는 날임에도 불구 판쵸우의 입구 일렬로 줄지어 엎드려 저 일하면서
지나가는 버스 향해 손 흔들던 군인아재덜이었는데 나두 같이 차창으로 손 흔들구 ㅎㅎ 비맞아 번득거리던 대량의 국방색 판쵸우의들이 멋있게들 보였었음 ^^🙂
86군번 그시절이 새참에 막걸리 한잔 그립네요
연세도 적지 않으신데 여태 일본 방사능 이라 ㅋㅋ
97년 일병때 양구 해안마을 대민지원 생각나네...
아 가는 세월이 야속 하네요ㅜㅜ
21X66R3대대7중대3소대 입니다
@@난짱구-j5r 백두산 나오셨군요. 제동생은 63연대. 저는 인제에서 복무했네요
87..그당시 빨간 고치까리 묻은 김치만 묵도 눈깔???팍 돌아가지요 .
저건 안해전술..
아 강원도 화천 파포리 고개여...
대한민국에 국군장병분들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절대 제대로 돌아가질 않을꺼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그때가살기좋았어요
93년5월 군번, 철원 2군 지원사령부 625중대 대민지원 나갔던기억이 나네요
국민학교5~6학년보리베기중학생모내기노력봉사공부못해도건강하게만자라다오체력이국력그래도주경야독으로친구들공부잘했다
흐흣...나도 81년도에 군 입대해서 그 해 가을걷이 대민 지원 나갔는데 쌀밥에 막걸리 그리고 거북선 담배 한 갑까지....그 땐 대민지원 서로 나가려고 했었는데....그 당시가 생각나는 영상입니다.
2002년 태풍루사때 강릉태풍피해
대민지원 가서 고생엄청하고
그때 처음 무좀걸린게 20년째 가고있네여😂😂😂
99년 철원 김화 폭우에 쓰러진 벼 새우러 나갔던 기억이 있네요 ᆢ 그때 그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 계시려나?
저 시절이 생각나네
그시절 흰쌀밥에 맛있는 생김치에 막걸리 한잔이면 너무너무 행복했지 고참들 눈치도 별로안봤고 ㅎㅎㅎ
제대후 율길리쪽으론 오줌도 안싼다 했는데 벌써 40년이 흘렀네 그시절이 그립다
90년대 전방철원에서 근무했는데 대민지원나가면
어머니가 말아주시는 국수 수박 정말 맛잇게 먹엇던 기억이
너무 맛잇게 잘먹엇다고 다시하번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아..저때는 런닝이 흰색이었군요 저시절은 안겪어봤지만 그래도 군대 갔다온 입장에서 보면 저거 세탁 관련해서 스트레스받는일 많으셨을 듯 합니다
세탁기도 없었을 것 같은데
VHS 디지털 복원 하시는 일하세요. 소스는 어디서 구하시는거에요???????????????
말그대로 시간탐험하는 분입니다
저때가좋았지 정이 참 많았어
86군번인데 GOP만 근무해서 저런 기억이없네요
굿
눈부상 당해도 대민지원 나감
저녁에 설사함.
윤기좌르르 흐르는 쌀밥에 안먹던 반찬 먹으면 설사함
군대밥이 그렇게 형편 없었나봐요 아타깝~
2군 지역에서 군생활 했지만~2군은 농사 짖는게 주된 임무임!! 대민지원도 잘나가야지 가난한 집 걸리면 김치랑 밥먹구옴!!!
그래도, 군에서 자주 먹었던 똥국에 양배추 김치에 비할 바는 아니었죠.
하얀 쌀밥에 민간인 김치 하나에도 정신이 혼미해졌던 기억이 나네요. ㅎ
게다 운 좋게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면 신세계였죠.
가난과 상관업구 똥손집에 가면 글치
배식차도 추진했음.밖에나가도 사제음식못먹어요.ㅎ
저는 94 군생활인데 대민지원 가면 해방감이 좋았음
좋아요.촌스럽기짝이없지만서도.
85군번,공군 대민지원 나가서 막걸리 신나게 먹고 정신차리고 보니, 내무반이었던 추억~~~
와~평촌신도시 들어서기전 이군요 지금 인덕원 살고있는데 내 또래들같아 아련하네요
대민지원은 역시 사제음식을
먹을수있는게 큰 메리트죠
막걸리나 술도한잔 캭~
시대는 다르지만 대민지원 사제밥 꿀맛이었죠!!
철원에서 군생활 했는데 대민지원 나가면 밥주고 술주고 노는날도 지원해서 나갔던 기억이 난다 97년인가 대민지원 갓다가 술 똥되서 부대까지 태워주시고 내무반 에 대자로 뻣어 자는데 나 코골고 자는데도 점오 했던 기억 난다 ㅋㅋ
애꾸눈 사병은 부대에서 구타 당했나 보네요?ㄷㄷ
98군번인데 첫 대민지원을 99년에 갔었음. 큰 대접에 밥이랑 고기도 주셨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 없더라고.
78년 25사 신산리 앞 논에 지원 가서 먹었던 막걸리 모밥 그맛 지금도 잊지 못하네...
그때는 모내기철 지원 많이 나갔지.... !!
추억들이 아련 합니다
대민지원.. 비리가 장난아니었지요.. 장병들만고생하고
모내기와 보리 타작 , .....
이때 마시는 막걸리 한 잔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나네요
꿀맛!! ^^
그립다. 먹고싶다 ^^
지금과 비교하면 얼굴이 인사계나 중대장급 ㅋㅋ 86군번입니다.
군인들 진짜 고생 많았네요
와 평촌이다 지금 평촌신도시 저 도로가 1번국도 안양시 에 저렇게넓은 논은 평촌
저때 병사들 부모님들이 볼땐 얼마나 애띠게 보였을까?ㅋㅋ지금보면 최소 상사급에서 중대장급 외모ㅋㅋ
83년 이전 영상같네요
84년부터는 야구모자로 변경되었죠
93군번인데 80년대랑 대민지원은 별차이가 없는것 같네요 , 서울 출신인데 부산에서 근무 했는데 총보다는 삽을 더 많이 들었던거 같네요 특히 후방은 대민지원이 많습니다
와 국 엄청 맛있어보인다 ㅎㅎ
ㅋㅎ
81군번인데
부산통합병원에
근무하면서
양산지역에
벼베기 대민지원
딱 한 번
갔었는데
들밥과 막걸리...
ㅋㅎ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하얀쌀밥에 된장국 겉절이 제육볶음이면 끝
87년 기준(동네마다 다르지만) 품삯 15천원
군대에서 먹던 소주와 라면 잊을수가 없다.
대민지원 나가서 막걸리 먹었다고 막걸리 먹은만큼 땀으로 배출 대단하신 중대장
제가 수색대시절,민통선내 마현리 민촌에(82년) 모내기 대민지원 당시 민폐절대금지 규정탓에,마현리 이장님께서 여기저기로 연락 후 영감님께서(사단장님)허락,뜻하지 않게 벌어진 닭개장과 육개장 파티!그 맛을 지금도 잊지 않고 고맙게 생각합니다!얼큰한 경상도식 개장국 맛!!!
역시 상남자들이네 김치에 국만 줘도 맛있게 먹네 요즘 저렇게 주면 애새끼마냥 부모님한테 전화해서 이를텐데
70 80이 진짜 찐 군대시절이지...상남자 시절
그래도 져군바리들은 복받았네..우린 대민지원때도
부대에서 짬밥추진 받아가면서
먹었슴
이거 좋아요 왜냐면 막걸 한사발 얻어 먹을수 있습니다
04군번인데 대민지원 나갔는데 인원수 많으면 힘들고 밥도 그지 같이 주고 그런곳이라고 고참들이 짬으로 눌러서 나랑 비슷한 고참들이랑 6명이 마지막에 남았는데 알고 봤더니 동? 면? 사무소 창고정리.. ㄷ..ㄷ 밥도 치킨 피자를 엄청 시켜줌.. 나중에 고참들이 그거 알고 취침점호 전에 탁구장 앞에 다 집합시켜 놓고 존나 갈굼.. ㅅㅂ.. 그래도 그게 재밌었다!!
ㅋㅋ..43년전 내 모습이네..짬밥먹다가 먹어본 사제밥..최고였습니다.
거의60대이시겠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