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차부대 영상이 있는데 기갑가랑 무적 전차병이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군에 새로 보급된 k1전차와 k20 장갑차 훈련영상이었어요. 중간중간 군인들 모습도 보여주는데, 제가 입었던 개구리 전투복보다도 오래전 국방색 민무늬 입은 군인장병들이었지요. 11년도 군번인 저로써는 까마득한 선배님들의 모습이었고, 특히 영상속 한 전차장님 너무 애기같고 귀여운 얼굴보고 한편으로 짠하기도 했네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거 거의 조작 방송이지.. 부모 모습 안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교들이 욕 처하고 두둘겨 패고 엄청 기합받으면서 막사까지 갔는데 시간 꽤 걸렸다..관물 받을 때도 시간 1분이나 줬나 어쨌나 옷하고 신발등등 사이즈가 안맞아서 나중에 어떻게 동기들 끼리 바꿧고...그나마 야상은 품이 넉넉한 걸로 재수좋게 구했는데 자배배치 받아가서 고참에게 빼앗겼지.. 훈련때는 반은 훈련이고 반은 얼차려였다 장마때 신병 훈련받는데 하도 폭우속에서 굴러서 너무 추워서 덜덜 떨던 기억이 난다.. 점호때는 기합을 엄청 받았는데..물론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별의별 기합을 다 받아봐서 익숙하긴해도 그 강도 가 다르더만.. 김밥말이, 황금박쥐, 치약뚜껑에 원산폭격, 침상위에 슈류탄 등 등 아직도 다 기억난다.. 동작 느리면 무조건 군화발로 밟거나 차서 파랗게 항상 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군생활중 맞아서 죽은 애들도 꽤 있었고, 탈영자들도 많았고 자살자들도 있었다.. 우리 동기하나도 자살했고 걔 찾을려고 사단 훈련소 주변 전지역을 사단 대다수 인원이 수색 나갔다가 목맨 것 발견해서 산에서 수습해서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우리때도 힘들었지만 나보다 더 나이든 사람들은 더한 군생활을 햇을거다... 완전 폭력의 시대였다. 지금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들이 폭력이 난무하고 결혼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들 아마도 전부 저런 폭력사회를 어려서 겪으며 그 트라우마로 폭력을 세습해서가 아닌가싶다. 어린세대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절대 폭력을 물려줘선 안된다. 정말 인간성이 제로인 사회를 겼었다. 국민학교 선생들이 어린 학생을 주먹으로 치는 세상이었으니까.. 아직도 그 맞앗던 기억들이 다 난다..
가난한 나라의 군대는 그 나름의 고통이 있고 부자 나라의 군대도 그 나름의 고충이 있는거지 뭘 편하냐. 저때는 군대를 다녀오면 사회적인 인정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살인기술이나 배우러 간다고 그러잖아 ㅋㅋ 그때는 내 나라 내가 지킨다는 마음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남들 다 빠지는 군대 못빠져서 이 고생을 하나 시간과 땀이 아깝네 이 생각이나 하지.
@@user-Gangwon 악! 너네 부모님 홍길동/ 홍길순이라 찾을 수 없어 해병님! 진짜로 해병님 부모가 현재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을 발설해도 될지에 대한 질문이 있음을 보고하는 것에 대하여 적절한지를 검토해주실 수 있는지를 여쭈어보아도 되는지에 대하여 이상이 없는지에 대한 답변을 받고자 함을 인정해주실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오도기합짜세해병으로써 타의 모범이 될만한 행동인지를 확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존재함을 표현해도 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것이 기열찐빠황룡같지는 않은지를 체크해주시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고 싶은 점이 있음을 알려도 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판단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감히 요구하는 것을 드러내도 되는지를 가르쳐주실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의문을 가져도 되는지에 대한 답을 요청하는 것을 알렸을때 이상이 없는지에 대해 인지할 자격이 본 해병에게 있는지를 정확히 이야기해주십사 감찰해주실 수 있는지를 시인해주실 수 있는지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 했을 경우 본 해병이 해병수육이 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판정을 해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요청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는지를 감사(監査)해주실 수 있는지 묻는것이 기열찐빠같은 요청에 해당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 본 해병에게 중요한 것임을 말씀드려도 되는지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무례하지는 않은지를 궁금해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해 주실 수 있는지를 바라도 되는지를 알기 위해 중첩의문문을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해 거북하게 느끼시지는 않는지를 본 해병이 인지하게 해 주실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이 괜찮은지에 대해 심판해주실 수 있는지를 감히 제가 알게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해병대 내부에 이변이 생기지는 않는지가 공정한지를 심의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아뢰어도 되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 해병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적절성을 검사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문을 하여도 괜찮은지를 검정(檢定)해주실 수 있는지를 결정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본 해병이 감지해도 되는지의 여부를 지각(知覺)해도 되는지를 판단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감히 제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스파링 신청받음 개인적으로 만나서 ( 글러브,헤드기어 제공 당장 길거리만돌아다녀봐도 내주변만봐도 100%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에서 못생겨도 비교도안되게 유리하다는게 뻔히보이는사실이고 .난 오로지 있는그대로 사실을 말할뿐 어느누구의 편도아님 예전에 김미정 이라고 90kg이상 무제한급에서 여자중에 전세계적으로 적수조차없을정도로 독보적인 1위가 한국에있었다. 남편 김정주도 유도선수였고 김미정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둘은 내기를할때마다 시도때도없이 대련을했는데 조건은 김정주가 한다리를들고 한손만쓰는것이다. 이것은 성인과 초등생의 차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심한것이다. 결과는 김미정이 이기적이 단 1번도없고 언제나 아예 쪽도못쓸정도로 동체급 남편에게 상대도안되게 집어던지고패대기쳐짐. 이당시 김미정은 90키로이상 여자유도 넘사벽 세계1위 김정주는 동체급 남자중 국내에서도 조금 알아주는정도 평체73나가는 론다로우지 역시 동체급 일본중학생 평범한 유도부중딩이랑 대련한거보면 성인과 갓난아기 수준으로 나가떨어짐. 참고로 론다로우지 3살부터 유도배우고 평체73에 여자유도 세계은메달이지만 강호동 19살때 삼대760 40초반에 우리동네예체능 에서 스쿼트110실패 타이슨도 19살 세계챔피언 등극 우들리가 ufc 웰터급 5차방어챔피언이고 우들리 평체95 제이크86 이지만 체급과 운동경력이 불리해도 20대가 38세보다 훨씬더 강함. 모든 파워리프팅및 모든스포츠에서 운동경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도 불구하고 40대는 20대에게 완전히 처참하다못해 쪽도못쓸정도로 전멸수준임. 운동을 안한 일반인끼리는 더더욱차이나고 한중일 3개국의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국민기초체력 테스트보면 20대가 삼사십대보다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강함 이십대평균악력 48.6 삼십대46.0 사십대42.2 참고로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모두 일본.한국.중국순이었고 여자끼리차이는적은데 남자끼리는 심하게 차이나고 심폐지구력 차이가 가장극심 유연성만 중국인이1위스파링 신청받음 개인적으로 만나서 ( 글러브,헤드기어 제공 당장 길거리만돌아다녀봐도 내주변만봐도 100%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에서 못생겨도 비교도안되게 유리하다는게 뻔히보이는사실이고 .난 오로지 있는그대로 사실을 말할뿐 어느누구의 편도아님 예전에 김미정 이라고 90kg이상 무제한급에서 여자중에 전세계적으로 적수조차없을정도로 독보적인 1위가 한국에있었다. 남편 김정주도 유도선수였고 김미정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둘은 내기를할때마다 시도때도없이 대련을했는데 조건은 김정주가 한다리를들고 한손만쓰는것이다. 이것은 성인과 초등생의 차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심한것이다. 결과는 김미정이 이기적이 단 1번도없고 언제나 아예 쪽도못쓸정도로 동체급 남편에게 상대도안되게 집어던지고패대기쳐짐. 이당시 김미정은 90키로이상 여자유도 넘사벽 세계1위 김정주는 동체급 남자중 국내에서도 조금 알아주는정도 평체73나가는 론다로우지 역시 동체급 일본중학생 평범한 유도부중딩이랑 대련한거보면 성인과 갓난아기 수준으로 나가떨어짐. 참고로 론다로우지 3살부터 유도배우고 평체73에 여자유도 세계은메달이지만 강호동 19살때 삼대760 40초반에 우리동네예체능 에서 스쿼트110실패 타이슨도 19살 세계챔피언 등극 우들리가 ufc 웰터급 5차방어챔피언이고 우들리 평체95 제이크86 이지만 체급과 운동경력이 불리해도 20대가 38세보다 훨씬더 강함. 모든 파워리프팅및 모든스포츠에서 운동경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도 불구하고 40대는 20대에게 완전히 처참하다못해 쪽도못쓸정도로 전멸수준임. 운동을 안한 일반인끼리는 더더욱차이나고 한중일 3개국의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국민기초체력 테스트보면 20대가 삼사십대보다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강함 이십대평균악력 48.6 삼십대46.0 사십대42.2 참고로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모두 일본.한국.중국순이었고 여자끼리차이는적은데 남자끼리는 심하게 차이나고 심폐지구력 차이가 가장극심 유연성만 중국인이1위스파링 신청받음 개인적으로 만나서 ( 글러브,헤드기어 제공 당장 길거리만돌아다녀봐도 내주변만봐도 100%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에서 못생겨도 비교도안되게 유리하다는게 뻔히보이는사실이고 .난 오로지 있는그대로 사실을 말할뿐 어느누구의 편도아님 예전에 김미정 이라고 90kg이상 무제한급에서 여자중에 전세계적으로 적수조차없을정도로 독보적인 1위가 한국에있었다. 남편 김정주도 유도선수였고 김미정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둘은 내기를할때마다 시도때도없이 대련을했는데 조건은 김정주가 한다리를들고 한손만쓰는것이다. 이것은 성인과 초등생의 차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심한것이다. 결과는 김미정이 이기적이 단 1번도없고 언제나 아예 쪽도못쓸정도로 동체급 남편에게 상대도안되게 집어던지고패대기쳐짐. 이당시 김미정은 90키로이상 여자유도 넘사벽 세계1위 김정주는 동체급 남자중 국내에서도 조금 알아주는정도 평체73나가는 론다로우지 역시 동체급 일본중학생 평범한 유도부중딩이랑 대련한거보면 성인과 갓난아기 수준으로 나가떨어짐. 참고로 론다로우지 3살부터 유도배우고 평체73에 여자유도 세계은메달이지만 강호동 19살때 삼대760 40초반에 우리동네예체능 에서 스쿼트110실패 타이슨도 19살 세계챔피언 등극 우들리가 ufc 웰터급 5차방어챔피언이고 우들리 평체95 제이크86 이지만 체급과 운동경력이 불리해도 20대가 38세보다 훨씬더 강함. 모든 파워리프팅및 모든스포츠에서 운동경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도 불구하고 40대는 20대에게 완전히 처참하다못해 쪽도못쓸정도로 전멸수준임. 운동을 안한 일반인끼리는 더더욱차이나고 한중일 3개국의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국민기초체력 테스트보면 20대가 삼사십대보다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강함 이십대평균악력 48.6 삼십대46.0 사십대42.2 참고로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모두 일본.한국.중국순이었고 여자끼리차이는적은데 남자끼리는 심하게 차이나고 심폐지구력 차이가 가장극심 유연성만 중국인이1위
@@jyoung._.o 추운데 고생 많으시죠... 아무리 힘드셔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이겨내셔서 몸 건강히 전역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힘든 일들은 지나고나면 모두 괜찮아지실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들은 하지마시고 이 또한 금방 지나갈 거라는 마음으로 항상 안전하게 복무하시길 바랍니다..☆
저 때 있었습니다. 내무반에서 군복으로 갈아입은 제 모습도 전신을 찍었는데 .. 편집에서 짤려서 안나왔지요. 제가 속한 소대를 처음부터 훈련 끝날때까지 찍었는데.. 전 초반에 신검을 좀 더 받는 바람에 다른 소대로 변경되어 방송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초반 적성기술할때 머리 윗부분만 나옵니다~ 훈련 끝날 즈음 모두 모여서 저 방송 보던 기억이 납니다.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찾았었는데 드디어 올라왔네요. 옛 생각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올려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90년대까지 구타, 똥국에 깍두기가 일상이었던 군대...우리의 아버지, 삼촌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현재 군에 계신 우리 병사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들 빽없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다 같이 고생하는데 전우들간 잘 챙겨주고 건강히 사회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이때군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때의 선배님들이라 부르기도 머하네요.. 아버지뻘되시는분들이니.. 여튼 엄청 힘들었던 이시대의 아버님들이 나라를 지켜주신 덕에.. 그뒤에 저는 그나마 휴전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편했던 병영생활을 했던것같습니다..고맙고.. 너무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존경합니다.
88년 군번인데 89년 초에 양구로 나갔던 동계훈련 기간 중 한밤중에 선임하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전원 기상시켜서 팬티 바람으로 눈밭 위에서 굴렸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저녁 때부터 눈이 많이 와서 빰빠라 하기 딱 좋은 조건이 조성되었다는 게 이유였더군요.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얼차려를 줬던 게 아니라. ㅋㅋㅋ 양구가 얼마나 춥냐면 밤에 텐트 속에서 자다가 야간 보초 근무 서려고 일어나 전투화를 신으려 하면 낮에 머금었던 습기 때문에 동태처럼 꽁꽁 얼어 굳어져서 발이 안 들어갔더랬죠. 그 겨울에 그런 걸 시켰으니.
83년 논산에 입대했기에 옛날 추억에 빠져 잘 봤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훈련소에서 1주일전 입대한 대학 동창을 우연히 만난것, 입대전 소개받은 기간사병이 있었는데 밤중에 보초서는중에 졸다가 걸렸는데 그 기간사병이여서 무사했던 것, 배식담당을 했는데 처음에 조절실패로 우리 먹을게 없어서 굶었던것, 그 후로는 우리껏 부터 퍼놓고 배식을....ㅋㅋ 행군후에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히고 기진맥진해서 첨으로 링거 맏았던것, 내무반에서 야간불침번을 하다가 너무 똥이 마려서 내 시간 끝나면 바로 튀어갈려고 군화끈, 혁대 다 풀고 문앞에 서 있다고 소대장에거 걸린것, 내 옆에서 자던 친구가 훈련장에서 행군하다가 열을 이탈해서 10걸음쯤 갔는데 탈영으로 다음 기수에 재교육 받은것, 배재고등학교 선배가 기간병이였는데 먹고 싶은거 사주겠다고 해서 뜨끈한 콜라 마신것, 소각장에서 줒은 신문지를 들고 화장실에서 읽고 있는데 기사로 내가 청소년영화제에서 상받은 소식을 알게 된것, 제일 악날했던 조교가 우리소대 담당이라서 이를 악물었는데 지금 그 사람이 가장 보고 싶은거....후반기교육을 받으러 가는 평택행 기차에서 인솔조교가 담배피우게 해주겠다고 하고는 모든 창문을 닫고 피게함. 연기 때문에 담배 피던 놈들이 스스로 끔. 화생방보다 더 큰 고역을 맛봄. 그때 인솔조교가 "이건 일도 아니다.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닥치더라도 지금 이 어려움을 기억하고 극복하라"고 멋진 말을 던진 일.... 아....내 인생 4주에 뭔 일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아, 나는 정확히 5주였다. 카투사로 가는 병력이라서 1주일간 유격을 받음. 유격가서는 무조건 뒤쳐지니까 오히려 열외시켜줌, ㅋ 그때 논산에 차로 데려다 주신 아버지가 그립네요. ㅠ 이미 내 나이는 그때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어 버리고....아들은 오늘이 30이고....아 이 녀석 생일이네.... 이런저런 사정으로 군대를 못보냈는데 그게 가장 아쉽네요.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되거든요.....ㅠ
85년 5월에 수용연대 입소해서 6월까지 26연대에서 훈련 받고 기차타고 강원도 11사단까지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참 힘든 날들이었는데 어느덧 기억 저편에 자라잡고 있다니... 이 영상을 보니 눈물이 핑도네요. 지금도 군번이 자동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니 힘든 훈련이였습니다. 우리 아들도 군대에 다녀오고 참 빠르게 35년이 흘러갔네요. 과거, 현재 우리 대한민국 군인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79년 8월 군번인데 파주 백마부대 9사단 수색대에서 33개월 근무했읍니다.옛날엔 밥그릇 반찬 그릇이 하나로 된 식판을 썼는데 내 기억엔 노란색,초록색 두개였읍니다.맨날 된장국, 무우국,시레기국,무절임 같은 반찬만 나오고 가끔 꽁치가 들어 간 미역국이 나왔읍니다. 사회에 있는 사람들보다 군인 병사가 더 잘 먹던 가난한 시절이었읍니다. 옛날에 밥 먹고 식판과 식기류 닦을 때 찬물만 나와서 음식물이 잘 안지워져 고참이 똑바로 닦으라고 매일 워커발로 때렸읍니다. 고참이 먹는 밥도 식판에 퍼다줘야했고 식판과 식기도 대신 씻어줘야 했읍니다.밥 먹으러 식당가면 잘못도 없는데 식당 뒤에서 간부들 몰래 줄 세우고 왜 그렇게 빠따로 때렸는지 모르겠고 쫄병때는 밥 먹으러 가면 동시에 매 맞으러 가는거라 너무 무서웠읍니다.상병 말호봉 고참이 되어서야 편하게 밥을 먹었읍니다.추운 겨울에도 고참들 옷을 대신 빨래하는데 찬물만 나와서 손발이 얼어 아픈데 아픈 내색을하면 새벽에 고참들이 집합시키고 빠따로 인정사정없이 때렸는데 이악물고 버틴 기억이 있읍니다.그리고 옛날엔 부사관이란게 없었고 하사관이라고 불렀읍니다. 제 기억엔 하사관(선임하사)이 군바리들 먹다 남은 짬밥을 부대에서 키우던 셰퍼드에게 항상 먹이로 줬는데 개밥으로 줄 짬밥을 실수로 준비해두지 않았을 때 하사관(선임하사)이 기분이 안좋은 상태와 겹치는 날에는 빠따로 때리고 괴롭혀서 힘들었읍니다.내무반에서 이등병과 일등병은 쫄병으로 불렸읍니다. 상병, 병장은 고참으로 불리우며 왕이었고 고참들이 밤낮없이 졸병들에게 원산폭격을 시키고 쇠파이프로 허벅지를 많이 때렸고 목봉체조와 오리걸음을 했던 기억도 있읍니다. 옛날엔 군대에서 고참들이 술을 먹었는데 그날 고참들 눈에 잘못들면 일주일에 수십번씩 매미라는 괴롭힘도 받았읍니다. 어느 날, 고참이 술먹고 자다가 내 얼굴에 오줌을 싸서 따뜻함을 느끼고 잠에서 깼는데 일등병 단지 2달도 안된 주제에 빠릿하게 바로 안일어 났다며 다음 날 매미를 오래 시켜서 팔 안쪽에 쓸린 흉터가 내 나이 67살인데도 남아 있읍니다. 일등병이 막 되었을 때 사격훈련 끝나고 내 수통에 물을 상병인 고참이 빼앗아서 다 먹었는데 내가 혼자 다 먹어 치우고 고참은 안준다는 이유로 또 다른 상병 말호봉 고참이 탄약창에 끌고가 빠따로 때리고 워커로 손등을 밟아 생긴 흉터가 지금도 있읍니다.지금 군인들은 모르겠지만 옛날 군인들에게 보급되던 화랑 이라는 담배가 있는데 필터도 없읍니다.이 싸구려 보급 담배가 여름 장마때 홍수 때문에 보급이 안되어서 예민해진 고참들이 매일 빳다로 때렸고 새벽에 집합과 빠따 안치고 밤12시 이전에 집합걸고 빳다치는 고참들은 빠따를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게되니 잠을 잘 수 있게되어 그나마 착한 고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옵니다. 그땐 다 그렇게 맞으며 쫄병 생활을 했읍니다.옛날에 군대 간다고하면 죽으러 간다고 생각하는게 있었읍니다.왜냐하면 군대에서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사망 사건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많다고 들었읍니다.그래서 내가 군대 간다고 아버지께 말하니 아버지는 안우는척 했지만 내가 입대 하는 날, 대문을 나가고 가장 많이 운 사람이 어머니도 아니오, 형, 동생,누나들도 아니오.아버지였다라고 들었읍니다. 79년도 병장 월급이 3800원. 내가 병장일땐 3900원.입대한지 얼마 안지나고 쫄병일 때 휴가 나갔는데 쫄병이 받는 월급으로 초코파이 사먹으면 뭐가 남겠냐며 휴가 때 집에 왔더니 초코파이를 5상자씩이나 아버지가 사주셨읍니다. 아버지가 사주셨던 초코파이가 그립읍니다.내가 군대 갔을 때와 내 아들(85년생, 05군번)이 군대에 있을 때보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졌는데 고참들이 빠따나 쇠빠따,주먹, 워커발로 때리지는 않는지, 먹는 건 잘 먹는지 궁금하군요.요즘 아이들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 폭력이 없었으면 좋겠읍니다.
@@rainbow88977 백마 선배님이시네여^^ 3년 반정도 저보다 빠르시군여. 긴글 내용중 저희때는 밥먹으러 가서 빳다는 없었습니다. 매미도 즐었고여.. 3년 6개월이란 시간이 차이를 만들었네여~~ 기지계라고 소대내 보급품 관리 고참여... 이양반이 졸따구들 괴롭히려고 맘 먹으면 진짜 답없었죠... 대검 하나 없어졌다 해서 채워 놓을때까지 쫄따구들 2달 지옥살고... 야삽 없어졌다 해서 또...나중엔 방독면 없어졌다 해서 또....일병때 제 방독면이 없어져가지고....별의별 생각을 다했던 기억이..돈들고 남대문 시장을 가야하나? 아님 타중대 동기한테 말해서 돈이 궁한 넘에게 방독면 받는 조건으로 돈을 준다고 해볼까..? 아님 취약시간에 타중대 관물대를 습격해야 하나...이건 걸리면 현장에서 목숨걸어야 하는 상황이져.. 보급품 채워 놓을때까지 집합이니까 저는 그게 젤 더러운 제 기억속에 군대 악습이었네요..작년에 일산에 갈일이 있어서 가다가 보니 사단 3182 부대 푯말이 보이고 거기 지나니까 바로 5895부대 29연대져...식사리...동네 이름도 참 거시기했는데요...ㅋㅋ 이젠 모두 아련한 추억이더라고여...
내가 85년 5월 논산군번입니다. 훈련소나 자대기간은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데 전역하던날 집으로 오던길은 지금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버스안에서 동기들이 한마디도 하지않고 나는 눈물이 그렇게 나더군요. 지금도 길에서 보이는 군인들만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프고 미안합니다. 우리세대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지금 이나이에도 가끔가다 다시 군대끌려가는 꿈을 꾼다면 믿으라나? 꼭 그러더라고 내 군복무 기록이 없어져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전쟁후유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해할수 있습니다. 악몽중의 악몽.
우리 할아버지는 625때 참전해서 중국에 포로로 잡혀가 고문까지 당했다가 운 좋게 탈옥해서 산거나 강건너서 강원도 기슭까지 온 몸이 성한데 없이 도망치다 운좋게 거기서 사는 한 남자분이 구해주셔서 거기서 밥 먹고 자면서 일 도우면서 살다가 그 남자분의 따님과 결혼한게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그래서 훈장 있었는데 아직도 생생하네요. 다리에 총알이 박혀서 뺏었던 흉터도 있고... ㅠㅠ
87년 12월 군번입니다. 그래도 좋은 계절에 입대하셨네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입대하는것도 찹찹한데 논산 겨울은 종잡을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험난 했습니다. 추운것도 추운거 지만 비가오다 눈이오고 거기서 각개전투하는라 전투복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하는데 점심식사시간에 그 추운 각개전투장에서 식사를 하는데 손이 너무 떨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아무튼 그 시절 군생활 하신 분들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선배님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고생하셨겠지만 . . . .
85년 2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영상을 보니 그때 그시절이 떠오르네요. 고등학교와 대학 2학년까지 교련을 받아서 기초군사훈련은 어느 정도 체감하여 훈련 자체는 그다지 어렵진 않았지만 훈련의 일부인 얼차례는 만만찮았죠. 자대생활에서 제일 힘든 것은 눈에 잘띠지 않는 시간에 내무반과 구석진 곳에서 벌어지는 고참의 구타였죠. 구타로 인한 자살과 사망자가 속출하자 사단장 지시로 경례구호가 '단결'에서 '구타금지'로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해도 일본군의 잔재가 남아서 인지 계급간은 물론이고, 같은 계급이라도 자대 배치일에 따라 고참(보통 왕고)이 정해준 서열이 내무반에 존재했습니다. 고참은 그야말로 신보다도 더한 무소불위의 전능자였죠.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만 흘렀네요. 32개월 또는 30개월 꽃다운 청춘을 병영에서 함께한 전우들이 그립네요. 오늘도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고 계시는 우리 후배님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드립니다.
군대 가기 전까진 잘 와 닿지 않았지만.. 전역 후 예비군이 끝나가는 지금이 되서야 아부지가 가끔 이야기 하셨던 군대 이야기가 생각나고 이해가 갑니다.. 영상을 보면서 많은게 느껴지네요.. 나름 방송국에서 촬영 오는거라 신경을 썼을텐데도 날이 선 분위기와 당시 장병분들의 고충이 느껴집니다. 주말에 아버지하고 이 영상 한번 같이 봐볼까 싶네요. 아부지가 86년도에 군입대를 하셨기에 뭔가 저 당시 장병분들이 모두 제 아버지 처럼 느껴져 보는내내 찡했습니다. 전국의 아부지분들 모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여기에 나온 분들이 저보다 훈련소 6개월 선임들이 되겠네요. 제가 1986년 2월 18일 논산훈련소 26연대에 입대를 했는데 , 영상에 나오는 시설들이나 훈련들이 다시 기억이 나고 새롭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는 것만 해도 논산호텔이라고 하면서 경기도나 강원도에 있는 각 사단으로 직접 입소하여 훈련받고 나오는 분들보다는 엄청 좋은 시설과 환경이였습니다. 저도 훈련마치고 경기도에 있는 자대에 배치받으니 논산훈련소에 훈련받고 군기가 빠졌다고 2주간 추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논산에서 배출되고 306 보충대에서 자대배치 받기 전에 잠시 대기할때 경례구호가 "선봉, 구타근절"이더구만요... 당시에는 중, 고등학교 다닐때부터 교사들도 군대문화를 받아 학생들을 밀대자루로 줄빠따나 빰을 예사로 때리던 시절이니 군대에서 고생하고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약 35년전 군대입대 시절 추억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89년 6월 군번으로 30개월동안 강원도 화천의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람입니다. 저 영상을 보니 옛추억이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시설과 먹을것 환경이 비교가 안되게 열악하고 강한 훈련과 구타와 기합도 심해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내 젊은 시절을 함께한 전우들과 꽃다운 청춘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91년 2월 군번입니다. 6주 훈련 받고 간다간다 열차타고 양주로 올라왔었죠. 제가 아마 마지막 국방색 군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8학번 동기(저보다 거의 1개월 늦게 입대한)가 저보다 특명포함 거의 1개월을 먼저 제대 하더군요. 저는 89학번이라 전방입소교육이 폐지되어서 없었거든요. 가족면회 끝나고 연병장에 더블백 깔고 앉아 간다간다 열차타기 위해 버스 기다릴 때, 먼저 가는 동기들에게 손흔들며 울면서 헤어졌더랬죠. 교장 나가는 행군에서 훈련소장 지나간다고 인솔하던 내무반장과 부사관들이 우로어깨총 똑바로 못한다며 행군대오에 날라차기 해대던 기억, 식사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아 짬통옆에 서서 빗물에 싱거워진 똥국에 밥말아서 들이 부었던 기억, 탤런트 이미연씨 오빠가 입대 동기라 발렌타인데이때 라면 박스 가득 보내져온 초콜릿을 중대원이 나누어 먹었던 기억 등등 아련합니다.
87년 12월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저희 기수가 4주만 훈련 받는 마지막 기수. 88년 1월군번부터는 5주 훈련에 훈련 마치면 면회가 되었지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훈련도 쉽지 않았는데 강원도 자대가보니... 무척 때리네요. 안 맞으면 언제 집합시킬지 두려워 차라리 일찍 맞기를 학수고대?했던 그때. 덕분에 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순수해 보인다 우리 아버지 세대네...왜 찡하지..진짜 60년대 초중반생들 진짜사나이들 멋집니다
84년 제대 선배로써 진정한 애국은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는 거라네 , 이땅의 모든 장병여러분 사랑합니다
저는 84년생이고 2007년초 전역했는데
딱맞는말씀입니다! 방송이라 설정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모습들은 저희때와도 비슷해서
신기하고 잼있는거 같습니다
저도 84년 전역 했습니다!
82년 3월 군번 82연대....
저때는 종교행사를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될 수밖에 없었음. 군종신부, 목사님들이 개인적으로 고민이 있는 훈련병들을 불러내서 따로 상담도 해주시고 했던 기억이 남.
80년대 전차부대 영상이 있는데 기갑가랑 무적 전차병이라는 배경음악과 함께 군에 새로 보급된 k1전차와 k20 장갑차 훈련영상이었어요. 중간중간 군인들 모습도 보여주는데, 제가 입었던 개구리 전투복보다도 오래전 국방색 민무늬 입은 군인장병들이었지요. 11년도 군번인 저로써는 까마득한 선배님들의 모습이었고, 특히 영상속 한 전차장님 너무 애기같고 귀여운 얼굴보고 한편으로 짠하기도 했네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부조리와 구타속에서 나라를 지켜 주시고, 지금은 한가장의 가장으로 사회에 큰힘이 되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거 거의 조작 방송이지.. 부모 모습 안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조교들이 욕 처하고 두둘겨 패고 엄청 기합받으면서 막사까지 갔는데 시간 꽤 걸렸다..관물 받을 때도 시간 1분이나 줬나 어쨌나 옷하고 신발등등 사이즈가 안맞아서 나중에 어떻게 동기들 끼리 바꿧고...그나마 야상은 품이 넉넉한 걸로 재수좋게 구했는데 자배배치 받아가서 고참에게 빼앗겼지.. 훈련때는 반은 훈련이고 반은 얼차려였다 장마때 신병 훈련받는데 하도 폭우속에서 굴러서 너무 추워서 덜덜 떨던 기억이 난다.. 점호때는 기합을 엄청 받았는데..물론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별의별 기합을 다 받아봐서 익숙하긴해도 그 강도 가 다르더만.. 김밥말이, 황금박쥐, 치약뚜껑에 원산폭격, 침상위에 슈류탄 등 등 아직도 다 기억난다.. 동작 느리면 무조건 군화발로 밟거나 차서 파랗게 항상 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군생활중 맞아서 죽은 애들도 꽤 있었고, 탈영자들도 많았고 자살자들도 있었다.. 우리 동기하나도 자살했고 걔 찾을려고 사단 훈련소 주변 전지역을 사단 대다수 인원이 수색 나갔다가 목맨 것 발견해서 산에서 수습해서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우리때도 힘들었지만 나보다 더 나이든 사람들은 더한 군생활을 햇을거다... 완전 폭력의 시대였다. 지금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들이 폭력이 난무하고 결혼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들 아마도 전부 저런 폭력사회를 어려서 겪으며 그 트라우마로 폭력을 세습해서가 아닌가싶다. 어린세대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절대 폭력을 물려줘선 안된다. 정말 인간성이 제로인 사회를 겼었다. 국민학교 선생들이 어린 학생을 주먹으로 치는 세상이었으니까.. 아직도 그 맞앗던 기억들이 다 난다..
폭력성이 군대에서 시작되었을거라는 말씀에 많은 생각이 듭니다
좋지못한 시대죠.. 추억일뿐 시대는 지금이 더 선진입니다
너무 고생많으셨습니다. 충성!!
지금도 그럴까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맞아요 군대는 폭력성을 길러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은 개고생한게 이 영상 하나로도 느껴진다...
얼만큼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 가고 나라면 하루도 못 버틸 느낌인데..
진짜 존경스럽다
논산91년 9월군번인데
왜이케 눈물이나는겨?
선배님들 고생하셨고 후배님들 몸건강하게 전역하시길요
대한민국 사랑합니다
저 시절 군 생활은 진짜 어떻게 버텼을까... 진짜 존경합니다 선배님들
전역한지 1달도 안됐지만 현재 묵묵하게 군 생활하고 있는 후배님들 무사히 전역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논신훈련소 각개전투 훈련장 식수에는 실 지렁이가 꿈틀꿈틀하고
밥에도 빨간 실지렁이들이있었음. .
각개전투장가면 점심은 굶었고..
내무반 막사 세면장 가도 지렁이가 꿈틀꿈틀.. 지금생각해보면 최악이었음.
샤워하라 해놓고 머리에 비누 칠하면 집합...ㅎㅎㅎ
돌아버리겠더만 ..
캠프잘갔다왔나ㅋㅋㅋㅋㅋ 영내에서 폰사용, 18개월, 월급 수십만원ㅋㅋㅋㅋ 개씹꿀캠프
@@eurospo ㅋㅋㅋㅋㅋ 늦게 태어나지 그랬노
@@eurospo 꼬우면 늦게 태어나던가 ㅋㅋㅋㅋ 늙어서 좋을 거 있노
이때 졸라 쳐맞고 월급은 없고 기간은 3년이고 다치면 묻히던 그런 군대. 이분들의 희생으로 우리 군생활이 편한거라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군대는 그 나름의 고통이 있고 부자 나라의 군대도 그 나름의 고충이 있는거지 뭘 편하냐. 저때는 군대를 다녀오면 사회적인 인정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살인기술이나 배우러 간다고 그러잖아 ㅋㅋ 그때는 내 나라 내가 지킨다는 마음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남들 다 빠지는 군대 못빠져서 이 고생을 하나 시간과 땀이 아깝네 이 생각이나 하지.
지나가던 06군번 저때?! 닥치고 인정한다.
@@AF-qk8ty 너가 이런 생각을 할수 있다는게 군대가 많이 편해졌다는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8:20 저때도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함 ㅋㅋㅋ
@@AF-qk8ty 사회적 인정 없었습니다. 그냥 의무니까 어쩔수 없이 갔죠. 군 가산점 같은것 당연히 없었어요.
국가를 위해 본인의 젊을을 희생하신 모든분들 고생많으셨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도 군대를 다녀왔지만 저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하셨던 선배님들 정말 희생이 많으셨고 감사드리는 마음뿐입니다.
07군번입니다. 아버님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이런 시절이 있었기에 저희들이 조금은 더 나은 군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ㅎㅎ 나도 07군번인대 반갑습니다
07도 힘들었을것 같은데여... 선배님들 고생하셨슴다
07 ㅎㅇ
06 군번입니다 안녕하세요 꾸벅..
저도 2007년 1월 2일 입대입니다. 반갑습니다. :)
86도 아부지가 나를데려다주셨는데 그아버지는 세월속으로가셨다 내가 그아버지가되었다
세월이 이렇게빠른데 그땐몰랐다 그립다
그때 그시절~~
영상 속 풋풋했던 분들 대부분 50대시겠네요 ㅠ
저도86년3월군번입니다
틀
그리고 저분들의 아들들도 이미 전역했거나 지금쯤 군대에 있겠네요
@@김-i6l4f ?난독증이신건가 잼민이신건가? 글쓰신분이 말씀하신 세월이 그세월호가 아닐텐대요?
95년 6월 15일 논산에서 훈련 받았습니다.
저 선배님들은 60세 정도 되셨네요.
저도 50세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총알처럼 지나가네요.
선후배님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85년 5월15일 입대한 신병들 입니다
95년 6월1일자 입니다. 반갑네요 ㅎ
@@woone41595년 6월 1일에 논산 입소대에서 6월 7일에 귀향받고 11월에 재입대 했습니다.
전 99년 6월군번인데요 제나이 46세 세월빠르네요
92년1월9일 입대 입대입니다.
84년에는 머리깍고 단체 입소했었는데... 간혹 군대가는 꿈 꾸는 날이 있는데 그때 마다 놀라고 합니다... 잠깨면 휴~~~ 합니다...^^
아.... 다시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이 노래가사가 저 시대를 지나온 50대의 내 나이에 사무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고생하셨고 21년 현역이 인사드리옵니다.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21현역이 이어받는다는건..쌉소리
@@user-Gangwon 악! 너네 부모님 홍길동/ 홍길순이라 찾을 수 없어 해병님!
진짜로 해병님 부모가 현재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것을 묻는 것에 대한 승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을 발설해도 될지에 대한 질문이 있음을 보고하는 것에 대하여 적절한지를 검토해주실 수 있는지를 여쭈어보아도 되는지에 대하여 이상이 없는지에 대한 답변을 받고자 함을 인정해주실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오도기합짜세해병으로써 타의 모범이 될만한 행동인지를 확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존재함을 표현해도 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것이 기열찐빠황룡같지는 않은지를 체크해주시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고 싶은 점이 있음을 알려도 되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판단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을 감히 요구하는 것을 드러내도 되는지를 가르쳐주실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 의문을 가져도 되는지에 대한 답을 요청하는 것을 알렸을때 이상이 없는지에 대해 인지할 자격이 본 해병에게 있는지를 정확히 이야기해주십사 감찰해주실 수 있는지를 시인해주실 수 있는지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 했을 경우 본 해병이 해병수육이 되지는 않는지에 대해 판정을 해 주실 수 있는지에 대한 요청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는지를 감사(監査)해주실 수 있는지 묻는것이 기열찐빠같은 요청에 해당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이 본 해병에게 중요한 것임을 말씀드려도 되는지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무례하지는 않은지를 궁금해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해 주실 수 있는지를 바라도 되는지를 알기 위해 중첩의문문을 계속해도 되는지에 대해 거북하게 느끼시지는 않는지를 본 해병이 인지하게 해 주실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이 괜찮은지에 대해 심판해주실 수 있는지를 감히 제가 알게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해병대 내부에 이변이 생기지는 않는지가 공정한지를 심의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아뢰어도 되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 해병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적절성을 검사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문을 하여도 괜찮은지를 검정(檢定)해주실 수 있는지를 결정해주실 수 있는지에 대해 본 해병이 감지해도 되는지의 여부를 지각(知覺)해도 되는지를 판단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감히 제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스파링 신청받음 개인적으로 만나서 ( 글러브,헤드기어 제공 당장 길거리만돌아다녀봐도 내주변만봐도 100%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에서 못생겨도 비교도안되게 유리하다는게 뻔히보이는사실이고 .난 오로지 있는그대로 사실을 말할뿐 어느누구의 편도아님 예전에 김미정 이라고 90kg이상 무제한급에서 여자중에 전세계적으로 적수조차없을정도로 독보적인 1위가 한국에있었다. 남편 김정주도 유도선수였고 김미정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둘은 내기를할때마다 시도때도없이 대련을했는데 조건은 김정주가 한다리를들고 한손만쓰는것이다. 이것은 성인과 초등생의 차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심한것이다. 결과는 김미정이 이기적이 단 1번도없고 언제나 아예 쪽도못쓸정도로 동체급 남편에게 상대도안되게 집어던지고패대기쳐짐. 이당시 김미정은 90키로이상 여자유도 넘사벽 세계1위 김정주는 동체급 남자중 국내에서도 조금 알아주는정도 평체73나가는 론다로우지 역시 동체급 일본중학생 평범한 유도부중딩이랑 대련한거보면 성인과 갓난아기 수준으로 나가떨어짐. 참고로 론다로우지 3살부터 유도배우고 평체73에 여자유도 세계은메달이지만 강호동 19살때 삼대760 40초반에 우리동네예체능 에서 스쿼트110실패 타이슨도 19살 세계챔피언 등극 우들리가 ufc 웰터급 5차방어챔피언이고 우들리 평체95 제이크86 이지만 체급과 운동경력이 불리해도 20대가 38세보다 훨씬더 강함. 모든 파워리프팅및 모든스포츠에서 운동경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도 불구하고 40대는 20대에게 완전히 처참하다못해 쪽도못쓸정도로 전멸수준임. 운동을 안한 일반인끼리는 더더욱차이나고 한중일 3개국의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국민기초체력 테스트보면 20대가 삼사십대보다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강함 이십대평균악력 48.6 삼십대46.0 사십대42.2 참고로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모두 일본.한국.중국순이었고 여자끼리차이는적은데 남자끼리는 심하게 차이나고 심폐지구력 차이가 가장극심 유연성만 중국인이1위스파링 신청받음 개인적으로 만나서 ( 글러브,헤드기어 제공 당장 길거리만돌아다녀봐도 내주변만봐도 100%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에서 못생겨도 비교도안되게 유리하다는게 뻔히보이는사실이고 .난 오로지 있는그대로 사실을 말할뿐 어느누구의 편도아님 예전에 김미정 이라고 90kg이상 무제한급에서 여자중에 전세계적으로 적수조차없을정도로 독보적인 1위가 한국에있었다. 남편 김정주도 유도선수였고 김미정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둘은 내기를할때마다 시도때도없이 대련을했는데 조건은 김정주가 한다리를들고 한손만쓰는것이다. 이것은 성인과 초등생의 차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심한것이다. 결과는 김미정이 이기적이 단 1번도없고 언제나 아예 쪽도못쓸정도로 동체급 남편에게 상대도안되게 집어던지고패대기쳐짐. 이당시 김미정은 90키로이상 여자유도 넘사벽 세계1위 김정주는 동체급 남자중 국내에서도 조금 알아주는정도 평체73나가는 론다로우지 역시 동체급 일본중학생 평범한 유도부중딩이랑 대련한거보면 성인과 갓난아기 수준으로 나가떨어짐. 참고로 론다로우지 3살부터 유도배우고 평체73에 여자유도 세계은메달이지만 강호동 19살때 삼대760 40초반에 우리동네예체능 에서 스쿼트110실패 타이슨도 19살 세계챔피언 등극 우들리가 ufc 웰터급 5차방어챔피언이고 우들리 평체95 제이크86 이지만 체급과 운동경력이 불리해도 20대가 38세보다 훨씬더 강함. 모든 파워리프팅및 모든스포츠에서 운동경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도 불구하고 40대는 20대에게 완전히 처참하다못해 쪽도못쓸정도로 전멸수준임. 운동을 안한 일반인끼리는 더더욱차이나고 한중일 3개국의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국민기초체력 테스트보면 20대가 삼사십대보다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강함 이십대평균악력 48.6 삼십대46.0 사십대42.2 참고로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모두 일본.한국.중국순이었고 여자끼리차이는적은데 남자끼리는 심하게 차이나고 심폐지구력 차이가 가장극심 유연성만 중국인이1위스파링 신청받음 개인적으로 만나서 ( 글러브,헤드기어 제공 당장 길거리만돌아다녀봐도 내주변만봐도 100%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에서 못생겨도 비교도안되게 유리하다는게 뻔히보이는사실이고 .난 오로지 있는그대로 사실을 말할뿐 어느누구의 편도아님 예전에 김미정 이라고 90kg이상 무제한급에서 여자중에 전세계적으로 적수조차없을정도로 독보적인 1위가 한국에있었다. 남편 김정주도 유도선수였고 김미정과 비슷한 체급이었다. 둘은 내기를할때마다 시도때도없이 대련을했는데 조건은 김정주가 한다리를들고 한손만쓰는것이다. 이것은 성인과 초등생의 차이보다도 압도적으로 심한것이다. 결과는 김미정이 이기적이 단 1번도없고 언제나 아예 쪽도못쓸정도로 동체급 남편에게 상대도안되게 집어던지고패대기쳐짐. 이당시 김미정은 90키로이상 여자유도 넘사벽 세계1위 김정주는 동체급 남자중 국내에서도 조금 알아주는정도 평체73나가는 론다로우지 역시 동체급 일본중학생 평범한 유도부중딩이랑 대련한거보면 성인과 갓난아기 수준으로 나가떨어짐. 참고로 론다로우지 3살부터 유도배우고 평체73에 여자유도 세계은메달이지만 강호동 19살때 삼대760 40초반에 우리동네예체능 에서 스쿼트110실패 타이슨도 19살 세계챔피언 등극 우들리가 ufc 웰터급 5차방어챔피언이고 우들리 평체95 제이크86 이지만 체급과 운동경력이 불리해도 20대가 38세보다 훨씬더 강함. 모든 파워리프팅및 모든스포츠에서 운동경력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도 불구하고 40대는 20대에게 완전히 처참하다못해 쪽도못쓸정도로 전멸수준임. 운동을 안한 일반인끼리는 더더욱차이나고 한중일 3개국의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국민기초체력 테스트보면 20대가 삼사십대보다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강함 이십대평균악력 48.6 삼십대46.0 사십대42.2 참고로 악력 배근력 심폐지구력 모두 일본.한국.중국순이었고 여자끼리차이는적은데 남자끼리는 심하게 차이나고 심폐지구력 차이가 가장극심 유연성만 중국인이1위
ㄹㅇ개쌉소리 ㅋㅋ 캠프나 잘해라
@@user-Gangwon 이제 담달에 전역합니다^^
반갑습니다.
85년 11월 30연대입니다.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참으로
유수와 같군요.
지금 이시간에도 불철주야
복무중인 현역 장병들께
감사하며,
몸 건강히
가정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07군번입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존경합니다..ㅠㅠ
89 군번~ 군대가면 죽는구나하고~ 서로 살아서 보자 했던 기억이 나네 ㅠ
선배님 감사합니다. 20년 10월 군번으로 지금 현역병사로 (일병)복무중입니다!
@@jyoung._.o 추운데 고생 많으시죠...
아무리 힘드셔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이겨내셔서 몸 건강히 전역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힘든 일들은 지나고나면 모두 괜찮아지실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부정적인 생각들은 하지마시고 이 또한 금방 지나갈 거라는 마음으로 항상 안전하게 복무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1984년 6월 군번인데, 지금도 저거보면 눈물이난다. 38년전 그때, 그래도 우리는 훈련 참 편하게 받았는데, 알수없는 내일에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추억과 눈물이 서린 관창의 어린 넋이 서린 논산훈련소,
내나이61 11사단 30개월
했네요 좋은님도 수고하셨어요
나는 84년 10월 군번.. 논산 26연대
67년3월 논산2훈 26연대 3중대. 이 싯점은 김신조사건 삼척울진무장공비침투사건 월남전등 격동의 시절. 36개월 청춘을 국가에 바친 시발점이었다.
84년 6월 논산입대 했는데
훈련소 동기님이시네요.전 6월15일 입대입니다. 군번 13496489
저 당시엔 먹는 걸로 고생 많았어요...
훈련이야 뭐 남들 다 받았으니 힘들어도 참으면서 받았는데... 배고픔은 정말 참기 힘들더라구요...
75년 1256 논산 29연대
군번 출신에 가평 맹호부대 후반기 교육 후
101기보대 장갑부대 근무 만기 전역 하고
군생활을 항상 자랑
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성!
1260...
75 1259 난 30연대였는데 그때 교회사역 줄섯다가 찬송가 359장 불러봐 - 못불렀더니 각구멍으로 대갈통을 맞고 사역하러 갔었는데- 쭛쭛 그리고 외국갔는데 50년이 되가네 친구야
78년도 1288×××× 유격조교
삼청교육대조교 81년4월전역
68세 --추억이 그립습니다
나레이션 하신 분은 저때 이미 40대 초반이고 지금은 35년 전이니깐 70대 중후반이 되셨겠네요. 찾아보니 김양일 선생님이신데 이미 고인이 되셨군요. 저분은 자신의 족적을 남기셨으니 다행입니다.
그런걸 어떻게 아세요? ㄷㄷ
@@최민수-j5y 찾아보셨다네요. 근데 우리도 나중에 전현무나 김성주 아나운서 티비나 유튜브에 과거영상으로 나오면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양일 선생.. 추적 60분, 그 분 목소리가 떠오르네요... 어릴 때 꽤나 흥미롭게 봤었는 데...
저 때 있었습니다. 내무반에서 군복으로 갈아입은 제 모습도 전신을 찍었는데 .. 편집에서 짤려서 안나왔지요. 제가 속한 소대를 처음부터 훈련 끝날때까지 찍었는데.. 전 초반에 신검을 좀 더 받는 바람에 다른 소대로 변경되어 방송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초반 적성기술할때 머리 윗부분만 나옵니다~
훈련 끝날 즈음 모두 모여서 저 방송 보던 기억이 납니다.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찾았었는데 드디어 올라왔네요. 옛 생각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올려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필승!!
수고하셨습니다 29연대3중대 87년군번입니다. 이젠 세월이흘러 나도 손자가 생길것같네요 ㅠ 추억의 훈련소 남자들의 세상을 추억하며
@@beringSea 감사합니다. 단결!
@@개척자-x7l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빠릅니다~~
@@개척자-x7l 67년생들 벌써 다 늙어 영감이 되어 가네여. 참 인생 빨리 흘러 가네요. 부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세요.
92년2월 군번입니다 28연대에서 훈련 받고 자대는 28사단 80연대 1대대 배치받았지요
힘들었던 시절이 이제는 그리울뿐입니다 훈련소 동기들도 생각나고 자대동기들도 생각나네요
국가를 위해 젊음을 바친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풍!
와 난 12군번 28사 80연대 1대대였는디
@@나는개인이오518 저는 초반 삼곳리 GOP근무후 연대 교체후 어유지리 대대 TOC근무했답니다~^^선봉연대 선봉대대 자부심이 있었답니다
@@bbdory99 아~~ 저도 오랜만에 듣는 지명들이네요ㅋㅋㅋ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저는 15사, 92년 2월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건승하십시요^^
가슴이 찡해오네...
나도 85년 9월 진해훈련소 입대 했었는데.
아버지께서 기차역까지 배웅해주셨고, 열차가 출발하고 아버지 모습이 안보일때 부터 눈물이 폭포수처럼....
지금은 아버지돌아가시고, 지옥같았던 진해훈련소의 향수가 그립다.
저는 85년 9월 포항2훈단에 입소하였는데 같은시기에 군생활 사셨군요!
과거는 늘 그립죠
고생하셨습니다
계실때 잘하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85년 9월에
입대하셨는데 와 저때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군생활하신 아버지분들 다 존경합니다..몇주 안된 이병들의 제식이 군기를 제대로 보여주네요..
85년 6월 21군번임.
옆 연대에서 촬영 중이라 하더니 그걸 36년이 지나서 보게되네요.
촬영이라고 상당히 분위기가 좋게 나온듯합니다.
저 때 함께 굴렀던 동기들이 그립습니다.
44:44 저때는 훈련소에서 담배필수있었어요?
@@성이름-x7c2u 그럼요!!! 마구 굴리다 담배 일발 장전! 하면 단체로 한대씩 폈죠.
중고딩때 담배 입문 못한 남자들이 재수하면서 담배 입문하고 그때 무사히 넘긴 친구들이 마지막 관문이 훈련소 였어요.
저때는 자대 배치 후 내무반에서도 담배를 태울 수가 있었나요!?
@@_L_H 네 자대에서 담배 병장 고참들만 담배 피웠습니다
일병때 고참들 수건 각잡아 드릴때 수건에서 담배 쩌른 냄새 나곤 했습니다.
저희아빠 나왔다고 하길래 보는데... 젊었던 아빠가 보이길래 너무 신기하네여...
90년대까지 구타, 똥국에 깍두기가 일상이었던 군대...우리의 아버지, 삼촌들 정말 고생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현재 군에 계신 우리 병사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들 빽없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다 같이 고생하는데 전우들간 잘 챙겨주고 건강히 사회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조작방송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84년 6월 군번인데, 너무 편하게 훈련 받은듯, 인격적인 조교와 교관들, 보고싶다
10년도에도 구타 있었어요..
1107공병단이요.
07군번인데 바로 직전에 총기난사 터지고 없어지는 과도기였지.
84년 12월 군번인데 구타 있었지만 이등병 일등병에게는 구타하지 않았고요 병장 고참들이 상병들에게만 집합시키고 가볍게 구타 했습니다. 저도 조금 구타 당했고 고참되서 상병들에게 잔소리 했습니다. 제대하고 보니 부질없는 짓이더라고요.
88년7월논산군번 입니다.저는30개월.벌서제대한지가 30년이흘어네요.그떼는 외이리 먹어도 먹어도 배가고픈지.한루도 안및으면 잠을못자네요.다하나의 추억으로 남네요.
내 국민학교 동창은 저 때 고참에게 밤낮 죽도록 맞아서 정신병원에 입원했지. 어디에 하소연 할 때도 없고, 그렇게 젊은 시절 병원에서 시름 시름하다가 가버렸네....불쌍한 내 친구.
인간들이 맞나 싶습니다. 권력을 얻으니 바로 본색을 보이네요 ;
한국은 일본의 강제징용 언급할 자격이 없음
@@Nasty_Jello 강제징용의 아픔을 강제 징용된 청년들에게 교육시키는...
그러면서 여자가 남자는 군대를 가야한다 이딴소리하면 죽빵마렵
@@chisikihito 바로 지건으로 임흑외눈깔 만드는거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주신 선배전우님들께 감사합니다.
이때군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때의 선배님들이라 부르기도 머하네요..
아버지뻘되시는분들이니..
여튼 엄청 힘들었던 이시대의 아버님들이 나라를 지켜주신 덕에..
그뒤에 저는 그나마 휴전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이 편했던 병영생활을 했던것같습니다..고맙고..
너무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존경합니다.
2010년대 군번도 대가리 박고 갑니다.
논산훈련소 29연대 선봉 1중대. 백제의 옛터전에 계백의 정기 맑고 관창의 어린뼈가 지하에 혼연하니 우렁찬 호남무대 높이 우러러 섰고 대한의 건아들이 모두 모인 이곳은. 아~젊은이의 자랑 제2훈련소
진짜 군생활 안 힘든 사람 없겠지만 저런 거 보면 우리 아빠가 존경스러움 ㄹㅇ...
61~65년생분들 저희 아버지도 85년군번이신데 듣기로는 줄빠따는 기본에 행군때 완전군장으로 오리걸음으로 몇km이동시키고 강원도 철원인데 겨울에 영하20도에 내복으로 연변장 집합시키고 진짜 80년대에 군대가신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이당시에 방송나가면서 구타가 서서히 없어 지기 시작 했습니다 단 조교들은 신고식으로 빠다가 있었는데 방송촬영중이라 그런지 이당시 우리 25연대 9중대에서는 신병에대힌 구타는 없었 습니다
오리걸음으로 몇km 이동했다는것은 완전 허풍
@@김홍중-o2x 오리걸음이 아니라 오리달리기입니다..
오리걸음은 양반이죠..
1.5킬로 아침구보코스..
간혹 오리달리기 하던날이 있었죠..
오와 열 발마춰 하나둘셋넷..
마의 오르막코스. 오리달리기. 뭐 별탈없이 다 했던것 겉네요..
97년도입니다..
일주일 5일은 한밤중 고참들 야산에 집합시켜 맞고나야 일과 끝났던시절
지금은 그시절도 너무 그립네
보고싶은 전우들 어찌 지내는지 그시절 회상하다 보면 가끔은 눈물도 나
88년 군번인데 89년 초에 양구로 나갔던 동계훈련 기간 중 한밤중에 선임하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전원 기상시켜서 팬티 바람으로 눈밭 위에서 굴렸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저녁 때부터 눈이 많이 와서 빰빠라 하기 딱 좋은 조건이 조성되었다는 게 이유였더군요.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얼차려를 줬던 게 아니라. ㅋㅋㅋ 양구가 얼마나 춥냐면 밤에 텐트 속에서 자다가 야간 보초 근무 서려고 일어나 전투화를 신으려 하면 낮에 머금었던 습기 때문에 동태처럼 꽁꽁 얼어 굳어져서 발이 안 들어갔더랬죠. 그 겨울에 그런 걸 시켰으니.
85년 9월 12일 입대.. 나 보내면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눈물을 봤던곳
아버지는 좋은곳에서 계시길겁니다
분명 지금 좋은 곳에서 호강하고 계실 겁니다.
입대 날짜가 같아서 입니다
혹시 해병대 입대 하셨습니까?
@@쌍두마차-f8x아니요
77년1월 입대 서울병력...한양대 운동장 집결해서 기차타고 논산으로....
수용연대 첫날 아침 비몽사몽간의 기상나팔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ㅠㅠ
영상보니 진짜 눈물나네요....
오~~
74년9월에 한양대운동장에 집합하여. 왕십리역에서 열차타고 한밤중에
연무대도착ㅡ
수용연대로 들어간 기억이나네요
30연대 출신
선배시네요 .
80년2월입대하자마자 여산2하사6개월교육받고 논산훈련소 자대근무후34개월 ㅎ 스무살시절그립습니다
저도 77년 3/2 입대 2하교 기행314기..
부사관훈련 넘 힘들었고 군생활 5년반하면서 2년간은 탈영하고 싶다는 생각 여러번 했지요. ㅠㅠ
@@박성일-v9v
@@kinemapark 80년2월23일광운대집결
논산수용연대6193부대입대일주일후제2여산하사관학교6개월교육후에
논산훈련소 35개월근무했습니다
우리 후배들의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1979년 7월30일 전주 덕진역에 집합하여 입영열차를 탔었는데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 올라오네요....
와 1026당시 전군 비상경계령도 겪으셨겠네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선배님 건강하십쇼
근무는어디서하셨는지?
혹시저와...
83년 논산에 입대했기에 옛날 추억에 빠져 잘 봤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훈련소에서 1주일전 입대한 대학 동창을 우연히 만난것, 입대전 소개받은 기간사병이 있었는데 밤중에 보초서는중에 졸다가 걸렸는데 그 기간사병이여서 무사했던 것, 배식담당을 했는데 처음에 조절실패로 우리 먹을게 없어서 굶었던것, 그 후로는 우리껏 부터 퍼놓고 배식을....ㅋㅋ 행군후에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히고 기진맥진해서 첨으로 링거 맏았던것, 내무반에서 야간불침번을 하다가 너무 똥이 마려서 내 시간 끝나면 바로 튀어갈려고 군화끈, 혁대 다 풀고 문앞에 서 있다고 소대장에거 걸린것, 내 옆에서 자던 친구가 훈련장에서 행군하다가 열을 이탈해서 10걸음쯤 갔는데 탈영으로 다음 기수에 재교육 받은것, 배재고등학교 선배가 기간병이였는데 먹고 싶은거 사주겠다고 해서 뜨끈한 콜라 마신것, 소각장에서 줒은 신문지를 들고 화장실에서 읽고 있는데 기사로 내가 청소년영화제에서 상받은 소식을 알게 된것, 제일 악날했던 조교가 우리소대 담당이라서 이를 악물었는데 지금 그 사람이 가장 보고 싶은거....후반기교육을 받으러 가는 평택행 기차에서 인솔조교가 담배피우게 해주겠다고 하고는 모든 창문을 닫고 피게함. 연기 때문에 담배 피던 놈들이 스스로 끔. 화생방보다 더 큰 고역을 맛봄. 그때 인솔조교가 "이건 일도 아니다.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닥치더라도 지금 이 어려움을 기억하고 극복하라"고 멋진 말을 던진 일.... 아....내 인생 4주에 뭔 일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아, 나는 정확히 5주였다. 카투사로 가는 병력이라서 1주일간 유격을 받음. 유격가서는 무조건 뒤쳐지니까 오히려 열외시켜줌, ㅋ 그때 논산에 차로 데려다 주신 아버지가 그립네요. ㅠ
이미 내 나이는 그때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어 버리고....아들은 오늘이 30이고....아 이 녀석 생일이네.... 이런저런 사정으로 군대를 못보냈는데 그게 가장 아쉽네요.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되거든요.....ㅠ
그렇군요 세월 참 빠르네요 제가 81년입대했는데 벌써 42년이 지났네요 전역후에도 가끔 군생활하는 악몽을꾸기도했지요 군에다시입대하라면 끔찍하겠지만 기회가되서 근무하던곳 한번쯤은 가보고싶더라는 ㅋㅋ 건강하십시요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옛 말입니다, 요즘은 군대에 상또라이들 많아서 그 반대죠.
맞습니다 왜 조교들이 그리울까요 참 멋도 있고 일진느낌도 있고 그랬는데
83년 6월 논산훈련소 27 연대에서 훈련받았는데
같이 훈련받은 것 같네요.
하절기 훈련이라 훈련시 소금을 먹었고 오수시간이 있어 더운 날씨에 담요 덮고 자라고 하는데 어떻게 잠이 오냐고요.
85년 5월에 수용연대 입소해서 6월까지 26연대에서 훈련 받고 기차타고 강원도 11사단까지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참 힘든 날들이었는데 어느덧 기억 저편에 자라잡고 있다니...
이 영상을 보니 눈물이 핑도네요.
지금도 군번이 자동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니 힘든 훈련이였습니다. 우리 아들도 군대에 다녀오고 참 빠르게 35년이 흘러갔네요.
과거, 현재 우리 대한민국 군인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화랑! 11사 82년초 군번입니다. 어쩌다 11사로 떨어졌나요? 당시까지만 해도 항상 춥고 배고프고 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반갑습니다.87년1월군번입니다.논산에서 기차로 춘천도착해서 102보충대2박3일 있다가11사단20연대 2대대근무했습니다
11사단 9연대 84년-86년 근무했습니다. 군예비사단으로 고생 무척 했었는데 이젠 기계화사단이고 9연대도 여단으로....
나두 11사단
11사단 화랑부대
빡세게 힘든
부대로 알고있습니다
80년에 82년도 폐교된
원주 육군제1하사관학교
기간병 출신입니다
그당시
하사관(부사관)후보생
교육훈련시
대항군 역활을
11사단 연대에서
파견 나와서 함께
훈련 했습니다
추억이 새롭습니다
내가 79년 8월 군번인데 파주 백마부대 9사단 수색대에서 33개월 근무했읍니다.옛날엔 밥그릇 반찬 그릇이 하나로 된 식판을 썼는데 내 기억엔 노란색,초록색 두개였읍니다.맨날 된장국, 무우국,시레기국,무절임 같은 반찬만 나오고 가끔 꽁치가 들어 간 미역국이 나왔읍니다. 사회에 있는 사람들보다 군인 병사가 더 잘 먹던 가난한 시절이었읍니다. 옛날에 밥 먹고 식판과 식기류 닦을 때 찬물만 나와서 음식물이 잘 안지워져 고참이 똑바로 닦으라고 매일 워커발로 때렸읍니다. 고참이 먹는 밥도 식판에 퍼다줘야했고 식판과 식기도 대신 씻어줘야 했읍니다.밥 먹으러 식당가면 잘못도 없는데 식당 뒤에서 간부들 몰래 줄 세우고 왜 그렇게 빠따로 때렸는지 모르겠고 쫄병때는 밥 먹으러 가면 동시에 매 맞으러 가는거라 너무 무서웠읍니다.상병 말호봉 고참이 되어서야 편하게 밥을 먹었읍니다.추운 겨울에도 고참들 옷을 대신 빨래하는데 찬물만 나와서 손발이 얼어 아픈데 아픈 내색을하면 새벽에 고참들이 집합시키고 빠따로 인정사정없이 때렸는데 이악물고 버틴 기억이 있읍니다.그리고 옛날엔 부사관이란게 없었고 하사관이라고 불렀읍니다. 제 기억엔 하사관(선임하사)이 군바리들 먹다 남은 짬밥을 부대에서 키우던 셰퍼드에게 항상 먹이로 줬는데 개밥으로 줄 짬밥을 실수로 준비해두지 않았을 때 하사관(선임하사)이 기분이 안좋은 상태와 겹치는 날에는 빠따로 때리고 괴롭혀서 힘들었읍니다.내무반에서 이등병과 일등병은 쫄병으로 불렸읍니다. 상병, 병장은 고참으로 불리우며 왕이었고 고참들이 밤낮없이 졸병들에게 원산폭격을 시키고 쇠파이프로 허벅지를 많이 때렸고 목봉체조와 오리걸음을 했던 기억도 있읍니다.
옛날엔 군대에서 고참들이 술을 먹었는데 그날 고참들 눈에 잘못들면 일주일에 수십번씩 매미라는 괴롭힘도 받았읍니다. 어느 날, 고참이 술먹고 자다가 내 얼굴에 오줌을 싸서 따뜻함을 느끼고 잠에서 깼는데 일등병 단지 2달도 안된 주제에 빠릿하게 바로 안일어 났다며 다음 날 매미를 오래 시켜서 팔 안쪽에 쓸린 흉터가 내 나이 67살인데도 남아 있읍니다. 일등병이 막 되었을 때 사격훈련 끝나고 내 수통에 물을 상병인 고참이 빼앗아서 다 먹었는데 내가 혼자 다 먹어 치우고 고참은 안준다는 이유로 또 다른 상병 말호봉 고참이 탄약창에 끌고가 빠따로 때리고 워커로 손등을 밟아 생긴 흉터가 지금도 있읍니다.지금 군인들은 모르겠지만 옛날 군인들에게 보급되던 화랑 이라는 담배가 있는데 필터도 없읍니다.이 싸구려 보급 담배가 여름 장마때 홍수 때문에 보급이 안되어서 예민해진 고참들이 매일 빳다로 때렸고 새벽에 집합과 빠따 안치고 밤12시 이전에 집합걸고 빳다치는 고참들은 빠따를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게되니 잠을 잘 수 있게되어 그나마 착한 고참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옵니다. 그땐 다 그렇게 맞으며 쫄병 생활을 했읍니다.옛날에 군대 간다고하면 죽으러 간다고 생각하는게 있었읍니다.왜냐하면 군대에서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사망 사건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많다고 들었읍니다.그래서 내가 군대 간다고 아버지께 말하니 아버지는 안우는척 했지만 내가 입대 하는 날, 대문을 나가고 가장 많이 운 사람이 어머니도 아니오, 형, 동생,누나들도 아니오.아버지였다라고 들었읍니다. 79년도 병장 월급이 3800원. 내가 병장일땐 3900원.입대한지 얼마 안지나고 쫄병일 때 휴가 나갔는데 쫄병이 받는 월급으로 초코파이 사먹으면 뭐가 남겠냐며 휴가 때 집에 왔더니 초코파이를 5상자씩이나 아버지가 사주셨읍니다. 아버지가 사주셨던 초코파이가 그립읍니다.내가 군대 갔을 때와 내 아들(85년생, 05군번)이 군대에 있을 때보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졌는데 고참들이 빠따나 쇠빠따,주먹, 워커발로 때리지는 않는지, 먹는 건 잘 먹는지 궁금하군요.요즘 아이들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보다 폭력이 없었으면 좋겠읍니다.
존경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현실이야
저는 80년12월 군번. 읽다보니 감정이입 되어 울컥해집니다.
@@rainbow88977 백마 선배님이시네여^^
3년 반정도 저보다 빠르시군여.
긴글 내용중 저희때는 밥먹으러 가서 빳다는 없었습니다. 매미도 즐었고여..
3년 6개월이란 시간이 차이를 만들었네여~~
기지계라고 소대내 보급품 관리 고참여...
이양반이 졸따구들 괴롭히려고 맘 먹으면 진짜 답없었죠...
대검 하나 없어졌다 해서 채워 놓을때까지 쫄따구들 2달 지옥살고...
야삽 없어졌다 해서 또...나중엔 방독면 없어졌다 해서 또....일병때 제 방독면이 없어져가지고....별의별 생각을 다했던 기억이..돈들고 남대문 시장을 가야하나?
아님 타중대 동기한테 말해서 돈이 궁한 넘에게 방독면 받는 조건으로 돈을 준다고 해볼까..?
아님 취약시간에 타중대 관물대를 습격해야 하나...이건 걸리면 현장에서 목숨걸어야 하는 상황이져.. 보급품 채워 놓을때까지 집합이니까 저는 그게 젤 더러운 제 기억속에 군대 악습이었네요..작년에 일산에 갈일이 있어서 가다가 보니 사단 3182 부대 푯말이 보이고 거기 지나니까 바로 5895부대
29연대져...식사리...동네 이름도 참 거시기했는데요...ㅋㅋ 이젠 모두 아련한 추억이더라고여...
황중해상사 잘 아시겠네요. 어르신보단 4개월 선임이신데
울 아부지 세대 진짜 고생하셨네... 50대 아저씨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들처럼 젊고 멋진 시절이 있었구나
그럼 없었겠냐? ㅋㅋ
@@북한산들개들 적어도 너는 없었을듯 ㅋㅋㅋ 말투 보니 딱 답나온다
@@북한산들개들 타닥..타닥.. 아 엄마!!
그럼 없었겠냐? ㅋㅋ
저때 여름에 군사훈련은 힘들었지만 함께였기에 견대낼수있었다 국방의무를 다해주는 국군장병 감사합니다
8:33 '지금은 민주군대에요'ㅋㅋㅋ 이런 말은 2010년대까지도 계속 이어진 레파토리였습니다.....
요즘은 단어만 바꿔서 선진병영이라고 많이 하죠 ㅋㅋ
2010년대에는 민주화라도 이룩했지만 저땐 전땅크 독재시절이였는데
저때 사람들: 6.25때 군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ㅜㅜ
요즘 군대가 민주군대지 복무기간도 18개월 짫지, 동기생활관 만들어줘, 침상형으로 바뀌었지, 이등병도 혼자 px갈수있지, 휴대폰 사용하게 해줘, 병장들도 걸레돌리고 청소해,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음
@@jsm9252 훈련 빡셈 kctc 하다가
의무대 실려가는 얘들 많이봄
85년 6월24일.
306보충대 23226315군번입니다
40년이란 세월이됐지만. 어제같씁니다
아버님. 형제친구들
자식들. 후손들이 지겨나갈 대한민국 ...
절대우위. 강군으로거듭나길바랍니다
화이팅!!!
제긴 306보충대 87년 8월 입대고 군번이 23321992번이니. 2년여도만 1만여명이 들어왔고 306보충대에 일주일에 평균 1천명 가까이 입소했네요. 세월이 빠르게 가서 60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되시길
저는 2347로 시작하는데 90년9월군번입니다 큰애가 제대한지 2년이 되었으니 참 세월이 빠릅니다
내가 85년 5월 논산군번입니다. 훈련소나 자대기간은 별로 생각이 나질 않는데
전역하던날 집으로 오던길은 지금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버스안에서 동기들이 한마디도 하지않고
나는 눈물이 그렇게 나더군요.
지금도 길에서 보이는 군인들만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프고 미안합니다. 우리세대에서 끝냈어야 했는데.
지금 이나이에도 가끔가다 다시 군대끌려가는 꿈을 꾼다면 믿으라나? 꼭 그러더라고 내 군복무 기록이 없어져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전쟁후유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해할수 있습니다. 악몽중의 악몽.
군대 다시가는 꿈은 역시 모든 남자가 다 꾸는 것 같네요...
96번입니다. 사단훈련소 출신이긴 합니다만. 집으로 오는 길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군대다시가는 꿈 꾸며 고함지르며 일어나기 일쑤.......
꿈에서 전역후 그다음날 기록없다고 또 끌려다가가 깻는데 증말....ㅋㅋㅋㅋ
83군번입니다. 꿈속에서 다시 입대하는 꿈 많이 꾸었지요.... 이제 제 아들도 제대한지가 여러해 되었지만 그때 기억은 죽을때 까지 잊혀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그 군대생활은 정말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고 그 전우들이 그리울뿐입니다.....
난 5월 17일 입소였는데, 혹시 29연대 동기신가? ㅋㅋ
저 시대는 군대에선 선임이 후임 폭행하고 가정에선 부모가 자식을 요즘 기준으로 아동학대 수준으로 폭행하는게 문제가 안 되던 시절. 폭력의 시대는 우리대에서 끝내고 폭력을 다음 세대에는 물려 주지 맙시다.
형님 근데 요즘은 좀 맞을 애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진도 이동렬 04년생 폭행영상 피꺼솟
때리지말고 청소년도 봐주는거없이, 또 교사도 더이상 스승대접이 아니라 서비스직 개념으로 학생이건 교사건 칼같이 법대로만 하면됨
@@hyunwookseo2086 ㅇㅈ 칼같이 감정빼고 이성적으로만 해주면좋겠음 모두가
사형도 존나게 하던시절임
@@오렌지-n9l 더 맞아야할 어른도 만만찮게 많긴 함
아직 철이 덜 들어보이는듯한 저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지금은 환갑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세월 참 빠르다는걸 느끼게 해주네요.
86군번인데 옛날생각나네...그때 전우들 지금60대 가까워지네.세월이 진짜 빠르다
독박병역ㅠㅠ 기울어진 연병장 너무 슬프네요...남성에 대한 차별이 너무 심한 사회
기울어진 연병장ㅋㅋㅋㅋㄱㄱ
대한민국은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입니다
@@코바스 네 미필
@@코바스 이 영상을 보면서 그런 말이 나오냐? 군대도 처안가면서 안보에 기생하는 주제에
쿵쾅이가 여기도 있네?😂
88년10월30일지그은고인이되신아버지와논산행버스타고입소대대간게엊그제같은데2018년5월21일 아들도논산입소대대데려다줬었는데벌써제대하구복학 세월 참빠르네요
감회가 남다르셨겠습니다...
1988년 7월 15일 논산훈련소 입대하여 1990년 10월 11일 전역하였는데 벌써 30년이 흘러 50대 중반이 되었는데 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87년 2월 논산훈련소 26연대입소후 ㆍ19년 아들 논산 입소때 논산방문 감회가 새로왔습니다ㆍ87년그때는 퇴소식때 부모 참석 못 하시고 후반기 교육때 한번 방문면회 한번 있었는데 그때 뵈었었는데 바로 자대배치 받은 분들은 배치받은 곳으로 면회 가셨을듯 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님
정말 존경스럽네요...사랑합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분들!!
@좁불 좀 좋은댓글답시다^^
@좁불 ㅁㅊ놈인가?? 너희부모님한테도 그러냐 ?
마지막에 기도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눈물나네 생각하면 좋은시절이였는데 나랑 동갑내기들이구만 나도85년 6월5일 입대했는데 그 때 고향마을 버스정류장에 배웅나오셨던 할머니 어머니 동네 아주머니들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추억만 남았네
85년도 영상인데 아나운서가 자기는 20년전에 훈병이였다니 ㅋㅋㅋㅋ저때 취재하면서 나떄보다는 좋아졌다고 생각하면서 취재했겠네
외할아버지가 외삼촌들한테 너그는 군대를 갔다온 게 아니다 했던 게 기억남 ㅋㅋ
배부리고 등따신데 어떻게 군대고? 이러셨다는
@@molonlabe2477 막 전역했을떄는 그런말 듣기 싫었는데 이 영상보니깐 백번천번 이해감 ㅋㅋ내가간거는 저시대에 비하면 캠프지
우리 할아버지는 625때 참전해서 중국에 포로로 잡혀가 고문까지 당했다가 운 좋게 탈옥해서 산거나 강건너서 강원도 기슭까지 온 몸이 성한데 없이 도망치다
운좋게 거기서 사는 한 남자분이 구해주셔서 거기서 밥 먹고 자면서 일 도우면서 살다가 그 남자분의 따님과 결혼한게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그래서 훈장 있었는데 아직도 생생하네요.
다리에 총알이 박혀서 뺏었던 흉터도 있고... ㅠㅠ
방위병 출신일겁니다 저 사람
@@호달 와우 진짜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를 ㄷㄷ
격세지감...
우연히 언졔 찍혔는지도 모르게 제가 나와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어도 젊었다는게 얼마나 축복인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이상하게도 제대한지 30년도 넘었지만 저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네요.ㅎㅎ
몇분에나오시나요?정말새롭고감회가남다르실것같으시네요!!!화이팅입니다!
훈련소 첫날 들어갔을때 조교가 한말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자 너희들은 오늘부터 믹서기안에 있는 사과다"
"오늘부터 갈기갈기 갈아주겠다"
ㅋㅋㅋㅋ
어디 아오지특수부대 입소 하셨나여
조교가 미친새키인듯 ㄷㄷ
말만들어도 ㄷㄷㄷㄷㄷ하네요 ㄷㄷㄷ
저 시대에는 그랬죠
조교를 죽이고 싶었다
퇴소할땐 서로 울고불고 지랄~~
96년 군번인데 1~4주차엔 조교들 죽이고 싶을정도로 패고 싶었죠. 5주차때부터 조금씩 풀어주더니 6주차때는 조교들하고 쪼개면서 농담도 주고 받음. 자대배치 받고 고참들에게 끌려다니며 시달리는데. 아 동기들과 훈련소 조교들이 생각날 줄이야~~ㅎㅎ
87년 10월 전주 35사단 훈련소 입소해서 동기들과 눈물 콧물 흘리면서 훈련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니다.30여년이 훌쩍 지났네요.그때 600여명 훈련동기들 아버지 .할아버지 가장이되어 잘지내고 있겠죠.항상 건강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
87년 6월 군번입니다 ㅎㅎ 뙤약볕에서 훈련중 졸던 기억이 졸다가 눈뜨면 진짜 이런 지옥이 또 있을까 했어요 궁디만 붙이면 졸았던 .. 뭐가 그리 피곤했던지
87년 12월 군번입니다. 그래도 좋은 계절에 입대하셨네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입대하는것도 찹찹한데 논산 겨울은 종잡을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험난 했습니다. 추운것도 추운거 지만 비가오다 눈이오고 거기서 각개전투하는라 전투복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하는데 점심식사시간에 그 추운 각개전투장에서 식사를 하는데 손이 너무 떨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아무튼 그 시절 군생활 하신 분들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선배님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 더 고생하셨겠지만 . . . .
87년 6월 군번입니다.
그 당시 충정훈련이라고
교육받았는데
뙤약볕에 "폭동진압! 앞!앞!"
요런 구호에다 빨래방망이 같은 진압봉을 휘두르던 기억이 나네요.
십분 휴식시간에 그대로
진압봉 기대고 앉아 졸면서
꿈도 꿨던 기억이~~
@@김경호토마스 고생했어요 우리도 306보충대 대기 하면서 전경만 안가게 해달라고 빌었던 기억이 있네요
44:02 무야호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향우 ㅅㅂㅋㅋㅋ 진짜 무야호로 들리네
이왜진?
무야~ 호!
3:04 무엇보다 이 장면이 가장 슬프다..
저는 97년군번....제아버지 70넘으셨는대 9남애매중에 혼자만군대 갔다오심....살면서 군대얘기 거이안하셨음.... 40평생살면서 울아버지우시는 모습 딱2번봄 할머니 돌아가실때랑 나훈련소 퇴소식때 하 ... 여기선배님들글 읽어보니 머라할말이없네요 모두모두수고하셨습니다
퇴소식때 우셨다는게 왜 이리 슬픈것..
21년 11월 군번입니다.
저 당시 군대 갔다온 아저씨들이 존경스럽네요 진짜...
선배님 이란 말도 있습니다 못배운티 내지마라 개찌질아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
@@workman2261 제가 알기로도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걸로 알고 있는데요
뭐야 댓삭했네
ㅈㄹ 가까이서 봐도 비극 멀리서 봐도 비극 ㅋㅋㅋㅋㅋ
군필 입장에선 어디서 보든 희극이지
아버지 어떻게 저 시절을 버티셨나요.
보고 싶습니다.
훈련소 들어가서 첫날 밤
아버지가 제일 많이 생각났어요...
저희 아버지는 남자라면 다 그럴 수 있다 격려해주셨어요. 알고보니 당시 고학력자라 면제더군요. 면전에서 욕 할 뻔했습니다.
@@Hextech-md3uj 면제자가 현역한테 그러는건 선넘은거지 ㅋㅋㅋ
우리 아부지는 하사관이셨음 그당시에 빡센부대로 소문난 백골부대에서 근무하심 공병학교 졸업사진도 있었음
@@Hextech-md3uj ㅋㅋㅋㅋㅋㅋㅋ^^
@@Hextech-md3uj 면전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게 식사 감사묵념 저거 국민들이 장병들한테 해야맞는거아니냐 ㅋㅋㅋㅋ
왜 끌려가서 개떡같은 밥먹으면서 감사의묵념을 해야되는지 이해가 안가 농민들이 공짜로 준 쌀로 밥먹나???
개 ㅇㅈ
걍 일베[나 해라
@@songwonan3121 내가 왜 일베충 취급을 받습니까 ? 이유나 들어봅시다.
심지어 군인들 먹는 쌀 묵은쌀임 ㅋㅋㅋㅋ
이배려 지나가는 병신한테 관심주지 마세요... 지가 일베충이라 찔려서 그러는거임
09년 8월 군번이지만 저 당시 군생활하셨던분들 진짜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00군번입니다.
선배님들 존경스럽습니다!!
모든 군인들 군필자및 안타깝게 사연있어서 못가신 면제자 분들도 화이팅 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힘쓰는 국군
장병들도 화이팅..
훈훈한 댓글 입니다~~선배님도 화이팅입니다^^
ㅋ 저도 00군번 논산 27연대 ㅋ
저 태어나실 때 군대 가셨군요.
충성! 20년 1월 군번입니다 선배님
@@최림-c8f GOOD LUCK TO YOU..
@@kims_urano 반갑습니다..00년 6월 군번입니다.
86년 8월 30년대에서 훈련병이었습니다.
아들이 꼭 한 달후에 논산에 입대할 예정이라 유튜부 검색하다 참으로 귀한 영상 봤네요.
훈련병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반갑네요. 86년 8월 28연대였습니다.
85년 2월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영상을 보니 그때 그시절이 떠오르네요.
고등학교와 대학 2학년까지 교련을 받아서 기초군사훈련은 어느 정도 체감하여 훈련 자체는 그다지 어렵진 않았지만 훈련의 일부인 얼차례는 만만찮았죠.
자대생활에서 제일 힘든 것은 눈에 잘띠지 않는 시간에 내무반과 구석진 곳에서 벌어지는 고참의 구타였죠. 구타로 인한 자살과 사망자가 속출하자 사단장 지시로 경례구호가 '단결'에서 '구타금지'로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만해도 일본군의 잔재가 남아서 인지 계급간은 물론이고, 같은 계급이라도 자대 배치일에 따라 고참(보통 왕고)이 정해준 서열이 내무반에 존재했습니다. 고참은 그야말로 신보다도 더한 무소불위의 전능자였죠.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만 흘렀네요.
32개월 또는 30개월 꽃다운 청춘을 병영에서 함께한 전우들이 그립네요.
오늘도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완수하고 계시는 우리 후배님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드립니다.
논산에 불지르고 싶었겠다
저기서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기 시작할때, 정밀신체검사는 동일하지만 귀가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훈련소장에서 입소대대장 담당으로 바뀌었다고 함.
일본의 잔재 ? 멍ㅊ아
서열은 거기뿐 아니라 사회 어디에나 있고 동물의세계에도 있다
툭하면 반일선동하는 역겨운 좌파시키
ㅡ
그리고 일제식민지 이전엔 조선은 노예제도였고
갑오걔혁으로 신분제 연좌제 폐지시킨것이 일본이다
기본역사도 모르니 병ㅅ시키
85년 군입대 하셨다고 하니 지금쯤 거의 60 바라보시겠네요...
85년 2월 군번 23연대
같은 2월 군번이네요
85년6 월19일 사단군번 입니다 그때왜이리 더윘는지 밥은부실하고 고된 훈런 생각나네요 벌써 환갑 의 나이가 오고 ,,,,,,,,
옛날 군대 일수록, 고생이 더 많으셨을 겁니다. 99년도에 군대가서 쥐어 터지고 갈굼당했는데, 저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나라 지킨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06년 군번으로써 저시대 군복무하신 선배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ㅎㅎ 나라지켜주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저또한 나라를 지켜냈고 지금도 고생하는 장병여러분들도 앞으로 힘내주시고 항상 응원합니다 ~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 파이팅!
와..전 06년생인데
나도딩
@@오수용-d4h 씹 ㅋㅋㅋ 커엽네
@@천안문탱크맨-y9u 이런 제가 고1이라는게 ㄹㅈㄷ네요
저도 06년 군번 ㅎㅎ
나는 90 군번... 89학번 부터 대학 교련이 없어져서, 단축 혜택도 못 받고..거의 30개월 만땅 복무... 나라는 의무복무 군대갔다온 사람에게 잘 해줘야 한다. 20대 초 2년반의 시간을 나라에 봉사했으니.
90년도 군번이시면 저랑 입대년도가 같네요. 문무대 입소가 폐지되어 45일 혜택이 사라졌죠. 30개월 만땅복무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만 군대갔다왔냐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곳인데 그래도 너는 편하게 있었잖아 어쩌구.."
@@sanglee7877 90년정도면 사실 남자면 다가는 곳이 아니었다는 ㅋㅋ 70%
@@sanglee7877 72년생인구가 대한민국역사상 가장 많아서 맘 먹고 빼면 다 빼던 시절이었죠. 그때 군대 간 사람들은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지라는 생각이 많았죠
@@bawitdol 막상가서 엄청난 후회가 들었겠군요..ㅋㅋ
요즘 친구들은 모르지 지금은 군대가 아니지 30개월 군생활한 사람만 인정~~
틀
미군도 군대가 아니란다 ㅋㅋ
이런거보면 조선인은 노예근성이 맞구나
84년 12월 군번입니다. 마산역에서 집합해서 열차편으로 306보충대로 갔습니다.
양주군 신산리 25사 신병훈련소에서 빡센 6주간 훈련을 함께했던 훈련소 동기들이 보고 싶습니다.
어 나도84.12월군번인데
306보충대 일산9사단갔는데
파주포평근무
선배님 반갑습니다.
25사 95년1월 입니다.
그당시 마산출발 군용열차 종착지가 의정부시 망월사 역이었죠
85년 10월 306보충대 거쳐 25사단 신병교육대13중대나왔습니다
(양주군 남면 매곡리) 훈련마치고 70연대1대대 마지리에 배치받아 군생활했지요. 세월은 흘렀지만 아직도 눈을감으면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전두환때 였네요? 쿠테타 수괴
암만 군생활이 짧아졌어도 군대 들어가는 그 마음은 다를수가 없죠..선배전우님들 지금도 고생하고있는 후배님들 감사합니다~!
@좁불 구타를 부활시킬게 아니라 당근과 채찍을 확실하게 부릴줄 알아야지 생각 진짜 위험하게 하시네
@좁불 그게 군대냐 총든 깡패지
@좁불 이세키는 석기시대 군대로 가서 짱돌로 전쟁 해야 군기강 잡히겠네
@좁불 얼차려는 솔직히 부활해야 됨..
@좁불 그렇게 편하고 좋으면 니가 가서 80살까지 복무하세요~ 이런 사람들 때문에 fm들이 군무새,군캉스,군치원이라고 놀려대지. 당신은 그것들보다 더 못하다
47:15
이 시대 너무 순수하고 따뜻한거 같다. 부모님 생각이 나네...수고하셨습니다!
라미네이트인줄
1987년 10월 23일 논산 제2훈련소 입소한 동기들아 보고싶다
어느세 지금은 이제 50대 중후반이 되었네 모두 건강하게 잘살아라
저두 84년 10월 군번임니다. 30연대 8중대 1353×××× 임니다.. 반갑습니다
21:06 키보드 갖고싶다.
저 당시에.. 군대 가지 않은 놈들중에 국회의원 많겠다
플러스 부유층 자재들..
그런경우도 있겠지만 저땐 청년 인구도 많고 워낙 건강한 장정들이 많아서 조금만 몸에 이상있으면 현역으로 안보내고 방위로 보내버렸음..
Jason Lee 군 생활 22년 하면서 .. 느낌이오더라구요...
@@김상진-o9u 22년;;; 저보다 훨씬 잘 아시겠네요, 리스펙 합니다!
안경만써도 방위판정 받던 시절임
마지막 부분 짠하네... 훈련소 동기들은 슬프지만 말 그대로 그냥 어쩌다가 스쳐가는 인연들임. 만날 일 거의 없음. 군대 전역하고도 짧은 훈련소보단 군 생활을 대부분 같이 한 자대 병사들을 더 떠올리니까
그리운거 전혀 없다. 26개월동안 너무힘든기억만 남아있지. 벌써 22년전이다 제대한지도..
8:21 군대특: 이젠 안그런다고함
그렇게 말한지 10년이 지난
듣고있는사람 표정이 ㅅㅂㅋㅋㅋㅋㅋ
80년대 때는 그런게 없지 않아 있었어요 ㅋㅋㅋㅋㅋ 85년들어 획기적으로 개선이 됐나보군요!!!
요샌 ㄹㅇ 안그럼 ㅋㅋ. 이등별시대여서.
21년 군대: 이젠 진짜 없음ㅋㅋ
옆구리에 세면백끼고서...83년3월 논산1336....군번인데...영상보니 가슴이 뭉클한건 왜일까요...다들 참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29연대1336
반가워요
4월군번 1337 ㅎ
저는 83년 5월군번, 28연대 였습니다.
1338~
세월은 흘렀어도 마음은 20대시절 그대로인데 벌써 환갑이 지났네요.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82년3월
1326군번 옛생각 많이나네요
건강하세요
80년 12월
논산 28연대
1333..
이 떄는 "라때는 말이야..." 라고 하셔도 인정합니다.
군대 가기 전까진 잘 와 닿지 않았지만.. 전역 후 예비군이 끝나가는 지금이 되서야 아부지가 가끔 이야기 하셨던 군대 이야기가 생각나고 이해가 갑니다.. 영상을 보면서 많은게 느껴지네요.. 나름 방송국에서 촬영 오는거라 신경을 썼을텐데도 날이 선 분위기와 당시 장병분들의 고충이 느껴집니다. 주말에 아버지하고 이 영상 한번 같이 봐볼까 싶네요. 아부지가 86년도에 군입대를 하셨기에 뭔가 저 당시 장병분들이 모두 제 아버지 처럼 느껴져 보는내내 찡했습니다. 전국의 아부지분들 모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여기에 나온 분들이 저보다 훈련소 6개월 선임들이 되겠네요.
제가 1986년 2월 18일 논산훈련소 26연대에 입대를 했는데 , 영상에 나오는 시설들이나 훈련들이 다시 기억이 나고 새롭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는 것만 해도 논산호텔이라고 하면서 경기도나 강원도에 있는 각 사단으로 직접 입소하여 훈련받고 나오는 분들보다는 엄청 좋은 시설과 환경이였습니다. 저도 훈련마치고 경기도에 있는 자대에 배치받으니 논산훈련소에 훈련받고 군기가 빠졌다고 2주간 추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논산에서 배출되고 306 보충대에서 자대배치 받기 전에 잠시 대기할때 경례구호가 "선봉, 구타근절"이더구만요... 당시에는 중, 고등학교 다닐때부터 교사들도 군대문화를 받아 학생들을 밀대자루로 줄빠따나 빰을 예사로 때리던 시절이니 군대에서 고생하고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약 35년전 군대입대 시절 추억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봉구타근절 ㅠ
86년 2월 6일 제대 ㅎ
18년 11월에 26연대 입소한 사람입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15년 26연대 입대했었습니다.
@@ilillililiiilllliiliillli
2000년도 9월1일 26연대4중대2소대나왔습니다. 님 생활하시던막사 저희기수가 중간중간가서 작업했어요. 퇴소때 식탁.의자 모두들고.장구류.소총. 군장에 훈련복CS복 다집어넣고. 1인 1배낭1총1장구류 모두착용하고 신막사가서 동기들하고인사도재대로못하고.정리하다가 호명되서 나가는 동기들 많았죠.해봐야 포웅한번하고 조금눈물찔끔하다가 다시정리ㅠ
신막사에서 자고 퇴소하겠구나 했는데 아니었어요.
민무늬다 ㅋㅋ
저무거운 총
저런곳에는 늘 배고픈곳
구타와 욕이 자연스러운곳
먹는건 부실하고
불쌍한곳
그 희생만 강요하는곳
대우는 안해주는곳
저들이 있어 행복하게 살수있죠
강제징집되니까 심리가 반 꼬여있어서 사람들이 까칠해서 입에서 욕나오지
엡십육은 가볍지 않나
89년 6월 군번으로 30개월동안 강원도 화천의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했던 사람입니다. 저 영상을 보니 옛추억이
아련하게 느껴집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시설과 먹을것 환경이
비교가 안되게 열악하고 강한 훈련과 구타와 기합도 심해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내 젊은 시절을 함께한 전우들과 꽃다운 청춘시절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89년 7월 군번 화천 근무 했던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soft5250
오! 반갑습니다 혹시 몇사단 출신이신지?
저는 7사단 출신 입니다.
@@스카이다이버-n5z 7사단 8연대4대대 있었습니다
@@soft5250 그렇군요! 저는 7사단 3연대 1대대에서 복무했습니다. 비록 같은 부대는 아니지만 같은 사단에 비슷한 시기에 군생활 했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스카이다이버-n5z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86년 30 연대2중대7소대 출신인데 적성검사를 받은기억은 없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건지.지금 저친구들은 55세에서 56세 정도 가장힘든시기일텐데 모두들 힘내시고 건강들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우리부대 선배시내요
89년입니다
..수사불패..특공
제가 84년 입소했는데/ 적성검사는 /기술병과분야 같습니다- 저는 운전면허증 적어냈더니/ 보급창 지게차운전병 받았어요^^/ 지게차는 티오만 적어놓고 지프운전병헸슴 ㅋㅋ
82년 30연대 2중대. 소대는 기억 없고 하여간 전통적으로 30연대 제일 힘들다 했는데 후배님들은 어떠셨는지요
Kim Don 선배님 92년 30연대 1중대 인사올립니다~! 선배님 보다는 못하겠지만 지옥같은 시간 견뎌내고 나서 나이를 먹으니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leekh2038 어디특공이신지요?
용산에서 완행열차 타고 논산역에 내려서 걸어서 논산훈련소를 들어가서 훈련을 받은뒤 최전방에서 33개월 군대생활. 아침은 빵 한조각이 전부였으면서 훈련은 엄청 박셌던 시절. 많이 배고파서 힘들었셨는데 벌써 40년이 넘게 지났다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지는 영상이다.
노인네 말 많네
어르신, 항상 건승하세요.
그렇게 굴리면서 밥도 제대로 안줬다,,,, 나쁜 놈들이다 그 시대 기득권들은
91년 2월 군번입니다. 6주 훈련 받고 간다간다 열차타고 양주로 올라왔었죠. 제가 아마 마지막 국방색 군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8학번 동기(저보다 거의 1개월 늦게 입대한)가 저보다 특명포함 거의 1개월을 먼저 제대 하더군요. 저는 89학번이라 전방입소교육이 폐지되어서 없었거든요. 가족면회 끝나고 연병장에 더블백 깔고 앉아 간다간다 열차타기 위해 버스 기다릴 때, 먼저 가는 동기들에게 손흔들며 울면서 헤어졌더랬죠. 교장 나가는 행군에서 훈련소장 지나간다고 인솔하던 내무반장과 부사관들이 우로어깨총 똑바로 못한다며 행군대오에 날라차기 해대던 기억, 식사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아 짬통옆에 서서 빗물에 싱거워진 똥국에 밥말아서 들이 부었던 기억, 탤런트 이미연씨 오빠가 입대 동기라 발렌타인데이때 라면 박스 가득 보내져온 초콜릿을 중대원이 나누어 먹었던 기억 등등 아련합니다.
비슷한 25 사단 인가요
25번 버스 말고 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0번 버스였던 것 같습니다.^^
동기분 여동생 되시는 분이 탤런트라니....복 많이 받으셨네요...
저도 91년3월 군번입니다..그리고 전 해군입니다. 필승
전 91년 10월입니다
306에서 버스타고 26사훈련소로 입소했습니다
02군번입니다 42살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바람과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87년 8월 철원 배치 군번 입니다 ~돌이켜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폭력은 일상이라 귀싸대기 정도는 애교이고 몽둥이로 수십대는 기본이던 정말 폭력적인 시절이였네요~
그러니 군대는 어땠겠어요? 점호끝나고 안맞으면 맘이 조마조마~빨리 맞고 몇시간이라도 맘편하게 자고싶단 생각뿐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비인간적인 대접이라고 느껴지는건 혹한기 훈련때 굴하나 파놓고 입구에 거적대기 가려서 그안에서 자는데, 이등병 월급 3천 몇백원이던 시절 고참들이 월급 모아 7천원짜리 사제 침낭사라고 한푼도 안주고 가져가 놓고 , 그침낭 지가 뺏어자고 다떨어진 침낭 대충 덮고 영하 20도 오르내리던 밤을 지새고나면, 아침이라고 주는데 반합에 개밥보다 못한 생선 지느러미 들어있는국 말고 그위에 소금 깍두기 얹어서 정말이지 개도 안먹을 그딴 배식을 밥이라고 줬다는게 참나~
병장때는 우지파동 나서 폐기해야할 삼양 컵라면 전부다 군부대로 와서 첨에는 한번에 세개씩 먹으면서 잠시나마 천국을 경험 했었죠~
그리멀지않은 과거 같은데 햇수로 벌써 33년전이네요~
아~인생 무상 이네요~
진짜 뭐 폐기할거 있으면 다 군부대로 갔다는게;;
8:32 예전엔 그런게 있었지만 지금은 민주 군대란다. ㅎㅎㅎ 예전보단 나아졌다, 우리 땐 더했어. 이런 소린 저 시대도 있었구나! ㅋㅋ
진짜인지 거짓인지 늘 궁금합니다 ㅋㅋ
당연히 그짓말이죠
올해 전역했는데 진짜 저시대에 군대 가느니 차라리 알레스카 게잡이 배탈란다
ㅋㅋㅋㅋㅋㅋㄱㅋ진심이 느껴진다ㅋㅋ
베링해 게잡이배 3개월만 타면 최하위 선원기준 1억은 번다는데...근데 영어를 좀 해야 할텐디요..? ㅎ
거긴 돈이라도 많이주지
베링해 게잡이 배 타면 다시 군대갈수도
목숨걸고 게잡이 하는 사람들임
파도가 장난 아니고 매 해마다 사고남
지금도 게잡이 배가 나음
무식한 군 대물림이 지금도 이어지지만 저당시 군대는 지금과 비교도 안되게 열악하고 3년 기간에 폭행 폭력 엄청 심했던.. 저당시 다녀오신 국군 어르신들
정말 대단하시고 감사합니다.
지금은 거의 7성급 호텔수준임
지금은 장기 수학여행, 폰도하고 월급도 200가까이..서로 반말도 한다제?
@@gregorian3482틀
87년 12월에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습니다. 저희 기수가 4주만 훈련 받는 마지막 기수. 88년 1월군번부터는 5주 훈련에 훈련 마치면 면회가 되었지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훈련도 쉽지 않았는데 강원도 자대가보니... 무척 때리네요. 안 맞으면 언제 집합시킬지 두려워 차라리 일찍 맞기를 학수고대?했던 그때. 덕분에 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시절...
아버지 자대에서 이등병때 주먹으로 가슴팍 맞았는데
군벌줄이 가슴팍에 박혀서 그 흉터가 아직도있음
저때 현역 아버님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고문관이신거 같네요 ㅜㅜ
85년1월 27년대(논산 호남 고속도로 옆)에서 4주 훈련 받았습니다 각개전투 훈련장은 황토라 훈련복이 완전 황토흙으로 범벅이 되었지요 민가를 지날때 훈련복을 뒤집어서 입고 훈련소로 귀소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48:00 앞니만 자꾸 눈에 보인다
커피 단거를 안먹어서 그런지 치아가 다 순백색이네
KBS에서 취재나온다고 했을때 훈련소 존나 청소하고 사병들 조빼이 쳤겠지.. 뒤에 관물대 모포 각잡아 논거 보소 ㅋㅋ
내무반에 없던 화분도 장교식당에서 훔쳐왔는지 촬영용으로 전시한것도요
별들과 방송국에서 나오면 피곤해요 ㅋ
03군번인데 저 나무 관물대 썼습니다.
나무 관물대와 저 침상이
85년 당시에는 신식이었군요
저도 03군번입니다 반갑습니다.
@@공잘차는허리디스크환 네 반갑습니다.
항시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03군번입니다. 반갑습니다.
08말군번인데 저희 입영때도 입소대대는 저 관물대였습니다
저는04년11월군번입니다 관물대도 관물대지만 수통 제작년도 보고 더놀랬던기억이 골동품 수준이었습니다
88년도 군번이지만 80년 초중반 선배님들은 인정 충성
18:45 잠깐 뭔가 이상한데
ㅋㅋㅋㅋ 내과과장 ㅋㅋㅋ 허리가아프지~~
진료가 창열하네
80년대 진짜 힘들게 군생활하신분들 존경합니다
80년대는 그나마
좋았습니다 ㅡㅡㅡㅎㅎ
@@a호랑이 미필이 이런 말 하니까 개콘이노 ㅋㅋ
요즘 나약한 것들 80년대 군대였으면 일주일도 못버티고 울면서 엄마보고 싶다고 하겠지 으이구 ...
@@user-dc4br6ob7e 징집률 50퍼여서 각잡고 빼면 면제이던 시대인데 뭘 잘났다고 군부심 ㅋㅋㅋ
@@user-dc4br6ob7e 사슬자랑하는 노예입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