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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공군에대해 몰랐던 사실 6가지: 중공군은 강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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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3 фев 2020
  • 6.25전쟁때 중공군에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중공군은 왜 초반에 강력했을까? 왜 결정적인 승리를하지 못했을까?
    여러가지 의문에 답해보는 에피소드입니다.
    참조문헌
    Brian Drohan, IMJIN RIVER 1951 Last stand of the Glorious Glosters, OSPREY publishing, 2018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중공군 총공세와 유엔군의 재반격』, 국군인쇄창, 2011.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한국전쟁사 부도』, 황금알, 2005.
    사용된 곡
    곡 이름: Rapture
    Ross Bugden - Music
    • ♩♫ Epic Music ♪♬ - Rap...
    이미지 출처
    Wiki commons

Комментарии • 3,2 тыс.

  • @jeonkun
    @jeonkun  4 года назад +207

    영상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닷
    1. 인해전술 정의: 인해전술은 수적우위를 앞세워 보병이 밀집 대형으로 적 방어선의 탄막을 정면에서 돌파하는 전술을 뜻합니다. 단순히 숫자가 많은 군대라는 뜻이 아닙니다.
    2. 2:36 번역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각 중대마다 중기관총 2개, 경기관총 3개로 정정하겠습니다. (분대X- > 중대 입니다)
    Brian Drohan, IMJIN RIVER 1951 Last stand of the Glorious Glosters, OSPREY publishing, 2018, 21
    3. 본 에피소드는 중공군이 소련제 무기를 대거 도입한 1951년 봄을 기준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jindejun66
      @jindejun66 4 года назад +18

      미국하고 유엔군이 저 전쟁에서 중구기 무서움을 알았지..
      한국인들만 빼곤 ㅠㅠ

    • @user-vx1fj9uf6w
      @user-vx1fj9uf6w 4 года назад +11

      @@user-wu1oy1rq4x 뭐래는거얔ㅋㅋ 파병인데 죽은 숫자만 가도 도살장 개돼지 취급 받은건뎈ㅋㅋ

    • @user-he4fb9nv6z
      @user-he4fb9nv6z 4 года назад +11

      전쟁은 군인들이하고 젤중요한것은 정치요 정치하는넘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거요

    • @user-he4fb9nv6z
      @user-he4fb9nv6z 4 года назад +18

      인해전술? 그당시 미국은 세계 최첨단무기보유하고있어요 중공은 뭐가있어요? 인해전술이든 뭐든 그래도 미국하고 맞서 이겻잔어. 역대적으로 미국하고 붙어서 이긴나라 있냐? 중공말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Orcaninjas
      @Orcaninjas 4 года назад +12

      @@user-wu1oy1rq4x 네다짱

  • @kkk97295
    @kkk97295 2 года назад +96

    아버지가 625참전해서 중공군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원거리의 중공군은 아군이 총을 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더랍니다. 그러곤 모든 불이 꺼지고, 피리를 분답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피리소리는 앞에서 들리다가 점점 측면에서도 들리고.. 마지막에는 후방에서 피리소리가 들리면, 겁에 질린 아군이 도주하기 시작하고 군이 전체가 무질서하게 도망가는 형세가 되었답니다. 당시 보름정도 훈련받고 전선에 배치되어 전투경험이 없어서... 몇번 전투에 지고, 광주 포병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jungminyang8558
      @jungminyang8558 2 года назад

      소설을 써라 잼민아 아니 조선족아ㅋ
      영화찍냐? 불끄고 피리불게? 야간공격에만 매달린 이유가 낮에 움직이다가 개ㅣ발려서 밤에만한거다

    • @user-np3rw1tm6r
      @user-np3rw1tm6r 2 года назад

      피리? ㅋ ㅋ 나팔 부는건 아니고 중공군 헬조선 군대하고 안 싸웟지 치매 노인네 바이든 따까리 유엔군하고 싸웟지

    • @cloudnine486
      @cloudnine486 2 года назад +7

      저희 아버지는 6.25때 50년생 이셔서 갓난 아기셨다는데 지금 70세 넘으심...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enoeht9629
    @enoeht9629 4 года назад +100

    당시 중공군은 정예중에 정예였으나 보병장비 외에는 가진게 거의 없었죠. 덕분에 부족한 장비 치고는 어마무시한 전과를 냈으나 그만큼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며 베테란 중공군은 거의 다 소모되어 버렸습니다. 문제는 그 군대는 사실 대만 공격용으로 준비된 것이었고, 625전쟁으로 인해 전쟁특수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일본과 함께 대만역시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한반도에서의 우리 민족이 죽어갈 때 다른 두 나라에겐 축복이 내려진 것이죠.

    • @user-vl7nf2ed3k
      @user-vl7nf2ed3k 2 года назад +5

      현명하십니다

    • @user-gc2ll3iq5q
      @user-gc2ll3iq5q 2 года назад +3

      햐! 그야말로 대륙 빼앗긴 자유중국인 대만이 공산위협에서 벗어나고 힘을 비축한 비교되진 않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한 명.청 교체기의 장개석의 입장은 일정부분 건주여진의 누루하치와 경우의 수가 비슷하네.나중에 해서여진 야인여진 통폐합 중국먹었는데...

    • @winwin9151
      @winwin9151 2 года назад +3

      자동소총 소지했음 유엔군은 반자동 m1게란드 쓸때 제들은 자동소총임

    • @laputapahz
      @laputapahz 2 года назад +5

      @국토종주 근거는요?

    • @user-mg2mr6dm4z
      @user-mg2mr6dm4z 2 года назад +6

      @@laputapahz 일본스스로 6.25전쟁이 신의 축복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근거를 찾아

  • @sangwooshim539
    @sangwooshim539 2 года назад +27

    예전에 돌아가신 고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동아일보에 연재한 것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공군은 항상 전투지경선 중대와 중대 혹은 대대 사단들의 사이를 경보병들이 뚫고 들어와 우회해서 아군의 후미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전투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항상 보급이 문제여서 3일치 전투식량과 탄약을 준비하고 전투 개시후 3일 후에는 전투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약점을 보였다고 하네요

    • @user-qf1if8dd8g
      @user-qf1if8dd8g Год назад

      중공군은 포위섬멸전의 모범이죠. 국민군과의 실전에서 다져진 전술로 시의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그에 비해 미국이 주축이 된 유엔군은 전술교범에 얽매여 교과서적 대응을 하다 패퇴했죠. 베트남전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말기에나마 전술을 바꿔서 효과를 보고 있었는데, 이미 전체적 전세는 기울고, 미국내 반전 여론이 비등해서 결국 철군하고 말았죠.

    • @user-zv8mq3so1f
      @user-zv8mq3so1f Год назад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으로 폭사한
      관동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 (1869~1932)
      백선엽이 요 친일 매국노 색기가 사용했던 왜놈명이 바로 시라카와 요시노리.
      아가야 악마를 편드는 놈도 악마다. ㅋ
      아가야 악마는 지옥간다 ㅋ
      < 사후체험에 대하여... >
      제 1 편 지옥의 세계
      이승에서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사후에 영혼이 가는
      영계는 아주 맑고 깨끗한 곳으로 보인다.
      다른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많이 베푼 이들은
      아주 평화롭고 아늑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영계에 들어간다.
      욕망과 번뇌에 깊이 물들지 않았던
      이들은 날아갈 듯 개운한 기분으로
      영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마음이 탁했던 이들의 영혼들은
      영계를 어둡고 으스스한 곳으로 느낀다.
      영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서운 고통을 느낀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그들의 성품에 따라 또
      살아서 행한 바에 따라 다르다.
      탐욕이 심했던 영혼은
      혹독한 추위를 느낀다.
      꽁꽁 얼어붙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들은 덜덜 떨며 괴로와한다.
      오만방자하고 남을 업신여기던
      영혼은
      허공에서 검불처럼 휘날리다가
      핏물, 독물, 뜨거운 모래에 뒤덮이는
      느낌을 받는다.
      입속으로 뜨거운 독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뜨거운 쇳물이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독이 가득한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한다.
      화를 잘 내는 영혼들은
      칼이나 창으로 찔리는
      고통을 받는다.
      도끼로 찍히고
      작두로 잘리고
      쇠 곤장으로 두들겨 맞고
      톱으로 썰리는 고통을 당한다.
      까닭없이 남을 원망하고
      미워한 영혼들은
      바위에 짓눌리고
      돌에 맞는 고통을 당한다.
      독안에 갇혔다가
      독과 함께 자갈밭에 던져지는
      고통을 당한다.
      남을 많이 속인 영혼들은
      더러운 오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오줌똥의 늪에 빠져 고통을 당한다.
      간사하고 아첨을 많이 한 영혼들은
      밧줄로 목이 졸리는 고통을 당한다.
      음욕에 빠진 영혼들은
      활활타는 불길 속에서 고통을 당한다.
      이런 무서운 고통들은 모두
      각자 스스로의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음욕은 뜨거운 불기운을 일으키니
      음욕에 빠진 영혼은
      불길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탐욕은 한없이 빨아들이는 마음이니
      탐욕스런 영혼은 얼음과 같아서
      얼어붙는 듯한 고통을 당한다.
      오만방자한 마음은 뽐내는 마음이니
      허공에서 이리저리 휘날리는
      고통을 당한다.
      간사한 마음은 남을 유혹하여
      서서히 망가뜨리니
      남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아서
      자신의 목이 졸리는 고통을 당한다.
      화내는 마음은
      남에게 날카로운 살기를 쏘니까
      그 살기가 결국 자신을 찌르게 된다.
      원망하는 마음도
      남에게 독한 기운을 쏘아 보낸다.
      그 독기가 자신에게 되돌아와
      돌에 맞는 고통을 당한다.
      사후에 영계로 들어가는 영혼들은
      살아 생전에 행한 바에 따라서,
      즉 스스로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가는 곳이 정해진다.
      악업을 행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선업을 쌓은 영혼은 천상으로 올라간다.
      천상과 지옥 모두 일체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지옥은 아비규환이다.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은
      살아 생전에 저지른 죄업을
      되돌려 받는다.
      처절한 고통의 외침과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다.
      살인을 저지른 영혼은
      자기가 죽인 사람이 죽으면서 겪는
      고통을 그대로 똑같이 당한다.
      남을 때린 영혼은
      자기한테 맞은 이의 고통을
      그대로 똑같이 당한다.
      힘없는 중생들을 죽이고
      학대한 영혼들도 마찬가지다.
      남을 슬프게 한 영혼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며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남을 억압한 영혼은
      똑같은 억압을 느끼며
      고통을 당한다.
      남을 공포에 떨게 한 영혼은
      똑같은 공포 속에서 벌벌 떤다.
      모두가 스스로 뿌린 씨앗을
      도로 거두어 들인다.
      인과응보에는 티끌 만큼의 오차도 없다.
      지옥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벌을 받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쳐다보기가 어렵다.
      자신이 저지른 죄업에 합당한 고통을
      모조리 받고나면
      영혼은 지옥을 벗어난다.
      그들은 귀(귀신 귀)가 된다.
      귀들은 본래 가졌던 성품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진다.
      음욕이 강했던 귀들은
      바람에 실려서 이리저리 휘날린다.
      살아서 상대를 자꾸 갈아치웠듯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휘날린다.
      이런 귀들을 발귀라고 한다.
      발귀들은 바람따라 휘날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방탕하게 만들고
      음욕을 부추긴다.
      탐욕이 심한 영혼들은
      온갖 물건에 달라붙는다.
      이런 귀들을 괴귀라고 한다.
      괴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여 갖가지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부추긴다.
      오만한 영혼들은 아귀가 된다.
      아귀들은 극심한 허기를 느끼며
      고통을 당한다.
      또 사람들의 식욕을 한없이 부추긴다.
      화를 잘내는 영혼들은 여귀라 한다.
      여귀들은
      화재가 일어나는 곳,
      전염병이 도는 곳,
      사고가 일어나는 곳,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배회한다.
      간사한 영혼들은 이매귀라 하는데
      온갖 축생에 붙어다닌다.
      원한에 사무친 영혼들은 고독귀라 하는데
      독을 품은 벌레들에 붙어다닌다.
      고독귀들은 독충들이 독을 뿜어
      다른 중생들을 괴롭힐 때 쾌감을 느낀다.
      남을 억울하게 만든 영혼들은
      역사귀가 된다.
      역사귀는 힘든 일을 하는 곳에
      떠돌아 다니며
      고된 노역의 고통을 당한다.
      남을 속이기를 좋아했던 영혼들은
      몽염귀가 되어서 어둠 속에 숨어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숨기고 변명에 능한 영혼들은 전송귀가 되어서
      무당에게 붙어 미래사를 알려주고
      길흉을 점쳐준다.
      영혼들은 지옥에서는
      마음과 행위로 저지른 죄업의 과보를 받는다.
      지옥을 벗어나 귀계로 들어오면
      생각으로 지은 죄업의 과보를 받는다.
      귀계의 영혼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업의 과보를 모두 받은 후에는 여러가지 짐승으로 태어난다.
      축생이 되어서
      인간 세계에서 지은 빚을 갚는다.
      남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하고
      상처 입힌 자는 상처를 입는다.
      원수끼리 서로 만나서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다.
      축생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지은 죄업의 과보를 모두
      갚은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
      사람으로 환생한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업보를 받고
      새로운 죄업을 저지른다.
      온갖 번뇌망상과 탐욕에 빠져서
      어둠 속을 헤매는 중생의
      삶을 산다.
      그리하여 이승의 삶을 속절없이 마감하고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
      제 2 편 천상의 세계
      < 천상의 여러 차원에 대하여>
      탐욕을 버리고
      번뇌를 씻은 영혼들은
      천계로 올라간다.
      천계는 여러 층이다.
      더욱 크게 깨우친 영혼일수록
      더 높은 천계로 올라간다.
      즉 천상에서도 영혼들은
      각자 스스로 마음을 닦은 정도에 맞는
      천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 @Tulus0123
      @Tulus0123 Год назад

      경상도새키니?

    • @user-gv8pc3on6p
      @user-gv8pc3on6p 11 месяцев назад

      백선엽은 6.25전쟁시 초반에는
      (전쟁 발발부터 서울함락 때까지 그의 행보는)
      즉결처분을 받아야 할 패장이였으며
      미군 참전후 꽃보직형으로 서부전선 미군틈에서 고난을 겪지 않은 형태...
      다른 한국군들은 중부.동부전선 열악한 지형에서 개고생...
      백선엽의 전공이라는 다부동 전투도
      백선엽 사단만이 그 전투에 참여 한것도 아니고
      한국6사단과 미군2개연대, 막강한 미공군의 도움으로
      함께 승리한 전투임에도, 백선엽만이 영웅시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 봄.

  • @agm1144
    @agm1144 4 года назад +601

    중공군의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반복되자 당장은 중공군과 맞붙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유엔군은 붕괴된 전선을 재구축하고 전력을 수습하기 위해 과감한 퇴각을 강행했습니다. 서울까지 포기하고 한반도 중부지역까지 주저없이 퇴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중공군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전술, 전력, 그리고 보급 능력을 확인했고 이를 통해 중공군의 약점을 간파했지요. 그 중 하나는 열악한 보급능력으로 인해 전투를 지속할 시간이 짧다는 겁니다. 적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어도 몇시간 버티면 중공군은 물자가 떨어져 물자 보충을 위해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요. 포위당하더라더 몇시간만 화력지원을 받으며 버티면 중공군은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기존의 점방어를 포기하고 방어거점을 촘촘히 세우는 선방어로 전환한겁니다. 어깨와 어깨를 맞닿게 하라. 그렇게 해서 적의 소규모 부대가 쉽게 우회 침투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중공군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그에 대한 대책이 수립되면서 유엔군의 반격이 시작된겁니다. 지평리 전투를 시작으로 중공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초반의 연승에 자만해진 중공군은 한반도 전체를 석권한다는 목적으로 춘계 공세를 감행했지만 , 이번에는 제대로 대책을 갖춘 유엔군에게 처절하게 분쇄당합니다. 유엔군이 그저 화력 우위로만 다시 중공군을 밀어붙인게 아닙니다. 이런 중공군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전술의 전환이 없었다면 도로 낙동강까지 밀려버렸을 겁니다.

    • @user-cx9wb4ep8u
      @user-cx9wb4ep8u 4 года назад +25

      잘난체 그만 하시고. 중공군한테 밀린 것은 트루먼이 적당히 내주고 빨리 전쟁을 끝내려는, 싸울 의지가 없어서 였지 중공군이 더 강해서가 아니였다.

    • @user-kt8bj1vz7k
      @user-kt8bj1vz7k 4 года назад +142

      초딩 와 대댓글 수준 진짜 격에 안맞네;;;; 넌 어디가서 입벌리지 마라;;;;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7

      @footballcoreano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 @blupurisian5856
      @blupurisian5856 4 года назад +14

      그렇게 잘 분석하고 앞도적인 화력으로도 휴전을 하게된 이유가 뭐였나도 알아봐줘요.
      말대로라면 중공군 다 밀어내고 전쟁 승리하고 끝냈어야 맞는 말이되는데 현실은 지지리한 전투하다 휴전.

    • @agm1144
      @agm1144 4 года назад +50

      @@blupurisian5856 휴전을 하게된건 정치적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 수뇌부는 원래부터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이 소련을 자극해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이를 극도로 꺼렸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지리멸렬 퇴각할때도 미국은 38선 이북으로 진격을 꺼렸습니다. 보다못한 국군이 먼저 38선을 넘어갔고 미국에서도 강경파들이 맥아더에 힘을 실어줘서 미군도 국군에 이어 38선 이북으로 진격했던겁니다. 그러나 그 결과 중공군 개입으로 도로 38선 부근으로 전선이 원위치하게 되자 전황과 상관없이 미국은 38선 이북으로 진격을 단념했습니다. 중공군을 격파하여 다시 평양까지 간다면 이번엔 소련군이 참전할 거라 본겁니다. 그래서 서울 수복 이후 연합군은 38선 인근으로 전선을 유지하며 공산군측과 휴전협상을 해서 전쟁을 끝내고자 했던거죠.

  • @firechoi1501
    @firechoi1501 3 года назад +61

    다시는 이땅에 중공군과 북한 그리고 소련에 의한 도발을 막을수 있는것은 국방력 깅화만이 답입니다. 자유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user-xb9wt5pu2c
      @user-xb9wt5pu2c 2 года назад +3

      꿈은 자유~~

    • @user-pl1vz7kn9a
      @user-pl1vz7kn9a 2 года назад

      그래요 윤석열 같은 애 대통령으로 뽑으면 다시 중공 북한 소런과 전쟁해야합니다.

    • @firechoi1501
      @firechoi1501 2 года назад +2

      @@user-pl1vz7kn9a 뭔 개소리냐...

    • @dlrhkdduf111
      @dlrhkdduf111 Год назад

      갈길이 머네요 국방력 강화한다고 선진화된 무기는 늘려나가겠지만 정작 전쟁지지도나 항복한계치는 고려안한 징병제 개선여부는 예나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총구 전방이 얼마나 유지될런지

    • @user-rc4fm8rm7y
      @user-rc4fm8rm7y Год назад

      아쉽게도 불가능

  • @sung-gyungkim1327
    @sung-gyungkim1327 8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우리 초등학교 때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르며 놀았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띄기 하고 놀면서 불렀고요.
    "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 길에 초개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 @junyu5519
    @junyu5519 4 года назад +8

    군생활 10년 했지만, 첨 들어보네요. 지금도 비슷합니다. 북한의 장점은 분대단위 화력이 강하고, 군 경력이 오래되다보니 노련하고 산악지형 및 야간전투에 강점을 보입니다. 제아무리 공용장비가 볼품없다해도, 결코 약한 상대가 아닙니다. 압도적이지 않은 우세로는 우리 군 역시 피해가 상당할겁니다. 더군다나 핵이 있으니... 결과가 어떻든 간에 전쟁의 시작과 끝은 저들이 결정할겁니다.

  • @utlandboy
    @utlandboy 3 года назад +18

    중공군은 유엔군의 전투지경선을 찾아내서 거기로 침투하는 재주가 기가 막혔다고 합니다. 특히 산악지대에서는 전투지경선이 대부분 부대기동이 어려운 지형에 설정되는지라 유엔군 입장에선 얘네들이 어떻게 후방으로 들어왔는지 감도 잡기 어려웠던 거죠. 그러나 평지가 많은 곳에선 이런 기동이 어려웠기에, 영상에서 말씀하신 보급, 장비의 문제와 더불어 한강 이남에서 중공군의 진격이 저지되는 원인이 됩니다. 참고로 전투지경선은 부대와 부대간의 담당구역 경계선을 말합니다.

    • @djcjfisjsq
      @djcjfisjs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전투지경선

  • @user-qr3zc7lo2j
    @user-qr3zc7lo2j 4 года назад +65

    한줄요약:경험과 전술은 뛰어났지만 통신,차량과 같은 템빨이 모자랐다

    • @user-ht5lw7nj5m
      @user-ht5lw7nj5m 4 года назад +1

      비유하자면 저그가 3-3 업 하는 물량유닛들 히드라 저글링 부대

    • @lantern8357
      @lantern8357 3 года назад +3

      @@user-ht5lw7nj5m 히드라 33업이면 ㅈㄴ 쌘거 아니누

    • @user-ye3vk1yb2k
      @user-ye3vk1yb2k 3 года назад

      @@user-ht5lw7nj5m 저글링 33업이랑 22업 마린, 시즈탱크, 배틀, 33업 래이스 다가지고 있는거랑 싸우는거
      저글링은 태란의 10배

    • @ronaldore1089
      @ronaldore1089 3 года назад

      @@lantern8357 ㄹㅇ 캐리어 녹임 ㅋㅋ

    • @user-tj7ux9yf2s
      @user-tj7ux9yf2s 3 года назад

      제공은 0

  • @LinksArc
    @LinksArc Год назад +3

    중공군의 공격전술중 핵심내용 하나가 빠졌습니다. 중공군은 미군의 측면을 방어하는 한국군을 집중공격했고 당시 한국군은 훈련도도 낮고 잘 조직화 되지않아 부대가 쉽게 와해되고 잘 도망쳤습니다. 그뒤에 측면이 비어있는 유엔군을 공격해서 무너뜨렸죠.

  • @user-nf4em5re2c
    @user-nf4em5re2c 3 года назад +88

    군대가면 산에서 날라다니는 탱크가 얼마나 대단하고 보병이 탱크를 만나면 얼마나 무기력한지 알게되지.

    • @nanook5506
      @nanook5506 3 года назад +28

      군대에서..전차를 적으로 해서..훈련 뛰어본 사람들은 다 알죠..
      전차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전차가 야전에서..얼마나 빨리 기동하는지... 주포가 날리는 포탄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전차를 적으로 만나면..오금이 저려..다리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죠..

    • @user-nz8ky7dn4e
      @user-nz8ky7dn4e 3 года назад +13

      난 조종수출신이라 그냥 보병잡는거 재밌던데

    • @user-qy4pw3bb2v
      @user-qy4pw3bb2v 3 года назад +11

      장갑차 부대인데 기계화보병조차 모의전하면 아군 전차부대가 전진할수있도록 적전차피해서 작전하는거 밖에 없음;;

    • @gilhyunan1139
      @gilhyunan1139 3 года назад +3

      그래 공격헬기로 산악지형 기상 전부다 커버 못치는데 k2전차 예상보다 더 못찍은건 문제가 있음

    • @user-ze9xg4fr4j
      @user-ze9xg4fr4j 3 года назад +6

      @@user-nz8ky7dn4e ㅋㅋㅋㅋㅋㅋㅋ입장차이ㅋㅋㅋ

  • @user-lw1rw2cm8n
    @user-lw1rw2cm8n 4 года назад +211

    인해전술이 문제가아니라 집요하게 한국군부대만 집중공략해서 방어선을 뚫어버렸다고합니다 그러다보니 미국군도 포위되지않기 위해선 같이 방어선을 내릴수밖에없었고요

    • @mrbinggrae5954
      @mrbinggrae5954 4 года назад +57

      그때 친일파였던 사람이 군단장이었는데 중국이 인해전술로 밀어붙이자 쫄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지휘권 인계도 안하고 줄행량 쳐서 후퇴라인이 훨씬 뒤로 잡혔죠. 그 사건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휘권을 뺏깁니다.

    • @user-dp5hl5eh1c
      @user-dp5hl5eh1c 4 года назад +93

      그렇군요. 아무튼 빨갱이 새키들은 다 죽여야해요. 반일 선동하고 북한,중국 빠는 쌉새들도 ..

    • @kuziloveasim6272
      @kuziloveasim6272 4 года назад +23

      @@user-dp5hl5eh1c ㅋㅋㅋㅋㄲ어휴

    • @raccorps
      @raccorps 4 года назад +3

      要把台湾,香港,维吾尔,西藏等全部独立起来的秘密结社? 我好奇了!

    • @user-hf4rv2tw5f
      @user-hf4rv2tw5f 4 года назад +53

      @@mrbinggrae5954 아니 여기서 왜 친일파가 나와 육이오전쟁때가 일제치하 시대였냐,
      뭔 말만하면 친일파 참 모자라는 인간들

  • @2024GOTYBlackMythWuKong
    @2024GOTYBlackMythWuKong 3 года назад +39

    중공군이 진짜 강했던 이유는 2차세계대전때 수십년간 실전으로 단련된 전쟁 기계들인 이유도 있었지만,
    우리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은 인해전술은 절대 쓰지않는 일당백의 정예병력들이었다는거임. 전쟁을 되게 잘했었음.
    그리고 가장 무서운건 바로 중국 홍군의 무시무시한 진격속도였음.. 지금까지도 중공군의 진격속도는 전설로 남아있는데.. 무려 세계 인류역사상 3위에 드는 엄청나게 빠른 진격속도를 자랑했었음. 보병인데도 1일 최대 130km라는 가공한 속도로 진격했었으니 말 다한거임.. ㄷㄷ

    • @hkpark4958
      @hkpark4958 2 года назад +2

      1일 130km? ㅋㅋ 중공군 발표를 그대로 믿는가보군. 님이 맨몸으로라도 그렇게 한번이라도 주파하면 믿어주지

    • @user-ts2cd5si1l
      @user-ts2cd5si1l 2 года назад +1

      @@hkpark4958 왜 1일 130km가 뻥이라지?내가 구두 신고 산책처럼 걸으면서 70km걸은적도 있는데 전쟁시기 뛰여 130km 못가나요?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1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1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user-qf1if8dd8g
      @user-qf1if8dd8g Год назад +1

      최대의 함정에 빠지지 맙시다.

  • @ts8382
    @ts8382 4 года назад +17

    펑더화이 가 한국전쟁에 참전한것은 펑더화이가 산악전에 능숙한것이고 당시 평원전에 능숙한 림표를 파견했는데 꾀병으로 갈수없다그래서 산악전에 능숙한 펑더화이를 보냄

    • @tenshinoangel77
      @tenshinoangel77 3 года назад

      친일파 암살할 실력으로 펑더화이를 암살했어야 했어요. 아니면 일본군처럼 휴전을 미끼로 통수치던가요.

    • @Reansensei111
      @Reansensei111 3 года назад

      @@tenshinoangel77 ㄴㄷㅆ

  • @user-cm6yj8su6j
    @user-cm6yj8su6j 4 года назад +51

    이야 정말 오래간만에 중공군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한 콘텐츠를 보게되는군요.
    정말 대부분은 중공군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해서 어이가 없었는데...

  • @suhongrim2345
    @suhongrim2345 4 года назад +14

    중공군이 소수의 공군을 투입을 했습니다. 중공군 공군기는 미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6.25당시 놀랍게도 미공군의 손실은 막대했습니다. 소련이 몰래 참전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기밀해제된 미국문서에 의하면 그렇게나 자랑하던 미군 세이버가 미그기와의 공중전에서 손실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추정컨데 휴전이 된 이유는 이것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 그리고 중공군은 심지어 화력전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보급을 했는지 신기할 따름인데.. 유엔군과 한국군이 포병화력을 동원해 모든걸 날려버리기 시작하자 중공군도 화력으로 맞대응했다고 합니다. 고지전에서 그렇게 대응했다고 하는데... 하여간 중국도 전쟁으로 경제 망가졌다고 합니다.
    영화 집결호에 당시 중공군을 묘사하는걸 보면 포병이 나옵니다. 영화에서 포병으로 미군탱크를 날려버리는데... 확실히 장거리 사격으로 탱크를 공략하는건 불가능 한건 아닙니다. 대구경 포병화력은 탱크의 장갑을 통째로 날려버립니다.
    과거 2차세계대전 독일군 경우 군마를 동원해서 수송을 전담 시켰는데... 그 당시 바바롯사 작전에 동원한 병력이 400만이라고 합니다. 400만의 보급을 대부분 열차와 말로 했다고 하니.. 도대체 이해가 안되지만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중공군이 소와 인력으로 보급하는건 당시로서는 그다지 생소한건 아니었다고 보여집니다.
    또 차량으로 수송물자를 보급하는게 무조건 우위일것 같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트럭으로 모든 보급을 해결하던 미군은 장거리 보급을 하려고 하자 보급이 딸리기 시작합니다. 트럭이 실어날라야할 기름을 이동한다고 다 써버리는거죠.
    중공군이 포병이나 공군도 없이 전투를 했다면 전쟁을 수도 없이 해본 미군을 상대로 전투 자체가 성립될 수 없었겠죠.

    • @user-fi8qu5iw8u
      @user-fi8qu5iw8u 4 года назад

      유언군 .중공군.이겻소

    • @suhongrim2345
      @suhongrim2345 4 года назад

      그 당시는 아날로그시절이라 미국에 비벼보는게 가능했던거구요. 지금은 디지털시대입니다. 컴퓨터세상을 장악해서 네트워크로 무장한 미국을 상대로 정규전을 감행한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죠.
      미공군을 상대할 국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도 압니다.
      그리고 지금 미공군 수준이 그당시와 비교가 안되죠. 그 당시는 미국이 이제 막 태어난 아기 상태로 초강대국이 된거구요. 지금은 그로부터 몇년이 흘렀나요...

    • @tosilaga
      @tosilaga 2 года назад

      중공군은 심지어 화력전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
      제가 본 영화 (금성대전투) 에서는 미군 진지를 향해 다연장 로켓을 어마무시한 물량으로 발사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Hyuchan1002
    @Hyuchan1002 4 года назад +59

    중국이 인해전술로 승리했다라고 하는 주장은 미국과 한국군의 전략전술적 무능을 변명하기 위한 포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 @user-gl7eh4xf1u
      @user-gl7eh4xf1u 4 года назад +16

      제가 알기로도 개별전투에서는 모르지만 전체병력수는 중공군보다 유엔군이 더 많거나 비슷했다고 알고있습니다. 중공군은 선택과집중을 잘 했던것 같아요

    • @user-lb5qj1nu5s
      @user-lb5qj1nu5s 4 года назад +4

      잘 털린 군대가 한국군
      한심
      미군은 존나 쎄서 펑더화이가 한국군만 집요하게 공격함

    • @x-creator4460
      @x-creator4460 4 года назад +12

      그렇쵸. 우리는 아직도 아군이 전술적으로 밀렸다는 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싫은거죠.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2

      @@user-gl7eh4xf1u 중공군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습니다. 대략 1.5:1~2:1 비율 정도로 봅니다.

    • @user-vi7fy3bl6u
      @user-vi7fy3bl6u 4 года назад

      자아.위안

  • @level2619
    @level2619 4 года назад +52

    따발총 때문에 개인화력이 유엔군보다 높았을거라는 부분은 수긍하기 힘드네요. 대부분 소련에서 받거나 일본군,국민당군이 쓰던 소총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을걸로 사료됩니다. 따발총은 화력이야 세지만 탄피소모율을 생각하자면 보급문제로 내내 골머리를 앓았던 중공군 입장을 생각하자면 주력으로 사용하기에는 힘들죠.

    • @farm7d908
      @farm7d908 4 года назад +13

      '따발총' 이 한국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탱크' 와 함께 온 충격력을 극대화한 전술이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고, 실제로 개인화기 무장을 포함해 화력이 유엔군이 압도적으로 강했는데 따발총이 많았다는 근거를 역사, 수치 자료가 아닌 사진 몇장으로 입증하는 건 조금 신뢰가 안가네요.

    • @user-ec1es4pu6p
      @user-ec1es4pu6p 4 года назад +10

      맞는 말입니다 저도 대부분의 중공군이 일본에서 노획한 아리사카나 모신나강으로 무장한걸로 알고있었어요

    • @user-qj4cd1vf7m
      @user-qj4cd1vf7m 4 года назад +10

      맞음 ㅇㅇ 오히려 포병화력 공중폭격을 등에업은 유엔군이 화력이 훨씬 강했는데 유엔군이 화력이 딸린게 아니라 방어준비를 제대로 안해서 털린거

    • @user-ms3sz5mn7q
      @user-ms3sz5mn7q 4 года назад +4

      애초에 기관단총으로 병력중 절반을 무장시키면 절반이 근거리에서 밖에못싸우는데 이건 그냥 개 ㅂㅅ같은소리인데

    • @American-drone
      @American-drone 4 года назад +11

      저의 아버지가 경기도 포천 출신 46년생 이신데 1.4후퇴 직전에 동네에서 중공군 병사들을 본적이 있었는데 따발총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하시더군요 긴 소총은 별로 없었다고 하고요 중공군 병사들이 아버지를 안아올리고 귀여워 했었답니다. 일반적인 보병이라기 보다는 뭔가 앞선에서 활약하는 정예병사들 아녔을까 생각되네요.

  • @islescop
    @islescop 3 года назад +14

    중공군도 한국전에서 전차 운용했습니다. T-34에서 자주포인 SU-100, 중전차인 JS-2까지... 공군도 참전했구요.

    • @tosilaga
      @tosilaga 2 года назад +1

      전차 운용했고 공군 참전했어도 유엔군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수량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공군은 비공식적으로 국경 가까운 곳에서만 참전했고 조종사들 훈련이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거의 일방적으로 미군기에 당했습니다.

  • @suhyunkim3581
    @suhyunkim3581 4 года назад +229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6.25당시 국군은 최약체였습니다. 중공군 중공군쇼크가 지나가고 UN군이 대비책을 찾아가자 중공군은 집요하게 국군만 노립니다. 국군쪽으로 돌출부를 만들고 미군의 뒤를 쳤죠.

    • @user-dj3oy5rc7u
      @user-dj3oy5rc7u 4 года назад +67

      그당시 국군의 지휘력이나 전투력이 개판이였고 무기나 지원체계가 유엔군보다 못하니까 그런거죠. 누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미련한 짓을 하겠습니까? 패도 제일 약한 애를 잡아서 패지.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51

      왜냐면 한국군의 고참 주력이 중공군의 남침때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거든요. 678사단이 한꺼번에 격멸 당하고 51년 초반부터 중반까지 한국군은 후방에서 닥치는대로 주워모은 어중이 떠중이 부대였습니다. 그래서 중반까지 사창리 패전, 현리 패전같은 치욕을 겪게 되는 것이였죠. 그때 기록 보면 제대로 훈련이 안되었다는게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용문산 전투 이후부터는 제대로 중공군과 다이 다이 뜰 정도가 되어서 이후 2년 동안은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 됩니다. 훈련만이 살길이다.

    • @user-fl2tk8tk3y
      @user-fl2tk8tk3y 4 года назад +8

      대표적으로 현리 전투죠

    • @user-fl2tk8tk3y
      @user-fl2tk8tk3y 4 года назад +26

      그 당시의 한국군은 총력전 상황이었고
      무자비로 징집을해 제대로된
      훈련을 못받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실전경험이 풍부한 중공군에게
      박살당하기 일쑤였고
      그 대표적인 예가 현리 전투,횡성 전투등등 한국군이 중공군에게 패배해 큰 피해를 입는등 많은 고전을
      합니다. 이 문제는 1953년
      휴전협정 체결이전까지 이어집니다.
      (1차 금성 전투) 뭐 훈련문제는 1951년 이후로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완전히 해결까진 못합니다. 1차 금성 전투에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훈련을 4주 밖에 받지못하고
      곧바로 전선에 투입하는등
      훈련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죠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8

      @@user-fl2tk8tk3y 그건 전시때 공통 현상입니다. 실제 나찌 독일군도 전쟁 중반기 부터는 보병 4주 기초 교육후 전부 전방으로 보냈습니다.

  • @user-pt5kl7jc8o
    @user-pt5kl7jc8o 4 года назад +169

    사진 고증이 많이 잘못되었네요.
    일본군 행진을 중공군 행진이고 하던가 국민군사진을 중공군이리던가..

    • @user-lb1fo1pl5k
      @user-lb1fo1pl5k 4 года назад +4

      그러게요

    • @KJ-wn2tu
      @KJ-wn2tu 4 года назад +3

      사진 맞아

    • @sakahiro351
      @sakahiro351 4 года назад +10

      혁명새끼,틀린거 말했는데 뭐 개소리여

    • @user-oj8sn3mx7g
      @user-oj8sn3mx7g 4 года назад

      근데 6.25때도 중공군 기갑전력있지 않았나요?2차세계대전때 T-26 BT-2 BT-5 BT-7 T-34/76 T-34/85 IS-2 등등 원조받아 쓰지않았나요?

    • @user-ig7oe6lr6z
      @user-ig7oe6lr6z 4 года назад

      @@sakahiro351 니기미 10이다

  • @user-kk9kh1ib8w
    @user-kk9kh1ib8w 4 года назад +3

    창은 버리되 방패는 버리지 말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 국군 화이팅!!

  • @user-ks9gl2gx4n
    @user-ks9gl2gx4n 6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중공군 참전 초기에는 28만명정도였습닏ᆢ. 국군과 유엔군은 40만명. 정도 인민군 패잔병들은 3만정도였지요. 국군은 대부분 총쏘는 연습 몇번만 하고 천장터로 바로 투입되었으니 초기에는 전투력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다만 중공군보급사정이 않좋아서 그나마 버텼지요.

  • @user-fo5iv7oz4l
    @user-fo5iv7oz4l 4 года назад +34

    중공군도 소련제 모신나강 일본제 99식 38식 볼트액션식 소총을 셨습니다

    • @user-nasanato
      @user-nasanato 3 года назад

      독일,체코제 무기도 많이 사용함

  • @silencedog82
    @silencedog82 4 года назад +10

    제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내전 당시(1946~1948) 조선족부대가 굉장히 잘 싸워서(일제 해방전부터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모택동이 큰 전공을 세운 조선족부대들을 원래대로라면 보상과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했지만 토사구팽되어 한국전에 선봉으로 섰다고 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내전으로 전투경험이 많은 주력들이라 상당히 강했지만 한족이 아니었기에 주역이 될 수 없었고 오히려 위협이 될 수 있는 전력이되어, 한국전쟁에 투입되어 숙청아닌 숙청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또다시 전쟁어 투입되어 많은 피를 흘렸고, 전쟁이 끝난 후에 돌아가서는 이미 한족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미 권력과 보상은 끝난상태로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네요. 이후 문화대혁명 당시 마우쩌둥 조카와 연변자치주 대장과 파벌싸움이 일어났고 민족문제로 반역폭동으로 몰리고 인민해방군 투입 후 마우쩌둥 조카편을 들면서 많은 조선족들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많이 죽고 탄압당했다고 들었어요. 그세대들은 중국말 못하는 사람이 많고 나름 민족의식도 있었던 세대였는데 그이후로 싹이 밟혀 지금의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이 되었다고 들었네요. 출처가 명확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나름 신빙성 있던이야기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6.25 겪은 집안른들에게 제가 들은바로는 한국전 당시 서로 협력했다고 국군과 인민군이 학살을 많이 했다고 들었고 중공군은 그런쪽으로는 나쁜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들었고 민간인들에게 나쁘게 하지는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맹중에 강하고 매너좋았던 나라는 에티오피아라고 들었네요.

    • @user-hb9jq7wb7l
      @user-hb9jq7wb7l 7 месяцев назад

      胡说八道,我是中国人。中国朝鲜族故事很长,如果有兴趣我可以给你讲讲

  • @user-gv6gc8bj6q
    @user-gv6gc8bj6q 4 года назад +75

    중일전쟁 국공내전 산전수전다겪은 초엘리트 몇십만부대가 밀고온다고생각하니
    빠꾸칠수밖에는상황인듯..
    실제로 밤에 꽹과리 나팔소리울려대서 우리나라 군인들 미치기일보직전까지갔다네요

    • @user-fn8vf3ut6f
      @user-fn8vf3ut6f 4 года назад +6

      장비도열악하고 보급도 지게나 소달구지로 하고 저런 중공군에 밀린게 신기함ㅋㅋ

    • @legacy84
      @legacy84 4 года назад +17

      @@user-fn8vf3ut6f 적군이었던 유엔군 조차 상대가 저랬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한 거겠죠. 사실 중공군은 저때까지만 해도 자신들 보다 몇배의 규모를 가지고 질적 양적으로 뛰어났던 국민당군을 상대했던 족속들로 게릴라전,유격전,행군,기약하기 어려운 보급 같은 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다 겪었던 독종들이 대부분이었죠.
      단적인 예로 영상에도 나왔지만 산중턱에 있는 방어진지를 무력화 시킬때 그때의 유엔군이나,지금의 군대 같았으면 포병이나 공중 화력의 지원을 통해 방어진지를 무력화 하고 들어가는 데,저때 당시 중공군은 생보병으로 산을 타서 쌈싸먹기 방식으로 진지를 무력화 하는 걸 저때 유엔군 지휘관들이 누가 예상을 했을까요?

    • @user-hr1mg8oy5u
      @user-hr1mg8oy5u 4 года назад

      드라마 전우 에서도 잘 묘사 되있죠

    • @user-pi1qc3io1k
      @user-pi1qc3io1k 3 года назад

      @미에엠 그럴것이라는 하나의 썰일 뿐입니다.

    • @user-pi1qc3io1k
      @user-pi1qc3io1k 3 года назад +2

      @미에엠 대부분의 병사사 볼트엑션식 소총을 운용하고 3명중 하나가 기관단총을 운용했을것이란 썰도 있습니더

  • @changjinchoi3820
    @changjinchoi3820 4 года назад +10

    서울을 내 준 다음, 일진 일퇴 하는 사이, 미군은 포병작전을 결심한 미군은 포탄 확보에 힘쓰고 중공군이 침공을 해 올 때, 105mm 곡사포 대대가 각 대대마다 몇만발을 쏘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어요. 인해전술의 한가운데로 포탄을 퍼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user-kg6bo9pq2r
    @user-kg6bo9pq2r 4 года назад +308

    강했지 강했으니 다시 서울을 내줄정도로 밀렸지.
    미군이 너무 만만하게 본 것도 있고

    • @nopain2948
      @nopain2948 4 года назад +15

      그냥 물량빨

    • @user-kh5wr2ju9g
      @user-kh5wr2ju9g 4 года назад +93

      @@nopain2948 장비나 보급은 떨어져도 실전경험은 미군보다 압도적 이였슴
      국공내전이 막 끝나서 온 국민당 포로들 등 맨날 싸우던 애들이고
      주일미군, 이미 2차세계대전 당시 싸우던 사람들은 영관급이거나 다 제대함

    • @user-mw9ld6xi1h
      @user-mw9ld6xi1h 4 года назад +18

      결국다 늙어 죽었소 ㅎㅎ

    • @user-hn6kz8fp1y
      @user-hn6kz8fp1y 4 года назад +7

      @@user-mw9ld6xi1h ㅎㅎㅎ 이것이야말로 정답글이지

    • @berryyellow1198
      @berryyellow1198 4 года назад +9

      @@nopain2948 영상 안봤냐? 모지리

  • @user-hr6vp9bk3j
    @user-hr6vp9bk3j 4 года назад +35

    중공군은 인해전술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투 경험도 많았고, 포위 전략 같은 손자병법레벨의 전략은 잘썻다고 합니다.. 다만 현대전술을 기피했다는점이 문제...라더군요..
    기갑전력으로 전격전이나 포격, 공군의 제공권장악 등등이 없었다는건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겟죠...

    • @user-gy3ex8vx2n
      @user-gy3ex8vx2n 4 года назад +5

      저당시 중국은 기갑전력 공중병력을 운용할 인원이나 기술, 석유자원이 모자랐음 공중지원은 전적으로 소련에 의지했지만 유엔군의 본격적인 전쟁을 두려워해서 소극적지원만함 또한 미국의 공중력은 세계 최고였기에 공중전력 기갑전력을 투입해봤자 모두 갈려나갔을 겁니다 그래서 사용을 안한거죠 기피가 아니라 중국의 국가능력이 모자라 쓰지 못한겁니다

    • @hcaru6499
      @hcaru6499 4 года назад +1

      근데 에초에 전격전 성공하려면 유능한 장군 2명은 필수임
      구데리안처럼 과감하게가면 구멍이 생겨서 글루게란 장군이 구멍을 지워야했는데 기갑전력 경험이 없다보니깐 자원이 있어도 안됬을듯

    • @user-xo9gd4kj7r
      @user-xo9gd4kj7r 4 года назад

      유능한 장군이 2명이라고 무조건적으로 2차세계대전 독일처럼 전격전이 성공한다고는 못하죠

    • @hcaru6499
      @hcaru6499 4 года назад

      @@user-xo9gd4kj7r 에초에 소련은 지휘체계하고 항공전력이 아작났었고
      프랑스는 갑작스럽게 밀려서 바로 끝난거지만
      쓰기 나름인듯 해요

    • @user-xo9gd4kj7r
      @user-xo9gd4kj7r 4 года назад

      @@hcaru6499 그렇죠 스탈린 동지의 숙청빔에 맞아 유능한 장교와 스페인내전으로 경험을 쌓은 파일럿이 숙청됬죠

  • @onekyulo
    @onekyulo 3 года назад +27

    당시 소련의 지원이 있었다지만, 대부분 현대화 되지 못 한 중공군이 유엔군을 상대로 휴전선을 방어하고 휴전 협정까지 한건 정말 잘 싸운 것.
    매번 6.25때 중공군 인해전술 드립치는 사람들에게 내가 예전부터 말했었는데 이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싸워 버틴건 정말 잘 싸운거라고.
    우리가 6.25때 북한군의 침략으로 부산까지 밀린 시간을 생각하면 연합군을 상대로 중공군이 얼마나 잘 싸운건지 알 수 있고 그들이 얼마나 경험 많은 군대였는지 알 수 있음.
    단지 6.25에 그 군대를 몽땅 소비해서 대만을 먹지 못 했지.
    인류사에서 강한 군대는 대부분 경험이 풍부한 군대임.
    미군이 세계최강인 이유도 미군은 전장을 쉬지 않고 계속 해왔기 때문임.
    우리가 베트남 전에서 잘 싸운 이유도 6.25를 경험한 군인들이 선임으로 참전했기 때문임.
    흔히 우리가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엉망인 군대를 가리켜 말하는데 그 이유가 당나라 군대가 못 싸워서가 아님.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 군대는 엄청난 강군임. 주변 대부분의 국가를 굴복 시켰음. 그런데 이런 정복전쟁이 끝난 이후 평화시기가 되자 그렇게 강하던 군대가 오합지졸로 변해 과거와 차이가 심해서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생긴 것
    그 만큼 군은 실전 경험이 중요함

    • @rich-rich
      @rich-rich 2 года назад

      그 강한 당나라가 고구려에 개처발림 그래서 우리한텐 당나라 군대임

    • @user-kg6bo9pq2r
      @user-kg6bo9pq2r 2 года назад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중일전쟁 당시 일본이 중국을 지칭하는 말이 '당' 이었어요. 일본의 초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나라는 바로 당나라니깐요. 특히 일본의 쇼토쿠 태자는 거의 모든걸 당의 것들을 받아들였죠.
      즉, 일본한테 중국= 당 이라는 같은 의미입니다. 이래서 청일전쟁 당시 오합지졸인 청나라 군대를 비웃으면서 한 말이..
      '당나라 군대'입니다. 그래서 오합지졸 =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성립된겁니다.

    • @BlueWhalewithBlues
      @BlueWhalewithBlues 2 года назад +2

      @@rich-rich 근데 고구려 멸망했잖아요. 그 당나라 군대가 전략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긴거죠

    • @kanglee8722
      @kanglee8722 2 года назад +1

      모택동이 국공내전중 장개석 군대에서 빼앗은것과 돈주고 부패한 장개석 국부론에서 구매한 대부분 일본군 노획무기와 미제원조장비로 무장한 국공내전과 일본군과의 전투에 단련된 전투경험이 풍부했던 고참병들 이었습니다.

    • @rich-rich
      @rich-rich 2 года назад

      @@BlueWhalewithBlues 에휴 역사를 개판으로 가르치고 스스로도 역사에 무지하니 이런소리를 하는구나 니가 찾아봐라 수 당이 어찌 망하고 고구려가 언제 망했는지 말 더 하기 싫다

  • @user-yz1rf2fd8w
    @user-yz1rf2fd8w 3 года назад +1

    자료 준비하신 분들 감사합니다 자유대한민국 승리하는 그날까지 힘냅시다 화이팅

  • @user-cd4cc8py7l
    @user-cd4cc8py7l 4 года назад +89

    6.25때 유엔군이 알았더라면 전쟁의 판세가 바뀔수 있었던 1급비밀 자료네요

    • @jeonkun
      @jeonkun  4 года назад +39

      유엔군은 1951년 3월 무렵 유엔군도 이같은 약점을 알아내고 중공군을 밀어붙입니다 ㅎㅎ~~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18

      UN군도 51년 넘어가면서 다 파악합니다. 그래서 리지웨이 장군의 연속적인 반격작전이 성공해서 현재 휴전선 근처인 캔사스 라인까지 중공군을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겁니다.

    • @KIdd940202
      @KIdd940202 4 года назад +2

      @@hawk8873 어 근데 왜 다시 평양까지 반격 못한거죠??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37

      @@KIdd940202 쏘련의 참전 가능성 때문이지요. 글고 이미 51년 중반 부터 영프 등 주요 참전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종전 압력을 매우 강하게 넣습니다. 철수하겠다고도 하고. 왜냐면 2차대전 끝난지 불과 5년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인명 피해와 경제적 곤란함이 매우 컸거든요. 영국만해도 종전후 몇년 동안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굶어죽었을 정도였으니 사실 한국전 참전은 상당한 무리수 였습니다. 포로 교환 문제에서 공산군이 어기짱만 안놨어도 51년 말이면 끝났을 전쟁이였습니다. 전쟁을 질질 끈건 오로지 스따린 동지의 똥고집 때문이였죠. 얘가 53년 3월에 뒈진 다음에서야 휴전 협상이 진전을 봅니다.

    • @KIdd940202
      @KIdd940202 4 года назад +1

      @@hawk8873 ㅇㅎ~

  • @user-bj3bo2mc5e
    @user-bj3bo2mc5e 4 года назад +44

    인해전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얘기가 달라지겠죠.
    분명히 중국이 구사한 전술은 포위 섬멸전이 맞습니다.
    다만, 포위 섬멸전을 수행하려면 두가지 조건중에 하나를 만족해야하는데, 첫번째 조건은 아군이 뛰어난 기동력과 제병합동 전술을 구사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향에서 원하는 지형에서 적을 포위하고 심리적인 괴멸을 가할수 있는 경우죠.
    대표적인게 2차대전의 독일군이나 중동전 당시의 이스라엘군 같은 경우인데, 적은 병력으로 최고의 효율을 거둘수가 있으니까요.
    두번째 조건은, 내가 적보다 압도적인 화력 동원능력과 병력 동원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인데, 2차대전 러시아군이 대표적이겠네요.
    중공군의 경우, 후자에 해당한다고 봐야죠.
    즉, 기동력과 유연성을 발휘하기에는 군대의 시스템적 기반 자체가 취약한 중공군으로서는 보병 전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UN 군의 취약한 고리에 병력을 침투시켜 고립후 포위 섬멸하는 방식이 유일한 옵션이었으니까요.
    뭐, 그런 의미에선 인해전술이라는 것도 맞다고 봅니다.
    인해전술이라는거 자체가 심리적인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니까요. ㅎ

    • @kill5850
      @kill5850 4 года назад +11

      박노영 무슨 이유인지 625전쟁에 참전했던 중국군 얘기를 하면 생각나는게 바로 인해전술이다.실제로 중국군이 625전쟁에 투입한 작전병력은 유엔의 1.5배를 넘은 적이 없다.그것은 다만 병력분배의 령활성에 불과하며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적의 가장 약한 곳을 공격하는데 있다.그러나 사실상 총병력의 절대적우세는 없다.한국 정부가 우리 국민에게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쓴다고 알려준 것은 일종의 정치선전이라고 본다.

    • @user-bj3bo2mc5e
      @user-bj3bo2mc5e 4 года назад +4

      @@kill5850
      그것을 정치선전이라고 할거 까지는 없고, 실제로 중국이 병력 집중에 능했던건 사실이니까 포위, 고립된 병력들에게는 압도적인 병력의 열세 속에서 싸워야하는 악몽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인해전술이라고 결론내렸던 것임.
      그리고, 실제로 넓어진 전선에 얕은 종심으로 배치된 유엔군 병력들은 실제로 병력 규모의 싸움을 할만한 형편이 아니었음.

    • @user-he4fb9nv6z
      @user-he4fb9nv6z 4 года назад +2

      말하자면 중공군은 그당시엔 인해전술빼곤 다른방법이 없단말이요.육해공등어느방면도 미국하곤 비교가 안되죠 막말로 택또 없죠.죽은사람만 불상하죠

    • @user-dj3oy5rc7u
      @user-dj3oy5rc7u 4 года назад +3

      정원호
      인해전술(人海戰術, Human wave; Human sea)[1]이란 공격적 보병 전술의 하나로서, 공격측이 수비측과 한데 뒤엉켜 전투 국면을 혼전 상태로 전환시켜 수비측을 제압할 목적으로, 병력의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이용한 밀집 보병 형태를 구축하여 적 전선을 향해 무방비 정면 공격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인해전술을 운운하기전에 먼저 개념부터 알고나서 말하세요. 무식해 보여요.

    • @user-he4fb9nv6z
      @user-he4fb9nv6z 4 года назад

      @@user-dj3oy5rc7u 지상담병 이란말 들어봣죠? 아가리 확~~!

  • @javaxerjack
    @javaxerjack 3 года назад +18

    다른건 그렇다 쳐도 미군을 상대로 전세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은건 대단한 일인건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연구를 할 필요가 있는게 사실인데 한중일미국 어느 국가도 이 부분은 놓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점이 아쉽네요.
    더불어 어떻게 보면 월남전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전쟁인데도 미국은 자기들 계획이 어떻게 꼬였는가에 대한 연구는 개을리 했는지 훗날 월남전에서도 제대로 꼬이죠.

    • @hkpark4958
      @hkpark4958 2 года назад

      공감 한 표입니다

  • @user-lb6bu7xg8c
    @user-lb6bu7xg8c 3 года назад +10

    전쟁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고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알게되어 공부가 많이 됩니다.

    • @py958
      @py958 Год назад

      전쟁 이야기가 재밋어?? 조만간 전쟁 날꺼같은데
      그것도 재밋울까 궁금하네 ㅎ

  • @stevenrhee8398
    @stevenrhee8398 4 года назад +69

    중공군은 유엔군을기만하는
    기도비닉을 잘했습니다.
    산길을 밤에만 이동하여
    적군을 속였고 갑자기 엄청난
    병력이 배후에 나타나 포위공격하는 전술.
    그리고 팽덕회 저사람,
    김일성의 귀싸대기를
    때린것으로 유명하지.

    • @user-ms6vi5ue1z
      @user-ms6vi5ue1z 4 года назад +3

      씨발놈이 남의 나라 지도자를 때려?
      기껏해야 그나라 대장쯤 되는 새끼가..
      아...열받네..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49

      @@user-ms6vi5ue1z 성이 둘인 놈은 믿을 수 없다.

    • @ssbblee1345
      @ssbblee1345 4 года назад +44

      @@user-ms6vi5ue1z ㅋㅋㅋㄱㅋㅋ사상검증 해야겠는데

    • @user-hc7zz4zb7q
      @user-hc7zz4zb7q 4 года назад +16

      훌륭한 지휘관이지만 적이기에 좋게 볼 수만은 없죠 모택동이 아들 못 지킨죄로 5년뒤에 숙청을 당하죠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8

      @@user-hc7zz4zb7q 그러긴 합니다. 양가 감정이 생길 수 밖엔 없는데 암튼 야전 지휘관으로서는 이견없이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고 저도 동의합니다. 모안영이는 지가 까불다 뒈진건데 그러지 말라고 등화 관제 명령 내린걸 어겼으니 명령 불복종이기도 합니다.

  • @agm1144
    @agm1144 4 года назад +7

    따발총 같은 기관단총은 M1 개런트나 리엔필드 같은 일반 소총과 용도가 전혀 다른 물건입니다. 미군이 사용하던 톰슨, 그리스건이 이와 같은 무기이며 근접전용으로 일반 소총과 비교할 무기가 아니네요. 중공군의 주력 소총은 영국군의 리엔필드와 다를게 없는 볼트액션인 모신나강 소총이였습니다. 차라리 가스압을 이용해 연사가 가능한 미군이 M1이 좀더 진보한소총이였지요. 따발총의 보급률이 높았던건 보병간 근접전을 중시했던 중공군의 전술에 따른 것입니다.

  • @jeon9452
    @jeon9452 2 года назад +1

    너무 상세하게 설명해주셔서감사합니다 자료찾느라 고생많이하셨어요

  • @user-dh7qi6en4i
    @user-dh7qi6en4i 3 года назад +2

    확실히 중공군 사상자가 2,3배 이상으로 많기는 했음. 기관단총 같은 좋은 총도 9mm라서 근거리 밖에서는 정확한 사용이 어려웠고 포위를 한다고 해도 포위된 장소로 대규모 병력을 집어넣어 섬멸해야 했기에 분명 사상자가 많았음. 장진호 당시에 일제가 그 장진호라는 인공 호수를 파지만 않았어도 미군들 끼리 협력해서 오는 대로 격퇴 할 수 있었는데 일제 진짜 피해란 피해는 다 남기네
    아무튼 사거리가 길든 짧든 명중력이 좋든 말든 한 번에 71발을 난사할 수 있는 중공군 의 막강한 화기 앞에 고작 열 몇발 짜리 국군 과 연합군 의 단발식 소총은 상대가 안 되고 아무리 전차 군함 같은 첨단 전력이 있어도 보병이 훌륭하지 못하면 전쟁의 승패는 누가 많이 죽고 안 죽고를 떠나서 보병이 우세한 쪽이 승리함(지금은 많이 달라졌곘지만) 나 지금 10대인데 1년전인가 선생님이 군대 이야기 하다가 말했음. 어떤 종류의 폭탄인지는 모르지만 북한은 우리보다 10배나 많은 물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함. 전투기 군함...아무리 우세하다고 해도 보병 전력진짜 무시못함.

  • @x-creator4460
    @x-creator4460 4 года назад +52

    인해전술 ?..ㅎㅎ.
    "탱크나 폭격기를 포함한 미군의 막강한 무기도 한 밤중에 교란작전으로 나팔불며 내려오는 중공군에겐
    무용지물였고 그건 바로 중공군의 기발난 전술이였다". 이건 미국인 역사학자가 National Geographic 프로에서 했던 말인데 처음 듣는순간 당황스러웠고 아직까지 읻혀지지 않네요... 우리는 어릴때부터 항상 "인해전술" 로만 알고 있었는데 ㅠㅠㅜ.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4 года назад +6

      X- Creator 인해전술 맞음. 가평 전투 등등 교환비나 참가 병력들 보면 당연히 인해전술 소리 나옴.
      나폴레옹조차 자기는 전략적 병력은 열세라도 전술적으론 늘 숫적 우위로 적들을 무찔렀다고 하는데, 숫자는 무시못함.
      중공처럼 가용 병력이 많으면 적을 포위하고 죄여오고 중공의 진영에서 약한 쪽이더라도 보충할 병력이 있으면 그쪽으로도 못 뚫으니까 포기하게 됨. 일부 병력은 무장 적게 주고 싸움 한번 안해보더라도 그 하나하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억제력이라 상대방은 싸움을 피하게 되고 전술적 옵션이 하나하나 없어지게 됨.
      체스로 치자면 중공은 폰이 비정상적인 비중이 높고, UN군은 폰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는 전술을 짜더라도 만약 중공 폰의 숫자가 2배, 3배 겹겹이 쌓이면 아예 그런 전술은 포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세계최대인구 국가가 수도 근처 바로 옆나라에 파병 + 보급 vs.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와서 싸우는 UN군 중 어느 쪽 전쟁 수행능력이 좋을까?
      그러니까 중공은 엄청 유리하고 상대방은 불리한 조건에 싸운 거.

    • @CrabTastingMan
      @CrabTastingMan 4 года назад

      X- Creator 어차피 UN 상대로 중공군은 일본군의 야비한 전통 (진주만, 러일, 중일, 베트남 침공, 필리핀 침공, 등등 모두 선전포고 안함)을 써서 UN에 단단히 찍힘.
      멍청한 키신저가 닉슨 꼬드겨서 구해줄 때까지는.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미국의 공업기술까지 줘서 중소결렬을 도와줌. 어차피 결렬됐을 건데. 배은망덕한 중공은 현재까지 매년 250조원 상당의 기술을 미국에서 빼왔지만 (미국 학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속적인 도둑질”이라고 말함) 회사 주식 걱정 + 미국 언론에 침투한 중국 자본 때문에 이게 많이 공론화 되지 않음.
      베트남 전쟁이 1976년 끝나고, 북베트남은 남베트남 상대로 엄청난 숙충을 하고, 곧 중국의 괴뢰인 캄보디아가 배트남과 싸움 걸어오고, 1979년 중국이 배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바쁜 틈타 또 몰래 쳐들어와서 2선 무기를 들 수 밖에 없던 아이들과 부녀자들과 싸움.

    • @user-dj3oy5rc7u
      @user-dj3oy5rc7u 4 года назад +9

      CrabTastingMan
      미국은 뭐 선전포고 하고 들어왔나? 북한은 했고? 암묵적으로 서로 선전포고를 안한거임. 중국은 지원군의 명의(자발적으로 지원해서 참전했다는 논리)로 참전했기에 국민들의 자발적인 행위이지 국가적인 행동이 아니라서 선전포고를 할 이유가 없음. 선전포고를 하는 순간 전면전으로 변함.

    • @user-dj3oy5rc7u
      @user-dj3oy5rc7u 4 года назад +13

      CrabTastingMan
      인해전술이라고 하기보다는 포위섬멸전이라 하는게 더욱 맞음. 단순하게 숫적 우위로 무식하게 내리 누르는게 아닌 방어가 약한 부위를 치고 우회해서 포위하고 보급로 및 퇴각로를 차단하여 고립시키는 전술임.

    • @user-mz3kk6fz9u
      @user-mz3kk6fz9u 4 года назад

      @@user-dj3oy5rc7u 미국 법 구조가 선전포고가 거의 불가능한구조임.. 그리고 포위섬멸전이라고 하기엔 교전비가 너무 개판임. 투입한 병력 숫자가 10배나는데 승리한 전투에서 패배한 상대에 비해 사상자가 10배라고 하면 그게 인해전술이지. 인해전술이란게 부족한 화력을 매우기 위해 압도적인 숫자를 밀어 넣는걸 보고 인해전술이라고하는것임. 포위작전이 있었다고 인해전술이 아니라고 주장할수는 없음.

  • @bukmyung
    @bukmyung 4 года назад +18

    당시 유엔군과 중공군의 숫자는 생각보다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인해전술로 사람수로 밀어붙일만큼 많았나요? 기관총을 앞에두고 죽어도 죽어도 쓸어버릴만큼 많은 차이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죠. 그럼에도 밀렸다는 것은 집중과 선택의 차이였다는 겁니다. 유엔군은 승리에 도취되어 중구난방으로 전진하는 바람에 전선이 엷어졌다는 것이 문제였죠. 한반도는 원산 이북에서부터 넓어집니다. 그걸 모르고 사방으로 흩어지다가 수많은 경험으로 무장한 중공군의 집중공격에 무너진 거죠. 상대적으로 장진호 전투에서 대규모 병력과 싸워낸 미해병 1사단의 경우만 봐도 제대로 준비된 미군을 상대로 중공군은 그런 실적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죠.

    • @user-sc3tf1yn7n
      @user-sc3tf1yn7n 2 года назад +2

      그럼 그뒤에 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거임?ㅋㅋㅋ
      전쟁 끝날 때까지 미군은 방심을 계속 한거임?ㅋㅋㅋ
      6.25를 공부하면 처음엔 인해전술이었다고 하다가 중공군 규모 들키니까 미군의 방심이었다고 하고 정색 하고 싸우면 미군이 압도적으로 이긴데 ㅋㅋ 근데 다시는 휴전선 이상으로 북진 못함 ㅋㅋ
      맨날 거짓말이여 ㅋㅋ

    • @user-sc3tf1yn7n
      @user-sc3tf1yn7n 2 года назад +1

      베트남처럼 민간인과 적이 섞인 게릴라에 당했다는 말도 못하는게
      정규군 v 정규군 싸움이었음 ㅋㅋ
      이렇게 반박하면 빨갱이로 입을 막습니다 ㅋ

    • @ysh2695
      @ysh2695 2 года назад +2

      @@user-sc3tf1yn7n 교착상태 들어갈때 즈음이면 국군과 UN군은 충분한 예비대가 없었음 그나마 어느정도 훈련된 신병을 투입했던 때가 전쟁 막바지인 금성지구 전투때였으니… 장비가 충분해도 그걸 잘 운용할 병력도 없고 전술이해도도 떨어짐+악랄한 한반도의 산지때문에 북진할 여력이 없었다고 봐야함 그래서 교착기간 동안 공세는 주로 중공군 주도로 이루어졌음

    • @user-sc3tf1yn7n
      @user-sc3tf1yn7n 2 года назад +2

      @@ysh2695 중공군은 무슨 장비나 훈련상태 좋았냐?ㅋㅋㅋㅋ
      전쟁을 3년 했으면 당나라 군대도 강병으로 키웠겠다 ㅋㅋㅋ

    • @ysh2695
      @ysh2695 2 года назад +3

      @@user-sc3tf1yn7n 중일전쟁 때처럼 물량으로 테크를 커버친 케이스임

  • @user-ib5do2lc4f
    @user-ib5do2lc4f 4 года назад +13

    중공군 최일선 전투병 외에 지원부대 병사는 절반 정도가 소총이 없었고 수류탄으로 무장했읍니다.가난한 군대였지만 군기는 엄정 했읍니다.목격담입니다.

    • @py958
      @py958 Год назад

      목격담??? 뭔 개소리?!?!????

  • @UnitedStatesofAmerica-gx7sv
    @UnitedStatesofAmerica-gx7sv Год назад +1

    중공군도 국공내전 짬밥도 있었고 국공합작으로 일본군들 상대한 짬밥도 있어서 함부로 상대하기에도 힘든 상황이죠 ㄷㄷㄷㄷ

  • @user-nu8xj4px1x
    @user-nu8xj4px1x 2 года назад +6

    중공군이 잘 싸운것도 있지만 국군의 졸전도 있죠 독립군출신 장군들은 게릴라전에는 능숙해도 전선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일본군 출신이라 한들 가장 높은 계급이었던 장군이 소령이었으니 전투에는 강해도 군단급 지휘는 부진했죠

    • @user-uw4pm2xz6h
      @user-uw4pm2xz6h 2 года назад

      6.25당시 독립군출신 장군은 없었습니다. 김홍일장군이 있었는데, 김홍일장군은 사단장(대행)을 역임했고, 군단참모도 해서 대부대 지휘경험이 있는 유일한 지휘관이었지요.

    • @RIGHTER-kr6hl
      @RIGHTER-kr6hl 2 года назад

      있기야 있었죠. 야전지휘관이 아니었지만.. 최용덕장군정도?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왜곡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user-zu9jv9wp2f
    @user-zu9jv9wp2f 4 года назад +7

    재밌게 잘 봤습니다.

  • @KJ-wn2tu
    @KJ-wn2tu 4 года назад +5

    중국군 14시간 70KM 산길 걸러서 유엔군 포위했습니다, 6.25전젠 중공군 수많은 기적 있기떄문에유엔군하고무승부했습니다,중국 만약 미국 3/1 보급이나 무기있으면유엔군 질 것같습니다

    • @jackpark8225
      @jackpark8225 4 года назад +3

      무승부가 아니라 그럴 땐 유엔군이 진거라고 해야 합니다...

  • @ICAOhell
    @ICAOhell 4 года назад +45

    초기 국민당의 대토벌전 부터 중일전쟁 국공내전을 겪으면서 확실히 전투에 노련한 베테랑들이 많았죠. 특히 팽덕회는 정말 대책없는 상황에서 싸우는데는 도가 튼 노련한 야전사령관이였죠.

    • @user-xw3pv1wo5q
      @user-xw3pv1wo5q 4 года назад +9

      미국을 포함한 그 많은 연합군을 중국 혼자서 저지 했다는 거 보면 당시 중국은 진짜 적이지만 인정 해줘야 하는 수준이었죠.
      근데 추축국 주제에 아직까지 항미원조전쟁이라며 자축 하는 거 보면 진짜 저런 나라랑 수교를 해야 하나 싶더군요.

    • @dongkupark7907
      @dongkupark7907 4 года назад +1

      그 까짓 뙤놈들 병정놀이 미국이 원자탄 10개면 깨끗이 끝낼것을 뭐할라고 질질끌고 그랬나?

    • @robinheo8573
      @robinheo8573 4 года назад +2

      @@dongkupark7907 틀

    • @user-pf6ny1rc1r
      @user-pf6ny1rc1r 4 года назад +4

      dongku park 그러면 너는 이세상에 태여나지 않았늘거고, 태여나기전에 지구강제리셋

    • @user-vm5is7bb3p
      @user-vm5is7bb3p 4 года назад

      결국 홍위병들한테 뒈짐 꼴 좋게ㅋㅋㅋㅋㅋㅋ

  • @skyyu7369
    @skyyu7369 4 года назад +4

    사실적인 분석이시네요..무조건적인 공포나, 자만이 제일 무섭지요..수고하셨습니다.

  • @user-jv7eo7zq6p
    @user-jv7eo7zq6p 4 года назад +5

    참고로 중공군이 사용했던 슈파겐 기관단총 예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데요.
    기관단총의 유효사거리가 100m내지 200m라는 워키백과에 기재된 일반적인 지식때문에 배그게임내에서 조차 돌격소총 발견시 반드시 버려 교체해야 하는 물건으로 오해를 사고있습니다.
    사실 미국의 여러 총기전문가들의 실험에 의하면 권총탄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기관단총(mp40, 톰슨, 슈파겐, 우지, mp5등등)은 단발모드에서 침착하게 사격할 경우, 300m의 목표물도 맞출라면 맟출수 있습니다.
    다만 이거리까지 권총탄을 날리면, 살상력이 약간 감소되며 탄착군이 소총에 비해 약간 넓어지는게 흠이지만, 사람만한 목표물을 맞추는데는 큰 문제 없습니다.
    기관단총은 우리가 생각하는것만큼 근접전에서만 쓸수있는 범용성 떨어지는 몹쓸 물건이 아닙니다.
    돌격소총의 대중화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들이 스코프를 사용해 300m밖의 적들을 제압해 엄호만 해준다면 충분히 현대보병전에서 범용성을 갖춘 준돌격소총급 무기였습니다.
    여기서 전방 300m라 함은, 전방의 인간크기의 목표물이, 인간의 시점으로 "점"으로 보이는 구간의 사거리를 말하며, 이 이상의 사거리에서는 스코프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격하기 힘든 거리를 말합니다.
    ppsh-41 슈파겐 기관단총은 중공군 보병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장이였으며, 소련군의 모스크바 근위사단은 독소전당시 사단 대부분의 병력이 소총없이 이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기관단총이 단순히 참호청소기가 아니라, 시가전, 야전, 산악전등등, 대부분의 전투에서 스코프가 없는 기계식 조준기만을 사용하는 총격전이 발생시 대부분의 전투를 소화할수있는 충분한 사거리를 가진 준돌격소총이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균 보병교전거리 250m로 평가되는 한반도전선에서 중공군의 슈피긴은 거의 사막전에서 돌격소총급 만능무기였을 것입니다.

    • @user-ni2zu4pj5i
      @user-ni2zu4pj5i 4 года назад +1

      심지어 기관단총 특유의 짧은 총열로 인한 휴대성때문에 산악전, 참호전위주의 한국전쟁때 활약할 수 밖에 없는 총이었죠.. 국군이 당시 한국인 체구에 비해서 불편할 정도로 총열이 긴 m1이 주무장이었던걸 생각해보면 중공군 기관단총은 비교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효과적인 무기였을거 같습니다..

    • @user-jv7eo7zq6p
      @user-jv7eo7zq6p 4 года назад +1

      하지만 국군도 만만치 않은게 m2자동카빈을 대량으로 보유하고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총의 탄약인 30카빈탄은 평균 권총탄의 운동에너지(약 700줄에서 900줄)가 2배정도(약 1300줄) 되어서 300m 이내에서 완벽한 소총과 동급의 탄착군을 보여주고 장탄수 30발 바나나형 탄창에 자동사격과 반자동 사격이 가능한 물건이였습니다. 거기다가 m1a1카빈의 목재스톡으로 교체해주면 권총손잡이와 접절식 개머리판때문에 반동제어와 휴대성도 확보할수 있었죠. 카빈소총은 개런트소총보다 더 생산량이 많아서 2차대전당시 포병이나 기갑같은 비보병 분과에서는 전병력이 카빈으로 무장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사실 국군의 주력 보병화기로 지급하는데 문제없을것입니다.

    • @user-jv7eo7zq6p
      @user-jv7eo7zq6p 4 года назад +1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한다면 중공군도 무시무시했던게 ppsh-41 슈파겐 기관단총만큼이나 대량지급받은 총기가 sks 시모노프 소총, 흔히 우리가 배그에서 "스크스"라고 부르는 그 소총도 함께 지급받았다는 거죠. AK47돌격소총의 M43소총탄을 사용했기에 카빈소총에 비해 정확도, 사거리, 관통력이 헐쉰 좋았지만 장탄수가 10발밖에 안되었고 반자동이였죠. 즉 한국전쟁은 따발총+스크스VS카빈의 대결이였다고나 할까요? 이쯤대면 상호막상막하였을 겁니다.

    • @hawk8873
      @hawk8873 4 года назад

      천만에요. 일반적인 교전 상황에서는 백미터, 실제는 50미터 교전용이였습니다. 일단 소총탄과 토카레프 권총탄의 에너지 자체가 넘사벽입니다. 데이타만 보니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또한 살상력이라는 말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총을 맞추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사람을 자빠뜨리는, 즉 죽거나 병신 만들 정도의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소총탄과 달리 권총탄은 급격히 에너지가 떨어집니다. 사실 참호 육박전때도 만약 제대로 된 방탄복 입고 있으면 권총탄 쓰는 기관단총은 거의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래서 대 테러전을 제외하고 정규전에서 권총탄 쓰는 모든 화기가 도태된겁니다. 625때 빼빼샤를 대량으로 쓴 전사 보시면 제한된 용도, 즉 야간 공격전, 참호 육박전이나 돌격전때 집중 사용했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방어전때는 리치가 길고 위력 좋은 모신나강 볼트 액션 소총 위주의 화력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는 UN군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 @user-jv7eo7zq6p
      @user-jv7eo7zq6p 4 года назад

      네, 허나 당시에는 방탄복은 커녕 파편조끼도 제대로 대중화되지 못했기에 기관단총만으로도 해볼만한 싸움이였습니다. 그리고 300m교전에서는 주로 스크스를 사용했겠지만 그렇다고 슈파긴을 들고있는 중공군 장병은 그동안 스크스를 사용하는 장병옆에서 손까락만 빨고 대기타지는 않았다는겁니다. 실험결과 기관단총은 300m까지는 사람만한 목표물 안에 탄착군을 형성하다는게 가능하다는거죠.

  • @user-fw3wg5bd9l
    @user-fw3wg5bd9l 4 года назад +2

    한국군의 부정부패도 한몫했음 전방에 군부대에 지원될 식량이나 피복, 연료, 차량이 민간 암시장에 돌고 있었으니 전방에 국군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었음

  • @nayuo
    @nayuo 4 года назад +19

    당시 한국군의 상황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루마니아군과 좀 비슷한 것 같네요. 당시 소련군도 전투력과 장비수준이 막강한 독일군을 직접 돌파하는 것보다는 그 옆에 허접한 장비로 무장한 루마니아 동맹군이 맡은 지역에다 총공세를 감행했죠.. 공세는 당연히 성공했고 전선 돌파후 우회하여 독일군 주력을 포위해버림.

    • @Yangx666
      @Yangx666 Год назад

      柿子都喜欢挑软的捏!

  • @Jorjia425
    @Jorjia425 4 года назад +12

    중공군은 인해전술로 아침에 자고 저녁에 진군해서 기습하는 형식으로 속도전을 했습니다. 초반에 전선이 밀린거는 선전포고하고 들어온게 아니라 갑자기 참전해서 지휘부 진격작전을 새로 세워야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입니다. 전쟁은 보급이 중요한데 이미 보급작전을 세워뒀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더 보급이 필요하게 되고 그 쪽 사단은 재정비 차원서 철수해서 전선이 밀린 겁니다.그리고 마하속도의 전투기는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기에 상공서 전투기 식별이 충분했고 중화기를 쓰면 훈련된 사수라면 전투기를 격추가능했습니다. 탱크도 장갑이 약해서 중화기보급만 충분하다면 커버가능한 수준이었고요. 물론 많은 사상자가 생기겠지만 이미 백만명이상의 북중연합군이였기에 미군의 화력이 무용지물이 되었죠. 결론은 북중연합은 속도전으로 우리연합군을 지치게하였고 새벽을 틈타 기습적으로 참전한 중공군에 의해 보급계획과 작전계획의 변경으로 전선을 내주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미국내에서 반전시위 등으로 왜 남의 나라가서 자국민을 죽이냐하는 여론이 강했고 유럽도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본국의 전후복구 문제도 있고 덜 지원해줬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교착상태로 우리민족의 피를 많이 봤고요.

  • @user-om5km3nn2l
    @user-om5km3nn2l 3 года назад +4

    6.25전쟁에서 막강한 화력을 갖춘 유엔군이 원시적인 중공군에 밀렸다는건 절대 좋은무기 현대식무기로 전쟁에 승패를 좌우하는게 아니라는거지

    • @Dlwlgnn
      @Dlwlgnn 3 года назад

      근데 요즘은 그 갭이 너무 커져서 이제는 그 말이 맞을지도...

    • @user-wu7ou9vl7y
      @user-wu7ou9vl7y 3 года назад

      전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화력 강한쪽이 이김

    • @user-fi9pl5bd3r
      @user-fi9pl5bd3r 3 года назад

      중공군에게 밀린것도 초반에나 해당되는거지 나중에는 막강한 화력으로 중공군을 오는 족족 분쇄했습니다.
      52년 백마고지 전투, 53년 7월에 벌어진 금성지구 전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3JTriple
    @3JTriple Год назад +1

    전투는 많은 병력이 중요한게 아니라 싸우는 순간 적보다 많은 병력을 집중하는게 중요함을 보여준 중공군이었죠

    • @user-qf1if8dd8g
      @user-qf1if8dd8g Год назад

      선택과 집중, 포위 섬멸전의 전형이죠. 국공내전에 참여했던 군과 간부들이 그대로 한국전에 투입됐죠. 특히 팽덕회는 중공군의 가장 유능한 지휘관 중 하나였다는 게 한국의 입장에선 아쉬운 일이죠.

  • @kimlj1474
    @kimlj1474 4 года назад +25

    당시 중공군 기본화기는 볼트액션(모신나강M1891)이고요 ppsh-41은 일부 인원들(10프로 내외)만 있었습니다 이들은 돌격용 특정부대를 만들어서 특별할때만 운용했어요

    • @yy994
      @yy994 4 года назад

      모신나강이 제가 아는 그 러시아제 맞죠?

    • @FIBER1952
      @FIBER1952 4 года назад

      @@yy994 ㅇㅇ

    • @dlrhkdduf111
      @dlrhkdduf111 Год назад

      확실히 파파샤를 다들고 있다고뻥치기엔 중공군 너무 가난하지 않았나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user-gw4du8ek6v
    @user-gw4du8ek6v 4 года назад +3

    재미 있게 잘 봤습니다.
    중공군의 펑더화이는 유엔군의 특징을 미리 철저히 파악 했다 합니다.
    즉 유엔군은 기계화된 부대로 도로를 중심으로 전투 및 이동 한다는 것이죠.
    북한땅은 80%이상이 산악지역이고 잘 닦여진 도로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전군님의 내용 대로 중공군은 낮엔 대기 하고 밤에만 산악 이동을 감행 해서
    유엔군 퇴로를 차단 하는 전술을 쓴꺼죠
    어차피 유엔군 전진 후퇴는 도로 중심이고
    산악 지형에 그 도로 비율이 높지않으니 우회전진 하여 퇴로 차단하면 끝이죠.
    전쟁이란게 퇴로차단은, 보급이 끊기는것 과 그 이상으로
    심리적 불안감이 폭팔 합니다.
    그걸 철저히 이용한 것이죠.
    그런데 그 어마한 추위에 야간 산악이동을 그정도 했다는건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한 무식한 전술이겠죠.

    • @zhengyiyan4360
      @zhengyiyan4360 Год назад

      싸움에 무식한 전술이 어딨냐 무조건 이기면 되는거지

  • @user-lz3vg1pe5m
    @user-lz3vg1pe5m 4 года назад +3

    아... 연락수단이 없었구나 그래서 영화보면 중공군 등장할 때마다 풍물놀이 사운드가 들렸던거구나 ㅋㅋㅋㅋ 그냥 위압감 조성용인 줄 알았는데 나름의 신호였다니 ㅋㅋㅋ

  • @SPIKATV
    @SPIKATV 4 года назад +4

    잘 몰랐던 사실들...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 @user-zf6gl3df4b
    @user-zf6gl3df4b 2 года назад +1

    나라지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user-uq2qd1iz4y
    @user-uq2qd1iz4y 4 года назад +13

    다른 채널에 비해 스토리 중심의 영상 길이가 길어서 좋앗는대 이제 짧아진다니 아쉽네요
    굉장히 전투 전반에 대해 자세하게 다뤄서 예전의 히스토리 채널을 보는것 같앗거든요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잠들기전에 눈감고 들으면 딱 좋앗거든요. 라디오처럼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유튜브 수익은 구독자수보다 조회수와 영상길이가 길수록 커진다고 알고잇는대요. 그냥 처음에 하신 컨셉대로 밀어붙이면 좋앗을텐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햇는데 댓글로 쓸데없는 간섭하는 사람치고 꾸준히 듣는 분 없으실텐데
    댓글은 몇개 없지만 50분 이상 넘어가는 영상 조회수가 최소 몇천건 이상 되는게 저처럼 기존의 영상들을 좋아하시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이 알고싶다 음원 조작편 보면 인터넷 전문가가 날짜 요일 빼고 아무것도 안믿는다고 하자나용. 댓글에 기존의 영상이 맘에 안드네 어쩌네 이런거 한두명이 뭐라하는거라 무시해도 아무 상관없으실텐댕
    다른 전쟁사 밀리터리 고퀄의 짧은 영상위주의 채널에 비해 스토리 중심의 길이가 긴 영상이 차별화 되고 좋앗는데 다른 채널들과 비슷해진다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질수도 잇고요.
    채널 주인은 시청자 구독자가 아니라 채널 개설자 전군님이 주인입니다.
    물론 명백한 잘못된 사실이거나 무언가를 비방 비하하는 내용을 본인도 모르게 올렷다면 시청자 피드백을 반영해서 수정해야 되는거는 맞지만요.
    이제 기존의 다른 채널들처럼 짧은 영상위주로 운영하신다니 아쉽내용

    • @jeonkun
      @jeonkun  4 года назад +1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ㅎㅎ. 예전처럼 자세한 퀄리티는 유지할겁니다~~. 과거 팟캐스트 에피소드는 방대한 분량으로 1시간 넘게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이걸보다 잘게 나누어서 영상편집과 함께 단편으로 새로업로드하려고 합니다.
      팟캐스트는 4년간 지속했으니까 유튜브에선 새로운 방법으로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user-kb5vy3sw9f
    @user-kb5vy3sw9f 4 года назад +16

    전군님, 기존의 컨텐츠와는 다른 변화를 시도하셨네요. 노력이 많이 엿보입니다. 승승장구 하세요.

    • @jeonkun
      @jeonkun  4 год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caico6619
    @caico6619 4 года назад +1

    당시 대만을 칠려던 중국은 대만부근의 병력을 압록강으로 이동하여 전쟁에 참여함. 현재 중국인들은 얻는 것도 없이 30만명을 사망하게 한 전쟁에 분노하고 있음.

  • @wegatherattheriver4625
    @wegatherattheriver4625 4 года назад +4

    솔직히 허벌나게 미군이 깨졌지
    철수 할때 탱크,중화기등 무거운 건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기 바빴음
    미군이 패배한 내용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다시 서울까지 뺏기고 양평.홍천까지
    중공군한테 밀렸으니 엄청 깨진거지
    미군의 월등한 화력과 장비로도
    중공군의 탁월한 전투 능력에는
    속수무책이었음

    • @x-creator4460
      @x-creator4460 2 года назад

      Forgotten War 라고 불리운 이유가 다 있죠.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미군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치스런 후퇴였다는 사실. 베트남 전쟁 배경으로 나온 영화는 많지만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는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게 있지 않을까요.

  • @user-xn4xn6np7t
    @user-xn4xn6np7t 4 года назад +4

    그나마 거의 당시상황을 국뽕빼고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 @user-zj8hn1bv1n
    @user-zj8hn1bv1n 4 года назад +5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후
    많은 국민당 포로병이 있었어요.
    포로병들을 숙청해야 햇어요

    • @user-gf5oy5wz9n
      @user-gf5oy5wz9n 3 года назад

      1946년 7월∼1949년 7월 국민당 병사 415만 명을 포로로 잡고 그 중 280만 명을 수편해 나머지는 모두 집으로 풀어 농사를 지었다. 한국전쟁 중국은 약 20만 명의 전사를 했다. 고의적으로 그들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user-cw7il3mw1f
    @user-cw7il3mw1f Год назад

    잘들었습니다

  • @kju42
    @kju42 3 года назад +2

    중대한 사실 하나더 , 북한군과 중공군은 대전차지뢰를 아주 잘 이용하여 유엔군전차를 잘 공략하였다는.....

  • @javaxerjack
    @javaxerjack 4 года назад +14

    6:10 말은 쉽지만 그냥 걸어도 힘든 대한민국 산악 지형을 야간에 그 많은 인원이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죠...
    12:50 항공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때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는 점도 추가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네요.

    • @KJ-wn2tu
      @KJ-wn2tu 4 года назад +3

      중국군14시간 70km산길 야간 이동했습니다 그리고유엔군 포위했습니다

    • @user-dj3oy5rc7u
      @user-dj3oy5rc7u 4 года назад +1

      K J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죠. 완전무장하고 하루밤 40키로씩 강행군훈련을 합니다.

    • @user-vi9nk7mq8u
      @user-vi9nk7mq8u 4 года назад +1

      @@user-dj3oy5rc7u 그럼 자랑스런 중공군해라 어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user-dh2fm1qn3w
    @user-dh2fm1qn3w 4 года назад +5

    정확하신 중공군 역사적 배경을 말씀하시는군요 저도 군시절 사령부정보처에서 복무했는데 저희 참모님이 정보장교로 참전하셨는데요 그때 말씀중에 휴전직전에는 전투병이 소년병 수준 쏘련제 아카보 일명 딱콩총과 따발총으로 무장했으며 보급물자가 부족하여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휴전이 그들에겐 천만다행이었다는 말씀 그당시인민은 잘보이지 않고 소년병중공군 뿐이었다 함 그때 트루먼이 맥아더 말만 들었다면 오늘의 중공은 없다는 말씀

    • @user-cq1qs4st3z
      @user-cq1qs4st3z 2 года назад +1

      모르시는 말씀 입니다..
      트루먼의 휴전은 잘한 결정입니다,.,,
      한국전 이전에 소련은 핵실험에 성공을 했고 미국이 중국으로 전쟁을 확장하면
      유럽과 중동이 스탈린 손에 넘어 갑니다,,

    • @user-cq1qs4st3z
      @user-cq1qs4st3z 2 года наза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참전을 안하는 이유가 그곳에 발을 담그면 대만이 위험합니다,,
      이것과 같은 이유이고 스탈린의 야망은 유럽을 공산화 하는것에 있지 한반도가
      애초 목적이 아니였습니다..

    • @user-cq1qs4st3z
      @user-cq1qs4st3z 2 года назад

      맥아더 입장에선 한반도의 전쟁은 작은 전쟁에 불과 합니다
      그의 꿈은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을 몰아내는 게 목적 이였습니다,,
      그가 일본의 점령군 사령관으로 있을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제발 중공군이 대만을 침공하게 해 달라는 거였 답니다
      대만이 침공당하면 태평양이 열려 미 본토가 위함하니 미국은 좌시할 수 가 없고
      그때는 자신이 직접 군을 이끌고 공산당을 몰아내는 게 그의 꿈이자 최대 소원이였습니다..
      그는 전쟁 확장을 위해 중공군을 끌어 들이는데 성공을 했지만 트루먼에 위헤 그의 꿈은 좌절 되죠..
      트루먼이 맥아더의 말을 들었다면 3차대전에 핵전쟁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과 서방을 한반도로 끌여 들이기 위해 쏘련은 유엔에 일부러 참석을 안 한 겁니다,,

    • @dlrhkdduf111
      @dlrhkdduf111 Год назад

      @@user-cq1qs4st3z 소름끼치네요 엘랑스랑 영국은 다시 그라드해야되고 서독까지는 스탈린이 제집마냥 왔다갔다하는거 생각하니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gamevideochannel1550
    @gamevideochannel1550 3 года назад +2

    좋은 영상 강의 감사합니다 ㅎ

  • @tongtongba
    @tongtongba 3 года назад +2

    굉장히 정확한 분석입니다. 빠른 진격이 가능한 이유도 서울까지 내려오고서는 더이상 진격하지 못한 이유도 전부 설명 가능하네요. 그동안 인해전술 운운하는거 볼때마다 답답했는데...
    중공군 보급을 거의 개인 장구류로 해결했으니... 뭐 저희 입장에선 다행인거죠

  • @foggybottom4952
    @foggybottom4952 4 года назад +3

    정확히 얘기하면 중공군이 아니라 조선족부대죠..특히 국공합작때 일본군과 싸우는 국민당군 뒤통수 때렸던 공산당군이었죠...6.25남침시 제1제대 8만8천명이 거의 다 조선족입니다(오토바이타고 서울 입성하는 사진 등)...후에 중공군이 참전했을 때 역시 많은 조선족들이 참전했고요...한편, 인해전술이란 1파로 분대가 공격하고 2파로 소대가 공격하여 적의 화망 인지후 3파, 4파로 중대 연대급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항상 보급이 부족한 중공의 전사는 역사적으로 보나 딱 한마디로 말해서 "인해전술" 입니다.......

  • @user-bu5lz5le6g
    @user-bu5lz5le6g 4 года назад +7

    좋은 내용이네요.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것이 많네요.

  • @authorpark6085
    @authorpark6085 3 года назад +1

    맞는 말. 625 전쟁사 다룬 책 보면 공통적인게 보병 무장 수준과 전투경험 차이. 전쟁 초기 양과 질 둘다 밀리는데 그걸 오히려 사람으로 막은게 우리쪽이지.

    • @user-lj9us9ms1u
      @user-lj9us9ms1u 3 года назад

      무장수준등 모든 조건은 유엔군과 남한군쪽이 훨씬 좋았지 ㅋㅋㅋ 그당시 남한군은 그냥 무능한 겁쟁이군들이였지 아무런 신념 과 의지도 없는 허접이들이였지..당시 만약에 중공군의 무장수준이 유엔군과 같았으면 유엔군은 그냥 다 압살당했지 ㅋㅋㅋ

  • @user-eg8gm8ll4m
    @user-eg8gm8ll4m 4 года назад +2

    좋은정보감사

  • @user-nb5mn9po9w
    @user-nb5mn9po9w 3 года назад +3

    채널 관리자님...뭔가가 잘못이해 하신부분이 있는듯합니다.
    1) 인해 전술이란 : 기계화 부대나 항공 부대 등으로 하는 전술이 아닌 오롯 사람만으로 하는 전술을 말합니다.
    2) 포위하는 작전은 병력수가 월등히 많아야 가능한 전술입니다.(인해전술)

  • @hmagj4412
    @hmagj4412 3 года назад +13

    결론: 전쟁은 돈이다

    • @user-gf1dk9lw6x
      @user-gf1dk9lw6x 3 года назад +1

      옛날은 물량

    • @hmagj4412
      @hmagj4412 3 года назад +1

      @@user-gf1dk9lw6x 옛날에도 돈이었지. 공짜로 끌고온 농민 군대랑, 침략 전쟁을 위해서 밥먹고 훈련만 하면서 길러진 상비군이랑 수준 차이가 얼마나 심한데.

    • @jhtiger1104
      @jhtiger1104 3 года назад

      @@hmagj4412 이게 맞죠.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임

    • @jhtiger1104
      @jhtiger1104 3 года назад

      @@user-gf1dk9lw6x 저 먼 고대부터도 돈 들어간 군대와 그렇지 못한 군대의 차이는 엄청 컸습니다.

  • @user-bt5qy7mb8w
    @user-bt5qy7mb8w 2 года назад +1

    저때 미군이 중공을 더 밀었다면 밀수있었는데 70-80만중 40만의 사상자면 그 전쟁은 진거고 , 군수물자가 아주 부족해서 배가 고파 항복한 중공군이 엄천났다. 중공에는 쓸만한 무기가 부족했다.
    압록강을 장악했다면 보급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때 중공은 해군 공군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소련도 독일과의 전쟁때문에 남자의 30프로 가 죽고 지쳐있었다. 미군은 패퇴했다기 보다 작정상 후퇴였다. 문제는 트루만이 맥아더의 의견을 무시하고 휴전을 원했다는 것이다.
    압록강까지 밀고 만주땅을 독립시켜야 했다. 625때 중공군 일부 전투에 이골이 난 정예병이었다. 그때 정예병의 중공군의 처지가 그정도 였다. 사실 중공군이 일본을 무리친게 아니다. 미국덕에 독립을 한 것이다.

  • @warriet29
    @warriet29 4 года назад +1

    상대를 내 수준에서 판단하는 실수였죠. 길이 있어야지만 진군하는 미군과 길이 없어도 진군이 가능한 군대. 산을 타고 넘어 들어와 주간엔 매복하고 야간에 산길을 행군해서 포위한다는 생각을 미군교리에선 상상도 못했을 듯.. 하지만, 전투에선 중공군이 앞섰을지 몰라도 전쟁에선 미군이 앞서게 되는 교리. 길을 따라 대규모 병력과 수송물자가 들어오고,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포병과 항공지원.

    • @docpab
      @docpab 4 года назад

      그 항공지원을 소련군이 북한군복입고, 북한마크달고 미그기로 참전해서 b29들을 다 갈아마셔서, 폭격기 참전을 포기하고 미쿡은 휴전으로 간거임. 미쿤 제공권은 남쪽민 소련군이 정치상이유로 안내려와서 잡은거.

  • @user-dn7vv7zp4k
    @user-dn7vv7zp4k 4 года назад +6

    백선엽 장군 자서전을 읽었을때 충격 먹었던게 기억 나네요.
    '사람들이 흔히 중공군은 숫자만 많고 기강이 허술하며 전술은 인해전술말고는 없었다 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기강은 우리 국군이 헤이했으면 중공군의 기강은 잘 잡혀 있었다.'
    6.25전쟁의 명장인 백선엽 장군이 저 정도 말을 하셨으니 거짓말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 @jyd1384
    @jyd1384 4 года назад +5

    한국전쟁 당시의 역사서에 의하면 중공군은 병사 개개인의 역량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우수하거나 강한 병사들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다만 고구려가 그렇게 당했듯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병력수로 밀어붙이는 것이 당시의 무기체계에서 보건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주요요인이었다고 합니다.
    60만 대군의 사령관인 팽덕화가 이끈 중공군의 상당수는 범죄자이거나 반체체 인사 또는 장개석 군대하에서 종군했던 이른바 반대세력들 이었는데 이들을 효과적으로 전쟁에서 제거하기 위해 중공군에 밀어 넣은 상황이었고 이들이 전쟁터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참호속에 밀어넣고 쇠사슬로 몸을 구속해서 죽을때 까지 연합군과 싸우게 하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방식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강하지 못한 병사들이라고 해도 숫자가 어마아마하다면 상대방 군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줄 수 있습니다. 압록강까지 갔다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탄약이 떨어진 미군부대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적군의 고기방패에 밀려 탄약이 떨어져 후퇴한다는 것은 아마 미군측의 당시 상황에서는 매우 당황스런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중공군이 인명경시풍조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런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자랑스러원하는 조선족들이나 한족들이 국내에 들어와 활개를 치고 중공을 옹호하는 후안무치한 게시물들을 마구잡이로 올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런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 @user-cw2re4ju2c
    @user-cw2re4ju2c 4 года назад +1

    중공군이 강했다기 보다는 지난 국공내전에서 쌓은 전투력으로 실전 경험 면에서 무시할 수 없었던 것임.

  • @jaylee9244
    @jaylee9244 9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유투브영상마다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쓰지 않았다고 시작했다가 각개 전투에 들어가서는 ‘인해전술로 몰려 드는 중공군’ 이라고 하더군요. 파로호 전투에서 하루에 2만명이 죽었을때 인해전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중공군이 죽었을까요. 중국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중공군의 전사자가 18만명이라고 합니다.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많았겠지요. 이 모든 자료 들이 인해전술을 썼음을 증명합니다.

  • @JIN3SPark
    @JIN3SPark 3 года назад +3

    ppsh41(타입50의 원본)은 기관단총으로 분류 됩니다. ak47같이 화력 좋은 자동소총은 아닙니다. 높은 연사력과 싼 가격, 근거리 공격에 주요했던 무기입니다. 개런드의 운동에너지와 비할바가 못됩니다. 좋은 개인 무기였다는 건 시각의 차이일 수는 있지만, 팩트라고 할 정도는 아닌 듯 하네요. 그렇다 해도 실전경험이 많았던 군대라는 점, 야간 행군과 전술의 가장 기본적인 포위섬멸에 강점을 가졌다는 내용은 잘 정리하신 듯 합니다.

    • @parkaustin5660
      @parkaustin5660 2 года назад

      맞습니다 진짜 리엔필드보고 똥총이라하는둣이 말하는거보고 어이가 없어서.... 그때까지 대부분의 나라들이 해봐야 반자동 소총썼는데 어이가없네요.....

  • @darksub25
    @darksub25 4 года назад +9

    맥아더가 중공군을 너무 우습게 봤음...

  • @muizh9104
    @muizh9104 3 года назад +1

    국민혁명군에게 게릴라전, 회전 등 맛다이 치면서 단련된 베테랑들. 항공정찰을 피해 산길을 타고 다가가 눈치 못채게하여 사방팔방 진지를 포위해 공격하는 치밀함까지

  • @user-pw4bm4mi2r
    @user-pw4bm4mi2r 4 года назад +2

    넘 재밌어서 끝나자마자 구독했네요!!ㅎㅎ 좋은 콘텐츠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고대 페르시아 군대 재평가? 콘텐츠도 나온다면 재밌을것같네요ㅎ 300 영화랑 오리엔탈리즘으로 많이 저평가되어있는 것 같아서요ㅎㅎ

  • @gwkang5699
    @gwkang5699 4 года назад +3

    중공군이 거의 맨손으로 일선만무장했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자란 사람으로선 놀라운 내용 입니다..좋은 영상입니다.

    • @user-he4fb9nv6z
      @user-he4fb9nv6z 4 года назад

      그러카치~~ 울나라는 그런걸 못격엇으니깐 모르지 ㅋ 근디 잘못된정보는 아니당ㅇㅇㅇ

    • @zhezhuli6913
      @zhezhuli6913 4 года назад

      정보다시알고오세요

  • @islescop
    @islescop 4 года назад +18

    중공군 전차 전력은 일본제 치하부터 소련제 T-34-85를 주력으로 IS-2까지 사용하였고, 완편의 전차 사단만 2개가 투입되었음. 대전차 무기도 47밀리에서부터 76.2밀리까지를 연대 단위에 배치하고 있었음. 사단급에는 122밀리 곡사포까지 장비... 그리고 50식(PPSH-41)은 권총탄을 쏘는 기관단총으로 사거리나 위력이나 한계가 분명해서 이를 사단의 절반 정도를 무장시키는 것은 바보짓이고, 돌격부대 등의 부대에서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 무엇보다 당시의 주력은 모신나강을 비롯한 볼트액션 소총이었음. 50식은 탄 소비가 엄청난 수준인데, 중공군은 보급도 좋지 않았음. 결국 사용하기 엄청 불리한 물건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볼트액션식 소총 중에서 리엔필드는 연사력 하나는 최고 수준이었음. 오히려 공산군의 숨겨진 최신 개인 화기는 SKS 같은 물건...

    • @aikawa1
      @aikawa1 2 года назад +1

      맞음... 사실 유엔군(미군)도 톰슨 기관단총이나 브렌자동소총같은 훌륭한 자동화기들이 있었음. 오히려 PPSH에 비해 실용성 면에서는 훨씬 나았을거임. 아무리 PPSH가 연사력이 좋다고는 해도 관통력과 사거리가 형편없어서 시가전이 아닌 야전에서의 화력은 M1칼빈이나 브렌소총같은 것에 비할 바가 못됐음. 모신나강같은 소총도 있었지만 M1소총이나 리엔필드보다 훨씬 못한 소총이었으니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중공군의 기본교리는 남아도는 인명을 제삿상에 올리는 '인해전술'로, 문명국 군대에게도 어쨌거나 어느정도의 인명피해를 입히는 것. 자기들은 아무리 많이 죽어나가도 별거 아니지만, 문명국 군대는 적은 손실이라도 안 내려고 '작전상 후퇴' 하게 되는 점을 노렸음. ★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 장진호 전투는 최근들어 중공이 전쟁사 왜곡에 가장 공들였던 대상. 중공군을 미화하는 대규모 중뽕영화들을 대거 만들어 국내 세뇌에 힘쓰는가 하면, 한국 유튜브에도 중공군이 영웅적으로 이겼다는 왜곡 동영상을 조선족들이 잔뜩 올려 놓은 상태. 이 것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지 벌써 3~4년전부터 위키피디아 등 온라인 백과에도 침투, 장진호 전투 기록이나 사상자 통계도 중공군에 유리하게끔 이미 조작 변조돼 있음. ★

    • @user-jz9vx8ji5b
      @user-jz9vx8ji5b Год назад

      중국군은 조밥에 보총가지고 일본놈들과 싸워서 승리했고 국내 전쟁에서도 조밥에 보총으로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지휘관들이 머리가 총명하고 병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전쟁에서 백전 백승 하였다고 하네요

    • @novaacta8340
      @novaacta8340 Год назад

      @@user-jz9vx8ji5b

  • @centurionkwk
    @centurionkwk 3 года назад +1

    이 채널 아주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 @Tanghuru888
    @Tanghuru888 3 года назад

    정말 오랜만에 괜찮은 유튜브 체널 발견한거 같어요..., 완전 득탬한 느낌입니다.

  • @mtseok
    @mtseok 3 года назад +4

    보여주기 좋아하던 맥아더가 중공군 개입을 가볍게 오판 했던게 밀리게 된 큰 이유...장진호에서 해병대를 포기하려했던 무지한 맥아더...반격전에서 쉽게 임진강 위로 도망간 중공군...겁박으로 기계화된 유엔군을 이길수가 없었다

  • @MJ-oc1yn
    @MJ-oc1yn 4 года назад +3

    집결호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중공 인민입장에서의 625
    전쟁나가 죽은 목숨값이 쌀 두되..한말....

  • @kunta74
    @kunta74 3 года назад +1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참전 하셨는데.. 중사로 전역 하셨는데.. 당시 국군은 인민군이게 정신적으로 상대가 안되었다고 합니다. 밤에 목을 따로 수시로 진지로 들어오는데.. 우리군은 밤에 무서워서 진지를 지키는것도 버거웠다고 하네요.. 중공군도 정신력 하나만큼은 아군을 압도 했을듯....

    • @kill5850
      @kill5850 3 года назад

      당신의 아버지는 중국 군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 @user-fl2tk8tk3y
      @user-fl2tk8tk3y 3 года назад

      @@kill5850 금성 전투에서 중공군들 교암산에서 8시간 동안 진격을 못했다고 하던데 사실임?

    • @user-ml1hw5jy5c
      @user-ml1hw5jy5c 3 года назад

      @@kill5850 신의지팡이 맞기싫으면 보통 일본국기는 해라

  • @usergwhsj1
    @usergwhsj1 2 года назад

    국공내전 중일전쟁으로 실전경험이 풍부한 강군이었음. 이걸 막아내고 반격한 미군 국군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 @pablop6361
    @pablop6361 4 года назад +4

    이걸 반대로 생각하면 중공군은 엄청난거내요.
    사실상 차량을 이용한 보급은 제공권 장악한 미군에 의해서 어차피 탈탈 털렸을거고
    식량 보급도 없는 상태에서 대전차무기도 현장에서 만든 급조된 폭탄물 재외하곤 없을거고 심지어 무전도 원활하지 않은
    경무장 부대를 가지고 38선까지 밀리고 결국 남북이 갈라진게 여러모로 대단한 병력인거 같내요...

  • @user-ru8dc3jx9r
    @user-ru8dc3jx9r 4 года назад +13

    측면공략이 스포츠에서도 가장 중요하죠

  • @user-xw3pv1wo5q
    @user-xw3pv1wo5q 4 года назад

    중공군의 초반 성공 요인은, 한반도라는 지역의 특성을 너무 잘 이해했다는 겁니다. 부족한 물자들을 개개인의 근성과 베테랑의 지략으로 해냈죠. 애초에 마오쩌둥이란 인물이 게릴라전을 통해 중국대륙을 먹었던 게릴라의 천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은 아닌거에요. 다만 현대화 되어가는 전장에서 본인들은 뭐가 문젠지 느꼈을 거고, 그래서 양탄일성으로 시작되는 비대칭전력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한 거 같기도 합니다.
    다만 신식화, 현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공군이 과연 그때의 장점을 다 가지고 있기는 힘들 거 같네요. 애초에 무기 팔고 전쟁 팔아서 부를 유지하여서 베테랑이 넘치는 미국에 비해 현대 중공군은 실전을 경험할 일이 없었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한폐렴이 생화학 무기로 보이기도 했고...
    여튼 미군은 발전하는데 중공군은 퇴화하는 느낌이 큽니다. 결론은 타이완 남바완...

  • @skystar9594
    @skystar9594 2 года назад +1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전쟁입니다.무려 UN군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당당히 침략전쟁에 반대하여 참가한 전쟁임에도 공산주의 연합에 한축이었던 중공군 때문에 승리를 하지 못했으니 미국으로서도 최대의 수치

    • @x-creator4460
      @x-creator4460 2 года назад

      Forgotten War 라고 불리운 이유가 다 있죠.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미군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치스런 후퇴였다는 사실. 베트남 전쟁 배경으로 나온 영화는 많지만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는 거의 없는 이유도 여기게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