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군입니닷! 중일전쟁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네요 ㅎㅎ~ 오늘 영상 간단한 보충 해석입니당. 1. 2:34 차트는 요시다 유타카, 『일본의 군대: 병사의 눈으로 본 근대일본』, 최혜주 역 (서울: 논형, 2005), 160.을 참고해서 제가 정리, 편집한 것입니다. % 단위는 소숫점 반올림을 하였습니다. 보다 세부적인 1936년 일본군 징병검사 대상자들의 학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학 1.63%, 고등학교 상당 2.72%, 중학교 상당 11.25%, 청년학교 17.19%, 고등소학교 42.07%, 심상소학교(초등학교) 22.34%, 심상소학교 중도 퇴학자 2.31%, 불취학자 0.49% 2. 본 영상에서 중국군이라함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통제 하에 군사작전을 함께한 모든 중국 군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3. 영상에서 언급되는 국민당군은, 국민혁명군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작전을 했던 부대를 의미합니다. 특히, 국민혁명군 육군측 자료를 인용할 때 국민당군이라고 했습니다.
3:32에서 유념하셔야 할 게 있는 게 저 1개 사(단)에 16문 있다는 것 조차 물건은 75mm 산포나 야포였고, 그나마도 중앙군 직속부대 중 독일식 사단 8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x나 암울했던 사실....(8:48초에 30개가 아니느냐는 반문을 하실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개전 직후 추가된 10개 사 포함되어서 30개 사이긴 한데.... 문제는 그나마 무장을 갖춘 애들이 8개 사도 나머지 20여 개 물자는 극히 일부 외에는 히틀러의 대중무기 수출 금지 조치로 전부 동결됨.)
@@카네키켄-g4g 아닙니다. 일본 침략 이전에도 기본적으로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나라 전체적으로 조총이 상당히 많았음.) 열강 침탈이 본격화될 때는 신식무기 무장도 서둘렀고. 동학농민운동 진압할 때는 신식 소총에다가 개틀링포도 끌고 갈 정도였습니다. 국권침탈은 무기가 없어서가 아니고 정치적 분열이 주원인이었습니다.
비록 머릿수만 많은 오합지졸이라지만.. 중국군 철모를 보면 알 수 있듯 젝트 팔켄하우젠의 독일 군사고문단의 도움으로 확실히 그 전보다 강해진 것도 분명하죠. 청일전쟁 때와는 다르게 8년간 일본군을 수렁에 빠뜨린 것도 중국이었고 쉐웨 바이충시 같은 명장들이 활약하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국공내전으로 망했다는 게 안타깝지만요.. 인력만으로 싸웟던 중국군의 방식을 훗날 한국전쟁 중공군이 십분 써먹었죠..
중국이 중일전쟁에서 그렇게 버틸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군이 나폴레옹과 독일군의 침공에서 버텼던 것과 약간 비슷한 점이 있는데 기후는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땅덩이는 무지막지하게 넓었다는 겁니다 일본도 중국의 많은 군벌들을 다 상대하기에는 벅찼고 나중에는 미국과도 싸우게 되면서 중국 전역에 뿌릴 병력까지는 아니었다는 거죠. 거기에 나중에 미군의 원조도 받으면서 크리티컬한 승리를 할수있는 군대는 못되고 일본군 상대로 출혈을 강요할수 있을 정도는 되면서 일본도 초기와 다르게 골치가 아파집니다 뭐 이 채널에서 밝혔듯이 일본도 사실 현대적인 전투를 치를만한 군대는 아니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참 장제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항일이라는 명분으로 뭉쳤지만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할 준비가 된 자들과 뭉쳐서 싸워야한다는게... 조별학습이나 회사프로젝트 해보시면 알잖아요. 적보다 무서운 아군.... 그런 속에서도 차근차근 준비해서 2차 중일 전쟁초기엔 거의 승리할 뻔도 했었는데... 아마 그랬다면 일본은 만주부터 내려와야하고 아마 보급때문에 더 힘들었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허접하느니 욕하고 있지만 그 당시 중국이 막장이었다는 걸 감안하고 봐야겠죠.
@@최고소비에트 청말의 상황을 좀 더 알아보셔야 할듯.. 군벌들이 나타나서 할거하는 상황이었고 그걸 하나씩 제압하던 상황인데 일본이 쳐들어왔습니다..다른건 몰라도 공산당만은 조지려고 했는데... 그걸 막은게 시안사변이고 결론은 하고 싶어도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하기어려웠다는 겁니다 붕이님이 하는 말의 자매품은 왜 동탁연합군은 서로 그렇게 무너졌냐 그 전에 될놈만 넣고 안될놈은 빼지 그랬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레이오트 우리나라는 3국시대부터 행정부의 업무가 분화되었고, 특히 군사적 역량을 기르는데 많은 예산을 사용한 역사가 있어요. 고조선 건국이래 역사책에 명확히 기록된 중앙집권적 정부가 체계화된 건 거의 2천년이 되었는데, 조선이 병조판서나 예조판서를 쌩 무시하고 왕이 개인적인 무기 덕질하고 싶은 걸 국가 예산으로 컬렉션을 만든다고요?
구독자는 아니지만 가끔 듣고 보는 나름 애청자입니다. 중간중간에 이상한 말투나 맞지 않는 어법이 나와도 '그냥 내용만 알아 들으면 된다' 하고 넘겨 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지막 멘트였기 때문에 계속 귓가에 맴돌고 곱씹어 보게 되는군요.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결국... 가난한 국가의 군대가 못 싸우는 이유죠. 인프라가 안되어서 교육도 못받고, 여기저기서 무기 끌어와야 하고, 결국 군대라는게 단순히 들어가는 돈만이 아닌,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미친듯이 들어야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의료, 교육, 도로와 차량, 식량 생산, 산업, 그런 모든 인프라들을 키울 돈 말이에요.
중일 전쟁사에 대한 학자가 아닌 개전으로 가장 추천 드리는 팬더 아빠의 중일전쟁사 통해 우리 근대사와 맞다아 있는 중국의 암울했던 기억을 되집어 보시길 바랍니다. 추가로 대만에서 기밀이 해제된 장재석의 읽기 의 일부분을 심도 있게 찾아보시면 지금 숫자로 바로보는 어이없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너무나도 당연시 받아들여질수 있다는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거라여겨집니다. 추가로 이 중일 전쟁의 참상은 8년간 대략 2천만명의 사상자와 민간인 피해자를 낳았다는것과 힘없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살아 남기 위한 최선도 아니고 최악을 피할 수있는 방법이 있기나 했는지 되뇌어 봅니다. 살아 남은것에 우리 조상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래서 고 등소평이 한때는 조선의 한글을 도입해서 쓰자고 했는데, 뙤놈들 존심이 상해서 안했다고 하더군. 지금 우리나라 문맹자는 일제시대 가난해서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못한 1940년 이전에 태어난 가난한 집자녀들 뿐임. 이승만 대통령께서 제일먼저 내 세운것이 전국민 문맹퇴치정책이었음.국민학교의무교육제. 해방당시 국민학교에는 한반에 10살 차이가나는 학생들도 있었음. 심지어는 장가까지 간 사람도 있었음.
@@ZHONGHUAMINGUOWANSUI_HANGUOREN 그렇기는 한데 다른나라도 어마무시하게 발전해서... 국력도 군사력도 상대적인것. 지금도 미군, 러시아군, 일본 해상 자위대엔 못미침. 일본도 본격적으로 재무장하면 어마무시하게 강해짐. 일본 국방비 gdp의 0.9%수준임. 한국도 많이 발전했지만 결국 주변국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여전히 약함.
석궁이나 활로 거리두고 싸우면 일본군의 총과 대포에 일방적으로 몰살당하지만 칼들고 돌격해서 난전 벌이면 일본군에 피해줄수 있죠. 개런드반자동소총(8연발)과 카빈 소총(30연발), 톰슨 기관단총(30연발), 콜트1911권총(7연발)으로 개인화력이 강력한 미군은 일본군의 반자이돌격을 번번이 몰살시켰지만 일본군의 개인화력(5발 볼트액션소총과 저질권총정도)은 미군에 비할바가 못되죠. 게다가 영상에선 소총만 나오지만 중국군은 C96마우저 권총이나 콜트 M1911을 대량으로 수입하거나 카피생산해서 근접전화력에선 오히려 중국군이 우세했죠. 즉, 칼만 들고 돌격한건 아닙니다. 거기다 중일전쟁이전에 중국이 군벌들간 전쟁등으로 혼란스러울때 외국에서 많은 무기들을 수입했는데 이때 일본의 무역회사들이 권총등을 미국과 유럽에서 사다가 중국에 팔아서 돈벌었는데 그렇게 판 무기들이 중일전쟁이후 일본군과의 전투에 사용되었죠.
래너 미터가 쓴 "중일 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말하는 건가요? 제가 읽어봤는데 확실히 모택동의 혁명사관에서 벗어난 책인데다 중일 전쟁 중에 벌어진 일들을 잘 요약해준 책이죠. 책 맨 앞에 충칭 대공습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 세세한 민간인들의 일상 옌안과 충칭 동경 정부가 대륙의 패권을 두고 맞서는 신삼국지? 같은 느낌을 줘서 읽는 재미가 있는 것 같네요.
이러니 현재 중공인민들은 독재를 일삼는 공산당이라도 만족하는겁니다. 비록 빈부격차는 심해졌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먹는문제는 해결이 되었고 대만을 뺀 나머지는 합병이 되어 군사력에서도 과거 100년전에 서방과 일본에 쳐발리던 시기를 넘어 위협하는 상황까지 올라셨으니 지지할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 참혹한 동란기를 겪은 민족이라 국가 분열을 병적으로 두려워함. 그래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세운거고. 중국왕조가 길어봤자 2~3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국시대 5호 16국 시대때는 정말 일반 백성들에겐 가장 비참한 기간이었음. 좋게 말하면 역동적인 역사고 나쁘게 말하면 피바람이 부는 역사. 중국인들이 남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성정을 갖게된건 저런 참혹한 동란기의 영향인 것도 있음. 비교적 최근의 역사만 하더라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으로 가까운 일본과 한국이 뒹굴거리고 있을때 중국은 한마디로 지옥도였음. 이건 북경대에서 중국사 공부할때 중국인 교수가 알랴줌.
참으로 .. 모르시는 말씀. 모택동이 대약진 운동하면서 3천만이 굶어 죽었습니다. 3천만이 굶어 죽었다는 건 수억명이 먹지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고생을 했다는 말입니다. 중국은 영원히 후진국입니다. 이제 등소평이가 한국을(박정희의 시월유신) 배워서 경제가 좀 좋아지긴 했지만 군사력이란 거 .. 까봐야 아는 나라입니다. 원자탄 빼고 싸우면 우리가 이길지 중국이 이길지 모르는 나라지요. 역사적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근대화 시대때 공교육이 의무화 된게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쟁탈은 필수이고 군대는 자국민 징집으로 충당하기에 현대식 무기를 사용할려면 글쓰고 읽을줄 알아야 하고 전쟁때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들 센치 미터 등을 알아야 철을 제단하고 조립하고 산수를 알아야 물류.보급 업무가 가능하니 알고보니 자국민을 전쟁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 제일 큰 이유인듯... 어짜피 군인은 징병제 공짜인력이 공교육 투자비 뽑고도 남을듯...
하츠 오브 아이언4라는 게임에서 중일전쟁 중국진영으로 하면 가용 인력은 넘치는데 군수공장이 없어 야포는 물론이고 기본 보병 장비인 소총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는데 고오증이였군요. 덕분에 인력은 썩어나도 소총 부족이랑 부실한 장교단 패널티로 일본군이랑 붙으면 추풍낙엽처럼 썰려나가는데 중국으로 플레이할 때 환장합니다 ㅋㅋ
국민당이 나치독일하고 경제,군사교류 하고나서부터는 독일제 무기와 장비와 독일식 훈련을 받은 부대도 만들고 독일에서 유보트도 수입하고등등 별의별 노오력도 하고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도 많이 노오력하고 그랬음. 만약에 중일전쟁이 5~6년 늦게 일어났으면 일본하고 좀 해볼만했을거같음.
@@sssu6572 독일에서 유보트 도입할려고해도 건조하고 훈련시키고등등 할려면 시간이 촉박하고 동맹국인 일본의 눈치와 반대도 있어서 아쉽게도...만약에 조금만 더 일찍 유보트 도입했으면 상하이 전투때 일본군 항공모함,수송함등등 격침시켜서 상륙도 시도 못하고 전멸하고 항모가 침몰하면서 일본 항공대도 심각한 타격 받아서 전쟁이 국민당에 유리하게 진행되었을수도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네요
안녕하세요 전군입니닷!
중일전쟁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네요 ㅎㅎ~
오늘 영상 간단한 보충 해석입니당.
1. 2:34 차트는 요시다 유타카, 『일본의 군대: 병사의 눈으로 본 근대일본』, 최혜주 역 (서울: 논형, 2005), 160.을 참고해서 제가 정리, 편집한 것입니다. % 단위는 소숫점 반올림을 하였습니다. 보다 세부적인 1936년 일본군 징병검사 대상자들의 학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학 1.63%, 고등학교 상당 2.72%, 중학교 상당 11.25%, 청년학교 17.19%, 고등소학교 42.07%, 심상소학교(초등학교) 22.34%, 심상소학교 중도 퇴학자 2.31%, 불취학자 0.49%
2. 본 영상에서 중국군이라함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통제 하에 군사작전을 함께한 모든 중국 군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3. 영상에서 언급되는 국민당군은, 국민혁명군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작전을 했던 부대를 의미합니다. 특히, 국민혁명군 육군측 자료를 인용할 때 국민당군이라고 했습니다.
큭ㅋ 전군님, 이런 서비스는 언제나 환영이지.
역시 붓의 힘은 칼보다 더 강하네.....붓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칼은 그냥 쇳덩이보다 못하네. 걸거치기기만 하니....
3:32에서 유념하셔야 할 게 있는 게 저 1개 사(단)에 16문 있다는 것 조차 물건은 75mm 산포나 야포였고, 그나마도 중앙군 직속부대 중 독일식 사단 8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x나 암울했던 사실....(8:48초에 30개가 아니느냐는 반문을 하실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개전 직후 추가된 10개 사 포함되어서 30개 사이긴 한데.... 문제는 그나마 무장을 갖춘 애들이 8개 사도 나머지 20여 개 물자는 극히 일부 외에는 히틀러의 대중무기 수출 금지 조치로 전부 동결됨.)
추가 이야기 감사함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카...
재미있는건 일본군도 돌격지향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어서 저 항일대도랑 일본도가 맞붙는 일이 많았다는거 ㅋㅋ 일본군은 오합지졸 중국군 상대로 백병전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고 이는 현대전에서도 백병전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교훈으로 이어지면서 태평양에서 재앙이 벌어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자강두천이네
중국이 병신짓거리해줘서 미국이 편하게 싸웠네ㅋㅋ
겨울전쟁을 본 독일같네
일본군은 백병전을 대비해 총검술 교육을 의무화했는데 국민당군은 무술,칼춤 연습했다고함 ㄹㅇ
일본은 중국상대하다가 미해병대상대하니 반자이 돌격이 안통하지
기반시설과 공업생산력, 농업생산량 등 전반적 기술이 부족한 결과가 칼들고 물량으로 싸우는 것이였다. 이건가요?
이 당시 일본사회에서 중국을 칭하는 단어가 수백년동안 쓰던 명칭인 '당'이었다고 하네요. 당나라 군대라는게 중세 당나라가 아니라 중국을 칭하는가 봅니다
당나라의 문치무공이 주변국에 영향을 많이 주었읍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해외에 그 이름이 남겨진구요.예를 들어 차이나 타운은 중국인들끼리는 당인의 거리혹은 당인의 구역으로 말합니다.
중국의 종이도 한지라하지 않고 당지라 하는것처럼 당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버렸습니다
일본이 중국군을 당군으로 깍아 내리는건, 자신들이 백제의 후손이라 착각 속에서 당에 백제가 망한걸 복수 했다고 위안삼아 비유한 것 같아요
@@세상의메아리 백제계 귀족이 집단망명한건 또 맞는지라...
중일전쟁-태평양전쟁시 일본에서는 중국을 지나라고 많이 불렀는디요...
말해뭐하냐 당시 일본군은 기계화가 어느정도된 군이고 중국군은 그냥 알몸인데 당연히 지지
알몸 ㅗㅜㅑ
일본군:자꾸 칼을 쓰려고함
중국군:칼을 쓸수밖에 없음
미군:???
ㅋ_ㅋ
미군: 나하고 뭔상관
소련군:칼 안쓸려고함 물량이 해결해줌
@@user-wv1nq9go 칼은 수치고 의자 씀ㅋㅋ
@@user-zr9rw4wy5n ?뭔솔??? 야삽이나 노획무기 쓰지 않음? ㅋㅋㅋㅋㅋ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서 국방건설을 단행한 결과가 중일전쟁에서 창더그라드같은 걸로 나타났지요.
장제스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독일식 사단을 만들고 독일군 장비를 많이 수입하기도 했습니다. 또 군벌 군대 중에서도 리쭝런과 바이충시가 이끄는 광서군은 아주 강했지요.
키야.. 창더전투..
결국 소련군처럼 대규모 기갑부대와 항공대가 없었다 보니 포위섬멸은 실현하진 못했지만요...
군벌군은 자기네 지역은 공격하지 말라고 일본군에게 뇌물을 주고 옆동네를 치라고 한 수준.
교육차이가 전력차이로 이어지는건 신기하네
좋은 분석이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부터 교육칙령을 내려 소학교 교육을 의무화 했지만, 중화민국의 모태가 되었던 청나라는 이에 대해 미비한 반응을 보였고 또 청나라가 해체된 후 군벌시대가 들어서자 더욱 교육은 뒤로 밀려났죠
우리도 일제시대때
일본이 소학교 의무교육 해 줌
200만이면 뭐해 남방 북방인들 언어도 안통하는데. 마오쩌뚱이 중국 통일하고 만다린 표준어로 하고 광동어랑 기타 언어 탄압한 이유중 하나가 언어가 안통함.
@@Jorjia425 중국어를 모르시나본데 광동어 빼구는 서로 의사소통이 기본상 다 돼요
결국 제대로된 교육은 타이완으로 가서 하는..
몬몬몬 몬스터 대만 영화를 예전에 보았는데 그 영화에 출연한 대만군 출신의 노병이 사용한 칼이 바로 다다오 라는 커다란 대검 이였네요. 몬몬몬 몬스터 대만 영화에서 커다란 대검이 등장 하여서 신기 하였습니다. ㅇㅇ
저래도 장제스가 어떻게든 직속 부대 투입해서 일본군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출 정도로 싸워내긴 했죠
저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일본 군부의 호언장담 대로 6개월 만에 중국이 아작이 났을 겁니다.
그 와중에도 스틸웰의 하드 트롤링과도 싸워야 했던 국민당군...
5:34 역시 독일제로 무장했을때가 자세가 제대로 나오네요
하...근현대전에서 무협영화에서나 볼법한 칼을 보게 될줄은 몰랐다. 당시 전쟁터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어쩌다 한둘 그런 인간이 있긴 했지만...다수의 중국군이 그럴줄은....ㅡ.ㅡ;;
ㅋㅋㅋ 우리나란 그때 죽창들고 있었어요....
별 군대다운 군대도 없어 눈뜨고 나라따먹힌 나라도있는데요 뭘ㅋㅋㅋ
@@카네키켄-g4g 아닙니다. 일본 침략 이전에도 기본적으로 조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나라 전체적으로 조총이 상당히 많았음.)
열강 침탈이 본격화될 때는 신식무기 무장도 서둘렀고.
동학농민운동 진압할 때는 신식 소총에다가 개틀링포도 끌고 갈 정도였습니다.
국권침탈은 무기가 없어서가 아니고 정치적 분열이 주원인이었습니다.
@@DonTtoTO 소달구지 끌구 조총으로 전쟁하려구요?ㅋㅋ
중국이 사용하던 소총중 러시아,이탈리아,일본 소총을 제외하면 전부 7.92mm탄 이라서 은근 탄 호환성이 좋았음
거기다 체코제 ZB26 과 독일제 MG08 경/중기관총도 아주 좋았죠.
@@user-yjbc5e7f9b74 ㄹㅇㅋㅋ
@@user-yjbc5e7f9b74
돈이 없으니까 밀리죠 산업,돈 다 밀리는데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안망한게 대단한거죠
장제스의 독일 사단은 잘 싸우지 않았나요?
잘 싸우니 전멸할때까지 싸우지 딴놈들은 일본군 오기전에 도망가지
독일 사단들은 상하이전투에서 정말 잘 싸웠습니다. 다만 ... 이들 국민당 중앙군 병력은 중국군의 일부분이었다는게 문제죠. 중국군 대부분이 무장도 빈약했고 현대화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공산당계와 국민당계군벌로 구분하고 거기서탄환이 다르니 보급을 때려치우고 싶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이 정도로 노답일줄은 몰랐다..........................
나 이거 판타지 로맨스 소설에서 봤어.
대검 들고 총알 피하면서 싸우는거 ㅋㅋ
ㅎㅎㅎㅎㅎ
봉오동전투 영화보면 나옴
@@chasuchasuramen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유튜버..
비록 머릿수만 많은 오합지졸이라지만..
중국군 철모를 보면 알 수 있듯 젝트 팔켄하우젠의 독일 군사고문단의 도움으로 확실히 그 전보다 강해진 것도 분명하죠. 청일전쟁 때와는 다르게 8년간 일본군을 수렁에 빠뜨린 것도 중국이었고 쉐웨 바이충시 같은 명장들이 활약하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국공내전으로 망했다는 게 안타깝지만요.. 인력만으로 싸웟던 중국군의 방식을 훗날 한국전쟁 중공군이 십분 써먹었죠..
중국이 중일전쟁에서 그렇게 버틸수 있었던 것도 러시아군이 나폴레옹과 독일군의 침공에서 버텼던 것과 약간 비슷한 점이 있는데 기후는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땅덩이는 무지막지하게 넓었다는 겁니다
일본도 중국의 많은 군벌들을 다 상대하기에는 벅찼고 나중에는 미국과도 싸우게 되면서 중국 전역에 뿌릴 병력까지는 아니었다는 거죠. 거기에 나중에 미군의 원조도 받으면서 크리티컬한 승리를 할수있는 군대는 못되고 일본군 상대로 출혈을 강요할수 있을 정도는 되면서 일본도 초기와 다르게 골치가 아파집니다
뭐 이 채널에서 밝혔듯이 일본도 사실 현대적인 전투를 치를만한 군대는 아니기도 했습니다만
독일식 무장을한 국민당군 정예 병력은 많이 강했었죠. 다만 전체 중국군의 극히 일부만 이렇게 현대전 준비가 되어있었다는게 아쉽죠. 확실히 전쟁이 장기화되고 중국군도 노련해지면서 여러차례 승리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도 최고의 명장은 쑨리런일꺼에요.미국도 인정한....
마지막 세줄요약 배경에 저 대포...실제로 전투에 사용된거면 정말 경악스럽습니다
4:30 반면 중국군 사단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2:44 학력이 군에서는 매우 중요하죠.
"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초등학교 선생님 덕분이다."_비스마르크
근대 학교가 세워지고 운영된 이유가 숙련된 공장 노동자와 직업군인을 대량으로 양성하기 위해서이지요.
의무 교육이라는게 사실 ... 군대 양성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죠
@@jeonkun 참고로 IQ 테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날로달로 그 규모가 커지는 미군이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인력의 지적능력 수준을 평가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기위해 만든 물건이지요.
@@레이오트군대양성에 동원된 학문과 기술이 그때문에 발전한거군요.
6.25 때도 그랬다는데, 모택동의 인해전술 30만에 가까운 병력들 중 총기로 무장한 병력은 많지 않아서 앞서가던 병사가 사살당해 죽으면 그 총을 뒤따오던 병사가 주워서 쓰고 그 병사가 죽으면 또 후방의 병사들이 주워서 쓰고...
상대는 총으로 무장했는데 칼 쥐어주면서 싸우라고 하면 멘붕 올 거 같은데 ㅋㅋㅋㅋ
총뿐만이 아님 탱크도있고 폭격기,전투기,군함,항공모함 다있음ㅋㅋ
방송 감사합니다~
저는 참 장제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항일이라는 명분으로 뭉쳤지만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할 준비가 된 자들과 뭉쳐서 싸워야한다는게... 조별학습이나 회사프로젝트 해보시면 알잖아요. 적보다 무서운 아군.... 그런 속에서도 차근차근 준비해서 2차 중일 전쟁초기엔 거의 승리할 뻔도 했었는데... 아마 그랬다면 일본은 만주부터 내려와야하고 아마 보급때문에 더 힘들었을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허접하느니 욕하고 있지만 그 당시 중국이 막장이었다는 걸 감안하고 봐야겠죠.
@@최고소비에트 청말의 상황을 좀 더 알아보셔야 할듯.. 군벌들이 나타나서 할거하는 상황이었고 그걸 하나씩 제압하던 상황인데 일본이 쳐들어왔습니다..다른건 몰라도 공산당만은 조지려고 했는데... 그걸 막은게 시안사변이고 결론은 하고 싶어도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하기어려웠다는 겁니다
붕이님이 하는 말의 자매품은 왜 동탁연합군은 서로 그렇게 무너졌냐 그 전에 될놈만 넣고 안될놈은 빼지 그랬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마, 만약이지만 2차 국공내전까지 승리하고 대륙을 통일까지 했다면.
오늘날 천안문에는 장제스의 사진이 걸리고 대륙의 국부로 추앙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외부의 적인 일본을 몰아내야 하는데 내부의 공산당을 조지고 있어서 민심이 떠나버렸죠.
중일전쟁 정보 감사합니다 ㅎ
그래도 중국군은 거대한 인력과 공간 버텨냈죠.
다만, 2차대전 이후의 내전에서 패배한게 문제지만.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도움으로 버틴거죠 ㅋㅋㅋ 만주에 짱박힌 일본군 최정예 관동군 100만을 만주에 묶어둔것만 해도 소련은 큰 역할한것
@@oreochan723 놉 중국전선에 있던 일본군보다는 훨씬 정예였음 ㅋㅋ 일단 물자부터가 2배 넘게 차이남 ㅋㅋㅋㅋ 병력은 중국전선에 더 많은데도 말이지 ㅋㅋ 육군항공대도 관동군이 훨씬 강하고 많았음
@@ssss-n4e7q 태평양전쟁에 투입된 병력하고 관동군 비교하면 어떤가요?
@@Nhy-x8k 관동군이 더 정예병력인데 나중가면 관동군도 남방으로 내려가서...
@@ssss-n4e7q소련은 거의 방관함
마지막 뜬금없어서 놀랐다 그러면 감사합니다가 자연스럽게 나와섴ㅋㅋㅋㅋ
도대체 어떻게 이긴거얔ㅋㅋㅋㅋ
8년 동안 끝까지 버티다가 미국이 원폭 떨구고 이겼습니다
@@Roks672 존버는 승리한다…
그래서 전쟁마지막까지 계속 전투는 패배하고 쓰촨에서 일본군 바짓가랑이만 간신히 붙잡고있었음
모택동이 장제스를 밀어내고 중국을 장악할수 있던게 지금 영상에서 나온
군벌들 때문입니다 각 군벌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었으니까요
지금도 그 군벌들 세력은 이어져
오고있죠
그리고는 토사구팽. 그것도 죽음으로.....
핑핑이시대에도 군벌이?
무기 종류가 많아지면 전쟁에 진다.
따라서 말만 조올라게 많은 밀덕들이 사자는 무기를 다 사면,
전쟁에는 진다.
한국사에도 고종이라고 그런 인물이 있죠.
@@레이오트 ㄴㄴ 고종도 무기 제식화 했음 그거는 탄약부족하니 탄약 재사용하려고 같이 들어온거일뿐 대부분 창고행임
@@레이오트 우리나라는 3국시대부터 행정부의 업무가 분화되었고,
특히 군사적 역량을 기르는데 많은 예산을 사용한 역사가 있어요.
고조선 건국이래 역사책에 명확히 기록된
중앙집권적 정부가 체계화된 건 거의 2천년이 되었는데,
조선이 병조판서나 예조판서를 쌩 무시하고
왕이 개인적인 무기 덕질하고 싶은 걸
국가 예산으로 컬렉션을 만든다고요?
@@레이오트 이미 45-70으로 탄약 일원화해서 이전에 들여온 탄약도 깎아서 45-70 탄으로 개조까지 했는데요?
@@최고소비에트 이상하네. 내가 말을 어렵게 했나? 쯥..
한 문단 정도 짧은 글일 뿐인데 내가 어렵게 쓴건지,
읽는 사람이 난독인지.
앗 빠른 업로드..
전쟁사는 지역적국가적단면만 아닌 전체 국제정세와 연결되서 바야해여.
중일전초기는 분명 일본군압승이지만 미영의 대일 금수조치가 전개되고 미국의 대중 측면지원이 시작되려는 41년경부터는 중일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갑니다.
물론 중국대륙에서의 일본군 인력증발과 일점령지내 후방전과 게릴라전과 끝없는 중국군인해전술도 소강상태에
한몫합니다.
총이 없어서 반이상을 칼을 쓰면서 까지 일본군에게 대항한건 대단하네요
이영상을 보니까 왜 일본군에게 초반에 허무하게 밀렸는지 이해가 되네요
반자이돌격 정당화ㄷㄷ
문자이돌격 정당화
그런 그 헛소리는 하면 안되고
0:42 총알 1발 = 쌀 3.5kg.
ㄷㄷㄷ 미국같으면 싸게 대량으로 찍어낼텐데.
중국군 수준 엄청났네요. 한편으론 중국도 현대식 군대 유지가 저리 어려운데, 더 작고 가난한 조선의 독립군은 진짜...
@@최고소비에트 임팔은 강 영국군이랑 인도군의 물량빨이지 조선의덕 ㅇㅈㄹ ㅋㅋㅋ
@@maus4033 독립군이 먼 8천명이나 되냐 역사왜곡 ㄴㄴㄴ. 우리도 중궈랑 별반 차이 없었다 ㅋ
@@Viva-kj7zc역사 사료에서 나온 재일 큰갚이라 실제로는 2~3천이 한계였을거임
@@maus4033 조선에 주둔했던 일본군이 2만이라던데 게임이 되었겠냐
@@Viva-kj7zc 엌 그러고 보니 왜 저런식으로 쓴거지... 분명 독립운동은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없지만 명분만큼은 충분하다는 목적으로 쓴 것 같은데
4:50 모신나강, 아리사카, 카르카노 빼고 죄다 8mm 마우저 총탄 이여서 호환 가능함. 거기다 중국군도 마냥 바보가 아닌지라 마우저 소총과 체코 기관총을 자체적으로 카피생산함.
라이센스도 안받고 카피생산 ㅋㅋㅋ
@@xero2250 그런데도 성능이 나쁘지 않았던게 함정
앗 빠른 업로드 감사드립니다
흥미로운 영상이지만 전쟁 한번 제대로 못하고 일본에게 먹힌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한편에선 가슴이 먹먹히 지는 영상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대적으로 한국인은 전쟁에 소질 없음요
중일 전쟁하고 독소전쟁이 비슷한게 많네요. 다른점이라면 공업력?
스탈린은 교육도 ㅈㄴ 중시했던 사람임
괜히 자국민 존나 짜죽여도 후세들한테 그래도 모든 소련경제체제를 바꿨다 말 들은게 아님
당시 소련 문맹률도 스탈린새끼가 해결함
걍 제정 러시아의 모든 문제를 고쳤던 진짜 국가일만했던 미친놈임
@@user-no2cu7ti2t 오? 의외네요 문맹율까지 고칠줄이야
기본교육은 독일의 예로도 확인 가능 하다죠 1차세계대전 독일군의 교육수준이 타국에 비해 월등했엇던...
구독자는 아니지만 가끔 듣고 보는 나름 애청자입니다.
중간중간에 이상한 말투나 맞지 않는 어법이 나와도 '그냥 내용만 알아 들으면 된다' 하고 넘겨 왔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지막 멘트였기 때문에 계속 귓가에 맴돌고 곱씹어 보게 되는군요.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그러면~ 감사합니다]
머릿수만 채운 허풍서니 군대였군요
1:30 총이 모자르면,
징집하는 거보다 공장에 투입해서, 물량부터 갖춰야 할 텐데.
그 공장 90%가 전쟁초반에 다 날라갔어요
공장이 다 날라감ㅇㅇ
무기의 질도 문제지만 부패가 너무나 심해서 그날 원조로 보급들어온 무기들을 밤사이 다 팔아먹었다는 사례도 있고 포탄터지면 모래가 쏟아져나오고..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달리 깡통수준. 지금은 다를까?
장개석은 돈이 없어서 군인들 월급을 제대로 주지못해서 결국은 군인들이 무기를 군벌들에게 팔아서 먹고살아야 할 지경이었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임 월급안주면 그길 밖에 더있겠나.....나폴레옹 전쟁은 무기로 한다 무기는 돈이다 돈없으면 무기도 없다 따라서 전쟁도 할수없다.
궁금하면 지금 붙어봐
그래서 지금도 저시절 쿠오민탕이 전신인 대만에서 중공에 전투기팔려다가 잡혀가는사람있음
결국... 가난한 국가의 군대가 못 싸우는 이유죠. 인프라가 안되어서 교육도 못받고, 여기저기서 무기 끌어와야 하고, 결국 군대라는게 단순히 들어가는 돈만이 아닌, 사회 전체적으로 돈이 미친듯이 들어야 싸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의료, 교육, 도로와 차량, 식량 생산, 산업, 그런 모든 인프라들을 키울 돈 말이에요.
그러니까 북한 인민군이 싸울 힘이 있을까? 한나라가 전쟁을 하려면 인간이 할수있는 모든행동과 모든 물자를 총동원해야함. 그렇다고 승리를 장담할수 없음.
@@dongkupark7907 그래서 굶어 죽어가면서도 핵을 만든거임. 핵없음 남한군에 개털리니까.
@@조현우-l9d 핵? 그건 자충수임. 써먹지도 못하는 핵을 만들면 뭐해.
중일 전쟁사에 대한 학자가 아닌 개전으로 가장 추천 드리는 팬더 아빠의 중일전쟁사 통해 우리 근대사와 맞다아 있는 중국의 암울했던 기억을 되집어 보시길 바랍니다. 추가로 대만에서 기밀이 해제된 장재석의 읽기 의 일부분을 심도 있게 찾아보시면 지금 숫자로 바로보는 어이없는 부조리와 불합리가 너무나도 당연시 받아들여질수 있다는걸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거라여겨집니다. 추가로 이 중일 전쟁의 참상은 8년간 대략 2천만명의 사상자와 민간인 피해자를 낳았다는것과 힘없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살아 남기 위한 최선도 아니고 최악을 피할 수있는 방법이 있기나 했는지 되뇌어 봅니다. 살아 남은것에 우리 조상들에게 감사합니다.
[중일전쟁 : 용, 사무라이를 꺾다] 말씀이시군요. 전 그 책 읽고 장제스가 얼마나 답없는 나라로 그렇게 지지않고 8년이나 싸운 대단한 인물인지, 마오쩌둥이 그렇게 일본에게 중일전쟁 일으켜 준 것에 대해 감사 또 감사했는지 확실히 알게되었죠.
@@레이오트 전문적인 내용이 필요하시면 기세찬 교수의 저서를 읽으시면 좋습니다
YJ kim - 우리나라는 저 시대에 일제시대 여서 김구 주석의 독립군 들이 소총을 사용 하면서 장개석의 국민당군 들과 함께 활동을 하였습니다.
킬구
왘ㅋㅋㅋ 수송 수단이 아무 것도 없다는 엄청난 반전인데..?
왠일로 빨리 돌아오셨다
와 결국 전쟁이란 그 국가의 교육 제도 기술 등에 달린거라는거네요. 잘 봤습니다.
돈이 우선이고 그뒤로 니가말한 이유잖아.. 전쟁은 돈..즉 그나라의 경제력이 밑바탕이다..무식한새갸
5:15 거기 인천삼산체육관 아닌가요???
한국전쟁 때 장개석이 우리도 도와주겠다고 하자 맥영감이 짜지고 있어라고 그랬죠
그건 확전될까봐 우려해서임.. 그때 중국군은 중일전보다는 되게 나았음..!!
그때는 좀 다르죠...? ㅋㅋ
@@viribusunitis1274 국민당의 부패는 대만 가서도 똑같았습니다 대만을 지킨 금문도 전투도 국민당 군대가 밀수(? ㅋㅋㅋ)하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겁니다
@@유건희-d4q 1960년대 한국은 그 부패 대만보다 더 개판
지금도 중국인들의 문맹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함..
기품이 있고 심오하며 멋지게 보이는 한자는 외우고 쓰기 힘들며 죽을때까지 공부해야함..
문자라함은 외우기쉽고 쓰기 쉬워야 제역할을 하는것임.
고로 한자는 실속보다는 겉물만 들었다, 라고할수있음..
14명 중에 1명이 문맹인
한자가 어려운거랑 별개로 교육의 문제에요.
그래서 고 등소평이 한때는 조선의 한글을 도입해서 쓰자고 했는데, 뙤놈들 존심이 상해서 안했다고 하더군. 지금 우리나라 문맹자는 일제시대 가난해서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못한 1940년 이전에 태어난 가난한 집자녀들 뿐임. 이승만 대통령께서 제일먼저 내 세운것이 전국민 문맹퇴치정책이었음.국민학교의무교육제. 해방당시 국민학교에는 한반에 10살 차이가나는 학생들도 있었음. 심지어는 장가까지 간 사람도 있었음.
@@dongkupark7907 문맹률은 교육이 중요하지 문자는 중요하지 않음.
@@ZHONGHUAMINGUOWANSUI_HANGUOREN ㅇㅈ 한글이 쉽고 빠르게 배울수 있는건 팩튼데 중국어가 어려워서 문맹률이 높다는건 개소리임 중등교육 이상 받은 중국인중에 문맹없음 즉 교육의 문제임
거기다가 당시에 일본은 육해공군 다 있는데 중국은 육군 빼곤 거의 없고 그마저도 허접한 군대라 일본에 상대가 안됬음 이런 일본 조차도 서구에 비해서는 뒤쳐진 군대인데 중국이 얼마나 개 허접한지 알 수 있는 것 지금도 비슷함
일본에 공식적인 ‘공군’은 없었고 육군과 해군에서 자체적인 항공대를 운용했습니다. 2차대전 당시 공군을 따로 창설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비슷은 무슨 ㅋㅋ 진짜 지금은 조오오오오오옷나 발전한거임 ㅋㅋㅋ 뭐가 비슷해 ㅋㅋ
@@ZHONGHUAMINGUOWANSUI_HANGUOREN 그렇기는 한데 다른나라도 어마무시하게 발전해서... 국력도 군사력도 상대적인것. 지금도 미군, 러시아군, 일본 해상 자위대엔 못미침. 일본도 본격적으로 재무장하면 어마무시하게 강해짐. 일본 국방비 gdp의 0.9%수준임. 한국도 많이 발전했지만 결국 주변국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여전히 약함.
과거를 어떻게 평가하는건 자유지만 현대의 위협은 과소평가보단 차라리 과대평가가 낫습니다 현대 중공군은 저때 중국군과는 비교가안되죠 절대적으론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봐도요 러시아바로 아랫단계에 놓이는게 중국군입니다
장제스가 고생많이 했겠군요.
전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때 일본 항공모함 운영했음..
중국이 상대 안되는건 너무나 당연한 거였음.
저때 마오쩌둥이랑 장제스 한참 싸울 때. 그리고 중국은 원래 저따위임
@Moe 중화민국은 신해혁명 1911년 건국된건데? 바본가? 중일전쟁은 1937년이고
@@hardie2311 조선은? ㅋㅋㅋㅋ
조선은 소수레를 끌면서 화승총을 들고다녓슴. 또한 의문모룰 국뽕에 도취하다 지절호 환각상태에 일본에 도발하다. 식민지로 전략! 일본패배이후 계속 미국식민지로 인수인계 ㅋ
여기에 스틸웰 트롤링까지 생각하면 중국 국민당이 정말 힘겹게 싸워낸걸 잘 느낄 수 있지
최근까지 정설로 통용되어 온 답이 없는 장제스의 중화민국군과 이와 대조되는 초인급 활약을 펼친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군 이야기가 퍼진데는 조지프 스틸웰의 공로도 아주 크지요.
오 저도 이 댓글 달려고 했는데
근데 소련 아니었으면 중국이 개털린 전쟁임 ㅋㅋㅋ 만주에 일본군 육군중 최정예인 관동군 전부 묶어버린것만 해도... 그리고 일본은 해군에 7 육군에3
스틸웰은 미군장성중에서도 꽤 유능한 장군이였음
단지 독선적이고 장제스와 맞지않았던거지
트롤링은 장제스가 한거고 그걸 참을수없었던게 스틸웰임
@@benjamin-erlangen 이치고 작전 대비하기 위해서 y군 빼내려고 한게 장제스인데? 그때 스틸웰이 뭘한줄 앎?
무슨 중세도 아니고 중국인들이 칼들고 검기 쏘는 것도 아닌데 실제 전쟁에서 칼들고 싸운다는게 말이 되냐고ㅋㅋㅋㅋ
그걸 몰으니까 짝대기 들고 싸운 중국군한테 너들이 삼팔선까지 빤쯔런한거... ㅎㅎ
@@김승민-t6w8t 시진핑핑이 ㅋ
@@김승민-t6w8t 파로호의 물고기들이 중공군을 먹고 자란곳이라 매운탕이 그리 맛있다는데
@@김승민-t6w8t 너가 어제 다른 반중채널에 적은 시진핑의 독재에 대한 비판 댓글은 잘보았어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해
@@김승민-t6w8t ? 당시 중공군은 소련제 기관총을 분대당 3정씩 보급했습니다. 거기다 보급이 약한 보병뿐인 한국군 위주로 3배의 병력으로 밀어 붙여서 틈새를 만들었으나 미군의 전차가 등장하자 다시 반대로 밀어 붙였죠. 고기를 갈아버리는 분쇄기 같았죠.
한국군은 한창 전쟁해서 소년병까지 끌어모으던 시대라 한국군은 이미 한참 소모전이 끝난 상태라 없는거다 다름 없었으나 미군2선 보급이 되고나서는 화력으로 뜯어먹었죠.
한국전쟁 중공군 전사자는 중국측 기록의 2배는 나온다는게 지금의 시점이죠.
??? : 자 앞줄이 죽으면 뒷줄이 주워서 쏜다 오키?
이렇게 질 낮은 중국군을 상대로 반자이돌격으로 재미를 본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을 상대로 다시 한번 반자이돌격 전술을 시전하는데...
현대 중공군도 미국 등 선진국과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형편없는 전투력을 보여줄 거라고 봅니다. 한국, 대만 등과 전투를 해도 의외로 밀릴 가능성이 많을 것 같습니다.
중공군이 형편없었다면 어째서 한국전쟁 결과로 나라가 분단됐을까요? 미군도 중공군을 못밀어냈는데 어떤 근거로 의외로 밀릴 거라고 하세요?
전쟁 시작 하면 3시간이면 한국 점령가능
@@물도그-f3e 중공군이 우리나라를 3시간만에 점령할 수 있다고요? 한번 시도라도 해봤으면 좋겠네요 ㅎㅎ
함부로 예상하지마라 멍청아 저 때의 국민당하고 지금이 같냐
@@물도그-f3e 개소리ㅋ 만주에서 서울까지 오는데만 3일은 걸리겠다. 물론 북한이 길을 터준다는 예상하에
아니 칼만 줄꺼면 차라리 석궁이나 활이나 주지 왜 칼만 주냐
석궁이나 활로 거리두고 싸우면 일본군의 총과 대포에 일방적으로 몰살당하지만 칼들고 돌격해서 난전 벌이면 일본군에 피해줄수 있죠.
개런드반자동소총(8연발)과 카빈 소총(30연발), 톰슨 기관단총(30연발), 콜트1911권총(7연발)으로 개인화력이 강력한 미군은 일본군의 반자이돌격을 번번이 몰살시켰지만 일본군의 개인화력(5발 볼트액션소총과 저질권총정도)은 미군에 비할바가 못되죠.
게다가 영상에선 소총만 나오지만 중국군은 C96마우저 권총이나 콜트 M1911을 대량으로 수입하거나 카피생산해서 근접전화력에선 오히려 중국군이 우세했죠. 즉, 칼만 들고 돌격한건 아닙니다.
거기다 중일전쟁이전에 중국이 군벌들간 전쟁등으로 혼란스러울때 외국에서 많은 무기들을 수입했는데 이때 일본의 무역회사들이 권총등을 미국과 유럽에서 사다가 중국에 팔아서 돈벌었는데 그렇게 판 무기들이 중일전쟁이후 일본군과의 전투에 사용되었죠.
와 저 칼이 쓰였던건 봤었지만 저게 주무장일줄은 꿈에도 몰랐네요;;;기껏해야 일부부대 특수목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했는데... 저런걸 보면 오히려 국민당군이 잘싸웠다고 칭찬해야겠네요
다다오가 나오는 순간, "아, 맙소사."
전군님 6.25때 인해전술의 중공군 무장수준도 영상으로 올려주실 수 있나요?
아무리 무장이 뒤떨어지고 소총 하나 총알 한발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현대화된 제국에 맞서 8년이나 대륙에 발을 묶어두었다는 것도 그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일본 패망할때 까지 버틸 수 있었고 뜻밖의 승리라도 맞이할 수 있었죠.
그저 그저 쪽수의 힘입니다
지금도 중국 1억명만 동원해서 대충 무기 갖추고 한반도로 쳐들어 오면 말하기 싫은 상태가 됩니다
안되면 2억명 동원하면 헉헉헉
오....m17....3분27초 ㅋ 군대 생각나네요~~~~fdc라면 . 아는물건 .
근데 오합지졸이라도 200만이면 씹ㅋㅋㅋㅋㅋ
많긴 진짜 많다
60사단 계획!
1944년에는 500만명
차라리 저럴거면 활을 만들어서 싸우던가..
@@최고소비에트 아무리 활을 숙련하지못해쓸모없다 하여도 넓은 거리에서 칼로 먼거리를 접근하는것이 더욱더 비효율적이지않나요
그리고 활은 위협이라도 가할수있지만
칼로 돌진하는것은 일본이 경험을하고 온상태라 전혀위협적이지도않다고 봐요
@@센트럴파크-y7t 활은 숙련도가 높아서 조선때도 조총 들어오자마자 다 없앤게 활이에요
그리고 전쟁에서 죽거나 살거나 인데 위협해서 뭐해요 죽일때 그나마 확실한 칼이 낫지
당시 중국이 썩었던거지, 부정부패 심하면 아무리 돈을 때려박아도 강병은 없으이
어디서 듣기론 청.일 전쟁당시 청나라군이 대포를 쐈는데 화약이 아닌 완두콩이 팝콘 처럼 뻥튀기 되서 나왔다는 말도 ㅋㅋㅋ
압도적 군사력으로 일본한테 처발린 이유가 국방비리가 엄청 심해서 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ㅋ
한가지 더 알아야 할 사실은 중일 전쟁은 진주만 공습처럼 선전포고 없이 벌인 전쟁이지만 사실은 무다구치 렌야가 지 멋대로 일으킨 전쟁입니다.
중국이나 일본 둘다 충분한 준비 없이 벌어진 전쟁인데 일본이 예상외로 너무 잘 풀린 전쟁 ㅋㅋㅋㅋㅋㅋㅋ
무타구치 렌야... 너는 어디든 빠지지 않는구나. 몇몇 과격한 일본육군 장교들이 일으킨 사건이 ... 엄청난 전면적으로 확대된 참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Hans_JKPL 중국은 준비하고 있었습니닺그래서 2차상하이전투때 일본군이 후방상륙하기전까지 털리고 있었죠
아무리 렌야 한사람이 일으킨다고 전쟁을 하겠습니까 렌야를 핑계로 시비를 만들어 전쟁하는거죠.
최소 총은 들고 다닐 줄 알았지..............
ㄹㅇ 에너미 엣더 게이트에서 봤던 장면이 사실 중국에선 온거였노..ㄱ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음
@@kisear455 6.25때 초반때도 총이 없어서 칼을 쥐어줄 정도는 아녔음. 일본도를 많이 들고 다니긴 했지만
@@포돌포돌한포돌이-d2o ㄴㄴ 당시 총보다 병사수가 더 많았고 병력 줄이라고 했는데도 대통령이 개무시함
@@kisear455 일제 장비 써가면서라도 총과 병력에 비율이 1대3 까지는 아니었던걸로 안
유튜브 운영자님과 구독자들께 래너 미터의 중일전쟁을 읽어보길 권해드리고 싶네요 모택동의 혁명사관에서 벗어난 책이라 꽤 흥미롭더라구요
래너 미터가 쓴 "중일 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말하는 건가요? 제가 읽어봤는데 확실히 모택동의 혁명사관에서 벗어난 책인데다 중일 전쟁 중에 벌어진 일들을 잘 요약해준 책이죠. 책 맨 앞에 충칭 대공습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 세세한 민간인들의 일상 옌안과 충칭 동경 정부가 대륙의 패권을 두고 맞서는 신삼국지? 같은 느낌을 줘서 읽는 재미가 있는 것 같네요.
이러니 현재 중공인민들은 독재를 일삼는 공산당이라도 만족하는겁니다. 비록 빈부격차는 심해졌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먹는문제는 해결이 되었고 대만을 뺀 나머지는 합병이 되어 군사력에서도 과거 100년전에 서방과 일본에 쳐발리던 시기를 넘어 위협하는 상황까지 올라셨으니 지지할수밖에 없겠죠.
ㄹㅇㅋㅋ
게다가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 참혹한 동란기를 겪은 민족이라 국가 분열을 병적으로 두려워함. 그래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원칙을 세운거고. 중국왕조가 길어봤자 2~3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국시대 5호 16국 시대때는 정말 일반 백성들에겐 가장 비참한 기간이었음. 좋게 말하면 역동적인 역사고 나쁘게 말하면 피바람이 부는 역사. 중국인들이 남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성정을 갖게된건 저런 참혹한 동란기의 영향인 것도 있음. 비교적 최근의 역사만 하더라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으로 가까운 일본과 한국이 뒹굴거리고 있을때 중국은 한마디로 지옥도였음. 이건 북경대에서 중국사 공부할때 중국인 교수가 알랴줌.
그러는 그당시 한국은머했냐?일본을도와서 중국을 침략했어
참으로 .. 모르시는 말씀. 모택동이 대약진 운동하면서 3천만이 굶어 죽었습니다. 3천만이 굶어 죽었다는 건 수억명이 먹지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고생을 했다는 말입니다. 중국은 영원히 후진국입니다.
이제 등소평이가 한국을(박정희의 시월유신) 배워서 경제가 좀 좋아지긴 했지만 군사력이란 거 .. 까봐야 아는 나라입니다. 원자탄 빼고 싸우면 우리가 이길지 중국이 이길지 모르는 나라지요. 역사적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중국은 그나마 싸워보기라도 했지....
우린 저정도도 못됐으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단것이다... 남에나라 뭐라할것 없다. 우린 더 한심했으니....
중일전쟁 당시 중국군 중졸도 얼마 없다니 너무한거 아닙니까?
요즘 한국 중학생은 지수,로그,극한,수열,미분,적분,확률까지 선행학습으로 다 풉니다.
대포에 쓰는 이차함수 정도는 껌이죠.
한국은 중학생이 군대가도 전쟁 이기겠네. FPS로 에임이 스나이퍼예요.
대단합니다..ㅋㅋ 그 당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을까요
@@sssu6572 // 훌륭하신 조상님들은 고무신을 끌면서 대로변에 앉아서 똥을 싸고 있었지요. 선교사들이 코를 잡고 다녔다고 하네요. 서양 오랑캐를 물리친 조상님들 만만세
반샷나면 어쩌죠
대한민국 선행 학습이 여기서 돋보이네요 ㅎㅎㅎ
@@khkim4821 ㅋㅋㅋㅋㄱㅋㅋㄱㄱ돌려까기 인정
일본군도 내막을 살펴보면 엄청 막장이였는데 중국군은 더 심했네요. 중일전쟁영화보면 중국군병사가 전장식 총을 들고 싸우는 장면을 봤었는데 실제로 들고 싸웠을 수도 있었네요.
혹시 어떤 영화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나대로-i2n 제목은 잘 모르겠고 유튜브에 중일전쟁 치시면 화승총 사용하는 병사가 나오는 영상이 나와요.
ruclips.net/video/ILZ5N3n8Fn8/видео.html
@@나대로-i2n 첩혈고성인데, 저 소년은 병사가 아니라 아버지 원수 갚는다고 집에서 쓰던 화승총 들고서 57사단에 합류한 민간인입니다.
장제스가 뛰어난거지.. 중공은 자기네들이 중일전쟁에서 뭔가 큰거 한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전투는 거의 안하고 뒤에서 세력만 불리고 있었고 장제스는 저런 군대들, 분열된 군벌들을 데리고 일본에 대항해서 영국, 소련과 달리 외국 지원 없이 싸웠고.
근대화 시대때 공교육이 의무화 된게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쟁탈은 필수이고 군대는 자국민 징집으로 충당하기에 현대식 무기를 사용할려면 글쓰고 읽을줄 알아야 하고 전쟁때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들 센치 미터 등을 알아야 철을 제단하고 조립하고 산수를 알아야 물류.보급 업무가 가능하니 알고보니 자국민을 전쟁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 제일 큰 이유인듯...
어짜피 군인은 징병제 공짜인력이 공교육 투자비 뽑고도 남을듯...
다다오검: 다 다 다 다 오!!!!!😱
4:09 15cm라고 해서 깜짝놀랐네ㄷㄷ 보통150mm라고 하지 않나요?
독일에서는 그렇게 부름
그런데 이 중국군의 삽질을 나중에 일본군이 그대로 따라합니다. (1) 육군과 해군이 쓰는 무기가 달라서 보급이 어렵다. (2) 무기가 부족해서 칼 들고 반자이 돌격을 한다. 그것도 자기들보다 머리 하나가 큰 미군 앞에. (맨몸으로 싸워도 지는 게 당연)
일본군은 정말로 육군과 해군이라는 서로 다른나라 군대 2개가 섞인듯한 모습이었죠 ㅎㅎ.
중일전쟁시 일본이 중국 따라간게 아니라 비슷해요!!일본도 정도는 덜하지만 각각 규격이 달라 애를 먹었음!!(아리사카 38식/99식 소총 규격이 달라도 전쟁말까지 혼용해서 사용함!!경기관총 96/99식도 마찬가지!!)
육군소속 잠수함 이걸로 말다햇죠ㅋㅋ
일본의 육해군 갈등은 마치 조선의 당쟁싸움을 연상시키기 충분하죠.
@@황야의개마무사 완전 노론 & 소론이 각기 다른 옷차림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과 일치하죠.
이 영상 보니까 일본한테는 무타구치 렌야가 갑작스럽게 전쟁 열어버린게 트롤링이 아니고 신의 한수였네
음.... 신의한수라기보다는 얻어걸렸다보면되는?
트롤링 맞음 정부는 개전반대파였음
@@kisear455 행정부는 반전파가 주류였어도 어차피 군부 강경파 때문에 언젠가 중일 전쟁이 터지긴 했을테니... 어쩌면 히틀러가 소련 선빵쳐서 허를 찌른 것처럼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된 거 같아서요
@@geneeu6098 군부도 생각보다 반전이었습니다 오히려 하급장교가 나대던 상황이고요 웃긴게 초반에 군부는 그만하자고 하는데 행정부가 전쟁ㄱㄱ라고 함
그당시 일본도 내정 개판이었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숫자에서 밀리고 점령지 관리가 힘들죠 자신들보다 수십배큰 지역을 점령 관리 하려면 배탈이 나기에... 일본 군부도 당시에 멍청이가 아닌지라 반대했지만 우리 다크히어로 렌야상이...
듕귁의 역사, 특히 한족 왕조의 역사를 보면 수십배의 병력을 가지고 대패 또는 전멸한 사례가 허다하다.
쟤네들은 태생이 당나라 군대다.
하츠 오브 아이언4라는 게임에서 중일전쟁 중국진영으로 하면 가용 인력은 넘치는데 군수공장이 없어 야포는 물론이고 기본 보병 장비인 소총 생산에 큰 어려움을 겪는데 고오증이였군요. 덕분에 인력은 썩어나도 소총 부족이랑 부실한 장교단 패널티로 일본군이랑 붙으면 추풍낙엽처럼 썰려나가는데 중국으로 플레이할 때 환장합니다 ㅋㅋ
거기다가 부정부패와 군벌 관련 패널티도 장난 아니지요.
? 호이4에서 중화민국으로 플레이하면 일본 상대로 영토 거의 안뺐기고 방어전 ㅆㄱㄴ인데....
@@김형준-z1l1z 멀티 해보셈
중국역사상 이민족하고 붙어서
전면전에서 이긴것은 원정10% 방어25%일겁니다 그것도 압도적인 병력으로요
100만끌고 인생배팅했다가 골로갔잖아 ㅋㅋㅋ
ㅋㅋ수나라 ㅂㅅ들 100만끌고왔다가 씹창나고
나라도 씹창남ㅋㅋ
@@kudo0522 문제는 고구려 경제도 같시 씹창남
이뭔 개소리 전면전의 사전적의미로 생각하면
캐삭빵이라할때 춘추전국시대때부터보자?
조나라 이목이 담람전멸 1승 한나라가 북흉노 멸망 2승 조조가 오환 멸망3승 서진을 이민족승리로 봐야하나? 본다해도 3승1패
당이 돌궐멸망 4승 야 ㅈ문가 여기까지 대충봐도 니가씨부린게 개소리인지는 알거같지않냐?
에초에 압도적인 병력으로 찌발렸다는 개소리는 쌩까더라도 말이지? 닉네임보고 삼덕인가해서 쫄았는데 떠드는거보니 ㅋ
상하이 전투 중국군은 오합지졸은 아니였지 고럼
갸들은 장제스직속 정예부대라
상하이 전투에 투입된 병력은 국민당 직속의 정예병력이었죠! 하지만 그 병력조차 너무 섣불리 투입되었고 ㅠ 상하이에서 큰 손실을 입게되었죠. 그 뒤 ㅠ 바로 난징까지 함락당하고 말았답니다..
@@jeonkun 섯불리라기보단 좁은공간에 너무많은 병력쑤셔 박지않았나요?
중앙군은 잘싸움
당시 중국쪽 군벌은 고위 장교들이 독도법을 깨우치지 못했다고함. (그냥 고위도 아니고 영관급, 장성급 장교들 조차도!)
이미 답이 나온거임. 그렇게 욕먹던 당시 일본군이 동아시아에서 만큼은 가장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군대를 소유 하고 있었던 셈.
맞네 맞아. 그런셈이네여
교육의 힘.
따지고 보면 신분제로 고대 한자 외우기 수준의 조선도 자체적 개혁이 안되어 외세가 힘으로 눌러서 개화시켰고 오히려 이를 계기로 만민이 자아를 각성, 독립과 발전을 할 수 있게 되었을것.
국민당이 나치독일하고 경제,군사교류 하고나서부터는 독일제 무기와 장비와 독일식 훈련을 받은 부대도 만들고 독일에서 유보트도 수입하고등등 별의별 노오력도 하고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도 많이 노오력하고 그랬음. 만약에 중일전쟁이 5~6년 늦게 일어났으면 일본하고 좀 해볼만했을거같음.
유보트는 무슨...
확실히 국민당에게 시간이 좀 만 더 있었다면 개전초기에 일본에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퇴하진 않았을듯 하네용
@@sssu6572 나치하고 교류했을때 무산되었지만 유보트 도입할려고 한거는 맞음
@@ah.k4872 그래요? 아쉽네요.유보트 몇개가 상하이전투 참가했으면......3개월보다 더 버틸수 있겠네요...
@@sssu6572 독일에서 유보트 도입할려고해도 건조하고 훈련시키고등등 할려면 시간이 촉박하고 동맹국인 일본의 눈치와 반대도 있어서 아쉽게도...만약에 조금만 더 일찍 유보트 도입했으면 상하이 전투때 일본군 항공모함,수송함등등 격침시켜서 상륙도 시도 못하고 전멸하고 항모가 침몰하면서 일본 항공대도 심각한 타격 받아서 전쟁이 국민당에 유리하게 진행되었을수도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네요
교육의 중요성
공산당 군 무기도 국민당 만큼 형편없었나요?
더못함
공산당 무기는 국민당보다 더 후진적이었습니다
샌드백 트렉터 일본탱크(하고,89식)가 활약한 전투중 하나죠
WW2 때도 그대로였던 게 문제였지 저 땐 나름대로 표준이었음. 동시대 미 기갑부대는 거의 기총만 달린 애들로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