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노비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반란 진압하고서야, 아니면 김윤후가 노비문서 태운 것에 대한 사정설명을 하고 난뒤에서야 알았을거라 봅니다. 도망갔던 귀족과 관료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조정 모르게 죽이거나 단순 횡령죄로 노비들을 죽였다고 보고했을 테고, 그뒤 반란보고서에는 노비들의 도둑질을 처벌했더니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을테니까요.
김윤후가 기록이 없길래 아무래도 나중에 충주가 몽고군에게 함몰될 때 죽었겠거니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전쟁 끝나고 원종 시기까지 멀쩡히 살아서 관직을 받은 게 고려사 원종세가에 나오더군요. 전쟁 뒤에도 멀쩡히 살아있었는데도 기록이 별로 안 남은 건 후손이 없어서 그랬었던 건지 아님 관직 내린 기록 자체가 그냥 추증이었던건지 모르겠네요.
조선이 양반사회고 고려가 문벌귀족 사회라고 하는 건 그냥 역사학적인 평가에 가까운 것이고 실제로는 당연히 고려시대에도 양반이라는 개념 자체는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지배계층이 주로 과거제도를 통해 지위를 유지하여 관료로서의 성격이 좀 더 강했다고 보기에 양반사회라고 하는 거고, 고려시대는 근래까지 통설에 따르면 음서제도를 통한 세습적 기반이 좀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귀족사회라고 역사학자들이 평가했던 것이죠. 다만 그걸 떠나서 박사님이 영상에서 언급한 양반이라는 건 이 당시 고려의 군사제도로서 양반별초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몽항쟁기에 지방 향촌의 군사제도는 향리나 귀족, 관리 등 여타 지배계층에 속하는 양반별초와 그 이외의 피지배계층으로 구성된 잡류별초로 나뉘어 있었는데 1232년 충주 노군의 항쟁 때는 몽고군이 침공하자 정작 양반별초로 징집돼야 할 사람들이 전부 도망가고 잡류별초만 남아서 투쟁했다가 나중에 도망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잡류별초를 사사로이 처벌하다가 반란이 일어났던 것이죠.
"김윤후"라는 이름을 얼마나 신뢰했길래... 분노한 노비군의 마음까지 돌렸을까요.
저런분이 많이 계셔야 하는데.
스님장군 김윤후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최초의 의승병장.
김윤후 승장을 화폐도안에 넣어야...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폐지한 이율 모르겠음
못난 사람이 있으면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일지라도 다음을 지켜봐야 한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다음편은 동북면으로 가나요?
앗 수정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ㆍ
청나라 깃발
여기 가봤는데 등산로 입구 찾느라 산 한바퀴 돌고 등산도 힘들어서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럴 가치가 있었어요 ㅎ
그 정도로 험하군요. ㅠ
너무 좋아요!!!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노비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를 반란 진압하고서야, 아니면 김윤후가 노비문서 태운 것에 대한 사정설명을 하고 난뒤에서야 알았을거라 봅니다.
도망갔던 귀족과 관료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조정 모르게 죽이거나 단순 횡령죄로 노비들을 죽였다고 보고했을 테고, 그뒤 반란보고서에는 노비들의 도둑질을 처벌했더니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을테니까요.
너무 재밌어요!!!
영화만들면 대박날 소재 1. 여몽전쟁(처인성, 충주성 전투), 2. 삼별초 항쟁
와...재미있다
김윤후가 기록이 없길래 아무래도 나중에 충주가 몽고군에게 함몰될 때 죽었겠거니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전쟁 끝나고 원종 시기까지 멀쩡히 살아서 관직을 받은 게 고려사 원종세가에 나오더군요. 전쟁 뒤에도 멀쩡히 살아있었는데도 기록이 별로 안 남은 건 후손이 없어서 그랬었던 건지 아님 관직 내린 기록 자체가 그냥 추증이었던건지 모르겠네요.
잘 봤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서 지역방위
사단이 어떻게 싸워야할까 생각하게되네요.
구심점도 있어야하고
평소에 조직상태도 중요하고 구성원간에
소속감도 필요하죠,
충주의 중요성과 명장 김윤후에대해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계속 해주세요 ㅋㅋㅋㅋㅋ
(다시 한번 더) 죽주산성도 꼭 촬영해주세요!!! ㅠㅠ
썩은 상류층을 그대로 두면 토사구팽 당합니다. 그러니 서민일수록 더 정치에 신경 써야 합니다.
오래된 다큐 보다가 교수님 나오면 완전 방가움 ㅋㅋㅋ
와
오늘의 뒷배경은 미세먼지인가요?
충주가 세번째로 컸다면 첫번째 두번째는 어떤 도시가 컸나요?
서울 평양?
몇분전에 올라왔길래 봣더니 어제 본거였네요 ㅎㅎ 재수정해서 올린듯
천국의 악마들
산성에는 여장이 안보이는데 복원을 안한건지 원래없는건지 궁금하네요 교수님이 목책 이야기하시는데 산성은 여장을 목책으로만 했나요?
몽골군과 싸운 다를 곳인 영원산성도 해주세요!
저 일련의 산 능성을 보니
빡세구나!!
금상산성, 가산산성도 부탁해요 ㅎ
겨울 추워지는데... 등산복 업체에서 협찬하면 자사제품 홍보에도 좋을텐데...
정말로 트레킹화나, 등산복 업체에서 협찬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흔하디 흔한 성이지만 남한산성도 해주십쇼!!
개진상if 김윤후가 10년 만 더 사셨더라면도 해주세요😍😍😍❤❤❤
앗.. 다시 올린건가요? ....
음향문제든 뭐든 수정해서 새로올린거같아요
몽골이랑 협작해서 대작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양쪽다 개고생하는 장면 넣어서.. ㄷ ㄷ ㄷ
몽골인들 입장에선 흑역사인데..거절할 듯 합니다
@@차곡차곡-x5r
건설현장 노비들이 몽골인이고, 그들의 송금으로 몽골 경제를 유지함.
우리의 의지가 중요한거지, 현 몽골인의 자유의지는 필요없음. 있어서도 안돼고. 이것이 선조 김윤후와 노비들에 대한, 보답 입니다.
@@KrMorgan12 ??????
@@커싄 몽골에 복수하자.
@@KrMorgan12 천 년 전 일을 복수할라치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다시 올린 거지만 다시 보고 갑니다 ㅎㅎㅎ 수고하세요^^
몽고가 충주가 목적은 충주는 경상도 보루ᆢ새재길목ᆢ
아깝군요!
핵심 11:49~
현실 9:45~ , 무장은 하되 전쟁은 일어나서 안된다, 독립투사를 쇼맨쉽에 활용할 뿐이지, abnormal korea office
양반은 조선시대이고
귀족 아닌가요?
조선이 양반사회고 고려가 문벌귀족 사회라고 하는 건 그냥 역사학적인 평가에 가까운 것이고 실제로는 당연히 고려시대에도 양반이라는 개념 자체는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지배계층이 주로 과거제도를 통해 지위를 유지하여 관료로서의 성격이 좀 더 강했다고 보기에 양반사회라고 하는 거고, 고려시대는 근래까지 통설에 따르면 음서제도를 통한 세습적 기반이 좀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귀족사회라고 역사학자들이 평가했던 것이죠.
다만 그걸 떠나서 박사님이 영상에서 언급한 양반이라는 건 이 당시 고려의 군사제도로서 양반별초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몽항쟁기에 지방 향촌의 군사제도는 향리나 귀족, 관리 등 여타 지배계층에 속하는 양반별초와 그 이외의 피지배계층으로 구성된 잡류별초로 나뉘어 있었는데 1232년 충주 노군의 항쟁 때는 몽고군이 침공하자 정작 양반별초로 징집돼야 할 사람들이 전부 도망가고 잡류별초만 남아서 투쟁했다가 나중에 도망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잡류별초를 사사로이 처벌하다가 반란이 일어났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