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시기 기록보면 명나라 장수 이여매가 여진족 7천의 전투력이 일본군 10만과 대등한 수준이라고 평가한 기록이 있음. 물론 목적을 가지고 여진족을 띄워주는 발언이긴 했지만 그래도 임란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하면서 여러번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명나라군은 실제로 후금군에게 야전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승리를 하지 못했고 숫적으로 몇배로 우세한 상황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함. 여진족의 전투력은 농경민족 국가로선 다른차원의 수준이었음
몽골은 티베트를 무력으로 통일한 것이 아닌 특수관계입니다. 티베트는 몽골의 종교적 스승의 나라로 관례적으로 몽골황제의 스승입니다. 또한 몽골은 세속에 있는 제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요. 스승과 제자 이 관계 마치 고대 이탈리아와 로마시의 관계. . . 청나라 시기에도 그런 관계사 지속되어 오다 신중국 건국 후에 관계가 끊어집니다. 신중국은 공산국가로 무종교라서. . 그래서 티벳이 독립을 하려고 하는 것이고. .
가토가 점령한것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여진족 전략 특징이 조선이든 명이든 쳐들어오면 말이랑 귀중품만 일던 챙기고 도망갔다가 적이 보급땜에 쩔쩔매서 돌아갈때 뒤를 치는 전략을 많이 취하거든요. 그래서 명이나 조선에서도 여진족 두령을 잡는데 엄청나게 고생했고요. 이관점에서 보면 가토는 빈 부락 13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여진족은 빈손으로 후퇴하는 가토를 쳤다. 라는게 성립되죠
점령했다기엔 노토의 세력이 너무 멀쩡함 조선의 노토 토벌전때 7개의 부락을 휩쓸자 노토의 세력은 완전히 박살나서 재기불능이 됐는데 가토가 13개 부락을 점령했다는데 얼마후에 노토는 1만 병력을 굴릴정도로 멀쩡한 모습을 보여줬음 가토와의 교전에서 전혀 타격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고 봐야함
@@마포갈매기-r1k 조선인을 길잡이로 세운건 맞는데 당연히 가긴 왜군이 갔음 왜군이 조선군을 1000명넘게 동원할수 있었으면 북관대첩에서 그렇게 박살나지도 않았겠지.. 직산 전투에서 왜군을 조선군인줄 착각하고 가만있던 명군에게 선빵때리고도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자 명나라 기병에게 쳐맞은게 왜군인데 여진기병을 썰고다녔다니... 직산 전투 며칠뒤 잡힌 왜군 하급장수 포로 심문내용이 실록에 그대로 남아있음 명군(기병)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책임 추궁이 두려워 구로다 나가마사가 피해를 축소보고했다고,,,, 선조실록 92권, 선조 30년 9월 8일 을미 2번째기사 충청 병사 이시언이 사로잡은 왜적 복전감개(후쿠다 간스케)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중략) 또한 직산(稷山)의 싸움에서 갑비수(구로다 나가마사)의 군대가 많이 죽었으므로 부끄러워서 숨기고 있다 합니다 선조실록 92권, 선조 30년 9월 9일 병신 1번째기사 (직산전투에서)화살에 맞거나 곤봉에 맞아 죽은 왜적이 거의 5백∼6백 명에 이르렀고 수급(道級)은 30여 개를 베었으며 해 부총(解副摠)과 양 참정(楊參政) 도 각각 손수 수급 2개를 베었다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이시다 미츠나리 ㅋㅋㅋ 아주 제대로 털렸죠 ㅋㅋㅋ 일본놈들은 지들식 전투방식에 익숙해서 한반도 건너와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군에 밀린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일본 이름들은 사실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헷갈릴 수 밖에 없는거 같네요...전 그나마 노부나가 게임을 해서 이름은 제대로 알고 있지만...그 게임을 해보기 전까지는 하나도 몰랐네요 ㅋㅋㅋ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 조선은 일본이 심상치 않아 성을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조가 괜한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전쟁방비를 금지합니다. 200년, 발해역사와 필적하는 평화를 누리다가 계속 전쟁만 한 군사와 싸우면 질 수밖에 없죠.. 조선이 원래 약한게 아니라 전쟁준비를 안해서 그런거죠. 전쟁준비가 되니까 일본군에게 승리를 거둔 노토를 가볍게 승리하게 되는 거고요. 애초에 도요토미의 조선첩자가 보고한게 '이 나라는 대부분이 노비이다'와 '이 나라는 군대가 없다'이죠. 그리고 명은 강성해지는 여진을 막기위해 대부분의 병력을 배치시키고 있었어요. 명이 조선에 보낸 군은 5만이고요.(일본군은 12만) 명은 중국의 최악의 암군으로 뽑히는 만력제의 횡포로 망해가고 있었죠. 나랏일을 처리하지 않고 신하의 얼굴도 보지 않아 상급관리조차 황제를 몇번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지는거지 일본이 뛰어나서가 아니에요.
전쟁준비를 안한게 아니라 조선의 기준으로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준비한겁니다. 준비 안한건 아니고 하긴했는데 현실과 맞지 않은거죠. 이건 고려시대에도 그랬고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사는 곳이면 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전쟁에서 지는 이유는 보고싶은거만 보고 듣고싶은거만 듣다 망하는 거
일본군이 뛰어난 건 사실이긴함. 1000년 넘게 분열되서 칼질만 하다보니 단병접전 실력이 아시아권에선 무쌍이 되버림. 왜나라 무사나 해적들이 워낙 칼질을 잘해서 조선 명나라 공통적인 기록이 저새끼들 칼질 너무 잘하고 위력적이니 단병접전 할 생각하지말고 그냥 창같은 장병기로 제압하라 였죠 ㄷㄷㄷ
@@shinbiapt.8627 그래도 인조반정 안일어나고 광해군이 계속 했으면 적어도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슴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해도 이괄의 난이 없어서 고속도로마냥 한양이 점령당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형제 죽인걸로 욕하면 태종은 연산군보다 못한 쓰레기임 지금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안됨
@@성이름-c7z1f 홍타이지는 아버지 누르하치와 다르게 반조선파이고 병자호란이 일어난 가장큰 이유가 후금땅에 식량이 없어서 후금이 조선의 친명정책을 트집잡아서 조선침략하고 자기들 먹을 식량확보한건데 광해군이 계속 왕이었어도 홍타이지가 어떻게든 조선땅에 침략하려고 했을거같아요
하여간 유목민족들은 예전엔 다 무서웟네. 요새야 말타고 싸우는 사람 없지만. 일본은 아무래도 조총부대가 주력인데 기병하고는 많이 안싸워봣나보네요. 조총 장전이 시간이 좀 걸려서 조총부에는 꼭 호위부대가 붙어야하자나요. 그런데 칼든 무사들도 기병이랑 백병전은 많이 안해봣겟지요. 말에는 교통사고 나면 사이온급 충격인데 그 말이 몇천마리가 우르르 몰려온다 생각하면 끔찍...ㅎ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청나라가 초기엔 조선과 우호관계지내려고 상당히 노력했던걸로 암. 중국 정복하기 위해 조선이 노려보는 후방을 안정화하려 했던건 거란도 만찬가지였고. 근데 청이 중국 접수하고 조선 가만 냅둔것도 신기. 정말 고구려 후예라 봐준건가? 일부 환빠들은 우리가 내친 형제나라가 중국도 정복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하는데, 뭐 그건 오바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보병 위주의 일본군이 기병 위주의 여진족을 상대하기는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여진족들의 주 전술이 기병을 수십, 수백기 단위로 쪼개서 산개하며 적의 화력을 분산, 소모시킨 후, 그 사이 주력은 뒤를 돌아 후미를 치는 거라서.. 신립처럼 돌파형 기병 전술이 아니라, 눈 앞의 기병들은 시선을 끄는 미끼인 경우가 많아서, 일본군으로서는 굉장히 고전했을 것 같네요..
당시 일본을 통일했던 히데요시가 그 많은 영주들에게 영토를 나눠주고 안정을 되찾기위해 조선과 명 그리고 인도까지 넘봤다는 말이 있죠. 물론 그 힘의 배후는 카톨릭신자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예수회 창립인 중 1사람) 가 일본에 선교를 하고 조총이라든지 기타 문명을 전수했으니 히데요시마저 동양의 전역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지요.. 아무튼 서양의 문명과 종교의 이념 아래에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까지 올라온 가토 기요마사의 제 2군(왜군)이 여진을 때려잡던 조선 기병대를 우습게 보다가 여진족에게 개털리고 도망치듯이 후퇴하고, 수 개월 뒤에 정문부 장군이 이끄는 조선 기병대 1,600기가 왜군 8,000명을 전멸시킨 일화도 있었죠ㅋㅋ 왜군의 수급(잘린 목)만 8,000개 정도 된다는 소리지요. 죽인 수는 훨씬 많을거예요.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10:06 개인적으로 조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야 결과론으로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만약에 우리가 저때 저기 변경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타민족이 만만하게 보고 우리 땅을 침범하고 점거하고 백성을 해치는데, 정작 정부는 군사를 보내서 싸우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때 노토를 공격안했다면, 오히려 다른 여진족들도 조선을 호구로 보고 노토따라서 마찬가지로 약탈해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javaxerjack 근데 소름돋는거는 가토의 제2군은 험란한 함경도를 공격해 전체를 점령했고 고니시의제1군은 가토보다 평지인데불구하고 평양에서 진격이끊겼습니다 보급때문이라해도 당시 평양에는 군량만 몇천톤이 쌓여있었는데 당시 평양에서 퇴각한 조선군이 군량을 태우지못하고 도망갔기때문에 일본군은 충분히 평양이북을 공격할수 있었고 이미조선군은 전의를상실해있어 실제로 공격했더라면 선조를 사로잡을수있거나 선조가명나라로 피신했을겁니다 여기서만약 가토가평안도로 진격했더라면 실제로 그런일이 벌어졌을것이며 명나라지원군역시 쉽게조선영토로 못들어올것입니다 이유는 명나라가 조선으로 들어올수있는 길은 서압록강,바다로 들어올수있는방법밖에없는데 당시 대규모 육군을 동원할수있는길은 압록강을 건너는게 더빠르고 보급로가 유리해 주로 옛날부터 중국은 압록강을통해 한반도로들어왔습니다 즉 고니시가 평양을점령했을때는 평양이북(평안북도)은 일본군이 없어 명나라군이 조선영토로 쉽게들어왔는데 가토가 만약 평안도전체를점령하면 압록강에도 일본군이 주둔해있어 명나라군도 크게타격입거나 조선영토로 못들어올수있어 사실상 조명연합군을 만들수없게됩니다 명나라가없는 조선은 일본군을 당해낼수없기때문에 전황이 더악화 됐을겁니다 실제로 가토가 한말중에 고니시가 좀더 조선에대해 적극적인 공격을했더라면 전쟁의양상이달라졌다라며 울분한적있습니다 이를볼때 우리입장에서는 지금현역사대로 고니시 평안도 가토 함경도 이렇게결정된것도 다행입니다
호랑이 사냥이나 하다가 加藤는 노토부족이 털털 털고나서 빤스런 그러다가 정문부한테도 털립니다. 북관대첩에서 또다시 빤스런 정문부는 선조수정실록과 징비록 난중잡록에도 나옵니다. 그렇게 강하던 가토가 지고나서 울산에서 농성하다 나중에는 자기 말의 피를 받아마시며 벰파이어화 합니다. (볼드모트? 유니콘 피마심)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보급로 확보도 없이 뒷일 감당 안하고 천리를 넘게 달려온 청나라 군대에게 고작 두달도 못버티고 털린 꼴 보면 참 할 말이 없는 조선... 뒤 없이 들어온 여진군을 상대로 공세를 버텨내고 퇴로를 막아서 귀주 대첩으로 전멸시켰던 고려와 비교해보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라
임진왜란 그당시 백병전으로 왜군들도 뛰어났다고 들었는데 그런 왜군 30대 1 비율로 싸우다니 대단한것같습니다. 역시 전쟁에서 실전만큼 확실한 숙련은 없는것같습니다. 일본도 전국시대로 많은 무사가 배출되었지만 여진은 반 농경민족이자 반 유목민족이지만 특유의 유목민족 방식의 약탈,내전..등..의 전쟁 경험은 무시못할것같습니다.
말도 안되는 가정임 애초에 일본군이 조선도 다 못털고 공세한계까지 갔는데 여진이랑 전면전을 붙을일이 없음 만약 진짜 재수가 좋아서 한반도를 순식간에 털고 만주로 진출했어도 쟤네의 전략적 목표는 명나라였으니 오히려 둘이 손잡고 명으로 갔으면 갔지 싸울일이 없음 또 만에 하나 온갖가정을 넣고 가토든 고니시든 완전 미친 빡대가리여서 양면전쟁을 했다고 해도 누르하치가 전면전에 응해줬을리가 없음 여진애들이 나중에 명나라 털어먹을때도 보면 전면전으로 안붙고 깔짝깔짝 소모전으로 깊숙히 끝어들인다음 쌈싸먹는 전략을 썼는데 그 수법을 일본에도 당연히 썼을듯. 그때 일본애들이 만주 깊숙히 거의 중일 전쟁 수준으로 깊이 따라 간다고 가정하면 둘이 소모전을 하기전에 일본군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꼴 나서 개박살 났을듯 근데 일본애들도 우동사리를 머리에 넣고ㅠ다니지 않는 이상 절대 그런짓을 했을리가 없으니 별의미없는 가정인듯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섬 일본도 사실상 대륙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만든 이민국가.. 영국도 마찬가지... 두 나라 사람의 공통점은 호전적이고 잔인하다는거...... 좋게 말하면 이민간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적음....고대에 새로운땅에 이민간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미지에 땅에 살러간거임... 성향이 그럴수밖에 없음... 요즘 잘사는 나라 호주나 미국에 이민가는것들하고는 성격이 다르지..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우리도 적의 적을 잘 이용하는 슬기로운 정치가가 나와야 합니다. 늙은 퇴물들이 아직도 여 야를 막론하고 '에헴'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후대를 키우지 못하는 나라는 항상 망했지요.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보수는 뭘하고 있습니까? 이 영상을 보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게 아마 조선군이 북방 여진족과 자주 싸우다보니 정예병이나 군사 전략 위주가 기마병 대항 전술로 많이 훈련한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보병 위주의 일본군+조총 그리고 그당시 일본군의 무서움은 척계광 장군의 왜구 토벌에서도 나오지만 리치가 긴장검으로 공격을 해서 상대하기 힘들었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당시 동북아시아에서 보병 백병전은 일본이 최강이라는 소리죠 즉 조선은 기마유목민족과 싸움에 특화된 집단이다보니 일본에게 많이 밀렸던거 같습니다
북방의 적이랑 투닥거림이 많다보니 아랫쪽은 작은 넘들이 가끔 해적질만 하면서 지들끼리 싸우는 형세다 보니 준비를 했다고 해도 소월했던게 크다고 봄. 일본이 기세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계속 내전했던 넘들이 기습적으로 대대적 군사를 모아서 정예가 있는 북방이 아닌 동네 방위급 전력이었던 남쪽을 기습 타격했던것이 꼬이게 만든 큰 이유로 보임
@@songroid4847 ??? 어디서 그렇게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 상비군 병력의 70%가 하삼도 수군이였고, 20%가 북방병력이고, 10%가 수도 한성수비 했어요 선조가 왜 이순신을 자꾸 모함 했냐면은 이순신 직책이 3도수군통제사입니다 즉 조선 정예 병력의 50%이상을 한 명이 통솔하고 있어서 이성계 위화도 꼴 날까봐 견제한겁니다 려말선초부터 조선의 국방 예산 가장 많이 차지하고 지출하는 곳이 수군입니다 남쪽이 동네방위다??? 그건 진짜 돌대가리급 역사를 모르는 멍청한 개소리입니다 금나라 멸망 후 여진족은 후금 건국 이전까지 강성한 적이 없었습니다 북방에 침입해봐야 마적떼 강도 수준입니다 반면에 왜구는 한번 침략하면 한반도 해안가를 초토화를 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이 건국초기부터 수군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겁니다 그래서 님이 주장하는 정예북방병사들이 육지에서 조선병사 10명이 왜군1명을 못 당해내고 탈 탈 털릴때 동네방위인 남쪽수군들이 일본수군 박살낸겁니다
후금 팔기군은 저런 부족 수준의 여진과 차원이 다름. 군기도 엄청나서 병장기 관리못하면 지휘고하 막론하고 누르하치가 목아지 땀.. 심지어 거세마인 '악타'를 사용해서 말까지 매복을 하는 등 기동성도 엄청나서 부산에서 서울거리를 하루만에 이동한 적도 있습니다. 이괄의 난이 없었다면 병자호란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미 명나라는 그런 노력을 수도 없이 했지만 수차례 패배했습니다.
팔기가 강하긴 강한데 병자호란때 청의 사정도 딱히 좋은 사정이 아니었음 경제사정 개판이라 군량마련도 못하고 있었고 명나라가 빈집털이 하려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물론 초고속으로 조선이 털리면서 그 약점을 다 만회했지만.. 그렇기에 인조가 런만 잘하고 버티기만 했으면 막았다고 하는거임 이괄의 부대가 남아있었으면 2만 가까운 훈련잘된 야전군이 남하한 청군 후방에 존재하는건데 당연히 청 입장에서 런한 인조 잡으러 가기가 신경쓰일수밖에 없고 재수없으면 적지 한가운데서 포위당하는 수도 있는데다 이괄과 그 병력을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정묘호란때 남이흥 자결하며 남긴 말에 따르면 이괄의 난 이후 인조가 반란을 두려워해 군사훈련을 금지시켜서 정작 전방에서 군사들 훈련한번 못시키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여 자결한다고 울분을 토했음 훈련한번 못해본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게 이상한거고.. 훈련뿐 아니라 서북면 병력충원도 못하게 막아서 방어에 필요한 최소 인원도 못채우는 상황까지 갔으니 ㄹㅇ 이길수가 없는 싸움이 되버린거임 만약 이괄의 난이 없었다면 최소한 이런 일들은 없었을테니 더 잘 싸울수 있었을거임..
만약에 일본이 조선과 싸우지 않고 그대로 중국과 맞닥드렸다면 세계를 휩쓸었을거라던 말이 있었는데 여진족한테도 깨진 일본이 그럴만한 강함은 없었던듯.
그 여진족이 얼마뒤에 한족을 이기고 청을 세웠죠
체급차 때문에 못함.
어차피 몇백년뒤에 청일전쟁에서 이기고 만주 다 먹게 되더라구요
그여진족이 한족을 이겼다는 말도 반만맞죠 그 여진은 산해관을 돌파 못했습니다 .. 산해관이 내분으로 무너진걸 어부지리 했을 뿐이죠..
유목민들은 못이겨. 가들은 걍 다른 동물이야.
임란시기 기록보면 명나라 장수 이여매가 여진족 7천의 전투력이 일본군 10만과 대등한 수준이라고 평가한 기록이 있음. 물론 목적을 가지고 여진족을 띄워주는 발언이긴 했지만 그래도 임란 승리에 결정적 공헌을 하면서 여러번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명나라군은 실제로 후금군에게 야전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승리를 하지 못했고 숫적으로 몇배로 우세한 상황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함.
여진족의 전투력은 농경민족 국가로선 다른차원의 수준이었음
항왜들이 여진족 썰고 다닌 기록도 있어요 ㅋㅋ 그리고 가토의 병력은 여진족 근처도 안 갔죠... 조선인들만 끌고 간거라
@@마포갈매기-r1k 명기병에게도 직산에서 털린게 왜군인데요?
명기병보다 훨씬 상위호환이 여진기병인데요?
@@김중원-r9y 직산은 제대로 된 전투도 아니고 심지어 전투 후에 명나라군은 한양으로 빤스런치고 일본군은 죽산까지 진격했는데 뭔 박살
@@김중원-r9y 그렇게 치면 벽제관에서 일본군에게 개철리고 사천성 전투, 울산성정투, 부산왜성 전투, 2,3차 평양성전투, 순천왜성 전투에서 전부 일본군에게 털린게 명나라임
@@user-pf5ek9pf7f 명나라가 아무리 후반에 병신됐어도 좆본보단 훨씬 강했던게 팩트인데 뭘 부정하고 자빠졌음 ㅋ
ㅎㅎ 잘봤어요
잘 봤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토가 끌고간건 엄청난 소규모 군대임.... 교전 자체도 없었죠
군대가 강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군대가 강하려면 또 너무 평화로우면 안 되는...
문재인
@@conquistador-y8u 北재인
@@conquistador-y8u 갑자기?
@@kidandLaPuta 정치병 환자일
@@conquistador-y8u 그냥 관심고픈 병신인거 아닐까? ㅋㅋ
잼있게 잘보다 갑니다.^^.
이때 정말 놀라운 게 가토의 침공 당시 누르하치가 바로 그 인근에 있었는데, 만약 이때 일이 조금만 달라서 일분군의 승패와 상관없이 누르하치가 전사했다면….
2등 늘 좋은영상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심한데 건강 챙기세요
몽골제국이 티베트를 어떻게 점령했는지도 다뤄주실수 있으신가요?
👍👍👍
+청이 어떻게 티벳을 점령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런거 안하세요 시리즈화 되는 영상 제작 하셔서 단편으로 안하시던뎅
@@euspar3017 청나라는 달라이 라마를 우대해서 법황으로 대우했죠?
몽골은 티베트를 무력으로 통일한 것이 아닌 특수관계입니다.
티베트는 몽골의 종교적 스승의 나라로 관례적으로 몽골황제의 스승입니다.
또한 몽골은 세속에 있는 제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지요.
스승과 제자 이 관계
마치 고대 이탈리아와 로마시의 관계. . .
청나라 시기에도 그런 관계사 지속되어 오다 신중국 건국 후에 관계가 끊어집니다.
신중국은 공산국가로 무종교라서. .
그래서 티벳이 독립을 하려고 하는 것이고. .
이래서 외교는 입체적으로 치밀하게 해야 하는거다.
가토가 점령한것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여진족 전략 특징이 조선이든 명이든 쳐들어오면 말이랑 귀중품만 일던 챙기고 도망갔다가 적이 보급땜에 쩔쩔매서 돌아갈때 뒤를 치는 전략을 많이 취하거든요. 그래서 명이나 조선에서도 여진족 두령을 잡는데 엄청나게 고생했고요.
이관점에서 보면 가토는 빈 부락 13개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여진족은 빈손으로 후퇴하는 가토를 쳤다. 라는게 성립되죠
맞음 그리고 가토가 끌고간 병력 수나 구성 보면 싸우지도 않고 그냥 점령하다가 나온게 맞는듯해요
애초에 가토의 정예병은 전부 짱박아두고 조선인들 선봉에 세워서 여진족 공격한거임 ㅋㅋㅋ 항왜들이 여진족 썰고 다닌거 생각하면 여진측 기록이 날조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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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했다기엔 노토의 세력이 너무 멀쩡함
조선의 노토 토벌전때 7개의 부락을 휩쓸자 노토의 세력은 완전히 박살나서 재기불능이 됐는데
가토가 13개 부락을 점령했다는데
얼마후에 노토는 1만 병력을 굴릴정도로 멀쩡한 모습을 보여줬음
가토와의 교전에서 전혀 타격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고 봐야함
@@마포갈매기-r1k 조선인을 길잡이로 세운건 맞는데 당연히 가긴 왜군이 갔음
왜군이 조선군을 1000명넘게 동원할수 있었으면 북관대첩에서 그렇게 박살나지도 않았겠지..
직산 전투에서 왜군을 조선군인줄 착각하고 가만있던 명군에게 선빵때리고도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자 명나라 기병에게 쳐맞은게 왜군인데 여진기병을 썰고다녔다니...
직산 전투 며칠뒤 잡힌 왜군 하급장수 포로 심문내용이 실록에 그대로 남아있음
명군(기병)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책임 추궁이 두려워 구로다 나가마사가 피해를 축소보고했다고,,,,
선조실록 92권, 선조 30년 9월 8일 을미 2번째기사
충청 병사 이시언이 사로잡은 왜적 복전감개(후쿠다 간스케)의 공초는 다음과 같다.
(중략)
또한 직산(稷山)의 싸움에서 갑비수(구로다 나가마사)의 군대가 많이 죽었으므로 부끄러워서 숨기고 있다 합니다
선조실록 92권, 선조 30년 9월 9일 병신 1번째기사
(직산전투에서)화살에 맞거나 곤봉에 맞아 죽은 왜적이 거의 5백∼6백 명에 이르렀고 수급(道級)은 30여 개를 베었으며
해 부총(解副摠)과 양 참정(楊參政) 도 각각 손수 수급 2개를 베었다
잘 봅니다^^
노토부락을 복속하지 못하고 누루하치에게 복속된것이 아쉬운 대목이네 !
뭐 애초에 가토가 끌고간건 조선인으로 구성된 병력들이죠. 제대로된 교전도 없었음
결국 일본침략--조선약화--누루하치 강성 --명나라 멸망, 청나라 등극
일본의 침략이 나비효과.
동아시아 격변을 만들었군요
일본이라는 작은 섬나라가 동북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꿔버림ㄷㄷ 그 배경에는 조선vs일본 이라는 두 주인공이있고
결국 일본은 19세기에 와서 재침략으로 또 나비효과를 만들었죠
일본침략 -- 동아시아에 공산주의 야기시킴 -- 중국 국공내전 -- 한국 6.25내전 남북분단
김지노 세계사에 한반도 일본열도가 미친 영향이 매우크다는것에 놀람
사실 이자성의 난만 아니였으면 청나라는 걍 만주지역 오량캐집단으로 남았음.오삼계가 이자성 토벌하려고 산해관 오픈해주기전까진 산해관 넘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음.병자호란도 명나라의 경제봉쇄에 소빙하기까지 곂쳐서 망하기직전에 조선에 들어가는데 이 게 병자호란.병자호란 직전 기록보면 인육먹고 강도가 들끓었다는 기록있음.인조반정 공신들이 이괄 숙청하려다가 내전나서 이괄의 최정예부대만 안거덜났어도 청나라는 조선땅이든 본진에서든 굶어뒤졌을지도
@@xzxzxzxz9892 한반도가 영국이랑 비슷하고 일본은 그보다 훨씬 큰 독일이랑 비슷함. 둘다 작은 나라 아님
여진족 때려잡던 스페셜리스트 신립 초창기 전투 기록만 봐도 북방정예기병대가 일본군 초기 전투때 압살했던것만 봐도 뭐 ㅋㅋㅋ 신립의 실책은 기병대를 북방 초원인거마냥 전술 수립한거라는. 그러다가 전장 크기의 한계로 인해 쌈싸먹혀서 다 죽은거고.
애초에 이순신 수군 빼고 일본한테 상대가 안됬음 ㅋㅋㅋ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조선군은 원레 여진족들을 잡는데 특화되어있었는데 상대가 될리가 없지
5:10초 일본 부대 시선처리 개웃기네 ㅋㅋㅋ
5:30초 "잘가라 가토"하는 것도 개웃겨요
웃긴건 가토가 끌고간건 조선인으로 구상된 정찰부대였음 애초에 정찰이 목적이었죠 본대는 함경남도에서 안 올라가고 있었고
감사합니다!
잇코잇키 해주세여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일본전국시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를 중심으로 다시한번 시작할까 합니다
가토 기요마사 좌봉선이 사야가 인가요?
영상 잘봤습니다 ~~
나중에는 권율 vs 이시다 미츠나리의 행주대첩도 부탁합니다^^
이시다 미츠나리 ㅋㅋㅋ 아주 제대로 털렸죠 ㅋㅋㅋ 일본놈들은 지들식 전투방식에 익숙해서 한반도 건너와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군에 밀린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일본 이름들은 사실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헷갈릴 수 밖에 없는거 같네요...전 그나마 노부나가 게임을 해서 이름은 제대로 알고 있지만...그 게임을 해보기 전까지는 하나도 몰랐네요 ㅋㅋㅋ
@@kdsbsb 미츠나리가 뛰어난 행정능력에 군사적능력은 별로였고 세키가하라전투일어나기전 이미 오시성전투, 행주대첩으로 잘증명하였죠
@@no89423 네 ㅋㅋㅋㅋ그냥 전형적인 문관 타입 ㅋㅋㅋ 나중에 치루어진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도 보면 서군 쪽에는 임진왜란에서 행주대첩에서 패배한 일본 장수들이 많이 있었다 하더군요 ㅋㅋㅋ
이시다 미츠나리
영화 세키가하라에서 의외로 미남배우가 연기를 해서, 미츠나리가 잘 되길 바라는데, 결국은 처형...
@@hyunkim7607 오구리 슌이 이시다 미츠나리 역을 맡은 적이 있네요 ㅋㅋㅋ 제가 기억하는 이시다 미츠나리=오규리 슌 ㅋㅋㅋ
역사는 나라별로 편향식으로 기록하기에 여러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왜곡된 역사기록으로 국뽕에 취하기만 한다면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연구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잘못된 것을 개선시켜 반복됨을 방지하고 더나은 미래를 계획함입니다.
조선이 명나라만 바라보다 병신된거 잘 알면서 성조기 태극기 그림은 뭐냐 남에게 지적질 하기전에 너자신부터 되돌아봐라
@@holyhero1598 성조기와 태극기 프로필사진이 불쾌하신거 보니 어떤 분인지 안봐도 알것 같습니다. 바쁜와중에 소중한시간 내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저리가라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미국인 입니다.
좋은글
국뽕 운운하는 자들중에는 국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자국기술로
위성 쏘아 올려도 깍아내리기만 하던 국까들 댓글은 지금도 기억남 특히
유투브에서
국뽕 운운하는 사람들은 국까로 오인되기 쉬움
아... 이게 영상을 만들정도의 내용은 아닌데...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려말선초에 명군과 교전한적이 있나요?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 조선은 일본이 심상치 않아 성을 보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조가 괜한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전쟁방비를 금지합니다.
200년, 발해역사와 필적하는 평화를 누리다가 계속 전쟁만 한 군사와 싸우면 질 수밖에 없죠..
조선이 원래 약한게 아니라 전쟁준비를 안해서 그런거죠.
전쟁준비가 되니까 일본군에게 승리를 거둔 노토를 가볍게 승리하게 되는 거고요.
애초에 도요토미의 조선첩자가 보고한게
'이 나라는 대부분이 노비이다'와
'이 나라는 군대가 없다'이죠.
그리고 명은 강성해지는 여진을 막기위해 대부분의 병력을 배치시키고 있었어요. 명이 조선에 보낸 군은 5만이고요.(일본군은 12만)
명은 중국의 최악의 암군으로 뽑히는 만력제의 횡포로 망해가고 있었죠. 나랏일을 처리하지 않고 신하의 얼굴도 보지 않아 상급관리조차 황제를 몇번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지는거지 일본이 뛰어나서가 아니에요.
전쟁준비를 안한게 아니라 조선의 기준으로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준비한겁니다. 준비 안한건 아니고 하긴했는데 현실과 맞지 않은거죠. 이건 고려시대에도 그랬고 조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사는 곳이면 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전쟁에서 지는 이유는 보고싶은거만 보고 듣고싶은거만 듣다 망하는 거
일본군이 뛰어난 건 사실이긴함. 1000년 넘게 분열되서 칼질만 하다보니 단병접전 실력이 아시아권에선 무쌍이 되버림.
왜나라 무사나 해적들이 워낙 칼질을 잘해서 조선 명나라 공통적인 기록이 저새끼들 칼질 너무 잘하고 위력적이니 단병접전 할 생각하지말고 그냥 창같은 장병기로 제압하라 였죠 ㄷㄷㄷ
조선이 진짜 태만해서 그렇지.고려까지만 해도 일당백전사엿지.초기에 고전한 것도 북방군이 내려오지않았고.여몽연합군으로 원정갔을때도 태풍아니엿으면 일본 발렷을텐데 그걸로 버텨서 괜히 신풍이라 불렷을까ㅋㅋ
이런걸 보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그나마 조선에서 끝나 다행이라도 생각이 들기도 하는게, 첫판인 조선에서도 어리버리 대던 놈들이(우리 싸우던 때랑 다르게 왕이 튀었네?) 진정한 약육 강식의 세계인 대륙으로 갔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애초에 조선이 길 빌려줬어도 그냥 명나라한테 쳐발리는거죠
@잼민이 아퀴부스 라고 포르투칼에서 제일 구린 총이라고는 알고있음 일본애들한테 포르투칼 형들이 가격 뻥튀기해서 팔았고
@@venividivici9652똥방지턱 똥묶어서 산책함 똥이 기어서다님 수영하다가 똥써버리고튐 똥꼬에 칼 박혀서 안뽑힘 똥안와서 소리지르느묜서 똥벌림 같나온 똥 쌔물어 먹기 똥꼬에 나오는 똥본면서 빨먹기 똥에다가 쌈싸먹기 똥박지에 다시넣기 똥씻어서 다시똥꼬에넣기 똥꼬로 똥 탈출시키기 똥이 탈출못함 똥에 손바닥 자국 남김 똥이날카로워서 똥꼬베여짐 똥쌀때마다 쓰림 똥반죽처럼 펴서 몸에 두르고 다님 똥으로 사람모양 인형만들기 똥에 있는 아몬드 빼기 발로 똥꼬닥기 똥나올때까지 기다리다 뒤지기 똥칼로자르기 똥가위로자르기 똥에다가 주먹질하기 똥 숟가락으로 퍼먹음 똥꼬치로 구어먹기 똥 똥에다가 담어먹기 얼은똥으로 이글루 만들기 똥꼬가 씨리얼 말아먹기 똥구슬치기
똥새워두기 똥안에다가 돌맹이들었음 똥 자동차 바퀴로씀 똥 지갑처럼 열고 닫기 똥에 몬지뭍히기 똥따끈따꾼하게 수위 똥 눈서람 만들기 똥꼬에 있는 똥에 처집오넣기 똥 굳어서 영원히 못나옴 똥막대기 싸움 똥케익자르기 똥길이재다 끊김 똥쌍쌍바 처럼 붙어있음 똥 엉덩이에 손잡이 만들기 똥꼬를 변기에 손잡이 만듬 똥꼬로 배수로 다막아버림 차가 밟고 지나가서 변비똥 쏫아짐 쟁반만한 똥꼬 힘으로 벌리기 똥에다가 모래 묻히기 좃에서 쉰내남 똥 엉덩이에 수납함 니엄마 보지애서 나올때 똥붙어서 날라감 똥에 파묻혀서 갇혀버림 똥꼬에 똥침하더 똥이 단단해서 손가락 장애됨 똥꼬주름미로 똥이 도와줄 타고 내려옴 똥이 똥꼬벌리고 버티고있음 똥이 변기에서 해엄침 똥 찌르면 꿈틀됌 똥 모여서 정모중 똥이나오면서 똥꼬를 잡고 뽑아서 나옴 똥이 똥꼬잘라버림 똥꼬가 똥에 끼임 똥이 똥꼬로 다시 자로감 똥이 화장실에 싸아둬서 방치됨 똥꼬롤 똥날려서 천장붙어버림 똥이 쇠공처럼 무거워서 떨어트림 똥 막대기 꼿아서 바벨로씀 똥이 무서워서 안내려감 똥꼬에 똥찌거기 뭉처거 축구공 만듬 똥꼬로 똥 짜내서 똥꼬 단단하게바위로만듬 똥꼬로 무겁고 단단하게 눌러서 똥육각형만듬 철공 박아둠 느금마 똥이 똥꼬를 밝고 올라감 똥이 엉덩이 사이로 들어갔다 나옴 똥이 똥꼬를 비벼서 매끈하게 만듬 똥에다가 농사지음 똥이 똥꼬위에서 굴러다님똥방지턱 똥묶어서 산책함 똥이 기어서다님 수영하다가 똥써버리고튐 똥꼬에 칼 박혀서 안뽑힘 똥안와서 소리지르느묜서 똥벌림 같나온 똥 쌔물어 먹기 똥꼬에 나오는 똥본면서 빨먹기 똥에다가 쌈싸먹기 똥박지에 다시넣기 똥씻어서 다시똥꼬에넣기 똥꼬로 똥 탈출시키기 똥이 탈출못함 똥에 손바닥 자국 남김 똥이날카로워서 똥꼬베여짐 똥쌀때마다 쓰림 똥반죽처럼 펴서 몸에 두르고 다님 똥으로 사람모양 인형만들기 똥에 있는 아몬드 빼기 발로 똥꼬닥기 똥나올때까지 기다리다 뒤지기 똥칼로자르기 똥가위로자르기 똥에다가 주먹질하기 똥 숟가락으로 퍼먹음 똥꼬치로 구어먹기 똥 똥에다가 담어먹기 얼은똥으로 이글루 만들기 똥꼬가 씨리얼 말아먹기 똥구슬치기
똥새워두기 똥안에다가 돌맹이들었음 똥 자동차 바퀴로씀 똥 지갑처럼 열고 닫기 똥에 몬지뭍히기 똥따끈따꾼하게 수위 똥 눈서람 만들기 똥꼬에 있는 똥에 처집오넣기 똥 굳어서 영원히 못나옴 똥막대기 싸움 똥케익자르기 똥길이재다 끊김 똥쌍쌍바 처럼 붙어있음 똥 엉덩이에 손잡이 만들기 똥꼬를 변기에 손잡이 만듬 똥꼬로 배수로 다막아버림 차가 밟고 지나가서 변비똥 쏫아짐 쟁반만한 똥꼬 힘으로 벌리기 똥에다가 모래 묻히기 좃에서 쉰내남 똥 엉덩이에 수납함 니엄마 보지애서 나올때 똥붙어서 날라감 똥에 파묻혀서 갇혀버림 똥꼬에 똥침하더 똥이 단단해서 손가락 장애됨 똥꼬주름미로 똥이 도와줄 타고 내려옴 똥이 똥꼬벌리고 버티고있음 똥이 변기에서 해엄침 똥 찌르면 꿈틀됌 똥 모여서 정모중 똥이나오면서 똥꼬를 잡고 뽑아서 나옴 똥이 똥꼬잘라버림 똥꼬가 똥에 끼임 똥이 똥꼬로 다시 자로감 똥이 화장실에 싸아둬서 방치됨 똥꼬롤 똥날려서 천장붙어버림 똥이 쇠공처럼 무거워서 떨어트림 똥 막대기 꼿아서 바벨로씀 똥이 무서워서 안내려감 똥꼬에 똥찌거기 뭉처거 축구공 만듬 똥꼬로 똥 짜내서 똥꼬 단단하게바위로만듬 똥꼬로 무겁고 단단하게 눌러서 똥육각형만듬 철공 박아둠 느금마 똥이 똥꼬를 밝고 올라감 똥이 엉덩이 사이로 들어갔다 나옴 똥이 똥꼬를 비벼서 매끈하게 만듬 똥에다가 농사지음 똥이 똥꼬위에서 굴러다님응 아니야 느구어멈 똥이 뷰1릉1지에 처박혀있어느구애비 자2지를 목에감아서 죽어랑
가토에게 인질로 잡혀있다 풀려난 왕자들, 임해군과 순화군에 대해서 컨텐츠 만들어 주세요. 광해군 외엔 문제아들이던데~
광해군도 무리하게 궁궐 증축 공사해서 백성들 원성사고, 자기 형제들 여럿 죽이고 기생에 빠져서 정사도 돌보지 않고 여색에 취해 있었음
광해군때 궁궐 증축이 별게 아니라 심각한게 나름 경제가 발달했던 조선 후기에도 나라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는데 이미 나라가 폐허가 되고 거덜난 상태에서 그짓을 했으니 당시는 그 폐혜가 어마무시했다고 함...
@@shinbiapt.8627 그래도 인조반정 안일어나고 광해군이 계속 했으면 적어도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슴 병자호란이 일어났다고해도 이괄의 난이 없어서 고속도로마냥 한양이 점령당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형제 죽인걸로 욕하면 태종은 연산군보다 못한 쓰레기임 지금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안됨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도 정상인이었어요 임해군과 순화군은 진작에 사형시켜서 죽여하할 살인자들인데 임해군 죽인건 문제삼으면안돼죠
@@성이름-c7z1f 홍타이지는 아버지 누르하치와 다르게 반조선파이고 병자호란이 일어난 가장큰 이유가 후금땅에 식량이 없어서 후금이 조선의 친명정책을 트집잡아서 조선침략하고 자기들 먹을 식량확보한건데 광해군이 계속 왕이었어도 홍타이지가 어떻게든 조선땅에 침략하려고 했을거같아요
누르하치편에서 내 댓글이 언급됐군요. ㅎ 잘보고 있습니다. 삽화 스토리 역사고증 누가 하시는건가요?
역사는 돌고도는듯해서 더 재미있습니다. 현재의 한국도.
설명감사합니다
노토 그림 허성태배우님 닮으셧네요
맞습니다 남한산성 용골대 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유목민족들은 예전엔 다 무서웟네. 요새야 말타고 싸우는 사람 없지만. 일본은 아무래도 조총부대가 주력인데 기병하고는 많이 안싸워봣나보네요. 조총 장전이 시간이 좀 걸려서 조총부에는 꼭 호위부대가 붙어야하자나요. 그런데 칼든 무사들도 기병이랑 백병전은 많이 안해봣겟지요. 말에는 교통사고 나면 사이온급 충격인데 그 말이 몇천마리가 우르르 몰려온다 생각하면 끔찍...ㅎ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신립 정예 기병부대 개털어버린게 일본인데?
일본 전국시대 안밨냐..하..
다테 다이죠의 기마부대랑
오다 철포기마병 모르나보네..
얄팍한 지식에 보이는 세계대로 짖걸이는것도 능력이다 에휴..
신립 기마부대도 개털었고
한산에 나왔더 한양탈환작전 하려던 3만병력은 와키자카가 2천기마병으로 대패시켰다
@@킴킴-y1j 기병대면 평야에서 힘을 발휘하지 신립이 싸운 곳은 탄금대인데 기병이 활약하겟습니까?게다가 배수진까지 쳣으니 기동력이 개판이니 일본군에게 이길 수 없엇겟지요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북방의 여진족에 대항할 조선의 기병대는 전멸해버리게 돼고 임진왜란 이후 왜군은 남쪽으로 물러났으나 북방의 여진족이 조선을 위협하였고 또한 조선의 신무기 조총은 여진족을 막는데 실패했다...
청나라가 초기엔 조선과 우호관계지내려고 상당히 노력했던걸로 암. 중국 정복하기 위해 조선이 노려보는 후방을 안정화하려 했던건 거란도 만찬가지였고. 근데 청이 중국 접수하고 조선 가만 냅둔것도 신기. 정말 고구려 후예라 봐준건가? 일부 환빠들은 우리가 내친 형제나라가 중국도 정복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하는데, 뭐 그건 오바
중국 땅이 워낙 넓고 풍요로워서 조선 땅에 별 가치를 못 느낀거죠 뭐.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다시 생각하니 형제나라가 맞고 중국도 정복하고 자랑스러워 해야 함
보병 위주의 일본군이 기병 위주의 여진족을 상대하기는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여진족들의 주 전술이 기병을 수십, 수백기 단위로 쪼개서 산개하며 적의 화력을 분산, 소모시킨 후, 그 사이 주력은 뒤를 돌아 후미를 치는 거라서.. 신립처럼 돌파형 기병 전술이 아니라, 눈 앞의 기병들은 시선을 끄는 미끼인 경우가 많아서, 일본군으로서는 굉장히 고전했을 것 같네요..
헤이룽강 이게뭐야!!!그냥흑룡강 이라고 합시다
쟝쩨스 장개석 ㅋㅋㅋ
쟝쩨스 장개석 ㅋㅋㅋ
근데 고니시와 가토는 왜 사이가 안좋은가요?
당시 일본을 통일했던 히데요시가 그 많은 영주들에게 영토를 나눠주고 안정을 되찾기위해 조선과 명 그리고 인도까지 넘봤다는 말이 있죠. 물론 그 힘의 배후는 카톨릭신자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예수회 창립인 중 1사람) 가 일본에 선교를 하고 조총이라든지 기타 문명을 전수했으니 히데요시마저 동양의 전역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지요.. 아무튼 서양의 문명과 종교의 이념 아래에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고시니는 천주교 신자였음. 가토는 불교신자. 그래서 서로 종교가 달라서 가토가 고니시를 엄청 싫어했어요.
가토가 고니시보고 약장수출신 다이묘라고 놀려서 그렇습니다
이때 당시까지만 해도 여진은 조선의 신하이며
어머니의 나라이자 군자들의 나라라고 부름.
일부 세력이 그랬던거고 조선이나 명 국경의 강성부족들은 적으로서 확실히 인식하는 부류들이었음. 조선도 툭하면 국경에서 여진하고 매년 싸워댔음
동포라고 인식했던 건 모르시는 듯? 이미 예전에 금나라때 고려를 가리켜서 형제의 나라이고 고려에서 온 김함보가 자기들의 시조로 인정하고 있었죠.
和朝鲜一点关系没有,女真是在大明关宁铁骑的庇护下成长起来的,努尔哈赤的祖父被明朝将军李成梁误杀,而后为了补偿讲努尔哈赤收为义子,努尔哈赤后面统一其他部落才崛起。他们的东北的渔猎民族,和半岛的三韩后代一点关系没有
조선의 두 왕자를 넘긴 건
그 두 사람의 진상 짓 때문입니다.
폭행과 과도한 물자요구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왕자를 잡아 차라리 일본군에 넘기자는 생각을 한 것이죠
이걸 원조 친일파다 하는 건 사실 왜곡 입니다.
이게맞죠
ㄹㅇ임해군이랑 순화군 그 ㅆ색기들 행적은 말도 안하고 그냥 넘겼다고 퉁쳐버리네ㅋㅋㅋ
그래서 문명5 세종 캠페인 임진왜란에서 여진족도 플레이 가능한거구나
다른 작품 업로드 안하나요?
기다리다 눈빠지겠습니다..
징기스칸 부하들중에 오준오구,.다섯마리의 준마 와 충견 중에 수부타이를 했으니 나머지 사람들부탁합니다
당시 가토는 20대 아닌가요?
임진왜란 때 함경도까지 올라온 가토 기요마사의 제 2군(왜군)이 여진을 때려잡던 조선 기병대를 우습게 보다가 여진족에게 개털리고 도망치듯이 후퇴하고, 수 개월 뒤에 정문부 장군이 이끄는 조선 기병대 1,600기가 왜군 8,000명을 전멸시킨 일화도 있었죠ㅋㅋ
왜군의 수급(잘린 목)만 8,000개 정도 된다는 소리지요.
죽인 수는 훨씬 많을거예요.
오..임진왜란때 왜군과 여진족이 싸웠다는것을 처음 알았습니다!!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선조가 세력균형에 밝고 영리했다면, 야인여진과 건주여진이 이이제이하도록 하여 조선을 보전했을 것이다.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他们打跑日本后就不会走,朝鲜人战斗力在他们骑兵年前不值一提,大明不会让女真吞并朝鲜从而有实力对抗大明😂
유목민족이 싸움은 참 잘하지
01:50 팔기군
병자호란도 킹직히 인조가 동래 정도로만 기서 삼남에서 의병 냈으면 이겼을건데 ㅋㅋ..
후금이 사실상 아사상태였어가지고 ㅋㅋ
인조는 강화도로 가려했습니다. 겨울에 강이어니 청의 기마대는 빨리건너와 강화도를 갈 시간도 없어 급히 남한산성으로 간 것입니다.
사실 남한산성 식량이 10일치만 더있었어도 청나라를 몰아냈을겁니다 당시 충청 전라 경상에만 10만의 군사가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전투결과 보면 임진왜란에 비해 초기부터 선전한 편입니다.
선조는 여러모로 ㅋㅋ..욕먹네
노토의 영토를 조선이 뺏어갈순없었던것이가......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먹으면 명나라가 개지랄 했을 듯
먹어봐짜야 .. 그뒤엔 무서운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형이 있었다 ..
국경 단속 잘못 했다가 훗날 삼전도의 굴욕이라는걸 맛 봤구나
이괄의난으로 북방군 최정예군단이 싸 그리증발해서...
이래서 아가리가 무서운거임
@@내란의힘윤썩열 조선 장수가 반란이라도 일으켰던건가요?;
@@sunglee8608 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강제폐위시킨것에대해 불만이있어서요.
@@내란의힘윤썩열 에고 최정예 북방 조선군이 갈려나간건 명이 진압했었나요 이런 순탄치 못한 과정들이 생겨서 조선군이 급격하게 약해진거였네요
10:06 개인적으로 조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야 결과론으로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만약에 우리가 저때 저기 변경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보세요. 타민족이 만만하게 보고 우리 땅을 침범하고 점거하고 백성을 해치는데, 정작 정부는 군사를 보내서 싸우지 않는다? 더군다나 저때 노토를 공격안했다면, 오히려 다른 여진족들도 조선을 호구로 보고 노토따라서 마찬가지로 약탈해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 ... 목소리 넘 좋아요 ㅎㅎ 매력있고 잘볼게요 ^^
여진족 수장에게 허성태배우가 보이네요
ㅋㅋㅋ 맞습니다
임진왜란 때, 북쪽 국경을 지키고 있던 병력이 국경방어하느라 남쪽으로 내려와서 싸울 수 없어서 그렇지, 조선군도 북쪽 국경을 지키는 정예병들은 매우 강했다고 하더라구요.
걔네도 다 거기서 거기임
가토한테 함경도라 ㅋㅋ
진짜 개 변방에다가 척박한 땅 줬네
도요토미가 가토를 많이 안좋아했나요?
ㄴㄴ그게아니라 한양에서 일본군장수를모아 제비뽑기를했는데 고니시가 평안도 가토가함경도걸려서 그런것입니다.
백승엽 아 ㅋㅋㅋ 제비뽑기를 했군요 상상도 못했네요 ㅋㅋㅋ
일본도 산이 많다고야 해도, 한반도 동부랑 서부는 차이가;;
@@백승엽-x4p OTL, 뽑기를 해도 참..., 거기는 한반도에서도 노복,기생,거지 없는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말이죠.
@@javaxerjack 근데 소름돋는거는 가토의 제2군은 험란한 함경도를 공격해 전체를 점령했고 고니시의제1군은 가토보다 평지인데불구하고 평양에서 진격이끊겼습니다 보급때문이라해도 당시 평양에는 군량만 몇천톤이 쌓여있었는데 당시 평양에서 퇴각한 조선군이 군량을 태우지못하고 도망갔기때문에 일본군은 충분히 평양이북을 공격할수 있었고 이미조선군은 전의를상실해있어 실제로 공격했더라면 선조를 사로잡을수있거나 선조가명나라로 피신했을겁니다 여기서만약 가토가평안도로 진격했더라면 실제로 그런일이 벌어졌을것이며 명나라지원군역시 쉽게조선영토로 못들어올것입니다 이유는 명나라가 조선으로 들어올수있는 길은 서압록강,바다로 들어올수있는방법밖에없는데 당시 대규모 육군을 동원할수있는길은 압록강을 건너는게 더빠르고 보급로가 유리해 주로 옛날부터 중국은 압록강을통해 한반도로들어왔습니다 즉 고니시가 평양을점령했을때는 평양이북(평안북도)은 일본군이 없어 명나라군이 조선영토로 쉽게들어왔는데 가토가 만약 평안도전체를점령하면 압록강에도 일본군이 주둔해있어 명나라군도 크게타격입거나 조선영토로 못들어올수있어 사실상 조명연합군을 만들수없게됩니다 명나라가없는 조선은 일본군을 당해낼수없기때문에 전황이 더악화 됐을겁니다 실제로 가토가 한말중에 고니시가 좀더 조선에대해 적극적인 공격을했더라면 전쟁의양상이달라졌다라며 울분한적있습니다 이를볼때 우리입장에서는 지금현역사대로 고니시 평안도 가토 함경도 이렇게결정된것도 다행입니다
어디에서 근거한 내용인가요?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진족 입장에서본다면 조선인들은 치가 떨릴정도로 미웠을것 같네요.
세종때도 조선이 여진족을 학살했었고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은 괴롭힘을 당했으니
삼전도의 굴욕은 오히려 여진의 관용이라고 볼수도 있겠어요.
막상 누르하치의 조상은 신라 사람이었다는...
시간이 없었죠.. 조선이 죽자사자 덤벼댔으면 한겨울에 발이 묶여서 텅빈 본진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테니...
정치적 전략전 판단이죠 뭐...
@@부모욕은참아도성-s6p 그런거 다 따지면 결국 다 친척인데 뭔 의미가 있는거임? 누르하치가 신라 계승의식을 가진것도 아니고
@@santiagopark7961 그건 맞음. 결국 큰 의미는 못 가짐. 다만 그냥 여진이랑 같은 핏줄 아니냐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누르하치 조상을 증거로 꺼낼 수 있다는 거임
@@부모욕은참아도성-s6p 누르하치가 조상 중에 신라인이 있는게 조선과 여진이 같은 핏줄이라는 증거라는건 너무 비약인것 같은데
역사를 보면 견제세력을 남기는것이 신의 한수다
이런거 보면 조선왕과 사대부들 보단 일본이 백만배 나은거 같음..
왕과 수뇌부라는 것들은 지들 백성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도망치기 바쁜데 가토는 곧 자신의 영지 될곳에 책임감 느끼고 잠재적인 적까지 없애려고 했었네.
호랑이 사냥이나 하다가 加藤는 노토부족이 털털 털고나서 빤스런 그러다가 정문부한테도 털립니다. 북관대첩에서 또다시 빤스런 정문부는 선조수정실록과 징비록 난중잡록에도 나옵니다.
그렇게 강하던 가토가 지고나서 울산에서 농성하다 나중에는 자기 말의 피를 받아마시며 벰파이어화 합니다. (볼드모트? 유니콘 피마심)
우리민족은 평화를 사랑했다는 식민사관임.
우리조상님들 함번 맘먹으면 모질게 여진족 몰살시켰다.
2년 전 댓글에 뒷북이지만 평화사랑 ㅇㅈㄹ ㅋㅋㅋㅋㅋㅋㅋㅋ
병자호란 (1636년)으로 인조가 머리를 조아릴때 미국에선 영국인들이 인디언을 학살하고 하버드대학교도 이때 개교했군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중국과 일본사이에서 어떤 외교를 해야하는지를 배워 지금 미중전쟁을 대비했으면 합니다.
미국 편으로 가야죠
@@user-pf5ek9pf7f 이래서 병자호란 삼전도의 치욕 당함 ㅉㅉ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솔직히 일본은 지금으로 치면 북한(여진)과 대치중인 최정예전력은 안건들이고 손쉬운 후방지역을 공략한게 큼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일본이 침략한다는 소문만 10년 가까이 돌았어요..
님이 말한게 오히려 더 모욕적이에요 국뽕 그만 ㅊ ㅕ마시세요
보급로 확보도 없이 뒷일 감당 안하고 천리를 넘게 달려온 청나라 군대에게 고작 두달도 못버티고 털린 꼴 보면 참 할 말이 없는 조선... 뒤 없이 들어온 여진군을 상대로 공세를 버텨내고 퇴로를 막아서 귀주 대첩으로 전멸시켰던 고려와 비교해보면 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라
여진이 아니고 거란
03:07 요단강을 건너는 가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동생 이여매가 말하기를 ''왜병 30명이 누르하치의 여진병 1명을 당해낼 수 없다''고 말함.
임진왜란 그당시 백병전으로 왜군들도 뛰어났다고 들었는데 그런 왜군 30대 1 비율로 싸우다니 대단한것같습니다. 역시 전쟁에서 실전만큼 확실한 숙련은 없는것같습니다. 일본도 전국시대로 많은 무사가 배출되었지만 여진은 반 농경민족이자 반 유목민족이지만 특유의 유목민족 방식의 약탈,내전..등..의 전쟁 경험은 무시못할것같습니다.
여진족은 어렸을적부터 고도로 자연스럽게 훈련된 기병이에요!
게임이 애초에 안됩니다
흠.. 전술적으로는 몰라도 일본 무사가 일대일 전투에서 결코 약하지 않았다고.. 원나라 일본 정벌때 자료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일본10만 이상이 고수급이라 들어는데 5살부터 양성했다는데 그래서 일본늠1명이 조선군30명은 대적 한다고 들어는데
무장급1000명정도고 일본무장급10만명임 일대일 쎄도 2ㅡ3명은 감당안됨
여담이지만 경상도 민요 '쾌지나 칭칭나네'가 임진왜란 중 최대의 전투로 불리긴 하지만 노량해전에 밀려 일반인들에게 잘 인식되지 않은 울산성 전투에서 가토 기요마사의 도망가는데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괄의 난 아니였으면 해볼만 했을지도?
역시 우리나라도 역사에서는 안가르치지만 여진족들 명나라랑같이 평소에 엄청 뭉갰었다던데 이런일도 있었군요.... 이런거보고 여진이 피끓었다고하면 암말못하겠네요 이런일이 조선초부터 있었다했으니..
토탈워 조선 특성 북방민족에 대한 공격력 15퍼센트 높음 ㅋㅋ 조총에 보너스데미지ㅜ
조선이 야인여진을 뭉개지 않았으면,
누르아치가 확장을 못하고 서로 견제하며 고만고만하게 살았을텐데....
조선이 야인여진을 뭉개버려가지고, 누르아치가 야인여진 영역까지 먹는결과가 나와... 몸집이 커버려... 나중에는.... ㅋㅋㅋ
누루하치가 조선에 관직달라고 했는데 조선에서 오랑캐라고 거절 했다는데 사실인가요?(청나라 건국 하기전에 누르하치가 벼슬 내려달라 했다함)
건주여진 누르하치가 조선에 대규모 구원병 파견하겠다고 했지만 조선은 허락하지않았다.(선조실록)
존아자르가 응원합니다
뒤쪽에 토탈워의 남새가 씨게 난다...
야리 아시가루 고자이마스
하앙...롬토랑 아틸라 풀프라이스로 사서 했는데 전투모션도 답답하고 ui도 너무 복잡하고 못해먹겠음. 쇼군이 젤 하기 간단하고 잘 만든듯 ㄹㅇ
@에뎀 셰임풀 디슾레이
가토, 고니시 어릴때 임진록2에서 많이 봤는데
누루하치의 건주여진과 가토 기요마사우 일본군을 싸우게 해서 힘을 약화시켰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가 되었을까요?
말도 안되는 가정임
애초에 일본군이 조선도 다 못털고 공세한계까지 갔는데 여진이랑 전면전을 붙을일이 없음
만약 진짜 재수가 좋아서 한반도를 순식간에 털고 만주로 진출했어도 쟤네의 전략적 목표는 명나라였으니 오히려 둘이 손잡고 명으로 갔으면 갔지 싸울일이 없음
또 만에 하나 온갖가정을 넣고 가토든 고니시든 완전 미친 빡대가리여서 양면전쟁을 했다고 해도 누르하치가 전면전에 응해줬을리가 없음
여진애들이 나중에 명나라 털어먹을때도 보면 전면전으로 안붙고 깔짝깔짝 소모전으로 깊숙히 끝어들인다음 쌈싸먹는 전략을 썼는데 그 수법을 일본에도 당연히 썼을듯.
그때 일본애들이 만주 깊숙히 거의 중일 전쟁 수준으로 깊이 따라 간다고 가정하면 둘이 소모전을 하기전에 일본군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꼴 나서 개박살 났을듯
근데 일본애들도 우동사리를 머리에 넣고ㅠ다니지 않는 이상 절대 그런짓을 했을리가 없으니 별의미없는 가정인듯
여진족 도끼로 일본 장수 머리를 꽃히고 말거임. 어떻게 도끼를 제대로 던지는거임. 병력들 장수 죽고 도망
흥미롭군 조선 여진
노토 갑옷 개간지다
삼전도의굴욕은 여진족을 얕봤기때문임~흑흑::;:::
우리나라가 약해지고 북방민족은 강해지고 있는걸 객관적으로 봐주는 인물들이 없고 너무 평화 안일주의 였던거같습니다
누가봐도 고구려의 후손인데 여진족이라 퉁치는거 보소. 고구려민족 자체가 속말말갈족 바로 여진족이다. 여진=말갈. 한국어를 쓰던 신라와 백제가 이국통일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통역을 쓰던 만주어를 쓰던 고구려가 망하고 그뒤. 고구려 -> 부여 -> 금 -> 후금 -> 청나라. 이게 바로 고구려 민족의 실체다. 그 강대햇던 고구려가 신라민족이 신라와 백제를 이국통일 한뒤로 영원히 동아시아 빵셔틀 국가가 되엇다. 니들도 좀 이상하지 않냐. 국뽕에서 그만 벗어나라. 우린 신라어(한국어)를 쓰는 신라족이다
조선도 다른 민족 양민 1만명을 학살한적 있다는거 새로 배워갑니다... 우리는 피해자 콤플렉스에만 사로잡혀 있지 말고 기나긴 역사중 한번도 침략한적 없다는식의 국뽕사관을 버렸으면 합니다.
? 침략당해서 복수한게 학살? 니네 부모 죽이러가도 나한테 복수하지마라. ㅇㅋ?
@@잭팟-r4b 양민 1만
지금에야 한민족이지 한반도 국가들 서로 학살하고 침략한건 ㅋㅋ.. 후삼국 때 통일 안됐으면 서로 같은 민족이라 안했겠죠?
@@shinichishin7345 그런걸로 따지면 영국 왕가들끼리 막장싸움 한거랑 일본전국시대때 남자 대부분 죽은 역사는 어떻게 설명?
@@잭팟-r4b 뭘 설명함? 걔네들도 다른 민족 침략한적 없다는 개소리 함? 걔넨 지들이 침략한거 침략했다고 하잖아
누르하치와 조선점령 일본군의 싸움이 있었다면 현재는 어떻게 됐을까...
가토에게는 함경도... 우키타에게는 경기도... 히데요시가 우키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수있는 부분중 하나 라고 생각합니다.
우키타는 자신이 길가다가 만나 첩으로 들인 과부의 아들... 가토는 동네 동생...
제비뽑기로 정했다는데요
섬 일본도 사실상 대륙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만든 이민국가.. 영국도 마찬가지... 두 나라 사람의 공통점은 호전적이고 잔인하다는거...... 좋게 말하면 이민간 사람들은 진취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성향이 적음....고대에 새로운땅에 이민간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미지에 땅에 살러간거임... 성향이 그럴수밖에 없음... 요즘 잘사는 나라 호주나 미국에 이민가는것들하고는 성격이 다르지..
선조가 잘한건 이순신 등용과 낙하산 수준의 승진이지 않을까
그것도 서애의 공이지요.
선조가 한건 아니고 그시대에 이순신이 있었던거죠.. 승진도 류성룡이 아니였음 안되었을테고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우리도 적의 적을 잘 이용하는 슬기로운 정치가가 나와야 합니다. 늙은 퇴물들이 아직도 여 야를 막론하고 '에헴'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후대를 키우지 못하는 나라는 항상 망했지요. 부자가 3대를 못간다는 말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보수는 뭘하고 있습니까? 이 영상을 보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저때 야인여진은 건주나 해서여진보다 엄청 약했음. 쉽게말해서 얘네는 여진중 최약체임
@@ljh6463선조가 튀어서아마 사기가 꺽이다 못해, 박살났을꺼임.그리고 사실상 얘네는
말타는 얘들임.기마부대가 어떻게 보병한테짐ㅋㅋ(일본은 총으로 조선 기마부대 조짐.)
아!그레서 병자호란때 조총이 활약이 못햇구나!
노토하고 싸울 때는 조선군이 의외로 굉장히 잘 싸웠네
그게 아마 조선군이 북방 여진족과 자주 싸우다보니 정예병이나 군사 전략 위주가 기마병 대항 전술로 많이 훈련한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보병 위주의 일본군+조총 그리고 그당시 일본군의 무서움은 척계광 장군의 왜구 토벌에서도 나오지만 리치가 긴장검으로 공격을 해서 상대하기 힘들었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당시 동북아시아에서 보병 백병전은 일본이 최강이라는 소리죠
즉 조선은 기마유목민족과 싸움에 특화된 집단이다보니 일본에게 많이 밀렸던거 같습니다
북방의 적이랑 투닥거림이 많다보니 아랫쪽은 작은 넘들이 가끔 해적질만 하면서 지들끼리 싸우는 형세다 보니 준비를 했다고 해도 소월했던게 크다고 봄. 일본이 기세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계속 내전했던 넘들이 기습적으로 대대적 군사를 모아서 정예가 있는 북방이 아닌 동네 방위급 전력이었던 남쪽을 기습 타격했던것이 꼬이게 만든 큰 이유로 보임
가토가 끌고간건 애초에 소규모 병력이라 일본군이랑 여진족이 싸웠다가에도 무리가 있죠
@@songroid4847 ??? 어디서 그렇게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조선시대 상비군 병력의 70%가 하삼도 수군이였고, 20%가 북방병력이고, 10%가 수도 한성수비 했어요
선조가 왜 이순신을 자꾸 모함 했냐면은 이순신 직책이 3도수군통제사입니다 즉 조선 정예 병력의 50%이상을 한 명이 통솔하고 있어서 이성계 위화도 꼴 날까봐 견제한겁니다
려말선초부터 조선의 국방 예산 가장 많이 차지하고 지출하는 곳이 수군입니다 남쪽이 동네방위다??? 그건 진짜 돌대가리급 역사를 모르는 멍청한 개소리입니다
금나라 멸망 후 여진족은 후금 건국 이전까지 강성한 적이 없었습니다 북방에 침입해봐야 마적떼 강도 수준입니다
반면에 왜구는 한번 침략하면 한반도 해안가를 초토화를 시켜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이 건국초기부터 수군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겁니다
그래서 님이 주장하는 정예북방병사들이 육지에서 조선병사 10명이 왜군1명을 못 당해내고 탈 탈 털릴때 동네방위인 남쪽수군들이 일본수군 박살낸겁니다
함경도. 추울텐데
후금 팔기군은 저런 부족 수준의 여진과 차원이 다름. 군기도 엄청나서 병장기 관리못하면 지휘고하 막론하고 누르하치가 목아지 땀.. 심지어 거세마인 '악타'를 사용해서 말까지 매복을 하는 등
기동성도 엄청나서 부산에서 서울거리를 하루만에 이동한 적도 있습니다. 이괄의 난이 없었다면 병자호란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미 명나라는 그런 노력을 수도 없이 했지만 수차례 패배했습니다.
고려 때 여진족도 그렇고 윤관이 철저하게 찍어 누른데는 이유가 있음..일단 자기네 부족끼리 연합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힘이 발휘됨
그렇긴 하지! 여진 일만명 천하 불감당! 명나라에서 가장 두려워한게 몽골 부족통합보다 여진부족 통합이죠
팔기가 강하긴 강한데 병자호란때 청의 사정도 딱히 좋은 사정이 아니었음
경제사정 개판이라 군량마련도 못하고 있었고 명나라가 빈집털이 하려고 지켜보고 있었으니.....
물론 초고속으로 조선이 털리면서 그 약점을 다 만회했지만..
그렇기에 인조가 런만 잘하고 버티기만 했으면 막았다고 하는거임
이괄의 부대가 남아있었으면 2만 가까운 훈련잘된 야전군이 남하한 청군 후방에 존재하는건데
당연히 청 입장에서 런한 인조 잡으러 가기가 신경쓰일수밖에 없고
재수없으면 적지 한가운데서 포위당하는 수도 있는데다
이괄과 그 병력을 제외하고 생각하더라도
정묘호란때 남이흥 자결하며 남긴 말에 따르면 이괄의 난 이후 인조가 반란을 두려워해 군사훈련을 금지시켜서
정작 전방에서 군사들 훈련한번 못시키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여 자결한다고 울분을 토했음
훈련한번 못해본 군대가 전쟁에서 이기는게 이상한거고..
훈련뿐 아니라 서북면 병력충원도 못하게 막아서 방어에 필요한 최소 인원도 못채우는 상황까지 갔으니
ㄹㅇ 이길수가 없는 싸움이 되버린거임
만약 이괄의 난이 없었다면 최소한 이런 일들은 없었을테니 더 잘 싸울수 있었을거임..
본의 아니게 이런 고마울때가 누르하치
선조가 문제임 암군중에 암군
인조가레전드
저넘들은 조선땅에서 지들끼리 싸우네..함경도에 민간인들은 당시 어떻게 됬을까..양쪽에서 치고 박고 죽고 약탈당하고 ㅠㅠ
Cómo me gustaría que lo traduzcan al castellano
점령하기는 여진족한테 털린거지 도끼 던지고 하니깐 일본장수 머리 날라갔겠구먼.
이게 말이됨? 가토가 조선군 박살냈는데 여진족한테 지고 가토한테 털린 조선은 여진족 박살내고? 가토가 진지하게 여진족 땅까지 다 먹을 생각은 없었다고 보는게 맞을듯
애초애 일본이 지리상 너무 불리했음 조선이 여진 이긴건 자기 본진 바로 옆에서 싸웠으니 이긴게 당연한거고
@@user-qp7ye2dx8k 가토도 여진을 이긴 조선군처럼 함경도에 똑같이 본진을 갖추고 있었죠.
볼펜연필 애초에 가토는 병력 얼마 데리고 가지도 않음
넵 말이 안되죠... 동양역사는 90프로가 가짜입니다. 겪었던 사람들이 살아있는, 현대사 조차도.
@@michaelyi2532 90%? 직접 계산해보심?
그 여진족 후손이 전지현이고..전지현이 생사초로 가토 기요마사를 싹 쓸어버린거임.
시즌3 언제 나오나..
현기증 난다 말이에요..
노토가 얍샵한게 부잔타이 세력이 압박할때는 나는 조선에 복속하고 있다며 양다리 전략을 펼침 ㅋㅋㅋ
고려 조선도 압샵이 전법으로 여러번 살아남 ..
조선투구와
여진투구를 비교해보면
여진은 귀와 목부분을
꼼꼼히 보호하는데
어찌 조선투구는 그저
수건처럼?
이게 제대로된 고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