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적으로 이순신 장군님이 바다패를 만드셔서 해상에다니는 모든 조선배는 그 패를 보여줘야 간첩이 아니라고 하셔서 바다패=신분증+해상료를 거둬들이셔서 그걸로 병참조달에 더 확고한체계를 만드셧죠..진짜 외계인수준의 해전능력+군체계+인품..등등 지금 전쟁상황 모두를 알고 간다해도 이순신장군님처럼 못이길건데..대단하심...
그런 의미로 군납비리도 엄하게 처벌해야하는데 한국은 10년 징역은 켜녕 5년도 오래산게 되고(보통 2~3년 형이라ᆢ) 그렇게 챙긴 돈도 잘 환수도 안되니ᆢ 그러다보니 옛날에는 군납비리하면 거의다ᆢ죽었습니다ᆞ걸리면요ᆞ그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성군이네 뭐네해도 욕 먹는 치적 중 하나가 군납비리하다 걸린거 어물쩡 넘긴게 있죠ᆞ당시 여론이 여론이라(하필 그게 반달왕국 원정군에서 터진지라ᆢ)죽여야한다고 난리났는데 말이죠
선조가 파격승진시킨게맞음. 고을 수령 한번 시켜본다음 바로 함대사령관으로 승진시켰는데 너무 말도안되는 체계무시한 승진이라 모든 신하들뿐만아니라 류성룡도 반대했음. 그랬더니 2주 간격으로 띄엄띄엄해서 선조가 함대사령관으로 만듬. 사실 류성룡은 걍 입사 꽂아준거까지만 도와준거지 과장까지 승진시킨건 선조임. 선조대에 조선사 네임드 인물 3분에 1이 등장하는건 전란때문도있지만 선조 인재발탁능력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걸로 공인된 사람이라서 그런거지 하늘에 의한 운이 아님.
붕당정치도 선조가 시작한거고 선조는 신권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물갈이 인사를 특기로 사용했고 그 결과 계속해서 자기가 그때그때 권력실세들을 바꿔치기하며 힘을 몰아줬다가 때론 뺏기도해서 권력이 고이는걸 막았고 선조대에 많은 위인들이 집권할수있었음. 그걸 찾아내서 키워주는건 선조인거고 사회가 그렇듯 잘났다고 능력비례로 승진하던게 아니라 결국 위인탄생은 왕이 선택하느냐안하느냐로 갈렸음.
진짜 한반도 최고의 영웅... 행정 보급까지 이렇게 스스로 완벽무비한 장수는 한반도 고금을 통틀어 없었다고 봄. 더 경악스러운건 화약. 당시 김시민 목사도 온갖 개고생을 해도 화약 100근을 마련하기도 힘들다는데 이순신 장군은 홀로 자체 생산하는 화약량이 당시 조선 팔도 전체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이였다는 말도 안되는걸 하셨죠.
제가 알기로 웅치전투 이치전투(전라북도)에서 황진장군(동복현감)등의 조선군이 크게 선방해서 호남이 왜군에 점령되지 않아 곡창지대가 보호되고 결국 일본의 식량보급에도 큰 타격이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호남이 나라를 구한 큰 역할을 했으니 호남을 음해하지 말고 소중히 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과 그 해군의 엄청난 업적 뒤에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함께 있었습니다..
@@뚜비-t9w 염전이 위치할수 있는 입지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남은 염전들도 대부분이 바닷가의 갯펄등을 간척한 지역에 위치합니다. 바닷가의 농사짓던 땅에 염전을 만들고 싶다고 쉽게 만들어 지는게 아니구요. 그리고 가마솥에 끓이는 방법도 일단 가마솥이 아주 많이 필요하고 땔감의 소모도 극심합니다. 그런데 가마솥이 또 값싸게 장만할 물건도 아니고 소금기로 인해서 수명도 매우 짧죠. 거기다가 유통망, 도로사정등이 안좋았던 시절이라 소금이 비쌌습니다. 특히 내륙지역은 더 했지요. 그래서 소금은 전매 품목인 것이죠.
@@뚜비-t9w 생산단가가 높기 때문입니다.소금은 그냥 바닷물 끓여서 만드는게 아닙니다. 염도가 높은 물을 우선 만들어야 합니다.그래야 생산성도 보장되기 때문에 말입니다.이 물은 어떻게 만드나? 갯벌의 흙을 퍼 와서 말리고 다시 바닷물을 부어 또 말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염도가 높은 흙을 만듭니다.이 흙에 바닷물을 부어 염도가 높은 물을 추출하고 이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듭니다.윗분 말씀처럼 염전 위치도 한정되어 있습니다.민물이 유입되는 지역에서는 힘들고 땔감도 풍부한 지역이어야 하고 만드는 시기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장마철과 겨울에는 못 만듭니다.
아무리 전라도 일대가 일본군에 점령을 당하지 않았고 타지역보다 농수산물의 소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는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한다면 장군의 치밀한 계획과 청렴결백함, 일사분란한 군의 기강에 바탕을 둔 조직력 등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7년간의 고된 전란속에서 연전연승하며 전력을 극대화하기 쉽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중세시대 게임만 해도 심심치않게 오크통에 청어냐고 얘기가 나올정도고(위쳐3 하츠 오브 스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냄새난다는 생선 통조림도 청어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이렇게 흔한 생선이라고 해서 참 많이 들어본 생선인데... 왜 정작 난 한번도 못먹어봤지...? 더 충격적인건 난 1년동안 이마트 수산코너에서 일한적이 있었는데... 청어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
도도 다카도라 - 일본의 수군대장 , 이순신에게 7 번 연패하고 이긴 적이 없음. 히데요시가 격려하며 영지를 늘려주고 정유재란 때 수군대장으로 재임용해줌. 이순신 - 일본과의 해전에서 23전 23 승이며 , 조정의 군량 지원 병력 지원 없이 싸워 이김 , 선조가 명을 거스린 죄를 물어 , 처음에는 죽이려고 하였으나 간신히 목숨만 살려주고 백의 종군 시킴. 이 때 이순신은 고문 후유증과 평소 지병인 위장병으로 고생함. 원균 패배후 복직하여 명량대첩에서 승전하였음. 이거 , 내가 군인이라고 할 때 , 과연 일본에서 장수를 할 것인가 조선에서 장수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함. 조선에서는 승리하면 일신 망치고 역적 몰이 당함. 실제로 의병들이 사사로운 공으로 면천하려 한다고 하여 역적몰이를 했음.
그래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영웅인 일본의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순신에 비하면 자신은 그의 하사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켜세움. 본인은 일본정부의 전적인 지원을 받아서 이룩한 성과지만, 이순신은 조선왕 선조의 질투와 견제까지 받아가며 이뤄낸 성과이기에 평소 존경하고 자신도 학익진으로 이기게 해달라며 제사지내며 빌었다함
마인드 자체가 17세기 이후 교조화된 성리학으로 사상이 똘똘 뭉친 사림 노론새끼들이랑 차원이 다름 오히려 현대인에 가까움 하긴 애초에 쌀 생산량으로 우열을 나눠서 봉석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보급과 생산량의 의한 힘을 잘 아는 일본 다이묘 놈들 쳐바르려면 저 정도 마인드는 가지고 있는게 합리적 추론일 듯도 하네요
@@황필립의잡동사니 민족과 백성을 위했다면 더욱더 새왕조를 세웠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만 잘살고 싶으면 그 고생을 할 이유가 없죠 적당히 성공했으니 누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하성군 광해군 능양군 라인을 보면 이게 사람이 맞나 싶을정도로 짐승같은 라인업이고 임란호란에 그 뒤에 오게될 대기근까지 생각하면 조선백성들은 정말 맷돌에 갈리는듯한 고통속에서 살아야했습니다. 이순신이 왕이되어야 하는건 개인의 욕심같은 하찮은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사활을 가르는 중요한 시기에 능력을 가진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양란을 잘 극복하고 국가시스템을 다시 재정비해서 추후에 있을 대기근도 잘 버티도록 만들었어야 하는것이죠.
최전선에서 보급을 자급자족하고, 조정에 공물까지 바치면서 백전백승...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판타지 소설에 나와도 욕먹을 스토리임
거기에 전염병으로 많은 병사를 잃고 있던 중에도 나가 싸워 이기기 까지 하십니다
실화를 그대로 옮겨도 우상화 한다고 욕먹을 정도 ㅋㅋㅋㅋㅋㅋ 전술이 완벽한데 군수 보급까지....
개연성 현실성 존나없어 ㅆㅂ…..근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없는 살림에 군부대 꾸려..무기 시스템 챙겨....보급 챙겨...군기챙겨....작전 챙겨....그 와중에 한양으로 조공까지 실어날라....그러다 아군 팀킬로 본인은 국문당하고 그간 키워놓은거 다 날려.....
근데 거기서 자투리 남은거 모아서 다시 이기심....
전쟁터에서 보급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순신장군입 진정한 군인이자 충무공 이십니다
이순신 장군이 단순히 싸움만 잘한게 아니구나
저런 보급을 하나하나 다 챙길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
진짜 대단하신분인거 같다
제갈량도 사실 전투가 아니라 보급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였다네요
후에 임금들이 매번 장수들 꼽줄때 이순신 장군님하고 비교함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서 하나도 퍼준게 없어도 자체보급으로 대승인데 니들은 뭐냐며
와 진짜 알면 알수록 이순신 장군님은 사기캐네요 정말.....
농담 반이지만, 조선을 구하러 내려온 외계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ㅋㅋㅋ
@@hyokkim1458 맞는말이요 무우제국 제7은하함대 총사령관이니까 ㅎㅎㅎ
추가적으로 이순신 장군님이 바다패를 만드셔서 해상에다니는 모든 조선배는 그 패를 보여줘야
간첩이 아니라고 하셔서 바다패=신분증+해상료를 거둬들이셔서 그걸로 병참조달에 더 확고한체계를 만드셧죠..진짜 외계인수준의 해전능력+군체계+인품..등등 지금 전쟁상황 모두를 알고 간다해도
이순신장군님처럼 못이길건데..대단하심...
알면알수록 정말 대단한 장군이에요.
중앙정부에서 받는거라곤, 왕의 명령이 적힌 종이 몇장 딸랑일텐데,
장군은 모병부터 보급, 식량 자체조달, 군수품 자체생산, 전투까지.. 이분은 장군을 안하셨어도 다른 분야에서도 분명 대성하셨을겁니다.
거기다 조정에 곡식도 보내줬죠
정부가 군대를 지원해야 하는데 군대가 정부를 지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이순신 장군은 오늘날 환생 하셨다면 대기업 CEO 정도 하실 수가 있는 분이죠.
예나 지금이나 군대에 보급은 승리에 필수불가결한 문제인데, 이순신 제독은 참으로 대단한 제독입니다.
보통 자기 병과에 한정한 거나 생각하지 전쟁 전반에 걸치는 기초적인 문제까지 모두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의미로 군납비리도 엄하게 처벌해야하는데 한국은 10년 징역은 켜녕 5년도 오래산게 되고(보통 2~3년 형이라ᆢ) 그렇게 챙긴 돈도 잘 환수도 안되니ᆢ
그러다보니 옛날에는 군납비리하면 거의다ᆢ죽었습니다ᆞ걸리면요ᆞ그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성군이네 뭐네해도 욕 먹는 치적 중 하나가 군납비리하다 걸린거 어물쩡 넘긴게 있죠ᆞ당시 여론이 여론이라(하필 그게 반달왕국 원정군에서 터진지라ᆢ)죽여야한다고 난리났는데 말이죠
임진왜란의 보급을 살핀 이야기는 처음이네요 . 잘 봤습니다.
이순신장군님이 임진왜란때 조선에 있었던게 정말 신의 한수 및 하늘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_honghistory 선조요?...
@@_honghistory 류성룡의 사람볼 줄 아는 눈이 두 번째죠. 선조는 그냥 도장 찍어준 것 밖에 없음.
신이 조선한테 망하지 말라고 붙여줬나봐요...
선조가 파격승진시킨게맞음. 고을 수령 한번 시켜본다음 바로 함대사령관으로 승진시켰는데 너무 말도안되는 체계무시한 승진이라 모든 신하들뿐만아니라 류성룡도 반대했음. 그랬더니 2주 간격으로 띄엄띄엄해서 선조가 함대사령관으로 만듬. 사실 류성룡은 걍 입사 꽂아준거까지만 도와준거지 과장까지 승진시킨건 선조임. 선조대에 조선사 네임드 인물 3분에 1이 등장하는건 전란때문도있지만 선조 인재발탁능력이 세 손가락 안에 드는걸로 공인된 사람이라서 그런거지 하늘에 의한 운이 아님.
붕당정치도 선조가 시작한거고 선조는 신권 속에서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물갈이 인사를 특기로 사용했고 그 결과 계속해서 자기가 그때그때 권력실세들을 바꿔치기하며 힘을 몰아줬다가 때론 뺏기도해서 권력이 고이는걸 막았고 선조대에 많은 위인들이 집권할수있었음. 그걸 찾아내서 키워주는건 선조인거고 사회가 그렇듯 잘났다고 능력비례로 승진하던게 아니라 결국 위인탄생은 왕이 선택하느냐안하느냐로 갈렸음.
드라마에서 물고기도 잡고 물건을 내다 파는 장면이 나오던데 고증을 한거였구나....
청어가 많이잡히는게 좋은대신 언제어디로 무리가 이동하는지 알수가없어서 청어에 의존하던 국가가
청어가 사라져서 침공을 하는 등 인류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물고기라고 하네요
맞습니다. 중세 신성로마제국의 주요 도시들로 구성되었던 한자동맹도 발트해에서 청어잡이로 큰 이득을 보다가 어느 순간 청어들이 영국 인근 북해로 이동해버리면서 큰 피해를 입어 이것이 한자동맹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죠.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요ㅋㅋ 자기 청춘과 목숨을 걸고 나라지키는분들 밥이나 잘 챙겨줬음 좋겠네요 오늘도 좋은영상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이순신 밑에서 비리란 있을수 없죠
조선초기 중기만 하더라도 상업을 천시 했었는데 이순신 장군은 실리를 선택해 상업을 해서 군대를 좀 더 풍족하게 했구나!! 괜히 명장이 아님!!
진짜 한반도 최고의 영웅...
행정 보급까지 이렇게 스스로 완벽무비한 장수는 한반도 고금을 통틀어 없었다고 봄.
더 경악스러운건 화약. 당시 김시민 목사도 온갖 개고생을 해도 화약 100근을 마련하기도 힘들다는데 이순신 장군은 홀로 자체 생산하는 화약량이 당시 조선 팔도 전체에 비견되거나 그 이상이였다는 말도 안되는걸 하셨죠.
보다보면 진짜 이세계에서 넘어온거 아닌가 싶음...
대단하시네요 역시 이런쪽 분야에서도 최고로 밝으신 분이신ㅠㅜ...
일본에 어떤 유명한 장수는 너무 허무하게 죽은 바람에 차마 기록할 수 없어서 이순신 입에서 나온 번개 맞고 죽었다고 기록했다던데
명량해전 이후 고금도에서 둔전을 개량하고 보급을 자급자족한 기록을 보면 성웅은 야전지휘관의 능력뿐만 아니라 목민관, 행정가로서의 자질도 정말 신급이었음.
고금도에서 그렇게 식량을 확보할 때 시기가 다른 시기도 아니고 한겨울이었음.. 진짜 성웅은 신임..
드디어 처음으로 조회수가 1만건을 넘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 동안 영상들을 모두 나름 괜찮게 만드셨는데도 의외로 조회수 수가 적게 나와서 걱정했는데 드디어 만건을 넘으셨군요. 앞으로도 더 많이 조회수가 느시기를 기원합니다.
주원장이란 주제는 생소할수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이햐 홍이님은 유니크하시군요
딴 역사유튜브들은 비슷한시기에 비슷한거하던데
생각지도 못한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종종 이런 영상도 올리겠습니다^^
칼의 노래 라는 소설에서만 봐도(물론 소설이니까 허구지만) 충무공이 자급자족 한다는 걸 진린에게 말하고 진린도 자급자족 하는 군대가 강한 군대라고 말하죠. 역사적으로 그랬으니 얼마나 강력한 군대였을지. 하지만 그 강한 군대도 지휘관이 원균으로 바뀌자마자 어휴...
청어 과메기에 흰쌀밥은 절대 못참지 ㅋㅋ
갑자기 땡기네요ㅋㅋㅋㅋㅋ
아닙니다.과메기에 소주입니다.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지난밤 마신 술로 속이 쓰리다는
내용도 자주 등장합니다.
장군도 술과 친해서 문제였죠.이 문제만 빼면 완벽함.
노량때 전사하지 않았더라도 술 때문에 간경변 등의
질환으로 돌아가셨을 수도ㅜㅜ
@@대관령호랑이 에휴 힘들게 사네 어떤 사실 주장 차원의 얘기도 아니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지.
타인의 생각과 취향에 ' 아닙니다'라고 부정부터 들이미는 습관 ...
@@bond9620 그게 저사람이 걸어온 길. 안바뀔거임
@@대관령호랑이비약 보소
보급의 중요성은 전쟁사에 가장큰 숙제인데 역시 장군님 이시네요
오오오 대박!!!
창의적인영상 정말 잘봤습니다
뛰어난 지휘관이 필요한 이유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후손들인 저희가 덕분에 편히 숨쉬고 먹고 자고 지금 이순간 이렇게 유투브를 즐길수 있게 해주셔서ㅜ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이 나라를 발전시킬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옳으신 생각이십니다 조상님들의 노고를 모르면 안되쥬^^
이순신 장군님은 대단하다..ㅎㄷㄷ
역시 먼치킨 장군님 ㅎㄷㄷ
오리 이원익 .... 조선의 청백리
영의정. 적극적인 후원
오리 를 알면. 이순신 을
알수있다
다음편에 청어 입장 부탁드립니다
진짜 이순신 장군은 전쟁의 신 그 자체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천혜의 바다에서 광어 우럭 잡아다 회를 썰던지 매운탕끓이면 되고 문어도있고ㅎㅎ 여튼 바다자체에 음식이 풍부했기때문에 육지보단 사정이 나았을듯
우주가 무한 하니까 뭐든지 할수 있다는 소리..
한산도통제영
판옥대선 134척 중소규모포함 300척
수군 14000명
군량 9900석 약 200일버틸수있음
명량해전시기
판옥대선 13척 중소규모함선 20척
수군 1300명
군량 거의 히루살이수준
고금도통제영
판옥대선 100척 중소규모포함 250척
수군 30000명
군량 30000석 1년치 식량
이 모든걸 조정의 지원 1도없이 혼자 이뤄낸거
아따마 이런 정보 재밋네요
이순신 장군님은 신이내린 천복 이었습니다..
그저 빛...
오.... 청어 덕이 컸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 되었네요 영상 잘 봤습니다. 저도 과메기 츠암 좋아하는데..
이순신장군이 있는 조선수군과 그냥 조선수군은 하늘과 땅 차이~
명량해전이후 특히나 조선수군 재건이 궁금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이순신 장군님은 지금시대에 있었어도 정말 유능한 CEO여셨겠네요...
청어는 유럽에서도 대구와 함께 역사의 흐름을 주도했던 식량자원이기도 했다는데 조선에서도 그러했군요.
한신의 능력 , 장량의 전술 , 소하의 보급능력을 동시에 가진 장군...
역시 천하의 조선 수군도 제대로 먹어야 싸울 수 있군요. 병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일본이 가장 막강한 시기에 전쟁을 이겼다는게 조선의 기적...
장량, 한신, 소하가 한 몸에 빙의한 듯한 갓순신, 그는 도덕책......
장량은 아닌듯.
영상 감사히 잘 봤습니다. 발음을 개선하시면 더 좋은 영상이 될 것 같아요!!!
몰랐던 이야기! 마지막 청어의 입장도 ㅎㅎ
역사뇌피셜님이 여기까지...
제가 알기로 웅치전투 이치전투(전라북도)에서 황진장군(동복현감)등의 조선군이 크게 선방해서 호남이 왜군에 점령되지 않아 곡창지대가 보호되고 결국 일본의 식량보급에도 큰 타격이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호남이 나라를 구한 큰 역할을 했으니 호남을 음해하지 말고 소중히 해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과 그 해군의 엄청난 업적 뒤에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노력도 함께 있었습니다..
영상보고 장보러 갔는데 청어회가 팔천이네요.이게 순신행님이 드시는 청어가 맞는지..
조선 당시 군 체제가 요즘과는 달리 주둔 지역에서 자급자족하는 체제이긴 했음 즉 군 사령관은 징집부터 보급까지
알아서 해야 했는데 그나마 전라수영들의ㅡ경우
쌀과 소금을 풍부하게 자체보급 할 수 있었던 지역이라
이순신 부임전에도 재정적으로 원래 빠방하긴 했음
궁금한게.. 소금이 가격이 비쌌다고 나오는데 이부분 잘 이해가 안가네요.
옛날에 소금값이 금값이란 말은 들었는데
바닷물 퍼다가 끓이면 얻을수있는거 아니에요? 산지와 수레여건때문에 육지 한가운데서 비싼거면 몰라도... 전라 시장에 내다팔아서 큰돈을 얻을 정도면
농사안짓고 조선사람들은 소금이나 끓이는게 훨씬 좋아보이는데요.
@@뚜비-t9w 그렇다고 소금이 아무데나 나오는 건 아님..신안군처럼 햇볕 강하고 조수차가 커야지 가능
@@뚜비-t9w 염전이 위치할수 있는 입지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남은 염전들도 대부분이 바닷가의 갯펄등을 간척한 지역에 위치합니다. 바닷가의 농사짓던 땅에 염전을 만들고 싶다고 쉽게 만들어 지는게 아니구요.
그리고 가마솥에 끓이는 방법도 일단 가마솥이 아주 많이 필요하고 땔감의 소모도 극심합니다. 그런데 가마솥이 또 값싸게 장만할 물건도 아니고 소금기로 인해서 수명도 매우 짧죠.
거기다가 유통망, 도로사정등이 안좋았던 시절이라 소금이 비쌌습니다. 특히 내륙지역은 더 했지요.
그래서 소금은 전매 품목인 것이죠.
@@뚜비-t9w 생산단가가 높기 때문입니다.소금은 그냥 바닷물 끓여서 만드는게 아닙니다.
염도가 높은 물을 우선 만들어야 합니다.그래야 생산성도 보장되기 때문에 말입니다.이 물은 어떻게 만드나? 갯벌의 흙을 퍼 와서 말리고 다시 바닷물을 부어 또 말리고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염도가 높은 흙을 만듭니다.이 흙에 바닷물을 부어 염도가 높은 물을 추출하고 이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듭니다.윗분 말씀처럼 염전 위치도 한정되어 있습니다.민물이 유입되는 지역에서는 힘들고 땔감도 풍부한 지역이어야 하고 만드는 시기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장마철과 겨울에는 못 만듭니다.
아무리 전라도 일대가 일본군에 점령을 당하지 않았고 타지역보다 농수산물의 소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는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한다면 장군의 치밀한 계획과 청렴결백함, 일사분란한 군의 기강에 바탕을 둔 조직력 등이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7년간의 고된 전란속에서 연전연승하며 전력을 극대화하기 쉽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밥이랑 반찬이요
이거 몇일전에 봤던건데? 다시올리신건가여?
네^^
나라의 어떤지원없이 도움없이 홀로 모든걸 해결해야했고 홀로 왜군과 내부의적들과 싸우느라 얼마나힘드셨을까 앞에는 왜군들
뒤에는 선조와 간신배들..
나같으면 미쳐버렸을거다
저녘메뉴는 청어구이
수군장병의 노고를 기하여
으른들 옛말에 바닷가살면서 굶어죽으면 어디가도 못쓰는놈이라 했죠 ㅎㅎ
중세시대 게임만 해도 심심치않게 오크통에 청어냐고 얘기가 나올정도고(위쳐3 하츠 오브 스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냄새난다는 생선 통조림도 청어라고 하고... 한국에서도 이렇게 흔한 생선이라고 해서 참 많이 들어본 생선인데... 왜 정작 난 한번도 못먹어봤지...? 더 충격적인건 난 1년동안 이마트 수산코너에서 일한적이 있었는데... 청어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
등푸른 생선이 청어 아님? 멸치 고등어 참치 등등
@@IandeSongfransisco 청어라는 어종이 따로있음 등푸른생선중에 가장 흔하기때문에 이름도 청어... 그런데 그건 조선시대 이야기이고 어느순간부터 씨가말라서 보기힘들어짐 우리가 먹는 과매기도 원래는 청어로 만들던건데 청어가 씨가말라서 꽁치로 빠뀜.
역시 유비무환으로 대비하신 이순신 장군님😉👍
싸움만 잘한게 아니라 경제도 잘했구나...
진짜 영웅이다 영웅...
인생을 봐도 흠집없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싶을정도로 깨끗함
설민석 강사가 이순신 왕국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었군요!
칼의 노래에, 수군이 어물을 곡식으로 바꾸기 위해 강을 거슬러 가다 전쟁 중에도 농사를 짓는 백성들의 모습을 장군이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죠
아.. 명량 대첩 대해전이 끝나고오 그 담 어케 복구하셨었는지가 궁금했는데 그러했었군요ㅠㅜ.. 그래도 항시 자급자족부분에의 대한 노력과 ㅡ명량때 열악했었던 상황인건 변함없는 사실이죠.ㅡㅋㅎㅋㅎ 노량때는 말도 않되는 전력차ㅜ였었고ㅠ
배가 고픈 병사는 전진하지 못한다~
이순신 장군이 반한 생선 군평선이도 있다던데 색깔이 노란색이고 흰 무늬가있더군요
이순신만큼은 국뽕에 취해도 된다. 제왕의 그릇을 가진 군자가 졸부를 왕으로 모시고도 충심을 다했으니...
역시 어딜가나 모든 전쟁에는 소금이 중요하지
청어입장도 들어봐야죠. 위령비라도 건립해줍시다.
그것도 그러네요ㅋㅋㅋㅋㅋㅋ
청어 뼈로 세워진 도시라는 별명도 들은 암스테르담도 그런거 없는거보면 앞으로 그런 일은 힘들듯 합니다ㅠ
사람끼리 잡아먹던 임란에
많이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
너무 감사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 평화의 시기 한반도에 숨어 있는 이순신급의 영웅들이 얼마나 힘들어할까요?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가거나, 부족한 프로젝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연구를 접는 연구자들도 무지 많을 것 같음.
550 년이 흘러도 이 땅의 시스템은 바뀐게 없네요.
행정실무까지 능숙해던 충무공
야전사령관뿐만아니라 관찰사 직책까지 충분히 수행
저런분 10명만 계셔도 국방은 말할것도 없죠^^
@@_honghistory 솔직히..국방부 장관 1명으로 현생 복귀하셔도..전투력 20배 국방예산 30퍼는 절감내실듯..
@@_honghistory 왜란때 이순신 10명이면 경상도로 왜군 상륙도 못하고 전쟁 끝났을듯
전라남,북도의 넓디 넓은 평야에서 나오는 식량으로 의주,평양,한양으로 쌀을 배로 실어서 임금에게 날랐다는
이야기가 난중일기에 종종 나옵니다,....그 당시 전라도의 식량생산량은 다른지방에 넘사였다는 이야기지요.....
이순신장군님의 병참지원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게되었습니다
지켜야 하는 곳이 호남이었다는 것도 쌀이 비교적 풍족했던 이유 중 하나겠죠.
그쵸 조선의 곡창지대가 거기였으니까요^^
이순신의 전란 수습 극복 운영능력은..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영지를 하사받아
그 춘추전국시절 최소 다이묘급 은 하셨을 것이고..마음만 먹으면 천통에 쇼군도 할 재목이었음
도도 다카도라 - 일본의 수군대장 , 이순신에게 7 번 연패하고 이긴 적이 없음. 히데요시가 격려하며 영지를 늘려주고 정유재란 때 수군대장으로 재임용해줌.
이순신 - 일본과의 해전에서 23전 23 승이며 , 조정의 군량 지원 병력 지원 없이 싸워 이김 , 선조가 명을 거스린 죄를 물어 , 처음에는 죽이려고 하였으나 간신히 목숨만 살려주고 백의 종군 시킴. 이 때 이순신은 고문 후유증과 평소 지병인 위장병으로 고생함. 원균 패배후 복직하여 명량대첩에서 승전하였음.
이거 , 내가 군인이라고 할 때 , 과연 일본에서 장수를 할 것인가 조선에서 장수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함. 조선에서는 승리하면 일신 망치고 역적 몰이 당함. 실제로 의병들이 사사로운 공으로 면천하려 한다고 하여 역적몰이를 했음.
그런데도 도도 다카도라는 히데요시를 배신하고 이에야쓰한테 붙었고
그런데도 이순신은 끝까지 조국을 배신하지 않았죠
네덜란드에 harring이라는 음식 있는데 청어를 통째로 발효시켜서 만든 음식입니다. 한번 먹어보고 싶은데 방법이...
홍대 더캐스크 가보세요 술집인데 안주로 판다고 들음
@@bellerophon2015 감삽니다. 전화해볼게요
실제로 견내량 지키면서 지나가는 배들 통행료 받은 자금도 꽤 큽니다... ㅋㅋ
이거 보니깐 이괄이 보급품좀 달라하니깐 조정에서 이순신은 전쟁통에도 자급자족했는데 니는 왜못함. 이라고 말했지ㅋㅋ
이렇게 보니깐 이순신 장군님이 더욱더 대단해 보인다ㄷㄷ
당시 조선수군이 아마 6.25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풍족하고 배부르게 먹은 유일한 군대 아닐까 싶습니다
우와 청어와 과메기를 식량으로...홍어도 그 당시에는 많았을텐데 수적으로 압도적이었나 보군요.청어,과메기가.
와우 청어
0:47 배후도 정리하고, 해전 경험도 쌓고...장군께서 얼마나 훌륭한 선전자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흔하던 청어가 귀해져서 과메기를 꽁치로 만드는현실이라...
역시 보급이 제일 중요하지.
청어과메기 흠..
미리미리 밀키트를 준비했어야지.
오히려 수군이 건어물 등 해산물을 육군에 지원했지
물고기는 타종족 싸움에 내가 왜 죽어야하지 할듯 ㅋㅋ
듣고보니 그러네요ㅋㅋㅋㅋㅋㅋㅋ
저정도면 독자적 기업아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순신장군님 거짓전사보고후 은거하셨을꺼 같아...
전후 자급자족되는 군세는 군벌이 됨
역사적으로 늘 그랬음
선조는 질투가 심했죠 그것도 문제던데
하~시바 군량 까지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전투도 해야하고 진짜 명장중에 명장 일쎄~~
이순신 장군님 명장이시면서 또는 백성들의 어버이 !
내가 UDT나 SSU가 아닌 일반 해군 갑판병 출신임에도... 해군출신이라는 것에 유일하게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는 분...
저도 일반 수병인데도 해군의 다짐을 외칠때 첫째가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라는 구호가 먼저여서 상당히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영웅인 일본의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순신에 비하면 자신은 그의 하사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켜세움. 본인은 일본정부의 전적인 지원을 받아서 이룩한 성과지만, 이순신은 조선왕 선조의 질투와 견제까지 받아가며 이뤄낸 성과이기에 평소 존경하고 자신도 학익진으로 이기게 해달라며 제사지내며 빌었다함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민간 상인 수군배로 운송하여 번돈으로 전투복 수군 입힌거 나옵니다.....청어도 있었군요....휴가 가는 병사에게는 미역 말린것 줬다고 tv진품명품인가에서 봤던걸루 기억 합니다......그립습니다....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박정희대통령등등......
수사의 업무 중 하나가 군량 및 전투 물자 확보입니다.
우리해군이
일본 해자대의 배수량과 전투체계를
재역전하는 날을 기원합니다..
병참관리 자체보급 상업활동으로 군자금충당이라니;;
마인드 자체가 17세기 이후 교조화된 성리학으로 사상이 똘똘 뭉친 사림 노론새끼들이랑 차원이 다름 오히려 현대인에 가까움 하긴 애초에 쌀 생산량으로 우열을 나눠서 봉석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보급과 생산량의 의한 힘을 잘 아는 일본 다이묘 놈들 쳐바르려면 저 정도 마인드는 가지고 있는게 합리적 추론일 듯도 하네요
상술도 기가맥히네 이순신장군
이순신이 이성계처럼 새왕조를 세웠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은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한 생각만을 가진 참 군인이었기에 오히려 더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었겠죠
저도 동감..... 전란에 휩싸인 일본, 명, 조선 중에 정권이 안 바뀐 건 조선 뿐이었습니다. 정조 때 살짝 조선이 급등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세도정치 때문에 폭망하여 결국 한국 전쟁까지 망트리를 탐....
@@황필립의잡동사니 민족과 백성을 위했다면 더욱더 새왕조를 세웠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만 잘살고 싶으면 그 고생을 할 이유가 없죠 적당히 성공했으니 누리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하성군 광해군 능양군 라인을 보면 이게 사람이 맞나 싶을정도로 짐승같은 라인업이고 임란호란에 그 뒤에 오게될 대기근까지 생각하면 조선백성들은 정말 맷돌에 갈리는듯한 고통속에서 살아야했습니다. 이순신이 왕이되어야 하는건 개인의 욕심같은 하찮은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사활을 가르는 중요한 시기에 능력을 가진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양란을 잘 극복하고 국가시스템을 다시 재정비해서 추후에 있을 대기근도 잘 버티도록 만들었어야 하는것이죠.
아, 과메기 땡기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