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래 정확한 분석이신지 ᆢ 물고기 ᆢ 선생님의 진실하시고 정확한 분석과 평가 너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찡합니다ᆢ 물고기~님의 진리를 향한 외침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 교회와 교인들에게 호통치고 싶으신 말씀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저며옵니다 ᆢ 고맙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슬 전체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의 강도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 교회가 건전하게 가고 있다 할지라도 불건전한 모습이 있는 교회에 쓴소리 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자신에게도 이런 불건전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아서 모든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축복합니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떠났는가? 젊은 청년들은 이예 종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참 차가운 현실이다. 한국의 기성 교회가 사람들의 정신적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되기로 작정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 일도 빤하다. 이런 추세로는 더욱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든 면에서 속수무책으로 추락할 것이다. 너무나 참담하다.
힘이 들고 고달프니까 찾아가는 게 예나 지금이나 종교다... 그런 건 인간의 본성에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기능임... 그러나 중요한 건 종교란 곳은 근본주의이든 인본주의이든, 사회에 깊숙이 관여하면 관여할수록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있음.. 특히 한 국민들이란 집단이 종교가 화합될 수 있는 구조가 안 된다면 신본이든 인간성이든 타락할 수밖에 없음.. 그렇다면 특정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민족이 문제가 아니겠음?? 따라서 그 나라에 존재하는 종교도 종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람이 문제임
한국 개신교도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너무 찌든 것 같아요. 그래도 시내에 큰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얻게 되는 '커뮤니티 이득'도 많죠. '성공한 자들의 교회'에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제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개신교 교회는 방언기도도 듣기 싫고, 불신자인 저희 가족이 방언기도를 들으면 말 그대로 '미친 사람들'처럼 보일까 염려됩니다. 헌금문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비판하는 사람들,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알랄라 방언기도 등 교회에 하나님나라가 점점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감히 나도 죄인인데 어찌 남을 정죄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제가 다니는 교회를 주님 뜻대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하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죠.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맞는 건가 고민됩니다...
휴머니즘이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대하는 문화적 백그라운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5000년 무속, 3000년 불교, 600년 유교의 문화적 백그라운드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에서 천주고 250년, 기독교 150년 역사의 영향력은 외면적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여전히 공고히 이어온 전통종교의 문화적 심연을 반영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내면의 믿음의 신실성은 섯불리 판단하기가 참으로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만 졸업했다면 " 우리 한민족은 외부 종교와 사상들을 가져오더라도 이를 우리에 맞도록 독창적으로 해석해서 우리나라에 적용했다. " 는 말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바르고 옳게 사는 행복을 위한 철학과 사상을 들여오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무조건 갑자기 하늘에서 복이 비같이 내려서 내 자손과 내 집안이 잘먹고 잘살고 자자손손 만수무강하는 것을 기대하는데 부합하는 종교와 사상으로 변질시킨 형태로 존재해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속과 극단적인 물질주의로 모든 종교와 사상마져도 변질시켜버린, 그 일환으로 기독교도 기복종교로 변질시켜버린 우리나라의 음습하고도 천박한 문화적 배경이 개선되지 않고는 기독교의 옳음과 바름을 지향하는 소수의 참된 신자들의 이상은 쉽사리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암울해 보이는 이 모든 상황을 바꾸실 분이 지금도 살아 계시죠? 그분은 그리고 그분만이 가능 하십니다.
교인들이 진정 누구를 위해 왜 그곳으로 가는지 스스로 영혼을 분리하여 자신을 바라보기 바란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말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 보고 돈을 신으로 삼고 매일 돈님의 힘과 능력에 감탄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가슴의 소리 들어보길 .. 그렇게 할 인간들도 없게지만 어째든 비유를 든 내용중에 틀린 말이 있다면 내가 예수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다.
1985년 1월 중3때 내가 본 진짜라고 보였던 새벽기도자는 내 친구의 어머니셨다..... 세계, 나라, 민족, 지역사회, 교회, 남편과 자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셨던 그분..... 그러나 그 이후 나는 제대로 기도한다고 느껴지는 기도자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17년후 나는 성경을 찢어버리고 교회를 나와버렸다... 목사도, 신자라는 것들이 그렇게 무식해 보일수 없어서이다... 머리가 무식한게 아니라 행동하는게 너무 무식하더라....
가난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만 교회나 교인의 그런 모습에 실망하거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도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살률, 이혼율, 각종 범죄률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장로 사장이라고 해서 안 믿는 사장보다 훨씬 악한 것은 아니지요. 한 때는 그랬지만, 다른 사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이유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부자도 실망하거나 떠납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니, 대부분의 내 문제는 기도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고, 내가 곧 하나님입니다. 내 관점으로 보기에 나에게 죄 지은 사람이 너무나 많고, 그들을 용서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멀리 있고, 주먹은 매우 가까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용서하기보다는 주먹을 날리는 것이 훨씬 내 마음을 위로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금 즉시,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습니다. 잘못되면 내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질로 어거지로 해결하거나, 그게 안 되면 돈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변했다기보다는 그런 본색이 쉽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인끼리도 서로 용서가 안 됩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이 악에 받쳐 살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싸울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 욕을 섞어서 하지 않으면 친구 사이에도 말을 못 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지금 주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때 자가용 차 뒤에 "미래의 판검사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세대가 지금 갑질하는 학부모가 되었고 그 자녀가 왕따를 주도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뭘 했느냐? 건물만 지으면 교인이 폭발적으로 늘어 땅 집고 헤엄치던 시대를 지나 개척하면 망하는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교회끼리 경쟁하는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미생물이든 뭐든 폭발적으로 번성하면 폭락하기 마련입니다. 무한대로 공급이 주어지지 않는 한,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그냥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한탄할 일도 아니고,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냥 자연의 한 현상일 뿐입니다. 소아시아의 교회들마저 오래 전에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진 마당에... 뭐가 아쉽다고... 하나님도 그런 일엔 관심이 없습니다. 원래부터 깨달음을 통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 외엔 인간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분이시긴 했지만...
♥ 구원론 신학♥ = 인본주의 신학이다 구원론 :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사람은 죄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하였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 →→→ 이것이 구원론 신학의 핵심 이론이다. 이것이 어떻게 신본주의 인가? 내용을 봐라.. 인간을 위해 존재라는 신이 있다고 말할 뿐인 이론을 어떻게 신본주의 라고 말하는가? 사람들은 성경을, → 사람의 일, 땅의 일, 은혜만 보고있다, 하나님의 일, 하늘의 일 , 진리는 실종된것이 구원론이다
일부분 현상으로 문제를 보편화 하거나, 세상 교회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또 덕을 세우는 일도 아닙니다. 오늘날 칼 같은 교회 비판이 부족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판에 머무르지 않았고 대중의 지지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희생하는 것으로 썩는 밀알이 됨으로 세상에 생명을 얻게 하였고 자유를 주려 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도를 바로 전하는 것이 더 먼저입니다. 부족한 성도들과 교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울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비판은 쉽지만 자신이 모범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크고 쉬운 길은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지만 생명이 없고 좁고 어려운 길은 가는 사람이 적으나 생명의 길입니다. 타인의 구원 보다 나의 구원이 더 중요하고 급하기도 하고, 내가 바로서야 다른 사람도 세울 수 있고, 타인의 문제보다 내게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튼 이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한민국 복지의 86%를 교회가 감당해 왔다. 교회가 눈물 흘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기에 오늘날의 경제성장이 있었다. 신본주의 안에서의 인본주의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위로받고 격려받는 곳이 교회의 정체성이라면 절과 무당집, 심리상담소의 차이가 뭔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창조자임을 믿는다면 신본주의적 삶이 맞다. 신본주의가 잘못된 게 아니라, 진짜 신본주의적 삶을 살지 못하기에 빚어진 일들이다.
올바른 인본주의의 회복이 올바른 신본주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사람이 있고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으로 교회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인간만으로 교회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할 때 교회가 성립됩니다. 중세에 신본주의에만 빠진 나머지 종교재판, 마녀사냥 등의 온갖 종교적 죄악들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따로, 피조물 따로가 아닌 모두 같이 어울어질 때 하늘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 가운데에서 찾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인본주의의 회복 속에서 온전한 신본주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신본주의를 표방하였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그들의 신본주의가 사실은 철저히 일그러진 인본주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인본주의는 신본주의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1)
사실 신본주의가 사라져가도 인본주의적 복지 시스템은 가능합니다. 유교적 사회 시스템으로도 환난상휼, 품앗이 등의 정신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신본주의에만 치우치면 중세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현대에는 목사가 가난하고 절박한 이들에게 헌금을 뜯어서는 교회 몸집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목사를 하나님의 절대적 대리자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이미 중세 가톨릭 시대 때 겪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신본주의에서 탈피하고 인본주의를 회복한 결과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신본주의에 치우치면 오늘날의 이슬람교 국가처럼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인본주의에만 치우쳐도 안됩니다. 인간은 쉽게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에 치우쳐도 신본주의 치우쳐도 일그러지게 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올바른 인간 관계 속에서 체험될 수 있기에 올바른 인본주의 속에서 신본주의를 완성해 가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원래 교회는 신본주의적 경건주의 입니다. 이것이 정석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렇게 살면 상식적으로 경제가 굴러 가겠습니까? 그래서, 유럽의 르네상스가 나왔고 철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종교혁명, 프랑스 인권 대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 이것의 완성이 바로 미국입니다. 단군조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바로 제세이화입니다. 이치(로고스)로서 지상낙원 세싱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상식도 못 따라가는 부분 여자목사 안수 안 하는 교단 여자장로 안 세우는 교단 예수님도 바울도 하나님도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셨죠 구약의 여성차별적인 부분은 당시 근동문화의측면에서 봐야하는 거구요... 아직도 개혁되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교회서 자기주장하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어찌 이래 정확한 분석이신지 ᆢ
물고기 ᆢ 선생님의 진실하시고 정확한 분석과 평가 너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찡합니다ᆢ
물고기~님의 진리를 향한 외침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 교회와 교인들에게 호통치고 싶으신 말씀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저며옵니다 ᆢ
고맙습니다!
교회에 몸은 있지만
그저 보편적 인간의 도리 와 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답니다
서른해. 자타공인 신실한 신앙인이 었는데. 스스로 믿음없음을. 믿음이 사라 졌음을 인정하니
교회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참
편안해 졌어요
백퍼 공감합니다 ㅠㅠ
현 시대 기독교의 슬픈 면모를 잘 말씀하셨네요.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정신만 지키고 쉽진 않치만 세상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으면 됩니다. 세속화돤 교회도 많고 이단교회도 많치만 건전한 이 시대 교회도 많아요.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슬 전체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의 강도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 교회가 건전하게 가고 있다 할지라도 불건전한 모습이 있는 교회에 쓴소리 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자신에게도 이런 불건전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아서 모든 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축복합니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떠났는가?
젊은 청년들은 이예 종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참 차가운 현실이다.
한국의 기성 교회가 사람들의 정신적 영적인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하는 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되기로 작정된 길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 일도 빤하다.
이런 추세로는 더욱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든 면에서 속수무책으로 추락할 것이다. 너무나 참담하다.
이시대를 향하여 외치는 소리
나를 향하여 외치는소리로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스트셨죠.
인과 신과 의를 버린 교회..
성경속에 흐르는 의와 인애를 값싼구원으로 발로 차버린교회..ㅠ.ㅠ
눈치만 남았다.
힘이 들고 고달프니까 찾아가는 게 예나 지금이나 종교다... 그런 건 인간의 본성에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기능임... 그러나 중요한 건 종교란 곳은 근본주의이든 인본주의이든, 사회에 깊숙이 관여하면 관여할수록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있음.. 특히 한 국민들이란 집단이 종교가 화합될 수 있는 구조가 안 된다면 신본이든 인간성이든 타락할 수밖에 없음.. 그렇다면 특정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민족이 문제가 아니겠음?? 따라서 그 나라에 존재하는 종교도 종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람이 문제임
전도할게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해당되지 않는 교회들도 많지만, 반성하며 들어야 할 귀한 말씀입니다. 다만 비판의 시각으로만 보는데만 그치지 말고 이런 상황을 애통해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모든 분을 축복합니다.
자기안에 성령을 찾으셔야 합니다.
자기안에 교회를 만드셔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세상의 교회를 기웃거리며 갈등하게 됩니다.
교회를 만나지 마시고 성령을 만나세요.
행복한 교회, 즐거운 교회, 살맛나는 교회 등등의 구호가 주로 교회들이 외치는 구호인데...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교회는
한 없이 울 수 있는 교회군요.
아픈 마음을 공감해주는 교회, 외롭고 쓸쓸함을 어루만지는 교회,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공감합니다
한국 개신교도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너무 찌든 것 같아요. 그래도 시내에 큰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얻게 되는 '커뮤니티 이득'도 많죠. '성공한 자들의 교회'에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제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개신교 교회는 방언기도도 듣기 싫고, 불신자인 저희 가족이 방언기도를 들으면 말 그대로 '미친 사람들'처럼 보일까 염려됩니다.
헌금문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비판하는 사람들,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알랄라 방언기도 등 교회에 하나님나라가 점점 사라진다고 느낍니다.
'감히 나도 죄인인데 어찌 남을 정죄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제가 다니는 교회를 주님 뜻대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하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죠.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맞는 건가 고민됩니다...
물고기님. 제 머릿속에 다녀가신듯...
전부 맞는 말씀입니다.
현재의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옳게 지적 하셨습니다.
좀 아쉽다면 인간은 죄인이기에 부족할수 밖에 흠결이 많은데 너무 부정적인 부분만 부각 시킨것은 아닌지 걱정 또한 됩니다
감사합니다.
휴머니즘이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대하는 문화적 백그라운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5000년 무속, 3000년 불교, 600년 유교의 문화적 백그라운드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에서 천주고 250년, 기독교 150년 역사의 영향력은 외면적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여전히 공고히 이어온 전통종교의 문화적 심연을 반영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내면의 믿음의 신실성은 섯불리 판단하기가 참으로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만 졸업했다면 " 우리 한민족은 외부 종교와 사상들을 가져오더라도 이를 우리에 맞도록 독창적으로 해석해서 우리나라에 적용했다. " 는 말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바르고 옳게 사는 행복을 위한 철학과 사상을 들여오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무조건 갑자기 하늘에서 복이 비같이 내려서 내 자손과 내 집안이 잘먹고 잘살고 자자손손 만수무강하는 것을 기대하는데 부합하는 종교와 사상으로 변질시킨 형태로 존재해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무속과 극단적인 물질주의로 모든 종교와 사상마져도 변질시켜버린, 그 일환으로 기독교도 기복종교로 변질시켜버린 우리나라의 음습하고도 천박한 문화적 배경이 개선되지 않고는 기독교의 옳음과 바름을 지향하는 소수의 참된 신자들의 이상은 쉽사리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암울해 보이는 이 모든 상황을 바꾸실 분이 지금도 살아 계시죠? 그분은 그리고 그분만이 가능 하십니다.
교인들이 진정 누구를 위해 왜 그곳으로 가는지 스스로 영혼을 분리하여 자신을 바라보기 바란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말이 왜 나왔는지 생각해 보고 돈을 신으로 삼고 매일 돈님의 힘과 능력에 감탄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가슴의 소리 들어보길 .. 그렇게 할 인간들도 없게지만 어째든 비유를 든 내용중에 틀린 말이 있다면 내가 예수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을 만나는 장소.무언가 나의 어려움을 주님께달래기 위해 찾는 교회가 스트레스대상이라면.그런 교회는 없어져야한다
1985년 1월 중3때 내가 본 진짜라고 보였던 새벽기도자는 내 친구의 어머니셨다.....
세계, 나라, 민족, 지역사회, 교회, 남편과 자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셨던 그분.....
그러나 그 이후 나는 제대로 기도한다고 느껴지는 기도자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17년후 나는 성경을 찢어버리고 교회를 나와버렸다...
목사도, 신자라는 것들이 그렇게 무식해 보일수 없어서이다...
머리가 무식한게 아니라 행동하는게 너무 무식하더라....
아니 왜요?
남이야 그러든
본인이 행하면 되죠.
다시 성경속으로
들어가세요.
자신이 제일 중요합니다.
남들로 인해 자신의영혼을
걸지마셔요
신 중에 제일가는 신은 제정신.
내 안에 신이 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니면 인간이 신을 위해 존재하는지?
교회도 결국 먼저 깃발 꽂은 신자들만 재미보고 뒤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냥 호구 11:33
근본주의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사상을 왜그리 집착하시는지요?
근본주의는 그때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만든 것입니다만,
지금 시대는 그때하고 완전히 틀려요.
시대에 맞는 온건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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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을 섬기는 것 처럼 보이지만
고급승용차, 명품가방, 네온싸인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바른 길로 인도할 사람이 왜곡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신을 섬긴거죠.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결국 예수님인데... 그건 제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느님, 상제, 천지신명, 조물주 같은 것으로 신을 섬기니까 결국 무속이나 진배없어지는 겁니다.
새벽기도... 그냥 무속이지요.
가난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만 교회나 교인의 그런 모습에 실망하거나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도 안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살률, 이혼율, 각종 범죄률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장로 사장이라고 해서 안 믿는 사장보다 훨씬 악한 것은 아니지요.
한 때는 그랬지만, 다른 사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이유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부자도 실망하거나 떠납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가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니, 대부분의 내 문제는 기도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고, 내가 곧 하나님입니다.
내 관점으로 보기에 나에게 죄 지은 사람이 너무나 많고, 그들을 용서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멀리 있고, 주먹은 매우 가까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용서하기보다는 주먹을 날리는 것이 훨씬 내 마음을 위로합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금 즉시,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습니다.
잘못되면 내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질로 어거지로 해결하거나, 그게 안 되면 돈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변했다기보다는 그런 본색이 쉽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인끼리도 서로 용서가 안 됩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입니다.
한 마디로, 모든 사람이 악에 받쳐 살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싸울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 욕을 섞어서 하지 않으면 친구 사이에도 말을 못 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라서 지금 주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때 자가용 차 뒤에 "미래의 판검사가 타고 있어요"라는 스티커를 붙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세대가 지금 갑질하는 학부모가 되었고 그 자녀가 왕따를 주도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뭘 했느냐?
건물만 지으면 교인이 폭발적으로 늘어 땅 집고 헤엄치던 시대를 지나 개척하면 망하는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교회끼리 경쟁하는 시대를 지나왔습니다.
미생물이든 뭐든 폭발적으로 번성하면 폭락하기 마련입니다.
무한대로 공급이 주어지지 않는 한,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그냥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한탄할 일도 아니고, 되돌릴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냥 자연의 한 현상일 뿐입니다.
소아시아의 교회들마저 오래 전에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진 마당에...
뭐가 아쉽다고...
하나님도 그런 일엔 관심이 없습니다.
원래부터 깨달음을 통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 외엔 인간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분이시긴 했지만...
왜 물고기 연구소야? 다곤신을 섬기나? 정체가 뭐야?
물고기는 예수님의 상징입니다. 무식하면 공부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안에 들어오면 죽은 나를 발견하게 되며 그때 비로소 내 안에 천지창조가 되고 여호와(예수)는 내 안에 계시는거지요.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믿으면 거짓된 종교생활로 자기가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섬기는 생활을 하게 되지요.
인문주의/인본주의의 뉘앙스를 모르는 듯
♥ 구원론 신학♥ = 인본주의 신학이다
구원론 :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사람은
죄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사하였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 →→→ 이것이 구원론 신학의 핵심 이론이다. 이것이 어떻게
신본주의 인가? 내용을 봐라..
인간을 위해 존재라는 신이 있다고 말할 뿐인 이론을 어떻게 신본주의 라고 말하는가?
사람들은 성경을, → 사람의 일, 땅의 일, 은혜만 보고있다,
하나님의 일, 하늘의 일 , 진리는 실종된것이 구원론이다
일부분 현상으로 문제를 보편화 하거나, 세상 교회가 다 그렇다는 식으로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또 덕을 세우는 일도 아닙니다. 오늘날 칼 같은 교회 비판이 부족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판에 머무르지 않았고 대중의 지지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희생하는 것으로 썩는 밀알이 됨으로 세상에 생명을 얻게 하였고 자유를 주려 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도를 바로 전하는 것이 더 먼저입니다. 부족한 성도들과 교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로 세울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비판은 쉽지만 자신이 모범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크고 쉬운 길은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지만 생명이 없고 좁고 어려운 길은 가는 사람이 적으나 생명의 길입니다.
타인의 구원 보다 나의 구원이 더 중요하고 급하기도 하고,
내가 바로서야 다른 사람도 세울 수 있고,
타인의 문제보다 내게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튼 이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맞습니다!!!
대한민국 복지의 86%를 교회가 감당해 왔다.
교회가 눈물 흘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기에 오늘날의 경제성장이 있었다.
신본주의 안에서의 인본주의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위로받고 격려받는 곳이 교회의 정체성이라면 절과 무당집, 심리상담소의 차이가 뭔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창조자임을 믿는다면 신본주의적 삶이 맞다.
신본주의가 잘못된 게 아니라, 진짜 신본주의적 삶을 살지 못하기에 빚어진 일들이다.
올바른 인본주의의 회복이 올바른 신본주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사람이 있고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으로 교회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인간만으로 교회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할 때 교회가 성립됩니다.
중세에 신본주의에만 빠진 나머지 종교재판, 마녀사냥 등의 온갖 종교적 죄악들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따로, 피조물 따로가 아닌 모두 같이 어울어질 때 하늘나라가 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 가운데에서 찾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인본주의의 회복 속에서 온전한 신본주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신본주의를 표방하였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핍박했습니다.
그들의 신본주의가 사실은 철저히 일그러진 인본주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인본주의는 신본주의를 완성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1)
사실 신본주의가 사라져가도 인본주의적 복지 시스템은 가능합니다. 유교적 사회 시스템으로도 환난상휼, 품앗이 등의 정신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신본주의에만 치우치면 중세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현대에는 목사가 가난하고 절박한 이들에게 헌금을 뜯어서는 교회 몸집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목사를 하나님의 절대적 대리자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이미 중세 가톨릭 시대 때 겪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신본주의에서 탈피하고 인본주의를 회복한 결과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계가 성립된 것입니다.
신본주의에 치우치면 오늘날의 이슬람교 국가처럼 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인본주의에만 치우쳐도 안됩니다. 인간은 쉽게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에 치우쳐도 신본주의 치우쳐도 일그러지게 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올바른 인간 관계 속에서 체험될 수 있기에 올바른 인본주의 속에서 신본주의를 완성해 가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휴머니즘이신가요?
세상보다 교회가 더 타락한거 같나요? 세상은 부자여야 하고 교회는 가난해야 하나요? 부자가 되어 가난한 이웃을 도우면 안 되나요 ?
왜냐?당신은 거울없이 당신얼굴을 볼수 있나요?뭐 안봐도 되겠지요.근데 궁금하잔아요.다른사람 얼굴은 볼수 있는데 나는 내일굴을 못보니?신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봅니다
자기 욕망을 신의 뜻으로 포장하는 신본주의...
신본주의란 가장 추악한 형태의 인본주의입니다.
원래 교회는 신본주의적 경건주의 입니다. 이것이 정석입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렇게 살면 상식적으로 경제가 굴러 가겠습니까? 그래서, 유럽의 르네상스가 나왔고 철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종교혁명, 프랑스 인권 대혁명, 과학혁명, 산업혁명, 이것의 완성이 바로 미국입니다. 단군조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바로 제세이화입니다. 이치(로고스)로서 지상낙원 세싱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른 성경 바른 교리 바른 믿음이 없는 한국 교회의 비참한 말로이다.
교회가 상식도 못 따라가는 부분
여자목사 안수 안 하는 교단
여자장로 안 세우는 교단
예수님도 바울도 하나님도 여성을 차별하지 않으셨죠
구약의 여성차별적인 부분은 당시 근동문화의측면에서 봐야하는 거구요...
아직도 개혁되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교회서 자기주장하는 게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무식한 소리 하지 마세요! 딤전 3:2에
목사와 집사의 자격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본인 얘기인가요? 아니면 누가 쓴 글 읽나요?
댓글은 누구 써준 것임? 아니면 본인 것임😅
동감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고 기도하겠다 하는 분들이 남아서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힘을 내어 보시지요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