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쓸 때 15대 응신 이후의 사료는 충분히 많았으나 그 이전 사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고대사는 야요이시대->전기고분시대(245년 관구검 전쟁부터 396년 잔국토벌 사이)->중기고분시대(396년 잔국토벌부터 498년 무진주 출병 사이)->후기고분시대 로 가는데, 일본열도에 전기고분시대에 정부가 없어 사관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전 기록을 보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자료가 풍부했던 중기고분시대 사료를 가지고 전기고분시대를 비롯한 이전 시대 이야기를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인명이 2군데 나오면 뒤가 원사료고 앞이 뒤를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단 중기고분시대 이후는 앞뒤로 나와도 믿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만일 일본서기 전체에서 신공이 죽은 신공 69년(247년)부터 응신이 즉위하는 390년 사이의 일본열도 기록을 단 하나라도 찾으면 한일고대사의 엄청난 업적이 될 것입니다.
삼국지 위지 마한 전에 보면 마한 54국이 나오는데, 이 읍락국들이 북에서 남으로의 순서대로 써져 있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입니다. 근데 막로국(莫盧國)은 중복돼 있어 53국으로 봐야 하거나 아니면 54국인데 하나를 빠트리고 막로국을 실수로 중복시킨 거겠지요. 이는 진수가 집에서 술 먹고 썼을 걸로 생각되는데, 유독 삼국지 막바지 기록인 위지 삼한 전의 기록들에서 실수가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아마 이쯤에서 알콜중독이 심했던 걸로 보여집니다.. 진수가 마한 54국을 열거하면서 "마한은 50여국이 있다"고 퉁 쳐서 쓴 걸 보면 그 갯수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치 않았거나 혹은 중요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럼 갯수도 정확하게 쓰지 않았음은, 열거한 순서도 정확하지 않을 거라고 봐야 합니다. 열거 순서의 초반까지는 잘 기록하다가 처음으로 나오는 막로국 이후부터는 순서의 정확성에 의심이 갑니다. 막로국 다음에 오는 읍락이 비리국(卑離國)인데, 이 비리국을 중심으로 x비리국, xx비리국이라 이름 지어져 있습니다. 즉 이 비리국이 아주 중요한 곳이자 중심지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침미다례 즉 신미다리(新彌多離)의 리는 이 비리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x리국들을 말함으로 보여지는데, 마한 54국 중에서 총 11국이 x리국입니다. 근데 x비리국은 그중 8개국이나 됩니다. 신미다리(新彌多離) 도륙사건 때, 신미국(신운신국)이 전남에 있는 읍락이라면 나머지 여러 x리국들 역시 전남에 있는 읍락들이라 봐야 합니다. 그럼 여러 x리국(多離)이 3개국 즉 고리, 일리, 초리만을 말함이라면 한자로 많을 多를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10여개 정도는 돼야 多를 썼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이 여러 x리국(多離)은 결국 10개에 근접한 8개국인 x비리국을 뜻하는 걸로 봐야 하고, 이들은 상술한 대로 전남에 위치해야 합니다. 참고로 x리국은 마한에만 있고 변진한에는 일국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혹시 비리라는 게 종족을 말하는게 아닌가 하고요.. 즉 비리족의 읍락국은 모두 x비리국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비리의 뜻이 기존 통설대로라면 진변한에는 없고 마한에만 x비리국만 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비리국과 고비리국의 구별과 감해국과 감해비리국이 각각 따로 구별되어 이름 지어진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백제가 남벌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이 비리족의 나라들을 왜와 연합해 도륙낸 것이 "신미다리(新彌多離) 도륙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서기 신공49년조에 "침미다례(신미다리)를 도륙하니 비리, 벽중, 포미(불미국(不彌國), 지반(지반국(支半國), 고사(구소국(狗素國)의 읍이 스스로 항복했다"고 했습니다. 벽중(벽비리)이 통설대로 전북 김제를 말함이라면 나머지 비리, 포미, 지반, 고사도 전북일 가능성이 큰데, 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즉 기존 통설은 백제 근초고왕이 남벌했다고 하지만, 실은 왜군이 바다 건너 경남의 해안가에 있는 나라들을 노략질한 후 전남으로 와 고해진(구해국, 강진)에서 초고의 군사와 합류하고 영산강을 따라 북상하면서 신미다리(新彌多離)를 도륙낸 것입니다. 그래서 겁먹은 전북의 읍락들이 스스로 항복했다는 것이죠. 다음 차례는 자기들이니까요. 이 때 초고의 군사도 배 타고 고해진까지 내려왔을 겁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결론: x비리국들은 영산강 유역과 전북과 전남의 서해안에 걸쳐 위치하고 있었다 입니다. 추가: 1. 마한 전에 나오는 주호(州胡)국의 종족이 이 비리족과 비슷한 종족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봅니다. 묘사가 꼭 왜인이죠. 이는 많은 걸 시사해 줍니다. 2. 당시 해수면이 오늘보다 높아 영산강은 바다였고 광주광역시까지 영산강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운신국(신미국)을 광주광역시에 비정합니다.
왜 꼭 뒤에 것이 진실인거지요...?
일본서기 쓸 때 15대 응신 이후의 사료는 충분히 많았으나 그 이전 사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고대사는 야요이시대->전기고분시대(245년 관구검 전쟁부터 396년 잔국토벌 사이)->중기고분시대(396년 잔국토벌부터 498년 무진주 출병 사이)->후기고분시대 로 가는데, 일본열도에 전기고분시대에 정부가 없어 사관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전 기록을 보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자료가 풍부했던 중기고분시대 사료를 가지고 전기고분시대를 비롯한 이전 시대 이야기를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인명이 2군데 나오면 뒤가 원사료고 앞이 뒤를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단 중기고분시대 이후는 앞뒤로 나와도 믿을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만일 일본서기 전체에서 신공이 죽은 신공 69년(247년)부터 응신이 즉위하는 390년 사이의 일본열도 기록을 단 하나라도 찾으면 한일고대사의 엄청난 업적이 될 것입니다.
삼국지 위지 마한 전에 보면 마한 54국이 나오는데, 이 읍락국들이 북에서 남으로의 순서대로 써져 있다는 것이 기존의 통설입니다. 근데 막로국(莫盧國)은 중복돼 있어 53국으로 봐야 하거나 아니면 54국인데 하나를 빠트리고 막로국을 실수로 중복시킨 거겠지요. 이는 진수가 집에서 술 먹고 썼을 걸로 생각되는데, 유독 삼국지 막바지 기록인 위지 삼한 전의 기록들에서 실수가 많이 보이는 걸로 보아 아마 이쯤에서 알콜중독이 심했던 걸로 보여집니다..
진수가 마한 54국을 열거하면서 "마한은 50여국이 있다"고 퉁 쳐서 쓴 걸 보면 그 갯수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치 않았거나 혹은 중요하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럼 갯수도 정확하게 쓰지 않았음은, 열거한 순서도 정확하지 않을 거라고 봐야 합니다. 열거 순서의 초반까지는 잘 기록하다가 처음으로 나오는 막로국 이후부터는 순서의 정확성에 의심이 갑니다.
막로국 다음에 오는 읍락이 비리국(卑離國)인데, 이 비리국을 중심으로 x비리국, xx비리국이라 이름 지어져 있습니다. 즉 이 비리국이 아주 중요한 곳이자 중심지라는 걸 알 수 있지요. 침미다례 즉 신미다리(新彌多離)의 리는 이 비리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x리국들을 말함으로 보여지는데, 마한 54국 중에서 총 11국이 x리국입니다. 근데 x비리국은 그중 8개국이나 됩니다.
신미다리(新彌多離) 도륙사건 때, 신미국(신운신국)이 전남에 있는 읍락이라면 나머지 여러 x리국들 역시 전남에 있는 읍락들이라 봐야 합니다. 그럼 여러 x리국(多離)이 3개국 즉 고리, 일리, 초리만을 말함이라면 한자로 많을 多를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10여개 정도는 돼야 多를 썼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이 여러 x리국(多離)은 결국 10개에 근접한 8개국인 x비리국을 뜻하는 걸로 봐야 하고, 이들은 상술한 대로 전남에 위치해야 합니다. 참고로 x리국은 마한에만 있고 변진한에는 일국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혹시 비리라는 게 종족을 말하는게 아닌가 하고요.. 즉 비리족의 읍락국은 모두 x비리국이라 이름 지어진 것이었습니다. 비리의 뜻이 기존 통설대로라면 진변한에는 없고 마한에만 x비리국만 있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비리국과 고비리국의 구별과 감해국과 감해비리국이 각각 따로 구별되어 이름 지어진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백제가 남벌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이 비리족의 나라들을 왜와 연합해 도륙낸 것이 "신미다리(新彌多離) 도륙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서기 신공49년조에 "침미다례(신미다리)를 도륙하니 비리, 벽중, 포미(불미국(不彌國), 지반(지반국(支半國), 고사(구소국(狗素國)의 읍이 스스로 항복했다"고 했습니다. 벽중(벽비리)이 통설대로 전북 김제를 말함이라면 나머지 비리, 포미, 지반, 고사도 전북일 가능성이 큰데, 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줍니다. 즉 기존 통설은 백제 근초고왕이 남벌했다고 하지만, 실은 왜군이 바다 건너 경남의 해안가에 있는 나라들을 노략질한 후 전남으로 와 고해진(구해국, 강진)에서 초고의 군사와 합류하고 영산강을 따라 북상하면서 신미다리(新彌多離)를 도륙낸 것입니다. 그래서 겁먹은 전북의 읍락들이 스스로 항복했다는 것이죠. 다음 차례는 자기들이니까요. 이 때 초고의 군사도 배 타고 고해진까지 내려왔을 겁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결론: x비리국들은 영산강 유역과 전북과 전남의 서해안에 걸쳐 위치하고 있었다 입니다.
추가: 1. 마한 전에 나오는 주호(州胡)국의 종족이 이 비리족과 비슷한 종족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봅니다. 묘사가 꼭 왜인이죠. 이는 많은 걸 시사해 줍니다.
2. 당시 해수면이 오늘보다 높아 영산강은 바다였고 광주광역시까지 영산강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운신국(신미국)을 광주광역시에 비정합니다.
후한서: 마한은 54국, 삼국지: 마한은 55국, 진서: 마한은 56국.
1~2국 차이는 목지국의 행정구역 개편때문이지 별 차이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