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밖으로는 치안을 안정시키고 안으로는 재물을 풀어 베풀며 병졸중에 가장 말단이라고 할지라 반드시 자신과 자리를 같이하게하고 같은 밥상에서 같은 그릇으로 같은 밥을 먹게 하였으며 사람을 가리거나 고르는 일이 일절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귀부했다.라고 기록됩니다. 내정을 잘하는 정치인이 인품까지 좋다면 끝난거죠 사람들이 엄청 지지했을겁니다. 이런 성품이 빛을 본것이 유평이 유비에게 암살자를 보냈는데 유비가 암살자를 늘 하던대로 후하게 대접해주니까 암살자가 감격해서 유비한테 유평이 당신을 죽이라고 시켰었다고 말했는데 유비는 그 말 듣고 암살자을 그냥 보내줬다고하죠
@@LastSerenade01 1군을 데려가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 일단 이릉대전 일어나기 전에 관우, 장비, 황충, 법정이 모두 죽었음. 위연과 마초는 한중지역의 대 위 전선을 맡아야 했기에 빼올 수 없었고 조운은 후방 보급을 맡겼고 애초에 조운은 야전사령관도 아님. 그래서 고르고 고른 장수들로 치룬 게 이릉대전인데, 실제로 이릉에서 살아남은 장수들은 능력들이 출중했음. 풍습도 패배하긴 했으나 오의 선봉대를 격파하는 실력을 보면 유비가 괜히 대도독으로 삼은게 아님.
영상을 보며, 익히 알았고 들었던 사실이지만, 유비의 능력이 모든분야에서 탑급 이었던건 맞는거 같습니다. 실제로 다른사람의 공으로 둔갑된 전투에서도, 유비가 중추적인 역활을 했다는부분도, 이릉전투때 네임드 장수들을 빼고, 후보선수들 데리고 나간거 보면 증거가 되는 듯하네요. 그만큼 실력있고 자신있으니 언제나 그래왔던거 처럼, 작전짜고, 진행했던거 같습니다 ^^
이릉에서 다 뒤져서 네임드가 못된거지 대부분 능력있는 장수들입니다 연의에서 활약이 적어 코에이식 게임으론 능력치 적게 받은 사람들이지만 상총은 제갈량에게 군사적으로 쓸만하다는 평가도 받은 장수이고 진식 요화등도 b급중에선 상위네임드이기도하고 사망한 풍습 장남 마량 왕보등도 살았으면 활약 충분했고 황권이나 방림은 항복후 더 높게 쓰였고 게다가 사실상 이들 제외하면 촉엔 네임드 장수 마초 위연 말곤 없음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정말 유비에게 중요했던 베스트급 장수들은 상당수 남겨둔체 간것은 일단 위나라의 침공에대한 위협을 오나라보다도 위협적으로 본게아닐까싶습니다 유비집단에서 오나라를 무시한 대표적인 인물이 관우였고 그리고 관우는 그렇게 무시하다가 결국 여몽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었죠 근데 얼마안가 여몽도죽습니다 애초에 유비는 삼십년이 넘는세월동안 별다른 참모없이 전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만큼 자신의 능력에대한 자부심도 상당했을거구여 오나라가 손권시대에 주유 노숙 여몽으로 이어지는 최고지휘관들이 다 죽은 상황이고 손견시절부터 활약했던 무장들도 여전히 활동한다지만 이들은 최고지휘관을 맡은것이아닌 일군을 이끄는 장수정도였죠 오랜기간 손가를 모셧음에도 손책 손권시절에 등용된 인재들이 최고 지휘관을 맡아왔다라는건 이들은 최고지휘관을할 통솔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이됩니다 그러니만큼 오나라의 지휘능력은 대군을 이끌 인재가 없을것이라 판단했을겁니다 어이없게도 육손이라는 참 어떤면에서는 낙하산인재가 그런 군재가 있을거라고는 예상하지못했죠
패왕 맞음. 저 인간이 의외로 장난 아닌 게 서주 대학살 시점에선 하비말곤 나머지는 개판낫거든요. 조조만 초토화 시킨게 아니라 착융마져 도겸은 가망없다고 튈때 광릉과 그 주변까지 약탈하고 가버렷거든요.(그나마 멀쩡햇던 남부마져도 개판 친데다가 이미 착융이 그 전에 군량 관리업무를 하면서 이를 착복해서 그 자금으로 불교 사원을 세우고 대형 불상까지 만들고 잇엇고) 즉 그 당시에 엄청난 난민이 발생햇는데 그런 그들을 구하고 심지어 부족한 군량마져 나눠주면서 지키면서 조조랑 멱살잡고 뜨잡이 햇던 인간이니까 절대 만만한 인간이 아님. 이때의 유비의 모습이 잇다보니까 유비가 인의의 대명사이자 전국구 인덕의 상징이 되서 백성들이 보면서 그렇게 환호하던 게 아니니까요.
소설 삼국지 연의에서 최고의 수혜자라고 주장하셔야 합니다. 유비는 한나라 황실후손이 맞습니다. 비록 마지막 찌끄레기 별볼일 없는 자손이라고 해도 한나라 황실의 후손은 맞습니다. 또한 두 번째 하이라이트 유비가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비전과 목표가 아니라 과거의 좋았던 시대로 복고시대로 회귀할려고 했습니다. 삼국지는 후한 말기로써 좋았던 시절이 아니라 🎀^완전하게 갱신^😺💖😸💖😻💖🐱💖😼💖😽💖😻💖🐱💖😸💖😺하고 🎀^완전하게 경신^😺💝😸💝😻💝😼💝😽💝🐱💝😼💝😻💝😸💝😺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목표와 비전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새로운 시대의 비전과 목표가 아니라 복고시대로 복귀 및 회귀할려고 했고 조조같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단 하나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릉대전도 손권에 의해 익주목으로 임명된 유장과 기존 익주파 내부 호응에 의한 반란 가능성을 막기 위한 포석인 듯 손권이 형주 먹기 위해 그리고 그 이후에 촉한에 했던 내부 공작이 상당히 치밀해서 내부 분열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오를 선공할 수 밖에 없었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더군요
지금까지도 많은 중국인들이 촉한을 그리워하죠. 진나라가 통일 32년만에 몰락하고 명나라 전까지는 통일 한족왕조가 들어서지를 못했으니.... 삼국지연의가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구요. 그리고 삼국시대의 흔적이 재대로 남아있는곳은 그나마 촉한이 있던 익주지역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수있죠. 건업이야 남조의 수도이자, 주원장의 시발점, 난징대학살 등등 너무많고 위나라의 허창은 뭐.... 더 잊혀진 곳이라.
그러니까 이릉대전 이전의 굵직했던 전투는 거의가 유비의 작품이었다는 건가? 아니 나관중 이 인간은 유비를 그냥 매력만 두고 나머지는 전부 기준치 이하로 맞췄다는 건데.. 실제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무력으로 누를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전략을 짜는데도 능해 제갈량이 했다던 책략도 유비의 작품이었네. 삼국지 최강의 무장이라던 여포와도 싸워도 될 정도일수도 있겠구만. 이건 뭐 거의 소드마스터급인듯..그러니 만인지적이라는 관우와 장비를 지 동생으로 삼지.
이정도면 A가 아니라 S급 장수죠 근대 정말 일까요? 거의 모든일 심지어 관우,장비,제갈량 은 아무런 없적이 없다는 뜻이잔아요 이거 그거 같은데요 부하가 뛰어난 업적을 세울수 있었던건 지휘관이 뛰어난 것이고 고로 지휘관의 능력이다 고로 지휘관이 뛰어난것이다 .. 이런 논법으로 만 든 이야기 같은데요 그리고 이런 유 비 보다 조조는 더 대단 하다구요 ? 조조는 분명 뛰어난 사람 입니다 . 매우 사악해서 그렇지 그런 조조가 라이벌로 인정한 사람이 유비 니까 약간은 맞는말도 있다는 생각도 듬니다만..
유비의 군사적 면모는 삼국지연의 때문에 왜곡되고,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있죠. 이는 아마도 삼국지연의가 훨씬 후대인 명나라 때 나온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관중은 유비를 정통으로 보고 그를 미화하는 동시에 조조를 폄하하는 방향으로 서술했는데, 문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성리학 국가 명에서는 용맹하고 카리스마 있는 군주보다는 제갈량, 조운 같은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군주가 더 높게 평가 받았으니깐요.
관우장비가 의형제(무력으로) 공손찬에 들어온 조운이 유비를 보고 유비밑에 못 들어간거에 후회했다(유비의 무력에 반함 그래서 유비사후에도 충임) 황충의 투항결심은 유비가 직접오니 하겠다고했다(노인공격) 마초는 본능적으로 유비의 위대함에 자신의 몸을 낮추었다 여기서 자존심이 낮은 애 있나?
하후돈은 연의와는 달리 돌격장수가 아니라 후방 병참담당 장수입니다. 적벽전투는 큰전투가 아닙니다. 실제로 적벽은 작습니다. 조조에게 항복한 유표병사들과 오나라와의 전투입니다. 당시 조조는 전염병때문에 병력손실없이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조조에게서 한중에서 싸워서 이길때도 참모들없이 유비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적벽전투는 큰 전투가 맞습니다. 다만 치열한 해상전이 아니었을 뿐이구요. 북방에서 뽑아온 기병이 조조군의 핵심 전력이었고 중원에서 내려온 병력들과 형주를 흡수하며 편입된 형주 병력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풍토병이 돌았고 싸우기도 전에 전력이 상실되는 와중에 황개의 거짓 항복으로 선박이 불타며 공격을 당했습니다. 주유와 유비의 군사들이 조조를 공격했다는 기록들이 여럿 있으며 조조는 강릉에 조인을 남겨두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조가 적벽에서 크게 패했기 때문에 남군을 빼앗겼고 유비는 형남을 취할 수 있었죠. 조조가 아무런 손실도 없이 작은 전투에서 패배한거라면 전쟁 후 유비와 오나라의 행보가 설명이 안되죠.
소설 삼국지로 99.99%의 읽었던 사람들이 속았다고해서 진짜가 궁금하다고 정사 삼국지를 읽을 리는 없고, 최근만 해도 기황후, 민비를 유능하고 선한 인물로 드라마 등에서 조작했어도 굳이 정사를 읽을리는 없고.. 역사 유튜버의 순기능이 바로 이런 것임. 유튜브가 존재하기 전엔 방송국(드라마 포함)이나 정부 선전팀에서 떠는 것은 곧 진리였으나 유튜브가 순기능을 하면서 부턴 제대로 정리되기 시작함. 직접 적을 보면서 말달려가서 금속 무기로 휘두르고 막고 찍고 자르고... 사람 몸을 쪼개고, 찢고, 피튀기고 하는 총기 출현 이전의 전쟁형태에서 나관중이 처럼 묘사한 사람만 좋고 유약한 유비라면 처음부터 PTSD걸려서 우울증으로 자살 했을 듯. 다시 말하면, 유비도 금속 무기를 직접 적을 보면서 휘두르고, 찍고, 쪼개고 하던 전사형 무장이었다는 것, 아니라쳐도 최소한 그런 걸 수두룩하게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도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전사임. 누군가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제대로된 소설 삼국지를 써야하는 시대가 익었슴.
마속의 예를 봐서도 사람 보는 눈은 유비가 제갈량 보다 한수 위 입니다. 그 복잡한 촉을 무난하게 이끈 사람도 유비구요
유비가 좃밥에서 황제까지 입지적인 인물임 인재도 잘보고 만약조조가 초반에 튀어나간거 아니였음 유비가 통일했을거임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야심가... 마냥 착한사람은 그 시절 살아남을 수 없었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군주. 조조가 원소를 이기고 하북을 평정하면서 상대적으로 위인것은 사실이지만 조조는 유비에 비해 출발점이 훨씬 앞이었죠. 유일한 조조의 맞수라고 생각합니다
조조 본인 빼고 휘하 장수 중에서 유비와 싸워서 이긴 인물은 조인이 유일함...
유비는 모든면에서 뛰어났지만 용인술, 정치 두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났던거 같음
정치로 권력 통일시켜준 제갈량:?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서황도 다뤄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관우,장비 등 맹장들이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던 유비 초창기때 부터 따른것을 보면 그의 카리스마가 엄청났을거라고 추정됩니다.
무력순으로 우애를 다졌다는 썰이...
유비는 밖으로는 치안을 안정시키고 안으로는 재물을 풀어 베풀며 병졸중에 가장 말단이라고 할지라 반드시 자신과 자리를 같이하게하고 같은 밥상에서 같은 그릇으로 같은 밥을 먹게 하였으며 사람을 가리거나 고르는 일이 일절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귀부했다.라고
기록됩니다.
내정을 잘하는 정치인이 인품까지 좋다면 끝난거죠 사람들이 엄청 지지했을겁니다.
이런 성품이 빛을 본것이 유평이 유비에게 암살자를 보냈는데 유비가 암살자를 늘 하던대로 후하게 대접해주니까 암살자가 감격해서
유비한테 유평이 당신을 죽이라고 시켰었다고 말했는데 유비는 그 말 듣고 암살자을 그냥 보내줬다고하죠
@@토끼빌런 아 유비최강설 있죠
관우,장비는 행동대장이고, 그둘을 유비가 조종했지
@담리나 장비가 제일 어리지 않음? 관 유 장아닌가
관우 장비를 데리고 다닌 그는 대체ㅋㅋㅋ
유비가 이렇게나 대단한 장수임을 처음 알았습니다. 잘 봤습니다.
@@LastSerenade01 1군을 데려가고 싶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 일단 이릉대전 일어나기 전에 관우, 장비, 황충, 법정이 모두 죽었음. 위연과 마초는 한중지역의 대 위 전선을 맡아야 했기에 빼올 수 없었고 조운은 후방 보급을 맡겼고 애초에 조운은 야전사령관도 아님. 그래서 고르고 고른 장수들로 치룬 게 이릉대전인데, 실제로 이릉에서 살아남은 장수들은 능력들이 출중했음. 풍습도 패배하긴 했으나 오의 선봉대를 격파하는 실력을 보면 유비가 괜히 대도독으로 삼은게 아님.
실제 유비 : 목을 잘따는 패왕. 관우 장비는 인덕에 감복해서 따라다닌게 아닌 자기보다 힘쎈 유비를 형님으로 모셨을 뿐..
맞음 오만한 관우가 남의말 들을 사람도 아닌데 그냥형님 으로 모셨다?그냥 개패듯 처패고 부하로 삼았다고 봐야 맞는듯😊
마상 쌍검술이 말이 안되는 기술임
말도안되게 어렵고 실상 말을 몸으로만 조종해야하는데 진짜 말이안되는 소리임
시발 잘때도 같이 잔다고해서 우애에 감동받았는데
이거보니 아우들 사고치러다닌다고 같이자면서 감시한거같아서 소름돋노
@@fxxkup11 근데 오만한게 유비탓아님? 첨부터 오만한건 아니었는데
@@L류자키 실제로 당시에 등자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터라 마상 검,궁술이 쉽지 않았을 시기였죠. 말위에서 균형잡기도 힘든 시기에 마상 쌍검술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자존심 개쌘 관우와 장비가 끝까지 충성을 다한인물이 바보일리가 있나
술먹고 곤조부리고 자신을 과신해 적장을 무시하는 관우장비를 데리고 다닌것만봐도 자잘한건 그닥 터치안한듯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았던 둘이 유비에게 충성을 다한 것으로 보아선, 주먹싸움으로는 그 둘을 조져버릴 수 있는 역량이 있었을 것임
진수가 쓴 삼국지
@@user-q389곤조X (일본말) / 근성O
@@user-q389장비 실제로 술안먹음
유비패왕설, 아마도 어느정도 진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의에서 전투력이 너프먹다 못해 두 아우들에게 의지하는 수준 정사에서는 관우와 장비를 무력으로 다스린다는 소문이?
여단장급 지휘관이었던 거죠. 이릉대전 규모의 전술 운용은 유비의 능력 밖이었던 거고.
법정 방통의 요절이 너무나 아쉬운 부분.
장비가 죽은게 너무 컸어요
부사령관이 듣보잡 풍습이라니
@@가시나무-k7i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진짜 기가막혔던
유비가 대도독에 임명한 것 보면 촉의 2세대 장수들 중 으뜸이긴 했을 것 같은데 너무 정보가 없죠 ㅜ
@@MayHaRu85 그게 촉의 풍습인가봐요
@@가시나무-k7i 풍습은 듣보잡 수준까진 아닙니다. 상대가 넘사벽인 육손이라서 그렇지......
@@유영민-b9b 유비가 중책을 맡겼으니 능력은 좀 있었겠지만 기록이 빈약해 알 수가 없습니다.
기록상 풍습의 실책이 패배의 규모를 키웠죠.
생각보다 유비가 능력이 좋았네요
희대의 뻥쟁이 나관중..
그래서 군사는 방통-법정으로 임명했고
보는 눈이 탁월했네
영상을 보며, 익히 알았고 들었던 사실이지만, 유비의 능력이 모든분야에서 탑급 이었던건 맞는거 같습니다.
실제로 다른사람의 공으로 둔갑된 전투에서도, 유비가 중추적인 역활을 했다는부분도, 이릉전투때 네임드 장수들을 빼고, 후보선수들 데리고 나간거 보면 증거가 되는 듯하네요.
그만큼 실력있고 자신있으니 언제나 그래왔던거 처럼, 작전짜고, 진행했던거 같습니다 ^^
이릉에서 다 뒤져서 네임드가 못된거지 대부분 능력있는 장수들입니다 연의에서 활약이 적어 코에이식 게임으론 능력치 적게 받은 사람들이지만 상총은 제갈량에게 군사적으로 쓸만하다는 평가도 받은 장수이고 진식 요화등도 b급중에선 상위네임드이기도하고 사망한 풍습 장남 마량 왕보등도 살았으면 활약 충분했고 황권이나 방림은 항복후 더 높게 쓰였고 게다가 사실상 이들 제외하면 촉엔 네임드 장수 마초 위연 말곤 없음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정말 유비에게 중요했던 베스트급 장수들은 상당수 남겨둔체 간것은
일단 위나라의 침공에대한 위협을 오나라보다도 위협적으로 본게아닐까싶습니다
유비집단에서 오나라를 무시한 대표적인 인물이 관우였고 그리고 관우는 그렇게 무시하다가 결국 여몽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었죠
근데 얼마안가 여몽도죽습니다
애초에 유비는 삼십년이 넘는세월동안 별다른 참모없이 전장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만큼 자신의 능력에대한 자부심도 상당했을거구여
오나라가 손권시대에 주유 노숙 여몽으로 이어지는 최고지휘관들이 다 죽은 상황이고
손견시절부터 활약했던 무장들도 여전히 활동한다지만 이들은 최고지휘관을 맡은것이아닌 일군을 이끄는 장수정도였죠
오랜기간 손가를 모셧음에도 손책 손권시절에 등용된 인재들이 최고 지휘관을 맡아왔다라는건 이들은 최고지휘관을할 통솔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이됩니다
그러니만큼 오나라의 지휘능력은 대군을 이끌 인재가 없을것이라 판단했을겁니다
어이없게도 육손이라는 참 어떤면에서는 낙하산인재가 그런 군재가 있을거라고는 예상하지못했죠
@@용가리비 구부 진도 고상 장억 왕평 눈물흘린다?
@@ruzing 유비가 이릉 쳐들어갔을때 대외적으로 능력 입증된 네임드급 말하는듯요
군재 정치 매력통솔 전부85이상되는올라운더임
ㅋㅋㅋ 촉빠 나관중은 유비를 까고 적국 진수는 유비를 치켜 세웠군요 ㅎㅎㅎ
쌍고검을 쓴다는 것은 엄청 무술 실력이 좋다는 뜻임
제갈량 : 삼고초려... 말은 좋지 하지만 선제께서 3번째 찾아오셨을 때를 생각하면...어후... 하지마라...
??? : 그날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죽기직전까지 맞은걸 생각하면... 살기 위해서 무조건 형님이라 부를수밖에 없었다.
쌍검을 즐겨쓴 유비. 인간의 인지구조상 쌍검을 들고 싸우는건 매우어렵거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유비 최강자썰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님ㅋㅋ
유비패왕설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정사의 내용들이네요 😂 굿이애요
생각해보니 연의에서 중요한전투인데도 유비가 중요장수들을 두고 혼자 출진하는경우가 많았는데 정사기준으론 촉에 대부분승리가 유비나 법정이 해낸거라고 하네요ㅋㅋ제갈량은 내정용
3:48 이 대사는 연의에서도 조조가 비슷하게 하죠. 근데 그럴떄마다 자꾸 누군가(조운, 장비, 관우) 튀어나오는....
유비는 연의처럼 착한 바보가 아니라 명분과 인품도 갖췄지만 똑똑하고 능력있는 인물이었던 듯. 정사 기준 조조의 최고 무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인 부대만 제외하고 수많은 조조의 부대가 유비에게 발렸죠.
나관중이 사람 좋은 이미지로 만드려던 게 오히려 마이너스였던 유비
우와아아아 유비님!!!!!
무력으로 큰형님이 된게 사실일꺼 같다는 생각이 드네.
연의에 나왔던 지략의 제갈량은 사실 유비였음
박망파와 형주점령은 유비
입촉은 방통
한중공방전은 법정
남정과 북벌은 제갈량
연의의 제갈량의 군사전략은 전부다 유비의 계책임 유비는 무력도 상당했다고 함
유비 패왕설 ㄷㄷ
패왕 맞음. 저 인간이 의외로 장난 아닌 게 서주 대학살 시점에선 하비말곤 나머지는 개판낫거든요. 조조만 초토화 시킨게 아니라 착융마져 도겸은 가망없다고 튈때 광릉과 그 주변까지 약탈하고 가버렷거든요.(그나마 멀쩡햇던 남부마져도 개판 친데다가 이미 착융이 그 전에 군량 관리업무를 하면서 이를 착복해서 그 자금으로 불교 사원을 세우고 대형 불상까지 만들고 잇엇고) 즉 그 당시에 엄청난 난민이 발생햇는데 그런 그들을 구하고 심지어 부족한 군량마져 나눠주면서 지키면서 조조랑 멱살잡고 뜨잡이 햇던 인간이니까 절대 만만한 인간이 아님. 이때의 유비의 모습이 잇다보니까 유비가 인의의 대명사이자 전국구 인덕의 상징이 되서 백성들이 보면서 그렇게 환호하던 게 아니니까요.
두한이성님은 야인시대로 ... 여기서 이러시면안됨니다
실제역사 속 유비 가 연의속 유비 보다 약은데다 유능하나요?
유방도 상대가 조조였으면 졌을듯 인재를 놓칠리가 없고 본인자체도 굉장히 뛰어남
유방이랑 왜 비교함
유방 상대는 여포 상위호환정도니 납득가는
유방이 뛰어난건 사실이라도
상대가 하드트롤러라 이길수 있던거 아닐까
@@성이름-y4j4s 원래 유방이랑 자주 비교거론됨
@@성이름-y4j4s 위왕 앞에서 유방도 별거 아니라는거지
의외로 굵직한 전투는 전부 유비의 업적
이릉...ㅋㅋ
연의 최고 피해자이자 최고 수혜자라고 봐야 하지 않을지...
소설 삼국지 연의에서
최고의 수혜자라고 주장하셔야 합니다.
유비는 한나라 황실후손이 맞습니다.
비록 마지막 찌끄레기 별볼일 없는 자손이라고 해도 한나라 황실의 후손은 맞습니다.
또한 두 번째 하이라이트
유비가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비전과 목표가 아니라
과거의 좋았던 시대로 복고시대로 회귀할려고 했습니다.
삼국지는 후한 말기로써
좋았던 시절이 아니라
🎀^완전하게 갱신^😺💖😸💖😻💖🐱💖😼💖😽💖😻💖🐱💖😸💖😺하고
🎀^완전하게 경신^😺💝😸💝😻💝😼💝😽💝🐱💝😼💝😻💝😸💝😺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목표와 비전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새로운 시대의 비전과 목표가 아니라
복고시대로 복귀 및 회귀할려고 했고
조조같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거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단 하나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독우를 매질한건 장비가 아니라 유비
순간 머릿속에 스쳐가는 나자렛 유비설
애초에 유비가 대단한이유는
조조랑 손권이랑 다르게 시작점이 다르다는것이 큰거같음. 조조,손권 모두 가문덕을 많이봤지만 유비가 가진거라고는 유씨성하나로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100m 달리기를 한다고 치면
유비는 프로가 0m지점에서 스파이크 신고 뛰는거고
손견은 프로가 30m지점에서 스니커즈 신고 뛰는거고
조조는 프로가 60m지점에서 구두 신고 뛰는거고
원소는 준프로가 80m지점에서 구두 신고 뛰는거고
이릉대전도 손권에 의해 익주목으로 임명된 유장과 기존 익주파 내부 호응에 의한 반란 가능성을 막기 위한 포석인 듯
손권이 형주 먹기 위해 그리고 그 이후에 촉한에 했던 내부 공작이 상당히 치밀해서 내부 분열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오를 선공할 수 밖에 없었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더군요
역시 누상촌 돗자리파 보스
연의 기준에서 봐도 유비가 얼마나 머리를 잘 굴리는 지 나오기도 하는데.ㅎ
10원한장 없는 그지가 황제가 됬는데 대단한 인물이지
독우가 레전드인게 착하기로 유명한 유비를 빡치게 만든 몇안되는 빌런임 ㅋㅋㅋㅋㅋ
흙수저에서 황제까지 유비대단하지
와 연의에 나온것보다 유비의 군지휘능력 및 전투력이 높다는건 알았지만 설마 서촉을 거의 혼자 박살낸건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애초에 그렇게 무능했으면 관장조가
따라다니고
조조가 주목을 했을리가
내가 조조면 속터질듯 통일해야
자꾸 나타나서 방해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중국인들이 촉한을 그리워하죠. 진나라가 통일 32년만에 몰락하고 명나라 전까지는 통일 한족왕조가 들어서지를 못했으니.... 삼국지연의가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구요. 그리고 삼국시대의 흔적이 재대로 남아있는곳은 그나마 촉한이 있던 익주지역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수있죠. 건업이야 남조의 수도이자, 주원장의 시발점, 난징대학살 등등 너무많고 위나라의 허창은 뭐.... 더 잊혀진 곳이라.
당나라도 한족국가긴 했음. 선비족이랑 믹스긴하지만
진수는 촉한 사람인데……… (나중에 진나라 사람이 되지만)
그오래전 역사에 이름한줄 남겼다는거 자체가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던거지...
일단 황건적 적부터 삼국 시절까지 살아남아 한 국가를 세웠다는것만 보더라도 그냥 무시받을인물은 아니다
삼국지 관련 게임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거물급 영웅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같은 당대 최고급 인재들이 진짜 ㅈ도 없었던 유비를 죽기 살기로 따른 것만 봐도 그냥 착해빠진 인물일리가 없음
주유의 후손이 주윤발 따거 라고 합니다..피는 못속인다고 할까요..
설마 제갈량의 삼고초려도 지고지순한 노력이 아니라
깡패들이 수금하러다니듯 세번이나와서 계속 협박했던거 아니었을까?
아가야 내가 또왔다 오늘이 마지막인께 뒈지던지 들어오던지 약자택일 해야할꺼요
솔찍히 이정도니 조조가 라이벌로 여겼고 그 책사들도 그리 경계한것이지..
칼이 언제나 자신의 목에 다가왔지만 칼이 자신을 죽이지못했다.......칼이 자신을 죽이지 못했다는것은 자신은 살아남았다는것...
1. 유비가 말 위에서 쌍칼을 썼다?
말허리 자기 허벅지로 붙잡고 있어야함
2. 장비는 미소년 이었다
3. 관우는 수염이 짧았다
4. 제갈량과 하후돈은 행정에 더 뛰어났다
그러니까 이릉대전 이전의 굵직했던 전투는 거의가 유비의 작품이었다는 건가? 아니 나관중 이 인간은 유비를 그냥 매력만 두고 나머지는 전부 기준치 이하로 맞췄다는 건데.. 실제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무력으로 누를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전략을 짜는데도 능해 제갈량이 했다던 책략도 유비의 작품이었네. 삼국지 최강의 무장이라던 여포와도 싸워도 될 정도일수도 있겠구만. 이건 뭐 거의 소드마스터급인듯..그러니 만인지적이라는 관우와 장비를 지 동생으로 삼지.
유비 패왕설이 맞다니깐...
마초를 질질 끌고다니며 환대했다는 기록까지 있음.
조조입장에서 유비는 자신과 같은 영웅이라 여기고 두려워했지만
손제리는 하나도 안무서워 했을듯ㅋㅋ
손권이 정치질 하는거 보면 졸라 야비하게 잘함
상대가 a랑 b중에 하나 고르게 하는데 뭘 선택해도 손권이 손해는 안 보는 정치적 행보를 보임
유비 조조에 비하면 물려받은게 많은편이긴 함, 사실 강동 다먹은건 아빠랑 형 덕분인거라. 또 말년에 육손 내치면서 이궁의 변으로 나라 말아먹은게 너무 컸음
도원결의는 3인 쌈박질 멸망전으로 순번정하기 게임이 아니었을까
유비만큼 사람좋고 어리버리한 인물로 연의에서 왜곡된 인물 : 노숙
애초에 어리버리한 사람이면 대도독으로 주유 사후 후임으로 노숙을 임명할리 없습니다.
노숙 외교력만 봐도 연의의 개피해자임
독우를 매질한 인물은 장비가 아니라 유비였다 특히나 난세에서 연의처럼 물렁했다가는 이도저도 안됨
말단시절부터 조조가 두려워하며 경계했던 이유가 있지
유비가 실제 제갈량,관우보다 용병술이 뛰어났음. 원래 황건적의난 명장이 노식의 제자였고
하북의 명장이였던 공손찬과 사형관계였음.
공손찬과는 노식의 같은 제자에영 사제관계는 아님 ㅋㅋ 엄밀히말하면 사형사제지간
사람보는 눈 초S급
위연이 유비한테 안 개기는 이유가 그거였나
하긴, 삼국지에서 위연이 개기지 않은 상대는
유비, 관우, 장비, 조운, 마초 정도 뿐이지ㅋㅋ
제갈량한테도 대드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위연은 일반 병사 출신인데
유비가 위연 능력을 알아보고 3스타정도까지 키워준거니까
개길수가 없죠
진수는 촉나라 벼슬아치로 촉이 멸망할때 진나라로 가서 다시 관리로 생활하면서 서진의 입장에서 쓴게 진수의 정사 삼국지임
유비패왕설 ㅎㄷㄷ
사실 유비 패왕설을 뒷받침해줄수 있는 실존인물은 바로 한현입니다. 유비가 오자마자 항복을 쳤거든요. 근데 연의에서는 위연에게 살해당함. 유비의 패기에 항복했다고 연의에서 죽이다니!
유비형 겁나 다혈질이였어 ㅋㅋㅋㅋㅋ
A급 지휘관, 적정 지휘 병력은 최고 10-20만이고 (이상이 되면(이릉전투) 전장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 보좌관이 없으면 역습을 받을수 있음.) 무력도 방어를 뛰어 넘어 공격도 잘하니 80대수준으로 봐야함.
80대 수준까진 아니죠 70대정도는 될듯
무력 70대, 통솔력 80후반대 인물이죠. 통솔이 왜이렇게 높냐고 의아할텐데 황건적때부터 전쟁을 치뤄 적은 병력으로 숱하게 강자들과 싸워서 이기고 지고를 해온게 유비임.
코에이 삼국지도 템빨이 있긴하지만 12부터는 무려 무력도 80대임 ㅋㅋ
통솔력은 삼국지 한정으로는 90은 넘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군사 지휘관으로는 유비급이 그리 많지는 않은것 같음
촉의 최고의 지휘관 중 하나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그 공손찬이 데리고 다닐정도면 일단 힘은 존나 쌘게 맞는듯
어쩌면 관우의 청룡도는 유비가 들고 흔들었을지도 ㅋㅋ
유비 패왕설 진짜인듯...
정사에는 유비한테 사람이 많이 붙는 이유가 사람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따지는게 없어서라고 함
상대가 신분이 높든 낮든 똑같이 자신처럼 대해준다고함
진짜 몰랐다..
기마 상태로 쌍검을 쓴다? ㅋㅋㅋㅋㅋㅋ 관우랑 장비 줘패고 큰형 된 게 맞아
관우무력 98 장비무력99 유비무력100
유비는 난세를 보다못한 탁현우드에서 나온 엘프인데.. 사람으로 포장하려니 서로 말이 다른 것.
맞아! 제갈량도 엘프라구
유비사후 , 실질적으로 위나라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던 이유라고도 할 수 있을듯.
제갈량은 전후무후한 계략과 책략을 부리는 군사이기보단
뛰어난 행정가라고 할 수 있음
오히려 법정이 책략가지..
이정도면 A가 아니라 S급 장수죠
근대 정말 일까요? 거의 모든일 심지어 관우,장비,제갈량 은 아무런 없적이 없다는 뜻이잔아요
이거 그거 같은데요
부하가 뛰어난 업적을 세울수 있었던건 지휘관이 뛰어난 것이고 고로 지휘관의 능력이다
고로 지휘관이 뛰어난것이다 .. 이런 논법으로 만 든 이야기 같은데요
그리고 이런 유 비 보다 조조는 더 대단 하다구요 ?
조조는 분명 뛰어난 사람 입니다 . 매우 사악해서 그렇지
그런 조조가 라이벌로 인정한 사람이 유비 니까 약간은 맞는말도 있다는 생각도 듬니다만..
유비가 큰형이 된게 싸움으로 정한거란 이야기도 있던데 ㅎ
유비도 머리 좋은 인물인데
유비패왕설이 굳이 아니어도
유비는 항상 인생이 최전방이었으며 생존왕이었음.
이것만 해도 군사적 능력은 어느정도 탁월하다 봐야지~
유비의 군사적 면모는 삼국지연의 때문에 왜곡되고,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있죠. 이는 아마도 삼국지연의가 훨씬 후대인 명나라 때 나온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관중은 유비를 정통으로 보고 그를 미화하는 동시에 조조를 폄하하는 방향으로 서술했는데, 문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성리학 국가 명에서는 용맹하고 카리스마 있는 군주보다는 제갈량, 조운 같은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군주가 더 높게 평가 받았으니깐요.
관우장비가 의형제(무력으로) 공손찬에 들어온 조운이 유비를 보고 유비밑에 못 들어간거에 후회했다(유비의 무력에 반함 그래서 유비사후에도 충임) 황충의 투항결심은 유비가 직접오니 하겠다고했다(노인공격) 마초는 본능적으로 유비의 위대함에 자신의 몸을 낮추었다 여기서 자존심이 낮은 애 있나?
"엘프"
유비 귀 큰 놈ㅋㅋ
유비 대단한건 알겠는데 조조는 대체 얼마나 대단했던거지 ㅋㅋㅋ
하후돈은 연의와는 달리 돌격장수가 아니라 후방 병참담당 장수입니다. 적벽전투는 큰전투가 아닙니다. 실제로 적벽은 작습니다. 조조에게 항복한 유표병사들과 오나라와의 전투입니다. 당시 조조는 전염병때문에 병력손실없이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조조에게서 한중에서 싸워서 이길때도 참모들없이 유비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적벽전투는 큰 전투가 맞습니다. 다만 치열한 해상전이 아니었을 뿐이구요. 북방에서 뽑아온 기병이 조조군의 핵심 전력이었고 중원에서 내려온 병력들과 형주를 흡수하며 편입된 형주 병력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풍토병이 돌았고 싸우기도 전에 전력이 상실되는 와중에 황개의 거짓 항복으로 선박이 불타며 공격을 당했습니다. 주유와 유비의 군사들이 조조를 공격했다는 기록들이 여럿 있으며 조조는 강릉에 조인을 남겨두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조조가 적벽에서 크게 패했기 때문에 남군을 빼앗겼고 유비는 형남을 취할 수 있었죠. 조조가 아무런 손실도 없이 작은 전투에서 패배한거라면 전쟁 후 유비와 오나라의 행보가 설명이 안되죠.
연의에서와는 달리 유비는 실제 비범하고 냉철한 인물 이였죠. 유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 라고 할까요? 유비도 나이 50이 되어서야 사실상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닦을 수 있었죠.
조조군 장수중 유비랑 붙어서 전투를 이긴 장수는 조인이 유일함.
유비 : 니들(유대,왕충)이 내 상대가 되겠냐? 조조가 오면 모를까?
@@가시나무-k7i 유비 자체의 능력도 어찌보면 넘사벽. 연의에서 인간적인 부분을 강조하느라 다른부분을 너무 너프시킴.
근데 이렇게 말하면 법정 방통이 아무것도 안한사람처럼 보일거 같은데
초딩땐 유비 팬 조조 손권을 하대할정도니 커서 정사읽고 다양한시각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니 유비는 바보 조조는 나쁘지만 천재 라생각해여 손권도 잘하다가 막판에 노망나서 .. 손권만 노망안낫어도 통일할만햇는데 나머지들은 다 죽엇으니
생각을해봐라. 무슨 회사도아니고 능력이없으면 능력있는사람들이 유비밑에있겠냐? 능력있는사람들이 유비역할을했겠지....
유비가 조조보다 부족한 것은 딱 하나 자식이었죠. 조비에 비해 유선이 너무 뒤떨어졌죠. 유선이 유비만큼만 똑똑했다면 삼국을 통일했을것임
삼국을 통일 했을거란 말은 개오바인듯
불가능함
걍 조조 능력이 유비 위지 자식 아니라도
황충 죽곤 답없죠 실제론 사방장군중
필드뛴건 황충뿐 나머지는 통일대업
별로 관심없고 촉나라에서 방귀점 뀌는걸로 만족한듯 보입니다
유선이 똑똑했어도 촉의 고질적인 인재난 때문에 그닥
소설 삼국지로 99.99%의 읽었던 사람들이 속았다고해서 진짜가 궁금하다고 정사 삼국지를 읽을 리는 없고, 최근만 해도 기황후, 민비를 유능하고 선한 인물로 드라마 등에서 조작했어도 굳이 정사를 읽을리는 없고.. 역사 유튜버의 순기능이 바로 이런 것임. 유튜브가 존재하기 전엔 방송국(드라마 포함)이나 정부 선전팀에서 떠는 것은 곧 진리였으나 유튜브가 순기능을 하면서 부턴 제대로 정리되기 시작함. 직접 적을 보면서 말달려가서 금속 무기로 휘두르고 막고 찍고 자르고... 사람 몸을 쪼개고, 찢고, 피튀기고 하는 총기 출현 이전의 전쟁형태에서 나관중이 처럼 묘사한 사람만 좋고 유약한 유비라면 처음부터 PTSD걸려서 우울증으로 자살 했을 듯. 다시 말하면, 유비도 금속 무기를 직접 적을 보면서 휘두르고, 찍고, 쪼개고 하던 전사형 무장이었다는 것, 아니라쳐도 최소한 그런 걸 수두룩하게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도 전투에 전투를 거듭한 전사임. 누군가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제대로된 소설 삼국지를 써야하는 시대가 익었슴.
장비가 한중전에서는 술을 끊었음
그동안 유비가 술처먹을때마다 자기 존나 패서 술 끊었는데
관우 죽으니까 둘다 멘탈나가서 술처먹다 뒤짐거아닐까
유비 최강설
제갈량이 보급과 행정가로서의 능력은 탁월하지만 유비가 전체적으로 더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봄. 어찌보면 나관중은 유비빠가 아니라 조조빠일지도?
유학이 나라의 중심이었던 나관중이 글을쓰던 시대 기준으로는, 나름 유비 띄워준다고 띄워준건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찌질이
제갈량은 10만씩 북벌하면서 이릉같은 참패는 한번도 안당함. 회전에선 진적이 없고
@@jsldd-r5x ㅈ갈량은 북벌이 가망 없음을 알고 애초 지지않는 싸움을 구상한거였음
@@cho2257 뭔소리임ㅋㅋ 가능성이 낮을정도로 국력차 나고 보급 빡센건 맞지만 제갈량 죽기전까진 위나라 최대 숙적이었음. 1차북벌때 남양 안정 천수 점령당하니 위나라 정사에 천하가 진동했다고 기록하면서 조예가 친정까지함. 3차땐 무도 음평 뺏기니까 대오전선의 사마의까지 기산으로 소환됐고 그나마도 4차에서 사마의 본대가 회전에서 첨으로 대패당하고 장합이 죽음.
안지는 싸움을 한건 오히려 수성만 한 사마의 쪽이고 제갈량은 회전을 원했음. 참고로 위가 촉이나 오에 비해 기병비중이 높아서 회전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데도 회전 털리고 수성만 한거임.
님이 생각했을때 안지는 싸움이 이거임? 아님 전군 자오곡으로라도 갔어야함?ㅋㅋ
개쓰레기까진 아니더라도 관우 장비 끌고 다닌거 보면 인내심이 상당하는걸 알수있음 관우 장비는 지휘관으로서는 쓰레기임 오죽하면 한중태수를 위연에 맡겼을까????
관우한테는 형주를 맡겼는데......
장비는 위나라 1티어 장합을 이기고
관우한텐 더 큰 형주맡김; 글고 장비는 최소한 군재는 ㅈㄴ뛰어남
관우는 몰라도 장비는 지휘관으로서 능력도 상당한편
애초에 유방 후손
유비 쌍검의 고수 맞음?
쭝궈 관우신 숭배는 다 구라였던거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