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소가 조모를 대낮에 살해한 행위는 어찌보면 수백년간의 중국 대혼란기인 오호십육국 및 남북조시기를 여는 서막이었죠. 최소 조위는 선양이라는 절차를 통해 명분적으로 하자를 줄이고 유혈사태를 피했지만, 사마소의 황제살해는 명분따윈 개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게 되면서 이게 엄청난 역효과를 나게 합니다.
이미 거사를 치를만한 측근이라고 부른 왕침, 왕경, 왕업이 사마씨 사람인거부터 글러먹은 상황이고 설마 찌르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찌를 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이게 정사일 확률이 높은게 외적이 아닌 사람이 황제를 칼로 즉결처분한다는거 자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례적인 케이스라 이걸 진수가 구라쳤을 리가 만무함.
@@kanekingnose 그래도 번건에게 한 소리 듣는 건 나음. 번건 하는 말에 의하면 등애 같이 억울한 사람도 신원회복 못하는데 충성 바쳐서 일해봐야 공적을 위해서 토사구팽이나 안당하면 다행이지라는 심리가 들텐데 아직도 회복 안하는건 뭐임? 같은 거라서 충신이 간언하는 거 같은 분위기라도 되는데 석숭하고 왕개가 돈 ㅈㄹ하면서 하사품 부수고 그 하사품보다 더 큰거 넘친다고 아에 몇십개씩 턱턱 던지고 노는 것도 못 막는 수준이니까 번건에게 욕 먹은건 그나마 양반인거임.
애당초 조모가 친위대 이끌고 가기 전부터 어차피 쟤들 정통성 때문에 나 건들이면 쟤들도 같이 죽음. 그리고 한다고 해도 꼭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라고 말한거고 보면 날 죽이면 쟤들도 진짜 답 없는 것들이라 날 죽이면 같이 정통성이 그냥 나락가는거고 생각 있어서 날 살릴 수 밖에 없는데 근데 그럼 본전임. 이렇게 말하고 간거임. 성격이 급한거랑 별개로 상황판단은 확실하 하고 한거임.
조모가 너무 성급했던 탓도 있음... 아직 자신만의 세력 구축 덜 된 상태인데 못참겠다!라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움직인게 너무 안타까움... 물론 이미 위나라 대부분이 실세 권력가 사마소에게 엎드려 절하는 상태라 세력 구축이 되겠냐라곤 할테지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을 인용하고 그리고 옆 오나라의 손휴처럼 인내심을 가지며 했더라면 권력 탈환 가능했을지도 모름
웃긴점 조조 싫어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은 역적에 대항한 고귀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주로 이름 ㅋㅋ 그리고 조선도 조조의 평가가 박하였는데 정작 조모에게는 호의적이었음 어떤 야사 모음집에서는 죽고 나서도 생기가 있었다라고 하며 영조는 신하랑 말할때 "솔직히 헌제보단 조모를 높게 평가함 ㅇㅇ"이랬음 ㅋㅋ
@@이환영-s7p잘먹고 잘 살게만 해준다고 가축의 삶을 살고싶으심? 인간이라는게 명예가 있어야 인간이지. 그의 황후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맨발로 끌려나가 죽임을 당했고 황자 둘도 참수당함. 동귀인은 임신한 상태에서, 헌제가 보는 앞에서 끌려나가 참수 당했고. 괜히 망탁조의라는 말이 있는게 아님.
이 사건이 정말 큰 것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직 왕위에 있는 채로는 직접 죽이는 일이 없었거든요. 적국의 왕이 아닌 이상 최소한의 절차라는 게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전통이고 예법이었구요. 동진의 황제가 자기 조상들 건국과정 듣고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게 이런 것 때문이죠.
조모가 성급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 이미 신하에게 모든 권력과 군권을 찬탈당한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봐야 자기도 헌제꼴만 났을거라는걸 잘 알았던거지 사마사에서 사마소로 권력이 이양됬을 때 생긴 틈을 자신의 목을 걸고 노려보는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함. 조모에게 불운이 있다면 사마소와 가충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SHIP세끼였다는거지
ㅋㅋ 고려말 우왕하고 이성계 역사하고 비슷하네요. 아무튼 저런 환경에서 권신을 박살낸 인물이 있었죠.. 청나라 강희제라고.. 강희제는 몽골씨름을 좋아하는척 하면서 몽골씨름 선수들과 어울려서 우정을 다진뒤에 느닷없이 입궐한 오배를 몽골씨른선수들과 잡아버렸죠. 이가 없으면 잇뭄으로 ㅋㅋ
아무리 조모 황제가 칼을 들고 날뛰었더라도 그물을 던져서 생포할 생각을 했어야지 불문곡직 창으로 찌르면 당연히 황제 시해범 소리를 듣게되는 것이지. 결국 이는 서진 자체가 정통성 없는 듣보잡 국가였다는 반증이 되어 백년간의 삼국 혼란기를 통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단명하게 동진으로 쫒겨내려가고 아시아의 중흥을 이룬 5호16국시대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임.
남에 손에 죽은 황제야 중국역사에선 쎄고쎘는데 백주대낮에 사람들 다 보고있는데 신하손에 칼맞고 죽은 황제가 조모가 유일함. 진태말대로 사마소가 책임질꺼 아니라면 가충이라도 숙청했어야 했음. 최소한 가충을 베었으면 가남풍이 황후가 되지못했을테고 그럼 8왕에 난도 2왕에 난 정도로 끝났겠지.
능력 있고, 머리 좋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보통 간과하는 게 있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 즉, 이런 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합니다. 사마의가 그렇게 기다린 게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엔, 반란군들(?) 앞에서 칼까지 빼 들어야 하는 상황까지 갔던 조모는 그다지 능력 좋은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왕이니까 역사에서 잘 써준 거죠. 기록만 따지면 탄핵당한 박근혜씨는 5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분이니까요. 여튼 조씨 가문은 조조 이후로 죄다 스포일드 차일드 들만 나오다가 망한 전형적인 졸부 집안이라 봅니다. 물론 사마씨 집안도 그닥 다르지는 않지만요.
사마염이 진짜 별거 아니었기 때문에, 존버 했으면 조씨왕가가 더 길어질수도 있습니다. 사마의가 179년 생이고 고평릉사변이 249년이죠. 거의 70에 정변을 일으킨 겁니다. 사마염의 제위기간을 봅시다 265년 부터죠. 조모가 살해당한건 260년이에요. 그것도 19세죠. 어린나입니다. 265년에 선양하고 10년간 세력을 키워도 34에요. 조선의 정조도 초반에 목따일 만한 위기 많이 있었습니다. 진짜 한번은 죽을 뻔한걸 홍국영이 막아요. 차큰 차큰 힘모으로 사람모으로 2자릿수로 시작한 장용위가 장용영이 되고 군대가 되잖아요. 구선복이 죽은게 정조 10년 이에요. 얼마나 목을 따고 싶었을 겁니까. 여기에 있는 일반인들이야 10년 존버타나 마나 지만, 조모는 똑똑한 왕이거든... 그게 화근이에요. 이 말같지도 않은 상황을 받아들일수가 없는거지.
사마소가 조모를 대낮에 살해한 행위는 어찌보면 수백년간의 중국 대혼란기인 오호십육국 및 남북조시기를 여는 서막이었죠.
최소 조위는 선양이라는 절차를 통해 명분적으로 하자를 줄이고 유혈사태를 피했지만, 사마소의 황제살해는 명분따윈 개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게 되면서 이게 엄청난 역효과를 나게 합니다.
중국 최고의 전성기 다시 와야할 16국 시대
조모의 위치가 저리 위태로워져서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데에는 조모 전전 황제였던 명제 조예가 후계자로 근본조차 알수없는 이상한 애를 데리고 와서 황권 약화되게 만든 거 또한 크게 일조했다고 봄….
조비가 황제가되고 외척세력 형제들까지 모두 쓸어버리고 10년도안되 죽었기떄문에
그때부터 황실위치가 불안정했음
조예때에는 황실세력따위는 거의없었고 조상같은 병신만 있었을뿐
조예가 일찍죽어서 그럼..
이 채널에 감사드리는게 최근 갑자기 삼국지 후기가 궁금해서 막 찾아보고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이 채널에서 얼마전부터 다뤄주셔서 신기하고 고맙습니다❤
이후 사마염이 바보 아들을 황태자로 세우고 그후 팔왕의난으로 개판되면서 이민족 불러들인게 5호16국 시대의 시작...
사필귀정이라고 조조와 조비가 한 일들이 손자 대에 가서 그렇게 돌아올 줄 어찌 알았을까
결국 그러한 사마씨도 엄청난 벌을 받게 되고...
위나 진이나 어차피 다들 역적
인생은 돌고도는법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죠
망탁조의가 거기서 거기죠
이미 거사를 치를만한 측근이라고 부른 왕침, 왕경, 왕업이 사마씨 사람인거부터 글러먹은 상황이고 설마 찌르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찌를 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이게 정사일 확률이 높은게 외적이 아닌 사람이 황제를 칼로 즉결처분한다는거 자체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례적인 케이스라 이걸 진수가 구라쳤을 리가 만무함.
조모시해사건을 사마소 후손인 동진의 명제 사마소 조차 부끄러워 했다고하니...
능력면에선 분명 뛰어났지만 정작 호응할 수 있는 세력이 너무 없었음.
다만, 사마소 측 세력에서도 성급한 게 그냥 적당한 때 폐위각을 잡았어야 했음에도 기어이 죽음에 이르게 해서 그건 그거대로 성급했음.
백주대낮에 허수아비라지만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을
그것도 될성싶다고 평가받는 군주를 시해했으니
이건 정통성 없고 막장이었던 송제양진 남조시대에도 안하던 짓거리였지
조모도 그거 노리고 한 짓이긴 햇엇고 실제 조모가 죽어버리니까 이후 서진에서 지들끼리 돈 ㅈㄹ하다가 황제의 하사품까지 부수고 난리치면서 하는데 건들이지도 못햇다고 하잖음. 정통성이 바닥을 기어버리다보니까 말이죠.
@@이주표-g2z그래서 황제를 안죽이죠.
어 황제 죽였네
나도 죽여도 되겠네
이렇게 됨😅😅
그 모지리 이각,곽사도 황제는 안죽였죠.
당장 사마염시기 촉에서 온 대신인 번건에게 제갈량같은 신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번건이 죽은 등애나 챙기십쇼식으로 대답했다 합니다.
이게 그때 서진황실 현실이었죠. 자기가 정복한 땅의 신하출신에게도 꾸중이나 듣던...
@@kanekingnose 그래도 번건에게 한 소리 듣는 건 나음. 번건 하는 말에 의하면 등애 같이 억울한 사람도 신원회복 못하는데 충성 바쳐서 일해봐야 공적을 위해서 토사구팽이나 안당하면 다행이지라는 심리가 들텐데 아직도 회복 안하는건 뭐임? 같은 거라서 충신이 간언하는 거 같은 분위기라도 되는데 석숭하고 왕개가 돈 ㅈㄹ하면서 하사품 부수고 그 하사품보다 더 큰거 넘친다고 아에 몇십개씩 턱턱 던지고 노는 것도 못 막는 수준이니까 번건에게 욕 먹은건 그나마 양반인거임.
조모 아까운 인물임 손제리보다 백배나은 인물
손제리는 유선보다 무능함
애당초 조모가 친위대 이끌고 가기 전부터 어차피 쟤들 정통성 때문에 나 건들이면 쟤들도 같이 죽음. 그리고 한다고 해도 꼭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라고 말한거고 보면 날 죽이면 쟤들도 진짜 답 없는 것들이라 날 죽이면 같이 정통성이 그냥 나락가는거고 생각 있어서 날 살릴 수 밖에 없는데 근데 그럼 본전임. 이렇게 말하고 간거임. 성격이 급한거랑 별개로 상황판단은 확실하 하고 한거임.
@@이주표-g2z국어 시간에 졸았나?
조모가 사마씨 제압하고 후에 어떻게 변할지는 모름
황제라면 저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그래서 황제를 안죽임
부하가 황제 죽이면
자기 부하도 칼거꾸로
자기 죽일수도 있음.
그래서 정통성을 따져서
양위를 받는거죠.
황제 시해범으로 황제가 되면 중원전체에 니들도 나 죽이면 충신 혹은 좋은 대의 명분으로 권력 가져갈 수 있다고 원피스 열어주는 꼴.
사마씨의 업보= 8왕의 난
@@규리의하루-h6x사마씨들 개인의 입장에선 업보가 맞음. 솔직히 저 동네가 1년도 못간 왕조도 많아서 2년도 그렇게 드문 수준도 아닌데(원술이 2년) 1년도 못간 천하통일은 아니엿지만 그게 짧긴 햇으니 자기들 집안 기준에선 업보임. 자기들이 몇백년씩 그걸 오래 누리진 못햇으니까요. 유씨 집안마냥.
영가의난
조모가 너무 성급했던 탓도 있음... 아직 자신만의 세력 구축 덜 된 상태인데 못참겠다!라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움직인게 너무 안타까움... 물론 이미 위나라 대부분이 실세 권력가 사마소에게 엎드려 절하는 상태라 세력 구축이 되겠냐라곤 할테지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을 인용하고 그리고 옆 오나라의 손휴처럼 인내심을 가지며 했더라면 권력 탈환 가능했을지도 모름
조금만 신중하게 도모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성급했음 사마의도 반평생을
기다렸는데 스물남짓한 황제가
똑똑하고 현명한사람이라 존버하면
분명 기회도 있었을듯한데 너무 아쉬움
신하가 존버하는 거랑은 다르죠
헌제가 될가능성이 높습니다... 헌제의 사례를 알기에 조모는 구차하게 사느니 그냥 갈때가더라도 사마집안 흠짓내고 간거죠 그결과 사마염이 찬탈하고 신하들도 황제알기를 우습게 알게됨
존버해서될거같으면 세상에 쫓겨나는왕은 하나도없었겠지..
조조의 후예들은 잘 모르겠는데. .사마씨의 후예들은 오호십육국시대에 사마씨 사냥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짐. .
헌제도 총명했다는데.. 그 오랜기간을 존버했어도 기회란게 없었잖음..
머, 애석할 것도 없는게 조조가 유능한 군주였고 영웅이지만 한나라 입장에서는 한나라를 망하게 만든 역적인지라 한나라를 멸망시킨 조조 일가가 조조랑 성격이 거의 흡사한 사마의의 후손들 손에 멸망당하는 것도 뿌린 대로 거둔 거라 딱히 애석할 것도 없고 ㅋ
웃긴점 조조 싫어하는 중국 본토 사람들은 역적에 대항한 고귀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주로 이름 ㅋㅋ
그리고 조선도 조조의 평가가 박하였는데 정작 조모에게는 호의적이었음 어떤 야사 모음집에서는 죽고 나서도 생기가 있었다라고 하며
영조는 신하랑 말할때 "솔직히 헌제보단 조모를 높게 평가함 ㅇㅇ"이랬음 ㅋㅋ
재미있네요. 역사가 계속 반복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군요. 역사를 배우지 않아도, 배운사람도 반복하는 거 보면 인간의 본성을 역사지식이 이길수 없는 거 같네요.
가장 많이 틀리는 문법입니다. 기자들까지 틀리더군요. 4:13 황제로써 (X) 황제로서 (O)
조모가 조금만 자중했어면 곧이어
사마씨가문에서 막장드라마가
나타나서 어떤변수가 생길수도있었는데
모지란척하며사는지혜를배워야됨
조비나 사마염이나 오십보백보인대
총명했던 헌제가 아무것도 못하고 찬탈당한걸보면
조모가 사마소가 죽을때까지 기다렸다고해도 크게 달라질건 없어보임
공자 맹자가 괜히 도덕 명분 강조한 게 아닙니다... 황제를 쳐죽여서 황제가 되어 충성하라 하면 그게 제대로 될 리가.
가충딸이 복수해줌
남풍이누님이 제대로 한건하셧쥬
ㅋㅋㅋ역대급 간신집안
가규는 조씨를 도와 유씨를 망하게 하고 가충은 사마씨를 도와서
조씨를 망하게 했으니 또 그의
자식은 누굴도와 사마씨를 망하게 할까??라고 했다던데 가남풍ㄷㄷㄷ
아아... 가머니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유씨들에게 한 짓을 돌려 받은 셈..
인과응보
역사는 반복된다
조씨는 유씨 안 죽였음. 헌제 양위하고 잘 먹고 잘 살았음.
@@이환영-s7p 나라를뺏엇잖아 그게 산거냐
@@이환영-s7p잘먹고 잘 살게만 해준다고 가축의 삶을 살고싶으심? 인간이라는게 명예가 있어야 인간이지.
그의 황후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맨발로 끌려나가 죽임을 당했고 황자 둘도 참수당함. 동귀인은 임신한 상태에서, 헌제가 보는 앞에서 끌려나가 참수 당했고. 괜히 망탁조의라는 말이 있는게 아님.
그럼에도 대낮에 황제를 살해한건 미친 일이지. 대낮에 정몽주를 살해하는 것과는 파장의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임
사마소를 치려면 준비라도 철저히 하던가....
중국에서는 사마씨 의 서진 시대 자체를 연구 나 발굴을 안한다던데. 워낙 막장의 역사 라
중요한건~~
조조가 세운 위나라나
사마가 찬탈해 세운
진나라나
3대를 못넘기고
골로 갔다는거지,
인생무상 이다,ㅋㅋㅋ
헌제 조모 둘다 총명했지만 순응한 헌제는 천수를 누렸고 직접행동에 나선 조모는 요절당했지..
성제도 꼬리자르기로 9족을..멸당하고 자신의행동이 멸문지화 당할껄 예측못했나싶다
차라리 죽더라도 황제편에 서는게 낫지않았을까? 마지막 충신소리라도 듣게
조모가 거사를 치루기전에 이런 식으로 말하죠
저 놈들이 날 쉽게 죽이지는 못한다
만약 죽여도 후세에 역적으로 평가될것이니 손해보는게 아니다라고
왕침 왕업이 입꾹닫할때부터 그냥 바로그자리에서죽여버렸으면 됐었고, 3년만더기다렸으면 종회가촉에서반란일으킬때 부하관리못한사마소를 대놓고 탄핵할수도있었고 관구검 제갈탄이 반란일으켰을때 종회의 권력욕을 눈치챘으면 공을 종회에게 돌렸으면 사마소는 그때부터 종회견제했을터이고 그렇지않더라도 진태를 수족으로삼았으면 일을도모하기엔 더쉬웠을터임
진짜 용기는 호랑이가 집돼지가 되는 수모를 참는 것이다. 조모는 참을성이 없었던 거지! 징기스칸, 티무르, 주나라의 문왕의 인내를 배웠다면, 이길수 있었을 텐데,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조조의 지혜가 없었다고 봐야지!
공양왕과 이성계의 관계와 비스무리 했네요.
이 사건이 정말 큰 것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직 왕위에 있는 채로는 직접 죽이는 일이 없었거든요. 적국의 왕이 아닌 이상 최소한의 절차라는 게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전통이고 예법이었구요. 동진의 황제가 자기 조상들 건국과정 듣고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게 이런 것 때문이죠.
이사건때문에 사마소의황제자리는 날라갔죠
사마소가 올라갔으면 그 순간 나도 사마소 죽이고 황제나 상국 된다고 진나라 분열 ....ㅋㅋ
헌제 : 존버도 기술이다 이거야
헌제도 몇번 부딪혀보고 안된다는걸 알고 오래사는쪽으로감
우리나라도 고려 우왕이 내시들 이끌고 이성계 집 습격한 사건 있었죠
조모가 뛰어났으나 당시 사마사나 종회등이 너무 뛰어난인물들이라 상대가안됬음
딱히 조모가 꿇리진 않았던거 같네요 그것보단 세력이 너무 없었던거죠
사마씨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한것일지도. 다만 조모 개인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헌제를 배워서 편하게 사는 길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음
5년만 버텼으면 사마소 자연사하고 사마염이 뒤를 잇는데 정치적 감각이나 모략은 한참 뒤떨어져서 사마일가 숙청인대 너무 급했음.
조모가 성급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 이미 신하에게 모든 권력과 군권을 찬탈당한 상황에서 시간이 흘러봐야 자기도 헌제꼴만 났을거라는걸 잘 알았던거지
사마사에서 사마소로 권력이 이양됬을 때 생긴 틈을 자신의 목을 걸고 노려보는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함.
조모에게 불운이 있다면 사마소와 가충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SHIP세끼였다는거지
서주 대효도의 업보가 그 자손에게 이어진 게지.
역적의 대명사인 그 흉악한 동탁조차도 소제를 대놓고 죽이지 않았고 폐위 후에 독살시켰는데 동탁보다 더한 놈이 있을 줄이야..
그 전 황제 노릇하던 조상이 문제였지 만약 조상을 거치지않고 조모에게 그대로 이어졌으면 사마의가문은 어떻게 됬을지 몰랐다
조상이아니고조방
조상은실권자
그 순간 당장 사마씨가 문제가 아님
두씨,환씨계와 진랑등 씨다른
황족 대우받던 놈들이 대 난장판을
벌였을 가능성이 매우 커짐
ㅋㅋ 고려말 우왕하고 이성계 역사하고 비슷하네요. 아무튼 저런 환경에서 권신을 박살낸 인물이 있었죠.. 청나라 강희제라고.. 강희제는 몽골씨름을 좋아하는척 하면서 몽골씨름 선수들과 어울려서 우정을 다진뒤에 느닷없이 입궐한 오배를 몽골씨른선수들과 잡아버렸죠. 이가 없으면 잇뭄으로 ㅋㅋ
아무리 조모 황제가 칼을 들고 날뛰었더라도 그물을 던져서 생포할 생각을 했어야지 불문곡직 창으로 찌르면 당연히 황제 시해범 소리를 듣게되는 것이지. 결국 이는 서진 자체가 정통성 없는 듣보잡 국가였다는 반증이 되어 백년간의 삼국 혼란기를 통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단명하게 동진으로 쫒겨내려가고 아시아의 중흥을 이룬 5호16국시대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임.
남에 손에 죽은 황제야 중국역사에선 쎄고쎘는데 백주대낮에 사람들 다 보고있는데 신하손에 칼맞고 죽은 황제가 조모가 유일함.
진태말대로 사마소가 책임질꺼 아니라면 가충이라도 숙청했어야 했음.
최소한 가충을 베었으면 가남풍이 황후가 되지못했을테고 그럼 8왕에 난도 2왕에 난 정도로 끝났겠지.
사마사라면 인맥 동원해서 조모를 잡지 죽이진 않았을거요. 근데 조방을 페위한게 실수지. 목숨 버려 같이 유폭 터트리는 인간이 나왔으니까.
간신배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훗날 사마씨는 오랑캐에게 개 털리는 영가의 난이라는 굴욕을 얻게 되고 동진 말기 유유에게 모든 후손이 멸족당하는 저주를 받으니... 역사는 돌고 도는 듯 합니다.
재위 중인 황제를 죽인 게 서진이 빨리 망하게 된 결정타.
조조 가 저걸 보고 어떤 말을 했을고 자업자득? 후회? 한탄? 슬픔?
헌재에 대한 업보? , 주원장이 소명왕 한림아에 대한 처분 보다..
조모의 기개가 대단해 보인다.
조비가 겁박해서 뺏은 황위를 다시 사마씨에게 겁박당해 빼기는구나...너는 예외일줄 알았지?
조조는거의지가나나새운거잉
조조에게 항상갈굽당한 사마씨일가 당연히 싫어하지.씨앗을 제거할려는 오랑케인데 누가 좋게봐
헛똑똑이 조모 😊😊😊
ㅋㅋㅋㅋ 지들 할배도 저 자리를 무력으로 뺏었으니, 조씨 니들도 그렇게 당하는 것은 인과응보로써 뭐 별로 억울할 것도 없는 일 아니냐. 니들에게서 권력을 뺏은 사마씨도 결국 비참하게 멸문했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아라.
정말 성제가 시원하게
잘죽인 황제
급발진은 필패인데
까불다가 대낮에 킬당함 ㅎㅎㅎ
겁나 추한 인물
차라리 평민집에 태어났더라면
내세에는 제왕가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무소불위의 권신 최충헌을 도모하려다 폐위된 고려 휘종이 떠오르네..!!
영상을 끝까지 다 보면
조모는 영민한게 아니라
개 빡대가리인데요
고3일때 죽었으니... 열혈 남아 ㅋ
능력 있고, 머리 좋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보통 간과하는 게 있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 즉, 이런 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합니다. 사마의가 그렇게 기다린 게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엔, 반란군들(?) 앞에서 칼까지 빼 들어야 하는 상황까지 갔던 조모는 그다지 능력 좋은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왕이니까 역사에서 잘 써준 거죠. 기록만 따지면 탄핵당한 박근혜씨는 5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분이니까요.
여튼 조씨 가문은 조조 이후로 죄다 스포일드 차일드 들만 나오다가 망한 전형적인 졸부 집안이라 봅니다. 물론 사마씨 집안도 그닥 다르지는 않지만요.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냥 수백명으로 치러 갔다고?
비밀리에 한 것도 아니고 사마씨에게 가서 발설할 사람과 논의하고?
근데 사마소도 일찍뒈지지읺나?ㅋㅋㅋㅋ .5 6년만 더기다렷다면 조모vs사마염 이리 사마염이 밀렷을거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
종회가 그랬다 종회 때문이다
조조가 환생했다면 사마소를 이겼을까?
요즘 무림판에서 조휘가 날뛰던데
이꼴 볼려고 조조가 그리 악평들어가면서 나라 일으켰나…
이것만 봐도 삼국지 정사라해서 모두가 진실이고
연의는 전부 소설일수가 없네요
진수는 애당초 진나라사람입니다 사마염이 눈 시퍼렇게 뜨고있는데
사마씨에 대해 사실을 쓸수가없는거에요
장위안인가 했네 ㅋㅋㅋ
황제라는 건 없습니다. 그냥 권력이 누구에게 있냐가 관건이죠.
조조 역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맘대로 가지고 놀았지 !! 그 업보이다 !!!
사마염이 진짜 별거 아니었기 때문에, 존버 했으면 조씨왕가가 더 길어질수도 있습니다.
사마의가 179년 생이고 고평릉사변이 249년이죠.
거의 70에 정변을 일으킨 겁니다.
사마염의 제위기간을 봅시다 265년 부터죠.
조모가 살해당한건 260년이에요. 그것도 19세죠. 어린나입니다.
265년에 선양하고 10년간 세력을 키워도 34에요.
조선의 정조도 초반에 목따일 만한 위기 많이 있었습니다.
진짜 한번은 죽을 뻔한걸 홍국영이 막아요.
차큰 차큰 힘모으로 사람모으로 2자릿수로 시작한 장용위가 장용영이 되고 군대가 되잖아요.
구선복이 죽은게 정조 10년 이에요. 얼마나 목을 따고 싶었을 겁니까.
여기에 있는 일반인들이야 10년 존버타나 마나 지만, 조모는 똑똑한 왕이거든...
그게 화근이에요. 이 말같지도 않은 상황을 받아들일수가 없는거지.
저도 정조 생각나더라고요.
조모에게는 홍국영같은 이가 없어서 그런 듯하네요.
하늘에있든 조조.유비.손권이 한 잔 하면서그랬겠다. 죽쒀서 개주었네. 우리 왜 싸운거야?
쬬 조비를 생각하면 그닥 불쌍하진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