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패튼이라해도 어려웠습니다. 이 컨텐츠에서 명확히 말하고 있듯이 맥아더 라인을 넘어서 북진하려고 했다면 미군은 패배입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바로 미군의 대규모 증강!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미국 정부가 안하려고 했죠. 중공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산악지형, 열세인 병력 때문에 측면 방어를 맡겼던 동맹국 국군의 전투력 부족. 뼈아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실입니다.
@@kdwni03 채널에서 여러번 북한군이 초반에 왜 강했는지를 다뤘고 이 컨텐츠에서도 다뤘었죠.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은 깃발만 북한이지 북한군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북한군의 6만 5천명은 모두 중국에서 항일전투와 국공내전을 치른 베테랑들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V1CZYn3MFlc/видео.html (미군은 왜 초반에 북한군에게 밀렸나?) 미군조차도 상대가 안되는데 국군은 말하나마나 입니다.
@@kdwni03 한국전의 특징이 평야에서 싸우는 그런 전통적인 전투이기보다는 산악전이 주축이 되는 그런 식의 전투이니 아마 중국에서 항일전투와 국공내전을 치른 베테랑들이라면 충분히 싸우는 법을 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에 비하면 그 당시 국군과 미군은 그런 경험 자체가 없다시피 했으니.......
사실 역사를 안다면 패튼이라해도 차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해임하는데 어쩌겠습니까? 트루먼 대통령은 중공군 개입 이후 남한만의 회복으로 아예 정책 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다만 패튼이라면 서울 입성 직후 UN승인이고 뭐고간에 국군과 함께 나란히 북진을 초고속으로 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잔인한 현실... 당시 국군은 패주하는 북한군은 상대할 수 있었으나 팔팔하게 덤비는 중공군의 공격에 버틸 준비가 안된 군대였습니다.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미군의 더 많은 증강이 필요했습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6군이 포위당한 것도 측면에 약한 루마니아군을 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보면 간단합니다. 한국군에겐 작전권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단독작전을 하더라도 미군이 화력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동부전선을 밀고 올라간 것은 밴 플리트 장군의 계획이었습니다. 그것도 미 지휘부의 눈치를 보면서 했던 그의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JzRe-rfzBjE/видео.html 밴 플리트 장군이 최선을 다해 싸웠던 이유. 사실 밴 플리트는 아예 금강산까지 진격하려고 했었지만 미군 지휘부가 그것을 막았습니다.
공교롭게도 패튼장군과 워커장군 두 분 모두 사냥취미를 가지셔서 그런지 좀 빨리 생을 마감하신것 같네요 그당시는 그런 취미생활이 대세였지만... 사냥취미를 하신분과 대화하면서 후회를 하신점을 복기해보면 내 생명만큼 남의 생명도 중요한것이고 또한 인생피크 시점에서 전장에서 승승장구를 하는 복을 누리지만 노년에 내려오는시점에서는 노력과 재능도 하늘이 거부를 하는 경우도 많으니. 여하튼 패튼장군을 존경합니다
패튼 장군이라면 일단 평지가 많은 38선 이남에는 맹활약을 하겠지만 문제는 이북에는 산맥과 엄청난 추위가 기다리고 있고 패튼이 온다면 중공군의 평더화이가 그의 호전적인 면을 잘 파고 들어서 지형지물을 활용해 기갑부대를 포위 섬멸하거나 하는 식으로 큰 피해를 줄 법 합니다. 최소한 1.4후퇴나 이후 반격에서 그 호전적인 성격으로 유엔군의 사기는 미친듯이 올려줬을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에게 처음 패배한 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국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됩니다. 그는 대놓고 국군을 욕하지 못했지만 미군 병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측면을 믿고 맡길 부대가 없다고 돌려서 한탄합니다. 결국 당시 국군은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중공군이 참전했기 때문에 미군은 그 짐을 혼자 다 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 어떤 전략가가 총사령관이 된다해도 미군이 갖고 있던 그 병력으론 맥아더 라인을 넘으면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청천강 전투 2부에서 이 상황을 매우 자세히 다뤘습니다. ruclips.net/video/hAVO0KzVsVs/видео.html (청천강 전투 2부) 쉽게 말하면 내 옆에 있던 전우가 말도 없이 후퇴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전방을 잘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후방이 위험해진 꼴이 된 것입니다.
망나니로 유명한 패튼도 맥아더에게는 꼼짝 못 했을 겁니다. 먼저 맥아더는 육군 원수인데 패튼은 4성 장군인데다가 그 보너스 군대 사건 때문에 패튼은 맥아더에게 꼼짝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그 사건의 여파로 맥아더는 육군참모총장에서 직위해제당하고 곧바로 필리핀으로 쫒겨났으니...... 실제로도 패튼이 1차대전 참전용사들을 상대로 그런 무식한 짓거리를 할 줄은 몰랐는지 나중에 패튼을 막 쪼았다고 합니다. 누가 탱크와 기마대로 밀어버리고 그들이 있는 판자촌을 다 태워버리라고 했냐고.
패튼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컨텐츠를 공개했었습니다. 맥아더가 굉장한 강성으로 보이지만 그는 트루먼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50년 9월 29일, 서울환도식장에서 38선을 바로 넘자고 했던 이승만. 그러나 맥아더는 의외로 거절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맥아더는 미군의 장군만이 아닌 유엔군 사령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UN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ruclips.net/video/7m4G36UklbM/видео.html (맥아더 장군! 지금 당장 38선을 돌파하시오!)
멕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적의 허를 찔러버린 것처럼 아마 패튼도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었을 겁니다. 단 한 번 정도는...... 하지만 그것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강력한 일격을 먹이는 것이 패튼의 장기이고 2차대전 당시에는 그런 패튼의 일격을 견딜 수 있는 독일군은 없었지만 그 대신 일격에만 집중하느라 나머지 부분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 패튼의 단점이니...... 그런데 한국전은 그 나머지 부분인 파르타잔이 제일 골칫거리였으니......... 실제로도 한국이 북진할경우 가장 골치아픈 부분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후방까지 신경쓰면서 싸워야하는 것 말입니다. 2차대전 당시 독소전에서도 독일군이 가장 골치아파하던 부분이 파르타잔 문제였으니........
중공군 고위지휘관의 언급 "미군은 협동작전능력은 우수한 데 자신의 부대가 포위될 위험에 처하면 싱겁게 뒤로 후퇴한다" 1950겨울전투시 서쪽과 동쪽간에 큰 구멍이 뚫렸던 것은 맞지만 중공군이 포위망을 완성할 만한 능력이 있는 군대는 아니었어요. 미군이 완강하게 2주정도를 한 지점에서 버티면 중공군 공세는 바로 거기서 멈추는 거였어요. 중공군이 뭐 보급능력이 좋은 군대는 아니었으니...
중공군의 보급 능력이 최대 8일 뿐이라는 사실은 1951년 2월 이후 이미 중공군에게 당할대로 당한 후 즉 서울까지 다시 내준 이후에 비로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가 되면 미국은 전쟁을 승리가 아닌 협상으로 끝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ruclips.net/video/R8PVjkC8sXA/видео.html (휴전 이전에 금강산을 탈환하라! 한국을 가장 사랑했던 밴 플리트 장군의 야심찬 작전.)
잘 봤습니다 근데 용두사미로 조금 끝난 부분이 있지않나 싶습니다. 큰틀에서 보자면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의 큰 성공으로 도취가 되어서 실수했다면 패튼은 어렵게 올라갔으니 더 신중하게하지 않았을까합니다. 전선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중공군의 참전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패튼은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착실하게 다지고 올라갔으니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따라서 신중하게 북진했을거라 했는데 동의합니다. 이 컨텐츠에서도 그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도 처음에는 맥아더 라인에서 미군은 전진하지 않고 국군만 북진하도록 하는 계획을 짜는 등 나름 현명한 판단을 했습니다. (11:11) 그렇지만 결국 맥아더가 맥아더 라인을 무시하고 미군에게 북진명령을 내렸듯이 패튼도 똑같이 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컨텐츠의 내용입니다.
이 미친개를 다룰만한 장군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아니는데 그나마 아이젠아워가 있어서 목줄이라도 채웠지. 맥아더가 데리고 있을때 둘이서 보너스군대학살사건을 일으겼음.(사실 2차대전만 없었다면 둘다 오만한 새끼와 또라이장군으로 사라졌을 위인들임) 환상의 자강두천듀오가 됬을듯. 차라리 만슈타인이 고문으로 와주었다면 어떠했을지 궁금함
아이젠하워는 패튼의 친구였고 계급도 더 낮았지만 패튼을 제끼고 연합군 총사령관에 오르게 되죠. 만슈타인이라면 최고의 전략을 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 나오듯 초반에는 아예 무기자체가 부족했기에 똑같았을 것이고 중공군 참전이후에는 만슈타인조차도 녹녹치 않았을 것입니다. 만슈타인의 낫질작전은 구상부터 채택되기까지 너무나 드라마틱했죠.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만슈타인 전설의 시작)
장군은 없었지만 해군 원수 중에는 있었습니다. 바로 어네스트 킹 원수인데 패튼이 미친개면 킹 원수는 정신적 깡패 수준이니...... 오죽하면 미군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패튼과 킹 원수를 한 방에 같이 놔둔다면 패튼이 킹 원수를 때려죽이던지 아니면 패튼이 지 성질을 못 이겨서 허리에 찬 리볼버를 꺼내서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릴 거라고......'
시작부터 콯3이지만 현재는 3편에는 소련이 없......ㅋㅋㅋㅋ 이지 에잇과 퍼싱, 그리고 잭슨까지 있었죠. 이지에잇 소개할 때 콯3을 쓰셨는데, 콯3의 기갑 전투단 이지에잇은 사실 모델링이 M4A3 76(W) HVSS, 이지 에잇이 아니라 M4A3 76(W) VVSS입니다. 이지 에잇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 존재해요! 그리고 게임 시리즈 내에 존재하지 않는 M46과 센추리온 전차까지 투입된 후 지리멸렬했죠. 게임 안에 들어가는 2편의 마크 7 전차와 크로커다일도 투입되긴 했습니다.
유엔 사령관이 패튼 원수 였으면 만주를 넘어 중국까지 갔습니다. 미군만이 원자 폭탄을 소유한 상태 이고, 반 공산주의 와 러소포비아주의자 였기 때문에 3차대전을 미군(유엔군)의 절대적 기회로 봤을 겁니다. 특히 버지나아(남부군) 출신인 그는 중국군은 백인과 같은 동급 상대로 취급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 했을 겁니다.
조지패튼이 시칠리아 섬 상륙작전 당시 패튼은 원래 조연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영국을 배려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패튼은 몽고메리를 지원이나 하고 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면 패튼이 패튼이 아니었죠. ruclips.net/video/HEIA87rPo9k/видео.html 영화같은 몽고메리와 패튼의 시칠리아 상륙작전, 민스미트 작전 (다진고기 작전)
이 채널은 그저 유튜브의 보물이네요. 군사, 전술, 정치 어느 한분야도 치우침 없이 매우 이성적으로 다루고 해석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상들의 고퀄리티 정보에 비해 채널 구독자수가 적은데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한테 더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대한민국 장병들에서부터 청년층, 중장년층들까지 꼭 이 채널 영상들을 모두 봤으면 좋겠어요.
1. 패튼은 한국전쟁까지 살아서 승리를 얻는다해도 그 승리는 많은 UN군,한국군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승리이고,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갈 장군이지만,확전을 원하지 않는 트루먼과 합참참모들,험준하기로는 에베레스트와 비견되는 한반도의 산악지형 때문에 최대로 진격해봐야 청천강~함흥라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2. 운영자님!M4A3E8 Easy Eight의 주포는 76mm포입니다.참조하세요! * 참고로 76.2mm를 장착한 전차는 영국군 셔먼 Firefly입니다.(17lb=76.2mm)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와는 다르게 국군과 미군이 그래도 성공적으로 철수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기동성의 차이가 제일 컸지 않았나 싶습니다. 낭림산맥 쪽에 있던 국군 부대들이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스탈린그라드 포위는 정말 만슈타인도 사실 거의 포기하지않았습니까? 중공군도 기동성 및 차량화가 안되었던 상황이라 후퇴가 그래도 가능했지 않았나 합니다.
국군이 성공적으로 후퇴했다고 했는데 국군은 싸우지 않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중공군은 국군을 추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공군의 목표는 미군포위였습니다. 병력이 무진장 많으면 측면 엄호도 미군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의 독일 6군처럼 미군도 병력이 적었기에 측면은 허약한 동맹국 군대에게 맡겼습니다. 결국 미군도 독일 6군처럼 측면이 무너졌고 그래서 포위가 되었지만 미군은 공중엄호와 기동력으로 포위망을 뚫고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Sam-qz4kc 그냥 닥돌 스타일이라 일단 앞에 있는 것들은 다 뚫어버리고 나머지 잔당 처리는 자신을 따라오는 후속부대에 다 맡겨버리는 그런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노르망디에서 몇 달 동안이나 그냥 처박혀만 있던 연합군은 그런 패튼의 돌파에 열광했고 언론도 엄청 패튼을 띄워주었다고......
저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패튼은 전차부대 지휘관으로 유명한데 그가 활약한 지역은 대부분 드넓은 평야지대였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서유럽이 그 예이죠. 반면에 한반도는 종심이 얕고 동부지방은 험준한 산악지대라서 전차부대가 활약할 만한 곳이 못되고 서부전선의 일부지역에서 가능한데 문제는 한반도 서부지역은 넓은 강들이 잇따라 산재해 있는 반면, 전차의 기동을 버틸만한 가교와 교량은 거의 없어서 기동전에는 그렇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전차부대의 신속한 진격의 기본은 바로 "보급"입니다. 헌데.. 이 보급도 적절한 항구나 혹은 연계 철도망이 없다보니 빠른 진격을 하더라도 한계는 명확했을 것으로 여겨지네요. 한반도는 유럽이 아니니 유럽전장에서 활약한 장군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별다른 활약을 잘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나중에 지휘관이 되는 밴플릿은 한반도의 전장환경을 보고는 "아주 독특한 환경으로서 작전하기에 매우 부담스럽다."라는 견해를 냈었죠.
12:36 부분에 말씀하신 내용이 그대로 있습니다. 패튼은 유럽의 평원지대에서 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반도는 유럽의 평원지대가 전혀 아닌 곳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패튼은 남한까지는 충분히 탈환했을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워커장군도 해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천상륙작전 덕을 봤기에 가능했겠지만 패튼 또한 시간이 걸렸을지라도 끝내 해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1950년 겨울전투 시...미군의 큰 실수는 흥남철수라고 봅니다. 바로 그 철수때문에 미군전선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한국군 부대로 인해 서쪽미군이 일시 포위될 위험에 있었다고 해도... 동부의 미군군단이 미 공군력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의 엷은 후미를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었어요. 서부의 미군과 전선을 연결해야...
지난 청천강 전투 2부 영상을 추천합니다 ruclips.net/video/hAVO0KzVsVs/видео.html (청천강 전투 2부) 미군이 흥남으로 철수했던 이유는 그때 1950년 12월 초에 벌써 중공군이 원산까지 점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방이 아예 다 중공군 차지가 되버렸던 것입니다. 국군 2군단이 뚫린 구멍으로 노도와 같이 중공군은 쇄도했고 미군은 장진호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원산까지 다 점령당한 것입니다.
이 채널에서 매번 느끼지만 참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네요. 맥아더는 실질적인 현장 지휘관이라기 보다는 정치성이 강한 정치군인입니다. 차분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로 미국인들의 인기에 힘입어 대통령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전장의 조건을 분석하고 대비하기 보다는 중공의 참전가능성을 무시하고 얼른 크리스마스 전에 한반도를 수복하기를 바랬죠. 그러다 북한에서 후퇴도 일사천리! 그러나 패튼이나 워커에게 전선을 맡겼다면 그렇게 급하게 올라가고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차전의 대가로 이미 앞서 예측을 많이 했지만 일단 적정을 파악하고 가장 합리적으로 기동로 확보가 쉬운 서부전선을 방어하면서, 적어도 휴전선이북에서, 중공군을 저지했을 것이고 지금의 휴전선은 훨씬 북쪽에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국은 2차세계대전처럼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은게 섭섭하네요.
맥아더가 육군참모총장 즉 대장이었을 때 패튼은 소령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절대로 두 사람을 동시에 아시아에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상 시나리오가 가상만은 아닌 것이 패튼은 히틀러와의 유럽전쟁이 끝나자마자 태평양전쟁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패튼이 주장이고 대박이 나는 시나리오를 적어본다면 전격전을 통해서 낙동강 전선에서 오히려 포위를 하는 상황이 나왔을 때 가능함. 38선까지 회복은 늦었겠지만 그만큼 북한군의 병력 역시 많이 손실되면서 갔을 것이고 결국 북진을 거듭하다가 멕아더라인에서 공세한계점에 도착 거기서 멈추면서 전쟁이 끝나는 거임. 그랬다면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더더욱 빠르게 찾아왔을 거고 더더욱 중국에 종속적인 국가가 되었을 거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한국과의 통일은 빨라젔을 거라고 본다.
조지패튼이라면 대한민국을 구해냈을까?
그리고 기갑전 전문가인 그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가상이 아닌 실제 역사에 기반한 내용이기에 가상이란 느낌은 안드실 것입니다.
영상 후반에 최종 결론까지...끝까지 시청 바랍니다.
아무리 패튼이여도 승리하기는 힘들었을것같내요 만약10월1일날 국군하고 같히 38선을돌파했다면 모를까
맞습니다.
패튼이라해도 어려웠습니다. 이 컨텐츠에서 명확히 말하고 있듯이
맥아더 라인을 넘어서 북진하려고 했다면 미군은 패배입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바로 미군의 대규모 증강!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미국 정부가 안하려고 했죠.
중공군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산악지형, 열세인 병력 때문에 측면 방어를 맡겼던 동맹국 국군의 전투력 부족.
뼈아프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진실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럼그당시 북한군은 국군보다 잘싸웠겠내요?
@@kdwni03 채널에서 여러번 북한군이 초반에 왜 강했는지를 다뤘고
이 컨텐츠에서도 다뤘었죠. 맥아더 장군은 북한군은 깃발만 북한이지 북한군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무슨말이냐면 북한군의 6만 5천명은 모두 중국에서 항일전투와 국공내전을 치른 베테랑들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V1CZYn3MFlc/видео.html (미군은 왜 초반에 북한군에게 밀렸나?)
미군조차도 상대가 안되는데 국군은 말하나마나 입니다.
@@kdwni03 한국전의 특징이
평야에서 싸우는 그런 전통적인 전투이기보다는
산악전이 주축이 되는 그런 식의 전투이니
아마 중국에서 항일전투와 국공내전을 치른 베테랑들이라면 충분히 싸우는 법을 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에 비하면
그 당시 국군과 미군은 그런 경험 자체가 없다시피 했으니.......
패튼이나 르메이였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통일을 완수했거나 38선을 지금보다 위로 올렸겠지.😮
사실 역사를 안다면 패튼이라해도 차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해임하는데 어쩌겠습니까?
트루먼 대통령은 중공군 개입 이후 남한만의 회복으로
아예 정책 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다만 패튼이라면 서울 입성 직후 UN승인이고 뭐고간에
국군과 함께 나란히 북진을 초고속으로 했을 것입니다.
👍👍ㅜㅜ 잔인한 팩트폭격 감사합니다. ^^
너무나 잔인한 현실...
당시 국군은 패주하는 북한군은 상대할 수 있었으나
팔팔하게 덤비는 중공군의 공격에 버틸 준비가 안된 군대였습니다.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미군의 더 많은 증강이 필요했습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6군이 포위당한 것도 측면에 약한 루마니아군을 뒀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초중고 시절 지금의 휴전선이
서부는 잃고 동부는 얻은 것이 유엔군의 무능?과 한국군의 의지 차이라고 배웠었는데, 이 채널을 접하면서 625에서의 UN군과 미군의 희생과 헌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찌보면 간단합니다.
한국군에겐 작전권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단독작전을 하더라도 미군이 화력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동부전선을 밀고 올라간 것은 밴 플리트 장군의 계획이었습니다.
그것도 미 지휘부의 눈치를 보면서 했던 그의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
ruclips.net/video/JzRe-rfzBjE/видео.html 밴 플리트 장군이 최선을 다해 싸웠던 이유.
사실 밴 플리트는 아예 금강산까지 진격하려고 했었지만 미군 지휘부가 그것을 막았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루마니아가 약하다고 하시는데 역사적으로 루마니아가 몇번이나 외세를 격퇴했는지 모릅니다.게다가 러시아전선에선 독일도 마찬가지 였고요.루마니아...약한 나라가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1년 넘게 꼬박꼬박 청취하고 있는 구독자 입니다.
만물상자님이 직접 녹음 하는건가요 아니면 AI가 하는 건가요?
채널의 모든 컨텐츠는 직접하는 나레이션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목소리가 정말 좋으세요!!!!! AI가 하는줄 알았어요!
영상 해설
언제나
감사합니다 😊
늘 감사드립니다
공교롭게도 패튼장군과 워커장군 두 분 모두 사냥취미를 가지셔서 그런지 좀 빨리 생을 마감하신것 같네요 그당시는 그런 취미생활이 대세였지만... 사냥취미를 하신분과 대화하면서 후회를 하신점을 복기해보면 내 생명만큼 남의 생명도 중요한것이고 또한 인생피크 시점에서 전장에서 승승장구를 하는 복을 누리지만 노년에 내려오는시점에서는 노력과 재능도 하늘이 거부를 하는 경우도 많으니. 여하튼 패튼장군을 존경합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 했습니다.
패튼 장군이라면 일단 평지가 많은 38선 이남에는 맹활약을 하겠지만 문제는 이북에는 산맥과 엄청난 추위가 기다리고 있고 패튼이 온다면 중공군의 평더화이가 그의 호전적인 면을 잘 파고 들어서 지형지물을 활용해 기갑부대를 포위 섬멸하거나 하는 식으로 큰 피해를 줄 법 합니다. 최소한 1.4후퇴나 이후 반격에서 그 호전적인 성격으로 유엔군의 사기는 미친듯이 올려줬을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더구나 뒷 부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예를 든 것처럼 (13:15)
미군은 공격로의 측면도 걱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미군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국군이 해줘어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국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루마니아군보다 나을 게 없었습니다.
정말 객관적으로 군사적지식을 바탕으로 한 분석에 늘 감탄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패튼보다는 놀고있던 만슈타인을 사령관으로 썼으면 통일 가능했을듯ㅋ
지난일이지만 맥아더라인이나 평양원산선에서 멈추고 휴전을 추진했으면 중공군개입도 막고 국경선을 확정할수 있었을텐데..중공입장에서도 적당한 완충지대는 있으니 미국과 전쟁을 피하려 했을지도..뭐든지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정치적해결을 하는게 결국은 실리를 챙기는것..
11분28초부터...만물상자님의 언급대로...맥아더 라인부터 국군만 앞으로 가면 참 바람직했지만...그 당시 국군은 상황을 마무리할 능력이
없었어요 그러니 미군이 앞으로 나갈수 밖에...지금의 한국군의 능력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에게 처음 패배한 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국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됩니다.
그는 대놓고 국군을 욕하지 못했지만
미군 병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측면을 믿고 맡길 부대가 없다고 돌려서 한탄합니다.
결국 당시 국군은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중공군이 참전했기 때문에
미군은 그 짐을 혼자 다 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 어떤 전략가가 총사령관이 된다해도
미군이 갖고 있던 그 병력으론 맥아더 라인을 넘으면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다들 한반도 통일을 엄청 원하시네...설사 통일 된다해도 골치 아픈데...차라리 북은 포위 차단하고 하북부터 때려서 북.중을 갈라놓는것이 최선일텐데...머 그러자면...고대처럼 칸의 민족과 힌족간의 민족 전쟁으로 몰고가야.....
맞아! 워커 장군이 죠지 패튼 장군 스타일이었지...
미 8군이 서부 전선에서 후퇴한 것은 국군 때문?! 어이우 한심하다! 국군 때문에 미군이 위험에 빠진 것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고? 이런 사실은 교과서에도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못말려~!
청천강 전투 2부에서 이 상황을 매우 자세히 다뤘습니다.
ruclips.net/video/hAVO0KzVsVs/видео.html (청천강 전투 2부)
쉽게 말하면 내 옆에 있던 전우가 말도 없이 후퇴해버리는 바람에
나는 전방을 잘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후방이 위험해진 꼴이 된 것입니다.
만약 사고가 안나서 패튼과 맥아더가 한 전역에서 같이 싸운다면.. 생각만 해도 골치아프네요 ㅋㅋ
망나니로 유명한 패튼도 맥아더에게는 꼼짝 못 했을 겁니다.
먼저 맥아더는 육군 원수인데
패튼은 4성 장군인데다가
그 보너스 군대 사건 때문에
패튼은 맥아더에게 꼼짝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그 사건의 여파로
맥아더는 육군참모총장에서 직위해제당하고
곧바로 필리핀으로 쫒겨났으니......
실제로도 패튼이 1차대전 참전용사들을 상대로 그런 무식한 짓거리를 할 줄은 몰랐는지
나중에 패튼을 막 쪼았다고 합니다.
누가 탱크와 기마대로 밀어버리고
그들이 있는 판자촌을 다 태워버리라고 했냐고.
실제로 유럽전선이 종결되자 더 싸우고 싶어 좀이 쑤셨던 패튼은 조지마셜 참모총장에게 자신을 태평양전선으로 보내달라고 했답니다. 한데 맥아더가 일언지하에 거절.
전차가 없어서 밀렸으니까, 전차가 있었으면 아예 전쟁이 없었겠죠
아직도 전차가 없어서 밀렸다는 도시전설을 신봉하시네
@@이정환-x7p 전차보다 더 쎈게 있었습니까?
휴전선 라인에선 평야지대가 펼쳐진 서부전선을 뚫고 황해도로는 진입을 했을 듯 합니다.
항상 미군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정치적 판단들이었던 것을 봐서 어찌보면 은근슬쩍 38선을 망설임 없이 밀고 올라 갔을듯 합니다.
패튼이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여러 컨텐츠를 공개했었습니다.
맥아더가 굉장한 강성으로 보이지만
그는 트루먼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50년 9월 29일, 서울환도식장에서 38선을 바로 넘자고 했던 이승만.
그러나 맥아더는 의외로 거절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맥아더는 미군의 장군만이 아닌
유엔군 사령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UN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ruclips.net/video/7m4G36UklbM/видео.html (맥아더 장군! 지금 당장 38선을 돌파하시오!)
전차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차무용론은 맨패드가 좋아져, 중전차도 한발에 때려 잡는 현재 시점에서 나오는 말이지. 저땐 휴대용 무기가 전차를 뚫을 수 없던 시대고
그때랑 지금이랑 보병 화력이 차이가 많이남
한국군이 싸움을 못해서 평양 원산에서 방어가져갔어도 패퇴하는거는 매한가지
맥아더와 패튼.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 합니다. 둘 다 그 상태로 청천강 넘어갔다면 팽덕회에게 밀렸을듯. 리지웨이가 정말 잘 싸운거죠.
멕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적의 허를 찔러버린 것처럼
아마 패튼도 적의 허를 찌를 수 있었을 겁니다.
단 한 번 정도는......
하지만 그것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강력한 일격을 먹이는 것이 패튼의 장기이고
2차대전 당시에는 그런 패튼의 일격을 견딜 수 있는 독일군은 없었지만
그 대신 일격에만 집중하느라
나머지 부분을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 패튼의 단점이니......
그런데 한국전은 그 나머지 부분인 파르타잔이 제일 골칫거리였으니.........
실제로도 한국이 북진할경우
가장 골치아픈 부분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후방까지 신경쓰면서 싸워야하는 것 말입니다.
2차대전 당시 독소전에서도 독일군이 가장 골치아파하던 부분이 파르타잔 문제였으니........
중공군 고위지휘관의 언급 "미군은 협동작전능력은 우수한 데 자신의 부대가 포위될 위험에 처하면 싱겁게 뒤로 후퇴한다"
1950겨울전투시 서쪽과 동쪽간에 큰 구멍이 뚫렸던 것은 맞지만 중공군이 포위망을 완성할 만한 능력이 있는 군대는 아니었어요.
미군이 완강하게 2주정도를 한 지점에서 버티면 중공군 공세는 바로 거기서 멈추는 거였어요. 중공군이 뭐 보급능력이 좋은
군대는 아니었으니...
중공군의 보급 능력이 최대 8일 뿐이라는 사실은
1951년 2월 이후 이미 중공군에게 당할대로 당한 후
즉 서울까지 다시 내준 이후에 비로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가 되면 미국은 전쟁을 승리가 아닌 협상으로 끝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ruclips.net/video/R8PVjkC8sXA/видео.html
(휴전 이전에 금강산을 탈환하라! 한국을 가장 사랑했던 밴 플리트 장군의 야심찬 작전.)
잘 봤습니다 근데 용두사미로 조금 끝난 부분이 있지않나 싶습니다. 큰틀에서 보자면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의 큰 성공으로 도취가 되어서 실수했다면 패튼은 어렵게 올라갔으니 더 신중하게하지 않았을까합니다. 전선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중공군의 참전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패튼은 낙동강 전선에서부터 착실하게 다지고 올라갔으니
좀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따라서 신중하게 북진했을거라 했는데 동의합니다.
이 컨텐츠에서도 그 부분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도 처음에는 맥아더 라인에서 미군은 전진하지 않고
국군만 북진하도록 하는 계획을 짜는 등 나름 현명한 판단을 했습니다. (11:11)
그렇지만 결국 맥아더가 맥아더 라인을 무시하고 미군에게 북진명령을 내렸듯이
패튼도 똑같이 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 컨텐츠의 내용입니다.
지금은..전차무용론이나오기까지하는데..
패튼이라도 한국전쟁에서는 고생좀 했을듯 군비축소로 장비가 부족해서
단지 패튼이라면 맥아더 처럼 쓸데없는 원산상륙과 중공군의 개입을 간과하지는 않았을것임
이 미친개를 다룰만한 장군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아니는데 그나마 아이젠아워가 있어서 목줄이라도 채웠지. 맥아더가 데리고 있을때 둘이서 보너스군대학살사건을 일으겼음.(사실 2차대전만 없었다면 둘다 오만한 새끼와 또라이장군으로 사라졌을 위인들임) 환상의 자강두천듀오가 됬을듯.
차라리 만슈타인이 고문으로 와주었다면 어떠했을지 궁금함
아이젠하워는 패튼의 친구였고 계급도 더 낮았지만
패튼을 제끼고 연합군 총사령관에 오르게 되죠.
만슈타인이라면 최고의 전략을 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 나오듯 초반에는 아예 무기자체가 부족했기에 똑같았을 것이고
중공군 참전이후에는 만슈타인조차도 녹녹치 않았을 것입니다.
만슈타인의 낫질작전은 구상부터 채택되기까지 너무나 드라마틱했죠.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만슈타인 전설의 시작)
장군은 없었지만 해군 원수 중에는 있었습니다.
바로 어네스트 킹 원수인데
패튼이 미친개면
킹 원수는 정신적 깡패 수준이니......
오죽하면
미군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패튼과 킹 원수를 한 방에 같이 놔둔다면
패튼이 킹 원수를 때려죽이던지
아니면
패튼이 지 성질을 못 이겨서 허리에 찬 리볼버를 꺼내서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겨버릴 거라고......'
@@만물상자TV전쟁의신 만슈타인이라면 처음부터 신맥아더라인을 만들지도 않았겠죠. 그 수만은 중공군참전 징후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고요. 다 가정이니 무의미하지만 그정도는 당시 워커중장도 이정도는 알았고 간했지만 맥쇼군은 허가하지 않으셨다
시작부터 콯3이지만 현재는 3편에는 소련이 없......ㅋㅋㅋㅋ
이지 에잇과 퍼싱, 그리고 잭슨까지 있었죠.
이지에잇 소개할 때 콯3을 쓰셨는데, 콯3의 기갑 전투단 이지에잇은 사실 모델링이 M4A3 76(W) HVSS, 이지 에잇이 아니라 M4A3 76(W) VVSS입니다.
이지 에잇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 존재해요!
그리고 게임 시리즈 내에 존재하지 않는 M46과 센추리온 전차까지 투입된 후 지리멸렬했죠.
게임 안에 들어가는 2편의 마크 7 전차와 크로커다일도 투입되긴 했습니다.
T-34vs셔먼
완전히 동급인가요? 뭐가 더 강한가요
07:39 에 나옵니다만 이지에잇 셔먼전차는
기계적으로는 북한 T-34/85와 엇비슷한 성능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만 미군이 앞섰던 이유는 전차병들의 훈련도에서 앞섰습니다.
유엔 사령관이 패튼 원수 였으면 만주를 넘어 중국까지 갔습니다. 미군만이 원자 폭탄을 소유한 상태 이고, 반 공산주의 와 러소포비아주의자 였기 때문에 3차대전을 미군(유엔군)의 절대적 기회로 봤을 겁니다. 특히 버지나아(남부군) 출신인 그는 중국군은 백인과 같은 동급 상대로 취급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 했을 겁니다.
625 직전 소련 핵개발 성공합니다^^ 스탈린도 그래서 김일성의 남침을 허락한거고요
최근 올라오는 625와 2차대전 영상보면서 조지패튼이 한국 왔더라면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미 있었네요 만약 당시 살아있던 구데리안 있는 북한 vs 만슈타인 있는 남한도 재밌었을거같아요
패튼도 시칠리아 상륙 당시 반대 방향으로 기습 상륙해서 양면전을 구상했음
조지패튼이 시칠리아 섬 상륙작전 당시 패튼은 원래 조연이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영국을 배려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패튼은 몽고메리를 지원이나 하고 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면 패튼이 패튼이 아니었죠.
ruclips.net/video/HEIA87rPo9k/видео.html
영화같은 몽고메리와 패튼의 시칠리아 상륙작전, 민스미트 작전 (다진고기 작전)
오.. 평양 원산 라인
이 채널은 그저 유튜브의 보물이네요. 군사, 전술, 정치 어느 한분야도 치우침 없이 매우 이성적으로 다루고 해석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상들의 고퀄리티 정보에 비해 채널 구독자수가 적은데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한테 더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대한민국 장병들에서부터 청년층, 중장년층들까지 꼭 이 채널 영상들을 모두 봤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주제를 영상화하는 컨텐츠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1. 패튼은 한국전쟁까지 살아서 승리를 얻는다해도 그 승리는 많은 UN군,한국군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승리이고,한반도를 넘어 만주까지 갈 장군이지만,확전을 원하지 않는 트루먼과 합참참모들,험준하기로는 에베레스트와 비견되는 한반도의 산악지형 때문에 최대로 진격해봐야 청천강~함흥라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2. 운영자님!M4A3E8 Easy Eight의 주포는 76mm포입니다.참조하세요!
* 참고로 76.2mm를 장착한 전차는 영국군 셔먼 Firefly입니다.(17lb=76.2mm)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지에잇의 전차포는 자료마다 통일이 안되어 있더군요.
어떤 곳은 76mm 또 어떤 곳은 76.2mm로 되어 있더라고요.
@@만물상자TV전쟁의신셔먼은 최초 75미리 m3 gun부터 76미리 m1a1, m1a2를 장착했다가, 105미리 m4도 장착하기도 했습니다.
워커 준장과 비슷한 대응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분 성격에 맥아더 지휘를 순순히 안들을 거라는 상상이 갑니다
@@yellowjeck5038 만일 패튼같았으면 만주까지 넘어갈 것입니다!
처음부터 총사령관 : 적화통일.
맥아더 후임 : 지금의 38선이 아니라 대동강-흥남축선의 전선유지 상태로 휴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와는 다르게 국군과 미군이 그래도 성공적으로 철수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기동성의 차이가 제일 컸지 않았나 싶습니다. 낭림산맥 쪽에 있던 국군 부대들이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 되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스탈린그라드 포위는 정말 만슈타인도 사실 거의 포기하지않았습니까? 중공군도 기동성 및 차량화가 안되었던 상황이라 후퇴가 그래도 가능했지 않았나 합니다.
국군이 성공적으로 후퇴했다고 했는데
국군은 싸우지 않고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중공군은 국군을 추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공군의 목표는 미군포위였습니다.
병력이 무진장 많으면 측면 엄호도 미군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탈린그라드의 독일 6군처럼 미군도 병력이 적었기에 측면은 허약한 동맹국 군대에게 맡겼습니다.
결국 미군도 독일 6군처럼 측면이 무너졌고 그래서 포위가 되었지만
미군은 공중엄호와 기동력으로 포위망을 뚫고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성공적인 철수였다는 글은 오류였네요 너무 빠른 철수였습니다ㅠㅠ
이때도 현리전투랑 비슷한 느낌의 철수였군요..?
지금도 탱크는 탱크로 잡는 것이 제일 나은가요? 공격헬기가 아닐까요?
공격헬기가 완벽한 활약을 하기 위해서는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한 이후부터 가능합니다.
또한 요즘은 전차에도 대공무기가 있기 때문에 제공권을 장악했다고 해도 무적은 아닐 것입니다.
역시 탱크는 탱크로 잡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근데 막상 한국전으로 오면 뭔가 병사 갈아넣는타입이라서 별로였을듯
병사를 갈아넣어서라도 그만한 성과는 올렸을 겁니다.
병사를 무의미하게 죽이는 것이야말로 더 최악이니까 말입니다.
지휘관으로서는 최고지만
너무 저돌적이니
명령은 들어도
진심으로 그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지도......
근데 굉장히 저돌적으로 밀고가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2차대전 당시에도 오히려 패튼휘하 부대들이 손실율이 더 적은편이였다 라는 자료도 본거 같네요,
@@Sam-qz4kc 근데 반대로 뒤처리 하느라 다른 부대가 죽어나갔다는말도 ㅎㅎ 어쨋든 유럽의 드넓은 전장과 좁은산악지형의 한반도는 분명 달랐을듯
@@Sam-qz4kc 그냥 닥돌 스타일이라
일단 앞에 있는 것들은 다 뚫어버리고
나머지 잔당 처리는
자신을 따라오는 후속부대에 다 맡겨버리는
그런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노르망디에서
몇 달 동안이나
그냥 처박혀만 있던 연합군은
그런 패튼의 돌파에
열광했고
언론도 엄청 패튼을 띄워주었다고......
"ike!! 승리를 원하는가? 패튼에게 물어보라"
저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패튼은 전차부대 지휘관으로 유명한데 그가 활약한 지역은 대부분 드넓은 평야지대였습니다. 북아프리카와 서유럽이 그 예이죠. 반면에 한반도는 종심이 얕고 동부지방은 험준한 산악지대라서 전차부대가 활약할 만한 곳이 못되고 서부전선의 일부지역에서 가능한데 문제는 한반도 서부지역은 넓은 강들이 잇따라 산재해 있는 반면, 전차의 기동을 버틸만한 가교와 교량은 거의 없어서 기동전에는 그렇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전차부대의 신속한 진격의 기본은 바로 "보급"입니다. 헌데.. 이 보급도 적절한 항구나 혹은 연계 철도망이 없다보니 빠른 진격을 하더라도 한계는 명확했을 것으로 여겨지네요. 한반도는 유럽이 아니니 유럽전장에서 활약한 장군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별다른 활약을 잘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나중에 지휘관이 되는 밴플릿은 한반도의 전장환경을 보고는 "아주 독특한 환경으로서 작전하기에 매우 부담스럽다."라는 견해를 냈었죠.
12:36 부분에 말씀하신 내용이 그대로 있습니다.
패튼은 유럽의 평원지대에서 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반도는 유럽의 평원지대가 전혀 아닌 곳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지패튼은 남한까지는 충분히 탈환했을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워커장군도 해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천상륙작전 덕을 봤기에 가능했겠지만
패튼 또한 시간이 걸렸을지라도 끝내 해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맥아더원수가 패튼장군을 싫어해 한국전에 못왔을 겁니다ㆍ맥아더원수와 패튼장군은 극과극입니다.
독일군 노래 제목 알려줘요
시간대를 알려주세요.
이 컨텐츠에서는 독일군 노래가 안 들어갔습니다.
오히려 미군 행진곡과 The Longest day 주제가가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모두 미군 쪽 노래들입니다.
맥아더 대신 이였다면 의외로 통일했을지도... 맥아더는 너무 대통령 욕심을 많이 냈음..
독일의 모델원수가 한국전에서는 제격이었던것 같습니다!
현대 방어전의 일인자!
몽고메리나 주코프등도 이사람한테는 안돼지요
리지웨이 장군이나 아이젠하워도 이사람 실력 높이 인정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슈타인이나 모델같은 치밀한 전략가가 한국전에는 필요했다고 봅니다
영상 원본은 어디것인가요?
어떤 영상을 말하는 것인지?
또 패튼은 골수 반공주의자라서~
볼링장 탱크전에 한에서는
세계대전에서 경험치 쌓인 장군과 전투경험이 쌓인 베테랑 전차병 VS
갖 교육받고 전차 없는 한국상대로 자만심에 가득찬 탱크 초보 전차병들과 쌈 이니 상대가 될리가..
객관적이네요
1950년 겨울전투 시...미군의 큰 실수는 흥남철수라고 봅니다. 바로 그 철수때문에 미군전선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한국군 부대로 인해 서쪽미군이 일시 포위될 위험에 있었다고 해도...
동부의 미군군단이 미 공군력의 지원을 받으며 중공군의 엷은 후미를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었어요. 서부의 미군과 전선을 연결해야...
지난 청천강 전투 2부 영상을 추천합니다
ruclips.net/video/hAVO0KzVsVs/видео.html (청천강 전투 2부)
미군이 흥남으로 철수했던 이유는 그때 1950년 12월 초에 벌써
중공군이 원산까지 점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방이 아예 다 중공군 차지가 되버렸던 것입니다.
국군 2군단이 뚫린 구멍으로 노도와 같이 중공군은 쇄도했고
미군은 장진호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원산까지 다 점령당한 것입니다.
노도...
차후 통일 되면 3차라인 방 어막을 만들어야.
1차 압롴강2차 청천강 line 3차 개성
산이 많은데 기동방어전을 어캐함
전차와 차량이 오히려 짐이 되어버리는 장소가 북한의 개마고원 일대입니다.
이런 상황은 청천강 전투 2부에서 매우 자세히 다뤘습니다. (ruclips.net/video/hAVO0KzVsVs/видео.html)
이 채널에서 매번 느끼지만 참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네요. 맥아더는 실질적인 현장 지휘관이라기 보다는 정치성이 강한 정치군인입니다. 차분하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로 미국인들의 인기에 힘입어 대통령을 꿈꾸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전장의 조건을 분석하고 대비하기 보다는 중공의 참전가능성을 무시하고 얼른 크리스마스 전에 한반도를 수복하기를 바랬죠. 그러다 북한에서 후퇴도 일사천리!
그러나 패튼이나 워커에게 전선을 맡겼다면 그렇게 급하게 올라가고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차전의 대가로 이미 앞서 예측을 많이 했지만 일단 적정을 파악하고 가장 합리적으로 기동로 확보가 쉬운 서부전선을 방어하면서, 적어도 휴전선이북에서, 중공군을 저지했을 것이고 지금의 휴전선은 훨씬 북쪽에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국은 2차세계대전처럼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은게 섭섭하네요.
이 유튜브 주인장은 성우???
맥아더랑 많이 싸웠을거다.
맥아더가 육군참모총장 즉 대장이었을 때 패튼은 소령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절대로 두 사람을 동시에 아시아에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상 시나리오가 가상만은 아닌 것이
패튼은 히틀러와의 유럽전쟁이 끝나자마자
태평양전쟁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모립니다. 땅이 틀려서
패튼이 주장이고 대박이 나는 시나리오를 적어본다면
전격전을 통해서 낙동강 전선에서 오히려 포위를 하는
상황이 나왔을 때 가능함. 38선까지 회복은 늦었겠지만
그만큼 북한군의 병력 역시 많이 손실되면서 갔을 것이고
결국 북진을 거듭하다가 멕아더라인에서 공세한계점에 도착
거기서 멈추면서 전쟁이 끝나는 거임. 그랬다면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더더욱 빠르게 찾아왔을 거고 더더욱
중국에 종속적인 국가가 되었을 거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한국과의 통일은 빨라젔을 거라고 본다.
조지 ㅎㅎㅎ 이름이 고약하네
아이젠하워, 브래들리가 모두 그의 친구였죠.
그래서 그들은 패튼을 조지~ 라고 불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