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장면: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우리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의 전제조건이었다." (아이젠하워가 실제 한 말) 두번째 장면: 1945년 2월, 얄타회담. 루즈벨트는 소련군의 엄청난 희생과 막강한 지상 전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중에서) 이 컨텐츠는 왜 연합국 지휘부가 이러한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한 컨텐츠입니다. 2차대전 초반 세계최강의 군대는 당연히 독일군입니다. 하지만 1944년이 되면 연합국에게도 무시받던 소련은 미국 대통령과 최고사령관도 인정할 정도의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병력] ○ 연합군 : 156,000명 ● 나치독일군: 50,350명 이상 [피해 통계] ○ 연합군 : 10,000여명 사상 ● 나치 독일군 : 4,000 ~ 9,000여명 바그타리온 작전 [병력] ○ 소련군 : 2,331,700명 폴라드 동부군 : 79,900명 ● 나치독일군: 849,000여 명 [피해 통계] ○ 소련군, 폴란드 동부군 : 전사 및 실종 180,040명 / 부상 590,848명/총 사상자 770,888명 ● 나치독일군 : 전사 및 실종 250,000여명/부상 200,000여 명/포로 150,000여 명
영상 잘 봤습니다. 소련군의 엄청난 희생이 연합군 제2전선개척에 큰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전시무기대여법으로 연합군이 소련에 넘긴 엄청난 물자는 바그라티온작전등 소련군의 반격에 큰 도움이 되었지요. 특히 트럭/식량/유류등 지원 물자의 힘이 컸다 봅니다. 그래서 독일군이 물량전에 무너졌다는 말도 맞는 말 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한 것에 비해 전리품을 많이 처 먹어서.. 그에 대한 대응 논리로 주장한게 랜드리스를 통한 군수 물자와 식량지원 등을 크게 떠들어 댄 것 같다.. 그 논리를 그 대로 주장 할 수 잇다니 대단 하다고 박에 할 말 이 없다.. 독일은 소련에 전쟁에 패하고 미국 영국에게 항복 햇다.. 너님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 과장 되엇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고 승자는 소련 이고 미국은 빨대를 잘 꼳았다.. 이게 좀 더 사실 에 근접한 것 아닌가?
독일 병력 4분의 3분이 동부전선에 있었고, 기갑부대와 공군전투기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게다가 룬트쉬테트 예하 서부사령부 60여개 사단 대부분이 유사시 기동이 어려운 2선급 보병사단이었구요. 쉽게 말하면 진짜 제대로 싸울수 있는 전력과 경험을 보유한 병력은 전부 동부전선에 있었어요. 스탈린이 연합군의 노력을 과소평가했다고 하는데, 과소평가가 아니라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이 생산한 탄약의 절반이상이 소련에 제공되었고 나머지 절반이하로 영국군 무장, 북아프리카, 태평양,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 독일공습 을 치루었습니다 미국의 물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질러 분배되었고 그 운송비용도 천문학적 노력과 비용을 지불했으며 이과정을 수행하기위해서 미군은 900만명이 넘는 조직으로 팽창되야 했습니다 반면 소련군은 고작 2000 킬로 마라톤을 했을뿐입니다
서부전선은 내 놓을 만한 대규모 전투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동부전선은 매번의 전투가 최대 최악의 전투들이었고 알려지지않은 이름 모를 전투마저도 서부전선에서 영미 연합군이 치룬 몬테까시노 전투 안치오 전투 아른헴 전투와 발지전투같은 등등 왠만한 서부전선의 굵직한 전투이상의 규모가 일상화 되었으니까요.
소련전쟁영화5부작 유럽의 해방을 보면, 제1장 쿠르스크 전투 시작 첫 장면에 북 아프리카에서 롬멜 휘하 아프리카 군단을 꺽고 살아남아 승리한 영미 연합군이 제2의 전선을 열고 이딸리아의 안치오에 상륙하는 장면이 잠시 나오지만 소련군의 눈에선 영미 연합군이 자신들에게 해준것이 단1%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이겼다는것을 증명해 보이기까지합니다.
소련에 대한 미국의 대량의 물자지원도 있었지만 영미 공군의 끊임없는 독일폭격으로 독일군수공장에서 전투기,전차,야포,소총,수류탄 등 군수물자 생산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발전소와 광산,일반공장들도 파괴되었으며 역,정거장,터널,교량,항구,공항 등이 모두 파괴되어서 전선으로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기도 힘든 상태라 간접적으로 독일의 전력을 약화시켜줬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2차대전이 미국 때문에 이겼다고 보는 사람들은 진짜 승리의 이유가 독일군 병력의 거의 3분의 2를 소련이 잡아줘서 나머지 찌그러기 병력이 수비하는 서유럽에 연합군을 상륙시켜서 양면전쟁을 벌여서 승리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나 할까요? 미국이야 유럽에는 초창기에는 무기와 탄약만 지원했고 나중에는 병력을 이탈리아에 투입시키기는 했어도 그들이 상대한 독일군 병력이 거의 오합지졸 수준이었다는 걸까요? 그런데 그 이유가 냉전 당시에는 정예군을 상대했다고 알려진 것은 소련 때문에 2차대전이 승리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지 않았던 미국과 유럽의 프로판가타 때문이니까 말입니다.......
소련군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미국은 소련에게 계속 물자들을 보내고 있었고 이때 루트중 하나가 히말라야 산맥 위를 비행하는 공중수송로였는데 프롭 항공기로 만만한 루트가 아니어서 연합군 파일럿들도 종종 사고로 사망하기도 했었음 그런 험난한 코스도 마다하지 않고 소련군 멱살잡고 버티게 해준게 미국이었음 미국은 또한 소련말고도 중일전쟁중의 국민당군에게도 군사고문단과 미군 수준의 장비 그리고 훈련까지 시킨 정예 사단을 육성해주고 있었음
냉전기동안 간과되거나 축소, 국방군 출신들의 자기변호로 왜곡되었지만 독소전은 그만큼 중요한 전쟁이었던겁니다. 영국이 스탈린그라드의 검 같은거 주든 랜드리스가 중요하든 결국 스스로 독일을 물리친 소련은 무시할 수 없는것이죠. 그탓에 처칠이 언싱커블 작전도 구상했고 이탈리아 상륙 이후 동유럽상륙을 노릴만했으며 소련이 이렇게 커졌기에 루즈벨트는 소련을 전후 식민제국 붕괴뒤 국제 컨트롤타워의 파트너로 인정할만했습니다. 근데, 이 컨테츠가 유독 독일에 유화적인것 같은데 독일의 역량도 좋지만 독일을 너무 띄워주는 느낌이 요즘듭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이전에 독일의 잦은 장비상실도 피해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간 바그라티온 작전덕에 동부에서 병력 증원되어 서부의 2선급을 대체하지 않은것이 사실이죠
@@sunlyanghuh5202 소련군이 겪파한 나치정권시기 2차 대전 독일 육군의 정규정예전투사단부대만 약657개에 달하며, 동부전선 38개의 전장에서 종전까지 속출된 독일군 전사자 수만 비공식적인 1500만명에 육박하니 독소전쟁은 사실 상 2차 대전 그 자체 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봐야합니다. 이는 제가 십여년전의 동아일보 신문사 기사내용을 기억해서 인용해서 글을 적어보았으며, 지상최대의 작전과 지독하고 처절하고 격렬한 혈전이 매일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독소 양군측의 전투1회당 최소 가용된 동원 전투 병력수도 10만에 달했으니 1940년 이후 북아프리카 전선이 고작이었던 서부전선에서 영미 연합군이 겪어보고 경험한 수치는 독소전쟁 벌어지고 있는 동부전선의 5~10% 수준 미만 독일군의 군사력이었고 이 작은 수치에도 1944년 말까지 서부 및 남부 전선에서 영미 연합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걸 감안하더라도 왠만한 보통국가가 아니고서는 역사상 전무후무하고 공전절후의 이 엄청난 소모전에 독소 양측 두 국가의 인적 물적으로 국가의 천문학적 총 역량이 모두 녹아들어갔다고 봐야합니다. 동아일보의 기사일면에서도 독소전쟁은 사실 상 2차 대전 그 자체 였다고 평하고 있는 내용이 있에요.
근데 독일이 아무리 잘싸워도 43년도부터 기름이 비닥을 치기 시작했음. 오죽 했으면 42년도에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냅두고 갑자기 남쪽으로 주공을 꺾었겠음. 독일의 지리적, 위치적 상황 때문에 프러시아 시절부터 항상 속전속결 블리츠크릭을 고수했고 또 단판 싸움에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이유도 현재까지 독일이 제일 약한 부분이 장기전임. 또 소련군이 잘싸운 이유도 사실 경험이였음. 초창기에 너무 못싸웠지만 얘들도 사람인 이상 배우기 때문에 85프로의 독일군 최정예 전력과 전면으로 맞서 싸웠으니 그 누구보다 독일애게 많이 배웠고 이들이 가장 능했던 전술이 장기전임. 결론 적으로 42년까지 소련을 우랄산맥 넘어로 밀지 못한 독일은 그때 벌써 진 전쟁을 싸우고 있던거임.
코스트가 많이 먹혀서 그렇지 유고의 바라톤 호 일대 유전과 루마냐 플로에슈티 유전, 그리고 폴랜드, 독일의 광대한 석탄 지대에서 석탄 액화 프로세싱을 거친 인조합성유를 가지고 어떻게든 전시 유류 보급을 충당할 수 있었고 미 15공군에서 플로에슈티 유전을 공습하여 생산량을 떨어뜨렸는데도 빠른 보수와 예비 설비 덕분에 나중에 쏘련군에게 항복할때까지 전시 유류 충당량은 그럭저럭 채울 수 있었습니다. 꼭 기름이 엥꼬나서 히틀러가 급 우회전 급발진한건 아니고 힛총통이 자원 바라기, 구 시대적인 꼴통 전략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 뿐이죠.
독일군만을 상대한다면 소련군덕이긴 하겠습니다만, 문제는 영미연합군은 태평양에서도 싸우고 있었죠. 반면 소련은 일본이 가만히 있어줘서 독일과의 전쟁에 집중할수 있었구요. 차이는 있지만 각자나라의 사정때문에 한쪽면에서만 보면 그나라의 덕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알게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보완 해줬기 때문에 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것이지 한나라의 일방적인 덕은 아니라고 봅니다.
관련된 내용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을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연합군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그 규모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44년 8월에 바그라티온 작전이 끝나자 스탈린의 기고만장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영국 수상 처칠은 루즈벨트와 협의하여 독일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서부독일 뿐 아니라 드레스덴도 잿더미로 만듭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드레스덴은 굉장히 동쪽 지역입니다. 드레스덴은 특별히 위협이 되는 지역도 아니었고 민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대의 기체로 완전히 평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여러 의도가 있었으나 연합군이 막강한 전력을 스탈린 면전에서 보여주며 연합군을 얕보지 말라고 과시하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입니다. 연합국 측에는 패튼을 제외하고는 과감한 돌파를 해내는 장군이 없었습니다. 브래들리도 그렇고 몽고메리도 그렇고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며 신중히 진격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결국 노르망디 전역에서 독일군 전선을 뚫고 미친 질주를 보이는 사람은 패튼이었습니다.
물자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독일군인지라 물자 풍부한 미군의 전투력을 내려다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군수뇌부들은 미국의 참전이 두려웠죠. 전쟁은 국가 단위 이상의 싸움이지 개인이나 축구 수준의 싸움이 아니죠. 전쟁수행력을 무시해서는 안되죠. 전투에서 양동작전이야 수도 없이 많죠 서부전선에서는 미군, 영연방군이 양동작전 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영국, 미국의 인력손실을 대신해서 소련이 대신 했고 이 영향으로 전후 소련이 동유럽을 지배하게 되는거구요.
소련이 2차 세계대전이 끼 지 않앗다면.. 미국은 참전 하지 않앗겟지. 유럽은 독일 제국 일 것이고.. 미국은 대서양 건너 큰 섬나라일 뿐 이겟지.. 미국이란 나라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걍 변방일 뿐 이지.. 미국은 2차 대전에서 한 일에 비해 전리품을 많이 획득햇고.. 그에 대한 정당성을 위해 많은 것은 대중에게 과장되게 선전 햇고.. 님은 그 주장을 되풀이 하는 거 ㅅ 아님?
@@leemoon4207 내용이 시덥지 않음..중국이나 러시아 입장으로 본 듯.. 역사는 자료를 근거로 봐야지 국가 프로파간다나 영화를 근거로 보는게 아님.. 헐리우드 영화만 보면 미국이 2차대전 다 해먹은거 같지만 실제는 아닌거 처럼.. 미국의 랜드리스가 아니였으면 영국, 소련이 전쟁을 훨씬 더 어렵게 수행했겠지.. 미국은 1차세계대전에 이미 전세계 GDP 1등였으니 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가 2차세계대전 이후 전세계로 외교력을 확장한거지.. 소련이 참전 했으니 미국이 참전했다? 미국의 직접 참전은 일본이 만든거지 독일이 만든거일까? 소련은 독일과 전쟁하면서 일본이 만주, 시베리아로 진출할까봐 염려해서 일소 불가침조약 맺고 일본의 시베리아 진출 가능성이 없어지자 독소전에 전념한거지. 전후 전쟁 치룬 국가들이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특히 소련, 독일이 심각했던거 보면 사람 아낀 영국, 미국의 판단이 맞은거라고 봄
제가 요즘 전략시뮬레이션 블리츠크리크의 미시온 쿠르스크(Blitzkrieg mision kursk)독일군편을 다시 즐기고 있는 중 인대,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전투에 참전한 독일군부대 전투병력 편제가 게임에 포함된 각 켐페인마다 한줌도 안되는 작은 규모의 병력(연대급 이하 부대)이 제공되며, 주어지는 병력과 추가로 지원될 증원부대로 간신히 마을하나하나 점령해야며, 점령하더라도 소련군의 증원부대의 막강한 반격도 막내야 하는 등 탄약마저 턱없이 부족하리만큼 너무나도 맵의 실제 지형상 광활한 영토 크기에 경악을 금하지 못하내요. 맵에 표시되는 언덕 고지가 필수 전략적 요소가 되니 소련군이 참호를 파고 들어 앉아 장악하고 있는 250고지 217고지를 점령하는대, 분대 단위로 된 보병들은 중대급으로 한순간에 순삭당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치열 했을지가 상상불갑니다. 전투에 참전할 전선의 전투부대가 소지한 탄약제한과 탄약보급만 게임상 포함 되있지만 연료보급 전투식량보급 전투용 탈것 부품 수급 부상병(전투불능)을 치료해줄 의료품 지원까지 메우 디테일하게 포함하였다면, 정말 고전하기 쉬운 게임이더군요.
소련이 없었다 해도 독일은 미국을 이길 순 없었을 듯??? 일단 독일은 모든 공군력과 해군력을 동원했는데 영국 본토에 상륙하기는 커녕 공중에서 탈탈 털렸고 해군은 괴멸 수준으로 영국에 상대가 안됬죠. 유보트? 가 있긴 했지만 훗날 연합국의 대잠 능력이 강화되어서 대서양에 패권도 잃어버렸고… 미국 영국의 폭격기들이 밤낮을 안가리고 독일 도시들을 폭격했는데.. 미국을 이길 순 없었죠! 독일이 유일하게 미국을 이길 방법은 핵폭탄을 만들어서 쏴버리는 방법이었지만.. 그걸 밤낮으로 퍼부어대는 폭격 속에서 제대로 된 공장 하나 없이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 독일은 기술만 좋았지..자원도.. 인력도.. 기반시설도.. 모든 부분이 연합국에 비해 부족했고.. 이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다 한들 경제가 못 따라가서 어려웠음..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당시 최강의 독일군을 막고 전세를 역전시킨 덕에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할 수 있었고,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잘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죠. 노르망디 상륙에 때문에 독일이 정예, 핵심부대를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 옮기는 바람에 소련은 더 쉽게 진격할 수 있었고요.
미국이 지원이 소련군을 키워준 것인 사실입니다. 심지어 2차대전이 끝났는데도 루즈벨트는 지원을 퍼부어댔습니다. ruclips.net/video/3HD3YR5VW4o/видео.html (스탈린은 나랑 했던 모든 약속을 깼어! 한반도의 분단을 부른 루즈벨트의 대실수.) 그런데 이 컨텐츠에서 주목한 것은 1944년 6월 말에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입니다. 연합국을 긴장시킬 정도로 엄청난 승리였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을 지켜보며 연합국은 소련 지상군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죽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아이젠하워조차 바그라티온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조건이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련은 미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몸으로 때우는 것은 스스로 해낸 셈이었습니다.
랜드리스 로 소련에 제공한 물자중 미국이 생산한 탄약의 절반이상이 소련으로 제공되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이하의 탄약으로 미국은 태평양,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독일 폭격, 프랑스 , 중국에서의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미국의 탄약지원이 없었으면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을때 독일군은 아직 모스크바 근처에서 소련군과 전투중이었을겁니다
영국이 대서양 해전이나 노르웨이 그리스 시칠리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 폭격 등 여러면에서 독일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1차대전에서 희생이 워낙 큰데다 대전 초기부터 홀로 독일을 상대해왔고 본토 방어에 여유가 생겨서 독소전 발발 후 스탈린의 요청에도 둘다 힘 좀 빼라고 페이스 조절 힘 조절에 들어간듯 ㅎㅎ
일리있는 얘기입니다. 사료에도 나오는 얘기고요. 그리고 미국입장에서는 독일보다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더 컸습니다. 일본은 미국을 직접 공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영국입장에서는 일본보다는 독일을 치는 것이 더 급했기에 독일을 먼저 공략하도록 미군 지휘부를 설득하느라 무척 애를 썼습니다. 소련은 1942년부터 죽는 소리를 쳤으나 연합군은 거의 2년이 지나서야 행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독일이 소련을 상대하지 않았다면 소련에게 쓸려나갔을 병력은 결국 미공군력에 쓸려 나갔겟지요. 노르망디 상륙은 2차대전 후반부에 이미 연합군 쪽으로 전세가 기울어진 상태이고 그때 이탈리아는 무너지고 일본은 몰락하던 상황에 독일도 북아프리카에서 패배하고 쫏겨난 상태로 모든 전선에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 좀더 버틸수는 있었지만 결국 시간문제 였다고 봐야죠. 소련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훨씬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그게 결과를 바꾸진 못할 겁니다. 미국은 정 안되겟다싶으면 독일을 최초의 원자탄 피폭국가로 만들었겠죠. 동시에 소련도 혼자힘으로 독일을 이기긴 어려 웟겠죠. 더구나 연합군이(정확하겐 미국이) 일본을 감당하지 못햇다면 일본을 일찌감치 불가침조약의 만료기간을 폐기하고 소련이 양쪽의 적을 상대 해야 했을겁니다. 일본이 노몬한에서 소련에 털렸지만 독일 해군을 발려버린 영국해군이 일본에 발려 버렸고 동남아 침공초기 지상전에서 보여준모습은 소련이 쉽게 감당하진 못했을거라는 예측을 하게합니다. 영국해군과는 다르게 미해군은 진주만 침공으로 파괴된전력을 순식간에 복구하고 역습햇습니다. 독일은 u보트로 도버해협을 건너는 것조차 불가능 했고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생산력은 독일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소련이 자국민의 생명을 갈아 넣어 만든 성과를 미군이라면 엄청난 생산력으로 대신 했겠죠. 소련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더욱 힘든 전쟁을 치뤘겟지만 승패가 뒤집어지진 않았을테고 독일은 1차대전의 베르사유조약의 교훈으로 절대항복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티고자 했지만 이것이 독일의 능력을 상징하지는 못합니다. 625때 명목상un군은 사실상 내용상 미군이었듯 2차대전의 서방측 연합군은 명목상 연합군이지만 사실상 내용상으론 미군이라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말씀하신 것과 관련하여 주제를 벗어난 내용이라 다루지 못했던 것을 말씀드립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스탈린은 기고만장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벌어진 팔레즈 포위전에서 연합군은 독일군을 포위섬멸하는데 실패했으나 소련군은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독일 중부집단군을 전멸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6.25전쟁 휴전회담처럼 스탈린의 입김이 세지게 되자 처칠 수상은 초조해졌습니다. 드레스덴 폭격은 바로 이런 정치적 이유때문에 벌어집니다. 전쟁이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드레스텐과 독일 서부와 베를린을 무차별 폭격하는 연합군 공군. 이것은 스탈린에게 연합군의 능력을 얕보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습니다. 소련의 지상군이 규모가 클지 모르지만 항공력과 보급 능력은 연합군이 최고라는 사실을 스탈린 면전에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자주국방 님이 말씀하신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아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02:27 에 설명한 대로 이번 컨텐츠는 자원적인 측면보다도 2차 대전에서 독일군을 격파했던 소련군의 전투 역량에 집중했습니다. 아무리 자원을 보태준다고해도 결국 일선에서 싸워 이겨야 효과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그라티온 작전이 아니더라도 이길수있지만 도대체 언제 끝날지 의문입니다 연합군에 막강한 공군력으로인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할수밖에없는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바그라티온 작전이 없으면 아직도 독일군에 전력은 막강합니다 소련군과 평화협상을 할수준으로요 언젠간 치열한 소모전으로 망하겟지만 전쟁이 언제끝날지는 모름니다 독일에 빠른 패망지름길은 바그라티온 작전이고 이작전으로 연합군에 진격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빨라집니다 구지 바그라티온 작전이 아니더라도 독일이 전쟁에서 졋지만 전쟁은 언제끝나죠 그걸 완전히 축소시킨게 소련군에 바그라티온작전입니다 독일이 전쟁에서 진이유는 배틀오브브리튼으로인해 패배를 거두면서 바다사자작전이 취소됀거죠 물론 독일엔 상륙함이없어서 불가능합니다 이탈리아엔 있죠 베틀오브브리튼과 바다사자작전이 독일엔 전략전승리를 가져다줄요소이지만 독일이 빠르게 패망하는대 있어서 큰지름길을 열어준게 소련에 바그라티온작전이죠 자원이있으면 그 자원을 활용할나라가 필요합니다 미국에 자원을 제대로 활용한나라가 소련이죠 쉽게 말해서 연합군은 자원은 이미 많을대로 많아서 나치를 유럽에서 몰아낼수있습니다 하지만 이많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줄모릅니다 활용할줄아야 전쟁이 빨리끝나는대말이죠 그 잘활용한나라가 소련입니다 소련덕분에 전쟁이 빨리끝난거죠
@@김민규-e3d4i 지상전력 하나는 정말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소련입니다. 다음 컨텐츠에서도 나오겠지만 루즈벨트와 처칠이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스탈린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갔던 이유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보여준 소련군의 어마무시함을 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컨텐츠에서 나왔듯이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상륙자체는 성공시켰으나 그 이후 전투를 통한 포위섬멸전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완벽한 포위섬멸전을 성공시켰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래서 공군력덕분에 상륙은 성공햇으나 공군력이 완전히 털린 독일군은 연합군을 바다로 담글수없습니다 소련이 없엇더라면 결국엔 소모전으로 독일이 패배햇을지도 모름니다 하지만 전쟁은 이기는것만이 중요한게 아님니다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게 실력이라고 말할수있죠 그래서 연합군보다 소련군이 한수 위라는겁니다 2차대전을 빠르게 종전시킨것은 소련군이니깐요 보급이많은자가 결국엔 전쟁에서 이김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봣듯이 연합국엔 울트라 암호해독도 있지요 하지만 많아봣자 뚫혀봣자 머합니까 전쟁을 빨리 끝나길 원하는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하나하나 보급을 효율적으로 활요한나라가 소련입니다 어차피 영국을 못먹은 독일은 전략적패배를 하는것은 당연한겁니다 하지만 핵심은 전쟁을 빨리끝내는것 그게 누구겟습니까 소련이죠 결국엔 배틀오브브리튼에 패배한 시점으로 소련군이 2차대전에 최고1인자가 됄수있습니다 동부전선이 독일에 패망을 훨씬 앞당겻으니 말이죠 미국에 보급을먹고 전쟁을 이끌엇지만 이걸제대로 활용한게 소련이죠
쉽게 말해서 독일에 전략전패배는 배틀오브브리튼에서 배패 바다사자작전 불가능 하지만 전략적패배를 빠르게 앞당긴게 동부전선 소련에 바그라티온 작전이죠 이젠 전쟁이 지나 이기냐는 중요하지않습니다 너무많은것을 가졋죠 하지만 전쟁을 빠르게끝내는것은 이긴다와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련덕분에 2차세계대전이 이겻다고 과언이 아님니다 바그라티온작전은 2차대전에서 거이 신의 한수이니깐요
@@김리크 아직도 이런 소리 하는 분이 있네... 자료 좀 찾아보고 팩트 체크 하세요. 미국 랜드리스 타령하는데 영국에 지원한 랜드리스가 소련의 3배임. 소련이 지는 전쟁을 미국 랜드리스로 이긴거라고 우기는 모양인데 그럼 3배 지원 받은 영국은 세계 정복 했겠죠? 영국이 2차 대전에서 얼마만큼 기여 했는지 생각해보면 판단이 될듯... 급할때 큰 도움이 된건 맞지만 미국 랜드리스 덕에 지는 전쟁 이긴거란건 말도 안되고 좀더 수월하게 이겼다가 맞는 말임.. 이미 1939년에 gnp가 소련이 독일 보다 높았음.
소련이 독일에게 저항해서 견딜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북극해 해상 항로를 통해 미영 연합국이 계속 보내 준 전쟁 물자와 철강과 기술지원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차 밖에 없었던 소련에게 자동차를 대량으로 제공해서 소련군의 수송과 보급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던 것도 미국이었다. 소련은 미국이 주는 철강과 기술지원으로 탱크와 대포, 소총 들을 단기간에 대량생산할 수 있었기에 차츰 열세를 만회하고 독일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이 모든 것이 소련의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레닌그라드가 900일동안 포위된 상태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해상통로를 통한 서방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러는 동안 숱한 서방측 수송선들이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되면서 숱한 희생자가 나왔었다. 소련은 서방측의 도움이 없었으면 히틀러에게 짓밟혀 히틀러의 계획이었던 슬라브족 멸종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유럽의 뿌리깊은 양대 골칫거리인 유태인과 슬라브인들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유태인들이 수용되어 학살되었던 수용소의 원래의 설립목적은 소련군 포로들을 수용하여 학살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었고 독소 개전 첫 육개월동안 포로로 잡힌 300만의 소련군 포르들 중 수천명만 남기고 모두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었는데 그 희생자 중에는 스탈린의 아들도 들어있었다. 독일은 스탈린의 아들을 소련측에 잡힌 독일군 고급장교 포로들과의 교환에 이용하려 했으나 스탈린은 "내겐 그런 아들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소련군이 후에 독일 영내로 밀고들어가면서 숱한 독일인들을 학살하고 독일여자들을 강간한 이유도 독일에 의한 러시아인 학살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 재미 있는 사실은 소련이 연해주 일대로 도망쳐 있던 독립군 병사들을 색출해서 열차로 실어다가 중앙아시아에 정착시켰었는데, 독일군과이 싸움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된 독립군 병사들과 그 후손들이 그토록 잘 싸웠다고 하며 육이오 때 북한측 대표로 휴전회담에 나온 "남일"이란 사람은 바로 그 출신이었다. 인물도 좋고 똑똑한 남일 대신 무식하기 짝이 없었던 김성주 (가짜 김일성)이 스탈린에 의해 북괴 지도자로 채택된 이유는 스탈린은 위성국 지도자로 다루기 쉬운 바보들만 골라서 앉히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었다. 만약에 남일이 북한 지도자로 들어왔었다면 해방 후 지금까지의 한반도의 역사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음.. 폴 케네디의 관점이 있네요. 과연 영국과 프랑스도 이 생각에 동의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도 소련의 전술/전략적 승리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무기지원이 전쟁수행능력을 개선시키겠지만 그것이 전쟁 승리와 직결되지 않다는 것은 여러 역사적 사례가 있다고 봅니다. 영상을 만든 이의 제작 방향은 전술적/전략적 승리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봅니다.
@@jhryu5655소련 식량 70퍼 책임지는 우크라이나 곡창지대도 빼앗긴 마냥에 그 많은 소련군 보급은 누가 책임집니까 소련 군수는 미국이 책임졌다고 봐도 무방할정도 인데 그리고 뭔자꾸 무기지원 지랄하는데 윗댓글 보지도 않았나 미국은 무기뿐만아니라 식량 철도 열차 무전기 수십만대의 트럭 그외에도 기초 군수품은 죄다 지원했는데 또 전쟁에 보급없이는 전술 전략 성립자체가 불가능한데 말이되는 소리좀 랜드리스 없어도 소련이 패배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승리도 절대못함 폴란드는 커녕 소련영토 수복도 못했을거라고 보는데ㅋㅋㅋ
@@user-ls2lk5xe1p 음.. 이런 댓글을 보면 독소전에 대한 논문을 제대로 읽고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음. 미국이 랜드리스를 통해서 소련의 전투수행능력을 지원했고 이것이 도움이 된 것은 맞음. 그러나 랜드리스의 최대 수혜국은 영국이었고 소련은 영국의 1/3수준을 지원받았음에도 결정적인 전투에서 사실상 독일을 붕괴에 이르게 했음.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는 랜드리스 효과는 광범위하지 않았음. 1944년 이후부터 그 효과가 나타남. 1944년 소련의 전략적 우위는 랜드리스가 도움이 됨. 그러나 여기에서 중점은 무기대여와 전술적 승리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점. 당신이 아는 결정적 승리들 중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았던 영연방 국가들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음. 자주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리처드 오버리가 말하는 것은 전술적 승리에 구소련의 역할이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것임. 왜 영국은 남유럽 전투에서의 우위를 막대한 미국 물자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지 못했는가. 왜 한국군은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전술을 만들지 못하고 중공군을 못물리쳤는가. 왜 남베트남은 우수한 미군 장비로 승리하지 못했는가, 왜 아프칸에서 정부 붕괴로 이어졌는가. 전쟁의 수행능력에는 경제력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최종 전쟁에서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소련의 군사적 승리에는 내부적인 노력과 반성이 있었던 것임. 다시 강조하지만 학자들의 견해는 만일 미국의 군수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이 대패했을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하지 않음. 전쟁이 더 길고 장기화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임.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었던 것에 미국의 역할이 컸다는 것임.... 되묻죠. 미국과 독일이 1:1로 전투했더라도 1945년에 전쟁이 끝났을 것이라고 보는지...
@@user-ls2lk5xe1p 좀 관련 사례나 논문을 좀 읽고 이야기하기 바람. 기본적으로 랜드리스 안에 원자재도 포함되어 있음.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리고 랜드리스가 도움이 안되었다고 말을 한 적 없음. 전술적 승리는 별개의 차원이라는 것임. 군수/병참 부문은 전쟁수행능력과 연계된 부문이고 전투의 승리는 전술/전략적 선택의 문제임. 간단히 말해서 경제력 우위가 전쟁 승리의 결정적 변수가 아님. 그것은 폴 케네디도 말한 바 있음. 당신이 사관학교나 전문적인 국방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오케이. 그게 아니라면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다는 점을 알 것임. 예로 독일의 총력전 체계가 비교적 늦게 자리잡았고 상당히 비효율적었던 점임. 그런데도 독소전 이후 부족한 자원 속에서 무려 4년이나 전투를 수행했고 때론 미군을 고난에 빠뜨리기도 했음.
@@jhryu5655 오케이 인정 근데 한가지 말하고 싶은거는 독일군이 빈약한 자원속에 미군을 고난에 빠뜨렸다고 그러는데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독일군이 존나게 잘싸운게 아니라 그냥 미군이 못싸웠던거임 태평양 전선 미군도 초기에 일본군에 대패하기도 했지만 과달칼날에서부터 꾸준히 굴러서 경험이라도 쌓은거지 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보여준 미군 전투력은 처참하다시피 함 태평양전선과 다르게 서부전선 미군은 장교나 병사 부사관 빠짐없이 대부분이 복무 1년도 안된 신병들이 대부분이고 아프리카나 이탈리아에서 구른 베테랑들로 신병들 커버하기엔 미군 규모를 갑작스럽게 뻥튀기해서 너무 부족했음 말그대로 미군이 못싸운건 실전경험 부재로 일어난 참사고 벌지전투는 가야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함 독일군들이 미군들 규모만 큰 좆밥들이라고 괜히 그런게 아님
감사드립니다. 본 컨텐츠는 상당히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제작한 컨텐츠입니다.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뭐가 아쉬워서 이념이 다른 소련군을 띄워줬겠습니까? 자신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독일군조차 포위섬멸하는데 실패했는데 소련군은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3배가 더 많은 독일군을 상대하면서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켰기 때문에 같은 군인으로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이 분위기는 45년 2월의 얄타회담까지 이어지며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저자세로 나가게 되는 단초가 됩니다.
독일은 소련과 전쟁을 안했다라고 가정한다면.. 부족한 자원은 소련이 지원해줬을테니.. 음.. 일단 전쟁은 45년이 아닌 더 길게 지속 됬거나 협상으로 끝났을 듯? 하네요. 하지만 나치독일은 점령지 관리를 잘 못 해서.. 내부에서 온갖 반란으로 인해 자멸할 가능성이 크겠네요!!
댓글들이 랜드리스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과대 평가함. 소련이 이긴 제일 중요한 원인은 훌륭한 동원력과 정치선전에 있음. 국가에서 부른다고 바로 응하는 수많은 남성들이 있었기에 인력을 갈아 넣으면서 싸울수가 있었음. 그 다음 요인은 소련이 공장을 전부 우랄산맥 동쪽으로 옮긴게 신의 한수임. 공장 전체를 전부 옮겨서 공업생산을 할수 있었으며 무기생산이 큰 문제가 없이 싸울수 있게 됨. 지휘부의 병신짓(스탈린)때문에 처음엔 엄청난 전패를 맛보았지만 지휘권이 교체되고 원동지역의 주요병력이 지원되고 나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함. 즉, 최정예 부대로 소모전에서 이기기 시작함. 그 대표적인게 스탈린그라드와 레닌그라드 전투임. 하지만 광대한 우크라이나 땅을 잃게 되어서 식량생산이 힘들었던 소련에게는 무기보다 식량이 더 중요한 전투물자였고 그걸 랜드리스가 해소해줌. 무기지원이나 광물등 지원이 있었지만 실제로 전투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함(단순 생산량으로 비교하면 소련 자체가 생산한 무기는 미국이 지원한 무기보다 10배이상 많음). 즉, 소련 자체의 요인이 9할이고 랜드리스가 1할임. 인류역사 중 단 한번도 외부의 무기지원이 중요한 요인이 되어 전쟁에서 이긴 사례가 없음.
과대평가라고 볼수없음 오히려 소련군에게 미국은 호흡기달고 대수술끝에 소련을 살려낸 구세주에 가까움 소련군이 처절하게 독일군과 맞서 싸워 독일군과 동귀어진할정도로 발목을 붙잡은건 부정할순 없지만 당시 미국과 영국의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말그대로 쫄쫄굶어 뼈다귀만남고 눈이멀어 장님이 된 타이슨과 다름없었음 당시 연합군의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의 고질적인 문제 부실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의 경공업의 바탕인 비옥한 곡창지대와 중공업지대는 독일군이 서부전선을 휩쓸면서 대부분 초토화되었고 우랄산맥으로 이전된 군수공장은 43년2월이나 되어서야 미국과 영국의 랜드리스 지원아래 중공업 몰빵으로 그제서야 제대로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음 또한 전쟁초기 점령지에서의 타민족들은 독일군에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러시아에 대한 증오심이 만연했음만약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모래주워먹으면서 싸워야하는 상황이었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러하듯 미국과 영국의 랜드리스 및 에니그마해독으로인한 정보기관의 압도적인 첩보능력과 암호해독능력으로 인한 압도적인 정보력이 없었다면 이미 압도적인 교환비를 바탕으로 맨파워가 고갈되기 시작한 소련은 말그대로 나가리였으며 미국과 영국이 독일 전선을 훤히 들여다보듯 했기에 정보가 없었다면 소련군의 역량은 더욱이 집중할수없었을것임 보급과 병참능력 및 통신두절로 인한 정보력이 없는 부대는 전투력이 제로에 가깝고 전투의지는 사라지기 마련임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밀고 내려오는데 선생님은 겨울에 팬티한장입고 쫄쫄굶은 상태에서 볼트액션식 소총들고 싸우실수있음??말그대로 개죽음임 모스크바공방전과 청색작전을 빈사상태까지 가서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41년6월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43년2월의 천문학적인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말그대로 호흡기단상태로 하나님과 세세세했을것이라는게 흐루시쵸프 회고록에서도 볼수있고 스탈린은 한숨돌린이후에도 현기증난다고 계속해서 루즈벨트에게 더많은 랜드리스를 요구했음 게다가 우랄산맥의 군수공장에 집중할수있게 고품질 부수기재들을 공급한게 미국이고 사실상 소련육군과 소련공군을 재건하여 야전통신체계를 확립하여 제병협동이 가능케해 신속하게 반격가능하게만든것이 랜드리스임 식량분야,피복분야,의약품분야,금속자원,고등급항공유 및 석유,수송 및 기계화차량,중공업기반의 선반 밀링등 각종설비와 전력및 군수공장의 핵심부품등 전차 및 항공기의 핵심부품 기초적인원자재,통신과 철도, 지프 등나열하자면 끝이없을정도로 소련은 초반 독일공세로 중공업의 80퍼 식량자원 및 경공업의 67% 서부전선의 정예화된 인적물적자원 등말그대로 전쟁초반 싸그리 다털렸으며 그밖에도 천문학전인 금액의 지원으로 소련의 빠른회복과 반격의 핵심이된 식량분야 및 기계화차량 및 제공권의 바탕이 되는 물적자원의 지원등 빠른반격의 핵심중추역할을 했음에 부정할수 없고 미국은 소련국민의 아이들까지 생각해서 전시에 우울한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까지 보내주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하기위해 축음기와 장신구 보석등 그냥 말그대로 각성하기전에 미국이라도 이미 그냥 미국 그 자체였음 소련의 국가수호의지만으로는 말그대로 맨땅에 헤딩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의 전황일정도로 소련의 상황은 매우 암울했음 그정도로 미국과영국의 랜드리스는 큰영향을 끼친게 아니라 소련승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수있음 소련이 3천만명 가까이 희생되었다고 전쟁1등공신이라고 하기엔 무리가있음 오히려 3천만명가까운 희생은 그것은 독재국가 특유의 인명경시사상과 엘리트장교진 대숙청으로인한 제로베이스에가까운 소련의전술적요인에 기인했다고 볼수있음 전시에 숫자도 물론 중요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병참과 정보력이 뒷받침되지않은 군대는 오합지졸임 물론 소련이 없었으면 연합군에게 더욱더 많은 출혈을 강요했을것이라는것도 부정할수 없고..그리고 맨파워가 고갈되어가던 2차대전 소련의 여파는 아직까지 이어질정도이고 아직까지 중공업에비해 미국에 비하면 발톱에 때도 안될정도로 러시아의 경공업은 보잘것없음..
미국의 랜드리스가 2차 세계대전에 영향을 미치기는 햇겟지만.. 미미햇다 생각함.. 랜드리스가 중요하게 여겨 지는 것은 미국의 선전에 기인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함.. 구체적 내용을 보면. 어떻게 영향을 끼쳣다는 내용이 대중에게 알려진게 별로 없음.. 독일군이 전쟁에 진 이유는 인적 자원 전쟁무기 의 절대적 열세 에 기인 한 것 이 통계로 나오지 않음.? 소련이 전쟁 승전국 임에도 2700만 인적 자원이 희생되엇음이 그 대표적 예 아님?
@@pillseung1804 ㅋㅋㅋ. 팩트를 대던가. 언어모독하지 말고. 미국에서 지원해준 탱크가 몇대임? 소련에서 제작한 T-34가 몇대일거 같음? 미국에서 지원한 소총, 차량, 비행기 이런거 다 합쳐서 몇대일거 같음, 소련에서 제작한 무기들은 얼마나 될거 같음? 팩트는 하나도 안 읽고 걍 그런 쓰잘대기 없는 소리로 뭐라고 할거면 걍 짜져서 있으셈.
04:28 에 나오는 3차 하르코프 전투에서 독일 공군 수투카가 소련 기갑부대에게 맹폭을 가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전투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고증에 신경을 써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이긴 한데 일반 모드는 아니고 특수 패치가 된 부분입니다.
비록 연합군에 패배하였지만 몇년동안 전 유럽을 휩쓴 독일군이 대단하였네요. 가정은 있을수 없지만 독일이 만약 소련과 1:1, 미국이 참전하기전 영국등 연합국들과 1:1로 전쟁을 나눠서 벌였다면 승리할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초반 덩케르크철수를 막지 못한 독일의 전략전술에 의문이 많네요 전사 영상들을 접하다보면 독일군의 패인은 히틀러가 큰 역활을 한듯 느껴집니다.
채널의 컨텐츠를 보시면 덩케르크 철수를 막지 못한 독일의 전략전술에 대한 의문이 말끔하게 없어지실 것입니다. 전설의 시작 만슈타인 1부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덩케르크의 기적이 없었다면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승리했을까? (ruclips.net/video/GLrUAWknTC0/видео.htmlsi=vZiO0CVVP5GKi98A)
상륙작전에 참가할 아군 장군들과 그걸 당하게 될 적장들 모두 혀를 내두르며, 아니!! 이 자가 제정신인가? 미친 것 아니야! 할만큼 무모해 보였던 대군주작전 작전을 입안한 아이젠하워 본인도 상륙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기가 어려웠던걸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결국 소련군의 바그라치온 작전 이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이 대 군주작전(노르망디상륙작전)에서 만약 아이젠하워가 실패했다면, 총살형이었다고합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미군의 전쟁물자 보급이 가장 큰요인입니다. 어마무시한 군수물자 생산으로 미군 자신 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소련 등에 아마어마한 무기 군수품이 지원되었고 전쟁지역도 유럽전지역,아프리카 일대,인도, 아시아(중국), 태평양 등지에 어머어마하게 깔렸죠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물자를 공급 해 준 셈이죠
2차대전 당시 연합국의 물주노릇을 한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영국, 소련 심지어는 중국이 일본과도 싸우는데도 엄청난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컨텐츠에서 주로 다룬 사실은 바로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입니다. 연합군이 많은 준비 끝에 시행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 상륙작전의 총 지휘관인 아이젠하워가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조건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육지에서 싸우는 능력에 있어서는 미국이 소련의 능력을 인정한 셈이었습니다.
인정함 하지만 미국의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현상유지아님 밀렸을것이라는 전쟁역사학자들 의견이 우세함 소련의 고질적인 문제 경공업의 부실과 강력했던 중공업육성도시는 공장설비는 뒤로 옮겼다지만 대부분 독일군이 휩쓸고있었기에 더욱더 힘들었을것임 소련의 반격에는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그렇듯이 연합군의 도움이 엄청나게 컸음 물론 소련의 더이상 물러설수 없었던 국가수호 의지 또한 강력했지만 이미 독일군에 의해 중요지대및 서부전선 정예병력이 다털린 상황에서 그런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던것이 사실임 미국 핵폭탄개발전인 45년 8월까지도 독일과의 교환비에서 독일이 압도적 우세를 보였고 또한 독소전 초기 엄청난 인적물적손실때문에 소련의 맨파워가 고갈되어 더욱더 많은 출혈을 강요당했을것이라는것이 정론임 물론 랜드리스가 시작되기전인 모스크바점령은 막아냈지만 랜드리스가 없었다는 가정하에 그후 42년 청색작전에서 모스크바 및 스탈린그라드가 점령당했다면 연합군은 미국만이 가지고있던 카드인 핵무기투하가 아니었다면 승리하기 힘들었을것임 의심증환자 스탈린마저도 갈수록 장군들에게 전후로 갈수록 재량권을 부여했던것과는 달리 히틀러는 모스크바공방전 이후 모든 장군을 뒤로하고 군사작전권이 히틀러에게 가서 유연했던 임무형지휘체계가 박살났던것과는 대조적임 또한 43년 스탈린그라드전투 이후 악화된 히틀러건강을 책임지고 압도적인 신임을 받았던 군의관 모렐이 지금은 상상할수없을정도의 마약성 약물을 하루종일 투여했고 거기에 더해 암살미수사건까지 겹치며 최고사령관 히틀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망가진상태여서 2차세계대전 초기 냉철했던 히틀러의 모습은 사라져버렸고 제대로된 판단을 할수없었던것도 소련이 승리한것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수있음
@@유진-w4u7v 전쟁 역사학자들 대부분 미국 역사학자 겟지.. 할리우드 영화로 역사를 배우니.. 할 말이 없다. 독일 이 우세한 장비와 정예한 병력을 갖고 소련과 싸우다.. 소련의 물량 전에 당한 거지.. 소련은 자원 과 군수 공장이 발달함.. 2차 세계대전에 사용한 무기 대부분은 소련이 우랄 산맥 동쪽으로 세운 군수 공장에서 찍어 낸 거임.. 미국의 랜드리스 에 의한 지원 물자 가 군수 물자가 얼마나 되나? 미국 없엇어도 소련은 독일을 이겻음.. 랜드리스 물자가 무엇을 지원 햇는지 한 번 확인 해 보세요.. 소련은 2700만 을 희생해서 독일에 승리한 것임.. 미국의 지원 이 없엇다면 더 많은 희생이 따라겟지요.. 소련의 주요 무기는 티34 전차 토치가 미사일 -포병.. 항공기.. 다 물량전.. 이중 미국이 랜드리스로 지원한게 잇음? 프랑스 나폴레옹이 정예한 군대와 우수한 포병을 가지고 유럽에서 승리하고 러시아 와 전쟁 햇을떄와 별다르지 않음..
어떤 사안이든 입장에 따라 내용은 천차만별인데 지극히 소련의 입장만을 얘기하네요. 소련이야 직접적으로 독일군에게 자기들 땅이 침입을 당한 상태이니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고 영미권이야 앞으로 있을 세계 질서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쟁에 반영되기 마련인데 만약 당시에 영국이 총전력의 30%가 넘는 군수물자를 소련에게 지원하지 않았으면 소련은 초반에 그냥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어요.미국의 지원으로 설레발을 치는데 명백하게 영국이 지원한 겁니다.또한 미국은 영국에게 그냥 지원한게 아니며 외상으로 준거고 그걸 1970년대까지 갚아야 했어요. 각자 보고싶은 시점에 따라 다른겁니다.물론 소련이 잘 싸운건 사실이지만 그건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 그들 스스로 희생을 치룬겁니다. 독일이 원하는 유럽 패권 더나아가 세계 패권을 염두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지요.그 결과물이 지금의 세계 질서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겁니다.
좋은 말씀 잘 봤습니다. 컨텐츠 하나에 2~3가지 관점을 한꺼번에 넣는 것은 어렵습니다. 논점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이 컨텐츠에서는 연합군이 소련군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정한 시점이 바그라티온 작전이다는 것을 주제로 한 컨텐츠입니다. ruclips.net/p/PLZmdkuHOpnlEaT-aVBL2T_PpeV9eh0CKL 2차 대전 주요 논쟁점 재생목록을 보시면 영미 연합군 관점에서 분석한 수많은 컨텐츠들도 있습니다.
ruclips.net/video/qRr1d2dtqzU/видео.html (서부유럽 제공권 쟁탈전 2부) 이 url에 나온 컨텐츠의 고정 댓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 대성공에 영향을 준 것은 서부전선으로 독일군 병력이 간 것보다도 영미 연합군 공군의 제공권 쟁탈전 때문이었습니다. 괴링은 영미 연합군의 공군을 상대하기 위해 동부전선에 있던 최고 에이스를 비롯한 공군전력을 거의 다 서부전선으로 뺐던 것입니다. 때문에 항공 정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소련군이 은밀히 병력을 중부집단군 쪽으로 모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작전에서 연합군 진격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독일군 전력이 강력한 것도 이유이지만 연합군 장군들 특히 몽고메리와 브래들리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이 역시 채널에서 모두 다뤘습니다. ruclips.net/video/1kym_Rya7a4/видео.html (패튼이 생각했던 서부전선 돌파 전략)
독일이 소련에서 실수한 건 소련이 강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에 집착해서 모스크바를 점령할 호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기회를 잃으면 다음엔 위기가 오지. 독일이 주춤하는 사이에 미국이 소련에게 엄청난 물량을 제공해서 쿠르스크 전투를 치를 역량을 갖추게 된다. 독일이 뭔가 강력했던 것 같지만 이미 1943년에 미-영은 전후 처리에 대해 합의했다. 이 합의를 브레튼-우즈 체제라 부른다. 매우 강해 보였지만 붙어 보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 그런 것이지. 1943년 합의로 인해 전후 자본주의는 자유주의 경제를 채택하지 않고 케인즈주의를 택하게 되었다. 소련은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
정확하게 단언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피를 무진장 더 흘리겠지만 결국 소련군은 베를린까지 간다는 것이 요즘의 의견입니다. 단 히틀러가 좀 더 전략적으로 공격력을 한곳에 집중했다면 소련은 패망했겠죠. 다시 말하자면 전쟁 물자와 무기를 누가 아무리 대줘도 실제로 군대가 전투에서 이겨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의 무기는 요즘과는 다르게 그 성능이 당시로서는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아뭏튼 이 컨텐츠에서 나왔듯이 아이젠하워조차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요소였다." 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굳이 제 말이 아니라 연합군조차 소련군의 지상전 실력은 인정을 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 계기가 된 전투가 바로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입니다. 이 컨텐츠는 그 점을 주제로 한 것입니다.
음.. 격세지감을 느끼네요. 아주 오래 전(약 15년~20년 전??) 이와 비슷한 내용들을 군사 토론방에 썼다가 엄청난 비난(X갱이, 골수 좌파)을 받은 적 있죠. 많은 학자들 리처드 오버리, 마틴 해리슨 등등 American Economy History Review(탑 경제지)에서 1990년 이후 소련측 자료를 반영한 논문들이 꽤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난은..... 한때 국방일보 기고도 고민했던 주제입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이런 내용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학습된 편견과 아집이 새로운 지식 유입을 막는다고 해야 하나? 영상 내용은 매우 좋다고 봅니다. 핵심 메세지도 명확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내용을 과감하게 담은 용기에 격려를 보냅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료에 나온 그대로를 다뤘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말했던 정확한 워딩은 "바그리티온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조건이었다." 입니다. 미국은 소련, 영국 등 독일과 대항해 싸우는 모든 나라들에게 물자를 댄 엄청난 물주였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이후 미 육군의 기량은 발전해 있었고 미 공군은 최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연합군 총사령관이 저런 말을 한 이유는 단 하나. 바그라티온 작전 때문입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것이 주제입니다. 바르라티온 작전은 연합군 지휘부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소련군이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은 알았지만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소련 지상군이 엄청난 전력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인정은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저자세를 취하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론은 걍 선전 선동의 매체 일 뿐.. 신문 을 운영 하는 사람도 사람임.. 걍 국가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임.. 잘 먹고 잘 살려구 하는 거지.. 대한민국에 살면 대한 민국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됨.. 거짓이고 진실 이고 가 별로 중요 하지 않음.. 지금 러시아을 지지 하는 매체가 느는 것은 미국의 패권이 몰락이 보이고 잇기 떄문 이고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에 다른 대안 이 존해 하기 떄문임.. 머리가 없는 사람 들이 아니면 어렴풋이 다들 이상함을 알고 잇지만 크게 떠들지 않는 것 뿐임.. 경험 없고 지식 없는 어린 아해들은 언론의 선전 선동에 그 대로 세뇌 되고 그 프로파 간다의 희생양일 될 뿐임.. 희생은 정의롭고 용감한 어린 너희 들이 하거라.. 그 과실은 내가 먹겟다.. 이게 우리의 역사 아님?
미영 연합군의 독일 본토 폭격으로 동부전선 독일 공군 대부분이 본토로 이동한게 소련군 부담을 훨 덜어주고 승리한 요인인데 반대로 스탈린이 미영 연합군 덕분에 승리했다고 말해야 정상이고요~미영 공군 본토 폭격이 독일 군수물자 생산을 크게 떨어트려 소련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기여를 많이 했는데 미영 연합군 활약들을 너무 저 평가 했네요 스탈린이
당연히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을 무시할 수 없죠. 연합군의 막강한 공군력과 보급능력은 소련군이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컨텐츠에서 주목한 것은 바그라티온 작전이 연합군 지휘부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대성공이었단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바그라티온 작전이 끝나자 스탈린의 기고만장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영국 수상 처칠은 루즈벨트와 협의하여 독일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서부독일 뿐 아니라 드레스덴도 잿더미로 만듭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드레스덴은 굉장히 동쪽 지역입니다. 드레스덴은 특별히 위협이 되는 지역도 아니었고 민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대의 기체로 완전히 평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여러 의도가 있었으나 연합군이 막강한 전력을 스탈린 면전에서 보여주며 연합군을 얕보지 말라고 과시하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아니요. 요즘 전혀 안먹히는 논리입니다. 딱 70년대 서방측 역사가들이 그딴소리 많이 처해댔는데 지금은 다 교통정리 되었습니다. 존나게 밤낮없이 전략 폭격질 해댔지만 정작 나찌 독일은 국가 총동원 체제와 군수 산업 재구성 사업이 1944년에 완료되어 그때부터 엄청난 생산량을 보여줍니다. 이때쯤 되면 연합군은 한번에 300-1000대씩 폭격기를 동원, 아예 전 유럽을 쑥대밭 재배하고 있던 때였는데 말이죠. 군수상 알베르트 슈퍼는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여 방대한 노예 노동력과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폭격으로 작살 났음에도 빠르게 복구하면서 생산량은 오히려 1943년대보다 더 올리는 기적을 이룩합니다. 이때 BF109도 월산 1000대를 찍어서 공장마다 갓 출고된 BF109가 가득가득 찼었죠. 다만 파일럿이 없었다는게 에러... 암튼 전략 폭격이 독일의 발목을 잡은건 맞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쏘련군의 지상전에서 승전이 아니였다면 연합군이 적어도 진격을 하면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았고 그저 맨해턴 프로젝트 하나만 바라봤어야 했을 겁니다. 1차 대전의 기동전 판으로 밀고 당기고를 반복 했겠죠.
인류 역사를 보면 최강의 군대는 몽골의 칭키즈칸 군대가 아닐까요? 러시아가 거의 200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80%의 유럽인으로 간주한답니다 . 몽골인의 피가 흐른다구요. 몽골인의 유전자를 받았으니 세계 최강의 군대로 싸움을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세요. 미국이 러시아를 개무시하고 우크라이나 등 떠밀어 싸우고 있는데 개박살 나고 있잖아요. 몽골족과 투르크(돌궐족)의 기원이 바이칼 호수 동쪽이잖아요. 터키에 가니까 가이드 말이 오스만 터키의 후손이란 걸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유럽을 가리켜 "저 새키들 아무것도 아니야, 다 우리 발 밑에 있던 놈들이야." 한대요. 2차 대전 때 최강의 군대는 소련군 》 독일군과 일본군》 영미 연합군 으로 봅니다.
1987년 초딩 때 문방구에서 프라모델 전문업체 아카데미에서 만든 2차대전 유명장군형상의 조립식 피규어를 500원에 샀는데 거기에 몽고메리 아이젠하워 패든 롬멜 맥아더 이렇게 5명이 들어있었음 그리고 설명서에 롬멜에 대해서는 뛰어난 지휘능력과 전술전략으로 영국군을 잔인하게 괴롭혀 사막의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써 있었던 기억이 남..!! 왜 롬멜을 사막의 여우가 아닌 고양이라 했을까 아직도 의문임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은 적국인 영국에서 지어준 별명이었습니다. 아마 오타로 보입니다. 롬멜 관련 최신 컨텐츠인 우리가 알지 못했던 롬멜의 마지막 승리 (ruclips.net/video/J1LnTOH_M1c/видео.html) 라는 컨텐츠가 있습니다. 영국 전폭기에 중상을 입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했던 롬멜의 마지막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채널에 엄청난 롬멜의 이야기가 다수 있습니다.
독소전 기간동안 미국이 소련에 공여한 랜드리스 물자가 실상 엄청난 물량이었음 전차는 물론이고 수송용 트럭 그리고 소련군 전차에 제대로 달려있지도 않았던 무전기 식량 등등 미국이 두개의 전선을 유지하는 기간에 소련에게 막대한 물자까지 지원해준 것임 소련군이 없었다면..이라는 if를 대입한다면 미국은 태평양 전쟁이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도 성립할수 있음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해군의 물량과 해병대 미육군 사단 그리고 해군 항공대라는 물량을 독일군과 맞서게 했을때 독일은 과연 버틸수 있었을지
소련이 모스크바 전투,스탈린그라드 전투,쿠르스크 전투,바그라티온 작전까지 철저히 독일군을 소모전으로 격멸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봐야 하고,만일에 적어도 전쟁중 휴전을 맺었다면 동부전선의 독일군들이 서부전선으로 들어오는게 뻔했다!!허나,히틀러가 동부전선 외에도 서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까지 확대되어 싸워야 하는 삼중고에 빠졌고 결국 연합군에 독일군이 패전하게 된다!!이래서 연합군은 스탈린에게 감사패 정도는 줘야 정상이 아닌가?근데 종전후 연합군이 스탈린에 보여준 행동은 한마디로 말해서 개무시였다!!그럼 철의장막을 누가 세웠는가?당연 미국,영국이다!!이 영향이 한반도 분단을 가져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쟁이후 8월부터 소련군은 줄기차게 우크라를 공격하여 1943년 11월에 키예프를 점령했고 1944년 6월전에 이미 우크라 북부 동부를 점령했어요. 이러한 소련의 우크라땅에서의 전쟁승리가 없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애초부터 진행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1944년 6월 22일부터 시작한 백로시아 바그라티온 전쟁이 중요하긴 하지만 1944년 7월말에 소련은 우크라의 서부 도시 리비우를 점령하였고 우크라 서부와 남부를 먹었으며 루마니아에 쳐들어가기 시작했지요. 히틀러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석유유전을 지키기 위해 서부에서 일부 병력을 빼서 소련을 막느라 프랑스서부의 영미연합군은 별로 신경도 쓰지 못했습니다.
일전에 어느 채널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영국군 육군참모총장 앨런 브룩에 대해 다룬적이 있었습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브룩) 북아프리카에 힘을 집중한 것, 유럽 본토 중 시칠리아에 가장 먼저 상륙한 것. 이 모든 것이 앨런브룩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쿠르스크 전투를 망쳐버린 것이 바로 앨런브룩이었습니다.
이 컨텐츠는 중요한 시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미 연합군은 자신들이 최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그라티온 작전의 규모는 엄청났습니다. 독일 중부집단군 100만 이상을 한번 전투에서 쓸어버렸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소련군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지상전에 있어서는 미국도 소련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소련은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부터 단순무식하게 인력을 갈아넣어 독일과 싸워왔습니다. 전투기술, 경험 모든 것이 딸렸기에 그 격차를 피로 메꿨습니다. 그러나 1944년 6월 22일에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은 미영 연합국마저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승리였습니다. 강력한 독일군과 3년간이나 싸우면서 그들도 경험이 쌓였던 것입니다. 솔직히 항공력과 보급능력을 뺀다면 미국과 영국은 이 정도의 지상군 전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그리고 연합국 지휘부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것이 주제입니다.
이 컨텐츠는 정말로 객관적인 팩트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미군의 강점은 다른데 있죠. 바로 공군력과 보급력은 소련이 상대가 안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컨텐츠도 이미 있습니다. 당연히 2차대전 초반, 최강의 군대는 독일군입니다. 새로운 전술인 전격전에다 최고의 장군들까지... 미군이나 소련군이나 2차대전 초반에는 다 별볼일 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 군대는 강력한 독일군과 싸워가며 속성 과외를 받고 몰라보게 강력해집니다. 1944년에 오면 예전의 그 미군과 소련군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을 미국도 알았기 때문에 아이젠하워가 저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90프로가 넘는 독일 지상군을 상대로 소련군이 승리했다는 점입니다. 팔레즈 전투에서 브래들리의 새가슴 때문에 연합군은 포위망을 닫지도 못했지만 바그라티온 작전에서는 중부집단군 전체를 거덜내게 됩니다. 연합국이 두려워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시면 정확한 팩트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 컨텐츠는 개인의 주장을 이야기한 컨텐츠가 아닙니다. 1944년 6월 22일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연합군은 소련군의 지상군 전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젠하워는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에는 바그라티온 작전이 필수적이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소련군 지상군 전력의 힘을 인정한 발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한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스탈린의 요구에 끌려간 것도 결국은 소련군의 3년간의 희생과 막강한 전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사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입안한 대군주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 여부를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연합군 장군들도 적인 독일장군(롬멜 포함)들도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어리석고 무모하고 미친 짓!! 실패하면 아이젠하워는 총살형을 당하게 되겠군!! 이라고 확정 지어 말할 만큼 성공 가능성이 메우 희박했습니다. 그런대 그걸 가능하게 해준 것이 소련군의 바그라치온 작전의 실행 여파에 의해서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상륙작전의 성공이 결정되었다고 봐야겠군요.
첫번째 장면: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우리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의 전제조건이었다." (아이젠하워가 실제 한 말)
두번째 장면: 1945년 2월, 얄타회담. 루즈벨트는 소련군의 엄청난 희생과 막강한 지상 전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5.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중에서)
이 컨텐츠는 왜 연합국 지휘부가 이러한 태도를 보였는지에 대한 컨텐츠입니다.
2차대전 초반 세계최강의 군대는 당연히 독일군입니다.
하지만 1944년이 되면 연합국에게도 무시받던 소련은 미국 대통령과 최고사령관도 인정할 정도의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병력]
○ 연합군 : 156,000명
● 나치독일군: 50,350명 이상
[피해 통계]
○ 연합군 : 10,000여명 사상
● 나치 독일군 : 4,000 ~ 9,000여명
바그타리온 작전
[병력]
○ 소련군 : 2,331,700명
폴라드 동부군 : 79,900명
● 나치독일군: 849,000여 명
[피해 통계]
○ 소련군, 폴란드 동부군 : 전사 및 실종 180,040명
/ 부상 590,848명/총 사상자 770,888명
● 나치독일군 : 전사 및 실종 250,000여명/부상 200,000여 명/포로 150,000여 명
@@sunlyanghuh5202병력규모 미쳤네 ㄷㄷ
독일군의 주력은 러시아에서 궤멸됐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이 존재는 합니까?
6.25가 미국 혼자 싸워다고 ㅋ ㅋ 미완용
@@dolezhang9265 거의 90%입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소련군의 엄청난 희생이 연합군 제2전선개척에
큰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전시무기대여법으로 연합군이 소련에 넘긴
엄청난 물자는 바그라티온작전등 소련군의 반격에
큰 도움이 되었지요. 특히 트럭/식량/유류등 지원
물자의 힘이 컸다 봅니다.
그래서 독일군이 물량전에 무너졌다는 말도 맞는 말
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이 한 것에 비해 전리품을 많이 처 먹어서.. 그에 대한 대응 논리로 주장한게 랜드리스를 통한 군수 물자와 식량지원 등을 크게 떠들어 댄 것 같다.. 그 논리를 그 대로 주장 할 수 잇다니 대단 하다고 박에 할 말 이 없다.. 독일은 소련에 전쟁에 패하고 미국 영국에게 항복 햇다.. 너님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 과장 되엇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고 승자는 소련 이고 미국은 빨대를 잘 꼳았다.. 이게 좀 더 사실 에 근접한 것 아닌가?
지금도 러시아군대 무시하면 안됨,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계속 언론은 떠들고 있고 실제 예상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딧힌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초기에 승기를 잡아놓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됨
독일 병력 4분의 3분이 동부전선에 있었고,
기갑부대와 공군전투기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게다가 룬트쉬테트 예하 서부사령부 60여개 사단 대부분이 유사시 기동이 어려운 2선급 보병사단이었구요.
쉽게 말하면 진짜 제대로 싸울수 있는 전력과 경험을 보유한 병력은 전부 동부전선에 있었어요.
스탈린이 연합군의 노력을 과소평가했다고 하는데,
과소평가가 아니라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미국이 생산한 탄약의 절반이상이 소련에 제공되었고 나머지 절반이하로 영국군 무장, 북아프리카, 태평양,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 독일공습 을 치루었습니다 미국의 물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질러 분배되었고 그 운송비용도 천문학적 노력과 비용을 지불했으며 이과정을 수행하기위해서 미군은 900만명이 넘는 조직으로 팽창되야 했습니다 반면 소련군은 고작 2000 킬로 마라톤을 했을뿐입니다
소련이 독일군 상대하였기에ㅡ연합군이 독일 상대로 이길수가 있었지ㅡ소련군이 밀고 내려 오지 않았다면 아마 불가능 전쟁에 이기지는 못하고 ㅡ질질 대치하다 휴전했겠지요
음....과연 그렇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daegeunlee115 그런 생각은 러시아가 스탈린 독재 살인 땐 맞지만ㅡ지금 러시아는 미국 유럽보다 정신적 철학적으로 더 건전하고 순진하죠ㅡ미국 나토는 갈수록 테러국 같은 수준이죠ㅡ이웃을 전쟁 혼돈으로 몰고가거든요
어차피 미국이 독일을 이깁니다 시간과 인명이 더 죽어나갈수 있었겠지만
@@김영진-s7b 그 소련도 미국의 지원이 아니였다면 진작 망했습니다. 2차대전 연합국의 승전은 모두 미국 덕입니다.
@@우현박-q5e 틀린 정보입니다.
2차 대전 유럽부분은 러시아의 역할이 70%는 되는 듯 합니다. 미국은 노르망디, 발지전투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암튼 소련이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 1943년 하반기와 1944년 상반기에 독일군을 모질게 압박했기에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상륙할 수 있었고...
서부전선은 내 놓을 만한 대규모 전투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동부전선은 매번의 전투가 최대 최악의 전투들이었고 알려지지않은 이름 모를 전투마저도 서부전선에서 영미 연합군이 치룬 몬테까시노 전투 안치오 전투 아른헴 전투와 발지전투같은 등등 왠만한 서부전선의 굵직한 전투이상의 규모가 일상화 되었으니까요.
소련전쟁영화5부작 유럽의 해방을 보면, 제1장 쿠르스크 전투 시작 첫 장면에 북 아프리카에서 롬멜 휘하 아프리카 군단을 꺽고 살아남아 승리한 영미 연합군이 제2의 전선을 열고 이딸리아의 안치오에 상륙하는 장면이 잠시 나오지만 소련군의 눈에선 영미 연합군이 자신들에게 해준것이 단1%도 없고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이겼다는것을 증명해 보이기까지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대다수의 독일군 주력부대들은 동부전선에서 소련군과 대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부전선에서 밀고오는 연합군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던 거죠
소련에 대한 미국의 대량의 물자지원도 있었지만 영미 공군의 끊임없는 독일폭격으로 독일군수공장에서 전투기,전차,야포,소총,수류탄 등 군수물자 생산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발전소와 광산,일반공장들도 파괴되었으며 역,정거장,터널,교량,항구,공항 등이 모두 파괴되어서 전선으로 물자와 병력을 수송하기도 힘든 상태라 간접적으로 독일의 전력을 약화시켜줬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짜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2차대전이 미국 때문에 이겼다고 보는 사람들은
진짜 승리의 이유가
독일군 병력의 거의 3분의 2를 소련이 잡아줘서
나머지 찌그러기 병력이 수비하는 서유럽에 연합군을 상륙시켜서
양면전쟁을 벌여서 승리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나 할까요?
미국이야 유럽에는 초창기에는 무기와 탄약만 지원했고
나중에는 병력을 이탈리아에 투입시키기는 했어도
그들이 상대한
독일군 병력이 거의 오합지졸 수준이었다는 걸까요?
그런데
그 이유가 냉전 당시에는 정예군을 상대했다고 알려진 것은
소련 때문에 2차대전이 승리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지 않았던
미국과 유럽의 프로판가타 때문이니까 말입니다.......
제정신이 입니까 제발 모르면 공부라도 하세요 2차 대전때 나치가 유럽을 먹을수 있었던거는 폴란드 전투때 소련이 나치편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련이 뒷통수만 치지않았다면 폴란드 전투에서 나치가 끝났을거라는게 현대 역사가들 의견입니다
90%입니다.
소련군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미국은 소련에게 계속 물자들을 보내고 있었고 이때 루트중 하나가 히말라야 산맥 위를 비행하는 공중수송로였는데 프롭 항공기로 만만한 루트가 아니어서 연합군 파일럿들도 종종 사고로 사망하기도 했었음
그런 험난한 코스도 마다하지 않고 소련군 멱살잡고 버티게 해준게 미국이었음
미국은 또한 소련말고도 중일전쟁중의 국민당군에게도 군사고문단과 미군 수준의 장비 그리고 훈련까지 시킨 정예 사단을 육성해주고 있었음
댓글 다신분 여기 답글에 공부 안한사람들 많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유럽 본토에 주둔중인 후방의 독일육군(남부 및 서부전선이 되는곳의 부대)은 제2선급 부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2선급이라더라도 전투력이 연합군보다 우위였습니다.
냉전기동안 간과되거나 축소, 국방군 출신들의 자기변호로 왜곡되었지만 독소전은 그만큼 중요한 전쟁이었던겁니다. 영국이 스탈린그라드의 검 같은거 주든 랜드리스가 중요하든 결국 스스로 독일을 물리친 소련은 무시할 수 없는것이죠.
그탓에 처칠이 언싱커블 작전도 구상했고 이탈리아 상륙 이후 동유럽상륙을 노릴만했으며 소련이 이렇게 커졌기에 루즈벨트는 소련을 전후 식민제국 붕괴뒤 국제 컨트롤타워의 파트너로 인정할만했습니다.
근데, 이 컨테츠가 유독 독일에 유화적인것 같은데 독일의 역량도 좋지만 독일을 너무 띄워주는 느낌이 요즘듭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이전에 독일의 잦은 장비상실도 피해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간 바그라티온 작전덕에 동부에서 병력 증원되어 서부의 2선급을 대체하지 않은것이 사실이죠
교환비를 보면 크게 칭찬한것도 아니죠.
괜히 스탈린이 포병은 전쟁의 신이다 이런말 한게 아녓다
저도 소련이 단독으로 상대한 건 독일군 군사력 전체의 90%라고 봤습니다. 소련군이 막대한 피를 흘리면서도 독일 육군 657개 사단을 부셨기 때문입니다.
제 2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나치독일군이 약 900만명인데 그중 600만명을 소련군이 격퇴했답니다. 소련은 군인 약 1천만명, 민간인 약 2천만명의 희생을 치르며 나치독일군 정예병력에 맞서 싸워서 기어이 승리했죠.
@@sunlyanghuh5202 소련군이 겪파한 나치정권시기 2차 대전 독일 육군의 정규정예전투사단부대만 약657개에 달하며,
동부전선 38개의 전장에서 종전까지 속출된
독일군 전사자 수만 비공식적인 1500만명에 육박하니 독소전쟁은 사실 상 2차 대전 그 자체 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봐야합니다. 이는 제가 십여년전의 동아일보 신문사 기사내용을 기억해서 인용해서 글을 적어보았으며, 지상최대의 작전과 지독하고 처절하고 격렬한 혈전이 매일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독소 양군측의 전투1회당 최소 가용된 동원 전투 병력수도 10만에 달했으니
1940년 이후 북아프리카 전선이 고작이었던 서부전선에서 영미 연합군이 겪어보고 경험한 수치는 독소전쟁 벌어지고 있는 동부전선의 5~10% 수준 미만 독일군의 군사력이었고 이 작은 수치에도 1944년 말까지 서부 및 남부 전선에서 영미 연합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걸 감안하더라도 왠만한 보통국가가 아니고서는 역사상 전무후무하고 공전절후의 이 엄청난 소모전에
독소 양측 두 국가의 인적 물적으로 국가의 천문학적 총 역량이 모두 녹아들어갔다고 봐야합니다.
동아일보의 기사일면에서도 독소전쟁은 사실 상 2차 대전 그 자체 였다고 평하고 있는 내용이 있에요.
@@sunlyanghuh5202연합국과 독일의 동맹국의 인적물적 손실률을 감안해서 태평양과 중국전선까지 합친다해도 결코 독소전쟁에 끼지 못할겁니다.
소련군의 보도에 의하면 독일군 사단 전차의 75%가 독소전에서 소멸 됐습니다. 90%가 아닙니다.
@@sunlyanghuh5202 세계제이차대전중 독소전 포함 유럽,아프리카 전역에서 전사한 독일군의 숫자는 약500만명 입니다 ,반대로 독소전에서 희생된 소련군의 숫자는 900만명을 넘어 1000만명에 육박합니다.
근데 독일이 아무리 잘싸워도 43년도부터 기름이 비닥을 치기 시작했음. 오죽 했으면 42년도에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냅두고 갑자기 남쪽으로 주공을 꺾었겠음. 독일의 지리적, 위치적 상황 때문에 프러시아 시절부터 항상 속전속결 블리츠크릭을 고수했고 또 단판 싸움에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이유도 현재까지 독일이 제일 약한 부분이 장기전임.
또 소련군이 잘싸운 이유도 사실 경험이였음. 초창기에 너무 못싸웠지만 얘들도 사람인 이상 배우기 때문에 85프로의 독일군 최정예 전력과 전면으로 맞서 싸웠으니 그 누구보다 독일애게 많이 배웠고 이들이 가장 능했던 전술이 장기전임.
결론 적으로 42년까지 소련을 우랄산맥 넘어로 밀지 못한 독일은 그때 벌써 진 전쟁을 싸우고 있던거임.
코스트가 많이 먹혀서 그렇지 유고의 바라톤 호 일대 유전과 루마냐 플로에슈티 유전, 그리고 폴랜드, 독일의 광대한 석탄 지대에서 석탄 액화 프로세싱을 거친 인조합성유를 가지고 어떻게든 전시 유류 보급을 충당할 수 있었고 미 15공군에서 플로에슈티 유전을 공습하여 생산량을 떨어뜨렸는데도 빠른 보수와 예비 설비 덕분에 나중에 쏘련군에게 항복할때까지 전시 유류 충당량은 그럭저럭 채울 수 있었습니다. 꼭 기름이 엥꼬나서 히틀러가 급 우회전 급발진한건 아니고 힛총통이 자원 바라기, 구 시대적인 꼴통 전략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 뿐이죠.
독일군 최정예부대랑 주력부대는 대부분 동부전선에 배치된상황이였고, 서부전선방면은 2선급부대에 무기상태도 별로좋지않았음 그리고 독일은 서부전선,동부전선,이탈리아쪽남부전선 전선이3개여서 패배한거임
나치 독일은 막강한 군대였다. 동부전선 소련과 서부전선 미국연합군을 동시에 상대했다
와우~~~ 컨텐츠 정말 좋아요
감사드립니다.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끝난 후
뜬금없이 거의 동시에 진행된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 덕을 봤단 이야길 합니다.
이것은 연합군 스스로가 소련군의 엄청난 지상군 능력을 인정했단 의미입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거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컴오히2 독일만 하는 유저인데 현실고증처럼 소련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롭습니다 ㅋㅋ
히틀러가 소련과의 원래 국경으로 후퇴한다면 소련도 평화협정 체결의사가 있었다고 하던데... 그랬다면 독일은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프러시아 때부터 무서워하던 동서부 2개의 전선을 유지한 만용은 대체 어디서 나온것인지
늘 감사합니다 😊
독일군만을 상대한다면 소련군덕이긴 하겠습니다만,
문제는 영미연합군은 태평양에서도 싸우고 있었죠.
반면 소련은 일본이 가만히 있어줘서 독일과의 전쟁에
집중할수 있었구요.
차이는 있지만 각자나라의 사정때문에 한쪽면에서만 보면 그나라의 덕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알게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보완 해줬기 때문에
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승리한것이지 한나라의 일방적인 덕은 아니라고 봅니다.
관련된 내용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을 무시할 수 없죠.
하지만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연합군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그 규모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44년 8월에 바그라티온 작전이 끝나자 스탈린의 기고만장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영국 수상 처칠은 루즈벨트와 협의하여 독일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서부독일 뿐 아니라 드레스덴도 잿더미로 만듭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드레스덴은 굉장히 동쪽 지역입니다.
드레스덴은 특별히 위협이 되는 지역도 아니었고 민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대의 기체로 완전히 평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여러 의도가 있었으나 연합군이 막강한 전력을 스탈린 면전에서 보여주며 연합군을 얕보지 말라고 과시하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정치체제의 차이가 어마무시한 진격속도에 영향준거같은데요...소련같은 일당독재 인권같은개념없는 나라는 인명손실을 우려하지않고 과감하게 작전가능한거랑 연합군은 장성급이 어느정도 인명손실을 고려해서 좀더 안정적으로 작전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진격속도의 차이를 낸게아닌가싶네요
말씀하신대로 입니다.
연합국 측에는 패튼을 제외하고는 과감한 돌파를 해내는 장군이 없었습니다.
브래들리도 그렇고 몽고메리도 그렇고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며 신중히 진격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결국 노르망디 전역에서 독일군 전선을 뚫고 미친 질주를 보이는 사람은 패튼이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좋건 싫건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오늘도 좋은 동영상&군사정보&군사지식 &군사무기&전쟁역사 잘보고갑니다 만물상자 TV [전쟁의신]운영자님 오늘도 좋은 하루 잘보내세요 화이팅입니다 ^^🥰🥰👍👍
언제나 감사합니다.
물자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독일군인지라 물자 풍부한 미군의 전투력을 내려다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군수뇌부들은 미국의 참전이 두려웠죠.
전쟁은 국가 단위 이상의 싸움이지 개인이나 축구 수준의 싸움이 아니죠.
전쟁수행력을 무시해서는 안되죠.
전투에서 양동작전이야 수도 없이 많죠
서부전선에서는 미군, 영연방군이 양동작전 하는 경우도 많았구요..
영국, 미국의 인력손실을 대신해서 소련이 대신 했고 이 영향으로 전후 소련이 동유럽을 지배하게 되는거구요.
소련이 2차 세계대전이 끼 지 않앗다면.. 미국은 참전 하지 않앗겟지. 유럽은 독일 제국 일 것이고.. 미국은 대서양 건너 큰 섬나라일 뿐 이겟지.. 미국이란 나라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걍 변방일 뿐 이지.. 미국은 2차 대전에서 한 일에 비해 전리품을 많이 획득햇고.. 그에 대한 정당성을 위해 많은 것은 대중에게 과장되게 선전 햇고.. 님은 그 주장을 되풀이 하는 거 ㅅ 아님?
@@leemoon4207 내용이 시덥지 않음..중국이나 러시아 입장으로 본 듯..
역사는 자료를 근거로 봐야지 국가 프로파간다나 영화를 근거로 보는게 아님..
헐리우드 영화만 보면 미국이 2차대전 다 해먹은거 같지만 실제는 아닌거 처럼..
미국의 랜드리스가 아니였으면 영국, 소련이 전쟁을 훨씬 더 어렵게 수행했겠지..
미국은 1차세계대전에 이미 전세계 GDP 1등였으니 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가 2차세계대전 이후 전세계로 외교력을 확장한거지..
소련이 참전 했으니 미국이 참전했다? 미국의 직접 참전은 일본이 만든거지 독일이 만든거일까? 소련은 독일과 전쟁하면서 일본이 만주, 시베리아로 진출할까봐 염려해서 일소 불가침조약 맺고 일본의 시베리아 진출 가능성이 없어지자 독소전에 전념한거지.
전후 전쟁 치룬 국가들이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고 특히 소련, 독일이 심각했던거 보면 사람 아낀 영국, 미국의 판단이 맞은거라고 봄
제가 요즘 전략시뮬레이션 블리츠크리크의 미시온 쿠르스크(Blitzkrieg mision kursk)독일군편을 다시 즐기고 있는 중 인대,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전투에 참전한 독일군부대 전투병력 편제가 게임에 포함된 각 켐페인마다 한줌도 안되는 작은 규모의 병력(연대급 이하 부대)이 제공되며, 주어지는 병력과 추가로 지원될 증원부대로 간신히 마을하나하나 점령해야며, 점령하더라도 소련군의 증원부대의 막강한 반격도 막내야 하는 등 탄약마저 턱없이 부족하리만큼 너무나도 맵의 실제 지형상 광활한 영토 크기에 경악을 금하지 못하내요. 맵에 표시되는 언덕 고지가 필수 전략적 요소가 되니 소련군이 참호를 파고 들어 앉아 장악하고 있는 250고지 217고지를 점령하는대, 분대 단위로 된 보병들은 중대급으로 한순간에 순삭당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치열 했을지가 상상불갑니다. 전투에 참전할 전선의 전투부대가 소지한 탄약제한과 탄약보급만 게임상 포함 되있지만 연료보급 전투식량보급 전투용 탈것 부품 수급 부상병(전투불능)을 치료해줄 의료품 지원까지 메우 디테일하게 포함하였다면, 정말 고전하기 쉬운 게임이더군요.
소련이 없었다 해도 독일은 미국을 이길 순 없었을 듯???
일단 독일은 모든 공군력과 해군력을 동원했는데 영국 본토에 상륙하기는 커녕 공중에서 탈탈 털렸고 해군은 괴멸 수준으로 영국에 상대가 안됬죠.
유보트? 가 있긴 했지만 훗날 연합국의 대잠 능력이 강화되어서 대서양에 패권도 잃어버렸고… 미국 영국의 폭격기들이 밤낮을 안가리고 독일 도시들을 폭격했는데.. 미국을 이길 순 없었죠!
독일이 유일하게 미국을 이길 방법은 핵폭탄을 만들어서 쏴버리는 방법이었지만.. 그걸 밤낮으로 퍼부어대는 폭격 속에서 제대로 된 공장 하나 없이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음..
독일은 기술만 좋았지..자원도.. 인력도.. 기반시설도.. 모든 부분이 연합국에 비해 부족했고.. 이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다 한들 경제가 못 따라가서 어려웠음..
소련에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 독일 전력 갈아내면서 밀어낸건데.
반대로 연합군 측에서 인명피해가 수백만을 상회하게 되면 미국내 여론의 압박이 상당했을듯.
그리고 인도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국가들이 전쟁이탈했을거 같음.
오랜만에 들렀는데 영상 조회수가 예전보다 잘 나오는 것 같네요. 계속해서 번창하세요. ^O^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만물상자님의 전쟁사에 대한 식견에 감동합니다. 예전보다 발음도 좋아지셨고, 지금은 공중파 나레이션하실 정도네요 ㅎㅎ
감사드립니다. 큰 힘이 됩니다.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당시 최강의 독일군을 막고 전세를 역전시킨 덕에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할 수 있었고,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잘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죠. 노르망디 상륙에 때문에 독일이 정예, 핵심부대를 동부전선에서 서부전선으로 옮기는 바람에 소련은 더 쉽게 진격할 수 있었고요.
소련군이 재건하고 진격하기까지 미국의 물자지원이 큰역할을 했던것도 사실입니다 연합국이 물자지원을 안해줬다면 소련이 이겼어도 그처럼 빨리진격하지는 못했을것입니다 미국의 지원이 소련을 키워준것입니다
미국이 지원이 소련군을 키워준 것인 사실입니다.
심지어 2차대전이 끝났는데도 루즈벨트는 지원을 퍼부어댔습니다.
ruclips.net/video/3HD3YR5VW4o/видео.html (스탈린은 나랑 했던 모든 약속을 깼어! 한반도의 분단을 부른 루즈벨트의 대실수.)
그런데 이 컨텐츠에서 주목한 것은 1944년 6월 말에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입니다.
연합국을 긴장시킬 정도로 엄청난 승리였습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을 지켜보며 연합국은 소련 지상군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죽하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아이젠하워조차
바그라티온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조건이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소련은 미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몸으로 때우는 것은 스스로 해낸 셈이었습니다.
랜드리스 로 소련에 제공한 물자중 미국이 생산한 탄약의 절반이상이 소련으로 제공되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이하의 탄약으로 미국은 태평양,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독일 폭격, 프랑스 , 중국에서의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미국의 탄약지원이 없었으면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을때 독일군은 아직 모스크바 근처에서 소련군과 전투중이었을겁니다
미군은 그물자 생산국인데 왜 노르망디 상륙후 더 진격도 못하고 있었는데, 물자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련이 자체 생산한게 10배는 더 많았다
히틀러의 전략 실패. 두개의 전선을 만들면서 패배 함.
소련 대단하네.
사실 이차대전은 스탈린이라는 인물이 전쟁을 이겨 낸거임
소련 진짜 대단하네 만약 언싱커블 작전이 실행됬다면 누가 이겼을까요...? ㄷㄷ
독일 육 공군의 슈퍼에이스들은 쉴세 없이 싸웠기 기록적인 전적을 세웠다고 봅니다.
랜드리스 만능 신봉론자(랜드리스 없었으면 허접 소련따윈 이미 망했어)들이 애써 무시하거나 잘 말하지 않는 사실 - 영국은 소련보다 미국한테 랜드리스 3배나 더 받음.
미국이 제공한 랜드리스의 약 60%가 영국으로 갔죠.
무기만 보낸거 아님 가장 먼저 보낸게 식량이었음
???: 그대가 나치를 물리치기 위해 치룬 희생에 경의를 표하마. 그러나 그대가 온 세계에 퍼트린 암덩어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노라! 그러한 그대에 대한 형벌은 바로..해체다!!
영국이 대서양 해전이나 노르웨이 그리스 시칠리 북아프리카 전선 독일 폭격 등 여러면에서 독일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1차대전에서 희생이 워낙 큰데다 대전 초기부터 홀로 독일을 상대해왔고 본토 방어에 여유가 생겨서 독소전 발발 후 스탈린의 요청에도 둘다 힘 좀 빼라고 페이스 조절 힘 조절에 들어간듯 ㅎㅎ
일리있는 얘기입니다. 사료에도 나오는 얘기고요.
그리고 미국입장에서는 독일보다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더 컸습니다. 일본은 미국을 직접 공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영국입장에서는 일본보다는 독일을 치는 것이 더 급했기에 독일을 먼저 공략하도록 미군 지휘부를 설득하느라 무척 애를 썼습니다.
소련은 1942년부터 죽는 소리를 쳤으나 연합군은 거의 2년이 지나서야 행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독일이 소련을 상대하지 않았다면 소련에게 쓸려나갔을 병력은 결국 미공군력에 쓸려 나갔겟지요. 노르망디 상륙은 2차대전 후반부에 이미 연합군 쪽으로 전세가 기울어진 상태이고 그때 이탈리아는 무너지고 일본은 몰락하던 상황에 독일도 북아프리카에서 패배하고 쫏겨난 상태로 모든 전선에서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 좀더 버틸수는 있었지만 결국 시간문제 였다고 봐야죠. 소련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훨씬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그게 결과를 바꾸진 못할 겁니다. 미국은 정 안되겟다싶으면 독일을 최초의 원자탄 피폭국가로 만들었겠죠.
동시에 소련도 혼자힘으로 독일을 이기긴 어려 웟겠죠. 더구나 연합군이(정확하겐 미국이) 일본을 감당하지 못햇다면 일본을 일찌감치 불가침조약의 만료기간을 폐기하고 소련이 양쪽의 적을 상대 해야 했을겁니다. 일본이 노몬한에서 소련에 털렸지만 독일 해군을 발려버린 영국해군이 일본에 발려 버렸고 동남아 침공초기 지상전에서 보여준모습은 소련이 쉽게 감당하진 못했을거라는 예측을 하게합니다.
영국해군과는 다르게 미해군은 진주만 침공으로 파괴된전력을 순식간에 복구하고 역습햇습니다.
독일은 u보트로 도버해협을 건너는 것조차 불가능 했고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생산력은 독일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고 소련이 자국민의 생명을 갈아 넣어 만든 성과를 미군이라면 엄청난 생산력으로 대신 했겠죠.
소련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더욱 힘든 전쟁을 치뤘겟지만 승패가 뒤집어지진 않았을테고 독일은 1차대전의 베르사유조약의 교훈으로 절대항복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티고자 했지만 이것이 독일의 능력을 상징하지는 못합니다.
625때 명목상un군은 사실상 내용상 미군이었듯 2차대전의 서방측 연합군은 명목상 연합군이지만 사실상 내용상으론 미군이라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말씀하신 것과 관련하여 주제를 벗어난 내용이라 다루지 못했던 것을 말씀드립니다.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스탈린은 기고만장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 벌어진 팔레즈 포위전에서 연합군은 독일군을 포위섬멸하는데 실패했으나
소련군은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독일 중부집단군을 전멸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6.25전쟁 휴전회담처럼 스탈린의 입김이 세지게 되자 처칠 수상은 초조해졌습니다.
드레스덴 폭격은 바로 이런 정치적 이유때문에 벌어집니다.
전쟁이 다 끝나가는 상황에서 드레스텐과 독일 서부와 베를린을 무차별 폭격하는 연합군 공군.
이것은 스탈린에게 연합군의 능력을 얕보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습니다.
소련의 지상군이 규모가 클지 모르지만 항공력과 보급 능력은 연합군이 최고라는 사실을 스탈린 면전에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많은 지원을 했는지 진정 몰라서 막판에 그런 멘트를 한것인지? 예를 들어
미국이 그많은 유조차를 지원 안했다면 소련군의 t34는 연료 조달에 애를 먹으며 독일군의 재정비 시간을 벌어줬을 것이다.
@자주국방 님이 말씀하신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아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02:27 에 설명한 대로 이번 컨텐츠는 자원적인 측면보다도
2차 대전에서 독일군을 격파했던 소련군의 전투 역량에 집중했습니다.
아무리 자원을 보태준다고해도 결국 일선에서 싸워 이겨야 효과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그라티온 작전이 아니더라도 이길수있지만 도대체 언제 끝날지 의문입니다 연합군에 막강한 공군력으로인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성공할수밖에없는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바그라티온 작전이 없으면 아직도 독일군에 전력은 막강합니다 소련군과 평화협상을 할수준으로요 언젠간 치열한 소모전으로 망하겟지만 전쟁이 언제끝날지는 모름니다 독일에 빠른 패망지름길은 바그라티온 작전이고 이작전으로 연합군에 진격속도는 무지막지하게 빨라집니다 구지 바그라티온 작전이 아니더라도 독일이 전쟁에서 졋지만 전쟁은 언제끝나죠 그걸 완전히 축소시킨게 소련군에 바그라티온작전입니다 독일이 전쟁에서 진이유는 배틀오브브리튼으로인해 패배를 거두면서 바다사자작전이 취소됀거죠 물론 독일엔 상륙함이없어서 불가능합니다 이탈리아엔 있죠 베틀오브브리튼과 바다사자작전이 독일엔 전략전승리를 가져다줄요소이지만 독일이 빠르게 패망하는대 있어서 큰지름길을 열어준게 소련에 바그라티온작전이죠 자원이있으면 그 자원을 활용할나라가 필요합니다 미국에 자원을 제대로 활용한나라가 소련이죠 쉽게 말해서 연합군은 자원은 이미 많을대로 많아서 나치를 유럽에서 몰아낼수있습니다 하지만 이많은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줄모릅니다 활용할줄아야 전쟁이 빨리끝나는대말이죠 그 잘활용한나라가 소련입니다 소련덕분에 전쟁이 빨리끝난거죠
@@김민규-e3d4i 지상전력 하나는 정말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소련입니다.
다음 컨텐츠에서도 나오겠지만 루즈벨트와 처칠이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스탈린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갔던 이유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보여준 소련군의 어마무시함을 봤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컨텐츠에서 나왔듯이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상륙자체는 성공시켰으나 그 이후 전투를 통한 포위섬멸전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완벽한 포위섬멸전을 성공시켰습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그래서 공군력덕분에 상륙은 성공햇으나 공군력이 완전히 털린 독일군은 연합군을 바다로 담글수없습니다 소련이 없엇더라면 결국엔 소모전으로 독일이 패배햇을지도 모름니다 하지만 전쟁은 이기는것만이 중요한게 아님니다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게 실력이라고 말할수있죠 그래서 연합군보다 소련군이 한수 위라는겁니다 2차대전을 빠르게 종전시킨것은 소련군이니깐요 보급이많은자가 결국엔 전쟁에서 이김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봣듯이 연합국엔 울트라 암호해독도 있지요 하지만 많아봣자 뚫혀봣자 머합니까 전쟁을 빨리 끝나길 원하는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하나하나 보급을 효율적으로 활요한나라가 소련입니다 어차피 영국을 못먹은 독일은 전략적패배를 하는것은 당연한겁니다 하지만 핵심은 전쟁을 빨리끝내는것 그게 누구겟습니까 소련이죠 결국엔 배틀오브브리튼에 패배한 시점으로 소련군이 2차대전에 최고1인자가 됄수있습니다 동부전선이 독일에 패망을 훨씬 앞당겻으니 말이죠 미국에 보급을먹고 전쟁을 이끌엇지만 이걸제대로 활용한게 소련이죠
쉽게 말해서 독일에 전략전패배는 배틀오브브리튼에서 배패 바다사자작전 불가능 하지만 전략적패배를 빠르게 앞당긴게 동부전선 소련에 바그라티온 작전이죠 이젠 전쟁이 지나 이기냐는 중요하지않습니다 너무많은것을 가졋죠 하지만 전쟁을 빠르게끝내는것은 이긴다와같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련덕분에 2차세계대전이 이겻다고 과언이 아님니다 바그라티온작전은 2차대전에서 거이 신의 한수이니깐요
소련이 2차세계대전 승전의 8할 이상을 기여했다고 봅니다.
소련에는 할리우드가 없어 저평가 된거지 실적보다 중요한게 선전이거든
@m2910독일군 사망자가 900만이 아닐텐데요?
사실 2차대전은 연합군과 독일의 전쟁이 아니라 독일과 소련의 전쟁였죠.
애초에 그런 소련도 미국이 군수지원 안해줬음 진짜로 질 뻔했음
@@김리크 아직도 이런 소리 하는 분이 있네...
자료 좀 찾아보고 팩트 체크 하세요.
미국 랜드리스 타령하는데 영국에 지원한 랜드리스가 소련의 3배임.
소련이 지는 전쟁을 미국 랜드리스로 이긴거라고 우기는 모양인데 그럼 3배 지원 받은 영국은 세계 정복 했겠죠?
영국이 2차 대전에서 얼마만큼 기여 했는지 생각해보면 판단이 될듯...
급할때 큰 도움이 된건 맞지만 미국 랜드리스 덕에 지는 전쟁 이긴거란건 말도 안되고 좀더 수월하게 이겼다가 맞는 말임..
이미 1939년에 gnp가 소련이 독일 보다 높았음.
@@김리크 하... 공장 수보다 인력이 더 중요합니다
@@김리크 ex 군수공장 300 독일 vs 군수공장 150 소련. 승리는? 소련. 이게 소모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젤 궁금해하는 겁니다.
@@Milswe 죄송한데
미국이 소련한테
지원 해준 장비 수나 보고 오세요
당연히 인력풀도 중요한 거긴 한데 인력이있어도 탱크 총 비행기를 막을 무기 자체가 고갈 되어 가던 시점이였음
소련이 독일에게 저항해서 견딜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북극해 해상 항로를 통해 미영 연합국이 계속 보내 준 전쟁 물자와 철강과 기술지원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차 밖에 없었던 소련에게 자동차를 대량으로 제공해서 소련군의 수송과 보급능력을 향상시켜 주었던 것도 미국이었다.
소련은 미국이 주는 철강과 기술지원으로 탱크와 대포, 소총 들을 단기간에 대량생산할 수 있었기에 차츰 열세를 만회하고 독일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이 모든 것이 소련의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레닌그라드가 900일동안 포위된 상태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도 해상통로를 통한 서방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러는 동안 숱한 서방측 수송선들이 독일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되면서 숱한 희생자가 나왔었다.
소련은 서방측의 도움이 없었으면 히틀러에게 짓밟혀 히틀러의 계획이었던 슬라브족 멸종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유럽의 뿌리깊은 양대 골칫거리인 유태인과 슬라브인들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유태인들이 수용되어 학살되었던 수용소의 원래의 설립목적은 소련군 포로들을 수용하여 학살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이었고 독소 개전 첫 육개월동안 포로로 잡힌 300만의 소련군 포르들 중 수천명만 남기고 모두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었는데 그 희생자 중에는 스탈린의 아들도 들어있었다.
독일은 스탈린의 아들을 소련측에 잡힌 독일군 고급장교 포로들과의 교환에 이용하려 했으나 스탈린은 "내겐 그런 아들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소련군이 후에 독일 영내로 밀고들어가면서 숱한 독일인들을 학살하고 독일여자들을 강간한 이유도 독일에 의한 러시아인 학살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
재미 있는 사실은 소련이 연해주 일대로 도망쳐 있던 독립군 병사들을 색출해서 열차로 실어다가 중앙아시아에 정착시켰었는데, 독일군과이 싸움에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된 독립군 병사들과 그 후손들이 그토록 잘 싸웠다고 하며 육이오 때 북한측 대표로 휴전회담에 나온 "남일"이란 사람은 바로 그 출신이었다. 인물도 좋고 똑똑한 남일 대신 무식하기 짝이 없었던 김성주 (가짜 김일성)이 스탈린에 의해 북괴 지도자로 채택된 이유는 스탈린은 위성국 지도자로 다루기 쉬운 바보들만 골라서 앉히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었다. 만약에 남일이 북한 지도자로 들어왔었다면 해방 후 지금까지의 한반도의 역사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음.. 폴 케네디의 관점이 있네요. 과연 영국과 프랑스도 이 생각에 동의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도 소련의 전술/전략적 승리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무기지원이 전쟁수행능력을 개선시키겠지만 그것이 전쟁 승리와 직결되지 않다는 것은 여러 역사적 사례가 있다고 봅니다. 영상을 만든 이의 제작 방향은 전술적/전략적 승리에 초점을 둔 것이라고 봅니다.
@@jhryu5655소련 식량 70퍼 책임지는 우크라이나 곡창지대도 빼앗긴 마냥에 그 많은 소련군 보급은 누가 책임집니까
소련 군수는 미국이 책임졌다고 봐도 무방할정도 인데
그리고 뭔자꾸 무기지원 지랄하는데 윗댓글 보지도 않았나 미국은 무기뿐만아니라 식량 철도 열차 무전기 수십만대의 트럭 그외에도 기초 군수품은 죄다 지원했는데
또 전쟁에 보급없이는 전술 전략 성립자체가 불가능한데 말이되는 소리좀
랜드리스 없어도 소련이 패배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승리도 절대못함 폴란드는 커녕 소련영토 수복도 못했을거라고 보는데ㅋㅋㅋ
@@user-ls2lk5xe1p 음.. 이런 댓글을 보면 독소전에 대한 논문을 제대로 읽고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음. 미국이 랜드리스를 통해서 소련의 전투수행능력을 지원했고 이것이 도움이 된 것은 맞음. 그러나 랜드리스의 최대 수혜국은 영국이었고 소련은 영국의 1/3수준을 지원받았음에도 결정적인 전투에서 사실상 독일을 붕괴에 이르게 했음. 스탈린그라드 전투까지는 랜드리스 효과는 광범위하지 않았음. 1944년 이후부터 그 효과가 나타남. 1944년 소련의 전략적 우위는 랜드리스가 도움이 됨. 그러나 여기에서 중점은 무기대여와 전술적 승리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점. 당신이 아는 결정적 승리들 중에서 더 많은 지원을 받았던 영연방 국가들이 있었는지 되묻고 싶음. 자주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리처드 오버리가 말하는 것은 전술적 승리에 구소련의 역할이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것임. 왜 영국은 남유럽 전투에서의 우위를 막대한 미국 물자를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지 못했는가. 왜 한국군은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전술을 만들지 못하고 중공군을 못물리쳤는가. 왜 남베트남은 우수한 미군 장비로 승리하지 못했는가, 왜 아프칸에서 정부 붕괴로 이어졌는가. 전쟁의 수행능력에는 경제력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최종 전쟁에서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 소련의 군사적 승리에는 내부적인 노력과 반성이 있었던 것임. 다시 강조하지만 학자들의 견해는 만일 미국의 군수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이 대패했을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하지 않음. 전쟁이 더 길고 장기화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임.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었던 것에 미국의 역할이 컸다는 것임.... 되묻죠. 미국과 독일이 1:1로 전투했더라도 1945년에 전쟁이 끝났을 것이라고 보는지...
@@user-ls2lk5xe1p 좀 관련 사례나 논문을 좀 읽고 이야기하기 바람. 기본적으로 랜드리스 안에 원자재도 포함되어 있음.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리고 랜드리스가 도움이 안되었다고 말을 한 적 없음. 전술적 승리는 별개의 차원이라는 것임. 군수/병참 부문은 전쟁수행능력과 연계된 부문이고 전투의 승리는 전술/전략적 선택의 문제임. 간단히 말해서 경제력 우위가 전쟁 승리의 결정적 변수가 아님. 그것은 폴 케네디도 말한 바 있음. 당신이 사관학교나 전문적인 국방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오케이. 그게 아니라면 소련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다는 점을 알 것임. 예로 독일의 총력전 체계가 비교적 늦게 자리잡았고 상당히 비효율적었던 점임. 그런데도 독소전 이후 부족한 자원 속에서 무려 4년이나 전투를 수행했고 때론 미군을 고난에 빠뜨리기도 했음.
@@jhryu5655 오케이 인정
근데 한가지 말하고 싶은거는 독일군이 빈약한 자원속에 미군을 고난에 빠뜨렸다고 그러는데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독일군이 존나게 잘싸운게 아니라 그냥 미군이 못싸웠던거임
태평양 전선 미군도 초기에 일본군에 대패하기도 했지만 과달칼날에서부터 꾸준히 굴러서 경험이라도 쌓은거지
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보여준 미군 전투력은 처참하다시피 함
태평양전선과 다르게 서부전선 미군은 장교나 병사 부사관 빠짐없이 대부분이 복무 1년도 안된 신병들이 대부분이고 아프리카나 이탈리아에서 구른 베테랑들로 신병들 커버하기엔 미군 규모를 갑작스럽게 뻥튀기해서 너무 부족했음
말그대로 미군이 못싸운건 실전경험 부재로 일어난 참사고 벌지전투는 가야 제대로 전투력을 발휘함
독일군들이 미군들 규모만 큰 좆밥들이라고 괜히 그런게 아님
잘배우고 갑니다. 방대한 내용을 방구석에서... 덕분에 늘 잘배워요. 굳세어라 금순아를 모르는 세대를 위하여 책도 구매했네요 ㅎㅎ
감사드립니다. 본 컨텐츠는 상당히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제작한 컨텐츠입니다.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뭐가 아쉬워서 이념이 다른 소련군을 띄워줬겠습니까?
자신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독일군조차 포위섬멸하는데 실패했는데 소련군은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3배가 더 많은 독일군을 상대하면서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켰기 때문에 같은 군인으로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이 분위기는 45년 2월의 얄타회담까지 이어지며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저자세로 나가게 되는 단초가 됩니다.
독일은 소련과 전쟁을 안했다라고 가정한다면.. 부족한 자원은 소련이 지원해줬을테니.. 음.. 일단 전쟁은 45년이 아닌 더 길게 지속 됬거나 협상으로 끝났을 듯? 하네요.
하지만 나치독일은 점령지 관리를 잘 못 해서.. 내부에서 온갖 반란으로 인해 자멸할 가능성이 크겠네요!!
댓글들이 랜드리스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 과대 평가함.
소련이 이긴 제일 중요한 원인은 훌륭한 동원력과 정치선전에 있음. 국가에서 부른다고 바로 응하는 수많은 남성들이 있었기에 인력을 갈아 넣으면서 싸울수가 있었음.
그 다음 요인은 소련이 공장을 전부 우랄산맥 동쪽으로 옮긴게 신의 한수임. 공장 전체를 전부 옮겨서 공업생산을 할수 있었으며 무기생산이 큰 문제가 없이 싸울수 있게 됨.
지휘부의 병신짓(스탈린)때문에 처음엔 엄청난 전패를 맛보았지만 지휘권이 교체되고 원동지역의 주요병력이 지원되고 나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함. 즉, 최정예 부대로 소모전에서 이기기 시작함. 그 대표적인게 스탈린그라드와 레닌그라드 전투임.
하지만 광대한 우크라이나 땅을 잃게 되어서 식량생산이 힘들었던 소련에게는 무기보다 식량이 더 중요한 전투물자였고 그걸 랜드리스가 해소해줌. 무기지원이나 광물등 지원이 있었지만 실제로 전투에는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함(단순 생산량으로 비교하면 소련 자체가 생산한 무기는 미국이 지원한 무기보다 10배이상 많음).
즉, 소련 자체의 요인이 9할이고 랜드리스가 1할임. 인류역사 중 단 한번도 외부의 무기지원이 중요한 요인이 되어 전쟁에서 이긴 사례가 없음.
과대평가라고 볼수없음 오히려 소련군에게 미국은 호흡기달고 대수술끝에 소련을 살려낸 구세주에 가까움 소련군이 처절하게 독일군과 맞서 싸워 독일군과 동귀어진할정도로 발목을 붙잡은건 부정할순 없지만 당시 미국과 영국의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말그대로 쫄쫄굶어 뼈다귀만남고 눈이멀어 장님이 된 타이슨과 다름없었음 당시 연합군의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의 고질적인 문제 부실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의 경공업의 바탕인 비옥한 곡창지대와 중공업지대는 독일군이 서부전선을 휩쓸면서 대부분 초토화되었고 우랄산맥으로 이전된 군수공장은 43년2월이나 되어서야 미국과 영국의 랜드리스 지원아래 중공업 몰빵으로 그제서야 제대로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음 또한 전쟁초기 점령지에서의 타민족들은 독일군에 매우 우호적이었으며 러시아에 대한 증오심이 만연했음만약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모래주워먹으면서 싸워야하는 상황이었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러하듯 미국과 영국의 랜드리스 및 에니그마해독으로인한 정보기관의 압도적인 첩보능력과 암호해독능력으로 인한 압도적인 정보력이 없었다면 이미 압도적인 교환비를 바탕으로 맨파워가 고갈되기 시작한 소련은 말그대로 나가리였으며 미국과 영국이 독일 전선을 훤히 들여다보듯 했기에 정보가 없었다면 소련군의 역량은 더욱이 집중할수없었을것임 보급과 병참능력 및 통신두절로 인한 정보력이 없는 부대는 전투력이 제로에 가깝고 전투의지는 사라지기 마련임 독일군의 기갑부대가 밀고 내려오는데 선생님은 겨울에 팬티한장입고 쫄쫄굶은 상태에서 볼트액션식 소총들고 싸우실수있음??말그대로 개죽음임 모스크바공방전과 청색작전을 빈사상태까지 가서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41년6월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43년2월의 천문학적인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말그대로 호흡기단상태로 하나님과 세세세했을것이라는게 흐루시쵸프 회고록에서도 볼수있고 스탈린은 한숨돌린이후에도 현기증난다고 계속해서 루즈벨트에게 더많은 랜드리스를 요구했음 게다가 우랄산맥의 군수공장에 집중할수있게 고품질 부수기재들을 공급한게 미국이고 사실상 소련육군과 소련공군을 재건하여 야전통신체계를 확립하여 제병협동이 가능케해 신속하게 반격가능하게만든것이 랜드리스임
식량분야,피복분야,의약품분야,금속자원,고등급항공유 및 석유,수송 및 기계화차량,중공업기반의 선반 밀링등 각종설비와 전력및 군수공장의 핵심부품등 전차 및 항공기의 핵심부품 기초적인원자재,통신과 철도, 지프 등나열하자면 끝이없을정도로 소련은 초반 독일공세로 중공업의 80퍼 식량자원 및 경공업의 67% 서부전선의 정예화된 인적물적자원 등말그대로 전쟁초반 싸그리 다털렸으며 그밖에도 천문학전인 금액의 지원으로 소련의 빠른회복과 반격의 핵심이된 식량분야 및 기계화차량 및 제공권의 바탕이 되는 물적자원의 지원등 빠른반격의 핵심중추역할을 했음에 부정할수 없고 미국은 소련국민의 아이들까지 생각해서 전시에 우울한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까지 보내주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하기위해 축음기와 장신구 보석등 그냥 말그대로 각성하기전에 미국이라도 이미 그냥 미국 그 자체였음 소련의 국가수호의지만으로는 말그대로 맨땅에 헤딩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의 전황일정도로 소련의 상황은 매우 암울했음 그정도로 미국과영국의 랜드리스는 큰영향을 끼친게 아니라 소련승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수있음 소련이 3천만명 가까이 희생되었다고 전쟁1등공신이라고 하기엔 무리가있음
오히려 3천만명가까운 희생은 그것은 독재국가 특유의 인명경시사상과 엘리트장교진 대숙청으로인한 제로베이스에가까운 소련의전술적요인에 기인했다고 볼수있음
전시에 숫자도 물론 중요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병참과 정보력이 뒷받침되지않은 군대는 오합지졸임 물론 소련이 없었으면 연합군에게 더욱더 많은 출혈을 강요했을것이라는것도 부정할수 없고..그리고 맨파워가 고갈되어가던 2차대전 소련의 여파는 아직까지 이어질정도이고 아직까지 중공업에비해 미국에 비하면 발톱에 때도 안될정도로 러시아의 경공업은 보잘것없음..
미국의 랜드리스가 2차 세계대전에 영향을 미치기는 햇겟지만.. 미미햇다 생각함..
랜드리스가 중요하게 여겨 지는 것은 미국의 선전에 기인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함..
구체적 내용을 보면. 어떻게 영향을 끼쳣다는 내용이 대중에게 알려진게 별로 없음..
독일군이 전쟁에 진 이유는 인적 자원 전쟁무기 의 절대적 열세 에 기인 한 것 이 통계로 나오지 않음.?
소련이 전쟁 승전국 임에도 2700만 인적 자원이 희생되엇음이 그 대표적 예 아님?
@@pillseung1804
ㅋㅋㅋ. 팩트를 대던가. 언어모독하지 말고.
미국에서 지원해준 탱크가 몇대임? 소련에서 제작한 T-34가 몇대일거 같음? 미국에서 지원한 소총, 차량, 비행기 이런거 다 합쳐서 몇대일거 같음, 소련에서 제작한 무기들은 얼마나 될거 같음? 팩트는 하나도 안 읽고 걍 그런 쓰잘대기 없는 소리로 뭐라고 할거면 걍 짜져서 있으셈.
맞아요
@@유진-w4u7v43년에 독일이 스탈린그라드에서 대패하고 전황바뀐 시점인거는 모름?ㅋㅋㅋㅋㅋㅋㅋ 이미 43년부터 전황은 소련쪽이였다
바실렙스키 장군 "영미 연합군이 상대한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사실상 껍데기였다"
IL-2 폭격기도 전투력이 매우 우수했음 독일 주력 ju-87보다 최고속도 폭장량 공격력 기동성 면에서 월등함 그리고 실용적인 개인화기 pph-41 svt-40 승리요인에서 무시 못 할 존재들임
소련의 600만 대군이 바그라티온 공세 아니었으면 연합군이 그 많은 독일군을 상대해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의 전제조건이 소련의 바그라티온 작전이었다면,
소련을 바그라티온 작전까지 버티게 해준것이 연합군의 랜드리스였다고 생각해요
일리있네요.
요즘은 랜드리스에 대해 평가 절하합니다. 그것 없었어도 쏘련은 결국 독소전에서 승전 했을거다. 딱 70년대까지 이야기입니다.
1944년 독일은 동쪽에 소련군 600만 서부에 연합군 300만 총 900만의 적군에 포위된 상황이었던
잘봤습니다.. 구독합니다 ^^~~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차대전당시 탱크,비행기 각 오천대이상이라니.. 한반도에서 무인폭격기 2만5천대 만들어 100미터 간격으로 올라가며 재고많은 고폭탄 떨구면 싹쓰리 안될까요.
오늘현충일, 625참전하신 조상님들의 희생과 은혜에 말로표현안되는 감사의인사를 올립니다
현충일이기도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지상 최대의 작전이 시작된 날이 바로 1944년 6월 6일 입니다.
미국의 엄청난 물량지원을 소련이 받지 못했다면 소련이 단독으로 독일의 침략을 물리칠 수가 있었을까?
거의 거지나 다름없던 영국으로 부터도 최대한 삥을 띁어냈던 스탈린. .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국민은 전쟁보다는 먼저 굶어서 반은 죽어 나갔을 것이다.
응 혼자서도이겨
영상에 탱크 전투기 나오는 게임은 뭔가요?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인가요???
04:28 에 나오는 3차 하르코프 전투에서 독일 공군 수투카가 소련 기갑부대에게 맹폭을 가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전투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고증에 신경을 써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이긴 한데 일반 모드는 아니고 특수 패치가 된 부분입니다.
비록 연합군에 패배하였지만
몇년동안 전 유럽을 휩쓴 독일군이 대단하였네요.
가정은 있을수 없지만 독일이 만약
소련과 1:1, 미국이 참전하기전 영국등 연합국들과 1:1로
전쟁을 나눠서 벌였다면 승리할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초반 덩케르크철수를 막지 못한
독일의 전략전술에 의문이 많네요
전사 영상들을 접하다보면 독일군의 패인은
히틀러가 큰 역활을 한듯 느껴집니다.
채널의 컨텐츠를 보시면 덩케르크 철수를 막지 못한
독일의 전략전술에 대한 의문이 말끔하게 없어지실 것입니다.
전설의 시작 만슈타인 1부 (ruclips.net/video/lxB_hqPS8vE/видео.html)
덩케르크의 기적이 없었다면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승리했을까? (ruclips.net/video/GLrUAWknTC0/видео.htmlsi=vZiO0CVVP5GKi98A)
상륙작전에 참가할 아군 장군들과 그걸 당하게 될 적장들 모두 혀를 내두르며, 아니!! 이 자가 제정신인가? 미친 것 아니야! 할만큼 무모해 보였던 대군주작전
작전을 입안한 아이젠하워 본인도 상륙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기가 어려웠던걸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결국 소련군의 바그라치온 작전 이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이 대 군주작전(노르망디상륙작전)에서 만약 아이젠하워가 실패했다면, 총살형이었다고합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결코 누워서 떡먹기는 아니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확률이 반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증거는 또 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했을 경우의 기자회견문과 실패했을 경우의 사과문을
미리 만들어놨다고 합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네 맞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갈 경우 사형에 처해지는 죽음을 각오하고 대국민 사과문까지 미리 작성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미군의 전쟁물자 보급이 가장 큰요인입니다. 어마무시한 군수물자 생산으로 미군 자신 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소련 등에 아마어마한 무기 군수품이 지원되었고 전쟁지역도 유럽전지역,아프리카 일대,인도, 아시아(중국), 태평양 등지에 어머어마하게 깔렸죠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물자를 공급 해 준 셈이죠
2차대전 당시 연합국의 물주노릇을 한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영국, 소련 심지어는 중국이 일본과도 싸우는데도 엄청난 물자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컨텐츠에서 주로 다룬 사실은 바로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입니다.
연합군이 많은 준비 끝에 시행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 상륙작전의 총 지휘관인 아이젠하워가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조건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육지에서 싸우는 능력에 있어서는 미국이 소련의 능력을 인정한 셈이었습니다.
거의 소련혼자 거의 이긴 전쟁이지...
바그라티온 작전이 참으로 대단한 작전이긴 했던가 봅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을 통해 독일 중부집단군이 통째로 괴멸당한 후에 비로서 연합군 지휘부도
소련 지상군의 파워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군을 분할하여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연합국이 나누어 공략하여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할수 있었던것같다
2차대전은 독소전이고 나머지는 쯔끼다시
인정함 하지만 미국의 랜드리스가 없었다면 소련은 현상유지아님 밀렸을것이라는 전쟁역사학자들 의견이 우세함 소련의 고질적인 문제 경공업의 부실과 강력했던 중공업육성도시는 공장설비는 뒤로 옮겼다지만 대부분 독일군이 휩쓸고있었기에 더욱더 힘들었을것임 소련의 반격에는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그렇듯이 연합군의 도움이 엄청나게 컸음 물론 소련의 더이상 물러설수 없었던 국가수호 의지 또한 강력했지만 이미 독일군에 의해 중요지대및 서부전선 정예병력이 다털린 상황에서 그런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던것이 사실임 미국 핵폭탄개발전인 45년 8월까지도 독일과의 교환비에서 독일이 압도적 우세를 보였고 또한 독소전 초기 엄청난 인적물적손실때문에 소련의 맨파워가 고갈되어 더욱더 많은 출혈을 강요당했을것이라는것이 정론임
물론 랜드리스가 시작되기전인 모스크바점령은 막아냈지만 랜드리스가 없었다는 가정하에 그후 42년 청색작전에서 모스크바 및 스탈린그라드가 점령당했다면 연합군은 미국만이 가지고있던 카드인 핵무기투하가 아니었다면 승리하기 힘들었을것임 의심증환자 스탈린마저도 갈수록 장군들에게 전후로 갈수록 재량권을 부여했던것과는 달리 히틀러는 모스크바공방전 이후 모든 장군을 뒤로하고 군사작전권이 히틀러에게 가서 유연했던 임무형지휘체계가 박살났던것과는 대조적임 또한 43년 스탈린그라드전투 이후 악화된 히틀러건강을 책임지고 압도적인 신임을 받았던 군의관 모렐이 지금은 상상할수없을정도의 마약성 약물을 하루종일 투여했고 거기에 더해 암살미수사건까지 겹치며 최고사령관 히틀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망가진상태여서 2차세계대전 초기 냉철했던 히틀러의 모습은 사라져버렸고 제대로된 판단을 할수없었던것도 소련이 승리한것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수있음
@@유진-w4u7v 전쟁 역사학자들 대부분 미국 역사학자 겟지.. 할리우드 영화로 역사를 배우니.. 할 말이 없다. 독일 이 우세한 장비와 정예한 병력을 갖고 소련과 싸우다.. 소련의 물량 전에 당한 거지.. 소련은 자원 과 군수 공장이 발달함.. 2차 세계대전에 사용한 무기 대부분은 소련이 우랄 산맥 동쪽으로 세운 군수 공장에서 찍어 낸 거임.. 미국의 랜드리스 에 의한 지원 물자 가 군수 물자가 얼마나 되나? 미국 없엇어도 소련은 독일을 이겻음.. 랜드리스 물자가 무엇을 지원 햇는지 한 번 확인 해 보세요..
소련은 2700만 을 희생해서 독일에 승리한 것임.. 미국의 지원 이 없엇다면 더 많은 희생이 따라겟지요..
소련의 주요 무기는 티34 전차 토치가 미사일 -포병.. 항공기.. 다 물량전.. 이중 미국이 랜드리스로 지원한게 잇음?
프랑스 나폴레옹이 정예한 군대와 우수한 포병을 가지고 유럽에서 승리하고 러시아 와 전쟁 햇을떄와 별다르지 않음..
2차세계대전 전범은 독일과 쏘련임. 두놈이 손잡고 양쪽에서 폴란드 공격해서 무너뜨린게 시작임. 물론 독일놈이 소기의 목표성취후 배신 때렸지만.
정규수업에선 절대 가르쳐주지않는 팩트 잘보고갑니다 ^^
감사드립니다.
또한 바그라티온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미영의 지속적인 독일 견제가 필요했었죠
소련이 저정도 캐리해준 전쟁인데 냉전 시절에 마치 연합국 (미국은 몰라도 영국이?) 소련을 도와준 양 설레발 쳤던 온갖 허위역사를 배웠던 생각이 난다.
미국이 2차대전에서 연합국들의 물주역할을 톡톡히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에서 보듯 아무리 물자지원을 해줘도 전투에서 이겨야 이긴 것입니다.
소련은 그 전투에서 이긴 것입니다.
어떤 사안이든 입장에 따라 내용은 천차만별인데 지극히 소련의 입장만을 얘기하네요. 소련이야 직접적으로 독일군에게 자기들 땅이 침입을 당한 상태이니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고 영미권이야 앞으로 있을 세계 질서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쟁에 반영되기 마련인데 만약 당시에 영국이 총전력의 30%가 넘는 군수물자를 소련에게 지원하지 않았으면 소련은 초반에 그냥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어요.미국의 지원으로 설레발을 치는데 명백하게 영국이 지원한 겁니다.또한 미국은 영국에게 그냥 지원한게 아니며 외상으로 준거고 그걸 1970년대까지 갚아야 했어요. 각자 보고싶은 시점에 따라 다른겁니다.물론 소련이 잘 싸운건 사실이지만 그건 나라가 망하지 않기 위해 그들 스스로 희생을 치룬겁니다. 독일이 원하는 유럽 패권 더나아가 세계 패권을 염두하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지요.그 결과물이 지금의 세계 질서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겁니다.
좋은 말씀 잘 봤습니다. 컨텐츠 하나에 2~3가지 관점을 한꺼번에 넣는 것은 어렵습니다. 논점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이 컨텐츠에서는 연합군이 소련군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정한 시점이 바그라티온 작전이다는 것을 주제로 한 컨텐츠입니다.
ruclips.net/p/PLZmdkuHOpnlEaT-aVBL2T_PpeV9eh0CKL 2차 대전 주요 논쟁점 재생목록을 보시면
영미 연합군 관점에서 분석한 수많은 컨텐츠들도 있습니다.
독일은 소련과 싸우고 미국 영국에 항복 햇다. 구구절절히 변명 하고 설명 하는 게 필요한 이유는 그게 진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군가만들어도 누가 싸운지 딱드러난다 ussr과 독일제3제국말곤 들어줄만한 군가가 없다
미국이 2차대전의 중심국 맞아요. 일본을 사실상 혼자서 쳐부셨고 영국 과 소련에게 엄청난 전쟁물자를 지원했으니 독일을 이겼죠. 카이로회담 사진보면 루스벨트가 중앙이고 처칠이 왼쪽 스탈린이 오른쪽에 앉아있죠.
요즘 상영중인 오펜하이머가 유태인 과학자임..상륙작전이 성공한게 독일에게는 천운이였음 ㅎㅎ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인과관계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독일이 동부에서 밀린건 연합군 상륙때문에 동부전선의 병력을 빼낸 히틀러의 실책 때문이죠. 연합군의 진격이 느렸던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소련의 승리는 껍데기만 남은 독일의 수비병력 덕분입니다.
ruclips.net/video/qRr1d2dtqzU/видео.html (서부유럽 제공권 쟁탈전 2부)
이 url에 나온 컨텐츠의 고정 댓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 대성공에 영향을 준 것은 서부전선으로
독일군 병력이 간 것보다도 영미 연합군 공군의 제공권 쟁탈전 때문이었습니다.
괴링은 영미 연합군의 공군을 상대하기 위해 동부전선에 있던
최고 에이스를 비롯한 공군전력을 거의 다 서부전선으로 뺐던 것입니다.
때문에 항공 정찰이 당연히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소련군이 은밀히 병력을 중부집단군 쪽으로 모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작전에서 연합군 진격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독일군 전력이 강력한 것도 이유이지만
연합군 장군들 특히 몽고메리와 브래들리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이 역시 채널에서 모두 다뤘습니다.
ruclips.net/video/1kym_Rya7a4/видео.html (패튼이 생각했던 서부전선 돌파 전략)
그...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군의 전력은 80퍼인걸 아시나요? 서부전선은 그냥 저냥 싸운거면 동부전선은 인종을건 일종의 캐삭빵이었습니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대규모 시가전 포위전 기갑전 포격전 등은 전부 동부전선에서 일어났습니다
독일이 소련에서 실수한 건 소련이 강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에 집착해서 모스크바를 점령할 호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기회를 잃으면 다음엔 위기가 오지. 독일이 주춤하는 사이에 미국이 소련에게 엄청난 물량을 제공해서 쿠르스크 전투를 치를 역량을 갖추게 된다.
독일이 뭔가 강력했던 것 같지만 이미 1943년에 미-영은 전후 처리에 대해 합의했다. 이 합의를 브레튼-우즈 체제라 부른다. 매우 강해 보였지만 붙어 보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 그런 것이지. 1943년 합의로 인해 전후 자본주의는 자유주의 경제를 채택하지 않고 케인즈주의를 택하게 되었다. 소련은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
근데 반대로 영,미 연합군의 물자 지원 없었으면 소련군 단독으로 베를린 까지 진격 무리 아니었나요?
정확하게 단언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피를 무진장 더 흘리겠지만 결국 소련군은 베를린까지 간다는 것이 요즘의 의견입니다.
단 히틀러가 좀 더 전략적으로 공격력을 한곳에 집중했다면 소련은 패망했겠죠.
다시 말하자면 전쟁 물자와 무기를 누가 아무리 대줘도 실제로 군대가 전투에서 이겨야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소련군의 무기는 요즘과는 다르게 그 성능이 당시로서는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아뭏튼 이 컨텐츠에서 나왔듯이 아이젠하워조차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요소였다." 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굳이 제 말이 아니라 연합군조차 소련군의 지상전 실력은 인정을 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 계기가 된 전투가 바로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입니다. 이 컨텐츠는 그 점을 주제로 한 것입니다.
소련의 승리가 바그라티온까지 가는데 계기과 되었던것은 스탈린그라드가 시작이었죠..
동부전선은 베르덩의 재림이었다. 양측의 엄청난 소모전에 대하여 1차대전 때와는 달리 독일군이 소련군 한 두 사단을 박살내도 몇 일 사이에 십 여개 사단을 동부전선에 밀어넣으며 독일의 전력을 갉아먹었다.
음.. 격세지감을 느끼네요. 아주 오래 전(약 15년~20년 전??) 이와 비슷한 내용들을 군사 토론방에 썼다가 엄청난 비난(X갱이, 골수 좌파)을 받은 적 있죠. 많은 학자들 리처드 오버리, 마틴 해리슨 등등 American Economy History Review(탑 경제지)에서 1990년 이후 소련측 자료를 반영한 논문들이 꽤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난은..... 한때 국방일보 기고도 고민했던 주제입니다. 그런데... 댓글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이런 내용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학습된 편견과 아집이 새로운 지식 유입을 막는다고 해야 하나? 영상 내용은 매우 좋다고 봅니다. 핵심 메세지도 명확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내용을 과감하게 담은 용기에 격려를 보냅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료에 나온 그대로를 다뤘습니다.
아이젠하워가 말했던 정확한 워딩은 "바그리티온 작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필수조건이었다." 입니다.
미국은 소련, 영국 등 독일과 대항해 싸우는 모든 나라들에게 물자를 댄 엄청난 물주였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이후 미 육군의 기량은 발전해 있었고 미 공군은 최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연합군 총사령관이 저런 말을 한 이유는 단 하나.
바그라티온 작전 때문입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것이 주제입니다.
바르라티온 작전은 연합군 지휘부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소련군이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은 알았지만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소련 지상군이 엄청난 전력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인정은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저자세를 취하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상자TV전쟁의신 미국이 1945년에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일본에 2발이나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소련은 미국에게 훨씬 더 많은 요구를 했을 겁니다.
언론은 걍 선전 선동의 매체 일 뿐.. 신문 을 운영 하는 사람도 사람임.. 걍 국가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임..
잘 먹고 잘 살려구 하는 거지.. 대한민국에 살면 대한 민국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됨.. 거짓이고 진실 이고 가 별로 중요 하지 않음..
지금 러시아을 지지 하는 매체가 느는 것은 미국의 패권이 몰락이 보이고 잇기 떄문 이고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에 다른 대안 이 존해 하기 떄문임..
머리가 없는 사람 들이 아니면 어렴풋이 다들 이상함을 알고 잇지만 크게 떠들지 않는 것 뿐임..
경험 없고 지식 없는 어린 아해들은 언론의 선전 선동에 그 대로 세뇌 되고 그 프로파 간다의 희생양일 될 뿐임..
희생은 정의롭고 용감한 어린 너희 들이 하거라.. 그 과실은 내가 먹겟다..
이게 우리의 역사 아님?
미영 연합군의 독일 본토 폭격으로 동부전선 독일 공군 대부분이 본토로 이동한게 소련군 부담을 훨 덜어주고 승리한 요인인데 반대로 스탈린이 미영 연합군 덕분에 승리했다고 말해야 정상이고요~미영 공군 본토 폭격이 독일 군수물자 생산을 크게 떨어트려 소련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기여를 많이 했는데 미영 연합군 활약들을 너무 저 평가 했네요 스탈린이
당연히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을 무시할 수 없죠.
연합군의 막강한 공군력과 보급능력은 소련군이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컨텐츠에서 주목한 것은 바그라티온 작전이 연합군 지휘부조차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대성공이었단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바그라티온 작전이 끝나자 스탈린의 기고만장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자 영국 수상 처칠은 루즈벨트와 협의하여 독일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서부독일 뿐 아니라 드레스덴도 잿더미로 만듭니다. 지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드레스덴은 굉장히 동쪽 지역입니다.
드레스덴은 특별히 위협이 되는 지역도 아니었고 민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0대의 기체로 완전히 평지를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여러 의도가 있었으나 연합군이 막강한 전력을 스탈린 면전에서 보여주며 연합군을 얕보지 말라고 과시하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아니요. 요즘 전혀 안먹히는 논리입니다. 딱 70년대 서방측 역사가들이 그딴소리 많이 처해댔는데 지금은 다 교통정리 되었습니다. 존나게 밤낮없이 전략 폭격질 해댔지만 정작 나찌 독일은 국가 총동원 체제와 군수 산업 재구성 사업이 1944년에 완료되어 그때부터 엄청난 생산량을 보여줍니다. 이때쯤 되면 연합군은 한번에 300-1000대씩 폭격기를 동원, 아예 전 유럽을 쑥대밭 재배하고 있던 때였는데 말이죠. 군수상 알베르트 슈퍼는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여 방대한 노예 노동력과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해서 폭격으로 작살 났음에도 빠르게 복구하면서 생산량은 오히려 1943년대보다 더 올리는 기적을 이룩합니다. 이때 BF109도 월산 1000대를 찍어서 공장마다 갓 출고된 BF109가 가득가득 찼었죠. 다만 파일럿이 없었다는게 에러... 암튼 전략 폭격이 독일의 발목을 잡은건 맞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쏘련군의 지상전에서 승전이 아니였다면 연합군이 적어도 진격을 하면서 승리할 가능성은 낮았고 그저 맨해턴 프로젝트 하나만 바라봤어야 했을 겁니다. 1차 대전의 기동전 판으로 밀고 당기고를 반복 했겠죠.
@@hawk8873 쉬페어는 1944년을 회고하면서 연합군의 공습이 없었으면 생산이 30%는 늘었을거라 발언했습니다 또한 독일 대포 3문중 1문은 허공을 겨냥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연합군 공군의 기여도는 절대 무시할수 없습니다
2차 세계 대전때 미국이 생산한 군수물자가~~~~ 전세계가 생산한 군수물자보다 몇배는 더 많았다고 합니다~ 군수물자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그건 아니고 40퍼센트를 차지한겁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최강의 군대는 몽골의 칭키즈칸 군대가 아닐까요?
러시아가 거의 200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에서는 러시아를 80%의 유럽인으로 간주한답니다 . 몽골인의 피가 흐른다구요.
몽골인의 유전자를 받았으니 세계 최강의 군대로 싸움을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세요. 미국이 러시아를 개무시하고 우크라이나 등 떠밀어 싸우고 있는데 개박살 나고 있잖아요. 몽골족과 투르크(돌궐족)의 기원이 바이칼 호수 동쪽이잖아요.
터키에 가니까 가이드 말이 오스만 터키의 후손이란 걸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유럽을 가리켜
"저 새키들 아무것도 아니야, 다 우리 발 밑에 있던 놈들이야."
한대요. 2차 대전 때 최강의 군대는
소련군 》 독일군과 일본군》 영미 연합군
으로 봅니다.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이반 코네프 장군의 6백만 소련군이 동부전선에서 밀고 안갔으면 승리하기 쉽지 않았을 듯
독일군은 나치즘의 광기어린 정서만 걷어 낸다면 여러모로 배울게 많은 군대임 전술전략적인 측면도 있지만 투철한 군인정신 사명감 기사도 정신등..
시대를 앞서간 굉장히 혁신적인 군대였으니까요.
광기가 곧 전투력이 됨.
전쟁은 길어졌겠지만 핵무기 맛보고 결국 이겼을듯 추축과 연합 핵무기 기술수준차이가 넘사인데 공중재패한 연합국이 결국 이겼겠지
기술이 아니라 물량의 차이죠.
1987년 초딩 때 문방구에서 프라모델 전문업체 아카데미에서 만든 2차대전 유명장군형상의 조립식 피규어를 500원에 샀는데 거기에 몽고메리 아이젠하워 패든 롬멜 맥아더 이렇게 5명이 들어있었음 그리고 설명서에 롬멜에 대해서는 뛰어난 지휘능력과 전술전략으로 영국군을 잔인하게 괴롭혀 사막의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써 있었던 기억이 남..!! 왜 롬멜을 사막의 여우가 아닌 고양이라 했을까 아직도 의문임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은 적국인 영국에서 지어준 별명이었습니다.
아마 오타로 보입니다.
롬멜 관련 최신 컨텐츠인
우리가 알지 못했던 롬멜의 마지막 승리 (ruclips.net/video/J1LnTOH_M1c/видео.html) 라는 컨텐츠가 있습니다.
영국 전폭기에 중상을 입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했던 롬멜의 마지막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채널에 엄청난 롬멜의 이야기가 다수 있습니다.
도중에 나오는 GAME 이름이 뭔가여?
이해를 돕기 위한 화면이며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 3라는 게임의 장면을
임의로 조정하여 사용했습니다.
저렇게 독일한테 몇천만 갈리고 국토가 황폐화 되고도 종전후 미국하고 냉전 한거 보면 가끔식은 미국보다 소련이란 나라 가 더 정확하게는 러시아 슬라브족 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짐 강대국 dna 라는게 있나봐
워낙 인명을 경시하는 전통을 가져서 많이 죽어도 눈깜짝 안하는게 훌륭한 것은 아니죠. 마오쩌뚱은 중국인 절반이 죽어나가도 중국인구는 6억이나 남는다고 큰소리 쳤는데 같은 정서입니다.
소련은 미국이 원조해줘서 이긴거고 핵개발도 미국인 공산주의자가 비밀을 넘겨서 개발한 겁니다. 20세기, 21세기 발명들은 미국이 70%, 영국이 20%, 다른 국가들 다 합쳐서 10% 쯤 될겁니다.
독소전 기간동안 미국이 소련에 공여한 랜드리스 물자가 실상 엄청난 물량이었음
전차는 물론이고 수송용 트럭 그리고 소련군 전차에 제대로 달려있지도 않았던 무전기 식량 등등 미국이 두개의 전선을 유지하는 기간에 소련에게 막대한 물자까지 지원해준 것임
소련군이 없었다면..이라는 if를 대입한다면 미국은 태평양 전쟁이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도 성립할수 있음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해군의 물량과 해병대 미육군 사단 그리고 해군 항공대라는 물량을 독일군과 맞서게 했을때 독일은 과연 버틸수 있었을지
디테일
소련이 모스크바 전투,스탈린그라드 전투,쿠르스크 전투,바그라티온 작전까지 철저히 독일군을 소모전으로 격멸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 한번은 생각해봐야 하고,만일에 적어도 전쟁중 휴전을 맺었다면 동부전선의 독일군들이 서부전선으로 들어오는게 뻔했다!!허나,히틀러가 동부전선 외에도 서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까지 확대되어 싸워야 하는 삼중고에 빠졌고 결국 연합군에 독일군이 패전하게 된다!!이래서 연합군은 스탈린에게 감사패 정도는 줘야 정상이 아닌가?근데 종전후 연합군이 스탈린에 보여준 행동은 한마디로 말해서 개무시였다!!그럼 철의장막을 누가 세웠는가?당연 미국,영국이다!!이 영향이 한반도 분단을 가져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감사패를 빨갱이에게 왜 줘?
우리가 서방영화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 보여줌 소련이 아니었음 유럽은 독일어 한국은 일본어 쓰고 있을지 모르지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쟁이후 8월부터 소련군은 줄기차게 우크라를 공격하여 1943년 11월에 키예프를 점령했고 1944년 6월전에 이미 우크라 북부 동부를 점령했어요.
이러한 소련의 우크라땅에서의 전쟁승리가 없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애초부터 진행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1944년 6월 22일부터 시작한 백로시아 바그라티온 전쟁이 중요하긴 하지만 1944년 7월말에 소련은 우크라의 서부 도시 리비우를 점령하였고 우크라 서부와 남부를 먹었으며 루마니아에 쳐들어가기 시작했지요.
히틀러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석유유전을 지키기 위해 서부에서 일부 병력을 빼서 소련을 막느라 프랑스서부의 영미연합군은 별로 신경도 쓰지 못했습니다.
자국민 2천만 희생으로 승전국이었지만 최대 피해국이었다.
독일을 패퇴시키는 데는 소련의 역할도 컸지만 전쟁의 국면을 전환시키고 원점으로 돌리는데는 영국의 역할이 지대했던듯 ㅎㅎ
일전에 어느 채널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영국군 육군참모총장 앨런 브룩에 대해 다룬적이 있었습니다.
ruclips.net/video/djezQlsMRIg/видео.html(연합군 최고 전략가, 앨런브룩)
북아프리카에 힘을 집중한 것, 유럽 본토 중 시칠리아에 가장 먼저 상륙한 것.
이 모든 것이 앨런브룩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쿠르스크 전투를 망쳐버린 것이 바로 앨런브룩이었습니다.
미국이 저때부터 소련을 두려워 했겠네요.한국전에서 맥아더말을 안들은 트루먼이 이해가 감
이 컨텐츠는 중요한 시점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미 연합군은 자신들이 최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그라티온 작전의 규모는 엄청났습니다.
독일 중부집단군 100만 이상을 한번 전투에서 쓸어버렸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소련군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지상전에 있어서는 미국도 소련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소련이 600만 대군으로 바그라티온 작전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서부에서도 연합군 300만이 상륙할수 있었던
말씀하신 것은 사실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 노르망디 상륙을 총지휘했던
아이젠하워 대장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을 칭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그라티온 작전이 자신이 보기에도 그 규모와 성과가 엄청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사대주의자 윤석렬이 그래서 우리나라 외교를 다말아드시고 있지 우크라 질렌스처럼
소련은 항상 숨은 다크호스입니다. 전세계의 블랙홀 같은 존재랄까...
6.25때도 대한민국 수호자(?)였고 일제해방에도 사실 기여를했죠 ㅋㅋ
잘보고 갑니다~
소련군에 엄청난 전쟁물자(공작기계,비행기,등)를 미국이 지원해 주고 공산당 특유에 인명경시 인해전술로 사망자만 2000만이 넘는 자국민의 희생으로 만든 승리 -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
소련은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부터 단순무식하게 인력을 갈아넣어 독일과 싸워왔습니다.
전투기술, 경험 모든 것이 딸렸기에 그 격차를 피로 메꿨습니다.
그러나 1944년 6월 22일에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은 미영 연합국마저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승리였습니다.
강력한 독일군과 3년간이나 싸우면서 그들도 경험이 쌓였던 것입니다.
솔직히 항공력과 보급능력을 뺀다면 미국과 영국은 이 정도의 지상군 전력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그리고 연합국 지휘부도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컨텐츠는 바로 그것이 주제입니다.
2차대전 승리를 러시아중국과 함께 누리게되는 미국을 유럽일본한국은 어떻게 봐야하나?
미국이 아무리 돈지랄하고 부유하다고 해도 교전비는 압살한다 해도 그게 승리를 보장해주진 않았지요 그게 2차대전 이후에 증명되어왔고 그러니 랜드리스 타령하며 소련군을 폄하해선 안됨
이 컨텐츠는 정말로 객관적인 팩트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미군의 강점은 다른데 있죠. 바로 공군력과 보급력은 소련이 상대가 안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컨텐츠도 이미 있습니다.
당연히 2차대전 초반, 최강의 군대는 독일군입니다. 새로운 전술인 전격전에다 최고의 장군들까지...
미군이나 소련군이나 2차대전 초반에는 다 별볼일 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 군대는 강력한 독일군과 싸워가며 속성 과외를 받고 몰라보게 강력해집니다.
1944년에 오면 예전의 그 미군과 소련군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을 미국도 알았기 때문에 아이젠하워가 저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90프로가 넘는 독일 지상군을 상대로 소련군이 승리했다는 점입니다. 팔레즈 전투에서 브래들리의 새가슴 때문에
연합군은 포위망을 닫지도 못했지만 바그라티온 작전에서는 중부집단군 전체를 거덜내게 됩니다. 연합국이 두려워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영상을 끝까지 보시면 정확한 팩트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소련의 랜드리스의 몇배를 해준게 영국입니다. 랜드리스 만으로 이겼다면 영국이 이겼어야 하는거죠. 소련의 전투력이 그만큼 강했다는거
2차세계대전(유럽지역)은 거의 모두가 독일과 소련과의 전쟁이라는 것이 팩트임.. 나중에 미영이 숟가락을 놓은것 맞죠.
이 컨텐츠는 개인의 주장을 이야기한 컨텐츠가 아닙니다.
1944년 6월 22일 벌어진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연합군은 소련군의 지상군 전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젠하워는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에는 바그라티온 작전이 필수적이었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소련군 지상군 전력의 힘을 인정한 발언이라고 봐야 합니다.
또한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스탈린의 요구에 끌려간 것도 결국은 소련군의 3년간의 희생과 막강한 전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지원이 없이 소련이 버틸수 있었을까요? 물론 독일을 견제하기 위함이였겠지만
@@만물상자TV전쟁의신 사실 아이젠하워는 자신이 입안한 대군주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 여부를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연합군 장군들도 적인 독일장군(롬멜 포함)들도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어리석고 무모하고 미친 짓!! 실패하면 아이젠하워는 총살형을 당하게 되겠군!! 이라고 확정 지어 말할 만큼 성공 가능성이 메우 희박했습니다. 그런대 그걸 가능하게 해준 것이 소련군의 바그라치온 작전의 실행 여파에 의해서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상륙작전의 성공이 결정되었다고 봐야겠군요.
소련 만세 🙌 🙆 🤗
연합군이 없었으면 소비에트도 없어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