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해도 미군 전략방식이 기동전에의한 전투방식이 많았죠 참호전이나 고지점령 방식은 단순소모전이라고 생각했고요 이차세계대전만 보더라도 개활지중심 전투가 많았고 한국의 지형에 대한전술은 세워지지않은거나 마찬가지였죠 또간과한게 한국겨울이 추워봐야 하며 착각한게 많은 피해를 봅니다 유럽에서 격은 겨울은 저리가라할정도였으니까요
백제 멸망사 에 성충 이 한말 신라군 처들어 오면 산속 에 배치 하면 수백명 이 막을 수 있다고 함니다 ᆢ 태백 산맥 으로 수만 명 이 내려 오더라도 수백명 주둔 시키면 막을 수 ㆍㆍ 중공군 은 식량 몇일안으로 그기에 도착 하라고 식량 을 그기에 맞게 가기 때문에 매복병에 걸려서 싸우다보면 총 에죽는게 아니라 꿂어죽게 ᆢ 지금 생각 하면 위험 한 전술 을 사용 했는데 왜 성공 했을까 ᆢ이번 전투를 교훈 삼았으면 배트남 기타 등등 그밖의 전투에서 고전 하지 않았겠지만 ᆢ 승리한 전투만 생각 해서
인해전술이라고 해서 떼거지로 영화처럼 공격한다는것이 아니라, 중국군은 3대1의 비율로 접전하여 포위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미군 한개 사단에 대한 공격은 기본적으로 한개 군단이 맡아서 진행합니다. 상대방 방어전선의 접점지역같은 곳을 침투하여 후방에 전력 먼저 배치하고, 사면팔방에서 일제공격을 실시하면 아군은 바다와 같은 공격으로 착각하지요...
어렸을때 80년대 이민와서 즐겨봤던 TV 프로그램 National Geographic 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멘타리가 갑자기 생각난다. 거기서 나오는 약간 퉁퉁한 미국인 역사학자의 논평에 깜짝놀랐던 기억이 난다: "중공군의 기습전략은 유엔군의 압도적인 무기를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발난 전술이였다 (..was a brilliant tactic) !" 어렸을때부터 우리는 학교에서 항상 '인해전술' 로만 배웠고 알고 있었는데 휴~~.
그 당시 비슷한 화력에 보병끼리만 붙으면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상대가 안될 정도였다고 함. 그러나 중국군의 한계는 해공군과 화력에서 너무 열악했고 무전기도 몇대 없었으며 차량마저도 몇대 없었음. 보급로가 미국에 전부 폭격당해버려서 8일 공세후 더이상의 여력이 없어서 항상 멈춰야만 했다고 함.
중공군 레퍼토리: 중대급 취약지점 찾아냄- >대대병력 보냄- >안 되면 연대병력 보냄-> 그래도 안 되면 사단 병력 보냄-> 뚫리면 종심으로 바로 돌진하거나 퇴로차단 후 포위. 중대급 상대로 사단급 병력 쑤셔넣는 놈들인데, 답도 없음. 99% 야습이라 항공지원도 거의 안 됨. 산악지대에선 그냥 알고도 당하는 전술. 51년 여름까지 신나게 털리다 리지웨이 부임 후에 방어선 3중으로 치고 초토화작전 시작하면서 간신히 한풀 꺾임.
뭘 좀 아시네. 이걸 모르는놈들 많더라고요. 인해전술 이란 단어 자체가 오해를 부르는 듯. 특히나 이놈들은 방어 부대와 부대의 연결지점(ex. 5사단과 8사단). 방어선 상의 한국군과 유엔군의 교차지점. 특히나 화력이 약한 한국군 방어진지 위주.로 공격 종심 돌파 후 포위 섬멸. 대규모 공세 후엔 후퇴된 새로운 전선의 약점을 찾기위해 간보기 소규모 공격, 이후 보급물자 축척 및 대규모 공세. 꽹과리나 나팔 등으로 위협하여 아군의 휴식 방해 및 사기저하의 심리전 전개. 산악지형에선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리지웨이 장군이 대전 이남으로 후퇴하여 중공군을 평야지대로 끌어들여 대규모 반격전을 펼치는 작전까지도 고민하게 만들었죠. 또한 전쟁 중후반 정치적인 이유로 유엔군의 작전이 공세위주가 아닌 방어위주였다는 것 또한 중공군의 작전이 효과적으로 통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튼 인해전술이란 단어는 이젠 없어져야 할 단어인 듯 합니다. 상대의 방어 약점에 대규모 전력을 투사하여 돌파, 포위, 섬멸은 알렉산더도, 그 이전부터 사용된 오래된 전술이기에.
ㅋㅋㅋㅋ손자병법에 당하긴 그거 그냥 썰임 ㅋㅋㅋㅋ 뭔유럽은 나폴레옹만보고 동양은 손자병법만보고 이거 젤 개소리임 현대 군대는 그냥 나폴레옹 프랑스와 프로이센 군대 체계가 베이스라서 손자병법같이 추상적으로 적혀있는 동양서는 참고용일뿐이지 저걸몰라서 밀리거나 할정도는 아님;; 요새 육사에서 손자병법은 격언이나 방향성보여주는 걸로 참고하지 군사학은 전부 프랑스 독일 미군 군사체계인데 ㅋㅋㅋ 그냥 미군이 중공군 참전위험도 무시하고 븅신인줄알아서 아무대비안하다가 난생첨당해보는 경보병 집중공격에 초반에 당황해서 잠깐 피해입은거임 심지어 장진호전투에서도 미군이 밀리면서도 사상비는 중공군이 열배이상은 더났음 손자병법 같은 고대서는 그냥 참고용 격언 기본방향 이런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침-h6k 고대전술도 씀 우리도 석기시대아닌대도 가끔 돌로만든 도구 쓰는것처럼... 그리고 현대 전술의 기본적인건 거의 100퍼센트 프로이센 프랑스 이런데서 넘어온 전법임 동아시아모든 문화권은 전투기록할때 구체적으로 안 쓰고 추상적으로 써서 내려오는것도 없고 현대에서는 그냥 지휘관의 마음가짐에 대한 격언 이상도 이하도 아님
한국인은 이미 세뇌되여서 이런말을 진정 이해할지 궁굼합니다... 심지어 현재도 중국 무기가 짝퉁이라는지 베꼇다는지...ㅠㅠㅠ 미국도 현재 견제하는 중국무기를 한국만큼은 하루강아지마냥 맨날 비하하잔아요... 지금만든 동영상에 애들이 전쟁한번 나가 봤대요???? 북한에다 대고 총한발 쏴봣나요??? 한국인은 50여년간 넘 세뇌돼서 진정한 자신감 없기에 맨날 이런 동영상만 올립니다... 언젠가 중국 속국되면 또다시 미국을 이런싯으로 비하 하겟지 ㅋㅋㅋㅋ
@Allin7days 애초에 중공군에 대한 고평가는 미국에서부터 나온건데 중공군이 잘 싸운다고해서 좌경화라뇨 ㅋㅋㅋ 그리고 만약 중공군 전술이 그렇게 무식하면 거기에 밀려서 1.4 후퇴한 유엔군과 국군은 뭐가 됩니까? 적이 잘한 부분도 인정할 줄 아는게 진정한 승리자의 자세죠.
6.25전쟁이나 월남전쟁이나 피해규모는 미국이 적었지만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 미국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개인의 희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죠. 100명을 사살해도 1명의 희생자만 나와도 눈치 봐야 하는 미국과 99명이 죽더라도 1명이 적진을 점령할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보는 공산국. 처음부터 이기기 힘든 전쟁이었고 사실상 패한 전쟁이 6.25와 월남전.
3:15 중공군 고증에 문제가 있다. 당시 중공군은 저런 수류탄이 아니라, 나치 도이취란트 군이 쓰던 막대기 모양 수류탄을 썼다. 미군들은 그 수류탄을 potato masher (감자 으깨는 방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당시 자료를 보면, UN군은 중공군을 CCF (Chinese Communist Force, 중공군)라고 불렀지, 중국군(Chinese Army)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시 국제 정세로 봤을 때 중국군이라고 하면, 대만 장카이석의 국민당 군대(Chinese Nationalist Army)를 가리킨다. 이것은, 마치, 베트남 전쟁 때 공산 베트남 군을 월남군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건 님이 잘못 알고 있음. 물론 국민당 투항군이 있기는 함. 요동전역과 평진전역에서 투항한 국민당군인들을 산동에서 재편하고 2개사단으로 만듬. 물론, 장교들과 일부 병사들은 중공군을 섞은 형태로 재편함. 그외 국민당군인들은 대부분 일반인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서부지대로 파병함. 즉, 한국전쟁에 참여한 국민당군대는 2개사단정도임. 이건 당시 파병된 부대를 조사하면 바로 나오는 사실.
@@섬나라에게대륙국가의 서울재탈환할 때 서울 남쪽을 필사적으로 방어한 50군단이 창춘방어전에서 끝까지 중공군과 뻐기며 싸운 부대임, 군장과 부군장 모두 국민당 시절 직위 그대로 유지받게 되고 나중에 미군이 쟝제스의 투항권유 목소리까지 녹음해 진지에 틀어주면서 항복 권유함, 결국 전멸하다싶이하고 다른 부대와 로테이션됨, 중국 일부에선 이이제이라는 평가도 있음
@@art-jo-history 같은 민족끼리 이이제이는 잘못된 비유고 아마 불신으로 인해 먼저 총알받이로 소모했다는 얘긴거 같은데 왜 그 부대가 그렇게 국민당에게 충성했는데 공산당한테도 충성인지는 생각해봤나요? 군대의 제1전투력은 무장이나 기율보다 사기죠. 그 사기부여를 어떻게 했을것 같습니까? 허황한 세뇌같은거 말고 진짜 개개인에게 실익이 되는 거 말이죠. 중국은 해방초기 농업국이였습니다. 물론, 625때도 농업국이였죠. 국민당부대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충성을 하느니 공산당부대는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재분배 해서 모든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했죠. 남자는 얼마, 여자는 얼마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자신의 경작지를 지키기 위해 일심전력으로 싸운겁니다. 그외에 미국의 침략이 진영싸움같은 얘기로 세뇌를 시킨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제일 큰 건 실익입니다. 당시에 한국국군은 나라를 지킨다는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죠. 강제징병에 이겨봐야 기득권의 땅이나 재산을 지켜주는 꼴이니 전투력이 똥망인 겁니다. 내가 죽으면 집에 계신 어머니나 아버지, 동생은 먹고살길이 막막한데 죽는다고 나라에서 훈장하나 딸랑 주고 아무것도 없죠. 심지어 보상금도 없으니 당연히 지키려는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국군은 일부 전투를 빼고 전쟁내내 참패를 하였구요. 제일 중요한건 그렇게 지켜낸 땅을 친일파들이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점이죠. 정작에 피흘려 싸운 사람들은 아무런 보상이나 보답도 없이 말이죠.
상대방을 까면 깔수록 자신이 더 초라하다는걸 모르는 바보들이많아서 한마디 합니다.인해전술은 개뿔 중공군이라고 왜 죽는게 안무서웟겟냐.그냥 맨발로 많이걸어서 우세한 병력을 집중해서 포위전투하는작전을 잘쓴건데.열악한 장비 보급이 없이 깡으로 버틴거지.제공권없이 열악한보급으로 일제때 3.8소통 박격포로 최강 미국을 상대로 싸운건데.....
전쟁초기에는 중공군의 대공세작전이 먹히긴했음. 미군의 막강한 제공권과 화력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전투를 벌였고, 엄청 빠른 기동력으로 적의 후방을 감싸고 피리와 꽹과리로 공포감을 주면,밤이라 보이지도 않고 전투경험이 많지않던 미군과 아군들을 쫄 수밖에 없었음. 퇴로가 차단되었다는건 심리적으로 멘붕이 올 수밖에 없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갈 생각부터 하게됨. 그러나 이런 중공군의 뻔한 공격패턴은 전쟁 중반으로 가면서 간파당할 수 밖에 없었고, 용문산 전투(파로호전투)와 백마고지 전투등에세 약체 한국군에게 까지 3개 사단이 전멸당하는 수모를 당하며 51년 부터는 전면대공세 작전을 포기했음. 속도 풀업 개떼 저글링 러쉬 전략은 처음에는 굉장히 유효하게 먹혔지만, 나중에는 아군이 벌쳐밭깔고 케논깔고 템플러 대기시키고 있는데 거기를 저글링만으로 뚫으려 했으니...ㅉㅉ
뭐 이런건 다 아는거라 그렇지만 최근들어서 알게된 건.. 미군은 6.25때 전시 경제가 아니었다는게 당시 미국에 어마어마한 능력을 볼수 있는거 같더라.. 2차 대전 말 항모도 1주일에 1개 씩 뽑던 미국이 민간 체제로 돌아가서 별로 안나오는 수준 이었음에도 창고에 있는 무기와 식량으로 한국군과 연합군에 군수 지원을 하고 부족분을 일본에서 만든게 일본 부흥?에 초석이 된 자금이던데.. 미국에 생산력이란 진짜.... 미국은 도대체 얼마나 생산력이 강한지.. 모든 무기를 영국 스탠 기관총 처럼 뽑았나 싶더라..
사실적인 얘기인것, 이런 내용은 2차대전중 미국인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에서도 자주나옴. 초기 국민당군대가 그런 엄격한 군율로 민심을 얻었으나 국공내전기에는 오히려 공산군의 군율이 엄격했고 안그래도 전후 급격한 인플레와 국민당의 무차별적 숙청으로 황폐해져있던 중국인들의 민심을 덕분에 순식간에 얻었음. 티벳이나 위구르처럼 자신의 영토로 완전히 복속시키기위한 잔악행위와 본토 또는 타국에서의 전쟁수행은 임하는 자세등 애초 차원이 다름.
적을 잘 알야야 이기는데 아직도 중공군을 인해전술로 폄하만 하니 답답.. 미군이 적1명을 죽이기 5만발을 사용했다. 기관총앞에서는 인해전술이라는게 말이 안된다. 중공군은 무기,장비는 없었지만 지휘관,병사들은 노련했다는 사실 . 반면 국군은 사단장도 20대 젊은 넘이고 훈련이 안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소수의 미끼부대가 꽹과리치고 공격하면 국군은 모든 화력을 다 쏟아붓는데 기관총은 총열이 벌어지고 잼이나고 포탄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중공군은 이떄를 노려 주력 부대로 공격하는 패턴.
당시 중공군이 항상 숫적우위를 확보할수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기동전때문에 그렇게 보였던겁니다 펑더화이가 미국군의 약점을 몇가지 들였는데 1.도로가 있는곳으로만 이동한다 2.공중전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3.밤에는 절대 싸우려들지않는다 이 3가지정도의 약점을 이용하여 산악을 밤에 이동하고 항공전력이 근접지원을 못하게 껴앉기전략으로 나왔던겁니다
뭔가 알려주는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내용들은 설명을 안해주네요,,, 중국군은 야간에 기습으로 방어선에서 약한 부대만 집중 포위 공격을 했습니다. 약한 부대라는 것은 사전 공격이나 미리 알려진 첩보를 통해서 정한거죠.. 약한 부대의 전선이 무너지면 잘싸우는 유엔군 부대들도 고립이 되고 후퇴를 할수 밖에 없었던거죠. 너무 대충 대충 설명하니 인해전술을 너무 가볍게 만들고 ,,,625에서 한국군의 실패를 미화 할려는 느낌이 듭니다.
저당시 소수 민족을 대부분 보냈고 더 슬픈건 만주에 있던 사람들을 보냈는데 우리 민족 2세 3세에 해당하는 분들이였죠. 공산당 승리의 주요 세력이였지만 필요가 없어진 조선족과 만주족 출신들을 전쟁으로 소모하고 명분도 지키고 경쟁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이라는 내용을 본적 있습니다.
동양 전통에서는 북을 치면 진격, 징을 치면 후퇴하도록 되어 있는데 꽹과리... 그나저나 중공군이 저렇게 기세를 올린 건 맥아더의 전략적 실수가 맞죠. 미국사 공부하면 거기서도 맥아더 잘못이라고 나오고, 중국사를 공부해도 마찬가지, 한국사를 공부해도 마찬가지죠. 당시 미군 내부에서도 진격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가 컸고, 미 8군(1군단, 9군단을 거느림)과 미 10군단 사이에 지휘체계 통일이 안 되어 있었는데 그 허점을 중공군이 뚫었죠.
독립군 이 중일 전쟁시에도 핵심 이였고.. 중일 전쟁 시 공로가 컷으나 중공내전으로 정작 독립군이 도왔던 국민당이 나가리 되서 노선을 고민중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조선족들이 중공을 도와 남한 공격의 선발 이자 핵심 병력으로 625참전... 그 대가로 쩡궈 내에서 조선족 지휘 유지함... 조선족 북한 남한의 가족끼리 자살 전쟁한 거임... 그냥 ㅂㅅ 같은 전쟁사....
인해전술을 어떻게 쓰나요. 그걸 쓰면 포로 공격하여 전멸 시키기에 인해전술은 쓸래야 쓸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공군 전술은 무엇인가요. 중공군은 주간에 공격한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만 공격했는데 어두운 밤엔 불과 몇십미터 앞에도 보이지 않아요. 불과 몇십미터 앞까지 살글살금 접근하여 일제히 공격하는 것입니다. 아군과 뒤엉킨 중공군은 이길수 밖에 없는게 숫자가 세배정도 많아요. 백병전엔 숫자 많은게 이기는 것입니다. 아군은 중공군의 이런 전술에 당하여 계속 뒤로 밀리고 후퇴하게 된 것입니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심심하면 측천과 황제가 20만에서 50만 100만대군까지 대규모부대를 뿌리고 다니던데 -임진왜란때문 어느 왜장에 의하면 명나라군대는 병력만 많고 무기를 다룰줄 아는군은 한명도 없었다 -6.25 중공군들도 30만명이 내려왔우니 20만명은 북과 장구 악기를 들고 미친듯이 뛰어왔었고 10만명은 사정거리없이 미친듯이 모신나강을 겪발함
@@섬나라에게대륙국가의 일본은 색안경끼고 보고 6.25전쟁은 적어도 70년전이라 할아버지 할머니세대가 피해봤는데 중국이 참전안했다면 한반도 통일 이었는데 중국군의 전술을 찬양하고 미군보다 열세였다는 말도 안된 소리를 하고있네 100만명이 접견지역에 배치되고 꾸준히 병사를 보낸건데 이번정부들어 북한중국에 호의를 넘어 추종하는 느낌이다 진보중에서 ro나 친북 공산주의 숭상하는 세력때매 20대지만 그들의 외교전선을 믿을 수 없음
@@암흑과설탕 다만 k-4 유탄 발사기만으로 인해전술을 막는다든건 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이는 1953년 7월 13일에 발생한 금성 전투를 보면 알수있는데 당시 교암산에 주둔하고 있던 6사단 2연대 소속 5중대는 일인당 100개의 수류탄을 지급하고 고지 부근에 호를 설치해 중공군을 막으려 했으나 중공군 병력이 순식간에 10개 대대 이상 늘어나면서 일인당 지급되었던 100개의 수류탄이 다 떨어져 육탄전을 할 상황이 되었고 결국 중공군에게 뚫려 20명 정도의 병력만 데리고 탈출하게 됩니다. 만약 여기서 k-4 유탄발사기가 있었어도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뚫릴 확률이 매우 농후합니다.
@@님조랄 K4와 수류탄을 동일비교하면 안되죠... 인당 수류탄이 100개가 있든 1000개가 있든 그걸 한꺼번에 제대로 목표물에 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살상능력에선 비교가 안됩니다. 물론 6.25 당시 대한민국군이 그 K4들을 다룰 만한 운용교리와 보급을 갖추고 있었느냐는 별개로 봐야 할 문제겠지만.
싸워본 사람과 싸워보지 않은 사람과는 너무 차이 나는 건데 이런 악조건에서 경험없는 국군이 몸 바쳐 이만큼이라도 나라 지켜준게 고마울 따름이다.
@@hamasun1 甚至撞死了沃克中将,为和平创造了前提条件!伟大无需多言!这是志愿军都没能做到的🌝
사실 기갑부대가 있던 당시미군은 한반도의 산악지형을 장애물로 생각했지만 중국군은 반대로 산악지형을 지름길로 적극사용했습니다. 태백산맥,소백산맥의 산능선을 타면 순식간에 미군의 후방지역으로 군사를 이동시킬수 있었지요~
이와 같은 내용은 미군문서에 나와있습니다.
당시만해도 미군 전략방식이 기동전에의한 전투방식이 많았죠
참호전이나 고지점령 방식은 단순소모전이라고 생각했고요
이차세계대전만 보더라도 개활지중심 전투가 많았고 한국의 지형에 대한전술은 세워지지않은거나 마찬가지였죠
또간과한게 한국겨울이 추워봐야 하며 착각한게 많은 피해를 봅니다 유럽에서 격은 겨울은 저리가라할정도였으니까요
백제 멸망사 에 성충 이 한말 신라군 처들어 오면 산속 에 배치 하면 수백명 이 막을 수 있다고 함니다 ᆢ 태백 산맥 으로 수만 명 이 내려 오더라도 수백명 주둔 시키면 막을 수 ㆍㆍ 중공군 은 식량 몇일안으로 그기에 도착 하라고 식량 을 그기에 맞게 가기 때문에 매복병에 걸려서 싸우다보면 총 에죽는게 아니라 꿂어죽게 ᆢ 지금 생각 하면 위험 한 전술 을 사용 했는데 왜 성공 했을까 ᆢ이번 전투를 교훈 삼았으면 배트남 기타 등등 그밖의 전투에서 고전 하지 않았겠지만 ᆢ 승리한 전투만 생각 해서
인해전술이라고 해서 떼거지로 영화처럼 공격한다는것이 아니라, 중국군은 3대1의 비율로 접전하여 포위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미군 한개 사단에 대한 공격은 기본적으로 한개 군단이 맡아서 진행합니다. 상대방 방어전선의 접점지역같은 곳을 침투하여 후방에 전력 먼저 배치하고, 사면팔방에서 일제공격을 실시하면 아군은 바다와 같은 공격으로 착각하지요...
是的 当时志愿军以步兵为主 几乎没有重武器 最主要的作战思想是潜伏 出动优势兵力对敌人分割包围予以歼灭 通常白天都无行军和作战 一般都是在夜间协调发起战斗 而美军刚开始缺少夜战经验
像电影中那样的密集冲锋 对于防守方而言 只需要用铁丝 壕沟 重机枪 和地雷构筑一道防雨线即可 无论来多少人都打不下 强攻也会损失惨重 那么实际上呢 联合国军在当时构筑了一些工事 但都不够严密 可以通过拔点战解决 志愿军最大的软肋是交通运输和后勤补给 无法进行远距离作战。。。
인해전술 투입 자들 출신이 어마무시까지 했으니 속수무책이지.
개구라선동 ㅋㅋㅋ 걍 개때 고기방패 총알수보다 많게 보내는게 전략의끝 ㅋㅋㅋㅋ
진정한 인해 전술은 수나라 당나라가 원조입니다 그때 병력 규모만 수제국 수양제의 고구려 침공이 113만 3천800명이고 당나라도 수나라에 비해 조금 적지만 100만명 동원 ㅋ
어렸을때 80년대 이민와서 즐겨봤던 TV 프로그램 National Geographic 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멘타리가 갑자기 생각난다. 거기서 나오는 약간 퉁퉁한 미국인 역사학자의 논평에 깜짝놀랐던 기억이 난다: "중공군의 기습전략은 유엔군의 압도적인 무기를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드는 기발난 전술이였다 (..was a brilliant tactic) !" 어렸을때부터 우리는 학교에서 항상 '인해전술' 로만 배웠고 알고 있었는데 휴~~.
그 당시 비슷한 화력에 보병끼리만 붙으면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상대가 안될 정도였다고 함. 그러나 중국군의 한계는 해공군과 화력에서 너무 열악했고 무전기도 몇대 없었으며 차량마저도 몇대 없었음. 보급로가 미국에 전부 폭격당해버려서 8일 공세후 더이상의 여력이 없어서 항상 멈춰야만 했다고 함.
국공내전 항일전쟁으로 경험이 너무 많은 베테랑들이라 그런듯
중공군 레퍼토리:
중대급 취약지점 찾아냄- >대대병력 보냄- >안 되면 연대병력 보냄-> 그래도 안 되면 사단 병력 보냄-> 뚫리면 종심으로 바로 돌진하거나 퇴로차단 후 포위.
중대급 상대로 사단급 병력 쑤셔넣는 놈들인데, 답도 없음. 99% 야습이라 항공지원도 거의 안 됨. 산악지대에선 그냥 알고도 당하는 전술. 51년 여름까지 신나게 털리다 리지웨이 부임 후에 방어선 3중으로 치고 초토화작전 시작하면서 간신히 한풀 꺾임.
대신 53년도까지 진지전으로 소모전을 했지... 진지전에서 사망한 인수가 그전보다 몇배 더 많았으니...
뭘 좀 아시네. 이걸 모르는놈들 많더라고요.
인해전술 이란 단어 자체가 오해를 부르는 듯.
특히나 이놈들은 방어 부대와 부대의 연결지점(ex. 5사단과 8사단).
방어선 상의 한국군과 유엔군의 교차지점.
특히나 화력이 약한 한국군 방어진지 위주.로 공격 종심 돌파 후 포위 섬멸.
대규모 공세 후엔 후퇴된 새로운 전선의 약점을 찾기위해 간보기 소규모 공격, 이후 보급물자 축척 및 대규모 공세.
꽹과리나 나팔 등으로 위협하여 아군의 휴식 방해 및 사기저하의 심리전 전개.
산악지형에선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리지웨이 장군이 대전 이남으로 후퇴하여 중공군을 평야지대로 끌어들여 대규모 반격전을 펼치는 작전까지도 고민하게 만들었죠.
또한 전쟁 중후반 정치적인 이유로 유엔군의 작전이 공세위주가 아닌 방어위주였다는 것 또한 중공군의 작전이 효과적으로 통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튼 인해전술이란 단어는 이젠 없어져야 할 단어인 듯 합니다. 상대의 방어 약점에 대규모 전력을 투사하여 돌파, 포위, 섬멸은 알렉산더도, 그 이전부터 사용된 오래된 전술이기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화력이나 숙련도 면에서 뒤떨어진 한국군만 골라서 야습을 즐겼죠. 한번에 몰려오는 중공군에게 기선제압을 당해서 방어중에 도주하는 병사들이 속출했는데 용문산 전투에선 제대로 되갚아 줬네요
참혹한 전쟁이 언제부터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의 화제가 되었죠
이렇게 가볍게 처신하는 프로반드시 폐지
엄숙주의는 사람의 시야를 좁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윗 사람 기분 맞춰 주는 것 말고는요
중공군 올 때 얼마나 공포를 느끼셨을까... 상상만해도 무섭네 ㄷㄷ
심리적으로 상대를 위축시키는 기발난 전술 미군들도 전혀 경험이 없어서 당황했었던게 사실입니다. 어차피 그때 무기면으로는 미국과 중국은 비교도 안됐으니 전형적 전투에선 중국은 한치의 확률도 없다는걸 서로 알고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연합군이랑 수차이 안남. 인해전술이 아니라 게릴라전에 능한 중공군이 한참 국공내전 이기고 사기도 오른데다가 잘싸울때라서 그런것.
꽹과리는 겁주는게 아니고 구식군대라서 un군처럼 무선 연락 수단이 없어서 신호를 주기 위해 썼음;;
인해전술이 아니라 포위섬멸에 걸려들어서 진거지... 중국 보급이 않좋아서 무기 다 못든거고.. 공세를 했어도 중부지방 이상 내려가질 못했다.. 보급한계 때문에.
5~60년대 중국군 전력이 가장 강했을 때임 항일투쟁 국공내전 거기다 한국전쟁 때 초강대국을 상대로 쌓은 실전경험과 노하우가 물이 올랐을 시점 그래서 60년대초 중인전쟁 때 병력 무기 보급까지 열세인 상황에서 인도 본토로 밀고 들어가 발라버렸음
이거 손자병법에 기초한 거고 중국사에도 꽤 등장하는 전법이라고 하던데?! 맥아더가 나중에 손자병법을 읽고 이걸 몰라서 중국군에게 밀렸다고 했음.
그렇습니다 중국을 졸로 보던 미군이 손자병법에 당했다는거 그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때부터 중국군이 무지막지한 인해전술로 나왔다고 세뇌됐었죠 ㅎㅎ..
ㅋㅋㅋㅋ손자병법에 당하긴 그거 그냥 썰임 ㅋㅋㅋㅋ 뭔유럽은 나폴레옹만보고 동양은 손자병법만보고 이거 젤 개소리임 현대 군대는 그냥 나폴레옹 프랑스와 프로이센 군대 체계가 베이스라서 손자병법같이 추상적으로 적혀있는 동양서는 참고용일뿐이지 저걸몰라서 밀리거나 할정도는 아님;; 요새 육사에서 손자병법은 격언이나 방향성보여주는 걸로 참고하지 군사학은 전부 프랑스 독일 미군 군사체계인데 ㅋㅋㅋ
그냥 미군이 중공군 참전위험도 무시하고 븅신인줄알아서 아무대비안하다가 난생첨당해보는 경보병 집중공격에 초반에 당황해서 잠깐 피해입은거임 심지어 장진호전투에서도 미군이 밀리면서도 사상비는 중공군이 열배이상은 더났음 손자병법 같은 고대서는 그냥 참고용 격언 기본방향 이런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chipmunk_ 현대와 고대와는 다르지만 아직까지 사용되는 고대의 전술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침-h6k 고대전술도 씀 우리도 석기시대아닌대도 가끔 돌로만든 도구 쓰는것처럼... 그리고 현대 전술의 기본적인건 거의 100퍼센트 프로이센 프랑스 이런데서 넘어온 전법임 동아시아모든 문화권은 전투기록할때 구체적으로 안 쓰고 추상적으로 써서 내려오는것도 없고 현대에서는 그냥 지휘관의 마음가짐에 대한 격언 이상도 이하도 아님
임진왜란때도, 손자병법으로 싸우다 신립 전멸당했는데 뭔소리임
당시 중국군은 장기간의 국공내전과 일본군과의 전투로 단련된 정예 경보병이었습니다.
비록 기갑장비나 중화기는 부족했지만 경험많은 지휘부와 병력은 강력한 무기였어요.
미숙련 중국군이 머릿수로 이겼다는 주장은 한국전에서 엄청나게 당한 한국군의 프로파간다일뿐입니다.
한국인은 이미 세뇌되여서 이런말을 진정 이해할지 궁굼합니다...
심지어 현재도 중국 무기가 짝퉁이라는지 베꼇다는지...ㅠㅠㅠ
미국도 현재 견제하는 중국무기를 한국만큼은 하루강아지마냥 맨날 비하하잔아요...
지금만든 동영상에 애들이 전쟁한번 나가 봤대요????
북한에다 대고 총한발 쏴봣나요???
한국인은 50여년간 넘 세뇌돼서 진정한 자신감 없기에 맨날 이런 동영상만 올립니다...
언젠가 중국 속국되면 또다시 미국을 이런싯으로 비하 하겟지 ㅋㅋㅋㅋ
@@jindejun66 중국은 전투기도 배꼇는대 엔진 출력 부족해서 무기달면 날수도 없다면서요 ?
탱크만들어서 러시아에서 경쟁하는대 구형에게 처발린건 ?
중국무기는 믿고 거르라는건 전세계 어디서도 아는이야기야
니들이나 중국무기 좋다고하는대 어디서 검증이나 해봤냐 ?
검증을 어떻게하냐 테스트하다 뒤지는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존익-c6w 미군이랑 비교하면 4배이상 죽었어요 ㅋㅋㅋ
@@김주영-j5t8g 베껴쓰던 짝퉁만들던 그나라 사정이고 ....
짝퉁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나라는 무식하다 할가???ㅋ
그리고 짝퉁이 터지면 사람들이 안죽나???
하여간 너무세뇌돼서 니같은인간하고는 할말도 없다...
짝퉁무기 밎지못하겠으면 국민청원 넣어라 중국하고 전쟁이라도 한번 해보라.....
@@jindejun66 저도 국민학교때부터 선생님들로부터 배웠고 그렇게만 알았던 인해전술.. 그러나 그건 미국주도의 유엔군의 막강한 무기와 병력을 하루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던 "기발난 전술" (brilliant tactic - 이말은 미국 역사학자의 발언이니 오해하지 마세요) 이었다는게 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창피하지만 세뇌됐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라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뿐입니다.
그러니 실제로는 인해전술이 아니고 야간전이 약한 한국군 위주로 야간에만 몰라 기동하여 공격을 퍼부어서 포위 섬멸을 벌이다보니 적이 많아 보인거네...
이건 국군이 적 전술을 모르고 당한게 크네.
이게 맞음..무식하게 군인들 퍼부은게아니라 철저하게 전술로 진거임..중공군 쟤네는 그리고 그당시에 국공내전으로 단련된 전쟁의 달인급이라 어마어마했음..
@@guyliandibelin7944비긴거아님?
@@루피-w5q 결국 전쟁은 휴전이라 비긴거라치지만 얘기하고있는건 전투말하는거임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전투에서 계속 깨지면서 1.4후퇴했잖음
시대는 달랐지만 고구려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구려야 말로, 단군역사 가장 강력한 나라였음
어릴때 부터 중공군 머리수가 국군 유엔군의 총알 수보다 많았다는 걸 수없이 들어 세뇌되었는데, 팩트는 중공군의 뛰어난 전략과 기동력.
무식하게 병력만 꼴아박아서 수많은 병력을 날려버리는 전법으로 일본의 반자이 공격도 같은 부류입니다. 수많은 병력을 날려버리는 비인간적인 전법을 찬양하는 좌경화된 KBS의 한국전쟁 재해석을 믿습니까?
@Allin7days 애초에 중공군에 대한 고평가는 미국에서부터 나온건데 중공군이 잘 싸운다고해서 좌경화라뇨 ㅋㅋㅋ 그리고 만약 중공군 전술이 그렇게 무식하면 거기에 밀려서 1.4 후퇴한 유엔군과 국군은 뭐가 됩니까? 적이 잘한 부분도 인정할 줄 아는게 진정한 승리자의 자세죠.
결국 중국의 인해전술은 짝퉁 ㅋㅋ
@@권민석-p3j 저런 똘추는 진실을 믿는게 아니라 오직 위대하신 미국만 믿죠 ㅋ.
공중지원이나 무기 보급품도 훨 우세햇는데도 밀린게 유엔군이고,
그럴수밖에 없는이유가 유엔군은 전부 제대해서 초급장교도 병사도 전부 신삥이고,
중국군은 일본전과 국공내전을 치른 베테랑들이죠.
전술로 이긴것을,
군부정권이 인정하기 싫어서
기승전 인해전술 ㅋ.
ㅉㅉ 모르면 배워라! 배워야 이긴다! 😎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그냥 무식하게 돌격해온줄 알고 당연 이길줄 알았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서 괴로운 싸움을 하셨다네요....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웃고 즐기는 역사는 아닌듯
ㅇㅈ 웃고장난치기에는 주제가 너무 무거움
공영방송에서 저러니 너무나 기분이 우울하네요 단군이래 한반도가 도대체 몇번이나 분단됐는지 ㅡㅡㅜㅜ 이것또한 국력이 약한것인가~~휴~~~~ 아님 나라도 사주팔자있나 싶기도하고 언제까지 지정학 리스크를 살고살아야 하나요 통일은 불가능할꺼 같고 흡수통일인데 휴~~~그러기엔 지엔피 차이가 너무크고
모르겠네요!! 이러니 나 밖에 모르는 세상으로 더욱더 변해가는거같습니다 대한민국 현실이
KBS는 이런거 말고 역사스페셜이나 한국사전좀 해줬으면..
예능처럼 양념 뿌리는듯~
저는 개인적으론 가볍게 풀어냄으로써 재밌고 유익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중국군 노노~~ 중공군~~ 현대에는 차이나찌~!!
6.25때도 그렇게 얏잡아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것이다
혹독하긴 우리한명죽을때 중공군 25명죽었는데 혹독한댓가는 니네가 더치름 @@부건-v1o
중공군의 이같은 인해전술로 당시 어린 국군이나 미군들이 공포에 오줌이 지릴정도였고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런 프로를 하면서 희화화 하며 웃는 모습은 공감력도 없고 슬프네요.
그 전쟁이 1세기가 지났나요? 전사자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현실입니다.
중공군 러쉬 장면은 고지전이 훨씬 연출을 잘 했음..
인해전술이 넓은 방어선 중 한곳에 병력 집중시켜 돌파하는 것. 그것도 병력을 돌격시킨 후 우회한 다음에 다시 돌려막아 수가 많게 느끼게 하는 심리전. 역사 속에 많이 나온 전략이고 중공군이 특별히 개발한 전법은 아님
그렇지만 기만 전술은 분명 중국만의 다른 장점이 있었죠 소리와 야간 작전은 중국만의 인해전술 착시효과를 줄만큼 특출했습니다
제가 알기론 인해전술 처음 쓴게 나폴레옹으로 알고있습니다 (아 영상 보기전에 답글달았는데 영상에 나왔네요ㅠㅠ)
모택동 인해전술이 어마어마 했죠
그 뒤에서 뒷받침 해준 사람이 등소평
이죠
야간 산행으로 우회공격은 중공군만 쓰던 전술인건 맞지 그 많은 인원이 야간에 산악지역에서 우회할꺼란 미친짓을 누가 생각했겠어 식량도 각자 일주일분 쥐어주고 알아서 싸우라 이거잖아
@@jayookim3570 중세 알바니아의 스칸데르베그나 몰다비아, 왈라키아 등 발칸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맞설 때에도 야간에 산 능선 따라 이동하다가 습격했음.
6.25전쟁이나 월남전쟁이나 피해규모는 미국이 적었지만 공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 미국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개인의 희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죠. 100명을 사살해도 1명의 희생자만 나와도 눈치 봐야 하는 미국과 99명이 죽더라도 1명이 적진을 점령할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보는 공산국. 처음부터 이기기 힘든 전쟁이었고 사실상 패한 전쟁이 6.25와 월남전.
비긴거아님?
3:15 중공군 고증에 문제가 있다. 당시 중공군은 저런 수류탄이 아니라, 나치 도이취란트 군이 쓰던 막대기 모양 수류탄을 썼다. 미군들은 그 수류탄을 potato masher (감자 으깨는 방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당시 자료를 보면, UN군은 중공군을 CCF (Chinese Communist Force, 중공군)라고 불렀지, 중국군(Chinese Army)라고 부르지 않았다. 당시 국제 정세로 봤을 때 중국군이라고 하면, 대만 장카이석의 국민당 군대(Chinese Nationalist Army)를 가리킨다. 이것은, 마치, 베트남 전쟁 때 공산 베트남 군을 월남군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이런것 까지 신경쓰면 좋을텐데 아쉽긴 합니다 다큐나 재현영상보면 샘브라운벨트 약장등 착용이 잘못된 경우가 있고 총기 수류탄등 고증이 잘못던게 있죠 제작진이 신경을 써야 하긴 하는데 소품이 부족한건지 없는건지 ㅠㅠ
야전삽도 저런삽이 아니죠 ㅋㅋ 저때 중국군 삽은 그냥 일할때 쓰는 삽
중국군은 야간행군으로 목표지점에 미리 매복하고 나타난 것이 아군에게는 인해전술로 보인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중국군이 노린 것이지요
대한민국 국민들을 학살한 중공은 대한민국의 적국이다.
중국보다 소련의 인해전술은 엄청나다
중공군 참여 군 중 상당 부분이 중국 국민당 투항군인 사실은 99%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음. 그들은 국공내전에서 미국 지원도 받았었고 항일 전쟁에선 독일 군사 고문의 훈련도 받았던 엘리트 집단들임
하하하 이놈들 하하하
그래서 총도없이 개뼈다귀를 들고 있었다죠.
그건 님이 잘못 알고 있음. 물론 국민당 투항군이 있기는 함. 요동전역과 평진전역에서 투항한 국민당군인들을 산동에서 재편하고 2개사단으로 만듬. 물론, 장교들과 일부 병사들은 중공군을 섞은 형태로 재편함. 그외 국민당군인들은 대부분 일반인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서부지대로 파병함. 즉, 한국전쟁에 참여한 국민당군대는 2개사단정도임. 이건 당시 파병된 부대를 조사하면 바로 나오는 사실.
@@섬나라에게대륙국가의 서울재탈환할 때 서울 남쪽을 필사적으로 방어한 50군단이 창춘방어전에서 끝까지 중공군과 뻐기며 싸운 부대임, 군장과 부군장 모두 국민당 시절 직위 그대로 유지받게 되고 나중에 미군이 쟝제스의 투항권유 목소리까지 녹음해 진지에 틀어주면서 항복 권유함, 결국 전멸하다싶이하고 다른 부대와 로테이션됨, 중국 일부에선 이이제이라는 평가도 있음
@@art-jo-history
같은 민족끼리 이이제이는 잘못된 비유고 아마 불신으로 인해 먼저 총알받이로 소모했다는 얘긴거 같은데 왜 그 부대가 그렇게 국민당에게 충성했는데 공산당한테도 충성인지는 생각해봤나요? 군대의 제1전투력은 무장이나 기율보다 사기죠. 그 사기부여를 어떻게 했을것 같습니까? 허황한 세뇌같은거 말고 진짜 개개인에게 실익이 되는 거 말이죠.
중국은 해방초기 농업국이였습니다. 물론, 625때도 농업국이였죠. 국민당부대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 충성을 하느니 공산당부대는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재분배 해서 모든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했죠. 남자는 얼마, 여자는 얼마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자신의 경작지를 지키기 위해 일심전력으로 싸운겁니다. 그외에 미국의 침략이 진영싸움같은 얘기로 세뇌를 시킨부분도 있겠죠. 하지만 제일 큰 건 실익입니다. 당시에 한국국군은 나라를 지킨다는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죠. 강제징병에 이겨봐야 기득권의 땅이나 재산을 지켜주는 꼴이니 전투력이 똥망인 겁니다. 내가 죽으면 집에 계신 어머니나 아버지, 동생은 먹고살길이 막막한데 죽는다고 나라에서 훈장하나 딸랑 주고 아무것도 없죠. 심지어 보상금도 없으니 당연히 지키려는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한국국군은 일부 전투를 빼고 전쟁내내 참패를 하였구요. 제일 중요한건 그렇게 지켜낸 땅을 친일파들이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는 점이죠. 정작에 피흘려 싸운 사람들은 아무런 보상이나 보답도 없이 말이죠.
경험을 무시할 수 없음. 인천상륙작전처럼 길목을 장악함
아직도 중국군이 인해전술이라 생각하네. 중국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인해전술이라는건 없었다. 그냥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느껴졌을뿐. ㅋㅋㅋ 아직도 그런 인식수준이니 졌지.
좋은 내용의 역사저널 그날 이지만 영상이 잘리고 짧아 아쉽습니다.
중국군이 아니라 중공군이다... 그리고 너네들 역사왜곡 그만해라...
상대방을 까면 깔수록 자신이 더 초라하다는걸 모르는 바보들이많아서 한마디 합니다.인해전술은 개뿔 중공군이라고 왜 죽는게 안무서웟겟냐.그냥 맨발로 많이걸어서 우세한 병력을 집중해서 포위전투하는작전을 잘쓴건데.열악한 장비 보급이 없이 깡으로 버틴거지.제공권없이 열악한보급으로 일제때 3.8소통 박격포로 최강 미국을 상대로 싸운건데.....
우리조상들이 저 인해전술을 이겨내고 이땅을 지켜냈다는거네.
ㄷ
솔까 유엔군.
ㅋ 한국 3대 패전 현리전투 중국 군 인해 전술에 유재흥 군단장 놈이 헬기타고 도망 사단장들도 도망 지휘체계가 무너지니 대패 한
눈물겹습니다. M1소총이 중요 장비 였었는데 지금처럼 k2 였으면 그냥.....
@수호VS천사 뭘 자진후퇴해야.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남쪽으로 계속 밀고 나가다가 반격당해서 물러난건데
중국군 게속 투입하는데도 힘들었고
유엔군을 몰아낼 여력이 없엇는데,
반면 화력우위를 점하던 유엔군은 초반 밀렷지만 서울수복후 밀 여력이 잇엇지만,
중국이나 미국주도 유엔군이나 남의나라 전쟁에 소모전할 이유가 없엇죠.
그래서 1951년부터 정전협정이 논의됏지만 불구경하던 스탈린이 반대한것.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바로 정전협정 체결됨.
병력규모는 비슷했는데 참 아좀만 방심안햇으면 다먹는건데
이제 한국전쟁을 예능화로 만들려는거 같네요. 곧625도 되어가는데...
당시 참전했던 분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휩싸여 있을텐데 적당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결코 웃으며 다룰 사건은 절대 아닙니다.
올바른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초기에는 중공군의 대공세작전이 먹히긴했음.
미군의 막강한 제공권과 화력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전투를 벌였고,
엄청 빠른 기동력으로 적의 후방을 감싸고 피리와 꽹과리로 공포감을 주면,밤이라 보이지도 않고 전투경험이 많지않던 미군과 아군들을 쫄 수밖에 없었음.
퇴로가 차단되었다는건 심리적으로 멘붕이 올 수밖에 없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갈 생각부터 하게됨.
그러나 이런 중공군의 뻔한 공격패턴은 전쟁 중반으로 가면서 간파당할 수 밖에 없었고, 용문산 전투(파로호전투)와 백마고지 전투등에세 약체 한국군에게 까지 3개 사단이 전멸당하는 수모를 당하며 51년 부터는 전면대공세 작전을 포기했음.
속도 풀업 개떼 저글링 러쉬 전략은 처음에는 굉장히 유효하게 먹혔지만, 나중에는 아군이 벌쳐밭깔고 케논깔고 템플러 대기시키고 있는데 거기를 저글링만으로 뚫으려 했으니...ㅉㅉ
미군 UN군 등에업고도 못이기니 쪽팔리니까 인해전술이라고 위안삼으면서 정신승리하는거지
전쟁이 목적이 뭐냐 인해전술이든 뭐든 이기는게 상책이 아니냐 북단까지 밀고 올라왔다 다시 쫓겨간 주제에...
이 영상 처럼.. 5.18 관련 다큐에서 웃고 떠드면서 다루면 어떻게 될까...??
뭐 이런건 다 아는거라 그렇지만 최근들어서 알게된 건.. 미군은 6.25때 전시 경제가 아니었다는게 당시 미국에 어마어마한 능력을 볼수 있는거 같더라.. 2차 대전 말 항모도 1주일에 1개 씩 뽑던 미국이 민간 체제로 돌아가서 별로 안나오는 수준 이었음에도 창고에 있는 무기와 식량으로 한국군과 연합군에 군수 지원을 하고 부족분을 일본에서 만든게 일본 부흥?에 초석이 된 자금이던데.. 미국에 생산력이란 진짜.... 미국은 도대체 얼마나 생산력이 강한지.. 모든 무기를 영국 스탠 기관총 처럼 뽑았나 싶더라..
ㅋㅋㅋㅋㅋㅋ
미국은 이긴 전쟁이 있음?
러시아 에게 털리고
중굳에게 털리고
북한에게 털리고
늘 우리나라에 와서..
피해보상 요구 하는 미국 ㅋ
@@朝鮮帥 조선족 찾아먹은 거 있음
국공내전 총알받디
한국전 총알받이 토사구팽
대약진 대량아사
문혁 대량 학살
민족심 민족심 야 가서 연변 발전이나 시켜
최소 연변축구단 만들고 와서 말해
조선족 혐오 여론 만들지 말고
@@朝鮮帥베트남한테도 털렸음
전쟁 휴전입니다. 웃고 노닥거릴 주제는 아닌데
미군 대량희생당한 전쟁을 미국공영방송에서 저렇게하잖아요? 그방송 폐지됩니다
휴전아닌 자유민주국가 미국에서도 그래요
저 중공군 병사가 휴대하고 있는 수류탄은 아군 것 세열수류탄 아닌가?
공산군은 소주병처럼 생긴 수류탄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요.
노획이겠죠 뭐, 수류탄이야 뭐 핀 뽑아서 던지면 땡인지라 노획물자 중에선 사용하기 가장 편한 축이고
중공의 참전으로 통일의기회를 놓친건 정말 원통하나, 당시 중공군은 민간인들을 괴롭히던건 없었다고 어르신들께 들었었다. 오히려 북한군이 민간인들쪽으로 못오게했었다한다. 어쩌면 국공내전으로 단련된 중공군은 생각보다 강했을지 모른다.
어떤 어르신이었는지요. 제가 아는 어르신들에 의하면 북한 인민군 중공군 모두 잔인하게 양민들 학살했다고 했습니다
yykim
중공군은 안 그럼. 북한군이 그럼. 중공군은 3대주의 8대기율이 있어서 그러면 바로 군법으로 처형할수 있음.
사실적인 얘기인것, 이런 내용은 2차대전중 미국인들의 자서전이나 평전에서도 자주나옴. 초기 국민당군대가 그런 엄격한 군율로 민심을 얻었으나 국공내전기에는 오히려 공산군의 군율이 엄격했고 안그래도 전후 급격한 인플레와 국민당의 무차별적 숙청으로 황폐해져있던 중국인들의 민심을 덕분에 순식간에 얻었음. 티벳이나 위구르처럼 자신의 영토로 완전히 복속시키기위한 잔악행위와 본토 또는 타국에서의 전쟁수행은 임하는 자세등 애초 차원이 다름.
@@totalt5095 저희 아버지께서도 네살 무렵 포천 고향동네에 살때 중공군인들이 마을에 왔었는데 군인들이 귀엽다고 안아주고 그랬다고 하셨고 동네에 좀 있다가 별일없이 떠났었다고 하셨습니다.
@@totalt5095 그건 개소리임, 중공군 민간지역에 내려와 횡포한적 한건도 없었음...오히려 우리정부와 국군들이 기관총 쏴대고 모함하고 대학살벌였음
인해전술이 아니라 유격전술입니다.영화나 소설을 말하지 마세요. 중국군이 당시 후근보장 잘됐으면 지금의 한국이 없습니다.
적을 잘 알야야 이기는데 아직도 중공군을 인해전술로 폄하만 하니 답답..
미군이 적1명을 죽이기 5만발을 사용했다. 기관총앞에서는 인해전술이라는게 말이 안된다.
중공군은 무기,장비는 없었지만 지휘관,병사들은 노련했다는 사실 .
반면 국군은 사단장도 20대 젊은 넘이고 훈련이 안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소수의 미끼부대가 꽹과리치고 공격하면 국군은 모든 화력을 다 쏟아붓는데
기관총은 총열이 벌어지고 잼이나고 포탄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중공군은 이떄를 노려 주력 부대로 공격하는 패턴.
뭔 5만발임 당장 백마고지 전투만 보더라도 적 한명 사살하는데 드는 총알이 평균 2,000발 정도였고 다부동 전투때는 300발 정도 소모하면 적 한명을 사살했음
그러게요.
정일권 백선엽이 그당시 나이를 보면 참...
당시 중공군이 항상 숫적우위를 확보할수있었던 이유는 엄청난 기동전때문에 그렇게 보였던겁니다
펑더화이가 미국군의 약점을 몇가지 들였는데 1.도로가 있는곳으로만 이동한다 2.공중전력에 지나치게 의존한다3.밤에는 절대 싸우려들지않는다
이 3가지정도의 약점을 이용하여 산악을 밤에 이동하고 항공전력이 근접지원을 못하게 껴앉기전략으로 나왔던겁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학살한 중공은 대한민국의 적국이다.
뭔가 알려주는 것 같으면서도 중요한 내용들은 설명을 안해주네요,,, 중국군은 야간에 기습으로 방어선에서 약한 부대만 집중 포위 공격을 했습니다. 약한 부대라는 것은 사전 공격이나 미리 알려진 첩보를 통해서 정한거죠.. 약한 부대의 전선이 무너지면 잘싸우는 유엔군 부대들도 고립이 되고 후퇴를 할수 밖에 없었던거죠.
너무 대충 대충 설명하니 인해전술을 너무 가볍게 만들고 ,,,625에서 한국군의 실패를 미화 할려는 느낌이 듭니다.
옛날에는 살수대접같은 병법과전술이 필요했고 지금은 핵무기나 수소폭탄같은 한방의무기가 필요하다.
2:00 인해전술
2:05 중국군 전투인원 수가 더 적었다
중국군이 아니고 오랑케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오랑케 X. 오랑캐 O. ☞ 중국(공)오랑캐!
1) 예전에, 두만강 일대 만주지역에 살던 여진족을 멸시하여 이르던 말.
2) 이민족을 낮잡아 이르는 말.
똥깨왈왈거리네 ㅡㅡㅋㅋ
중국이 한국을 오랑캐라고 했음. 동쪽의 오랑캐 동이.
저당시 소수 민족을 대부분 보냈고 더 슬픈건 만주에 있던 사람들을 보냈는데 우리 민족 2세 3세에 해당하는 분들이였죠. 공산당 승리의 주요 세력이였지만 필요가 없어진 조선족과 만주족 출신들을 전쟁으로 소모하고 명분도 지키고 경쟁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이라는 내용을 본적 있습니다.
토크멘터리 보다가 이거 보고나니, 보는 내가 한심해질 지경.
5:33 저 수통 08년 군대있을때에도 쓰던 수통인데...
저돌적인 맷돼지처럼 적진으로 돌격!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애국자들
무기도 무기같은무기 없고. 보급도 안돼는 당시중국군이
첨단으로 무장한미군 연합군 상대로 저정도로 싸우면 잘싸운거 아님?
이게 저렇게 장난치면서 익살스럽게, 농담따먹기 하면서 웃을 만한 주제인가?
보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건가 싶었네
동양 전통에서는 북을 치면 진격, 징을 치면 후퇴하도록 되어 있는데 꽹과리... 그나저나 중공군이 저렇게 기세를 올린 건 맥아더의 전략적 실수가 맞죠. 미국사 공부하면 거기서도 맥아더 잘못이라고 나오고, 중국사를 공부해도 마찬가지, 한국사를 공부해도 마찬가지죠. 당시 미군 내부에서도 진격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가 컸고, 미 8군(1군단, 9군단을 거느림)과 미 10군단 사이에 지휘체계 통일이 안 되어 있었는데 그 허점을 중공군이 뚫었죠.
시기에 적절한 비디오다.
사실 6.25당시 중국군은 1,2차 국공내전 중일전쟁으로 실전경험이 높은놈들이라...
종국군 장개석 부대 중공군 마오좆똥 새끼고 한국처들온게 중공군 8로군 련변거지때 선봉부대 한국 전쟁 터트림
독립군 이 중일 전쟁시에도 핵심 이였고..
중일 전쟁 시 공로가 컷으나 중공내전으로 정작 독립군이 도왔던 국민당이 나가리 되서 노선을 고민중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있던 조선족들이 중공을 도와 남한 공격의 선발 이자 핵심 병력으로 625참전... 그 대가로 쩡궈 내에서 조선족 지휘 유지함...
조선족 북한 남한의 가족끼리 자살 전쟁한 거임... 그냥 ㅂㅅ 같은 전쟁사....
전쟁은 전투기가 하고 전투는 수류탄 박격포로 했다 할 정도로 박격포 수류탄은 산간지역이 많은 대한민국 지형에서 위력을 발휘했고 이때 얻은 박격포 운영전술은 후일 빨치산 소탕작전에서 그 빛을 발휘 합니다
중국군??? 와 진짜 미쳐버리겠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해전술이 아니고 포위전술입니다
인해전술을 어떻게 쓰나요. 그걸 쓰면 포로 공격하여 전멸 시키기에 인해전술은 쓸래야 쓸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공군 전술은 무엇인가요. 중공군은 주간에 공격한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만 공격했는데 어두운 밤엔 불과 몇십미터 앞에도 보이지 않아요. 불과 몇십미터 앞까지 살글살금 접근하여 일제히 공격하는 것입니다. 아군과 뒤엉킨 중공군은 이길수 밖에 없는게 숫자가 세배정도 많아요. 백병전엔 숫자 많은게 이기는 것입니다. 아군은 중공군의 이런 전술에 당하여 계속 뒤로 밀리고 후퇴하게 된 것입니다.
인해전술이라고만 단순하게 알고 있었는데, 지금와서 보면 중공군이 가진 장점을 한반도에서 최적으로 구현한 전술인거 같음... ㄷㄷ 괜히 국민당 이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노란색 옷 입으신 분 이름 아시는 분 있나요?
중공군 1934년생 웬짜우징 씨 입니다.
멕아더를 인천상륙작전 성공후
해임 했어야,
그리고 워커 장군 등 참모 말처럼
39도선에서 방어전을 구축했어야
인해전술은 우리가 만든
면피용 말입니다
빙고!
우리는 실사구사하고 겸손하게 배워야한다 중공군의 전략전술은 두차례의국공내전과 항일전쟁시련을겪었음으로 전략전술이 고명하고 단병전투능력도 보통국가보다강하므로 단순히 인해전술로보면 착각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인상 팍 써지고 불편한 역사인데 너무 가볍게 다루네 ?
국군,미군도 많이 죽었지만 중공군도 엄청 많이 죽었음.. 목택동이새끼는 인간의 존엄성이런거 생각도 안함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없었으면 이미 세계 1등 강대국 됐을텐데 모택동이 ㅂㅅ이라 오히러 다행인가....
현대 북한군전술에도 같은 과거 공산권에서 쓰고있는 교리가있죠 첨입, 포위와 포초 같은게 대표적입니다
피리소리 공포다
중공군
김규식 조선반도는 언제나 다른 나라의 전쟁터였다.👍
@@kill5850 일본은 언제든지 원자폭탄을 맞을 수 있다. 일본은 이미 방사능으로 망했다🖕
@@kill5850 조선족은 총알받이로 토사구팽 당했다.
@@kill5850 장계 아웃
@@user-rv8uo8ep6k 조san인👍
왜 중국군으로 표현합니까? 중공군으로 표현해야죠…그 당시 중국군은 자유중국(대만)의 군대가 중국군으로 표현하는게 맞는거 아닙니까??
자칭 중국인이 아니라고하는 대만이 무슨자격으로 중국군이냐 ㅋㅋ
미숫가루는 중국군 식량.
건빵은 일본군 식량
是一种叫“炒面”的东西 实际上并没有经过多少加工 是一种类似面粉的食物 容易发臭和变质 需要就着雪来吃
-드라마 대조영에서 심심하면 측천과 황제가 20만에서 50만 100만대군까지 대규모부대를 뿌리고 다니던데
-임진왜란때문 어느 왜장에 의하면
명나라군대는 병력만 많고 무기를 다룰줄 아는군은 한명도 없었다
-6.25 중공군들도 30만명이 내려왔우니 20만명은 북과 장구 악기를 들고 미친듯이 뛰어왔었고 10만명은 사정거리없이 미친듯이 모신나강을 겪발함
인간이 많아서 가능한게 아니고요, 시작은 인권 경시에서 시작하고, 지는 그곳에 없어요. 남의 목숨 가지고 하는 겁니다~~
당시 중공군 보급이 유엔군의 5분1만돼도... 우리측 바다로 내쫓겼을듯...
너 조선족이지. 이름도 그렇고
단순 인해전술로는 당시 미국 화력을 감당 못함 중공군은 낮엔 철저히 전투를 피했고 밤에만 한국군위주로 집중 타격해서 방어전선 흐트렸음 당시 중공군은 항일전쟁.국공내전으로 전투의 달인들이었으니 국군은 당연히 개털림
씨에쎄, 씨에쎄.. 중국대신해서 중국미화방송해줘써 씨에쎄.
지피지기, 백전불태. 알려면 제대로 알라. 지식을 배움에 있어서 색안경을 걸고 보지 마라.
@@섬나라에게대륙국가의 일본은 색안경끼고 보고 6.25전쟁은 적어도 70년전이라 할아버지 할머니세대가 피해봤는데 중국이 참전안했다면 한반도 통일 이었는데 중국군의 전술을 찬양하고 미군보다 열세였다는 말도 안된 소리를 하고있네 100만명이 접견지역에 배치되고 꾸준히 병사를 보낸건데 이번정부들어 북한중국에 호의를 넘어 추종하는 느낌이다 진보중에서 ro나 친북 공산주의 숭상하는 세력때매 20대지만 그들의 외교전선을 믿을 수 없음
이게 미화라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인데
@@Cielo4885 웃고 처떠들고 장난치기에는 주제가 무거운데 격없어 보이니까 욕처먹지
Joseph Lim 사실을 있는그대로? 니생각엔 중공군이 미제MK-2수류탄을 썻을꺼같어? 고증부터 답나오잔어 수준이하 라는거
중국군인?? 중공군이다
5:18 중공군이라 합니다
요즘은 구사하기 힘들껄.
한쪽 축선이 무너지면,과거같이 투입할수 있을런지.
전투는 기세싸움이기에.
저놈들 때문에 클레이 모어가 생겼다.
월남전에서 잘썼겠지만.
저기 다니엘도 있지만 독소전에서 나치상대로 소련이 한게 인해전술이고 중국은 유엔군보다 고작 10%정도 더 많은 병력으로 인해전술을 어떻게 하냐고
남일 얘기하듯이 리액션하는 거 보니까 충격이네요...
헛소리 치고 놀고 있네중국이 지금도 그런 수류탄를을안쓴다
니네 방망이 수류탄 썼어 불발탄 졸라 많고 그리고 니 조상들 국공내전 끝나고 총알받이로 토사구팽된거야!!!
한국이 미워도 알건 알아라!!!
어 섭섭한 거 있다면 미안하다 풀어라
단 진실을 알고 한족들 편 좀 들지마
@@빠르-r7i 한국빵즈
KBS 수준 이하..
저 때 유엔군의 지나치게 빠른 공세로 정리가 안된 상황 + 당시 중국군 정예부대의 엄청난 기동력 + 그 당시 정찰/통신기술과 화력의 한계땜시 저게 가능했지 현대전 같으면 저거 어림도 없음...;;;
당시 유엔군의 보급선이 너무 늘어나 화력지원을 제대로 못했다 하죠
@@님조랄 지금같은 차량화 잘된 수송체계에 각종 대량살상병기 발달한 현대전에선 ㅋㅋ
하다못해 K-4 유탄발사기만 보급되어도 인해전술은 불가능했을 거란 말도 있죠
@@암흑과설탕 다만 k-4 유탄 발사기만으로 인해전술을 막는다든건 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이는 1953년 7월 13일에 발생한 금성 전투를 보면 알수있는데 당시 교암산에 주둔하고 있던 6사단 2연대 소속 5중대는 일인당 100개의 수류탄을 지급하고 고지 부근에 호를 설치해 중공군을 막으려 했으나 중공군 병력이 순식간에 10개 대대 이상 늘어나면서 일인당 지급되었던 100개의 수류탄이 다 떨어져 육탄전을 할 상황이 되었고 결국 중공군에게 뚫려 20명 정도의 병력만 데리고 탈출하게 됩니다. 만약 여기서 k-4 유탄발사기가 있었어도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뚫릴 확률이 매우 농후합니다.
@@님조랄 K4와 수류탄을 동일비교하면 안되죠... 인당 수류탄이 100개가 있든 1000개가 있든 그걸 한꺼번에 제대로 목표물에 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살상능력에선 비교가 안됩니다. 물론 6.25 당시 대한민국군이 그 K4들을 다룰 만한 운용교리와 보급을 갖추고 있었느냐는 별개로 봐야 할 문제겠지만.
@@암흑과설탕 당시 보급은 전부 미국이 맡고 있어서 k4 유탄발사기는 쉽게 보급이 될겁니다.
맥아더자 잘못한거지 만주쪽에 핵떨거서 다죽였어야함.
만주에 한방 , 북경에 한방 .,대도시마다 다떨거야했음.
그럼 소련이 가만있겟냐 미국에두 핵 떨어지지
그냥돌격자폭이 아니라 심리전 기동술이 포함된 전술 기술이로구나
这个视频分析的是有一些道理 摆脱了过去电影中那种对志愿军固执的“人海战”的印象 实际上中国志愿军能够打败以美国为首的强大的联合国军 最主要的是原因因为灵活的战术(比如三三制,切割包围,擅长夜战)以及顽强的作战意志 他们不会像电影中那样用着一战时的阵型发起密集冲锋 这种阵型在面对拥有空军和重型武器优势的美军而言时无疑将起不到实质的作用 谢谢
한국전쟁은 피눈물의 역사 얼마나 많은 우리 무고한 동족들이 생명을 잃었어
조선인의 피를 가진놈으로 친일을 제일많이 한놈은 김일성. 일제강점기 36년간 죽은 조선인보다 한국전쟁 3년에 죽은 백성이 훨씬 많다. 6,25덕분에 일본은 70년말에 미국다음의 세계경제 대국이 되었다. 주사파놈들은 수령놈의 통큰친일은 로맨스요 낭만이다 이거지
중국군이 일본군에게 인해전술 했다는 이야기 없죠. 즉 국군이 훈련이 덜되었고, 학력 수준도 낮고, 박격포나 대포의 지원이 제대로 안되었겠죠.
경망스럽게 떠드는구나. 예능과 다큐를 구별못하는구나. 적당히 해라. 사람 죽고 죽은 날들을 다루는게 장난은 아니지.
인해전술이란 용어가 틀린거야?
아님 우리가알고있는 인해전술의 개념이 다르단거야?
너무 장난처럼 다뤄서 아쉽네요
저들이 있어서 지금의 한국이 있는거임!
웃으면 좀 그래보임
씁쓸하다!
6.25 예능....ㅠㅠ
중국군이 진짜잘싸운거지 후진장비끼고
국민당에서 투항한
사람이100만명인데
이들을 소모 하기위해
고량주를 먹이고
3명에1명꼴로 소총 을 지급했다고 하는설은 어떻게 해석 해야되나요
노랑색이 때 예기해서 감점 비호감 둔갑
중국의 잔인한 전투 방식은 나름성공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