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jong's Most Beloved Concubine [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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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 фе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244

  • @taemixstudio
    @taemixstudio 2 года назад +35

    신빈 신씨의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녀와 태종의 사랑을 알 수 있었으며, 이후에도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어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유익한 영상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 @히-x2m
    @히-x2m 3 года назад +5

    😀😀😀😀 아휴 목소리가 너무너무 아름답고 곱고 여뻐유 하하하하 너무 조용한목소리 너무너무 좋으서 자꾸자꾸 들어유 안듣고서 못살아유 줄겁고 아름다운 목소리 아 아 아 아 아름다운 목소리 너무행복해요 너무너무 좋아해요 하하하하 😀😀😀😀😀😀😀😀😀😀😀😀😀😀

  • @MrJoongwook
    @MrJoongwook 4 года назад +235

    신빈 신씨가 인품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영리함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런 여인이었으니 태종도 원경왕후도 동시에 좋아했겠지요. 세종도 무시할 수 없었겠고요.
    제법 멋진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 @sch-kim-k2e
      @sch-kim-k2e 2 года назад +6

      참 똑똑하고 지혜로와도 왕이란권세엔 아무의미없는 깊은상처 라

  • @yongwookkim1292
    @yongwookkim1292 2 года назад +24

    허허허 3분 50초부터 나오는 문구 제 석사논문에서 인용해 쓰신 거네요. 그래도 인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쓴 논문입니다. 참고로 아이디는 제 남친이랑 공유하기 땜에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당~

    • @DJ-qh1ds
      @DJ-qh1ds 10 дней назад

      그 부분 저도 열심히 들었습니다.

  • @tjgus21k
    @tjgus21k 4 года назад +619

    아니.... 왜 건들여도 부인의 종을 건드리냐... 원경왕후가 얼마나 분했을까

    • @zzang-mathis
      @zzang-mathis 4 года назад +16

      차라리 낳은거죠.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그래도 자기가 잘 알고 인간 관계가 있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여겼을 겁니다.

    • @user-gv9rd1vc9t
      @user-gv9rd1vc9t 4 года назад +135

      @@zzang-mathis 뭘 낳아요 낳긴...ㅋㅋㅋㅋㅋㅋㅋㅋ

    • @user-jq6ud9lx1p
      @user-jq6ud9lx1p 4 года назад +45

      @@zzang-mathis 책좀 읽어라

    • @김일성현
      @김일성현 3 года назад +1

      @@user-gv9rd1vc9t 모르는 남보다는 그래도 후궁건든게 더 낳아보이긴함

    • @박미소-x8q
      @박미소-x8q 2 года назад +14

      조선시대에 안태어 나서 다행입니다.

  • @yoyoyo3384
    @yoyoyo3384 2 года назад +122

    원경왕후 남편 때문에 속 썩었겠지만 그래도 세종대왕의 엄마다~~!!! 진짜 위너는 원경왕후다. 존경합니다

    • @kp8QiQcU8AMzI
      @kp8QiQcU8AMzI 21 день назад +1

      최근 원경 드라마에 보면 세자들의 공부에 진심인 내용이 나오는데.. 그래서 세종같은 왕이 있을 수 있었던 건가.. 싶더라구요.

  • @users113
    @users113 4 года назад +42

    역사에 남을 이들의 주변인물 이야기를 풀어주시니 더 찾게되는듯..ㅎㅎ추석 연휴라 그런지 가족들이 많이 생각나네용. 역사패치님도 즐거운 추석 보내고 계신가요. 남은연휴도 좋은시간만 가득하시길 바래요^^

  • @reolee-gk2gx
    @reolee-gk2gx 4 года назад +114

    태종의 성격이 날카롭고 예민하다 들었는데 신빈에게 온갖 태종의 병수발을 들게 한것 보면 태종이 신빈을 무척 믿고 아꼈나 봅니다 근데 왜 하필 원경왕후의 시녀들을 후궁으로 뒀을까.. 처가를 핍박했어도 중전으로써 자리지키게 하고 그많은 원망을 들어도 태종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원경왕후에게 보이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한것 같네요
    오늘도 좋은 영상 잘 보았습니다 ^^~♥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30

      근데 꼭 원경왕후에 대한 견제가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부인의 시녀였다가 그 권력자의 눈에 든 경우는 많아요. 아무래도 자주 드나드는 곳에서 권력자의 눈에 띌 수 있으니까요. 중전이 아니라 왕이 자주 드나들 만한 곳, 즉 대비전이나 동궁의 나인이었다가 승은을 입는 경우도 많고요.
      근대화 이전에는 일부다처제라 권력자는 여러 여인 거느릴 수 있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봅니다. 이 경우 양날의 검이죠. ㅎㅎ 영상 속에 나오는 신빈 신씨처럼 원래 본부인이랑 사이가 좋아 쭉 좋은 사이를 이어갈지, 아니면 효빈 김씨처럼 본부인의 온갖 핍박을 받을지...;;;
      조선 시대만 놓고봐도 세종이 가장 총애한 후궁 신빈 김씨도 소헌왕후의 나인이었다가 세종의 눈에 들었었죠. 같은 한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빈"이라는 작위명도 똑같고, 중전의 나인이었다가 왕의 눈에 든 거, 중전이랑 사이가 돈독했었고 승은을 입고 난 이후에도 좋은 사이를 유지한 거, 그리고 왕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은 후궁인 거, 심지어 중전이 남편인 왕과 자신보다 먼저 죽어 왕이 병들었을 때 수발들 중전이 없자 자신에게 간호를 맡긴 점, 모두 매우 비슷하네요. ㅎㅎ
      중전의 나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종이 또 많이 총애한 후궁인 혜빈 양씨는 문종의 나인이었다가 문종의 병문안을 다니던 세종의 눈에 든 여인입니다.
      중종의 후궁이었던 창빈 안씨, 중종 시절 후계자 전쟁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었지만 오히려 인종과 명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녀의 손자 선조가 왕이 되어 그 이후 쭉 그녀의 후손들로 조선의 왕을 이어간 최후의 승자, 이 사람도 대비 정현왕후의 나인이었죠. 중종이 먼저 관심을 보인 건 아니지만요. 성격이 유순하고 행동거지에 조심성이 있어 그녀를 예뻐한 정현왕후가 왕손을 많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해서 중종에게 후궁으로 추천했어요.
      조선 시대 후궁 중 가장 유명한 후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후궁인 장희빈도 중전의 나인은 아니지만 대비, 장렬왕후의 나인이었다가 대비전에 문안을 드리러 다니던 숙종의 승은을 입었죠. 사실 제아무리 세자나 왕이라도 윗전의 나인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데 장희빈을 예뻐했던 장렬왕후가 장희빈의 신분을 높여주려고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숙종에게 승은을 내리도록 허락해 준 거죠.
      영조의 첫사랑 정빈 이씨도 경종의 나인이었다가 영조의 눈에 들었고요. 동궁전의 나인을 왕이 아닌 세자에게 깨갱해야 하는 왕세제가 취하다니 미친짓인 것 같지만 아무래도 미천한 신분의 나인이라 경종 입장에서는 그다지 정치적인 중요도가 있는 인물이거나 한 것도 아니니 별 예쁠 것도 없는 동생이지만 관심 보이는 것을 용인해 준 것 같습니다.
      악랄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도 효장세자의 세자빈 조씨의 나인이었다가 그녀 장례식에 참석한 영조의 눈에 들었죠;;;
      역사패치에도 나온 정조 평생의 사랑 의빈 성씨도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나인, 사실상 수양딸이었다가 정조의 눈에 들었고요.
      고종의 후궁 엄황귀비도 명성황후의 나인이었다가 고종의 눈에 든 여인이었죠;;;; 명성황후가 일부러 고종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만한 박색을 나인으로 삼은 거였는데 되려 뒤통수를 맞았다는 야사가 있죠;;;
      참고로 제가 위에 쓴 왕들은 시대순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ㅎㅎ

    •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5

      @@꽃말-y6l 숙의 문씨는 악랄했다기 보다는 눈치가 없었거나 혹은 다소 교만하지 않았나 정도로 보입니다. 숙의 문씨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혜경궁과 정순왕후 등 내명부 윗전이나 상위 품계 소유자들에게 단단히 찍혔다 정도로 보입니다. 드러난 물증이 없는데도 폐서인되어 사사되었다면 그녀가 내명부 윗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게 뭔지 알 수 없지만요

    • @zzang-mathis
      @zzang-mathis 4 года назад +6

      @dmsens rha 매력이 있는 사람을 자주보면 끌리는 것은 당연한거죠.
      더군다나 인간적인 교감까지 생기면

    • @zzang-mathis
      @zzang-mathis 4 года назад +8

      다들 그렇지만 특히나 태종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히 관대한 사람입니다.
      모시는 사람이 그렇게 힘들어 할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 @zzang-mathis
      @zzang-mathis 4 года назад +1

      @@이도형-x9x 그런데 숙의 문씨에게 혜경궁이 내명부의 윗전은 아니죠.
      명색이 시아버지의 후궁인데.
      상위 품계라면 몰라도.

  • @프린셩디
    @프린셩디 4 года назад +636

    태종이 제일 재수없는 점은 자기 아내의 궁녀들을 골라 건드렸다는 점 아닐까요. 그 프라이드가 높은 원경왕후 속을 긁다못해 쥐어짜냈으니 당연히 빡치죠. 영웅 호걸 어쩌구 해봤자 그냥 여자 밝히는걸 영웅으로 포장한거 뿐이고 태종의 치세 말고 여자문제만 놓고 보면 진짜 법도같은 거 없는 개망나니 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듯

    • @ruk9257
      @ruk9257 4 года назад +207

      젊었을적부터 내조해왔는데 심지어 외척세력없앤다고 아버지랑 형제들까지 조져버리고 친정의 여노비까지 손대서 임신시킴.
      원경왕후 빡쳐도 인정해줘야햐다ㅠㅜ

    • @호날두-q5y
      @호날두-q5y 4 года назад +17

      그냥 세종대왕 아버지 이거면 다해결됩니다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90

      원경왕후의 인생은 정말 안타깝다면 안타깝습니다ㅠㅠ 오늘날 태어났더라면 훌륭한 집안 (아버지가 민제라는 대학자였죠. 오늘날로 치면 명문대 교수 아버지를 둔 것입니다) 자기자신도 똑똑함, 태종이 보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자신의 부장으로 중용했을 정도로 유능했던 동생들까지 정말 다 가진 여인이었으니 유명 정치인이 되어 자기가 여성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이 되었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제가 위에 태종의 자녀 쓴 걸 보시면 아시듯 태종은 "정말로" 원경왕후를 여인으로 사랑했습니다ㅠㅠ 태종의 정치 스타일이 외척을 철저히 배격하는 스타일이었던 거죠ㅠㅠ 그리고 다른 여인들도 너무나도 좋아했고요ㅠㅠ 태종과 자녀 낳은 거 보면 그 여자 좋아하는 태종이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원경왕후를 찾을 정도였으니 외모도 최소 박색은 아니었을 겁니다ㅠㅠ

    • @오경희-v4z8t
      @오경희-v4z8t 4 года назад +16

      자기 아들 치세에 제일 걸림돌이 될 외척을 미리 제거한거죠 이씨조선이 민씨조선이 될까봐죠
      그래서 피싱을 한거고 원경왕후가 지혜롭다면 빨리 눈치를 깠어야죠 또 당시 왕후의 세력이 그만큼 컸다는거죠

    • @오경희-v4z8t
      @오경희-v4z8t 4 года назад +8

      2탄으로 며느리인 심씨집안도 박살내버려서 성군 세종을 만들어준게 태종 금수저의 효시 ?그러나 요즘은 자기가 잘났던지 아님 부인이 잘났던지 그도아니면 처가가 잘 나야 성공

  • @J제이-n5n
    @J제이-n5n 4 года назад +182

    최종 위너네요 ㅋㅋㅋㅋㅋㅋ 후궁의 삶은 신씨처럼 살아야 천세를 누리는가 보네요 똑똑하고 영특하신분이였던듯

    • @가나다-u8u2d
      @가나다-u8u2d 2 года назад

      @@하늘-m4y 무슨말인가요 신씨가 살아서 평화롭게 천세를 누렸는데 누가 보면 살아서 개고생하고 죽어서 영웅이라도 된 줄 알겠어요.

  • @박순희-d2k1p
    @박순희-d2k1p 2 года назад +16

    원경왕후가 정 말 똑소리나고 멋진 여인인듯 태종이 넘하네

  • @핫태황태
    @핫태황태 4 года назад +290

    원경왕후 속 썩었겠다, 남편이 본인의 궁녀랑 시녀들 건드리고 자기 형제들 다 죽여버리니 아무리 왕후였어도 안타까운 삶이었던듯 ㅠ

    • @용가리-x3l
      @용가리-x3l 3 года назад +4

      님아, 아셔야 됨. 원경왕후가 세종대왕을 낳았다는 사실을~ (즉, 세종대왕을 낳은 사실로 위로가... 아, 아닌..가;; ^^?)

    • @giantpengtv1
      @giantpengtv1 3 года назад +21

      역사를 그렇게 드라마 보듯이 평가하지 마세요. 결과적으로 외척을 견제한 태종의 용단으로, 세종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그 왕권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한글을 사용할 수 있게 된겁니다.
      왕가의 역사를 일반 여염집 가정의 가정사처럼 취급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뚜루뚜뚜-i9r
      @뚜루뚜뚜-i9r 3 года назад +14

      @@giantpengtv1 본인이 드라마 보고 태종 편드는거 같은데요 그리고 한글창제랑 원경왕후 집안 박살 낸거랑은 별 상관 없다 보는데요 세종대왕하고 외가가 정적도 아니엿구요 그냥 태종 권력에 윈경왕후나 집안이 개국공신 지분 요구하니 죽여 버린거지 그리고 외척 제거하면 세종 대왕이 더 편할순 잇지만 그렇다고 꼭 제거 안하면 망하는 상황도 아니엿구요 자기 자식이나 자기 자신 좀 더 편하자고 은혜를 원수로 갚고 죄없는 사람 죽이는게 정당한가요?
      그럼 전두환 도 왜 욕하나요 삼청 교육대나 광주 사건 등
      나라 더 편하게 통치하려 하려고 그런거라면
      그리고 본인도 집안 전체가 나라에 애국햇더니 성공한뒤 나라 위한다고 집안 다 망쳐놔도 이해 할 건가요?

    • @윤영역
      @윤영역 3 года назад +10

      태종은 바람을 피기위하여 민씨일가를
      도륙하였고 바가지가 싫어서 ㅡ

    • @산골풍경-g5k
      @산골풍경-g5k 3 года назад +5

      이방원이는 인간백정이고 악마입니다
      민씨 외척을 모조리 살육해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건 아니지요~
      태종의 잔학무도함에 기겁한 신하들의 반란은 꼼짝 못하도록 막아 주었으나 세종은 결국 하늘이 내린 왕 입니다

  • @상담심리사뽀유
    @상담심리사뽀유 4 года назад +19

    역사 이야기는 참 재미있어요~~^^

  • @rabbits4673
    @rabbits4673 3 года назад +7

    혹시 원경왕후도 해주실수 았으시나요?

  • @혜원-r7q
    @혜원-r7q 4 года назад +40

    오늘도 너무잘봤어요 ! ㅎ 혹시 장희빈 이야기도해주실수있을까요?..🤭🌸

  • @heirt4662
    @heirt4662 4 года назад +71

    고종은 지앞가림 않고 500년전 역사 세우기 놀이에 탐닉을... 기가찬다.

  • @퍼플룰루
    @퍼플룰루 4 года назад +7

    새로운 조선왕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sunmik8245
    @sunmik8245 6 дней назад +2

    태종 찐사랑은 원경왕후인 거 같음. 후궁 중 자식 많이 낳은 걸로 치면 세종의 후궁 신빈김씨도 소헌왕후 궁녀출신이고 자식만 8명으로 후궁 중 가장 많이 낳음. 세종은 소헌왕후랑 합장되었는데 그럼 세종의 찐사랑도 신빈김씨임?! 신빈신씨는 외척견제 할 게 없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 권력을 줘도 딱히 위협이 안되고, 왕과 왕비를 사가에 있을적부터 모셨으니 어찌 모시는 지 잘 알아 모셨을테니 그런걸로 사랑이라 하기는 좀 아닌 거 같고 중전 견제용이 가장 맞는 거 같음

  • @neonike001
    @neonike001 4 года назад +10

    이미지가 참 예뻐요~~~★

  • @fitzgeraldandy1030
    @fitzgeraldandy1030 4 года назад +127

    용의눈물에선 원경왕후가 무슨일로 고달픈 남편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신씨에게 잠자리에 들라고 명하면서 그 이상 하지 말라고 엄포 놓는 장면이 기억나네요. 처음엔 주인과 여종의 관계였다가 후첩으로 들이면서 화도 내지만 결국은 동지처럼 여기게 되는 과정이 용의눈물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였다는..

    • @용가리-x3l
      @용가리-x3l 3 года назад +47

      근데 솔직히 말해서... 아예 다른 여자랑 맺는 것도 화가 날 일이지만 그것도 아닌 자기 집, 자기 노비와 연맺는 거 보면 속에서 천불 났을 것 같음.
      한 집안에서 같이 지낸 여자랑 남편이 알콩달콩 한 것 자체가... 자신이 안주인이라는 거에 더 위협적으로 느낄 듯...
      그래놓고 민무구 민무질 죽였음 원경왕후 잘 챙겨줄 것이지. ㅡㅡ
      진짜 아들이라도 잘 낳았던 것이 원경왕후의 최고 삶이었던 듯? 양녕 빼고.

  • @feline-logic
    @feline-logic 4 года назад +104

    이속이란 사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하여 그야말로 패가망신했네요.

  • @이도형-x9x
    @이도형-x9x 4 года назад +256

    세종과 소헌왕후가 교과서적인 모범을 보여줬다면, 태종과 원경왕후는 막장 드라마 부부관계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부부입니다
    애증이라는 것의 교과서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
    여자 문제로 부부 싸움을 하면서도 자식을 생산했으니 ....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63

      개인적으로 세종과 소헌왕후의 금슬은 소헌왕후의 공이 컸다고 봐요.
      물론 세종도 소헌왕후를 중전으로 예우하고 여인으로도 매우 사랑했죠. 장인 어른 심온 사사할 때 소헌왕후 폐비론도 나왔었지만 끝까지 감쌌고... 이건 어차피 태종의 타깃이 소헌왕후가 아니라 외척이었으니 태종이 결국 소헌왕후를 건드릴 리 없기도 했지만... 그리고 다른 여인 들이기 시작한 시점이 이미 혼인 후 10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 소헌왕후 입장에서도 왕인 남편이 다른 여인 들이는 걸 뭐라 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요.
      세종도 소헌왕후하고의 금슬만이 유명하지만 사실 엄청 여자 좋아하는 남자였어요;;; (심지어 건드려 놓고 찾지 않은 여인도 많은.... ) 이걸 원경왕후처럼 투기 부리며 파란을 일으킬 만도 한데 어짊으로 묵묵히 내명부를 장악했죠. 훗날에 일어난 폐비 윤씨 사건을 봐도 그렇고 소헌왕후가 아니었다면 세종 시대의 태평성대는 무리였습니다^^;

    • @namefree4444
      @namefree4444 4 года назад +14

      @@꽃말-y6l 세종은 금슬이 너무 좋았던듯 --;; 자녀가 거의 수십명이죠..ㅇㅇ

    • @루루-q5g
      @루루-q5g 4 года назад +19

      전 태종이 인간적으로 말종이라고 생각해요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8

      @@루루-q5g 모르겠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죠... 역사적으로 볼 때 왕정 시대에는 권력을 잡은 후 권력을 잡기까지 도와준 사람들을 팽한 사례가 무지막지하게 매우 아주 많습니다.
      뭐 한데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정말 잔인한 거긴 하죠.

    • @zzang-mathis
      @zzang-mathis 4 года назад +11

      @@루루-q5g 말종이라기 보다는 목표 지향적 행동에 대해서는 참 절제하고 때를 기다릴 줄 알지만
      본능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참 자체력이 또 없고 감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사람이죠.
      그러면서 기가 막히게 머리는 또 좋아서 승부사 기질은 많고.
      굉장히 자애로운 면도 많았지만 또 나찰같이 악독한 면도 또한 대단하죠.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에는 최고의 성격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하기는 힘든.

  • @대한민국만세-m3g
    @대한민국만세-m3g 4 года назад +14

    신빈신씨 자랑스럽네요 굿굿

  • @히-x2m
    @히-x2m 2 года назад +1

    👍👍👍 목소리도 금구슬 은구슬 옥구슬 쌍구슬 목소리가지고 태여난것도 큰복이유 전생에 말을 남한데 곱게하고 착하게 공손하게 말을해서 후대세계에 좋은목소리 고운목소리을 가지고 태여나서 여러대중 사람분들하게 큰칭찬소리 말을 듣는거유 그양 공짜가 없어유 얼굴좀 보고싶어유 잘생겨나유 미남이유 매력적이세유 방력적이세유 몆살이세유 키는 몆Cm유 몸무게는kg나가유 너무너무 얼굴을 보고싶어유 아셔지유 의견과소견에 표현에 글이유 목소리가 너무너무 아름답고 좋은목소리을 많이많이 사랑해유 아셔지유 😀😀😀😀😀😀😀😀😀😀😀😀😀😀😀😀😀😀♥♥♥♥♥♥♥♥♥♥♥♥

  • @강-s7d
    @강-s7d 3 года назад +40

    아들이 길이 남을 명군이지만 명예로 남을 일이지만
    살아생전 골육이 멸문 당하는 걸 눈뜨고 지켜봤으니 행복하지 않았겠다
    여자로서도 너무 불행했고
    자식으로서도 본의아닌 불효 자식이 되었으니
    울화가 쌓이고 한으로 남았겠어 에효
    잘난 아드님을 남겨 주신 것 감사합니다

  • @이수정-d4l1i
    @이수정-d4l1i 18 дней назад +2

    태종이 1407년에서 1418년사이에도 중궁전을 자주 찾았을까요? 1412년에 늦둥이를 하나 낳긴하지만 1407년에서 1418년까지는 가임기가 지난 나이라 태종이 그녀를 자주 찾았는지 알수가 없네요 신빈같은 경우는 상당히 많은 아이를 낳았는대요

  • @young-kv6lf
    @young-kv6lf 2 года назад +3

    LADY 입니다! 정식 작위를 받앗으니까요! 영어 타이틀이 Concubine으로 나왓는데요, 이는 틀린 표기입니다. 후궁, 즉 LADY와 그리고 첩, 즉 CONCUBINE은 하늘과 땅 사이지요.

  • @지선-j2t
    @지선-j2t 3 года назад +10

    노비가 되는 방법이 참 신박하네

  • @이아리-o2f
    @이아리-o2f 3 года назад +59

    진심 조선시대에 않 태어나서 현대에서 솔로로 사는게 엄청난 복이네... 저 때 여자들 홧병나서 힘들었겠다 ㄷㄷ;;

  • @user-po6og4zv6n
    @user-po6og4zv6n 4 года назад +28

    정말 어메이징하네요..지금정신으로는 이해할수없는 ㅜㅜ

  • @아롱범-w4j
    @아롱범-w4j 25 дней назад +5

    우리 외가 할머니께서 여러 후궁들때문에 마음 고생이 넘 심하셨겠네요...다들 부리던 여종들인데 ㅠㅠ::

  • @강춘심-e1w
    @강춘심-e1w 3 года назад +2

    재미있어요

  • @jsm9252
    @jsm9252 3 года назад +20

    태종은 신빈 신씨에게서 무려 2남 7녀의 자녀를 낳았는데 괜히그런게 아니었구나

  • @강영민-h9k
    @강영민-h9k 4 года назад +29

    와 3남 7녀ㄷㄷㄷ 10명을 낳았다니 ㄷㄷㄷ

  • @Lee-bg2be
    @Lee-bg2be 3 года назад +20

    온녕군파 저희 할머니 이야기군요.자녀분들이 연산군에게 바른 말했다가 연산군이 화가 나서 가족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할 정도로 큰 수모를 당했다가 중종 반정때 복귀되어 다행히 가문이 살아났다고 하죠.

    • @주강희강희
      @주강희강희 3 года назад +1

    • @문신희-w6j
      @문신희-w6j 2 года назад +1

      저도

    • @이세한-y9w
      @이세한-y9w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근령군파시조20대손입니다.신빈.근령군시제에얼마전같다와씀니다.

    • @Sodal_lite
      @Sodal_lite 2 месяца назад +2

      어디 신씨인지 알수 있나요?

    • @이동경-u8n
      @이동경-u8n 21 день назад

      영월 신씨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함녕군파 19대손 이고 남양주에 신빈신씨 할매와 장남함녕군의 묘소가 있습니다~^^

  • @gjndruijvddj
    @gjndruijvddj 4 года назад +65

    원경 왕후 근데 외척 방어해서 후궁 게속 들인데도 원경 왕후 입장에선 빡돌만한데 태종이 최초 후궁들 다 연달아서 그녀 측근들 건듬 ㅋㅋㅋ 딴데서 데려오지, 두 번임 승락했대도 맥이는 거냐? +원경 왕후 입장에선 왕권 강화래도 후궁들 자꾸 들이고 자기 주변 건들고 죽이니 불안하고 빡치지

    • @Ellie-uniVerse
      @Ellie-uniVerse 3 года назад +7

      부인에게 열폭하는 남편이었던듯...

    • @Sjskwkfgotq
      @Sjskwkfgotq 3 года назад +15

      @@Ellie-uniVerse 이거 맞는거 같음. 태종은 자기 핏줄 자식 권력 제일 사랑함. 그러니 여자로 제일 사랑 어쩌고 그런게 뭔 소용인가 싶음. 그냥 말 잘듣는 예쁜 꽃 옆에 둔거라고 생각함. 원경왕후는 태종이 봐도 대단하다 싶으니 여자로서 보다는 자기 권력 위협하는 사람으로 봐서 자기 자신이 더 대단하고 위라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더 모멸감 주고 권력 과시한거 같음.

    • @성이름-l2r4v
      @성이름-l2r4v 2 года назад +2

      @@Ellie-uniVerse 조선시대에 아녀자에게 열폭이라니 ? 그냥 주제모르고 왕에 권위에 계속 도전하니까 일부러더 그런거지 정반대 해석아닌가요?
      그리고 그후에도 둘이 사이는 좋았음 자녀도 더있었고 열폭이라고하기엔 너무 전후사정 시대사정에 안맞는거 같네요

    • @가나다-u8u2d
      @가나다-u8u2d 2 года назад +9

      @@성이름-l2r4v 뭐래 조선시대 "아녀자에게 열폭이라니.. " 이런건 조선후기나 그랬지 조선초기는 여자가 앞장서서 자기 남편 왕 만들고 남편 측근하그 교섭하고 그랬어.

    • @가나다-u8u2d
      @가나다-u8u2d 2 года назад +1

      @@성이름-l2r4v 1:07 이랫던게 조선초기 여자들임. 세조 아내만 봐도 계유정난 때 확신이 없던 세조한테 군복 입혀주면서 나갈 수 밖에 없게 만들었어. 수 틀리면 자기도 나가서 칼 들고 싸울 만큼 기세가 강한 조선여자들이었는데 성종때 이후로 칠거지악같이 여자한테 불린한 법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인권 낮아진거임.

  • @aslhankerem5854
    @aslhankerem5854 3 года назад +2

    Filmin ismi ne acaba

  • @하늘-m4y
    @하늘-m4y 3 года назад +22

    우왕. 홧병낫겠다ㅠㅠ우울증...
    질투에 화신이라고 말해서는 안될듯... 여자문제뿐아니라 친정식구도 다 죽임을 당했으니깐. 왕으로 올라가는게 처가덕이였으니말입니다.

  • @user-gx5lo7nk8p
    @user-gx5lo7nk8p 3 года назад +35

    와씨 가장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를 평생 조율하면서 살았다니... 걍 무수리로 사는게 훨 나을듯

  • @낙성대길
    @낙성대길 2 года назад +11

    승자의 역사로 쓰여졌슴에도 이정도이다!
    자시의 부인 동생들과 처가집을 몰살시키고
    부인의 하녀를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능욕한것도 모자라,
    아들 세종의 처가 장인을 죽인
    그냥 정신병자이자,
    미친 인간이다!
    세종의 치세가 모든 것을 덮어주었을 뿐!

  • @LYC-hp9nu
    @LYC-hp9nu 4 года назад +17

    효빈 김씨..그녀의 아들 경녕군 제 조상님이시군요

    • @eunsunchoi2420
      @eunsunchoi2420 4 года назад +3

      제가 아는 동생도 경녕군파라고 하던데...혹시...

    • @ge2418
      @ge2418 4 года назад +3

      헐 저희 외할머니께서도 경녕군파세요

    • @이노춘-m6r
      @이노춘-m6r 3 года назад +1

      경녕군20대

    • @이복임-v4p
      @이복임-v4p 3 года назад +1

      나도 경영군 후손 효빈김씨 생각하면마음이 아리다

  • @cherokey92
    @cherokey92 4 года назад +49

    겁을 상실한 이속이네
    감히 왕의 혼담을 거절하다니

    • @jlee4757
      @jlee4757 3 года назад +2

      ㄹㅇ 출신성분 ㅋㅋㅋ
      킬방원: 내 딸한테??머?

  • @만월부인-b5y
    @만월부인-b5y 4 года назад +2

    2020😘10😍26
    굿.🤗☺😚😙😗.

  • @Arianna-h3c
    @Arianna-h3c 4 года назад +31

    애를 10명이나?? 대단하다

  • @리디야산드라
    @리디야산드라 2 года назад +5

    왕들 후궁 안 좋아한 왕들이 있었나.............

  • @하정관-i6u
    @하정관-i6u 4 года назад +4

    세자빈 숙모 ~ 세자 양녕대군

  • @모다-c9y
    @모다-c9y 2 года назад +8

    실컷 왕으로 올려두니 딴짓하고
    왕이라는 이름하에 여자들을
    수없이 거느리는게 말이되는가
    여자들이 살기 정말 안좋은건
    예나 지금이나 ㅜㅜ 우크라이나를
    봐도 그렇네요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59

    신빈 신씨의 자녀만을 놓고 보면요.
    1. 함녕군 1402년생
    2. 정신옹주 출생년 불분명 (정정옹주보다 언니인 건 확실)
    *5년간 출산 기록이 없다기보다는 이 시기에 신빈 신씨 입장에서는 장녀인 정신옹주가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3. 온녕군 1407년생
    4. 정정옹주 1410년생
    5. 숙정옹주 출생년 불분명
    6. 소신옹주 출생년 불분명
    7. 숙녕옹주 출생년 불분명
    8. 숙경옹주 1420년생
    9. 숙근옹주 출생년 불분명 (숙경옹주보다 동생인 것 확실하니 아마도 1421년생, 왜냐하면 1422년에는 태종이 사망했으므로...;;;)
    신빈 신씨의 출생 년도가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1402년 시점에 승은을 입었으니 이 때 10대 중후반~20대 초중반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30대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원경왕후의 나인으로 태종이 오래전부터 그녀를 눈여겨봐 왔으니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한데 여인으로 피어나는 시기까지 감안해 볼 때 스무살 즈음에 승은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태종이 사망하는 1422년까지 20년간, 40대가 되어서도 계속 총애를 이어갔던 것 같네요. 조선 초기에는 옹주들의 기록에 대해서는 출생 년도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20년간 9명, 계산상 편의로 10명이라 치면 2년에 1번은 출산했다는 겁니다. 태종이 얼마나 그녀를 자주 찾아 부부 관계를 즐겼는지 알 수 있네요;;;
    다른 여인도 많기는 했지만 태종 입장에서는 나이도 많고 출산도 많이 해서 몸매도 많이 망가졌고 막말로 이미 재미 볼 만큼 본 여자이니 더 이상 찾지 않고 얼마든지 훨씬 어리고 예쁜 여인들만 찾아다닐 수도 있는데...
    참고로 1422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자녀를 낳은 저 태종의 정력... 고려시대에 과거시험에도 본인이 공부해서 합격하고 왕자의 난을 성공시킬 정도로 무예도 뛰어나고 정력가에 호색한에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 @11yo-Pomeranian
      @11yo-Pomeranian 4 года назад +13

      아 진짜 사망전까지 자식을 보다니 ㅋㅋ

    • @Suzi-g9f
      @Suzi-g9f 4 года назад +13

      애를 10명을 낳은 신씨도 대단... 많이 힘들었겠다...

    • @line-wi9yf
      @line-wi9yf 3 года назад +5

      그냥 난봉꾼이지~

    • @김실비아-w2o
      @김실비아-w2o 2 года назад +6

      원경왕후가 더 많이 더 늦게까지 낳았음.. 요절한 자식까지 다해서 열두명이고 마지막 출산은 47인가 48세때임

    • @새벽별-b1l
      @새벽별-b1l 2 года назад +3

      사망 전까지가 아니라 죽은 후에 태어난 유복자도 있어요. 막내서자 익녕군이 그 유복자죠 ㅎㄷㄷ

  • @sangmi-x5m
    @sangmi-x5m Год назад +5

    세종은 어 떤 기록에서도 예의가 바르네.. 참 탁월하네. 서모라도 예의를 다했다고 하니..

    • @user-olooloolo
      @user-olooloolo 20 дней назад

      세종의 여성 편력은 지애비 태종죽고 호색을 밝히는건 지애비와 형인 양녕대군 저리가라 할정도로 발정난 똥개였음 시중들던 상궁까지도 꼴리면 들이댔을정도니

  • @꽃말-y6l
    @꽃말-y6l 4 года назад +87

    그나저나 태종은 정말 정력가 중의 정력가고 여자 좋아했네요. 기록에 남은 부인만 18명입니다;;; 승은만 입은 승은상궁까지 하면 관계 가진 여자가 30명도 넘을 것 같아요;;;
    근데 개인적으로 영상에 대해 딴지를 하나 걸자면 그래도 가장 사랑한 여인은 원경왕후이지 않을까 싶네요-_-;;;; 그녀와 가장 많은 자녀를 낳아요.
    1367년: 고려 대장군 이성계와 첫번째 부인 신의왕후 사이에서 5남으로 출생
    1382년(만 15세): 고려 대학자 민제의 딸 원경왕후와 혼인
    *이하 요절한 원경왕후 소생 왕자 출생년은 개인적인 추측
    1.요절한 왕자 1383년생?- 원경왕후 소생
    *당시로선 늦은 혼인이었던 만큼 바로 합궁했을 것 같아 이 때쯤 하나 낳지 않았을까 싶네요.
    2.정순공주 1385년생- 원경왕후 소생
    3.경정공주 1387년생- 원경왕후 소생
    4.요절한 왕자 1389년생?- 원경왕후 소생
    5.요절한 왕자 1391년생?- 원경왕후 소생
    *87년~93년까지 원경왕후는 임신도 쉽게 되는 체질인데 자녀가 없어 아마도 요절한 두 왕자들이 이 시기에 태어났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1392년 (태종 만 25세) 아버지 태조 이성계 조선 개국
    6. 경안공주 1393년생-원경왕후 소생
    7.양녕대군 1394년생-원경왕후 소생
    8.효령대군 1396년생- 원경왕후 소생
    9.세종대왕 1397년생- 원경왕후 소생
    *1398년(만 31세) 제1차 왕자의 난
    *1400년(만 33세) 제2차 왕자의 난&태종 보위에 오름, 그리고 태종이 많은 여인을 들여 치열한 싸움 시작-0-
    10. 요절한 왕녀-1400년생-생모 미상
    11. 요절한 왕자 1400년생-생모 미상
    12. 경녕군 1402년생-효빈 김씨 소생
    *영상 속에서 이야기하는 효빈 김씨입니다. 신덕왕후의 나인이었다고도 하고… 이 일로 원경왕후와 대판 싸웠죠;;; 이래 놓고 막상 그녀에게는 금방 질려 버렸네요;;; 미모가 뛰어났다는데 성격이 안 맞았는지…
    13. 함녕군 1402년생-신빈 신씨 소생
    *영상 속 신빈 신씨, 원경왕후의 나인이었던 여성입니다-0- 태종이 후궁들 중 가장 총애해서 10명 정도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죠;;; 원경왕후도 워낙 예뻐하던 아이라 그녀는 박대하지는 못했고 권세를 누리다 행복하게 살다 갔네요.
    14. 요절한 왕자 1403년생-생모 미상
    15.정선공주 1404년생(원경왕후 만 39세-0-)- 원경왕후 소생
    *이 때 오죽 사이가 안 좋았으면 적통 공주임에도 출생 기록이 1404년 시점에는 적혀있지 않다 훗날에야 기록됨. 역으로 그런데도 부부관계는 있었다는 것이 놀라움;;;
    16. 정혜옹주 1404년생?-의빈 권씨 소생
    *정혜옹주의 출생년도가 불분명하지만 1402년에 태종이 의빈 권씨를 첫 간택후궁으로 왕후의 예로 맞아들이려다 원경왕후가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정종까지 나서 태종에게 잔소리하는 사건이 일어났었으니 1402년보다 2~3년 뒤 즈음에 태어났을 겁니다;;; 명문가 출신 조신한 여성으로 태종이 많이 총애했다네요;;;
    17.성녕대군 1405년생(원경왕후 만 40세-0-)- 원경왕후 소생
    18. 온녕군 1407년생-신빈 신씨 소생
    19. 해령군 1407년생-선빈 안씨 소생
    20. 정신옹주 출생년 불분명-신빈 신씨 소생 (정정옹주보다 언니인 건 확실)
    21. 정정옹주 1410년생-신빈 신씨 소생
    22. 근녕군 1411년생-정빈 고씨 소생
    23. . 요절한 대군 1412년생(원경왕후 만 47세-0-)
    24. 요절한 왕녀 1412년생-생모 미상
    25. 희령군 1412년생-숙의 최씨 소생
    26. 후령군 1419년생-숙의 이씨 소생
    27. 익녕군 1422년생-선빈 안씨 소생
    28. 숙정옹주 출생년 불분명-신빈 신씨 소생
    29. 소신옹주 출생년 불분명-신빈 신씨 소생
    30. 숙혜옹주 출생년 불문명-소빈 노씨 소생
    31. 숙녕옹주 출생년 불분명-신빈 신씨 소생
    32. 소숙옹주 출생년 불분명-선빈 안씨 소생
    33. 숙경옹주 출생년 불분명-신빈 신씨 소생
    34. 경신옹주 출생년 불분명-선빈 안씨 소생
    35. 숙안옹주 출생년 불분명-숙의 김씨 소생
    36. 숙근옹주 출생년 불분명-신빈 신씨 소생
    37. 숙순옹주 출생년 불분명-후궁 이씨 소생
    무려 40명 가까운 자녀를 낳았군요;;; 조선 초기에는 옹주들에 대한 출생 기록은 명확하지가 않네요. 또한 요절한 자녀 중 모친이 불분명한 여성들은 아마도 아이가 요절하고 총애를 잃어 후궁 품계를 받지 못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시대 여인의 삶이여… ㅎ
    지금 이 글에 댓글 달고 있는 우리들도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면 태종의 후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 @테라노돈1
      @테라노돈1 4 года назад +16

      와 이 기록들을 다 아시다니... 님의 지식에 감탄하고 갑니다

    • @윤혜원-u6s
      @윤혜원-u6s 4 года назад +1

      우와아 엄청난 임신....

    • @오경희-v4z8t
      @오경희-v4z8t 4 года назад +1

      개국후 초기 많은 왕자들이 권력다툼으로 많이 희생됬으니 후사를 많이 두려고 박리다매 했나보네요 외척을 누르려 며느리집안까지 손댔으니 왕비를 손보려고 종까지 계획적으로 피싱한것 같음

    • @zzang-mathis
      @zzang-mathis 4 года назад +20

      당시로는 상당한 늦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 밑으로도 줄기차게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복 동생들을 만들어놓기만 해서
      세종이 수많은 이복 동생들 키우고 결혼시키고 챙기느라 무지하게 뒷목잡게 만들었습니다.
      또 남자 이복동생들은 하나같이 공부안하고 놀기만 좋아해서 세종이 속 많이 끓였고.
      이복 여동생들은 하나하나 시집보내고 출산 하는 것 세심하게 관리해주느라 세종과 소헌 왕후는 딸은 별로 없었지만
      딸같은 이복 여동생들 때문에 딸부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 @이형진-u9d2f
      @이형진-u9d2f 4 года назад +3

      익녕군이 마지막이에용
      유복자입니다~ 이가씨를가질때 태종이 돌아가심~

  • @보라해-k1u
    @보라해-k1u 19 дней назад +1

    외척의힘으로 왕이됐으면서 그렇게도륙을내다니...

  • @jhong6103
    @jhong6103 4 года назад +2

    잘봤습니다.

  • @김진명-s2l
    @김진명-s2l 3 года назад +14

    태종의 큰 아들이 괜히 망나니가 아니였네 아버지를 닮아 그렇게 여자들이랑 어올리기를 좋아했던 건가...

  • @하정관-i6u
    @하정관-i6u 3 года назад +5

    태종 이방원 ~ 원경왕후 민씨
    양녕대군 이제 ~ 세자빈 울딸

  • @남교장
    @남교장 Год назад +1

    울동네 묘지있네

  • @머랭-j8v
    @머랭-j8v 3 года назад +3

    신빈신세경씨

  • @원유한-m9y
    @원유한-m9y 4 года назад +4

    ㅎㅎ

  • @00경훈00
    @00경훈00 3 года назад +2

    신세경이 아니었어?!

  • @형미김-h1h
    @형미김-h1h 3 года назад +4

    연예인들 못났다
    실제 조선 왕비 초상화 보면
    세계급 미인 들이다

  • @이강미-e4g
    @이강미-e4g 2 года назад

    세종시대 신빈신씨아니가요? 태종시대 효빈인데

  • @장재우-f5e
    @장재우-f5e 4 года назад +11

    역사속에서 가장패륜적역사는
    왕이사랑하는여자들ㅡ이것이모든왕들을무능하게만들고 일찍하늘나라로가게했다ㅡ그모든건
    사랑이아니다
    감성이다 ㆍ예쁜여자를보고 마음을뺏기지않을사람얼마일까
    한명줏기도힘든세상인데 100여자해도
    마음대로되니
    막줏어먹는일만하니 결과는뻔할뻔ㅡ
    요즘도 우리주변에
    공직자인시장님들
    도지사님들도보인다ㅡ불쌍한시대에태여났다
    옛날에왕이였음
    주어도안먹을
    사람이였을지도모른다?
    사랑? 그건사랑이아니라
    동물적인 감성일뿐이다ㅡ
    동물들에게발정기가있다면
    인간에게사춘기가있다 몸에서일어나는
    무한대의힘이
    눈까지머리까지올라와 아무것도보이지않게한다
    침만 질ㅡ~~흘리면서
    눈에보이는사람들모두가 올리비아핫세다
    크리스밋참이다
    그래서결혼한다.
    훗날 잘쓰는말
    콩깍지가씌웠는가보다하고?

  • @AJ-vm3xh
    @AJ-vm3xh 4 года назад +11

    근데 종은 노비랑 다르게 양민인데(고용관계임) 평민도 역시 천하다고 여겼나보네요...

  • @charleswr8359
    @charleswr8359 3 года назад +3

    이 베데오 맨 첫장면이 꼭 일본국기를 보는듯한것은 어인일인고?
    그것도 한국의 역사를 다루는 비데오가?
    첫 장면이 일본국기를 연상 시키지 않나요?

  • @하정관-i6u
    @하정관-i6u 3 года назад +2

    효령대군 이보 ~ 정씨 부인

  • @그만둠-f1o
    @그만둠-f1o 4 года назад +2

    안녕하세요

  • @seongchoseong9497
    @seongchoseong9497 2 года назад +1

    왕과나

  • @Leeeeeeeeeeeeeeeeeeeeeeeeeeee
    @Leeeeeeeeeeeeeeeeeeeeeeeeeeee 3 года назад +3

    마이 조상 is a Player.

  • @빈-b1k8l
    @빈-b1k8l 3 года назад +1

    효빈 김씨....

  • @hello-gl1fi
    @hello-gl1fi 3 года назад +2

    당사자는 얼마나 역겨울까 지 딸이 이런일을 당해야 그제서야 알까?

  • @김지연-p2l3o
    @김지연-p2l3o 2 года назад +2

    법도 지들이유리하게만들어놓고 후궁을 그넣게많이두어 정실부인 왕비만 애간장을태우게했네

  • @씨카-t7n
    @씨카-t7n 2 года назад +4

    저따위 남편은 그냥 해치워버리지 자식땜에 그리도 못하고 권력이 뭔지 필부의 삶이 행복한듯

  • @user-jq4uo8xc2r
    @user-jq4uo8xc2r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속 ㅋㅌㅌㅌ혼사 거절했다가 노비되고 망했네 ㅋㅋㅋㅋㅋㅌㅌ

  • @봄빛-s1g
    @봄빛-s1g Год назад +2

    지멋대로인 태종 제일 싫음

  • @user-genfq2djixfs
    @user-genfq2djixfs 2 года назад +1

    때론 과하거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는 수도 있는 법이다
    형제들중 유독 야심 많았던 태종 이방원이
    자신보다 늘 판단력이 한 발짝 정도 빨랐던
    아내 민씨(원경왕후)를 보며 어쩌면 본능적
    인 수컷의 위엄과 승부 기질사적인 요인이
    움직였는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 일가가 살아남고자
    자신의 핏줄인 형제까지 도륙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격려하며 길을 터준 이가 다름아닌 아내 민씨였으니 말이다
    이는 훗날 역으로 외척 차단이랍시고 민씨 외가가 그야말로 멸문지화나 다름없는 처지에 빠지는 계기가 되버린 상황으로 되돌아 오는 사태가 벌어진다
    허나 한편으로 보면 누구보다도 당찼을 민씨가 세간에 느끼는 비련의 왕후라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자신의 자식들이 왕위에 올랐을때 사사건건 정사에 참견 하려는 외가 남자형제들을 과연 그대로 용인 했을지는 미지수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출산까지 한걸 보면 그런 예측들이 가능해진다
    뭣보다 분명한건 원경왕후이자 여흥 민씨를 비롯한 일가가 압도적으로 우월했다는거다
    한때는 아내의 영특함이 자신의 앞길에 크게 도움이 되니 좋았을테지만 다른편에선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여겨질수 밖에 없을 정도로 뛰어난 특출함들이 이방원 입장에선 되려 눈에 몹시 신경이 거슬렸을수도 있다
    젊은 시절 한때 처가에서 한동안 잘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외가를 통해 뭔가 깨닫거나 인식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저 자신의 안위인 몸과 마음을 의탁하고 싶을 정도로 균형적인 덕목을 지닌 여인이자 심적으로 편안한 의지 상대는 바로 신빈 신씨였을것이다

    • @수정이-n7z
      @수정이-n7z 2 года назад +1

      태종은 원경왕후도 대단히 사랑했습니다 아니 태종이 가장 사랑한 여인은 원경왕후입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무려 12남매나 되는 자녀를 두었고 조선역사상 유례가 없는 다산이죠 그녀의 소생들을 끔찍이 사랑했어요 처가를 숙청하는 엄청난 비극이 있었지만 나라를 위한 어쩔수없는 선택이었고 원경왕후에 대한 태종의 애정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민씨형제가 죽은 2년뒤에도 왕자를 낳습니다 1418년 6월 23일의 기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음

    • @수정이-n7z
      @수정이-n7z 2 года назад +2

      후궁중에서 신씨를 가까이했던것은 아마 그녀가 권력욕이 없는 순박한 여인이고 태종의 비위를 잘 맞춰주었기때문일 겁니다

    • @수정이-n7z
      @수정이-n7z 2 года назад

      제가 착각했네요 늦둥이 왕자가 태어난 시점은 1412년 6월23일입니다

    • @Sjskwkfgotq
      @Sjskwkfgotq Год назад +1

      어차피 이방원은 권력 자기 핏줄들만 진심으로 사랑함 여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하고 신빈신씨는 자기한테 위협이 안 되는 예쁜 꽃이었던거.. 원경왕후는 자기랑 대등한 위치 아님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해서 견제하고 모멸감 주면서 내가 너보다 위라는걸 원경왕후한테 상기시키고 싶어한거 같고 어떻게 보면 원경왕후를 인정한거죠 같은 급의 사람으로

  • @tv-xd2il
    @tv-xd2il 3 года назад +1

    기생 가희아 아닌가요?

  • @조옥자-o9u
    @조옥자-o9u 3 года назад +19

    조선시대엔 여자들을 넘괴롭혔네요. 후진국의 자태가그대로 녹아든시대.
    이런시대 넘 불쌍한사람이많아요.
    현대. 자유롭고 얼마나 좋은시대인가.넘싫다.조선시대.넘복잡하게 사셨네.

  • @yerialishah4724
    @yerialishah4724 2 года назад

    방원이의왕죠찔그짓실컷하고싶어형제들 다죽이고처남들다죽였냐역겹다.

  • @지현성-x7b
    @지현성-x7b 2 года назад +2

    원경왕후가 기가 너무 센듯
    얼마나 꺾기가 힘들면.. 쯧쯔..
    최후 통첩으로 여종을 건든거 같은데.. 외척이 문제여..
    어느 시대나 본인들이 왕인줄알고 더 설치는게 문제임

  • @pqjbrhdj
    @pqjbrhdj 4 года назад +1

    여기 쓰이는 그림들이 공주의 남자 드라마 장면들 그림처리한것같은데

  • @yoonakim2025
    @yoonakim2025 2 года назад +4

    신빈신씨, 함녕군 후손이온데ᆢ귀한 자료, 정리가 너무 잘되었습니다~👍💯

    • @수정이-n7z
      @수정이-n7z 2 года назад +6

      반갑습니다 한가지 알려드리면 함녕군은 아들을 하나 낳았지만 그 아들이 후손을 남기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대가 끊어졌는데 왕실에서 세종대왕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의 아들을 양자로 정해주었습니다 지금 함녕군파는 사실상 임영대군파와 같은 뿌리랍니다 임영대군은 원경왕후의 손자이니 님은 신빈이 아니라 원경왕후의 자손이라고 봐야 할겁니다

    • @yoonakim2025
      @yoonakim2025 2 года назад +1

      @@수정이-n7z 맞습니다.감사드립니다~
      정확하십니다~👍👍👍

    • @동동동주-h2d
      @동동동주-h2d Год назад +2

      우리 할머니가 전주이씨 효령대군파인데 그러면 나도 원경왕후의 자손이네

    • @이동경-u8n
      @이동경-u8n 8 месяцев назад +2

      태종임금과 원경왕후의 둘째아들(친자)이 효령대군 입니다.셋째가 충녕대군 ..후에 세종 대왕 이십니다. 참고로 저는 함녕군파(신빈신씨의 장남) 19대손 입니다.

  • @user-kkl0813
    @user-kkl0813 22 дня назад +2

    정력도 좋네 방원이 본처자식11명 신비 자식 10명 후궁이 18이니 자식이 100명은 되겠네

  • @yop626
    @yop626 26 дней назад +3

    옛날 왕들 잡식성 노비ㆍ무술이ㆍ궁녀 가리지를 않는 여성편력 끝판왕들

  • @yop626
    @yop626 23 дня назад +3

    잡식성 노비를 두명이나 후궁들이 18명 후사는 핑개고 그냥 여성편력에 미쳐산거네 자식이 29명이나 필요한지 후궁중 가장사랑한 여자는 원경왕후 몸종 신빈 신씨 자식을 씩이나 낳았으니

    • @user-olooloolo
      @user-olooloolo 20 дней назад +1

      호색 밝히는것은 양녕대군이 지애비보다 더했고 세종도 지애비에 버금가는 여성편력이 있었음 양녕은 큰아버지 정종 첩까지 건드렸다는 썰도 있는걸 보면 배다른 이쁜공주들도 혹시 건들였을지도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