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은 한반도 강화도에 오지않았다 대륙고려 고려영토 원나라 대도 금나라 중도 고려개경 강화부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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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3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71

  • @booksbogo
    @booksbogo 3 месяца назад +23

    👍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책보고님 감사합니다

  • @천군만마
    @천군만마 3 месяца назад +11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눈이멀었다님 감사합니다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3 месяца назад +5

    아, 소리없는 참고자료...한참 헤맸네....장두구님 반갑습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반갑습니다 소리없는 참고자료 다시 잘 만들어 드릴께요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3 месяца назад

      @@hanhan4980 아니요..떤짓 하다보니 소리가 안나길래 ㅎㅎ 몰랐지요 소리없는 구간이란걸

  • @checksbogo
    @checksbogo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잘 보고 갑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쩔꼰대-s2c
    @어쩔꼰대-s2c 3 месяца назад +6

    장두구님 화이팅!!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고쳐 지겠죠

  • @minsay7499
    @minsay7499 3 месяца назад +17

    중국의 홍건적이 원나라에 쫓겨서 한반도로 넘어 왔다는게 말이 안되는거죠.. 고려를 침공했다면 고려 위치가 중국대륙의 동쪽에 있었다는 반증임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감사합니다

    • @아넷-p7b
      @아넷-p7b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주원장이 홍건적의 괴수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3 месяца назад +29

    고려사를 번역한 책이 시중에 나오지 않는 이유!!! 번역한 책이 나오면 거짓말이 들통 나기때문에…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8

      감사합니다

    • @y2k2000y2k
      @y2k2000y2k 3 месяца назад +4

      한국에서는 동아대학교 고전연구소가 1960년 《고려사》 번역을 시작해 1965년에서 1973년에 걸쳐 《역주 고려사》(譯註高麗史)라는 제목으로, 1책을 포함하여 총 11책으로 펴냈다. 출처::위키
      이것 아니더라도 고려사 라는 한권으로 번역된 책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이러한 책을 한반도 역사관이 아닌 의구심 가득한 상태에서 보면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도 안될뿐더러 엄청난 혼란을 불러오고 머리도 깨질듯이 아픕니다.
      갑갑하고 답답하며 숨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분노로 가득 차기도 합니다.조금씩 차츰 이해하기 시작하면 말입니다.
      번역본 고려사를 보면 고려는 조공하다 애저녘에 망했어야 합니다.조공품으로 고려는 진즉에 거덜 났어야만 합니다/.그런데 이것을 무역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게 될겁니다.
      물론 번역된 고려사도 이 한반도 지형 지명에 맞추어져 있다는걸 반복해서 들여다보면 알게 됩니다.
      번역되어 나온 책들이 여럿 있습니다.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3 месяца назад +2

      @@y2k2000y2k 문제는 반백년 출판 후 절판된 책뿐이 없습니다.

    • @tojimari23
      @tojimari23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교보문고 홈페이지 검색하면 고려사절요 번역본 출판되어 있습니다.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3 месяца назад +2

      @@tojimari23 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다른 책입니다만…

  • @송현직-k9g
    @송현직-k9g 3 месяца назад +11

    드라마 주원장에 홍건적의 당시 상황이 잘나옴
    지들끼리 싸우고 원이랑 싸우고
    재력도 딸리고 도적놈들이라
    바다건널 항해기술도 없고
    바다건널 배만들기술도 없고
    한반도로 올 이유도 없고 올 여력따위는
    1도 없음

  • @무쵸-g5f
    @무쵸-g5f 3 месяца назад +7

    고려사를 국보로하고
    원문과 전역본을 좌우대치하여
    책으로 펴내고
    Ebs 둥 공영방송에서
    역사 진실찾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 국사추종자그룹
    : 대륙삼국주장그룹이
    토론(진실공방) 하게 만들면 될겁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참 좋은 의견입니다

    • @jung8711
      @jung8711 3 месяца назад +2

      현실은 4년전 강단매국사학교수 송호정이가 개천절에 그것도ebs에서 단군조선 실제역사인가?
      NO🙅이따위방송을 개천절에 ebs방송함

    • @jung8711
      @jung8711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우실하교수가 반박영상도 있습니다.

    • @tojimari23
      @tojimari23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고려사절요와 고려사는 이미 출판되어 있습니다. 검색해보세요!!

  • @min-sf6fc
    @min-sf6fc 20 дней назад

    와 책보고님이 남경이 난징시라고 보고 있었는데. 기가막히게 그자리에 강화부가 있네요. 양자강과 회수라니.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7

    형주,공안,강릉,적벽 등이 호광성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중본,중기본,중초본,중중기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8

    나주가 호광성에 도착
    (대명여지도 말중본) ~ 호광성 남단의 강화와 방위각이 어긋나게됨.

  • @가물치-y8g
    @가물치-y8g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고려사가 중국대륙사라니 이것이 동북공정?

  • @가물치-y8g
    @가물치-y8g 3 месяца назад +3

    강남에서 성남으로 밀려난 원주민이 강남은 성남땅이라고 하는 격?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3 месяца назад +5

    우적도 발견본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음.
    판본 (1차 교정본) ~ 지도 제작의 취지에 어긋남을 알림. (요수의 지명만 넣고, 물길을 그리지 않음) ~양심있는 학자의 목숨을 건 센스.
    보급본 (2차 교정본) ~ 벽란과 같은 뜻의 지명을 삭제함으로써 개경의 위치를 감추다.

  • @돌담길-s6h
    @돌담길-s6h 2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려도경이 베이징근처에 있었다면 베이징 서북쪽이 고려국경이되고 그쪽으로 원나라도성과 그곳을 약탈하는 홍건족이 고려국경을 넘어 베이징쪽 고려도경으로 쳐들어 왔다고 하겠네요.상당히 일리있는 역사적사실논리라고 보입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2 месяца назад

      강화도 가짜 - 맞습니다
      ruclips.net/video/fAxFK-vkRCs/видео.html

  • @립필-m3u
    @립필-m3u 3 месяца назад +11

    중꿔 왜곡이 너무 심함.
    진나라 통일 후 만리장성 축조했다는데..진나라는 기원전 220부터 206년까지 14년 존재함.
    그전에는 춘추전국시대라 만리장성 쌓을수 없었고 갸들은 북경근처에 가본적도 없음. 그리고 진나라 이후 명나라까지는 아무도 손보지 않음..후대 명나라에서 손을 봤다고 함..진나라가 천하(?)통일 후 불과 14년만에 만리장성 쌓았다고?? 장난하냐?

    • @구리의후예
      @구리의후예 3 месяца назад +4

      오 14년...ㄱㅅㄱㅅ

    • @minsay7499
      @minsay7499 3 месяца назад +8

      거기다 수나라 581년부터 619년까지 38년동안 대운하건설도 말도 안되는 중궈의 허풍이죠. 외계인이 만들어 줬다면 몰라도 😅😅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2

      감사합니다

    • @On_horiz
      @On_horiz 3 месяца назад +2

      진서는 갈석까지 기존성들 이어서 장성축조라고 해서 진장성이라 칭하지요.

  • @이종진-e4f
    @이종진-e4f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인데요...그럼 함경도 지방의 이성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함경도가 아닌지..명이 철령이북땅이 명의 땅이라 말한 철령은 어디인지..시간을 더 앞당기면 거란 침입당시 강동 6주 위치는 어디인지..지금의 압록은 그당시의 지명과 다른건지..신라가 대동강 이남땅을 통일했었고 후삼국이후 고려초까지 평양이북은 고려땅이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궁예가 건국한 후고구려가 만주까지 포함한건지..또 제가 알기로는 홍건적이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된걸로 알고 있거든요...물론 초기 홍건적의 주력은 중국 남부지방이었지만..주력인 남부는 세력은 확장했지만 여타 잔여 홍건적은 토벌 되고 뭉치고 하면서 자연스레 고려로 넘어온걸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궁금합니다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아래 보시고 궁금하면 의견주세요
      고려 ruclips.net/video/fxfvejSBsXY/видео.html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이성계 고향
      ruclips.net/video/vmKVceUU2Rs/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oEINwZxPF9Y/видео.html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철령
      ruclips.net/video/8QoR5WAi3AQ/видео.html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강동6주
      ruclips.net/video/lOZKhxMyysY/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dbJS18RsBgM/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YgkdSuCmLbc/видео.html
      ruclips.net/video/fuNkApzH83Y/видео.html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려개경
      ruclips.net/video/7qX0GOLru3k/видео.html

  • @Jeong-eun
    @Jeong-eun 3 месяца назад +1

    고려도 없었다 역사서는 소설이다

  • @5lofbread2fishes81
    @5lofbread2fishes81 3 месяца назад +8

    고려말 이성계 와 최영장군이 왜 를 토벌한 황산 진포 위치와 지리산위치 확인 요함~ 우리는 이를 반드시알아야함~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2

      네 감사합니다

  • @lilac7023
    @lilac7023 24 дня назад +1

    맞습니다.
    중원대륙에서 발흥한 홍건적이 그 먼 한반도까지 건너와 노략질 할 리가 없다.
    고교시절 역사 배울때부터 늘 의문 사항이었다.

    • @hanhan4980
      @hanhan4980  23 дня назад

      ruclips.net/video/fAxFK-vkRCs/видео.html

  • @y2k2000y2k
    @y2k2000y2k 3 месяца назад +6

    ⊙ 水原: 都護府,
    本高句麗 買忽郡, 新羅改爲水城郡。 高麗 太祖南征, 郡人金七、崔承珪等二百餘人, 歸順効力, 以功陞爲水州。 成宗十四年乙未, 置團練使, 穆宗八年乙巳, 【卽宋 眞宗 景德二年】 罷之, 顯宗九年戊午, 復爲知水州事。 忠敬王十二年辛未, 【卽元 世祖 至元八年】 蒙古兵入大部島, 侵掠居民, 島人怨憤, 殺蒙古兵以叛, 州官安悅率兵討平之, 以功陞爲都護府, 後又陞爲牧。 忠宣王二年庚戌, 【卽元 武宗 至大三年】 汰諸牧, 降爲水原府。 恭愍王十一年壬寅, 【卽元 順帝 至正二十二年】 以紅頭賊, 遣先鋒招降, 楊廣道州郡, 水原最先迎逢, 致賊勢益張, 降爲郡。 郡人重賂宰臣金鏞, 未幾復爲府, 本朝太宗十三年癸巳, 例改爲都護府。
    ⊙ 수원 도호부(水原都護府)
    본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인데, 신라가 수성군(水城郡)으로 고쳤고, 고려 태조(太祖)가 남정(南征)할 때, 고을 사람 김칠(金七)·최승규(崔承珪) 등 2백여 사람이 귀순(歸順)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수주(水州)로 승격시켰으며, 성종(成宗) 14년 을미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목종(穆宗) 8년 을사 【곧 송나라 진종(眞宗) 경덕(景德) 2년.】 에 이를 파하고, 현종(顯宗) 9년 무오에 다시 지수주사(知水州事)로 삼았다. 충경왕(忠敬王) 12년 신미 【곧 원나라 세조(世祖) 지원(至元) 8년.】 에 몽고 군사가 대부도(大部島)에 침입하여 백성을 노략질하니, 섬 사람들이 분함을 못 이겨 몽고 군사를 죽이고 반(叛)하매, 주관(州官) 안열(安悅)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쳐서 평정하였으므로, 그 공으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그 뒤에 또 목(牧)으로 승격시켰다가, 충선왕(忠宣王) 2년 경술에 【곧 원나라 무종(武宗) 지대(至大) 3년. 】 모든 목(牧)을 없앰에 따라 수원부(水原府)로 강등시켰다. 공민왕(恭愍王) 11년 임인에 【곧 원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22년. 】 홍건적(紅巾賊)이 선봉(先鋒)을 보내어 항복하기를 청하매, 양광도(楊廣道)의 주군(州郡) 가운데서 수원이 맨먼저 항복하여 〈적을〉 맞아들였으므로, 적의 형세가 더욱 퍼졌기 때문에, 군(郡)으로 강등시켰는데, 고을 사람들이 재상 김용(金鏞)에게 뇌물을 많이 주어서 얼마 안 되어 다시 부(府)로 되었다. 본조(本朝)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가 되었다.
    ◎ 安城郡: 本高句麗 柰兮忽, 新羅改爲白城郡, 高麗改爲安城縣。 顯宗戊午, 屬水州任內, 後移屬天安府。 明宗二年壬辰, 始置監務。 恭愍王十年辛丑, 紅賊入松都, 王南巡, 賊遣先鋒, 招降楊廣道州郡, 所至莫敢挫其鋒, 唯安城人佯爲降附, 設享犒之, 乘其醉斬魁首六人, 賊由是不敢南下。 壬寅, 以功陞爲知郡事, 割水原任內陽良、甘彌呑、馬田、薪谷四部曲以與之。 恭靖王元年己卯, 析陽良, 置陽智縣, 餘三部曲, 今亡爲直村。
    ◎ 안성군(安城郡)
    본래 고구려의 내혜홀(柰兮忽)인데, 신라가 백성군(白城郡)으로 고쳤고, 고려가 안성현(安城縣)으로 고쳐, 현종(顯宗)무오093) 에 수주(水州) 임내(任內)에 붙이었다가, 뒤에 천안부(天安府)로 옮겨 붙이었으며,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공민왕(恭愍王) 10년 신축에 홍건적(紅巾賊)이 송도(松都)에 침입하여,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하니, 적이 선봉(先鋒)을 보내어 항복하기를 권하매, 양광도(楊廣道)의 주군(州郡)이 감히 그 선봉을 꺾지 못하였는데, 오직 안성 사람들이 거짓 항복하여 음식을 차려 놓고 적군을 먹이다가, 그 취(醉)한 틈을 타서 괴수(魁首) 6인을 베이니, 적군이 이로 말미암아 감히 남하(南下)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임인에 그 공으로써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켜, 수원(水原) 임내(任內)인 양량(陽良)·감미탄(甘彌呑)·마전(馬田)·신곡(薪谷)의 4부곡(部曲)을 떼어 주고, 공정왕(恭靖王) 원년 기묘에 양량을 떼어 양지현(陽智縣)을 설치하고, 나머지 3부곡은 지금 없애어 직촌(直村)을 삼았다.
    홍건적들은 두 차례에 걸쳐 고려에까지 침범하였다.
    1359년(공민왕 8) 음력 12월, 모거경(毛居敬)이 이끄는 4만여 명의 홍건적이 얼어 붙은 압록강을 건너 의(義)·정(靜)·인(麟)·철(鐵)의 4주(州)를 함락시키고, 이어 서경을 점령하였다. 1360년 음력 1월 하순, 고려군은 20,000명의 병력으로 서경 탈환을 시도했다. 비록 고려군 사상자가 1,000여 명에 달했지만, 홍건적은 수천 명이 전사하면서 서경을 버리고 북쪽의 용강과 함종 방면으로 퇴각했다. 그 뒤 다시 추격을 당하여 압록강을 건너 도망한 적은 3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다.
    그 뒤에는 수군으로써 황해·평안도의 해안지대를 산발적으로 노략질하다가, 1361년(공민왕 10) 음력 10월, 원나라의 대대적인 공세에 밀린 홍건적은 하북 지방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다시 고려를 침공했다. 2차 침공의 주역은 반성(潘誠), 사류(沙劉), 관선생(關先生), 주원수(朱元帥) 등이며, 병력은 200,000명이었다. 홍건적은 음력 11월 11일에 절령(岊嶺 : 자비령)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하고 수도 개경(開京)에 육박하여 왔다. 이에 공민왕 및 왕실과 정신(廷臣)은 남쪽인 복주(현재의 경상북도 안동)로 파천하게 된다. 왕가(王駕)가 이천에 도착하던 날 홍건당은 개경을 함락하고 온갖 만행을 다하였다. 그러나 홍건당은 개경 입성 후 2달간 주둔하면서 더 이상 남진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출처:: 위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사료와 싸이트 블로그 등 여러 자료들을 찿아보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님을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알수가 있는 일이다.
    수원과 안성의 행정편재가 홍건적으로 인해 바뀌었다./
    기존의 역사대로 개성에서 머문 홍건적 때문에 수원도호부가 항복할일이 없고 안성 또한 홍건적을 맞아 전공을 세우지도 못할 일이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수원은 항복하고 안성은 저항했다.후에 割水原任內陽良、甘彌呑、馬田、薪谷四部曲以與之수원(水原) 임내(任內)인 양량(陽良)·감미탄(甘彌呑)·마전(馬田)·신곡(薪谷)의 4부곡(部曲)을 떼어 주고 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의 개성 이전에 홍건적의 침입 경로에 수원과 안성이 있었던 지리적 조건이다.한반도에서는 결코 일어날수가 없는 일이다.
    총독부 조선사에 메몰된 학계??와 강단?? 역사 전문가??들은 우리의 기록을 단연코 본적이 없다.이 개새끼들이 우리의 기록을 봤다고 아가리 벌리면 그 아가리에 죽창을 밀어 넣어야만 한다.
    조선의 기록에서 수원과 안성을 본래부터 고구려의 영토임을 말하고 있다.즉 고구려 건국시부터 고구려의 영토였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기존의 역사는 백제의 한강 한성이니 위례성이니 개소리가 될수밖에...
    기존에 배웠던 역사는 깡그리 잊어야 함에도 잊지 못하고 있다.거짓의 역사를 배웠다는것을 알았음에도 뇌리에 각인이 되어 있다.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거짓의 역사를 배우게 한 개새끼들을 어찌해야 할까.?
    때려 쳐 죽일 개새끼들이 이 땅에서 숨도 못 쉬게 역사를 틀어쥐고 그 자리를 강고하게 틀어쥐고 있다.개검 개혁 언론개혁보다 어려운것이 학계이고 강단이며 역사전문가들이다.이런것들이
    닭그네 시기 이름을 감추고 국정 교과서를 움직이려 한 것이다.언제든 다시 기회가 되면 또 다시 움직일 것이고 반드시 획책을 할 것이다.죽어있는 역사를 또 다시 죽이고 흔적도 없이 만들것이다.
    이를 막아야 하는것은 역사에 대한 진실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서야만 한다.

    • @hanhan4980
      @hanhan4980  3 месяца назад +3

      사학자가 되려면 오직 식민사학이 아니면 아무것도 북한처럼 못하는 더러운 국가 정의는 죽고 거짓이 진짜인 역사=조선역사독재공화국 = 학문의 자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