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흥미로운 것은 강화가 지금의 강화가 아니라 중국 남경 북쪽이 "강화"라는 사실입니다 공감은 하지만 매우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 김포 건너편에 있는 강화가 아니라고는 생각합니다.과연 40년 넘게 전쟁을 하면서 손톱만치 작은 섬을 공략을 못했다...코미디
공민왕은 왜 성계 아부지 이자춘을 등용했을까요? 그렇게 신하들은 반대를 했는데 그 판단이 역사적으로 이렇게 되는 판단인지는 몰랐겠죠 그리고 자기 씨가 없다는거 그래서 결국 우왕 창왕 공양왕 그리고 노국공주가 죽은이후 미쳐버린 공민왕 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네요
씨가 없을 가능성보다 이미 궁궐을 장악한 이성계와 함께하는 자들이 어이를 갖지 못하도록 음식에 뭔 짖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그래도 임신하면 죽이거나 태어났을때 그 세력들이 갓난아기를 죽이고 사생아라 보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눈멀어 별의별짖을 다했을것 같습니다. 이런 소재로 소설쓰면 엄청 재미있을듯 싶고, 사람들에게 진실된 역사에 가까이 다가서게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하고 봐도 그렇고 멀리 중국왕조 사서까지 안가도 "삼국사 또는 삼국사기"지명과 그당시 요나라,금나라,송나라와 대 고리의 상황을 생각하면 정두구님의 유투브 화면과 동일하게 나올텐데.......지금의 역사책은 왜 수정하지 않는가? 수정을 해야 저 지역사람들과 공감대가 깔릴텐테....
무인년 1218년 거란군 혼성부대(몽고군+동하국)가 함사를 공격할때 고리의 40만 병력을 원조할 정도이면 남북한 지역에서 동원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당시 인구상) 저졍도 병력을 동원하려면 동북3성과 지금의 유투버님의 하북,하남일부,산동,복건성 영역일부는 갖고 있어야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군요
현 대한민국의 *'전 병력'* 이 50만명도 안됩니다. 물론 고령화 등의 인구구조의 문제도 있습니다만... 어쩌면 고리의 인구가 현재 남한보다도 많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사관자들이 송나라 띄어줄 때 인구 1억명 돌파 등등 뇌피셜을 배설하는데, 진짜 인구가 1억명을 돌파했던 대제국은 고리였던 것이죠.
남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지 않고 도착. (출발지~대명여지도 초기본 초중본, 도착지~중초본 이후본). 북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고 도착. (중기본) 명나라 수도~ 1388년까지의 수도 지명 삭제.(중중기본) 웅진~ 과 주변의 관련 지명을 모두 삭제.(중초본)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감사합니다 ㅡ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그려보면 알수 있습니다 . 고려사에 1175년 고려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그 임금에게 반란을 일으키고는 자비령(慈悲嶺) 이서~압록강(鴨綠江) 이동의 40여 성(城)으로써 내부(內附)하겠다고 청하였으나 서긍의 고려도경 원문입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요수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영토[封境]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감사합니다. 다른 구독자분이 요청하신 개경은 한반도에 언제 처리하고요 할거 너무 많아서 네가 홍건적이라면 인구 3천명도 안되는 멀고 먼 강화도에 무엇하려 갈가요 한반도 개경이 아님것을 알수 있죠 중요해요 瓯江华府B座 -- 구글지도 복사본 입니다 강화부 자리 복사해서 네이버 한자사전 구글지도에서 검색해 보세요 강화도 비장 왕동철이 적을 몰살시키다 고려사 원문이미지 세가 권제39 날짜 | 1361년 12월 30일 (음) 강화부(江華府)가 거짓 투항하여 홍건적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비장(裨將) 왕동첨(王同僉)이 매복시켜 두었던 군사로 이들을 몰살시키니 홍건적이 감히 그 땅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큰산-f9f 정감록을 집필하신 장중정선생님께서는 고려의 강역은 소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무함마드 알리는 고려멸망후 이주한 고려인의 후손으로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절대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대륙동부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거대제국 고려의 역사! 역사문헌과 자도 및 구글지도를 통해서 지역명과 방위를 종합하여 고려국경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강화가 지금의 강화가 아니라 중국 남경 북쪽이 "강화"라는 사실입니다 공감은 하지만 매우매우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 김포 건너편에 있는 강화가 아니라고는 생각합니다.과연 40년 넘게 전쟁을 하면서 손톱만치 작은 섬을 공략을 못했다...코미디
맞습니다 ㅡ조선시대 강화인구 3000명이 안되요 고려국경이 만주로 가면 개경 강화을 옮겨야 방향이 맞습니다강화관련 유투브 5개이상 만들어 놓았습니다
공민왕은 왜 성계 아부지 이자춘을 등용했을까요? 그렇게 신하들은 반대를 했는데 그 판단이
역사적으로 이렇게 되는 판단인지는 몰랐겠죠
그리고 자기 씨가 없다는거 그래서 결국 우왕 창왕 공양왕
그리고 노국공주가 죽은이후 미쳐버린 공민왕
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네요
너무 슬프네여 ㅠㅠ
감사합니다
씨가 없을 가능성보다 이미 궁궐을 장악한 이성계와 함께하는 자들이 어이를 갖지 못하도록 음식에 뭔 짖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그래도 임신하면 죽이거나 태어났을때 그 세력들이 갓난아기를 죽이고 사생아라 보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에 눈멀어 별의별짖을 다했을것 같습니다.
이런 소재로 소설쓰면 엄청 재미있을듯 싶고, 사람들에게 진실된 역사에 가까이 다가서게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하고 봐도 그렇고 멀리 중국왕조 사서까지 안가도 "삼국사 또는 삼국사기"지명과 그당시 요나라,금나라,송나라와 대 고리의 상황을 생각하면
정두구님의 유투브 화면과 동일하게 나올텐데.......지금의 역사책은 왜 수정하지 않는가? 수정을 해야 저 지역사람들과 공감대가 깔릴텐테....
감사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일제가 만들어준 역사는 이제 그만 가르치고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올바로 가르쳐야서 자긍심을 갖도록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는 광대하고 찬란하고 훌륭해서 진실을 가르치기만하면 지긍심이 저절로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무인년 1218년 거란군 혼성부대(몽고군+동하국)가 함사를 공격할때 고리의 40만 병력을 원조할 정도이면 남북한 지역에서 동원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당시 인구상)
저졍도 병력을 동원하려면 동북3성과 지금의 유투버님의 하북,하남일부,산동,복건성 영역일부는 갖고 있어야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현 대한민국의 *'전 병력'* 이 50만명도 안됩니다. 물론 고령화 등의 인구구조의 문제도 있습니다만... 어쩌면 고리의 인구가 현재 남한보다도 많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사관자들이 송나라 띄어줄 때 인구 1억명 돌파 등등 뇌피셜을 배설하는데, 진짜 인구가 1억명을 돌파했던 대제국은 고리였던 것이죠.
1270년 몽고와의 협상시기까지는 고려의 영역이 큼.
1271년 천자국을 선포하면서 점진적으로 고려의 영역을 다소 능가했을 가능성이 있음.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진실을 밝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지 않고 도착. (출발지~대명여지도 초기본 초중본, 도착지~중초본 이후본).
북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고 도착. (중기본)
명나라 수도~ 1388년까지의 수도 지명 삭제.(중중기본)
웅진~ 과 주변의 관련 지명을 모두 삭제.(중초본)
낙수와 낙양이 하남에 도착.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중중초본)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송나라 서긍이 쓴 고려도경의 원본은 없고 후손이 재출판하였으며 국내본은 일본인이 출판한것을 미국 도서관에서 국내로 들여온 사본이라고 하네요. 이미 왜곡소지가 있지만 중국 소재본과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재해석이 필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ㅡ 이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그려보면 알수 있습니다 . 고려사에 1175년 고려 서경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그 임금에게 반란을 일으키고는
자비령(慈悲嶺) 이서~압록강(鴨綠江) 이동의 40여 성(城)으로써 내부(內附)하겠다고 청하였으나
서긍의 고려도경 원문입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요수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영토[封境]
고려는 남쪽으로는 요해(遼海)로 막히고, 서쪽으로는 요수(遼水)와 맞닿았으며, 북쪽으로는 옛 거란 지역과 접경하였고, 동쪽으로는 금[大金]과 맞닿아있다.
빈주,등주,래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중본).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립니다
일제의 오래된 숙원은 옛 고조선의 땅을 다시 찾는 것이었다더군요. 그래서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로 가두고 우리 국민을 유린하고 꾸역꾸역 만주로 갔던 것 입니다. 이를 제지한 것은 미국이 열도에 떨어뜨린 폭탄 두 개였고요.
의견 감사합니다
👏 👏 👏 👏 👏 👏 👏 👏 👍 👍 👍 GOOD
홍건적의 고려 개경 칩입도 제대로 깊게 다뤄주세요.
감사합니다. 다른 구독자분이 요청하신 개경은 한반도에 언제 처리하고요 할거 너무 많아서
네가 홍건적이라면 인구 3천명도 안되는 멀고 먼 강화도에 무엇하려 갈가요 한반도 개경이 아님것을 알수 있죠 중요해요
瓯江华府B座 -- 구글지도 복사본 입니다
강화부 자리 복사해서 네이버 한자사전 구글지도에서 검색해 보세요
강화도 비장 왕동철이 적을 몰살시키다 고려사 원문이미지
세가 권제39
날짜 | 1361년 12월 30일 (음)
강화부(江華府)가 거짓 투항하여 홍건적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비장(裨將) 왕동첨(王同僉)이 매복시켜 두었던 군사로 이들을 몰살시키니 홍건적이 감히 그 땅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홍건적 개경침입니다 부족합니다
ruclips.net/video/vukKqp6Y1to/видео.html
조만간 범죄자를 만나러 갑니다.
고려 멸망후 공민왕의 6촌동생인 왕정위 후작이 4만명의 고려유민을 이끌고 알바니아 지역에 정착하였고 그후손인 무함마드 알리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1950년대 나세르의 혁명전까지 이집트를 통치하였죠. 고려후손인 무함마드알리가 통치하던 이집트도 한국땅입니다
@@HRA-uf5by 진짜인가요?
@@큰산-f9f 정감록을 집필하신 장중정선생님께서는 고려의 강역은 소아시아와 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무함마드 알리는 고려멸망후 이주한 고려인의 후손으로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절대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실제 고려의 국경은 현재 이란과 파키스탄의 접경지역까지 입니다 고려멸망후 고려왕씨 일족들이 피신하여 만든 국가가 무굴제국이지만 일제가 역사왜곡하였죠
고려의 서경은 현재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입니다. 아울러 티무르제국도 고련인들이 건국한 대제국이지만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22만권의의 역사서를 불태워 조작하였죠
너무멀리가신것 아닌가요?
구십니다
고고학적 근거는?
만리장성 ㅡ흙으로 만든 강화외성 10년동안 국민세금으로 발굴 ㅡ천리장성 고고학도 역사서가 바탕이 있어야 역사서에 방향이 안맞아요
있어도 중국이 공개할 리 없음. 자기네 수도가 고려의 서경임을 알려주는 고고학적 증거를 당신이 중국 정부 수장이라면 공개하겠음?
고려의 서경은 현재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입니다. 아울러 티무르제국도 고련인들이 건국한 대제국이지만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22만권의의 역사서를 불태워 조작하였죠
중공이 문혁으로 다태웠는데 뭔 고고학 타령이고
@@checksbogo 고려 서경은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고려의 동경은 베트남하노이 지역이였습니다. 고려는 역사상 몽골보다 더는 초강대국이였으나 중공이 역사서를 다 불태우고 일본이 역사왜곡 하였죠
국수주의 역사관..
중국의 역사관은 당연한 팩트고??
넌 화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