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예전에 유시민씨가 공격적이었다 지금 모습이 훨씬좋다고 하지만 전 유시민씨가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젊은날 그렇게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오신 것에 대해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유시민씨같이 관습과 구태, 권위가 팽배한 사회적 구조속에서 직접 세상과 대면하고 싸우면서 변화를 위해,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오신 분들덕분에 그 다음 세대가 보다 개인적 행복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여유로움과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외국계 대기업을 다녔습니다. 정말 좋은 회사였어요. 시스템이 좋아서 쓸 데 없는 일도 한 적 없었고, 지금은 워라벨이 흔한 용어지만 생소하던 시절 8시간 근무제가 정착되고 휴가도 상당히 많은 아주 좋은 회사였죠. 그러다가 2010년 s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어요. 나도 s사 다녀 보고 싶고 연봉도 많이 받고 싶다.. 그런데 s사로 이직하자마자 제 워라벨은 철저하게 무너졌고, 주당 80-100시간씩 근무했고 주말도 없었고 1년에 한 번 있는 여름 휴가도 제대로 못썼습니다.그나마 그 여름휴가도 3일 자기 연차 써서 쉬는 거였어요. 그것도 바쁘다고 못 가게 했고 말이죠. 그렇게 반년이 지나니까 제 얼굴이 완전히 괴물이 되더군요. 1년이 지나니까 몸이 아프고 2년이 지나니까 한 쪽 눈 마저 안보이기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티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쉬었어요. 쉬는 기간 동안 하고 싶은거 하고 쉬고 놀았죠. 그러다가 사진을 정리하는데, 정말 s사 다닐 때와 현재의 제 모습이 너무나 다르게 비교가 되더군요. 그걸 s사 다닐 때 동료들에게 단톡방에 공유했어요.사람들이 전부다 하나같이 회사 잘 그만뒀다고, 그때 정말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행복하지가않았습니다. 남들 다 가고 싶다는 회사에서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가않지??라고 그때 생각많이 했었어요. 아프지않았다면 계속 회사를다녔겠죠.그렇게 청춘을 보내고 후회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유시민이사장님은 자기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살으신 세월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고통스러운 희생의 나날을 보내신거 너무도 저희는 잘 압니다.복지부장관님 하실때 의료보험 체계가 정립되고 노인수당및 복지를 위해 애쓰신거 압니다.근데 어르신들은 모르시는분이 많나봐요.태극기부대 아저씨들요~ 언제까지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게요.
와 이거 진심 공감.................. 올해초까지 도망갈 곳이 없어서 꾸역꾸역 적성에 안 맞는 일 하다가 과감하게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 시작했는데 요즘 주변사람들한테 다 얼굴이 폈다, 좋아졌단 소리 들음. 내가 찍힌 얼굴 사진 보는 거 정말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같음.
@@Lia3349 유시민 빠는 노인네들 보면 정상인과는 뇌구조가 많이 다름 과거를 모르고 유시민을 빨면 멍청한거고 유시민의 과거를 알면서도 빨면 간첩임 서울대를 구경온 민간인을 납치하고는 자백을 요구하며 폭행 고문...이게 사람이 할짓인가? 또 유시민이 현장에 없었으니 무죄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 폭행에 가담한적이 없더라도 고문실 안에서 폭행을 방관하고 묵인했음 심지어 이로인해 1년6개월의 징역을 받다 나온놈임 그런인간을 그인간의 과거를 알면서도 민주투사랍시고 빨아주는 인간들은 뇌기능에 큰 문제가 있거나 간첩임ㅇㅇ
[한국경제신문 2019.10.16 ] 유시민에 고문당한 피해자 전기동(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피해자) "조국 옹호 유시민, 아직도 궤변으로 선동" "유시민 TV 나올 때마다 그때 기억 떠올라" 피해자 중엔 정신분열증 앓는 사람도 전기동 씨는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피해자다. 지난 1984년 서울대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전 씨를 포함한 피해자 4명을 정보기관 프락치라고 오인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했다. 피해자들은 각각 22시간에서 최대 6일 간 감금된 상태로 고문을 당했다. 피해자들 중 한명은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까지 앓고 있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 중 한명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사태가 터진 후 매 국면마다 등장했다. 조국 정국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다. 전 씨는 "유시민이 TV에 나올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직접 피해자들을 폭행하진 않았지만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프락치 색출작업에 동참했다. 유 이사장은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뒤 청문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그 길이 내가 원했던 길도 아니고 걷고 싶던 길도 아니었다"며 "그 분들(피해자) 중 어떤 분은 굉장히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는데 당시 조사를 받을 때에도 미안하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사건으로 징역 1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음은 전 씨와의 일문일답. ▷사건 이후 어떻게 지내나. "폭행을 당한 후 대인기피증이 생겨 고시공부를 포기했다. 이후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보안원, 경비원 등으로 근무했다. 올해 만 64세인데 아직까지 결혼도 못했다. 다 그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당한 일이라 후유증이 컸다. 사건 이후로도 제가 실제 프락치라는 음해를 계속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고 피해자 중에는 현재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있다." ▷유 이사장이 조국 사태가 터진 후 매 국면마다 등장해 조 전 장관을 옹호했다. "유 이사장은 민간인을 프락치라고 오인해 감금 폭행하고도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포장했다. 아직까지도 궤변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가해자인 유시민 이사장이 지난 4월 한 방송에 나와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때 쓴 항소이유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울분을 풀기 위해 쓴 글인데 아직도 회자된다. 문장이 길고, 고색창연한 글'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데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당시 사건은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유 이사장이 지난 2003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 홍보물에 '이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이미 명예회복을 하였다'고 적어 소송을 통해 바로 잡은 적도 있다. 유 이사장이 사건을 왜곡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고발이나 언론중재위 제소 등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유 이사장이 TV에 나오는 걸 볼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요새는 유 이사장이 자주 나와서 TV를 거의 안 보는데 주변에서 또 그런 말(사건을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주더라. 이제는 생업이 바빠서 일일이 바로 잡지도 못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이 실제 프락치였다는 주장이 있다. "벌써 35년 전 일인데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발생 후 각 대학에 피해자들이 오히려 잘못한 것처럼 대자보가 붙더라. 당시 저는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에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통신대 학생들은 서울대 법대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레포트 작성을 위해 서울대 모 교수님에게 책을 빌리러 갔다가 붙잡혔다. 가해자들에게 그 교수님에게 확인해보라고 했다. 교수님이 내 신분을 확인해줬는데도 믿지 않고 폭행을 계속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가해자들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다. 내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까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나를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나를 감금한 장소 창문을 미리 신문지로 다 가려놨더라.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등 물고문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고 전치 8주 부상을 입었다. 고문에 못 이겨 내 군대시절 상관이 시켜서 왔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고문 도중 실신해 2일 만에 풀려났다. 이틀간 식사도 못했다. 풀려나기 직전에야 빵을 주더라. 당연히 먹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도 한동안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도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잘못되면 자기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런 거지 나를 위해 한 행동인가." ▷유 이사장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당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눈을 가린 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이사장은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직접 프락치 색출작업을 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들을 신문하면서 '계속 다른 말을 하면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등 협박성 발언도 했다. 가해자들은 유 이사장 앞에서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피해자 4명 중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당시 운동권 사람들이 전두환을 미워하지 않았나. 내가 전두환과 같은 전 씨라고 심하게 폭행했다. 정말 미개한 사고방식이었다." ▷지난 2006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반대로 증인 채택이 불발됐다. 증인으로 출석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그냥 저런 인간이 장관 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건 이후 유 이사장이 사과한 적이 있나. "지난 1997년 유 이사장이 자기 책에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는 명칭을 써서 소송을 걸었다. 피해자들은 프락치가 아니라 민간인들이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판사가 합의를 권유하면서 유 이사장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 이사장이 제게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소송 때문에 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는 커녕 아는 체도 안하더라." ▷지금이라도 유 이사장이 사과한다면 용서할 생각은 있나. "35년 간 피해자들을 음해하다가 이제 와서 사과한다? 또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사과하는 거지. 용서하기 싫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유시민 작가님, 작가님이 쓰신 책을 읽으면서 생각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에 놀라게 됩니다. 작가님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작가님을 위해 가끔 기도하고 있어요. 종교는 없으시지만, 작가님의 성품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믿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아요. 주님께서 작가님을 만나주셔서 믿음, 소망, 사랑을 나누는 작가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상이네요. 주변인들이 제 표정을 콕 집어 이야기 할 때마다 지적이라고만 느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요. 그저 저들이 즐거우니까 분위기 맞춰라 혹은 으레 하는 지적으로 여겼거든요.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표정을 통해 삶을 바꾸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네요. 오늘부터라도 제 표정을 통해 제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겠습니다.
납치, 감금,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료들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폭행자는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회장 조현수,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이었던 백태웅[2], 이정우[3], 윤호중[4] 등 여러 명이다.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 이었던 유시민은 직접 물리적 폭행을 한 혐의가 없고 폭행을 지시하지 않았으나 고문실 안에서 폭행을 방관하였다는 죄목으로 당시 함께 처벌받았다. 다만 당시 사건을 현장에서 지휘·담당했던 김영복에 따르면 유시민은 폭행 사건 뒤 사태를 알았다고 한다. 그는 유시민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지만, 당시 서울시경 고위 간부의 지시에 따라 신병 확보가 쉬운 유시민에게 혐의를 씌웠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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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가 되면 뇌가 썩는다.
많은 분들이 예전에 유시민씨가 공격적이었다 지금 모습이 훨씬좋다고 하지만 전 유시민씨가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젊은날 그렇게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오신 것에 대해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유시민씨같이 관습과 구태, 권위가 팽배한 사회적 구조속에서 직접 세상과 대면하고 싸우면서 변화를 위해,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오신 분들덕분에 그 다음 세대가 보다 개인적 행복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여유로움과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가슴에 불을 가지고 있던 그때 유시민 선생님 정말 멋지고 존경스러웠어요..
좋은 댓글입니다.
너무 좋은댓글 감사합니다ㅠ
문득 유시민선생님께서 하얀바지입고왔다고 복장지적하며 소리치던 정치인들이 떠오르는군요...
멋진 댓글
부패하고 부조리가 팽배했던 시절에 독기없이 어찌 불의와 싸우나...
깨어있는 지성인이라면 분노할 수밖에...
저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조국 윤미향 실드치던데ㅋㅋㅋㅋ
@@TV-or7xz 그래도 그때 당시의 유시민은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momo devilruke 실드가 뭐냐? 영어를 쓸려면 다 쓰던가. 수준 하고는!!
이인수 그럼요. 수준이 우리하고는 달랐지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외국계 대기업을 다녔습니다. 정말 좋은 회사였어요. 시스템이 좋아서 쓸 데 없는 일도 한 적 없었고, 지금은 워라벨이 흔한 용어지만 생소하던 시절 8시간 근무제가 정착되고 휴가도 상당히 많은 아주 좋은 회사였죠. 그러다가 2010년 s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어요. 나도 s사 다녀 보고 싶고 연봉도 많이 받고 싶다.. 그런데 s사로 이직하자마자 제 워라벨은 철저하게 무너졌고, 주당 80-100시간씩 근무했고 주말도 없었고 1년에 한 번 있는 여름 휴가도 제대로 못썼습니다.그나마 그 여름휴가도 3일 자기 연차 써서 쉬는 거였어요. 그것도 바쁘다고 못 가게 했고 말이죠. 그렇게 반년이 지나니까 제 얼굴이 완전히 괴물이 되더군요. 1년이 지나니까 몸이 아프고 2년이 지나니까 한 쪽 눈 마저 안보이기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티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쉬었어요. 쉬는 기간 동안 하고 싶은거 하고 쉬고 놀았죠. 그러다가 사진을 정리하는데, 정말 s사 다닐 때와 현재의 제 모습이 너무나 다르게 비교가 되더군요. 그걸 s사 다닐 때 동료들에게 단톡방에 공유했어요.사람들이 전부다 하나같이 회사 잘 그만뒀다고, 그때 정말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행복하지가않았습니다. 남들 다 가고 싶다는 회사에서 많은 연봉을 받고 있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가않지??라고 그때 생각많이 했었어요. 아프지않았다면 계속 회사를다녔겠죠.그렇게 청춘을 보내고 후회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맞아요.......행복하세요..응원합니다. 저도 노력중이예요....그리고 우리 유작가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행복하기만 하시길 바라요. 😊
지금은 무슨일 하시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지네요. 근황좀 부탁드립니다.
네 소설 잘 봤어요
@@dkmy7692 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이유로 떠나시는거죠....글쓰실때 낚시 갈때가 가장 좋으신듯....
지금은 민주당에 민폐끼치고 쫓겨나듯 떠나는건데 무슨 ㅋ
@@drkw7918 누가 폐를 끼쳐ㅋㅋㅋㅋ 끼친 폐가 많은지 준 이익이 많은지 잘 생각해보길; 대중적인 썰전부터 시작해서 알릴레오까지 사람들에게 민주당의 이미지를 다 좋게 만들어서 지금 이런 결과를 내니까 폐끼쳤다 ㅇㅈㄹ
@@ahfmaekf 원래 배가 불러도 더 먹고 싶은 욕심이 있고 그게 유시민한테 모조리 가버린거지 개새끼들
@@drkw7918 개돼지시군요..
@@조진학-f3w 개돼지 비하발언
혼신으로 무엇을 하다 미련없이 떠난다는 것은 정말 멋지면서 대단한 일
10년 넘게, 아니 대학생시절부터 치열하게 목숨걸고 싸우신걸 존경합니다...
고문전문가죠
@@jxg3280 프락치 사건 유시민 관련 없는거 모르냐ㅋㅋㅋㅋㅋ담당과장이 직접 말했는데
강원도 뭔 관련이 없어?색출작업 같이 한거는 방관죄 아님?
@@손준혁-w2l 아저씨 담당형사ㄱㅏ 관련이 없대요
강원도 폭행과정이랑 상관이 없다했지 ㅋㅋㅋ묵인이랑 방조했는데도 관계가 없다고? 항소서 쓴거 다시 정독하고 오면 그런말 안나올걸??
2:32 유시민은 대체 책을 얼마나 읽길래 저런거까지 읽을 수 있을까...
박킨 집안이 워낙 한학자의 가문이였어서..
@@그르-t5g 가문.. 의 영향은 충분히 있겠지만 지금도 하루 100페이지 이상은 꼭 읽는다고 하죠.. 개인의 노력과 습관의 조화인듯
진짜 이게 놀라웠음ㅋㅋ 20대때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그 이후에 정치만 한 사람이 다윈책 진짜 가독성 개똥인거 어떻게 손댈 생각을 하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abcccccccc810 주변환경의 차이도 큼. 기를쓰고 좋은 대학 가려는 이유가 다양하게있겠지만 사람은 주변환경에 동화되기때문임.
“심상이 관상”이란 말이 있죠. 어릴 땐 모르지만 나이 먹으면 살아온 세월이 얼굴로 나타납니다
우와... 명언입니다
진짜 옛날 얼굴 보고 지금 얼굴보면 진짜 많이 유해졌음 얼굴에 맨날 날카로운 눈썹이 있던 사람이 물결무늬처럼 되는 걸 보고 진짜 많이 유해졌음.
진짜 인상이 다름 ㅇㅈ
유해졌겠지...사람을 그렇게 잡아다가 고문하고 때려죽이고 다녔었는데 요즘엔 안그럴거 아냐...
스나김.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때려죽인 사람을 잘못 알고 계시네요. 남산 중앙정보부, 남영동 대공분실. 공부를 하셔야해요. 박정희, 전두환이예요.
저렇게 치열하게 안싸웠으면 파렴치한 자들에게 지배당했겠죠.
옳은일에는 용감하게 맞서 싸워준 유시민 이사장님 !!
누가 파렴치하죠?
최현지 전두환과 그 후예들.
이순신장군처럼 플러스 조국과 더듬어민주당
이순신장군처럼 어차피 무너질놈들이긴하지ㅡ그것들은 근데 그놈들보다 조금더 못한놈들이 정의인척하는 꼬라지가 지금인거
진짜 똑똑하신 분이고 이렇게 편할 수 있는 분인데…
정치색과 관계없이.. 지금 넘 편안해보여서 좋아요…
당신의 말한마디가 희망이되고
이정표가되는 많은 사람이 지금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유시민이사장님은 자기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살으신 세월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고통스러운 희생의 나날을 보내신거 너무도 저희는 잘 압니다.복지부장관님 하실때 의료보험 체계가 정립되고 노인수당및 복지를 위해 애쓰신거 압니다.근데 어르신들은 모르시는분이 많나봐요.태극기부대 아저씨들요~
언제까지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게요.
우리 국가가, 정치가, 시민들이, 언론이 좀 더 성숙했다면
유시민 이라는 인물을 놓치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죠.
우리 사회는 이런 교육적예능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 + 유시민님의 지적세계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설명하는것같다 공부는 돈을벌기위함이 아니라
아...... 눈물난다 죄송합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그래도 정의를 위한 선택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와 이거 진심 공감.................. 올해초까지 도망갈 곳이 없어서 꾸역꾸역 적성에 안 맞는 일 하다가 과감하게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 시작했는데 요즘 주변사람들한테 다 얼굴이 폈다, 좋아졌단 소리 들음. 내가 찍힌 얼굴 사진 보는 거 정말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같음.
저의 부모님 세대이고 제 청년 시절 늘 날이 선 모습을 기억합니다, 지금 더 편해 보이고 살아있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젊으시고 한창이시니까 더욱 우리 곁에서 이야기하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오신 분 중 한사람. 당신이 이제 행복을 좀 더 추구한다한들 어느 누가 뭐라할쏘냐. 가장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
가장 치열하게 인권 주장하면서 뒤로는 민간인 4명이나 고문함
+ 천안함 인정안함
치열하게 살기는 민간인 폭행 쳐하다가 잡혀서 항소문 기깔나게 쓰고 정치 입문한새끼가 뭘 치열하게 살았다고 ㅉㅉ
유XX:저 새끼 정부 프락치야 아무튼 그래 고문 ㄱㄱ
유시민이란 정치인을 사랑했지만 유시민이란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오래 볼려니 놓아 드려야죠...
김성곤동그라미 저느반대로 유시민이란 사람은 좋아하지만 정치인으로써의 유시민은 이제 본래 애미도 퇴화한듯 아니,지금 민주당측 운동권인사들은 전부 퇴색된듯
@@이원석-u7g 애미도 퇴화 실화냐;;;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노란 넥타이 매고 충혈된 눈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던 모습,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ㅠ___ㅠ
노무현 자서전: 아내가 말을 안들으면 밥상을 엎어라
우리 류시민이가 윤호중이를 시켜서 한 일을 나는 대충 알고있지
@@user-qj8hd3tf7r 진흙발로 침대위로 올라가 뛰어라+ 남자는 세 명의 여자가 필요하다 feat.오솔길
멀쩡한민간인 4명 잡아다가 납치 고문하고
그중 2명은 아직도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 받고 있다고 한다
한명은 이민가고
그게 사람이 할짓이냐 이게 나라냐
누구. 전두환? ㅎㅎ 좀 공부하고 좀 읽어ᆢ유시민 그때 현장에 있지도 않았어. 그리고 대학생들이 얼마나 악에 받쳤으면. 그리고 뭐 고문후유증? 뉴스링크 들이대라.
@@Lia3349 유시민 빠는 노인네들 보면 정상인과는 뇌구조가 많이 다름 과거를 모르고 유시민을 빨면 멍청한거고 유시민의 과거를 알면서도 빨면 간첩임 서울대를 구경온 민간인을 납치하고는 자백을 요구하며 폭행 고문...이게 사람이 할짓인가? 또 유시민이 현장에 없었으니 무죄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 폭행에 가담한적이 없더라도 고문실 안에서 폭행을 방관하고 묵인했음 심지어 이로인해 1년6개월의 징역을 받다 나온놈임 그런인간을 그인간의 과거를 알면서도 민주투사랍시고 빨아주는 인간들은 뇌기능에 큰 문제가 있거나 간첩임ㅇㅇ
불의에는 치열하게 싸우셨고, 현실에서는 평범한 개인으로 살고자하는 모습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알쓸신잡에서 또 뵙고 싶어요 유작가님..
쁘락치잡겠다고 일반인들 잡아다가 감금 폭행 한게 불의에 치열하게 싸우고 평범한 개인이 되는건지 모르겠네요
훌라훌라 // 박정희 각하 공로랑 햇갈린거?
아님 지능이 원숭이수준인가? 에라이 ㅋㅋㅋ
@@I_hate_handle 당시 수사국장이 유시민은 범행에 가담하거나 지시한사실은 없지만 고위간부회의에서 유시민에게 혐의를 씌우자 해서 그런거라고 밝혔고 피해자중 한명인 전기동씨 역시도 유시민은 폭행을 한적이없다고 밝힘
무죄인데 깜빵은 왜 가셨을까??ㅜㅜ
@@tank_12356 군부독재시절에 무죄인데 깜빵가는사람이 한두명이가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핸드폰 사진첩에 소위 말하는 셀카사진 자체도 없더라고요....어쩌면 제 스스로 숨기고 싶었던것 같습니다...깨닳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19 나피디 까꿍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마음에들지않으먼 고칠생각을 해라... 진짜 좋은 말인듯...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40세가 가까워 오니 느껴지더라고ㅣ
유시민작가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한국경제신문 2019.10.16 ] 유시민에 고문당한 피해자 전기동(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피해자) "조국 옹호 유시민, 아직도 궤변으로 선동"
"유시민 TV 나올 때마다 그때 기억 떠올라"
피해자 중엔 정신분열증 앓는 사람도
전기동 씨는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피해자다. 지난 1984년 서울대 일부 운동권 학생들은 전 씨를 포함한 피해자 4명을 정보기관 프락치라고 오인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했다.
피해자들은 각각 22시간에서 최대 6일 간 감금된 상태로 고문을 당했다. 피해자들 중 한명은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까지 앓고 있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 중 한명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사태가 터진 후 매 국면마다 등장했다. 조국 정국에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못지않게 주목을 받았다. 전 씨는 "유시민이 TV에 나올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직접 피해자들을 폭행하진 않았지만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프락치 색출작업에 동참했다.
유 이사장은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뒤 청문회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그 길이 내가 원했던 길도 아니고 걷고 싶던 길도 아니었다"며 "그 분들(피해자) 중 어떤 분은 굉장히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는데 당시 조사를 받을 때에도 미안하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사건으로 징역 1년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음은 전 씨와의 일문일답.
▷사건 이후 어떻게 지내나.
"폭행을 당한 후 대인기피증이 생겨 고시공부를 포기했다. 이후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후 보안원, 경비원 등으로 근무했다. 올해 만 64세인데 아직까지 결혼도 못했다. 다 그 사건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당한 일이라 후유증이 컸다. 사건 이후로도 제가 실제 프락치라는 음해를 계속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고 피해자 중에는 현재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있다."
▷유 이사장이 조국 사태가 터진 후 매 국면마다 등장해 조 전 장관을 옹호했다.
"유 이사장은 민간인을 프락치라고 오인해 감금 폭행하고도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포장했다. 아직까지도 궤변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가해자인 유시민 이사장이 지난 4월 한 방송에 나와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때 쓴 항소이유서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울분을 풀기 위해 쓴 글인데 아직도 회자된다. 문장이 길고, 고색창연한 글'이라고 자랑하듯 말했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 받고 있는데 반성을 모르는 사람이다. 당시 사건은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유 이사장이 지난 2003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 홍보물에 '이 사건 관련자들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이미 명예회복을 하였다'고 적어 소송을 통해 바로 잡은 적도 있다. 유 이사장이 사건을 왜곡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고발이나 언론중재위 제소 등을 통해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유 이사장이 TV에 나오는 걸 볼 때마다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요새는 유 이사장이 자주 나와서 TV를 거의 안 보는데 주변에서 또 그런 말(사건을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고 알려주더라. 이제는 생업이 바빠서 일일이 바로 잡지도 못하고 있다."
▷당시 피해자들이 실제 프락치였다는 주장이 있다.
"벌써 35년 전 일인데 여전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건 발생 후 각 대학에 피해자들이 오히려 잘못한 것처럼 대자보가 붙더라. 당시 저는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에 다니며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송통신대 학생들은 서울대 법대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레포트 작성을 위해 서울대 모 교수님에게 책을 빌리러 갔다가 붙잡혔다. 가해자들에게 그 교수님에게 확인해보라고 했다. 교수님이 내 신분을 확인해줬는데도 믿지 않고 폭행을 계속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가해자들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다. 내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계속 아니라고 하니까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그때부터 폭행이 시작됐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 씩 나를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나를 감금한 장소 창문을 미리 신문지로 다 가려놨더라.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쳐 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붓는 등 물고문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치아가 부러지고 전치 8주 부상을 입었다. 고문에 못 이겨 내 군대시절 상관이 시켜서 왔다고 아무렇게나 말했다. 고문 도중 실신해 2일 만에 풀려났다. 이틀간 식사도 못했다. 풀려나기 직전에야 빵을 주더라. 당연히 먹지도 못했다. 병원에서도 한동안 혼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를 위해 구급차를 부르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도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잘못되면 자기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런 거지 나를 위해 한 행동인가."
▷유 이사장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나는 당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눈을 가린 채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 이사장은 피해자 소지품을 뒤져 신분을 확인하는 등 직접 프락치 색출작업을 했다. 유 이사장은 피해자들을 신문하면서 '계속 다른 말을 하면 나중에 두고 보자'는 등 협박성 발언도 했다. 가해자들은 유 이사장 앞에서 피해자들을 폭행했다. 유 이사장은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으로 이들을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피해자 4명 중 가장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
"당시 운동권 사람들이 전두환을 미워하지 않았나. 내가 전두환과 같은 전 씨라고 심하게 폭행했다. 정말 미개한 사고방식이었다."
▷지난 2006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반대로 증인 채택이 불발됐다. 증인으로 출석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그냥 저런 인간이 장관 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건 이후 유 이사장이 사과한 적이 있나.
"지난 1997년 유 이사장이 자기 책에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라는 명칭을 써서 소송을 걸었다. 피해자들은 프락치가 아니라 민간인들이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아니라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이다. 판사가 합의를 권유하면서 유 이사장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 이사장이 제게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소송 때문에 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는 커녕 아는 체도 안하더라."
▷지금이라도 유 이사장이 사과한다면 용서할 생각은 있나.
"35년 간 피해자들을 음해하다가 이제 와서 사과한다? 또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사과하는 거지. 용서하기 싫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오는 고통이지요.
개인의 행복만 지향하며 살수 없는 세상에서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알쓸신잡 보는 이유
그냥 나: 와ㅋㅋㅋㅋㅋ 나 어릴 때임ㅋㅋㅋㅋㅋ
유시민: 젊은 시절의 나의 얼굴을 본다는 것.
나: 오우...
ㄹㅇㅋㅋ
유시민, 노무현, 신해철 같은 사람은 멋이있다 세상을 변화시킨 분들이다
음,... 그렇기도 하지만 같은 시간에 찍은 사진이라도 대상을 바라보는 찍는 사람의 시선이 더 투영 되는거 같아요. 모델? 도 나를 찍어 주는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고요~
시즌4를 한다면. 더러 유시민은 안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장담컨데 알쓸신잡에세 유시민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가 본 그 어떤 유튜브 보다 유익했습니다. 당장 실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디서 이런말씀을 들을수있을까요? 정치관두시고 국민의 정치선생님 역할해주신 유시민 선생님 감사드려요
유작가님의 10년전 모습도 지금의 모습도 너무 좋아요! 늘 응원합니다!!🙌👏
겪고 계신 일들에 작가님의 마음이 많이 다쳤을까 걱정됩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밝은 미소, 유익한 이야기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시민 정말 존경합니다.
멋진 분~의리있는분~~
옳고 그름, 더 나아가 인간적 취향을 떠나 유시민의 날서있고 곤조있던 청춘을 존경합니다.
시즌4 언제 나오나요!!??
시민 작가님 영하 작가님 희열님 다 같이 넘 기다려지네요~~~빨리 돌아오세요~~
100 프로 공감 합니다
저도 힘든시절 제얼굴이 넘 무섭고 고통스럽게 변했더라구요
그래서 인간관계를 정리한 생각이 나네요
그러니 편한얼굴이 어느덧 되어 있더군요
유작가님 말씀은 주옥 같습니다
존경합니다
1:48 그런 방식으로 제 삶을 들여다볼 생각은 못 했는데, 정말 마음에 와닿네요.
남자훈련소 크로커다일 영상보고 왔습니다~^^
너무 공감되어서 남깁니다.. 저장갑.
감사합니다
잠이 안와서 켰는데 보게된 영상. 하아 너무 가슴을 울립니다. 고맙습니다
젊은 시절에 뭘해ㅋㅋㅋ 민간인 4명 잡아다가 쁘락치로 몰아서 감금 고문한 범죄자인데.. 괜히 그딴짓 해서 진짜 민주화 운동한 사람들 명예를 더럽히고 있어..
무고한 시민
ㅇㅇ맞음 생각해보면 멕아더는 얼마나 많은 우리 민초들을 학살했나
또 안중근이 죽인 일본 사람들을 몇이고.
이순신도 완전 대량학살자임.
범죄자 찬양하는 우리 사회 바꿔야 한다
뭔가 느껴지는게많아
유시민 작가님, 작가님이 쓰신 책을 읽으면서
생각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에
놀라게 됩니다. 작가님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작가님을 위해 가끔 기도하고 있어요.
종교는 없으시지만, 작가님의 성품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믿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아요. 주님께서 작가님을 만나주셔서
믿음, 소망, 사랑을 나누는 작가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피해의식 사상 주입시키는데 민주당식 뽕맞지 마세요 그거 맞으면 잠시 기분 좋을 수 있지만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없어지는거에요
결론은 웃자. 웃는 것도 사실 어렵다. 계속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만 생기고 나쁜일만 가득할때 웃는다? 쉽지 않지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웃으면 복이온다. 이것이 이 동영상의 결론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되네요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 붙잡아다 고문을 X나게 해서 사람들 죽어나가게 하고 그랬으니깐 그렇지... 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시민 프락치 고문사건 X
유시민 민간인 무차별 납치 감금 폭행 고문사건 O
빠꾸없네 ㅋㅋㅋ
0:23 고통은 너한테 납치당해서 영문도 모른채 고문당했던 민간인들이 고통스러웠겠지ㅋㅋㅜ
찐이네
정말로 공감해요 진짜 힘들 시절 내 사진을 보면 왠지 못나보이고 사진을 볼 때 마냥 기분이 좋지 않고 불편한데,나답게 살기 시작한 이후 사진을 보면 기분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고 만족스럽더라고요
내 영원한 멘토 유시민... 너무 공감합니다
아주 미세한 얼굴 근육 변화에 감정의 모든게 투영되죠
왜뜬건지 모르겠지만
이걸 한번 더 느끼는게 홍준표의 지금 얼굴과 토론 했을때의 얼굴이 다르더라
웃을때 맘편한 얼굴 웃는데 답답한 얼굴
화를 내는데 웃는 얼굴 화를 내는데 화가 가득찬 얼굴
고3 1년동안 찍은사진이 한두장밖에없네.. 재수생활 조금만 더 힘내자...
자기
겉모습을바꾸려말고 ㅡ
속마음
정신상타가 중요함 ㅡㅡ
생각이 삐딱하고 바르지못 한자는 얼굴에 험악한 모습으로 비친다 ㅡㅡ
사람들이 관상을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얼굴의 형태를 보는 게 아니라 표정을 보고 하는것 같음
교익님 얘기 듣고 저도 따라 웃고 있었어요~ㅎㅎ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은 정치인은 손꼽힌다
이 분이 정치할때 못 받아들인게 우리의 수준이다. 이 분이 옳은 말을할때 그럼 우리는 뭘 하고 있었던가? 나 또한 무임승차다. 저기 계신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설사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모두의 일이었기에 절대적으로 빚을졌다.
그덕분에 오늘날 이정도의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어 그 희생에 감사할 뿐입니다.
법륜스님은 어떤일을 하더라도 크게 변함이 없으시죠. 현실을 내뜻대로 하겠다는 욕심이 없어서 그런거 같아요. 내가 원하는만큼 바뀌지 않아도 묵묵히 하는 마음 그게 정말 진짜인거 같아요.
팬입니다.진짜...인생의 선배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상이네요. 주변인들이 제 표정을 콕 집어 이야기 할 때마다 지적이라고만 느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요. 그저 저들이 즐거우니까 분위기 맞춰라 혹은 으레 하는 지적으로 여겼거든요.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표정을 통해 삶을 바꾸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네요. 오늘부터라도 제 표정을 통해 제 마음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겠습니다.
유시민님~ 입담도 참 잼있고 넘 멋있으세용😊
민간인 고문 ㅋㅋㅋ
서울대 민간인 납치 고문 사건 ㅋㅋㅋ 문제는 이 인간 당시 재판에서도 절대 사과 안 하고 반성도 안 함. 반성도 판사한테만 하고 당사자한테 아직도 제대로된 사과를 안 함
잘 봤습니다~
이영상보고나서 다른편들 보니까 교익선생님 진짜 많이웃으시던데욬ㅋㅋ보기좋아요
나유시민 진짜 팬이라 책도 구입했는데
민간인 감금고문 사건은 좀 해명해야할거 같은데요 여러분;;
유시민같은 인간을 왜 팬씩이나 해줌 민간인 고문뿐만 아니라 평소 하는말도 뇌가 썩은짓들인데
대단한 분이다 정말 유작가님^^
민간인 잡아서 고문한 사람이 왜이렇게 정의로운 척 하는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
똥팔육들은 죄의식이 없음 지들은 절대선임
쟤네들은 저게 정의임. 미친놈들임 ㄹㅇ로ㅋㅋ
알쓸신잡 시즌 4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영상을 다시 보니 정치비평을 그만두는 것이 유시민이사장 스스로를 위해 옳은 결정이라 생각이 드네요.
와 여긴 서울대 프락치고문사건은 아무도 모르나보네 ㅋ
프락치 고문이 아니라 '민간인' 납치,감금,폭행,고문 사건임 뻔뻔하게 항소이유서가 어쩌고 하는거 보면 구역질남
진짜 프락치고문사건이라고 알려진건 너무 순화된 표현임. 어찌보면 프락치같은 나쁜놈 잡아고문한것처럼 보이자나. 실상은 윗분이 말한것처럼임. 죄없는 일반인 4명을 지들이 강제로 잡아다가 감금시켜놓고 고문한 사건임. 유시민하고, 윤호중도 똑같은 애임. 유시민이 대가리고 윤호중이 밑에서 지시받아서 고문하고. 지들은 지들이 선한 의도로 했다말하겠지만, 결국 전두환이랑 다를게 없던거임. 지들이 전두환 욕 ㅈㄴ하니깐 과거사건이 현재잣대로 말할수 없다고도 말못할거임. 같은시대에 나온 같은짓거리임.
모르니까 대깨문이죠 근데 알아도 여전히 대깨문일듯 ㅋㅋ
유시민은 아닌데…지금 별로라고해서 사실을 호도하지 말자
@@메튜-c9q 아니긴 뭐가아니야 직접몽둥이를 안들었던거뿐이지 고문 폭행 감독을해서 유죄판결나왔는데
Sns가없던시절 신문기사마저 믿고싶지않다면 더는 할말없다
알뜰신잡 다시 해 주세요~~~♥
정치를 그만두는 결단력도 대단하세요
할게없어 정치하는사람도 수두룩한데
유시민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간에는 꼭 돌아오세요
진정성이 있고 본질적인 이유가 있는
결단이네요 ~ 진짜 유시민 답네요 ~~
본질적인 건 생각조차도 없이
그저 소유 지향적 야망에만
몰입하고 사는 게 ~ 대부분의 인생이다 ~
고문?
존재 저체가 존경입니다. 감사합니다 😊
유작가님 국민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내려놓고 나와달라 하면 국민이 너무 이기적인 건가요??? 근데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타인을 행복하게 할때 궁극적으로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존재아닌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두개가 있는 데 하나는 말을 하다가 끊는 거고,
민간인 고문치사 사건 알고싶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그 사건이 지금 재조명 되길 바래봅니다.
20대때 눈빛보면 사람 몇은 잡았을듯함....
4명 잡음
멋진 사람
알쓸신잡 뉴시즌 기다리고 있습니다!!!
돌아와주세요
너무 와 닿는 말이다
고통 속에 살면 얼굴에 나타난다
다들 웃는모습이 제일 이뻐요 사람은 웃을때 가장 이쁜것 같아요^^
뒤에 그냥 손님들이 엿듣고 끄덕이는줄 알았는데 스텝분들이었네 ㅋㅋㅋㅋ
대한민국 최고의 교양프로
정계 은퇴...현명하시네
유시민 대학시절 민간인 납치및 고문 폭행으로 실형살은 사람인데 ㅋ 머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저따구 소리를 하나 인면수심 가증스러움.
유시민의 정치 인생은 너무 험란했다.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같이 해주세요. 정치 하시라 못하겠어요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사과는 하셨나?
맥주한잔하며 시청하기 좋은 프로~👍
1:47 와 종이 넘기는 제스쳐 하면서 손에 침 바르는거 먼데 ㅋㅋㅋㅋㅋㅋ 책 넘기는 습관 때문이 그런가?ㅋㅋㅋㅋㅋㅋㅋㅋ
자신을 돌이켜본다는게 쉬운거 같으면서도 참 어렵죠..
민간인 납치고문 하던 인간이 정치라니 사회 있어서도 안될인간이다
틀리들도 지들이 헛소리 하는거 알겠지? 파렴치하다
납치, 감금,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료들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폭행자는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회장 조현수,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이었던 백태웅[2], 이정우[3], 윤호중[4] 등 여러 명이다.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 이었던 유시민은 직접 물리적 폭행을 한 혐의가 없고 폭행을 지시하지 않았으나 고문실 안에서 폭행을 방관하였다는 죄목으로 당시 함께 처벌받았다. 다만 당시 사건을 현장에서 지휘·담당했던 김영복에 따르면 유시민은 폭행 사건 뒤 사태를 알았다고 한다. 그는 유시민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지만, 당시 서울시경 고위 간부의 지시에 따라 신병 확보가 쉬운 유시민에게 혐의를 씌웠다고 주장한다.
그니까요 자국민 아니 길 가는 사람 조차 보호 못하고 오히려 죽이는데 뭔 정치를 한다고 ㅋㅋ
2:20 나영석 피디인가요?
네
정의를 위해 치열하게 살던 유시민씨의 그 얼굴은 저에겐 가로등과 같은 빛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