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최명길과 김상헌, 주화파와 척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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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окт 2024
  •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그 전에 1627년에는 후금의 침공을 겪고 오랑캐로 깔보던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는 치욕을 당했다. 정묘호란이다.
    그런데 불과 9년 만에 다시 대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에게 침략을 받은 것이다.
    전쟁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인조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훗날의 효종) 등을 강화도로 보내고 남한산성으로 대피하였다.
    그러나 강화도가 무너지고 세자와 왕자 그리고 수많은 대신들이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남한산성안에 1만 3천의 적은 병력과 두달도 버틸수 없는 식량과, 구원하러 오던 지방의 군사들이 대부분 패퇴한 상황에서 항전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에 수많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이조판서 최명길은 청나라와 화친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을 바탕으로 명분을 앞세운 대부분의 신하들은 화친을 반대하였다.
    그 반대의 대표적인 사람이 예조판서 김상헌이었다.
    임진왜란때 구원군을 파견했던 명나라의 도움을 기억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신하들은 명나라와의 국교를 끊고 청나라의 신하가 되는 항복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고립된 적은 병력을 거느리고 식량마져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청나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국 인조는 항복을 결심하고 최명길에게 항복 문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김상헌은 최명길의 항복 문서를 보고 통곡하며 그 문서를 찢었다.
    그러자 최명길은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찢어진 문서를 다시 모았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로 나아가서 청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항복한다.
    이때 홍타이지는 인조의 머리를 조아릴 때 땅에 찧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말했고 언땅에 이마를 박은 인조의 머리에서 흐른 피는 가슴까지 적셨다.
    홍타이지는 명나라를 공격하는데 조선이 후방을 공격하는 등의 장애가 되지 않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세자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포함한 다수의 신하와 50만명 이상의 조선인을 청나라의 수도였던 심양으로 끌고 갔다. 조선의 저항 의지를 꺽고자 한 것이다.
    한편 최명길은 1642년 명나라와의 비밀교섭이 있었음이 드러나자 “임금이나 다른 신하들은 몰랐으며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여 임경업에게 지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며 모든 죄를 자신이 덮어쓰고 사형수가 갇히는 청나라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미 감옥에 갇혀있던 김상헌을 만났다.
    바로 옆방에 수감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오해를 풀고 화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김상헌은 “이제야 서로의 우정을 되찾으니 문득 백년 의심이 풀리는 구나” 하는 시를 남겼고
    최명길은 “그대 마음 굳은 바위 같아 끝까지 바뀌지 않거니와, 나의 도는 둥근 고리 같아 믿는 바에 따르네” (君心如石終難轉, 吾道如環信所隨).라는 화해의 시를 남겼다.
    이후 이들은 명나라가 망한 후 1년만인 1645년 2월 풀려나 조선으로 돌아가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이미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화친을 하여 국가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하는 주화파의 주장이나 임진왜란때 도움을 주었던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다는 명분이 있는 척화파의 주장은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항복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현실적이고 유연한 최명길 같은 신하도 필요하고 항복 문서를 찢는 김상헌 같은 고지식한 신하도 필요하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이 당선되어 병자호란 같은 위기를 겪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병자호란#일화#교훈#최명길#김상헌#주화파#척화파#인간관계#처세#이야기#상식#역사

Комментарии • 7

  • @아랑-q6f
    @아랑-q6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자주와야겠습니다ㆍ

    • @tv-4950
      @tv-4950  7 месяцев назад

      감사합니다.

  • @영희할아버지
    @영희할아버지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의 치욕의
    역사 "병자호란"의
    뢰명길과 김상헌의
    일화 잘 듣고갑니다~
    함께하며
    응원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 @tv-4950
      @tv-4950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치욕을 극복하는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 @gn.l3762
    @gn.l3762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요즘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보며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다시 생각해보네요.ㅡ 이괄을 북방으로 보낸것 까지는 그렇다 해도, 그이후에도 그아들을 반역자로 몰아 결국 이괄군이 반란군이 되어 북방의 정예병들이 붕괴된게 가장 아쉽네요.ㅡ

    • @tv-4950
      @tv-4950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좋은 의견입니다.
      논공행상은 적절하여야 문제가 없습니다.
      행주산성에서 보여준 김류의 처신을보면 이괄이 억울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재가 대우받는 사회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