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도 마찬가지 일본에 일찍 항복하거나 일본이 임란전에 명령한데로 토요토미 밑으로 입조했었으면 백성들이 도륙안당했을텐데. 그러고 보면 이완용은 인조와 선조를 반성하는 여기 한국인들의 선구자지. 이완용은 그럼 일본과 전쟁이라도 해서 무고한 백성을 죽일수 없지 않느냐라고 했음. 조종을 지키는 대신 차라리 백성을 살리는게 낫다고. 여기 댓글들은 인조를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난하지만 결국 댓글러들이 제시하는건 처음부터 일찍 청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어 속국이 되었으면 백성들이 다치지 않았을거 아니냐. 그 얘기임. 반만년 피지배 속국민족의 피는 못속이는거지. 인조가 할 수 있었던건 결국 싸우기 전에 항복하냐 싸우고 나서 항복하냐 일뿐. 인조 선조를 무능한 왕으로 묘사하는건 이승만과 박근혜를 비하하기 위해 그쪽 진영에서 조작해낸 이미지 덧씌우기일뿐. 세종이었도 일본을 이길수없었고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며 함께 한양을 사수한다고 버텼다간 참수당해서 조선은 300년 더 일찍 일본 식민 지배하에 들어갔을 뿐임. 당시 일본은 홍타이지나 청처럼 관대하지 않았거든. 세종이 운이 좋았던건 자기 재임시절에 임진왜란이 안일어났다는것뿐.
@@독기-e9p 맞는 말 아닌가요? 여기 댓글로 인조를 비난하는게 청국과 맞서 싸우다가 백성들이 죽고 인질로 끌려가서 고생했다는거 아닌가? 리더의 판단, 즉 인조의 판단이 잘못됐기에 백성이 싸우다 죽었다는거고 다른 선택지는 청조가 처음에 협박할때 일찍 자기분수 깨닫고 명의 속국대신 청의 속국이 되었으면 전쟁때문에 조선백성이 다치는 일이 없었다는거잖아요? 뭘 어쩌란건지? 아니면 몽골이나 당나라한테 당했을 때처럼 일본으로 달려가서 원군요청이라도 했던게 나았을까? 결국 여기서 인조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고 역사를 반성해서 교훈을 살린게 이완용이었잖아요? 그럼 조선 백성이 일본과 싸우다 수백만명이 도륙당해도 괜찮은거임? 철저하게 실리를 챙기고 백성을 지키자는 실리주의 노선을 따른게 이완용이잖아? 청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바뀐것뿐. 명의 속국에서 청의 속국으로 바꾸자라는 실리주의를 따른건데? 그럼 왜 인조를 비판하는데?
@@g4df74g1h 자기 살겠다고 같은 민족 고문하고 잡아서 죽이고 지들 배만 불렸던게 친일파 뿌리고 무슨 대의가 있어서 남을위하고 나라를 위해 친일한것처럼 들리네요.....그리고 인조를 그럼 아이구 잘했어요 하고 칭송할까요? 인조가 왕되고 나서 같이 인조반정했던 부하였던 이괄이 북쪽 군사 다데리고 와서 난이 실패해서 북쪽 북방 군사력도 약해지고 일부는 여진족에 투항해서 국내 지리 다 알려주고, 군사력도 약한 상황에서 능력도 없는 주제에 국방력도 키우지 못하고 무조건 강경 외교로 무능해서 자기 자존심 때문에 백성을 전쟁에 휩쓸리게 했으니 비판 할만 하죠? 인조 반정이 실패했거나 실리 외교를 했었으면 이렇게 까지 심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거죠....왜 지금 정치하고 엮어서 말도 안되는 비교로 정치 프레임을 짜는데? 일본은 어차피 들어올거였다면 여진은 안들어올수도 있는걸 들어오게 한거잖아요. 어쨌든 서양 제국주의와 문물로 무장한 근대 일본이 들어올때랑 여진족이 들어올때가 상황이 일단 같지 않은데 그것부터 따져봐야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취할수 있었던 판단중에 가능성을 두고 판단해야지.. 초딩 처럼 두 경우가 같은것 처럼 놓고 논리를 펴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어쨌든 친일파 잡것들은 모두 일본으로 가서 살던가 하지 왜 남았데..물론 그런 잡것들은 지금은 없겠지만 있으면 모두 일본으로 보내는 법좀 만들었으면...
황현필 선생님의 병자호란 시리즈 특강을 아주 흥미롭게 유익하게 보았습니다. 삼전도 비에 적힌 내용은 치욕스럽지만 조선의 역사의 많은 모습을 압축해서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삼전도 비는 우리 학생들이 반드시 찾아 봐야 할 역사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처럼 말이죠. 황선생님께 하나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역사를 대하면서 이전부터 가졌던 의문점입니다. 왜 우리가 굴욕을 당한 전쟁을 조일전쟁이나 조청전쟁이라 칭하지 않고, 임진왜란이니 병자호란이니 이렇게 의미가 축소되고 해석이 곡해된 '란'이란 용어를 붙여야 하나요. 조선시대는 자신들의 치욕을 최대한 덮고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치더라도, 지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하나, 인조반정이란 역사의 용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반정'이란 것은 바르게 돌린다는 의미인데 쿠데타의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 획득을 정당화하는 용어라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인조반란이라 지칭해야 되지 않을런지요. 학생들에게 진실에 가까운, 그리고 승자의 합리화가 아닌 균형잡힌 역사 의식을 주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용어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단지 시험 점수를 위해 무비판적으로 달달 외우는 역사적인 용어들은 올바른 역사 의식을 위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기다렸던 보람이 있어요 재밌었어요 선생님 강의는 주말에 날 잡아서 봐야 차근차근 이해가 되더라구요 평일 저녁에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왜 그런지 집중이 안됐어요 다음 강의가 무지무지 기대 됩니다 제가 그런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자부심을 갖고 만끽하자 하는거요... 단 터무니 없는 자뻑이 아니라 그럴만한 부분에서의 자긍심...!!
인조가 할 말이 없는게, 객관적으로 청태종이 조선을 정말 봐 줄 만큼 봐 줬던 기록이 정말 수 도 없이 많습니다.. 기회는 수 없이 많았는데, 그 걸 걷어찬 건 인조죠... 광해군이 계속 왕이었어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을거란 주장은 청태종의 조선에대한 이런 흐름을 무시한 주장들이죠..
그렇지 않다. 국가의 치욕이나 멸망은 그 국민과 문명의 수준에 기인한다. 지도자 때문에 멸망할 정도며는 그 나라는 지도자가 누구이건간에 국가기능이 떨어지고 매우 약한 나라인걸 뜻한다. 사람의 능력이나 성향은 일정하지 않아서 그 불완전함과 비일관성을 보충하는게 국가의 시스템과 능력이다. 외국에도 한심한 지도자는 많았다. 하지만 지도자와 누구냐인가와 상관없이 강대국은 항상 강대국이었고 지도자가 누구인가와 상관없이 약소국은 항상 약소국이었다. 일시적 부흥과 쇠락으로 파도쳐도 강하고 풍요로운 국가공동체는 그런 인간적인 불완전요소로 부터 국가의 안전성과 강함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다. 조선이 반만년 속국인것은 당신처럼 누군가의 탓만하며 전범만들기를 통해 정작 자신들의 열등성을 숨기고 안보려는 그 정신적 미성숙에 있다. 세종이 임진왜란 때 있었어도 조선은 초토화됐고 세종이 고종이었어도 조선은 식민지가 됐다. 지도자 영도자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영웅주의적 사고가 만연한게 한국이 피지배민족 속국으로서 살아온 노예의 민족성에 대한 증거다. 영원토록 지도자 메시아만을 기다리고 지도자, 매국노탓만하는 연약함. 북한처럼 영도자만을 바라보는 양의 무리들
@@g4df74g1h 의견은 다를 수 있고 논쟁은 항상 서로를 발전 시키는 즐거운 일이지만 상대를 ' 열등감에 젖은 정신적 미성숙자'라고 비하하는건 오히려 스스로가 대화의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임을 말해 주시는군요. 먼저 강대국은 항상 강대국이라고 하셨는데.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페르시아 제국과 무굴제국, 몽골제국은 어디있나요. 그 제국이 무너질 당시 권력자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했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던 미국이 세계제일의 강대국이 된 건 어떻게 설명하죠? 공동체의식이 강대국이 되는 금과옥조로 말씀하시는데 그럼 세계제일의 공동체의식을 가진 국가인 IS(이슬람공동체국가)의 몰락은 어떻게 설명하실겁니까. 현대의 민주주의가 꽃 피기 전까진 국가의 명운은 대부분 왕족, 귀족들에 의해 결정 됐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있었어도 임진왜란때 똑같았을거라구요? 세종대왕때 조선이 일본을 탐색하기 위해 통신사를 얼마나 자주 보냈는지 알고나 하는 말입니까? 미리 알고 대한해협에 군선들을 배치했으면 선조때 처럼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상륙할 수 없었습니다. 또 고종과 다르지 않다구요? 세종때 얼마나 많은 해외문물을 받아들이고 인재등용에 열을 올렸는지 모르시나요? 관노였던 장영실을 능력만 보고 관직을 제수하였습니다. 애초에 신미, 병인양요 없이 개화했겠죠. 그래서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 했다면 식민지화의 시작인 강화도늑약 자체가 없었을겁니다. 거기다 우리나라가 반만년 속국이라니.. 일제시대 역사관을 아직도 이렇게 따르는 분이 계시다니. 참.. 다시 말씀 드리지만 토론을 하실거면 상대방에 대한 비하나 인격모독성 발언은 삼가해주세요.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아무도 당신을 제대로 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realjio1 무굴? 페르시아? 는 여전히 강대국이야. 영토와 인구가 여전히 그 유산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 조차 망한거는 지도자등의 짧은 시기의 통치자가 아니라 그 나라전체가 이미 낙후돼있었고 다른 떠오르는 강대국들에 비해 생산성이나 문명적 지식적 수준이 전반적으로 밀리기 시작해서야. 뭐 군함? ㅋㅋ 현대의 감각으로 사후 날조하면 웃기지. 통신사는 세종이 보낸게 아니라 일본이 보내라고 요청한거 였다. 신숙주가 기록해놨듯이 이미 세종때부터 일본과의 국력차는 명확했다. 신숙주는 일본이 중국보다 더 발전했었다고 기록했어. 사실은 고대부터 줄곧 그랬지만 한국에 다행힌건 고대에는 통신사가 없었었다는거고. 세종이 뭐라 그랬냐면 중국 예전부터 부녀자들도 글을 읽고 쓸줄알아 사내하는 일에 말참견을 하여 정치가 혼란했다. 다행히 조선은 부녀자는 글을 몰라 평화롭다. 이게 조선이 아름다운 풍습을 지녔다는 증거라고 말할정도로 아주 보수적인 인물이었고. 중국황제에 대한 예절 서열관계는 깐깐했다. 백성이 색있는 옷을 입는다고 사치가 심하다고 할정도였고. 그러니 문물이 뒤쳐졌지. 동시대의 일본중국이 서민부터 알록달록 자수와 나염옷을 입는 풍요와 사치른 즐기고 있을때 염색하는걸 감당할 돈이 조선에는 없엏단거고. 그리고 장영실이니 뭐니 그거 다 현대감각으로 치장한 드라마화고 당시에는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서구나 일본에서 기계식 시계를 만들때 물시계 해시계 만들고 조선의 과학수준 최전성기 이딴 소리하고 있었으니. 군함? 무슨 대영제국이나 스페인함대인줄 아나? 조선의 당시 항해술은 연안의 풍경보고 노젓고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었다. 통신사가 대마도 일본으로 가는것도 다 일본이 해준거였다. 이순신도 영웅화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기습해서 불사르고 도망치는 해적 마적의 전술이었지. 함포 함대 이딴 판타지 국뽕사가 아니었다
@@realjio1 그 예로 아무리 이순신을 칭찬해도 임진 정유재란까지 일본 나고야 이끼 대마도 동래포의 보급루트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고립돼지 않고 계속 주둔할 수 있었던거고. 단지 숨었다 기습했다 도망가는 해적전술에 서남도 쪽으로 못같던거고 이순신도 기습외에는 경상도는커녕 제해권도 차지할 수 없었다. 조선의 통신사든 쇄환사든 매번 일본은 바다넘어라서 가기 힘들다는게 변명이었고, 그때마다 바다로 가는건 일본에 다 맡기는 식이었다. 얼마나 그 기술차이가 심했나면 삼국사기에 신라왕이 바다건너 일본을 치자고 했다가 신하들이 신라는 바다에 익숙치 않다고 왜군들이 더 능숙하다고 해서 바다를 넘을 생각조차 못했다고 나온다. 신라와 왜의 싸움은 그래서 줄곧 한반도에 갇히게 된다. 판옥선 소나무? 소나무가 센나무도 아니고 그거 박치기 몇번하면 가라 앉는다 절대 박치기용 아닌데 현대에 날조한거고. 일본에도 소나무배는 많았지만 병력크기 때문에 배가 많이 필요해서 삼나무를 많이 쓴것뿐이야. 제해권은 세종이전 아니 고려 삼국시대부터 일본이 지배했다. 부산에 더 가까운 대마도가 한국이 아니라 고대부터 일본에 귀속 됐던 게 그 증거다
@@g4df74g1h 신라가 일본이 무서워 한반도에 갇혀 살았다구요? 계묘년 신라 진평왕 5년, 고구려 평원왕 25년, 백제 위덕왕 30년(진(陳) 후주(後主) 지덕(至德) 원년, 583) 2월 신라가 왜(倭)의 서변(西邊)을 토벌하였다. 왜사에서 보충. 《해동기(海東記)》에는 “왜황(倭皇) 민달(敏達) 12년 계묘(癸卯)에 신라가 서변을 토벌하였다.” - (진평왕 5년, 서력으로 583년임) 왜사(倭史) 《연대기(年代記)》에는 “응신천황(應神天皇)이 신라의 유례왕(儒禮王) 때를 당하여, 신라 군사가 명석포(明石浦)에 와서 흰 말을 죽여 맹서를 받아 간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나라 적간관(赤間關) 동쪽에 백마총(白馬塚)이 있다.” 하고, 또 “신라가 토벌하여 온 일이 두어 곳이[번] 있었다.” 사실을 조금씩 섞어가며 뇌피셜로 마무리하시네요. 생각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리겠지만 여기서 강의 듣고 댓글 쓰는 분들은 역사적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쓰신 글을 보니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1도 없어 보이시니 그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존댓말 쓰세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남이 평가하는 것이지 스스로가 평가하는게 아닙니다. 지식 이전에 예의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황선생님. 굴욕은 되새길수록 패배의식을 가중시키고 승전가는 되새길수록 전의를 불태우게 하는 법입니다. 우리역사는 이긴 역사가 훨씬 많고 전쟁에서 진 역사는 사실 몇번 안됩니다. 수백번의 침략을 받아왔다는 관점도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는 제국주의 관점으로 연결되죠. 마크 피터슨 교수에 의하면 한국은 단 두번의 침략이 있었고 국경의 충돌까지 침략으로 보면 안된다는 거죠. 그 정도 충돌은 어느나라나 있는 거죠.
그런 과거를 두번 다시 되돌리지않는것도 역사를 잘 받아들였다는 증거겠죠 그런데 과연 그 후로 임진왜란이며 일제시대며 그리고 친일척결못한 지금의 사태를 보면 역사가 반복되지않는것일까요? 문대통령께서 국격을 상승시키는데도 뒤에서 비웃고 헐뜯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무릎을 꿇는다고 굴욕이 아닙니다 쥐박이 같은게 닭년같은게 나라 대표랍시고 미국대통령 카트나 끌고 기자 질문 까먹어서 쩔쩔매는걸 한심하게 쳐다볼때 그런게 현대판 굴욕이란겁니다
보통의 경우 패전을 하고 항복을 한 군주는 선위하고 뒷방으로 들어가는 게 정상일텐데 그렇게 쪽팔리게 무릎꿇고 마빡 찢어져가며 머리 조아려 놓고도 꾸역꾸역 죽을 때까지 왕위를 이어가는 것부터가 인조의 성향을 증명하는 거겠죠. 조선사를 통털어 딱 두명만 들어낼 수 있다면 좋을 군주가 선조와 인조가 아닐지...
나이를 먹어서 30대가 되어 그런가 인조가 잘 국가운영을 못했지만 너무 욕을 못하겠다 욕을 하면 마음은 편하겠죠. 개인적으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집도 겨우 사고 살고 있는데 저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을 상상해 봤을 때, 내가 인조였을 때 나는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행동 할 수 있었을까 상상하면 과연? 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긴합니다. 인간이란게 위협이 닥치면 마음이 약해지니 아예 미리 준비해서 위협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좋은 마음가짐 일 것 같습니다. 학생 때로 친다면 미리미리 공부해서 애초에 시험에 불합격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것처럼(저런 상황이라면 시험에 불합격하면 가족과 모두가 사형당하는것을 생각해보면 될 듯 합니다)
황선생님 ᆢ 한반도가 외세에 수많은 침략을 당하고 남북이 분열되어 국토의 허리마저 잘린 현재에 이르렀는데요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도 저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가지는 핸디캡이 현재의 한국을 만든 요인중 하나라고 보는데요 지정학적인 위치에 따라 강대국이되느냐 약소국이되느냐 또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와 같은 또다른 시각에서의 강의도 ᆢ 언제한번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대주의.. 이것은 우리의 근대역사 와도 매우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전과.. 고려말.. 조선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이 사대주의가 갖는 양면성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것은 어떤 시대의 개혁을 거부했고 그들이 만든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 합니다. 삼봉..포은.. 그들의 스승인 목은선생.. 이들이 훗날 이룩한 성리학의 세상은 반드시 세상엔 괴리가 있어야 하고 엄격한 구분이 있어야 했으며.. 왕 이라도 그것을 넘을수 없는.. 틀을 만들어 왔죠.. 바로..중화라는 것입니다. 허나 중화라는 것은 허울일뿐 정작 그들이 꿈꾸는 것은 신권정치 였습니다. 화초에 물을주듯..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죠. 왜냐..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살려두고..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그들.. 소위 카르텔 이라 부르는 세력이 되는 겁니다.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태종은 피로써 저항했고.. 세종은 지혜로.. 왕권의 근본을 찾으려 했던 겁니다. 노비를 해방 시키면 조세가 불어나 국력이 커지고 백성의 힘이 왕권을 지탱 하지만.. 그것을 사대부가 틀어쥐니 국가의 힘을 특정세력이 움켜쥐고.. 또한 백성은 항상 고난하고 그.. 자립심이 가히 희망이 없는 겁니다. 오는날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와 똑 같습니다. 스스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 기대어 그들의 주머니만 바라보면 되겠습니까..?
황현필 선생님 강의 잘 보고 있는데요. 영상 13:25 에 나오는 옥새 사진이 잘못되었습니다. 고종의 옥새라고 사진 첨부했는데요. 사진상의 어보는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 입니다. 인조 어보 사진이 필요하시다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10년에 출판한 "조선왕실의 어보" 1권 166p 인조 금보 사진으로 교체 바랍니다. 어보 사진 필요해서 인터넷에서 찾아 영상에 넣은건 이해하지만.... 정확한 사진으로 다른 시청자분들에게 정보 제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수정해주시길 바래봅니다. ^^
@프랑수수수 광해군의 중립외교로 후금과 조선의 대립은 없었죠 그런데 인조반정 후 친명배금 정책을 유지하며 적대관계를 만들었고 후금 침략 후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바로 도망갔죠 남한산성에서 40일간 버티다 투항한거구요 제가 정확히는 기억은 안납니다만 모두 궁을 버리고 도망간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비난받을만 한거 아닌지요?
@프랑수수수 그래서병자호란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친게 사실이 아닌가요? 국난에 대처가 전혀 달랐음은분명하죠. 정묘호란은 분명 친명배금 문제임은 분명하구요. 님의 말씀과 달리 정묘호란인지, 병자호란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매개체가 된게 인조가 관찰사에게 보낸 서찰의 내용이 문제가 된걸로 알고 있구요. 이게 후금에게 전달이 되었구요. 분명 후금을 자극한건 사실이죠 자꾸 꼬리를 물며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전 님처럼 역사에 깊이가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한건 광해군이 재평가 받고 있는건 당시 궁궐의 증축 및 건설 문제도 사실상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중립외교를 분명히 잘해냈구요(누루하치가 만족했던 안했던 결과론적으로 문제가없었죠) 더욱이 호패법 및 서적편찬 등 많은 업적을 남긴것과 국난 극복의 의지로 민중을이끌었다는거죠 이와 반대로 인조가 뭘했나요? 남한산성으로 도망간것밖에 더있나요? 인조에 대한재평가가 되고 있다면 황현필 선생님께 문의하셔서 다루어 달라고 하세요. 전 역사공부는 그냥 황현필 선생님 유튜브로 만족합니다
@@shanestory3879 궁궐공사 했다고 광해군 까고 있네....그럼 궁궐이 없어 젔는데 누구라도 다시 세울려고 했겠지..없으면 없는데로 살자고 했을 왕이 몇명이나 있었겠냐??? 역시 왕중에 사람을 무참히 죽이고도 비난 받지 않는 왕도 수두룩한데 고작 궁궐좀 지었다고 왕을까냐????
@@yhansookim7850 진짜 말을 잘 듣는 것은 동남아인종 한족임. 얼굴 생긴 것도 다름. 수천년 알타이(동북아인종) 민족이 정보하고 도륙해도 반감이 있는게 아니고 자신들의 조상으로 모시는 얼빠진 민족임. 칭기즈칸이 자기 조상이라 하는 골때리는 민족, 동남아인종. 한족.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같은 인종인데. 인종이 달라도 조상. ㅋㅋㅋ 만주족과 한민족은 DNA가 같은 민족임. 원래 단군의 자손임.만주원류고에도 만주족은 스스로 고구려 신라와 같은 뿌리라 인식하고 있었음.
@@usplasticnetwork8148 아 감사합니다 경순왕은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봤던 그 신라 마지막왕이군요 ㅎㅎ 드라마에서는 마의태자 혼자 끝까지 싸우자 했는데 경순왕을 비롯한 나머지 대신들이 고려가 우리의 우방국이라고 나라를 통째로 바치는 걸로 나오는데 그냥 드라마일뿐이었네요 ㅎㅎ
*황현필의 [병자호란] 시리즈 몰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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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clips.net/p/PL0lEEgMCRI86Ry1PtZxOjSGECgb0hqazJ
인조의 굴욕은 백성들이 받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국가의 리더가 잘못된 판단을 했을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역사의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조도 마찬가지 일본에 일찍 항복하거나 일본이 임란전에 명령한데로 토요토미 밑으로 입조했었으면 백성들이 도륙안당했을텐데. 그러고 보면 이완용은 인조와 선조를 반성하는 여기 한국인들의 선구자지. 이완용은 그럼 일본과 전쟁이라도 해서 무고한 백성을 죽일수 없지 않느냐라고 했음. 조종을 지키는 대신 차라리 백성을 살리는게 낫다고. 여기 댓글들은 인조를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난하지만 결국 댓글러들이 제시하는건 처음부터 일찍 청나라를 상국으로 받들어 속국이 되었으면 백성들이 다치지 않았을거 아니냐. 그 얘기임. 반만년 피지배 속국민족의 피는 못속이는거지. 인조가 할 수 있었던건 결국 싸우기 전에 항복하냐 싸우고 나서 항복하냐 일뿐. 인조 선조를 무능한 왕으로 묘사하는건 이승만과 박근혜를 비하하기 위해 그쪽 진영에서 조작해낸 이미지 덧씌우기일뿐. 세종이었도 일본을 이길수없었고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며 함께 한양을 사수한다고 버텼다간 참수당해서 조선은 300년 더 일찍 일본 식민 지배하에 들어갔을 뿐임. 당시 일본은 홍타이지나 청처럼 관대하지 않았거든. 세종이 운이 좋았던건 자기 재임시절에 임진왜란이 안일어났다는것뿐.
@@g4df74g1h 적당히 하시죠.. 모 잘났다고 친일해서 나라 팔아 먹은 것들이..유럽 이였으면 모두 처형당했을 것을..그냥 차라리 일본 좋으면 제발 좀 건너가서 사세요..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안됨.
@@g4df74g1h 개그튼 생킈가 개소리를 길게도 적었군 ㅋ
@@독기-e9p 맞는 말 아닌가요? 여기 댓글로 인조를 비난하는게 청국과 맞서 싸우다가 백성들이 죽고 인질로 끌려가서 고생했다는거 아닌가? 리더의 판단, 즉 인조의 판단이 잘못됐기에 백성이 싸우다 죽었다는거고 다른 선택지는 청조가 처음에 협박할때 일찍 자기분수 깨닫고 명의 속국대신 청의 속국이 되었으면 전쟁때문에 조선백성이 다치는 일이 없었다는거잖아요? 뭘 어쩌란건지? 아니면 몽골이나 당나라한테 당했을 때처럼 일본으로 달려가서 원군요청이라도 했던게 나았을까? 결국 여기서 인조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고 역사를 반성해서 교훈을 살린게 이완용이었잖아요? 그럼 조선 백성이 일본과 싸우다 수백만명이 도륙당해도 괜찮은거임? 철저하게 실리를 챙기고 백성을 지키자는 실리주의 노선을 따른게 이완용이잖아? 청의 속국에서 일본의 속국으로 바뀐것뿐. 명의 속국에서 청의 속국으로 바꾸자라는 실리주의를 따른건데? 그럼 왜 인조를 비판하는데?
@@g4df74g1h 자기 살겠다고 같은 민족 고문하고 잡아서 죽이고 지들 배만 불렸던게 친일파 뿌리고 무슨 대의가 있어서 남을위하고 나라를 위해 친일한것처럼 들리네요.....그리고 인조를 그럼 아이구 잘했어요 하고 칭송할까요? 인조가 왕되고 나서 같이 인조반정했던 부하였던 이괄이 북쪽 군사 다데리고 와서 난이 실패해서 북쪽 북방 군사력도 약해지고 일부는 여진족에 투항해서 국내 지리 다 알려주고, 군사력도 약한 상황에서 능력도 없는 주제에 국방력도 키우지 못하고 무조건 강경 외교로 무능해서 자기 자존심 때문에 백성을 전쟁에 휩쓸리게 했으니 비판 할만 하죠? 인조 반정이 실패했거나 실리 외교를 했었으면 이렇게 까지 심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는거죠....왜 지금 정치하고 엮어서 말도 안되는 비교로 정치 프레임을 짜는데? 일본은 어차피 들어올거였다면 여진은 안들어올수도 있는걸 들어오게 한거잖아요. 어쨌든 서양 제국주의와 문물로 무장한 근대 일본이 들어올때랑 여진족이 들어올때가 상황이 일단 같지 않은데 그것부터 따져봐야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취할수 있었던 판단중에 가능성을 두고 판단해야지.. 초딩 처럼 두 경우가 같은것 처럼 놓고 논리를 펴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어쨌든 친일파 잡것들은 모두 일본으로 가서 살던가 하지 왜 남았데..물론 그런 잡것들은 지금은 없겠지만 있으면 모두 일본으로 보내는 법좀 만들었으면...
주말에 황현필 선생님의 역사 강의 듣는 시간이 최고 좋습니다. 병자호란의 생생한 현장이 느껴지네요^^
지금 들어도 이리아릴진데, 그 당시 엔 어떠했을까? 찬란한 시대도 있었고 굴욕적인 시대도 살아내며 오늘에 대한민국을 볼 때 나라의 힘이 매우 중요함을 배우고 갑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 길 바라며 고맙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않겠습니다.
좋은 강연 영상 감사합니다.
황현필 선생님의 병자호란 시리즈 특강을 아주 흥미롭게 유익하게 보았습니다. 삼전도 비에 적힌 내용은 치욕스럽지만 조선의 역사의
많은 모습을 압축해서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삼전도 비는 우리 학생들이 반드시 찾아 봐야 할 역사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처럼 말이죠.
황선생님께 하나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역사를 대하면서 이전부터 가졌던 의문점입니다.
왜 우리가 굴욕을 당한 전쟁을 조일전쟁이나 조청전쟁이라 칭하지 않고, 임진왜란이니 병자호란이니 이렇게 의미가 축소되고 해석이 곡해된 '란'이란
용어를 붙여야 하나요. 조선시대는 자신들의 치욕을 최대한 덮고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치더라도, 지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하나, 인조반정이란 역사의 용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반정'이란 것은 바르게 돌린다는 의미인데 쿠데타의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 획득을
정당화하는 용어라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이 사건을 인조반란이라 지칭해야 되지 않을런지요. 학생들에게 진실에 가까운, 그리고
승자의 합리화가 아닌 균형잡힌 역사 의식을 주기 위해서라도 역사의 용어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단지 시험 점수를 위해 무비판적으로 달달 외우는 역사적인 용어들은 올바른 역사 의식을 위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런 댓글이 있어야
보는지 안보는지는 알수 앖지만
박수를 칩니다
믿어도 되는 역사 강의.. 민족의 혼이 들어있는 강의. 옛날 노짱의 연설을 들을 때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강의.
황현필 선생님 팬으로써 한마디 시원시원한 강의에 찬사를 보냅니다 원균에 칠천량 해전을 보면서 바다를 모르는 조정과 공성 전투의 장수의 무리한 전투 독려가 참사를 불러 온 것이 아닐까하는 안타까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무꾼
오늘도 강의 잘 들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지금 남한산성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인데….,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오늘도 역사공부 즐겁게 하고 갑니다~~
우리나라 역사지만 참으로 멍청하고 굴욕적이였네요. 지금이나 저때나 어리석고 부패한 권력쟁이들 때문에 피해는 국민들에게...
기다렸습니다 오늘도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기다렸던 보람이 있어요
재밌었어요
선생님 강의는 주말에
날 잡아서 봐야
차근차근 이해가 되더라구요
평일 저녁에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왜 그런지 집중이
안됐어요
다음 강의가 무지무지
기대 됩니다 제가 그런거
엄청 좋아하거든요
자부심을 갖고 만끽하자
하는거요... 단 터무니 없는
자뻑이 아니라 그럴만한 부분에서의 자긍심...!!
이렇게 재밌어도 되냐고요~~설거지하며 듣는 혼자만의시간^^;; 쌤이 들려주시는 생생한 영화같은 역사이야기. 너무 행복했습니다
늘 감사해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지요. 삼전도의 굴욕, 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선생님 항상 응원하고
감사드립니다 ~^^
매주 한편한편이 정말 흥미진진 합니다 ^^
선생님의 박력 잇는 명강의! 굴욕적인 역사이지만, 이렇게 적나한 치욕의 순간들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끈질긴지! 힘이 팡팡 쏟ㅇ아짐을 느낍니다. 지금은 잠시 어두운 시대가 도래 했지만 선조들이 피흘려 지킨 이나라 다시 매국적 수구 기득권 세력 들로부터 지켜야죠
인조가 받은 굴욕은 자업자득이었죠.
그나저나 조선 중기 이야기 하는데 쌩뚱맞지만...
대금황제가 될 뻔했던 이징옥 장군이나, 더 쌩뚱맞지만 산동성에 자리잡았던 후고구려인 치청평로 제나라의 이야기도 황현필 선생님께 듣고 싶네요...
짝짝짝... 대체불가 역시 1타 황현필 샘입니다.. "사대" 강의 기대됩니다..
늘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오늘도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기다렸습니다.. ㅎㅎㅎ 좋은영상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
인조가 할 말이 없는게, 객관적으로 청태종이 조선을 정말 봐 줄 만큼 봐 줬던 기록이 정말 수 도 없이 많습니다.. 기회는 수 없이 많았는데, 그 걸 걷어찬 건 인조죠... 광해군이 계속 왕이었어도, 전쟁을 피할 수 없었을거란 주장은 청태종의 조선에대한 이런 흐름을 무시한 주장들이죠..
국가의 치욕이나 멸망은 90% 이상은 지도층의 무능과 내부분열 때문인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 국가의 치욕이나 멸망은 그 국민과 문명의 수준에 기인한다. 지도자 때문에 멸망할 정도며는 그 나라는 지도자가 누구이건간에 국가기능이 떨어지고 매우 약한 나라인걸 뜻한다. 사람의 능력이나 성향은 일정하지 않아서 그 불완전함과 비일관성을 보충하는게 국가의 시스템과 능력이다. 외국에도 한심한 지도자는 많았다. 하지만 지도자와 누구냐인가와 상관없이 강대국은 항상 강대국이었고 지도자가 누구인가와 상관없이 약소국은 항상 약소국이었다. 일시적 부흥과 쇠락으로 파도쳐도 강하고 풍요로운 국가공동체는 그런 인간적인 불완전요소로 부터 국가의 안전성과 강함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다. 조선이 반만년 속국인것은 당신처럼 누군가의 탓만하며 전범만들기를 통해 정작 자신들의 열등성을 숨기고 안보려는 그 정신적 미성숙에 있다. 세종이 임진왜란 때 있었어도 조선은 초토화됐고 세종이 고종이었어도 조선은 식민지가 됐다. 지도자 영도자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영웅주의적 사고가 만연한게 한국이 피지배민족 속국으로서 살아온 노예의 민족성에 대한 증거다. 영원토록 지도자 메시아만을 기다리고 지도자, 매국노탓만하는 연약함. 북한처럼 영도자만을 바라보는 양의 무리들
@@g4df74g1h 의견은 다를 수 있고 논쟁은 항상 서로를 발전 시키는 즐거운 일이지만 상대를 ' 열등감에 젖은 정신적 미성숙자'라고 비하하는건 오히려 스스로가 대화의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임을 말해 주시는군요.
먼저 강대국은 항상 강대국이라고 하셨는데. 과거 세계를 호령했던 페르시아 제국과 무굴제국, 몽골제국은 어디있나요. 그 제국이 무너질 당시 권력자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했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던 미국이 세계제일의 강대국이 된 건 어떻게 설명하죠? 공동체의식이 강대국이 되는 금과옥조로 말씀하시는데 그럼 세계제일의 공동체의식을 가진 국가인 IS(이슬람공동체국가)의 몰락은 어떻게 설명하실겁니까. 현대의 민주주의가 꽃 피기 전까진 국가의 명운은 대부분 왕족, 귀족들에 의해 결정 됐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있었어도 임진왜란때 똑같았을거라구요? 세종대왕때 조선이 일본을 탐색하기 위해 통신사를 얼마나 자주 보냈는지 알고나 하는 말입니까? 미리 알고 대한해협에 군선들을 배치했으면 선조때 처럼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상륙할 수 없었습니다.
또 고종과 다르지 않다구요? 세종때 얼마나 많은 해외문물을 받아들이고 인재등용에 열을 올렸는지 모르시나요? 관노였던 장영실을 능력만 보고 관직을 제수하였습니다. 애초에 신미, 병인양요 없이 개화했겠죠. 그래서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 했다면 식민지화의 시작인 강화도늑약 자체가 없었을겁니다.
거기다 우리나라가 반만년 속국이라니.. 일제시대 역사관을 아직도 이렇게 따르는 분이 계시다니. 참.. 다시 말씀 드리지만 토론을 하실거면 상대방에 대한 비하나 인격모독성 발언은 삼가해주세요.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아무도 당신을 제대로 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realjio1 무굴? 페르시아? 는 여전히 강대국이야. 영토와 인구가 여전히 그 유산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 조차 망한거는 지도자등의 짧은 시기의 통치자가 아니라 그 나라전체가 이미 낙후돼있었고 다른 떠오르는 강대국들에 비해 생산성이나 문명적 지식적 수준이 전반적으로 밀리기 시작해서야. 뭐 군함? ㅋㅋ 현대의 감각으로 사후 날조하면 웃기지. 통신사는 세종이 보낸게 아니라 일본이 보내라고 요청한거 였다. 신숙주가 기록해놨듯이 이미 세종때부터 일본과의 국력차는 명확했다. 신숙주는 일본이 중국보다 더 발전했었다고 기록했어. 사실은 고대부터 줄곧 그랬지만 한국에 다행힌건 고대에는 통신사가 없었었다는거고. 세종이 뭐라 그랬냐면 중국 예전부터 부녀자들도 글을 읽고 쓸줄알아 사내하는 일에 말참견을 하여 정치가 혼란했다. 다행히 조선은 부녀자는 글을 몰라 평화롭다. 이게 조선이 아름다운 풍습을 지녔다는 증거라고 말할정도로 아주 보수적인 인물이었고. 중국황제에 대한 예절 서열관계는 깐깐했다. 백성이 색있는 옷을 입는다고 사치가 심하다고 할정도였고. 그러니 문물이 뒤쳐졌지. 동시대의 일본중국이 서민부터 알록달록 자수와 나염옷을 입는 풍요와 사치른 즐기고 있을때 염색하는걸 감당할 돈이 조선에는 없엏단거고. 그리고 장영실이니 뭐니 그거 다 현대감각으로 치장한 드라마화고 당시에는 그런 느낌도 아니었다. 서구나 일본에서 기계식 시계를 만들때 물시계 해시계 만들고 조선의 과학수준 최전성기 이딴 소리하고 있었으니. 군함? 무슨 대영제국이나 스페인함대인줄 아나? 조선의 당시 항해술은 연안의 풍경보고 노젓고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었다. 통신사가 대마도 일본으로 가는것도 다 일본이 해준거였다. 이순신도 영웅화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기습해서 불사르고 도망치는 해적 마적의 전술이었지. 함포 함대 이딴 판타지 국뽕사가 아니었다
@@realjio1 그 예로 아무리 이순신을 칭찬해도 임진 정유재란까지 일본 나고야 이끼 대마도 동래포의 보급루트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에 고립돼지 않고 계속 주둔할 수 있었던거고. 단지 숨었다 기습했다 도망가는 해적전술에 서남도 쪽으로 못같던거고 이순신도 기습외에는 경상도는커녕 제해권도 차지할 수 없었다. 조선의 통신사든 쇄환사든 매번 일본은 바다넘어라서 가기 힘들다는게 변명이었고, 그때마다 바다로 가는건 일본에 다 맡기는 식이었다. 얼마나 그 기술차이가 심했나면 삼국사기에 신라왕이 바다건너 일본을 치자고 했다가 신하들이 신라는 바다에 익숙치 않다고 왜군들이 더 능숙하다고 해서 바다를 넘을 생각조차 못했다고 나온다. 신라와 왜의 싸움은 그래서 줄곧 한반도에 갇히게 된다. 판옥선 소나무? 소나무가 센나무도 아니고 그거 박치기 몇번하면 가라 앉는다 절대 박치기용 아닌데 현대에 날조한거고. 일본에도 소나무배는 많았지만 병력크기 때문에 배가 많이 필요해서 삼나무를 많이 쓴것뿐이야. 제해권은 세종이전 아니 고려 삼국시대부터 일본이 지배했다. 부산에 더 가까운 대마도가 한국이 아니라 고대부터 일본에 귀속 됐던 게 그 증거다
@@g4df74g1h 신라가 일본이 무서워 한반도에 갇혀 살았다구요?
계묘년 신라 진평왕 5년, 고구려 평원왕 25년, 백제 위덕왕 30년(진(陳) 후주(後主) 지덕(至德) 원년, 583) 2월 신라가 왜(倭)의 서변(西邊)을 토벌하였다. 왜사에서 보충. 《해동기(海東記)》에는 “왜황(倭皇) 민달(敏達) 12년 계묘(癸卯)에 신라가 서변을 토벌하였다.” - (진평왕 5년, 서력으로 583년임)
왜사(倭史) 《연대기(年代記)》에는 “응신천황(應神天皇)이 신라의 유례왕(儒禮王) 때를 당하여, 신라 군사가 명석포(明石浦)에 와서 흰 말을 죽여 맹서를 받아 간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나라 적간관(赤間關) 동쪽에 백마총(白馬塚)이 있다.” 하고, 또 “신라가 토벌하여 온 일이 두어 곳이[번] 있었다.”
사실을 조금씩 섞어가며 뇌피셜로 마무리하시네요. 생각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럴싸하게 들리겠지만 여기서 강의 듣고 댓글 쓰는 분들은 역사적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쓰신 글을 보니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1도 없어 보이시니 그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존댓말 쓰세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남이 평가하는 것이지 스스로가 평가하는게 아닙니다. 지식 이전에 예의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역시 역사는 항상 반복되나 봅니다.
내일 대통령 잘못 선출하면 병자호란과 같은 고난을 국민들이 겪을 수도 있다.
투표 제대로 합시다.
우리를 위해!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주말보내시고
장마 조심하세요^^#
쌤 ^^잘 듣구갑니다 알차고 즐건 토욜되세요🙆
존경하는 황선생님. 굴욕은 되새길수록 패배의식을 가중시키고 승전가는 되새길수록 전의를 불태우게 하는 법입니다.
우리역사는 이긴 역사가 훨씬 많고 전쟁에서 진 역사는 사실 몇번 안됩니다. 수백번의 침략을 받아왔다는 관점도 일제의 침략이 당연하다는 제국주의 관점으로 연결되죠. 마크 피터슨 교수에 의하면 한국은 단 두번의 침략이 있었고 국경의 충돌까지 침략으로 보면 안된다는 거죠. 그 정도 충돌은 어느나라나 있는 거죠.
반갑습니다^^
인조는 인자
치욕의 조선역사를 만들다
저때의 잘못으로 조선 여자들 50만명이 성노예로 끌려감
전 강토가 작살나고 수십만 민초들 죽어나갈땐 나몰라라 해놓고 기껏 지 처자식 몇 잡히니까 바로 두손두발 홀딱들고 살려달라고?
조선왕조가 그따위였습니다.
항상 잘보고 배우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굴욕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런 과거를 두번 다시 되돌리지않는것도 역사를 잘 받아들였다는 증거겠죠
그런데 과연 그 후로 임진왜란이며
일제시대며 그리고 친일척결못한 지금의 사태를 보면 역사가 반복되지않는것일까요?
문대통령께서 국격을 상승시키는데도 뒤에서 비웃고 헐뜯는 사람들이 천지인데?
무릎을 꿇는다고 굴욕이 아닙니다
쥐박이 같은게 닭년같은게 나라 대표랍시고
미국대통령 카트나 끌고 기자 질문 까먹어서 쩔쩔매는걸 한심하게 쳐다볼때
그런게 현대판 굴욕이란겁니다
인조는 지금도 후대에서도
나쁜 놈이죠
파주 인조묘에 가 보면 바로 후대가
인조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왕 무덤중에서 주변이 질퍽한 곳은 그곳 뿐이죠
사실상 망국까지 몰아갔으니 인조 대우는 그럴수밖에 없음. 같은 의미로 고종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함. 뭔가 비련의 군주로 기술되는건 개소리
@@chriskim2958 누가 고종을 비련의 군주라고 생각해요? ㅎㅎ 고종은 왕이 되어서는 안될 병신같은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shanestory3879 구한 말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세간의 인식이 너무 60년대에 머물러 있는 부분이 가슴아프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고종이 왜 이렇게 줄기차게 까이는지 이유좀 들을 수 있을까요?
@손정연 정치적 자립 이후로 왕권을 휘둘러본 연차가 10년도 안되는 사람이 뭘 그렇게 다 말아먹었다는건가요?
이미 조선이 세도정치로 인해 망가질대로 망가져서
백약이무효하다는 핑계를 댈수는 있겠지만,
명성황후의 개짓거리를 방치해서 나라를 말아먹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종은 욕먹을만함.
감사합니다 선생님!
언제나 늘 항상 최고!! 고맙습니다
홍타이지 정말 대인배네요 저러니 청을 만들었나봅니다...포용정책이 어마어마했네요
항상 응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넘버원 강의👍👍👍❤️
역시 재밌어 황쌤 역사강의 들으며 자부심을 느낌니다...
인조는 비전이 없어요. 단지 본인이 왕이 되고 싶어서 그게 전부인 인간이라고 봅니다
현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는것 같아 안타까워 요.
인조는 처음에 반정세력이 '왕이 되십시오'라고 할 때 심지어 겁을 먹고 거절했었습니다.
@@진종은 누구요? 여기 왕정인가?
치욕스런역사임이 분명하나 지도자와 외교를 어찌해야하는지 인조의역사를보고 반면교사삼아야합니다 선생님 늘 수고하세요
저는 조선인이 아니고 대한민국 시민이라 뭐가 치욕스러운지 모르겠네요. ^^
@@shinbae99 수준떨어져서 열받으니 재밑에글달지마세요
그러니 부국강병 해야하는데. 미국만바라보는자유당 개쉑이들. 전작권필요없어 라니
가장 치욕적인 굴욕은 일본에게 나라를 완전히 뺏긴때죠
8월29일
대한제국이라는 화려한 문구로 치장하여
굴욕적인 시대
너무 기다렸어요 선생님
임금 같지도 않은 임금!
인조에 비하면 광해군은 성군이다.
광해군 본인도 결국 씨앗을 심은 부분이 있긴 하나...인조보단 낫죠
적어도 광해군은 앞날을 보는 혜안이라도있었지..
태백광노 가입하고 처음 댓글 달아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구독하고 있어요^^
강의 잘보고있습니다.
황쌤 삼전도비 관련한 내용이 있지를 않네요.. 다음강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선조와 인조가 더 비판 받는 이유는 저런 굴욕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노론 일당 독재 체제, 신분제 사회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귄력의힘을 백성을위해 희생하는헌법1호라면
피바람친부자형제들피를당연하듯회오리피바람이..
이 단어를 황선생님 또박한발음으로
익혔네요^^
너무사랑존경스럽슴니다
72세할머니의 기쁨..
강의 너무 잘합니다..목소리도 좋고 또박또박
삼전도 비 보신 분?
십여년 전 송파 뒷길을 차로 지나 가는데 갑자기 옆에 비가 나타나네요.
땅에 묻쳐 있던걸 자리를 옮겨 세웠다는 글귀를 보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승만이 쪽팔린다고 땅에 묻었는데 그자리에 다시 세웠지
비가 없다고 있던사실이 없어지나?
황선생님은...
장군이십니다..
장군..
세상 나이는 제가 조금 많으나..
장군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인조와 당시 사대부라는 것들은 정말 무능력한 것들이었군요
멋진 강의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요.
오늘날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 아래서 국가 지도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면
또 한번의 삼전도를 겪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잘 들었습니다♡
드디어 이제 다음 이야기는 소현제자 이야기 인가요??
여기서 백번 읊는것 보다 남한산성에서 겨울에 하루밤만 자보면 얼마나 구슬픈지 알게됨
좋은강의 잘 들었습니다
그 시대는 아니지만
현재 경제적으로는 중국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엮여있는 대한민국
냉정한 국제정세를 판단하지 못하고 인조처럼 입만 살아있는 지도자를 만나면
제2의 병자호란은
지금도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수십만 대군도 동원하고 했는데 조선 군사력은 에휴...
그렇게 했더라면 나라가 없어졌겠지
보통의 경우 패전을 하고 항복을 한 군주는 선위하고 뒷방으로 들어가는 게 정상일텐데 그렇게 쪽팔리게 무릎꿇고 마빡 찢어져가며 머리 조아려 놓고도 꾸역꾸역 죽을 때까지 왕위를 이어가는 것부터가 인조의 성향을 증명하는 거겠죠. 조선사를 통털어 딱 두명만 들어낼 수 있다면 좋을 군주가 선조와 인조가 아닐지...
에효 ᆢㅠ
이래가지고 나라를 지키겠소
뭐니뭐니해도 힘이 있어야하고
지혜로와야 하는데ᆢ앞으로도
이런일 안일어난다는 보장이 없다
모두다 정신바짝차려야지 ᆞ안일하게
있다간 또 침략당하고 노략질당할까
걱정이네 ㅠ ᆞ국방력을 단단히 키워야
한다 더강하게~~ 그리고 지혜로와야
한다~
황현필님. 우리나라 역사 참고해서 장편 집필하셔서 책을 발행하시면 좋겠습니다.
인생 교과서로 만들어주시면 그게 독립운동가임.
이마빡 ~~~ ㅎㅎㅎ 굿임다.
감사합니다.
대충알던 내용을 오늘 확실히 알게되었네요... 인조 대단한 사람이네요.ㅋ 정말
영상 잘 봅니다!
나이를 먹어서 30대가 되어 그런가 인조가 잘 국가운영을 못했지만 너무 욕을 못하겠다
욕을 하면 마음은 편하겠죠. 개인적으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집도 겨우 사고 살고 있는데 저런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을 상상해 봤을 때, 내가 인조였을 때 나는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행동 할 수 있었을까 상상하면 과연? 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긴합니다.
인간이란게 위협이 닥치면 마음이 약해지니 아예 미리 준비해서 위협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좋은 마음가짐 일 것 같습니다. 학생 때로 친다면 미리미리 공부해서 애초에 시험에 불합격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것처럼(저런 상황이라면 시험에 불합격하면 가족과 모두가 사형당하는것을 생각해보면 될 듯 합니다)
인조와 이승만이 서로 공통점이 많은것 같습니다. 비교 강의가 있으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인조ㅡ천하무능자.
이승만 ㅡ청사에 빛날공적 대한민국의 국부.
이승만 박정희가 없었다면
한반도는 북한 정도가 되었을것.
청나라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대우해 준 셈이네요. 더불어 하늘에 맹세하는 의식도 하고, 넘버 투 대우도 해 주고..
꼬붕취급 하는게 잘 대우해주는 것임?
그냥 딱가리 취급 하는 것이지.
@@daxzcdsfsas2882 명나라 꼬붕 따까리나 청나라 꼬붕 따까리나..
일본에 비하면 양반이구만
주말이네요...한국사 올려주시니..ㅋ
황선생님 ᆢ 한반도가 외세에 수많은 침략을 당하고 남북이 분열되어 국토의 허리마저 잘린 현재에 이르렀는데요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도 저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가지는 핸디캡이 현재의 한국을 만든 요인중 하나라고 보는데요
지정학적인 위치에 따라 강대국이되느냐 약소국이되느냐 또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와 같은
또다른 시각에서의 강의도 ᆢ
언제한번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그래도 쌈은 해보고 항복한 거잖아요... 을사조약이니, 경술국치에 비하면야...
방송에 한번 나와주세요^^
선조,인조 . . 하. . 이 두놈은 왕이 되어서는 안되는 자 였다. 백성은 내팽겨치고 지 살자고 도망간 선조,그 나물에 그 밥 인조
황현필 선생 강의를 오늘에야 들었다.. 많은 배움이 있었다. 진작에 들었으면 좋아을 텐데 그래도 56세에 들어서 좋다
멍청하고 무능력한 인조 능양군...조선시대 최악의 임금
@@Davidk5364 고종은 배울 기회조차 부족햇으니
고종보다 인조가 더 최악이라 생각 할 법함
물론 고종 말년 보면 배웟다고 크게 달라질까 만은 ....
흥선이나 고종형제들의 능력치가 낮지는 않았던 점 생각하면 흠 ...
사대주의.. 이것은 우리의 근대역사 와도 매우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이전과.. 고려말.. 조선시대.. 그리고 지금까지.. 이 사대주의가 갖는 양면성은 정말 위대합니다. 그것은 어떤 시대의 개혁을 거부했고 그들이 만든 세상에
본격적으로 등장 합니다. 삼봉..포은.. 그들의 스승인 목은선생.. 이들이 훗날 이룩한 성리학의 세상은 반드시 세상엔 괴리가 있어야 하고 엄격한 구분이 있어야 했으며.. 왕 이라도 그것을 넘을수 없는.. 틀을 만들어 왔죠.. 바로..중화라는 것입니다. 허나 중화라는 것은 허울일뿐 정작 그들이 꿈꾸는 것은 신권정치 였습니다. 화초에 물을주듯..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죠. 왜냐..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살려두고..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그들.. 소위 카르텔 이라 부르는 세력이 되는 겁니다.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태종은 피로써 저항했고.. 세종은 지혜로.. 왕권의 근본을 찾으려 했던 겁니다. 노비를 해방 시키면 조세가 불어나 국력이 커지고 백성의 힘이 왕권을 지탱 하지만.. 그것을 사대부가 틀어쥐니 국가의 힘을 특정세력이 움켜쥐고.. 또한 백성은 항상 고난하고 그.. 자립심이 가히 희망이 없는 겁니다. 오는날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와 똑 같습니다. 스스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 기대어 그들의 주머니만 바라보면 되겠습니까..?
역사 들여다보면 진짜 ㅋㅋㅋ 인조 양아치 짓거리 한거 감안하면 홍타이지 진짜 대인배임
저 자리 터가 별로인가.... 이제는 일본 기업이 떡하니 빌딩 박아버렸네.
삼전도가 나의 굴욕은 아님 부패한 왕은 무너지는 것이 당연함
황현필 선생님 강의 잘 보고 있는데요. 영상 13:25 에 나오는 옥새 사진이 잘못되었습니다.
고종의 옥새라고 사진 첨부했는데요. 사진상의 어보는 "문정왕후 상존호 금보" 입니다.
인조 어보 사진이 필요하시다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10년에 출판한 "조선왕실의 어보" 1권 166p 인조 금보 사진으로 교체 바랍니다.
어보 사진 필요해서 인터넷에서 찾아 영상에 넣은건 이해하지만....
정확한 사진으로 다른 시청자분들에게 정보 제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수정해주시길 바래봅니다. ^^
네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여기서 역사의 교훈은 우리는 항상 주변에 변화를 민감하게 살피고..그에맞는 판단을 해야된다는거다. 중국이 G2로 부상한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한쪽에만 몰입해서 신흥강자의 부상을 도외시하면 어떤결과가 오는지 보여주는 역사다..
무능한 왕에 무능한 관료 아닌가요?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상황이 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롯데월드... 석촌호수 근처 삼전도비 있습니다
조선멸망안된것이 오히려 아이러니하다
청의 목적은 명나라를 치기 전 연해주와 요동의 안정이었어요. 때문에 빠르게 치고 빠지는 전략을 취한 것이죠.
조선을 멸망시키려 했다면 그만한 시간과 힘이 필요했을텐데 명나라와 전쟁중이었던 청나라에게 그 시간과 힘은 없었을 것입니다.
청나라에 명나라를 상대하면서 조선을 소화 할 행정력이 부족햇다는게 맞겟줘
두번 절했는데 첫번째는 하늘을 향해 천의 명을 거절한것에 대한 사죄를 한거고(홍타이지는 막사안에있었음) 두번째는 천의 명령을 받은 홍타이지 한테 부의국가로하겠다는 절이고
절이 끝난 후에 같이 술마시고 활쏘며 놀았음
즉 삼전도의 굴욕은 아니고 행사였습니다.
@@정말무서운사람이구나 국가가 나서서 외세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심지어 한번 당한 그대로 또 당했는데 그게 굴욕이 아니면 뭐임?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 해석해서 민족주의적 지존심을 세우려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안되고 배울점도 없음.
@@정말무서운사람이구나
한 나라의 군주가 다른 나라의 군주에게 스스로 신하로 칭하고 저렇게 대가리 박고 절했다는 것부터가 스스로 사실상 속국을 자처한 굴욕이지.
거기다가 이후 청나라는 조선으로부터 막대한 공물을 뜯어가고 수많은 조선인들까지 포로로 끌고갔는데.
이럴려고 반정을 통해 임금이 된것이냐?
광해는 왜적에 맞서 싸워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인조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민중들이 고초를 받게 했다....
거기에 자존심마저 잃게 만들었다......
글쎄요, 광해군이 민중의 지지를 받은건 아닌 것 같아요. 광해군은 세자 시절 민중의 지지를 받은건 맞지만 왕이 되고나서도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궁궐공사를 많이 하셨죠. 물론 이해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광해군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입니다.
@@shanestory3879 제가 "광해는 왜적과 싸워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쓴게 아닌가요?
왕이되고 나서도 받았다는 식의 표현은 없는데....
외세의 침범에 대처한걸 이야기한겁니다.
약간 핀트가 안맞는거 같네요...
@프랑수수수 광해군의 중립외교로 후금과 조선의 대립은 없었죠
그런데 인조반정 후 친명배금 정책을 유지하며 적대관계를 만들었고 후금 침략 후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바로 도망갔죠
남한산성에서 40일간 버티다 투항한거구요
제가 정확히는 기억은 안납니다만 모두 궁을 버리고 도망간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비난받을만 한거 아닌지요?
@프랑수수수 그래서병자호란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망친게 사실이 아닌가요?
국난에 대처가 전혀 달랐음은분명하죠.
정묘호란은 분명 친명배금 문제임은 분명하구요.
님의 말씀과 달리 정묘호란인지, 병자호란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매개체가 된게 인조가 관찰사에게 보낸 서찰의 내용이 문제가 된걸로 알고 있구요.
이게 후금에게 전달이 되었구요.
분명 후금을 자극한건 사실이죠
자꾸 꼬리를 물며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전 님처럼 역사에 깊이가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한건 광해군이 재평가 받고 있는건 당시 궁궐의 증축 및 건설 문제도 사실상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중립외교를 분명히 잘해냈구요(누루하치가 만족했던 안했던 결과론적으로 문제가없었죠)
더욱이 호패법 및 서적편찬 등 많은 업적을 남긴것과 국난 극복의 의지로 민중을이끌었다는거죠
이와 반대로 인조가 뭘했나요?
남한산성으로 도망간것밖에 더있나요?
인조에 대한재평가가 되고 있다면 황현필 선생님께 문의하셔서 다루어 달라고 하세요.
전 역사공부는 그냥 황현필 선생님 유튜브로 만족합니다
@@shanestory3879 궁궐공사 했다고 광해군 까고 있네....그럼 궁궐이 없어 젔는데 누구라도 다시 세울려고 했겠지..없으면 없는데로 살자고 했을 왕이 몇명이나 있었겠냐???
역시 왕중에 사람을 무참히 죽이고도 비난 받지 않는 왕도 수두룩한데 고작 궁궐좀 지었다고 왕을까냐????
17:07 효종의 재위기간은 1649년~1659년 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이번선거는 한일전이다
황선생님,. 대충은 짐작하지만 궁금한 것이있는데.. 언제 종합적으로 정리, 강의 한번 부탁 드립니다.
청을 비롯해, 몽골(원)도 중국을 점령하고, 침략시 그 땅을 복속 시켰는데,.. 한반도만은 국가와 정권을 유지 시켰 주었는지요..
애초에 조선 쳐들어온 이유가 명나라 정벌에 앞서 후방 정리가 목적이었음. 그래서 서둘러서 본국으로 올라간거임
@@yhansookim7850 진짜 말을 잘 듣는 것은 동남아인종 한족임. 얼굴 생긴 것도 다름. 수천년 알타이(동북아인종) 민족이 정보하고 도륙해도 반감이 있는게 아니고 자신들의 조상으로 모시는 얼빠진 민족임. 칭기즈칸이 자기 조상이라 하는 골때리는 민족, 동남아인종. 한족.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같은 인종인데. 인종이 달라도 조상. ㅋㅋㅋ 만주족과 한민족은 DNA가 같은 민족임. 원래 단군의 자손임.만주원류고에도 만주족은 스스로 고구려 신라와 같은 뿌리라 인식하고 있었음.
총 한번 안 쏘아보고 옥새 찍어 나라를 팔아먹은 일한합방이 삼전도의 굴욕보다 더 치욕적인 게 아닌가요? 한국에서 업신여기는 월남 왕도 그렇게 비겁치사졸렬 지리멸렬하게 그냥 나라를 팔아먹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역사에서 가장 큰 굴욕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의 일본의 조선병탄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자호란에서 우린 자기들의 이익을위해 현실을 외면하고 나라를 버리는자들을 경계해야한다는것만 배우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친명파들
공부하지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인조의 무능~~
황현필 선생님 항상 명강의 잘듣고 있습니다 질문한가지만 드리겠습니다 삼전도 굴욕같은 이런 경우도 있겠지만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적국의 왕에게 머리를 숙인 케이스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usplasticnetwork8148 아 감사합니다 경순왕은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봤던 그 신라 마지막왕이군요 ㅎㅎ 드라마에서는 마의태자 혼자 끝까지 싸우자 했는데 경순왕을 비롯한 나머지 대신들이 고려가 우리의 우방국이라고 나라를 통째로 바치는 걸로 나오는데 그냥 드라마일뿐이었네요 ㅎㅎ
@프랑수수수 아 그렇군요 멋있네요 왕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굴욕을 참아가면서 훗날을 도모한다는게 대단하네요 인조하고는 완전 딴판 ㅎㅎ
지가 죽기 싫어서 무슨 백성
나라가 망했는데 뭔 나라를 지켰다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