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생 작고하신 큰아버지 증언 - 당시 조선인 심정 - 1. 일본어 잘모름 2. 일본어를 알아도.. 일왕실 어휘와 말투라서 언어의 괴리가 심함. (왜놈 말투가 왜저래?) 3. 알아들어도.. 명확하게 종전..또는 항복, 패전 등의 용어가 없어서 뭘 말하자고 하는지 모름. (그냥 전쟁에 힘든 상황인데 화이팅하라는 말인가?) 4. 라디오 자체가 고가인데다가 구입시 허가를 득해야하며, 그마저도 시골은 라디오 방송도 안나옴. 5.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다음날.. 경찰서, 관공서 등에서 무장해제 등의 여러 조치가 나온 다음에야 해방된줄 알았다고함.
모든 한국사가 다 중요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역사는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근현대사인 거 같음. 그러나 역사의 앞부분부터 순차적으로 배우는 역사 교육 특성상 근현대사 파트를 온전히 배우기는 어려운거 같음 진도+물리적 시간의 한계로 인해서. 실제로 근현대사/ 삼국시대, 조선시대에 대한 퀴즈를 내보면 후자에 대한 대답이 더 쉽게 나오는거 같음 그만큼 근현대사 교육이 빈약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음 사실 이 근현대사가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낸 가장 결정적인 사건들인데 이를 제대로 못 가르치고 못 배운다는 것이 참 안타까움. 흥선대원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과 디테일을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익히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국민들이 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진다면 더 큰 국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봄 일기 끗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들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여진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대금국지(大金國志)>에는 “금나라의 본래 이름은 주루준(珠嚕凖)이었는데 설음(舌音)이 와전이 되어 여진이 되었으며 혹은 루르진(魯爾錦)이었다고 한다. 혹은 발해의 별족(别族)이라고도 하고 또는 삼한의 하나인 진한(辰韓)의 후예라고도 한다." 고조선문명이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조선의 노비 제도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올해 돌아가신 당시 일본에 징용되셧던 23년생 외할아버지 말로는 그냥 뭔가 아주 중요한 방송인가보다... 근데 항상 그래왔잖아? 걍 시키는 일이나 해야지 정도 반응이였다고 함.... 근데 주변 일본사람들이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그때서야 직감했다고 하네요..... 일어 잘하셧던 분도 알아듣기 힘들었나봐요
저희 할머니랑은 다른 반응이네요. 저희 할머니 살던 곳은 해방 소식 알게되자 마자 다들 기뻐하면서 바로 일본인 앞잡이 하던 사람들 찾아서 응징하고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 같은 경우 창씨개명도 거부하셨다가 일본 순사나 앞잡이들한테 많은 고초를 겪으셨다 했고요.
@@hyoungyeolyoon3326 당시 할아버지가 일본 나고야 에 계셧는데 일본인과 분리된 조선인 구역 비슷한게 있었나봅니다. 그래도 한반도 사람들보다는 훨 빨리 아신것 같습니다. 사실 외할아버지 사투리가 너무 심하셔서 자세한 이야기는 못알아 들었습니다. 큰이모가 통역(?) 해주셧지만 이모도 일본 지리나 당시 상황은 모르셔서 매끄럽지는 못했고요....
참고로 내용이 가타가나로만 작성된 이유는 당시 일본에서는 지금처럼 히라가나와 가타가나의 용도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고, 공문서 작성 시에는 가타가나만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서 일제시대 공문서를 보게 된다면 히라가나 없이 한자와 가타가나로만 작성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옥음방송은 원래 음질이 매우 안좋아 쇼와덴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쇼와의 아들이자 현 레이와 덴노의 아버지 헤이세이가 직접 이 옥음방송을 고화질로 복구해내서 우리가 이렇게 듣고 있습니다. 이 옥음방송은 대놓고 자기 아버지를 물먹이는거나 다름없음에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현대 일본 덴노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전의식을 보여준 헤이세이의 주요 업적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외교관계는 급변하고 있고 한치앞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과거의 상처를 서로 보듬고 앞으로 좋은 이웃국가가 되는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옥음방송 이후 와다 노부카타 NHK 아나운서가 쉬운 일본어로 "봉독"하여 풀어 말했지만 역시 항복이라는 말은 언급하지 않고 그냥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기로 했다고 애둘러 말했죠. 다만 당시 라디오 방송을 듣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항복한 것으로 지레짐작했을것 같기도 하네요.
침략했지만 내 뜻이 아니었다 고로 사과 그런거 없다 돌아가는 상황이 좀 유리하지 않게 되었다 패배한게 아니다 귀축미영이 잔학무도하기 그지 없는 폭탄을 떨구니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기지 못한거지 진게 아니다 너희들 잘싸웠고 고생 많았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종전하기로 했다 항복하는게 아니다 분하다고 날뛰지 마라 내 체면은 중요하다 끝
궁성사건이 실패해서 다행이지 만약 성공했으면 1억 총옥쇄 실행하면서까지 전쟁 지속을 원하던 강경파가 히로히토 천황을 비롯한 온건파 내쫓고 권력 장악하게 됨 당시 일본군이 거듭되는 패전과 자살공격으로 궤멸에 가까워졌어도 관동군 등 정규군이 최전선에서 끝까지 싸우고 있었어서 상부의 무장해제 명령이 안 내려오는 이상 항복이란 없었는데 쿠데타 일으켜 상부를 장악한 강경파가 끝까지 싸우라 했으면 연합군이랑 일본 둘 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저희는 부모님이 모두 일본서 태어나셨어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셨죠. 특히 외가는 일본서 친지의 도움으로 상당히 성공하고 독립자금도 내실 정도였음에도 모든 걸 버리고 죽어서도 해방된 조국의 고향 땅에서 죽겠다는 외할아버지 의지로 귀국했는데 조국의 해방을 제대로 기뻐하지도 못했죠. 저도 일본어가 전공임에도 일왕의 사용언어가 문어체를 구어체로 하고 있어 알아듣기가 힘들고 언어자체도 고어를 사용해서 사실 혼자서는 이해하기가 좀 힘들더라고요. 광복절. 75주년. 우리의 힘으로는 이루지 못했으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 있어 우리가 오늘날 세계 어디를 가서도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후손이라 말할 수 있죠
@Athesia 태평양 전쟁을 군부가 멋대로 일으킬 때, 해군이 올린 작전조서가 일왕에게 보고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왕은 그래 해라라고 말하기 보다는 전쟁을 일으켜선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지지를 했습니다. 또 만주군 작전장교와 조선사령부 육군이 만주군 및 조선군 사단들을 동원해 중일전쟁을 일으킬 때도 회군명령 혹은 외교적 휴전을 하라고 명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지지를 표했습니다.
@Athesia 즉 전범이 아닌 것이 아니고, 군국주의자가 아닌 것도 아니며, 평화를 위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범 노무 시키가 살고자 항복한 것 뿐입니다. 그 후에도 자신을 섬겼던 대신, 장성들이 전범으로 판결받아 줄줄히 처형당할 때 자신은 평화주의자 행세를 했으니 이건 뭐 "아두"를 연상시킵니다.
1922년생으로 도쿄 유학까지 다녀오신 외조부 증언 (1990년 돌아가심) 1. 일본어에 능통하다해도 저 방송의 요지를 파악히기 힘듦. 2. 전황이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 정도 감지됨. 3.대다수 일반 조선 백성은 긴급방송으로 일본천황이 조센징 총동원령을 명한 줄 알고 일단 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 4. 조선 체류 일본인조차 저게 공식적인 항복선언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함. 5. 일상적으로는 일본인들이 바로 어제 그제와 달리 풀이 죽고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고 나서야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함. 6. 하지만 지금 관점에서 광복을 보는 시각이랑 당시 사회 분위기는 사뭇 달랐음. 지금은 조선 온백성이 들고 일어나서 광복의 기쁨을 누리고 바로 이튿날인 8월16일부터 일본인에게 보복을 자행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일부 국뽕 서적과 유튜브 콘텐츠가 여기에 일조) 당시는 어리둥절 우왕좌왕의 아노미 자체였다 함. 조선민중 대다수는 일부 지식인과 노령층을 빼면 강력히 추진된 내선일체정책과 신민화 교육을 통해 자신들이 반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 여겼기 때문.
"짐이 성명발표하는 이 시간부로 일본은 미영지소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고 더이상의 교전을 중지하며 식민통지 및 점령지로부터 모두 철수한다."라 간략히 이야기하면 될 것을 엄청 길게 돌려서 이야기하네... 그리고 저것 생방송도 아닌 사전에 육성녹음한 것 틀은 것이라 레코드판의 특유의 지직거림이 섞여 생동감도 없음...
향문천 님께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것 같지만 두서없이 이른바 '옥음방송'에 대해 몇 마디 적자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내지인(=일본인)이라면 덴노의 조서를 100%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아, 항복했구나...' 정도는 알 수 있었다는 증언도 꽤 있습니다. 우선 전날 저녁부터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NHK를 통해 전국에 보도되었고, 신이나 다름없는 덴노가 직접 육성 방송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발표라는 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더라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도 식견 있는 내/외지인이라면 잘 알고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덴노의 발표 직후 총리가 다시 한 번 항복 의사를 밝히는 정부 문서를 낭독했고, 직후 뉴스에서 덴노와 총리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해설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일본이 패전했다는 사실을 모르기가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와 별개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꼬아서 적은 건... 덴노가 유체 이탈을 해야 하니까요. 전쟁 시작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물론 개소리입니다), 나의 결단으로 전쟁을 마무리짓겠다는 헛소리를 어떻게든 잘 포장해서 해야 하니까 나온 게 저겁니다.
@@형이다형-g5l 포츠담 회담 이후 미-영-소의 최후 통첩 내용을 일본에서도 프로파간다 형식으로 계속 국내에 알렸기 때문에 포츠담 선언 수용 = 무조건 항복이라는 건 식자층이면 어지간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정 개인의 이해 여부까지는 제가 알 턱이 없지만요.) 덴노의 메시지 직후에 총리, NHK 아나운서가 일종의 해설 방송까지 거듭 해주었기 때문에 쇼와 덴노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그 순간에는 몰라도 결국엔 이해 가능합니다.
@@thestrongestmanintheworld 항복 선언은 15일 정오에 방송됐지만, 들으신 것처럼 말도 빙빙 돌려서 했고 조선인들은 얼마 갖고 있지도 않던 라디오를 통해 방송해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16일에 광복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 이것과 관련된 영상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행복회로 돌린 거구요.
저는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외노자에요 저희 할머니는 참 고달프게 사셨어요. 징용으로 잡혀가서 생사도 모르는 증조할아버지와 일본인 처로 조선사람과 결혼해 핍박받으며 사신 증조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답니다. 증조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만주로 길을 나섰고 이내 저희 할머니는 두 부모님을 10살 나이에 잃었다죠. 제가 꽤 괜찮은 곳에 일본취업을 했고...최연소 최초 한국인 매니저에 올랐을 때 아버지는 우셨어요. 그 옛날 조선인을 핍박했던 일본인들보다 능력을 인정받고 매니저에 오르게 된 제가 자랑스럽다고요.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핍박받던 역사를 딛고 당당하게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이런 희귀한 자료를 올려 주시다니, 처음 들어봤습니다. 들으면서도 결국 자기 나라의 패망을 쉬이 인정하기 싫어서 중심 내용은 쏙 빼먹고 뭔 소리를 하는지 속 뜻을 파악해야만 이해되는 곁다리 문장들만 늘어놓았단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누구를 위한 종전 항복 선언문이었는지.
세줄 요약 1. 우리가 졌다. 2. 핵폭탄 맞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3. 고생한 사람들 생각에 맴찢 전쟁 졌지만 졌다고 말하기 싫은 정서가 진득히 베어나옴 그 와중에 무고한 사람들 죽였다고 고자질을 함(정작 니들은...) 전쟁 피해 입은 사람들 생각해주는 척 위선과 가식이 돋보임
우리 할아버지가 15살에 전쟁 말 오키나와로 징집되어서 가려고 했는데 미군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후에 오사카( 보니까 본토상륙)로 배치 받는다고 기다리다가 일본이 항복했다고 다들 기뻐하는데 할아버지는 여기가 조선이였냐고 그때 알았다고 하셨네요 소학교에서 우리들 조선인이라고 했지 여기가 원래 조선이였다고는 말을 안 했대요
@탈무티 일제로부터 벗어난 것을 해방이라고 볼 수도 있구요, 일제로부터 벗어나 자주국의 기초가 되었으니 독립이라고 할 수 있는겁니다. 당신이 지금 말하는건 '바꾸다'라는 단어와 '수정하다'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 다르다며 둘 중 한 가지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댓글 말이 전적으로 맞습니다! 라디오가 적었고 음질이 좋지 못했으며 일본어 화자가 많지 않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는 점에서 더 덧붙이면, 항복을 이해한 사람들도 일본 순사가 길에 나가면 있어서 좀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후부터 감옥 사람들이 풀려났고 그 다음날 실감을 했다고 하네요.
향문천님 중세 국어, 근대 국어 등의 흔적이 그나마 많이 남아있는 한반도 곳곳의 지역 방언에 대해 영상들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요즘도 몇몇 사람들이 방언을 사용하고 있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방언을 별로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매우 많아졌고 우리 말씨의 유래와 역사를 잘 알 수 있는 방언, 특히 옛 방언(일제 이전)에 대해서도 영상을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의 지역별 방언과 전근대의 지역별 방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쇼와는 전후 전쟁의 책임이 없는 허수아비로 평가 받았으나 현재로 들어오면서 쇼와 천황이 보급에 대해서 신경을 쓴 기록이 발견되고 그가 전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것이 학계에 정설로 자리 잡으면서 전범으로 보고 있으나 죽기 전까지 처벌받지 않고 편안하게 죽은게 너무 아타까움
어러운 말로 빙빙 돌리던 연설이었던데다가 옥음이 녹음된 레코드 자체는 사용할 수 없었고 그 복사본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음질이 좋지 않아서 옥음 자체는 전혀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옥음이 끝나고 즉시 라디오 아나운서가 해석하는 내용을 방송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예 몰랐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날두TV-p1v 당시 천황은 신이었어요...덴노를 모욕하거나 비난하면 그 자리에서 목을 잘랐어요...그리고 그 일족은 모두 투옥돼 옥중에서 다 죽였어요...재판도 필요없고.... 이런 자를 죽인 사람은 엄청난 은사를 받아 거부가 되었지요...이런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요...국적을 죽인 가문이라면 최고의 명예가문이 됨...북한과 똑같음...김일성 신과 신족들이 통치하는 나라가 북한임....
'시운이 기우는 바'가 킬포인트. 여기서 정전 조약 정도는 되는 것을 맺음을 암시함. 여기서 변수는 일본제국에 이것이 얼마나 불리한지 정도(기울었으니 당연히 일본의 항복 혹은 적국 요구에 불리하더라도 응한 것 혹은 일제가 제안한 자신들에 불리한 정전 조약). 솔직히 말해 원폭 이후의 항복은 일본이 몰락 작전을 당하지 않는 대가가 되었으니 무조건 항복이어도 차악(최악이 아닌)의 협상이었다 할 수 있겠죠. 추가) 미국 수뇌부와의 협상으로 겨우 황위를 지켜낸 쇼와 천황은 "국체를 호지하며(보호하여 지니며)"라는 부분에서 군주국(황국)으로서의 일본의 상태를 겨우 지켜냈음을 암시한 것 같고, "충량한 그대 신민" 부분에서 간당간당했던 황위 수호에 대한 자신의 심리를 '그대 신민들이 보수적이고 굳건한 민심(여론)으로 짐의 황위를 보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공화제에 반대해 달라'는 듯한 느낌으로서 은연 중에 드러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감정이 격해지는 바"는 황실 혹은 국가, 야마토 민족을 위해 과격하게 본토에서 폭동을 일으키거나 주일 미美 점령군에 훗날 폭력을 행사해보려 하는 극우 급진파들이 없기를 바라며 미리 이에 대해 언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입니다. p.s.) 킹어 킹등급(언어 1등급) 님들 나와주셔서 더 중요한 킬포인트 좀 찾아주세요...
일왕 쇼와가 옥음방송을 문어체 일본어로 봉독(낭독의 일본왕실 용어)하는 바람에 일왕의 봉독이 끝나고 아나운서가 구어체 일본어로 해설해서 다시 낭독했다 합니다. 구어체 일본어로 다시 낭독했어도 교육을 받아 100%는 아니라도 어느정도는 알아들을수 있었던 일본인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선 교육을 받지못해 잘 알아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1923년생 작고하신 큰아버지 증언
- 당시 조선인 심정 -
1. 일본어 잘모름
2. 일본어를 알아도.. 일왕실 어휘와 말투라서 언어의 괴리가 심함. (왜놈 말투가 왜저래?)
3. 알아들어도.. 명확하게 종전..또는 항복, 패전 등의 용어가 없어서 뭘 말하자고 하는지 모름.
(그냥 전쟁에 힘든 상황인데 화이팅하라는 말인가?)
4. 라디오 자체가 고가인데다가 구입시 허가를 득해야하며, 그마저도 시골은 라디오 방송도 안나옴.
5.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다음날.. 경찰서, 관공서 등에서 무장해제 등의 여러 조치가 나온 다음에야 해방된줄 알았다고함.
좋은 정보 ㄱㅅㄱㅅ
@@나폴레닌 (일본을 옹호하는게 아니라) 항복이 쪽팔리는건 맞죠
1923년생이 큰아버지면 댓글분 연세는.. ㅎㄷㄷ
@@user-gy1vg5pk7b 저도 이 생각 했어요 ㅋㅋㅋ 이 채널에는 다양한 연령의 시청자 분들이 있군요
@@user-gy1vg5pk7b ㄷㄷㄷ
끝까지 '우리가 졌다'라는 말은 안 했던 방송
'우리가 안녕과 평화를 위해 패배를 받아들였다' 같이 말하네
자기가 미국을 먼저 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는데도. 쪼잔해 ㅋㅋㅋㅋ
80년전 소국이 대국한테 대항하자 생겼던 일....
좀 많이 왜곡되긴 했지만 어찌 보면 저것도 나름 맞는 말임
"우리(일본)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인정했다"
= 패배했다
@@닉짓기귀찮 거기에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했다는 둥 사족을 붙이는 걸 보니 더 기가 차더라구요
@@lemonTbalCya
아 이건 선 존나 씨게 넘었다
우리나라의 광복이 100년도 채 되지 않았고 그 시대에 살고계셨던 분들이 아직 우리와 같은 동시대에 살고 계십니다. 이 역사는 결코 먼 과거가 아닙니다. 더 먼 미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억하려면 우리가 더 자세히 기억해 놓아야 합니다.
+한국전쟁
@@Mindcolor + 북한 간첩들이 좀 먹고 있는 현재 상황.
@@__.-_ 중국... 생각만해도 소름..
모든 한국사가 다 중요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역사는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근현대사인 거 같음. 그러나 역사의 앞부분부터 순차적으로 배우는 역사 교육 특성상 근현대사 파트를 온전히 배우기는 어려운거 같음 진도+물리적 시간의 한계로 인해서. 실제로 근현대사/ 삼국시대, 조선시대에 대한 퀴즈를 내보면 후자에 대한 대답이 더 쉽게 나오는거 같음 그만큼 근현대사 교육이 빈약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음
사실 이 근현대사가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낸 가장 결정적인 사건들인데 이를 제대로 못 가르치고 못 배운다는 것이 참 안타까움.
흥선대원군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을 지나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과 디테일을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익히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국민들이 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진다면 더 큰 국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봄
일기 끗
@@KlMKlMKlM00 것도 모르는 인간들이 태반이라는게 함정
1945년 8월 15일에 일왕의 항복선언을 들은 많은 일본인들은 처음에 일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일왕의 항복선언문에 쓰인 단어들은 일반 대중들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며, 항복선언문에 '항복'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지요.
막상 지도 잘 모르고 낭독하는 거 같음.
@@KrMorgan12 그건 개오바임
정신승리용 방송이라 빙빙 돌리고 이상하게 말 함.
일본이라 특별히 그런게 아니죠.
동양, 특히 상위계층으로 갈수록 은유적 표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니까.
조선왕조실록만봐도 은유적으로 돌려까기가 얼마나 많은데....
@안이디 적어도 영국 왕실은 영국인들이 알아먹을수는 있게끔 함
항복선언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귀한자료 올려주시고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번 더 들어봐서 행간을 좀 파악해봐야겠어요.
@@moclykim8220 아저씨 정신차리세요
@@moclykim8220 노비는 노예보다 농노의 개념에 더 가까웠음. 솔거노비나 관노 같은 경우엔 주인이랑 살지도 않았고
어저라고?
@@moclykim8220그 서구는 아프리카에서 흑인 납치해서 아메리카에 팔았는데 그 수가 1600만명 정도 된다
그리고 유럽 본토도 농노는 항상 존재 함
GG 두글자를 빙빙돌려서 절대GG는 아니라고 5분동안 지껄이는모습
원래 일본 문화가 직설적인거 싫어하잖슴ㅇㅇ
@@koobill6172 그거랑 관계없음. 그저 지들 패전의 부끄러움(恥)을 숨길 뿐이지
恥ずかしい?
@@skailim-j2o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skailim-j2o 그럼 이겼는데 당당하냐?ㅋㅋㅋ 당당했으면 또 졌는데 당당하다고 지랄할새끼들이
이걸 듣고 어느 누가 그토록 바라던 해방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을까. 저들이 돌려 돌려 결국 내놓은 답은 자신들의 파멸임을 알기에 그렇겠지만.
그래선지 음원 전반에 끼어있는 노이즈가 모닥불 타는 소리처럼 느껴지네요.
앞문장 '자국'이랑 뒷문장 '자신들'이 다른 대상을 지칭해서 문장 존나 어색함
@@곽일땡 ㅈㅅ 고치겠음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백제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이있다.조선은 백성의 40프로가 노예인 노예국가였다.
흑노예들처럼 매매됐고 자식들은 태어나자마자 주인소유의 노예가 됐다.인류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부린 국가는 예를 찾기 힘들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노예로 400년을 더 고통 받았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심지어 위안부조차 일본인이 더 많았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유전자분석에의하면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순수한 한국인 혈통인것으로 밝혀졌다.한국일본은 같은 민족이다.한민족의 미래를 위해 한일동맹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일합병 해야한다.중국과 중국몽들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한일동맹이다.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한국인들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 해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대만과 동남아국가들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인도네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지금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전세계에서 반일국가는 중국 한국뿐이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거다.이후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여진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거다.
대금국지(大金國志)>에는 “금나라의 본래 이름은 주루준(珠嚕凖)이었는데 설음(舌音)이 와전이 되어 여진이 되었으며 혹은 루르진(魯爾錦)이었다고 한다. 혹은 발해의 별족(别族)이라고도 하고 또는 삼한의 하나인 진한(辰韓)의 후예라고도 한다."
고조선문명이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섰다.중국사관학자들이 고조선문명을 환빠라고 거품 무는것도 고조선문명이 중국역사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우리가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아직도 중화주의 흔적이 많이 남아 나라의 혼을 빼앗고 있다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조선의 노비 제도는 비인간적이고 잔인하다.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지금 들어도 저게 항복한다는 말인지 알 수 없는 1인....
제국 정부 공동선언 수락 만으로 항복을 표현하는데 공동선언이 뭔 지 모르는 사람은 항복이라고 생각 절대 못했을 것
핵심은 "교전을 계속하면 우리의 멸망을 초래할 뿐더러 인류 문명까지 좀 먹을 것이다"란 구절. 이것도 지들이 졌으니 항복한다는거 엄청 돌려 말하는 거. 근데 앞 뒤 사족이 ㅈㄴ 많음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순종은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순종은 “조선인은 일본의 천황 폐하에 종속하고 그 은혜로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한 것이다.
특유의 책임회피 유체이탈화법
요새 어디서 많이 듣는......
@@user-k6h3zifsv8 애쓴다
윗사람말대로 그냥 최후의 쫀심 부린 거임. 애초에 이렇게 천황의 목소리를 넣은 방송한 거 자체가 처음이나 다름없고.. 항복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아니면 절대 안 했을 방송
그래도 전정권 탓은 안하니 어디냐 ㅋ
@@청솔향-g9u 쥐명바기와 닭그네가 많이 쓰던 말이죠~ㅋ
올해 돌아가신 당시 일본에 징용되셧던 23년생 외할아버지 말로는
그냥 뭔가 아주 중요한 방송인가보다... 근데 항상 그래왔잖아? 걍 시키는 일이나 해야지 정도 반응이였다고 함.... 근데 주변 일본사람들이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그때서야 직감했다고 하네요..... 일어 잘하셧던 분도 알아듣기 힘들었나봐요
@@로마공화국 아직 일어 공부 안해서 그것은 저는 잘 모르겟네요.... 하지만 한문에서 나오는 고어(古语) 가 많은것은 보입니다.
@@PLUTONIUM1228 어째서 간체자인 语를 사용하시는 건가요?
@@minutes3320 아는 한자가 간체자밖에 없습니다.... 한자를 중국어 공부하면서 배워서요 ...... 그 이전에 학교에서 공부한건 정말 리셋수준으로 다 잊어버렷습니다.
저희 할머니랑은 다른 반응이네요. 저희 할머니 살던 곳은 해방 소식 알게되자 마자 다들 기뻐하면서 바로 일본인 앞잡이 하던 사람들 찾아서 응징하고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가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 같은 경우 창씨개명도 거부하셨다가 일본 순사나 앞잡이들한테 많은 고초를 겪으셨다 했고요.
@@hyoungyeolyoon3326 당시 할아버지가 일본 나고야 에 계셧는데 일본인과 분리된 조선인 구역 비슷한게 있었나봅니다. 그래도 한반도 사람들보다는 훨 빨리 아신것 같습니다.
사실 외할아버지 사투리가 너무 심하셔서 자세한 이야기는 못알아 들었습니다.
큰이모가 통역(?) 해주셧지만 이모도 일본 지리나 당시 상황은 모르셔서 매끄럽지는 못했고요....
요약: 전쟁 계속하면 평화의 길은 영원히 없을꺼니깐 우리가 종전허락해줄께. 우리가 진거 아니야. 그리고 일왕은 좀 살리게 백성 니들은 멋대로 이상한짓 하지마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이게 맞지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유체이탈화법이라는 게 이런 것 같네요.
요약 잘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일반인이 라디오를 가지려면 관청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이건 일본인도 포함)
그래서 라디오를 가진 사람도 한정적이었는데
대부분 일본인이었죠.
당시 일본 본토에서도 그랬었나요??
낙지들은 국민선동수단으로 라디오보급률을 늘렸다는데 정반대구만
@@Mindcolor 국민들이 연합군측 선전 방송을 들을까봐 본토도 그랬던걸로 알아요
시나위 노래 중에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생각나네요
개같은 돌려말하기 + 피해자 코스프레 + 침략미화
로지의 말씀을 동의해요. 그러나 아직도 일본은 학교에서 실제를 가르치지 않아요.
@@말피니 학교 현행 일본사 교과서를 좀 보고나 말해라 ㅋㅋㅋ 감정이입 그~득하고 세계사 비중이 엄청 낮은 한국 교과서보다 훨 낫 ㅇㅇ ㅋ
광복절에 딱 맞는 희소성 있는 영상을 준비한 항문천.. 그는 대체..
향문…천…이요..ㅎㅎㅎ
역시 항문천
항문이요?
Ass hole sky 그는 대체,,
아날스카이 ㄷㄷ
참고로 내용이 가타가나로만 작성된 이유는 당시 일본에서는 지금처럼 히라가나와 가타가나의 용도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고, 공문서 작성 시에는 가타가나만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내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에서 일제시대 공문서를 보게 된다면 히라가나 없이 한자와 가타가나로만 작성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 근처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질리게 간 사람입니다만, 거기에 일제강점기 때 쓰인《황국신민의 맹세》도 가타카나와 한자로 써져 있습니다.
원래 가타가나는 신라시대 일본으로 전해진 불경을 위해 표기하던 문자에서 비롯됩니다. 고로 히라가나보다 더 자주 사용되고 더 오래 사용된 것입니다.
@@진리의빛-s8g 확실치 않음 정설도 아님
가타가나는 외래어나 신조어 표기에 쓰인다고 하는데 한자어는 어떤가요? 히라가나 가타가나 어느 쪽으로 표기되나요?
@@드키무티 히라가나
들을수록 환장하는 일본식 선전포고, 일본식 항복, 일본식사과 ㅋㅋㅋ
이번 미 스텔스기 간첩이 잡힌후 공개된 북한의 지령
- 반일선동을 해서 국민들을 둘로 나누어라
@@user-ssess 사람들은 욕을할때 자신의 컴플렉스를 투영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저지른 일에비해 책임을 안지려고함 도조히데키의 자살소동은 연극이고 일왕도 전후 일본인에게 공식적인 사과안했고 그래서 항상 모호하게 언행함 과거 부터책임지려면 할복하는것에 다름없다 오늘날은 사실상 사회적 할복 이라는 정서가있어서 책임 회피하려고만 하지
@@user-ssess 물타기 어서오고
@@user-ssess 가지가지한다. 부모님은 무슨 죄냐
이 옥음방송은 원래 음질이 매우 안좋아 쇼와덴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쇼와의 아들이자 현 레이와 덴노의 아버지 헤이세이가 직접 이 옥음방송을 고화질로 복구해내서 우리가 이렇게 듣고 있습니다.
이 옥음방송은 대놓고 자기 아버지를 물먹이는거나 다름없음에도,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서는 안되는 현대 일본 덴노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전의식을 보여준 헤이세이의 주요 업적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외교관계는 급변하고 있고 한치앞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과거의 상처를 서로 보듬고 앞으로 좋은 이웃국가가 되는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키히토랑 나루히토를 그냥 고인으로 만들어버리네 ㄷㄷ
헤이세이 덴노나 레이와 덴노는 죽어야 부르는 명칭임.
마치 세종대왕의 '세종'은 죽은 뒤에 지어진 것처럼
+ 아키히토가 죽었다해도 무조건 헤이세이 덴노가 되는 건 아님.
관례적으로 연호를 시호로 쓰지만, 꼭 그래야한다는 법률은 없음
그럼 영상의 음성은 헤이세이가 복구한 버전인가요?
@@최테마 편의상 헤이세이, 레이와라고 했지만 님 말이 맞음.
@@booming6509 네 영상 설명란 보면 일본 궁내청에서 했다고 되어있네요
당시 지방쪽에서 사는 일본인들도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한 방송답네요
복전으로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고어나 경어체가 나오면 집중해서 듣지 않는 이상 바로 듣기 어렵긴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짧다. 이게 뭐야? 끝이야?
라고 생각했다. 라고 생각한 순간
76년전 조선인들도 나랑 똑같이 생각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방송이라길래 들었는데 뭔가 허무하고 의미도 알기 힘든 내용....
향문천 그는 천재야
최초공개로 진짜 라디오 생방송같은 분위기까지 만들어놓은 게 정말 ㅋㅋㅋ 날짜까지 맞춰 그날의 사건을 체험시켜주는 가장 생생한 방법을 사용했구나 싶습니다.
조선땅에서는 전파 수신 문제로 잘 들리진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옥음방송 이후 와다 노부카타 NHK 아나운서가 쉬운 일본어로 "봉독"하여 풀어 말했지만 역시 항복이라는 말은 언급하지 않고 그냥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기로 했다고 애둘러 말했죠.
다만 당시 라디오 방송을 듣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항복한 것으로 지레짐작했을것 같기도 하네요.
@@minami_kotori 들을 수 있는곳에 모여서 다같이 들었을 듯
저 방송 듣고는 아리송한 내용
1:17
" 20세기 최악의 거짓말 "
ㄹㅇ
"이 맛은 '거짓말을 하는 맛'이로구나!"
군부가 천왕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하지 않지. 모든 책임을 군부에게 떠 넘기고 자신은 책임분리하려는 짓거리. 왜냐하면 천왕제를 존속 시켜야 하기 때문에
@@성모우-d6f 군부에서 천황한테 묻긴 했는데 천황이 괜찮겠지 하면서 시행시켰음
"드디어 미쳐버린 천왕. 킬각입니다"
침략했지만 내 뜻이 아니었다 고로 사과 그런거 없다
돌아가는 상황이 좀 유리하지 않게 되었다 패배한게 아니다
귀축미영이 잔학무도하기 그지 없는 폭탄을 떨구니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이기지 못한거지 진게 아니다 너희들 잘싸웠고 고생 많았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종전하기로 했다 항복하는게 아니다
분하다고 날뛰지 마라 내 체면은 중요하다
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요약 잘했네ㅋㅋㅋㅋㅋ
아 진짜 그런 뜻이에요? ㅋㅋㅋㅋㅋㅋ
ㅈㄴ웃기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군부가 다 저지르긴 했음 천황은 어 군부가 딴 나라 침략했네 지원해야지 이런거
TMI: 일본의 항복에 끝까지 반대했던 세력은 해당 방송을 위해 녹음된 LP판을 탈취하려고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궁성사건(宮城事件)이라고 불리죠~
저거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그 유명 한 빡빡이들의 반란......
@@OfficialJoyMoon ㅋㅋㅋㅋ 빡빡이 ㅋㅋㅋㅋ
sp판...
궁성사건이 실패해서 다행이지 만약 성공했으면 1억 총옥쇄 실행하면서까지 전쟁 지속을 원하던 강경파가 히로히토 천황을 비롯한 온건파 내쫓고 권력 장악하게 됨
당시 일본군이 거듭되는 패전과 자살공격으로 궤멸에 가까워졌어도 관동군 등 정규군이 최전선에서 끝까지 싸우고 있었어서 상부의 무장해제 명령이 안 내려오는 이상 항복이란 없었는데 쿠데타 일으켜 상부를 장악한 강경파가 끝까지 싸우라 했으면 연합군이랑 일본 둘 다 훨씬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저희는 부모님이 모두 일본서 태어나셨어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셨죠. 특히 외가는 일본서 친지의 도움으로 상당히 성공하고 독립자금도 내실 정도였음에도 모든 걸 버리고 죽어서도 해방된 조국의 고향 땅에서 죽겠다는 외할아버지 의지로 귀국했는데 조국의 해방을 제대로 기뻐하지도 못했죠.
저도 일본어가 전공임에도 일왕의 사용언어가 문어체를 구어체로 하고 있어 알아듣기가 힘들고 언어자체도 고어를 사용해서 사실 혼자서는 이해하기가 좀 힘들더라고요. 광복절. 75주년. 우리의 힘으로는 이루지 못했으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재산과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 있어 우리가 오늘날 세계 어디를 가서도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후손이라 말할 수 있죠
@NAL DAWSON 그냥 고유명사 취급해서 덴노라 부르는개 젤 나은듯 대한민국 정부 공식 명칭은 천황이긴 함
개~소리 중의 개~소리여.
@@정이오-v1k 틀
@NAL DAWSON 일황같은 소리하고있네 ㅉㅉ 제국도 아닐뿐더러 미개한 섬나라 지들끼리만 인정하는 왕이 어떻게 황제임? 개소리ㄴㄴ 일왕이 맞음
@@diebesten621 일본 안좋아하긴 하는데 어쨋든 정식 명칭은 천황이니까...
1년만 빨리했어도 그렇게 니가 사랑했다 말하는 많은 목숨들 살렸을 꺼다
원래는 일본국민 전멸해도 항복 안한다고 뻐기다 핵 두방 맞고 바로 항복
@Athesia :)
@Athesia 태평양 전쟁을 군부가 멋대로 일으킬 때, 해군이 올린 작전조서가 일왕에게 보고 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왕은 그래 해라라고 말하기 보다는 전쟁을 일으켜선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지지를 했습니다.
또 만주군 작전장교와 조선사령부 육군이 만주군 및 조선군 사단들을 동원해 중일전쟁을 일으킬 때도
회군명령 혹은 외교적 휴전을 하라고 명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 지지를 표했습니다.
@Athesia 즉 전범이 아닌 것이 아니고, 군국주의자가 아닌 것도 아니며,
평화를 위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범 노무 시키가 살고자 항복한 것 뿐입니다.
그 후에도 자신을 섬겼던 대신, 장성들이 전범으로 판결받아 줄줄히 처형당할 때 자신은 평화주의자 행세를 했으니
이건 뭐 "아두"를 연상시킵니다.
1년전엔 가능성 있었지 않나?
1922년생으로 도쿄 유학까지 다녀오신 외조부 증언 (1990년 돌아가심)
1. 일본어에 능통하다해도 저 방송의 요지를 파악히기 힘듦.
2. 전황이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 정도 감지됨.
3.대다수 일반 조선 백성은 긴급방송으로 일본천황이 조센징 총동원령을 명한 줄 알고 일단 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
4. 조선 체류 일본인조차 저게 공식적인 항복선언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함.
5. 일상적으로는 일본인들이 바로 어제 그제와 달리 풀이 죽고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고 나서야 세상이 뒤집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함.
6. 하지만 지금 관점에서 광복을 보는 시각이랑 당시 사회 분위기는 사뭇 달랐음. 지금은 조선 온백성이 들고 일어나서 광복의 기쁨을 누리고 바로 이튿날인 8월16일부터 일본인에게 보복을 자행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일부 국뽕 서적과 유튜브 콘텐츠가 여기에 일조) 당시는 어리둥절 우왕좌왕의 아노미 자체였다 함. 조선민중 대다수는 일부 지식인과 노령층을 빼면 강력히 추진된 내선일체정책과 신민화 교육을 통해 자신들이 반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 여겼기 때문.
그랬을거 같아요. 일제시대때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상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은 없었을테니, 어리둥절했을거같음요
갑자기 해방이라고? 라는 느낌과 혼란의 느낌이었겠죠...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역시...
6번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답이지.
외조부께서 22년생이시면 자아가 성립될 즈음의 스무 살, 조국은 일본인데 당대 조선인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 확실하죠.
괜히 방구석 애국자들이나 열심히 까불며 놀아나는거고.
41년생인 저희 할머니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주변 일본인 자제들과 어울려 놀았다죠... 그런데 해방되고 하루아침에 몽땅 사라졌다고 함
36년이라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구나… 통일은 진짜 힘들겠다…
비슷하게 조선에서 (일본인 부모들 한테서)태어난 일본인들은 왜 우리가 고향을 떠나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심심찮게 있었다고 나옴
"짐이 성명발표하는 이 시간부로 일본은 미영지소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고 더이상의 교전을 중지하며 식민통지 및 점령지로부터 모두 철수한다."라 간략히 이야기하면 될 것을 엄청 길게 돌려서 이야기하네... 그리고 저것 생방송도 아닌 사전에 육성녹음한 것 틀은 것이라 레코드판의 특유의 지직거림이 섞여 생동감도 없음...
당시 천황은 신이였으니깐ㅋㅋㅋ
그랬으면 일본국내 자살자 수가 엄청 늘었을 텐데 안되지. 쫀심 문제도 있고
향문천 님께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것 같지만 두서없이 이른바 '옥음방송'에 대해 몇 마디 적자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내지인(=일본인)이라면 덴노의 조서를 100%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아, 항복했구나...' 정도는 알 수 있었다는 증언도 꽤 있습니다. 우선 전날 저녁부터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NHK를 통해 전국에 보도되었고, 신이나 다름없는 덴노가 직접 육성 방송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발표라는 건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더라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연합국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도 식견 있는 내/외지인이라면 잘 알고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덴노의 발표 직후 총리가 다시 한 번 항복 의사를 밝히는 정부 문서를 낭독했고, 직후 뉴스에서 덴노와 총리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해설까지 해주었기 때문에 일본이 패전했다는 사실을 모르기가 더 힘들었을 겁니다.
그와 별개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꼬아서 적은 건... 덴노가 유체 이탈을 해야 하니까요. 전쟁 시작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물론 개소리입니다), 나의 결단으로 전쟁을 마무리짓겠다는 헛소리를 어떻게든 잘 포장해서 해야 하니까 나온 게 저겁니다.
도쿄재판(tokyo trial)에 의하면 천황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woohyukjung1475 천황 죽이면 난리난리날까봐 놔둔거임
@@woohyukjung1475 법률적 책임은 없어도 도의적 책임은 여전히 있다.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있었고
아 항복했구나! 라는건 그야말로 검증되지 않은 구라.
조병옥 박사도 광복 이후에 "난 일본이 항복할 줄 알았음" 이라고 공언하고 다녔다는데, 당시의 정황상 몰랐을 확률이 100%
그냥 구라 좋아하는 당시 조선인들이 그랬다더라~ 하는 거 정도로 알고 지나가면 됨.
@@형이다형-g5l 포츠담 회담 이후 미-영-소의 최후 통첩 내용을 일본에서도 프로파간다 형식으로 계속 국내에 알렸기 때문에 포츠담 선언 수용 = 무조건 항복이라는 건 식자층이면 어지간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정 개인의 이해 여부까지는 제가 알 턱이 없지만요.)
덴노의 메시지 직후에 총리, NHK 아나운서가 일종의 해설 방송까지 거듭 해주었기 때문에 쇼와 덴노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그 순간에는 몰라도 결국엔 이해 가능합니다.
제가 들은걸로는 당시 일본 왕실에서 쓰는 용어가 일반 민중들이 자주쓰는 말이 아니어서 제대로 이해못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는 이야기를...
이건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얘기를 안한거죠.. '그' 공동선언을 수락했다. 수년 간 전쟁을 했는데 뜻대로 안된다. 그래서 참기 어려움을 참아 공동선언을 수락했다. 너희들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이러고 수락한 공동선언의 내용은 일언반구도 없잖아요
@@candlecrown8717 하여간 빙빙돌려 말한것도 문제네요
왕실어 그런것도 아니고 그냥 문어체임…
@담배제조기 이우가 세종때 국문을 낭독하는 것과 같음.
지독한 호남지역 사투리. 그것도 존나게 퀘퀘묵은 전라도 옛날 사투리로 지껄이니 누가 알아들음.
누가 향문천에게 최초공개를 알려주었는가? 누가 알려주었느냐 이 말이야
3:16
무론 은 물론 의 오자가 아니고 물론 과 같은 뜻을 갖는 다른 한자어입니다
無論 논할 여지가 없다. 당연하며 타당하다.
일본어에서도 無論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저 항복문에선 固ヨリ(모토요리) 라는 어휘를 사용해서 헷갈릴수도 있다고 생각하네요
물론의 물(勿)이랑 무론의 무(無) 둘 다 없다라는 뜻
정작 알아들을수없어서 만세는 다음날 외쳤다는거...
저의 할머니는 일본인 집에서 저 방송을 직접 들으셨다고함...
조선말보다 일본어가 더 편했지만 당최 무슨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셨다고 해요
@안이디 이게 문어체인데다 황족들 언어라 배우신분들도 이해하기 어려웠데요
많은 조선인들이 광복을 16일에 알게된 것처럼 관련 영상 16일에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행복회로 돌려봅니다
15일 정오에 이게 방송됐다는데 뭔소리냐
@@thestrongestmanintheworld 항복 선언은 15일 정오에 방송됐지만, 들으신 것처럼 말도 빙빙 돌려서 했고 조선인들은 얼마 갖고 있지도 않던 라디오를 통해 방송해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16일에 광복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 이것과 관련된 영상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행복회로 돌린 거구요.
@@thestrongestmanintheworld 8월15일 정오에 방송이되었지만 일본의항복을 알게된사실은 8월16일 입니다
초중고등학교에 8.15광복에 태극기를 들고 많은 시민들이 만세 하는 사진을 보았을겁니다. 사실그거1945년8월16일에 찍은사진입니다.
오…
애널스카이형 힘들어..
최초 공개를 한건 그 시절 라디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느껴보란것이군
애널형 최초공개 이런스킬까지....
zzzzzz애널
이런 최신기술은 안도입해도 되는데..
Anal?
@@chupsj 외국인인줄 알고 식겁했네 ㅋㅋ
결론: 전쟁 항복, 조선의 독립 인정
근데 식민지배 대상국에게 저렇게 얘기하면 가오떨어지니까, 끝까지 지들이 뭔가 정당하단 것처럼 보내는 메시지로 어려운 한자를 고집해서 써가지고 장황하게 본질을 빗겨감
2:23
사죄를 거기다가 하면 안 되지
일본어를 꽤 오래 배웠는데 잡음에 어법도 요즘 일본 공통어랑 다르고 표기법은 더 달라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
맞아요. 저도ㅋㅋ
역사적 가나 표기법하고 구체자에 최고경어까지 써서 안 배우면 해석 못하겠더라고요 ㅋㅋㅋㅋ
히로히토 천황의 옥음방송은 어려운 한문투의 말투에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서 조선 사람들은 독립한 줄도 몰랐다네요.
헐....
일본사람들도 고학력 아니면 무슨소리 하는지 몰랐을듯😂
일본어 나름 오래 했는데 진짜 단어 너무 어렵다.. 저걸 알아들은 당시 조선 사람이 있으면 그게 더 대단한듯
미영중소의 4개국의 그 공동선언을 수락하노라 라고 했으면 아 해방이구나 한거지 뭐
항복이라는단어가 없는 항복선언문
대한밈국은 일본당
저는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 외노자에요
저희 할머니는 참 고달프게 사셨어요.
징용으로 잡혀가서 생사도 모르는 증조할아버지와
일본인 처로 조선사람과 결혼해 핍박받으며 사신 증조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답니다. 증조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만주로 길을 나섰고 이내 저희 할머니는 두 부모님을 10살 나이에
잃었다죠.
제가 꽤 괜찮은 곳에 일본취업을 했고...최연소
최초 한국인 매니저에 올랐을 때 아버지는 우셨어요. 그 옛날 조선인을 핍박했던 일본인들보다 능력을 인정받고 매니저에 오르게 된 제가 자랑스럽다고요.
21세기의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핍박받던 역사를 딛고 당당하게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조선 막장국가보다 덜 핍박받고 살았어요 조선왕조가 얼마나 백성과 동족을 인권착취 경제착취했는지 모르죠?? 노예가 40프로고 남은 농민들은 풍년때 생산의 20프로를 강탈해서 흉년때 고리대로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부라보 /////////////////////////////////대단합니다
이런 희귀한 자료를 올려 주시다니, 처음 들어봤습니다. 들으면서도 결국 자기 나라의 패망을 쉬이 인정하기 싫어서 중심 내용은 쏙 빼먹고 뭔 소리를 하는지 속 뜻을 파악해야만 이해되는 곁다리 문장들만 늘어놓았단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누구를 위한 종전 항복 선언문이었는지.
그냥 천황 자기 합리화 개풀 뜯어 먹는 소리...
27년생이시고 작년에 돌아가신 우리할매가 나 중3때 일제시대 이야기 하다가 황국신민서사 말하는거보고 충격먹었던 기억납니다
맨날 일본욕 하시던 우리할매 그렇게 고생하시고 돌아가셨을때 얼마나 울었던지...
이건 항복인걸 아는 상태야 이해할 수 있겠네요. 모르는 사람은 분명 뭐가 일본이 뭔가를 받아드린것 같은데 참 애매하겠네요
실제론 저것만 나온건 아니고 앞뒤로 아나운서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함"이라고 말해줍니다. 라는 만화에서도 해당 방송 나온 뒤에 "끝났네", "졌네"라고 하는 장면 나옴.
저 덴노는 내가 치킨을 뜯으며 듣는다는걸 알았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
가끔 이런 사건들을 직접 격으신 분들이 아직 살아있다는걸 인지할때 아득해짐...
@user-nq3bo6vw8s ?
日本人でも聞いただけでは何を言っているのか分かりません。文章を見ても理解するのは難しいです。当時の人もほとんど理解できなかったそうですよ。
あの頃戦争で負けだから頭が壊れたからかな
@@kkkonable
한국인의 입이 나쁜 것은 지금도 옛날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user-qh5oi9qv8c 니넨 얼마나 착하길래 비행기랑 어뢰에 사람태워서 군함에 들이박게하냐ㅋㅋ
@@user-qh5oi9qv8c우리나라 사람들이 니들 닮아서 입이 거칠다 이해해라
@@user-qh5oi9qv8c 壊れてんの事実だしなんの反論もできず口悪いって愚痴るの🤣笑っちゃう
우리가 졌다 (X)
더 이상 싸우면 우리가 멸망할 거 같으니 협상을 받아들인다 모두 힘내라 (O)
3:52 아릭! 모시! 소레! ㅇㅈ1ㄹㅋㅋㅋㅋㅋ
대깨 ㅇㅈ1ㄹㅋㅋㅋ
뭔 뜻인가여
미,영,소 아닌가요
@@mujoseon2021 아릭 소레는 대충 알겠는데 모시는 왜 영국인가요?
有り、若し(もし)、夫れ(それ)
아리, 모시, 소레
"(~신민과 함께)있으며, 혹여, 그대(백성)들(의 감정이 격해지는바~)"
입니다
진것이 아니라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위한 것이다 ㅋㅋ 참 대단합니다
03:52 스타카토 창법
이우(근대식 국어만 숙지)가 태조때 국문을 낭독하는 꼴 같음. 지도 잘 모르는 듯.
세줄 요약
1. 우리가 졌다.
2. 핵폭탄 맞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3. 고생한 사람들 생각에 맴찢
전쟁 졌지만 졌다고 말하기 싫은 정서가 진득히 베어나옴
그 와중에 무고한 사람들 죽였다고 고자질을 함(정작 니들은...)
전쟁 피해 입은 사람들 생각해주는 척 위선과 가식이 돋보임
포브스 선정 8월 15일에 가장 적절한 컨텐츠.
우리 할아버지가 15살에 전쟁 말 오키나와로 징집되어서 가려고 했는데 미군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후에 오사카( 보니까 본토상륙)로 배치 받는다고 기다리다가 일본이 항복했다고 다들 기뻐하는데 할아버지는 여기가 조선이였냐고 그때 알았다고 하셨네요 소학교에서 우리들 조선인이라고 했지 여기가 원래 조선이였다고는 말을 안 했대요
헐.....
헐
결국 돌려서 돌려서 말하는게 항복한다 이 뜻이로군. 자신들이 자신들 입으로 항복한다 이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 그렇게 말한거군.
그것도있겠지만 패전에 대한 일본 이외 아시아 국가에 대한 침략에 대해 책임을지고 사과를 하기싫다는거겠죠
물론 일왕과 전후 일본정부는 일본국민에게도 전쟁에대한 사과를 하지않았다고 봐야합니다 그 특유의 애매모호한 어투로 인해말이죠
항복선언 이후 본국송환이 진행됐고 조선행 운송선도 떴으나, 일본에 있던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만 배를 탈 수 있었다.
사할린(가라후토)의 조선인은 그렇게 남겨졌다.
8월 15일 광복 당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다가 하루가 지난 8월 16일 이후에야 해방소식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나라 청년층들은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공동선언'이 뭔진 끝까지 말 안하는ㅋㅋㅋ
다 알고 듣는 우리야 충분히 알아듣지만 당시사람들로서는
싫어하는사람이 주절주절 떠드는거라 열심히 듣는사람도 드물었을거고
요즘만큼 정보가 빠른것도 아닌데
끝에 말 듣고도 이게 완전 철수인지 강제점거의 약화인지 뭔지 몰랐을 듯
와 신자체가 아닌 정자체를 쓰는거 보니 신기하네요. 게다가 옛날에는 가타카나가 강한 문자라고 인식하여 저런 공문에 쓰여졌다고 들었는데 진짜인가보네요
여태 그냥 무조건 항복 선언인줄 알고있었는데, 발표에서마저 해방전쟁 운운하며 원폭 피해자 코스프레 했었네요. 아직도 극우가 설쳐대는 이유가 있었네 ㅋㅋ
이 당시 신문들을 보면 현재 극우들의 논리가 그대로 보입니다...ㅋㅋ 어째 이것들은 70년이 넘도록 발전이 없는지
대한독립만세입니다🇰🇷🇰🇷🇰🇷🇰🇷🇰🇷🇰🇷🇰🇷🇰🇷🇰🇷🇰🇷
일본에서 날을 맞이하니 더 감회가 새롭네요
독립운동하셨던분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탈무티 독립(獨立)
1.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2.독자적으로 존재함.
우리나라가 타국의 속국입니까? 본인의 어휘의 문제입니다.
@탈무티 어휘력 딸리시는거 티내지 마시구요 우리나라가 타국의 속국이 아닌 이상은 독립국이고, 독립국이 되었기에 '독립했다'라고 하는겁니다.
@탈무티 일제로부터 벗어난 것을 해방이라고 볼 수도 있구요, 일제로부터 벗어나 자주국의 기초가 되었으니 독립이라고 할 수 있는겁니다. 당신이 지금 말하는건 '바꾸다'라는 단어와 '수정하다'라는 단어가 사전적으로 다르다며 둘 중 한 가지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제에서 해방한 대신 미국 속국이 되어 지구상에서 혼자 무려 3년넘게 마스크백신 병신짓한 조선인들ㅋ
먼저 진주만을 기습해놓고 피해자인척하는 일본이 정말 역겹다
와 나였으면 한국어로 저렇게 이야기 했다쳐도 해방이고 독립이고 진짜 아무것도 감 안올것 같은데?
아니 이렇게 말하면 누가 일본이 항복선언한건지 아닌지 어케 알아.....빡치네.....
우리 고향에서는 1976년 여름에야 전기가 들어와서 1976년 9월 모택동 죽었다는 소식이 라디오로 들은 첫 대형 뉴스였다던데 1945년에 라디오 갖춘 집이 흔치 않았겠죠. 평안도 사람 이야기로는 그 지역에는 1930년대에 벌써 전기가 들어온 곳도 있었다더군요.
댓글 말이 전적으로 맞습니다! 라디오가 적었고 음질이 좋지 못했으며 일본어 화자가 많지 않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는 점에서 더 덧붙이면, 항복을 이해한 사람들도 일본 순사가 길에 나가면 있어서 좀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후부터 감옥 사람들이 풀려났고 그 다음날 실감을 했다고 하네요.
옥음방송엔 “나는 무지렁이 인간이다”라는 내용이 없다는건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일왕이 나는 빡빡이다 외치면서 10바퀴 돌아야 하는데 ㅋㅋ
쇼와의 인간선언은 1946년 1월 1일에 이뤄졌음. 이땐 아직 자칭 현인신이던 시절.
여러분은 “너네 독립했다”를 5분동안 말하는법을 보고 계십니다
이거 일본어 좀 하는 사람도 잘 알아듣기 힘들더라고요..
일어 특유의 만연체.. ㅋㅋ
@@dynastiummappinganimationp4046 過去에는 prolix style이 知識人 層에서 脚光받았던지라.. 昔之米國 高位層 識者들의 address들 보면 大抵 蔓衍體인 걸 確認할 수 있죠.... (링컨은 除外)
Modern japaness가 아니라 약간 戰國時代的日本古文 느낌이라서.... 日本語를 上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漢文이나 1900秊代 新聞을 많이 學하거나 讀한 사람이 아니라면 못 알아듣는 게 아마도 正常일 거에요...
@@미기엘라이 아니 근데 신기한게 저따구로 써놨는데 왜 다 읽히냐
@@greathistorymapper 좋은 거에요. 님이 平素에 热心히 勉强했다는 證이에요.
4:00
= 국민 니들이 나대서 미영중소의 눈에 거슬리면 내 목 날아가니까 제발 알아서 잘 처신해라
향문천님 중세 국어, 근대 국어 등의 흔적이 그나마 많이 남아있는 한반도 곳곳의 지역 방언에 대해 영상들을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요즘도 몇몇 사람들이 방언을 사용하고 있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방언을 별로 쓰지 않는 사람들도 매우 많아졌고 우리 말씨의 유래와 역사를 잘 알 수 있는 방언, 특히 옛 방언(일제 이전)에 대해서도 영상을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의 지역별 방언과 전근대의 지역별 방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실담어를 찾아보세요
독일 항복과는 다르게 뒤끝 오지는군요
독일도 항복 직전에 연합국한테 자기네랑 동맹 맺고 소련 치자고 함.
자꾸 독일 끌고오는데 독일도 존나 추한 국가중에 하나였음.
강대국들이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있으니까 어쩔수없이 사과한거뿐이지
나마비아 학살 100년만에 첫 사과하고 피해자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
독일은 나치 관련 인물들은 망명, 자살, 처형 됬지만 일본은 아직도 그당시 정부가 현재까지 유지됨. 냉전 때문에 일본 전범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게 문제였음
@@boji_jaji 일본은 나쁘고 독일은 인정할거 다 인정하는 착한 국가이며 일본은 독일과 비교되어 천벌에 임해야한다. 라고 가르치는게 대한민국 언론과 교육계. 답이 없음
@@zjelukjsxhr 독일도 주요 A급전범 빼면 전부 처벌이 미흡했죠.
그리고 능력있다는 이유로 나치의 전범에 가담했던 인물들도 독일연방군에 대거 포함되었었구요.
오늘도 좋은 컨텐츠 감사함니다!!!
이걸로 비문학 지문내면 정답률 얼마나나올까
가타카나와 한자가 가득한 문서.. 그 와중에 사용된 한자도 실생활에 자주 쓰는 것도 아니고 한자들을 알아도 내부의 뜻을 몇 번 이나 생각해야하는 글.. 이정도면 일본인들도 제대로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한국어 번역도 잘 모르겠어요ㅋㅋㅋ
@@GGolfemiKimchiboGDetector 그건 니가 멍청한거
@@carol-sf6qz 시비충특: 결핍 있음
@@GGolfemiKimchiboGDetector 자아성찰 굿
그당시는 가타카나로 공문서가 대부분 쓰였고 사람들도 정자체를 다 알았으며, 지식인층에서는 언문일치 전의 형태도 익숙했기 때문에 형식상에서는 괜찮았으나 내용자체를 너무 배배꼬았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입니다.
선언문 같이 격식 있는 글은 가타카나로 표기하나요??
메이지 이후에 신문이나 선언문 등을 보면 다들 가타카나로 적혀있더라구요.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히라가나 표기법이 도입된 것은 미군정 때입니다.
옛날엔 가타가나 씀
지금도 천황의 말은 가타카나로 표기합니다.
@@Stu20966 천황의 말을 전할 때도 가타카나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이미 대부분이 히라가나로 잘만 쓰고 있는데 천황에게만 가타카나 쓰는 것도 이상하죠
실제로 조선에서도 드라마처럼 8월 15일 정오 되자마자 태극기들고 거리로 뛰쳐나온게 아니고, 뭔소린지 모르고 있다가 8월 말 9월 초 되어서 일본 관공서들 철수 하는거보고 그제서야 짐작했다죠
항상 감사합니다 애널스카이님
진짜ㅋㅋㅋㅋㅋ
이정도면 일본인들중에도 어느정도 배워야 알아듣겠네요 황제라 그런지 어려운 어휘를 많이쓰네요
쇼와는 전후 전쟁의 책임이 없는 허수아비로 평가 받았으나 현재로 들어오면서 쇼와 천황이 보급에 대해서 신경을 쓴 기록이 발견되고 그가 전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는 것이 학계에 정설로 자리 잡으면서 전범으로 보고 있으나 죽기 전까지 처벌받지 않고 편안하게 죽은게 너무 아타까움
영상내용과는 별개로 영상에 쓰인 역사적 가나 표기법이 궁금하네요
다뤄주세요 애넔카이 센세
다시봐도 일본항복방송 흥미롭네
그냥 졌다 항복했다 미안하다 세마디만 될걸 구질구질하네
참고로 영상에서 보면 미 영 지 소라고 하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지나라는 명칭은 이무 문제 없이 중국이라는 뜻으로 일본에서 통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영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지요
단지 China(차이나)의 음차일뿐이죠 차라리 중화사상 가득한 이름보다 지나가 더 나은거 같아요
1:50 리틀보이 리뷰도 있네요 150포인트 받으셔야겠네
어러운 말로 빙빙 돌리던 연설이었던데다가 옥음이 녹음된 레코드 자체는 사용할 수 없었고 그 복사본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음질이 좋지 않아서 옥음 자체는 전혀 이해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옥음이 끝나고 즉시 라디오 아나운서가 해석하는 내용을 방송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예 몰랐다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라디오는 커녕 차가 다닐 도로도 없던 깡촌에 사셔서 그런지 8월 20일 읍내 장날에 장보러갔다가 광복된줄 아셨다고 하시더만요!
들을 때마다 미치고 환장하겠어요 일본의 그것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어야할 인간이 아무런 처벌도 없이 천수를 누리고 간게 분할뿐이다. 오늘날 일본이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게된 거도 다 이 자가 처벌을 받지 않아서이다.
근데 당시 일왕한테 이거해라 저거해라 할 실권이 있었음? 막부시대부터 제국주의 시대까지 일왕은 쭉 허수아비 아니였나 거기다 오죽하면 항복 반대파가 항복음성이 녹음된 LP 없앨려고 왕궁도 습격하고?
@@sdgd-jv5bx 메이지 유신 일으켜 일왕이 실제 권력을 갖게 됨. 물론 실권은 총리가 가졌더라도 오더를 내리는 정치 행위를 했었음.
대통령도 지맘대로 편하게 욕하니 천황이 우습나보네 형장의 이슬로사라졌어야할 인간이라니.. 직접보면 오금부터 지릴놈이 ㅋㅋ
@@날두TV-p1v옘병하네 가까이서 보면 개보잘것없이 힘좆도없이 생긴게 히로히토다 븅신아
@@날두TV-p1v 당시 천황은 신이었어요...덴노를 모욕하거나 비난하면 그 자리에서 목을 잘랐어요...그리고 그 일족은 모두 투옥돼 옥중에서 다 죽였어요...재판도 필요없고....
이런 자를 죽인 사람은 엄청난 은사를 받아 거부가 되었지요...이런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요...국적을 죽인 가문이라면 최고의 명예가문이 됨...북한과 똑같음...김일성 신과 신족들이 통치하는 나라가 북한임....
와 대박……. 얼른 듣고싶어요
"원자폭탄 이따이데스.혼또니 스미마센"을 참 삥삥돌려서 구질구질하게도 써놨다
찹쌀떡 장수 목소리 같음
장제스 승전 연설 듣다가 이거 들으니까 희바가 극명하게 갈린다....
이래야 일본이지!! 정말 일본다운 방송이다!
진짜 이딴 댓에 좋아요 66개나 처박혀있는것만 봐도 ㅈㄲㅁ들 수준 알 수 있을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규윤-c2u 왜 화남?
@@kiev._Russian_Federation 누가 화남?
@@kiev._Russian_Federation 난 그냥 되도않는 국민성 드립치길래 국뽕충들 정신승리 하는거 미러링했을뿐임 ㅇㅇ
'시운이 기우는 바'가 킬포인트. 여기서 정전 조약 정도는 되는 것을 맺음을 암시함. 여기서 변수는 일본제국에 이것이 얼마나 불리한지 정도(기울었으니 당연히 일본의 항복 혹은 적국 요구에 불리하더라도 응한 것 혹은 일제가 제안한 자신들에 불리한 정전 조약).
솔직히 말해 원폭 이후의 항복은 일본이 몰락 작전을 당하지 않는 대가가 되었으니 무조건 항복이어도 차악(최악이 아닌)의 협상이었다 할 수 있겠죠.
추가) 미국 수뇌부와의 협상으로 겨우 황위를 지켜낸 쇼와 천황은 "국체를 호지하며(보호하여 지니며)"라는 부분에서 군주국(황국)으로서의 일본의 상태를 겨우 지켜냈음을 암시한 것 같고, "충량한 그대 신민" 부분에서 간당간당했던 황위 수호에 대한 자신의 심리를 '그대 신민들이 보수적이고 굳건한 민심(여론)으로 짐의 황위를 보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공화제에 반대해 달라'는 듯한 느낌으로서 은연 중에 드러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감정이 격해지는 바"는 황실 혹은 국가, 야마토 민족을 위해 과격하게 본토에서 폭동을 일으키거나 주일 미美 점령군에 훗날 폭력을 행사해보려 하는 극우 급진파들이 없기를 바라며 미리 이에 대해 언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입니다.
p.s.) 킹어 킹등급(언어 1등급) 님들 나와주셔서 더 중요한 킬포인트 좀 찾아주세요...
추가)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제맹방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노라' : 이테리, 도이치 개새끼들아 ㅠㅠ 이번엔 널 믿었다고!
@@철중윤-m6e 오 그렇네요
@@doo_doo12 여기가 전쟁 국면에서의 일제의 유불리함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부분인 것 같네요
@@철중윤-m6e ㄹㅇㅋㅋ
히로히토 천황이 끝까지 책임을 피하려고 빙빙 에둘러 말한듯 하네요.
물론 패전의 책임을 피하고 싶은 다른 높으신 분들의 의도도 섞여서 무슨말을 하는건지도 알 수 없는 방송을 했겠죠 뭐...
대한민국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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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까지만해도 일본에서 일왕은 신처럼 모셔지는 존재
연합군이 군부세력만 숙청하고 일본왕가를 살려주는 대신
일왕의 인간선언을 하게함
일왕이 자신은 인간이라고 한걸 듣고 충격받아 자살하는 사람도 나왔음
이게 일반적인 일본어가 아니라 방송나간 이후에도 일반 국민들은 무슨 방송인지 몰랐다던데 트루?
일왕 쇼와가 옥음방송을 문어체 일본어로 봉독(낭독의 일본왕실 용어)하는 바람에 일왕의 봉독이 끝나고 아나운서가 구어체 일본어로 해설해서 다시 낭독했다 합니다. 구어체 일본어로 다시 낭독했어도 교육을 받아 100%는 아니라도 어느정도는 알아들을수 있었던 일본인에 비해 식민지 조선에선 교육을 받지못해 잘 알아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