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舟】天神의 나라 고조선_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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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ноя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21

  • @yusrakim644
    @yusrakim644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단편적 내용이지만, 그러면서도 웅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오묘한 시대상황이 연상되었숩니다. 감사합니다. ✨️♻️💜

    • @decipherQ
      @decipher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먼저 영상시청에 감사드립니다.
      고조선의 역사는 국뽕이 아니라, 고조선 시대에 남긴 금문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문자학, 음운학, 인류학, 고고학, 지리학, 생물학...등등 각 방면의 학문이 종합적으로 이루어내야 하나의 역사가 확인되는 것입니다.
      고조선은 오늘날 중국 대륙에 문명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중화였으며, 이 또한 사람의 씨칭이었습니다. 본디 우리를 표현한 중화, 일본의 내용을 빼앗기고도 빼앗긴 줄 모르며, 껍데기만 남은 호적불명의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영상은 흥미위주의 구독자 수집을 배격하며, 한민족사의 줄기를 복원하는데 작은 발걸음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상제작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나 구독요청을 가능한 자제하고 있으며, 45분 가량 집중할 수 있는 분들이 영상시청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서토에 문명을 최초로 심었던 최초의 중국이었으며, 이런 자긍심을 표현한 것이 가락국 김수로왕이 자신의 나라를 『중국』이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영상시청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추수-y4s
      @추수-y4s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혜수홍
    @혜수홍 8 месяцев назад +4

    고맙습니다.
    배달조선의 언어가
    여기서 부터 나옵니다.
    감사드립니다.

    • @decipherQ
      @decipher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영상시청에 감사드립니다.

  • @이도연-m3u
    @이도연-m3u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朝 에서의 月은...
    갑골. 금문. 소전이 각각 다르군요.
    소전체는 舟로 볼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갑골은 月이죠.
    금문의 경우는 SS 형태죠?
    川으로 된 금문의 朝도 있는듯 합니다.
    그러므로...
    朝의 갑골이나 금문을 舟로 볼수는
    없을듯 합니다.
    구글검색 해보니...
    들. 흘....등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쪽에 공감이 갑니다.
    주 라는 발음이라면 오히려..
    朝의 좌변쪽이 朱와 연관돼 보이지요.
    帝는 朱와 관련있어 보이고요.
    朝의 왼쪽은 早와 旦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원조 글자는 旦이라 할수 있겠지요.
    아침 단(旦). 아침 조(早).
    훈(訓)이 같은데 음(音)이 다르죠?
    이는 ㄷ/ㅈ 변화의 일환일듯 합니다.
    즉 早는 '조'가 아니라 '도'라는 거죠.
    旦부터 고문자를 살펴보죠.
    갑골문은... 日口 로 보여요.
    旦의 금문은 매우 흥미롭죠.
    땅콩 모양인데 비스듬히 기울어있죠.
    그리고 땅콩의 윗쪽은 日이겠고요
    땅콩의 아래부분 ㅛ 형태는 ●식으로
    까맣게 칠해지죠.
    그러므로...
    旦에서의 ㅡ 은 丁의 갑골 금문과
    같은 자소라고 여겨집니다.
    즉. 旦은 日丁 을 세로 쓴 것이죠.
    丁 ㅡ □갑골. ●금문.
    矢나 朱의 금문 중간에 • 형태도
    연관성이 느껴지고요.
    旦에서 파생된듯한 豆를 살펴보면..
    금문의 ㅛ 부분의 아래획이 비스듬히
    올라가요. 왜일까요?
    그것은 旦의 금문과 연관 되겠지요.
    日은 태양 이라고요?
    저는 '날' 이라 여기지만요.
    뭐 태양/햇님 이라 하고요.
    그럼 旦의 ㅡ 은요?
    땅이라고요? 글쎄요....
    본래는 땅이라기 보다는 '그늘' 에
    의미 아닐까요?
    즉. 햇살이 비추는 형상인데요.
    정수리에서 쨍쨍 작렬하는게 아니라
    비스듬하죠. 그러므로...
    정오(正午)가 아닌 아침이죠.
    그리고 해일(日)이 아니라
    날일(日)입니다.
    훈(訓)이 그래요.
    우리말에서 날/해 는 다른 개념이죠.
    날이 밝은것과 해가 밝은것은 달라요.
    날씨 ㅡ 일기(日氣).
    오늘(오날) ㅡ 금일(今日).
    내일 ㅡ 명일(明日).
    명일(明日) ㅡ 밝은태양 인가요?
    밝은 날 이지요.
    우리말에 '날' 의 뜻을 되새겨 봐야죠.
    날씨. 날개. 칼날.....
    날 일(日). 날 비(飛). 날 생(生).
    날 출(出)....
    일(日)의 금문은 ⊙형태죠.
    ⊙이 태양이라면? • 은 뭘까요?
    설마.... 태양의 흑점? 까마귀?
    시(矢)에서의 • 은 '살' 이죠?
    시알. 씨알. 알입니다.
    이렇게 볼때 일(日)은...
    "나ㅎ + 알 ㅡ 나알 ㅡ 날" 이겠습니다.
    즉 ㄴ에는 생(生). 신(新)등의 의미가
    있는거죠.
    日 ㅡ 旦 ㅡ 早 ㅡ 亘 ㅡ 스日丁 ㅡ朝
    ㅈ/ㄷ 변환하면? 아침 도/조(朝)
    아침 조(早)/아침 조(朝) 훈(訓)이 같죠.
    조(早)는 이를 조(早)이기도 합니다.
    이를 조(早). 이를 도(到). 이를 지(至).
    이를 언(言). 이를 운(云)...
    至/到 에서 ㅈ/ㄷ 변화를 볼수있죠.
    물론 到의 발음요소는 刀이지만.
    至와 到의 의미는 같은거죠.
    지 발음이 도 라고 바뀌면서...
    刀가 추가된것 뿐이죠.
    이를 지(至)/이를 도(到)
    무엇이 느껴 지시나요?
    중국어에서 ㅈ/ㄷ 또는 ㄷ/ㅈ 변화
    찾아볼수 있나요? 됴타/좋다
    곶됴코/꽃좋고... 텬디/천지
    천(天)의 고어가 텬이였죠.
    중국어의 영향일까요? 아닐겁니다.
    본디 발음이 텬이겠죠.
    天의 상단 ㅡ 획도 ... □●입니다.
    즉. 天 ㅡ 丁大 라는거죠.
    丁은 丁丁 ㅡ 정정 ㅡ 쩡쩡 ㅡ 쨍쨍
    울림을 의미하는 자소입니다.
    丁 ㅡ 于 ㅡ 亐 ㅡ 兮.... 계열로 봅니다.
    丁大/大丁 ㅡ 天
    大:크다. 한
    丁:울림. 울
    그래서 한울/하늘 이지요.
    텬:티언. 트이언. 트여진. 트인. 틔인.
    한울 텬/하늘 천(天)
    한바다. 한가을. 한가득...
    단군 이야기에서 나타나듯이..
    아사달의 위치는?
    큰강변 아니고요. 들판도 아닙니다.
    산이였죠. 산.
    터키의 괴베글리 테페 유적...
    근자에 발견된 유적으로 탄소연대
    측정결과 일만년전 이라고 하지요.
    농경이나 유목문화 였을까요?
    수렵문화일 것입니다.
    수렵/가축 문화지요.
    울산 반구대 암각화.
    농경이나 유목생활 그려 지던가요?
    수렵(狩獵)과 연관될 뿐이지요.
    더욱이....
    조(朝)의 좌변은 동(東)으로 그려진
    금문도 검색이 되는군요.
    동(東)에서는 日이 아니라 田이죠.
    속(束)과도 연관되고요.
    겨레 라는 말을.... 무쿠리 라고
    하는 곳도 있다더군요.
    묶을 속(束).... 무쿠리죠.
    묶인꾸러미 ㅡ 무꾸리/무쿠리
    한겨레/한꾸러미/한꿰미
    전(田)은 우리나라의 윷판 암각유적.
    마을 리(里)를 표시해 놓은거죠.
    활 사냥터 입니다.
    1리(里) 400m 는 화살이 닿는 거리죠.
    경작지/농경지 를 400m^2 넓이로
    나눌 이유가 별로 없지요.
    리(里)는 거리의 단위 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활문명/수렵생활 문명에서
    생성된 문자이니까요.
    문자(文字)는 신석기 시대에
    생성된거죠.
    초기에는 말을 적었든것이 아니죠.
    애초에는 그림 이였으니요.
    그림이 상형(象形)입니다.
    그림은 말이 아니지요.
    반구대 암각화에는 각종 고래가
    망라되어 있어요.
    이런고래 저런고래 그런고래...
    각각의 이름이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유년기 시냇물에서
    천렵(川獵)을 할때에...
    피라미.송사리.갈겨니.마자....
    이름들을 모두 알았습니까?
    아니죠? 그냥 물고기였어요.
    즉. '날' 이라는 의미를 그린것이..
    日. 生. 出. 飛... 등이라는 겁니다.
    피라미도 물고기 송사리도 물고기듯이
    日도 날이고 生도 날이며 出도 날이였죠
    날개도 날이고 칼날도 날이라는 겁니다.
    상형문자(象形文字)는 기호가 아니라
    상징이고 '심볼' 이였다는 것이지요.
    矢도 살이고 至에도 살이 들어있고
    侯에도 살이 있어요.
    태극기 형상을...
    이곳저곳에 사용하는 것과 다를바없죠
    국깃대에 달기도 하고 옷에 박아넣기도
    하며 모자에도 뱃지로 달아요.
    상징의 쓰임이지요.
    그래서 언어와 문자는 달랐던겁니다.
    중국어는 문자에 동화된 언어죠.
    다민족 통일제국 이다보니 말이 통하지
    않아요. 그러니 필담(筆談)을 하는거죠.
    그렇게 언어와 문자가 표준화 된거죠.
    진나라 이사가 그랬고..
    한나라때도 표준화가 진행 되었겠죠.
    말이 표준화 되면?
    존댓말이 사라지고 최소한의 정보만
    전달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제주 방언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죠.
    한양 양반들 언어와 제주 토착민 언어가
    만나서 표준화 된것이 제주방언이죠.
    하십니까? ㅡ 함수과?
    가십니까? ㅡ 감수광?
    언어가...
    [ 압축. 생략. 통합. 변환. 왜곡] 됩니다.
    니하오? 爾好 ㅡ 너 좋아?
    영어에서의 you good? 입니다.
    니먼하오 ㅡ your good
    다민족 국가의 언어지요.
    이런 때문에...
    "문자(文字)와 서로 잘 맞게된" 겁니다.
    말이 문자를 따른 것이지요.
    전자(篆字)부터 상형(象形)이 퇴색
    되다가 한(漢)대(代) 예서(隸書)에
    이르면 상형문자로 보기도 어렵죠.
    그냥 뜻글자일뿐 상형문자는 아니죠.
    더욱이 간체자는 극단적으로...
    뜻글자일뿐 상형과는 거리가 멀어지죠.
    그러니...
    기호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괴상한 문자가 되어 버린겁니다.
    矢나 至를 보고 화살을 연상할수
    없다는 것이지요.
    고문자를 보아야만 화살의 형상이
    명료하게 나타납니다.
    상고시대로 갈수록 형상은 리얼해지죠.
    청동기시대 암각화는 피카소 추상화
    만큼이나 알아보기 어렵지만...
    구석기 알타미라 동굴벽화 황소그림.
    아주 잘 그려져 있지요.
    반구대 암각화도 그래요.
    신석기 면새김 기법의 고래는
    그 종류 까지도 알아볼 정도지만.
    우측의 청동기 선새김 기법의 동물은
    뿔이 없다면 절대로 사슴인줄 모를
    정도지요.
    삶이 각박해져서 대충 새긴거죠.
    바빠졌거든요. 시간이 없어서뤼...ㅎ

    • @decipherQ
      @decipher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2

      먼저 영상시청에 감사드립니다.
      님이 아셔야 할 것은 조선이란 글자는 고조선 시대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갑골문은 최초의 나라 실제 고조선 시대보다 적어도 900년 이상 후대에 등장한 글자라는 점입니다.
      최근의 고고학 발전으로 갑골문의 시작이라 추정할 수 있는 '눈(目)'이 새겨진 갑골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래서 갑골문이 은나라 시대에 처음 나타났다는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표하기도 합니다. 즉, 문자의 시작과 더불어 갑골문도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이해할만한 것이 문자가 있었다면 돌, 나무, 짐승뼈, 청동기물...등 어디에나 같은 글자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는 신석기 시대에 생성된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자의 기원은 고조선 시대였던 것이고, 영상에서도 신농임금님은 신석기 시대말기에서 청동기 시대로 진입한 개벽조라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고대 상형문자들은 한결같이 신농임금님의 씨칭과 토템으로부터 수만자가 파생되었다는 점입니다.
      눈사람은 한 주먹의 눈으로부터 덩치가 커진 것이고,
      끝말잇기 역시 최초의 발음이 연결되어 전달되는 것처럼 우리가 아는 한자를 소급해 올라가면 그 최초는 천신 신농하나님의 씨칭과 토템(상징)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상형문자들은 모두 사람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그래서 중국의 문자학자들 역시 고조선 시기의 문자에 대해서는 누구도 풀지 못하고 그냥 탁본만 전해지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조선인이 아니고, 지나인의 사고로 보기 때문에 이해불가능인 것입니다.
      중국의 저명한 문자학자 이학근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갑골문의 글자의 숫는 이미 실생활에 사용되는 3천여자를 넘었다. 그러므로 은나라 시기의 갑골문은 최초의 문자가 될 수 없다"
      이분 역시 문자가 어느날 갑자기 생길 수 없다는 것은 이해했던 것입니다. 문자의 시작에 대해서는 묵언 중이었지만...
      또 다른 하나 아셔야 할 것은 초기의 청동금문이 은나라 갑골문보다 약 1,000년 가량 앞선다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최초의 글자로 볼 수 있는 신농임금님의 씨칭 │자가 표현된 화폐가 사고전서/전록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 자체가 神이란 글자의 출발이고, 申, 神, 父, 尹, 中, 十, 朝, 韓...등의 글자가 직접적으로 │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토템이 되는 │의 상징인 ㅇ(해), 🔥(불, 염제) 이 3요소가 조합되어 오늘날 전국의 우리 박물관 유물에 형태나 고조선 시대의 상형문자를 품고있는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사지왕도, 고령 토제방울, 백제의 남근목간(立立立)과 도깨비 파편, 초대형 기와의 '天主', 금관,...등등 허다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유물의 상징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며, 알게되면 유물의 형태, 상징, 글자 등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문자는 그림으로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내재적 규칙과 계승관계를 통해 글자의 수가 증가되었고 은나라 갑골문은 5천자가 넘는 글자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자의 기원은 논할 수 있겠지만, 어느 민족, 누가 만들었는가의 논쟁은 무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s) 오늘날 한자의 기원이 되는 고조선문자는 글자를 역추적해서 기원되는 글자가 │, ㅇ, 🔥의 3요소를 출발점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조선 시대 이전에도 보다 원시적이기는 하나 더 이른 시기의 문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절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해석이나 관련성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한산-v8s
    @한산-v8s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지금 이걸 맞다고 설명을 하고 있나? 정말 골때리네. 역사도 모르고 용어개념도 없이 마구잡이로 설명해서 세상사람을 호리는 것은 인류사의 죄짓는 일이다. 대오각성하고 공부해야 한다. 공자나 사마천은 전부 역사를 조작하고 사기친 인류사의 역적놈에 불과하다. 공자와 사마천의 이야기는 가려서 들어야 한다.
    1. 帝제와 侯후의 구별
    帝제는 세습을 하는(할 수 있는) 작위이고, 侯후는 천자(단군임금님)앞에서 직접 활을 쏘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작위와 封地봉지(領地영지)를 받은 사람을 말하며 원칙적으로 세습이 되지 않는다(자손에게 세습을 할려면 엄청난 공헌을 쌓아야 하고 그 자식도 또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니 차라리 그 자식이 활을 쏘아 侯후 작위를 받는 것이 오히려 쉽다.)
    2. 세습제는 신농의 직계자손 8대 유망까지 세습제였고 나머지는 세습제가 없다. 다 역사조작이고 거짓말이다.
    3. 지나쪽 역사 계보.
    지나쪽 역사는 우리의 방계역사에 해당한다. 천자는 신시개천 한웅천왕님 이었고 단군임금님이 천자이고, 지나쪽 인물은 帝제와 侯후에 해당한다.
    신시개천 제5대 태우의 한웅천왕 천자께서 자신의 열두번째 막내아들 태호복희씨와 막내딸 여와에게 재세핵랑군을 딸려보내 서장을 개척하라고 명하고, 태호복희씨가 서역을 교화하러 가서 대를 잇지 못하고 여와에서 대가 끊어진다. 이때 태호복희씨가 황하(지금의 대륙에 있는 황하라고 비정하지는 말자. 일딴 황하라는 강가에서) 용마의 등에 그려진 그림 하도를 얻고 복희팔괘를 그었다(도출해 내었다).
    대를 잇지 못하자 신시개천 제8대 안부련한웅천왕께서 신하 소전을 다시 서역을 개척하러 보냈다. 소전은 발과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 장남이 신농이고 둘째가 욱이다.
    첫째 신농은 인물이 출중하여 안부련한웅천왕께 인정을 받고 帝제 작위를 부여 받았다. 그래서 염제 신농씨가 된거다.
    염제 신농씨는 8대를 이어 유망때 헌원에게 패망하는데, 이 헌원이 인류사의 역적놈이다.
    헌원의 가계를 살펴보면, 안부련한웅천왕의 신하 소전의 차남이 욱이고, 욱은 미욱하여 제 작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빈한하게 살았다. 그러다 9대가 계곤이고, 10대가 헌원이다. 그러니까 헌원은 안부련한웅천왕의 신하 소전의 11대손이 되는거다.
    이 헌원이 군대를 동원하여 자기 큰집인 유망을 쳐서 권력을 찬탈하는 반역이 일어났고, 유망의 군대까지 합쳐서 신시개천 제14대 자오지한웅천왕(치우천왕)께 대들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게 탁록대전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헌원이 패하여 한웅천황의 변방 호족세력으로 남았다. 천자인 차오지한웅천왕이 헌원에게 帝제 작위를 부여한 역사가 없다. 그러므로 헌원이 황제가 될 수가 없는 것이 정설이다.
    헌원이 帝제 작위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 소호금천이 帝제가 될 수가 없었고, 그 다음 전욱고양 - 제곡고신 - 지 - 당요 - 우순까지 帝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놈이 전부 帝제 칭호를 붙이고 사마천이 역사서 사기를 지으면서 확대재생산해서 세상을 어지럽힌 것이 팩트다.
    서경 우서 순전에 나오는 동순망질 사근동후 대목을 보면 순이 장인 당요를 감옥에 가두어 죽이고 자기 친삼촌 곤을 죽여서 정권을 찬탈하고 천자노릇을 하면서 도량형을 맞추고 태산에 올라 봉선(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 천제를 지낼수 있는 사람은 천자밖에 없다. 당시 천자는 단군임금님이었다. 이거는 예기 사의를 보면 천자가 단군임금님임을 바로 알 수 있다.) 한다고 쌩 쑈를 하고 난리를 친 후 태산을 내려와서 동후를 배알했는데, 이 동후가 단군임금님의 장남 부루태자 였다. 부루태자를 만나 내가 동생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당요를 제압하고 세상을 화평해게 했으니 帝제 작위를 부여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이 대목이 동순망질 사근동후 대목이다.
    천하의 패륜역적놈이 제작위를 달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던 부루태자는 돌아가 있으면 천하제후회의를 열어서 제 작위를 정하겠다 이렇게 효유하고 우순을 돌려보내고 양자강 회계산에서 도산회의를 열고 금간옥첩(오행치수법)을 곤의 아들 우에게 제수했다. 이 우가 오행치수법으로 황하의 물길을 잡고 백성의 신망을 얻어 아비 곤의 원수 우순을 창오의 들에서 잡아 죽이고 하나라를 세워서 하우씨가 되는게 역사의 진실이다.
    帝제와 侯후도 구별하지 못하고 역사를 설명하니 중구난방 배 Boat가 산으로 간다.
    4. 배 舟주자에 대하여.
    배 주자를 “주”로 읽으면 안된다. 그냥 “배”로 읽어야 한다. Boat 배가 아니라 잔 盃배의 배로 읽어야 한다.
    “잔”이 무슨 뜻이냐? 잔은 샤먼의 언어다. 잔은 크고 신성하며 깊고 푸른 호수를 “잔(盃, 舟)”이라 한다.
    그러니까 아침 해뜨는 크고 신성하며 깊고 푸른 호수(잔盃, 舟)에서 제사를 모시던 사람(부족)이 朝조가 된다.
    잔이 무슨 뜻인지 모르니까 중구난방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잔의 뜻을 분명히 알면 엉터리 설명을 극복할 수가 있다.
    잔은 크고 신성하며 깊고 푸른 호수를 뜻한다. “크고 신성하며 깊고 푸른 호수”를 형상화 한 제기가 “잔(盃, 舟)”인 것이다.

    • @decipherQ
      @decipherQ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정말 x때리는 댓글이네요.
      帝와 侯.
      이 글자들의 기원이 전혀 다르고 무관한 것을 이해 못하는데서 비롯한 비극입니다.
      어디서부터 손 대야할지 견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문자의 기원부터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라는걸 말씀드릴 수 있겠고, 후대에 고정변형된 개념을 최초의 글자에 소급적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개념도 영상의 중간 중간에 설명을 드렸는데 아마도 제 영상의 특정한 부분만을 가지고 평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단군을 주장하시는데 저도 단군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군혼사회 → 족외혼 → 푸나루아 모계사회 → 부계사회의 과정을 밟습니다. 단군은 이 중에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의 기록입니다. 즉, 단군 이전에 모계사회로 운영되는 나라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고조선이며, 단군조선은 고조선 이후의 나라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 세계 인문학 50대 명저 중 하나인 『고대사회』(Henry Morgan 저)에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고조선 사회는 푸나루아 모계사회였으며, 단군조선은 이를 벗나고자 했던 이후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초기상형문자 기록으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용어가 들쑥 날쑥이라는 말씀은 이해합니다.
      댓글 단 분은 초기 상형문자에서 수백 년 후에 나타난 개념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데, 님은 한참 후대의 개념을 주장하십니다. 당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먼저 帝와 侯.
      먼저 帝라는 글자는 초기 금문에서 │→ 申 → △ → ▽을 거쳐서 나타난 인칭을 기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 帝가 시작된 최초의 글자, 곧 시체자(始體字)란 뜻입니다. 이 최초의 帝자인 ▽는 천신 │(신농 임금)의 외손자인 소호금천씨의 씨칭입니다.
      혹시 이 설명이 생소하다면 님은 제 영상을 제대로 보시지 않았거나, 단편적으로 보고 댓글 다신 분이 분명합니다. 역사를 편식하신다는 반증이 될 것입니다.
      님은 단군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단군(檀/壇君)이라는 발음이 은나라 시대에는 『tərə, kərə​/kənə​』로 읽혔습니다.
      이 발음이 수천년 지나는 동안 노암 촘스키의 음운이론에 따라 현재의 발음으로 변화되어 온 것을 한국의 학자가 밝힌 내용입니다.
      그러면 최초의 인물로 등장하는 환인(桓因)은 어떨까요?
      『gəsər​, gən​』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음과 다르게
      환인: 『gəsər​, gən​』
      환웅: 『gəsər​, gəm​』
      단군: 『tərə, kərə​/kənə​』
      즉, 단군은 본래 『다라칸(카나)』로 불렸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검(王儉)은 『gərə​/gənə, gəsərə』로 불렀습니다.
      즉, 단군의 개념은 『하늘의 해처럼 빛나는 신의 계승자』의 뜻이 됩니다.
      신석기 말기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해와 불을 상징으로 하여 신(神)으로 불린 인물은 딱 한 사람!
      천신 신농임금 뿐입니다.
      그 한 사람만을 나타내는 문자가 神의 시체자인 '│'이며, 이 분 당시에 제조된 청동화폐가 청나라 건륭제 당시까지 실물이 있었고, 이후로는 변란기를 거치면서 행불이 되어버렸습니다.
      씨칭 │과 함께 신농임금의 별칭인 『ㅇ(해), ​🩸(불꽃)』 의 3요소가 수많은 우리 고대유물에서 표현되며, 때로는 혼합되어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런 예는 산동지역의 대문구문화 후기유물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런 설명들은 모두 제 영상에서 수차례, 때로는 길게 영상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댓글 달기 전에 제 영상을 진지하게 보신 분이라면 적어도 문자의 기원과 발전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사마천 뿐 아니라 우리 문헌에 등장하는 버전별 단군신화와 역사서 등의 이해못할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아실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단군신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군보다 환인, 환웅임을 알려드립니다.
      단군신화는 환인, 환웅의 연장선상에 있는 후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 최고의 인문지리서《산해경》은 조선이 산동에 있었으며,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독(天毒)'의 나라임을 밝히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제왕운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는 『 상제환인(上帝桓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제는 신농임금님의 별칭입니다.
      그러므로 단군은 신농임금님의 후손이며, 그가 세운 나라는 고조선이 아니라, '단군조선'인 것입니다.
      국호 조선(朝鮮)에는 각 획마다 고조선시대의 인물이 시대순으로, 고조선 시대의 상형문자로 각각 기록된 것을 후대에 조합하여 만든 글자가 '조선(朝鮮)'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단군조선이 고조선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제 영상에 각 획별의 의미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한산-v8s
      @한산-v8s 7 месяцев назад

      @@decipherQ 신농은 누가 낳았나요?
      신농 지 혼자 하늘에서 떨어져서 신이 된 것이 아니겠지요?
      금문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이 신농보다 수천년 앞서는 적봉의 홍산문명을 설명합니까?
      사천성에서 나온 삼성퇴유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금문을 절대선인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막히는 지점이 아닙니까?
      소호금천이 신농의 외손자라구요?
      신농은 분수의 딸 발과 결혼하여 帝魁제괴를 낳아 帝承제승-帝明제명-帝直제직-帝氂제이-帝哀제애-帝剋제극-帝榆罔제유망까지 이어지다가 헌원에게 패망했다고 하는데,
      헌원 - 소호금천 - 전욱고양 - 제곡고신 - 지 - 당요 - 우순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다 거짓이란 말이지요?
      헌원이 제 유망을 쳐서 죽이고 신농씨의 재산과 군대를 빼앗아 신시개천 제14대 자오지한웅천왕(치우천왕)께 대를며 탁록에서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帝제 작위를 받은 적이 없는데, 지나쪽 공자 패거리들이 황제헌원이라 이야기한다고 우리까지 헌원을 3황의 황제라 불러주어야 합니까?
      역사는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고 재해석이 가능한 학문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帝제 작위는 세습이되는 작위이고 후 작위는 천자앞에서 활을 쏘아 자격을 획득하고 후 작위와 봉지를 받아서 권한을 행사했지만 자손에게 세습이 안되는 작위였다는 사실을 이때까지 몰랐지 않습니까?
      활을 쏠 줄 모르니 예기 사의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모르면서 무슨 제와 후의 개념을 안다고 이야기 합니까?
      헌원부터 우순까지는 천자로부터 제 작위를 받은 적이 없으므로 제가 아닙니다.
      하우씨만 천자(단군임금님의 장남 부루단군)로부터 제 작위를 받아 제우가 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신농의 자손 帝魁제괴 - 帝承제승-帝明제명-帝直제직-帝氂제이-帝哀제애-帝剋제극-帝榆罔제유망 까지 帝제 작위를 유지했고, 그 다음 帝제 작위는 하나라를 세운 하우씨가 帝제 작위를 부여받아 帝禹제우가 되었다고 보면 정확할 것입니다.

    • @한산-v8s
      @한산-v8s 7 месяцев назад

      @@decipherQ 신농은 신시개천 제8대 안부련한웅천왕께서 태호복희씨의 후손들이 대를 잇지 못하자 신하 소전을 강수에 감병보내게 되었는데, 이 소전이 분수씨의 딸 발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으니 장남이 염제 신농이고 차남이 욱입니다.
      신농의 자손은 8세를 이어 유망까지 이어졌으나 헌원에게 패망하여 대가 끊깁니다.
      차남 욱의 자손은 9세손이 계곤이고, 10세손이 헌원인데 이 헌원이 자기의 큰집안 신농씨 집안을 쳐서 권력을 찬탈하고 그 돈과 군대를 동원하여 신시개천 제14대 자오지한웅천왕(치우천왕)께 모반을 하고 대들다가 탁록에서 대패하여 변방의 호족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게 된게 역사의 팩트입니다.
      무슨 단군금님이 신농의 후손이라구요? 어떤 후레자식이 그딴소리를 지껄입디까? 확 뻰찌로 이빨을 뽑아버리고 그 혓바닥을 뽑아버려야 세상이 바루어 질 것입니다.
      신시개천은 18대 (기원전 2381년): 거불단(居弗壇)한웅, 혹은 단웅(壇雄), 재위 48년, 82세) 께서 단군임금님께 재위를 물려주시고, 단군임금님께서 조선을 개창하니 우리가 고조선이라 불리는 역사인데, 무슨 헌원에게 패망한 신농씨 집안을 끌고와서 단군임금님께 연결시키고 헛소리 입니까?
      신농이 단군임금님의 조상이란 소리는 듣보잡중에 듣보잡이니 역사조작도 이정도면 쩝. ...

    • @decipherQ
      @decipherQ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코메디네요.
      님의 주장을 뒷받침할 단군시대의 글자 기록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저도 단군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단군이 BC 4세기 이후에도 존재했다는 겁니다.

    • @한산-v8s
      @한산-v8s 6 месяцев назад

      ​@@decipherQ 역사의 진실은 참으로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온갖 억측과 왜곡으로부터 작은 실마리 하나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자의 제자 채침이 서전서문에 이르기를 且生於數千載之下하여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亦已難矣 차생어수천재지하 이욕강명어수천재지전 역이난의
      더구나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의 것을 밝히려 하니 또한 심히 어려운 일이로다. 라고 하여 역사를 바로 밝히기 어렵다고 하소연 합니다.
      역사학자는 철학을 모르고 철학자는 역사를 모릅니다. 단군임금님의 역사는 봉건제도였는데 봉건제후가 어떤식으로 운영되고 유지되었는지 아무로 밝힌 사람이 없습니다.
      왜 일까요? 봉건제후를 선발하는 일을 활쏘기로 정했는데 우리 활쏘기의 정수를 제대로 아는 역사학자와 철학자가 없었기 때문에 帝제와 侯후를 구분할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문종철을 일이관지하고 활쏘기의 정수를 아는 사람이 제후를 밝히고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필연입니다.
      國𦊆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었으니까 단군이지요. 왕과 제와 후의 상관관계를 모르니까 호태왕이 단군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게 당연한 것입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해석해 볼려면 상고시대 철학사상을 알아야 하고 그당시 정치제도와 인간 삶을 소상히 알아야 제대로 해석이 가능한 법입니다.
      역사와 문화(문학)과 종교와 철학 즉 사문종철을 공부하고 활을 쏘아 몸과 마음을 도덕에 합치하면 옛 일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과 해석력이 생길 것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