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산내면 시골에서는 우리가 어려서 어른들이 집을 지을때 상량에 단기 0000년 이라고 쓰셔지요 지금도 확인 할수 있읍니다 직금이라도 정부에서는 나라의 국통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달력에 단기 서기를 병행해서 쓰면서 *환단고기에 기록한것럼 역사 공부을 해야 한단고 생각 합니다 단기를 병행해서
너무 안타깝게 보았네요. 단군왕검은 47대까지 이어진 우리역사의 시조로 연호 연대기 치적과 태자들의 행적까지 전부 단군세기에 기록되어있죠. 요하문명=단군조선문명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로 용과 옥 명도건 비단(누에), 치수 경작등이 우리민족에게서 시작되고 단군왕검 시기 태호복희씨에 의해 음양오행의 팔궤 우주론과 천문학 태극기가 나오죠. 태극기 역사가 수천년 전으로 올라가는 것이죠. 국사시간에 태극기와 동북아 문명을 최초로 시작하고 이를 1천년 뒤 한족이 받아들인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우리 구한 유물인 고인돌이 지방에 분포되어 있지만 전라도지방에 多量으로 설치되어 있는게 다행이지만 넓은 들판에 전시되어 있는걸 그 장소에 국가가 관리될수 있도록 해야되는데도 방치되다시피 보이는게 안쓰럽게 보인다. 野外박물관의 시설물을 만들어 전시효과와 관리가 잘될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한다. 본 큐레이트의 해설에 의하면 50톤의 바위를 움직일려면 소요되는 인력은 약 1.0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했다하니 옮기는 방법과 이용하는 설치대와 인원의 확보까지 다 어려운 시기인데도 시행했다는게 오늘을 보는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게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 옆 빈 공터에 실물크기의 인력과 인원수로 옮기는 장면을 인형을 통해 재 연출시키는 걸 재연시킨다면 협동과 협조의 의미를 심어준다면 학습효과가 미치는 영향이 앞날을 밝게 만들어 줄것이 아닌가 싶다. 유물을 통해 배웠으면 한다..
김태식 교수님... 단군신화라니요???? 어떻게 일제 식민사관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시나요? 단군신화라는 말은 일제가 단군조선을 부정하기 위해 실존 역사가 아니라 신화적인 역사다라는것을 강조하기 위한겁니다.!!! 정체성을 없애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우리 민족의역사를 이야기 하시나요? 이병도교수가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역사다라고 자신이 잘못한거라고 고백한 글 찾아보시고 역사관을 바르게 정립하셨으면 합니다. 놀랐습니다. 대학교수님들이 식민사학자들에게 식민사관을 배웠다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자료도 많이 나와 있는데... 정말 황당하네요...
한국 고대사는 남이 보는 우리집과 내가 보는 우리집이 어떻게 똑같지 엄연히 남의 보는 집과 내가 보는 내집은 다르지 않나 외곽은 같지만 다르다고 많이 다른게 많아야 하는데 하나도 안달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일제때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아직도 주장하고 있는 학국 학자들이네
동감 - 아울러서 동시대 간행된 과거합격자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왜 별로 얘기안하고 , 기껏 일제시대 일본에서 들여온 삼국유사를 맹신? 하는지 모르겠네요 또 위서운 을 맨 먼저 놓았는데 위나라 역사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중국땅의 북위나라의 역사를 우리것으로 할때, 중국에서 동북공정과정에 북위의 단군역사도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네 단군역사는 거품처럼 사라져야 하는게 아닐까 대단히 걱정 됩니다....
보각국사 탑엔 이렇게 쓰여 있답니다. "국존(國尊)의 이름은 견명(見明)이며, 자는 회연(晦然)이나 뒤에 이름을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 속성은 김씨이고, 경주 장산군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언필(彦弼)인데, 벼슬하지 않았으나 국존으로 인해 좌복야(左僕射)에 추증(追贈)되었다. 어머니 이씨(李氏)는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에 봉해졌다. 일찍이 어머니가 집에 해가 들어와 그 빛이 사흘 밤 동안 배를 비춘 꿈을 꾸고 이로 말미암아 임신하여 태화(泰和) 병인년(丙寅年) 6월 신유일(辛酉日)에 낳았다. 나면서부터 걸출하여 언행과 외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며, 넉넉한 몸매에 말수가 적었고 소와 같이 성실하고 호랑이와 같이 예리하였다." 어디엔가 일연스님의 본관은 경주라고. 경주김씨면 신라계가 확실하죠. 신라계가 확실하면 신라를 찬양해도 마땅한거고요.
인도의 타밀어가 허왕후가 와서 뭐 어쩄든 우리나라 말과 비슷한 단어들이 있다고 난리인데,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문화를 전수하고 어느정도 지배계급에 있었다면 많은 단어들이 비슷한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어. 없지 않나요? 중국이라는 화하족과 우리민족은 완전 다른민족이었어. 그래서 완전 언어가 달라. 완전 그 기원이 다르고 서로 싸우기만 했다는 거겠지. 근데 일본은 여기 한반도랑 초기부터 그렇게 완전 기원이 다르다거나 서로 싸우기만 한 사이가 아니었지 않나요? 근데 완전 언어가 달라. 백제와 일본이 그래도 어느정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두나라 언어가 다른걸까?
감사합니다
훌륭한 삼국유사.일연스님의 생애.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나무삼귀의
👵일연스님 삼국유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옛날 방송인가 했는데 최신 굿 다큐네요
정말 좋은 다큐네요.❤️
황룡사를 고증을 바탕으로 지으면 어떨까요? 그자리 옆에. 사탑이 있는자리는 그대로 두고 🌸🌸통일의 정기가 다시 살아나게요. (그 자리가 바로 중요한지는 연구 필요)
학교 수행땜시 보고 갑니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시골에서는 우리가 어려서
어른들이 집을 지을때
상량에 단기 0000년 이라고
쓰셔지요 지금도 확인 할수
있읍니다 직금이라도 정부에서는 나라의
국통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달력에 단기 서기를 병행해서 쓰면서 *환단고기에 기록한것럼 역사 공부을 해야 한단고 생각 합니다
단기를 병행해서
적극지지합니다.
조선시대 발음으로는 환단고기라 읽고,
조선시대 이전에는 밝달고기라고 읽었다.
고운기 교수님도 단군신화라고 하네요...ㅋㅋㅋㅋ 자주성을 찾고자 한 삼국유사를 이야기 하면서 식민사관 용어를사용하고 있는 대학 교수님들... 한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입니다. 아직 까지도 식민사관이 청산이 안되어 있으니 가슴 아프네요...
너무 안타깝게 보았네요. 단군왕검은 47대까지 이어진 우리역사의 시조로 연호 연대기 치적과 태자들의 행적까지 전부 단군세기에 기록되어있죠. 요하문명=단군조선문명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로 용과 옥 명도건 비단(누에), 치수 경작등이 우리민족에게서 시작되고 단군왕검 시기 태호복희씨에 의해 음양오행의 팔궤 우주론과 천문학 태극기가 나오죠. 태극기 역사가 수천년 전으로 올라가는 것이죠. 국사시간에 태극기와 동북아 문명을 최초로 시작하고 이를 1천년 뒤 한족이 받아들인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붓다의 가르침으로 뭉쳐야 하며 서로 시기하고 싸워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우리모두는 찰나연기로 서로 맺어진 형제자매이다.
개똥이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
우리 구한 유물인 고인돌이 지방에 분포되어 있지만 전라도지방에 多量으로 설치되어 있는게 다행이지만 넓은 들판에 전시되어 있는걸 그 장소에 국가가 관리될수 있도록 해야되는데도 방치되다시피 보이는게 안쓰럽게 보인다. 野外박물관의 시설물을 만들어 전시효과와 관리가 잘될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한다.
본 큐레이트의 해설에 의하면 50톤의 바위를 움직일려면 소요되는 인력은 약 1.0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했다하니 옮기는 방법과 이용하는 설치대와 인원의 확보까지 다 어려운 시기인데도 시행했다는게 오늘을 보는 우리의 후손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게 좋을까 생각해본다.
그 옆 빈 공터에 실물크기의 인력과 인원수로 옮기는 장면을 인형을 통해 재 연출시키는 걸 재연시킨다면 협동과 협조의 의미를 심어준다면 학습효과가 미치는 영향이 앞날을 밝게 만들어 줄것이 아닌가 싶다. 유물을 통해 배웠으면 한다..
식민시관의 영원한 대들보이신 일연스님.
아 안중에서 점토사에
편액에 쓰여있는 한문
천자의 형상은 염라왕
불교에도 단군신화
옛사람들의 슬기로운 지혜
좋은데 광고가 너무 많네요
김태식 교수님... 단군신화라니요???? 어떻게 일제 식민사관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시나요? 단군신화라는 말은 일제가 단군조선을 부정하기 위해 실존 역사가 아니라 신화적인 역사다라는것을 강조하기 위한겁니다.!!! 정체성을 없애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우리 민족의역사를 이야기 하시나요? 이병도교수가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역사다라고 자신이 잘못한거라고 고백한 글 찾아보시고 역사관을 바르게 정립하셨으면 합니다. 놀랐습니다. 대학교수님들이 식민사학자들에게 식민사관을 배웠다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자료도 많이 나와 있는데... 정말 황당하네요...
42:38 신라 얘기하고 있는데 백제 근초고왕 OST가 나오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약간 아이러니 ㅋㅋㅋㅋ
ㅣㄹ에만해도
놀이중에 거북아거북아 헌집줄께 새집다오 하고 놀았죠
지금도 고인돌 만들어야 합니다..
고려가 가야를 쪼개도 별로 효과가 없자 성씨로 갈라치기 한거 같은데 김씨를 박씨로 하고 박혁거세를 신라 시조를 만들어 버린거 같음 마립간 까지 경주는 가야의 지방 조직 같고 가야가 신라가 된거 같은데 그걸 입증하면 대박인데
백제 부여가 망할때 일본이 도우려고 왔는 데 신라와 일본은 앙숙관계?
문무왕, 삼국 유사 신라 강조한 일연도, 김제상으로 까지 이름을 바꾸기 까지 하는 것을 보니 연관이 있는 듯한 생각이 드네요
龍은 9부족의 상징동물의 특징을 모아 그린 그림으로 배달국이 8부족과 소통할때 들고다니던. 깃발에 그린그림입니다.
고인돌은 단군때 오행이론이 완성되었기에 토 적도 기준점이기에. 자연석으로 시작정ㅅ을 의미합니다.
북극은 영국 스톤헨지 자리이기에 그곳도 자연석으로. 해와달의 관측에 사용 했지요.
인간시대로넘어왔어도. 단군은 달의신이되어 마야에 계셨어요.
한반도가 신성지역이기에. 산신들이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며. 스님들이 되고 백련사를 운영하며. 산신이되기도 했어요.
한국 고대사는 남이 보는 우리집과 내가 보는 우리집이 어떻게 똑같지 엄연히 남의 보는 집과 내가 보는 내집은 다르지 않나 외곽은 같지만 다르다고 많이 다른게 많아야 하는데 하나도 안달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일제때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아직도 주장하고 있는 학국 학자들이네
일연스님 묘지 어디 있나요..
스님은 화장..묘가 없어요.
김인지 박인지 성 씨부터 바로 찾아드려야겠다. 뿌리를 다르게 부르며 고인을 기린다는 무지막지한 처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일연삼국유사는일기장이다사마천사기으묭행ㅆ다
참 과학의 시대에 신념과 믿음으로 접근하는 듯 합니다.
분명한 사료가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게 ....
일연의 글에 의도는 분명하네요 시대를 달래고 하나로 모으려는... 근데 책 한 권이
47:17
이나라? 우리나라가 아니구?
30년 정도 기간에 황룡사 복원
가야사를 알려면 가야본기를읽으라
일본서기 게이타전까지만
신무는대무시왕이니
하나 빼고
요렇게 읽어라
통일되어 고조선 영토까지 회복합시다.
고려 학자들이 쓴 삼국사기는 폄하되고, 승려가 쓴 삼국유사가 더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를 모르겠다.
동감 - 아울러서 동시대 간행된 과거합격자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왜 별로 얘기안하고 , 기껏 일제시대 일본에서 들여온 삼국유사를 맹신? 하는지 모르겠네요
또 위서운 을 맨 먼저 놓았는데 위나라 역사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중국땅의 북위나라의 역사를 우리것으로 할때, 중국에서 동북공정과정에 북위의 단군역사도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네 단군역사는 거품처럼 사라져야 하는게 아닐까 대단히 걱정 됩니다....
고조선이란 말도 이성계 조선과 대비한 고조선이라고 학계에서 말한다고 하는데 고려때 씌여진 책에 우째 고조선 이란 용어가 등장 할까요? 일본이 약탈해간 역사서를 왜곡하면서 만들어낸 용어가 삼국 유사중의 고조선 이란 용어가 아닌가 합니다.
일연스님 삼한통일은
마한 진한 변한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말하는 것이'아니다.
고구려 없는 신라의 삼국통일은 역사왜곡이다.
우리부터 역사왜곡 하지 맙시다.
05.29 8:44
인도 공주라는건
인도 역사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는거죠
김제상 ? 일연 스님 혹시 김씨 ?
신라 강조 ? 일본 배척 ?
보각국사 탑엔 이렇게 쓰여 있답니다.
"국존(國尊)의 이름은 견명(見明)이며, 자는 회연(晦然)이나 뒤에 이름을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 속성은 김씨이고, 경주 장산군 사람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언필(彦弼)인데, 벼슬하지 않았으나 국존으로 인해 좌복야(左僕射)에 추증(追贈)되었다. 어머니 이씨(李氏)는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에 봉해졌다. 일찍이 어머니가 집에 해가 들어와 그 빛이 사흘 밤 동안 배를 비춘 꿈을 꾸고 이로 말미암아 임신하여 태화(泰和) 병인년(丙寅年) 6월 신유일(辛酉日)에 낳았다. 나면서부터 걸출하여 언행과 외모가 단정하고 엄숙하였으며, 넉넉한 몸매에 말수가 적었고 소와 같이 성실하고 호랑이와 같이 예리하였다."
어디엔가 일연스님의 본관은 경주라고. 경주김씨면 신라계가 확실하죠. 신라계가 확실하면 신라를 찬양해도 마땅한거고요.
가야가 신라에 흡수 됐어 내가 볼때 가야가 신라가 된거 같은데 그걸 풀어내야 하는데 숙제야
일연스님이 환단고기를 몰랐다면 어떻게 고조선을 알았을까?
신기한건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일본으로 갔다면 그 때 건너간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썼을까요? 왜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건너갔는데 한국말과 일본말은 왜 이렇게 다른걸까요?
삼국유사가맏지 어찌 쭝국에만 사람이 사는 나라가 잇엇다고 할수잇나
신라는 삼국통일이 아닙니다.
삼한을 통일하였다 하는데 왜 한반도를 통일하였고 읽는지 모르겠네...
왜 넓게 생각하지 않고 자꾸만 스스로 오그라 드려고만 하는지 모르겠어 이러한것 부터 역사 왜곡이 아니런지...
거기가 정말 황룡사 터이고 구층탑이 있었다면 그리고 불타 없어 졌다면 왜 후세 사람들은 다시 재건하지 않았을까요? 신라꺼라서? 그정도 가치가 있던 탑이었으면 당연 재건했어야 맞지 않을까요? 거기가 정말 황룡사터 맞습니까?
인도에서 그당시 배타고 2달만에 우리나라 남해안에 오는게 가능할까요?
삼국유사룰 믿는가 참 1200년대서 이책을 썻는데 그것이 어떻게
역사라고 하는지
약 40년전 우리 학교 이전시
부장품이 나옸지만 일부는 땅주인이 가져가고
부숴진건 묻었어요
웃기는건 바로옆은 무덤
하나는 부장품 무덤이었습니다
인도의 타밀어가 허왕후가 와서 뭐 어쩄든 우리나라 말과 비슷한 단어들이 있다고 난리인데, 한반도 사람들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문화를 전수하고 어느정도 지배계급에 있었다면 많은 단어들이 비슷한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어. 없지 않나요? 중국이라는 화하족과 우리민족은 완전 다른민족이었어. 그래서 완전 언어가 달라. 완전 그 기원이 다르고 서로 싸우기만 했다는 거겠지. 근데 일본은 여기 한반도랑 초기부터 그렇게 완전 기원이 다르다거나 서로 싸우기만 한 사이가 아니었지 않나요? 근데 완전 언어가 달라. 백제와 일본이 그래도 어느정도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두나라 언어가 다른걸까?
일연스님은 왜 환단고기를 몰랐을까?
우리나라는 조상들이 대대로 기록의 민족으로 알고있는데 모든 상고사 기록들은 없애고 일제시대때 왜 삼국유사 사기 남겼을까, 역사학자들아 고고학적으로 연구좀 하자. 그 일본과 중국이 보고 웃겠다.
조선시대 발음으로는 환단고기라 읽고,
조선시대 이전에는 밝달고기라고 읽었다.
신라는 김씨의 나라 신라말기 박씨 왕들은 김씨일. 확률이 높은데
삼국유사가 무슨 가치가있냐 중이 혼자 자신의 주관적 이야기로 쓴것을 .. 그보다 더 사료로서 가치가높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도
근대 최고의 사학자 신채호한테 신랄한 비판을받았는데 ...
신채호가 별거냐
신채호는 망상가..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