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국내성의 진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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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1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3

  • @들풀-i5t
    @들풀-i5t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잘 시청하였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광개토태왕-h5f
    @광개토태왕-h5f 4 месяца назад

    고구려 왕들과 귀족들의 무덤군과 광개토태왕비가 있는 집안이 국내성이 맞다.

  • @기리-o6h
    @기리-o6h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좋아요 👏

  • @신라tv-m3r
    @신라tv-m3r 3 месяца назад

    😄😄

  • @김태호-e7i2b
    @김태호-e7i2b 2 месяца назад

    음.. 다들 비슷한 자료로 서로 다르게 해석 하시네요...

  • @조용한-z5g
    @조용한-z5g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주로 고구려 성의 위치를 바로 잡으시네요, 늘 궁금한데 안시성 양만춘은 실존 인물인가요? 안시성은 어디 있었나요

    • @진짜역사-k6f
      @진짜역사-k6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양만춘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으니 잘 모르겠습니나^^. 안시성은 요사지리지에 요양 서남 60리라고 했으므로 안산시 서북의 입산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hyugi-papa
    @hyugi-pap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3

    알고리즘에 의해 떴길래 한 번 봐 봤습니다. 그럴 듯한 분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단순히 사서에 의한 분석 말고, 좀 다른 각도로 분석을 해 보는 게 필요합니다. 사서의 기록은 왜곡이 될 수 있습니다. 승자의 기록이다 보니 거짓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승자와 패자를 바꾸기도 하고 위치를 옮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서는 당대의 기록보다는 후대의 기록이어서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사서를 기초로 분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서 기록에 매몰돼서는 안 됩니다.
    옛날 고구리, 백제, 신라 시절에는 지금과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지금의 하북성은 뻘밭이나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석가장 동쪽 형수시부터 그 아래도 커다란 거대호수가 있었는데 이 호수를 일컬어 화하족은 발해라고 했습니다. 지금 지질 분석을 해 보면 그 위치에 거대 지하수고가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 일대 14미터 아래에서 제나라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화하족들은 대대로 지금의 서안시를 중심으로 살았던 종족입니다. 서안에서 이억만리 떨어진 만주로 뭐 먹을 게 있다고 대군을 이끌고 오겠습니까?
    구글지도를 보십시요. 그 대군을 이끌고 만주로 오려면 우선 그 넓은 황하를 건너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높디높은 태행산맥을 넘거나, 화북성의 뻘밭을 지나 거대호수를 지나야 합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북경에 다다르고 나면 군사작전상 위험하고도 위험한 산해관을 지나야 합니다. 산해관을 지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군사작전입니다. 적은 매복하기 쉽고, 매복에 걸리고나면 옴짤달싹 못해 몰살당하기 딱 좋은 지형입니다.
    그 지역을 피해 북쪽으로 우회하려 해도 시라무렌강줄기를 따라 가야 합니다.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럼, 서쪽 세력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북성 일대가 힘의 공백이 생겼는데 그 지역을 시안 세력이 점령해서 그 지역의 헤게모니를 차지했다면 동쪽 세력을 토벌하러 가야할까요? 아니면, 산해관을 틀어막고 동쪽 세력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까요? 저라면, 후자를 선택하겠습니다. 산해관을 틀어막고, 시라무렌강줄기를 막아 대흥안령산맥을 봉쇄해 버리면 동쪽 세력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조선처럼 고립국가로 발전없이 힘겹게 존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동쪽세력은 자동으로 항복해 옵니다. 그런 쉬운 방법을 놔두고 왜 그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동쪽으로 가겠습니까?
    그럼 이만...

    • @진짜역사-k6f
      @진짜역사-k6f  7 месяцев назад +1

      말씀 잘 읽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이 꼭 경제적이 이유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태종이 고구려 정벌을 나서는 것은 고구려가 당나라의 영주를 먼저 공격해서 그런 것입니다. 언젠가는 일어날 전쟁이었지만 이것으로 촉발된 것은 분명합니다. 당나라의 영주는 현 조양시입니다. 그리고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지나던 길이 요서와 요동을 거칩니다. 수서지리지를 보면 수나라의 영토가 요서까지 있었지요, 삼국사기의 지명도 모두 요동에 있었습니다. 가탐도리기, 구당서, 신당서, 주서의 기록이 모두 고구려는 요동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록들이 모두 가짜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 @hyugi-papa
      @hyugi-papa 7 месяцев назад

      @@진짜역사-k6f 경제적 이득이 없는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전쟁은 결국 경제 문제로 일어납니다. 십자군 원정도 결국은 경제적 이득을 노린 상업세력들의 농간이었다는 사실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경제적 이득이 없다면 고구리가 영주를 공격하든말든 수나라 입장에서는 뭐가 문제였겠습니까?
      큰강, 거대호수, 거대산맥, 비포장도로 등 신속 이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동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그 비용은 누가 댑니까? 수양제나 당태종이 모두 부담하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파산입니다. 고구리 원정에서 얻을 이익을 수양제나 당태종과 군벌과 호족들이 나눠먹기로 약속이 됐기 때문에 군부들이 움직인 것입니다. 아무리 황제라 하더라도 그 모든 비용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평면지도를 펼쳐놓고 역사해석을 하지 마십시요. 지형지도를 보면서 생각해 보십시요.
      현재의 관점으로 그 때를 바라보지 마십시요. 당시에는 통치방식과 전투방식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 @최대수-h5t
      @최대수-h5t 3 месяца назад

      요 의기준이문제지요.
      요의기준은 태행산맥입니다.
      당서에보면 요동성을 점령하여 요주로삼았다.그요주가 현 요양시임다. ​@@진짜역사-k6f

  • @999eunha2
    @999eunha2 4 месяца назад +1

    저 시대 요동이 저기가 아니라고 하는데 저기가 아니어야 실수가 동쪽으로 흐를수 있죠 ㅋㅋㅋㅋ 살수 서안평 유주 등등 다 어디 있나요 ㅋ

    • @진짜역사-k6f
      @진짜역사-k6f  4 месяца назад

      @@999eunha2 한서지리지 유주요동군조 한번 읽어보세요. 당태종이 철군할 때 건넜던 요수와 당군이 요수를 건너 공격했던 현도성, 신성, 남소성이 어딘지도 한번 보시고요. 이런 기본사서는 읽어봐야 사이비에 안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