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전세계 지도에 고려는 몽골의 최전성기 몽골의 영토에 포함되어 그려지는데 ...그져 몽골제국의 영토의 일부일뿐 몽골의 지방정부이고 일본만 몽골의 영토에서 빠져있습니다 제발좀 국뽕에 빠져서 후손들에게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지 마세요 고려왕족의 혈통이 이어졌다고해서 몽골제국의 영토가 아닌게 되는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만 상당수의 몽골제국 영토들이 몽골에서 빠집니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팩트. 왕이 잡히거나 완전히 항복한적이 없다. 의병은 말할것도 없고 정규군이 계속 저항했다. 이런게 밑바탕에 있으니 외교도 가능하고 기만술도 가능하고 쿠빌라이라는 행운도 가능했던거임 만약 고려가 몽골에 완전히 복속됐다면 일본도 정복당했을거라 보는 일본 학자도 있음 고려는 대양 항해술에 매우 능한 나라였음 근데 일본 상륙을 매번 폭풍에 맞춤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ㅋㅋㅋ 고려는 우리가 아는 고려가 아니다... 고려사에 보면 그것도 불과 몇년전 보물에 지정된 역사책 그것도 조선 초기에 집필된...고려의 한 가로 세로축이 만리인 나라다 웃쉽게 보는건 몽고가 아니라 현재의 일제강점기에서 만든 한반도에 가둔 역사를 그대로 배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네...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이유를 몽골과 우리에게시만 찾으려 하니 객관적이고 정확한 시점이 다소 결여된 듯합니다. 몽골이 고려를 정복하거나 직접 통치하려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두 왕조, 금과 송과의 전쟁이 몽골에게도 너무나 힘들고 긴 전쟁, 국력을 쏟아붓게 만든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연대기표를 잦아 보면 알게 되시겠지만, 몽골이 처음 북쪽의 금나라를 침공하기 시작한 것은 칭기즈칸 시대였는데 반해, 남쪽의 송나라 정복을 완료한 것은 5대 칸인 쿠빌라이 때이며, 그 시차는 무려 60여년에 이릅니다. 그 기간 사이에 행해진 고려 침공은, 따라서 어디까지나 본격적인 정복이나 복속을 의도한 것도 아니었으며, 또한 송나라와 휴전 협정을 맺고 주력군을 대규모로 파견한 거란의 침공과도 그 성격을 달리하는, 한마디로 중국의 왕조와의 전쟁시 후방을 교란당하지 않기 위한 "부수적 작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려는 그러한, 아직 송나라와 전쟁중이던 시기의 몽골에 태자를 파견하여 화친을 도모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중국 정복에 힘을 집중하고 싶었던 몽골에 환영받을 수 있었던 것이며, 또 태자가 화친 협상의 상대로 선택한 인물이 권력투쟁에서 다소 열세였던 쿠빌라이였기에, 왕이 대대로 대칸의 부마가 되고 나라의 독립성과 자치권을 인정받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몽골과 화친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책보고 영상 보시길 추천드려요. 고려 강화도는 지금의 강화도가 아닌 산둥반도가 강화입니다. 고려의 영토는 한반도에 갇히지 않은 대륙의 영토입니다. 사서 기록에 나온 팩트입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이후 고려사와 삼국시대를 삭제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때 다시 한번 왜곡되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슬픈 역사가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전세계 지도에 고려는 몽골의 최전성기 몽골의 영토에 포함되어 그려지는데 ...그져 몽골제국의 영토의 일부일뿐 몽골의 지방정부이고 일본만 몽골의 영토에서 빠져있습니다 제발좀 국뽕에 빠져서 후손들에게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지 마세요 고려왕족의 혈통이 이어졌다고해서 몽골제국의 영토가 아닌게 되는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만 상당수의 몽골제국 영토들이 몽골에서 빠집니
놔둔게 아니라 40년 넘게 저항하는데다 총전력을 쏟아부어서 멸망시킨다 해도 남송이 치고 올라오면 골치아파지니까 걍 부마국 삼고 적당히 수탈하는 정도로 시마이친거임... 그래도 대륙전체가 식민지가 되서 중국인은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은 송나라보단 국체라도 유지한 덕분에 나라가 이어진 고려가 대단한 거임...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핵심이 빠진듯 몽골의 전설에 조상이 동쪽(고구려)에서 왔다는 설이 있었음 물론 고려에게도 잔인했지만 고려왕조에 대한 존중은 더 선조로 넘어가야함 이후 고려출신 기황후가 원나라 마지막 황후가 된것도 전혀 무시할수 없음 참고로 기황후는 몽골의 분란을 일으켰다해서 좋아하지 않음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현실정치에서 그딴게 어디 있음? 그냥 고려를 아예 멸망시키는것보다 적당히 복속시키는게 더 나으니 아예 멸망시키진 않은거지. 멸망시키면 통치를 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군대가 주둔해야 함. 유목민족은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저런 식으로 지역을 점령하고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러다보면 군대가 남아나질 않음. 중국을 정복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군대를 비효율적으로 운영할수는 없는 노릇이지. 나중에 영국도 이런 식의 간접통치 방식을 선호했음.
쿠빌라이 찾아 갔을 때 죽은 칸은 쿠빌라이의 형인 몽케칸. 몽케는 칭기스칸 손자. 고려를 그냥 놔 둔 것에는 일본 때문이기도 함. 고려를 직접 지배하면 어쨌든 본국이기 때문에 외적에게서 방어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왜구를 막아줘야 함. 만약 정동행성이 일본에 상륙했을 때일본 정벌에 성공했으면 고려도 어떻게 됐을 지 알 수 없음.
그시기 다른나라와 나라방식이 달라서 임. 그시기의 나라들은 왕이 있는 수도를 접수하고 왕을 잡거나 죽이면 정복인데, 고려는 수도를 점령하였는데, 왕이 없어 다른곳으로 갔어, 정복이 아닌거 같어 다시 왕을 잡으러가서 왕을 잡아, 항복 하라 아님 죽이겠다, 죽여라. 왕을 죽이면 어찌되나? 살아남은 아들이 왕이라 하고, 아직 나라가 남아 있어. 몽골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려를 정복하는 방법을 몰랐다. 정복하면 정복국가 다스릴 인력 남기고, 다음 공격지를 가거나 돌아 가는데, 정복이 아니라 군사를 두지도, 빼지도 못하고 한반도를 지나 더 갈곳도 없고, 더 갔다가 송, 금, 서방지역 공격군과 합류를 못할거 같아(해군이 없어) 고려정복도, 아닌것도 아닌 상태로 몽골제국 마지막 까지 가게된다.
이미 항복함.. 삼별초항쟁때 말이 항쟁이지 고려에서는 삼별초난으로 기록함 삼별초 진압때 몽고군만 싸운게 아니라 고려군도 참전함 그리고 왕 명칭이 충으로 시작하고 행정기관도 전부 격하 온갖 재물,공물 가져가고 남녀 안 가리고 끌고감 여자들은 해마다 물건 처럼 고려조정에서 바쳐야 했고
저 때 고려의 국력은 무신정권 때문에 강할때가 아님 최씨 정권은 자기 권력 유지하기 바빴지 정예병을 강화도 지키는데 배치 하고도 고려는 30년을 버팀 만약 현종같은 왕이 고려를 통치하고 있었다면 고려는 분명 몽골 침략을 대비 했을거임 그럼 몽골이 전세계 정복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몽골은 고려가 국력이 약했을떼 정복전쟁을 해서 성과를 낸거임 운이 좋았음
고려를 놔둔 이유 고려의 중요성이 낮기 때문이죠 송나라가 주목표이고 송나라를 멸할때쯤이면 고려도 강화도에서 나와 몽골에 조공을 바치는 상황이니 굳이 직접 통치하려고 할까요 그냥 번국으로 두는거죠 외교도 한몪했죠 쿠빌라이 차아간 건 신의 한수 맞음 이거때문에 고려가 부마국이 되며 멸망하게 안되거죠
고구려의 위상이 너무나도 컸다. 수,당도 고구려 침략이후 망하고 국운이 쇠퇴했지. 그리고 고려는 여진의 요 , 거란의 금나라까지 모두 격퇴했고 이 나라들 전쟁의 여파로 크게 흔들렸다. 국가 이미지가 저 나라를 침공하면 망한다는 이미지로 국한되어 유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려가 대몽골전에 대응역시 잘했기 때문에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한거임.
냉정하게보시네요. 네 맞습니다. 역사 왜곡이 우리도 심합니다. 원나라에 얻어 터지고 70년 넘게 식민지 였지요. 매년 수많은 여자를 상납도 했고요. 권문세가들의 횡포도 고려의 왕은 못본체 했지요.오히려 말 잘 듣는 원숭이였어요. 이제 우리도 올바른 역사를 알고 알려 미래세대에게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물려 줘야 한다고 봅니다. 국뽕에 취해 역사를 왜곡하고 동북공정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않는 역사학자들에게는 지지를 해주면 안됩니다. 친중정치인이나 강단사학자들을 몰아내야합니다.
역대 고려왕들이 얼마나 전쟁 안 나게 외교를 잘했는지 고려사절요 읽어보시면 감탄하실 겁니다 당시 중국 대륙은 송 요 금 원 등이 차례로 각축하며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정말 잘 살아남은 거예요 칭기즈칸은 세계를 정복한 전쟁 영웅인데 전쟁 안 나게 피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
이때 고려가 한건 집에 도둑이 쳐들어왔는데 처자식은 거실에 냅두고 혼자 식량이랑 창하나 들고 다락방에 올라간겁니다... 안털린곳은 강화도밖에 없고 내륙 국민들은 영혼까지 탈탈탈 털렸어요.... 쿠빌라이 는 당시 고려가 몽골 1인자 만나러가는게 실패해 2인자라도 만나자해서 만난게 쿠빌라이에요... 운이 개좋았음...
1. 고려에는 먹을게 별로 없다. 2.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나라인데 저항정신은 끈질겨서 끝까지 복종시키고자 하면 전쟁이 장기화됨. 이미 몽골은 인구가 적어 점령한 곳도 다 다스리기 힘들 정도. 3. 몽골이 쳐들어간 이웃 국가들을 보면 대체로 사이가 안좋았다. 그에 반해 몽골과 고려는 딱히 사이가 좋고 나쁘고의 연관성이 적었고 이미 고려를 정복한 이후 왜까지 쳐들어갈 계획이었던 몽골은 고려의 병력. 즉 고려 수군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었음. 4. 몽골은 어디를 정복하든 정복과정에서 그 지역의 기술과 문화를 빠르게 배우고 활용하는 성향이 있었고 고려에서도 일본을 침략할 해양술과 병력을 배우고 활용하려함.
고려시대 논이라뇨..ㅋㅋ 조선중기까지 쌀농사는 논이 아닌 밭벼 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논벼는 정조년간에나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가 고려의 왕실과 국호를 인정이 아닌 더 큰 맥락에서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려의 풍습을 인정해줬단 거였습니다 물론 원종이 요구한 것이지만요
우리선조들
많이 힘드셨을듯
피로 지킨 우리나라 ᆢ
잘 지켜야지
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전세계 지도에 고려는 몽골의 최전성기 몽골의 영토에 포함되어 그려지는데 ...그져 몽골제국의 영토의 일부일뿐 몽골의 지방정부이고 일본만 몽골의 영토에서 빠져있습니다 제발좀 국뽕에 빠져서 후손들에게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지 마세요 고려왕족의 혈통이 이어졌다고해서 몽골제국의 영토가 아닌게 되는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만 상당수의 몽골제국 영토들이 몽골에서 빠집니
신라의 수도 경주는 고려시대 까지도 큰도시였습니다 몽골 침략당시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경주와 전국의 주요도시들이 잿더미가 되었고 파괴되었으며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그걸 성공이라고요? 결국 몽골의 허수아비 지방정권이 되었을뿐인데 ...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jeonggeunkim6002윤똘하고 똑같은 넘이네.. 너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씨부려라..
@@jeonggeunkim6002전세계 휩쓸었다고 죄다 몽골영톱니까...
쿠빌라이 찾아간건 진짜 역대급 신의 한수
살렸네
맞아요.
그때 선택을 잘못 했으면
비밀리에 양쪽 다 보낸 건 아닐까?
@@이재성-k1i 왕자가 직접 찾아간거
쿠빌라이가 봐준거죠. 고려의 태자가 자기를 찾아온 것은 신이 자기가 황제가 될것을 확신케한 동력이었거든요.
우리민족을 우숩게보네.이런 사람들 종특이 매국노될특이지.
그만큼 고려의 위상도 나름 컸기 때문이겠죠
걍 쩌리였으면 의미 부여도 안 했을테니
고려 똑똑똑 하고 영리한 명철한 총명한 현명한 민족😅
팩트. 왕이 잡히거나 완전히 항복한적이 없다. 의병은 말할것도 없고 정규군이 계속 저항했다.
이런게 밑바탕에 있으니 외교도 가능하고 기만술도 가능하고 쿠빌라이라는 행운도 가능했던거임
만약 고려가 몽골에 완전히 복속됐다면 일본도 정복당했을거라 보는 일본 학자도 있음
고려는 대양 항해술에 매우 능한 나라였음
근데 일본 상륙을 매번 폭풍에 맞춤
@@로로긴 혼자 알고 지껄이는건가요 한수배웠네 ㅋ
칸의 죽음이 가장컸고 그때까지 버틴것도 대단했지 그와중 줄을 잘서서 쿠빌라이는 고려를 좋아했음 직접 딸을 시집보냈고 그 사이에 낳은 외손자도 몽골제국내 위세가 직계황자들 다음급으로 굉장히 높았다고함
그 외손자가 충선왕?
딸을 보낸건 몽골의 외교술입니다. 고려만 보낸게 아닙니다.
쿠빌라이가 고려의 태자가 화친을 요청하며 찾아왔을 때 했던 말, ’당도 함부로 못하던 고려(고구려)의 태자가 이렇게 찾아와 화친을 요구하니 매우 기쁘구나‘ 이 말에서 고려를 고구려로 보던 몽골의 시선을 알 수 있슴다
이런 저런 땀과 피로 인한 운으로
몽골 - 청 - 일본을 거치면서까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후손들이
가지게 되었다 봅니다.
네.
이분들 덕분에 우린 모든걸 다 누리고 사는군요
고려를 빠르게 정복할 계회이었는데 강력하게 저항해서 오히려 당황했고 고려의 강과 산, 강화도 바다 등 험악햔 지형에 환장하게됨.
우리 조상들이 아부 하나는 졸라 잘 떨었지
@@99호-d7e 일본?
@@99호-d7e조금만 역사 공부 했으면 다 아는 고려 외교를... 아부하는 인생이라 그런가 아부라고만 생각이 드나보네
@@hwanyred7142 조금만 역사 공부해도 아부 떨면서 갖다바친 조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겟지 ㅋㅋ
@@user-killer1969일본이 왜나와
고려의 전투력이 강해서 쉽게 제압을 못했다. 원나라의 왕권 싸움때 한쪽 편을 들어주면서 항복 조건을 들었는데 쿠빌라이가 그걸 다 들어줌
ㅋ
쿠빌라이가 황제가 되는데 고려의 도움이 컷음
전투력은 개뿔 본토는 방치 상태에 정부는 강화도로 가서 그냥 내비둔건데ㅋㄱㄱ
@@user-kn2qv4gb9b 방치했으면 충주성 전투,귀주성전투등 번번히 격퇴했겠니?
국뽕에 너무 취하지는 말자 고려가 굴복해서 몽골이 물러난거야 만약 덤볐으면 잿더미 됐음. 고려를 공격한 오고타이칸은 유럽연합 박살내고 전세계 통일할 기세였는데 칸이 갑자기 병때문에 죽어서 무산된거야 실제로 몽골에게 깝쳤던 군사대국 호라즘이 인구몰살 된 경우만 봐도 고려가 던볐으면 고려는 세상에서 지워졌음 수부타이가 왔다? 그냥 종말임
산악전에 취약한게 아니라 최강부대는 남송과 유럽에 배치. 진짜 원인은 징키스칸 뿌리가 발해 고구려 계통이라서.
고려와의 공성전은 다른나라와 달랐죠.다른나라는 대부분 평지에 성이 있어서 공성무기를 사용할수 있었는데 고려는 산성이다보니 공성무기를 사용하기 힘들었죠.
고려가 ㅈㄴ 미친게 섬에들어가서 40년을 버텼는데 거기서 농사짓겠다고 간척해서 강화도 여러개의 섬이 합쳐짐
맞습니다... 석모도의 간척지는 고려때 만들어진것입니다...
책보고 영상 보시길 추천드려요. 고려 강화도는 지금의 강화도가 아닙니다. 산둥반도가 강화입니다.
열심히 싸우기도 했지만
주적은 남송인데
고려같은데서 시간끌면 잘못하다 역공받을수 있으니.
고려가 황제국
신라의 수도 경주는 고려시대 까지도 큰도시였습니다 몽골 침략당시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경주와 전국의 주요도시들이 잿더미가 되었고 파괴되었으며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그걸 성공이라고요? 결국 몽골의 허수아비 지방정권이 되었을뿐인데 ...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ㅋㅋㅋ
고려는 우리가 아는 고려가 아니다...
고려사에 보면 그것도 불과 몇년전 보물에 지정된 역사책 그것도 조선 초기에 집필된...고려의 한 가로 세로축이 만리인 나라다
웃쉽게 보는건 몽고가 아니라 현재의 일제강점기에서 만든 한반도에 가둔 역사를 그대로 배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네...
고려가 사실 몽골제국임. 전세계를 씹어먹은. 이럼 됏냐
아직 식민사학 시대이니..
대단한 민족이었다는걸 지워야 식민통치가 쌉가능
고려왕도 몽골예 충성한다는 뜻으로 충선왕., 충렬왕 등로 책봉함
@@dokgorak아니?.오히려 종북, 친중사관이 판침..이승만 박정희 부정하는 자들은 다 이 사관에. 세뇌된자들임
그게 아니라 고려가 생각보다 큰 나라였음. 28년간 맞짱 뜬 대국임
징기스칸의 조상이 발해의 후손이라 고려를 조상과 가까운 뿌리라고 생각했다
다 아프리카 후손임
@@호야-j2m6m한국 정통 역사 공부해보고 떠들어라
@@호야-j2m6m DNA 모계유전자가 아프리카계 하나로 통일된다 머 그거냐? ㅋㅋ 그런거 믿지마 ~~
@@왕악어-q6o인류의 뿌리가 아프리카잖아
인류의 뿌리는 물고기임
고려국토 초토화시켰는데 뭔소리하는건지
요상하게 강화도만 못가서 저리된거지
이것도 못 간게 아니라 안 간 거죠 ㅎㅎㅎ
@@별나무-c8e 안간게아니라 못간겁니다! 남송정벌할때까지 한번도배탄적이없는 몽고군입니다! 조선술도없구요 말타고 약탈하고 치고빠지고 지치게하는전략 으로 전세계을 쓸었을뿐 배타고정벌간건 고려가 항복하고 난뒤 일본원정이전부입니다
몽골이나 청의 전쟁에서 초라는 말은 반항하는 백성을 싹 잡아죽인다는 뜻임 그때는 농업국가인데 초토화시킨다는건 별의미가 없음 //
@@china-pink ㅎ...
고려가 아니고 .고리가 맞는표현 ,고리는 황제국.한반도아니 중국동쪽을 지배했고.고리 수도는 북경이었음. 칸의 나라 고리.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그럼 한반도에는 뭐가 있었니?
@@receperdogan4548 그냥 변방지역이었다..
책보고 영상을 보시길 추천드려요. 사료를 살펴보면 북경이 고려의 서경(북경)이었습니다.
이유를 몽골과 우리에게시만 찾으려 하니 객관적이고 정확한 시점이 다소 결여된 듯합니다. 몽골이 고려를 정복하거나 직접 통치하려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두 왕조, 금과 송과의 전쟁이 몽골에게도 너무나 힘들고 긴 전쟁, 국력을 쏟아붓게 만든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연대기표를 잦아 보면 알게 되시겠지만, 몽골이 처음 북쪽의 금나라를 침공하기 시작한 것은 칭기즈칸 시대였는데 반해, 남쪽의 송나라 정복을 완료한 것은 5대 칸인 쿠빌라이 때이며, 그 시차는 무려 60여년에 이릅니다.
그 기간 사이에 행해진 고려 침공은, 따라서 어디까지나 본격적인 정복이나 복속을 의도한 것도 아니었으며, 또한 송나라와 휴전 협정을 맺고 주력군을 대규모로 파견한 거란의 침공과도 그 성격을 달리하는, 한마디로 중국의 왕조와의 전쟁시 후방을 교란당하지 않기 위한 "부수적 작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려는 그러한, 아직 송나라와 전쟁중이던 시기의 몽골에 태자를 파견하여 화친을 도모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중국 정복에 힘을 집중하고 싶었던 몽골에 환영받을 수 있었던 것이며, 또 태자가 화친 협상의 상대로 선택한 인물이 권력투쟁에서 다소 열세였던 쿠빌라이였기에, 왕이 대대로 대칸의 부마가 되고 나라의 독립성과 자치권을 인정받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몽골과 화친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공성전에 약하지 않음
서양정벌을 보면, 공성전도 무적
징기스칸/몽골은 정복을 한 나라 직접 통치 안 했음. ㄱ래서 적은 인원으로 (기마부대) 여러 나라를 정복 할 수 있었음.
몽골은 중국을 정복하고 왕을 죽이고 원나라를 세워서 몽골인이 왕이되어서 중국을 다스렸죠.
책보고 영상 보시길 추천드려요. 고려 강화도는 지금의 강화도가 아닌 산둥반도가 강화입니다. 고려의 영토는 한반도에 갇히지 않은 대륙의 영토입니다. 사서 기록에 나온 팩트입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이후 고려사와 삼국시대를 삭제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때 다시 한번 왜곡되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슬픈 역사가 되었습니다.
대몽항쟁 거의 40년 세계 역사에서 거의 찾아볼수없음 베트남도 비슷함
남송이 젤 오래 버텼음 기록으로만 치면
@@이승환-x5o8w근데 걔넨 흔적도 없이 사라졌잖음
세번째가 가장 컷어 칸이 죽고 수도에는 아리크부카 다른곳엔 쿠빌라이가 있었는데 기존해는 아리크 뜨는해는 쿠빌라이 결국 뜨는해 쿠빌라이 선택 쿠빌라이는 이걸 이용해 칸이되었고 고려의요구사항을 들어줬고 이건 후대까지 이어졌음
한마디로 '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전세계 지도에 고려는 몽골의 최전성기 몽골의 영토에 포함되어 그려지는데 ...그져 몽골제국의 영토의 일부일뿐 몽골의 지방정부이고 일본만 몽골의 영토에서 빠져있습니다 제발좀 국뽕에 빠져서 후손들에게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지 마세요 고려왕족의 혈통이 이어졌다고해서 몽골제국의 영토가 아닌게 되는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만 상당수의 몽골제국 영토들이 몽골에서 빠집니
군사력만 두고 본다면 조선이 고려 군사력 반만닮았어도.. 그놈의 유자가 사대가 밥 맥여주는것도 아니고
조총으로 무장한 백년 전국전쟁 정예병20만명을 막아내었는데
놔둔게 아니라 40년 넘게 저항하는데다 총전력을 쏟아부어서 멸망시킨다 해도 남송이 치고 올라오면 골치아파지니까 걍 부마국 삼고 적당히 수탈하는 정도로 시마이친거임...
그래도 대륙전체가 식민지가 되서 중국인은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은 송나라보단 국체라도 유지한 덕분에 나라가 이어진 고려가 대단한 거임...
그당시 고려는 상당한 군사대국이였습니다
여몽전쟁 1차전에 몽고의 군세가 3만이었는데 그당시 몽고의 총군세가 9만이 안되었고 동원 가능한 군세는 5만이 최대인것같는데, 나중에는 추후 엄청나게 크지지만
그러니까 3만의 병력은 유럽원정 병력보다 많을수도 있다. 그당시 몽고의 총인구가 백만이 안되었읍니다
초원에서 말달리던 몽골군이 70프로가 산악지형인 한국본토 정복은 불편하기도하고..땅도 얼마안되는데..그시간에 유럽대륙ㄱ
징기스칸이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확한정보와 판단 단결이 생존기술이다.
나라가 망할때는 항상 분열과 배신자가 있어서다.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핵심이 빠진듯 몽골의 전설에 조상이 동쪽(고구려)에서 왔다는 설이 있었음 물론 고려에게도 잔인했지만 고려왕조에 대한 존중은 더 선조로 넘어가야함
이후 고려출신 기황후가 원나라 마지막 황후가 된것도 전혀 무시할수 없음 참고로 기황후는 몽골의 분란을 일으켰다해서 좋아하지 않음
지금의 우리는 옛고려와같은 외교술이 절실할때입니다!
강한저항력에 머리굴리는외교..그에 더해서 지형적인문제
골의 제국인 원나라가 실패한 전쟁이 인도네시아 침공 이었습니다 현지세력에 속아서 결국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병사들과 장군들의 상당수는 중국인 들이었지만 최고수장들은 몽골의 장군들이었으며 버마나 베트남 침략도 실패했죠 몽골이 더운나라나 열대 밀림전쟁만 잘못합니다 고려는 먹을것이 없고 몽골이 좋아하는 초원이 없어서 직접 점령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여름에 너무 무덮고 비도 너무많이오고 몽골인들이 종아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국뽕도 좀적당히 하세요 몽골의 여러차례 침략으로 죽은 사람들이 고려인구 절반입니다 한반도의 산과 산성들은 몽골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국도 점령했는데 한국산이나 산성들은 중국에 비하면 그냥 야산이고 낮은돌담 일뿐인데..
기마전은 평지를 쓸면서 진군하는 몽골전술과 딱인데 한국은 구석에 산지라 저항엔 유리했을듯
*옛날 세계패권제국 몽골제국이 세계정복에 성공하면서 고려까지도 정복하고 100년간 식민지배했지만 고려를 완전히 멸망시키진 않고 살려뒀던 가장 결정적 이유는 역시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할때 고려가 항복했기 때문이죠.*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똑같이 줄타기...이게 대한민국이 나갈길이다... 미국 놈 일본 놈 중국 놈 러시아 놈...기타 유럽 놈들 ...적당한 친밀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쿠빌라이 한테 항복한 거는 정치 적으로 노린게 아니라 어쩌다 얻어걸림....
여러설이 있습니다ㆍ가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설이 바로 그것
어쩌다가 아니라 왕자가 선택한건데...
쿠빌라이 선택이 신의 한수!!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하는 1인 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징기스칸은 고려왕족의 후예이기 때문에 자신의 조상의 나라를 멸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럼 빌어먹을 환빠들은 어디에나 있네
조지워싱턴도 배달민족의 후손이라하지 그러냐 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정치에서 그딴게 어디 있음? 그냥 고려를 아예 멸망시키는것보다 적당히 복속시키는게 더 나으니 아예 멸망시키진 않은거지.
멸망시키면 통치를 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군대가 주둔해야 함. 유목민족은 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저런 식으로 지역을 점령하고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러다보면 군대가 남아나질 않음.
중국을 정복해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군대를 비효율적으로 운영할수는 없는 노릇이지. 나중에 영국도 이런 식의 간접통치 방식을 선호했음.
@@Qmxire ㅋㅋㅋㅋㅋㅋ
저항정신과 외교력!
지금의 후손들이 배울점!
전국민 반이죽고 모든 건물이 불탓는데 정신승리
징기스칸은 고려를 침략한 일이 없습니다. 그 후손들이 침략했지요. 1231년에 고려를 처음침략했는데(여몽전쟁) 징기스칸은 1227년에 사망하지요.
고려왕을 심양왕이라했다 즉 만주는 원래 고려떵이라 그냥 ㅇ,ㄴ정해준거야
쿠빌라이 찾아 갔을 때 죽은 칸은 쿠빌라이의 형인 몽케칸. 몽케는 칭기스칸 손자. 고려를 그냥 놔 둔 것에는 일본 때문이기도 함. 고려를 직접 지배하면 어쨌든 본국이기 때문에 외적에게서 방어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왜구를 막아줘야 함. 만약 정동행성이 일본에 상륙했을 때일본 정벌에 성공했으면 고려도 어떻게 됐을 지 알 수 없음.
지금도 한반도 국토의 70%가 험난한 산악지형 과거는 더 어땠을까 농사 양목의 과거 당시엔 전혀 쓸모없는 땅이 한반도
테무친의 8대조 할머니가 발해에서 왔다고 했다. 고구려~빌해~고려의 법통을 알았을 것
고려의 외교술을 본받아서 미국과 중국의 줄을 타면서 국익을 추구해야됨. 해묵은 이념은 버리고....
징기스칸의 안목이 넓다 후세에 형제 처럼 잘 지내라고
단군세기에
기록하길
4대단군,오사달이
아우,오사구를
몽고리한으로봉함
몽골의시조가됨
몽골도
이사실을모를까?
알꺼야~^^ 글구 징기스
칸의 엄니가 고려여자야
여기서 고려란 고구리야
즉 어머니나라야 징기는
알았어~^^ 우연은 없는
거야~ 지금도 몽골과의
관계를봐~^^ 똑같은거야
혈연이 있었던거야^^
나중에 원종의일은 핏줄
이 땡긴거지^^
우리와 몽골 99%
우리와 중국 97%
우리와 일본 97%
DNA 표본이 저렇다고 합니다
물론 침략해서 다리 달린것은 책상걸상 빼고 다 죽였다고 하니
남자는 죽이고 여자만 살려두고 겁탈을 해서
그런진 몰라도 우리와 DNA가 가장 일치 한다고 합니다
북방유목민족과 중국제후국에서는 고려가 조공하는 나라가 곧 아시아의 지배자라는걸 인정받는 지표였다고.
고려는 외교의 천재였다. 외교로 나라를 지켰고 북방민족에게 뺏긴 땅도 외교로 되찾았다. 제발 멧돼지가 술먹고 템버린만 치지 말고 그 시간에 역사공부좀 하고 친일매국하지 말고 제대로된 외교좀 했으면 좋겠다. 안되겠지만...
몽골과 여진족등 북방 제국은 고려와 조선에 대해 각각 역사적인 유대감 또는 형제 의식 같은걸 가졌음
그래서 항복하기만 하면 강력한 초토화 정책은 안쓰고 현지 정권을 이용한 간접 통치를 채택하였음 //
그리고, 고려태자 아들과
쿠빌라이 딸이 결혼,
사돈 맺음.
그래서 고려가 존속됨.
무릎꿇고 싹싹 비는데 살려는 줘야지 ...뭔 고려국호를 나둿다고 ...고려국을 페지하고 정동행성으로 편입 ...고려왕은 성장으로 임명함 ..충성을 다하겠다고 충렬왕 충성왕 등등 충으로 시작함 ...
칸이고려를 같은 민족이라고 봐준것이다
그시기 다른나라와 나라방식이 달라서 임.
그시기의 나라들은 왕이 있는 수도를 접수하고 왕을 잡거나 죽이면 정복인데,
고려는 수도를 점령하였는데, 왕이 없어 다른곳으로 갔어, 정복이 아닌거 같어 다시 왕을 잡으러가서 왕을 잡아, 항복 하라 아님 죽이겠다, 죽여라. 왕을 죽이면 어찌되나? 살아남은 아들이 왕이라 하고, 아직 나라가 남아 있어.
몽골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려를 정복하는 방법을 몰랐다. 정복하면 정복국가 다스릴 인력 남기고, 다음 공격지를 가거나 돌아 가는데, 정복이 아니라 군사를 두지도, 빼지도 못하고 한반도를 지나 더 갈곳도 없고, 더 갔다가 송, 금, 서방지역 공격군과 합류를 못할거 같아(해군이 없어) 고려정복도, 아닌것도 아닌 상태로 몽골제국 마지막 까지 가게된다.
이미 항복함.. 삼별초항쟁때 말이 항쟁이지 고려에서는 삼별초난으로 기록함 삼별초 진압때 몽고군만 싸운게 아니라 고려군도 참전함
그리고 왕 명칭이 충으로 시작하고 행정기관도 전부 격하 온갖 재물,공물 가져가고 남녀 안 가리고 끌고감 여자들은 해마다 물건 처럼 고려조정에서 바쳐야 했고
뿌리가 같은 형제이기에 그런건데.......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 지역을 보면 같은 지역이다.
돈을 넣어서 해석 해봐요
징기스칸은 약탈이 목적?
고려에는 딱히 남는것이 없는 약탈전쟁
이었죠
미국이 북한 칠려구 시뮬레이션하다가 아라크로 간거랑 비슷하죠.
우리민족은 외교의 천재였다.
저 때 고려의 국력은 무신정권 때문에 강할때가 아님 최씨 정권은 자기 권력 유지하기 바빴지 정예병을 강화도 지키는데 배치 하고도 고려는 30년을 버팀 만약 현종같은 왕이 고려를 통치하고 있었다면 고려는 분명 몽골 침략을 대비 했을거임 그럼 몽골이 전세계 정복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몽골은 고려가 국력이 약했을떼 정복전쟁을 해서 성과를 낸거임 운이 좋았음
글쎄 과연 그럴까유?
나두긴 멀나두나 나라가 쑥대밭됫지
고려는 강화도에서 틀여밖여서 질질 끌다가 본토가 쑥대밭이 되어가니까 협상테이블로 끌려나온거 밖에 없음. 이집트는 아인잘루트에서 몽골군을 아예 격파해버리고 지휘관까지 처형시켰는데 이런게 진짜로 물리친 거임 고려는 사실상 패배한거임
웃긴 얘기로 태조왕건이 나라 명을 잘 지었슴 만약 후신라 이렇게 신라나 백제가 생각나는 국호였으면 몰라. 쿠빌라이가 수양제 당태종도 물리친 고려가 자기에게 머리 숙였다고 업됬슴 물론 쿠빌라이의 정치적 상황과이익도 있슴.
고려를 놔둔 이유 고려의 중요성이 낮기 때문이죠
송나라가 주목표이고 송나라를 멸할때쯤이면 고려도 강화도에서 나와 몽골에 조공을 바치는 상황이니 굳이 직접 통치하려고 할까요 그냥 번국으로 두는거죠 외교도 한몪했죠 쿠빌라이 차아간 건 신의 한수 맞음
이거때문에 고려가 부마국이 되며 멸망하게 안되거죠
원이 고려를 괴롭힌게 아니라
권문세족이 고려를 망하게 할 정도로
골칫거리였음
원이 고려왕한테
권문세족을 개혁하라고 명령을 내릴정도임
줄타기를 잘하신 조상님들께 감사합니다
고구려의 위상이 너무나도 컸다.
수,당도 고구려 침략이후 망하고 국운이 쇠퇴했지. 그리고 고려는 여진의 요 , 거란의 금나라까지 모두 격퇴했고 이 나라들 전쟁의 여파로 크게 흔들렸다.
국가 이미지가 저 나라를 침공하면 망한다는 이미지로 국한되어 유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려가 대몽골전에 대응역시 잘했기 때문에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한거임.
민주당이 좋아하는 중국이 자기들의 역사이고 지금도 자기들이 점령하는 영토이기에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역사의 일부이기에 중국의역사라고 주장합니다
정확한 분석인데 요가 거란이고 금이 여진
먼 직영(계열사)할 가치가 적으니 협력사(1차 벤드)로 둔거지.
잘못된 정보입니다 고려를 침공한 칸은 징기스칸이 아니고 오고타이칸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산악지형이 어디 고려뿐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평야지대에 살지 산속에서 살지않는다.
끈질긴 저항?
남한산성에서는 왜 항복했겠어.
외교?
쿠빌라이에 우호적이어서?
그러면 애초에 전쟁이 안나게 외교를 했어야지.
아는만큼 보이는거지
냉정하게보시네요.
네 맞습니다. 역사 왜곡이 우리도 심합니다.
원나라에 얻어 터지고 70년 넘게 식민지 였지요.
매년 수많은 여자를 상납도 했고요.
권문세가들의 횡포도 고려의 왕은 못본체 했지요.오히려 말 잘 듣는 원숭이였어요.
이제 우리도 올바른 역사를 알고 알려 미래세대에게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물려 줘야 한다고 봅니다.
국뽕에 취해 역사를 왜곡하고 동북공정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않는 역사학자들에게는 지지를 해주면 안됩니다.
친중정치인이나 강단사학자들을 몰아내야합니다.
역대 고려왕들이 얼마나 전쟁 안 나게 외교를 잘했는지 고려사절요 읽어보시면 감탄하실 겁니다 당시 중국 대륙은 송 요 금 원 등이 차례로 각축하며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 정말 잘 살아남은 거예요 칭기즈칸은 세계를 정복한 전쟁 영웅인데 전쟁 안 나게 피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
😂같은 고구려 핏즐이었던게 가장 컸다.
고려는 1차 침입때 왕이 재빠르게 항복하였기때문에 그나마 봐준거. 대신 고려에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내정간섭을함.
이때 고려가 한건 집에 도둑이 쳐들어왔는데 처자식은 거실에 냅두고 혼자 식량이랑 창하나 들고 다락방에 올라간겁니다... 안털린곳은 강화도밖에 없고 내륙 국민들은 영혼까지 탈탈탈 털렸어요.... 쿠빌라이 는 당시 고려가 몽골 1인자 만나러가는게 실패해 2인자라도 만나자해서 만난게 쿠빌라이에요... 운이 개좋았음...
몽고리에서는 칸이라 안하고
한. 이라고 함 같은 맥고리의 후손이라 막대하지 안핫음
그들이 세운 나라가 4개의 한국임
살아남는자가 강한거다
1. 고려에는 먹을게 별로 없다.
2. 먹을 것도 별로 없는 나라인데 저항정신은 끈질겨서 끝까지 복종시키고자 하면 전쟁이 장기화됨. 이미 몽골은 인구가 적어 점령한 곳도 다 다스리기 힘들 정도.
3. 몽골이 쳐들어간 이웃 국가들을 보면 대체로 사이가 안좋았다. 그에 반해 몽골과 고려는 딱히 사이가 좋고 나쁘고의 연관성이 적었고 이미 고려를 정복한 이후 왜까지 쳐들어갈 계획이었던 몽골은 고려의 병력. 즉 고려 수군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었음.
4. 몽골은 어디를 정복하든 정복과정에서 그 지역의 기술과 문화를 빠르게 배우고 활용하는 성향이 있었고 고려에서도 일본을 침략할 해양술과 병력을 배우고 활용하려함.
싸우지도 않고 항복부터 한 조선 ㅎㅎ
외교의 진수를 보여줌
돈 될만한게 없었죠.
보다 더 가치있는 것들이 가득한 서쪽으로 간거지요.
저렇게 그 당시 전 세계를 다 무력으로 휩쓸고 다녔으니까 지금 상수도도 없는 후진국이 돼서 저리 고생하고 산다. 몽골이
징기스칸 은 돼지고 없으니까
쿠빌라이가 고마워서 살려주고 딸을 줌으로써 몽골제국 에서 서열 3위로 만들어줌
고려 초기는 군사강국,
당시 동북아 최강 거란제압.
이후 조선은 인구 절반이상
노비로, 군대에 가지 않은, 말할줄 아는 도구였음
내 생각엔 목표 한바를 정복 할때 까지 왜를 막아주고 있기를 바랬을 듯. 나중에 왜 정벌에 나선것을 보면 안그랬을까?
3번째 쿠빌라이 ㅎㅎ
대박 ㅎㅎ🎉
고려때는 징기스칸 죽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놔둔거임 굳이 .안먹어도 되는 땅이라서
그냥 안놔뒀는데... 고려 폐허만들어놨는데
쿠빌라이는 스스로가 발해사람이라 말했다고함
징기스칸은 (辰國의 王)의 몽골어이고 발해대조영 동생의 19대손?이다
대조영후손이라구요?
29대면 거의 천년인데요?
몽골비사에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19세 손으로 되어 있습니다. 징기스칸의 아명인 태무진이 대무신(고구려 3대왕)의 몽골발음인걸 보면 고구려 혈통이 맞는가 봅니다.
@@행복이-t6k goodness
@@행복이-t6k
그렇다니까~? 단군조선
고구리 발해시 언저리세
력이었지?~^^
몽고는 돌궐족의 후손이다.
고구려 하고 연합해서
당을 견제를 했다.
고구려가 망하고 말갈 거란 고구려인이 몽고에 일부가 흡수 되었다.
본인 역사 공부 제대로 하고 말을하세요
환단고기에 보면 단군조선 시절 제 4대 단군이셨던 오사구 단군께서 친아우 오사달을 지금의 몽골 지방에 칸으로 봉한 후 몽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나와요
배타는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강화도 외 내륙은 작살
고려시대 논이라뇨..ㅋㅋ 조선중기까지 쌀농사는 논이 아닌 밭벼 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논벼는 정조년간에나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쿠빌라이가 고려의 왕실과 국호를 인정이 아닌 더 큰 맥락에서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려의 풍습을 인정해줬단 거였습니다 물론 원종이 요구한 것이지만요
정조 시대면 18세기인데????이앙법의 보급등은 조선 전기에 이미 이루어짐....이앙법의 보급으로 보리와 벼의 이모작이 조선 전기에 이루어짐....
저시대에는 하늘의뜻 이런게있어서 왕자가 돈을풀어 양진영의 정보를 수집검토한 후 쿠빌라이에 배팅한게 적중. 한 참 북쪽의 막내동생과 내전중이던 쿠빌라이는 고려에서 멀리 자기진영에 제발로 찾아와 항복한다니 이건 상스러운 하늘의 뜻으로..얼마나 이뻣을까. 한 잔 했을듯
징기스칸 놔둘수밖에없지 죽어서 무덤에 있었으니깐 시체가 가만히 안두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몽고는 고려라는 말을 이해했음.
적장자라 그려 첨 부터 고려 먹을 생각 없었음 정나라도 마찬가지
??: 신명호는 놔두라고... 40분을 얘기했는데 안들어먹으면 어쩌자는거야!!!
몽골: 고려는 놔두라고...
한족들은 원나라때 귀족신분은 꿈도 못꾸고 고려인들이 높은 관직도 하고 그랬죠암묵적으로 같은 동족으로 본게 아닐까요? 그러니 고려여자가 왕비가 될수있고 그 자식이 왕도 된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