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가 김제인 저는 어릴 때부터 먼 옛날 저희 집안 할아버지가 어느 전쟁에 나가시는데, 가면 어차피 살아돌아올 수 없는 전쟁인지라, 나가기 전날 할머니가 울면서 옷에 이름을 바느질로 새겼고, 실제로 할아버지 시신을 옷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수습했다는 애기를 가끔 들었습니다. 그때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는 분이 없어 그 전쟁이 먼지도 몰랐지만 성인이 되서 알고 보니 바로 웅치 전투였습니다.~정담 장군도 웅치 전투에 임하기 전에 옷에 이름을 새겼다는 애기를 추후 듣고, 당시 김제 군수였던 정담 장군이 본인 뿐만 아니라 같이 출정하는 김제 지역의 관군 및 의병에게 전부 옷에 이름을 새기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얼마나 비장한 각오였을 지 가늠조차 안되지만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참 먹먹해집니다~호남을 죽음으로 지켜 임란의 국면을 바꾼 정담 장군과 제 선조 할아버지를 비롯한 웅치 전투에 참가한 조상님들께 깊이 감사드리고 자료와 콘텐츠가 부족한 웅치전투를 다뤄주신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내년인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황진 장군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지금 촬영 중이라고 들었는데 웅치, 이치 전투는 황진 장군님 얘기를 할때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전투 장면에 포함해서 나올거 같고 이치 전투에서는 황진 장군님이 하도 활을 많이 쏘셔서 엄지와 검지 살이 닳아서 사라지고 뼈가 보이는데도 끝까지 활을 쏘며 막았다고 하던데 이런 장면이 담겨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웅치에서 전투가 1차로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웅치에서 전주쪽으로 내려오면 전주 사이에 소양 골짜기로 전주로 이어집니다. 웅치 전투 뒤에 전주로 오는 길목에서 소양으로 와서 2차 전투를 했는데 이때의 기록이 그대로 남았는데 2차 전투는 오늘날 황운리라고 이름이 있는 마을인데 그때 격렬한 전투로 하늘에 붉은 피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서 그 마을 이름이 황운리가 되었고 여기서 왜군은 웅치쪽으로 밀려 나는데 조선군이 뒤를 추격해갈 때 송광사에서 내려오는 작은 시내를 건널 때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진을 추스렀다고 해서 그곳을 오늘날 마수리라고 불림니다. 그리고 조선군은 더 웅치쪽으로 추격하면서 오늘날 구진벌리 불리는 곳에서 구진을 준비해서 동상면방향 들판에서 왜군을 공격하고 크게 이겨서 그 마을은 대승리라고 불림니다. 그리고 소양에 있는 송광사는 꽤 큰 사찰인데 임진왜란에는 피해를 입지 않고 정유재란에 모두 불에 타서 전소 됩니다. 이 것은 임진왜란에서 왜군이 웅치를 넘어 전주로 왔지만 바로 조선군의 공격으로 머무르지 못하고 바로 쫒겨났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금산에서 웅치까지의 보급, 웅치에서 전주까지의 보급.. 아마 웅치에서 생각보다 강한 저항을 받아 소모가 심했고 전주 인근까지 진출은 했는데 보급이 슬슬 오링나기시작 했을듯. 산길로 대군의 보급을 한다는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우니.. 게다가 본거지인 금산에서 조헌의 의병이 일어나 빈집털이 당할수도 있고.. 그래서 후퇴한듯
작년 여름에도.. 올해 여름에도 웅치를 다녀왔습니다. 정확히는 올해 웅치 전적비까지 다녀왔습니다. 웅치의 산세는 정말 누가봐도 험난 합니다. 참고로 웅치 전적비를 가려면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합니다. 그 정도로 산세가 험합니다. 하지만 웅치의 산세를 벗어나 산 아래 10KM를 달린다면 드넓은 호남평야를 마주하게되고 곧 이어 전주성을 품에 넣게 되죠.. 그 정도로 정말 중요한 전적지였으며 목숨을 걸고 지킬만 한 가지가 있는 곳이었죠.. 지금도 웅치전적비 검색하면 정말 초라하게 보이실 겁니다. 저 역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요.. 오죽하면 일본 왜군 조차도 목숨 바쳐 이 곳을 지킨 항일의병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을 세웠을까요..(정말 대놓고 치를 떨었다고 하네요)
전적지는 지형이 유적이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전적지가 잘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동의합니다.
본가가 김제인 저는 어릴 때부터 먼 옛날 저희 집안 할아버지가 어느 전쟁에 나가시는데, 가면 어차피 살아돌아올 수 없는 전쟁인지라, 나가기 전날 할머니가 울면서 옷에 이름을 바느질로 새겼고, 실제로 할아버지 시신을 옷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수습했다는 애기를 가끔 들었습니다. 그때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는 분이 없어 그 전쟁이 먼지도 몰랐지만 성인이 되서 알고 보니 바로 웅치 전투였습니다.~정담 장군도 웅치 전투에 임하기 전에 옷에 이름을 새겼다는 애기를 추후 듣고, 당시 김제 군수였던 정담 장군이 본인 뿐만 아니라 같이 출정하는 김제 지역의 관군 및 의병에게 전부 옷에 이름을 새기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얼마나 비장한 각오였을 지 가늠조차 안되지만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참 먹먹해집니다~호남을 죽음으로 지켜 임란의 국면을 바꾼 정담 장군과 제 선조 할아버지를 비롯한 웅치 전투에 참가한 조상님들께 깊이 감사드리고 자료와 콘텐츠가 부족한 웅치전투를 다뤄주신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런게 참다운 역사요 기록이라 생각합니다. 그랬군요. 죽으러 가는 이들의 옷에 이름을 새긴다. ㅠ ㅠ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분들 덕분입니다.
조선국 충간 의담
김제군민과 군수님
고맙습니다
길이길이
왜적 왜인들을
경계경계합시다
때로는 실패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데, 사람들은 실패를 빨리 잊는 걸로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 말흠이 맞습니다. 미국의 게티즈버그 처럼 전적지 주변을 전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지형과 관련 건물이나 유적을 보존 유지하게 만들어야합니다.
흙이나 나무, 지형도 유적이라는 말이 정말 와닿네요 박사님
정담 장군의 장렬한 이야기. 선택의 기로에서의 이복남 장군의 이야기 모두 잘 들었습니다. 웅치전투 정말 멋지고 감사하고 장렬하네요
웅치, 이치 전투가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말씀만 들어도 정말 긴박하고 처절해서 감동적입니다.
근데 한 주제의 이야기가 주에 한 번 이어서 긴장감이 떨어지는거 같아요.
연속극도 주 2회 또는 3회인데요.^^
내년인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황진 장군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지금 촬영 중이라고 들었는데 웅치, 이치 전투는 황진 장군님 얘기를 할때 빼놓을 수 없기 때문에 전투 장면에 포함해서 나올거 같고 이치 전투에서는 황진 장군님이 하도 활을 많이 쏘셔서 엄지와 검지 살이 닳아서 사라지고 뼈가 보이는데도 끝까지 활을 쏘며 막았다고 하던데 이런 장면이 담겨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korterrorist 영화 제작에 어려움이 없길 바라며, 개봉하면 제일 먼저 관람권 예매후 관람하겠습니다. 추워진 날씨에도 영화 제작에 힘 써 주시는 배우, 감독, 그리고 열거 할수 없는 수많은 스테프분들께도 감사드려요.
@@korterrorist 제발 역사고증좀 잘되있었으면
@@티라노사우루스렉스trx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겟네요 ㅎㅎ 역사고증을 철저히 하되 이상한 감성 팔이나 왜곡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ㅎ
@@korterrorist 엄청 기대되네요. 좋은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소재가 소모될 땐 막 아까워요.
임박사님께 자문좀 받았으면 좋겠네요.
박사님 감사합니다!
이긴 전투라고만 알고 넘어간 웅치 전투에 대해서 중요성을 더 깊게 알게된 영상입니다. 더 알아 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전투현장보존에 대한 임박사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웅치-안덕원전투는 대단한 전투였습니다.
웅치에서 전투가 1차로 행해졌습니다. 그리고 웅치에서 전주쪽으로 내려오면 전주 사이에 소양 골짜기로 전주로 이어집니다. 웅치 전투 뒤에 전주로 오는 길목에서 소양으로 와서 2차 전투를 했는데 이때의 기록이 그대로 남았는데 2차 전투는 오늘날 황운리라고 이름이 있는 마을인데 그때 격렬한 전투로 하늘에 붉은 피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서 그 마을 이름이 황운리가 되었고 여기서 왜군은 웅치쪽으로 밀려 나는데 조선군이 뒤를 추격해갈 때 송광사에서 내려오는 작은 시내를 건널 때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진을 추스렀다고 해서 그곳을 오늘날 마수리라고 불림니다. 그리고 조선군은 더 웅치쪽으로 추격하면서 오늘날 구진벌리 불리는 곳에서 구진을 준비해서 동상면방향 들판에서 왜군을 공격하고 크게 이겨서 그 마을은 대승리라고 불림니다. 그리고 소양에 있는 송광사는 꽤 큰 사찰인데 임진왜란에는 피해를 입지 않고 정유재란에 모두 불에 타서 전소 됩니다. 이 것은 임진왜란에서 왜군이 웅치를 넘어 전주로 왔지만 바로 조선군의 공격으로 머무르지 못하고 바로 쫒겨났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 사용하시는 의자 여쭈어봐도 괜찮으실까요?
EX퍼니처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금산에서 웅치까지의 보급, 웅치에서 전주까지의 보급.. 아마 웅치에서 생각보다 강한 저항을 받아 소모가 심했고 전주 인근까지 진출은 했는데 보급이 슬슬 오링나기시작 했을듯. 산길로 대군의 보급을 한다는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우니.. 게다가 본거지인 금산에서 조헌의 의병이 일어나 빈집털이 당할수도 있고.. 그래서 후퇴한듯
권율 : 내가 지휘한 전투 중에 젤 큰 승리는 웅치, 이치 전투다. 행주산성 전투는 걍 이겼을 뿐...
권율: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행주 전투를 위로 보니 세상일은 참 모를일이다.
@@user-jjy1015 후손들의 힘이나 당시 정치적 힘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요.
여기가 얼마나 방어가 힘든 지형인지를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힘들게 올라가고 위에서 내려보는게 역사채험이라는 말씀. 동의합니다.
작년 여름에도.. 올해 여름에도 웅치를 다녀왔습니다. 정확히는 올해 웅치 전적비까지 다녀왔습니다. 웅치의 산세는 정말 누가봐도 험난 합니다. 참고로 웅치 전적비를 가려면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합니다. 그 정도로 산세가 험합니다. 하지만 웅치의 산세를 벗어나 산 아래 10KM를 달린다면 드넓은 호남평야를 마주하게되고 곧 이어 전주성을 품에 넣게 되죠.. 그 정도로 정말 중요한 전적지였으며 목숨을 걸고 지킬만 한 가지가 있는 곳이었죠.. 지금도 웅치전적비 검색하면 정말 초라하게 보이실 겁니다. 저 역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요.. 오죽하면 일본 왜군 조차도 목숨 바쳐 이 곳을 지킨 항일의병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을 세웠을까요..(정말 대놓고 치를 떨었다고 하네요)
의병이 아니라 정규군 아님?
황진 장군과 그 부대의 빛나는 분전은 널리 알려야 합니다.
전적지의 지형을 그대로 보존했으면하내요 보고가는 유적지가아니라 그당시를 느낄수있는 현장감넘치는 전적지가 되었으면하내요
썸내일 너무 멋있어요
잘보았습니다
♥임 박사 님...일당백이거늘
잘보겠습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웅치 전투에 참여했던 조선군 존경합니다 많은 이들이 기억해주길
썸네일 웅치! 임치!
썸네일 웃기네요 박사님 ㅋㅋㅋㅋㅋ
일본어로 웅치는 똥 당시 일본군 마음이 어땠을까 ㅋㅋ
👍
임진왜란
썸네일 뭉치인줄..크크
썸네일ㅋㅋㅋㅋ
황진장군..
안경에 동그란 원 뭔가요? 너무 신경쓰여서요 ㅋ
조명이 살짝 비치시는 듯 ㅋㅋ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