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 「비극의 탄생」의 전신(前身) 「디오니소스적 세계관(1870)」 / 4. 승리의 기념비, 비극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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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4 фев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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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네 번째 '승리의 기념비, 비극의 탄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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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메일 - licht0508@naver.com
    인스타 - / licht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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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막 : 배달의민족 주아체/kcc체
    Track : I saw you in my dream
    Music by 브금대통령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Watch : • [브금대통령] (서정/피아노/Piano)...

Комментарии • 7

  • @licht_book
    @licht_book  5 лет назад +6

    쇼펜하우어는 에서 "의지Wille는" "삶에의 의지Wille zum Leben"와 동일하다고 설명합니다. 니체는 이 책에서 의지라는 용어를 자연과 고통으로도 표현하는데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영상에서 이걸 다 설명하면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이렇게 댓글에 달아놓습니다.
    의지는 삶에의 의지로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맹목적 의지입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에서 의지라는 것은 "목표와 한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 왜 살아?"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명확한 답이 불가능한 이유는 "삶" 그 자체는 의지로서 "영원한 생성, 끝없는 흐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왜 사는 지 모르는 채 그저 살려는 의지가 이끄는대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의지는 여러 욕구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식욕과 성욕, 수면욕 등등으로 말이죠. 이것이 없다면 삶은 지속될 수 없기에 삶에의 의지와 이러한 욕구는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는 의지를 '자연Natur'과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성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욕구해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삶 그 자체는 고통인 것이죠. 의지는 우리를 욕구로 이끕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욕구한다는 것은 희망한다는 것인데 이때 이루지 못함에서 오는 고통이 인간에게 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것도 의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네, 인간은 끔찍한 권태에 빠지고 맙니다. 희망과 권태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인간 삶의 본질이므로 삶은 고통인 것이죠.
    결국 의지와 자연, 고통은 같은 말이며 니체는 이러한 세 용어를 같은 맥락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이해를 가지고 영상을 보신다면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 @Shinsora-k4m
    @Shinsora-k4m 5 лет назад +2

    리히트님 이전 편 다음인 이 편이 정말 너무너무 궁금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포스 신의 창조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니체가 헬레니즘을 보는 관점, 그리스인들이 실존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수단에 관한 것 그리고 신기한 자연이 관점도 너무 흥미롭습니다. 여러번 봐야할 것 같아요.

    • @licht_book
      @licht_book  5 лет назад +1

      늘 부족한 영상 봐주셔서 감사해요😭 더 좋은 영상 만들도록 노력할게요!🙇‍♂️

  • @Ryan-gi5hl
    @Ryan-gi5hl 5 лет назад +1

    잘 보고 갑니다~

  • @엘프리모-e5i
    @엘프리모-e5i 4 года назад

    좋은영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