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한낙연 활동지 - 키질 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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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9 дек 2024
  • 한낙연은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룽징[龍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룽징에서 3·1운동에 참가한 뒤 1920년 가을 상하이로 건너가 전차회사, 인쇄공장 직공으로 일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접근해 갔다.
    1923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손문주의(孫文主義) 혁명 단체 계명학사(啓明學社)에 참여했으며, 1928년 상하이에서 지하당 조직 활동에 종사했다. 192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리용에서 미술 공부를 하는 동안 1931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유럽 거주 중국인들의 항일운동에 참가하기도 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무한(武漢)에서 동북항일구국총회에 참가했으며, 1938년 중국국민당 고급장교를 상대로 하는 통일전선사업에 종사했다. 그러던 중 1940년 봄 국민당 군대에 체포되어 시안 특종구류소에 수감되었다가 1943년 초 출옥했다.
    1943년∼1947년에는 난주와 서안에서 20차례의 미술전람회를 열었다. 1946년 4월부터는 신강에서 고대 고창국(高昌國) 유적지와 키질(Kizil) 석굴 발굴 정리 사업, 벽화모사 작업을 처음으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1947년 7월 30일에 비행기를 타고 적화에서 난주로 가다가 조난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2010년 9월 22일에 중국 용정시 정부에서 용정 토성포의 육도하와 해란강 합수 지점에 락연공원을 세워 공적을 기리고 있다.
    키질 석굴
    3세기~9세기 만들어진 중국 최초의 석굴사원. 둔황, 룽먼, 윈강 석굴과 함께 중국 4대 석굴의 하나.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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