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전의 결과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기록들은 꽤 많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육상 전투의 경우는 대충 긴 꼬챙이(창) 하나 쥐어주고 2주 정도 훈련하면 부족하나마 써먹을 순 있다 하지만 해전의 경우는 다르다 수년을 훈련해야 겨우 전장에서 합을 맞출 수가 있는데 해전의 기록들을 보면 몇척 격침 몇척 대파 이렇지 전사 몇 명 이런 기록들은 잘 없다, 해전에서 격침된 배의 수병들은 99% 사망이다 즉 격침 된 배의 수를 보면 적의 피해를 그마저도 훈련된 수병들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한산 해전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군의 피해는 사상자 1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배는 한척도 파괴되지 않았으므로 말 그대로 13명 사상 이었다 반면 일본군의 피해는 아다케부네 35척, 세키부네 17척, 고바야 7척 침몰이었다.. 해전의 특징상 침몰된 배의 수병의 생존율은 잘해봐야15% 미만 이었을테니 아다케부네의 정원 180명, 세키부네 100명, 고바야 30명을 대입해 계산해보면 (35X180)+(17X100)+(30X7)=8210 즉 격침된 배의 수병들 숫자만 최대 8200명에 나머지 배의 수병들도 다치거나 죽은 인원을 합하면 8500명은 되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고 이 숫자에서 15%쯤 감한다 해도 한산해전에서 물귀신이된 일본군의 숫자는 최소한 7500명 이상이라는 결론이다.. 이 한산도 대첩의 결과를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일컷는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비교해 보자 행주대첩 10000여명 진주대첩 13000여명의 사상자를내고 일본군이 패퇴 하엿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상자라 함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친 숫자이다 육상 전투에서 사망자의 비율이 사상자의 20% 정도임을 감안하면 사망자 숫자는 두 대첩을 합쳐 5000명 이하이다 하지만 해전은 다르다 해전에선 사망자의 비율이 사상자의 80%를 간단히 넘어서며 이들은 모두 수년이상 조련을 한 수병이나 베테랑 뱃사람 들이다, 육군처럼 대충 창 한 자루 쥐어주고 내민 인원들이 아닌 것이다.. 한산해전 한번의 결과가 일본군에 가한 피해는 행주대첩과 진주대첩을 합한 것보다도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dfsfe-n8n 한산대첩의 수병들만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대승을 했다는 주장인데, 일반적으로 훈련과 전투력은 비례하는것은 상식이다.나 또한 동감한다... 하지만 원 댓글은 여러 숫자를 나열하였으나 훈련의 차이로 승패를 결정했다는 근거로는 거리가 멀다. 난 한산대첩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원 댓글은 논리와는 거리가 머니 개소리 라는것만 알뿐...
20만명 하루 생존식 250g 만 보급시 하루만 해도 50톤 부족한 두끼제공만해도 하루 100톤 세끼 보급시 하루 150톤 하루! 150톤 한달 보급시 4500톤 식량이 필요하고 수송 유통 저장 보급해야하는데 해상 대량 보급길 서해길을 끊어주신 이순신장군과 팀원들 감사함과 고마움은 이루해어랄 수 없네요!
그건 판옥선 기준이고요... 거북선은 근접 교란 할 수 있었으므로 천지현 쪽 보단 황자총통과 현자총통 위주를 생각하셨겠지요 ... 그럼 우리 지금의 산탄총과 거의 비슷 그리고 총통구명위(화살용겸욤) 창문과 옥상문을 통해 바람이 통하게 했을 거구요 ... 만약 왜구가 월선을 했다면 그때 창문과 환기창을 닫았지 않았을까요 ??? 거북선을 만들고 바보처럼 안에서 너구리 잡았을 꺼라 그러면서 환타지 논하는 분들..... 당신이 태어난 게 그때의 승리 증거 아니까요 ??? ㅎㅎㅎ
흑색화악 시대이니 포를 발사하면 많은 연기가 났을 겁니다. 그러나 포를 발사할 때는 포구가 함선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거북선은 가운데 돗대를 세우는 곳이 뚫려 있습니다. 이곳이 환기구 역활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사수에게 화약 냄세가 많이 났을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포를 장전하고 사격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앗을 겁니다. 지금도 배를 만들면 몇 년에 걸쳐서 시운전을 하고나서 전력화 하는 것과 같이 사전에 그런 요소들 까지 확인은 하고 전력화 했을 겁니다.
이순신은 육상전에서도 엄청 잘 싸웠다. 녹둔도의 일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이일의 부장으로 있었는데 여진족이 1천 병력의 기병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이순신은 싸우자고 하고 이일은 도망가자고 했다. 그래서 각자 주장한 대로 행동했다. 그런데... 얼레? 이순신이 이겨 버렸네? 소대 정도의 병력이고 장수도 이순신과 이경록 둘인데 이걸로 1000기의 기병을 깨버리고 완전히 전멸을 만들어 놓고 추격해서 백성들까지 구출해 왔네? 이일의 발에 불이 떨어졌다. 결국 이일은 이걸 들킬까봐 이순신을 모함해서 참수당하게 하려고 아주 발악했으나 선조는 이순신을 백의종군으로 일단락 지었고 이후 이순신은 여진족 우을기내를 포획해 복직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참수당해야 할 인간은 이일이고 홋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일은 진짜로 계속 벌거벗고 도망다니기만 반복했다. 오죽하니 벌거벗은 이일이 무려 선조의 몽진 어가와 합류했는데 발가벗은 이일을 궁녀들이 본 거다. 이것 때문에 류성룡이 빡쳐서 이일에게 철릭을 입힌 뒤 칼을 뽑아서 이일의 목에 대고 "너 한 번만 더 발가벗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 이거 주상전하께서 보시지 않은 게 네 구족을 살린 일인 줄 알아라!"라 일갈했다. 그럴만도 하지. 궁녀 앞에서 벌거벗고 있다? 참수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임진왜란 초기의 조선군 장군들은 주로 여진족들을 상대로 승리를 해서 장군이 되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군대의 규모도 지금으로는 대대급 이나 여단급 정도의 군대를 운용 해보았습니다. 그런대 군단급 이상의 대규묘 전투에 능한 일본군을 상대를 해서 승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겁니다. 국가의 군 체제가 그렇게 되지를 않았거든요. 저때의 왜군을 상대를 하고자 했다면 조선군도 고려시대처럼 수십만명을 동원한 전투체게가 준비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대 임란초기 조선은 10만의 군대도 조련 할 능력이 안되는 나라였습니다. 국가적인 재정이 그것밖에 안된 것이지됴. 니머지는 양반이나 토호들이 국가의 재정을 갉아 먹고 있었으니가요. 그래서 죽어난 것은 양반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하층민들이요. 저때 노비들 중 일부가 왜놈에게 협조를 했다고 해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놈이 상전이 되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왜놈의 앞잡이 들이 조선이 왜놈들에게 망한 이유를 말하면서 조선을 개화시켰다 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지요
거북선은 2층선임! 충파함이 아닌 디코이 기만선임! 돌격선! 적 화력집중 유인선임! 팽월전술 같이 적진 교란 혼란 화력집중 유인 초 단거리 접전 장갑 화력선임! 만호! 즉 중대단위로 팀별전투! 크게 쌍학익진포위였지만 중대단위 개별전투로 맥을 끊었다는 정확하고 명확한 분석! 임용한 박사님 사랑합니다^^/
군량 하고 무기를 가득 채운 배를 가지고 .. 바다 위에서 이순신을 상대 할수 없었고 .. 한양 주든 일본 병력에게 보급은 불가 하여 .. 자진 철군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군요.. 전투 부대 전투력은 보급이 받처 주어야 유지 되는 것이고 .. 전투 부대 보급이 끊어 지면 ..전투력을 유지 할수 없고 ..탈영도 있었겠죠 ..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잡어 먹는 경우 있어 .. 못볼것을 보면 ..탈영 하는 병력들이 사방에서 나올수 있죠 .. 움직이는 고기는 다잡어 먹었을거니 .. 보급 문제 해결이 중요 했겠죠 ..
"대비가 이미 돼 계셨었습니다 ! "가 아니고 "대비가 돼 있으셨습니다 !" 라고 해야죠. 지금 누구를 높이시는 겁니까 ? 화자(이순신 장군) 대신 대상을 높이는 것은, 화자를 비하하는 것 입니다. 결국 안경 쓰고 체중 좀 나가는 저 분은 이순신 장군을 깎아내린 것 입니다. 공영방송에 나와서 진행? 하는 자가 참으로 무식 합니다.
진짜 진심으로 그림체 좀 바꾸세요... 전부 눈이 삐꾸인가요? 제발좀 거북선 만들거나 그림 그리때 오이처럼 좀 만들지 말고 그리지마세요' 이러시면 당신들은 우리 선조들을 바보로 밖에 안 만드는거예요.. 거북이 대가리만 달았다고 다 거북선인가요? 전투에 적합하려면 당연히 옛 그림처럼 둥글게 만들지요..그림을 그릴줄 몰라서 삐뚤게 그린게 아니잖아요,,,, 제발 부탁입니다..좀 제발 ...우리 후손들이 진짜로 오이같이생긴걸 거북선이라고 할까봐 겁납니다...엤날 말안장 조차도 복원 못하는 한국인데...제발 옛날 그림을 좀 분석하고 만들던지 그리던지... 일본사람 그림에도 둥글고 3층으로 만들어 놨고 우린나라 그림에도 딱봐도 둥글게 그려놨는데..눈이 삐꾸인건지...귀찮은건지...제발좀.... 거북선 나올때마다 부끄럽습니다...외국인이 보면 비웃습니다...제발 좀 알고 그리던지 만들던지.....
해전의 결과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기록들은 꽤 많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육상 전투의 경우는 대충 긴 꼬챙이(창) 하나 쥐어주고 2주 정도 훈련하면 부족하나마 써먹을 순 있다 하지만 해전의 경우는 다르다 수년을 훈련해야 겨우 전장에서 합을 맞출 수가 있는데 해전의 기록들을 보면 몇척 격침 몇척 대파 이렇지 전사 몇 명 이런 기록들은 잘 없다, 해전에서 격침된 배의 수병들은 99% 사망이다 즉 격침 된 배의 수를 보면 적의 피해를 그마저도 훈련된 수병들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한산 해전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군의 피해는 사상자 1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배는 한척도 파괴되지 않았으므로 말 그대로 13명 사상 이었다 반면 일본군의 피해는 아다케부네 35척, 세키부네 17척, 고바야 7척 침몰이었다.. 해전의 특징상 침몰된 배의 수병의 생존율은 잘해봐야15% 미만 이었을테니 아다케부네의 정원 180명, 세키부네 100명, 고바야 30명을 대입해 계산해보면
(35X180)+(17X100)+(30X7)=8210 즉 격침된 배의 수병들 숫자만 최대 8200명에 나머지 배의 수병들도 다치거나 죽은 인원을 합하면 8500명은 되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고 이 숫자에서 15%쯤 감한다 해도 한산해전에서 물귀신이된 일본군의 숫자는 최소한 7500명 이상이라는 결론이다..
이 한산도 대첩의 결과를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일컷는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비교해 보자 행주대첩 10000여명 진주대첩 13000여명의 사상자를내고 일본군이 패퇴 하엿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상자라 함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친 숫자이다 육상 전투에서 사망자의 비율이 사상자의 20% 정도임을 감안하면 사망자 숫자는 두 대첩을 합쳐 5000명 이하이다 하지만 해전은 다르다 해전에선 사망자의 비율이 사상자의 80%를 간단히 넘어서며 이들은 모두 수년이상 조련을 한 수병이나 베테랑 뱃사람 들이다, 육군처럼 대충 창 한 자루 쥐어주고 내민 인원들이 아닌 것이다.. 한산해전 한번의 결과가 일본군에 가한 피해는 행주대첩과 진주대첩을 합한 것보다도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해석해주셨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베테랑 전투기 조종 파일럿 정도의 육성과정입니다 👍
진짜 격군이면 전투병들 그 합은 가히 어떻게 저시대에 저런합일까 할 정도입니다
숫자를 먾이 써서 논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리없는 저 해설자들과 마찬 가지로 님의 소리도 개소리일 뿐이다.
@@박차노-j8y 남의 글이 개소리라고하면 그에 합당한 반박을해야지 반박은 1도없고 그냥 댓글 싸지르기 ㅋㅋ
@@dfsfe-n8n 한산대첩의 수병들만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대승을 했다는 주장인데,
일반적으로 훈련과 전투력은 비례하는것은 상식이다.나 또한 동감한다...
하지만 원 댓글은 여러 숫자를 나열하였으나 훈련의 차이로 승패를 결정했다는 근거로는 거리가 멀다.
난 한산대첩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원 댓글은 논리와는 거리가 머니 개소리 라는것만 알뿐...
임용한 🎉🎉🎉❤박사님 열심히 듣고있습니다 🎉❤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순신은 천재다 믿기 힘들 정도의 위인이다...대단하다는 말 밖에...엄청난 전략가
20만명 하루 생존식 250g 만 보급시 하루만 해도 50톤 부족한 두끼제공만해도 하루 100톤 세끼 보급시 하루 150톤 하루! 150톤 한달 보급시 4500톤 식량이 필요하고 수송 유통 저장 보급해야하는데 해상 대량 보급길 서해길을 끊어주신 이순신장군과 팀원들 감사함과 고마움은 이루해어랄 수 없네요!
안골포는 지금은 거의 육지가 되었습니다.
안골포 입구가 지금은 부산신항이 되어있거든요.
저기가 창원광역시와 부산의 경계입니다.
솔직히 거북선 근무자들 지옥이였을듯 판옥선에서 포를 쏴도 화약연기가 장난 아닐진데 덮개가 덮인곳에서 포를 쏜다는건 그 포성도 실내에서돌게되고 회약연기또한 장난아니였을텐데 지옥이 따로 없었을듯
그건 판옥선 기준이고요... 거북선은 근접 교란 할 수 있었으므로 천지현 쪽 보단 황자총통과 현자총통 위주를 생각하셨겠지요 ... 그럼 우리 지금의 산탄총과 거의 비슷
그리고 총통구명위(화살용겸욤) 창문과 옥상문을 통해 바람이 통하게 했을 거구요 ... 만약 왜구가 월선을 했다면 그때 창문과 환기창을 닫았지 않았을까요 ???
거북선을 만들고 바보처럼 안에서 너구리 잡았을 꺼라 그러면서 환타지 논하는 분들..... 당신이 태어난 게 그때의 승리 증거 아니까요 ??? ㅎㅎㅎ
흑색화악 시대이니 포를 발사하면 많은 연기가 났을 겁니다.
그러나 포를 발사할 때는 포구가 함선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거북선은 가운데 돗대를 세우는 곳이 뚫려 있습니다.
이곳이 환기구 역활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사수에게 화약 냄세가 많이 났을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포를 장전하고 사격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앗을 겁니다.
지금도 배를 만들면 몇 년에 걸쳐서 시운전을 하고나서 전력화 하는 것과 같이 사전에 그런 요소들 까지 확인은 하고 전력화 했을 겁니다.
거북선 선원들도 힘들었겠지만 그 포연이 사실 적진에 혼란을 주는 역활도 했을겁니다. 거북선 입에서 연기가 나왔다는것도 내부에 찬 연기가 더 높은 입과 등부위의 돗대창으로 뚫린 공간으로 환기되면서 나오는 효과도 있었겠죠.
임진왜란 까지도 조선이 일본을 물리 칠수 있었으나, 그 이후에 조선은 점점 국력이 약해졌으나 일본은 국력이 더 강해졌구나..
이순신 장군 만세❤❤
이순신은 육상전에서도 엄청 잘 싸웠다. 녹둔도의 일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이일의 부장으로 있었는데 여진족이 1천 병력의 기병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이순신은 싸우자고 하고 이일은 도망가자고 했다. 그래서 각자 주장한 대로 행동했다. 그런데... 얼레? 이순신이 이겨 버렸네? 소대 정도의 병력이고 장수도 이순신과 이경록 둘인데 이걸로 1000기의 기병을 깨버리고 완전히 전멸을 만들어 놓고 추격해서 백성들까지 구출해 왔네? 이일의 발에 불이 떨어졌다. 결국 이일은 이걸 들킬까봐 이순신을 모함해서 참수당하게 하려고 아주 발악했으나 선조는 이순신을 백의종군으로 일단락 지었고 이후 이순신은 여진족 우을기내를 포획해 복직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참수당해야 할 인간은 이일이고 홋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일은 진짜로 계속 벌거벗고 도망다니기만 반복했다. 오죽하니 벌거벗은 이일이 무려 선조의 몽진 어가와 합류했는데 발가벗은 이일을 궁녀들이 본 거다. 이것 때문에 류성룡이 빡쳐서 이일에게 철릭을 입힌 뒤 칼을 뽑아서 이일의 목에 대고 "너 한 번만 더 발가벗으면 네 목을 벨 것이다. 이거 주상전하께서 보시지 않은 게 네 구족을 살린 일인 줄 알아라!"라 일갈했다. 그럴만도 하지. 궁녀 앞에서 벌거벗고 있다? 참수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임진왜란 초기의 조선군 장군들은 주로 여진족들을 상대로 승리를 해서 장군이 되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군대의 규모도 지금으로는 대대급 이나 여단급 정도의 군대를 운용 해보았습니다.
그런대 군단급 이상의 대규묘 전투에 능한 일본군을 상대를 해서 승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겁니다.
국가의 군 체제가 그렇게 되지를 않았거든요.
저때의 왜군을 상대를 하고자 했다면 조선군도 고려시대처럼 수십만명을 동원한 전투체게가 준비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대 임란초기 조선은 10만의 군대도 조련 할 능력이 안되는 나라였습니다.
국가적인 재정이 그것밖에 안된 것이지됴.
니머지는 양반이나 토호들이 국가의 재정을 갉아 먹고 있었으니가요.
그래서 죽어난 것은 양반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하층민들이요.
저때 노비들 중 일부가 왜놈에게 협조를 했다고 해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놈이 상전이 되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왜놈의 앞잡이 들이 조선이 왜놈들에게 망한 이유를 말하면서 조선을 개화시켰다 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지요
와키자카 를 왜자꾸 와카자카라고 하는지 ᆢ
와키자카도 있었고 와카사카 도 있어서요...ㅎㅎ
天才的
그냥 어르신들 말하는거 저런 부분이 많음, 심지어 젊은 사람들도 그렇고, 포르투’칼’, 아’리’헨티나, ‘누’욕, 등등… 걍 발음하기 편한 방식대로 변화시키는거.
@@oneandonlyetude 眠たいな
원균같이 블루길 성정이냐.
보면 무조건 덤비니.
❤요줌은 총알이 사정거리가 세다
그때는 가까와 배 지붕 3:52 역활 막아 놓는다
가까히 가서 대포 싸우니 외란배 박살 난다
거북선은 실전사용이 불가능한 판타지 함선입니다.
그시절 뭐라도 시도는 해봤지만 성능미달로 폐기된거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기록을 참고로 거북선을 구현해봤지만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걸로 판명
거북선은 2층선임! 충파함이 아닌 디코이 기만선임! 돌격선! 적 화력집중 유인선임! 팽월전술 같이 적진 교란 혼란 화력집중 유인 초 단거리 접전 장갑 화력선임!
만호! 즉 중대단위로 팀별전투! 크게 쌍학익진포위였지만 중대단위 개별전투로 맥을 끊었다는 정확하고 명확한 분석! 임용한 박사님 사랑합니다^^/
지구는 위대한 리더자 한명이면 되나 지구는 전쟁, 장육 생식 근간
와키자카
이순신은 영웅인데
일본은 나쁜놈이고
당시 고위정치인들은?
군량 하고 무기를 가득 채운 배를 가지고 .. 바다 위에서 이순신을 상대 할수 없었고 .. 한양 주든 일본 병력에게 보급은 불가 하여 .. 자진 철군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군요.. 전투 부대 전투력은 보급이 받처 주어야 유지 되는 것이고 .. 전투 부대 보급이 끊어 지면 ..전투력을 유지 할수 없고 ..탈영도 있었겠죠 ..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잡어 먹는 경우 있어 .. 못볼것을 보면 ..탈영 하는 병력들이 사방에서 나올수 있죠 ..
움직이는 고기는 다잡어 먹었을거니 .. 보급 문제 해결이 중요 했겠죠 ..
거북선은 상상도입니다. 봉황같이 상상속의 존재입니다
거북선이 무슨동력이 잇냐고ㅡ 적선을 휘졋고디니냐 노 가 다뿌러 지것다
이순신의 견내량 할 때가 아니다.
なんだかなぁ
자침시킨 저런 새낀 바로 안패지기고 그래도 이뻐했단다 임해군아빠시끼가! 그리잘난시끼가 넘오래 자리보전했더만요ㅠㅠㅜㅜ
맨날 일본 일본 .. 지겹다😢
이순신 전술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네요.
"대비가 이미 돼 계셨었습니다 ! "가 아니고 "대비가 돼 있으셨습니다 !" 라고 해야죠.
지금 누구를 높이시는 겁니까 ?
화자(이순신 장군) 대신 대상을 높이는 것은, 화자를 비하하는 것 입니다.
결국 안경 쓰고 체중 좀 나가는 저 분은 이순신 장군을 깎아내린 것 입니다.
공영방송에 나와서 진행? 하는 자가 참으로 무식 합니다.
도고 헤이치 가이순신 전술을 나중에 소련함대와싸워서 대승 을거두는데 이순신은 나의스승이다 라고 이야기 해요 학익진도 쓰고점짜진도 씀
실무는 없고 역사적 고증도 아니고 그런 분 그 옆에 계시니 아하 ,
이준돌 빵에 가는 꼬라지를 보고싶따요
윗옷 뺏어서입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창피한 국뽕이네
도요토미 히데재명 / 이토 히로재명 아웃!!!
구국의 이순신 / 안중근 님의 얼을 잊지맙시다.
진짜 진심으로 그림체 좀 바꾸세요...
전부 눈이 삐꾸인가요?
제발좀 거북선 만들거나 그림 그리때 오이처럼 좀 만들지 말고 그리지마세요' 이러시면 당신들은 우리 선조들을 바보로 밖에 안 만드는거예요..
거북이 대가리만 달았다고 다 거북선인가요? 전투에 적합하려면 당연히 옛 그림처럼 둥글게 만들지요..그림을 그릴줄 몰라서 삐뚤게 그린게 아니잖아요,,,,
제발 부탁입니다..좀 제발 ...우리 후손들이 진짜로 오이같이생긴걸 거북선이라고 할까봐 겁납니다...엤날 말안장 조차도 복원 못하는 한국인데...제발 옛날 그림을 좀 분석하고 만들던지 그리던지...
일본사람 그림에도 둥글고 3층으로 만들어 놨고 우린나라 그림에도 딱봐도 둥글게 그려놨는데..눈이 삐꾸인건지...귀찮은건지...제발좀....
거북선 나올때마다 부끄럽습니다...외국인이 보면 비웃습니다...제발 좀 알고 그리던지 만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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