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구원, 안심해도 되나요 떨며 기다려야 하나요?|낸시랭의 신학펀치 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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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Опубликовано: 7 фев 2025
- 우리의 구원, 안심해도 되나요 떨며 기다려야 하나요? 낸시랭의 신학펀치 45회
구원의 확신을 가져도 될까요
낸시의 눈에 바울의 신학은
은혜를 말했다가 행위를
말했다가 이랬다저랬다 신학!
Saying This & That Theology
왜 꼭 영어 갖다붙이는지...-.-
갑자기 두 출연자 한목소리
로 낸시에게 바울은 사실 지독하게
일관적이죠! 강력한 바울쉴드치기 ㅋㅋㅋ
바울의 말 주옥 같더라도
꿰어야 보배 내가 은혜의 실
로 꿰겠어! 아니, 행위의 실
로만 꿸 수 있지! 받아랏! 뭥미? .
신학펀치 또 한 번 격렬했다 ㅋㅋㅋ
은혜재봉틀 든 장신대 김철홍교수와
행위미싱 돌리는 숭실대 권연경교수가
펼치는 work & grace Debate 제2탄
낸시랭의 신학펀치 라운드 45,
“우리의 구원 안심해도 되나요,
떨며 기다려야 하나요?”
봉지에 든 마카다미아 먹으며
신학펀치 클릭하는 게 요즘 대세! ~ 앙! ♡
권연경 교수/ 김철홍 교수
감사합니다
권교수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은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구원을 마치 나는 한거 없이 쉽게 받는거라는 강대상의 설교가 오늘날의 세속적 교회와 교인들을 낳은데 책임이 없다고는 말 할수 없을 것입다. 싸구려 복음이라는 표현을 쓴 본 회퍼의 삶을 본다면 권교수님 말씀이 정말 맞으십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기때문에 절대 취소되지 않습니다. 취소된다면 복음도 영생도 아닙니다.
유대인중 배도하여 심판에 이르는 사람들도 머리로만 이해하고 성령으로 믿음을 받은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은 커지고 작아질수는 있지만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인쳤다하는 표현이 있는것입니다.
또한 열매없는 삶을 살면서 입으로, 머리로는 구원받았다 안심하고 살아가는것도 언제든 배도할수 있는 구원의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받은사람은 삶에서 죄를 이기는 성령의 열매가 분명 나타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정욕데로 살면서 "나 구원받았으니 괜찮아" 라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의로운 행위로 받은것이 아니기에 연약함으로 끊임없이 죄를 짓고 쓰러지지만 회개하고 자백하며 혹은 징계를 받음으로 돌이킵니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기록되었습니다.
죄를 지어 괘로워하고 두려운마음이 있을때 회개하고 돌이키면 잊고있던 하나님의 구원의 메세지가 다시 임합니다.
그 죄의 심판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그러니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그 메세지가 복음이고 연약한 몸으로 비록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는 기쁜 소식입니다.
자신이 믿음안에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해봐야합니다.
나의 구원이 나의 행위에 따라 잃어질 수도 있다고 두려워하는 종의 믿음인지...
혹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으니 죄를 맘대로 져도 된다고 착각속에 있는 믿음인지...
나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의 마음에 임하셨고 나릉 그리스도를 닮은 삶으로 변화시켜 가시는지를 확인해봐야하고
만약 그런것이 없이 양털과 배실을 섞어짜듯 행위에 의존한다거나
혹은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것이라는 말씀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한다면
꼭 하나님께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셔서 확실한 구원의 사랑을 받으시기 바라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중을 하는걸까요 과연 구원의 확신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이 얼마나 있을까요? 오히려 그 확신으로 인해 교만과 나태함이 자라나는 것은 아닐까요 ? 불안감 구원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조심하며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인간에게 유익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믿음도 중요하고 은혜도 중요하고 행실도 중요하겠죠 모든게 다 필요하고 중요하겠죠 그리고 이런 논쟁 또한 필요하고 바른 논쟁들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공감합니다.
내가 구원받을지를 관심받지말고
그냥 하나님만 보고 가면 됩니다 ㅋ
하나님만 믿습니다!
하나님 가라사대!
구원받지못하면 지옥이다~
너희두x 지옥!
교회 뭐하러갑니까? 예수믿고천국갈려하는거 아닙니까?
말로만 예수믿는다하고, 성경에 뭐라써있는지는 관심이없어요~ 그러니 마귀가 가지고놀지요.
예수님이 이땅에오신 목적! 을 아시나요?
뭘 다 이루었다! 하신줄 아세요?
이단순한거라도 알고 믿으면,
죄없이함받고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하십니다.
사람이 죄가있어서 지옥가는거 아닙니다.
죄는 이미 예수님이 2000년전에 끝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최종판결 땅땅땅!
그런데 사람이 왜 지옥을갈까요?
멍청한인간들이 말씀을 안믿어~불신!
스스로정죄하면
나는죄인 나는죄인~ 나 겸손해보이지^^
나는죄인 나는죄인~ 예수님 또죽어 또죽어!
계속죽어~ 무슨 정몽주야?
세상모든인간 인류는 죄에서 해방됬습니다.
믿으면 죄없는의인!
안믿으면 지알아서 개기다 지옥!
*사도행전2장38절.
(내안에 성령이거하는 순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로마서 3장23-24절 KRV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받은 자는 그 구원의 능력으로 반드시 성화되어져 갑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가 칭의를 얻고 신생했을 때 우리의 속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유혹의 욕심을 좇아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벗어버렸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었다고 그리스도 안에서 배웠으니
이제부터 우리는 이 가르침을 따라 심령을 새롭게 하고 살라 하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엡4:23-이것은 바울이 명령형으로 썼습니다. 우리 개역성경의 번역은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명령형을 뒤에 붙였지만, 원래 영어나 헬라어의 명령형은 "심령을 새롭게 하라"는 말에 쓰였습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아직 받지 못한 구원이 있으니 받아야 할 그 구원을 받을 때까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열심히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 구원 받은 사람답게 받은 그 구원을 증명하라(prove)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신생을 전제로 해야 구원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신생했다면 이제는 신생한 완전체(어린 아이라도 태어날 때 흠이 있으면 장애아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어려도 완전한 사람이듯이)로서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벧전2:2절에는 "너희가 갖난아기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KJB)로 되어 있습니다.
또 요일 3:9절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당신이 하나님께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왜 죄를 지을까봐 걱정합니까?
왜 구원 못 받을까봐 두려워합니까?
그 구원을 드러내는 일이 잘못될까봐 집중하는 그런 두려움이라면 몰라도!
물론 그럴 수는 있겠네요.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는 신생의 사건을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를 다녔든지 혹 신생의 경험은 했지만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하도 세상의 유혹을 받고 살다보니 가물가물해져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흐려졌을지도...
그렇다면 성경을 정독하시고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확실한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길 추천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네요. 올바른 믿음에서 올바른 행위도 나오니까요.
믿음의 당연한결과(행위)를 체험하지못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죠.민주자유님이 바른믿음입니다..권교수는 믿음의 결과를 확신하지못하기에 행위구원론으로 나가게 되는것이죠..인본주의 신학이 이래서 이단이라 정죄돼야 하는것이죠..결국.복음의능력.을 부인하는것이기에 사랑의 하나님을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가르치는것은 즉시. 멈쳐야하죠. 복음은 기쁜소식입니다......오직믿음으로 살기원하시는 님의 믿음생활이 항상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정확한 요약입니다 정확하게 개혁파들은 모두 행위가 믿음의 열매인 것으로 파악하였습니다
행위는 지키지못하면 두려움이죠
네. 오직 예수대속을 믿음으로~영원히 죄사함받았음을 믿는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죄인에게는 성령이 임하지않아요.
죄인의기도는 듣지도않으세요~ 가인의제사처럼!
*사도행전2장38절.
(내안에 성령이거하는 순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불완전한 인간들이 아무리 율법을 잘지키고 믿음 때문에 목숨을 내놓은다고 해도
완전했던 아담이 한번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인간들의 믿음이나 행위로
다시 받을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아들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아담이 죄짓기 전의 완전했던 사람의
몸으로 이땅에 오셔서 불완전해진 인간들을 대신해서 원죄를 깨끗히 씻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통하여 구원 받아서 다시 여호와 앞에 나아갈수가 있게됬고
영생할수 있는 찬스를 얻게 된것입니다. 요한 3:16 롬 3: 9,10
이렇게 여호와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사 은혜를 배풀어서 예수를 통하여 값없이
영생을 받을수 있는 길을 마련 하셨습니다.
김교수는 여기까지의 내용만 반복적으로 얘기 하시는군요.
권교수님 은 성경을 끝까지 보시는 능력이 있네요.
우리 인간들은 예수를 통하여 영생의 길을 가면서 우리의 조상 아담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겁니다.
완전했던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짓자, " 정녕 죽으리라 " 그 법대로 사형 당했습니다.
*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여호와 앞에 섰다고 안심하지 말고 아담을
거울삼아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님만 믿고 바라보며 순종하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사탄과 그의 졸개들 마귀를 대적 하세요들. 야고보서 4:7
그리고 나도 끝으로 한마디, 롬 8:38,39 ...그 무엇이라도 우리를 예수안에 있는
여호와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는데, 우리는 각자가 자신들의 자유한 의지대로
여호와의 사랑에서 스스로 끊어지게 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배교입니다.
낸시랭님.... 보니까 알아 들으신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샬롬.
마25:31~에 보면 구원에 확신을 하고 있지 않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41절 이후에 보면 구원에 확신이 있었던 사람들이 영생을 받지 못한 내용이 나옵니다 불쌍한사람을 도와주지 않는것이 주님에게 하지 않는것이라고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하나님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권교수님의 말씀이 저는 더 편하게 들립니다. 제가 말씀을 읽고 느낀것과 일맥상통하네요.
사람을 앞에서 보면 사람이고
뒤를 보면 사람이 아닐까요?
멋진 동영상 잘 보았습니다.
은혜에 순종 통치 아멘!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세상으로 지탄받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절대진리를 교회가 제대로 신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회자들 또한 믿음의 구원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그저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지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느순간인가 신자들의 마음에 복음은 무한한 죄의 허용, 즉 내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나는 구원받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실제적인 기독교 신자들의
삶으로 나타나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비판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죄의 허용을 허락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고 거룩의 자리로 옮기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이제 죄로부터 구원되어 거룩의 자리로 옮기워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거룩의 선상에 서서 거룩의 푯대를 향해 달려감이 마땅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이 달려가야 하는 길 즉, 거룩의 푯대를 행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받아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된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인간은 아직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의 길(거룩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성령의 인도함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순종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많은 신자들 중 자기를 절대로 부인하지도 않고, 예수님 안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며 세상과의 친밀함을 여전히 의지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식적으로만 자기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구원의 믿음인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신념을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믿음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구원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반드시 구원받은 자의 증표가 나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안으로 들어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결론을 내자면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죽도록 충성하며 순종하는 길을 걸어가기 위해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능력이요 믿음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거룩을 이루며 살아갈 순 없지만 늘 주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으로 심령히 가난해지며, 애통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자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로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우리의 부족함들을 친히 당신의 피값으로 채워주셔서 우리를 완전케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구원입니다.
이 글을 복사 좀 하겠습니다... 믿음이냐 행위냐가 아닌데... 너무나 안타까움만 있다가 좋을 글을 읽게 되어서 좋습니다.
아멘!.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복음만 자랑합시다
님의글은 너무좋아 펌글로 인용하였읍니다 감사합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모든 구원교리에 기초를 이룬 킹제임스 성경은 빌립보서 2장 12절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킹제임스성경이 오래되고 구어체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쉽게 표현하려고. 수십종의 성경(특히미국)이 난무하다보니 정통적인 해석에서 변질된 성경이많아져 버렸읍니다 .그런.의미에서 킹제임스 성경은 이러한 논쟁이 있을때 참고해야할 참으로 귀한 성경이지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자신의구원을세상에 드러내라.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향해두려움과 떨림으로 믿음생활을 해야하는것이 아니요 받은 구원을 두렵고.(경외) 떨리는 마음으로 복음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라는 권면의말씀인거죠...교역자들이나 교사들은 꼭 참고하셔야합니다....................................여러 주석이 있는 성경을 비교하여 참고 하시길............( 참고) 톰슨:"두렵고 떨림으로"..공포라기보다는 신앙을 가진자의 경건한 경외심을 말하는 것으로서 연약함과 죄성 무가치성을 느낄때 일어나는현상.참조구절요 7:13 롬3:18.벧전1:17....."너희 구원을 이루라".구원은 인간스스로성취할수없고(요 15:4.고전 15:10.엡2:5.8)하나님이 주신다(13절) 그러나 이구원사역은 성도 각개인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때문에 바울은 성도의 삶은 이런 구원의 체험을 확인하는 삶이어야함을 강조하고있다. 뉴 톰슨 주석.
은혜가 되는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말씀 너무 좋습니다. 얼마나 성령이 충만하신지 글을 통해서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하심이 성도님에게 영원하도록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권연경 교수님이 선입견, 고정관념 없이 성경을 정직하고 바르게 설명하시는 것 같네요^^ 사실 죄인에게는 구원의 확신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더 필요하고 더 유익한 것 같아요^^
죄인은 지옥인데? 하나님의사랑?
죄의삯은 사망이요,
피흘림이없은즉 죄사함이없느니라.
사람이 죄가없어진지 2000년이 지났는데 뭔소리람?
예수님이 다이루신일을 못믿나요?
@@지-g5q 정말로 2000여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죄가 없어졌다고 믿으시나요? 아닙니다. 죄는 2000여년 전에 십자가에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는 우리의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실 모든 준비가 마쳐진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회개"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용서는 없습니다.
눅 24:47과 행 2:38절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지-g5q 녹화상태가 좋지 않지만 참고해보셔요^^
ruclips.net/video/vmQYVBHAOKc/видео.html
성경에도 발단,전개,결론이라는 스토리구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종판결문을 보세요.
*사람이 지옥에가는이유는 죄가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말씀을 믿지않아서입니다.
거룩하신 창조주가 모든사람의죄를 직접
고통하며 피흘려죽어줘서 영원히깨끗게한것을 믿지않아서, 스스로 정죄해서 입니다.
당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오신이유와 이루신일을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판결문을 읽을수있을겁니다.
너희죄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흰눈보다희게 모든죄가 영원히 사해졌다. 하늘나라 성소제단뿔에 예수그리스도의 피만보임으로 너희는 죄가없다.
너희는 의롭다.
스스로 경건치않으나
이말씀을 믿는자를 그의믿음의 의로 여기시나니,
믿는자에게는 복이있도다.
너는 의롭다.
*율법을주실때 죄사함을받는 제사법도 주셨다.
-율법시대A형:죄1개당 흠없는 암염소 또는 양 에게 안수.
-율법시대B형:대제사장 아론이진두지휘 1년에 1번.
-은혜시대:예수님이 단번에지낸 영원한속죄제사를 하늘성소 제단뿔에 자기피로도말 영원한제사를지냄으로 죄사함을위한 제사폐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란?
1)창조주예수그리스도가 육체를입고 이땅에오심.
(영원한제사 즉 다시는 죄를위해 용서해달라고 제사지낼필요없는 영원한죄사함을위해 창조주께서 여자의후손으로 낮은이땅에오심/참고로 우리는모두 아담의씨에서잉태된 아담의후손임).
2)십자가 대속.
(세상죄 첫사람부터 마지막사람까지 전인류의 모든죄를 대속하심으로, 모든인류가 죄없는 의인으로 거듭남~ 의롭게 다시태어났음!).
3)장사지냄.
하늘성소단뿔에 자신의피로 도말하심.
(인간의죄는 하늘성소단뿔과 우리마음판에 세겨져있는데, 하나님이 죄를판결하시는 단뿔에 기록을 예수피로 도말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죄를 볼수없고 오직 예수피만보이신다고말씀하심!).
4)부활.
(우리의롭다함을 증거하기위해 부활하심!).
예를들어 이곳이 하늘법정이라고 가정하면~
*사단이 우리를속이려 예수님이 영원한제사로 값을치룬 죄의기억을 들먹여 우리를정죄!
*예수님이 나의피로 과거현재미래로 나뉘지않는 영원한제사를 치루었음으로 모든사람은 의롭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경건치않으나 예수그리스도의 피만보이므로 모든인간은 의롭다~ 최종판결!
5)죄사함 거듭남!
"나를위하여 내생각이 옳은가? 하나님이 옳은가?"
하나님이 옳지요^^
시간계는 어제 오늘 내일이 나뉘어있습니다.
영원계는 오직 현재만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성소단뿔에 자신의피를 바르신이유를 아시겠죠^^
영원한세계에서 단번에 영원한속죄제사~
죄를기록한 하늘성소단뿔에 예수피로 처발처발~
인간들의 죄가 안보임~
죄의삯인 사망 예수피 처발처발로 죄값처리끝!
님 죄가 없어졌네요^^
님이 한것도없는데 죄인이 의인으로 거듭났네^^
복음의 핵심은
니가 하는꼬라지봐서 천국지옥결정한다가 아니고,
니들은 처음부터 죄악의 씨를가지고태어나서 노력해도 안돼!
세상무엇보다 심히부패한 우리마음의 죄의씨앗을 비춰보라고 613가지 율법을 너희에게 주었지!
한가지라도 어기면 613가지 모두를어긴거야~
"율법지키고 차카게살아서 천국갈가능성 0%".
하나님이 죄도없고 죄지을사람도없는 그때에~
창조전부터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하늘에서이룬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시고,
모든사람 죄없는의인만들어놓고난후,
이것을믿는자는 의롭다~ 하십니다.
니들하는꼬라지보고 그때가서 결정할께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모두가 의롭다~최종판결하셨어요!
이구원의역사에 죄짓는거말고, 우리가한일이 있나요?
"예수피의대속으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었다"~
이게 핵심입니다.
혹시 2000년전 예수님이 우리죄를위해죽으실때 님은 뭐하셨나요?
한것도없고 할수도없는상황인데~ 하나님은 아담부터 마지막사람까지를 모두다~속속들이 들여다보시고나서 하신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인류전체를 다~봤는데 모두죄를범했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서 구속 이란~ 대신값다 라는 대속과 같습니다.
"값없이 의롭다함을얻은자 되었느니라~
의인이 되어부렀다~ 하나님의 최종판결입니다"~
자신의생각이 망한사람~이 하나님께로 마음의방향을 돌이키는것이 회개입니다.
성경에나오는 많은선지자들이 하는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고 죄사함받으라~
입니다.
예수님이 나를위해하신일을 말씀하신그대로믿어 죄사함받고 의인으로 거듭난자됨을 믿으세요~
하나님은 의인의기도만을 듣습니다.
죄인의기도는 듣지않으십니다.
죄사함받은즉시 성령이 임하셔서 인도하십니다.
끊임없이 예수님과대화할수있습니다.
님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이 함께할수있기를 예수님의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설명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MrSsanayee1
죄사함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회개는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리는것이고, 예수님이하신일을 믿음으로 우리가 죄없이함을 입는것입니다.
복음의순서를 바꾸지마세요!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은혜로 되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때문에 우리 인간의 어떤 행위도 구원의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 것인데 권교수님의 은혜이기때문에 우리의 행위인 거라는 논리가 성경의 어법에 더 맞는 다는 것은 모순인 것 같습니다.
롬9:11 그자식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하려 하사 롬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시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쫏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권 교수님께서 낸시의 머리를 아프고 헤깔리게 하고있습니다. 은혜면 은혜고 행위면 행위지 혼란스럽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말이지만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그리스도인은 구원 받기 위하여 순종하는게 아니라 구원 받았기 때문에 순종한다" 칭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고 그 은혜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종하는 겁니다. 좋은 씨와 좋은 열매를 예수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셨죠. 신학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칭의+성화->영화) 영생하기 위해서는 칭의와 성화가 분리되선 안된다고 성경에서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칭의가 없이 성화만 있다던가 성화 없이 칭의만 있다면 영화는 없다고 말이죠.
구원의 확신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한국교회와 교인들...
나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구원을 받았다는 착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들이 태어나기전 그저 무였지, 그러니까 생을 다하면, 당신들은 다시 영원한 무로 돌아갈 뿐!! 영생이라는 헛된 망상에서 깨어나시라! 세대를 이어 삶은 영원히 지속될 터, 살아있는 동안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최대한 서로 사랑하며, 더 좋은 세상 후손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라!! 살아온 삶이 만족할 수록 우린 더할나위 없는 기쁨 속에 영원히 누리게 될 안식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으리!!
◇ 구원에 대한 나의 견해 구원의 서정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원의 순서를 중요시 하는 듯합니다.보편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과정을 믿음, 회개, 중생,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의 순으로 배치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이 순서는 각 교파마다 각기 相異합니다. 개혁주의 교사들 간에도 서로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그 순서를 정하지 않습니다.단지 성경이 정하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8:29~30)그런데 이 말씀의 마지막 시제는 과거 완료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보여 주는 구원의 순서는 없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시간에 구속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 구원의 주체는분명히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따라서 구원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입니다.하나님은 구원하기로 미리 정하신 자를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고 부르신자를 의롭다하시고 의롭다 하신자를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맏아들이 되시는 그분께서는 우리 구원의 원형(본)으로서 이미 영화롭게 되신 분입니다.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속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화로움에동참자가 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시간 속에서 이 구원의 사건들을만나게 됩니다. 그러기때문에 사람들은 이 축복들을시간 순서로 배열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교회속의 위대한 권위자들, 위대한 박사들,여러세기 동안의 위대한 학자들과 성인들이 이것에대하여 많은 글을 썻으며 그들은 그것을 구원의순서라고 불렀습니다.그러나 성경은 시간 밖에서 이미 완성 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줍니다.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시간 밖에서 이미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기 때문입니다.(히11:1)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로마서 8:24,25)이것이 구원에 대한 우리의 믿음입니다.이것이 바로 "이신칭의"로 불려지는 그 믿음입니다.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그 믿음입니다. 뿐만아니라 이 믿음이 아브라함의 인생을 순종적 삶으로 이끌어간 바로 그 믿음입니다."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로마서 4:18~22)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들은 아브라함 처럼 시간밖에서 이미 완성하신 하나님의 약속(롬8:29,30)을 바라보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오늘 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수 없다면 우리가 인생의 끝날에 어떻게 육신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가 세상에서 눈을 감는 그 순간에 우리의 영혼은 죄있는 육신과 분리되어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히 12:23), 또는 “흠이 없는 자들”(계 14:5)로 순식간에 확인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주어지는 칭의가 곧 구원인 것입니다.칭의는 법정적 의로서 최종심판에서의 무죄선고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의 형벌이 이미 끝났기 때문입니다.성화에 대한 관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는 믿음의 확신 속에서 성화의 길을 출발하는 것이 성경적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그 믿음입니다."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12:22~24)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으로 이미 영화롭게 하신 영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성화의 길을 걸어 갈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1.즉각적 성화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결정적성화나, 웨슬리신학에서 말하는 완전성화나, 오순절 교회가 주장하는 순간적성화는 성령의 세례나 혹은 성령의 충만으로 일어나는 즉각적 성화에 관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구원의 최종적 사건인 영화롭게 하심도전폭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속에 있는 것입니다.결정적 성화에 있어서 중생을 일으키는 성령세례(행1:5과 11:16)는 성령께서 신자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와 부활에 연합 (롬 6:1-4;골 2:12) 시키시는 역사로서 성령세례를 통하여 내려오는 중생과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서있는 우리의 영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오순절의 성령강림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오순절 성령강림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사건이 동시적으로 일어 났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 오늘 우리가 받은 것과 같은 성령세례를 통한 중생의 사건인 것입니다.성화에 있어서 성령세례나 성령충만의 사건은 사람의노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며, 즉각적 성화의 체험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성화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성화의 완성이라 할수 있는 영화에 있어서도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하는 문제로서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가 끼어들 여지가 전여 없다는 것을 알게합니다.인간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2. 점진적 성화그러나 성화에 있어서 진리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성화의 본질은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시작되는 "성령의내주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점진적 성화가 우리가 평생토록 참여해야 하는 성화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점진적 성화에 있어서도 主體는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신 것이 분명하지만 인간의 참여가 배재되는 것은 아닙니다.따라서 성화는 하나님이 인간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인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추구해가는 인간의 노력인 것도 분명합니다.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때에 그 거룩함은 우리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빌립보서 2:13)고 말씀하십니다.다시말해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이 절대적이지만 또한 인간의 의지가 필요불가결한 요소라는것이 모든 성경의 한결같은 가르침입니다.이것은 우리의 딜레마 인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이것은 딜레마가 아닙니다."또,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빌립보서 2:12 kjv) 고 하십니다.한편으로는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고 선언 하시면서또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림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거룩함을 드러내기에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의 말씀은 상호 모순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는 시간 밖에서 이미 완성하신 하나님의 역사를보여 주시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시간속에서 그것을수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 응답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 밖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시간안에서 일하고 있는 인간의 유한성의 차이입니다.이것이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그 믿음의 길입니다.사도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브리서 11:8,9)"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 위에 드릴 때에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하시는 성경 기록이 성취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 불렸느니라." (야고보서2:21~23 kjv)성화가 각 사람 마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의지이지만, 하나님께서도 그 거룩함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화를 수행하기를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1)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의 반응과 순종을 통해서 성화를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경의 일관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성경은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 (마태복음 25:18) 가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역활이 하나님의 주권적 활동을넘어서서 성화를 주도해가는 능력이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받은 바 은혜안에서의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따라서 성화에 있어서 우리의 순종은 은혜 안에서의 순종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가끔 열심이 넘치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성화의 보편성을 넘어 완전성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합니다.완전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완전성화가 제2의 축복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 항목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온전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불완전하게 성화되었을지라도 신자들이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완전해 질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주장에 적합한 성경구절을 찾으라면 저는 마13: 8의 말씀을 제시하겠습니다."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따라서 성화는 인간의 의지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게 하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안에서의 인간의 갈망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5:26,27)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인간의 반응을 조건으로 하여 성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정하셨지만 최종적인 영화는 인간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지속에 이미 확보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입니다.그러므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성취되는 하나님의 역사로서 그 은혜 안에서의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 작용하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의 구원관입니다."또,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1:6)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시작하신 분이 끝내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확신은 하나님께서 일 하시니 우리는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이라는 것은 아브라함 처럼 그 영광의 약속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좇아(빌3:14)" 이 땅에서도 거룩함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우리 주님께 기꺼이 복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넘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 2:1-4)"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빌립보서 2:12 kjv)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2,3)이것이 시간속에서 우리가 걸어 가야할 생명의 길입니다.이것이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로마서 8 장24절]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로마서 8 장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로마서 8 장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 장27절]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 장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 장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 장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 장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 8 장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로마서 8 장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로마서 8 장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 장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로마서 8 장36절]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8 장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 장38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로마서 8 장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ㅡ아멘.
위 영상을 보고 제가느낀건...
믿음->구원->행위
이 순서로 나타납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조심해야 할것은 인간이 하는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행위는 믿음의 당연한 결과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행위는 믿음에 대한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서 행위에 대한 변화가 없는데 믿고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가 아닌 나 천국가나요 의 차이
성경 어디에도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구원 받았기에 절대 버림받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구원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공감합니다. 하나님이 아시는거지 인간따위가.. ㅋㅋ.. 확신을.. ㅋ 하나님을 확신하는거지 나같은 벌레 새끼가 구원받을지 안받을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남들도 마찬가지고.
잘 보았습니다.
불안하면서 믿으면 믿음이 아니다? 12분. 그러면 믿음부터 다시 정의해야 된다. 그러면 확정적 구원이 모순이 된다. 김철홍교수의 말이 그래서 모순되는 것.
그리고 욕망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욕망에게 져서 욕망을 품게되는 것이 죄이지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약1:15
우리 속에 일어나는 충동이나 욕망 자체를 죄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원죄론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죄는 고의로 욕망을 품고 불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죄는 불법이니라"요일3:4
욕망이나 충동 자체를 죄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죄에게 져서 죄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김철홍 교수님처럼 구원을 완전히 오해하게 됩니다.
죄란 고의적으로 불법을 선택하는 것이고 성경은 그 길을 떠나서 순종의 생애를 택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생명이요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죄를 이해해야
마지막 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한다는 성경의 말씀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원죄론의 오류에서 나와야 합니다.
욕망을 이기는 사람이 있을까요? 성경은 욕망을 품은 생각자체를 죄라 합니다.님은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을 항상 이기고 계시지 않치 않읍니까?님은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 주권을 인정하셔야합니다 시험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를 묵상하십시요..구원이란.. 하나님의 거부할수없는 은혜로인하여.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것 말합니다.순종이란 우리의 의지를 쫓아가는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것입니다..행위대로 심판하는것은 상급에 대한것이지. 구원에서 탈락하는것이 아닙니다.만일 어느 누구라도 구원에서 탈락하거나 취소될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단의 논리 입니다 .신본주의해석의김교수의 말씀이 인본적으로 복음에 접근하는 권교수보다.훨씬 복음적이라 생각합니다.그리스도인이 권교수님이 주장하는 믿음되로 산다면 불안과 두려움속에서 살수밖에 없음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합니다.십자가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살롬!
이 시점에서 자유주의 신학과 칼 바르트의 신학을 다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칼 바르트의 신학에 대해 다룰 기회가 된다면 신준호 교수님을 추천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시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양의 피를 문설주 인방에 바르라 말씀하시고, 그들이 집안에 있을 때에 유월절 양의 피를 보시고 그들을 넘어가리니 재앙이 그들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출 12장)그 집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두렵고 떨며 가슴 조인 밤을 보내는 반면 ,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양의 피를 보시고 우릴 멸하지 않으시고 지나신다 했다며 기쁨의 찬송을 부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 두 그룹 중 누구만 살았을까요? 둘 다 살았습니다! 양의 피를 보고 그들을 넘어가 재앙이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다 하셨습니다. 예수의 피가 그 심령에 발라진 사람들, 다른 말로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영생얻은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요6:37,39에 내게 오는 자 결코 내어쫓지 아니한다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께 주신 자중에 주께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 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김철홍 교수님의 구원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장로신학교에 김 교수님과 같은 확실한 구원관을 가진 보석같은 교수님이 계신 것에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권교수님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라는 권면도 놓치지않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 안심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도 지워질수 있기때문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 질수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것 세곳만 짚어 보겠습니다.
출32:31-33(모세의 증거),
시69:27-28(다윗의 증거),
계3:5(사도 요한의 증거).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두세 증인이 증거한 것이면 확정할수 있다고 합니다(마18:16, 고후13:1).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 마지막 흰 보좌 심판대에서 불못에 던지우리라 합니다.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여기서 말하는 불못은 지옥을 말합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불신자가 아닌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계1:4, 계1:11).
우리 모두가 불순종의 아들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인내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 합니다(계14:12)!
김철홍 교수님의 주장처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어느정도 수긍하는데 권연경 교수가 답답해 하는건 김철홍 교수님이 생각하는 믿음과 권연경 교수님이 생각하는 믿음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권연경 교수님은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즉 주님은 내가 실행하고 이루는 선을 나를 믿는 사람도 이룰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김철홍 교수님은 믿음과 행위를 떨어뜨려놓고 말할려고 하니까 권연경 교수님이 답답해 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믿음과 행위를 나누지 않고 그 둘이 공존했을때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다번역성경찬송]
고린도전서 3장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예수의 십자가 대속은 단번에 이루신 것 따라서 이후는 공적에 대한 심판일뿐 (불가운데서 얻는 구원)
구원이 취소되는것은 없음 ...예수님의 십자가대속을 불완전하게 만들지 마세요 ~~~~
모르죠 누구나 구원의 확신을 이야기하나 단지 종교적 신념의 결과물일 경우가 많죠..그저 겸손히 입닫고 하나님을 경외 하며 살아가는 것 외에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완성된 영원한 현재로서 이루어진 구원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시공간의 진행 되고있는 과정으로 과거 현재 미래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므로 구원은 미래적 사건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 나라와 이 새상나라의 구별된방식으로 표현되는것이라고 봅니다.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24-26, 개역한글)
걍 한마디로 말하면 권교수님에 구원은 죽어봐야아는것이 되어 이방종교가 말하는 자력종교와 차이가 하나도 없는겁니다 골로새서를 깊이 연구해보세요 바울서신 대부분의 이단사상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불충분성이 핵심입니다
진짜 궤변에 불과합니다 은혜에 바다를 얘기하고 그 속에서의 성화의 삶을 믿으신다면 구원받았기에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사는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신약서신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가 미완성이니 은혜를 채우기위해 살아라고 하지 않고 이미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말합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하며 로마서 6장의 전체논거도 칭의로 말미암아 영역의 변화속에 들어온 자의 삶으로서 새생명가운데 거하는 삶을 말하고, 서로 사랑하는 계명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미 사랑하셨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의 서로 사랑의 계명의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죠 이것이 이미와 아직의 구도입니다
마지막 심파날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하는 날이 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과연 우리에게 기쁜 소식일까요?
네 맞읍니다. 복음은 기쁜소식 인것을 권교수는 영이신 하나님과 죄인인우리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인본주의 신학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으로 하나님의주권을 침해함에 잘못이 있는것이죠..그것은 십자가의공로와 예수의보혈을 경홀히여기는 거듭나지못한 심령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합니다
글쎄요. 진짜 거듭난 인간이라면 하나님 믿는 것 하나만으로 죄에 대해 안심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거듭난 인간은 죄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입니다. 예수님의 종이면 죄를 이기는 능력을 갖게되죠. 세상을 이기는것이죠. 그런 거듭남없는 자를 은혜 받았다 할 수 있을런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계속 죄인에 머무르게 하시지않습니다. ㅋㅋ 속죄했다해서 여전히 너흰 죄인이니까 죄지을수있어 또 용서해줄게 가 아니죠. ㅋ 죄 용서해줬으니 다음엔 절대 죄에 끌려다니지 말고 새 사람이 되거라 이겠죠
오히려 거듭나지못한 자가 죄에 대해 무력해지지 않을까요? 빛의길이 뻔히 있는데 흑암에서 벗어나지못하는 자를 누가 믿는자라 하겠습니까..
먼저
가라지와밀을 알아야하
두번째로
니머리카락숫자까지 알고계시다했습니다
구원을받았다하면
조금있다 살인을하면 어케되나요
세상에서
지은죄는 죽어서도 받아야합니다
한닢까지 갚을때까지 나올수없다는것을
~~~^^
다른곳 픽받다가 파워볼손흥민 픽 받아봤는데 승률 오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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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을 거룩하고 흠 없게 되도록 예정을 하셨다면 (엡 1:4-5), 이것은 그가 나머지는 불경하게 하기 위해 입양에서 제외하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요 21:17). 자신을 저버릴 사람들을 아셨다면, 왜 그는 그들을 포함한 구원을 계획하지 않으셨을까? 그렇게 안 하셨다는 것 자체가 그의 구원이 모두에게 향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_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_* (요 15:16)
하나님께서 우리의 답변을 미리 지정하시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위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뜻인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건낸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안이 성공적일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고픈 자에게 사양당할 수 있는 손길을 건낸다는 것은 근시안적이거나 (전지함과 어긋남) 무책임한 전략이다.
물론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라는 편애적인 표현이 예정을 설명하는 데 등장한다 (롬 9:13). 정말 하나님께서 에서 (구원을 예정 받지 못한 자들을 상징)는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뜻일까? 하나님은 악한 자에게 속했던 가인에게도 표를 베풀어 보호하셨다 (창 4:15).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은 멸망의 자식 가롯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 1-12). 가롯 유다도 보전하고 지키셨다 (요 17:12).
성경은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사람과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동등하게 비를 내려 사랑을 보이신다고 한다 (마 5:45, 눅 6:35). 비는 구원이 아니고, 역으로 겁벌도 미움이 아니다. 따라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영벌의 면제는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인이나 어느 누구가 죽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겔 33:11, 18:23, 18:32).
게다가 이삭과 리브가가 야곱과 에서를 편애하는 에피소드는 편애가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죄는 대물림되어 (나중에 야곱도 자식들을 편애함) 야곱의 11명의 아들들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하나님 본인이 에서를 미워한다는 생각은 창세기에서 나오는 에서의 이야기의 문맥을 묵살하는 것.
*_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_* (롬 11:32).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만인이 (구원을 예정 받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 이 정도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받은 것이다.
그렇지만 구원을 예정함은 극도의 헌신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시적 표현이 걸맞을 수 있다. (구원을 예정한 것을 "사랑"이라고, 겁벌을 예정한 것을 "미움"이라고.)
하나님의 구원예정은 그의 공정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가 숭배 받아 마땅함은 그가 모든 만물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신 데에 있다. (계 4:11). 따라서 그는 완벽히 정의롭다. 원래 모든 인류는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하지만,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면제시켜주신다 (롬 9:22).
제한적 속죄 (Limited atonement)는 하나님께서 겁벌에 처한 자들을 미워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예수의 희생을 계획하셨다 (막 10:45, 마 20:28). 그의 방법은 최대한 많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 구원예정의 선별은 미움 때문이 아니라 최대수를 구출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이샤야의 예언은 하나님의 계획이 최대한 많은 영혼을 구출하려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_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_*
*_만족하게 여길 것이라_*
*_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_*
*_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_*
(사 53:11)
하나님은 모두가 진리를 알게되고 (딤전 2:4) 회개하기를 (행 17:30) 원하신다. 하지만 이 갈망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지옥을 없애도록 만들진 못했다. 그가 정말 모든 영혼을 구원하고 싶었다면 그냥 영벌이라는 것 자체를 없애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 있어 회개치 않는 사람들을 면제시켜 주고픈 바램이 그런 완고함을 처벌하고픈 바램을 초월하진 않았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영벌에서 면제된 자들에게 "하나님, 나머지도 면제하셔야죠!"하며 요구할 권리는 없다.
진노의 그릇들을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인내를 알리는 것이다 (롬 9:22). 또 긍휼의 그릇들을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보이는 것이다 (롬 9:23).
우리는 이 선보임의 가치를 받아들일 만큼 겸손한가? 아님 우리는 "피조물을 구원하는 게 그들에게 저항할 능력을 부여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할 것인가? 어떤 경우에든 우리에게 과연 창조주의 의견과 동의할 의양이 있는가?
*_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_* (롬 9:20)
과연 그가 우리의 구원을 효율성 없이 계획한 것일까? 그것이 과연 책임감이 있는 결정인가?
예수님께서 주목하셨듯이 믿음도 엄연한 "행위"다 (요 6:28-29). 그래서 떨면서 기다리고 (빌 2:12)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 (벧후 1:10). 하지만 행위 자체로 구원을 얻고 잃을 수 있다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원을 구성하는 행위는 회개, 믿음, 그리고 그 둘이 바탕이 되는 행위 밖에 없다 (눅 13:3, 요 6:28-29, 딛 3:5).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를 뱉어내신다 (계 3:16-19). 하지만 영생을 받을 자는 영생을 빼앗길 수 없다 (요 10:28-29, 6:37). 그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극도로 회의적인 사람도, 혹 하나님이 그에게 회개함을 허락하실까 가능성을 열어두고 (딤후 2:12)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는다 한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한다 (롬 3:23). 독선은 하나님에게 때묻은 누더기 같을 뿐이다 (사 64:6). 구원은 우리 힘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선물이다:
*_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_*
*_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_*
*_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_*
*_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_*
*_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_*
(엡 2:8-10)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셨다:
로마서 8:29-30
*_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_*
*_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_*
*_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_*
*_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_*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빌 1:6). 우리 안에 믿음을 심으신 분이 예수요, 그 믿음의 완성자도 예수이시다. (히 12:2).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사랑을 심어야만 우리는 그를 사랑할 수 있다 (겔 36:26). 그 마음의 할례는 주님만이 베풀 수 있는 것 (골 2:11, 신 30:6).
좀 길어졌군요ㅎㅎ 읽어주셨다면 감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김철홍 교수 / 구원은 주님의 권한이건만 구원 받느니 못 받느니 자기가 다 정해놓네요.
그럼 한번 구원 받았으면 교회도 안나가고 편안히 자기 맘대로 살면 되겠네요~
아버지 신데 아버지께 막 그럴 것이다 보면 아예 첨부터 자식일리 없죠.
ㅋㅋㅋㅋ 낸시랭 너무 귀엽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18:13
그래서 철홍아 네가 그렇게 사는구나 삶과 신학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이 사람에게서 본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순종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안에 부활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의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의 생명인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구원의 삶을 많은 영역에서 이루며 살아가는것이지요. 내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없이 스스로 의롭게 살수있는사람은 지구에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은혜와 행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바울이 언급한 칭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언약관계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을 구원(칭의)이라고 보았습니다. (엡2장)
유대인이었던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었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도 없었으며 율법을 통하여 주어진 언약관계에 대해서도 완전히 소외된 즉 버려진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방인들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메시아를 소망할 수 있으며 또한 율법을 통하여 주어지는 언약백성의 지위(선민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을 구원(칭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오해많은 에베소서 2장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언약백성의 지위)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새언약 관계하의 선민의 지위는
유대인들처럼 육적할례(율법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이
위 에베소서 구절의 의미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은혜로 값없이 얻은 구원(선민의 지위)은 우리의 행위로 절대 취소될 수 없는 완전한 구원(영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언급한 은혜로 주어지는 언약백성의 지위(구원=칭의)는 구약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언약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영생의 대원칙은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 이기 때문입니다. 이원칙은 구약 육적 할례를 통한 유대인이나 신약 십자가의 영적 할례를 통한 그리스도인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변함이 없는 원칙입니다. 바울의 입장이기도 하구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결론-
바울이 언급한 구원을
우리의 순종의 행위에 상관없이 영원히 취소되지 않는 보장된 영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김철홍 교수님 같은 분...)
바울은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언약백성의 지위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얻게 되었다는 것을 구원(칭의)이라고 말했을 뿐이며 그 지위(구원)는 언약관계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또한 바울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영상에서는 권영경 교수님의 말씀이 보다 성경적입니다.
신학자들이 바울이 언급한 칭의를 오해했다뇨 이러한 견해도 있다고 말씀하셔야죠
칭의에 관한 이해는 npp관점해석이군요 전 동의하지않습니다.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기 위해서 칭의라는 말을 끌어다 쓰기 보다 예수님의 완전한 의로운 사역에 대해 말했다고 전 봅니다.
그렇게 칭의를 점진적이고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의 완전한 대속 사역에 초점이 흐려지며 인간의 의지나 행위 자체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믿음까지도 허락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이나 성령의 역할자체도 많이 의미가 많이 약화됩니다.
칭의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장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이제는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없이 하나님의 의로운 언약백성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의미로 칭의를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끝까지 거절하고 할례나 자신들의 형식적인 행위로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선민임을 자랑하려고 했고요...
바울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 이제 누구나 값없이 하나님의 언약관계 속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을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완전한 대속이라는 것이 우리의 행위에 상관없이 끝까지 영생을 보장하는 보험같은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한 완전한 대속이란 옛날 짐승의 피로 제사드릴 땐 그것이 우리의 양심을 깨끗게 하거나 더러운 행실을 해결해 주지 못했는데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죄를 버릴 수 있도록 완전한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완전한 대속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님께서 말씀하신 성령의 사역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구요.
결국은 우리 힘으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과 그분의 은혜의 능력으로 우리가 죄를 버리게 됨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속을 김철홍 교수님같은 분은
우리의 불법과 부정 그리고 죄를 품은 상태에서도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대속이시다 주장할 우려가 있어서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송호정
김인섭 완전한 대속이라고 말하는것이 예수를 믿기전까지 죄의 구속이라고 말하는 것이 완전한 것인가요? 그 뒤에는 완전히 죄를 버릴 은혜를 주셨다고 말하는 작성자분은 완전히 버리고 사십니까?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나님은 태초전에 자기 백성을 택하셨다고 말하는데 우리의 행위에 따라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하면 그 분이 이미 우리의 행위를 보기도 전에 택했다는 그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구원에 대한 책임이 우리쪽에 있는 것 아닌가요? 의롭다 칭한다는 이 사실 자체에는 우리의 행위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죄를 짓고 방종하며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 받은 자는 성경이 말하는 행위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그것이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성화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고 행위는 구원받은 증거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물론 이 결과는 하나님만이 아실겁니다.
구약, 신약 모두 말씀하는 바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로 ( 롬 4장 2절, 3절,13절, 23절~25절)
하지만 이제 새로운 종교 혁명은
예수님의
제자된 사명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 박사님이 왜 회개의 복음을 말하지 않는지 모르겟어요.. 예수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이것이 칭의)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으리라.( 행위) 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아버지 집까지 가기 위해선 성화되고 성결하여 성장해야 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어 칭의를 얻지만 계속 죄를 짓게 되기때문에 우리 주님은 회개를 요구 하신다. 회개를 통해 아버지 집으,로 가는것이다. 그것또한 우리의 행위라고 말할수 있지만 이것 또한 은혜인것이다...왜 이 마음도 아버지가 주시기 때문이다. 결론은 구원은 믿고 행하기를 지속할때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는것입니다 사람들 하고가 아니고요" 죤 파이퍼 목사....김세윤교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인본주의 신학은 하나님에게 촛점을 맟추지 않고. 죄를 사람들에게 촛점을 맟춤으로 .인간의 행위가 믿음으로 얻는 복음보다 강조되는신학입니다.이는 곧 인간 스스로 선한 행위 토. 구원을 이루어가는것을 강조함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경홀히여겨. 성도 스스로가믿음에서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속의죄는 생각치않고 인간들과의 도덕적인 행위를 앞세우게 되는것입니다. 이것에는 어떻게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하는 마귀의 간궤가 숨어있는것임으로 올바른 구원론이 아닙니다..복음이란 기쁜소식임을 잊어선 안됩니다.우리는 그어떤 행위로도 구원에 이룰수 없읍니다 그러나 내자신을 부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자들에겐 능력이되지요 .우리는 할수없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세례요한의 마지막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읍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 얼마만큼의선한 행위로.얼마만큼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는지도 모르며 서로를 책망하는 세대에 주시는 말씀 .지금이 우리의 잘못됀 믿음을 회개하고 바르게 세워야합니다.유튜브를 통해 바르게 선포되어야할 우리주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이 개혁적인 신학으로 포장돼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무지한 성도들을 믿음을 의심케 미혹시키는 방송들이 난무합니다 .주예수를 구원주로 믿는 여러분들은 그믿음안에 굳게 서셔야합니다.그러할때만이 여러분은 참평안을 누리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매일매일 영광을 드릴수있는것입니다.지금즉시 여러분은 특히 목회자여러분은.의지적인 행동을멈추고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십시요.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감지하지못하신다면.사람의말에서떠나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요. 믿으십시요.우리의 믿음 생활에 그런 짜릿짜릿한 체험이 필요합니다.하나님만의지하여 살아계신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어떻해서든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평안이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성경말씀을 거스르지않는선에서 문자그대로 해석하자면, 믿음으로 영생을얻는게 맞고요, 그런데 그믿음이 진짜냐 가짜냐가 중요한겁니다.
그믿음이 진짜면 말씀대로살려고 노력하게되고 그게잘안되면 교회도열심히다니게되고 말씀을가까이하려고 노력하고 죄를지면 심한죄책감에 빠지게됩니다.
믿음이 가짜이면 죄를져도 전혀가책도없고 생활에변화가없어서 구원의확신이 흔들리겟죠
성경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후에 잘못을 저지를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단순하게 "믿음으로 구원받고 행위와 무관하다"고 하면 너무 목회 편의주의적인 해석이고 잘못하면 혹세무민으로 오해될수 있습니다.
오직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것은.
구원을 받았으니 맘대로 살아도된다고 이해하시니 오해를하시는것입니다.
성경은 거듭난자(구원을받은자)들에게는 성령을보내주시어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여전히 죄를따르려하는 죽지않은 옛사람의 행실을 절제하며.
또한 죄를 지었을때(자범죄) 는회개하며 시험들지않도록 기도하며 살아야하는것이죠.
우리가 알다시피. 구원을 받았어도 계속 죄를짖기를 원하는것을 인정하잖아요.
그래서 예수의피로 옷입은 우리들은 한것도없이 거져주신 구원이란 선물에 감사해야하는것이죠.
이러한 구원받은 하나님의자녀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평강을 선물로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신 마음의평강을 받은자들은. 거져받은 그귀중함을 알기에.
받은사랑을 빚진마음으로 이웃에게 행하게 되어있읍니다..
또한그러한자들에게.
항상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며 살게되지요.
믿음은 남이야기가아니라 내 이야기입니다.
내가 구원을 영생을 누리는것이지 남이 누리는것이아니죠.
이서툰 글에 하나님의긍휼하심으로. 두려움속에서 살아가는 갈급한영혼들에게. 우리주예수의 능력으로 거듭나는 놀라운 은총이 베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진리와 오류가 극명히 대비되는군요
순종하라 Vs 안심하라
결국 자신이 택한 길에서 자신의 운명을 맞이할 것입니다
순종으로 꼴지어진 성품과 거짓평안으로 꼴지어진 성품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마지막 날에 알곡과 가라지의 정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본인이 지금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의롭게 해야한다 곧 그리스도로 인한 칭의가 불완전하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무슨 진리와 오류가 극명해요 ㅋㅋ? 그러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대체 왜합니까? 본인이 의로워져야한다는 바리새적인 착각이 심하시군요.
@@jasonjeon6747 모세가 율법을 강조하니 바리새인들은 거기에 꽂혔고 바울과 루터가 칭의를 강조하니 개신교인들은 또 거기에 꽂혔다. 사실 둘다 같은 것을 말하는 건데.
15:15 이문제는 성경에 나와있는건데 구원받고도 지은죄에대해서는 천국에왔어도 책임을묻겟다고 나와있읍니다.
마귀가주는 망상입니다.
모든죄를 끝내시고,
다 이루었다~
세상죄에 해당되지않는죄는 없습니다.
다만 마귀는 충실히 사람을속일뿐!
복음의 핵심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주는것 1.거듭난자는 다시죽지않는다 ( 영생은 이미시작됐음) 2칭의란 죄로인해 죽을수밖에 없는 인간을 예수의 보혈로 만든 옷을 입혀 죄를 가리우고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주는것 3거듭난 성도도 날마다 죄속에서 산다 하나님은 죄를 향하는 우리에게 책망과 고난을 주시며 회개하고 깨닳아 하나님의 선한길로 인도하신다(성화)4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항상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여전히 죄속에서 살지만 거듭난자에게 주신 평강을 누리며 맡겨준 은사를 충성을다해 이웃을위해 기뻐하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것이다..구원은 하나님만의 주권이므로 인간이 올바르게 설명할수없다 .하나님은 단순히 오직 예수의보혈로 믿으면 구원해준다 말씀하신다 오직 그믿음으로 하늘나라는 신비하게도 거룩한자가없고 죄지은자만 있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의롭다고 칭해주신것에대해 감사하는 사람뿐!당신이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자신을 확증하라.항상기쁜삶인가?'항상 하나님께 감사한가?.항상 기도하는가?.이 쉽고 간단한 복음을 혼탁하게 설명하는 자는 가짜요 거듭남이없다는 증거이다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근심과 걱정의 대상이 된 것이...왜인지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무슨 죄든 못 저지르겠습니까? ..헐
권교수 참 답답한 사람이여, 오늘 다시봐도ㅠ
믿음의 결실은 행위요.
행위의 결실은 믿음입니다.
행위와 믿음이 결국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앞뒤의 동전과 같은 것으로 같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행위와 믿음을 어떻게 구분해서 말할수가 있나요?
이진혁 님 행위 구원은 없습니다 울법으론 절때. 구원 없습니다 목사를 잘 선택. 하세요 세상목사 가 아닌. 목자님을 선택 하세요
김철홍 씨가 주장하는 구원론은 사실상 구원파의 교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Lasvegas-Bangju-church장로교회의 구원론을 대변하고 있는 김교수가 틀렸다면 당신이 이단이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행위는 영혼구원과 무관함
@@방탄청년단-n5l 저기요..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하고 율법은 신성하고 거룩하다 라고 되어있거든요?
- 율법은 하나님보다 약해요. 무슨 말이냐면 율법을 가지고도 인간을 죄를 지을 수 잇어요. 그게 로마서에 적혀있죠? 죄가 선한 율법을 가지고도 죄를 일으키게 한다. 그렇다해서 율법이 악한 것리냐? 아니다. 더 권해야하는것이다.
즉 율법은 죄의 종이 될수도 있고 하나님의 종이 될수도 있어요. 율법 그 자체는 하나님보다 아래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자는 그 선한 율법을 완성하지요?
로마서는 바리세인같은 인간들 - 행위구원론자들을 비판하능거에요. 율법순종만 잘하면 구원받겠네 ㄴㄴ죠
하나님께 은혜 받은자는 율법 당연히 잘지키죠. 로마서에 잇잖아요. 율법을 경시하면 안되죠
정리해드릴게요
율법 자체는 선하고 거룩한 것이지만
율법 자체는 능력이 없어서 죄에 끌려다녀 사용될수있다 - 예: 남을 정죄하는 것 등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자는 율법을 순종하게 되어 선한 열매를 맺는다.
그냥 한마디로 율법을 사과라고 생각하시고
나쁜 나무에선 썩은 사과가 나오고
좋은 나무에선 좋은 사과가 나온다고 보세요
사과는 원래 좋른건데 썩을수도잇어요
그렇다해서 사과가 안좋은건가요? 아니죠?
사과 좋으니까 먹어야겟죠? ㅋ
이해하시길 기도합니다 ^^ 하나님믿는자면 순종은 당연히 따라옵니다. ^^
김교수님의 설명만 듣는다면.....대한민국의 장로교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행위와 구원이 아무 상관이 없다면 교회 장로인 이명박도 이미 구원을 받은 거겠군요
아주 막 살아도 되겠네
로마서 6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 아저씨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깨끗함을 받고도 다시 더렵혀지는 것을 베드로 아저씨는 개 돼지라 표현 합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개 돼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보아 그들은 실제로 믿은 자라 보기 보다는 믿는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시인하여 믿은게 아니라 볼 수 있다 생각합니다. 물론 이명박 전대통령이 행위에 악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전대통령이 실로 믿은 자라면 구원은 받을 것이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벌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라를 영어버전으로 보면은 소유한 구원이라 표현 합니다. 구원은 결코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지은 죄에 대해서는 분명 벌을 받는다 했습니다. 즉, 우리는 믿음 없이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님께 반응하여 나오는 행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이고 작은 것에 충성된 자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삶을 살아 가야 하는 이유는 저는 천년왕국에 포코스를 두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6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 구절에서 말한 큰것이란 저는 천년왕국과 연관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첫번째 선물이 평강을주신것이다.주님이 은혜로 거져주신이 평강을 누리며 죄짐을 십자가에 내려놓고 기쁘게 믿음생활을 하던지.하나님의구원을 두려워하며 떨며 믿음생활을 하던지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자유다.복음은 기쁜소식이요. 바로 예수를 믿는것이다 이건 논리가 아니고 믿음이다.믿음에서 믿음으로이르는 신비한 체험이다
한분은 교리로 다른 한분은 성경으로 설명하니까 계속 평행선이네요. 둘다 통합교단 소속이면서 ㅋㅋ
전 솔직히 신님이 있었으면 좋겠는뎨 무수히 도축되가는 가축동물을 보면서 몇십녀전만해도 터진 수많은 전쟁들을 보면서 성경에 나와있는 전쟁얘기들을 보면서.... 희망을 잃어간다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은 온전하고 확실한 믿음을 갖는 동시에 행함도 이루는 것이네. 일단 두 가지가 존재한다면 하나를 폐해서는 안 되니까.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면 행함에 대한 말씀은 무조건 폐하는 것이다. 행함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나뉘는 것이 믿음으로 만 구원받는다는것을 폐하는 것일까? 행함은 합당한데 믿음이 없다면 그럴것이다. 행함이 합당하고 믿음도 확실하다면 두 가지 다 이루는 것임이로 이 쪽은 두 가지 모두 만족시킬 여지가 있다... 는 사실 그래도 모르겠고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의 논리로 알수 없다는게 맞는 것 아닐까. 삼위일체 처럼 두 가지가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하나인 그것을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하나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 아닐까. 저 두가지를 하나로 볼 수 있을까? 하나님은 가능하신데 사람은 안 되는것이 아닐까.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설명하신것 아닐까.
개악교에는 개목들 때문에 구원이 없다.
결혼하면 예수님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가족을 돌보는 차원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탐욕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하며 자기 합리화를 위한 노력에 빠진다. 자연히 복음 말씀을 자기 이익에 유리하게 변형시키며 사탄의 유혹에 빠져들어 완전히 자기가 예수님이 된다. 부를 추구하면 부수적으로 다른 모든 악이 따르는 것이 정석이다.
교만에 빠지기 때문에 나 말고는 사탄이고 악이다. 사탄의 힘을 받아 능력 있다는 평을 받으며 자기 왕국을 만든다. 신도들을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차별을 두어 계급으로 묶어놓고 광신도로 만들어 놓는다. 무슨 짓을 해도 광신도들은 오직 아멘! 밖에 모르게 세뇌시켜 놓는다. 그러므로 개목을 따르는 개악교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권교수님말씀에 동의합니다
복음서도 서신서도 모두 하나님이 쓰셨고 마태,마가,누가,요한,바울 등은 단지 기록자입니다. 어느 것은 주님말씀, 어느 것은 바울말이 아닙니다. 공관복음은 주님의 초림,재림,하나님의 성품, 이스라엘의 메시아, 하나님의 왕국 등에 쓰여진것입니다. 구원은 태어나는 것입니다. 순간 이루어지고 성화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보상과 상관이 있습니다. 구원은 절대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성공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개악교에는 절대 구원이 없다. 그것은 십자가의 영성이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 영성, 즉 사랑, 믿음, 순명, 희생, 겸손, 자기 비움, 인내, 등이 없기 때문이다.
불순종은 이 모든 것들의 기본이다. 루터는 불순종의 죄를 지으므로서 자신은 물론, 그 후예들까지도 불순종에 빠지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진실인양 호도하며 죄악을 죄악으로 느까지 못하게 한 것은 정말 사탄의 도음이었다.
그렇기에 목사라는 자들은 온갖 죄악을 모아다 죄악 백화점을 만들어 놓고 신자들에게 골라잡기를 권한다.
이것은 세말까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절대 구원이 없다.
예수님, 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소서. 아멘.
진짜 궁금한데요 스테파노님은 그 개악교로 불리는 사람들과 다른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꼭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은혜에 대한 오해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도 없으며 율법을 통해 주어지는 언약백성의 지위에 대해서도 완전히 소외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언약백성 선민의 지위를 얻게 되었음을 구원이라 표현했습니다.
그 선민의 지위는 유대인들처럼 할례나 형식적인 율법지킴(율법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이나 차별없이 주어지는 것이기에 바울은 은혜라는 표현을 썼구요.
하나님의 언약관계에 대해 완전히 소외되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언약백성의 지위(하나님의 권속)를 얻게 되었음을 은혜라 표현한 것이지 그 언약관계를 무시하고 불순종해도 구원을 얻을 것이란 의미로 은혜를 강조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십자가를 통한 새언약하의 그리스도인들일지라도 유대인들처럼 율법(계명)에 불순종하면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매 서신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오해하여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은혜로 거저 얻는 것이다 말하는 것은 성경을 크게 오해한 것이며 그런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은 실로 두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Jonghyuck Kwon 어느 구절인지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인자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율법이 있어 우리의 죄가 정죄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심은 율법을 폐하여 우리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닌, 예수님 스스로가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율법의 완성이지요. 율법아래서 정죄되어 죽어야 할 우리를 율법이 정한바 대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의 희생양이 되심으로 우리를 죄의 속박아래에서 해방하여 주신 그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을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그러하므로 율법을 완성시키시며 또한 동시에 율법의 그늘아래 놓여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신(율법을 폐하신)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우리가 알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께서는 믿고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유업은 천국을 의미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죄사함을 말하고 있으며 행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은혜에 속한 것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의 행위는 폐하여 진것이 아니며 육신의 법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폐하여 젓다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섬길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법이 성령에 속해지게 되면 우리는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행함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의지와 관련지어 지게 됩니다. 이 의지는 사망의 이르는 법과 생명의 이르는 법으로 관련있습니다. 선택은 뱀에 의해 미혹되는데 혹 사망으로 혹 생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성령과 따름의 관계가 행함에 의해 성립되는데 우리의 의지에 기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는 행함에 의해 되어지며 이것이 천국과 연관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사도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에 반하여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성령에 속한 것입니다. 지금도 율법은 지켜지며 천국과 관련 되어 집니다. 율법을 버리면 망하게 되며 그는 죽게 됩니다. 율법의 요구가 성령에 의하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의 문제는 믿음이며 유업의 문제는 행함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 할 때 구원은 믿음과 행함입니다. 당신들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누가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누구든지 업신여기지 마십시요. holy fisher 님 말씀하신 것이 일리가 있습니다
왜 지난 번과 다를 바 없는 걸 또 반복하는지 모르겠네요.
이건 토론의 주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토론의 질이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차라리 권교수님과 다른 권위있는 교의학자와의 토론이 낫겠습니다. 성경도 잘 인용하거나 자신의 논지를 세밀하고 치밀하게 말하지 못하고 같은 말만 하는 성경신학자 말구요...
+Beomkwang Jo 권 교수님도 설명이나 해설 해석을 잘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분에 비해 조금 더 나아 보일 순 있지만 말입니다.
이번에는 권교수님이 잘 못하신듯..
안심해도 된다는건지 두려워해야된다는건지
구원을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으로 본다는건지 과정으로 본다는건지 정리가 잘 안되는듯.
결론은 김교수님 말대로 믿음으로 확정된 구원을 받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혹은 은혜로 살아가면 배교가 아닌이상 구원을 받은거라는 얘기네요.
방송에서 잘못된 것을 가르치면 큰 죄가 됩니다. 심판은 최후에 하는 것이며, 마 25장에서처럼 행위의 결과에 따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한 우리의 의지를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조봉상님의 생각은 이단인 .안식교의 교리입니다..님께서는 자신이 구원을 누리고 계심을 모르시는지요?. 새생명은 우리가 벌써 가진것이지 심판날 받는것미래의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영생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것이지 심판후에 받는것이 아닙니다.,.신학교 교수들이 이렇게 인본주의 신학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끼치는 폐해가 큽니다..
한국 교회가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구원의 확정과 그에 따른 도덕무용론을 구원론으로 착각하기때문이다. 권연경교수의 시각이 더 올바르다.
웃긴게 뭐냐면 배교하면 심판이 임한다하는데 그건 행함이 아닌가? 구원 확정이라면서요
한국 기독교의 실태
구원이라는건 그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겁니다. 이게 뭐냐면요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거죠 그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를들어 같은 호적에 없는 남의 아버지를 내가 자꾸 내아버지라고 우긴다고 내 아버지가 됩니끼? 호적에 이름이 올라야 내 아버지가 되는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가 구원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우리의 비뚤어진 억지스러운 구원의 확신보다 구체적인 열매를 대보라고 하는겁니다.
성경에 예복을 기름등으로도 비유되죠
예수님은 좋은 나무가 좋은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경에 나온대로 사랑 화평등이 있죠
즉 나는 분명히 예수님을 내 구주로 인정하고 영접기도를 했는대도 불구하고 내게 성령의 열매인 사랑 화평이 없고 세상을 좇아 살고 겉으로 드러난 열매가 악한열매라면 이건 마치 남의 아버지 호적에도 안올라가있는데 내 아버지라고 우기는것과 똑같다는겁니다.
늙고 가난한 홀 어머니에게 재산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는 십일조 잘하고 교회 봉사 열심인 집사는 구원받나요 못받나요?
늙고 가난한 홀 어머니를 잘 모시기위해 십일조와 교회봉사를 못하는 집사는 구원을 받나요 못받나요?
+bbcarp812 지금 질문하신 내용의 사람이 본인이라면 이런 질문이 매우 중요하므로 질문을 할 수 있겠다 싶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본인 스스로가 구원을 받을까?(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믿고 있는지) 하고 질문해 보시는게 훨씬 유익할 것 같다고 답변 드려 봅니다. 이 답변은 제게도 해당되는 거구요.
+미옵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믿는"다는 기준은 뭘까요?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님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믿으십니까?
세상 그리 간단히 나뉘어 지지 않는게 부모님 보시며 신앙 잘하는 사람들과 부모님 내팽겨치고 신앙생활 안하는 자들이 더 많아요
김철홍교수님 어느 교회에서 목회하시나요?
거룩한 삶이
심판자 하나님의
룰입니다.
주여주여 하는자마다
다 천국행 티켓이 주어지는것도 아니고
아버지뜻대로 행하는자입니다.
선택된자 인지 아닌지는
본인의 감성적인 믿음의 확신하지말고
죽은뒤 생명록에서 확인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선택되었단 착각으로
개처럼 살다 지옥가지맙시다.
근데요 하나님의 선택이 없이 구원의 은혜가 없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 은혜없이 우리안에 내재하는 그리스도 없이 거룩한 삶을 살수 있을까요? 그래서 복음이 우리에게 절대적이며 처음과 과정과 결론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미 경험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여전한 그 사랑이 자신을 강권하여 그리스를 닮도록 한다고 말합니다 참된 구원의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참된성화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고민하며 문제삼아야하는 것은 복음을 머리속 지식이 아니라 진짜로 경험하여 참된 확신을 갖고 있는지를 고민해야하는 겁니다
권교수님 말씀중에 구원이 확정되었다면 심판이 요식행위이며 우리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씀이 좀 충격적이네요. 구원을 확정하신 주님의 사랑에 자격없는 자녀가 다시금 주앞에 나올때 흐르는 눈물의 회개가 의미없는 것인지요 그럼에도 다시 죄를 짓고 주앞에 나오는 우리의 삶이 의미를 잃어버린것은 아니겠지요. 우리가 자격이 없음에도 확정하신 주님을 바라봄이 믿음이 아닌지요.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이 다시금 광야에서 죄를 지을때 그것을 보시며 인내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심판을 요식행위라고 치부하는 것이 듣기에 거북합니다. 다른 이견을 가진 성도들의 생각이 있음을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이 잡으신 손을 우리가 놓을지라도 끝까지 잡고 계신 주님의 신실하심을 바라봅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끊을 수 없는 그분을 바라보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의롭다하시는 주님을 믿기에 만연한 구원의 방만함이 가득한 안타까운 현실속에서도 그분만을 바라봅니다
법정적 칭의는 비성경적 교리입니다.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열처녀 비유에서 준비하지 못한 자 구원에서 떨어졌습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무서운 범죄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매일 읽고, 회개하는 삶,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예수님을 전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믿음입니다.............. 매일 죄를 회개하고, 죄를 짓지 않게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없음' 구절이 없는 [한글킹제임스성경 럭크만 주석성경으로 공부하세요!!!!!!!!!!!!!!.... 없음 구절이 13개나 있는 개역성경은 변개된 카톨릭성서임..
자기를 부인하는것이 무엇인지..왜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는지..깨닫지 못하면 구원 못 받습니다.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진리를 교회목사나 스스로 찾지말고 꼭 하나님께 구하세요.오직 진리를 위해서 기도하세요..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있나니 하나님의 응답이 있으심을 믿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파워볼손흥민 유튭라이브 방송보고 3주째 따라가는데 승률 대박입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바울서신이 예수님 어록에 앞서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짓기, 양과 염소, 거지와 부자, 달란트의 비유를 들어 구원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바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현욱 바울도 믿음과 실천으로 영생에 이른다고 한 것인데,,, 김 교수님이 너무 바울의 한 마디 말만으로 해석하고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 말이 아니라 로마서 전체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됨. 김 교수님 같은 사람 앞에서 한 마디 말이라도 잘못 하면 그걸로 사람 잡을 사람이죠.. ㅋㅋ
정답이네요
로마서 8장 부터 11장 까지 다시 잘 읽어보세요. .....
복음서도 서신서도 모두 하나님이 쓰셨고 마태,마가,누가,요한,바울 등은 단지 기록자입니다. 어느 것은 주님말씀, 어느 것은 바울말이 아닙니다. 공관복음은 주님의 초림,재림,하나님의 성품, 이스라엘의 메시아, 하나님의 왕국 등에 쓰여진것입니다. 구원은 태어나는 것입니다. 순간 이루어지고 성화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보상과 상관이 있습니다. 구원은 절대 잃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성공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교리적으로 배운 것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듯 들리네요. 구원과 성화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인간의 해석이지요. 사도바울의 서신을 보면, 구원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 칭의의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하지요 그런 동시에 장차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칭의는 과거가 아닌 미래완성을 향한 현재진행형이라는 뜻입니다(구원은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룩함은 칭의 이후에만 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때 함께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것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는 맥락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은 구원의 보증으로 주신 은혜의 선물이며, 성화는 의의 소망(완성)을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의의 완성(구원)을 위해 성화의 열매가 없다면 그 신자는 쭉쩡이신자에 불과하며 성령을 쫓지 않고 육신을 쫓는 육에 속한 신자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나는 타락한 신자는 설사 그가 칭의로 구원을 시작했으나, 구원을 완성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구원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영혼이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신자들이 그랬고 고린도교회신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끊어진 신자들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낸시랭의 신학펀치의 최대공헌은 교단신학교 신학자들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만천하에 폭로했다는 것입니다. 무엇 하나 이야기를 하고자 할때 항상 밑에 있는 원고를 봐야만 하고, 자기도 설득되지 않을 주장을 내뱉으시는 것을 보면...
+조조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다만, 저분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해 두셨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또한 방송이라는 점. 어쨓거나 매우 부족하게 보이는 것만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우리가 딱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냐? 되묻는다면, 명확하게 그렇다고 할 수도 없을 거 같네요. 낸시랭이 복음을 완전히 다 배우고 익힌 상태에서의 질문이 아닌 배워가면서 뱉는 질문이라는 점을 염두해야 할 것 같습니다_느끼기에 그렇게 보여서요.
권연경 교수님께서 그나마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방향을 잘 잡아주셨네요. 장로교 신학교는 김철홍 교수님처럼 가르치나요? 그렇다면 참 심각하네요.. 마치 고3학생이 서울대학교에 가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것으로 확실하게 믿으면 서울대학교 가나요?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들어가겠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확신을 가지라니.. 오히려 권연경 교수님 말씀대로 출애굽의 은혜는 받았지만 아직 광야에 있는 것이고 가나안으로 상징하는 천국에는 아직 들어간 것이 아닌데.. (물론 들어가도록 노력을 해야겠죠,, 이스라엘 처럼 멸망받지 않으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은혜로밖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서울대학교 들어가는 것보다도 쉬운 걸로 생각하시나 보네요,,
인정..
장신대 교수님은 구원을 받은 자는 순종으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놓치고 계시고.... 숭실대 교수님은 믿음만으로 구원 받는다는 논지를 구원파 같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 내 맘대로 살겠다 라는 것으로 오해하고 계시고.... 구원에 관해서는 참 믿음이 무엇이며 거짓 믿음이 무엇인지로 토론을해야 합일점을 찾을 수 있답니다~~~~
권 교수님이 맞습니다. 자기중심적. 심리적인 착가에 빠지면 큰일 남.
김철홍 교수님 뵙고 싶어 서핑하다 보니 저런 X도 나오는 군요. 뭐 어차피 기독교 방송들도 썩을대로 썩은지라 광고 유치하기 위해 상업 방송의 예능 프로를 벤치마킹했는지는 모르겠습니만, 상업 방송에서도 보기 싫은 인간을 기독교 방송에서 왜 또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철홍 교수님께서는 좋은 의도셨겠지만 괜히 이런 프로에 출연하셔서 쓸데없는 구설이나 빌미를 주지 마셨으면 합니다.
이런 프로는 저런 믿음이 없는 애들을 앞세워 언론 노조가 기독교의 근원인 구원에 대해 공격하기 위한 질문에 불과하지만, 일단 시작한 이상 답변은 해야겠지요. 간단한 결론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권한이므로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어떤 인간, 어떤 판사보다도 공명정대하시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삯군 목자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로마서 2장 13절의 얻으리니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받을 수 있는 의인인데 율법을 지켜 구원함을 얻을려면 주님 이 다시 오실때까지 이를 매일 매일 지켜야 하는 까닭에
현재형으로 쓰인 것이고 , 로마서 6장 7절 말씀은 예수님의 피로 단한번에 이루어진 구원함으로 이를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완성했기에 우리가 이를 알고 믿는 시점 보다 먼저 이루어진 예수님의 피흘림심의 시점을 두고 말하기에 얻었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죠 이 두가지 말씀은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물론 율법의 행위로서는 절대 구원함을 얻을 수도 얻는자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5절 말씀은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구원받은 갈라디아서 교회성도들에게 하는 서신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라는 말씀은 구원함을 얻고 내안에 성령이 들어 와 있는 상태에서 이 믿음에 따라 주님 말씀대로 살아 가면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천국에 들어 가는 소망을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세분 다 제대로 된 말씀을 듣고 구원 받으시길...
율법주의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누구도 천국에 갈수 없는 겁니다
김교수님의 주장이 장신대의 공인된 주장이라면, 도대체 그렇게도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구원파의 구원론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요?
찰스 스펄전, 요한 웨슬레, 디엘 무디도 김교수와 똑같은 복음을 전했으니 이단이겠네요? 율법행위구원론과 은혜율법동시구원론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대표적인 이단구원론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잘 모르시겠으면
찰스 스펄전의 구원의 핵심이라는 책을
사서 읽어보세요. 구원관이 확실하게 잡히실겁니다.
구원받았으니 맘대로 살아도 된단다, 구원받았으니 회개가 필요없단다,
회개없이 깨달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단다~ 이런 교리는 장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심지어 구원파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교리입니다. 잘 공부하시고 비판하세요~
깊은.... 님의 의견에 100% 동감합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웃에게 덕을 세워야 합니다."깊은 삽입은 죄라면 반만 넣을께"란 이름을 하나님께서 책에 적어놓고계심을 잊지 마셔야합니다.이름을 그리스도인답게 수정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아무리 좋은 설명과 논쟁이라해도 창세기가 허구이고 신화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칭의의 세 가지 시제적 측면 ♥
● ‘구원의 서정’ 시제적으로 표현된 구원 3가지 구절 ●
과거 [ 그 때에…….. 따랐으니…]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현재 [ 더욱 지금…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미래 [… 구원하시리니… ]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칭의’ 의 3 가지 시제적 측면 ●
‘의’ 의 선물 [과거적 측면의 칭의]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의의 선물”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법적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얻은 과거적 측면의 ‘칭의’입니다. 선물은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물은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 칭의를 설명하는데 매우 적절하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다 함을 받는 칭의 입니다.
‘의’ 의 열매 [현재적 측면의 칭의]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의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의’에 대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의’는 법정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의의 선물’을 받은 그 때부터,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의의 열매’는 칭의의 현재적인 측면입니다. ‘의의 선물’은 칭의의 과거적인 측면이고 ‘의의 열매’는 칭의의 현재적인 측면입니다. 그것은 이미 얻은 ‘칭의’의 은혜 가운데 계속적으로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언약 백성의 의무로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계속 거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 때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칭의’도 ‘새 언약’도 ‘옛 언약’과 구조가 같다고 후커 교수가 지적했습니다. ‘새 언약’도 ‘옛 언약’과 구조가 같습니다. 우리도 의를 행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의무로 주어진 것이 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를 행하므로 예수님의 자녀 된 관계 안에 거합니다. 포도나무인 예수님의 가지로서의 관계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관계 안에 거합니다. 계속 그 구원을 잃지 않고 유지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 ‘의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선물은 값없이 주어지지만 열매는 가지인 우리가 맺는 것입니다. 선물은 공짜로 받지만 열매를 맺으려면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의 은혜로서 된 것이지만, 우리도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노력하고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선물과 달리 열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단지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 생활은 ‘의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의를 행하는 삶입니다.
‘의'의 소망 [ 미래적 측면의 칭의]
【갈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의의 선물’ = ‘의의 열매’ = ‘의의 소망’ 이라고 합니다. 소망은 추억이 아닙니다. 소망은 과거가 아닙니다. 소망은 현실도 아닙니다. 현재가 아닙니다. 소망은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칭의’에는 과거적, 현재적, 미래적인 측면이 있는데 ‘의의 소망’은 미래적인 측면입니다.
‘의의 소망’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최종적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의롭다함의 완성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한 신학자가 권연경 교수님입니다. 권연경 교수님은 ‘의의 소망’을 자신의 책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말하는 칭의는 ‘의의 소망’ 즉, 소망의 대상이라고 분명히 못 받는다. 갈라디아서의 싸움터는 ‘칭의’다. 엄밀히 말해서, 현재적 ‘칭의’가 아니라 ‘의의 소망’ 곧 미래적 ‘칭의’가 주제다. 이 ‘의의 소망’을 두고 ‘율법의 행위’와 ‘믿음’이 서로 싸움을 벌인다. 유대교 전통에서 ‘칭의’란 본래 마지막 심판을 배경으로 한 사상이다. ‘의롭게 한다’ 혹은 ‘의롭게 여긴다’는 것은 마지막 심판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충실히 지킨 이들을 의로운 자로 인정해주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칭의’가 종말론적 소망의 대상임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우리는 성령으로 믿음으로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라는 갈라디아서의 5장 5절의 이 구절은 갈라디아서의 칭의 논증을 요약하는 핵심 구절이다. 이 결정적 대목에서 바울은 ‘칭의’를 간절히 기다려야 할 소망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칭의’를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할 요량이었다면 결코 나와서는 안 될 진술이다. 그런데, 바울은 ‘칭의’를 미래적 소망의 대상으로 당당히 밝히고 있다.
권연경 교수님은 ‘의의 소망’에 대해서 3 곳에서 인용을 했습니다. ‘의의 소망’이 무엇인가?
‘칭의’는 ‘의의 소망’ 곧 소망의 대상이다. 그 다음에 ‘의의 소망’은 곧 ‘미래적 칭의’다. 즉, 심판석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칭의’는 마지막 심판을 배경으로 한 사상입니다.
바울은 종말론적인 (종말론적이란 예수님 이후의 성취된 것들을 말한다) 소망의 대상임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의의 소망’을 통해서 그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미래 심판석에서 받을 ‘칭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므로 이 땅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그런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그 믿음에 서 있는 사람이 마지막 날에 심판석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의 소망’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의롭다 하는 것을 미래적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개신교인들은 이것을 자꾸 현재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으로만 이런 쪽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칭의의 교리’가 왜곡되는 것이고 윤리가 상실 되는 것이고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교회가 타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의 소망’은 ‘칭의의 교리’ 인데 ‘미래적인 칭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이 달려갑니다. 사람들은 ‘상’이라는 단어에 속아서 바울이 상 받기 위해서 달려간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거기서의 ‘상’은 최종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빌립보서 3장 11절에서 바울은 “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목표로 정한 부르심의 상입니다. 이것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구원을 작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신자면 다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천국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삶의 목표와 바울이 이 땅에서 달려간 궁극적인 목적은 부활에 이르는 것이었고, 최종적인 ‘칭의’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우면 무엇합니까? 비리와 범죄로 얼룩이고 교회 헌금을 횡령하고 사적인 용도로 잘못 사용하고 불신자도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이들이 회개치 않으면 어떻게 천국에 가겠습니까? 여러분, 목회자로서 교회가 부흥하고 세계 최대 교회를 세운 것이 대단한 목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것을 위해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구원을 목적으로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 땅에서 큰 교회와 큰 사역을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면 나그네가 아닌 것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입니다. 세계 최대 교회를 세웠어도 그 사람은 세상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은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성공을 목표로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최종 구원을 목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얻으면 전부를 얻은 것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목표를 바로 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인생이 목적은 반드시 ‘의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재물의 소망이나 성공의 소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최종적으로 심판석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그 때에 주님 앞에서 “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받는 ‘의의 소망’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살전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이 ‘의의 소망’을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소망의 인내’ 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최종 심판 때 칭의를 받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기도 많이 하고, 사랑하고, 거룩하고 이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의 푯대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소망의 인내’ 즉 ‘의의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세속화 되면 안됩니다. 절대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조들이 산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다 얻고 이 땅에서 다 누리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늘에 쌓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대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목사고 진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렇듯 ‘칭의’는 3가지 입니다. ‘의의 선물’, ‘의의 열매’, ‘의의 소망’ 입니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의의 선물’이 없으면 ‘의의 열매’도 없고 ‘의의 소망’이 없습니다.
【히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합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그가 목사라도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의의 열매’는 ‘의의 선물’과 ‘의의 소망’ 중간에 위치해 있으면서 다리 역할을 합니다. 절대로 우리의 삶에 ‘의의 열매’를 맺지 않으면 절대로 최종적인 구원인 ‘의의 소망’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수 많은 목사와 부흥사들이 ‘구원의 확신’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겉 포장만 말씀을 지키고 평토장한 무덤처럼, 회칠한 무덤처럼 속에는 음란과 방탕과 탐심과 교만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2014년 12월7일 주일설교말씀중 중요부분요약(펌)
."바울의 겉사람의 표현과 속사람의 바울신학의 표현을 잘 모르시는군요. 성령안에서 더 깊은 연구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두자아가 있는데, 육에속한 자아와 영에 속한 자아가 있는데, 바울은 육신에 속한 자아에게는 구원은 떨림으로 이루라고 신앙생활을 촉구하고 있으며, 영에 속한 영의 자아에게는 구원의 확신을 붙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의 바울의 자아만을 가지고 성도의 구원을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신학입니다.
신학은 내 머리 세상지식으로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과 함께 동거하며 사는 삶을 통하여 깨우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일반학문과 달리 진리를 깨우치는 학문이기 때문에 진리의 성령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성령의 조명(불빛)없이 학문을 하면 진리를 알 수없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흰색을 빛없는 어둠속에서 그색깔을 계속 깊이 연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백날, 천날 연구해봐야 검은색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고, 역시 성령안에 없는자들은 그들의 이치적 논리에 그렇네! 라고 화답을 할 것입니다.
참! 이런자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많이 걱정됩니다. 학문지상주의자들은 마치 깊이 공부만하면 진리를 다 깨우칠 수있는양 하는 것이 문제이고, 한국교회는 이런 학문지상주의자들을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주신 주옥같은 진리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참교회는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자들의 바른교리로 세워주신 교회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성경해석의 기본적인 자세는 철저한 신본주의적인 자세로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치 않으면 인본적인 해석을 함으로서 오류를 범하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육에속한자아(겉사람)와 영에속한자아(속사람)라고.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설명해주시니 선명하게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신학에서 바울은 ''나'' 라는 존재가 나로부터 객체로 빠져나와 두자아인 육에속한 자아와 영에속한 자아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육의 자아에게는 말씀대로 살지 못할때 육의 자아에게는 꾸짖음으로 글을 썼으며,
영의 자아에게는 육신의 범죄한 자아 때문에 구원에 관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을때 너의 선행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공로를 생각하라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영의 자아에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오히려 구원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오히려 꾸짖을 정도로 확신을 가지라고 하는 모습을 보이지요.
바로 이것이 바울신학의 특징입니다. 바로 이러한 바울신학의 표현적 특징을 간과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많은 신학자들이 이러한 바울신학의 사상적 특징을 놓치기 때문에 잘못된 구원론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Read more Show less Reply 2 3 Edit Delete View 2 replies Hide replies 첼시3 weeks ago바울이 말하는 믿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란것이 아닙니다 할례도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다 사랑이 있는 믿음 이것이죠Read more Show less Reply 1 Report il yong Kim3 weeks ago (edited)"너희는 믿음안에 있는가 너희자신을 시험하고 너희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신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림받은자니라"고린도 후서 13장5절....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올바르게 잡아주며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거짖일꾼(거짖선지자)고린도후서 11장 11~15절들을 조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구원의확신은 각자 자신만이 확증할수 있는것입니다...구원의 확신이 없어도 구원은 받을수있읍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가 없는것입니다....현세의 많은 신학자들이 이렇게 간난아기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신학을 하고있죠...나이가 칠십인데 ...인간의 지성으로하나님의 신성을 가르치려하는교만의 산물이죠....첼시님 복음을 잘못 가르치는 신학자들을 떠나 성경으로 돌아가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권면합니다... 복음이란 어려운게 아닙니다.. 복잡한것도 아닙니다...그것이 힘든것이라면 복음이 아니죠..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의 험한길 내가지고 가려니 힘든것입니다...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너희 고생을 쉽고 염려걱정 근심의 짐이 가벼워짐을 체험하는삶을 사셔야합니다.그래야 환난중에서도 기뻐할수있는것이죠.
김교수님께서 잘 나가다가 삐끗하네요. 배교라뇨?
배교한 자가 구원에서 취소된다뇨...
베드로는 예수님을 공회에서 세번 부인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버리시지 않고, 먼저 찾아오셔서 세번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배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과 성령이 계시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정확한 표현 이시네요 구원이 취소됀다는 자체가 복음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첨언하자면 베드로가 부인할 때는 성령님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추후 성령님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승천하신 후인 믿음과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신자라는 자가 배교를 한다면 처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이며 성령님이 없던 자들입니다. 성령님을 받기 전이라면 모를까 일단 성령님이 임재하면 절대 배교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하나님께서 그날에 선택하신 자들에게서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을 거두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사울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즉 배교하는 자들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들이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말씀까지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은 절대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우리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를 예정하신 것 입니다. 어떤 자가 배교할 것을 하나님이 미리 모르실 바도 아니고 그런자들을 인치시고 성령을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철홍 교수 "탄핵은 대한민국 전복…공산국가 수립시도"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2553996
저 김철홍 교수가 한말과 기사가 사실이면 저사람의 이야기는 영 받아들일게 못되네요
김철홍 씨가 주장하는 구원론은 사실상 구원파의 교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신약학자들의 견해도 다양하고 일치되지 않습니다. 김철홍교수의 지도교수였던 김세윤교수는 칭의를 정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김세윤교수 밑에서 학위를 받았던 김철홍교수가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조금 의외이고 전통적인 개신교입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최근 바울서신을 새롭게 읽는 새관점학자들이 전통적 칭의개념에 대해 반격을 가했지요. 전통적인 칭의는 구원파적 칭의입니다. 법정적 칭의만을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새관점학파들은 헬라적인 법정적 개념으로 보면 안되고 구약의 언약적 입장에서 칭의 개념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차피 칭의가 구약의 언약에서 나온 개념이고 유대적 배경 속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법정적 일회성의 개념이라기보다 유동적이고 관계적인 칭의개념으로 보게 됩니다. 언약관계에 있을 때 의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언약을 깨뜨리게 되면 의를 상실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기에 신실한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이라 성경은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이 언약 안에 있을 때 그들은 의롭다 인정받았지만 언약을 깨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그들은 불의한 백성이 되었고 결국은 심판받아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적 칭의 개념은 하나님이 자격없는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조상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때문이었지 그들의 흠없는 자격때문은 아니었고 그자체가 은혜요 긍휼이었습니다. 그런 부름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은 언약의 백성이 되었는데, 하나님을 말씀으로 섬길 때 언약에 신실한 백성이며 의로운 백성이라 칭함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뜨릴때 광야에서 망했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망했습니다. 이것이 새언약의 기본구조와 동일합니다. 다른 것은 짐승제사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죄사함받았다는 것이고 새마음과 새영을 주시는 성령의 세례로 내주하시는 은혜가 주어진 것이 다른 축복입니다. 그런데 언약속에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언약인 예수님의 새계명을 거역하고 불순종해나가면 예수의 피를 부정하게 만드는 신성모독죄를 짓게 되고 결국 육신을 좇다가 영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는 자들이 영생을 거두게 되는 것이지요.
왜 낸시가 자꾸 질문이 자체가 이상하게 보였나 했더니.. 질문 자체에 복음이 빠져 있네.. 그러니 이 질문을 해도 저 질문을 해도 모두 답변이나 대답이 애매 모호하게 보이고...
이유를 알았네...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빼 놓고 이야기 하니.. 답이 안나오거나 모르는 듯.. 하네요..
우리의 구원여부에 대해 yes and no라고 하는 권연경 교수의 대답이 오류. 구원을 얻은 후, 구원이후의 삶은 상급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만.
Kyoungsun Kim 에휴...성경에서 말하는 상급은 뭐죠? 상급의 높낮이가 있다면 그게 진짜 구원인가요?ㅋㅋ
상급의 높낮이가 있음이 공의의 하나님이죠..예전에 부흥사들이 천국을 마치 세상복으로 비유해 잘못 설명해주셨죠...ㅜㅜ...예수님께서 너희가 거할 처소를 준비하신다는 말씀이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천국은 집이 필요없지요.. 집은 잠을 자기위해 필요한것이죠.. 인간이 을 자는 이유는 죄를 졌기 때문이죠..일하는 수고.또한 천국에서는 없읍니다.실낙원한 죄인인 인간들에게 주어진 죄벌입니다.죄와 벌은 구약의 의미로는분리할수없는 한단어 입니다. 죄가존재하지않는 하늘나라는 오직 평강과 희락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쁨만 가득한곳입니다.예수 십자가에 달리신 복음이 이렇게 귀한것입니다..
믿는 그 순간 구원 받은 것 아입니까ㆍ 죄에서 놓이고 하나님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니 ㆍ 더바랄것이 무었이 있습니다ㆍ 구원이 따로 있는것안입니다ㆍㅡ
설명을 자꾸 애매모호하게 하시는 게 주제 또는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거나 순서가 바르지 못해서인 듯 합니다.
구원을 주신다 혹은 구원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는 등의 설명..
가장 핵심인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빼고 설명을 하니...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자꾸...떨면서 기다려야 한다니... 기쁘게 바라보면서 기다린다 표현한다면 모를까...
성경을 해석하는방법은 두가지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신본주의와..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인본주의 가 있는데요.. 권교수와 같이 인본주의자들은 결국하나님의 주권을 반만 인정하기에 . 행위구원론자로 귀결될수밖에 없읍니다.요즘 신학교에서 인간의 지식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인본주의 신학을 가르침으로 현세의 기독교에 끼치는 폐해가 큼니다.일반 성도들은 복음과 비복음을 섞어서 설명하니 복음이 희석되어 이해하기가 힘들죠...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읍니다. 이믿음은 십자가의 복음뿐이죠
배교 하면 구원을 잃는다구요?
참되게 진실되게 구원 받은 사람은 배교 할 수가 없어요 교회를 떠나 있을 수는 있어도 예수님의 완전하신 대속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배교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은 사실상 본래 십자가 구원의 믿음이 온전치 못하여 구원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믿음인지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두려움에 주님을 부인한 것이 배교가 아니듯이 성령이 내주 해 있는 사람이 성령의 불을 소멸케 할 수는 있어도 성령을 훼방케 할 수는 없어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존재 가운데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다 하심은 천사도 마귀도 구원받은 우리 자신도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 이루시고 지성소의 휘장이 하늘로 부터 갈라짐으로 영단번의 대속제사를 이루신 보혈의 공로를 불완전 한 것으로 여기는 사실상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예비하심으로 주신 언약을 믿지 못하는 태도가 과연 믿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인가요?
어떠한 이유로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구원이 다시 상실될 수 있다 여기는 것.. 우리에게서 비롯하는 부스러기 하나라도 보태려 하는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값싼 복음으로 구원 착각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참된 구원 마저도 상실될 수 있는 양 불완전 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십자가 대속 제사를 짐승 제사로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세가 잘 몰라서 행한 잘못이지만 지팡이로 바위를 한번 내리치라 했는데 두번 내리 쳤지요
[다번역성경찬송]
빌립보서 2장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저랑 생각이 너무나도 일치합니다 아까 영상에서 배교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만 님의 지혜있는 해석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님의 말씀이 정통적인 해석입니다.믿는자가 배교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믿음없음을 반증하는것이죠..하나님을 만난 믿음을 가진자는 결코 배교할수도.하지도 못합니다..이런 행위구원론자들의결과는 두려움뿐!
첨언하자면 베드로가 부인할 때는 성령님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추후 성령님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승천하신 후인 믿음과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신자라는 자가 배교를 한다면 처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이며 성령님이 없던 자들입니다. 성령님을 받기 전이라면 모를까 일단 성령님이 임재하면 절대 배교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하나님께서 그날에 선택하신 자들에게서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을 거두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사울을 언급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즉 배교하는 자들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들이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말씀까지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은 절대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우리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우리를 예정하신 것 입니다. 어떤 자가 배교할 것을 하나님이 미리 모르실 바도 아니고 그런자들을 인치시고 성령을 내려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무슨 얼어 죽을 구원이냐?? 멀쩡한 사람들을 죄인이라 정죄해놓고 믿으면 구원해 주겟다고 개 구라치는 기독교 교리.
먹사들 밥먹여 주자고 교인들은 우선 모두 죄인으로 몰고 그담에 교회와서 돈내면 용서해준다고...개소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구절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KJB을 보면 구원을 나타내라고 나옵니다. 또한 구원과 성화를 섞어놓으면 구원은 믿음+행위라는 다른복음이 됩니다 권교수는 문맥을 보지 않고 구절을 따다가 주장을 펼치는데 이런 저런 말을 해도 믿음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어렵게 토론하는 이유를 전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빙빙돌려말하는 것 같은느낌이에 요 물론...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어렵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죽으셨음을 정말 믿고 의지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닙니까?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되어있는대로 순종하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선하게 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맞읍니다 김민수님께서 양심에 따라 선하게 산다는겻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께 순종하며 산다는것이예요...님께서 . 성령님과 교통하며 사심으로인해. 항상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나날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난 구원 안믿어!!. 그냥 인간이 만든 소설책.!! 성경!! 그말을 믿느니 차라리 계룡산에서 도를 닦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