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팽-귄 네... 몰랐다네요. 일본순사 한번도 본적이 없다네요. 위치는 경남 고성 내곡인데... 너무 깊이 있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지금은 길이 뚫려있는데... 예전에는 고성 읍에서 2시간정도 차로 걸렸어요 그나마 비포장 도로가 있었음... 차 1대 지나갈 정도. 당시 차 있는 사람이 시골에 없었던 걸로 기억. 저희 오라고 문디 마을서부터 비포장길 만드셨건걸로 기억.. 집성촌이라... 다 가족이었음. 제 기억으로 저 4살때... 41년전에는 전기 없던걸로 기억해요. 문디마을까지는 전기가 있었는데 저희 시골에는 없었어요. 6~7살때 전기 들어와서 백열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구요. 4~5살때는 6~7시 되면 집에 갔고 9시전에는 무조건 잤던걸로 기억해요.
@@grx1988 제가 그 시대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본 분 말로는 몰랐다네요. 어른들이 뭐 이런걸로 거짓말 할리도 읍고... 그리고 저희 시골 오지는 아닙니다. 걍 예전에 들어갈려면 문디마을이랑 열녀문 효자문을 지나서 가야 했던 좀 읍에서 먼 곳이지... 집성촌으로 다 친척들이긴 하지만 꽤 많이 살았었어요. 지금은 길 뚫리고 외지인들 많이 들어왔지만...
※ 이 영상은 2013년 6월 12일에 방송된 <한국기행 - 단양 8경 3부 오지마을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ㅍㅊㅍ
10년 전이네요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실까
7년전에 다녀왔는데
그때 뵙던할머니 한분계셨는데
지금은 어떨지
다음에 한번올라가봐야겠네요
영상시작할때 2013년이라고 적어주시면 좋겠네요
50이 훌쩍 넘기고보니 그리워할 고향이 있다는것이 참 부러운 일이네요.
오늘따라 일찍 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내가 사는곳이 고향
나도요! 고향이 그립네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 삶을 사는 분들을 보면서 저 자신의 삶을 생각 해 봅니다. 저 보다 더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습니다.
할머님 그 모진 세월을 고생하면서 사셨네요. 건강하세요
우리 할머니들 화이팅하세.
오래 오래 건강 하세요.
내 고향 단양......바로 저곳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에요 ㅠ 단양 어상천
이런 마을이 실제로도 존재 했었군요 ㅎㅎ 6.25 때 사셨지만 전쟁을 겪지 않은 마을
가거도도 몰랏다고 함
저희시골도 지금은 길이 뚫려서 빠르게 가는데..
예전에는 효자문4개랑 열녀문2개 문둥이마을 지나야 가는곳이라...
6.25랑 일제시대를 몰랐다 하더라구요.
저희 시골은 그래도 많이 변했는데... 여긴 예전 생각이 나는 동네네요
일제시대를 모르는게 말이되나요? ..
@@놈팽-귄 네... 몰랐다네요. 일본순사 한번도 본적이 없다네요. 위치는 경남 고성 내곡인데... 너무 깊이 있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지금은 길이 뚫려있는데... 예전에는 고성 읍에서 2시간정도 차로 걸렸어요 그나마 비포장 도로가 있었음... 차 1대 지나갈 정도. 당시 차 있는 사람이 시골에 없었던 걸로 기억. 저희 오라고 문디 마을서부터 비포장길 만드셨건걸로 기억.. 집성촌이라... 다 가족이었음.
제 기억으로 저 4살때... 41년전에는 전기 없던걸로 기억해요. 문디마을까지는 전기가 있었는데 저희 시골에는 없었어요. 6~7살때 전기 들어와서 백열등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구요. 4~5살때는 6~7시 되면 집에 갔고 9시전에는 무조건 잤던걸로 기억해요.
일제시대는 좀과장된듯..수십년동안 아무도 외부와 소통없이 살아야하는데 ;;; 경남고성 정도에는 그런 오지 없음 ..
@@grx1988 제가 그 시대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본 분 말로는 몰랐다네요. 어른들이 뭐 이런걸로 거짓말 할리도 읍고...
그리고 저희 시골 오지는 아닙니다. 걍 예전에 들어갈려면 문디마을이랑 열녀문 효자문을 지나서 가야 했던 좀 읍에서 먼 곳이지... 집성촌으로 다 친척들이긴 하지만 꽤 많이 살았었어요. 지금은 길 뚫리고 외지인들 많이 들어왔지만...
대포탄피로 냉면틀을 만드시다니 대단 하세요
와... 냉면 진짜... 어디에서도 못먹을 맛이겠네요 ㅠㅠ
10년이니까.
어르신들 대부분돌아가셨을것같은데
현재 마을은 어떻게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아프지말고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진짜 귀한 음식이네요 저런데 살 날을 꿈꿔봅니다
한국내 일제 36년간 와 6.25전쟁 3년간 역사기록에 없었다. 오지를 찿아서. 조선에서 가장 행복한곳..
3년 시묘살이는 힘들지만
그 마음이 살아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너무 많은 좋은 우리 고유의
좋은 뜻들이 사라지는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시묘살이는 반대입니다😂
하고싶은 사람 하고 싫은 사람 안하고
@user-uy8xn3gl8p 그러네요 ㅎㅎ^^
15년전에 가보고 3년전에도 찾은 피화기마을은 옛날처럼 정겨운 그곳이 아니여서 안타까웠읍니다
와 우리동네 나왔다. 보발본동 피화기 마을
두 분,
잘 만나셨네요^^.
건강 하십시요^♡^.
질병도 안걸리고 참건강하시네요. 😊😊
Tumbuh tua dengan kesehatan dan kebahagian yang sempurna , luar biasa penduduk desa Korea.
나도 가고싶다 ,
할매들요 ..
건강하게 오래들 사시소!!
사과 나무 보니까 우리집 생각나네요.. 저는 청송이 고향인데.... 중령알죠... 터널이 아주긴곳...
건강하세요
4:44
냉면 뽑는 틀이 탄피로 만들어진 그곳 ㅎㄷㄷ
저기가 바로 동막골?! ㅋㅋㅋ
냉면 맛있겠네요...
앗, 할머니 냉면 젓는 막대기 옛날 티비 안테나네 ㅋㅋㅋ
6. 25당시에도 난리가 난 줄 몰랐던 곳이, 옥천에도 한곳이 있고, 추풍령에도 한 곳이 있었다고 들었다.
내가 돌아다닌 곳 중에서 딱 두곳, 그것도 그 동네사람들이 장에가서 들었다고 이야기 하더라.....
아주 오래된 20대 30대 때 들은 이야기다
단양 적성에 세거지가 있는데. 축구 선수 송종국이 같은 동네인데
저 마을은 전쟁은 피햇지만
저출산으로인한 마을소멸은 못피하것지
4:55 탄피, tv안테나.!
이북은 논과 들이 없어 잡곡인
메밀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살았지요. 강원도가 산이 많
아 메밀농사를 지어 메밀국수
나 메밀전을 만들어 먹고살아
왔듯이 그런 편이죠. 들이 많은 지방은 아에 메밀 농사
안합니다. 영양도 적고 근기도
없고 돈도 되지 않으니까요.
동막골은?
경남 거창군 거기부락 ㅡ
아버지 고향 ... .
마지막간것이 20 여년전 ..
그 때 십여 가구가 산골짜기 마을에 잇엇는데
지금도 과연 있을까 .......
단양이면 충북인데 충청도 사투리가 전혀 없네요. 단양도 그렇고 제천도 그렇고 충청도 사투리가 없고 오히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것 같습니다.
@@추억만들기7 그러고 보면 충청도 사투리의 동쪽 경계점이 충주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충주 사람들도 강원도 사투리 +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있더군요. 충주 동쪽으론 당연히 충청도 사투리를 씁니다.
맞음. 경계에 있는 도시들 가보면 양쪽 사투리랑 억양이 섞여서 묘함..
대전인데요...
청주만 가도 억양이 다릅니다...
강원도 억양이 살짝.....
@@라일타 청주는 충남쪽에 근접한 위치에 있으니 그래도 충청도 쪽 말이 더 강하다고 봐야합니다. 영동, 보은, 옥천도 다 충청도 말이 강하잖습니까.
그러게 정겨운 강원도 사투리네.
제천은 강원도 사투리가 섞여있던데
청주는 강원도 사투리 안섞여있던데.
피화기마을 모르면간첩
울동네서 쳐다보믄 다비던곳
댓글중에 일제강점기 몰랐다는게 있는데 실제 그런곳 꽤 많습니다 특히 오지에 일명 문둥촌 지나는 곳은 그런곳 있어요
일제놈들이 악독해도 리스크 감수하고 문둥촌 진입할 이유가 없음
시묘살이 3년 만큼 어리석은 짓이 또 있을까? 인물이 출중했던 문종도 연속해서 부모상 2번 치르느라 몸이 축났고 젊은 나이에 일찍 요절했다던데. 그 때문에 아들(단종)이 동생(세조)의 손에 죽는 비극을 초래했고.
노인들 다 돌아 가시고 자식들이 안 돌아오면 저 마을도 사라지겠다
이런곳들을 방송에서 보여주지 마라.
Suv아 찝차 몰고들 몰려온다.
누가 오겠냐.
자유없는곳 감시 감금 부족사회 애도3년 형벌 무슨죄 좋은듯 구속 작은마을 서로 잘 사는 아님 구속 어떤 정치적 운영인이 부족장 인가 대로이어 악 운영이면 가난 비난 구속인이 3년애도 효자 법 운영 같다
거짓말임
단양은 읍내도그렇고
도담삼봉주변
시멘트공장에서
타이어태우는 냄새 뿌연 매연
맑은 날에도
온산에 안개가 낀듯하니
심각한 상황이더라
뭐 개소리야 물물교환도 안하고 살았다냐
개짖는 소릴 너한테서만 들엇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