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한 것도 아니고 야마토로 건너가서 킴메이왕이 되죠. 이는 히라노산사에 성명어라하도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점, 위덕어라하가 아버지 성명어라하를 기리며 구세관음상을 만들어서 보내준 것에도 알수 있습니다. 김부식이는 성명어라하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위해 전사했다고 왜곡함. 관산성도 추정위치만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몰라요. 어라하가 전사할 정도로 요충지였다는 그곳이 말이죠.
성왕때 불교경전을 일본에 보내는 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인데요 신라와 싸우기 위해 왜에게 화살과 군인들을 요청하자 일왕이 경전과 기술인들을 요구했고 그래서 불교를 전래해준거에요 왜의 군사력이 필요해서 왜왕이 원하는 걸 들어준거죠 왜에 불교전래해준걸 성왕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에서 확인되거나 발굴조사된 전방후원분의 외형과 내부구조, 특히 방패형 주구는도 당시 일본열도 전방후원분에서 유행하던 것과 유사하며, 원통형토기도 하니와〔埴輪〕로 불리는 일본 고유의 토기형태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른바 왜계(倭系)고분의 요소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돌방의 경우 북큐슈〔北九州〕에서 서일본은 물론 나중에는 동일본까지 파급되었던 소위 북큐슈형〔北九州型〕의 축조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라남도지역의 전방후원분은 북큐슈 고분양식을 자체적으로 답습한 묘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집단을 의미하는 하위 고분군을 형성하지 않은 전방후원분의 출토유물은 대다수가 전라남도 지역의 산물이다.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과 판이한 이런 점들은 피장자가 그 지역에 살았던 토착 유력자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새로운 묘제의 파급시기에 전라남도 해안지역의 일부 토착 유력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한반도의 중부지방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큐슈 돌방의 발전형과 일본 고유의 전방후원형 봉분을 도입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전라남도 해안지역은 지리적으로도 극동아시아 물류의 중요 거점지대로 보인다. 즉, 중국대륙의 연안지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 북큐슈 연안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일본열도 각지로 통한다. 따라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물류와 거기에 수반된 문화 흐름의 가장 중요한 거점지역 중의 하나가 서·남해안을 가르는 영산강 하구 중심의 전라남도의 해안지역이고, 다른 하나가 남해안에서 바다 건너 일본열도의 입구인 북큐슈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일대와 유사한 지리적 환경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주지하듯이 주로 이 해로를 통해 한반도의 문물이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화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국제적 문물 교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고분문화도 어느 정도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다. 남해안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일본 야요이〔彌生〕유적도 그 중의 하나이다.전방후원분은 당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북큐슈 사이의 고분문화 교류 차원과 더불어 종래 독특하게 독널 고총을 축조했던 것처럼 전라남도지역의 국제적인 개방성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국제적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백제보고 일본 제후국이였다는 헛소리 지껄이는 놈은 무시해주세요 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아오 지가 뭘 틀렸는지도 모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님아 진짜로 역사를 아직 안배우신거임 아니면 못배우신거임...... 백제는 중국사가 아니고 백제만 일본을 도와준건 아니지만 삼국중 가장 일본과 교류를 많이 하며 가까웠기에 영향을 쉽게 끼칠수있었던거지... 그렇기에 백제가 멸망할때 일본에서 군대를 보내 도와줄려고 했던거였고.... 백제가 일본한테 선물로 준 유물들을 일본이 아직도 국보로 지정한거 보면.....딱 알수있을텐데.....뭐만 하면 일본서기 중국사 이지랄하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고구려에서 뿌리로 온조 및 100명이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하여 백제구만....뭔 또 만물중국설이야.....ㅋㅋ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발해 역사를 우기는 중국인은 봤어도 백제를 지내꺼라하는건 내가 첨 본다........신뢰가 있는 바보가 무섭다더니....
우리나라에서 확인되거나 발굴조사된 전방후원분의 외형과 내부구조, 특히 방패형 주구는도 당시 일본열도 전방후원분에서 유행하던 것과 유사하며, 원통형토기도 하니와〔埴輪〕로 불리는 일본 고유의 토기형태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른바 왜계(倭系)고분의 요소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돌방의 경우 북큐슈〔北九州〕에서 서일본은 물론 나중에는 동일본까지 파급되었던 소위 북큐슈형〔北九州型〕의 축조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라남도지역의 전방후원분은 북큐슈 고분양식을 자체적으로 답습한 묘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집단을 의미하는 하위 고분군을 형성하지 않은 전방후원분의 출토유물은 대다수가 전라남도 지역의 산물이다.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과 판이한 이런 점들은 피장자가 그 지역에 살았던 토착 유력자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새로운 묘제의 파급시기에 전라남도 해안지역의 일부 토착 유력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한반도의 중부지방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큐슈 돌방의 발전형과 일본 고유의 전방후원형 봉분을 도입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전라남도 해안지역은 지리적으로도 극동아시아 물류의 중요 거점지대로 보인다. 즉, 중국대륙의 연안지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 북큐슈 연안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일본열도 각지로 통한다. 따라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물류와 거기에 수반된 문화 흐름의 가장 중요한 거점지역 중의 하나가 서·남해안을 가르는 영산강 하구 중심의 전라남도의 해안지역이고, 다른 하나가 남해안에서 바다 건너 일본열도의 입구인 북큐슈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일대와 유사한 지리적 환경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주지하듯이 주로 이 해로를 통해 한반도의 문물이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화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국제적 문물 교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고분문화도 어느 정도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다. 남해안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일본 야요이〔彌生〕유적도 그 중의 하나이다.전방후원분은 당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북큐슈 사이의 고분문화 교류 차원과 더불어 종래 독특하게 독널 고총을 축조했던 것처럼 전라남도지역의 국제적인 개방성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국제적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백제보고 일본 제후국이였다는 헛소리 지껄이는 놈은 무시해주세요 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백제 초기 무덤 양식이 고구려랑 똑같아. 결국 고구려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 남조랑 교류 긴밀하게 했다는 거잖아 ㅋㅋ 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category=Research&m201_id=10015441 demo.egloos.com/m/2363699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15115 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826429 mahan.wonkwang.ac.kr/culture/2014/1/1/3/c.htm contents.history.go.kr/data/pdf/nh/nh_006_0040.pdf?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어니 내가 지금 요서 지방 말했냐? 이거 진짜 ㅋㅋ 야 니 말로 하면 우리나라가 이정도인데 한나라 시절 부터 침략에 시달린 라오스,베트남은 할말도 없겠네 ㅋㅋ 고구려가 선비족 정벌하고 나서 교류 관계를 유리왕 때부터 돈독하게 했다고 했어 그리고 애사당초 지금 만주지방에 소수민족 많은 거보면 그당시 고구려도 소수의 실위,말갈,거란,돌궐,해,한족, 대다수의 부여인으로 구성된것도 모르고 마음에 안들고 팩폭 먹이면 환빠로 몰고가는 놈한테 무슨 지능이 필요할까 ㅋㅋ 어 잠만 이거 논리 수준 보니까 넷지오에서 뻘짓한것중 하나인 성경 소돔과 고모라 재연 영상에서 기독교,유대교,이슬람의 신인 하나님을 외계인이로 치부하고 팩폭먹으니까 ㅈㄹ하고 토깐 논리가 답이 없는 김국빈 하고 똑같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정신뵹자 쉐키야, 이거나 쳐 봐라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 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古朝鲜语 | 全世界条目 m2.allhistory.com/detail/5910639055b542257a033d98 古朝鮮語:古朝鮮語,亦作古代韓國語(고대 한국어),指的是古朝鮮到高麗時 -百科知識中文網 www.easyatm.com.tw/wiki/%E5%8F%A4%E6%9C%9D%E9%AE%AE%E8%AA%9E 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 위략 >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 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古朝鲜语 | 全世界条目 m2.allhistory.com/detail/5910639055b542257a033d98 古朝鮮語:古朝鮮語,亦作古代韓國語(고대 한국어),指的是古朝鮮到高麗時 -百科知識中文網 www.easyatm.com.tw/wiki/%E5%8F%A4%E6%9C%9D%E9%AE%AE%E8%AA%9E 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 위략 >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法隆寺の문서 다르게 해석했나본데 구세관음상은 聖徳太子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라는데 백제왕이 아닌데요…. 아주 역사왜곡이 심하다. 회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괜찮은데 아무거나 좋은 말만 믿고 그게 사실인듯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안 좋습니다. 그런 가능성도 있다, 이런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 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古朝鲜语 | 全世界条目 m2.allhistory.com/detail/5910639055b542257a033d98 古朝鮮語:古朝鮮語,亦作古代韓國語(고대 한국어),指的是古朝鮮到高麗時 -百科知識中文網 www.easyatm.com.tw/wiki/%E5%8F%A4%E6%9C%9D%E9%AE%AE%E8%AA%9E 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 위략 >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일본의 신사는 어떤 신을 모시고 계십니까? 일본의 축제는 어떤일을 기념합니까? 일본의 국보는 어느나라 물건입니까?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신사는? 일본 민족은 어디서 왔습니까? 일본 욍실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일본의 근본은 한국 아닙니까? 욍실 보물창고 정찬원 보물을 봅시다? 일본의 토착민 아이노족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백강 전투에 참여한 병사는? 직시하고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냅시다!
@@박현수-h9o 화낼 필요없습니다. 저사람들이 저렇게 역사 왜곡하는 이유는 우리 영토를 뺏았을려는 의도 우리도 이용하면됨 중국이 대한민국과 한나라면 대한민국이 미국의 힘을 이용해서 나중에 중국을 점령해도 저들은 잘못되었다고 할수 없음 중국이라는 영토를 가지고 몇천년동안 중국땅의 서쪽에 사는 한족과 동쪽에 사는 동이족이 수천년을 싸웠고 이제 우리가 점령하면 우리땅이 되는거임
백제 성왕ㆍ무령왕은 매력적이네요~~~
한상권 아나운서 목소리는 역사 프로그램하고 맞는것 같아
귀에 쏙 쏙 박혀요👍🦻
목소리 ㅆㅅㅌㅊ
정말 재밌고 유익하네요 일본에서 비불로 환생한 것은 결국 백제의 역사가 아닌가 싶네요. 뜻깊게 보았습니다!
동북공정 짜장 또 출몰했구나. 지겹다. ㅉㅉ
@@user-h5ug2vs7q1 저놈 내가 유리왕때 선비족 정복한거 증거랑 관련 뉴스 기사 알려주니까 잠적함 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하긴 뭐 니 성싸가 조선 후기 공명첩 남용이 심한 김씨인데 남의 성씨 가져다가 ㅈㄹ 하는 놈인데 무슨 논리가 필요할까?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아 순산을 막고 친정 간다고 말로만 씨부렸더니 더 강한 군사력 지닌 백제와 가야 신라가 쫄았다는 일본서기 맹신자 지 참 ㅋㅋ
namu.wiki/w/왜인%20한반도%20남부%20지배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namu.wiki/w/왜인%20한반도%20남부%20지배설
여기 2.5 문단 잘 읽어봐 ^^ 너한테 얘기할거는 이거 뿐이야 ㅋㅋ
이상허게 고구려 신라보다 백제 역사가 미스테리가 많고 재미있단말야
신라후손 김부식이가 왜곡했으니까요. 일단 김부식이는 고려중신이고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니 고구려사는 그대로 냅뒀고 신라는 김부식이의 진짜 조국이니까 버프된데 비해 우리 백제는 김부식이에게 있어서는 적국이기에 왜곡되고 소각되어 버리죠.
이런 이유로 일본서기 중국사를 보는 것인데,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겠다고 일본서기를 모두부정하는것은 실력이 딸리는것이고 백제서기는 일본서기임을 인지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중생을 면치 못한다. 삼국사기 또한 같은관점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야된다.
11:55 이도학 교수님 헬기까지 타셨어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역사스페셜 중 가장 크게 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
헬기바람에 가발 날리는거 아녀?
@@까고보니진주나옴 너는 아~주 나쁜 넘이여 ㅋㅋ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왕이 이리 대단한 일들을 해낸줄 몰랐었네요
그저 신라에 통수 맞고 전사한 비운의 왕 정도로 알았는데
참으로 볼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전사한 것도 아니고 야마토로 건너가서 킴메이왕이 되죠. 이는 히라노산사에 성명어라하도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점, 위덕어라하가 아버지 성명어라하를 기리며 구세관음상을 만들어서 보내준 것에도 알수 있습니다. 김부식이는 성명어라하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위해 전사했다고 왜곡함. 관산성도 추정위치만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몰라요. 어라하가 전사할 정도로 요충지였다는 그곳이 말이죠.
성왕때 불교경전을 일본에 보내는 건 일본서기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인데요
신라와 싸우기 위해 왜에게 화살과 군인들을 요청하자 일왕이 경전과 기술인들을 요구했고 그래서 불교를 전래해준거에요 왜의 군사력이 필요해서 왜왕이 원하는 걸 들어준거죠
왜에 불교전래해준걸 성왕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역시 삼국시대 얘기는 재미있네요~
우리나라에서 확인되거나 발굴조사된 전방후원분의 외형과 내부구조, 특히 방패형 주구는도 당시 일본열도 전방후원분에서 유행하던 것과 유사하며, 원통형토기도 하니와〔埴輪〕로 불리는 일본 고유의 토기형태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른바 왜계(倭系)고분의 요소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돌방의 경우 북큐슈〔北九州〕에서 서일본은 물론 나중에는 동일본까지 파급되었던 소위 북큐슈형〔北九州型〕의 축조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라남도지역의 전방후원분은 북큐슈 고분양식을 자체적으로 답습한 묘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집단을 의미하는 하위 고분군을 형성하지 않은 전방후원분의 출토유물은 대다수가 전라남도 지역의 산물이다.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과 판이한 이런 점들은 피장자가 그 지역에 살았던 토착 유력자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새로운 묘제의 파급시기에 전라남도 해안지역의 일부 토착 유력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한반도의 중부지방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큐슈 돌방의 발전형과 일본 고유의 전방후원형 봉분을 도입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전라남도 해안지역은 지리적으로도 극동아시아 물류의 중요 거점지대로 보인다. 즉, 중국대륙의 연안지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 북큐슈 연안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일본열도 각지로 통한다. 따라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물류와 거기에 수반된 문화 흐름의 가장 중요한 거점지역 중의 하나가 서·남해안을 가르는 영산강 하구 중심의 전라남도의 해안지역이고, 다른 하나가 남해안에서 바다 건너 일본열도의 입구인 북큐슈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일대와 유사한 지리적 환경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주지하듯이 주로 이 해로를 통해 한반도의 문물이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화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국제적 문물 교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고분문화도 어느 정도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다. 남해안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일본 야요이〔彌生〕유적도 그 중의 하나이다.전방후원분은 당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북큐슈 사이의 고분문화 교류 차원과 더불어 종래 독특하게 독널 고총을 축조했던 것처럼 전라남도지역의 국제적인 개방성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국제적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백제보고 일본 제후국이였다는 헛소리 지껄이는 놈은 무시해주세요 ㅋㅋ
한일관계가밝히밝혀지길간절히빕니다
이 당시를 잘 재연한 일본 드라마 중에 성덕태자란 드라마가 있는데 극 중 주인공? 연기자들이 한국어로 대화하죠 그리고 한국어로 말을 안한다며 핀잔 주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국배우 설경구도 나왔던 ㅋ 암튼 이 당시 왜는 백제의 한 부류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당시 왜의 왕족, 귀족은 온통 백제와 혼혈이였으니까요 ㅎㅎ
@@Chokodal 백제와 혼혈은 당연히 많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고구려 신라 가야 등등 다 있었다고도 생각해야함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각 문화가 정말 대단! 의외로 한반도가 뭔가 살기 좋은 곳인듯
근데 법륭사 몽전이.. 아들 위덕왕이 일본가서 성왕을 본뜬 구세관음상을 만든건가요?
역시 첩보가 중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인들의 후손들이 현재의 일본 이예요.
32:32 여기 박사가 말한, 신라가 한강 하류먹는걸 묵인하는 조건으로 고구려로 북진금지하는 밀약을 맺었다는 기록이 어디에 있나요?
백제가 여미타래불상을 일본에 건네준 것도 고구려를 넘으려는 성왕의 계획의 일부였군요.
백제유물은 수준이 다르네 조선고려 후대의 것들을 봐도 백제꺼랑 비교하면 한숨나옴
신랑 백제 고구려 유물이 조선시대보다 정교 화려
09:18 개로왕 죽음과 한성 함락은 457년이 아니라 475년 아닌가요
저 불상은 열도에 가서 그나마 전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있었으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보장이 없었겠지.
백제 후손이 일본 천왕
현제일본인 삼분의일은 백제 신라인이다 개중에는고구려인도있다 원래일본인은 키가작은 남방민족이다 우리국민들은 이점알아야할것이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한심하게 사네
신라넘들 참 치사하네
김춘추의 조상이 흉노에요
통수까지 여전하조ㅡ
어쩌겠냐. 현시대를 사는 우리가 신라의 후예인것을...
제일 궁금한게 성왕이 천명한 국호 "남부여"가 언제까지 불렸는지 제일 알고 싶습니다.
23:35 🚩🚩🚩🚩4개국 연합군 구성😲
백제 왕족성씨가 부여씨라니.. 더욱 놀랍죠
@@itmasspeaker684 아니요. 전혀 안 놀랍습니다.
원래 어릴때부터 알고 있었으니깐요... 국호가 '남부여'인게 더 놀랍고 저 국호가 언제까지 불렸는지 알고 싶습니다.🤔
고대 한민족 국가들의 인구와 군사력
아주 지혜로운 왕이셨군요.
일본서기를 인용을 많이 한 영상인데 백제가 한강유역과 평양을 먹은 후에 두 두땅을 그냥 내버려두었고 비어있는 한강유역을 신라가 가져갔다는 기록은 왜 인용 안했을까요
여기 글마다 망언을 다는 놈이 있네......한글로 저런 망언을 들으니 참 안쓰럽다
그 인간 이전 영상들에도 있음ㅋㅋㅋ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찔리긴 하나보네ㅋㅋㅋ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아오 지가 뭘 틀렸는지도 모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님아 진짜로 역사를 아직 안배우신거임 아니면 못배우신거임...... 백제는 중국사가 아니고 백제만 일본을 도와준건 아니지만 삼국중 가장 일본과 교류를 많이 하며 가까웠기에 영향을 쉽게 끼칠수있었던거지... 그렇기에 백제가 멸망할때 일본에서 군대를 보내 도와줄려고 했던거였고.... 백제가 일본한테 선물로 준 유물들을 일본이 아직도 국보로 지정한거 보면.....딱 알수있을텐데.....뭐만 하면 일본서기 중국사 이지랄하네
@@klous12 스스로 아리아계 백인이라고 믿는 인간한테 뭘 바람?
@@고구려백제중국사들 ㅋㅋㅋㅋㅋㅋㅋ 말이안통하는구나 ㅉㅉ
왕릉인데., 배우와 진행자가 자 정도까지 밟아도 되는지.. 저의 상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의 상식이 맞는지 아닌지 아시는 분은
답글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의성을 가지고 말뚝이라도 박았냥~~ 유난도 참..
일본은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발해 고려 등에 식민지였다
찾아야할 고토다
일본은 고대 백제 신하국?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댓글을 무슨 천개씩이나 달면서
중국인?? 소분홍이냐?
그냥 한몸통으로 보는게 맞을듯
개로왕의 손자일지 모르는 성왕
신라는 뭐라설명해야할까... 고구려 900년 백제 700년을 나당 연합으로 모조리 쓸어담아버리고 남긴건 무엇일까... 식민사관에 찌들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라봐야하는가?
@@김영철-p7v 그래서 반도만한 생각을 하시는구만.. 대륙을 집어삼키고 호령했던 고구려와 백제는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소?
한반도에서 세워진나라들중에서 꼰대로 엮여서 나라 자멸을 초래한 이씨조선하나면 됩니다
@@김영철-p7v 당신같은 식민사관에 찌든 사람이랑은 이야기가 안되겠다 책이나 더 보고오세요
@@김영철-p7v 그럼 당신은 무슨근거로 그딴논리를 주입시키는거요? 신라의 후예를 자처한 청나라가 조선에게 삼전도 굴욕을 선사해? 그럼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조선을 상국으로 모셔야지 신라인 주특기인 뒤통수 치기의 후예인가 당신은?
@@김영철-p7v 신당서를 읽고와라 거기에 그렇게 쓰여있다 고씨가 나라를세운게 900년인데 80의 노장에게 무너지는구나 라고 알겠냐 그리고 더이상 왈가 왈부 하지마라 사학에서도 고구려역사를 900년으로 인정한다 북부여가 고구려의 전신이기 때문이다. 더는 거론치 말거라
@동해안오징어 니한테 그소리 안나오나했다 역사론에서 좀 사라지고 마주치지 말자
왕실이 혈연관계가 아닌데 군사원조를 10회 이상 해준다고?
그것도 한번 올 때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바다건너로
몽골의 제후국 부마국이 되어서도 군사원조는 극히 한정적이었다 전쟁광 몽골인데도
케이비에스 기묘한역사
이정도면 일본이 백제아닌가요?!!
중국,왜국 일본인들 작성한 고대증거는 대부분 한국을 비하하는 거짖말 역사이다,
사이비증거 믿지말자
고대한국인 왜,일재와 싸운증거가 역사이다,
잃어버린 왕국!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당신은 조선족입니까?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만리장성은 홍산문화아래쪽입니까? 동이족은 중국한족과 무관합니까?
@@고구려백제중국사들 고구려에서 뿌리로 온조 및 100명이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하여 백제구만....뭔 또 만물중국설이야.....ㅋㅋ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발해 역사를 우기는 중국인은 봤어도 백제를 지내꺼라하는건 내가 첨 본다........신뢰가 있는 바보가 무섭다더니....
왕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좋을지 모르지만 민중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역사에 민중은 없고 오직 왕의 행적만 있다. 고대사로 갈수록 이런 시각이 두드러지는데 결코 바람직한 역사관은 아니다. 미시사 역사 연구의 전통이 미천한 한국 역사분야의 한계이다.
현대의 시각에 맞추면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건 당신 생각이고 그런시각으로 역사를 본다면 다 미천한 역사야
우리나라에서 확인되거나 발굴조사된 전방후원분의 외형과 내부구조, 특히 방패형 주구는도 당시 일본열도 전방후원분에서 유행하던 것과 유사하며, 원통형토기도 하니와〔埴輪〕로 불리는 일본 고유의 토기형태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른바 왜계(倭系)고분의 요소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돌방의 경우 북큐슈〔北九州〕에서 서일본은 물론 나중에는 동일본까지 파급되었던 소위 북큐슈형〔北九州型〕의 축조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라남도지역의 전방후원분은 북큐슈 고분양식을 자체적으로 답습한 묘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집단을 의미하는 하위 고분군을 형성하지 않은 전방후원분의 출토유물은 대다수가 전라남도 지역의 산물이다.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과 판이한 이런 점들은 피장자가 그 지역에 살았던 토착 유력자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새로운 묘제의 파급시기에 전라남도 해안지역의 일부 토착 유력자들은 이미 그 이전에 한반도의 중부지방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큐슈 돌방의 발전형과 일본 고유의 전방후원형 봉분을 도입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전라남도 해안지역은 지리적으로도 극동아시아 물류의 중요 거점지대로 보인다. 즉, 중국대륙의 연안지역에서 한반도 서·남해안을 거쳐 일본 북큐슈 연안에 이르고 거기서 다시 일본열도 각지로 통한다. 따라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물류와 거기에 수반된 문화 흐름의 가장 중요한 거점지역 중의 하나가 서·남해안을 가르는 영산강 하구 중심의 전라남도의 해안지역이고, 다른 하나가 남해안에서 바다 건너 일본열도의 입구인 북큐슈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일대와 유사한 지리적 환경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주지하듯이 주로 이 해로를 통해 한반도의 문물이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화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국제적 문물 교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의 고분문화도 어느 정도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다. 남해안지역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일본 야요이〔彌生〕유적도 그 중의 하나이다.전방후원분은 당시 한반도 남부와 일본 북큐슈 사이의 고분문화 교류 차원과 더불어 종래 독특하게 독널 고총을 축조했던 것처럼 전라남도지역의 국제적인 개방성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국제적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백제보고 일본 제후국이였다는 헛소리 지껄이는 놈은 무시해주세요 ㅋㅋ
@@고구려백제중국사들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보고도 ㅇㅈㄹ ㅋㅋㅋ
전라도가 왜국이였으면 왜 가장 임진왜란,구한말,일제 초기때 항쟁을 심하게했을까? 일본서기? 이것좀 읽어봐
namu.wiki/w/일본서기#s-5
5번째 문단
고구려가 선비족이랑은 초기 부터 긴밀한 사이였다는 것을 알지? 유리명왕 시절부터
m.egloos.zum.com/jyszzz/v/4120857
www.sisa-news.com/mobile/article.html?no=108952
www.me.go.kr/home/web/board/read.do;jsessionid=gRoA3hQEJgKUml2qGOxtWHgL.mehome1?pagerOffset=9970&maxPageItems=10&maxIndexPages=10&searchKey=&searchValue=&menuId=&orgCd=&boardMasterId=2&boardCategoryId=&boardId=151250&decorator=
noza.tistory.com/m/98
kookminnews.bstorm.co.kr/m/view.jsp?ncd=2848
labongbong.tistory.com/m/712
www.google.co.kr/amp/s/mnews.joins.com/amparticle/5182936
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4/2014032402745.html
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bronckhorst&logNo=220957392134
m.blog.daum.net/pance73/14366
m.egloos.zum.com/lyuen/v/5577997
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eunayoon715&logNo=220854100896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68606
m.blog.daum.net/shanghaicrab/9304327
m.egloos.zum.com/explain/v/5356359
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7853
www.palhae.org/gnubrd4/bbs/board.php?bo_table=pds2&wr_id=265&sfl=&stx=&sst=wr_hit&sod=desc&sop=and&page=2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5997
@@고구려백제중국사들 ㅋㅋㅋ ㅋㅋㅋㅋㅋㅋ 백제 초기 무덤 양식이 고구려랑 똑같아.
결국 고구려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 남조랑 교류 긴밀하게 했다는 거잖아 ㅋㅋ
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research.html?dbGubun=SD&category=Research&m201_id=10015441
demo.egloos.com/m/2363699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415115
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2826429
mahan.wonkwang.ac.kr/culture/2014/1/1/3/c.htm
contents.history.go.kr/data/pdf/nh/nh_006_0040.pdf?
@@고구려백제중국사들 ㅋㅋㅋ 그거 추측일 뿐인데 ㅋㅋ
ko.m.wikipedia.org/wiki/천황_백제인설
m.blog.naver.com/eunayoon715/221182554963
난 이상하게 댓글 출처 남기고 하는데 왜 이렇게 서버에 저장되지 않지? ㅠㅠ 유튜브 서버관리 못하네 ㅠㅠ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어니 내가 지금 요서 지방 말했냐? 이거 진짜 ㅋㅋ 야 니 말로 하면 우리나라가 이정도인데 한나라 시절 부터 침략에 시달린 라오스,베트남은 할말도 없겠네 ㅋㅋ
고구려가 선비족 정벌하고 나서 교류 관계를 유리왕 때부터 돈독하게 했다고 했어 그리고 애사당초 지금 만주지방에 소수민족 많은 거보면 그당시 고구려도 소수의 실위,말갈,거란,돌궐,해,한족, 대다수의 부여인으로 구성된것도 모르고 마음에 안들고 팩폭 먹이면 환빠로 몰고가는 놈한테 무슨 지능이 필요할까 ㅋㅋ
어 잠만 이거 논리 수준 보니까 넷지오에서 뻘짓한것중 하나인 성경 소돔과 고모라 재연 영상에서 기독교,유대교,이슬람의 신인 하나님을 외계인이로 치부하고 팩폭먹으니까 ㅈㄹ하고 토깐 논리가 답이 없는 김국빈 하고 똑같네?
와우껌
🙏☸
지금 kbs는 모함? 역사공부 안함?
통수의 신라
일본 서기를 집필한 오노 야스마로는 백제의 유민 태안 만려 였다. 일본 서기가 반도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한 이유다.
고마사원, 호류지
반도에 저런 절 양식이
존재한거 본적있나? ㅋㅋㅋ
풍납토성?
아하
댓글에 몇몇 판타지 작가들이 있네. 일본서기를 끄내지를 않나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삼국사기는 고려시대때 일연이 쓴건데....;; 그 당시에 편찬되었다고 그 당시가 삼국시대가 아닌건데....
생김새가..일본 천황가랑 비슷해..하관에 살많은거..!!?? 충격. 그러나 천황 키가작든데.ㅡ일본피가 섰여서임??
백제 성왕은 결국 죽어서 일본인이 되었군요.
이제 이도학 선생
신라진흥왕의 뒤통수.
아 깜짝이야
19:21쯤에 갑자기 김종필총재가 나오네 !
자기 사랑하는 집갔다고 말목 벤 누구보단 낮다.
개처량한 세상.. 피 맺히는 음악..ㅋ
신라의 백제 성왕 배신...당시 경주 김씨 조상 김알지가 흉노족이었담서?
성왕의 상은 구세관음이야...바보천치학자들은 아직도 백제 불교릂이해를 못하네..가당 중요한건 11면관음
가라 안라 다라 신라 쿠다라 임라 안라 탐라 그리고 일본고대수도 나라
한국문화재 다 도려도.
일본 두곳다 한국불상을 모시는거네요
하지만 무모하게 50명만 데리고 가다 뒤져버린 멍청한 왕
일본서기에 보면 전투상황이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져 있는데 적진 깊숙이 진격한 태자의 군대와 연합해서 신라군의 본진으로 들어갈려다가 당한걸로 나옴.
@@고구려백제중국사들 너는 해석하는게 너무 단편적이고 어거지야. 수준 낮어.
일본은 약탈자에 불과하다.
이삼백년전 조상이 누군인지도 잘 모르는것들이 천년도 훨씬 넘은 백제 고구려 찾는거 보면 웃겨요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정신뵹자 쉐키야, 이거나 쳐 봐라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 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古朝鲜语 | 全世界条目
m2.allhistory.com/detail/5910639055b542257a033d98
古朝鮮語:古朝鮮語,亦作古代韓國語(고대 한국어),指的是古朝鮮到高麗時 -百科知識中文網
www.easyatm.com.tw/wiki/%E5%8F%A4%E6%9C%9D%E9%AE%AE%E8%AA%9E
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 위략 >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 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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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 위략 >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mathamour 고생하시네요 근데 저 인간 댓글 안읽음. 지 할말만하고 가끔 부계정 들고와서 헛소리도 하니 조심해요.
@폭행몬스터 맞습니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헛소리하지 말고 역사책 중국어 원문을 가져와라 ㅋㅋㅋㅋㅋㅋㅋㅋ 으하하
배신전문 신라에게 뒷통수는 못참지.
낄낄
法隆寺の문서 다르게 해석했나본데 구세관음상은 聖徳太子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라는데 백제왕이 아닌데요…. 아주 역사왜곡이 심하다. 회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괜찮은데 아무거나 좋은 말만 믿고 그게 사실인듯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안 좋습니다. 그런 가능성도 있다, 이런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이 나레이션하는 여자 목소리 니오는 편들
누가 피디인지 몰라도 상당히 무능해 보인다
음악만 잔뜩 쳐 넣어서 정신없음
예나 지금이나 협잡꾼들때문에 백제 고구려는 정통우리민족이다 신라는 글쎄~~떼놈들하고
〈魏略〉: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인 위략 에 따르면
고구려(훗날 고려로 개명함) 신라 백제 3국은 (고)조선의 후예이며, 모두 같은 언어를 썼다.
위 문장은 아래 중국어로 써 있는 곳이 출처.
古朝鲜语 | 全世界条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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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語:古朝鮮語,亦作古代韓國語(고대 한국어),指的是古朝鮮到高麗時 -百科知識中文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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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퍼 온 글입니다.
고구리 백제 신라 삼국이 이민족 언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 위략 >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고구려백제중국사들 이쯤되면 그냥 대가리 터진 악질 테러리스트네ㅋㅋㅋㅋ
이미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의 속국인것이라는게 밝혀진 세상~
확실히 애니든 겜이든 나라든 문화든 영화든 외국 여자가 굿임 나라든 사람이든 모든게 외국만이 멀쩡하고 답임 제대로 멀쩡하게 사람답게 살려면 외국여자랑 곌혼해서 외국가서사는게 제일임
신라가 저주스럽고 증오하면 신라말 쓰지 마라. 우리가 쓰는 말은 신라말이다
빨리 일본의 뿌리는 고구려와 백제.
그러므로 일본어를 배워 일본 문장으로 써라.
신라는 스스로를 훈족이라고 했다
한반도 민족과 상관 없는 저 중국 윗쪽에서 배타오 온 오랑캐 민족이지 너희 집으로 가라
@@성이름-c3k3i 일본말 배워서 써라. 신라 말 쓰지 말고.
@@성이름-c3k3i 고구려,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여 즉 지금 몽골 지역에서 남하하여 내려온 이주민. 마한? 마한이 토착인 이라는 증거도 없지. 누구보고 나가라 간섭하는거냐? 홍어 선생,
안타깝다 괜히 깦치다 못잘린왕.
일본의 신사는 어떤
신을 모시고 계십니까?
일본의 축제는 어떤일을 기념합니까?
일본의 국보는 어느나라 물건입니까?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신사는?
일본 민족은 어디서 왔습니까?
일본 욍실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일본의 근본은 한국 아닙니까?
욍실 보물창고 정찬원 보물을 봅시다?
일본의 토착민 아이노족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백강 전투에 참여한 병사는?
직시하고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냅시다!
사이좋은 나라가 되려고 해도 일본이 과거사 인정과 반성따위 안하고 매년 왜곡을 쳐하고 부정하는데. 가능하다고 보는거? 일본이 먼저 제대로 사과와 함께 인정해야 미래로 같이 가지.
한반도 맨날 침략한게..천황가의 고향땅에 돌아가서 보복하려는거였던거아냐?? 일본인은 무슨죄야..한반도 사람들은 무슨죄고..신라도 고려도 고구려도 망했는데..일본 천황가만 과거에살거있구나..
과거사를 가장 반성하고 전쟁은 있어선 안된다며 2차 세계대전때 일본군의 참상을 인정한게 전 일왕인데 무슨 소리여 이게~~
그리고 임진왜란은 천황가와는 상관도 없는 일이고 정한론도 천황이 아니라 일본의 개혁파들이 주도했던건데 여기서 천황이 왜나와??
이 불상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항상 일본 거랑 관계가 있듯 만드는지 역사 왜곡하지말라
일본은 일본 한국은 한국이다 제발 한국따위를 일본에 비비지마
신라처럼 살아야지..의리고 나발이고 내가 중요하지 순진하면 안되지. 지금 국짐처럼.ㅋㅋㅋ
대일본의 영향이 엄청나구나
역시 일본은 대국이다
백제인들은 일본에서 온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에이 이바보야 역사공부좀해라 우리삼국은 모두북방민족이야천치야 과거나 현재나 우리민족은 서로갈라져서 싸우다이모양이꼴이된것이다 현재중국의땅삼분의이가우리선조들의영토이다 중국에 다빼앗기고지금남아있는영토마져반으로갈나져일부는북으로그나머지마저삼분의일로싸우고있으니통탄할일이다잘못하면적화흡수될수도있다 역사공부좀해라
@@박현수-h9o 화낼 필요없습니다. 저사람들이 저렇게 역사 왜곡하는 이유는 우리 영토를 뺏았을려는 의도 우리도 이용하면됨 중국이 대한민국과 한나라면 대한민국이 미국의 힘을 이용해서 나중에 중국을 점령해도 저들은 잘못되었다고 할수 없음 중국이라는 영토를 가지고 몇천년동안 중국땅의 서쪽에 사는 한족과 동쪽에 사는 동이족이 수천년을 싸웠고 이제 우리가 점령하면 우리땅이 되는거임
@@고구려백제중국사들
고구려 백제는 부여에서 나온 나라고
신라는 중국 오랑캐 훈족이야
백제 왕씨가 부여씨인데...뭔소리야...부여에서 나온 고구려 주몽아들 온조.비류가 한강에 세웠고..일본으로 진출..중국남조랑은 지리적으로 가까와 교류한거고 .게다가..마한지역이 고조선 준왕이 이민온거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