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수도에서 나오는 '수부' 찍힌 기와가 익산에서 발견되고, 왕궁터와 무왕릉, 미륵사가 있고... 익산 천도설이 결코 근거없는 말은 아닙니다. 옮길까 생각은 해본 것일 수도 있고, 옮기려다 실패한 것일 수도 있고, 제2수도였을 수도 있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면 좋겠네요.
정림사지 석탑 꽤 크더라구요 석탑에 당나라 장수가 새긴 백제 정복했다 대충 이런게 있습니다 조롱대는 듯한 익산 미륵사지는 쇠퇴해가는 백제를 일으키기 위한 무왕 승부수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왕은 왕족이 아닌 익산쪽 지방 호족 세력이었기에 먼가의 명분같은게 필요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국민들을 다시 결속시키기 위한 것 아니였나 싶습니다
호족은 아니라 '왕족은 맞는데 왕족인 부여씨의 방계가문이고, 그만큼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가 현재의 학계 유력 추정입니다. 조카인 복신의 성씨가 귀실씨라서 정황 상 귀실씨였다가 왕이 되면서 다시 부여씨로 환원된거 아니냐는 설을 본 적 있네요.
귀갑면이라 하지 말고 치우상이라고 합시다. 지금가지 내려온 모든 도깨비 면은 치우 천제 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도는 지금 부르고 잇는 지명을 모두 우리 이름으로 불러야 합니다. 저희 동네만 해도 뱀골(뱅골)이라고 지금도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 계서는 뱅골이라고 부르는데. 일제 시대에 한자식으로 바꿔서 불럿던 이름은 사동.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백제가 반도에만 있었다는 일제의 역사 왜곡과 강단의 식민사학자들 때문에 백제(반도땅의 백제)가 중국(중국땅의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안돼는 해설이나 들어야하니.. 중국얘들이 동북공정에 성공하면 우리 후손들은 영원히 그런줄알겠지요. 아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우리가 이웃나라인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려는게 결코 아닙니다. 중국과 우리는 고대부터 모계제/부계제적 혈연의 뿌리와 문화의 원형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혈연적 문화적으로 확연히 갈리진 이후로도 아다시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중요한건 우리가 처음부터 이 반도에만 정주하며 대륙의 중국과 교류한 정도는 아니란 점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도 대륙의 지분을 가지고(더 고대에는 주인으로서) 그들과 치열하게 다투고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지금은 쪼그라들어 한반도 그것도 좁은 남쪽땅으로 밀려나 웅크리고 있다고해서, 우리의 뿌리를 반도에만 국한하고 찾으려는 것은 우매한 짓이고 후손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겠지요. ※ 밑에 환단고기를 폄하하시는 분들의 흔한 오해는, 진서/위서 여부를 떠나 그것이 우리 반도인만의 역사인양(국뽕?)하는 일부 주장 때문일텐데..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북아인, 유라시아인의 근원과 역사에 대해 의미심장한 기록을 담은 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시면, 이를 편협하게 배척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손경석-s9h 비유를 한다면 마치 위서인 환단고기, 화랑세기에 근거로 유사사학자가 자기 주장을 정설처럼 말하는 것과 같은 가설도 아니고 그냥 잡설입니다. 백제가 중국대륙에 진출한 건 중국의 문헌기록(신 당서였나 뭐였나) 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어느정도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점유했는지, 그게 신라방같은 유형의 세력같은건지, 영토적 개념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다,무엇보다도 본백제가 중국에 있었으면 고고학적인 유물이 중국에서 쏟아져야하고 문헌사료인 여러 역사서에서도 더많이 언급되었어야하며, 그리고 왕의 무덤도 중국에 있어야 합니다. 문헌기록과 다른 문헌기록,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이 교차검증되어 역사지. 유튜브나 유사사학자가 쓴 추리소설같은 책보고 주장하는게 역사가 아닙니다.
화면에 참 이쁘게 잘담으셧네요~연주도 좋고 백제문화는 찬란했고 빛났다
첼로댁 조윤경님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멋지네요~
관리인께서 말씀하시는데....저까지 뿌듯하네요~^^
너무나 행복한 모습애.....
존경합니다~👍
사비성이 7일간 불탔다면 탄화층이 부여에서 나와야 되는것 아닌가? 왜 안나오지?
원하는 흔적이나 유적, 유물이 원하는데로 나옴????
군창터~ 나옴~
유물들이 이쁘네요
너무 빠르게 발굴하지만 않았으면 더 많은 유물을 볼수있었을텐데 안타깝네요 ..
14:03 교수님 손석구 닮았어!!
27초 중국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내재화한게 아니라 백제가 중국에 진출해서 뿌리를 내리고 중국 문화의 일부분을 만든거야 이양반아
차이나 동해안지역역시 백제의 영토였음이 차이나 고대 사료기록으로 증명됩니다. 차이나 영향이 아니라 백제문화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0:49 사택적덕이라고 자막은 잘 적혀있는데 정작 나레이션은 사택덕적이라고.....
대한민국 🇰🇷 홧이팅! 응원합니다
재밌다 ㅋㅋㅋ
중국에 백제영토가 있어고, 그래서 왕궁터가 구조가 같다.
근데 거기서 첼로는 왜
미륵사지석탑은 7층탑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9층탑으로 만들었으니 가운데 목조탑은 9층탑이 아니라 12층탑 또는 13층탑으로 만들어야죠.
삼국사기에 백제와 신라가 대륙에 있었다는데 궂이 아니라는 이유는 머고?
전라북도 익산의 미륵사지에서 사리장엄이나왔다 , 천년의 귀족국가 였던 백가제해 였다,
다사라지고 약탈당해서 현재 남아있는 유산이 별로없는게 너무안타까윤...
우리 백제가 중원에다
문화를 한수 가르쳐주었지요.
고대한류였지요
보셨습니까?
지나에게도 다뉴세문경 있나요? 신라삼보 장육존상은요?
보셨군요
소중한 문화제에 철저한 관리를 부탁드립니다 ㅠ
문화의 힘
공주 무녕왕릉에서 매우 가까운 천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 보안의 이유로 인해
혼자서 갈 수가 없으니 매우 답답합니다.
버스롤 타야 하고 위치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지요.
백제인의 후예를 자처하는 제가
공주를 가보지도 못하다니,
말도 안되지요.
공주는 웅진성이 아닙니다
책보고 유튜브 함 보세요
박씨가 무슨 백제의 후예입니까;
@@손경석-s9h 일부 유사사학자가 충분한 고고학적 뒷받침 없이 주장하는 걸 정설처럼 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웅진이 공주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보다, 웅진이 공주가 맞다는게 근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정설인 겁니다.
무령왕릉에 못 들어가는 건 보안 때문이 아니라 문화재 보호 때문입니다. 실물 복제품은 멀쩡히 들어갈 수 있는데 뭔 소리하십니까? 저도 천안사람인데 공주 바람 쐬러도 가고 운전연수 받을 때도 천안 두정동에서 공주까지 가봤습니다. 내가 아는 천안이 아닌가?
이상한 말씀.
무녕왕릉 모형릉 잘 전시되어 있어 언제든 가서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의지가 없는 분.
익산이 백제의 수도였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당연 아니지요
책보고 유트브 한번 보세요
아니오 ㅋ 옮길까 생각은 해본 듯 ㅋ
무왕이 천도를 계획한 것 까진 맞는 것 같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경석-s9h 학계에서 아직 논쟁 중인 것을 당연 아니라고 단정하듯 주장. '나는 다 안다'는 듯이 가르치려는 거만한 어투. 두 요소를 보며 '환빠인가?' 싶었는데... 다른 댓글 보니 예상이 틀리지 않았네요ㅎ
백제 수도에서 나오는 '수부' 찍힌 기와가 익산에서 발견되고, 왕궁터와 무왕릉, 미륵사가 있고... 익산 천도설이 결코 근거없는 말은 아닙니다. 옮길까 생각은 해본 것일 수도 있고, 옮기려다 실패한 것일 수도 있고, 제2수도였을 수도 있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면 좋겠네요.
현재 북경과 산동반도 일대가 백제국이다
삼국사기 열전편 최치원 전을 보면 백제가 남으로는 오,월을 침범했고 북으로는 유연제노를 진동 했다고 했으니 지금의 절강성에서 북경까지 길게 차지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hyunyoon8952 우리역사를 반도안으로만 하려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인 조선사편수회를 타파하고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림사지 석탑 꽤 크더라구요
석탑에 당나라 장수가 새긴 백제 정복했다 대충 이런게 있습니다 조롱대는 듯한
익산 미륵사지는 쇠퇴해가는 백제를 일으키기 위한 무왕 승부수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왕은 왕족이 아닌 익산쪽 지방 호족 세력이었기에 먼가의 명분같은게 필요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국민들을 다시 결속시키기 위한 것 아니였나 싶습니다
영상 다 보기전에 영상달았는데 뒤에 교수님들이 설명해주시네요 ㅎ
호족은 아니라 '왕족은 맞는데 왕족인 부여씨의 방계가문이고, 그만큼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가 현재의 학계 유력 추정입니다.
조카인 복신의 성씨가 귀실씨라서 정황 상 귀실씨였다가 왕이 되면서 다시 부여씨로 환원된거 아니냐는 설을 본 적 있네요.
부여에 살아남은 백제 사찰이 한개가 없네
나레이션 보다 배경음악 이나 인터뷰 소리가 너무 커서 신경거슬리고 듯기싫어요
귀갑면이라 하지 말고 치우상이라고 합시다.
지금가지 내려온 모든 도깨비 면은 치우 천제 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도는 지금 부르고 잇는 지명을 모두 우리 이름으로 불러야 합니다.
저희 동네만 해도 뱀골(뱅골)이라고 지금도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 계서는 뱅골이라고 부르는데.
일제 시대에 한자식으로 바꿔서 불럿던 이름은 사동.
일제와 프랑스 영국 미국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보물들 다 돌려줘라 너희가사람맞니????
일본이 36년간 도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었던 무령왕능은 기적입니다.…♡
송산리 고분과 고분사이에 있어서 도굴을 피할수 있었다 하네요..다만 무덤 입구를 벽돌로 막아놨는데 상단부분이 좀 조잡해서 한번정도 침입한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서는 역사인식은 다가서는 통일로가는 지름길이다 바로서는 역사인식이 북남 통일하게만든다 !
학자라는 인간들이 무슨 문화재만 연구했다 하면 어디서 왔나 중국 어디를 본받았나 하는 생각만 하니… 세계 최초 기술이 그렇게 많은데 독창적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지. 금관도 북방 유목민한테서 유래되었다는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이니 말해 무엇하랴만…
수도를 익산으로 옮기려다 나라가 기울어 포기했나....
백제문화는 고구려, 신라보다 화려했음.
물론 왕족, 귀족층에 해당되겠지.
익산은 왕궁과 제석사, 미륵사 사리 봉양기등 왕궁의 사찰,각종 기록, 쌍릉에서 발견된 무왕의 유구~~~ 그래도 수도가 아니고??? 도데체 이 처럼 확실한게 어딨는데???
💝💝💖💖👍👍👍
고구려가 없었으면 백제,신라 가야가 있었을까요? ~~~영상 나름 잘 만들었는데.... 다소 과장은 있는 것 같다
뭔 엉뚱한 말씀?
고구려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는데.. 왜?
13:24 "중국 영향으로 밝혀졌다."
그럴리가. 대륙 백제의 흔적이다.
경향신문
'백제의 요서경략' 설파하면 '사이비' '국뽕'인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2021.08.10. 이기환 기자
백제를 소개하며 첼로?
어떻게 당나라가 배를타고 백제를 신라와함께 쳐들어올수있나요? 배가많았나요?
네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백제가 반도에만 있었다는 일제의 역사 왜곡과 강단의 식민사학자들 때문에 백제(반도땅의 백제)가 중국(중국땅의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안돼는 해설이나 들어야하니.. 중국얘들이 동북공정에 성공하면 우리 후손들은 영원히 그런줄알겠지요. 아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환뽕,국뽕,일베.
대한민국 3대 버러지들.
환빠들과 같이 말하기도 싫지만 제발 깨어나세요.
중국애들이 하는 역사왜곡과 뭐가 다릅니까.
우리가 이웃나라인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려는게 결코 아닙니다. 중국과 우리는 고대부터 모계제/부계제적 혈연의 뿌리와 문화의 원형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혈연적 문화적으로 확연히 갈리진 이후로도 아다시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중요한건 우리가 처음부터 이 반도에만 정주하며 대륙의 중국과 교류한 정도는 아니란 점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도 대륙의 지분을 가지고(더 고대에는 주인으로서) 그들과 치열하게 다투고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지금은 쪼그라들어 한반도 그것도 좁은 남쪽땅으로 밀려나 웅크리고 있다고해서, 우리의 뿌리를 반도에만 국한하고 찾으려는 것은 우매한 짓이고 후손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겠지요. ※ 밑에 환단고기를 폄하하시는 분들의 흔한 오해는, 진서/위서 여부를 떠나 그것이 우리 반도인만의 역사인양(국뽕?)하는 일부 주장 때문일텐데..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북아인, 유라시아인의 근원과 역사에 대해 의미심장한 기록을 담은 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시면, 이를 편협하게 배척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scarssiel 근거도 없는 이야기 길게 늘여쓰지말고 확실한 팩트만 말하쇼.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건 팩트고 위서를 근거로 논하면서 편협하게 보지말라니 이게 말입니까.
역사왜곡이지.
당신 혼자 그렇게 믿고 사세요.
곡학아세하지 마시고.
@@gemem33근거들이야 쌘것 같은데... 같은 유투브 상에 있으니 관심있으면 한번 보슈. 하필 이 문제에 꼽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유투버도 참 안됐다 싶긴한데^^ ruclips.net/video/9Ez1Kl477c4/видео.html
세계인을 사로잡아!? 세계인의 99.999% 는 백제가 무었인줄도 모른다. 난 많은 외속인들과 교류를 하지만 백제를 아는 외국인 단 한명도 못만났다.
와 목관은 딱봐도 일본식 같네요
무령왕릉 목관이 금송이라고 중국 절강성> 여기하고 일본 특정지역에서만 난다고 합니다.. 한국산이 아니라고....
한반도는 중국과 3천년간 싸워 온 나라임...!!!!!... 거슬리면...??????????
그리고 털렸지 ㅋㅋ
@@maple4801 양측간에 지도상 오차가 큼
사마.한자가 원본체가 아니고 왜 일본서기 한자형이에요?
백제는 한반도 아니에요.
동명ㅡ덕안ㅡ금련 등 지명을 5도독부 찾아보세요. 아직도 대륙에 있어요.
여긴 동신라땅이었어요.
신라의 유물과 같은 양식이네요.
ㄱ
뽕짝 먹방 그만좀하고 이런 프로그램 많이 만들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검이불루 화이불치나 읊조릴래. 바보들아. 백제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금동향로나 무녕왕의 왕관을 보라. 백제는 돌이라든가 구리라는 질료에 탑이라든가 향로라는 형상을 창조해 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끝없이 스스로의 목적을 높은 단계로 이행하였다.
고구려... 자리를 잘 못 잡았어... 마치, 다 덤벼...!!! 그래도, 내가 이긴다 같은 허풍스럼...???
목관이 뭔가 일본 느낌이.....조선시대는 아니고
중국문물을 받아들여…….??
개 소리 ..
백제가 그 곳에 있었음..!!
이게정답임 산동성 해안가쪽은 우리땅이엿음 백제의땅 우린 동이족의후손임 동쪽에사는 동이족
정딥입니다
뭔 백제가 그곳에 있어. 백제가 받아들인 거 맞지.
그럼 위례성은 어디에 있죠 아조씨..?
@@SIRAGI_JP
아가야 ..너무많은거알려하면 다친다.
그냥 너 답게 살어..
고구려 유적지 무덤은 엄청 많은데 백제는 너무 초라하긴 함 600년 버텼는데 호족 귀족들 왕릉도 많이 안 보임 도굴 했다고 해도 내부는 그대로 있었어야죠 무령왕릉 내부처럼 10개 넘게 있나요? 백제왕릉 터도 먼가 약해보이긴 함
중국에도 백제 뭐 뭐 이런 지명 엄청 많아요.. 저 한자 쓰는 중국 마을도 있구요.. 제가 보기엔 뭔가 분산되어 유적이 분포되어 있음..
@@황인철-v9j 조사 연구를 해야하는데 중국이 막고 있으니 힘들 거 같네요 분명 백제 유민들은 중국땅에 살았을 거 같음
백제 멸망시 의자왕과 배신한 장수를 비롯 약 1만5천 가량 백성들을 중국으로 데려가 중국에 정착시켰음
받기는뭘받어 백제가 주었다는생각이 없는가 백제가어떤 나라인데 우리역사는 꺼꾸로 봐야지 방송하는대로보면 바보지
말이 돼냐? 대국이었던 중국에게 백제가 문화를 줬을 거라는 게?
니가 원하는대로 역사가 바뀌진 않아...
그 마약쟁이들이?
사진작가들은 연출을 잘하네 자연 있는 그대로 찍어야지 MSG 엄청 치구만
안녕하세요 조선족이세요?
@@군만두씨-b9o 뭔 갑자기 조선족 타령?
그게 작가의 능력인데요 더 멋있게 찍는거;;
사람도 적절히 보정을해야 예쁘게 나오듯이 문화재도 적당히 보정을 해야 예쁘게 나옵니다.
사진이란게 원래 사기입니다.관광지도 사진보고 가면 그런 장면 볼수없어 실망합니다..
관이 일본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일본이 영향받은거겠죠? 근데 금송을 일본으로부터 받았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거죠? 아무튼 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관에 쓰인 금송이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이라고 합니다.
금송은 중국 동남부에도 있어요
근거도 있구요
일본게 아니에요
본백제는 중국이구요 거기서 온 나무립니다
책보고 유튜브 함 보세요
@@손경석-s9h 비유를 한다면 마치 위서인 환단고기, 화랑세기에 근거로 유사사학자가 자기 주장을 정설처럼 말하는 것과 같은 가설도 아니고 그냥 잡설입니다. 백제가 중국대륙에 진출한 건 중국의 문헌기록(신 당서였나 뭐였나) 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어느정도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점유했는지, 그게 신라방같은 유형의 세력같은건지, 영토적 개념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다,무엇보다도 본백제가 중국에 있었으면 고고학적인 유물이 중국에서 쏟아져야하고 문헌사료인 여러 역사서에서도 더많이 언급되었어야하며, 그리고 왕의 무덤도 중국에 있어야 합니다. 문헌기록과 다른 문헌기록,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이 교차검증되어 역사지. 유튜브나 유사사학자가 쓴 추리소설같은 책보고 주장하는게 역사가 아닙니다.
@@손경석-s9h 무슨 근거로??
무령왕릉 개 졸속 발굴인데 무슨놈의 발굴기념식이야 ㅋㅋ나 같음 쪽팔려서라도 기념식 참석 안한다
한국이 그런 대규모 발굴을 해본 적이 없었고 무령왕릉이 너무 기적적으로 발견된 게 큰 한이었죠. 신라 천마총은 제대로 발굴한 거 보면 당시에도 졸속발굴을 못할 건 아니었는데.
너도 중2때 너를 보면 쪽팔리듯 ㅋㅋ
익산 왕궁과 미륵사 목탑 등을 복원했으면 한다. 신라 황룡사 복원에 3000억이었다고 하니 그런 수준의 예산이면 될 것이라 본다. 미국 비행기 산다고 3조 원 지출하는 굥가야 잘 들으라. 이런 글 쓴다고 전라도 사람 운운 하지 말라. 나는 대구 사람이다.
졸속발굴로 역대 최악의 발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