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한 생각 🧠 e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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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15 дек 2024

Комментарии • 7

  • @장지영-m3r
    @장지영-m3r Месяц назад

    처음들어보는 피노키오 이야기이네요 다른관점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 @정용진-g7e
    @정용진-g7e 2 месяца назад

    안녕하세요
    잘 들었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류현선-y9j
    @류현선-y9j 2 месяца назад

    안녕하세요.
    교수님 강의 수강하고 있습니다.
    강의 볼 때마다 느끼는 생각은
    강의 영상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나 '시민의 권리'..등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느꼈습니다.
    수강생만 보기 아까운... 좋은 강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찾아보니 유튜브에 교수님 영상들이 많이 있네요

  • @나애국-asd
    @나애국-asd 4 месяца назад

    그렇네요.
    잘들었습니다.

  • @user-nexus3cc
    @user-nexus3cc 3 месяца назад

    안녕 하세요 ^^
    학교 수강생 입니다.
    과제물 해보려고 왔다가 링크 타고 오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 내용 잘 보고 잘 이해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

  • @범호김-x3b
    @범호김-x3b 3 месяца назад

    그래서....잡생각이네...그거라도 안하면...나라에서 다 해주냐?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떡햏겠냐...로빈슨은?

  • @ssh2322-s1y
    @ssh2322-s1y 4 месяца назад

    과연 우리가 과거에 흑인 노예매매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삼각무역이 행해지던 시기에 흑인은 백인과 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현대에는 인종차별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언뜻 보면 도덕적으로 현 인류가 진보하고 과거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권이 아니라 생명권으로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면 태어나자마자 죽는 수평아리나 좁은 우리에 갇혀 패닉증세를 보이는 동물원의 동물들 모두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희생당하고 있다.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보았던 관점과 현대의 우리가 동물들을 보는 관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흑인이나 동물들은 나와 동등한 생명이 아니라 사물로써 다루어지며 그것에 감수성을 가질 필요성을 떠올리지 못한다. 과거 백인들이 노예매매로부터 부를 취득해서 풍요를 누린 것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현대의 우리도 우리를 위해서 역지사지를 적용했을 때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포기를 비웃는 모든 것들과 싸워야 하지 않을까?
    피노키오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로빈슨크루소가 될 수는 없지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최저한의 생계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제패토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이웃집 양수기로 물을 퍼올리는 일 밖에 달리 수단이 없었다면 그것이라도 할 수 밖에 없었던 피노키오를 누가 어리석다고 비웃을 수 있을까? 당시 어린아이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동정할 만하고 그러한 환경을 제공한 고용주를 비난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마저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일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환경 또한 있지 않았을까?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켜도 일을 했던 이유는 그런 일자리라도 받아서 일을 할수 밖에 없을 만큼 대다수가 가난하고 헐벗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헐벗은 어리고 약한 어린이들과 힘 없는 노동자들에만 감수성을 가지면 고용주와 자본가들은 악덕과 착취로 포장된 블랙박스가 된다. 우리는 진정한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부분적인 인식을 전체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양쪽 혹은 그 이상의 입장을 이해하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기준이 인간의 '행동 동기'로 변수가 줄어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자본가는 얼마만큼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노동환경에 투자해야 하며 그만큼 자신의 이득을 줄여야 하는가? 고용주들이 모두 레미제라블의 마들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왕도정치'처럼 이상적인 바람이다. 천민자본주의 사회들이 극심한 빈부격차와 열악한 노동환경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찰해 보면 시스템이 인간의 정신을 결정짓는 고정된 틀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점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할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던데, 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들을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다루기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