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고구려가 통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기회는 이분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백제의 아신왕을 이겼을 때, 거기서 멈추지 말고 백제 남부를 모두 평정해서 멸망시켰다면 신라가 아무리 성장했어도 고구려는 못 이겼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되면 백제 출신의 명장들이 고구려 장수가 되어 신라를 무력이든 평화로든 흡수해버리는 게 가능했다 봅니다.
호태왕비문의 17세손에 대하여 1. 삼국사기를 근거로 보면 호태왕은 추모왕으로부터 13세손입니다. 1세 동명성왕, 2세 유리왕, 3세손 재사, 4세손 신대왕, 5세손 산상왕, 6세손 동천왕, 7세손 중천왕, 8세손 서천왕, 9세손 돌고, 10세손 미천왕, 11세손 고국원왕, 12세손 고국양왕, 13세손 광개토대왕 2.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 : 추모왕 이전 4대를 더해야 합니다.(고구려 건국을 200년 앞당김) 1세 해모수, 2세 고진, 3세 ?, 4세손 고모수, 5세손 추모왕,...... 17세손 호태왕 이 주장은 생물학적으로도 납득이 안 갑니다. 추모성왕 이전에 세대는 한 세대당 50년입니다. 어떻게 네 명 모두 50살이 돼서야 아들을 낳는단 말입니까? 환단고기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이건 좀 아닌 듯 합니다. 3. 고구리사초략을 근거로 보면 15세손입니다. 1세 추모성제(추모성왕), 2세 광명대제(유류왕), 3세손 대무신제(대주류왕), 4세손 신명선제(재사), 5세손 태조황제, 6세손 신대제, 7세손 산상대제, 8세손 동양대제(동천왕), 9세손 중천대제, 10세손 서천대제, 11세손 돌고, 12세손 미천대제, 13세손 고국원제, 14세손 소수림제, 15세손 영락대제(광개토대왕) 제가 생각하건데, 호태왕은 한단고기 추종자 분들의 주장과 달리 추모왕으로부터 17세손이 맞는 거 같습니다. 만일 해모수로부터 17세손이 맞다면 호태왕비문에 해모수의 행적이 나와야 합니다. 안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추모왕이 단군을 섬기고 연호를 다물이라고 했다고 하여 해모수 단군을 시조로 생각했다고 하는 건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호태왕비문에 추모왕이 시조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고 또한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 과정을 상당히 비중있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추모왕을 시조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봤을 때 호태왕은 추모왕으로부터 17세손이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대무신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왕위대수 기준으로 17대왕이라는 의미로 17세손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근거가 약하다고 봅니다. 또한 호태왕은 추모왕의 외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근거가 미약합니다. 17세손의 비밀을 풀려면 고구리사초략을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고구리사초략을 사서 읽어보니,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으로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과 왕후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등이 의문이 많이 갔습니다. 가령, 아들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왕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관념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좀더 읽어봐야겠습니다만 왕위세습이 근세조선처럼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고구려의 왕의계승은 장자상속 원칙보다는 왕후 집안의 세력이 더 중요했습니다. 호태왕은 소수림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소수림왕의 첫째 아들은 강입니다. 강은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담덕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선인이 됐습니다. 호태왕의 어머니는 천강태후입니다. 천강태후의 아버지는 천원공으로 고국원왕의 동생입니다. 천강태후는 소수림왕의 왕후일 때 담덕을 낳고, 소수림왕이 죽자 형사취수의 풍습에 따라 고국양왕의 아내가 됩니다. 천강의 아버지 천원공 집안은 당대 고구려의 최대 세력이었습니다. 소수림왕과 천강은 졸본에서 혼례를 치렀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려 혼례행렬이 수 리에 뻗쳤었다고 합니다. 호태왕은 천강태후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고구리사초략에서는 소수림왕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의 행적 도입부에 이 왕은 누구의 아들이고, 몇째이고(혹은 별자)라는 부분이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힙니다. 그러나 소수림왕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모친이 해씨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고국원왕기에는 도입부에 고국원왕의 황후는 전씨이고, 아들은 황태자 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국원왕 즉위 9년째인 339년에 "왕자 구부(소수림왕)가 태어났다. 모친은 해씨로 선인 해현의 딸이다"라는 구절이 갑자기 나타나고 이후의 행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태자"가 아니라 "왕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소수림왕이 고국원왕의 아들이었다면 "황후 해씨가 태자 구부를 낳앟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고국양왕 12년 342년조에 "춘정월, 해씨가 왕자 이련(고국양왕)을 낳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고국원왕이 해씨를 소후로 삼았다고 하고 있는데, 이후에는 고국원왕의 애초 황후였던 전씨와 황태자 완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건데, 17세손의 비밀은 고국원왕 사후 소수림왕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즉, 소수림왕은 고국원왕의 아들이 아니라 증손자뻘의 방계혈족이었던 것입니다. 고국원왕의 갑자스런 죽음은 왕위 계승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왕위 쟁탈 과정에서 당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였던 천원공(천강의 아버지, 소수림왕 장인)의 힘이 작용하여 소수림왕이 왕이 된 것은 아닐까요.? 적통이 아닌 방계혈통이 왕이 되자 새로운 율령을 반포(소수림왕3년, 373년)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불만이 가라앉지 않자 소수림왕의 아들 호태왕 대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벌여 내부 불만을 잠재우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대대적인 정복전쟁은 내부 반발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경제적 이득을 제공해 주었을 겁니다. 대대적인 정복전쟁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내부가 비로소 안정을 되찿고 소수림왕의 등극을 호태왕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한 정통성을 갖출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호태왕의 시호가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이라고 했던 것이고, 아버지 소수림왕의 등극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호태왕은 추모왕의 17세손이라는 사실을 비문에 새길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언제나오느 했는데 영상 매우 감명있게 잘봤습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정복 왕이인것 틀림없습니다 영상을보면서 느낀것이 광개토태왕때의 고구려 전선이 큰것도 저도 아이러니 했습니다 이걸통해 저는 두가지관점에서 그당시 상황을 제스스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알고있는 백제땅이 아닌 한반도외의 백제 즉 대륙백제설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 백제를 광개토왕이 침공하면 후연이 항상 뒷치기 해왔는데 말도 안되는 시간에 광개토왕이 반격을 행합니다 황해도에서 요동까지 엄청난 속도로 말이죠 그런즉슨 광개토왕은 한반도 백제와 싸운게 아니라 요서 경략설에 한가지였다 요서세력 백제와 싸웠을 가능성 둘째 고구려는 벽화에서 나와있듯이 수레의 신이 나올정도로 수레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그당시 선진국 수준으로 교통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있을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녕하세요 타운브라더입니다 영상에서 언급된 407년의 미스테리 전쟁 및 추천링크를 첨부드립니다. 현재 채널에 고구려역사 관련된 영상은 총 6개가있으며 타임라인 순서대로 정리해서 재생목록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업로드는 보통 금요일 오후 7시에 진행하고 이번주에 이어 다음주도 특별작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공지사항이나 요청사항은 채널의 커뮤니티 탭을 이용해 주세요. 고구려 관련 재생목록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_xiWEIbrVwA-Ij47dBloby 채널을 대표하는 전설급 명장들 관련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_cYWULC9bQTE6f6q623Rcx 정사삼국지 인물들 관련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_1OsY47-rPdydQUsUpW3HK 삼국지보다 재미있는 춘추전국시대이야기 관련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ue6R5y-Ug73M6Rcnr6O13 감사합니다.
고구려 병력의 절반이 북방이민족이었읍니다. 고구려는 3국중 가장 인구가 적었죠. 정벌하면 죽이는것이 아닌 세력권안에 두고 물물교환을 하며 우리의 세력안에 있으면 잘 살수 있다는 정책이죠. 그래서 그들은 충성하며 함께 싸웠죠. 고구려는 인구가 적다보니 일일이 통제를 못햬서 그렇치 전성기때는 북경근처까지도 세력권입니다. 정말 위대한 국가입니다. 기마와 수례로 전영토를 다스렸죠. 돌로 만든 도로가 전국주요지역에 다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은 무서워서 큰길들을 다 없애버렸는데.ㅎㅎ 교과서는 엉터리죠. 일제사관관료에 중국눈치...
고구려는 주둔군둬서 복속시키면 정복했다치는 연방제 그러니까 중앙집권인동시에 자치제도인 미국하고는 좀 차이가있는 중앙집권적 연방제국이라 부여나 가야 백제등 일단 복속시킨 국가에는 주(?)고구려군을 두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한거라서 고구려국가제도차원에서는 무슨소리야? 우린 이미 삼국통일 했는데?가 된거죠. 그래서 국가제도적으로 좀더 객관적으로 보면 통일고구려에 신라주가 멋대로 당나라랑연합해 반역해서 지들제도로 통일신라라 한 게되죠. 역사책에 수정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그부분이예요.
태왕의 유일한 실수라 한 부분은 좀... 약소국인 신라를 지배권 하에 두면서 타 국의 세력 확장을 막는게 더 이드김. 그리고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중국 왕조가 더더욱 가만히 두질 않고 결국 인해전술로 국가의 맥을 완전히 끊어놨을것..... 한반도에 국한되어 아주 큰 힘을 들여 정복할 가치까지는 없는 나라가 되어서 오히려 생존이 가능했던거....(땅덩이의 가치에 비해 워낙 험준한 산악지형이 계속 이어지는 땅이라 요새의 규모에 비해 공격군의 피해가 심하고 점령이 매우 어려움. (동시대의 이슬람쪽의 삐까뻔쩍한 3중성벽 성같은것보다 과거 한국의 산맥 지형에 겹겹이 쌓아진 작은 성 여러개가 규모 대비 방어력이 우수함. 지연전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이러면 보급 문제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 유목민족도 그래서 주요 요충지 점령은 거의 포기하고 큰성이나 작은성이 겹겹이 늘어진 지형이 없는 곳으로만 피해다니며 공격을 하고 다님. 그럼에도 지연전 효과로 본군의 진격속도가 늦자 유목민들의 유목철이 가까워져 철군...) 즉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넓은 곳에 퍼져있으면서 땅덩이 넓어 점령당하는것보다 신라가 통일한게 오히려 국가명맥 유지에 도움이 된거..
@@여성부극혐-h2j 대략 병력을 양쪽이 나눠먹었다 봐야죠. 신라에 온 병력도 매소성만 20만이라(다른 전투에 투입된 병력은 추가하지 않은 숫자임에도) 절대 적은수는 아니니 그냥 나눠먹은..... 당나라가 고구려보다 토번이 성장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지 않은게 최대 실책인거죠 뭐. 고구려가 토번이 성장할동안 몸빵해주는 역할 하고 나중에 토번 신라 양 방면에서 상당한 병력이 싸먹힌 꼴...
타운브라더님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갑니다~
이런 페이지 너무 좋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활동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광개토대왕이 진짜 대단한게 판단능력이랑 지휘능력이 남다른듯 전선을 앞 뒤로 형성하면서 쓸고다녔다니...
더불어 보급까지 문제없이 저렇게 쭉 쭉 밀고간거 보면 정말 감탄사 나오죠 민심 얻는 능력도 탑..
6:04 태왕의 유일한 실수ㅋㅋㅋㅋㅋ
그리고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이런 위대한 전성기를 다시 맞이할수있을까
고려 공민왕 시절 가능했을 수도 있었지만 노국대장 공주가 죽은 이후에 향락에 빠지자 암살 당했기에...
사실 이성계가 요동정벌 안가고 최영이 갔으면 가능했음ㅋㅋ원래 최영이 갈 거 왕이 장인(최영)보고 가지말라고 벌벌떨으니... 이성계보낸건데 회군...
지금으로따지면 미국이랑 삐까뜨는 나라되는거죠..
선댓글후 감상 ^^ 하겟습니다
감사합니다. 꽃길사쿠라기님 주말 잘 보내세요!
타운형님 진짜 영상하나하나가 심여를 기울인게 느껴져요!! 좋은 영상으로 정보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용학님 보통 스토리만 다들 이야기 하시는데 고충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난 그나저나 이분 영상이 참 좋아. 위인전의 평가를 딱 중립으로 해서 영상을 만들어주시고 내용도 재밌어서 구독하게 만들어버리는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최태욱님.
내정을 단단하게 만들었던 소수림왕의 유산을 기회로삼고 자신의 능력으로 전성기를 이룬 태왕님 ㅎㄷㄷ
안녕하세요 크르당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단순히 쓸모없는 황무지를 넓게 정복한게 아니라 중요 물자인 소금과 철의 산지를 정복하신것이 그분의 비상함을 엿볼수잇는 부분.
근초고왕,광개토대왕.... 분명 두 왕 밑에는 뛰어난 부하들이 있었을텐데 역사에 이름한줄 남아있는 사람 없어서 너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고구려가 통일할 수 있었다고 보는 기회는 이분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백제의 아신왕을 이겼을 때, 거기서 멈추지 말고 백제 남부를 모두 평정해서 멸망시켰다면 신라가 아무리 성장했어도 고구려는 못 이겼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되면 백제 출신의 명장들이 고구려 장수가 되어 신라를 무력이든 평화로든 흡수해버리는 게 가능했다 봅니다.
저렇게 남북으로 뛰어다녔으니 오래 사실수가 없었겠네요, 삼국 연합을 부수고 신라까지 먹었으면 완전한 삼국통일이 일찍 오지 않았을까하는 사견입니다, 아쉽네요... 재미난 영상 감사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진성곤님. 날씨가 많이 덥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솔직히 아신왕도... 훌룡하다고 평은 못해도
ㄱㅊ은 왕이었는데 상대가..
지금으로 치면 롤에서 다2가 페이커 맞라인 서는 느낌이랄까...
안녕하세요 지훈님. 아신왕 근성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차후에 컨텐츠로 만들예정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1:04쯤에 나오는노래뭔가요?
이거 브금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진짜 브금 묻는말에 대답을 안하네요
한국의 알랙산더네요 대단함
안녕하세요 박진택님 허접한 영상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장수왕도 해줘요 아 저때나 장수왕때 삼국을 아예 먹었어야됐는데ㅠ
안녕하세요 유영복님. 노력해보겠습니다. 주말 잘 보네세요!
@@장채원-t4t 문재인대통령이 나라를살리는중
@@장채원-t4t 통일은 필수임
@@장채원-t4t 연방제로 가다가 왕래부터해야함 통일전제로
남북평화는 경제적이득이 더많음
호태왕비문의 17세손에 대하여
1. 삼국사기를 근거로 보면 호태왕은 추모왕으로부터 13세손입니다.
1세 동명성왕, 2세 유리왕, 3세손 재사, 4세손 신대왕, 5세손 산상왕, 6세손 동천왕, 7세손 중천왕, 8세손 서천왕, 9세손 돌고,
10세손 미천왕, 11세손 고국원왕, 12세손 고국양왕, 13세손 광개토대왕
2.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 : 추모왕 이전 4대를 더해야 합니다.(고구려 건국을 200년 앞당김)
1세 해모수, 2세 고진, 3세 ?, 4세손 고모수, 5세손 추모왕,...... 17세손 호태왕
이 주장은 생물학적으로도 납득이 안 갑니다. 추모성왕 이전에 세대는 한 세대당 50년입니다.
어떻게 네 명 모두 50살이 돼서야 아들을 낳는단 말입니까?
환단고기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이건 좀 아닌 듯 합니다.
3. 고구리사초략을 근거로 보면 15세손입니다.
1세 추모성제(추모성왕), 2세 광명대제(유류왕), 3세손 대무신제(대주류왕), 4세손 신명선제(재사), 5세손 태조황제,
6세손 신대제, 7세손 산상대제, 8세손 동양대제(동천왕), 9세손 중천대제, 10세손 서천대제, 11세손 돌고,
12세손 미천대제, 13세손 고국원제, 14세손 소수림제, 15세손 영락대제(광개토대왕)
제가 생각하건데, 호태왕은 한단고기 추종자 분들의 주장과 달리 추모왕으로부터 17세손이 맞는 거 같습니다.
만일 해모수로부터 17세손이 맞다면 호태왕비문에 해모수의 행적이 나와야 합니다. 안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추모왕이 단군을 섬기고 연호를 다물이라고 했다고 하여 해모수 단군을 시조로 생각했다고 하는 건 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호태왕비문에 추모왕이 시조라고 분명히 새겨져 있고 또한 추모왕의 고구려 건국 과정을 상당히 비중있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인들은 추모왕을 시조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봤을 때 호태왕은 추모왕으로부터 17세손이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대무신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왕위대수 기준으로 17대왕이라는 의미로 17세손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근거가 약하다고 봅니다.
또한 호태왕은 추모왕의 외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근거가 미약합니다.
17세손의 비밀을 풀려면 고구리사초략을 연구해야 합니다.
제가 고구리사초략을 사서 읽어보니,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으로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과 왕후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등이 의문이 많이 갔습니다.
가령, 아들이라는 존재가 반드시 왕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관념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좀더 읽어봐야겠습니다만 왕위세습이 근세조선처럼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고구려의 왕의계승은 장자상속 원칙보다는 왕후 집안의 세력이 더 중요했습니다.
호태왕은 소수림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소수림왕의 첫째 아들은 강입니다. 강은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담덕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선인이 됐습니다.
호태왕의 어머니는 천강태후입니다. 천강태후의 아버지는 천원공으로 고국원왕의 동생입니다. 천강태후는 소수림왕의 왕후일 때 담덕을 낳고, 소수림왕이 죽자 형사취수의 풍습에 따라 고국양왕의 아내가 됩니다. 천강의 아버지 천원공 집안은 당대 고구려의 최대 세력이었습니다. 소수림왕과 천강은 졸본에서 혼례를 치렀는데 엄청난 인파가 몰려 혼례행렬이 수 리에 뻗쳤었다고 합니다.
호태왕은 천강태후의 세력을 등에 업고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점은 고구리사초략에서는 소수림왕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의 행적 도입부에 이 왕은 누구의 아들이고, 몇째이고(혹은 별자)라는 부분이 들어가면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힙니다. 그러나 소수림왕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모친이 해씨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고국원왕기에는 도입부에 고국원왕의 황후는 전씨이고, 아들은 황태자 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국원왕 즉위 9년째인 339년에 "왕자 구부(소수림왕)가 태어났다. 모친은 해씨로 선인 해현의 딸이다"라는 구절이 갑자기 나타나고 이후의 행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태자"가 아니라 "왕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일 소수림왕이 고국원왕의 아들이었다면 "황후 해씨가 태자 구부를 낳앟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고국양왕 12년 342년조에 "춘정월, 해씨가 왕자 이련(고국양왕)을 낳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고국원왕이 해씨를 소후로 삼았다고 하고 있는데, 이후에는 고국원왕의 애초 황후였던 전씨와 황태자 완의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건데, 17세손의 비밀은 고국원왕 사후 소수림왕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즉, 소수림왕은 고국원왕의 아들이 아니라 증손자뻘의 방계혈족이었던 것입니다. 고국원왕의 갑자스런 죽음은 왕위 계승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왕위 쟁탈 과정에서 당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였던 천원공(천강의 아버지, 소수림왕 장인)의 힘이 작용하여 소수림왕이 왕이 된 것은 아닐까요.?
적통이 아닌 방계혈통이 왕이 되자 새로운 율령을 반포(소수림왕3년, 373년)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불만이 가라앉지 않자 소수림왕의 아들 호태왕 대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벌여 내부 불만을 잠재우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대대적인 정복전쟁은 내부 반발세력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경제적 이득을 제공해 주었을 겁니다. 대대적인 정복전쟁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내부가 비로소 안정을 되찿고 소수림왕의 등극을 호태왕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한 정통성을 갖출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호태왕의 시호가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 호태왕]이라고 했던 것이고, 아버지 소수림왕의 등극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호태왕은 추모왕의 17세손이라는 사실을 비문에 새길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언제나오느 했는데 영상 매우 감명있게 잘봤습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정복 왕이인것 틀림없습니다
영상을보면서 느낀것이 광개토태왕때의 고구려 전선이 큰것도 저도 아이러니 했습니다
이걸통해 저는 두가지관점에서 그당시 상황을 제스스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알고있는 백제땅이 아닌 한반도외의 백제 즉 대륙백제설이 실제로 있었을 가능성 백제를 광개토왕이 침공하면 후연이 항상 뒷치기 해왔는데 말도 안되는 시간에 광개토왕이 반격을 행합니다 황해도에서 요동까지 엄청난 속도로 말이죠 그런즉슨 광개토왕은 한반도 백제와 싸운게 아니라 요서 경략설에 한가지였다 요서세력 백제와 싸웠을 가능성
둘째 고구려는 벽화에서 나와있듯이 수레의 신이 나올정도로 수레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그당시 선진국 수준으로 교통네트워크가 활성화되어있을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리가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멋진영상과 웅장한 배경음악으로 기분전환 하시고 즐거운 주말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타운브라더 너무깊게 생각한건아니였고 감상평을 적은 겁니다 대학교때 과가 역사학과이다보니깐요
ury Ga 관미성은 한반도백제에있지않음?
요서경략설에서 나온건데 중국쪽 땅에 있었다는설도있긴함
부여도 우리나라 역사인데,혹시 정리해주실수있나요?
자료도 부족하고 특징적인 인물도 없어서 만들기 힘들거 같습니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아신왕도 참 대단한인물인데 영락때문에
아신왕 대단하죠. 아둥바둥사는 우리들 모습같습니다. 나이 좀 먹으니까 이런사람한테 관심이 많이 가네요.
@@타운브라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아신은 어떤왕이였나요??
@@김용진-i3l 괜찮은 왕이었음 원래 백제가 우세했는데 고구려가 급격하게 팽창하니 그걸 막으려는 시도를 계속한거 자체가 정상적인 판단이었는데 걍 상대가 너무 안좋았던거
그래도39세면 임금으로서는 평균산거예요 조선 성종도36세에 저승갔고 문종도 태왕과 같은 나이인 39세를 일기로 갔고 정조도42세까지 살았어요. 90가까이산 장수태왕이랑 영조가 비정상적으로 오래산거고요.
영조의 장수비결은 소식!
@@최쿠키-p2q 그리고 적은 음주와 금연 그리고 기름진 밥상이 아닌 나물이포함된 서민적밥상
아래 어느분... 국사 교과서.. 부여...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국사 교과서는 중요한 포인트를 빼거나..인구 이동.이주를 문화 전파..정도 축소하고 해서 역사적 흐림의 깔끔하지 않음...왕하나 바뀌였다고 그나라가 강국이 되는것이 아닌데... 엄청 함축적으로 간소화 시켜서 넘어가서
국사 100점이던 저도..
졸업후 혼자 공부해서 퍼즐조각을 어느정도는 연결되더라구요
무리하게 신라에게5만구권병을 파병한것은 후연이 강성한것은 사실이니 이기회에 무리를 해서라도 벡제전력을 초토화시켜서 남방을 안정시키고 후연과의 전쟁에 집중하기위해서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저때 한반도 통일 하고 중원으로 진출했어야 됬는데 참으로 아쉬워
장수왕 도 정리 해주시면 좋겠어요(개인적 의견)
메모해두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타운브라더입니다
영상에서 언급된 407년의 미스테리 전쟁 및 추천링크를 첨부드립니다.
현재 채널에 고구려역사 관련된 영상은 총 6개가있으며
타임라인 순서대로 정리해서 재생목록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업로드는 보통 금요일 오후 7시에 진행하고 이번주에 이어 다음주도
특별작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공지사항이나 요청사항은 채널의
커뮤니티 탭을 이용해 주세요.
고구려 관련 재생목록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_xiWEIbrVwA-Ij47dBloby
채널을 대표하는 전설급 명장들 관련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_cYWULC9bQTE6f6q623Rcx
정사삼국지 인물들 관련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_1OsY47-rPdydQUsUpW3HK
삼국지보다 재미있는 춘추전국시대이야기 관련 링크
ruclips.net/p/PLprYrZVIdzc-ue6R5y-Ug73M6Rcnr6O13
감사합니다.
북연이 멸망을 안했더라면 고구려가 신라백제를 밀어버리는건 시간문제였다 북연이 멸망한뒤 북위랑 긴장상태로 들어가 더이상의 남진을 진행하지 못해서 백제 신라가 살아남음
30년전에 약한 고구려 이였는데
그 이후 힘 키워서 복수하네
수명이 짧은게 안타까운왕.... 조금만 더 살았어도 동북아 역사랑 세력도가 바뀌었을것이 중국을 북남으로 갈랐을수도...
광개토태왕은 이미 남진 준비했음 남진정책은 장수왕 독단 아님
좀 더 오래 사셨으면 고구려에 의한 자주통일을 이뤘을지 모르는데. 그랬으면 굴욕적인 역사가 줄었을지도 모르는데 안타깝다.
고구려의 꿈은 살아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별 기록이 없어요 조선시대 만주에 커다란 비석이 잇엇다는걸 인지 햇지 여진족인걸로 알고잇음
그리고 고구려 최대영토은 장수왕 이후 문자명왕 입니다.남으로 한수 북으로 몽고경계 서로 북경근처까지라고 하더만요
광개토 대왕 께서~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을지문덕 장군도 같은 시기에
활약 하셨나요?
전라도 광주 김동령
을지문덕 장군은 태왕이 서거하시고 대략 200년 후인 영양왕시기에 활약했습니다.
저도 만약에 광개토대왕,장수왕 이분들이 삼국 통일을 하셨다면(...) 일제시대 따위는 오지 않았을거라 지겹도록 생각하는 한명입니다ㅠㅠ
태왕 광개토대왕이 그립군요
이런걸 드라마로 만들어야 하는데
왜 못 만들걸가 중국이 고구러역사도 백제의 역사도 지들거라 우기고 있는참애
드라마하나 있긴합니다. 태왕사신기
대하드라마도 했었어요~
내가 국뽕으로 인정한 고구려 전성기
안녕하세요 보통님 주말 잘 보네세요!
반도의 알렉선더 태왕 니뮤 ㅜㅜ좀더 오래사시지 천재는 요절한다니까 ㅜㅜ
좀만더 오래살았어도 통일인데
안녕하세요 NY님 통일못한 이유에 대해서 한번 다룰 예정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타운브라더님 혹시 다음번엔 미천왕(15대)의 장수들 가능하신가요?
추천해 주시면 제가 영상견적이 나오는지 알아보고 메모해놨다가 만듭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부탁하는걸 바로바로 만들어 드릴수는 없지만 항상 우선적으로 염두하면서 진행합니다.
@@타운브라더 네 감사합니다
가만히 있던 신라를 왜 침공하냐?ㅋㅋ 존나 웃기네ㅋㅋㅋㅋㅋ
고구려의 우방인 신라를 먹음으로써 고구려를 완전히 고립시키려함
고구려 광개토 대왕~
기록에 나와있는 본명 을
알고 싶내요?
전라도 광주 김동령 드림
성이 고씨고 이름이 담덕입니다. 고담덕.
6분 30초부터 나오는 배경브금 제목이 뭔가요?
천재들은 일반인들이 평생에 걸쳐 한번하기도 힘든일들을 여러번 한다. 다만 문제는 단명한다는거... 광개토대왕은 39세에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알려주세요. 병? 사고?
아마도 많이 무리해서 돌아가신게 아닐까 생각합니다..과로로..ㅠㅜㅠ
고구려 병력의 절반이 북방이민족이었읍니다.
고구려는 3국중 가장 인구가 적었죠.
정벌하면 죽이는것이 아닌 세력권안에 두고
물물교환을 하며 우리의 세력안에 있으면 잘 살수 있다는 정책이죠.
그래서 그들은 충성하며 함께 싸웠죠.
고구려는 인구가 적다보니 일일이 통제를 못햬서 그렇치 전성기때는 북경근처까지도
세력권입니다.
정말 위대한 국가입니다.
기마와 수례로 전영토를 다스렸죠.
돌로 만든 도로가 전국주요지역에 다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은 무서워서 큰길들을 다 없애버렸는데.ㅎㅎ
교과서는 엉터리죠.
일제사관관료에 중국눈치...
6:03 이 문구가 웰케 웃기누ㅋㅋㅋ
피가 끌어오르네요 전 진주강씨로 제시조이신 강이식 병마도원수도 고구려의 대장군이셨는데 저도 고구려의 피가흐르니깐 요새 일본이 경제로 전쟁을 걸어오는지라 이럴때일수록 국민들이 단합해서 일본 물건 사지도말고 팔지도 맙시다
강이식 장군 굉장하셨죠 차후 컨텐츠로 제작 예정입니다.
@@타운브라더 감사합니다 타운브라더님 제가할수있는건 추천과 구독 누르기뿐이네여
봐주시는 것만해도 너무 감사합니다.
강이식 대장군 중국 역사에서도 지웠다는
너무 무서워서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고구려는 일단 한반도를 다 먹었어야했다..
1타!!!★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쿤님 댓글 고정해 드리고 싶은데 공지사항이 있어서 오늘은 안되겠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타운브라더 평소에도 역사쪽 즐겨보고있어서 재밌게 잘봤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 많이 보고싶네요~.~
제목만 보면 백두혈통 이야기 하는줄
신라 구원하지말고 정벌하시지ㅠ
고구려는 주둔군둬서 복속시키면 정복했다치는 연방제 그러니까 중앙집권인동시에 자치제도인 미국하고는 좀 차이가있는 중앙집권적 연방제국이라 부여나 가야 백제등 일단 복속시킨 국가에는 주(?)고구려군을 두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한거라서 고구려국가제도차원에서는 무슨소리야? 우린 이미 삼국통일 했는데?가 된거죠. 그래서 국가제도적으로 좀더 객관적으로 보면 통일고구려에 신라주가 멋대로 당나라랑연합해 반역해서 지들제도로 통일신라라 한 게되죠. 역사책에 수정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그부분이예요.
신라 뒷통수 삼국통일
@@글림킴 실제 평양성은 한반도의 평양이 아니라 요동쪽에있는 요양성이라는 이론이 요즘들어 꽤 힘을얻고있죠.
-환빠금지-
개마무사는 동천왕때부터 있지 않았던가?
안녕하세요 오유석님. 개마무사는 이전부터 있었고 "본격적으로" 저시기에 활동했던걸로 추측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못다산 수명은 아들에게 몰빵하심..
안녕하세요 고향산천님. 장수왕 아니라도 오래살았던 왕들이 특히 많았던 핏줄인데 아쉽네요.
@@타운브라더 짧고 굵게 가셨으니....다른 왕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셨으니...ㅎ 재임기간은 어렸을때 즉위하셔서 20년이면 짧은것도 아니고요 ㅎ
백제 신라 가야 남쪽먼저 평정하고 북으로 집중했으면 오늘날 일본과 중국얘들에게 이렇게 당하지 않을건데
한반도 최강 리즈시절
광개토대제
태왕의 유일한 실수라 한 부분은 좀...
약소국인 신라를 지배권 하에 두면서 타 국의 세력 확장을 막는게 더 이드김.
그리고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중국 왕조가 더더욱 가만히 두질 않고 결국 인해전술로 국가의 맥을 완전히 끊어놨을것.....
한반도에 국한되어 아주 큰 힘을 들여 정복할 가치까지는 없는 나라가 되어서 오히려 생존이 가능했던거....(땅덩이의 가치에 비해 워낙 험준한 산악지형이 계속 이어지는 땅이라 요새의 규모에 비해 공격군의 피해가 심하고 점령이 매우 어려움. (동시대의 이슬람쪽의 삐까뻔쩍한 3중성벽 성같은것보다 과거 한국의 산맥 지형에 겹겹이 쌓아진 작은 성 여러개가 규모 대비 방어력이 우수함. 지연전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이러면 보급 문제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
유목민족도 그래서 주요 요충지 점령은 거의 포기하고 큰성이나 작은성이 겹겹이 늘어진 지형이 없는 곳으로만 피해다니며 공격을 하고 다님. 그럼에도 지연전 효과로 본군의 진격속도가 늦자 유목민들의 유목철이 가까워져 철군...)
즉 인구도 적은 나라에서 넓은 곳에 퍼져있으면서 땅덩이 넓어 점령당하는것보다 신라가 통일한게 오히려 국가명맥 유지에 도움이 된거..
안녕하세요 허강진님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지루하실까봐 ( )부분은 한번씩 애드립을 날립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주말에 편안히 멋진영상 구경하시면서 좋은시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타운브라더 아 그렇군요ㅎ
신라도 애초에 중국에 먹힐 예정이였는데 토번 때문에 안먹힌거 뿐이지. 그리고 황산벌에 신라가 5만을 출정 시킨거 봐도 꽤 괜찮은 국력인걸 알 수 있지
@@여성부극혐-h2j 대략 병력을 양쪽이 나눠먹었다 봐야죠.
신라에 온 병력도 매소성만 20만이라(다른 전투에 투입된 병력은 추가하지 않은 숫자임에도) 절대 적은수는 아니니 그냥 나눠먹은.....
당나라가 고구려보다 토번이 성장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지 않은게 최대 실책인거죠 뭐. 고구려가 토번이 성장할동안 몸빵해주는 역할 하고 나중에 토번 신라 양 방면에서 상당한 병력이 싸먹힌 꼴...
6:07 유일한 실패
괜히살림 ^오^
NYPD 이땐 내정간섭하고 나중엔 동맹거절하고 의자랑 같이 신라 막다른 길에 몰아넣은건 고구려
당나라 없었으면 백제한테 개쳐맞다가 멸망이었는데
장수왕이 전성기 아닌가용?
둘다 전성기죠... 굳이 나눌필요까지 있겠습니까 ㅎㅎ
ㄸ
분명하게도 태왕이거든 그런데도 태왕을 왕.대왕이라 낮춰부르는 후손이 무슨 영광이 있으랴.
하긴 태왕이란 연유도 모를 이 자손들이 어디가서 무슨 복 받을꼬.
김정은과 북괴군의 억센 기개가 어디서 왓나 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