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이용도 7. 이용도의 특징인 시무언, 침묵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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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Опубликовано: 24 сен 2024
  • 李龍道의 열광적인 신앙의 한계점에 대한 이해 7.
    이용도의 특징인 시무언, 침묵으로 말한다.
    원산파와 합류하기 이전의 이용도의 신앙은 비교적 순수하였고, 대체로 보수적인 경건주의 신앙의 정통사에 있었다. 그는 신앙적인 면에서 그리고 열정적인 면에서 비교적 건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용도는 원산파에 합류함으로써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용도는 한준명을 옹호한 과오를 범하면서 이단 시비에 휘몰리게 되었다. 1933년 6월 3일에는 「예수교회」 창립에 본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용도는 동의하고 포교계를 제출하여 「선도감」이라는 직함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변종호는 이용도의 몰락의 배후에는 백남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예수교회」와 이용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백남주는 용도의 말년에 합류를 계기로「용도교회」로 부상된 일종의 접합물이었으며, 그는 이용도의 명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교회 설립에 전용한 인물이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변종호는 백남주를 「흑북괴(黑北怪)」라 불렀다.
    이렇게 갑작스럽고 혼란스럽게 상황이 급전되는 가운데 원산파의 대표격인 유명화와 백남주는 「새 생명의 길」로 이단화되었으며, 더 나아가 백남주는 김정일과의 간음협의로 인해 평양파와 원산파가 분열되었다. 급기야 백남주는 철산의 자칭 새 주 김성도라는 여인의 교회설립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이단의 계보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원산파는 초기 용도가 참여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어느덧「한준명, 유명화, 박승걸」등은 교회사에 이단 신령주의의 계보에 속하게 되었다.
    결국 원산파들은 변태적 종교체험과 그 실천을 교리화시키려 함으로써 종교의 방탕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혼탁해진 원산파의 계보 중에는 초창기의 멤버였던 이용도가 있었다. 원산파들은 이용도의 명성을 이용해 그들의 세력을 규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특히 유명화의 신탁에서 그러하다. 이에 이용도는 이용당하였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단 시비 때에 한준명에 대해 「무차별적인 사랑」에 맹신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원산파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이용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용도는 이단 시비에 있어서 시무언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려 했던 신비주의적이고 윤리를 초월한 사랑이 내면화되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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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송도역 남인천 농협앞, 베짜마 카페에서 이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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