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금 무를 다시 키우고 있습니다 국방비 늘려 각종 무기 만들고 해서군사력 올리고 있는데 걱정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정신이 깨어 있는 말은 하나 행동이 부실 합니다 걸스 캔두 애니띵 남녀평등 좋은 말은 다 해놓고 여자들이 군대를 안가네 남녀 평등으로 모두 군대 10년 징병제로 다녀오면 슈퍼 최방국가 되는데 남자들도 문제 입니다 남자 정치인들이 국방을 위해 군대를 늘리겠습니다 이 말을 옷하냐? 남녀평등 시대이니 군대 남녀모두 10년 가게 법 고치겠습니다 임진왜란 때 전쟁준비 하려고 하니까 백성들이 반대함 성보수 및 기타등등 그러다 전쟁나니까 노략질에 죽음 귀베이고 코베이고 대가리 잘려 멍나라에 시달려 왜놈에게 시달려 여자들 말에 귀를 귀우려라 걸스 캔두 애니띵 이라고 하니
@@jujoo202대충 하나의 나라에서 최대한 끌어모을수있는 군대는 자기나라 인구의 십분의 일이라고 하니까 그 당시 고려 인구가 500백만 이라고 하면 최대로 50만 모을수있고 조선은 백만군대를 모을수는 있지만 조선은 양반이나 사대부는 당연히 빠지고 양반소유의 노비들과 사람으로 취급안하는 백정들도 빠져서 조선은 모을수있는 군대가 적었을듯
@@jujoo202고려보다 조선이 더 발달했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조선과 고려는 군사.경제 적으로 비교도 안 됩니다. 세금도 안 내는 양반들이 나라의 부를 독점하고 양반.노비.백정등등..다 빠지고 양민들중에서 군사로만 뽑은 조선은 군사를 모으기도 힘들었어요.
아니, 귀주대첩 이후에도 거란군은 확인 된것만 해도 2번이나 더 침략했습니다. 고려는 이겼지만, 계속된 거란의 물량 공세에 지 쳐서 결국 거란과 화해 했습니다. 거란 3차 전쟁은 고려의 완벽한 승리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고려가 어렵게 어렵게 승리한 전쟁입니다. 까닥했으면 고려가 질 뻔한 전쟁이었죠. 고려의 작전은 거란군을 야전에서 격파하여 개경까지 못 내려오게 만드는 작전이었는데 거란군은 피해을 입으면서도 개경까지 내려왓쬬. 그때 잘못햇으면 개경이 점령당할 뻔했죠. 현종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죠. 거란군은 철수하면서 귀주방면으로 왔었고, 그때 강감찬의 고려본군과 전투를 벌였죠. 그때에도 김종현 부대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귀주에서도 질뻔했습니다. 3차 전쟁은 완벽한 고려의 승리였고 완벽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에도 아슬아슬한 위기가 2번이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님들, 고려가 거란 병력을 전멸시키고 왜 북진을 하지 못했냐고 하신다면, 그 위에 여진이 있었기 때문이고, 거란도 멸망할 만큼 타격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거란의 대병력을 막느라 청야전술을 펼쳐야 했기때문에 국토의 훼손등 고려 자체로도 타격을 입어 먼 거리의 병참지원도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의 반 이상은 물자지원입니다. 그래서 항상 치중을 중요하게 여기죠. 그리고 만주는 생각보다 척박해서 한반도에 거주하는 농경민족이 죽을똥을 싸서 농사를 지어야 할 정도로 농사짓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유목민족들은 농사지을 엄두를 내지 못한걸 보면 말이죠.
거란 병력이 더 적어서 허접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을텐데 당시의 거란은 동아시아 최강국가였음. 특히 기병을 주력으로 사용하여 동아시아를 휩쓸던 당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하고있던 거란임. 귀주대첩은 이런 거란의 최전성기에 주력군을 괴멸시키며 고려 거란 북송의 세력 균형을 맞추게 되면서 100여년의 화친이 이어지며 고려의 전성기를 맞이할수 있게됨.
3대 대첩 중 가장 저평가 받는 전투이지만 전투 이후 결과는 가장 좋았던 전쟁임 고구려는 살수대첩 이후 전쟁 후유증 때문에 당나라에 저자세 외교를 해야했고 한산도 대첩은 왜군의 진격이 멈추는 정도였죠 반면에 귀주대첩은 승리 후 100년의 평화가 지속됨 그리고 강대국의 간섭도 사라짐
하나만 더 정확히 이해하기! - 당시 요는 중국의 송과 대립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요(거란)는 송과 국교를 단절할 것을 고려에게 요구했죠. 1차 80만 2차 40만 3차 10만 점점 조금씩 쳐들어온 이유는 송과의 대립과 흥기하는 여진을 막는데도 필요했기 때문인데 3차 침략 후 송과 거란의 살벌한 대립이 이어졌고 그래서 고려는 이 역학 관계를 이용한 것입니다. 즉 단순히 고려가 강하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송과의 대립이라는 큰 이유가 고려를 침공하지 않은 더 큰 이유로 작용한 셈이죠. 끝!
우리가 따져봐야 뭐하나요, 정작 중국이 거란이고 송이고 몽골이고 명이고 청이고 다 중국이라는데 구별해줘봐야 걔들이 인정 안 하죠. 그렇게 따지면 화내고 혐중하는 것들이라고 욕해요. 님 지금 혐중한다고 욕한다니까요ㅋㅋㅋ 그들 뜻대로 오랑캐고 한족이고 한몸이라 생각해줘야죠ㅋㅋㅋ
@@강산-p8j 어찌 고려의 서경이 북경입니까. 그럼 고려가 원나라와 전쟁해서 수도를 빼았겼다는 건데, 말이 됩니까? 당시 북경은 금나라 서경으로 금나라가 원나라에게 멸망하면서 현재의 북경이 원나라의 수도가 됬어요. 수많은 역사서가 증명을 하는데, 뜬금없이 고려의 서경이 북경이라니..
@@가온길-j6m봉건영주라는건 중세유럽에 쓰이는거구요. 동아시아의 봉건제는 중국이나 일본에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중국의 군현제를 차용했기에 옳지 않습니다. 당시 공을 세운장수에게 땅과 작위를 주는건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근데 그러한 명목으로 내리는게 중세유럽이나 중국, 일본과는 다른 개념으로 하사를 하는것입니다. 이것을 같다고 생각하시면 큰일입니다. 재야사학에서는 아무거나 짜집기해서 이어붙이는데 역사왜곡으로 빠질수 있으니 조심하셔야합니다.
우리나라가 공략이 힘든게 보급이 힘들어서 입니다 해서 우리나라가 먹힌 역사보면 전부 빠른 속도로 밀어붙인 몽골과 청 둘다 강한기병을 가지고 있었죠 반대도 같습니다 우리도 침략을 위해서는 보급이 중요한데 우리는 당시 북방민족보다 기동력이나 현지 보급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올라갔다 해도 많은 영토는 먹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에너 보급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후 고려사신들이 송에 가서 온갖 패악질에 가까운 난리를 쳐도 오히려 황제가 커버쳐 줬다죠. 훗날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이 급격히 무너진걸 명나라에선 도저히 이해 못할 정도로 우리 전투력을 우러러보게된 계기가 됐다고 함.
유학자들은 나라를 지키고 부강하게 만드는데에는 능력이 전무하고
백성들을 쥐어짜고 부리는데에는
뛰어난 능력이있죠.
조선이 그러한 나라였기대문에
나라가 점점 거지화 약골화되었으니
침략군에게 이길수 있나요.
당연 와르르 무너지죠.
왜는 전국시대를 거듭하며 싸우는 법을 아는 군사가 대부분. 조선군은 오랜 평화 때문에 싸우는 법을 모를뿐더러 누굴 죽여본 경험도 거의 전무한 병사들뿐.. 이러니 이길수가 없었지
@@jjp5997 조선은 무를 너무 경외시하다 무너진거죠 그넘의 공자.맹자 성리학 퉤이 ..글로서 무를이긴다?어불성설이죠
그태의 조정관료들이 지금의 굥과 국암당과 같은 정치를 했었지.
그래서 지금 무를 다시 키우고 있습니다
국방비 늘려 각종 무기 만들고 해서군사력 올리고 있는데
걱정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정신이 깨어 있는 말은 하나
행동이 부실 합니다
걸스 캔두 애니띵 남녀평등 좋은 말은 다 해놓고 여자들이 군대를 안가네
남녀 평등으로 모두 군대 10년 징병제로 다녀오면 슈퍼 최방국가 되는데
남자들도 문제 입니다
남자 정치인들이 국방을 위해 군대를 늘리겠습니다 이 말을 옷하냐?
남녀평등 시대이니 군대 남녀모두 10년 가게 법 고치겠습니다
임진왜란 때 전쟁준비 하려고 하니까 백성들이 반대함 성보수 및 기타등등
그러다 전쟁나니까 노략질에 죽음 귀베이고 코베이고 대가리 잘려 멍나라에 시달려 왜놈에게 시달려
여자들 말에 귀를 귀우려라
걸스 캔두 애니띵 이라고 하니
문신이지만,그 당시 문무를 겸비한 장수들이 꽤 있던걸로 암.임시 지휘직인 상원수로 총 지휘관이 되어서 거란의 3차 침입 때 승리를 이끌수 있던 것도 어릴때 부터 문무를 게을리 하지 않고 한 결과임^^
오 이얘기 하려고 들어왔는데 ㅋㅋㅋ
사람들이 강감찬장군을 무관으로들 알고있는데 무려!! 장원급제 한 문관이란거 ㅋㅋㅋ
고려 때는 문신들도 병서를 읽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음.
윤관 장군도 문신이며, 조선초 김종서 장군도 문신.
고려말 간신으로 불리는 이인임도 문신이지만
요동정벌의 총대장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음
@@moneyis-thebest ㅣ
앎
그게 아니라 애초에 고려에는 무과가 없었는데 ㅋㅋ
진주 강씨 은열공파 강민첨 장군의 후손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강감찬장군은 박사공파 그리고 강인첨장군은 강감찬 부하장군입니다
명문가 ㅅㅌㅊ
강감찬 장군의 조상 강이식 장군이 시조이십니다
반갑습니다.
사평공파 26대손입니다.
저역시 강민첨장군의 후손입니다
님에게 광영이 있기를..자랑스런 그 호기롭던 때로 대한민국이 나기를
강감찬 장군님의 귀주대첩의 기저에는
고려의 세종대왕이라 해도 손색없을 고려 현종이 개경을 민간인들과 슈퍼탱킹한 덕도 있지요!
이런게 영화로 계속적으로 나와야하는데
23년 하반기? kbs대하드라마 준비중. 고려거란전쟁.
@@채널명없음-h6s 오오
@@채널명없음-h6s또 최수종이라 안봄
@@wonyu757또수종ㅋㅋㅋ어쩔수없는게 그만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없다는게 함정..
최수종이 강감찬에 반대합니다
귀주 대첩에서 거란군은 최정예 중에 정예들만 선발했던 부대입니다 너무 타격이 커서 이후 거란은 고려를 도발하지 못했죠
72세였군요
대단!
심지어 문신 ㄷㄷ
@@johnsonrandy7668근데 그 문신이 장원급제자 ㄷㄷ
문신충은 걸러야지.
우리나라가 20만이라는 대군을 모았던 역사도 있구나.. 임진왜란때 그랬더라면ㅠ
징병 단위가 축소됐던건 전세계적 추세였던
10만 양병설에 콧방귀 뀌던 선조와 무능한 당파싸움 간신배 관료들
귀주대첩 참전용사로서 그 당시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멋지다 문동은!
나는 살수대첩에. 참전했는데요. 같이 나라를 구했군요
우리가 참전한건 솔로대첩 아니었니?
난 한산 명량 노량
어? 몇 연대에 계셨어요?
세계사를 봐도 사라진 국가랑 민족이 얼미나 많은데 오천년 이상 버틴 거 보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저력이 있는지 놀랍긴 하다. 심지어 지금은 10위권에서 노는 나라이니
군사력은 세계 6위
다행히 먹을껀 적은데 먹기엔 노력이 너무많이 드는지역이라 ㅋㅋ 이놈저놈 전부 먹뱉 ㅋㅋㅋ
아 북한먹고 더 올라가야지 여기서 만족할 한국인 있노?
고려가 20만 병력을 한 전투에 동원 할 수 있는 국력이란게 더 대단해 보임
@@jujoo202남자란 남자는 다 끌고 가면 가능한 숫자긴 함
@@jujoo202대충 하나의 나라에서 최대한 끌어모을수있는 군대는 자기나라 인구의 십분의 일이라고 하니까 그 당시 고려 인구가 500백만 이라고 하면 최대로 50만 모을수있고 조선은 백만군대를 모을수는 있지만 조선은 양반이나 사대부는 당연히 빠지고 양반소유의 노비들과 사람으로 취급안하는 백정들도 빠져서
조선은 모을수있는 군대가 적었을듯
@@jujoo202고려보다 조선이 더 발달했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드네요..
조선과 고려는 군사.경제 적으로 비교도 안 됩니다.
세금도 안 내는 양반들이 나라의 부를 독점하고 양반.노비.백정등등..다 빠지고 양민들중에서 군사로만 뽑은 조선은 군사를 모으기도 힘들었어요.
2차때는 변방 지키던 병력들 빼고도 강조가 30만을 동원
임진왜란에서 조선은 18만 정도빡에 동원 못함
서희장군님이 강동6주를 얻고 그곳의 중요성을 간파해 흥화진 및 귀주성 까지 6개의 성과 진을 쌓다가 과로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에서 불과 10년뒤 2차 3차 거란전쟁이 일어났지요
귀주대첩도 고려가 싸워서 이길곳을
정하고 싸운것입니다
얼마나 내다본것인지 ㄷ ㄷ ㄷ
한반도 리즈시절 2위기간이군요 이 전쟁이후 몽골침략전까지 고려는 송나라가서도 콧대가 하늘을 찔렀지요
123 차거란침공의
고려 최고의장군은
흥화진의 양규장군
그러나 역사에많이안알려져 아쉽네요
그래요?
강감찬 장군은 무신이 아닙니다
문신입니다
이런 신발끈 암내 제대로 나네 ㅋ
그렇다 들었습니다
문신이라기 보다는 당시 문벌귀족이 보던 과거시험에는 전쟁에서 이기는법같은 시험문제도 있었기때문에 문신이지만 전쟁쪽도 전문지식이 있어야 했슴
중국 사서에 고려는 그 영토가 남북보다 동서가 더 길었다고 하던데.
송나라 기록에는 고려가 남북으로1800리 동서로 3000리라고 하였음
우리가 역사를 통틀어서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게 중국과 일본 모두 한반도를 꺾은 정권은 제국이 되어 호령하고 한반도를 굴복시키지 못한 정권은 망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 저들은 중국이 아니었음 거란 몽골 여진 모두 한족 왕조들도 죽기로 싸우다가 점령당하고 망했음 그들은 절대 중국이 아니었죠
굿정보~~
자랑스러운 통쾌한 승리~!!
위대한 고려의 장수 강감찬 . 하늘에서 작금의 사태를 어찌 바라볼까 ? 조상님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
귀주대첩의 강감찬장군, 한산대첩의 이순신장군은 반드시 작전을 준비하고 맞장을 떴다.
저거 거란군이 해볼만해서 싸운게 아니라 개경에서부터 후퇴할때 달고오던 고려군 + 귀주에서 막고있던 고려군 사이에 끼어서 오도가도 못해서 막고있는 고려군 뚫을려고 지친상태로 싸운거라더라고요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봤어요
우리도 칠십까지 장군유지하자
노장이 잘하면 정년보다 널리쓸줄알아야지 ..강감찬은 지금도 있다. 근데 우린 보지 못하고 있어서 문제다...육사해사공사에 묶이지 말아야한다.
멋있다 강감찬장군님 최고에요
아니, 귀주대첩 이후에도 거란군은 확인 된것만 해도 2번이나 더 침략했습니다. 고려는 이겼지만, 계속된 거란의 물량 공세에 지 쳐서 결국 거란과 화해 했습니다.
거란 3차 전쟁은 고려의 완벽한 승리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고려가 어렵게 어렵게 승리한 전쟁입니다. 까닥했으면 고려가 질 뻔한 전쟁이었죠. 고려의 작전은 거란군을 야전에서 격파하여 개경까지 못 내려오게 만드는 작전이었는데 거란군은 피해을 입으면서도 개경까지 내려왓쬬. 그때 잘못햇으면 개경이 점령당할 뻔했죠. 현종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죠. 거란군은 철수하면서 귀주방면으로 왔었고, 그때 강감찬의 고려본군과 전투를 벌였죠. 그때에도 김종현 부대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귀주에서도 질뻔했습니다. 3차 전쟁은 완벽한 고려의 승리였고 완벽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에도 아슬아슬한 위기가 2번이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8세기 페르시아지도에는 현한반도는 안신라, 현중공땅의 중동남부는 밖신라 라고 표기되어 있네요
낙성대공원서 이영상을 보니 웅장해. 진다
님들,
고려가 거란 병력을 전멸시키고 왜 북진을 하지 못했냐고 하신다면, 그 위에 여진이 있었기 때문이고, 거란도 멸망할 만큼 타격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거란의 대병력을 막느라 청야전술을 펼쳐야 했기때문에 국토의 훼손등 고려 자체로도 타격을 입어 먼 거리의 병참지원도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의 반 이상은 물자지원입니다. 그래서 항상 치중을 중요하게 여기죠.
그리고 만주는 생각보다 척박해서 한반도에 거주하는 농경민족이 죽을똥을 싸서 농사를 지어야 할 정도로 농사짓기가 힘들었나 봅니다. 유목민족들은 농사지을 엄두를 내지 못한걸 보면 말이죠.
귀주대첨이 끝난 후 그대로 밀고 들어가 거란을 접수했어야 했는데...
고려초기만해도 20만대군은 기본이었다. 고려후기로 들어오면서 5만도 겨우 모음. 최영이 고려초였으면 요동을 노려볼만 했었음. 이성계도 회군 안했겠지.
@@라쿤너구리-n5f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네ㅋㅋ 조선 때 군대는 양반 빠지고 유생 빠지고 향리 빠지고 노비 빠지고 평민은 방군수포 대립해서 제대로 훈련받은 군대자체가 없던 나라인데 도대체 왜 이런 거짓말을 퍼트리고 다니세요?
@@라쿤너구리-n5f평시 정예병ㅇㅈㄹ ㅋㅋ 아니 요즘 한국사 시간에 조선시대 군사제도 다 배울 텐데 혹시 나이 50 넘었어요?
@@라쿤너구리-n5f그리고 고려가 상대한 여진과 조선이 상대한 여진이 같습니까? 수준이 같아요?ㅋㅋㅋ 에효
고러 영토가 ...
원과 동맹 맺자 원 황제가 대국과 동맹을 맺었으니 이 아니 기쁜가 하고 사신에 연회를 했지요
도대체 대국 과 동맹 맺었다고 기뻐한게 사료에 나와요 ?
왜 왜곡 하죠 ?
동맹이 아니고 신하가 된겁니다.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수,당도 꺽은 나라가 항복의사를 보내왔으니 좋아한거예요...;;
@@IHATECHINA 정확히 얘기하세요. 쿠빌라이가 칸. 대권 후계 싸움하는데. 고려가 항복하니. 당 에게도 항복 안했던 고려(고구려라와 차이를 모른채. 또는 차이를 무시한채)가 항복하니. 그걸 후계 싸움의 명분중 하나로 이용한겁니다. 제대로 역사를 알고 떠드세요
지랄 ㅋㅋㅋㅋ 뭔 대국타령이냐
내가 이래서 환빠들을 혐오하지 지딴에는 팩트 운운하면서 공부하라고 하지만 정작 자기내들은 위서인 환간고기 신봉하고 사료를 지 ㅈ대로 해석하는 모순적인 새끼들
지금 한반도에 7천만이 사는데 만주 조선족 몇명이냐? ㅋㅋㅋ 유목민족이 쓸데도 없는 땅에서 사는게 뭐 대단한 거라고 영토타령
1019년 3월 10일 귀주대첩이었고
2019년 3월 10일 나의 마지막 예비군 동원훈련날이었다
강감찬장군의 부하장수 강민첨장군의 후손입니다.진주강씨 사평공파 26대손입니다
고구려 이후 평야에서 한타 싸움하는데 승리한 대업적이죠
평야에서 회전은 병려ㄱ이 깡폐다 똥개도 자기집에선 한목 먹고들어가는데 10만이라지만굼주린 병사가 고려를 이길수 있을까요^^
그리고 거란역사상 그때까지에 모든전쟁에서의 사망자를모두 합친것보다 많이죽었다네요
대단한 민족
지금 시대에 태어난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개선하는 강감찬을 현종이 달려나가 손을 붙잡고 울었다는 ㅋ
조선시대가 얼마나 한심한 시기였냐면 부인이 지붕에서 물이새고 양식이 떨어진다고 고해도 서방이란 놈은 양반체면 구긴다고 타박만 하던 500년동안이나 무능한 시대였다
이분은원래 문산인데 싸움하는 거는 젊은애들이고 머리를 잘쓰는건 사령관이라는.이분도 칠순넘어 전략을 잘썻고.임란때도 권율장군도 환갑이넘은 문신으로 광주목사였는데 머리를 잘써서 잘막고 도원수가됨. 고로 싸우는건 장비 관우인데...전략은 제갈량같은 애가 있어야 한다는거.
거란 병력이 더 적어서 허접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을텐데 당시의 거란은 동아시아 최강국가였음. 특히 기병을 주력으로 사용하여 동아시아를 휩쓸던 당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하고있던 거란임. 귀주대첩은 이런 거란의 최전성기에 주력군을 괴멸시키며 고려 거란 북송의 세력 균형을 맞추게 되면서 100여년의 화친이 이어지며 고려의 전성기를 맞이할수 있게됨.
3대 대첩 중 가장 저평가 받는 전투이지만 전투 이후 결과는 가장 좋았던 전쟁임
고구려는 살수대첩 이후 전쟁 후유증 때문에 당나라에 저자세 외교를 해야했고 한산도 대첩은 왜군의 진격이 멈추는 정도였죠
반면에 귀주대첩은 승리 후 100년의 평화가 지속됨
그리고 강대국의 간섭도 사라짐
강감찬은 장군이 아님. 문과를 급제한 문관임. 원래 고려나 조선은 군을 지휘하는 원수에 문관을 부원수에 무관을 임명하는게 관례
바람이 바뀐게 우연은 아닐것 같고 해마다 바뀌는 바람의 경로를 토착민이 알려줘 미리알고 평야에서 전투를 벌인거겠죠.아니면 유독 평야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거란과의 전투는 병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장수로서는 무모하기 짝이없는 전투였겠죠~
우리의 고려는 상상이상의 땅을가지고 있었음~
ㅈㄹ
꼭 기억하겠습니다
고구려 대장군 강이식 장군의 후손 ~ 강감찬 장군 역시 제갈량 저리가라네
궁금한건데... 청나라 팔기 10만VS 고구려 개마무사 1만으로 뜨면 누가이김?
대한민국이 100년을 영화를 누릴려면 중국과의 일전은 피할 수 없을거 같네요..
화면 설명 날자가 다르네요.
삼국시대 이후로 고구려 와 고려만이 중국과 동등한 외교를 했고
당당하게 무역을 했다.
이런 시점은 오로지 한반도만을 바라보는 관점
귀주다첩의 승리는 사실 동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결정적으로 칭기스칸의 몽골군이 발원 할 토대가 되어줬음
어디 강씨 인가요?
진주 강씨입니다
강감찬은 장군 아님..
강감찬장군의.
귀두대첩 역시 최고
고려군이 무려 20만이 넘었다니 중원을 넘볼수도 있는 전력인데
강감찬의 후손입니다.
진짜 거란전쟁 3차전은 레전드다
한반도 지도가 왜나옴? 그 평지는 북경위쪽이지 한반도가 아니라고
귀주대첩 저쪽 맞지않나?
환빠들 아직도 이러고다니네
@@모래성-i7d 중국 동북공정도 다 맞는 말이지~~? ㅋ
이걸로 직업을 삼으려면~
고려역사부터 다시공부하고, 전쟁이일어난 실제장소지도부터 올려놓고 방송합시다~
어글리코리언인거 광고하는것도아니고,
혹시?
근본없는 조상시조도모르는 중공한족놈인겨?
너네는 너네 나라 역사나 얘기하세요. 너네는 너네 역사도 없고 너네 말도 없냐? 진짜 도둑국이 누군데?
강감찬 장군님의 정신이 이시대에 요구됩니다. 우리는 미국의 속국이 아닙니다.
이런역사를 제대로 가르켜야 합니다~
강감찬은 원래 장군이 아닙니다. 문관 출신이에요.
왜 만주일대 발해영토를 차지하지 못했을까
ㅡㅡㅡㅡㅡ 참수작전 즉각실시하라.
우리역사상 극히드문 대회전..거기다 대승..
평지면 머릿수가 이기지 2배인데...
도합30만명이라면 과거기록이니 지금기준이라면3만명정도 그중 비전투인원이 2만명쯤되겠다
실질적으로 전투한인원은 1만명
전투중 사망은 200여명 부상은 4천명쯤될꺼고 굶어죽거나 병걸려서 죽은사람은 2000정도 될꺼고
나의 선조 강감찬 자랑스럽습니다 다 우리 강씨 덕에 여러분이 한글 쓰고 사는겁니다
만나는 이씨들은 죄다 이순신 후손이라하고 김씨는 신라왕족후손이라 하고 강씨는 강감찬후손이라 하는데 대체 그럼 평민과 노비의 후손들은 다 어디로 간게냐
당나라 군대가 되어버린 현군...개혁이 필요하다,군미필자는 고위직 공무원도 진입불가...법으로 제정하자
뭔가 군국주의같으면서도 나쁘지 않다
미필자 이명박 윤석렬을 대통령으로 뽑는데 뭘 기대할까요
2찍들은 미필자를 뽑아놓고 빨갱이 타령하는거 보면 가관입니다
나의 조상님이 셧군요..
하나만 더 정확히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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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요는 중국의 송과 대립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줄곧 요(거란)는 송과 국교를 단절할 것을 고려에게 요구했죠.
1차 80만
2차 40만
3차 10만
점점 조금씩 쳐들어온 이유는 송과의 대립과 흥기하는 여진을 막는데도 필요했기 때문인데
3차 침략 후
송과 거란의 살벌한 대립이 이어졌고
그래서 고려는 이 역학 관계를 이용한 것입니다.
즉 단순히 고려가 강하고 무서워서가 아니라 송과의 대립이라는 큰 이유가 고려를 침공하지 않은 더 큰 이유로 작용한 셈이죠.
끝!
우리가 따져봐야 뭐하나요, 정작 중국이 거란이고 송이고 몽골이고 명이고 청이고 다 중국이라는데 구별해줘봐야 걔들이 인정 안 하죠. 그렇게 따지면 화내고 혐중하는 것들이라고 욕해요. 님 지금 혐중한다고 욕한다니까요ㅋㅋㅋ 그들 뜻대로 오랑캐고 한족이고 한몸이라 생각해줘야죠ㅋㅋㅋ
낙성대 후배입니다
선배님은 우리 낙성대의 간판이십니다
강감찬 장군의 전술과 지혜가 비범하여 여우의 아들이었다는 설화도 전해졌죠.
고구려 이후에 한번도 만주로 나가본적이 없군..전쟁터도 맨날 우리땅...대첩이면 뭐해..나라는 초토화 됐구만
저때 요동까지 짓누르고가고 정안국이 멸망 안했었다면 고토수복 온전히 가져올수도 있었는데
고려의 서경은 북경입니다.
ㅈㄹ 판타지는 역사에 도움이 안됨.
@@kangben-y7y 고려의 서북국경은 일제때 일본학자가 가르쳐준걸 아직도 배우고 있네욬~~ㅋ
이걸로 직업을 삼으려면~
고려역사부터 다시공부하고, 전쟁이일어난 실제장소지도부터 올려놓고 방송합시다~
어글리코리언인거 광고하는것도아니고,
혹시?
근본없는 조상시조도모르는 중공한족놈인겨?
@@강산-p8j 어찌 고려의 서경이 북경입니까. 그럼 고려가 원나라와 전쟁해서 수도를 빼았겼다는 건데, 말이 됩니까? 당시 북경은 금나라 서경으로 금나라가 원나라에게 멸망하면서 현재의 북경이 원나라의 수도가 됬어요. 수많은 역사서가 증명을 하는데, 뜬금없이 고려의 서경이 북경이라니..
@@kangben-y7y 고려의 서북 북경을 일제때 일본학자가 가르쳐준걸 지금도 배우고 있다고~~
서북국경..
청천강서 원산만이라고 배운 고려의 북쪽 국경이 일본놈이 가르쳐준 고려의 국경이라고~~
20만으로 10만이긴게 그렇게 대단한 전투인가..
저당시 72세면 살아있는것만으로도 사람의경지를 넘어선건디
영아사망율이 지금보다 높아서 평균수명이 짧은거라서 오래살사람은 오래살았습니다.... 평균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세요.... 지금도 평균연령보다 더 오래사는 사람많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많이 늘어난거에여.. 조선대 보다 역사가 흐를수록 영아사망률이 낮아져서 인구가 늘어나고
강감찬 할아버지도 늙어서 까지 왕에게 쓰임을
당하셨지요. 황희보다 더 빡세게 근무하심
강감찬의 작위가 "천수현 개국남(天水縣 開國男)" 이라고 하는데요. 무슨뜻인지 아시나요???
강감찬의 시호는 '인헌'입니다. 천수현 개국남은 전란 이후 강감찬 장군이 살아계실 때 받은 작위 이름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러브히스토리
오기했습니다. 그럼 그뜻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작위가 "천수현개국남"
저도 정확히는 몰라서 찾아봤는데요. 천수현은 작위와 함께 받은 땅의 이름인 것으로 보이네요. 개국남은 작위 이름이구요
@@러브히스토리
참으로 이상합니다.
고려는 왕조국가인데 작위를 주다니요??
작위는 왕이 봉건영주에게 땅과 함께 하사하는 것인데요??
천수현은 어디고 공후백남자 이렇게 작위를 내리는데...
고려는 봉건제 사회?
참 역사는 그렇게 안 배웠는데오. 그렇죠??
@@가온길-j6m봉건영주라는건 중세유럽에 쓰이는거구요. 동아시아의 봉건제는 중국이나 일본에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중국의 군현제를 차용했기에 옳지 않습니다. 당시 공을 세운장수에게 땅과 작위를 주는건 일상다반사였습니다. 근데 그러한 명목으로 내리는게 중세유럽이나 중국, 일본과는 다른 개념으로 하사를 하는것입니다. 이것을 같다고 생각하시면 큰일입니다. 재야사학에서는 아무거나 짜집기해서 이어붙이는데 역사왜곡으로 빠질수 있으니 조심하셔야합니다.
군사국가(몽고.거란 외세)와 유교국가(사상정치) 나라 운영 자체가 다르지 않나
우선 고려군이 20만 거란에 10만에 두배란거에 놀람
평야에서 제되로 붙는 전쟁은 이때뿐인듯.
육지에서 거둔 승리중 살수대첩과 함께 양대산맥~
당시 20만 대군이면 18세~40세는 싹다 참전
정확한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고 대륙
그 강감찬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이 나오지요
강감찬 역할은 최수종
와.. 고려에서 20만을 동원할수있었구나 ㅋㅋ
1000년 전에 70대라니 진짜 귀신이다 귀신, 지금으로 치면 120살인거야.
우리나라가 불교를 국교로 중국과 대립할때는 자주와 자립 국방이 강했는데 그 어문 유교 사대부들이 생기면서 중국을 쳐다보고 하면서 거지 국가가 된거임. 역사의 교훈임. 우리 민족은 중국과는 친해서는 안되는거임.
사실상 동북아 최강자로 등극. 송나라, 요나라는 이후 고려 사신에게 조차 설설 기어야 했음.
72세에 전쟁을 치뤘다니
우리나라도 20만을 동원할수 있었네
이정도면 중국도 한번 털러가보지
고려의 군사력은 당시 송나라의 그것 보다 우수했습니다. 고려는 송과 대등관계 였습니다
강조도 30만인거 동원했다가 다 찢겼잖음
저 20만은 걍 오합지졸 영끌이었음. 정규군은 거의 박살나서 강제징집+패잔병으로 머릿수만 채운거임. 나라의 명운을 건 마지막 병력.
@@ant879증거 올려보삼
우리나라가 공략이 힘든게 보급이 힘들어서 입니다 해서 우리나라가 먹힌 역사보면 전부 빠른 속도로 밀어붙인 몽골과 청 둘다 강한기병을 가지고 있었죠 반대도 같습니다 우리도 침략을 위해서는 보급이 중요한데 우리는 당시 북방민족보다 기동력이나 현지 보급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올라갔다 해도 많은 영토는 먹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에너 보급은 정말 중요합니다
거란의 전멸한 10만 기병 군대는 황제 직속의 오늘날의 수방사 직속의 정예병이라는게 더 대단한듯. 거란 황제가 패전사령관 소배압의 낮가죽을 벗겨 버리겠다고 노발대발... ㅋ
항상 목숨바쳐 싸운 병사들에 대한 언급은 없는게 역사지
햐...
72세 라면 쏘팔메토 먹고 겨우 오줌 누는 시기인데 전투지휘관 이라니...
당시 거란의 지휘관인 소배압의 개경 진공작전이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 600년 이후, 조선 인조 (최악의 병신 ㅆㅎㅌㅊ ㅅㄲ) 때 청태종이 똑같은 작전을 펴서 성공했으니까요. 결국 국방력의 차이와 훌륭한 리더의 유무가 승패를 결정지었다고 봅니다.
그당시 고려군이 20만명?
지금도 군인 50만명인데
그당시군복무기간이 10년입니다 10년동안 군대에 있는건 아니고 군대에서 복무도하고 농사도하고 합니다
한반도안에는 귀주 살수가 없다는 것이 사실
그럼 귀주대첩은 어디일까?
고려군 피해자 숫자는 어딜봐도 안나오네 분명 고려군 피해자도 많을텐데 거란족 피해자만 나오네
평균수명 40세 정도 아니엿음 ??
양쪽 군대 30만이 들어설 장소가 한반도에서는 30만이 있을 평지는 없다 지금의 중국의 북쪽이라야 가능하다 좀 제대로 식민사관적 지도를 사용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