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개념쌓기 주인장 홍준성입니다. 오늘 하루, 저와 함께 인문학 개념들을 정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함께합시다!) *정주행 첫 번째 영상 ‘진리’는 여기입니다. ruclips.net/video/Q5ZBYzaDWb4/видео.htmlsi=05GD8awm07fyqxPv
그래서 지젝은 변증법을 영양분을 소화하고 스스로를 비대하게 만드는 섭취가 아닌, 섭취 이후에 그 내용들을 배설하는 과정과 같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유는 늘 사유이며, 개별성을 추구하더라도 그것을 늘 보편성과의 연관 속에서 부정적인 방식으로 취해지는 것이지,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추상화, 보편화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 놓치는 지점은 바로 추상/보편적인 것에 대한 부정인 개별적인 것은 바로 그렇게 보편적인 것과의 부정적 관계를 규정으로 지닌다는 점을 놓친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념이 사물을 죽인다는 말은 '상징적 거세' 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처럼 당연한 하나의 사실이나, 그렇다면 대체 개념에 의해 죽거나 거세되기 이전의 사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는 난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살아 숨쉬는 사물, 언어에 의해 난도질 되기 이전의 생명으로 넘치는 생동적인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애초에 '현실'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그것이 비-생명으로서의 사물들의 떠도는 모습을 지닌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나요? 코스모스는 카오스에서 추출된 것이라는 말은 옳지만 그 규정은 늘 이미 과거의 것으로 취해지는 사후성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제가 보기엔 보편성과 개별성 또한 이미 하나의 이율배반으로써, 그 둘을 외적으로만 대립하는 것으로 둔 채 어느 한 쪽을 취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독단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니체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국 니체도 이런 형이상학적 독단에 빠진게 아닌가 싶은 구절들이 조금씩 눈에 밟힌다는 점이네요. 제 생각에는 보편성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비-보편성이라는 무한판단의 형태로 이어져야지, 개별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게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유 바깥의 사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견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구절들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확실히 보편성과 개별성은 하나의 이율배반인 듯싶습니다. 스피노자주의자가 되면 해결될 문제일까? 그렇지만 실천적인 입장에서 인간이, 혹은 적어도 저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끄응. 또한 니체에 대해서 언급해주신 대목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만, 그럼에도, 으음. 니체가 형이상학적 독단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은 구절들을 봤다는 대목은, 개인적으로 저는 되레 그게 니체 철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적으로 솔직한 대목이라고 봅니다. 여러 영상은 짧은 시선을 소개하는 자리인지라 구체적으로 말하진 못했지만,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도 그런 속성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인정했던 사람이, 바로 니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자리가 되면 더 자세히 풀어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개념쌓기 1. 비판의 한계 맞습니다. 결국 제 비판은 니체의 핵심을 파훼할 수가 없는듯 합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니체는 지적 진실성을 중요하게 여겼으니 말입니다. 단지 그러한 독단(혹은 도그마dogma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을 보다 명시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덧붙일 뿐 결국 저의 비판도 니체의 해석에 의거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니체의 부정이란 부정의 부정이었다...고 부연하는 것에 그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세기에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유를 열어젖힌 이 미친 철학자가 결국엔 아포리즘 없이 철학을 할 수는 없었다는 사정을 미루어보면, 제가 비판으로 내놓은 내용도 명시화되지는 않았을 뿐이지 니체에게도 최소한은 어렴풋한 느낌으로나마 존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니체도 이런 말을 살아있을 때 들었으면 '오! 바로 그거야! 나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 스피노자 vs 헤겔 그러나 저는 스피노자주의에 반대합니다. 여기서의 제 입장은 개별성과 보편성에 대하여 어느 한 쪽을 옹호하는 것 혹은 그것을 넘어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봉합으로서의 순진한 종합이 아니라 보다 더 헤겔적인 종합으로 나아간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본 영상에서 이미 비판한 종합이므로, 저는 이를 옹호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립니다. 즉, 여기서 나타나는 종합으로서의 부정의 부정이란 억지스러운 봉합이기 보다는, 대립을 종합으로 보는 (즉, 간극을 그대로 두는) 관점적인 전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 둘 사이에서 요동한다는 사실은 곧 이어 그것이 곧 종합이라는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적 전환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원영적 사고가 있습니다. '대립을 극복할 수 없다고? 그러면 앞으로는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거네? 간극이 곧 종합이라니, 우왕 이거 완죤 럭키비키잖앙😊😊😊😊'
@@개념쌓기 + 자꾸 장문으로 댓글을 달게 되어서 죄송하네요.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늘 선생님의 영상을 보면서 '와, 이렇게 심오한 통찰을, 이렇게 쉬운 언어로, 이렇게 압축적으로 표현한다고?'라고 놀랄 때가 많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응시에 대한 해설에서 대타자나 주이상스, 상상계 등등의 용어 없이 그렇게 쉽고 일목요연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늘 보면서 다시 배우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 저도 보다 이해하기 쉽고 핵심적인 내용을 개진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늘 사유하고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것들을 통해 실천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늘 훌륭하고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wwafwqr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장문으로 선생님의 의견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건 유튜브 운영의 즐거움 중 하나이죠. 물론, 으음, 여기서 규모가 더 커지면...(그땐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해볼 만하죠!). (2) 댓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이나 종합 과정에서, 확실히, 모순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의 고통과 고뇌가, 뒤따른다고 봅니다. 음. 이 부분에 대해선 언젠가 또 영상에서 풀 일이 있지 않을까! *허허, 이러저러한 조악한 인생 경로를 밟다보니, 약간이나마 쉽게 설명하는 스킬이 생기더라고요(아오, 소설도 이렇게 적었어야 했는데!).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개념이 없으면 인간의 사고는 1차원에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죠. 개념이라는 벽돌로써 이룩한 건축이 인류의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하신것처럼 그 건축물의 드리워진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때때로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혹은 다른 측면으로 보기 시작할 때 개념너머의 개별자를 볼 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미라가 깨어나는 순간이죠!
세상은 진리고 진리는 고정불변하다. 세상의 현상은 진리의 부분이고 인간은 그 부분중 하나이다. 인간은 부분중에서도 공통분모만을 바라보며 진리를 탐구하려한다. 이러니 진리가 보일리 있겠는가. 결국 진리의 편린일 뿐인 인간은 진리의 편린의 편린만을 보고 느끼며 그게 진리인냥 생각하는것이다. 이게 나의 망상이다.
나는 엠페도클레스의 전기를 읽고,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느꼈네. 나의 이 수기는 내가 의식하는 한,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네. 아니, 스스로를 한 사람의 미천한 인간으로 여기고 있네. 자네는 보리수나무 밑에서 우리가 '에트나 산의 엠페도클레스'에 대해 이야기했던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네. -어느 옛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함에 있어 편견은 최상의 도구가 됩니다. 허나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초면인 사람을 분류해내는 것이기에 오류가 직접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편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쌓이는 것이죠. 잘못 만들어진 자를 이용해 잰 길이가 정확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리 현명하지 않은 행위인 것처럼, 잘못 만들어진 편견이 오류를 일으킴에 불만을 가진 채 편견을 멀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1) (0:28) (여러 예시 중) 우리의 독일 군인은 파멸적 사유를 하는 케이스 아닌가요? (도망) (2) (1:05) "이것저것 하죠" > 근데 범인이 하는 행위라면 "이것저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오빠가 하는 행위는 '영웅호걸적인 행위' 아닌가요? O.o (3) (1:44) "인간이길 원치 않은 인간" > 헉 ㅋㅋㅋ 정말 니체는 인간이길 원치 않았던 건가요 ㅋㅋㅋ 전 니체의 욕망이 정말 그러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던데요, 오빠는 조금 다르게 보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O.o Nachschrift1. [미식] 아 오빠 친구들이랑 수다 떨다가 나온 소재인데요 ㅋㅋㅋ 제가 요새 야식으로 김치전 만들어먹는 게 취미라고 했는데요, 친구들이 '포장된 걸 프라이팬에 데우기만 하는 거야, 아니면 직접 반죽 만들어서 해먹는 거야?' 라고 물어보길래 후자라고 대답했더니, 다들 기겁 수준으로 놀라면서 니가 그 정도로 요리를 잘했냐, 진짜 부지런하다 등등의 칭찬을 하더라고요 ㅎㅎ;; (그래서 나중에 기회 있으면 나눠주기로...) 근데 김치전 정도는 1인가구도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서 저는 오히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얼떨떨해했는데, 오빠도 "기겁 수준으로 놀라면서" 같은 반응은 좀 과하다고 보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ㅎㅎ;; 아 그리고 관련해서 (독일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엄마랑 이야기 나눈 건데, 엄마는 독일에서 김치전을 조리하려면 가장 어려운 게 김치 확보 아니겠냐고 하던데요, 생각해보니 '어 그렇네' 싶어서 살짝 아쉽기도 하더라고요 ㅠㅠ Nachschrift2. [미친년주의] 오빠 갑자기 웃기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요 ㅋㅋㅋㅋ 혹시 남친한테 신혼여행을 동부전선으로 가자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어떨 것 같은지 여쭤봐도 되나요? ㅋㅋㅋㅋ
(1-2) (절래절래) (3) 아, 음, 오늘 영상 콘셉트가 너무 짧아서, 이게 문맥에 따라서 달라지는 대목이죠. 저 '인간'이 지목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제 해석을 물으신다면, 으음. 개인적으로 저는 니체가 정말로 차라투스트라가 되길 원했을까, 하는 의심을 하면서 니체의 책을 읽는 편이랍니다! (*더 구체적인 답변은 다음 기회에!) NS. 으음? 독어독문 전공자와 요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니 뭐, 김치전을 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저 친구들은 저보다 혜린 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사람냄새 풀풀 나는 정보들을 알고 있을 테니까...(으음, 무슨 인생을 살아오신 거죠?). 그리고 이건 질문과는 별개인데, 야식을 드실 수 있는 게 부럽군요. 저는 소화가 영 별로라서 어느덧 야식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답니다...(아아). 젊고 건강하실 때 충분히 즐기시길! (...이라고 말하기엔 나도 아직 젊은 걸...흑흑). NS2. 반드시, 반드시 선생님과 취향이 같은 남자를 만나시길 추천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개념쌓기 주인장 홍준성입니다.
오늘 하루, 저와 함께 인문학 개념들을 정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함께합시다!)
*정주행 첫 번째 영상 ‘진리’는 여기입니다. ruclips.net/video/Q5ZBYzaDWb4/видео.htmlsi=05GD8awm07fyqxPv
오늘도 저의 인문학적 소양을 채워주시는군요.. 잘먹겠습니다 그리고 늘 느끼는게 썸네일을 잘뽑으시는듯
잘 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젝은 변증법을 영양분을 소화하고 스스로를 비대하게 만드는 섭취가 아닌, 섭취 이후에 그 내용들을 배설하는 과정과 같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사유는 늘 사유이며, 개별성을 추구하더라도 그것을 늘 보편성과의 연관 속에서 부정적인 방식으로 취해지는 것이지,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추상화, 보편화의 폭력에 대한 비판이 놓치는 지점은 바로 추상/보편적인 것에 대한 부정인 개별적인 것은 바로 그렇게 보편적인 것과의 부정적 관계를 규정으로 지닌다는 점을 놓친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념이 사물을 죽인다는 말은 '상징적 거세' 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처럼 당연한 하나의 사실이나, 그렇다면 대체 개념에 의해 죽거나 거세되기 이전의 사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할 수는 없다는 난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살아 숨쉬는 사물, 언어에 의해 난도질 되기 이전의 생명으로 넘치는 생동적인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요? 애초에 '현실'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그것이 비-생명으로서의 사물들의 떠도는 모습을 지닌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나요? 코스모스는 카오스에서 추출된 것이라는 말은 옳지만 그 규정은 늘 이미 과거의 것으로 취해지는 사후성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제가 보기엔 보편성과 개별성 또한 이미 하나의 이율배반으로써, 그 둘을 외적으로만 대립하는 것으로 둔 채 어느 한 쪽을 취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독단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니체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국 니체도 이런 형이상학적 독단에 빠진게 아닌가 싶은 구절들이 조금씩 눈에 밟힌다는 점이네요.
제 생각에는 보편성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비-보편성이라는 무한판단의 형태로 이어져야지, 개별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게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사유 바깥의 사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좋은 의견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구절들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습니다. 확실히 보편성과 개별성은 하나의 이율배반인 듯싶습니다. 스피노자주의자가 되면 해결될 문제일까? 그렇지만 실천적인 입장에서 인간이, 혹은 적어도 저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끄응. 또한 니체에 대해서 언급해주신 대목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만, 그럼에도, 으음. 니체가 형이상학적 독단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은 구절들을 봤다는 대목은, 개인적으로 저는 되레 그게 니체 철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적으로 솔직한 대목이라고 봅니다. 여러 영상은 짧은 시선을 소개하는 자리인지라 구체적으로 말하진 못했지만,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도 그런 속성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임을 인정했던 사람이, 바로 니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자리가 되면 더 자세히 풀어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개념쌓기
1. 비판의 한계
맞습니다. 결국 제 비판은 니체의 핵심을 파훼할 수가 없는듯 합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니체는 지적 진실성을 중요하게 여겼으니 말입니다.
단지 그러한 독단(혹은 도그마dogma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을 보다 명시적으로 만들어서 거기에 덧붙일 뿐 결국 저의 비판도 니체의 해석에 의거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니체의 부정이란 부정의 부정이었다...고 부연하는 것에 그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세기에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유를 열어젖힌 이 미친 철학자가 결국엔 아포리즘 없이 철학을 할 수는 없었다는 사정을 미루어보면, 제가 비판으로 내놓은 내용도 명시화되지는 않았을 뿐이지 니체에게도 최소한은 어렴풋한 느낌으로나마 존재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니체도 이런 말을 살아있을 때 들었으면 '오! 바로 그거야! 나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 스피노자 vs 헤겔
그러나 저는 스피노자주의에 반대합니다. 여기서의 제 입장은 개별성과 보편성에 대하여 어느 한 쪽을 옹호하는 것 혹은 그것을 넘어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봉합으로서의 순진한 종합이 아니라 보다 더 헤겔적인 종합으로 나아간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본 영상에서 이미 비판한 종합이므로, 저는 이를 옹호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립니다.
즉, 여기서 나타나는 종합으로서의 부정의 부정이란 억지스러운 봉합이기 보다는, 대립을 종합으로 보는 (즉, 간극을 그대로 두는) 관점적인 전환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 둘 사이에서 요동한다는 사실은 곧 이어 그것이 곧 종합이라는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적 전환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원영적 사고가 있습니다.
'대립을 극복할 수 없다고? 그러면 앞으로는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거네? 간극이 곧 종합이라니, 우왕 이거 완죤 럭키비키잖앙😊😊😊😊'
@@개념쌓기
+
자꾸 장문으로 댓글을 달게 되어서 죄송하네요.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늘 선생님의 영상을 보면서 '와, 이렇게 심오한 통찰을, 이렇게 쉬운 언어로, 이렇게 압축적으로 표현한다고?'라고 놀랄 때가 많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자면, 응시에 대한 해설에서 대타자나 주이상스, 상상계 등등의 용어 없이 그렇게 쉽고 일목요연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늘 보면서 다시 배우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 저도 보다 이해하기 쉽고 핵심적인 내용을 개진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늘 사유하고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것들을 통해 실천하고 살아가겠습니다. 늘 훌륭하고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wwafwqr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장문으로 선생님의 의견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건 유튜브 운영의 즐거움 중 하나이죠. 물론, 으음, 여기서 규모가 더 커지면...(그땐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해볼 만하죠!).
(2) 댓글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이나 종합 과정에서, 확실히, 모순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의 고통과 고뇌가, 뒤따른다고 봅니다. 음. 이 부분에 대해선 언젠가 또 영상에서 풀 일이 있지 않을까!
*허허, 이러저러한 조악한 인생 경로를 밟다보니, 약간이나마 쉽게 설명하는 스킬이 생기더라고요(아오, 소설도 이렇게 적었어야 했는데!). 칭찬, 감사히 받겠습니다!
개념이 없으면 인간의 사고는 1차원에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죠. 개념이라는 벽돌로써 이룩한 건축이 인류의 문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하신것처럼 그 건축물의 드리워진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때때로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혹은 다른 측면으로 보기 시작할 때 개념너머의 개별자를 볼 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미라가 깨어나는 순간이죠!
말끔한 요약!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어떤 사물에 대한 개념이 단순히 사물의 일부이기 때문에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할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개념 자체가 사물에서부터 발생하는지 여부에 대해선 주관적일 수 있기에 더욱이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칸트주의적 입장이시군요. 동의하는 바입니다
세상은 진리고 진리는 고정불변하다.
세상의 현상은 진리의 부분이고 인간은 그 부분중 하나이다.
인간은 부분중에서도 공통분모만을 바라보며 진리를 탐구하려한다. 이러니 진리가 보일리 있겠는가.
결국 진리의 편린일 뿐인 인간은 진리의 편린의 편린만을 보고 느끼며 그게 진리인냥 생각하는것이다.
이게 나의 망상이다.
의견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좋아
헿
나는 엠페도클레스의 전기를 읽고,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느꼈네. 나의 이 수기는 내가 의식하는 한,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네. 아니, 스스로를 한 사람의 미천한 인간으로 여기고 있네. 자네는 보리수나무 밑에서 우리가 '에트나 산의 엠페도클레스'에 대해 이야기했던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네.
-어느 옛 친구에게 보내는 수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편견은 나빠욧!"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함에 있어 편견은 최상의 도구가 됩니다.
허나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 초면인 사람을 분류해내는 것이기에 오류가 직접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편견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쌓이는 것이죠.
잘못 만들어진 자를 이용해 잰 길이가 정확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리 현명하지 않은 행위인 것처럼, 잘못 만들어진 편견이 오류를 일으킴에 불만을 가진 채 편견을 멀리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호외요!! 호외!
(1) (0:28) (여러 예시 중) 우리의 독일 군인은 파멸적 사유를 하는 케이스 아닌가요? (도망)
(2) (1:05) "이것저것 하죠"
> 근데 범인이 하는 행위라면 "이것저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오빠가 하는 행위는 '영웅호걸적인 행위' 아닌가요? O.o
(3) (1:44) "인간이길 원치 않은 인간"
> 헉 ㅋㅋㅋ 정말 니체는 인간이길 원치 않았던 건가요 ㅋㅋㅋ
전 니체의 욕망이 정말 그러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던데요, 오빠는 조금 다르게 보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O.o
Nachschrift1. [미식] 아 오빠 친구들이랑 수다 떨다가 나온 소재인데요 ㅋㅋㅋ
제가 요새 야식으로 김치전 만들어먹는 게 취미라고 했는데요, 친구들이 '포장된 걸 프라이팬에 데우기만 하는 거야, 아니면 직접 반죽 만들어서 해먹는 거야?' 라고 물어보길래 후자라고 대답했더니, 다들 기겁 수준으로 놀라면서 니가 그 정도로 요리를 잘했냐, 진짜 부지런하다 등등의 칭찬을 하더라고요 ㅎㅎ;; (그래서 나중에 기회 있으면 나눠주기로...)
근데 김치전 정도는 1인가구도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어서 저는 오히려 친구들의 반응을 보고 얼떨떨해했는데, 오빠도 "기겁 수준으로 놀라면서" 같은 반응은 좀 과하다고 보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ㅎㅎ;;
아 그리고 관련해서 (독일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엄마랑 이야기 나눈 건데, 엄마는 독일에서 김치전을 조리하려면 가장 어려운 게 김치 확보 아니겠냐고 하던데요, 생각해보니 '어 그렇네' 싶어서 살짝 아쉽기도 하더라고요 ㅠㅠ
Nachschrift2. [미친년주의] 오빠 갑자기 웃기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데요 ㅋㅋㅋㅋ
혹시 남친한테 신혼여행을 동부전선으로 가자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어떨 것 같은지 여쭤봐도 되나요? ㅋㅋㅋㅋ
(1-2) (절래절래)
(3) 아, 음, 오늘 영상 콘셉트가 너무 짧아서, 이게 문맥에 따라서 달라지는 대목이죠. 저 '인간'이 지목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제 해석을 물으신다면, 으음. 개인적으로 저는 니체가 정말로 차라투스트라가 되길 원했을까, 하는 의심을 하면서 니체의 책을 읽는 편이랍니다! (*더 구체적인 답변은 다음 기회에!)
NS. 으음? 독어독문 전공자와 요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잘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니 뭐, 김치전을 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저 친구들은 저보다 혜린 님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사람냄새 풀풀 나는 정보들을 알고 있을 테니까...(으음, 무슨 인생을 살아오신 거죠?). 그리고 이건 질문과는 별개인데, 야식을 드실 수 있는 게 부럽군요. 저는 소화가 영 별로라서 어느덧 야식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답니다...(아아). 젊고 건강하실 때 충분히 즐기시길! (...이라고 말하기엔 나도 아직 젊은 걸...흑흑).
NS2. 반드시, 반드시 선생님과 취향이 같은 남자를 만나시길 추천드립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던 요지가 이런 것인가요?
으음. 어쩌면!
1분 53초... 형, 나 너무 배고파...정주행으로 계속 핥는 중이야...
곧 수요일이야, 버텨보쟈, 화이팅!
오늘은 개념인 분들이라고 말을 안해주시네요
아앗, 다음 영상에선 꼭 넣는 걸로!
@@개념쌓기 의도하신 줄 알았습니다 ㅋㅋ
[개념의 미라]보단 [진리의 탐구하던 위인]이라 부르는 것이 더 멋져 보일 듯 하네요.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