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공사장비로 밤낮으로 터널을 뚫다보니.. 열약한 환경을 무릅쓰고 일하다 가신 분들 그늘에서 말없이 수고하신분들로 인해 오늘의 번영을... 우리는 지난 시절을 잊지 말고 오만하지 않아야 복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겠지요. 지난 시절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물다 갑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저때 저가격으로 3년이내 건설 했다는게 기적이고 신의 한수,,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동맥이 되어 지금 봐도 웅장하고 자랑스러운 경부고속도로, 공사 중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공사에 고생하신 어른들께 미안한 마음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의회가 건설하라고 압력을 줬지요 근데 원했던건 서울 강릉간이었고 그곳을 국가항으로 키우길 원했지요 원조를 해주던 당시여서 아무의지없는 국가 국민에게 무작정 지원을 하지말라 그러니 그나마 한국에 우호적인 미의원들이 힌트를 준것중 하나가 도로였고 항만과 녹지사업이었습니다 근데 박정희는 38선을 그은 주체가 미국이므로 니들 제안을 다 거부하겠다 선언 미국 지원을 다 끊으려고 했으나 이를 설득시킨 인물이 정주영이죠 여러일들이 이후에 생겼지만 부산항을 선택한꼴이 되어서 결과론적으로 잘된일이 되었죠
@@rushik-pf3kq전혀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이지요 경부고속도로는 1964년 박대통령의 서독방문시에 아우토반을 방문한 후 영감을 얻어 추진한 것입니다 당시 미의회가 고속도로 관련해서 압력을 넣은 적도 없고 서울 강릉 구간은 미국이 아니라 김대중이 대안이랍시고 내놓은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내나이 65세 초등학교시절 아버지가 대전에서 서울 볼일 있어서 가실때 고속버스 타고 가시면 안내양이 사탕도 준다고 해서 따라 가겠다고 울면서 떼써서. 아버지. 따라 그레이 하운드 타고 서울 다녀온적 있음 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고 고속버스 타본 무용담 이야기 하면 같은반 급우들 내주변에 몰려들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수업 시작종 친줄도 모르고 이야기 하다 선생님 한태 단체로 혼나던 기역이 새롭네요
@@ksl6629포니는 1977년부터 국내시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해도 국산 승용차는 포니와 브리사 정도였고 엑설은 1985년부터인가 시판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1980년대 초반에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요 당시만해도 교장 선생님도 버스로 다녔습니다 자가용이 있는 애가 전교에서 단한명 있었는데 그애가 마침 우리반이어서 가끔씩 하교할때 차를 얻어타고 갔습니다 오후4시만 되면 뒤꽁무니가 납작한 검정색 포니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걔가 나오면 태우고 가더군요 차안에서 40대로 보이는 운전기사가 있더라구요 당시만해도 관공서의 관용차는 대부분 검정색 찦차였습니다
@@vegar1781 뭐가? 일본의 하청공장으로 100원 벌어서 50원을 일본에 바치는 역할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 구조에 종속되어 천문학적 대일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배고픈 시절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추억이 버블버블이라곤 하지만, 씁쓸함도 잊지 말아야.
초창기 고속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는데 삼화고속 등을 타면 단거리인데도 안내양이 사탕을 나눠 줬던것이 생각나네. 안내양이 멋진 유니폼을 입고 근무해 고급 직업으로 인식되어 날씬한 미인들이 주로 일을했는데 어느정도 지나 사탕도 없어지고 버스회사에서 안내양을 유지 할 수가 없어서 사라졌지요. 날씬하고 이쁜 안내양이 많았는데... 그때가 좋았지요...
@@lch374213사진이 합성되었다니 무슨 귀신씨나락까는 개소리인가 김대중 김영삼 두사람은 죽을때까지 그 사진의 진실을 묻는 질문에 입도 뻥긋한적 없습니다 사실상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서울 강릉 노선을 주장했다는것은 또 무슨 얼어죽을늠의 개소리냐 그런적이 없습니다 그냥 고속도로 건설자체를 반대한 것입니다 만약 김대중이 당시 정말 서울 강릉 노선을 주장했다고 하면 진짜 진짜 나쁜 늠입니다 왜냐하면 당시만해도 강릉은 한적한 어촌인데 뭐 빨게 있다고 그쪽으로 도로를 닦습니까 그건 그야말로 아까운 국가예산을 길에다 버리는 것입니다 김대중이 당시 고속도로를 반대한 것은 돌대가리 여서 그랬던 것입니다
어쩌다 영상을 보니 1년이 지난 시점에 댓글 달아봅니다. 그 이유는 고속도로 건설시 설계속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도 최고가 110km밖에 안되죠. 현시점에서 보면 그동안의 직선화 작업과 차량의 성능개선에 비추면 쫌... 조만간 우리나라도 포천~세종(?)간 고속도로에 140km 설계도로를 건설한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대한민국을 못사는 나라,가난한 나라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으로의 진입 초석을 다진 분이 박정희 대통령 이였다고 100프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본인과 가족들보다 국민과 국가를 더 소중히 하셨던 박정희 대통령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대통령님^^
지금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판을치는 세상!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해야 미래가 보이는데 변하지 않는자는 미래를 볼수없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은데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어야 되겠는가? 한번밖에 올수 없는 세상 변화를 두려워 말고 끝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해보다 가야한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닐까?
직행은 완행버스 보다 더 비쌌고 직행은 바로 목적지까지 가는거였고 완행은 내가 중간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 진짜 그시절엔 포장이 안된 상태라 시골길 가다보면 덜그럭 벌그럭 우당탕 산닭 들고 버스타신분 계란을 볏짚에 돌돌말아 타신분 여러 가지 입니다 지금은 추억이며 당 시엔 힘들었음 타고 다니기 멀미는 기본임
78년 중2때 경주수학여행 생가나네 처음타본 관광버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 기억나네요 휴게소에 동물원이 있어서 사슴도보고 공작새도보고 참 신기햇어요 그시절이 너무 그립네요
부실한 공사장비로 밤낮으로 터널을 뚫다보니.. 열약한 환경을 무릅쓰고 일하다 가신 분들 그늘에서 말없이 수고하신분들로 인해 오늘의 번영을... 우리는 지난 시절을 잊지 말고 오만하지 않아야 복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겠지요. 지난 시절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물다 갑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저때 저가격으로 3년이내 건설 했다는게 기적이고 신의 한수,,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 동맥이 되어 지금 봐도 웅장하고 자랑스러운 경부고속도로, 공사 중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수많은 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공사에 고생하신 어른들께 미안한 마음과 함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중아와 영삼이 자빠져 반대하더니, 이 넓은 땅에 감자와 옥수수를 심으면 국민이 배부르게 먹을수 있다고, 1년은 내다보는 병신들과, 백년을 내다보는 지도자
07:36 당시 콩고보다 못살던 나라에서 🇰🇷경부고속도로 준공 (1970) 대단함.. 그리고 버스, 트럭 운전을 배워서 물류 혁명을 일으킨 역군들 (현재 7~80대 이상) ✋🏻
고속도로 못만들게 불도저앞에 들어누운 김대중
김대중 김영삼 처럼 고속도로 지을 돈으로 당장 배고픈거 해결하자고 감자 심었으면 우린 아직도 보릿고개 신세
결국 고속도로가 자동차 산업을 일으켰고 물류,유통에 불을 지폈다
그것만 해도 1970년대에는 정말 대단한 일이다..
ㅇㅇ글치 옆나라 일본만 봐도 고속도로가있는데 우리만 없는게 .. 아쉬워서 만든거임
미의회가 건설하라고 압력을 줬지요
근데 원했던건 서울 강릉간이었고
그곳을 국가항으로 키우길 원했지요
원조를 해주던 당시여서 아무의지없는
국가 국민에게 무작정 지원을 하지말라
그러니 그나마 한국에 우호적인 미의원들이
힌트를 준것중 하나가 도로였고 항만과
녹지사업이었습니다
근데 박정희는 38선을 그은 주체가 미국이므로
니들 제안을 다 거부하겠다 선언
미국 지원을 다 끊으려고 했으나 이를
설득시킨 인물이 정주영이죠
여러일들이 이후에 생겼지만
부산항을 선택한꼴이 되어서 결과론적으로
잘된일이 되었죠
@@rushik-pf3kq전혀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이지요 경부고속도로는 1964년 박대통령의 서독방문시에 아우토반을 방문한 후 영감을 얻어 추진한 것입니다
당시 미의회가 고속도로 관련해서 압력을 넣은 적도 없고 서울 강릉 구간은 미국이 아니라 김대중이 대안이랍시고 내놓은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이통영-y9v 웃기지마세요
아우토반 이야기는 미의회에 반증의 논리로
만들어진거고 교회따위에서 반강제로
신도들에게 팔고있는 그양반 자서전따위에서나
먹히는 소리요 박정희아집때문에 생긴말이
있소 숙제 줄테니 함 찾아보소
말마따나 아우토반이면 왜 굳이
경부선이오? 그리고 뭘 알려면 조중동만 보고
열올리지 말고 프레이저보고서 같은거도보고
말해야 정확에 가깝지 그거 인터넷에 풀린지가
이십년이 다되어갑니다
강릉간 고속도로는 미 의회가 최초로
내놓은 안이 맞아요 거기에 대중이가
숟가락 올려놓고 현실성없는 선동질을
한거지 대중이가 뭔 사회공학자라고
지대가리에서 그런게 나왔겠소
타고난 선동꾼과 기회주의자
박정희와 대중이는 공부할수록
개 새끼요 우리나라는 진짜 민초의
나라요
어설픈 지식은 여럿을 힘들게
하는법입니다 교차 검증이 그래서
필요한거요
@@스즈키츠키 아쉬워서가 아니라 무조건 필요해서 만든거임. 박정희의 혜안이 뛰어난게 향후 고속도로는 더 넓혀야된다고 확장 부분까지 확보 해놨음
경부선 건설할 때 짐선생은 단식투쟁 했지요.수 많은 농지를 갈아 엎었다구요.
대전.대구 구간이 제일 늦게 개통됬는데 당시 저도 그 때 참여했었습니다
내나이 65세 초등학교시절 아버지가 대전에서 서울 볼일 있어서 가실때
고속버스 타고 가시면 안내양이 사탕도 준다고 해서 따라 가겠다고 울면서
떼써서. 아버지. 따라 그레이 하운드 타고 서울 다녀온적 있음
초등학교 2학년때 일이고
고속버스 타본 무용담 이야기 하면 같은반 급우들
내주변에 몰려들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수업 시작종 친줄도 모르고 이야기
하다 선생님 한태 단체로
혼나던 기역이 새롭네요
내가 20대때 (28살정도 지금은 64) 고속도로 이용하여 대구에 자주갔는데,
그때만해도 중앙분리대는 있는곳도있고 없는곳도있고 도로중앙 화단에 잔디만 심어져있었고
그보다 좀 나은데는 진디밭위에 나무가 심어져있었다.
난 주로자가용을 이용했는데, 그때는 가로등도 없었고, 중앙분리대가 없어서(있어도 낮고) 고속버스나 관광버스를
스처지나가면 버스의 라이트땜시 순간적으로 암흑시가되서 2~3초간은 앞이 않보였다.
그래서 반대편에서 차가오면 눈을 최대한 실눈으로해서 운전한 기억이난다.
그때는 고속도로 주행시 고속버스 뒤쫓아가면 앞에서 고속버스가 길을 확보해서
무쟈게 안전하다는 속설이있어서 나도 고속버스꽁무니 숟하게 쫓아다녔었다..
사고난다면 사망인데 그땐 그랬었고 지금보면 믿지도못할 터무니없는 허구의 이바군데 그땐 그랬슴 ㅋㅋ
그리고 그후에는 운전이 능숙해서서 고속버스 추월하면서 달렸슴.
고속도로 과속단속도 몇번당했었고,
또 그땐 고속도로나 지방국도에서 경찰이 과속단속하면 반대편차선 신호로 알려줬슴
트럭은 트럭끼리 자가용은 자가용끼리 버스는 버스끼리 알려줬슴 ㅋㅋㅋ
방법으론 하이빔을 번쩍번쩍~~ 그럼 신호받은측에서 창문이 열려있으면 손들어 감사표시하고
차문닫혀있으면 나도 하이빔으로 번쩍하고 감사인사하고, 그땐 그랬슴 ㅋㅋㅋㅋ
90년대초반까지 알려줬어요ㅎ
참 살기좋은 세상이었죠..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분열된시대가 됬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번쩍 번쩍 ㅡ 두번 ,,,, ㅎ
형님보다 열살 정도 어린데...대학(89학번)때 친구들하고 차 두대로 강원도 놀러갈 때, 핸드폰 시대가 아니라서 출발 전에 만날 휴게소 두어곳 미리 정해놓고, 가다가 약속된 휴게소 지나치면 반대편 차선 상황보다 유턴도 했었죠ㅎㅎ 야생의 시대였네요 ㅎㅎ
네... 맟아요... 반대편 단속하면 쌍라이트 두번 해주던거 기억나네요...ㅎㅎㅎ
@@한상진-b9p 네 그렇치요....
저때 차도 별로 없고 있는사람들도 재산좀 있다는 사람박에 차없어서 고속도로 깐다니깐 국민들이 반대 했지만 그냥 강행 했지... 진짜 신의 한수임
한마디로 그당시 개돼지들 주인 잘만난거죠
07:36 당시 콩고보다 못살던 나라에서 🇰🇷경부고속도로 준공 (1970) 대단함.. 그리고 버스, 트럭 운전을 배워서 물류 혁명을 일으킨 역군들 (현재 7~80대 이상) ✋🏻
@@U2HS1D 당시 1킬로미터 건설시 일본이 4억, 한국은 1억들여 최단시간에 완공
포니2도 보이고, 엑셀도 보이고, 두발자유화 학생들도 보이고.. 80년대 장면도 섞이긴 했는데, 귀한 70년대 옛자료 반갑네요~
대체 엑셀은 어디가 보임?? ㅋㅋㅋ
포니 없던 시절임.
@@ksl6629포니는 1977년부터 국내시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해도 국산 승용차는 포니와 브리사 정도였고 엑설은 1985년부터인가 시판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1980년대 초반에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요 당시만해도 교장 선생님도 버스로 다녔습니다 자가용이 있는 애가 전교에서 단한명 있었는데 그애가 마침 우리반이어서 가끔씩 하교할때 차를 얻어타고 갔습니다 오후4시만 되면 뒤꽁무니가 납작한 검정색 포니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걔가 나오면 태우고 가더군요 차안에서 40대로 보이는 운전기사가 있더라구요
당시만해도 관공서의 관용차는 대부분 검정색 찦차였습니다
@@ah-rang7:23 은색 액셀
@@ksl6629 5:46 갓길에 녹색 택시 (콤비램프 크기와 구성이 포니1과 다릅니다)
아~!! 저 때가 진짜 그립다!
내 나이 올해 70세.,
저 때에는 진짜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것 자체가 설레임이었지...
저 때가 진짜 고속도로 였는데.. 지금은 저속도로..!!
감회가 새로우시겠네요~~~~^-^
혹시 2찍하신건 아니죠?
2찍하셨음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어서 관뚜껑덮길
2찍 아니심 기분 안나쁘실거라 생각합니다.
@@정동진-e2l 애비는 뒈지셨니? 그렇게 터지고 다니시더니
@@정동진-e2l나 삼삼 이구 이찍인데. 제가 관에 들기에는 아직 이른거 같으니 먼저 들어가시면 관뚜껑 못박아주고 좀 더 살다가 갈게요!
@@정동진-e2l
1찍 범죄자 어서오고~^^
김대중 김영삼 두놈이 공사현장 와서 드러누웠다능....
파블로프의 개
중앙분리대에 잔듸와 나무를 심었었네요 정겹습니다. 안전을위해 지금은 볼수없지만
차량 왕래가 없을때는 나무가 푸릇푸릇 싱싱 하였지만 차량이 많아지니 매연 때문에 나무가 살수가 없었고, 중앙분리대 화단은 계속되는 도로포장 덧씌우기로 도로면과 분리대 턱의 높이가 같아져서 지금의 중앙분리대로 모두 교체 하였죠.
지금은 법상 중앙선을 2미터 분리대를 150cm로 만들어야해서
도로를 못 만들게 하니까 편법으로 2차선만 만들고 중앙에 나무심고 잔듸 심고 해서 나중에 큰 도로 만들수 있게 한것입니다..
70년대 고속버스를 탓담 부러움의 눈길 로 봣는데..동네 오빠가 자랄을 했던시절 이엇죠
귀한영상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세발 용달차 를 보니 더더욱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귀한 영상 고맙습니다
그때 저 한산한 도로가 국가산업 원동력이 될줄 누가알았나요
80년대 한진고속 안내양이었는데 ㅋ
그레이 하운드
그러셨군요! 인기직종이었죠!
@@sungwhw8216 ㄴㄴ한진고속은 그차 없었음
예쁘셨겠네요
@@sungwhw8216그레이하운드는 동양고속 ㅋ
삼륜 용달차도 보이네요 예전에 텔레비전 에서 안전운전 365일에 나왔던 삼륜 용달차 우리나라에서 딱 한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죽전휴게소 다시보니
감회가 깊네요ㅎㅎㅎ
구미에 사는 사람으로써 박대통령님 서거때는 7살 이어서 잘몰랐지만 님의 내일생 조국을 위하여 라는 말씀이 생각나는요즘입니다
지금은 문신중.마악충.감성질.선동질. 온나라 도박피시방. 왁싱족. 등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굽어 살피주십시오
공사 하다가 돌아 가신 분들 위령탑 까지 대단하신분
박통님 감사합니다
제일 와닿는 말이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 운전사에게 잡담과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네.
그건 먼 옛날 얘기고 지금은 3천만대가 돌아다니는 데 뭔 기분이나 나냐 신호 체증뿐이지
박정희와정주영의탁월한업적!
그레이하운드
기사했었는데
서울 부산 아그립다
여주에서 그레이 하운드 고속버스 타봤는데, 최고였죠..
고생 많으셨네요. 어린 눈에는 그때 기사님들이 너무 멋져 보였었는 데…저는 청주에서 서울 갈때 대부분 속리산 고속이었는 데 가끔 신식 중앙고속 타게되면 그게 그렇게 신나고 즐거웠었는 데.. 아버지가 그립네요.😢
개 그린 버스 좋았는데
그때 중하교2학년쯔음에
아산으로 충무공 이순신장군묘소로 견학을간때 고속도로로 가는중 아마오산쯤에서서 도로한가운데에서사진을짝은기억이납니다
지금은상상도못할일이지요
목숨잃은 영영들여러분 부디편안한 영면되시길 고맙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너도 다까끼 따라가야지ㅋㅋㅋㅋㅋㅋ😁
어릴때 고속버스타고가다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사주면 얼마나 좋든지ㅋㅋ
그땐 지금 호두과자보다 더 맛있었는데..
그립네요
옛날 호두과자가 엄청 맛있죠!! 요새는 고속도로 가도 호두과자를 잘 안 사먹는지 재고 남은게 많아 눅눅한게 많더라고요!! 옛날게 알맹이도 더 컸고 맛은 진리였죠! 괜히 휴게소하면 호두과자 생각이 나는게 아니죠 ㅋㅋ
@@Baekku1 그 당시 호두과자 맛은 죽을때까지 못 잊을듯해요. 너무 맛있었거든요.
물론 지금보다 간식거리가 많지 않아서 그럴수도있지만.. 너무 맛있었어요.
돌아갈수만 있다면 그 당시로 돌아가고싶네요 ㅠ
천안호두 휴게소거는 먹을만 하고 진영휴게소 순천방향에서 파는 예담함인가 거기 호두과자 프리미엄급인데 진짜 전국 원탑인듯 합니다 행담도것도 맛있습니다
바나나우유 도 생각납니다
저시대에고속도로건설한박대통령이하모든노동자들정말감사드립니다
순직한노동자분들 잊지않게습니다 감사합니다,고인이되신선배님들
네비게이션 없던 시절 목적지 까지 잘찾아가는 운전자들 존경스럽네요
90년대 자가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때 도로가 입체적이 아니라 교통지도책으로 전국을
09년 여름휴가때만해도 아부지 운전하시고 내가 옆에 조수석에 앉아서 이정표 펴서 길 같이 찾아가고 그랬음
경부 고속도로 77년? 비포장이라 덜컹 덜컹 놀이 기구 타는 기분이엇는데 이 영상은 포장되어 있네오니요
저시대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 뚫린것이 우리나라 대동맥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지름길이엇지...
그후로 산업화가 가속되면서 근대화에 껑충...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돌천재 뭐가....?
@@돌천재아는거 있으면 나불대봐
@@돌천재모르긴 뭘 몰라, 백번 맞는 말이지..
차도 없는 나라에 국토만 훼손하는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의 독재에 이용될뿐이고 악질 대기업만 키울뿐이라고 결사반대 했던 DJ라는 놈이 있었지.
@@vegar1781 뭐가? 일본의 하청공장으로 100원 벌어서 50원을 일본에 바치는 역할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 구조에 종속되어 천문학적 대일 무역적자가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배고픈 시절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추억이 버블버블이라곤 하지만, 씁쓸함도 잊지 말아야.
B909L의 전성기 시절 그립습니다.
끝부분 황토색 도색이 치악산관광버스 같은데 ㅎㅎㅎ
강원도가 고향인 저는 익숙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옥천이 고향인데 대전행 고속버스타고 금강휴게소에서 중간하차해서 집으로 가던시절이 생각납니다.
이때도 서울부산 4시간대 주파 했는데 지금도 4시간대 물론 통행 차량이 많아서 글켔지만 당시 개통 코스를 2년반만에 지금 경부고속도로의 별다른 수정없이 개통된거 보면 진짜 대단한 업적이 아닐수가 없음
초창기 고속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는데 삼화고속 등을 타면 단거리인데도 안내양이 사탕을 나눠 줬던것이 생각나네.
안내양이 멋진 유니폼을 입고 근무해 고급 직업으로 인식되어 날씬한 미인들이 주로 일을했는데 어느정도 지나 사탕도 없어지고 버스회사에서 안내양을 유지 할 수가 없어서 사라졌지요.
날씬하고 이쁜 안내양이 많았는데...
그때가 좋았지요...
입석차는 시민자율이 등장하며 그리됐다 쳐도 고속에서 왜 없어진건지 모르겠네요
국민들이 워낙 가난해서 박정희 보면 잘 살거 같아 울었음.
저때 김영삼 김대중도 같은 후보였는디 그때 집권했으면 큰일날뻔했음.
명절에 밀리면 갓길에 세워서 밥짓고 옆집 반찬 나눠먹고 인사하고 깔깔거리고 웃고 그러다 고향가서 할매보고~
저 때 저 모습이 현재 북한의 모습보다 더 발전된 모습입니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 한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
작년에 필리핀에서 50년된 호텔에서 묵어 봤는데, 그 호텔이 개관할 당시 우리나라는 필리핀보다도 많이 못 사는 나라였습니다.
김영삼 김대중이는 공사장에 더러누워 고속도로 반대했는데~
그분들 이제 영원히 지하에 드러누워 있지요..
박정희가장기집권과지나친주색을밝혀서단점이었지만대한민국에서는반드시필요했던불세출의지도자인것은틀림없는정확한사실이다!가장업적이뛰어났던대통령!
팩트 - 해당 사진은 합성으로, 저 둘은 고속도로 건설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음. 단지 서울-강릉 쪽부터 완공해서 지역 균형 발전을 추구해야지, 굳이 이미 복선 철도가 놓여진 경부축부터 건설하는 지역편향적인 개발에 대한 반대에 가까웠던지라...
@@lch374213사진이 합성되었다니 무슨 귀신씨나락까는 개소리인가 김대중 김영삼 두사람은 죽을때까지 그 사진의 진실을 묻는 질문에 입도 뻥긋한적 없습니다 사실상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서울 강릉 노선을 주장했다는것은 또 무슨 얼어죽을늠의 개소리냐 그런적이 없습니다 그냥 고속도로 건설자체를 반대한 것입니다 만약 김대중이 당시 정말 서울 강릉 노선을 주장했다고 하면 진짜 진짜 나쁜 늠입니다 왜냐하면 당시만해도 강릉은 한적한 어촌인데 뭐 빨게 있다고 그쪽으로 도로를 닦습니까 그건 그야말로 아까운 국가예산을 길에다 버리는 것입니다 김대중이 당시 고속도로를 반대한 것은 돌대가리 여서 그랬던 것입니다
한국이 저 도로 때문에 GDP에서 베트남, 필리핀등 동남아를 하나,둘 따돌리기 시작한 시점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그간 엄청 발전했습니다. 박대통령의 선견지명과 결단이 새삼 마음에 다가오는군요.
저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그래도 풍족하게 가진것은 없어도
사람냄세.. 인간에 정 이라는게
있어서 좋았는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보면서 인터넷으로 다는 댓글이 저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ㅇㅈㄹ ㅋㅋㅋㅋ
@@aperieglory7970내말이 ㅋㅋㅋ
서울-부산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최고업적중 하나입니다. 고속도로가 생김으로써 국토발전에 큰 이바지가 된거죠
저때 정해놓은 시속100km 제한속도가 50년이 지난 지금도
어쩌다 영상을 보니 1년이 지난 시점에 댓글 달아봅니다.
그 이유는 고속도로 건설시 설계속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도 최고가 110km밖에 안되죠.
현시점에서 보면 그동안의 직선화 작업과 차량의 성능개선에 비추면 쫌...
조만간 우리나라도 포천~세종(?)간 고속도로에 140km 설계도로를 건설한다고 합니다.
저시대때 고속버스 산업화가 극에 치닫고 승무원이라는 최고의 직업이 부과되엇던 시절 8기통엔진이 탑재되었던 고속버스 전성기의 시발점 영상에 b909 대세 코오롱고속 광주고속 중앙고속 천일고속 한진의 특이한 케이스 동아의 ha55( 맞나 모르겠음) 등등 그냥 8기통의 배기음이 판을 치던 시절 그립네요 ㅎ
저때 기사 아저씨들 제복입고 맞은편 같은회사 차 만나면 졸라 절도있게 경례했는데..
저시기에 저런 도로를 건설 한다는거 자체가 기적인듯...
박정희대통령님이 있기에~~
82년 중2 수학여행 서울~경주 ^^
대구쯤 도착하면 고속도로 옆으로 🍎 농장도 보이고는 했는데... 지금은...
고속도로 반대 많이 했던 두김
휴게소 많이 들렸다 🤣🤣🤣
박정희 대통령님 영원한 영웅입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
초등학교 시절.. 그 당시 고속터미널이 동대문에 있었는데...그레이하운드.. 뭐 뒤에 화장실이 있었다나??? 미국서 폐차 직전의 차를 갖고 와서 운행한 것으로 기억됨..
80년대 초는 고속버스에 안내양도 있었거,, 사탕도 주고 그랬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서울부산 고속도로를 2년 8개월만에 완공했다는건 대단한것이라봄 ㆍ지금은 불가능하겠죠? 그리고 한진고속 광주고속 중앙고속 동양고속 타는게 정말 즐거웠는데 외관이 멋있기도 하고 앞차 추월해가는 즐거움도 있었고
왜 지금보다 이때가 더 그립고 정겹고 행복했는지
나이 50 이 돼어서 박종희 대통령 업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정희 이양반아
그레이하운드있었어요
77년, 영동고속도로 고속버스 타고 원주 친척집 가느라고 탓었고,
다음해에도 고교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강원도 낙산 해수욕장에서 대관령 넘어 서울로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속버스 경제속도가 60km였습니다.
제한속도는 영상에 나왔듯이 100km였습니다.
저건 그저 전설로 밖에 달리 설명이 안되지만 엄연한 사실임
국개속기록거들떠봐라당시대중이영삼이머라지껄이고행패부렸는지차도없는나라에서국민들농토빼앗아도로만들어봤자가진놈들기생첩대리고유람이나다닐도로라고하면서광화문앞에서강력투쟁단식한다고염병을했지돌이켜보면지금이재명꼬락서니들하고담은데가많네😂😂
탤런트 고두심씨도 동양고속버스 안내양 이었죠
그렇군요 😊
90년대 초반만 해도 정말 저랬는데 ㅎㅎㅎ생각 많이 나네요 ㅎㅎ
저 시절은 고속 버스가 현재 비행기급 인듯...좌석이 모자라 버스 안에 낚시 의자 줄줄이 깔고 앉아 가던 어린 기억이 떠오르네요
정말 이때 고속도로 주변 산들은 나무가 없네요
그당시 기술이나 공사비 때문에 평야 선택한게 아닐까요.
아버님이 옛날 방송 보시면서 얼마 안된거 같은데 오래됐네 하시네요 광복절 생이신데 ㅜㅜ
경부고속도로 반대.포철 반대한게 DJ 맞잖쇼??안그랴??
그때 경부 복선 철도가 있어서 우선 순위를 광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고속도로와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고속도로 먼저 만들자고 경부고속도로는 그후에 만들자고 김대중씨와 김영삼씨가 반대 했던 것이다..
@@hej..884 부자들관광도로 만든다고 난리친건 누군데?
@@hej..884김대중씨 김영삼씨??
@@hej..884 광주포항 ??서울강릉 고속도로??먼저?? 이말에 근거는???당체 없는말을 잘도 지어내네.ㅎ 쉴드 칠것을 쳐라. 저당시 김대중이 정권잡앗으면 지금 남한은 빼박 북한꼬라지 났어. 이 등신아~~` 차도없는데 부자들 놀러다니기 좋으라고 하는 미친짓이라고 햇단다 .
독도 앞바다를 일본에 넘긴 매국노 도요다다이쥬
저도국민학교다닐때
안내양하시는분이있어어요
7:40 대한통운 뒷연결 트럭 이름 아시는 분
저 트럭을 뭐라 부르죠?
91A 미쯔비씨
저기 차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들 지금은 거의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컥!!!
삼륜차가 더 반갑네요
아 아 그시절 그리워 진다
저때 각 공사구간 책임자가 공병장교들 이었음 군대식으로 밤낮으로 공사를 밀어붙임
그렇게해서 신화를 쓸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보면 대한민국을 못사는 나라,가난한 나라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으로의 진입 초석을 다진 분이 박정희 대통령 이였다고 100프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본인과 가족들보다 국민과 국가를 더 소중히 하셨던 박정희 대통령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대통령님^^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을 색안경쓰고 보는 인간들은 지독한 좌파세력 이거나 공산당을 추종하는 그 무리들 중 하나일꺼임
인정할거는 인정하고 지적할거는 지적해야 하는데 머리 한쪽에 대한민국의 발전에 대해 삐딱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아주 고약한 사람일 듯.....^^ㅋ
@@bradoh4992 슨상님은 깽판놓는다고 쳐 드러눕더만 ㅋ
지금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판을치는 세상!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해야 미래가 보이는데
변하지 않는자는 미래를 볼수없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은데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어야
되겠는가?
한번밖에 올수 없는 세상
변화를 두려워 말고
끝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해보다 가야한다
그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닐까?
고속버스 안내양하다가 외국간 친구 생각나네 😂
박정희대통령님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다시금 느끼네요.😊
양산털보 리짜이밍이었다면 표구걸용 무상복지 용도로 펑펑..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심과 혜안에 감탄할 뿐입니다.
파블로프의 개
저때 고속버스 외제차 일제 미스비시 독일 벤츠 미제 그레이 하운드
그래서 더 품위있어 보인듯 현기차 현기증 디자인
대전 중동인가정동인가잘모르지만고3때서울(1976년)가면서고속버스탔는데그때안내양임평옥씨수수하게이쁘셔서반했네요
박정희 대통령 님 감사합니다.
지금은 먹고살만 하고 조금 배웠다고 대한민국 균열 시키고 있다
어릴때 보던 차들 많네요...
80~90년대에 11년간 20대의 전부를 추풍령휴게소 사무실에서 근무했었는데~~
기적이다다다
고속버스 타면 안내양이 비디오 틀어 졌는데 ㅎㅎ
죽전휴게소 화면이 몇년도쯤 인가요?
1982년도말 쯤 일업니다
고속도로 직행버스는 입석도 많이타고 다녔었는데..
진정한 대통령이십니다 ㅠ
고속버스 안내양은 80년대 초부터 단거리부터 없어지기 시작 비디오도 틀어주고^^
저거 깔면 나라 망하니까 그 돈으로 쌀이나 사오자고 드러눕던 누가 떠오르는군요
현 봉투당이겠죠
@@셩이름 도요타 핵 다이쥬의 선동질대로 쌀이나 사왔으면 아직도 가뭄걱정 홍수걱정이나 하면서 소달구지나 타고 다녔을듯 ㅋㅋ
70년대 고속도로 한진고속 동양고속 그레하운드 달리면 멋있어서 쳐다보았지
그레이하운드
야당 국개의원들 고속도록 현장에 드러누워 반대 하겠다고
당시 여당 국개의원들 국회의사당 앞의 서강대교 반대해서 짓다 만 흉물로 몇십년 있었지. 이유가 "감히 국회의원들의 전당 앞에 차들이 돌아다녀?" 알고는 있나?
그때 공사현장에 김대중 드러눕은것 뉴스보고 지금보면 어이상실 허긴
저때부터 거짓선동질이 시작된 우리나라 지금은 선동질이 꽃이 만개하듯이 활짝피어서 좋은나라
지금도 민주당은 고속도로를 싫어하잖아
@@성현-j2p 그러면서 누릴건 누구보다 더누리는 다누리봉투당
저때 고속버스 디젤엔진음이 기가막히네 다시들으니.....
AM909. RB635. BV120
하운드 고속버스..... 뒷통수 멋쩐는데
저시절 고속버스는 고급스럽고 안내양도 있고 좋왔지요.지금의 고속버스에 비하면 질은 떨어져도 낭만이 있었지요
B909L HA50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수 없는 디젤 8기통 10기통 ㅜㅜ
07:36 90년대 까지 볼수 있었던 V8 디젤엔진... 2000년대 유로4 나오면서 부터 직렬6기통 디젤로 변경
80년대까진 안내양도 있었고 버스 뒷자리에서는 담배도 폇는데 ㅋ 참 휴계소에서 맥주도 팔았었구나 ㅎ
저 당시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만 화장실까지 있었지. 사탕도 주고 ㅎ
1989년도 🙋♀️고속버스 안내양 마지막으로 사라졋는데 이유가 월급 안올려줄려고 안내양 없애버렷는데 시내버스 안내양 마찬가지 사라졋고 🚌 고속 버스회사들 지금 망햇슴. 손님없서서 겨우 명맥만 유지
포니. 자동차, 죽전휴게소. 모두 정감이. 가득합니다
옥천 구간만 옛모습이 남아 있던대.......... 지금은 변했겟조.....
지금은 반듯하게 새로운 터널이 뚤리것으로 압니다
고속버스 차량과 사진도 찍꼬!!
저렇게 고속도로 안 놨으면 미래가 암울해ㅛ겠다. 가슴 벅찬 미래 투자다. 기적을 만든거네. 파독방문에서 서독 총리가 훈수한 덕분이라네. 고속도로, 철강산업이 중요하다고.. 미국도 차관제공을 반대한건데.... 기적이다 기적. 진심이 통한거로 본다. 영면하소서.
저 때 서울 부산 고속버스 요금이 1,600원이었지 아마... ㅎㅎ
우리나라 어떤 당은 경부고속도로가 왜 필요하냐며..그돈으로 옥수수를 사서 나눠주자고 했더랬죠..
고속도로 국도 요즘 쓰레기 불법투기 너무 많이 합니다.
직행은 완행버스 보다 더 비쌌고 직행은 바로 목적지까지 가는거였고 완행은 내가 중간에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 진짜 그시절엔 포장이 안된 상태라 시골길 가다보면 덜그럭 벌그럭 우당탕 산닭 들고 버스타신분 계란을 볏짚에 돌돌말아 타신분 여러 가지 입니다 지금은 추억이며 당 시엔 힘들었음 타고 다니기 멀미는 기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