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사의 굴욕 _ 중세유럽 최고의 명장면

Поделиться
HTML-код
  • Опубликовано: 26 янв 2025

Комментарии • 114

  • @마틴-r2n
    @마틴-r2n 5 лет назад +21

    5:22 사실관계를 한번쯤 확인해보셨으면 하는 점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데로 기술해보지요.
    1.교황이 하인리히 4세를 처음으로 파문함(1076년)
    2.카노사의 굴욕(1077년)
    3.독일귀족들이 대립왕을 옹립하자 내전이 벌어짐(1077-1080)
    4.교황이 하인리히 4세를 두번째 파문하고 루돌프를 독일국왕으로 승인함(1080년)
    5.루돌프가 사망하고 하인리히 4세 독일내 권력장악 성공(1080년)
    6.하인리히 4세가 마틸다와 싸워 승리함(1080년)
    7.하인리히 4세가 로마를 침공하여 점령함(1084년 3월)
    8.교황은 산탄젤로 성으로 도피한후 로베르에게 도움요청(1084년)
    9.로베르의 군대가 로마로 진격해오자 하인리히 4세는 3일전에 퇴각(1084년 5월)
    10.로베르의 군대가 로마내에 있는 친-하인리히 세력을 진압하고 교황을 구출함.
    11.로베르의 군대가 로마를 약탈,방화,파괴함.
    12.약탈피해가 극심하자 로마시민들이 교황을 심히 원망함.
    13.신변위험을 느낀 교황은 로베르의 군대와 함께 살레르노로 망명함(1084년 5월)
    14.교황 그리고리오 7세가 살레르노에서 객사(1085년 5월)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와 '옥스포드 교황사전'등을 참고로 하여 정리한것입니다. 로베르가 하인리히 4세를 도운적이 없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로베르와 하인리히 4세는 서로 안친했습니다. 그렇다고 원수지간도 아니라서 서로 싸울 생각도, 이유도 별로 없었지요. 하인리히 4세는 독일내 권력을 더욱 곤고히 하길 원했던것 같고 로베르는 비잔틴을 정복하여 황제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로베르는 교황과도 별로 안친합니다. 로마상황에 군사개입을 한 이유는 독일왕이 로마를 점령하여 자신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황은 로베르의 군대가 쳐들어 왔기 때문에 도망간것이 아니라 로베르에게 구출되어 함께 망명을 떠난것이지요.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평소 약탈을 일삼는 노르만족과 사라센인으로 구성된 이들을 로마로 끌어들여 로마가 큰피해가 발생하였고 이에 대한 원망이 넘쳐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교황이 자진해서 로마를 탈출한겁니다.
    비겁하게 이번에도 또 도망간겁니다. 교황은 로베르의 군대가 평소 약탈을 일삼는 자들이라서 로마를 약탈할수 있다는 사실을 예견하면서도 자기만 살자고 이들에게 구원을 요청한겁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격이지요. 그레고리오 7세가 추기경 시절인 1059년에, 대립교황 베네딕토 10세를 체포할때 노르만족의 도움을 받았는데, 대립교황이 거주하던 갈레리아라는 도시를 노르만족들이 약탈을 한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립니다.
    노르만족은 바이킹 해적의 후손이고 사라센인들은 북아프리카 출신 지중해 해적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이 평소에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교황은 추기경 시절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 @마틴-r2n
      @마틴-r2n 5 лет назад +7

      교황은 마틸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마틸다는 4년전 1080년에 이미 하인리히 4세에게 패해 세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도울 여력이 없었습니다. 영상에서 언급하신데로 스캔들이 발생할 정도로 마틸다는 교황의 열렬한 지지자였습니다.
      만약 교황이 로베르의 군대를 피해 도망쳤을것 같으면 투스카니 쪽이나,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쪽으로 달아나야 합니다. 당시에 교황령 이남 지역의 거의 대부분은 로베르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특히 살레르노는 로베르가 공작으로서 다스리던 공국의 수도였습니다. 로베르의 군대가 무서워 도망친다는게 하필 로베르의 공국 수도라는것은 앞뒤 설명이 모순이 발생합니다.
      교황권의 전성기이자 역사상 최강의 권력을 누린 교황은 인노첸시오 3세라고 합니다. 인노첸시오 3세에 비한다면 그레고리오 7세는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인노첸시오 3세 이후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렸는데, 아나니 사건(1303)과 아비뇽 유수(1309-1377),서방교회 대분열(1378-1417)때 더욱 추락하고 말지요.
      1517년 종교개혁으로 더욱 약화되었고 1527년 5월에는 황제 카를 5세가 파송한 군대에 의해 로마 자체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립니다. '로마약탈 (1527년)'을 검색해보면 9개월간 로마는 무법천지, 무정부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30년전쟁(1618-1648)으로 교황권은 더욱 약해집니다.
      1077년 카노사의 굴욕이란 사건이 세계사 교과서에 실리고 시험에 자주 출제되다 보니 마치 이때를 교황권의 절정,전성기로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혀 그렇치 않습니다.
      댓글 치고는 너무 길었네요.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것일뿐, 댓글의 내용이 모두 올바르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12

      네. 마틴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결코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p84를
      요약하였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제가 해석을 잘못하였네요..마틴님이 써주신 순서가 맞습니다.
      올바른 정보를 드리기 위해서 댓글 고정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

    • @classic1579
      @classic1579 2 года назад +3

      이 댓글 읽고 역사 공부 포기함

    • @twiwi2
      @twiwi2 Год назад

      ​@@classic1579ㅋㅋ

  • @boc4566
    @boc4566 4 года назад +3

    뒤늦게 이채널을 알아버려서 정주행중... 감사합니다!!!

  • @javaxerjack
    @javaxerjack 5 лет назад +23

    이 일도 생각해 보면 왕좌의 게임 못지 않게 드라마틱한 내용이 많은 이야기인데 의외로 영상화 되지는 않고 그저 '젠척하다 교황한테 굽신거리게 된 찌질이 황제 아저씨' 정도로만 교과서에서 가르쳐서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4

      네. 제가 이 주제를 택한이유도 그렇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것 정도가 만족이 안되서 조금만 더 알고 싶었거든요...
      더 깊이 들어가면 훨씬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일반인인 저로서는 이정도면 만족합니다...

    • @마틴-r2n
      @마틴-r2n 5 лет назад +3

      카노사의 굴욕이 교황권의 전성기에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잘못 알고들 있으니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결코 교황권이 전성기가 아니였는데..세계사 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학원 강사님들도 한몫들 하시는 통에....

    • @javaxerjack
      @javaxerjack 5 лет назад +1

      @@마틴-r2n 해당 교황의 최후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기는 한데, 이 전에는 아예 도전할 엄두조차 못내니 대외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없었다는 것도 한 몫 했죠.

    • @마틴-r2n
      @마틴-r2n 5 лет назад +2

      @@javaxerjack 예 맞습니다. 분명한것은 예전보다는 교황권 자체가...교황의 위상이나 권위가 높아진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10세기 창부정치등 암흑시대 그리고 요한 12세와 베네딕토 9세의 만행등....하인리히 4세의 아버지인 하인리히 3세 때만해도 교황들은 찍소리도 못했습니다. 1056년에 하인리히 3세가 죽자 그때부터 교황들이 황권으로 부터 독립을 하려고 노력했고 황제와 대등한 위치에 서서 싸우려 했지요.
      하인리히 3세의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었던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하게 그 아들 하인리히 4세를 욕보인것은 참 아닌것 같긴 합니다. 1056년에 하인리히 3세가 죽자 20년만인 1076년에 그의 아들을 파문해 버리다니....
      그레고리오 7세가 카노사성으로 간것은 하인리히 4세가 무서워서 도피한겁니다. 아우크스부르크에 가다가 잠시 들렀다는것은 거짓말입니다. 당시 교황은 심한 허리 디스크로 고생중이였고 63세의 노구를 이끌고 1600km가 넘는 거리를 추운겨울에 여행한다는것 자체가 사기입니다.

    • @마틴-r2n
      @마틴-r2n 5 лет назад +2

      카노사의 굴욕시절이 교황권의 전성기였다면 교황이 카노사성으로 도망갈 필요가 없습니다. 로타르 2세가 로마를 침공했을떄 교황 니콜라오 1세는 2틀동안 칩거하며 버텼습니다. 이정도는 해야되지요. 겁 먹고 도망친 교황을 교황권의 전성기 시대의 교황이라 할수는 없다고 봅니다. 황제를 파문한 자신의 행위가 신이 보시기에 올바르다면 지켜주실것이고 또한 당당하게 교황답게 순교의 각오정도는 해야 함에 불구하고 36계 줄행랑을 치며 비겁하게 처신했습니다. 그만큼 교황 자신이 보기에도 당당하지는 못했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 @heyheywait1756
    @heyheywait1756 5 лет назад +1

    전 인물들이 많이 나오면 헷갈려서 정신을 못차리는.....ㅎㅎㅎ
    교황과 황제의 세력싸움이라는것만 알겠어요..ㅎㅎㅎㅎ
    오늘도 아침 역사공부 하고갑니다.~
    날씨 추워지는데 감기조심하세요 저스티스님..^^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1

      감사합니다. 야야님.
      항상 찾아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야야님도 건강 유의하시고, 영상도 자주 올려주세요~^^

    • @yhansookim7850
      @yhansookim7850 5 лет назад +1

      하도 간섭해대니 영국은 성공회 만들어버림 ㅋ.

  • @김선생TV
    @김선생TV 5 лет назад +13

    중세시대 성직자들이 한 나라 왕의 서임권까지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니 당시 시대상으로 보면 문제가 많았을것 같네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언제나 방문해 주시고 응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김선생님~^^

    • @마틴-r2n
      @마틴-r2n 3 года назад

      서임권 분쟁은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타협적 방법을 통해 일단락 됩니다. 서임권을 왕이 행사하던 시대와 교황이 행사하던 시대의 차이점은....그냥 '성직매매'의 주체가 바뀌었다고 보는게 가장 적당합니다. 왕들이 하던 성직매매를 교황이나 고위성직자들이 했을뿐입니다. 다만 좀 긍정적인 것은 성직자의 자질이 조금 향상되었다는 점일뿐입니다.

  • @산화그래핀
    @산화그래핀 4 года назад +1

    신의 대한 믿음은 없고 자기들 밥그릇 싸움하기 바쁘네
    볼만한 영상이 많네요 구독 좋아요했어요ㅋ

    • @justice20000
      @justice20000  4 года назад

      구독 감사드립니다. 케네디님~

  • @윤터-d3q
    @윤터-d3q 5 лет назад +5

    세계사 배울때 잊을수없었던 역사의 한장면!!!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1

      댓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Alderbridge
    @Alderbridge 5 лет назад +2

    굴욕이란게 뭔지 태어나서 첨으로 배우게된 사건이죠 ㅋㅋ

  • @랄프의눈
    @랄프의눈 5 лет назад +2

    재밌게 봤습니다 ㅎㅎㅎㅎ 저스티스님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 @전투불패
    @전투불패 5 лет назад +5

    한편으론 성밖에서 3일동안 맨발로 추위에 떨면서 버틸수 있다는 정신력도 대단하다. 몸이 성치 않았을 텐데..
    더군다나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
    여튼 돌아와서 하인리히 4세는 이를 계기로 누가 자신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지 알아내서 이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어찌보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죠. 더군다나 그레고리우스 7세는 하인리히 4세의 복수의 일환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 보면 하인리히 4세의 최종승리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 다음 교황이 성직임명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론 교황의 승리로 봐야할것 같네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전투불패님~
      좋은 하루 되세요~^^

    • @마틴-r2n
      @마틴-r2n 5 лет назад

      1122년 보름스 협약까지만 본다면 교황측이 승리한게 맞습니다. 1077년 카노사의 굴욕은... 따지고 보면 교황은 '실패한 승리자' 이고 하인리히 4세는 '도덕적인 승리'를 거둔것입니다. 하인리히 4세가 죄책감속에 진정으로 반성하며 참회하러 카노사에 간것은 결코 아닌듯 합니다.

  • @KLea9
    @KLea9 5 лет назад

    유익함의 절정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Ss S님.
      좋은 하루 되세요~^^

  • @bonjourbay
    @bonjourbay 4 года назад

    유익한 자료를 나누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개혁된 교황권과 제국 사이의 충돌은 더 이상 피할 수가 없게 되었던 거죠. 교회와 국가 사이에는 권력 투쟁의 회오리 바람이 몰아쳤는데, 이윽고 이들 사이에 최초의 정면 충돌이 벌어진 거고, 그레고리우스가 당시의 독일 왕 헨리 4세를 억지로 자기 진영에 가담시키려 한 것이 원인이 되었던 거구요.
    그레고리우스가 앞에서 말한 그 선언을 발표했을 때, 헨리는 교황의 명령 같은 것은 귀담아 들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죠. 성직 매매에 의한 사제 선출 방법은 그의 기질에 꼭 맞았고, 이런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자기의 권한을 교황이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독일 왕 헨리 4세는 그레고리 7세의 정책을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해, 로마에서 세 사람의 사자(使者)가 파견되어 교황의 뜻을 직접적이고도 강경한 어조로 전했죠. 그러나 헨리는 거기에 대항하여, 교황 반대파와 결탁하여 1076년 웜스(Worms) 회의에서 교황의 폐위(廢位)를 결의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교황은 즉시 회의를 소집하여 헨리를 교회에서 파문하고, 동시에 왕직(王職)도 폐위시킬 것을 선언하였던 것이죠.
    하지만 당시의 정세는 독일 황제에 대한 불신감이 크게 조성돼 있었으므로, 황제는 지지자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헨리를 좋게 생각하지 않던 관리들은 교황을 아우구스불그에 초청하여 새 왕의 선출에 대해 의논하려 했습니다. 교황은 이 제의를 승낙하여 아우구스불그로 출발해 가는 도중, 부유하고 유력한 동맹자 투스카나 백작 부인 마틸다의 성이 있는 카놋사(Canossa)에 머물렀습니다.
    싸움에 패한 것을 안 헨리 측근의 제후들은 그에게 교황 앞에 가서 죄를 뉘우칠 것을 권고하였고, 마침내 헨리는 아내와 어린 아이를 데리고 교황을 만나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 남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교황이 잠시 머무르던 카놋사로 찾아갔고, 거기서 그는 사흘 밤낮을 모진 추위 속에 맨발로 참회 순례자가 입는 허술한 양털옷을 입고 눈덮인 성문 밖에서 서 있어야 했습니다. 나흘 째 되던 날, 백작 부인인 마틸다의 조정으로 교황은 그를 받아주었고, 황제는 교황의 발 앞에 엎드려 사면(赦免)을 받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카놋사의 굴욕’이라고 알려진 것이죠.
    그런데 그 후의 일은 또 역전이 일어나고 말았죠. 교황의 사면은 받았으나, 헨리는 독일에 있는 적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헨리에 적대하는 세력들을 규합하여 왕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헨리에게서 박탈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겁니다. 사면 받은 후 헨리는 그의 정적(政敵)들을 패배시키고, 그를 반대했던 제후들에게 보복을 가했습니다. 또 교황 주재로 열릴 예정이었던 회의도 못하게 막아서 교황의 의도를 좌절시켰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로마 회의에서 헨리 4세를 또 다시 파문 선언하였습니다(1080). 그러나 독일 국민의 지지가 이번에는 헨리에게로 쏠렸던 거죠. 결국 교황과 황제와의 싸움은 백성들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최초에 ‘카놋사의 굴욕’을 낳게 한 이유는 헨리가 독일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무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그의 강압적인 정치를 싫어했고, 봉건 영주들은 이 기회가 헨리 황제에게 더 이상 순종치 않아도 될 호기로 보았던 것이죠. 그러나 교황의 제 2 파문에 독일 국민들은 요동치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헨리를 대적하는 루돌프(Rudolf) 세력과의 싸움에서 헨리가 이기고, 국민들은 헨리를 지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헨리 황제는 마침내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을 폐하고, 자기가 선택한 크레멘트 3세를 그 자리에 임명하였습니다. 이어서 황제는 로마를 점령하고, 폐위된 그레고리우스는 남부 이태리의 살레르노(Salerno)의 산성에 피난했다가 건강을 해쳐 곧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헨리의 승리도 잠깐이었습니다. 그는 그후 여생을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새우다가, 마침내 귀족들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1106년에 죽었던 거죠.
    싸움에서의 영원한 승리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긴 글 올려드렸네요~ 아무쪼록 귀한 동영상에 도움이 되는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4 года назад +1

      그렇군요. 말씀 잘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G_seektree
    @G_seektree 5 лет назад +3

    오오오오!! 학창시절에 배웠던 것들 중 드물게 기억하고 있는 굴욕 중 하나!!
    굴욕의 대명사로 통하는 그 카노사의 굴욕이로군요 ㅋㅋㅋ
    오메 그레고리우스 7세가 이런 스캔들에 휩싸였다니 !! 처음 듣는 이야기 ㅋㅋ
    결국 아인리히도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교황권은 갈수록 추락하고 ~ 역사라는 것이 참 얄궂지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2

      그렇습니다. 중세 유럽은 교회를 누가 지배하는가의 싸움이라 생각해요.
      더 고대로가서 초창기 기독교를 다뤄보고 싶은데, 그림들이 워낙 없어서 참 힘드네요....

    • @이상민-d4t9j
      @이상민-d4t9j 5 лет назад

      @@justice20000 초기 교황이 성립한 과정도 궁금하네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1

      @@이상민-d4t9j 네. 시간이 되면 예수와 베드로 이야기를 해볼까, 아님. 레오1세 이야기를 해볼까 했는데, 루터의 종교개혁 올렸더니 구독자 분들께서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게 망설이게 하네요...

    • @이상민-d4t9j
      @이상민-d4t9j 5 лет назад

      @@justice20000 하긴 자극적인 주제는 아니긴하죠ㅜㅜ

  • @bookstory433
    @bookstory433 5 лет назад +1

    복잡한 역사 내용을 잘 정리해서 알려주셔서 잘 배우고 가네요ㅎㅎ 감사합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댓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aron6372
    @aron6372 5 лет назад

    잘보구있습니다..감사해요~근데 좀 디테일을 좀 살려주시면하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아직 실력부족이지만, 개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도원결의-z6u
    @도원결의-z6u 5 лет назад +3

    학창시절엔 카노사의 굴욕이 교황의 권위가 최고로 높았다는 상징적인 사건으로만 배웠는데 그런것도 아니네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2

      네. 서유럽은 교황권과 황제권의 끈임없는 패권다툼이렀다고 생각해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 @로렘
    @로렘 3 года назад

    교황 권력의 최고점을 상징하는 카노사의 굴욕이 십자군 전쟁 전까지 교황을 로마밖으로 나돌게 했다는 레전설…

  • @쉴레이만은솔로몬유수
    @쉴레이만은솔로몬유수 5 лет назад

    5:23 아풀리아-칼라브리아의 노르만 인 군주 로베르 기스카르는 독일의 하인리히 4세 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교황의 편이었고 독일군이 장악한 로마에서 그를 구출해 본거지이자 자신의 영토인 살레르노로 데려간 것입니다. 로베르와 교황청은 1059년 멜피 조약 때부터 동맹이었습니다. 이방인이던 노르만 인들은 정당성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설명란에 있는 책을 보고 작성한 원고라 책을 보고 확인해 드려야 할텐데, 도서관에 가서 확인한 후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답변을 늦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본다고 말씀 드리고 도서관도 갔었는데, 다른것 보느라 까먹고, 솔직히 못읽어봤네요.
      오늘 다시 읽어봤고, 쉴레이만님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님도 지적 주셨는데, 마팀님 댓글이 시간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어 그 글을 댓글 고정하였습니다.다시한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정진환-b2c
    @정진환-b2c 4 года назад +1

    유럽이라는 이름은 2차대전 이후부터 사용한이름 입니다 그전에는 헬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와있고 세계사에도 헬라인은 헬라어 등 으로 나와 있습니다 ^^

  • @inyokechoi4703
    @inyokechoi4703 5 лет назад +3

    수백년뒤에 교황이 있는 로마가 신성로마제국(독일)한테 영혼까지 탈탈털리고 황제한테 두번다시 대들지못하게됨

    • @이동욱-s6t
      @이동욱-s6t 4 года назад

      그 황제의 이름은 합스부르크 최강의 지배자 카를5세였고 이시기에 전설적인 스위스 용병의 활약이 펼쳐지죠.

    • @다빈-n2z
      @다빈-n2z 4 года назад

      아비뇽이에요?

  • @dr.bong1313
    @dr.bong1313 5 лет назад

    교황권 추락도 영상보고싶어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준비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좋은 하루 되세요~^^

  • @추연서-k1n
    @추연서-k1n 5 лет назад +7

    무슨 굴욕 조금 있다가 로마로 처들어가 그 교황을 끌어내 보복하는데. 겉으로 일단 꿇어속이고 뒷통수친거지

    • @user-fo1ip1pd7n
      @user-fo1ip1pd7n 5 лет назад

      복수를 하긴 햇나요?
      내용을 보면 그교황은 끝까지살다가
      병사한걸로 돼잇는데?

    • @추연서-k1n
      @추연서-k1n 5 лет назад +2

      @@user-fo1ip1pd7n 독일의 여러 제후들을 꼬셔 로마로 처들어가 교황을 끌어내고 교황은 바로 도주해서 곧 화병으로 죽죠. 쪽팔리잖아요. 가오가 빠지는데 그래도 사제직을 돈주고 사고 파는 짓을 막아보고 노력을 하다가 훅 간것입니다.

    • @user-fo1ip1pd7n
      @user-fo1ip1pd7n 5 лет назад

      @@추연서-k1n 아ㅡ그랫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주표-g2z
      @이주표-g2z 5 лет назад

      @@추연서-k1n 사실 그거도 아님ᆞ 파워 게임 결과니까요ᆞ
      제국교회법 가지고 괜히 그런게 아니고 황제입장에선 봉건제 특유상 제후들이 지 말 안듣고 따로 노는 짓이 심함ᆞ 근데 주교영주는 죽으면 영지가 다시 세속 안되고 황제 손으로 돌아간 후 새 주교 영주를 임명하면 되는 문제라ᆢ(즉 그나마 상속이 안되서 자기와의 관계서만 권력이 유지되는 입장이니까요)
      사실 다른 곳이라고 사제가 사생아 자식을 친척에게 입양시키거나 방식으로 신분세탁해서 상속하는데(비슷한 예로 후한말 원소를 친 아버지가 죽은 큰형 호적으로 옮겨서 신분세탁 해준적 있죠ᆞ 모친이 종이라서 원소도 그대로두면 종이 되는 지라ᆢ) 굳이 신성로마제국만 썩었다고 하기엔ᆢ(즉 사제층 본래부터가 원래 썩었음 그때도ᆞ아니 애당초 중세 유럽은 매관매직도 대놓고 하는 사회라서 사제직 돈주고 사고 파는게 다른데라고 아닌것도 아니고ㅋㅋ)
      물론 주교영주 자리는 세습못하니까 황제입장에선 세속 영주보단 컨트롤도 쉽고 ㅈㄹㅈㄹ 할 확율이 적어서 하인리히 3세만 해도 주교영주 봉토를 늘리고 임명도 늘리는 짓을 엄청하죠ᆞ
      즉 카노사의 굴욕은 주교임명권이란 걸 둔ᆞ그러니까 그걸 명분으로 둔 권력싸움ᆞ 즉 파워게임일 뿐임

  • @newzerosteel
    @newzerosteel Год назад

    1인자는 객사하고 2인자는 배신당해 죽었네..

  • @Pepe-i4s
    @Pepe-i4s 4 года назад

    부패한 자가 권력을 쥐고 흔들때 그 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고통받았었지....

  • @매니아썬
    @매니아썬 9 месяцев назад

    👍👍👍👍

  • @koreaskki
    @koreaskki 5 лет назад

    저당시에 센세이션 충격이었겠됴??

  • @s__h6921
    @s__h6921 5 лет назад

    왕.왕은 나라의통치자
    교황.교황은 신에게 계시받는자
    과연 누가 더 강할까?
    이 영상에선 교황은 강했지만 십자군전쟁이후 교황권은 점점하락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1

      네. 그렇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taein-kim
    @taein-kim 5 лет назад

    하인리히가 아니고 아인리히라고 읽는거였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아닙니다. 댓글보시면 아시겠지만, 하인리히가 맞다고 해주셨습니다.
      제가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 @shaftanton3844
    @shaftanton3844 5 лет назад

    하인리히는 아버지 때는 괜찮았지만 자기 대에 와서 교황과 지방 호족들이 성장하면서 시대를 좀 뭐같이 타서 안타깝죠.....ㅎㅎ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까꿍-r4j
    @까꿍-r4j 4 года назад +1

    하이리히4세가 나중에 복수함

  • @x_xmarshmello
    @x_xmarshmello 5 лет назад

    교황도 똑같은인간인데 누가누굴 파문하는지 모르겠고 거기에 쩔쩔매는것도 지금으로선 이해가안됨.

  • @prussia92
    @prussia92 5 лет назад +6

    진짜 교황이 나대는거 꼴보기가싫음 종교인이면 기도나 하지 어디서 정치질을함 민생이 좋아지면 몰라도 부패의결정체 역사겜할때 교황이 로마라는 꿀땅 차지하는거보니까 더 빡치던데 사코디로마 ㅋㅋㅋ

  • @7베토벤
    @7베토벤 5 лет назад

    Road to Canossa
    역사 산책 유익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1

      칭찬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7베토벤님~^^

    • @7베토벤
      @7베토벤 5 лет назад

      @@justice20000 오늘부터 쿠톡 꾹이요 !
      열심 하세요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7베토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 @RIZE_00
    @RIZE_00 Год назад

    간호사의 굴욕~

  • @장화영-k3t
    @장화영-k3t 5 лет назад

    신에게한 이런 로마교한 조약한 같은 같은데 로마그리스불교의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를 말하는 말하는데 로마중국임

  • @조홍감
    @조홍감 5 лет назад +1

    아비뇽유수 마렵다!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카노사의 굴욕을 했으니 아비뇽 유수도 해야할텐데..
      지금 쌓아놓은것들 다 하고나면...
      잘 준비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홍감님~^^

  • @삐딱하게-k9
    @삐딱하게-k9 5 лет назад +5

    종교를없애야하는이유

  • @skyinthe908
    @skyinthe908 5 лет назад +14

    신에대한 마음은 없고 정치쌈만 하는거인가

    • @Camperlm
      @Camperlm 5 лет назад +3

      지금도 돈을 믿는 종교들이 대부분인걸요 신에대한 믿음은 진즉에 죽었죠

  • @won-hochoi4792
    @won-hochoi4792 5 лет назад

    어렵다 어려워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이 시기 부터 유럽사를 놓아버리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부분인데, 여기를 넘으시고. 합스부르크를 넘으면 다시 단순해 집니다. 화이팅 해주세요~^^

  • @BostonPark_
    @BostonPark_ 5 лет назад +7

    먼소린지 1도 모르겠댱

  • @건우김-i8j
    @건우김-i8j 3 года назад

    간호사의 굴욕

  • @jsbaek2260
    @jsbaek2260 5 лет назад

    어릴때 진짜 충격 먹었었지...황제가 무릎을 꿇는게...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그랬군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 @ktx3534
      @ktx3534 5 лет назад

      걱정마요 500년뒤엔 황제가 교황찢어버리니까요

    • @user-sv4sx7mp7z
      @user-sv4sx7mp7z 5 лет назад

      @@ktx3534 샤코 디 로마 ㄷㄷ

  • @비정한세상
    @비정한세상 5 лет назад +1

    개같은 세상..피 토하는 음악..

  • @현기증월드
    @현기증월드 5 лет назад

    1빠~

    • @현기증월드
      @현기증월드 5 лет назад

      조용필 노래 슬픈 베아트리체가 여기 인물이었나보군요. 😳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그런가요...노래 자체를 모르긴 한데, 왠지 맞을거 같은...ㄷㄷㄷ

  • @이재홍-k1n
    @이재홍-k1n 5 лет назад

    저건 황제가 잘못한겁니다, 신성로마제국은 황제위에 교황있는거니까요 교황입장에서는 황제를 임명한건 자신인데 개긴다? 말도안돼는거죠 카노사의 굴욕이라는데 애초에 황제상관이 교황임.고로 굴욕아님.당연한거

    • @justice20000
      @justice20000  5 лет назад

      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이재홍님.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아주라발발타
      @아주라발발타 5 лет назад

      아비뇽 유슈도 황제가 잘못한건가요?

    • @에파미논다스-s9h
      @에파미논다스-s9h 5 лет назад +2

      엄청난 착각을 하는것입니다.
      황권위에 교권이 설수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교황선임권은 황제에게 있었습니다. 더구나 교황은 5개의 교구마다 각자 따로 있었죠.
      그런데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교권의 배경이었던 황제가 후속대책없이 천도하면서 로마는 힘의 공백이 생기고 로마교황은 대대로 세속에서 멀어진 목가적인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이후 레오3세와 샤를마뉴가 연합을 하고 레오3세가 샤를대제를 서로마 황제로 임명하고 샤를은 로마교황청을 보호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이 성립합니다.
      이 이후 동로마의 교황과 대립하며 동로마는 그리스정교로 서로마는 카톨릭으로 발전하게 되죠.
      즉 왕권의 보호가 없는 교황은 힘이 없기에 왕권의 위에 설수 없습니다.
      카놋사의 경우는 특수 경우인게 당시에 이전에 하인리히4세가 먼저 그레고리오 7세를 폐위하며 상호간에 정당성이 훼손된 상태에서 섭정체제를 막 벗어난 하인리히 4세의 특수상태여서이고 실제 카놋사의 굴욕 3년후에 그레고리오를 폐위했으며 후일 보름스 협약으로 황제가 선거를 통해 주교를 임명하면 교황이 추인하는 형태로 마무리되죠.

    • @이재홍-k1n
      @이재홍-k1n 5 лет назад

      @@에파미논다스-s9h 결국 교황의승리로 결판이 났죠

    • @에파미논다스-s9h
      @에파미논다스-s9h 5 лет назад +1

      @@이재홍-k1n 후에 카를5세는 1만 병력으로 로마를 불바다로 만들었고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때도 벌벌떨었죠.
      카놋사의 굴욕의 주인공인 하인리히 4세도 파문했던 교황 그레고리오를 불과 3년 후에 폐위시키죠.